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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4.16 인권 선언인'이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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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4.16 인권 선언인'이 되어주세요!

익명 (미확인) | 화, 2015/12/15- 16:06

세계인권선언일인 오늘 12월 10일,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을 발표했습니다.
1년의 시간동안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무수한 토론과 회의를 거쳐 만들었습니다.

 

오늘 선언문을 낭독하면서 권리조항을 쌓는 퍼포먼스도 진행했습니다. 13개의 권리조항이 분향소 영정 앞에 놓였습니다.

 


이제 ‘선언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선언인 운동>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선언은 선언문으로 완결되지 않습니다. 수많은 ‘우리’가 다시 말하고, 외치고, 행동하는 과정 속에서 완성되어 갈 것입니다.

 

함께 손을 잡자! 함께 행동하자!
선언에 동참해주세요! 선언을 실현할 약속에 동참해주세요!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세월호 침몰은 한국 사회가 이미 가라앉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으며, 수많은 세월호들의 침몰 속에서 다시 닥쳐온 재난이다. 이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참혹하게 드러낸 참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정의를 짓밟고 언론은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에 침을 뱉고 참사의 진실을 덮으며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 한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이 땅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인간으로 다시 살기 위해 저항과 연대를 멈출 수 없었다. 팽목항에서, 안산에서, 광화문에서, 애통함이 뒤덮인 또 다른 거리에서 우리는 함께 마음을 졸이고 아파했다. 눈물을 흘렸고, 이야기를 했고, 광장에 나섰고, 길을 걸었다. 흔들리면서도, 박해받으면서도 우리는 함께 싸우며 우리의 존엄을 회복하고 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모욕은 존엄을 밀어낼 수 없다.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자유롭고 평등하다. 안전한 삶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할 권리다. 안전은 통제와 억압으로 보장될 수 없으며,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유, 평등, 연대 속에서 구현되는 인간의 존엄성이야말로 안전의 기초이다. 우리의 존재가 오직 이윤 취득과 특권 유지의 수단으로만 취급되고 부당한 힘이 우리의 권리와 삶의 안전을 위협할 때 우리는 이에 맞서 싸울 것이다.

 

권리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으며 우리가 협력하여 싸울 때 쟁취하고 지킬 수 있다. 권리를 위한 실천이 우리가 주권자임을 확인하는 길이며, 곧 민주주의 투쟁이다. 우리는 존엄과 안전을 위협하고 박탈하는 세력들에 맞서 노란 리본을 달고 촛불을 들겠다. 세월호의 아픔으로 시작한 이 싸움은, 모든 이들의 존엄을 해하는 그 어떤 장애물도 넘어설 것이다. 그리하여 함께 살고 함께 나누는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이 다짐을 담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은 최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돈이나 권력은 인간의 생명과 존엄보다 앞설 수 없다.

 

2. (자유와 평등)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다. 어떠한 이유로도 억압당하거나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3. (연대와 협력) 모든 사람은 연대할 권리를 가진다. 누구도 혼자 살 수 없으며, 인간의 존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협력하며 살아갈 때 지켜질 수 있다.

 

4. (안전을 위한 시민의 권리와 정부의 책임) 모든 사람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가지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위험을 알고, 줄이고, 피할 권리가 있으며 이를 보장할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5. (구조의 의무) 정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재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구조하고 이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구조에 있어서 그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된다.

 

6. (진실에 대한 권리) 모든 사람은 재난을 초래한 환경과 이유를 포함한 진실을 알 권리를 가진다. 진상조사를 위한 기구에는 충분한 권한이 주어져야 하며 공정성과 독립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진실에 대한 어떠한 은폐와 왜곡도 용납될 수 없다.

 

7. (책임과 재발방지) 재난의 해결은 정의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책임자를 엄정하고 공정하게 처벌해야 하며, 유사한 재난의 발생을 막기 위해 정부와 사회는 철저한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8. (피해자의 권리) 피해자는 부당한 해를 입었고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존중 받을 권리가 있다. 특히, 정부와 책임 있는 대표자로부터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 또한 피해자는 사건 해결의 전 과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9. (치유와 회복) 피해자는 재난 발생 즉시 필요한 구제와 지원을 평등하게 받을 권리가 있다. 또한 치유와 회복을 위해 적극적이고 충분한 조치를 취할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10. (공감과 행동) 모든 사람은 재난으로 생명을 잃은 이들을 충분히 애도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재난 피해자의 아픔에 동참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말하고, 모이고, 행동할 권리를 가진다.

 

11. (기억과 기록) 공동체는 피해자를 기억하고, 재난과 그 해결의 전 과정을 기록하여야 한다.

 

12. (저항할 권리) 정부, 기업, 언론 등 권력기관이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침해하고 안전을 위협할 경우, 모든 사람은 스스로 방어하고 연대하여 투쟁할 권리를 가진다.

 

13. (존엄에 기초한 사회를 만들 권리) 모든 사람은 돈과 권력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 자유와 평등, 연대와 협력, 인간의 생명과 존엄에 기초한 사회를 만들 권리를 가진다.

 

우리는 상실과 애통, 그리고 들끓는 분노로 존엄과 안전에 관한 권리를 선언한다. 우리는 약속한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우기 위한 실천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또한 우리는 다짐한다.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재난과 참사, 그리고 비참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대할 것임을. 우리는 존엄과 안전을 해치는 구조와 권력에 맞서 가려진 것을 들추어내고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이 선언은 선언문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우리가 다시 말하고 외치고 행동하는 과정 속에서 완성되어 갈 것이다. 함께 손을 잡자. 함께 행동하자.



선언을 실현할 자신만의 약속을 다짐하며

'4.16인권선언인'이 되어주세요!

 


* <4.16인권선언 약속피켓>은 첨부파일로 다운받아서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인증샷 찍기, 주변에 나누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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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인 등록 새창에서 열기>>http://goo.gl/forms/uX682vWM6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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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 확인하기>>http://416act.net/notice/9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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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3년, 여전히 안전은 뒷전이었다 (프레시안)

전시 행정으로 일관해 왔던 지난 정권의 안전 대책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시민의 참여와 권한 강화가 필수적이다. 일터에서는 노동자의 작업 중지권 보장과 하청 노동자 예방활동 참여권 보장, 시민 안전의 각 영역에서는 노동자, 시민이 참여하는 상설적 대책 구조가 마련되고 위험에 대한 알 권리와 참여권이 강화되어야 한다. 또한 무차별적으로 완화된 안전 규제를 원상회복하고, 박근혜표 규제 완화 대책을 폐기시켜야 한다.


아래 주소에서 기사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54328

수, 2017/03/2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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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는 안산시,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과 함께 ‘기억의 조건 : 한국과 독일의 사례로 보는 기억문화의 역할과 과제’라는 주제로 2017년 3월 23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포럼을 열었습니다. 4‧16 세월호 참사,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사회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며, 기억문화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현장의 생생한 후기를 전합니다.


2017년 3월 23일, 차가운 물 속에 천 일 넘게 잠겨있던 세월호가 떠올랐습니다. 전 국민의 시선이 긁히고 찢긴 세월호에 쏠렸던 그날, 희망제작소는 안산에서 이런 아픔을 어떻게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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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기억문화, 그 험난한 과정

미하엘 파락(Michael Parak, 반망각-민주주의진흥재단 사무총장)과 팀 레너(Tim Renner, 前 베를린 시 문화부 장관)에게 독일의 기억문화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독일은 과거 나치의 만행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으며, 학교에서도 이에 대해 배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민족 말살이라는 범죄 행위의 가해자들이 나의 가족과 이웃으로 살고 있는 상황에서,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에 대해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고 합니다. 시간이 흘러 세상을 떠나는 희생자가 많아지면서, 지난 일이니 덮어두자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하자고 꾸준히 말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작은 목소리가 현재 독일의 모범적 기억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올바른 기억문화 정착을 위해 ‘기억 간 경쟁’은 피해야

혹시 우리는 지난 일을 기억할 때, 서로 비교하며 그 무게를 따지려 하지 않았나요? 어느 사건의 희생자가 더 많았는지, 어느 사건의 결과가 더 처참했는지 말입니다. 미하엘 파락 사무총장은 기억 간의 경쟁이 다른 하나를 미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치에 비해 독일 공산독재가 ‘그나마 덜 했다’는 것처럼 말이죠. 비록 그 피해의 규모가 비교적 작았다거나, 기간이 짧았다거나,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하나에 모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경쟁하지 않는 것, 이를 통해 우리는 각 사건의 진실을 올바르게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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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에 대한 기억에서 희생자에 대한 기억으로

나치정권의 범죄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처음 주목 받았던 사람들은 부정의에 저항한 영웅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행정은 폭력의 공간을 보존하는 것에 집중했었죠. 하지만 1999년 연방의회에서 ‘기억의 대상은 희생자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습니다. 이를 통해 유가족이 희생자를 추모할 수 있고, 가해자는 죄를 고백할 수 있으며, 시민은 과거 잘못된 선택의 결과를 배울 수 있는 장소를 조성했습니다. 그것이 현재 베를린 시 한복판에 위치한 회색빛의 추모공원입니다. 팀 레너 전 장관이 공유한 베를린 추모공원 사례는 희생자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한국의 아픈 역사, 그것의 올바른 기억

우리도 아픈 역사가 참 많습니다. 가깝게는 국가의 무능한 대응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생긴 4·16세월호 참사부터, 일방적 정리해고와 폭력 진압에 현재까지도 고통 받는 쌍용차 노동자들, 군사독재 정권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무고한 시민의 희생이 발생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 말입니다. 복잡한 정치적 역사 속에서 권위주의적 정부는 자본과 권력의 힘을 키우기 위해 힘없는 시민의 희생을 발판 삼았습니다. 하지만 그 희생은 억압받고, 때로는 조롱당하며 왜곡된 채로 잊히곤 합니다. 잊힌 기억은 비슷한 희생을 낳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연사들이 공유한 아픈 과거의 진실을 기억하고 같은 희생을 막기 위해, 우리도 올바른 기억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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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위한 우리의 역할

미하엘 파락 사무총장은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찬성과 반대 의견은 모두 기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토론을 통해 원하는 결과의 근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종합해 올바른 결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기억문화는 다양한 목소리를 나누는 민주주의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발제에 이어 많은 질문이 나왔습니다. 독일에서 지난 역사를 다시 기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수십 년이 지난 이후에 등장할 수 있었던 계기나 도심 한복판에 추모 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있었던 시민의 반응 등을 묻고 답하며, 기억문화에서 ‘시민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많은 의견을 어떻게 종합하여 합의점을 찾아낼 것인지에 대한 질의응답도 있었는데요. 기억문화에서 행정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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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점차 흐려집니다. 사라지고 왜곡되기 전에 우리는 기록해야 합니다. 독일 연사들은 기록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참여’와 ‘토론’이라고 말합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하여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정치적 이해관계로 한쪽의 의견이 묵살당하지 않아야 기억을 올바르게 기록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함께 답을 찾아 가는 것, 그것이 사회갈등을 줄이고 더 나은 미래로 다가갈 수 있는 정도(正道)가 될 것입니다.

– 글 : 이다현 | 지역정책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사진 : 최정상 사진작가

☞ 2017 한독도시교류포럼 기억의 조건 독일 연사 발제 전문 보기
– 미하엘 파락(Michael Parak, 반망각-민주주의진흥재단 사무총장) – 기억문화에서 시민의 역할 (전문 보기)
– 팀 레너(Tim Renner, 前 베를린 시 문화부 장관) – 기억문화에서 도시의 역할 (전문 보기)

☞ ‘2017 한독도시교류포럼 – 기억의 조건’ 자료집 구매를 원하시는 분은 ‘이곳을 클릭’해주세요!

화, 2017/03/2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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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세월호 참사 원인의 하나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던 ‘외부충돌설’도 검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세월호 궤적

▲ 세월호 궤적

외부충돌설의 숙주,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선체 좌현’

세월호 외부충돌설은 기본적으로 세월호의 급변침 당시 궤적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검찰 수사와 해양안전심판원 조사, 여러 연구기관들의 시뮬레이션 등에서 계산된 세월호의 복원성 지표를 볼 때 참사 당시와 같은 급변침 궤적은 나타날 수가 없으며, 따라서 수중의 어떤 물체와 충돌로 인해 세월호 선체가 좌측으로 넘어간 것이라는 가설이다.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세월호 선체 부분 CG

▲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세월호 선체 부분 CG

만약 앞으로 진행하던 세월호가 수중의 어떤 물체로부터 충격을 받아 좌측으로 쓰러졌다면 충격을 받은 부위는 선체 좌현 바닥면 중 무게중심보다 앞 부분이어야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참사 당시 세월호를 포착한 어떤 영상 속에서도 선체의 좌측면 대부분은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외부충돌설을 제기해온 이들은, 세월호가 인양되고 나서 좌측 바닥면을 조사하면 반드시 외부 충격 흔적이 남겨져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던 것이다.

인양 선체의 좌현 선수 사진 (해수부)

▲ 인양 선체의 좌현 선수 사진 (해수부)

수면 위로 올라온 선체… 좌현 선수측 바닥엔 충격 흔적 없어

그러나 수면 위로 올라온 세월호 선체의 모습을 살펴보면 좌현 선수측 바닥면에는 외부 충격이 있었던 것으로 볼 흔적이 관찰되지 않는다. 좌현 선수측에 발생한 훼손은 지난해 10월 선체 인양을 위한 선미들기 공정 도중 와이어가 선체를 파고들어가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참사의 원인과 연결될 만한 흔적은 아직 보이지 않는 상태다.

더 살펴봐야 할 좌측면

▲ 더 살펴봐야 할 좌측면

이에 따라 세월호가 외부 충돌로 인해 좌측으로 쓰러져 전복됐다는 의혹은 힘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론 검증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현재 세월호 선체는 반잠수선 위에 좌측면을 맞댄 채 뉘어져 있는 상태여서, 수면 위로 한 번도 포착되지 않았던 충돌 의심 부위의 일부는 제대로 살펴볼 수가 없는 상태다. 그다지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목포신항 이동 후 세월호를 바로 세운 뒤 해당 부위를 마저 조사하고 나면 외부충돌설에 대한 검증은 완료된다.


취재 : 김성수
영상취재 : 김기철, 정형민, 신영철
영상편집 : 정지성

목, 2017/03/30-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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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보고서 '코로나19와 집회시위의 권리'가 발간되었습니다. 

아래의 링크로 들어가시면 보고서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Whu4wi3_nvhUR6CxENWda9JKlHrpnNLx/view?usp=sharing

2020년 초부터 전 세계로 확산된 코로나19 감염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는 여러 가지 비상 방역조치를 시행하였다. 건강과 안전,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우선적 목표 앞에서 이러한 조치들은 주로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확진자를 격리하고 집단 활동을 통제하며 때로는 처벌하는 규제의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해 여러 기본권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방역조치로 인해 가장 심각하게 위축된 기본권은 바로 모이고 말하고 연대할 권리, 즉 평화적 집회의 자유에 대한 권리였다. 비말과 공기 감염을 통해 전파되는 코로나19의 특성과 미지의 감염병이 가져오는 불안과 공포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기 어려워진 것은 어찌보면 불가피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 집회의 자유가 위축된 상황은 감염을 막기 위한 개인들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바로 방역을 빌미로 과도하게 집회의 자유를 제한해 온 정부의 대응에 그 근본적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국가에서 코로나19를 이유로 여러 기본권을 제한하는 상황에 경각심을 울리기 위해 2020년 4월 14일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위기가 일반적인 권리 또는 평화적 집회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억압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각 지자체는 어떠한 기간의 제한도, 구체적 방역조치와의 연관도 없이 전면적으로 집회를 금지하는 조치를 앞다투어 시행했고, 이와 관련하여 중앙정부 차원의 가이드는 존재하지 않았다. 입법부와 사법부 역시 이러한 자의적인 행정을 제대로 견제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였다.

모이고 말한다는 것의 의의

“코로나 시국에 무슨 집회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기이기 때문에 더 모이고 말해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전염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보건상의 위험과 규제 중심의 방역조치는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부는 아프면 쉬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파도 쉴 수 없는 노동자들이, 회사의 무급휴직 강요를 거부하다 해고되는 노동자들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를 이유로 먼저 해고되는 노동자들이 있다. 밀접, 밀집, 밀폐 이른바 3밀을 피해야 한다지만, 시설 내 장애인들은 기본적인 방역조치도 받지 못한 채 코호트 격리를 당해야 했다.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주민, 성소수자 등 특정 집단이나 개인이 전파의 주범으로 지목받으며 혐오와 낙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코로나19 상황에서 또 다른 차별과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목소리를 전할 통로가 필요하다. 단순히 정부가 내리는 방역지침을 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그러한 지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주류 언론 등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기 쉽지 않은 이들이 모이고 말하는 자리, 그것이 바로 집회이다. 헌법재판소가 지적한 대로 “집회는 현대사회에서 언론매체에 접근할 수 없는 소수집단에게 그들의 권익과 주장을 옹호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소수의견을 국정에 반영하는 창구”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집회의 자유는 소수의 보호를 위한 중요한 기본권인 것이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위기 상황 속 다수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 앞에서 집회의 자유는 계속해서 축소되어 갔다. 서울시의 경우 전 지역에서 10인 이상의 집회가 금지된지 오래이며 주최 측이 아닌 단순 참여자가 10명 이상만 모여 있어도 경찰의 제지를 받고 흩어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제한 속에서도 권리를 외치는 목소리를 사회에 전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소규모의 기자회견을 하거나 사람 대신 깃발, 인형, 피켓을 활용한 집회가 이루어졌으며, 퀴어문화축제 등의 대규모 행사는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집회가 제한된 상황에서 하나의 대체 수단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대안은 될 수 없다. 집회는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뜻을 같이 하는 동료 시민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배우며, 용기를 얻는 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처럼 서로 고립되어 각자의 이야기만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집회의 자유가 기본권으로서 갖는 의의를 퇴색시킨다. 이제는 이러한 현실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집회의 자유를 다시 이야기하자

“코로나19, 우리는 더 모이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안전하게 집회하고 싶다.”

2020년 7월 2일 서울시청 앞에서 시민·사회·노동·인권 단체들은 지자체의 집회금지 조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때 외쳤던 위 구호는 현재도 유효하다.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에서도, 아니 위기 상황이기에 더욱 우리는 모이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방역을 빌미로 일방적으로 집회의 자유를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방역과 집회의 자유가 결코 대립되는 것이 아님을, 그 사이에 균형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2020년 8월 15일 보수단체의 광화문 집회 후 확진자 수가 증가하자 집회를 그 원인으로 지목하는 목소리들이 나왔고, 이후 집회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같은 날 광화문에서 진행되었던 민주노총의 집회는 대규모 인원이 참여했음에도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안전하게 이루어졌고, 참가자 중 한 명만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을 뿐 관련 확진자는 나오지 않았다. 8월 15일 이전에도 ‘비정규직 이제그만’의 노동절 행진과 같이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안전하게 진행된 집회가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8.15. 보수단체 집회와 같이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은 집회가 위험한 것이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안전한 집회는 가능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또한 시민사회가 방역지침과 집회·시위의 자유 간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고민하며 자체 기준과 원칙을 만들고 구체적으로 실천한 경험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이러한 경험을 상기하며 코로나19 상황에서 집회의 자유가 축소된 상황들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2020년의 집회금지 현황을 통해 집회금지가 방역조치에 비례하여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각 지자체의 집회금지 고시의 현황과 문제점을 분석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행정의 이러한 자의적 권한 행사에 대한 견제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보기 위해 국회에서의 관련 입법 논의와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그리고 집회·시위의 자유가 축소된 상황에서 다양한 현장 활동가들이 경험한 어려움을 담은 인터뷰도 실었다. 마지막으로 방역조치를 이유로 한 집회의 자유 제한의 한계는 무엇이며, 집회의 자유 보장을 위해 필요한 조치들은 무엇인지 대안을 제시하였다.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감염병의 확산으로 인해 사람들의 일상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일 거라는 예측도 많다. 하지만 어떤 세상이든 사람들이 사회적 존재로서 함께 모이고 말하며 행동하고자 하는 욕구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감염병이라는 위기가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홀로 고립되지 않고 동료 시민들과 함께 거리에서 만나고 서로에게 용기를 얻는 자리, 이를 통해 모두가 존엄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변화는 지속되어야 한다. 이 보고서가 그러한 변화를 만드는데 하나의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목차
1. 서론
2. 코로나19와 집회금지조치
3. 코로나19 관련 지자체 집회금지 행정명령
4. 집회금지처분과 사법부의 판단
5. 코로나19 상황 속 집회·시위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과 입법부
6. 공중보건 관점에서 본 코로나19와 집회·시위의 자유
7. 코로나19 시기, 집회·시위의 권리 침해는 어떻게 나타났나
8. 결론
# 인터뷰
# 부록

제작 공권력감시대응팀
지원 인권재단사람
디자인 언제나봄그대곁에
발행일 2021년 8월 12일

이 이슈보고서를 만든 공권력감시대응팀은 인권단체들의 연대체로서 집회·시위 현장에서 벌어지는 경찰의 폭력 및 공권력 남용, 집회·시위 자유의 보장 및 확장을 위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개정, 경찰력의 민주적 통제 등을 위한 관련법개정 활동 등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7개 단체(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다산인권센터,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사랑방,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슈보고서 작성에 함께 한 사람들(가나다 순)

랑희(인권운동공간 활), 한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아샤(다산인권센터), 정록(인권운동사랑방), 최홍조(시민건강연구소)

 

목, 2021/08/19-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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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절단한 좌측램프가 논란이 되고 있다. 수 년 동안의 인양 공정 동안 램프 잠금장치가 파손됐던 사실을 어째서 알지 못했냐는 지적과 함께, 램프 절단에 따라 화물들이 대거 유실돼 참사 원인의 하나로 지목되는 화물 과적에 대한 재조사가 어려워졌다는 비판, 그리고 램프가 완벽한 수밀 상태가 아니었던 탓에 급격한 침수가 진행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검증이 불가능해졌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과연 어디까지가 팩트일까?

인양 선체의 좌우측 램프 모습

▲ 인양 선체의 좌우측 램프 모습

인양 도중 절단한 좌측램프…사전에 알 수 없었을까

수면 위로 올려져 반잠수선에 실려 있는 세월호 선체에서는 현재 좌측 램프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22일 밤 세월호를 들어올리던 도중 좌측램프가 열려 선체 아랫쪽으로 매달려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급히 절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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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황만 놓고 보면 좌측램프 절단은 불가피했다는 해수부의 설명은 납득이 된다. 세월호 선체를 수면 위 13미터까지 끌어올린 뒤 반잠수선이 13미터를 잠수해 선체를 떠받쳐야 했는데, 다 펼쳐지면 길이가 10미터가 넘는 좌측램프를 그냥 둔 상태에서는 반잠수선에 올리는 작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좌측램프를 절단하지 않았다면 세월호 인양은 실패로 돌아갔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좌측램프의 잠금장치가 훼손된 사실을 선체를 들어올리기 전 거의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째서 파악하지 못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해수부는 “선체가 해저면에 있던 상태에서는 좌측램프가 1미터 이상 진흙 속에 파묻혀 있어서 잠금장치 파손과 개폐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수중 소나영상에 포착된 좌측 램프

▲ 수중 소나영상에 포착된 좌측 램프

2015년 수중 소나영상 속 좌측램프, 이미 파손 정황 뚜렷

그러나 뉴스타파가 확보한 2015년 8월 세월호 선체에 대한 수중 소나영상 속 좌측램프의 모습을 보면 해수부의 해명은 납득하기 어려워진다. 좌측램프를 열고 닫는 역할을 하는 상단의 크레인 장치가 이미 형체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완전히 파손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램프는 상단의 크레인에 연결된 와이어를 감고 푸는 방식으로 개폐시키는 방식이기 때문에, 크레인이 이 정도로 파손됐다면 와이어도 끊어져 있을 수밖에 없고, 선체를 그냥 들어올리면 바닥면을 향해 있던 좌측램프는 그대로 열려버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를 미리 파악했다면 다시 램프를 고정시키는 작업을 선행한 이후에 인양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좌측램프 열린 곳으로 굴삭기와 승합차 끼어있는 모습

▲ 좌측램프 열린 곳으로 굴삭기와 승합차 끼어있는 모습

“램프 열렸지만 화물 유실은 없다”…해수부의 말도 안 되는 해명

해수부는 지난 22일 좌측램프를 긴급히 절단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잠수사가 수중에서 확인한 바로는 램프가 열린 곳에 컨테이너들이 끼어 있어서 화물 유실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막상 선체가 수면 위로 올라온 이후 좌측램프가 열린 곳에는 컨테이너가 아닌 굴삭기와 승합차가 꽉 낀 상태로 매달려 있었다.

세월호 화물칸 내 좌우측 램프 사이 모습 담긴 CCTV

▲ 세월호 화물칸 내 좌우측 램프 사이 모습 담긴 CCTV

참사 전날 인천항에서 화물 선적을 끝낸 직후 세월호 선미 화물칸 내부가 촬영된 CCTV를 보면, 좌측 램프 부근에는 굴삭기 2대와 승합차 10여대가 실려 있던 것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램프에 끼어 있던 굴삭기와 승합차보다 좌측램프 쪽에 더 가깝게 놓여 있던 여러대의 차량들이었다. 최소한 이 차량들은 이미 밖으로 빠져버렸을 수밖에 없고, 세월호가 한 차례 뒤집어진 뒤 가라앉았던 점을 고려하면 다른 공간에 있던 화물들도 선미쪽으로 잔뜩 쏠려 내려온 뒤 좌측램프가 개방되면서 유실됐을 여지가 충분하다. 해수부의 해명에 신빙성을 찾기 힘든 이유다.

급속한 침수의 증거물 사라졌다는 주장은 사실관계 오류

좌측램프의 절단을 놓고 제기되고 있는 비판 가운데 하나는, 세월호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침수된 결정적 요인을 제공한 좌측램프를 잘라냄으로써 진상규명이 어려워졌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이 나오는 배경은 강원식 1등 항해사가 참사 직후 목포해양경찰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당시 강 씨는 “참사 전날 화물을 모두 실은 뒤 램프를 닫았는데, 아래 틈 사이로 불빛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했다”고 진술했다. 즉, 램프의 수밀 상태가 완전치 않아 물이 차들어오게 된 것이 급속한 침몰의 원인일 수 있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관계를 명확히 파악하지 않은데서 빚어진 오류이다. 강 씨가 언급한 것은 좌측램프가 아니라 우측램프였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인천항과 제주항을 오가는 배였는데 두 곳 모두에서 언제나 선체 우측을 부두에 접안시킨 채 화물을 싣고 내렸다. 따라서 세월호 도입 이후 좌측램프는 거의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 강 씨의 진술에 언급된 상황도 참사 전날 밤 인천항에서 우측램프를 통해 화물을 모두 싣고 나서 램프를 닫았을 때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절단된 좌측 램프가 세월호의 급격한 침수 원인을 밝힐 중요한 증거물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취재 : 김성수
영상취재 : 김기철, 정형민, 신영철
영상편집 : 박서영

목, 2017/03/30-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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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인양의 최대 목적은 9명의 미수습자를 찾는 것이었다. 애초부터 선체를 절단하지 않고 통째로 들어올리는 인양방식을 쓴 것도 시신 유실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해수부는 최소한 미수습자 유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개실부에 대해선 창문을 비롯한 모든 개구부에 유실방지망부터 설치한 뒤 본격적인 수중작업에 들어갔다는 점을 수 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수면 위로 드러난 선체의 모습은 해수부의 말을 무색케 한다.

특조위 수중 촬영 영상 중 뻥 뚫린 객실 부분

▲ 특조위 수중 촬영 영상 중 뻥 뚫린 객실 부분

2015년 특조위 수중영상에 포착된 객실층의 거대한 균열

지난 2015년 11월 22일, 당시 세월호특조위는 민간잠수사들을 대동하고 바닷속 세월호 선체의 상태를 촬영하기 위해 인양 현장을 찾았다. 인양 작업 도중 선체 곳곳이 훼손될 가능성에 대비해 주요 부위들의 본래 상태를 기록해 두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해수부는 이에 대해 제대로 협조하지 않았고, 결국 특조위는 잠수용 바지선이 아닌 낚싯배를 빌려 수중 촬영을 시도했다.

당시 특조위의 촬영 목표는 조타실과 러더, 그리고 프로펠러였다. 그러나 러더를 찾아 잠수했던 잠수사가 방향을 잘못 잡아 선체의 바닥면이 아닌 정반대편 갑판면을 따라 잠수하게 됐다. 그런데 바닥면에서 3미터쯤 상승한 지점에서 선체가 크게 찢겨져 내부가 훤히 보일 정도의 훼손 부위를 발견하게 된다.

이곳은 5층 객실부에 있는 전시실과 선원 숙소의 경계선에 해당하는 부위였다. 또한 선체가 침몰하면서 4층과 5층의 선미 좌측 부위들이 거의 붙어버릴 정도로 찌그러졌기 때문에 내부에서는 학생들이 머물던 4층 객실과도 연결되는 공간이 발생했을 여지가 충분했다. 이 영상이 촬영된 시점은 상하이샐비지가 객실층의 모든 개구부에 대한 유실방지망 설치를 완료했다고 말한 시점이다. 그런데 이 부위는 이렇게 크게 뚫려 있었던 것이다.

인양된 선체에서 포착된 5층 균열부 + 설계도면

▲ 인양된 선체에서 포착된 5층 균열부 + 설계도면

올려진 선체에서도 균열 확인…유실방지망 설치 안 돼

그렇다면 그 이후엔 이곳에 유실방지 장치를 설치했을까. 반잠수선 위에 올려진 세월호 선체의 5층 객실부를 살펴보면 특조위의 수중영상에 포착된 것과 같은 위치에 선체가 크게 훼손된 모습이 확인된다. 그러나 유실방지망은 설치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 특히 이곳은 좌측으로 눕혀진 선체의 하단부에 해당돼, 배수작업 과정에서 물과 함께 유해와 유품이 흘러나올 가능성도 높은 부위다.

뉴스타파가 직접 확인한 이 부위 말고도 객실부에 대한 유실방지가 미비했다는 정황들은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지난 28일에는 선수쪽 객실부에서 토사와 함께 선체 밖으로 빠져나온 돼지뼈 7점을 미수습자의 유해로 오인해 해수부가 긴급 브리핑을 여는 일도 있었다. 이 브리핑에서 해수부는 세월호 전체에 2백 곳이 넘는 개구부가 존재하며 대부분 유실방지망으로 차단했다면서도, 바닥면과 닿아있던 객실부 창문들의 경우엔 리프팅빔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일부 훼손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유실방지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양이 진행됐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취재 : 김성수
영상취재 : 김기철, 정형민, 신영철
영상편집 : 윤석민

목, 2017/03/3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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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길노랗게물들이기캠페인시즌3 포스터

 

기억하겠다는 약속, 잊지 않겠습니다.
 

곧, 돌아오는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참여연대는 다양한 시민참여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에 이어 <서촌 노랗게 물들이기 캠페인>시즌3를 준비했습니다.
더 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않고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서촌을 방문하는 시민들에게 노란리본과 배지를 비치해 나눠드릴 예정입니다.
노란리본은 서촌에 위치하고 있는 참여연대를 비롯하여 
카페, 빵집, 꽃집, 식당 등 70여개 상점에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캠페인을 통해 제공되는 노란리본은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서촌노란리본공작소>에 참여한 시민들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304명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겠다는 약속, 잊지 않을실거죠?
시민 여러분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진실을 밝혀내는 데 큰 힘이 됩니다.

노란리본 캠페인 달기를 통해 우리 모두가 진실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① [캠페인] '서촌길 노랗게 물들이기' 시즌3

  • 일시 : 4/1(토)~4/16(일)
  • 장소 : 서촌지역 내 카페 및 상점 70여 곳
  • 지도보기 (하단 지도 참조) > 추후공지
  • [같이가치 - Kakao] 서촌길 노랗게 물들이기 캠페인 후원하기 > https://goo.gl/nk9S7J

서촌길노랗게물들이기캠페인시즌3 지도

② [자원활동] 서촌노란리본공작소

 

③ [전시] 피어나다_서촌노란리본공작소 작품전

  • 기간 : 4/3(월)~4/30(일)
  • 장소 : 참여연대 1층 카페통인 / 월-금(10:00~22:00), 토(12:00~21:00)
  • 전시기획 및 총괄 : 김윤영 작가
  • 더 보기 : http://www.peoplepower21.org/PSPD/1492038

 
④ [특강] 세월호 3년, 사회적 고통과 우리가 가야할 길

  • 일시 : 4/6(목) 오후7시~9시30분
  • 장소 :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 강사 : 이현정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 주관 : 아카데미느티나무
  • 더 보기 : https://goo.gl/xR5Dzj

 

⑤ [행사] 416 3주기 추모행사 및 문화제

  • 일시 :  4/15(토) 오후 5시
  • 장소 : 광화문광장
  • 더 보기 : 추후안내

 
* 문의 :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02-723-4251, [email protected]

월, 2017/04/0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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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황진이>,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가비>, <조선마술사>까지…

모두 김탁환이 쓴 소설이 원작이다. 소위 잘 나가던 역사 소설가였던 김탁환은 2014년 초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본격 연애 소설’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보고 난 뒤 그 소설을 포기했다. 그저 뉴스를 보고, 술을 마시고, 울고, 다시 술을 마셨다. 몇 달이 지났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김탁환은 그 뒤 3년 동안 세월호를 다룬 소설 <목격자들>, <거짓말이다>, 그리고 신간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까지 연달아 발표했다. 무력감에 빠졌던 소설가 김탁환을 원고지 위로 다시 소환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세월호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탁환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으면 다르다. 잠수사들이 바닷속 세월호에서 아이들을 수습하는 처참한 현장, 침몰 과정에서 마주친 희생자의 눈동자를 잊지 못하는 생존자, 살아남은 아이들의 상처와 고통… 우리는 아마도 세월호를 전혀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월호 기록수’ 김탁환과 함께 지금, 여기, 우리의 세월호 사건을 다시 이야기해보자.

⬤ 잘 나가던 베스트 작가, 세월호를 만나다
⬤ 김관홍 잠수사, ‘바다 거북이’가 ‘바다 호랑이’가 된 사연
⬤ <거짓말이다>의 밝은 결말…그리고 김관홍 잠수사의 죽음
⬤ 슬픔과 분노를 넘어 ‘사람’을 찾는 소설가
⬤ 죽은 자들은 아직 할 말이 많다…세월호 문학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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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7/04/0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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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통인] 

<망각과 기억2: 돌아 봄> 다큐상영회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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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통인] 

<망각과 기억2: 돌아 봄 > 다큐상영회에 초대합니다

 

세월호 3주기를 맞아 카페통인에서 시민들과 함께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6편의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망각과 기억2 : 돌아봄>를 상영합니다. 세월호를 기억하고 함께하는 마음이 진실을 밝혀내는데 큰 힘이 됩니다. 

뜻깊은 이번 상영에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일시 2017년 4월 15일(토) 오후 4시 16분 

장소 카페통인(참여연대 1층)

참가비 감동후불제 *1인 1음료 주문해주세요

문의 02-723-5304 

 

신청하기 >>(클릭) https://goo.gl/forms/2M9jpGkKkPcunWbo2

 

 

<망각과 기억2: 돌아 봄>

 

승선 (안창규/27분/2017년)

세월호의 생존자, 그에게 듣는 3년간의 시간

 

세월호참사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생존자인 성묵은 참사 현장인 동고차도를 향한 배에 승선한다. 그른 세월호참사의 끔찍한 기억을 이겨내고 생존자로서의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수 있을까? 세월호참사 이후에 생존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호참사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 (박수현 / 27분 / 2017년)

세 명의 형제자매가 들려주는, 오늘도 4월 16일

 

그저 수학여행을 갔을 뿐인 사랑하는 동생이 곁을 떠나고, 유가족이라는 이름이 돌아왔다. 세월호참사에서 동생을 잃었다는 사실을 온전히 인지하기도 전에 더 많은 폭력이 앞 다투어 밀려들었지만, “네가 정신 차려야지”, “네가 버텨야 부모님이 잘 하실 수 있지”라는 주변의 말들에 함부로 울 수도 없었던. 숨 쉬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필요했던 낯선 하루들. 모든 날이 4월 16일이었던 그 매일이 모여 오늘도, 4월 16일. 형제자매들 중 가장 많은 활동을 했던 서현, 보나, 윤아의 목소리로 오늘의 이야기를 듣다.

 

 

잠수사 (박종필 / 50분 / 2017년)

세월호참사 희생자의 시신을 수습했던 민간잠수사 고 김관홍의 삶

 

“뒷일을 부탁합니다.” 2016년6월17일, 민간잠수사 김관홍은 이 말을 남긴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

정부를 대신해 희생자의 시신수습을 했던 민간잠수사들. 하지만 정부와 해경의 태도는 거짓과 배신의 연속이었습니다. 시신수습 작업을 제대로 지원하기는커녕 언론플레이만 집중하며 민간잠수사들을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았습니다. 김관홍은 민간잠수사들의 명예회복과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에 매진하였습니다. 비록 김관홍잠수사는 가고 없지만 정의와 진실을 향한 그의 모습은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세월 오적五賊  (김환태 / 39분 / 2017년)

세월호 오적들의 끝없는 거짓말 향연, 감추는 자가 범인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 이후 우리는 계속되는 거짓과 마주했다. 구하지 않은 정황, 잠수사 투입과 공기 주입에 대한 거짓말, 지지부진한 인양 문제와 정부의 은폐지시까지... 세 차례에 걸친 청문회와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노력을 통해 세월호 오적(五賊)이라 불릴만한 책임자들의 거짓된 민낯이 드러난다.

 

<세월호 참사 오적(五賊)>

1. 청와대 - 박근혜, 김기춘, 우병우 / 2. 정부 - 해수부, 해경 / 3. 국정원 - 남재준 / 4. 언론 - MBC, KBS, YTN, TV조선 등 / 5. 국회

 

 

걸음을 멈추고 (김태일, 주로미 / 30분 / 2017년)

세월호 참사이후 거리에 선 배우들이 무대가 아닌 세상을 향해 말을 걸다.

 

류성국씨는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면 토요일마다 마로니에 공원을 찾는다.

연극배우들이 주축이 되어 3년째 진행하고 있는 마로니에 촛불 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정치엔 도통 관심이 없던 그가 이 자리에 오게 된 건 세월호참사가 그에게도 큰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배우로 살아가는 것만 생각하고, 정치에 관심이 없었기에 나름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왔다는 성국 씨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는 중이다.

한편 유가족 수인이 어머니는 결혼 후 10년 만에 얻은 아들이 세월호참사로 가족 곁을 떠나게 된 것을 아직도 믿고 싶지 않다. 내 아이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으나 아이의 죽음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유가족 어머니들과 연극무대에 함께 서면서 비로소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배우로 무대에 서있던 성국 씨. 유가족으로 무대에 서게 된 수인 어머니. 이 촛불을 우리 스스로 끌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잠시 걸음을 멈추어 본다.

 

 

기억의 손길 (문성준 / 25분 / 2017년) 

안전한 사회를 바라며 기억과 추모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손길이 있습니다.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그리고 안산 합동분향소 엄마공방에서, 무엇인가를 만들며 스스로 치유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인가를 만드는 활동을 함으로써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약속을 실천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분들과 안산시민들은 협의회를 만들어 추모공간을 위한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기존의 혐오시설로 인식되는 추모시설을 새로운 생각과 공간배치로 주변 친화적인 시설들로 꾸미려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기억의 공간이 될 장소의 후보로 부모님들은 화랑유원지를 선택해서 진행 중이다.

많은 안산시민들이 이에 찬성하지만, 화랑유원지에 인접한 지역주민의 반대가 우려되기도 하다. 아직 표면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앞으로 돌출될 가능성이 높다. 기존의 혐오시설로 인식되는 추모시설과 다르게 새로운 개념과 디자인 등으로 주민 친화적으로 만들어지는 추모공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출처: http://cinemadal.tistory.com/2562 [시네마달 cinemaDAL]

 

 

금, 2017/04/0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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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시간 속에 새겨진 세월호, 그리고 지난 3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아픔을 품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끊임없이 외쳤던 지난날들을 되새기고자

세월호 3주기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그리고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안전한 사회를 위해

함께 기억하고 다짐해보는 이 자리에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 일시: 2017. 4. 13(목)/ pm7:30
- 장소: 참여연대2F 아름드리홀
- 신청: https://goo.gl/9RLGRW


- 문의: 02-723-4251, [email protected] (청년참여연대)
 * 상영비는 무료입니다.

 

 

월, 2017/04/10-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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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이 여러분과 같이 보고,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은 책과 영상을 소개합니다.


서른다섯 번째 책과 프로그램
 <스무살, 살아남은 자의 슬픔>, <거짓말이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법

3년이다. 함께 나눌 때 기쁨은 두 배, 슬픔은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하지만 1,000일이 훌쩍 넘는 시간을 견딘 세월호 유가족의 슬픔은 줄어들지 않았다. 선체가 인양되고 있는 지금, 깊은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까. 이들을 지켜보는 나에게 세월호 참사는 잊지 못할 기억이다. 물론 일상에 파묻혀 무심히 잊은 적도 있다. 하지만 광화문 광장을 지나칠 때, 세월호 관련 뉴스를 접할 때, 길을 걷다가 누군가의 가방에 매달린 노란 리본을 볼 때 기억해낸다. ‘아… 세월호’ 그 기억을 다시금 나누면 어떨까. 살아남은 자, 그리고 세상을 등진 자의 이야기.

EBS <다큐프라임-감정시대> ‘스무살, 살아남은 자의 슬픔’ 편

지난 연말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감정시대>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인 불안, 슬픔, 모멸감, 자책감 등을 탐구했다. 특히 ‘스무살, 살아남은 자의 슬픔’ 편에서는 세월호에서 탈출한 생존자 학생 4명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이들의 시간은 여전히 그 날에 멈춰 있다. 돌아오지 못한 친구의 사진을 늘 지갑 속에 넣고 다니는가 하면, 자신의 진로를 응급구조학과로 바꾼 아이도 있었다.

프로그램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미안함에 주목하는 동시에 이들의 ‘감정’이 결코 개인적인 차원에서 마주할 문제가 아닌 ‘사회적 감정’임을 일깨운다.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김광호 EBS PD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슬픔을 꼭 잊어야 해?’, ‘그 슬픔이 어디에서 나왔지?’ 부정적 감정은 이를 통해 배우고 기억하고 개선할 점을 던지는 지표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세월호 참사도 슬픈 사건을 넘어 그것이 주는 의미를 생각하고 앞으로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book

세월호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 <거짓말이다>

또 다른 시선. 살아남은 이가 있다면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이도 있다. 바로 故 김관홍 민간 잠수사다. 소설 <거짓말이다>는 그를 모델로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정면으로 다룬 김탁환 작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는 내가 평생을 함께 안고 가야 할 생애의 사건”이라고 말했다. 소설은 민간 잠수사 나경수가 선배 잠수사의 무죄를 주장하는 부분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거대 여객선이 침몰한 맹골수도로 간 잠수사들이 병원을 거쳐 법정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르포르타주(reportage) 형식으로 풀어간다.

■ EBS <다큐프라임-감정시대> ‘스무살, 살아남은 자의 슬픔’ 편 영상보기(클릭)
■ <감정시대>를 연출한 김광호 EBS PD 인터뷰 전문보기(클릭)

– 글 : 방연주 |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월, 2017/04/1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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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에는 특별한 경험을 가진 연구원이 있습니다. 지속가능발전팀의 박흥석 선임연구원인데요. 박흥석 선임연구원은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세월호 3주기를 맞아 박흥석 선임연구원을 만나 그간 하지 못했던, 그리고 하고 싶었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잘 보지 않던 TV를 켰다. 익숙한 얼굴에 나도 모르게 놀람의 감탄사가 나왔다. 동료 연구원이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에서 활동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화면 속 그는 실없이 아재개그를 날리던 사무실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진지하게 세월호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눈동자에서 빛이 났다. 무엇 때문일까. 궁금해졌다. ‘홍보팀’이라는 명목을 내세우며 무작정 인터뷰 요청을 했다. 그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하지만 질문지를 만들며 난관에 봉착했다.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막막했다. ‘세월호’라는 사안이 무겁기도 했고, 잘못 접근하면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줄 수도 있었다. 고민 끝에, 세월호 참사를 슬퍼하고 잊지 않으려 애쓰는 시민의 관점에서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박흥석 선임연구원(이하 박흥석 연구원)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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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일상의 붕괴를 목도한 순간

“그날이 특별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거예요. 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참사 당일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질문에 그는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실시간 생중계로 배가 가라앉는 걸 보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탑승객이 400명이 넘는데, 구조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잖아요. 말도 안 되죠. 애지중지 키운 아이들이 산 채로 수장되었는데, 부모님들은 얼마나 슬플까요. 항상 곁에 있던 아이가 사라진 거잖아요. 일상이 무너진 거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게 한스러울 거예요.”

당시 박흥석 연구원은 한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었다. 자연스레 정부, 국가, 공권력에 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세월호 참사도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와우아파트 붕괴, 서해 훼리호 침몰, 대구 지하철 화재 등에서 정부의 대처는 한결같이 미흡했어요. 사고원인을 밝히는 과정도 표면적이었죠. 세월호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를 답습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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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여객선 사고로 규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배가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 정부가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섰다면,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전 사례와 비슷하게 흘러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특조위에 참여하기로 했죠. 하지만 발족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어요. 세월호 특별법(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은 2015년 1월에 제정됐는데, 그해 여름이 되어서야 첫 출근을 했거든요. 그래서 지방선거 이후에 1년을 반백수로 지냈어요. 가족들이 많이 고생했죠. 저도 돈 준다고 하면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했어요.”

특조위 활동은 눈엣가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조위에서 그의 첫 역할은 이석태 위원장 보좌였다. 선체 인양이 거론되기 시작했지만, 특조위는 해양·조선·선박전공자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보통 조선·해양전문가는 고액 연봉과 좋은 대우를 받게 마련인데, 특조위 활동은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물론 처우나 급여가 좋지 않았다. 더구나 해운업계의 가장 큰 고객은 해양수산부다. 특조위 활동 경력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 결국 평소에 틈틈이 인양 관련 공부를 해온 박흥석 연구원에게 관련 업무가 넘어갔다.

“저는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거든요. 선박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어요. 제대로 조사하려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죠. 1년 정도 활동하면서 쉰 날이 20일도 안 돼요. 퇴근도 거의 밤늦게 했고요. 할 게 많았지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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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특조위의 모든 조사관이 밤낮없이 진실을 밝히는 데에 몰두했다. 정부와 기득권에는 눈엣가시였을 터다. 때문에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와 같은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조사관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박 연구원은 특조위를 ‘불나방’에 빗대어 표현했다.

“많은 분이 우려하셨죠. 그래도 조사관들 사이에는 ‘그래도 시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어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죠. 반민특위 사례만 봐도 색깔과 이념 프레임으로 숨통을 끊어놨잖아요. 특조위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어요. 특조위 내부 자료가 새누리당에 넘어간 적도 있고, 정부가 특정 단체에 활동 반대집회를 시키기도 했죠. 심지어 경찰서 정보과나 국정원이 조사관과 유가족 사찰까지 하더라고요. 심적 부담이 컸어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거잖아요.”

2016년 해양수산부는 선체조사 관련 예산을 따로 편성하지 않았다. 특조위가 먼저 선체를 정밀히 조사해야 한다며 예산 확보를 주장했다. 그러자 해수부는 인양 선체 정리 예산으로 40억 원을 편성했다. 선체조사와 선체정리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사용처가 같다며 특조위의 요구를 예산에서 삭감해버렸다. 또한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특조위의 활동을 강제종료 시켜버렸다.

“특조위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5년 8월이에요. 그런데 정부는 특별법 시행일인 같은 해 1월부터 활동했다고 주장했어요. 1월에는 조사인력과 예산이 없었는데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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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언제나 선(善)인가… 시민의 역량으로 감시해야

조사관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꿈에 시달리다 벌떡 일어나기도 했고, 스트레스와 분함이 극도에 달했다. 특조위 활동 이전 생활로 돌아갔지만, 공간뿐이었다.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여전히 날카롭고 아픔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박흥석 연구원도 많은 변화를 맞이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좀 더 ‘무거워졌다’고 말한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내면의 심연을 봤다고나 할까. 좋게 말하면 마음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이고, 나쁘게 보면 공감이 어렵다는 말이다. 요즘은 세심한 감정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구조에 직접 뛰어드신 분들의 트라우마가 가장 심할 거예요. 국가가 짊어져야 할 것을 그분들이 다 감당하셨잖아요. 깊은 바다에 들어갔다 나오면 일정 시간 감압(잠수병 방지를 위해 몸에 용해된 불활성 가스를 제거하는 것)을 해야 해요. 하지만 구조에 참여한 잠수사들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물에 다시 들어갔어요. 후유증이 생길 수밖에 없죠. 더구나 차갑게 식은 아이들을 품에 안아 뭍으로 올라와야 하는데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신체적·심리적 치료가 절실했죠. 하지만 정부는 갖은 핑계를 대가며 그분들을 외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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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故 김관홍 잠수사의 일이 안타까우면서도 그 심정이 십분 이해된다고 했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하지만 이내 목을 가다듬은 후,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다시 힘주어 말했다.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시민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국가라는 게 선한 것처럼 포장돼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조건 없는 믿음은 버려야 해요. 언제 위협적으로 변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시민의 역량으로 국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해요. 우리는 국가를 계속 감시해야 합니다.”

국가를 사랑하는 것을 강조한 나라보다 국가를 통제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나라가 그나마 ‘덜 나쁜’ 나라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 어느 헌법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해법은 결국 시민의 힘을 모으는 ‘연대’에 있지 않을까?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경험했듯이 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상규명 요구 서명에 650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어요. 덕분에 특조위가 만들어졌고요. 이후 416연대라는 단체도 생겼고, 유가족협의회에 시민이 재정을 지원하는 등 여러 측면에서 연대의 움직임이 보였어요. 긍정적이죠.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아쉬운 점도 있어요. 단편적인 활동이 많았거든요. 연대체 간 갈등이 생겼을 때 조율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던 것도 아쉬워요. 사실 이런 건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않는 바람에 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서 생기는 일이거든요. 정부가 유가족 한 분 한 분 만나 잘 다독이고 서로 상처 주지 않게 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못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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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체 인양됐지만, 여전히 풀지 못한 질문의 답 찾아야

“참사 당시에는 이민을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죠. 도망가면 이준석 선장과 다를 게 없잖아요. 기울어진 이 나라의 균형이 바로 잡힐 수 있도록, 많은 사람과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사회혁신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했고요.”

사회혁신이라니! 희망제작소에서 주야장천(晝夜長川) 외치는 그 가치 아니던가. 박흥석 연구원이 희망제작소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시민의 역량을 강화하고 촉진하는 동시에 정부의 정책을 검토하고 대안을 찾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것이 여타 연구소와 비교했을 때 희망제작소만의 강점이라고도 말했다.

“저를 비롯한 희망제작소 연구원 모두가 정부, 국가, 사회의 움직임에 대한 촉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를 놓치면서 어떻게 시민을 말하고 우리 사회의 비전을 만들 수 있겠어요. 촉을 세우고 잘 살피다 보면 거대 담론뿐만 아니라 구체적 실천과제도 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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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는 국가 운영방식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집중되어 있는 권력을 나누고 중간중간 견제장치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아픔 속에서 공감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신의 상황과 형편에 맞게 공감과 지지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오면 끝 아니냐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해요. 왜 인양했는지 살펴봐야 하죠. 미수습자를 찾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진상규명을 하고, 그 과정을 통해 교훈을 얻는 것이 인양의 목적이에요. 이 세 가지를 충족하지 못하면 인양은 끝난 게 아니에요. 그 과정에서 선체조사위가 확실하게 자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시민은 잘 지켜보고 살펴야 해요. 필요할 때는 목소리도 내야 하고요.”

“국가의 범죄는 절대 권력을 지닌 소수 독재자들의 야욕과 그들에게 복종하는 다수 봉사자들의 협력에 의해 현실화 됩니다. 정신 나간 사람들 몇 명의 손으로는 이런 거대한 범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독재 권력의 전횡에 참여하거나 방관할 때에만 비로소 국가라고 하는 괴물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 김두식 ‘헌법의 풍경’ 중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최은영 |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월, 2017/04/1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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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에는 특별한 경험을 가진 연구원이 있습니다. 지속가능발전팀의 박흥석 선임연구원인데요. 박흥석 선임연구원은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세월호 3주기를 맞아 박흥석 선임연구원을 만나 그간 하지 못했던, 그리고 하고 싶었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잘 보지 않던 TV를 켰다. 익숙한 얼굴에 나도 모르게 놀람의 감탄사가 나왔다. 동료 연구원이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에서 활동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화면 속 그는 실없이 아재개그를 날리던 사무실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진지하게 세월호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눈동자에서 빛이 났다. 무엇 때문일까. 궁금해졌다. ‘홍보팀’이라는 명목을 내세우며 무작정 인터뷰 요청을 했다. 그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하지만 질문지를 만들며 난관에 봉착했다.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막막했다. ‘세월호’라는 사안이 무겁기도 했고, 잘못 접근하면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줄 수도 있었다. 고민 끝에, 세월호 참사를 슬퍼하고 잊지 않으려 애쓰는 시민의 관점에서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박흥석 선임연구원(이하 박흥석 연구원)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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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일상의 붕괴를 목도한 순간

“그날이 특별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거예요. 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참사 당일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질문에 그는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실시간 생중계로 배가 가라앉는 걸 보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탑승객이 400명이 넘는데, 구조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잖아요. 말도 안 되죠. 애지중지 키운 아이들이 산 채로 수장되었는데, 부모님들은 얼마나 슬플까요. 항상 곁에 있던 아이가 사라진 거잖아요. 일상이 무너진 거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게 한스러울 거예요.”

당시 박흥석 연구원은 한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었다. 자연스레 정부, 국가, 공권력에 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세월호 참사도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와우아파트 붕괴, 서해 훼리호 침몰, 대구 지하철 화재 등에서 정부의 대처는 한결같이 미흡했어요. 사고원인을 밝히는 과정도 표면적이었죠. 세월호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를 답습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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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여객선 사고로 규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배가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 정부가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섰다면,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전 사례와 비슷하게 흘러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특조위에 참여하기로 했죠. 하지만 발족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어요. 세월호 특별법(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은 2015년 1월에 제정됐는데, 그해 여름이 되어서야 첫 출근을 했거든요. 그래서 지방선거 이후에 1년을 반백수로 지냈어요. 가족들이 많이 고생했죠. 저도 돈 준다고 하면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했어요.”

특조위 활동은 눈엣가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조위에서 그의 첫 역할은 이석태 위원장 보좌였다. 선체 인양이 거론되기 시작했지만, 특조위는 해양·조선·선박전공자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보통 조선·해양전문가는 고액 연봉과 좋은 대우를 받게 마련인데, 특조위 활동은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물론 처우나 급여가 좋지 않았다. 더구나 해운업계의 가장 큰 고객은 해양수산부다. 특조위 활동 경력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 결국 평소에 틈틈이 인양 관련 공부를 해온 박흥석 연구원에게 관련 업무가 넘어갔다.

“저는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거든요. 선박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어요. 제대로 조사하려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죠. 1년 정도 활동하면서 쉰 날이 20일도 안 돼요. 퇴근도 거의 밤늦게 했고요. 할 게 많았지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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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특조위의 모든 조사관이 밤낮없이 진실을 밝히는 데에 몰두했다. 정부와 기득권에는 눈엣가시였을 터다. 때문에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와 같은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조사관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박 연구원은 특조위를 ‘불나방’에 빗대어 표현했다.

“많은 분이 우려하셨죠. 그래도 조사관들 사이에는 ‘그래도 시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어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죠. 반민특위 사례만 봐도 색깔과 이념 프레임으로 숨통을 끊어놨잖아요. 특조위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어요. 특조위 내부 자료가 새누리당에 넘어간 적도 있고, 정부가 특정 단체에 활동 반대집회를 시키기도 했죠. 심지어 경찰서 정보과나 국정원이 조사관과 유가족 사찰까지 하더라고요. 심적 부담이 컸어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거잖아요.”

2016년 해양수산부는 선체조사 관련 예산을 따로 편성하지 않았다. 특조위가 먼저 선체를 정밀히 조사해야 한다며 예산 확보를 주장했다. 그러자 해수부는 인양 선체 정리 예산으로 40억 원을 편성했다. 선체조사와 선체정리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사용처가 같다며 특조위의 요구를 예산에서 삭감해버렸다. 또한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특조위의 활동을 강제종료 시켜버렸다.

“특조위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5년 8월이에요. 그런데 정부는 특별법 시행일인 같은 해 1월부터 활동했다고 주장했어요. 1월에는 조사인력과 예산이 없었는데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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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언제나 선(善)인가… 시민의 역량으로 감시해야

조사관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꿈에 시달리다 벌떡 일어나기도 했고, 스트레스와 분함이 극도에 달했다. 특조위 활동 이전 생활로 돌아갔지만, 공간뿐이었다.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여전히 날카롭고 아픔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박흥석 연구원도 많은 변화를 맞이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좀 더 ‘무거워졌다’고 말한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내면의 심연을 봤다고나 할까. 좋게 말하면 마음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이고, 나쁘게 보면 공감이 어렵다는 말이다. 요즘은 세심한 감정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구조에 직접 뛰어드신 분들의 트라우마가 가장 심할 거예요. 국가가 짊어져야 할 것을 그분들이 다 감당하셨잖아요. 깊은 바다에 들어갔다 나오면 일정 시간 감압(잠수병 방지를 위해 몸에 용해된 불활성 가스를 제거하는 것)을 해야 해요. 하지만 구조에 참여한 잠수사들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물에 다시 들어갔어요. 후유증이 생길 수밖에 없죠. 더구나 차갑게 식은 아이들을 품에 안아 뭍으로 올라와야 하는데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신체적·심리적 치료가 절실했죠. 하지만 정부는 갖은 핑계를 대가며 그분들을 외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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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故 김관홍 잠수사의 일이 안타까우면서도 그 심정이 십분 이해된다고 했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하지만 이내 목을 가다듬은 후,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다시 힘주어 말했다.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시민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국가라는 게 선한 것처럼 포장돼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조건 없는 믿음은 버려야 해요. 언제 위협적으로 변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시민의 역량으로 국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해요. 우리는 국가를 계속 감시해야 합니다.”

국가를 사랑하는 것을 강조한 나라보다 국가를 통제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나라가 그나마 ‘덜 나쁜’ 나라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 어느 헌법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해법은 결국 시민의 힘을 모으는 ‘연대’에 있지 않을까?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경험했듯이 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상규명 요구 서명에 650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어요. 덕분에 특조위가 만들어졌고요. 이후 416연대라는 단체도 생겼고, 유가족협의회에 시민이 재정을 지원하는 등 여러 측면에서 연대의 움직임이 보였어요. 긍정적이죠.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아쉬운 점도 있어요. 단편적인 활동이 많았거든요. 연대체 간 갈등이 생겼을 때 조율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던 것도 아쉬워요. 사실 이런 건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않는 바람에 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서 생기는 일이거든요. 정부가 유가족 한 분 한 분 만나 잘 다독이고 서로 상처 주지 않게 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못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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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체 인양됐지만, 여전히 풀지 못한 질문의 답 찾아야

“참사 당시에는 이민을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죠. 도망가면 이준석 선장과 다를 게 없잖아요. 기울어진 이 나라의 균형이 바로 잡힐 수 있도록, 많은 사람과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사회혁신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했고요.”

사회혁신이라니! 희망제작소에서 주야장천(晝夜長川) 외치는 그 가치 아니던가. 박흥석 연구원이 희망제작소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시민의 역량을 강화하고 촉진하는 동시에 정부의 정책을 검토하고 대안을 찾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것이 여타 연구소와 비교했을 때 희망제작소만의 강점이라고도 말했다.

“저를 비롯한 희망제작소 연구원 모두가 정부, 국가, 사회의 움직임에 대한 촉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를 놓치면서 어떻게 시민을 말하고 우리 사회의 비전을 만들 수 있겠어요. 촉을 세우고 잘 살피다 보면 거대 담론뿐만 아니라 구체적 실천과제도 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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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는 국가 운영방식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집중되어 있는 권력을 나누고 중간중간 견제장치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아픔 속에서 공감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신의 상황과 형편에 맞게 공감과 지지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오면 끝 아니냐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해요. 왜 인양했는지 살펴봐야 하죠. 미수습자를 찾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진상규명을 하고, 그 과정을 통해 교훈을 얻는 것이 인양의 목적이에요. 이 세 가지를 충족하지 못하면 인양은 끝난 게 아니에요. 그 과정에서 선체조사위가 확실하게 자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시민은 잘 지켜보고 살펴야 해요. 필요할 때는 목소리도 내야 하고요.”

“국가의 범죄는 절대 권력을 지닌 소수 독재자들의 야욕과 그들에게 복종하는 다수 봉사자들의 협력에 의해 현실화 됩니다. 정신 나간 사람들 몇 명의 손으로는 이런 거대한 범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독재 권력의 전횡에 참여하거나 방관할 때에만 비로소 국가라고 하는 괴물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 김두식 ‘헌법의 풍경’ 중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최은영 |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월, 2017/04/1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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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입니다. 3년이 지났습니다. 쓰라린 그 날의 기억. 온 세상에 봄기운이 가득하지만, 우리의 마음 한 편은 아직 차가운 바다를 향해 있습니다. 그리고 진실은 여전히 깊은 물 속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잊지 않았다는, 잊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은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여전히 아프고 쓰라린 기억

•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아이가 물었다. “아빠, 우리나라에는 울트라 파워 해군과 경찰이 많잖아요. 그런데 왜 못 구해요?” 이 질문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 권기태 소장권한대행(부소장)

•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공포와 고통,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절망적이었던 가족들의 마음. 모든 것이 비용으로 치환되는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 옥세진 사회의제팀 팀장

• 생사가 갈리던 순간. ‘전원 구조’ 발표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나의 안일함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 김현수 사회의제팀 선임연구원

• 거짓말 같던 순간. 많은 사람에게 눈물과 가슴 속 묵직함을 던져준 상처. 그리고 여전히 진행형인 아픔. – 정창기 목민관클럽팀 팀장

• 가슴이 미어진다. 눈물이 난다. 왜 생때같은 아이들이 죽어야 하는가. 분노가 치밀고 울화통이 터진다. – 송정복 목민관클럽팀 연구위원

• 지워지지 않는 상처. 거대한 죽음을 생생히 목격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과 분노에 몸서리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보낸 메시지를 보면,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 – 이원혜 후원사업팀 팀장

• 기억해야 할 아픈 역사. – 김희경 후원사업팀 선임연구원

• 국민을 지켜줄 능력과 사명감이 없는 국가의 실체와 마주했고, 민주주의 뒤에 숨어있던 • 권력의 실체와 마주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나의 무기력과 마주했던 시간. 세월호 참사는 나를 시민으로 다시 깨어나게 했다. – 박다겸 후원사업팀 연구원

• 잊지 못할 기억, 잊지 않을 기억, 잊고 싶지 않은 기억. 여러 수식어를 붙여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세월호. – 방연주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봄바람을 쐬어도, 꽃이 지천으로 망울을 터뜨려도 따뜻해지지 않는 마음. 그날 이후 봄은 내게 더는 ‘포근한 계절’이 아니다. – 최은영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것. – 박흥석 지속가능발전팀 선임연구원

• 그날 이후 우리는 모두 아이들을 잃은 사람들이라는 회복할 수 없는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 송하진 지속가능발전팀 연구원

•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걸까? 힘들지만 그래도 살만하다고 위로해왔는데, 참사를 겪으며 ‘이건 아니잖아’라는 생각을 했다. 하루하루 무심하게 살아온 날을 뒤돌아보게 한다. – 한현숙 경영지원실 연구위원

• 먹먹한 기억. 적극적인 악(惡)에는 더 적극적인 선(善)이 필요하다. – 박정호 경영지원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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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국가, 자본의 탐욕이 불러온 비극

• 딸 아이 생일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 짓밟고서라도 나와 내 가족만 잘 살면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통해 국가의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 없이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사건을 목도하면서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내 가족, 내 자식을 위해서라도 국가와 정치, 우리가 사는 이 공동체에 더는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 황세원 사회의제팀 선임연구원

• 안전불감증과 탐욕, 이기심,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로 인해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된 날. – 임은영 지역정책팀 선임연구원

• ‘전원 구조’라는 뉴스 속보를 보고 마음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이 다시 들썩였다. 잊을 수 없는 그 날. 무능한 국가, 자본의 탐욕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는지 깨달은 날. – 안수정 지역정책팀 연구원

• 국가의 역할을 곱씹게 된 계기. 기본적 안전도 보장 못 하는 이 나라를 믿고 따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 기점. – 이다현 지역정책팀 연구원

• 국가의 의미를 고민하고, 돈의 논리로 굴러가던 세상을 성찰하고, 슬퍼할 권리를 막고 막말만 뱉어대던 사람들을 보며 이런 어른으로는 살지 않겠다 다짐했던 시간. – 김수영 시민사업팀 연구원

• 어제보다 더 생생하게 기억나는 날. 세월호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넘어 한국사회가 쌓아온 수많은 지속불가능성을 집약해 보여줬다. – 정환훈 지속가능발전팀 연구원

• 안전이란? 국가의 역할이란? 책임, 권한, 의무의 의미가 뿌리째 흔들린 사건. 살릴 수 있었다. 살려야 했다. 물에 잠긴 밝지만 슬픈 노란색. – 안영삼 웹팀 팀장

• 선장이 책임을 다하지 않아 무고한 학생들과 시민이 세상을 떠났고, 대통령이 책임을 다하지 않아 국민의 마음이 미어졌다. – 오승화 웹팀 연구원

•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사유하게 해 준 잊을 수 없는 사건. – 양이현경 희망기획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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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진상규명,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 피해자와 희생자 가족의 마음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침몰하는 배를 보며 얼어붙은 내 마음이 아직도 녹지 않은 것 같다. 탐욕, 권력에 대한 맹목적 복종, 부당함에 대한 무관심 등 사고 원인을 명확하게 밝히고, 이를 통해 얻는 교훈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제2의 세월호’를 막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 김지헌 지역정책팀 팀장

•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가슴에 사무치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 준 날. 무기력한 국가를 보며 시민이 행동해야 함을 깨닫게 한 사건. 아프지만, 지켜내지 못했다는 모두의 죄책감이 결국에는 변화를 이끌 희망이 될 것이다. – 오지은 지역정책팀 선임연구원

• 대한민국 국민 가슴 한편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는 세월호. 차근차근, 하나하나, 진실은 꼭 밝혀져야 한다. – 강현주 시민사업팀 팀장

• 배는 아주 천천히, 느리게 가라앉았다. 아무도 구하지 못하는 그 순간을 오랫동안 봐야 했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 까맣게 타들어 갔는데, 그게 무엇인지 몰라서 애도를 끝낼 수가 없다. 진실이 밝혀지고, 기억이 제도에 단단히 자리 잡을 때야 비로소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서로를 더 믿을 수 있게 되고 노란 리본을 떼어도 좋은 날이 어서 오길 바란다. – 백희원 시민사업팀 연구원

•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 숨겨져 있던 많은 문제가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지만, 잊지 않고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을 보며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박반석 시민사업팀 연구원

• 세상에 무수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 날. 이 질문으로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 인은숙 지속가능발전팀 팀장

• 예전에는 가만히 있어도 괜찮았다. 익숙한 것에는 무의식적으로 순응했다. 하지만 참사 이후에는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지 의문을 품게 됐다.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지킬 것은 지키자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 조준형 지속가능발전팀 연구원

• 무수히 많은 ‘만약에’가 머물렀던 3년의 시간. 그러나 되돌릴 수 없기에 어떤 방식으로 ‘함께’ 나아갈지 ‘같이’ 고민해야 한다. – 조현진 목민관클럽팀 연구원

• 희망제작소 입사 3일째던 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동참해왔다고 믿어온 날들에 대한 파괴와 배반의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을 인정해야 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빚을 지고 있다. 이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 – 유혜승 희망기획팀·미디어홍보팀 팀장

• 국가의 존재 이유에 관한 의문이 강하게 들었던 날. 보이는 것에만 신경쓰는 언론에 강한 불신이 생겼다. 진실은 꼭 밝혀져야 한다. 분노, 슬픔, 무력함을 넘어 새로운 대안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 정은숙 경영지원실 실장

– 정리 : 최은영 |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화, 2017/04/1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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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포차 대선캠프 집중 탐구 첫 번째 시간! ‘문재인 후보의 입’으로 불리는 김경수 의원과 함께 했다. 안철수 후보의 무서운 지지율 상승에 문재인 캠프의 반응은? 과연 이 모든 것은 언론의 ‘안철수 띄우기’일까. 집 나간 안희정의 표는 문재인에게 돌아올 것인가. ‘친문패권’, ‘반문’ 정서를 극복할 묘책은 있는 것일까?

김경수 대변인은 청와대에서 5년 동안 연마한 회오리주를 선보이며 수많은 이야기들을 털어놨다. 사드, 일자리, 세월호, 문재인 후보의 핵심 공약에 대한 열정적인 해설부터 ‘인간 문재인’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애정까지. 그리고 ‘000의 사람 김경수’가 아닌 정치인 김경수의 꿈.

술 한 잔에 이야기 하나, 깊어 가는 봄날, 뉴스포차에서 대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봅니다.

-안철수의 무서운 상승! 대세론은 끝?
-‘적폐청산’ ‘정권교체’ 프레임 논쟁
-‘반문’ ‘친문패권’을 말한다
-뜨거운 감자 ‘사드’
-문재인의 ‘단 하나의 정책’은?
-네거티브?네거티브?네거티브?
-‘사람’ 문재인과 ‘정치인’ 김경수

 

화, 2017/04/11-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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