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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불가…박정희-기시 노부스케 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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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불가…박정희-기시 노부스케 친서

익명 (미확인) | 목, 2015/11/12- 20:58

KBS 탐사보도팀이 취재한 <훈장 2부작> 이 넉 달째 방송날짜조차 잡지 못하면서 사실상 불방수순을 밟고 있는 가운데, KBS 간부들이 방송불가와 원고 삭제를 요구한 것은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기시 노부스케에게 보낸 친서였다. 친서는 1961년 8월과 1963년 8월에 박정희 의장이 기시에게 보낸 것이다.

▲ 박정희가 기시 노부스케에게 보낸 두 개의 친서 원본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 있는데, KBS 탐사보도팀이 일본 현지에서 확인했다.사진은 국사편찬위 사료실에 있는 사본이다.

▲ 박정희가 기시 노부스케에게 보낸 두 개의 친서 원본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 있는데, KBS 탐사보도팀이 일본 현지에서 확인했다.사진은 국사편찬위 사료실에 있는 사본이다.

현재 친서의 원본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 있고, 국내에는 사본 형태로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실에 남아있다. 기존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김상중`현무암 저, 2012) 저서에 해당 친서 내용의 일부가 소개됐지만, 언론사가 친서 전문을 촬영한 것은 KBS 탐사보도팀이 처음이다.

KBS 탐사보도팀이 확인한 해당 친서는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당시 전 총리였던 기시 노부스케에게 한일수교협정의 협력을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61년 8월과 1963년 8월, 두 차례에 걸쳐 보낸 친서를 통해 당시 박정희 당시 의장이 한일협정의 방향을 어디로 끌고가고자 했는지 분명히 드러난다.

▲ 학계전문가들은 해당 친서가 1965년 한일수교 과정과 그 내막을 엿볼 수 있는 자료라고 평했다.

▲ 학계전문가들은 해당 친서가 1965년 한일수교 과정과 그 내막을 엿볼 수 있는 자료라고 평했다.

기시 노부스케는 36년 만주국 산업차관을 지냈으며 태평양 전쟁 시기인 1941년 상공대신으로 군수물자를 조달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인들을 강제동원해 죽음으로 내몰았던 전쟁범죄 책임자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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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8월 서신에서 박정희는 기시 노부스케에게 “귀하의 각별한 협력이야말로 대한민국과 귀국과의 강인한 유대는 양국의 역사적인 필연성이라고 주장하시는 귀의가 구현될 것”이라 밝히고 있다. 이 친서에 대해 남기정 서울대 일본학연구소 부교수는 “기시 노부스케는 박정희와 동등한 입장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는 의도보단 과거 일제 강점기의 만주에서의 경험(대동아론)이 기저에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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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의 두번째 친서를 전달한 사람은 박흥식이다. 친서에 박흥식 이름이 등장한다. 박흥식은 일제 강점기 대표적 친일 기업인이다.그는 1949년 반민특위가 활동할 당시 1호 체포 대상자였다.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규명위는 박흥식을 친일행위자 1,006명에 포함시켰다.

또 1961년 기시 노부스케가 박정희에 보낸 밀사로 ‘신영민’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신영민은 박정희의 중학교 동창으로 나올 뿐 구체적 신원이 확인된 적은 없다. 그가 65년 한일협정 막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이 친서는 KBS 탐사보도팀이 국내 언론으로선 최초로 촬영한 것이지만 KBS 사측은 “누구나 인터넷 검색을 하면 찾을 수 있는”자료라며 방송 불가를 고수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촬영한 친서의 사본 전문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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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8월,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기시 노부스케에게 보낸 친서

근계(삼가 아룁니다)

귀하에게 사신을 드리게 된 기회를 갖게되어 극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귀하가 귀국의 어느 위정자보다도 우리 대한민국과 국민에게 특히 깊은 이해와 호의를 가지고 한일양국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양국의 견고한 유대를 주장하시며 그 실현에 많은 노력을 하시고 있는 한 분이라는 것을 금번 귀하가 파견하신 신영민씨를 통하여 잘 알게 되었습니다.

동씨는 더욱 나와는 중학 동창 중에서도 친우의 한 사람인 관계로 해서 하등의 격의라든가 기탄을 개입시키지 않은 자유로운 논의를 수차 장시간에 걸쳐서 교환하였기 때문에 어느 누구보다도 우리 군사혁명정부의 오늘까지의 시정성과와 향후의 방침과 전망에 대하여 가장 정확한 판단과 이해와 기대를 가지고 돌아가게 되었다고 확신하오니 금후에도 동씨를 통하여 귀하와 귀하를 위요한 제현의 호의로운 협력을 기대하여 마지 않습니다.

더욱 장차 재개하려는 한일국교정상화교섭에 있어서의 귀하(기시 노부스케)의 각별한 협력이야말로 대한민국과 귀국과의 강인한 유대는 양국의 역사적인 필연성이라고 주장하시는 귀의가 구현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귀하에게는 신영민씨가 약 이순에 걸쳐서 듣고 본 우리 국가의 정치경제 군사 민정 등 제실정을 자세히 보고설명 할 것으로 알고 나는 여기서 귀하의 건강을 축복하며 각필합니다.

1961년 8월 대한민국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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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8월, 박정희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기시 노부스케에게 보낸 친서

근계(삼가 아룁니다)

거반(지난번) 귀국을 방문한 바 있는 박흥식씨 편으로 전해주신 귀하의 서한에 접하고 상금(이제까지) 회신을 드리지 못하고 있는 차에 금번 다시 박흥식 씨가 귀국을 방문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귀하에게 경의를 표하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한일간의 국교가 하루 속히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본인의 변함없는 신념입니다. 이는 한일양국의 공동번영의 터를 마련할 것이며 현재의 국제사정하에서 극동의 안전과 평화에 기여하는 바 지대하리라고 믿습니다. 귀하께서도 항상 한일관계의 개선에 관심을 가지시어 적극적인 노력을 아끼시지 않는 데 대하여 본인은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이며 한일회담의 조기타결을 위하여 배전의 협조 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귀하의 가일층의 건승을 빕니다.

서기 1963년 8월 1일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박정희

기시노부스케 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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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0일, 부산에서 온 이 모씨는 충남 서천군에 있는 고 유 모 할머니의 묘소를 참배했다. 자신의 잘못으로 세상을 떠난 할머니와 17년 만에 마주한 것이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 때 한 행동은 지금도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부디 좋은데 가셔 가지고 편안한 안식을 갖기를 빌어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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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 씨는 1999년 2월 6일 전북 완주군 삼례에서 발생한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의 3인조 범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나 이 씨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대신 처벌을 받은 사람은 당시 마을 부근에 살던 19~20살 청년 3명이다.

▲ 강도치사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임명선, 강인구, 최대열씨(왼쪽부터)

▲ 강도치사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임명선, 강인구, 최대열씨(왼쪽부터)

빈집털이 전과가 있던 이들은 처음엔 범행을 부인했지만 경찰의 폭행과 강압적인 수사에 못이겨 허위 자백을 했다. 검찰은 3명을 강도치사 혐의로 기소했고 이들은 각각 징역 6년과 4년,3년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그런데 사건 17년 만에 진범이 다시 입을 열었다. 숨진 유 모 할머니에게 마지막까지 물을 떠다 먹이며 인공호흡을 시도했던 범인, 이 모씨다.

이 씨는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삼례 청년 3명을 지난 1월 29일 만나 손을 맞잡으며 사과했다. 그리고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선 청년들은 진범의 용서를 받아들였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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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범이 자신의 범행을 고백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까지 구한 지금. 당시 삼례 청년들에게 엉뚱한 죄값을 치르게 했던 경찰은 어떤 입장일까?

취재진은 피해자들과 함께 당시 이들을 조사했던 경찰들을 찾아나섰다.

“저는 진짜 만나서, 왜 우리를 왜 억울하게 안한 사람을 왜 잡아들였나. 그 말을 하고 싶죠.”

그러나 이들 모두 하나같이 취재진을 피했고 피해자들을 외면했다. 당시 수사는 최선을 다한 것일 뿐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 삼례 사건 당시 완주서 수사반장을 맡았던 오재경 현 덕진서 수사과장이 취재진과 피해자들을 피해 경찰서 밖으로 걸어나가고 있다.

▲ 삼례 사건 당시 완주서 수사반장을 맡았던 오재경 현 덕진서 수사과장이 취재진과 피해자들을 피해 경찰서 밖으로 걸어나가고 있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피해자 임명선씨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우리 잘못했다 그렇게 말 한마디라도 했으면 그래도 괜찮을 건데 그 말 한마디도 못하고 막 피해다니고 도망다니니까, 깝깝하죠.

살인을 저지른 진범은 “자신이 할머니를 죽였다”고 고백했고 용서를 빌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 때문에 죄를 뒤집어 쓴 청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용기를 내고 있다.

반면 중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지적장애를 갖고 있던 청년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던 공권력은 한마디 사과도 없이 침묵하고 있다.

용서받지 못할 자는 과연 누구일까?

목, 2016/02/1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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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비 횡령과 사립학교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에게 징역형이 선고됐다. 이에 따라 당시 교비 횡령을 묵인하고, 결산안 승인을 주도한 성신학원 임시이사들에 대한 추가적인 처벌이 뒤따를 전망이다.

서울북부지법 형사7단독 오원찬 판사는 교비 6억9000여 만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심 총장에게 8일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오 판사는 “심 총장이 범행을 주도했고 학교 규모에 비해 거액의 교비를 운영권 강화를 위해 사용했다“며 “심 총장에게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고,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재범의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고 실형 선고의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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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총장은 지난 2013년 2월부터 2년여간 모두 26차례 7억원에 가까운 교비를 변호사 보수 등 자신의 법률 비용으로 지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심 총장은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 비용 지출에 교육 목적이 있다고 판단해 교비에서 집행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 총장은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가 안보 관련 자문역으로 영입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의 아내다.

 이와 관련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와 <전국교수노동조합>은 지난 6일 ‘전 전 사령관의 부인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의 비리 의혹’ 등을 지적하며 캠프 차원의 각성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낸 바 있다.(성명서 바로 보기)

앞서 뉴스타파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국정농단 세력이 성신학원 이사들에게 외압을 행사, 각종 비리로 퇴진 요구에 시달리는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을 지난해 연임시킨 사실을 보도했다.(관련 기사)

심 총장은 서울 운정캠퍼스 부지를 매입하면서 땅 주인으로부터 자신의 아들 2명 명의로 각각 1억5천만 원씩 3억 원의 뒷돈을 받는 등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의심받았지만 교육부에서 파견한 임시이사들이 심 총장을 재선임해 그 배경에 의혹이 일었다.


취재 : 황일송

촬영 : 김기철

수, 2017/02/0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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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기습적인 음주 단속에 항의하다 경찰의 팔을 꺾었다며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박철 씨가 다시 재심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판사 황병호)은 지난 24일 박 씨가 법원을 상대로 제기한 재심청구를 받아들인다고 결정했다. 충주지원은 결정문에서 “재심대상판결의 소송절차에서 발견되지 못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고, 이 새로운 증거들은 재심대상판결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고도의 개연성이 인정되는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며 박 씨가 법원을 상대로 제기한 재심청구를 받아들였다.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에 따르면 유죄의 선고를 받은 자에 대해 무죄 또는 면소, 형의 선고를 받은 자에 대해 형의 면제 또는 원판결이 인정한 죄보다 경한 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이 조항에 따라 재심이 열릴 경우, 사실상 무죄 판결이 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충주지원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화질을 개선한 동영상, 법영상분석 전문가의 감정서, 유도경기지도학 교수의 동영상 분석결과 등을 새로 발견된 ‘명백한’ 증거로 인정했다.

2009년 경찰이 음주운전 단속 과정에서 박 씨가 팔을 꺾었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제출한 영상화면. 201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화질을 개선했다.

▲ 2009년 경찰이 음주운전 단속 과정에서 박 씨가 팔을 꺾었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제출한 영상화면. 201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화질을 개선했다.

박 씨는 지난 2009년 6월 경찰의 기습적인 음주 단속에 항의하다 경찰의 팔을 꺾어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입건됐고 대법원에서 벌금 200만 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박 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던 부인 최옥자 씨가 위증 혐의로 입건돼 다시 유죄판결을 받아 교육공무원직에서 파면됐다.

이후 아내의 재판에 증인으로 섰던 박 씨가 다시 위증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다 2014년 4월 1심에서는 벌금 500만 원 형을 받았으나 이듬해 8월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도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박 씨는 올해 1월 충주지원에 첫 번째 유죄 판결 사건(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부인 최 씨도 두 번째 위증 판결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고 재심을 개시할 지 여부가 조만간 결정 날 것으로 보인다.

박 씨 부부의 재심 사건을 맡고 있는 박준형 재심 전문 변호사는 “재심 개시가 확정되면 무죄 판결이 난다”며 “검사가 개시 결정에 대해 불복을 할 수는 있지만, 불복을 해도 개시 결정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경찰과 검찰, 법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서로 견제하지 못하는 사법 시스템을 개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박 씨는 공무집행 과정에서 팔이 꺾였다고 주장했던 경찰 박 모 씨를 지난 2월 직권남용체포, 모해위증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충북음성경찰서는 이달 6일 직권남용체포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권 없음’, 모해위증 혐의에 대해서는 ‘혐의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해 경찰의 자기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취재 : 조현미

※ 관련 칼럼 : [현장에서]경찰의 팔은 누가 꺾었나…풀리지 않는 의문들

목, 2017/04/2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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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죄송해요.

2년 전 42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숨진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고 김혜선 과장이 세상을 떠나기 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던 영화평론가 이안(필명) 씨에게 남긴 말이다. 이 씨는 그가 손을 꼭 잡으며 “죄송하다”고 말한 뜻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그 말의 의미는 김 과장의 사망 후, 한 문체부 고위 공무원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김 과장과 이안 평론가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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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문체부와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는 사람”

이안 영화평론가는 9,473명의 이름이 적힌 문체부 블랙리스트에 세 차례에나 이름이 오른 문화예술인이다. 이 리스트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지지선언, 야당 정치인 지지선언 등에 참여한 문화예술인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 씨는 평소 사회문제를 영화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칼럼을 써 왔다. 당연히 세월호 참사 이후 진상규명을 위한 지지선언 등에도 서명을 했다. 그 결과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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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명 가까운 문화예술인들의 명단이 적힌 블랙리스트가 세상에 드러난 건 지난해 10월 경. 하지만 이 씨는 이미 그 이전부터 문체부 내에 블랙리스트 형태의 문건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2014년 4월이었어요. ‘너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하는 사업이나 문체부에서 하는 사업은 지원해봤자 안 될거다’라는 이야기를 그때 이미 들었어요. 블랙리스트 문건이 나오기 훨씬 전이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건이 최초 작성된 시점은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5~6월 경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미 그 이전에도 특정 문화예술인을 배제하기 위한 블랙리스트 형태의 관리가 이뤄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씨는 이같은 사실을 고 김혜선 과장을 통해 알게 됐다. 이 씨는 2014년 4월, 자신이 프로그래머로 참여하던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정부 지원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당시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 소속이었던 김혜선 과장을 처음 만났다. 이명박 정부 이후 줄어든 영화제 지원금을 다시 늘려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김 과장은 며칠 후 “영화제 지원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는 긍정적인 답변과 함께 이 씨에게 “문체부 산하의 영화진흥위원회 업무를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김 과장은 이력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이 씨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그 뒤로 김 과장은 연락이 없었다.

“이력서를 보내고 잘 받았다는 연락까지 왔었는데, 그 뒤에 연락이 없더라고요. 아마 제 이력서를 검토한 결과 문체부 파트너로 일하기엔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나 생각했죠. 이명박 정부 때부터 사회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을 줄이거나, 배제하는 분위기가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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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한 달쯤 연락이 끊겼던 김 과장은 이 씨가 참여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식에서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수척한 얼굴이었다. 김 과장은 이 씨의 손을 꼭 잡으며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다시 1년쯤 뒤, 이 씨는 김 과장이 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갑작스러운 부고에 마음이 아팠던 이 씨는 김 과장에 대한 추모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런데 그 글을 읽은 문체부 고위 공무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씨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문체부 고위 공무원이 그 글을 보고 저한테 연락을 해왔어요. 김 과장이 생전에 저와 관련해 했던 말이 있다면서요. 김 과장이 제 이력서를 받고 같이 일을 해보려고 했다가 너무 놀라서 자기한테 와서 ‘이분은 도저히 우리가 하는 어떤 일에도 같이 할 수 없는 데에 이름이 올라있는 분이에요. 너무 죄송하고 마음이 아파요.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전하죠?’라며 미안해 했다는 거예요.

그 고위공무원은 이 씨에게 “무슨 글을 그렇게 써서 아무 일도 못하게 했느냐”는 핀잔을 덧붙였다. 그동안 사회비판적 시각으로 영화 칼럼을 써온 것이 문체부와 일할 수 없는 이유가 됐던 것이다. 1년 전, 영화제 개막식에서 자신의 손을 잡고 “죄송하다”고 말했던 김 과장의 속 뜻도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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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알았어요. 김 과장은 이미 그때 모종의 서류를 봤던 거구나, 그래서 내 이력서를 받고는 연락을 못 했던 거구나.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던 거구나. 아, 그 안에서 얼마나 마음이 볶였을까… 그렇기 때문에 블랙리스트 건은 좀 더 철저하게 언제부터 어떤 형태로 있었는지 조금 더 철저하게 따져봐야지만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겪었던 고초를 밝힐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돌아가신 분이 마음 아파했던 것도 풀리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조윤선 장관 등 책임자들이 전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몰랐다고 하는데, 그걸로 고통받은 공무원이 실제 있잖아요? 제가 인터뷰를 하는 이유도 제대로 책임자 처벌이 되서 가슴 아프게 돌아가신 분의 마음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기 때문이예요.

“실행하고 파기하라” 청와대 지시를 따라야만 했던 실무 공무원들.

김 과장과 같이 블랙리스트 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공무원은 한두 명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작성된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를 최초로 제기한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은 실제로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문체부 공무원 여러 명이 자신에게 괴로움을 토로했다고 말했다.

“(문체부 공무원들) 다들 힘들어했고요. (위에서) 시키니까 하지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인 거 알죠. 청와대에서 문체부에 문건 내려보낸 다음에 좀 있다가 ‘그거 파기하세요’ 라고 시키고, 그리고 흔적 남기지 말라고 시키고, 이렇게 일을 해왔단 말예요. 떳떳하지 못한 일인 걸 아니까 그렇게 시켰겠죠. 그런 일을 해야했던 공무원들은 괴로웠을 거고요. 내부에서 일하던 공무원들이 결국은 파기하라고 해도 어떤 때는 했다가 어떤 때는 갖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게 결국 특검에 간 거예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블랙리스트의 몸통으로 지목한 유진룡 전 장관도 지난 23일 특검 출석에 앞서 기자들에게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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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에서 공무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블랙리스트)를 담당하던 직원들이 심지어 저를 만나 울면서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서 호소한 적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건강 해치니까 빨리 요청을 해서 다른 자리로 옮겨라 했더니 그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피하더라도 누군가는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내가 양심에 어긋나서 하기 싫은 일을 다른 누구한테 맡기겠느냐”라며 울더라고요. 그 후임자도 그렇고. 그런데 그렇게 소신을 억지로 어기게 시킨 사람들은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했냐면요. ‘생각하지 마라, 판단은 내가 할 테니까 너희는 시키는 대로만 하라’라고 공공연하게 대놓고 했습니다.”

결국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그 명단에 들어있는 문화예술인들의 표현의 자유 뿐만 아니라 사명감을 갖고 성실하게 일했던 문체부 공무원들의 양심까지 옥죄어 왔다. 현재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김종덕 문체부 전 장관, 정관주 전 차관 등이 구속됐다. 최순실 게이트로 구속된 김종 전 차관 역시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승마계 비리 의혹을 조사한 문체부 공무원 2명의 옷을 벗기는데 일조한 만큼 넓은 의미로는 ‘체육계 블랙리스트’ 연루 혐의를 받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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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전현직 장차관급만 4명이 일거에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문체부는 지난 24일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결국 블랙리스트의 최고 책임자일 수밖에 없는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을 시인하고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 문화예술인들과 부당한 지시로 양심에 반한 행동을 해야 했던 수많은 공무원들의 상처는 쉽게 씻겨지지 않을 것이다.


취재 : 홍여진, 김성수, 송원근
촬영 : 김남범, 김기철
편집 : 윤석민
CG : 정동우
삽화 : 김용진

수, 2017/01/25-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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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성 이화여대 의류산업학과 교수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 구속 영장 실질 심사가 오늘(20일)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 교수가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에게 학점을 주기 위해 자신의 제자 강사에게 정 씨의 수업 과제물을 대신 작성하게 하고, 교육부 감사에 앞서 제자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은폐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새롭게 확인됐다.

이인성 교수는 앞서 뉴스타파가 보도했던 정유라 씨 학점 특혜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교육부 감사와 특검 수사를 통해 의혹은 대부분 사실로 확인되고 있으며, 이를 은폐하기 위해 제자들과 교육부 감사를 앞두고 사전 모의했던 정황이 추가로 드러난 것이다.

뉴스타파 보도에 “특혜 없다”던 이인성 교수 구속영장

뉴스타파는 지난해 10월, 이인성 의류산업학과 교수가 자신이 담당하는 ‘글로벌 융합 문화체험 및 디자인연구’라는 2016년 여름 계절학기 수업에서 정유라 씨가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2학점을 주고, 해외실습에서 다른 학생들(2인실)과 달리 1인실 숙소를 제공하는 등 귀빈 대접을 했다고 처음 보도했다.(관련기사 : 최순실 딸, 이화여대서 귀빈 대우…학점도 특혜 의혹)

이에 대해 이인성 교수는 물론 이화여대 측은 뉴스타파에 “정유라가 독일 경기 일정으로 전체 수업에 참여하지는 못 했으나, 2/3이상의 수업에 참여했으며 사후 교과목 이수를 위한 자료를 제출하고 정당하게 학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이화여대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학점특혜 의혹을 제기한 뉴스타파 측에 정정보도를 요청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 이인성 교수는 지난해 10월 뉴스타파의 학점 특혜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서면으로 반박하면서도 직접 만나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자 답변을 회피했다

이인성 교수가 20일 영장 실질 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인성 교수가 20일 영장 실질 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제자 강사에게 “정유라 과제물 대신 그려라”… 류철균 교수와 같은 수법

그러나 뉴스타파가 제기했던 학점 특혜 의혹은 교육부가 지난해 11월 실시한 특별감사에서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이에 더해 이인성 교수가 학점 부여의 근거로 국회에 제출한 정유라 씨의 과제물이 조작된 것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교육부 감사를 실시했던 교육부 관계자는 “이인성 교수가 정유라가 제출한 과제물은 정유라가 기성복을 입고 있는 사진과 악세사리, 의상 일러스트 등이 있는데, 정 씨의 기성복 사진 말고는 모두 이인성 교수 본인이 대신 꾸며 제출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 이인성 교수가 자신의 제자 강사에게 시켜 대신 그리게 한 일러스트 과제물과 이인성 교수가 자신의 것을 대신 찍어 제출한 악세사리 과제물. (자료제공 :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 이인성 교수가 자신의 제자 강사에게 시켜 대신 그리게 한 일러스트 과제물과 이인성 교수가 자신의 것을 대신 찍어 제출한 악세사리 과제물. (자료제공 :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그런데 뉴스타파 취재결과, 이인성 교수가 정 씨 대신 제출했다고 밝힌 과제물 가운데 의상 그림은 이 교수가 자신의 제자였던 강사들에게 지시해 그리도록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구속된 류철균 융합콘텐츠학과 교수가 자신의 조교를 시켜 정유라의 시험지 답안을 대신 작성하게 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과제물을 조작한 것이다.

이화여대와 검찰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의류산업학과 A겸임교수는 이인성 교수의 지시로 정 씨의 의상그림을 대신 그렸다. A교수는 자신이 담당하는 2016년 1학기와 계절학기 수업 ‘컬러플래닝과 디자인’, ‘기초의류학’ 수업에서 출석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정 씨에게 각각 3학점과 2학점 등 총 5학점을 부여해 학점 특혜 의혹을 받은 인물이다.

특검은 A교수가 이인성 교수의 지시로 정 씨에게 학점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이화여대 한 관계자는 “학점 특혜 의혹에 연루된 A교수는 지도교수였던 이인성 교수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 지시에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교육부 감사 앞두고 “정유라가 과제 했다고 해라” 사전 모의

이인성 교수가 지난해 11월, 교육부 특별감사를 앞두고 자신의 제자 강사들을 따로 소집해 거짓 답변을 지시한 사실도 확인됐다. 교육부 감사에서 학점특혜를 준 사실이 들통날 것에 대비해 “정유라가 직접 과제를 했다”는 식의 답변을 하라고 제자 강사들에게 지시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교육부가 관련 질문을 하면, 정 씨의 과제물을 해외 택배를 통해 받았고 증거물은 버렸다는 식의 답변을 하라거나, 교육부 감사는 강제력이 없으므로 굳이 조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조언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탓인지 교육부 감사에서 실제 A교수는 교육부가 수 차례 조사를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A교수에게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거듭 요구했으나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A교수는 검찰 조사에는 출석해 자신과 관련된 의혹을 사실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인성 교수는 이뿐만 아니라 정유라 씨에게 학점 특혜를 준 대가로 교육부로부터 연구비 55억 원을 부당하게 수주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 교수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결과는 오늘 밤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현재 특검은 정유라 씨에 대한 입학과 학점 특혜 의혹과 관련해 이화여대 류철균 융합콘텐츠학과 교수를 구속 기소 했으며, 학점 특혜 주모자로 김경숙 학장을, 입학비리와 관련해서는 남궁곤 입학처장을 구속 수사 중이다. 특검은 이인성 교수에 이어 최경희 총장에 대해서도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금, 2017/01/2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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