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온 ‘더 쉬운 해고’의 실체가 드러났다. 오늘 발표된 내용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전문가 논의를 위한 검토 자료라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정부지침을 공표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 영향력이 심대할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오늘 간담회에 참여한 전문가가 누구인지도 확인하기 어려운 사실상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어떠한 수사를 동원하여 미화하여도 박근혜 정부는 사용자가 더 쉽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오늘 발표된 정부지침은 해고를 제한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23조를 회피하려는 재벌·대기업과 사용자의 민원에 따라 정부가 나서서 더 쉽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요건과 그 절차이다. 헌법은 근로조건의 기준을 법률로서 보장하도록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법률이 아닌 행정부의 지침으로 노동자 전체의 생존권을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희망퇴직, 명예퇴직 등 불·편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무분별하게 노동자를 내쫓고 있는 사용자의 행태를 엄격하게 규제하기는커녕 이에 대해 정부가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다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는 근로계약을 “근로자의 근로의 제공과 사용자의 임금 지급을 목적으로”한다고 단순하게 도식화했다. 이는 근로계약이 마치 노동자와 사용자가 평등하고 대등한 위치에 체결되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구조 상 노동자는 생존을 위해 일자리가 필요하고 일자리가 없으면 생존하기 어렵다. 사용자가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관은 이러한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 노동자는 사회구조적으로 ‘을’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헌법은 노동3권을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로 보장하고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는 여느 개인들 간의 관계와 다르게 민법이 아닌 노동관계법을 통해 규율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업무능력 결여, 근무성적 부진 등의 경우는 근로제공 의무를 불완전하게 이행’한 것으로 간주하고 해고의 정당한 사유로 제시하고 있다. ‘불완전 이행’의 의미를 차치하고서라도 업무능력과 근무성적을 오로지 노동자의 능력으로만 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박근혜 정부는 경영자가 기업·경영 전반의 성과와 노동자의 업무 수행에 미치는 악영향을 배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충분한 인력의 확보, 적절한 업무량의 배치, 근로조건 등과 노동자의 업무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사용자의 책임과 의무, 역할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정부지침은 노동자를 소위, 저성과자로 판단하여 해고하기에 앞서 노동자에 대한 교육과 전환배치를 진행하도록 하고 이를 이행하면 공정한 해고 절차를 밟은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업무성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오로지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20대 신입사원이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고 있다. 희망퇴직, 명예퇴직, 정리해고, 징계해고 등 이미 온갖 형태로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저성과자라는 낙인, 해고를 종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인권침해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경영권, 경제발전 등의 논리를 앞세워 이러한 상황을 방관하고 고용노동부가 전면에서 기존의 불·편법적인 관행을 정당화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정부가 이런 부당한 상황을 동조하고 심지어 고용안정의 파괴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통상해고, 일반해고라며, 사안의 본질을 은폐하는 조어를 통해 여론을 호도하고 새로운 유형의 해고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쉬운 해고’를 위한 지침을 관철시키려는 시도, 즉각 중단하라.
‘제2의 쌍용차’로 불리는 하이디스 ‘먹튀’ 사태,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국내 기업 하이디스가 중국 기업에 팔렸다가 다시 타이완 기업으로 넘어가면서 기술은 무더기로 유출되고 회사는 껍데기만 남게됐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잃어버렸다.해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차가운 길바닥에서 노숙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뉴스타파는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에서 유출된 자료를 분석하다 하이디스와 연관된 조세 도피처 회사를 발견했다. 먹튀 자본의 배후에 조세 도피처를 이용한 편법과 탈법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이디스 전 사장과 중국 BOE 임원이 함께 페이퍼 컴퍼니 설립
하이디스와 관련된 페이퍼 컴퍼니는 ‘C&H 트레이딩’(C&H Trading ltd.)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BVI)에 2003년 4월 16일 설립된 것으로 나온다. 이 회사는 1달러짜리 주식 2주를 발행했는데, 당시 하이디스 사장 최병두 씨와 중국인 한궈지안(Han Guajin) 씨가 각각 1주씩을 소유했다. 이사도 이 두 사람이 맡았다. 중국인 한궈지안 씨는 당시 하이디스를 인수했던 중국 BOE 그룹의 임원으로 확인됐다. 회사 이름인 ‘C&H 트레이딩’은 두 사람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보인다. 회사 설립을 중개해 준 업체는 홍콩에 소재한 법률 사무소였다.
두 차례 걸친 하이디스 매각 과정에 이용된 페이퍼 컴퍼니일 가능성 높아
‘C&H 트레이딩’이 설립된 2003년 4월은 하이디스가 중국 BOE 그룹에 매각되고 5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10개월 뒤인 2004년 2월 28일 중국인 한궈지안 씨는 자신의 주식 한 주를 최병두 전 사장에게 양도한다. 이 같은 움직임은 하이디스 매각과 관련해 최 전 사장과 중국 BOE 그룹 사이에 조세 도피처를 이용한 모종의 작업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게 한다.
5년 뒤 하이디스가 다시 타이완 E-ink 사에 매각된 직후에도 이 회사를 이용한 모종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매각 7개월 뒤인 2009년 4월 16일 ‘C&H 트레이딩’은 보유하고 있던 ‘하이디스 타이완’ 주식 50만 주를 한국 하이디스에 양도한다. 이 조세도피처 페이퍼 컴퍼니가 두 번에 걸친 하이디스의 매각 과정에 실제로 중요하게 이용된 회사라는 점을 방증하는 정황이다. ‘C&H 트레이딩’은 더 이상 용도가 남지 않았는지 그로부터 5개월 뒤인 2009년 9월 1일 청산된다.
최병두 씨, BVI 회사 청산 6개월 전 사모아에 또다른 페이퍼 컴퍼니 설립
그런데 뉴스타파는 모색 폰세카 유출 자료에서 한국인 최병두 씨가 연관된 또 다른 페이퍼 컴퍼니를 발견했다. 이 페이퍼 컴퍼니의 이름은 ‘그레이스 퍼시픽(Grace Pacfic ltd.), 또 다른 조세 도피처인 사모아에 설립됐으며 이사와 주주는 모두 한국인 최병두 씨로 되어 있었다.
이 회사의 설립 시점은 2009년 3월 2일로, 최병두 씨가 소유한 버진 아일랜드의 페이퍼 컴퍼니인 ‘C&H 트레이딩’이 청산되기 불과 6개월 전이다. 설립 당시 제출한 주소는 E-ink 사의 본국인 타이완으로 되어 있다.
조세도피처 페이퍼 컴퍼니들의 주주이자 이사로 등록된 최병두 전 하이디스 사장은 하이디스의 핵심 기술 200건을 포함, 모두 4,331건의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방조하고 지시한 혐의로 2009년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던 인물이다.
뉴스타파는 하이디스에 조세도피처 페이퍼 컴퍼니의 용도에 대해 질의했지만 하이디스는 과거의 일이라 현재의 하이디스와는 무관하다는 입장만을 전해왔다. 최병두 전 사장의 경우 여러 경로로 소재를 수소문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해외 먹튀 자본이 조세도피처 이용한 탈법 저질렀는지 철저히 밝혀야
하이디스는 원래 현대전자의 LCD사업 본부였다. 그러나 2002년 현대전자가 무너지자 그해 11월 중국 BOE 그룹에 분리 매각됐다. 매각 가격은 3억8천만 달러였다.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던 중국 BOE 그룹은 하이디스에 약속했던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이디스의 기술과 인력을 중국으로 빼돌렸다.
약속했던 4천5백억 원 가운데 실제로 투자한 것은 천5백억 원, 그러나 이 가운데 천4백억 원은 지분 투자 명목으로 다시 중국으로 회수했다. 국내 기술자들을 중국으로 데려가 중국에 새로운 LCD 공장을 지었다. 결정적인 것은 기술 유출이었다. 하이디스가 보유한 핵심기술 200건을 포함해 4,331건의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됐다.
그 사이 하이디스의 경영은 점점 악화됐고 2006년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2008년 타이완 E-ink사에 재매각됐다. 그러나 새 주인 E-ink 사 역시 회사를 정상화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아니 한술 더 떴다. E- ink사는 하이디스가 가진 특허를 경쟁사들에 대여해주는 대가로 특허료만 한해 수백억 원을 벌면서도 투자는 거의 하지 않았다. 2008년부터 2015년 사이 하이디스가 FSS 기술(광시야각 기술)로 앉아서 벌어들인 특허료만 3,282억 원인데, 같은 기간 설비투자는 400억 원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E-ink 사는 그러면서 경영 환경이 어려워졌다며 잇따라 정리 해고를 단행했다. E-ink 사가 하이디스를 인수할 당시, 하이디스 노조는 중국 BOE 그룹의 기술 유출을 교훈 삼아, 기술 유출 방지를 약속한 단협을 요구해 쟁취했다. E-ink 사의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가 한 명도 남지 않게 되면 노조는 없어지고 단협은 효력을 잃게 된다. 그러면 자유롭게 기술을 타이완으로 가져갈 수 있다. 잇따른 정리해고의 결과 한때 2천 명이 넘었던 하이디스의 정규직 노동자는 현재 4명만 남았다. 그 과정에서 40대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이디스의 매각 과정에 조세 도피처를 이용한 탈법이나 편법이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철저히 조사돼야 할 것이다.
2주 전 이 칼럼에서 ‘정부를 시민의 유익한 도구로 만드는 게 민주주의’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 생각에 당연히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마침 한 독자가 비판의 글을 보내줬다. 정부는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강제 기구이고, 정부가 아니라 시민의 역할을 더 강조해야 민주주의가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정부가 ‘자유의 억압자’일 수 있다. 그 부분은 맞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를 최소화하고 시민의 역할을 최대화해야 할지, 아니면 정부가 공적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책임성을 더 부과해야 할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책임 정부’의 길인가, 아니면 ‘최소 정부’의 길인가.
인간은 불완전하다. 모든 강제를 없앤다고 해도 타인의 이익과 안전을 위협할 인간 집단은 등장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자는 모든 강제의 폐지가 아니라 강제의 최소화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제약 없는 절대적 자유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유 또한 ‘인간사회의 불가피한 한계 내에서 최대화할 수 있는 어떤 속성’이라 이해한다. 이를 최대화할 가능성은 ‘정부 없는 자연 상태’보다 정부가 민주적으로 기능하는 곳에서 더 커진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선택은 현실 속에서 가능한 최선의 정부로서 민주 정부를 발전시키는 것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민주 정부의 목적은 시민의 자유와 생명, 재산을 지키고 그래서 시민 스스로 행복을 추구할 기회를 최대화하는 데 있다. 하지만 민주 정부라 해도 그 목적을 상실할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 정부의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민주주의자가 마련한 책임성의 원리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기본권이다. 가장 고전적인 원리는 저항권이다. 시민은 자신의 일을 정부를 통해 하기로 마음먹은 대신, 어떤 경우에도 자유롭게 비판하고 반대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정부가 정당한 절차를 통해 시민 주권을 위임받았다 해도 기본권을 제한할 수 없게 했다.
둘째는 수평적 책임성이다. 이는 공적 권력기관을 서로 분립시켜 상호 견제시키는 것을 말한다. 입법 행정 사법부 사이의 삼권분립이 대표적인데, 중요한 것은 입법부가 제1기관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행정부 내지 그 수장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권은 입법부가 행사한다. 사법부 역시 입법부의 결정을 우선적으로 존중하는 선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는 수직적 책임성이다. 시민과 정부의 수직적 관계에서 시민이 지지를 철회하는 것, 한마디로 정부를 바꾸는 것이다. 시민이 저항과 반대만 할 수 있을 뿐 정부를 교체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라 보기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야당이다. 야당이 미래의 정부로서 신뢰를 주지 못한다면 수직적 책임성은 실현되기 어렵다. 불완전하지만, 현대 민주주의는 이런 원리로 작동한다. 때로 실패하지만 그런 원리 위에서 학습하고 발전하는 일을 반복한다.
지금으로부터 240년 전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정부를 만들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러한 권리를 확고하게 하고자 정부를 만들고, 권력의 정당성을 피통치자의 동의로부터 도출하는 사람들로 정부를 채우게 했다. 어떤 형태로든 정부가 스스로의 목적을 상실한다면, 그때 민중은 정부를 교체하거나 폐지해 새로운 정부를 수립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도록, 본래의 원리에 기초를 두면서도 피통치자의 동의에 맞는 방식으로 정당한 권력을 재조직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될까. 목적을 상실한 정부에 최종적 책임성을 부과할 수 있을까.
필자에게 의견을 보내준 독자는 “촛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촛불만 고수하겠다는 뜻도, 시민적 열정을 광장에 모으는 일에만 열중하겠다는 말도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래도 덧붙여 강조하고 싶다. 한 손에 촛불을 들더라도 다른 한 손으로는 ‘정치를 선용할 기회’를 부여잡았으면 한다. 양손을 다 잘 써야 민주주의도 좋아진다.
잘못된 정부를 반대하는 일은 중요하다. 좋은 정부를 만드는 일은 더 중요하다. 촛불집회가 잘하는 것과 잘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지금은 야당이 잘해야 하는 시기다. 촛불집회로 표출된 시민적 에너지가 야당을 좋게 만드는 일로 확대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자연스러운 일의 진행이기도 하다. 촛불집회가 목적을 상실한 정부에 반대하는 것에서 시작된 일이라면, 그 끝은 제대로 된 정부를 만드는 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최종 의결됐다. 이후 새누리당은 노동개혁 5개 법안을 발의했으며 현재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주요 내용은 △일반해고제 도입 △기간제 2년 → 4년 연장 △파견근로 허용 범위 확대 △취업규칙 변경기준 완화 △구직급여(실업급여) 자격 조건 강화 등이다. 정부와 여당은 청년 일자리 창출, 유연한 노동시장 구축 등을 근거로 내세웠지만 야당과 노동계는 쉬운 해고, 비정규직 양산이라고 지적했다.
노동계는 이번 개정안이 비정규직, 무노조나 중·소형 사업장 노동자에게 치명적이라고 비판한다.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변경해 노동조건을 열악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생각처럼 선의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동안 우리나라 경영자들의 행태로 보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꼴이라고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지난 6월 17일 새벽 2시경, 경남 거제의 한 아파트 입구에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신문 배달원이 남자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작업복의 ‘삼성중공업’ 마크와 가슴에 달린 이름표를 보고 신분을 확인했다. 그 남자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의 이창헌 과장이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아파트 추락 자살’로 결론 내렸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고 이창헌 과장은 사고 전날,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거제 일대를 배회했다. 평소 못 먹는 소주 1병을 마신 뒤, 부모님이 살던 아파트 15층에 올라가 스스로 몸을 던졌다. 유언은 남기지 않았다.
2012년 삼성중공업 연구소에 입사한 이 과장은 2015년부터는 현장 관리부서에서 일을 해왔다. 지난해 12월 결혼했고, 올 4월에는 딸을 얻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이 과장은 왜 스스로 몸을 던졌을까.
희망퇴직 분위기 속… 상사에게 ‘저 아웃입니까’라는 메시지
삼성중공업은 조선업 불황에 따른 수주 악화로 2015년부터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희망퇴직으로 1500명이 회사를 떠났고, 남은 직원에게는 급여 삭감이 단행됐다. 이 과장이 숨지고 한 달 뒤, 삼성중공업은 희망퇴직안을 발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와 일했던 동료는 직장 상사가 이 과장에게 과도한 업무를 지시하거나 모욕을 주는 방식으로 괴롭혔다고 증언했다. 업무 압박을 줘서 스스로 희망퇴직자가 되게 하는, 이른바 찍어내기라는 것이다.
사고 났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직장 상사가 죽였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사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이 과장을 불러요. 이 과장을 앞에 앉혀놓고 10분이고 20분 초등학생 혼내듯이 엄청 뭐라고 해요. ‘오늘 퇴근하기 전까지 가져와’, ‘내일 아침까지 가져와 내 책상에’ 이런다고요. 전 직장 동료 /음성대역
고 이 과장의 아내 배 모 씨는 “지난 3월에 남편이 ‘오늘 상사가 나한테 짜증을 많이 내시는 것 같다’고 했다”며 “남편이 강하게 표현 안 하는 편이라, 상사에게 오늘 많이 깨진 것 같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가 남긴 핸드폰 메모에도 직장 상사에 대한 긴장감이 드러나 있다. 상사에게 “죄송하다”, “앞으로 더 잘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또 상사에게 “저 아웃입니까”라며 희망퇴직 대상자인지를 묻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직장 상사가 “무슨 말이냐”고 묻자 이 과장이 “희망퇴직설이 있어서 말씀드렸다”고 하자 상사는 “없다”고 답했다.
뉴스타파는 삼성중공업 측에 희망퇴직에 따른 찍어내기와 괴롭힘 여부를 물었다.
“괴롭힘을 주거나 하는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자체 조사를 하신 건가요? “팀장이나 부서장 쪽에서 이창헌 과장에게다 그런 내용의 이야기는 전혀 없었습니다.” 삼성중공업 홍보팀 관계자
이 과장은 대학 시절부터 우울증약을 먹어왔다. 그런데 숨지기 두 달 전부터는 집중적인 치료가 진행됐다. 지난 4월, 이 과장의 정신과 면담 기록지에는 구조조정에 따른 불안증세와 불면증을 느끼고 있다고 적혀 있다. 그의 휴대폰에는 ‘사람 죽는 높이’를 검색했던 게 남아 있다. 지금 심적으로 도망가고 싶은 생각,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심하게 우울한 것은 1-2주 전부터 그렇다. (2017.6.14 정신과 면담기록지)
부인 배 씨는 이 과장의 죽음을 산재라고 주장했다. 희망 퇴직압박에 따른 스트레스가 심해 그런 선택에 내몰린 것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판단 능력이 떨어진 노동자의 자살은 산재로 인정하고 있다. 대법원도 이같은 취지의 판결을 여러 차례 내린 바 있다.
지난 2015년 경찰청 통계를 보면, 직장이나 업무상의 이유로 자살한 사람은 559명으로 하루 1.57명꼴에 이른다.
산재 입증 책임은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떠넘겨져
관건은 산재를 어떻게 입증하느냐는 것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노동자 측에 산재 입증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족이 직접 고 이 과장의 스트레스 강도와 초과 근로 시간, 업무량 등에 관한 자료를 찾아야하는 상황이다.
입증 자료 확보를 위해 배 씨는 남편의 회사 사무실 출입을 요구해왔다. 이 과장의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였는지, 직장 상사의 압박은 없었는지 등을 그의 사무실의 컴퓨터나 메모에서 확인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 측은 배 씨의 회사 출입을 거부했다. 보안상의 이유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배 씨는 회사 사무실에서 남편의 유품을 챙겨오겠다고 요구했지만, 회사는 유품을 상자에 담아 집으로 보냈다. 숨진 지 두 달이 지나 더는 유품 보관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의아한 것은 유품 상자에는 2015년 수첩은 있지만 최근인 2016년, 2017년 수첩은 보이지 않았다.
또 배 씨는 경찰에 남편과 관련된 수사 기록 일체의 공개를 요청했다. 2주 후, 경찰이 공개한 수사 기록은 고작 세 페이지였다. 사고 전날 휴가 신청 서류와 이 과장의 석달치 초과근무 신청 내역이 전부였다. 회사 동료들의 진술서, 출퇴근 기록지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배 씨는 경찰에 정보 공개에 대한 이의 신청을 냈다.
국회 개정안 냈으나 폐기…인권위 권고에도 5년째 미이행
노동자의 산재 입증 책임에 대한 분담이 여러 차례 논의됐으나 실현은 흐지부지됐다. 지난 2011년 국회에 노동자와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입증 책임을 분담하도록 하자는 취지의 개정안이 올라왔으나 당시 국회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또 국가인권위원회가 2012년, 국가와 사용자 측에게도 입증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권고안을 냈으나 5년째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런 입법 노력과는 반대로 2015년 헌법재판소는 산재 입증 책임이 노동자측에 있다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 보험재정 건전성 유지와 노동자의 입증이 용이하다는 이유였다. 다만 당시 안창호 재판관은 질병의 오랜 진행과정, 노동자측의 정보 부족으로 노동자에게 가혹한 결과를 초래한다며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보충 의견을 내기도 했다.
지난 8월, 대법원은 산재 입증 책임에 대해 노동자 측의 부담을 덜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일하다 다발성경화증이라는 희귀 질환에 걸린 노동자의 산재 소송에서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삼성전자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관련 정보를 거부한 것을 두고 “입증 증명이 곤란해진 사정은 노동자에게 유리한 간접 사실이 된다”고 판시한 것이다. 이는 노동자의 입증 부담을 덜어주면서 정보 제공을 거부한 회사의 소극적인 자세에 경고한 셈이다.
회사가 어떻게 보면 가장 큰 키를 쥐고 있지만 그 키를 안 풀어주는거 잖아요, 사실. 그로 인해서 가장 기본적인 걸 확인하고 싶어도 확인할 수 없고 회사가 자료를 제출할 의무도 없는 거고. 유족들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안도 없어요. 지금 입증 책임 전환에 대한 논의는 이미 10년 전부터 있었는데 그조차 흐지부지해왔던 것이고 좀 더 많은 변화가 있어야겠죠. 권동희 노무사
#2. 건강했던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 이유는?
금호고속 광주지사 소속 버스 기사였던 남편. 아내는 남편이 술과 담배도 멀리한 건강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아내는 하루는 새벽에 운전을 마치고 온 남편이 힘들어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최 씨가)새벽 3시에 들어오면서 ‘나 너무 힘들어 나 죽으려나 봐’라고 해요. 또 ‘봐봐 (목이)안 돌아가, 안 돌아가’, 그래서 내가 ‘그러면 얼른 씻고 자야지’ 그랬죠. 힘들어서 그런 줄만 알았죠. 금호고속 버스기사 최 씨 아내
그날 저녁, 남편 최 씨는 광주의 한 공원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최 씨는 큰 수술을 받았으나 쓰러진 지 한 달도 안 돼 숨을 거뒀다. 사인은 모야모야병에 이은 뇌출혈과 뇌경색. 모야모야병은 특별한 이유 없이 뇌 속 특정 혈관이 막히는 질환이다.
과로사 버스기사의 운행일지…쓰러지기 전날, 약 1000KM 운행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운행일지에서 실마리를 찾아 볼 수 있다. 최 씨가 쓰러지기 전날인 지난해 9월 28일의 운행을 보면, 오전 9시 강원도 원주에서 시작된 운행은 다음 날 새벽 2시 40분 광주에서 끝이 났다. 총 거리는 989km, 운행시간만 총 열네시간이다. 최 씨의 하루 평균 운행 거리인 630km보다 1.5배나 길었다. 9월 13일은 1002km, 9월 9일은 1095km, 9월 4일은 913km 등 운행일지 곳곳에서 900, 1000km 운행 거리가 눈에 띄었다.
또 수면시간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쓰러지기 일주일 전인 9월 22일 운행을 보면 최 씨는 다음날 새벽 1시에 경남 창원에 도착한 뒤, 아침 7시 40분에 버스 운전대를 잡았다. 전날 13시간을 운행한 뒤 6시간가량을 쉬고 다시 11시간을 운행한 것이다.
이 같은 운행이 가능했던 이유는 고속버스 기사는 근로기준법 59조, 근로시간 특례조항에 적용받기 때문. 이 조항에 따라 운수업, 영화제작업, 방송업 등 26개 업종에 대해서는 노사 합의만 있다면 무제한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다.
여야는 지난 7월 광역버스 사고 이후 노선 버스업 등 16개 업종을 특례업종에서 삭제하기로 합의는 했지만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또 현재 국회에는 하루 최대 10시간 이상의 버스 운행을 금지하는 여객자동차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유럽연합은 9시간, 미국은 10시간으로 버스 기사의 하루 최대 운행 시간을 제한하고 있는 상태다.
최 씨가 숨지고 나서야 버스기사의 휴식시간 보장은 법으로 명문화됐다. 지난 2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이 개정돼 버스의 경우 1일 운행 종료 후 연속 휴식시간 8시간을 보장하고, 1회 운행 후 15분 이상 휴게시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잇따른 졸음운전 사고에도…과로사의 현장 조사는 생략 가능
지난 5월, 근로복지공단 광주본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최 씨의 죽음을 산재로 인정했다. 이로써 최 씨의 사용자 측인 금호고속은 1명 이상이 업무로 사망한 중대재해 사업장이 됐다. 금호고속은 관할노동청의 현장조사 대상이 된다. 하지만 관할 노동청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유는 근로감독관 직무 규정 때문. 규정에는 추락, 골절 등 안전 사고 같은 사업주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위반이 아닌 재해는 현장조사를 생략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즉 눈에 보이는 안전사고가 아닌 경우에는 노동청이 조사를 안 해도 되는 것이다.
문제는 버스기사의 졸음운전이 개인의 생명뿐만 아니라 버스 승객과 도로 위 운전자들의 목숨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7월, 고속버스기사의 졸음운전으로 20대 여성 4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 지난 7월에는 광역버스기사의 졸음운전으로 50대 부부가 숨졌다.
노동청이 적극적으로 조사를 통해서 근무시간 변경이라든지 업무 형태 전환이라든지 이런 것을 지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게 회사에서는 강제로 할 수 없거든요. 본인들은 조그만 인력을 가지고 근로자를 많은 시간 일을 시켜서 수익창출을 하려는 구조로 되어 있고 그게 기업의 목표이기 때문에 기업에서 자율적으로 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배연직 노무사/최 씨 사건 대리인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