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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만 키워주는 한국 교육… ‘꿈’까지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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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만 키워주는 한국 교육… ‘꿈’까지 갈랐다

익명 (미확인) | 목, 2015/11/19- 20:21

연간 2500만 원 내는 영어유치원

서울 대치동 학원가. 아침 9시가 좀 넘자 노란 버스들이 하나 둘 한 건물 앞으로 모여들었다. 버스에서는 대여섯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이 줄지어 내린다. 특이한 점이라면 아이들을 맞이하는 선생님들이 대부분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었다는 것.

이 건물에는 대치동 엄마들이 선망한다는 G 영어유치원이 있다. 영재시험을 통해 상위 5%로 인증된 아이들만이 G 영어유치원의 입학 시험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잠시 각 층의 교실을 둘러봤다. 아침 시간이지만 이미 곳곳에서 외국인 강사와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5세 아이를 둔 부모라며 기자가 직접 입학 상담을 받아봤다. 먼저 궁금했던 것은 학원비였다. 학원 상담사는 기본 원비가 월 178만 원이고 기타 비용은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격표를 구해보니 기본 원비는 월 166만 원이었고 급식비 12만 원과 재료비 36만 원이 추가로 들어갔다. 연간 한 번씩 부담하는 여름, 겨울철 원복과 체육복 비용을 더하면 학부모의 연간 부담액은 2500만 원을 넘어선다. 비싸면 더 잘 팔린다는 상술이 통하는 것일까?

강남 지역 학부모들은 줄지어 입학을 기다린다. G 영어유치원 압구정점 상담사는 영재시험에 합격하더라도 열 명 가량의 대기자가 있어 당장 입학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G 영어유치원의 가격표

▲ G 영어유치원의 가격표

영어유치원에서 시작된 강남 지역의 ‘금수저’ 교육은 값비싼 선행학습을 통해 이후의 교육과정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초중고반을 모두 두고있는 대치동 S 학원의 상담실장은 “초등학교 6학년 즈음 되면 고등학교 ‘수학의 정석’을 시작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괴로워 한다”며, “그 전까지 영어를 어느 정도 끝마쳐야 한다”고 말했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의대 입시반을 운영하는 M 학원의 상담사는 “여기는 고등학교 수학을 중3까지 끝내는 시스템”이라며 기본 횟수 8회를 기준으로 학원비는 과목당 월 52만 원이라고 말했다.

취재진은 대치동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를 둔 한 학부모를 만나 대치동 ‘금수저’ 교육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들어봤다.

김미라(37, 가명) 씨 인터뷰

김미라 씨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둔 학부모였다. 김 씨는 아이를 사고력 위주 수학 학원, 교과과정 위주 수학학원, 스케이트 학원, 미술 학원, 영어 학원 등 다섯 곳의 학원에 보내고 있었다. 기자와 만났을 때에도 아이를 직접 학원에 데려가는 길이었다.

기자 : 총액으로 봤을 때 월 학원비가 어느 정도 들어가나요?

김 : 평균적으로 120만 원 정도 들어가는데, 방학 때는 200만 원이 넘을 때도 있어요.

기자 : 아이 학년이 올라가면 앞으로 비용이 더 올라갈 수도 있나요?

김 : 올라갈 수 있죠. 아직 저학년이니까 특정한 목표는 없지만, 만약에 경시대회 준비를 한다든가 영재원 준비를 한다고 하면 더 늘어나겠죠. 2학년부터는 논술도 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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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자신이 대치동 엄마들 치고는 “최하”에 불과하다며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들을 채워주는 정도”라고 말했다.

김 : 학원이 어쩌면 얘네들 사회에요. 1학년인데도 그게 크더라고요. 그냥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애들은 없으니까.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반 이상은 다 영유(영어유치원) 출신이고 영어 실력들도 굉장히 좋아요. 이런 데 안 다니면 친구도 없고, 사실 바빠서 모여 놀지도 못 해요.

기자 : 비용이 비싸서 이런 사교육이 약간 부담이 되기도 할 것 같은데?

김 : 효과가 있어요. 아이러니하지만, 확실히 있어요. 레벨 테스트를 받아보면 등급이 올라가고 시험을 봐도 점수가 달라지는 게 보여요. 영어인증시험을 봐도 급수를 따니까 안 받을 수 없죠. 저는 아이 1등 시키려고 보내는 건 아니에요. 이 동네 사니까 여기서 아이가 중간은 가려면… 안 할 수가 없죠.

금수저, 은수저 교육은 세대를 건너 반복되고 있었다. 김 씨는 초등학교 때 처음 대치동에 이사와 쭉 이 지역에서 살았다. 자식이 흙수저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다. 주변의 학부모들 가운데서도 어릴 때부터 이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 씨는 “출신 대학이나 사회적 지위는 별 차이가 없다보니까 여기는 고등학교 어디 나왔는지가 더 중요하다”면서 지역에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학부모끼리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강남 3구 출신이 서울대 합격자의 13.2%

강남 지역에서 초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의 평균 사교육비는 122만 원 선이다. (2013년 강남구 사회조사 결과) 이는 전국 평균 사교육비 23만9천 원의 다섯 배가 넘는 규모다. 하지만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팀장은 강남 지역의 실제 사교육비는 공식적으로 집계된 액수보다 훨씬 많을 거라고 말한다.

영재고 대비 특별반 5~6명 모집을 한다, 이거를 공식 프로그램으로 하는 게 아니라 소위 돼지엄마 같은 엄마들한테 홍보하는 거죠. 5~6명 모아라, 그리고 강사 페이 3천만 원 채워줘야 하니까 맞춰오라고. 그리고 계좌이체 안 된다, 현금으로만 내라, 이렇게 은밀한 반들이 운영되고 있어요. 이렇게 비밀리에 오고 간 수업이나 오피스형 과외의 경우 규모도 안 잡히고 단속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통계에 잡힌 월평균 사교육비와 실제 사이에는 굉장히 큰 차이가 난다고 보면 됩니다.

사교육, 즉 돈이 만들어내는 합격자 수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2015년 서울대 합격자 3261명 가운데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 3구’ 출신이 432명이나 된다. 전체의 13.2%다. 강남구의 인구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1%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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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은 강남의 ‘금수저 교육’이 아이들의 명문대 진학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이현 씨는 근 20여 년 간 대입 사회탐구 유명 강사였고 강남, 송파, 신촌 등지에서 대형 입시학원을 운영하는 (주)스카이에듀 대표를 지냈다. 사교육계에서 지난해 은퇴한 뒤 현재는 계간지 <교육비평>을 발행하고 있다.

이현 <교육비평> 발행인 인터뷰

▲ 이현 전 스카이에듀 대표, <교육비평> 발행인

▲ 이현 전 스카이에듀 대표, <교육비평> 발행인

이현 씨는 강남 출신 아이들의 서울대 입학률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서울대가 그런 학생들이 뽑히도록 전형 방식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서울대가 80% 안팎으로 뽑아 온 수시 전형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 자기소개서, 추천서 세 가지가 어떻게 ‘금수저’ 아이들을 우대하는 전형으로 쓰이는지 설명했다.

“학교생활기록부에는 심화교과(전문교과) 이수 여부나 다양한 체험활동 기록이 담깁니다. 심화교과는 영어 심화, 스페인어 심화, 독일어 심화, 국제법, 국제경제 같은 과목들인데 일반고에서는 재원도 부족하고 학부모들의 지원 능력도 부족하기 때문에 마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일반고에 비해 5~6배가 넘는 학비를 내는 특목고, 자사고에서나 운영할 수 있는 과정인 거죠.

서울대 입학생을 많이 배출하는 특목고, 자사고의 천만 원대 학비는 그나마 공식적 학비인데, 비공식적인 찬조금 운영비까지 합하면 비용은 더 늘어납니다. 이런 학교에서나 운영 가능한 특별한 활동들을 서울대가 학생부 평가하면서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으니 결국 귀족학교 우대하겠다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씨는 수시 전형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추천서와 자기소개서 역시 값비싼 고급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부유층 자녀들에게 유리한 전형이라고 설명했다.

“자기소개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강남 지역에는 고1때부터, 늦어도 고2때부터 학생부를 관리해주는 전담 컨설팅 서비스가 있습니다. 컨설턴트가 자소서에 들어갈 커리어를 쭉 관리해주다가 마지막에 세련된 자소서를 써줍니다. 아주 순박한 어떤 고등학생의 자기 이야기하고 이렇게 윤문된 세련된 자기소개서하고는 레벨이 다른 것이죠.

추천서도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평범한 아이들은 추천서를 초등학교 은사님이나 동네 목사님, 이런 분들께 받아오지 않습니까? 하지만 만약에 누가 전직 장관이 써준 추천서를 들고 왔다고 생각해 보세요. 재벌급 회사의 고위 임원, 현직 국회의원이 써준 추천서들이 동네 어른들이 써준 추천서와 같이 놓여있을 때 누가 이 추천서의 레벨을 동일하게 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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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천만 원 안팎의 학비가 들어가되 학교 내에서 다양한 심화교과를 배우고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공교육’이 입시 제도에 특화된 값비싼 ‘특별한 사교육’을 만나 평범한 학생들이 접근할 수 없는 ‘로열 로드’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이 씨의 진단이었다.

“사교육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두 가지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하나가 공개적인 대중적 사교육이고 하나가 공개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특별한 사교육입니다. 공개적 사교육이 작동하는 분야는 수능하고 학교 내신 경쟁입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이라면 대부분이 경험하는 종류의 사교육이죠.

이것 말고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특별한 종류의 사교육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학생부나 자소서를 관리하는 서비스들이 대표적인 예죠. 그런 특별한 종류의 사교육이 특별한 공교육과 결합한 교육 체험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강남 3구에 살고 있는 겁니다. 돈도 있고 정보력도 있고 지역적 접근성도 있는 사람들이죠.”

‘특별한 공교육’과 ‘특별한 사교육’이 결합해 평범한 아이들이 접근할 수 없는 ‘로열 로드’를 만들어내는 사이, 이런 특별한 교육의 바깥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일반고를 찾아가봤다.

‘금수저 교육’의 바깥

일선 교사들이 가장 큰 문제로 꼽는 것 중 하나가 고교서열화다. 이명박 정부 이후 고등학교는 영재고,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 등으로 분리됐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원래 목적이었지만, 학업 의지를 가진 아이들이 특목고와 자사고 등으로 빠져나간 뒤 일반고의 학업 분위기는 상당히 악화됐다.

22년간 일반고에서 교사 생활을 해온 조연희 씨는 “20년 전만 해도 반에서 수업시간에 엎드려 있다거나 무기력에 빠져있는 학생이 반에서 한 명 있을까 말까였다”면서, “지금은 심한 경우 한 반의 3분의 1 정도가 수업을 포기한 느낌이 드는데 그런 게 특목고 자사고 등이 등장하면서 시작된 것 같다”고 말했다.

조 씨는 학교를 포기한 학생들에 대해 “내가 노력을 하면 과연 뜻하는 것들을 이룰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자신감을 잃은 것 같다”고 말한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으니까 과외나 학원에 의지하지 않고 일단 혼자 시도해보게 되는데, 모의고사 같은 걸 보면 시험 문제가 상당히 어렵게 나오다 보니까 지레 포기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십대 때 학교에서 겪는 패배감이 아이들의 미래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뉴스타파 취재진은 서울 시내 자사고와 일반고 학생 100명씩을 상대로 희망직업을 조사했다. 성별이나 성적 수준으로 인해 희망 직업에 특정한 경향이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 남녀 숫자는 동수로 맞췄고 조사 대상은 자사고에 입학 성적 제한이 없어진 현재의 고교 1학년 학생들로 한정했다. 희망 직업을 조사한 뒤 ‘2015 한국직업전망’(한국고용정보원) 자료의 직업별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희망 직업의 평균 소득값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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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결과 자사고 아이들이 희망한 직업의 평균 소득은 430만 원으로 집계 됐다. 반면 일반고 아이들이 희망한 직업의 평균 소득은 이에 훨씬 못 미치는 284만 원 정도로 나타났다. 자사고 아이들이 희망 직업으로 많이 써낸 직종은 검사, 의사, 고위공무원 등이었고, 일반고 아이들이 많이 써낸 직업은 요리사, 일반 회사원, 간호사, 제빵사 등이었다.

일반고 아이들 중에는 꿈이 없다고 답한 학생도 100명 가운데 13명이나 있었다. 반면 꿈이 없다고 답한 자사고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부모의 소득 수준이 직접적으로 자식의 소득 수준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건국대 최필선 교수는 2004년 고3이었던 학생 1,300여 명을 10년 간 추적해 부모의 소득이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최 교수가 올해 9월 발표한 논문 <부모의 교육과 소득수준이 세대 간 이동성과 기회불균등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부모의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자녀가 더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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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무학, 유전유학

유일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라는 교육조차 경제적 계층에 따라 분리된 상황이지만 정부는 해결 의지가 없다. 고교서열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서울시교육청에 들어가 정책 연구를 하고 있는 교사 김학윤 씨는 답답함을 토로한다.

자사고 문제나 특목고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진보교육감만 느끼는 게 아니에요. 정부도 느끼고 있고 그 문제를 정비하려고 하다가 해결을 못 했거든요. 그런데 진보교육감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걸 정부가 도와주기는커녕 초등교육 시행령까지 바꿔서 교육청이 지정취소라든가 재지정을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거예요.

중앙정부가 딴지걸기를 하는 사이 아이들은 점점 교육현장의 불평등을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인다. 금수저만 주로 키워주는 한국 교육이 점점 아이들의 꿈마저 갈라놓고 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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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와 특목고를 폐지하면 일반고가 좋아지는 걸까? 되레 강남 8학군으로 학생들이 몰리지 않을까? 사교육이 더 횡행하지는 않을까?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는 수월성 교육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결국 우리 아이들은 행복해지는 걸까?

연봉 18억 원을 포기하고 사교육 시장을 홀연히 떠나 ‘사교육 저격수’가 된 ‘학원가의 서태지’! 뉴스포차 26번 째 손님은 교육평론가 이범 씨다. 김상곤 교육부장관 후보자와 문재인 캠프 교육정책의 주요 밑그림을 그렸던 이범 평론가와 함께 자사고, 특목고 폐지 정책을 뜯어봤다.

자사고 학부모도 전화로 연결해 자사고 폐지를 반대하고 있는 분들의 목소리도 직접 들어봤다. 이범 평론가가 이 학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첫 번째 안주! 학원가 서태지의 탄생
두 번째 안주! 사교육 2인자에서 사교육 저격수로
세 번째 안주! 자사고 폐지정책의 철학은?
네 번째 안주! 자사고 학부모와의 대화
다섯 번째 안주! 자사고 폐지를 넘어 고교학점제로
여섯 번째 안주! 고교평준화 시대로의 후퇴?
일곱 번째 안주! 고교 ‘정상화’ 아닌 ‘혁신’으로
여덟 번째 안주!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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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7/07/05-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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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KF-X를 실현시켜 줄 미국의 핵심기술 이전은 결국 없는 일이 됐다. 국회는 뒤늦게 정부에 실패의 책임을 묻겠다고 하지만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인 F-X 사업에서 기술 이전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정부가 당초 선정한 후보 기종을 뒤집고 록히드 마틴 사의 F-35A(F-35A Lightening II) 기종을 선택한 순간, 사실상 기술 이전을 전제한 본래의 KF-X 사업은 실종됐다는 것이다.

F-X 사업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미로를 헤매기 시작한 것은 2013년 9월에 열린 제70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이하 ‘방추위’) 회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F-X사업의 단독 후보 기종이었던 보잉사의 F-15 SE(Silent Eagle)은 방추위의 최종 승인만을 남겨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방추위는 이 안건을 부결시켰다. 2년에 걸친 방위사업청의 선정 과정을 모두 무위로 돌리는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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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방추위 관계자들은 F-15SE가 차세대 전투기로서의 성능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북한 핵시설 타격 등 중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선 적의 레이더 망을 피하는 ‘스텔스(Stealth)’ 기능이 핵심적인데, F-15SE는 이 기능이 취약해 차세대 전투기로 적합하지 않았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다.

하지만 이날 회의록에 담긴 당시 김관진 방추위 위원장(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한마디는 두고 두고 뒷말을 낳고 있다. 김 실장은 이 자리에서 “차세대 전투기의 기종 선정은 ‘정무적으로 고려할 사안’”이라고 누차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무적인 고려’. 전문가들은 이 말을 두고 당시 방추위 결정의 이면에 국익이 아니라 미국의 입장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한국이 F-15SE가 아닌 F-35를 택하길 원하고 있었다고 한다. 비록 보잉사 역시 미국의 거대 방산력업체지만 당시 미국 정부 입장에선 F-35 해외 판매가 갖고 있는 의미가 각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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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35 기종은 미국, 영국, 터키, 호주 등 9개 국가가 공동 투자해 개발 중인 5세대 항공기다. 공대공, 공대지, 정찰 임무를 하나의 기종으로 해결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시작된 사업이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미국 정부에게는 부담이 되고 있다. 기술적 난제로 인해 개발이 지연되고 있는 데다,기술 하자로 시험 비행 도중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9개 참여국 중 다수가 현재 사업을 철회하거나 축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캐나다, 영국, 터키, 네덜란드, 노르웨이, 이런 서방국가들이 F-35 구매 계약을 철회하거나 축소하고 있습니다. 미국조차도 거의 절반 수준으로 축소하는 움직임을 보일 정도입니다. 이렇다 보니 개발 비용에 따르는 부담이 전투기 가격으로 전가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초기 개발 때는 약 7천만 달러였던 것이 지금은 대당 2억 달러에 이른다는 말도 나옵니다. 거의 3배 정도가 폭등한 거죠. 대량생산이 되면 가격이 하락하겠지만 초기 물량의 경우 이 2억 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이 전투기를 고가로 구매해서 성능 발휘가 안되는 일이 발생이라도 하면 국가적 낭패일 수 밖에 없죠.
–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

천정부지로 치솟은 가격 때문에 F-35가 시장성을 잃자 미국 정부가 전통적인 동맹국, 특히 우리나라를 주목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보잉사의 F-15SE이 방추위에서 부결되기 직전인 2013년 8월 인도네시아에서 척 헤이글 미 국방부 장관과 김관진 당시 방추위 위원장이 만났다. 그 양자 회동 직후 김관진 위원장은’ 정무적 고려’라는 말을 꺼냈고, 차세대 전투기 기종은 록히드 마틴의 F-35가 된 것이다.

“협상력 잃은 우리 정부…기술 이전은 커녕 F-35A 모셔오기”

이후 차세대 전투기의 스텔스 기능은 군 요구성능, ROC의 필수 항목이 된다. F-X사업의 가격 경쟁력을 도모하기 위해 군 스스로 낮췄던 스텔스 관련 ROC의 수위를 돌연 다시 올린 것이다. 3개 후보 기종(F-15SE, F-35A, 유로파이터 타이푼) 가운데 새 ROC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종은 록히드 마틴의 F-35가 유일했다. 그리고 2014년 3월 77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F-35A가 F-X사업 구매기종으로 결정되기까지 록히드 마틴은 사실상 1:1 파트너로 협상을 주도하게 된다.

이건 엄밀히 말해 F-X 3차 사업이 아닌 4차 사업입니다. 차세대 전투기 60대를 사는 것이 3차 사업이었는데 구매대수를 40대로 변경하고 예산 규모도 비뀌었으니 새로운 사업을 만들었다고 봐야죠. 문제는 이후부터 록히드 마틴이 새로 협상해야겠다는 식으로 콧대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1대1 협상이다보니 록히드 마틴의 위세가 높아졌고 수시로 뒤에 있는 미국 정부 핑계를 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약속했던 기술 이전의 문제조차 미국 정부의 승인 사안이라며 다 빠져나가는 식이었죠. 그 결과 계약 맺을 시점에는 우리의 협상력이 다 소진된 상황었습니다.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KF-X)가 미래 공군의 결정적 사안이라면 어떻게든 계약을 미뤄 협상력을 제고할 전략을 취해야 했는데 우리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정책을 번복하며 그 기종(F-35A)을 모셔오는 계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

사실상 2013년 9월 방추위 이후 록히드 마틴이 단일 협상 대상이 된 이후부터는 KF-X 사업을 위한 핵심기술 이전 문제는 완전히 협상에서 배제돼 있었다는 말이다.

청와대에 건의서 보낸 록히드마틴 ‘장학생’들

석연치 않은 F-X사업 기종 변경의 이면에는 김 실장이 언급한 ‘정무적 고려’ 외에 또 다른 요인도 작용했다. 지난 10월 8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방추위가 F-15SE를 부결할 당시, 예비역 장성들의 의견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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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방추위를 앞두고 예비역 공군참모총장 15명이 청와대와 국방부, 국회에 보낸 ‘국가안보를 위한 진언’이라는 건의서는 한 장관이 언급한 ‘예비역 장성들의 의견’이 무엇인지 잘 드러나 있다.

영명하신 대통령님께서 국가안보차원에서 특단의 조치를 취재 주신다면 국방예산 범위 내에서 사업간 예산을 조정하여 스텔스 기능을 구비한 차기 전투기를 확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국가안보를 위한 진언’ 중

F-X 사업 선정 기종이 반드시 스텔스 기능을 갖춘 기종이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김 실장을 비롯한 방추위 관계자들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사실상 록히드 마틴 F-35A를 선택해 달라고 한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다.

문제는 이 건의서를 보낸 전직 공군참모총장 중에 록히드 마틴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포함돼 있었다는 점이다.

이 건의서에 이름을 올린 김상태 전 공군참모총장(1982년~1984년)은 전역 후 ‘승진기술’이라는 방위산업체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승진기술은 록히드 마틴의 한국 대리점이다. 더구나 김 전 총장은 건의서를 작성할 당시, 록히드 마틴에 군사기밀을 팔고 25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김 전총장은 지난 2월 유죄를 확정받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 전총장과 함께 건의서를 보냈던 한주석 전 공군참모총장(1990년~1992년)도 1993년 율곡사업 비리사건 당시 록히드 마틴의 전투기 F-16 도입 로비로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사법처리됐던 인물이다.

캐나다 “F-35 도입 원점 재검토”…우리는?

지난 10월 말 캐나다 총선에서는 F-35 구매 사업이 주요 쟁점이었다. 제2야당이었던 자유당은 이전 보수당 하퍼 정부가 세운 F-35 구매 계획에 의문을 제기했다. 치솟는 도입 비용에도 불구하고 보수당 정부가 F-35를 고집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총선 승리 시 F-35 도입 사업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겠다고 공약했다. 자유당은 전체 의석 338석 가운데 184석을 확보하며 10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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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2012년에 발표된 캐나다 감사원의 F-35 도입 사업 감사보고서는 보수당 정부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혔다. 이 보고서는 정부가 F-35의 구매비용과 운용비용을 총 250억 캐나다 달러로 산정하고도 160억 캐나다 달러로 축소 발표했다는 의혹을 담고 있다. 이번 총선 결과가 보수당 정부의 은폐와 거짓말에 대한 ‘심판’으로 평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미군 관계자는 이번 캐나다 총선의 영향으로 캐나다가 F-35 개발 프로그램에서 철수하게 되면 다른 참여국들이 지불해야 할 F-35의 대당 가격이 100만 달러 가량 오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 2015/11/06-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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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남기 농민의 유족들이 경찰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이 1년째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물대포를 운용했던 경찰관들이 유족 측의 청구를 받아들이기로 했으나 경찰청이 이를 저지한 사실이 드러났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를 맞고 쓰러질 당시 살수차를 운용했던 한 모 경장 등 두 명은 9월 26일 담당 재판부에 원고(백남기 농민 유족)의 청구 사항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청구인낙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들은 경찰청 법무담당관실로부터 청구인낙서를 제출하지 말라는 취지의 압력을 여러 차례 받았다.

한 경장 등의 소송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관계자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청구인낙을 하겠다고 경찰청에 최종 의사통보를 한 9월 25일 오후부터 청구인낙서를 (법원에) 제출한 26일까지 경찰청 관계자들로부터 수십 차례에 걸친 회유와 설득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25일은 이철성 경찰청장이 고 백남기 농민 1주기를 맞아 다시 한번 공식 사과를 한 날이다. 경찰청장은 공식적으로 사과를 한 시점에 경찰청은 내부에서 당시 살수차 운용 경찰관들을 상대로 사실상 잘못을 인정하지 말 것을 종용한 셈이다.

한 경장 등 두 경찰관은 지난 7월에도 이미 담당 재판부에 낸 기일변경신청서를 통해 백남기 농민 유족들의 청구취지를 전부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백남기 농민 유족들은 지난 2016년 9월 국가와 당시 경찰청장 강신명, 서울경찰청장 구은수, 4기동단장 신윤균, 그리고 한 경장 등 살수차 운용 경찰관 2명 등을 상대로 모두 2억여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국무총리가 청구인낙하라고 하지 않겠나, 그때 봐서 하면 되는 거 아니냐”

해당 법무법인 관계자는 이미 오래 전 한 경장 등이 유족 측의 청구를 받아들이겠다는 청구인낙 의사를 밝혔으나 경찰청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 직원들이 자신에게 ‘청구인낙의 뜻은 알고 하는 거냐’, ‘청구인낙을 하게 되면 원고 측에서 형사재판에 활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원론적인 설득부터 ‘계속 버티면 국무총리가 청구인낙하라고 하지 않겠나, 그때 봐서 하면 되는 거 아니냐, 지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가야지 이게 뭐 하는 거냐’는 등의 내용으로 청구인낙서를 제출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는 또 “외부 변호인인 제가 이렇게 시달렸을 정도면 내부에 있는 당사자들(한 경장 등)은 얼마나 시달렸겠냐”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당사자인 한 경장 등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두 경찰관은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법무과장 최현석 총경은 “두 경장 측에 연락을 한 건 사실이지만 압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고, 공동피고인 신윤균 당시 서울청 4기동단장, 구은수 당시 서울청장,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과 같이 청구인낙서 제출 시기를 조율하자고 하려고 연락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는 경찰청이 구은수 전 서울청장과 강신명 전 경찰청장에게는 아직 청구인낙서 제출과 관련하여 연락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 총경은 또 “경찰청은 이미 지난 7월부터 피고들에게 원고와 합의하라고 권유했다”며 “청구인낙이라는 것은 백프로 항복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편 한 경장 등이 청구인낙서를 제출한 다음날인 27일에는 백남기 농민 사건 발생 당시 서울청 4기동단장이었던 신윤균 총경도 재판부에 청구인낙서를 제출했다. 신 총경은 청구인낙서를 통해 “고인의 희생을 생각할 때, 저희 경찰은 사건의 경위여하를 막론하고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호해야 할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며 “무수한 갈등과 번뇌를 거듭한 끝에, 이 사건에서 청구를 모두 인낙하는 것만이 그동안 겪으셨을 고인과 유가족분들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자 인간된 도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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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신윤균 당시 서울청 4기동단장이 재판부에 제출한 청구인낙서

지난 9월 19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부를 대표하여 백남기 농민과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 이철성 경찰청장도 지난 25일 백남기 사건에 대해 두 번째 공식 사과를 했지만, 정작 같은 날 경찰청 관계자들이 살수차 운용 경찰관들에게 청구인낙을 하지 말 것을 종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찰청의 사과가 과연 진정성이 있는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취재 : 임보영

목, 2017/09/2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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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한국 교회의 대형화 재벌화 비판 – 한국 2018년부터 종교인 과세 – 대형교회의 재정 투명성 감시할 조직 필요 역설 – 한국 대형 교회의 권력화, 재벌화 비판 12일 영국의 보수적인 시사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신보다 돈”을 중시하는 한국 교회의 행태를 보도하며 한국도 2018년부터 종교세를 부과한다고 보도했다. 서양문화에서는 상식적인 것이고 당연시 여겨지는 일들이 한국 사회를 접하는 외국인들에게는 비상식적으로 ...
월, 2015/12/1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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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손배소송으로 노조 압박

파업에 참여했다가 전 재산과 임금까지 회사에 가압류 당했던 두산중공업 배달호 씨가 2003년 1월 분신해 숨지면서 손배소송의 위험이 세상에 알려졌다. 15년이 지난 요즘은 회사뿐 아니라 국가(경찰)도 손배소송으로 노동자와 노조를 위협하고 있다.

국가(경찰)는 노사갈등 때 중재자로 개입한다. 노조원과 경비용역이 충돌할 때 경찰도 일부 부상당한다. 폭력을 행사한 노조원은 형사처벌 받는다. 요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가(경찰)가 노조원 개인에게 인적, 물적 피해를 배상하라는 손배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다. 때문에 금속노조 법률원에는 노사갈등보다 노정갈등으로 인한 소송이 더 몰린다.

집회 관련한 형사사건이 더 많아

금속노조 법률원이 최근 20개월간(2015.1~2016.8) 맡은 소송은 모두 975건이었다. 소송 형식으로 나눠 보면 형사사건이 305건, 행정사건 290건, 민사사건 287건, 기타 93건 순이었다. 형사사건 상당수가 경찰과 집회및시위에관한법(집시법) 위반을 다투는 것이다. 노조 법률원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나 정부의 법제도개선을 법적으로 타투는 것보다 경찰(공권력)과 공방을 벌이는 게 더 많았다.

전체 975건의 소송은 사건 내용별로 노조활동, 단결권, 단체교섭, 단체행동권 등 25개로 나뉜다. 25개 내용별로 소송 건수를 보면 사업장 밖 노조활동(214건)이 가장 많고, 사업장 안 노조활동(94건), 단결권 침해(79건), 비정규직(71건) 순이었다. 1~4위까지가 458건(46.9%)으로 전체의 절반에 달했다.

1~2위를 차지한 사업장 안팎 노조활동은 노동기본권을 요구하는 집회 중 벌어진 다툼이 많다. 결국 한국의 노사관계를 소송 측면에서 분석할 때 노동3권 중 단체행동(쟁의)이나 단체교섭이 아닌 기본적인 단결권을 둘러싼 다툼이 더 많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파업보다 기본적 단결권에 발목 잡혀

975건 가운데 금속노조 법률원이 사회적 파급력을 고려해 직접 개입한 주요사건은 53건이었다. 53건 중 형사사건이 41건(77.4%)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것도 노조가 제기한 소송은 20건인데 반해 피소 당한 게 33건이었다. 이는 노사 갈등을 조정해야 할 국가가 단결권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노조와 노조원에게 집시법 위반으로 형사적 책임을 묻는데 이어 거액의 손배소송까지 제기해 이중 압박하는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20개월치 소송을 분류한 금속노조 법률원 박현희 노무사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단체행동권이나 단체교섭은 고사하고 노동3권 중 가장 기본인 단결권조차 누리지 못한채 비정규직노조를 중심으로 사업장 안밖에서 노조인정 등 단결권을 요구하는 집회(시위) 하다가 공권력과 싸우는데 진을 빼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내용 형사 행정 민사 기타 합계
1 사업장밖 노조활동 168 22 14 10 214
2 사업장내 노조활동 26 36 21 11 94
3 단결권 침해 28 32 16 3 79
4 비정규직 16 13 38 4 71
5 통상임금     57 2 59
6 일반징계   46 5 1 52
7 쟁의행위 13 16 16 6 51
8 정리해고 10 9 18 13 50
9 복수노조 6 22 12 7 47
10 징계해고 1 19 10 3 33
11 단체협약 3 9 13 4 29
12 폐업 7 3 9 8 27
13 인사권 행사 1 12 8 4 25
14 차별 3 5 10 3 21
15 단체교섭 7 8 1 4 20
16 노조 채무 2 6 10 2 20
17 산재/노동안전/보건   14 2 2 18
18 임금체계 3 2 10   15
19 저성과 2 7 5 1 15
20 직장폐쇄 4 4 3 1 12
21 전임자 1 1 2 4 8
22 노동자 감시통제 3 2 2   7
23 근로시간   1 2   3
24 휴게/휴일/휴가     3   3
25 쟁의조정 1 1     2
합계 305 290 287 93 975

▲ [표1]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 소송(출처 : 금속노조 법률원, 2015.1 ~2016.8)

노동권 미흡한 특수고용직 등 비정규직에 더 가혹

민주노총도 국가(경찰)의 손배소송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가(경찰)가 민주노총을 상대로 손배소송을 걸어 종결된 13건 중 특수고용직이나 간접고용 등 비정규직 관련 사건은 6건이다. 배상액은 모두 2억 4,259만원인데 이중 비정규직 사건이 1억 5,069만원(62.1%)에 달한다. 민주노총이 정규직 중심으로 구성된 걸 감안하면, 국가는 상대적으로 약자인 비정규직에게 더 가혹했다.

  발생 피고 행사 내용 확정액(만 원)
1 2007. 6 민주노총 특수고용 권리보장 대회 2436
2 2007. 7 민주노총, 개인 8명 홈에버노조 파업집회(비정규직) 2520
3 2006. 6 금속노조, 개인 5명 하이텍코리아 집회(공장폐쇄) 910
4 2007.10 건설노조원 10명 건설노조 집회 1074
5 2007. 9 민주노총 노조원 19명 울산중부서 담장손괴(현대차 비정규직) 558
6 2007.11 기아차 노조원 6명 범국민행동의날 상경차단 1087
7 2007. 8 민주노총 뉴코아 앞 미신고 집회(비정규직) 380
8 2007. 7 S&T노조 등 6명 S&T 정문앞 집회 260
9 2009. 5 민주노총 화물연대 집회(334명 기소) 8101
10 2011. 2 민주노총 전북본부 민주노총 집회 (버스노조) 1480
11 2010.11 금속노조, 4명 쌍용차 집회 899
12 2011. 6 금속노조 등 12명 유성기업 집회 4520
13 2014.12 공무원노조 노조원   34
합계   2억4259만원

▲ [표2] 민주노총이 피소 당해 종결된 손배소송(출처 : 민주노총, 붉은색은 비정규직노조 사건)

노동3권을 제대로 갖지 못한 특수고용직과 간접고용 노동자는 쟁의행위에 제약이 많다. 때문에 이들은 정부에 정책개선을 요구한다. 요구는 집회(시위)로 표현된다. 이 때 공권력(경찰)과 충돌이 불가피한데 국가가 집회에서 생긴 피해에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민주노총 박은정 정책국장은 “경찰이 해마다 집회시위 따른 경찰장비 파손에 대비한 예산을 확보해놓고도 집회당사자에게 모두 배상하라는 건 지나치다”고 했다.

사용자 손배소송, 숫자 줄지만 액수는 급증

국가와 함께 사용자의 손배소송도 여전하다. 민주노총에 대한 손배청구 총액(기업,국가 포함)은 사용자가 노조탄압 수단으로 손배소송을 적극 활용해 두산중공업 배달호 씨의 분신을 불렀던 2003년 500억 원을 넘긴 뒤 올 들어 1867억원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손배소송을 당한 노조 수는 2003년 51개에서 24개로 절반으로 줄었지만 청구액은 크게 늘어 노조 당 청구액은 2002년 8억 8천만원에서 77억 8천만원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조사 시기 청구액 (억 원) 사업장 수 (개)
2002. 6 345 39
2003. 1 402 50
2003.10 575 51
2011. 5 1583 12
2013. 1 1307 16
2014.  3 1692 17
2015. 3 1691 17
2016. 4 1558 17
2017. 7 1867 24

▲ [표3] 민주노총 연도별 손배 피소(출처 :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코레일은 2009년 노조파업 때 노조를 상대로 손배소송을 제기해 오히려 이익을 냈다. 서울지법은 손배소송에서 코레일이 전면파업 때 72억원의 영업손실을 봤으나, 인건비(무노동무임금)와 동력비를 줄여 86억원을 절약해 오히려 14억원 가량의 영업이익을 봤다고 판단했다.

하청노동자 앞에 시간만 끄는 공권력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처럼 변호사 20여 명이 일하는 법률원이 있는 곳은 그나마 낫지만 지역의 작은 비정규직 노조는 회사와 국가의 손배소송의 휘청거린다.

강원도에서 시멘트를 생산하는 삼표동양시멘트는 1년 365일 24시간 공장(광산)을 가동했다. 명절 휴가도 없이 하루 16시간씩 일했던 하청노동자들은 한 달에 잔업만 100시간 넘게 해도 정규직 임금의 절반도 못 받았다.

이들이 노조를 만들자 원청은 수십 년 일한 100여명의 하청노동자를 도급 해지해 모두 내쫓았다. 쫓겨난 하청노동자들은 노동부와 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소송(불법파견)을 제기하고, 다시 일하게 해달라고 정문 앞에서 농성했다.

노동부는 8개월을 끌다가 노동자의 손(위장도급)을 들어줬다. 1심 법원도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지만, 원청은 20억원의 벌금(이행강제금) 내면서까지 직접고용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법원이 불법파견으로 판결해도 회사가 버티면 그만이다. 현대차 사내하청 사건 때도 버티다 선별적으로 일부를 신규 채용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원청은 하청노동자 농성을 이유로 업체를 통해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 노동자를 대리한 공익인권법재단 윤지영 변호사는 “통상 회사가 손배 소송을 제기할 땐 파업(쟁의행위)이 문제가 되는데, 삼표동양시멘트는 계약해지 당한 뒤 다시 일하게 해달라고 농성한 게 손배청구 이유라서 이럴 땐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어떻게 구성할지 난감하다”고 했다.

동양시멘트노조 김진영 교육부장은 “노동부의 위장도급 판정도 태백지청장실 점거 끝에 겨우 얻었는데, 그때 로비에 ‘동양시멘트 기증’이라고 새겨진 대형 거울을 보고 많은 걸 깨달았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 쫓겨나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하청노동자는 밤에 태백지청 근로감독관과 원청 임원이 만나는 걸 목격했다.

손배소, 한미FTA 이후 집회통제 주요수단

국가(경찰)가 집회와 시위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건 2006년 한미FTA 체결 반대집회가 처음이었다. 2008년 광우병 촛불 이후 손배소송은 국가가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통제하는 주요 수단이 됐다.

집시법 2조는 ‘시위’를 “여러 사람이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결국 집회와 시위는 실력행사와 위력을 예정한다. 집회와 시위 등 기본권 보장은 국가 의무다. 그런데도 국가는 집회 관리통제의 수단으로 손배소송을 적극 활용해 기본권을 억압하고 있다.

공익인권변호사 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서선영 변호사는 한 토론회에서 “정치과정에서 생긴 문제를 개인간 피해회복을 목적으로 한 손해배상이란 수단에 그대로 적용하는 순간 왜곡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집회의 모든 책임을 주최자에게 전가하는 건 결국 정치적 반대의사가 강한 집회를 하지 말라는 경고이자 엄포라서 국민 기본권을 위축시킨다”고 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지난해 12월 열린 국가 손배소송 토론회에서 “기본권 중 타인의 불편을 전제로 인정하는 걸 ‘관계적 권리’라 하는데, 집회의 자유와 노동3권이 대표적 ‘관계적 권리’다. 집회와 시위는 교통제한이나 소음 등 생활방해를 당연히 동반한다. 국가가 이런 관계적 권리에 손배 청구를 남용하면 오히려 기본권을 방해하는 셈”이라고 했다.

집회때 불법은 형법으로 충분히 제재 가능

국가가 집회와 시위에 형법이 아닌 민법상 손배소송을 제기하는 게 법리상 이질적이고, 기본권 조정자로 국가의 의무에 반한다는 의견도 있다. 집시법은 위반행위에 대해 행정적, 형사적 재재를 부과하지만 민사적 제재는 입법화하지 않고 있다. 집회와 시위 등 표현의 자유로 인해 일어나는 법 위반에 대해 민법을 근거로 손해배상을 남용하는 건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킬 공산이 크다.

허진민 참여연대 공익인권법센터 변호사는 “국가가 공익목적에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려다가 생긴 피해를 갈등 당사자에게 물리는 건 기본권 조정자로서 국가의 의무에 반하고, 국가는 개인들에게 형법, 행정법으로 충분한 제재수단을 갖고 있다”고 했다.

경찰, 광우병 촛불 손배소 고법까지 패소

경찰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주최한 대책회의와 네티즌 등 17명에게 5억 1,709만 원의 손배를 청구했다. 경찰은 대책회의가 개입하면서 불법폭력시위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 공소장에는 허점이 많았다. 누가 가해자인지 모르고, 부상경위도 입증하지 못하고, 출동하다가 넘어져 다치거나, 동료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은 부상, 대치 중 탈진까지 모두 주최 측에 손해배상 청구했다. 참여연대 안진걸 씨는 2008년 6월 25일 체포됐는데 경찰은 안 씨가 6월 29일까지 농성을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고등법원까지 경찰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쌍용차 회사는 취하했는데 국가는 끝까지

노조에 대한 국가 손배소는 2009년 쌍용차와 2011년 유성기업 파업이 대표적이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2,646명 구조조정에 반발해 2009년 5월 22일 점거파업에 들어가 회사 경비용역과 충돌했다.

77일 뒤 경찰은 8월 4~5일 헬기와 기중기로 공장 내 노조원을 진압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경찰)는 노조와 노조원을 상대로 장비파손과 치료비, 위자료 등 16억 6,961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14억원, 2심 법원은 11억원을 인정했다.

회사도 노조에 33억원 손배소송을 제기했으나 2015년말 모두 취하했다. 그러나 국가는 2심 판결에도 불복해 사건은 대법원에 올라가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94명이 구속되고 300여 명이 벌금과 형사처벌을 받았다. 자살한 노동자도 28명이다. 여기에 국가(경찰)까지 손해배상 소송으로 압박하고 있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노조탄압 무기인 손배, 가압류를 국가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성기업노조는 교대근무제 개선을 위한 교섭결렬로 2011년 5월 18일부터 점거파업에 들어갔다. 회사는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파업 첫날 직장폐쇄했다. 6일 뒤 경찰은 회사의 요청으로 공권력을 투입해 파업노동자를 해산했다. 이후 노조원과 경비용역은 회사 앞에서 계속 충돌했다.

한 달 뒤 민주노총 충남본부가 회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공장 정문 앞을 통과해 예정된 집회장소로 이동하려는 집회참가자들과 이를 막아선 경찰이 충돌해 양측이 다쳤다.

국가(경찰)는 노조와 노조원에게 장비 손상과 경찰 치료비, 위자료 등 1억 1,1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4,500만원을 인정했다.

불법파견 해결 요구 파업에 20억 손배판결

부산고법은 지난달 24일 현대차 하청노동자가 불법파견 해결을 요구하며 벌였던 울산공장 점거파업을 지원한 당시 금속노조 간부와 현대차 정규직, 비정규직 4명에게 2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현대차 하청노동자들은 2010년 7월 대법원이 동료 최병승 씨에게 불법파견을 판결하자 현대차에 하청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그해 11~12월 25일 동안 파업했다.

민변 노동위원회 등 노동법률단체는 대법원 상고를 위한 인지대 비용 1,500만원 마련을 위한 모금에 나섰다. 이들은 원심 판결의 부당성을 알리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내고, 노조탄압 수단으로 악용된 손배소송의 부당함을 알리는 운동도 펼치기로 했다.

제주 강정마을은 실마리 찾아가는데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놓고 정부가 반대 주민에게 거액의 손배소송을 제기해 문제가 된 강정마을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정부(해군)는 공사연장 손실을 시공사에 배상하고 그 중 34억 4천만원을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구상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해결책 검토를 약속한데 이어, 지난달 11일 열린 첫 변론에서 정부 측은 “소송 외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주민들과 협의할 시간을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해 실마리를 찾는 중이다. 하지만 노조 상대 손배소는 여전히 노조 통제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민주노총 박은정 정책국장은 “정권이 바뀌었지만 노조를 상대로 한 국가 손배소는 어떤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수, 2017/09/1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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