[카드뉴스] 국가폭력을 고발한다 1탄: '공권력'이라 쓰고 '국가폭력'이라 읽는다.
사과받고 싶다.
그는 내가 인권운동을 하기 이전에도 해고자였다. 술에 취한 어느 날 말했다. “형님, 해고자가 직업이야? 다른 거 해, 다른 거….” 그의 복직은 현실감 없어 보였다. 여린 심성 때문에 이리저리 치이는 게 안쓰러웠다. 더 이상 ‘투쟁’하지 말고 평범하게 살라 충고한 거다. 그가 대답했다. “사과받고 싶어서 그래.” 안주에 손대지 않고 독한 술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당신들 우리한테 왜 이래”
그녀에게 들었던 말이다. 직장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했다. 노골적인 치근댐을 견딜 수 없어, 회사에 이야기했다. 그러나 회사는 가해자를 두둔했다. 문제 제기한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자발적으로 퇴사하기 바랐다. 탈모까지 찾아왔다. 매일 출근하는 것이 지옥문 열고 들어가는 것 같다 했다. 견딜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대답했다. “사과받기 전에 그만둘 수 없어요.” 공감할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합쳐 6천 명은 월요일마다 성냥갑 속 성냥처럼 서서 조회를 했다. “자랑스런 ○○의 딸들아”로 시작하던 대머리 교장의 설교는 한결같이 밥맛이었다. 햇빛 뜨겁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앞줄 친구가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학생주임이 이단옆차기로 날아온 다음이었다. 운동장 먼지 속에서 친구는 조금 더 밟혔다. 이유는 실내화를 신고 운동장에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 선생을 쳐다보지 못했다. 친구 얼굴도 보지 못했다. 납득할 수 없는 폭력보다 그것을 묵인한 내 비겁이 못 견디게 부끄러웠다. 졸업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잊지 못한다. 친구에게도, 목격했던 우리 모두에게도 그와 학교, 어느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들의 폭력은 마땅한 질서였다. 사과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 11월14일 물대포에 맞아 위중한 백남기 농민에 대해 “인간적으로는 제가 오늘 충분히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사과를 했다”고 말했다. 인간적 사과는 책임지지 않는 것이고 법률적 사과는 책임지는 것인데 책임질 사과는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강 청장의 인간성을 알지 못하니, 진짜 인간적으로 미안해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강 청장 입을 빌려 나온, 국가의 대답은 미안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말이다.
백남기 농민 가족들은 책임 있는 사람에게 “사과받고 싶다”고 했다. 김무성은 ‘강경 노조 때문에 건실한 회사가 문을 닫았다’며 콜트악기와 콜텍을 지목했다. 억울하게 쫓겨난 해고자들은 사과받기 위해 40일 넘게 곡기를 끊었다. 삼성전자 반도체에서 백혈병으로 딸을 잃은 황상기씨도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 ‘반올림’ 동료들과 함께 삼성 본관 앞에서 50일 넘게 노숙농성 중이다. 참사 600일 행사를 앞둔 세월호 유가족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온몸을 던져 사과하라 말하고 있다. “당신들 우리한테 왜 이래, 우리 아빠한테, 우리 아들한테, 우리 딸한테 왜 이래! 나한테 왜 이래!” 인간이기 때문이다.
폭력의 반대는 권력
어느 날 닥친 사건이 객관 세계를 떠나, 존재를 흔들어버렸다. 존엄에 상처 입은 사람들은 치유받지 못하면 아프다. 억울하고 아픈 사람을 제대로 안아주지 못하면 ‘사회’가 아니다. 되레, 폭도로 내몰고 닥치라 하는 것이 질서고 법이라면 ‘나라’도 아니다. 한나 아렌트는 폭력의 반대는 비폭력이 아니라 권력이라 말했다. 요즘 권력이 ‘폭력’과 ‘평화’ 가지고 난리 법석이다. 소환, 압수수색, 구속… 죽이려고 덤빈다. 사과받지 못한 자들은 죽자고 악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판사판 개판이면 잃는 거 없는 놈들이 이긴다. 역사 교과서에 나와 있다. 국정화 이전이니 어서 읽어보자.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2015년 12월 9일, 한겨레 21
박진(다산인권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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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균 위원장 총궐기 참여, 기자회견 열어 입장발표
※ 공안당국의 체포영장 발부로 수개월 동안 발이 묶였던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마침내 전국노동자대회와 민중총궐기 현장에 등장해 투쟁을 이끈다. 한상균 위원장은 13시 프레스센터 앞에서 중앙집행위원회 대표자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대정부 입장을 밝혔다.
[기자회견문]
주먹 불끈 쥐고 13만 민중총궐기에 나선다
정치파업 불법협박 두렵지 않다. 구속 각오로 총파업, 2차 총궐기 이끌 것
노동자, 농민, 빈민, 청년학생 등 재벌세상의 기득권 아래 빼앗기고 신음하는 민중들이 오늘 마침내 민중총궐기에 나섭니다. 13만, 이 거대한 군중은 대통령 박근혜가 무슨 짓을 했는가를 목격한 시대의 증언자들입니다. 소위 노동개혁은 쉬운 해고와 비정규직 확산시키는 노동개악입니다. 쌀 수입 확대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는 농민생존을 위협하는 농업말살 정책입니다. 폭압적인 노점단속과 폭등하는 전월세 강탈은 도시빈민의 일터를 빼앗고 있습니다.
어제 정부부처가 발표한 합동담화는 국민을 향한 엄포와 왜곡으로 점철된 탄압입니다. 정부에게 서민경제는 뒷전입니다. 양극화대책에 무능한 정부는 아무런 반성도 없이 국민총생산만 자랑합니다. 재벌은 글로벌 돈방석에 앉았지만, 비정규직은 넘쳐나고 노동자의 절반은 200만 원 이하의 임금을 받는 현실은 국민총생산이 결코 평등의 수치가 아님을 말해줍니다. 정부는 재벌을 위해 나쁜 일자리를 만들며 노예노동을 강요합니다. 노동개혁은 이 참담한 현실을 더 확대할 뿐입니다.
박근혜 희망펀드에 노동개악 뒷돈을 찔러 준 것 외에 재벌기업들이 한 게 무엇입니까. 오히려 기업들은 노동개악을 통해 세액공제, 세무조사 면제 등 온갖 지원을 받습니다. 반면 노동자는 더 쉽게 해고당하고 임금도 깎이며 비정규직으로 떠돌게 됩니다. 노동재앙의 빗장을 열기 위해 정부는 청년들의 절망을 악용했습니다. 청년고용은 거짓 명분일 뿐, 청년고용 증대를 위한 명확한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비정규직 노예노동을 2년 더 연장시키고 금지된 파견고용을 대폭 확대하면서 비정규직 고용개선이라 말하는 노동부장관의 연기력이 놀라울 지경입니다. 눈곱만큼 실업급여를 늘린 것을 대단한 사회안전망으로 과장하면서, 왜 수급조건을 까다롭게 개악한 것은 말하지 않는 것입니까.오랫동안 노동계가 요구한 출퇴근 재해인정을 노동개악의 구색을 맞추려 이제서야 겨우 수용하면서 무슨 대단한 혜택인 양 선전하는 모습도 비양심입니다.
잘못된 사실로 여론을 호도하고, 살고자 몸부림치는 노동자를 매도하는 건 정부입니다. 민중총궐기는 폭력행위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민생난의 책임과 민주주의에 대해 묻고 있는 것입니다.노동개혁 안하면 딸 아들이 희망을 포기한다고 겁박하는 정부엔 분노가 치밉니다. 반성부터 해야 할 ‘헬조선 정부’가 이미 7포세대로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할 소리가 아닙니다. 노동개혁을 안하면 청년들이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개혁을 한다면 오히려 딸 아들은 실업과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정규직 전환의 희망은 평생 사라집니다.
민중의 단결, 총궐기야말로 세상에 희망을 불어넣는 절박한 숨구멍입니다. 정부는 노동개악을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중단하지 않는다면 민중총궐기의 분노와 기세를 노동현장에서 다시 목도할 것입니다. 민주노총은 취업규칙 개악과 성과해고 행정지침이 발표되거나 국회에서 개악법안 통과가 시도될 시, 즉각 총파업으로 대응할 것입니다. 그 시기는 12월 초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또한 비슷한 시기 2차 총궐기도 조직해낼 것이며, 그 때는 전국 각지에서 정권심판을 외칠 것입니다.
정치파업은 노동자들의 권리입니다. ILO(국제노동기구)는 노동자의 직접적인 관심사인 경제정책 및 사회정책에 대한 해법을 추구하는 것도 파업의 권리에 포함된다고 규정합니다. 보수적인 한국 대법원조차 노동정책이나 노동법 등에 관한 파업이라도 그 전격성과 손해의 막대함을 검토하여 불법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잘못된 노동정책에 반대하는 것을 금지하며 정치파업에 무조건 불법 딱지를 붙이는 건, 구악이며 독재의 유산입니다. 2014년 이탈리아에서 노동법개악 반대 총파업을 주도한 이탈리아노총(CGIL) 사무총장 수산나 카무쏘(Susanna Camusso)는 또 다시 파업을 구상하며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박근혜 파시즘의 정치파업 협박은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전체 노동계급을 대신해야 할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정치총파업, 그 권리선언의 길에 또 다시 구속을 각오하고 나설 것입니다.
민주노총은 장시간노동단축 논의를 강력히 촉구합니다. 가장 유력한 일자리 창출 방안이지만,기업의 부담이 따른다는 이유로 정부가 가장 먼저 배제했던 일자리 창출 방안, 노동시간단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한국의 세계 최장시간노동은 취업자의 과로와 청년실업의 모순, 산재사망 1위, 창의력의 빈곤, 가족관계의 소외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사회적 병폐를 낳았습니다. 장시간노동 단축과 더불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공공서비스를 강화해 복지와 일자리를 확충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개혁이며 우리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입니다.
어제 정부는 총궐기에 나선 노동자들에게 “주먹을 휘두를 자유는 코앞에서 멈춰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폭력은 정부가 저지르고 있습니다. 보수언론과 자본이 노동자에게 집단구타를 가하고 정부가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데, 우린 멈출 수 없습니다. 더 불끈 주먹을 쥐고, 정권의 오만한 콧날이 뭉개지도록 반격할 것입니다. 투쟁!
2015. 11. 14.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한상균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이 끝내 숨졌다. 향년 70세.
서울대병원 측은 백남기 농민이 25일 오후 1시 58분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경찰 물대포에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317일 만이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백남기 농민은 지난해 11월 14일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후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4시간 동안 수술을 받고 의식불명 상태로 317일간 중환자실에 입원해왔다. 인공호흡기와 약물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해왔지만 지난 주말 의료진은 가족들에게 주말을 넘기기 어려우니 중환자실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백남기 대책위는 이날 오전 서울대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 백남기 농민은 참으로 어렵게 지금까지 버텨오셨지만 안타깝게도 며칠 전부터 매우 위독하신 상태”라며 “검찰의 부검 시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백남기 농민 가족과 대책위는 지난해 11월 강신명 전 경찰청장 등 7명을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10개월 넘게 수사를 마무리 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대책위에 따르면 검찰이 가족이나 대책위에 공식적으로 부검 의사를 전달한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그런 의사를 전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병옥 전국농민회 총장은 “통상 관례상 이런 사건들은 법적인 차원에서 부검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옳다는 것이 (검찰) 내부 방침이라는 것을 확인했고, 의사와 정보계통 형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부검) 의사를 밝혀왔다는 것이 저희가 확인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실제 24일 저녁 9시 30분경부터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주변에 경찰력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백남기농민 청문회에 참석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아니다”며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인간적인 사과는 여러 차례 했지만 공식적, 법적 사과는 형사 민사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최종 판단이 나오면 어떤 사과도 거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백남기 농민은 1948년 전남 보성군에서 태어나 중앙대에 입학해 유신 철폐 운동 등을 벌이다 1981년 귀향해 농사를 해왔다. 1986년 가톨릭농민회에 가입해 우리밀살리기 운동에 앞장서 왔다.
▲백남기(사진 오른쪽) 씨가 살아 생전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백남기 씨 후배 최강은 씨 제공)
<백남기 농민 약력> (출처=가톨릭 농민회)1947년 8월 24일(음력) – 전남 보성군 웅치면 출생 1963년 2월 – 광주서중학교 졸업 1968년 2월 – 광주고등학교 졸업 (17회) 1968년 3월 – 중앙대학교 행정학과 입학 (68학번) 1971년 10월 – 위수령 시 시위혐의로 1차 제적 1973년 10월 15일 – 교내에서 유신 철폐 시위 주도 1974년~1975년 – 수배 중 명동성당에 피신 1975년 – 전국대학생연맹 가입 및 2차 제적 갈멜 수녀원 잡부 1년 일흥농원 포도원 1년 갈멜 수도원 수도사 3년 1980년 3월 – 복교 1980년 – 어용 학도호국단을 철폐하고 재건 총학생회 1기 부회장 역임 1980년 5월 8일 – ‘박정희 유신잔당(전두환, 노태우, 신현확)’ 장례식 주도 1980년 5월 15일 – 서울의 봄 때 의혈중앙 4000인 한강도하 주도 (흑석동 캠퍼스에서 서울역까지 도보 행진) 1980년 5월 17일 – 군부 계엄 확대 조치로 기숙사에서 계엄군에 체포 1980년 7월 30일 – 중앙대학교 퇴학 처분(3차 제적) 1980년 8월 20일 – 수도군단보통군법회의에서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 2년 선고 1981년 3월 3일 – 3‧1절 특사로 가석방 1981년 – 고향 보성으로 귀향(수도작, 낙농업, 밭농사 등) 1981년 11월 – 박경숙(율리아나) 씨와 결혼 1983년 – 정치활동 규제자에서 해금 및 복권 1986년 – 가톨릭농민회 가입 1987년 – 가톨릭농민회 보성, 고흥협의회 회장 1989년~1991년 –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장 1992년~1993년 – 가톨릭농민회 전국 부회장 1992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창립(준) 주도 1994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 2014년 – 가톨릭농민회 전남 동지회 회장 2015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자문위원 2015년 11월 14일 – 민중초궐기 대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의 물대포에 의해 쓰러진 후 의식불명 2016년 9월 25일 – 중환자실 입원 317일 끝에 사망 |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한국사교과서 국정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23일에는 국사편찬회가 보도자료를 통해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진 26명과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 필집진 21명 등 총 47명의 집필진을 구성했다고 밝혔습니다.
어이가 없는 사실은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뺀 나머지 46명은 이름도,소속도,전공도 밝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집필진도 비공개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고 하네요. 이게 자기의 이름도 밝히지 못 할 만큼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은 알고있는 걸까요? 이런 식으로까지 국정화를 강행하는 정부는 과연 우리나라 국민을 위해 일해야하는 우리나라 정부가 맞는 걸
까요?
이런 처사에 화가 난다면, 반대한다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됩니다. 어떻게라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들리게 해야합니다.
수원지역에서는 매주 수요일 수원역 로데오 거리에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위한 서명전 및 선전전을 진행합니다. 함께 힘보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 하나 25일 수요일 6시부터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및 세월호진실규명 촉구 거리행진 및 촛불문화제가 진행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웹자보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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