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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父 김용주, ‘일제군용기 헌납, 징병독려’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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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父 김용주, ‘일제군용기 헌납, 징병독려’ 광고

익명 (미확인) | 목, 2015/09/17- 12:00

친일 의혹을 받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인 해촌 김용주가 일제 말기인 1940년 대, ‘일제 군용기 헌납’과 ‘징병’을 독려하는 기명 광고를 낸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또 1940년 이후 김용주는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하는 친일 단체의 주요 보직을 맡아왔으며, 지속적으로 강도 높은 친일반민족 발언을 한 사실이 당시 공식 문건과 신문 기사 등 문헌을 통해 확인됐다. ‘아버지는 애국자’라고 주장해 왔던 김무성 대표는 새로 발굴된 김용주의 친일 행적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의 친일 행적이 새롭게 드러났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의 친일 행적이 새롭게 드러났다.

9월 17일,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동안 사료발굴을 통해 군용기 헌납과 징병을 독려하는 아사히 신문 광고 등 김용주의 친일 행위를 새롭게 입증할 다수의 일제 공문서와 신문 자료를 공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김용주가 1920년대와 30년대 중반까지 야학과 신간회 활동 등 민족적 행보를 보인 것은 맞지만 1940년 이후부터 친일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 민족문제연구소는 9월 1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의 새로운 친일행적을 보여주는 자료를 공개했다.

▲ 민족문제연구소는 9월 1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의 새로운 친일행적을 보여주는 자료를 공개했다.

김용주, 일제 말 ‘군용기 헌납’, ‘징병’ 독려 기명 광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김용주는 일제가 벌인 대동아전쟁이 극에 달하던 1943년과 1944년, 두 차례에 걸쳐 태평양전쟁 중인 일제에 군용기를 헌납할 것과 조선 청년들이 대동아전쟁에 적극 나설 것을 독려하는 광고를 아사히 신문이 조선에 배포하는 ‘남선판’과 ‘중선판’에 게재했다. 두 광고 모두 김용주 자신의 창씨명인 김전용주(金田龍周)라는 이름을 내건 기명광고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 이준식 연구위원은 “본인이 적극적으로 (대동아)전쟁에 협력하고 있다는 것을 일제에 과시하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 김용주가 일제 말기 아사히 신문에 게재한 기명 광고들.

▲ 김용주가 일제 말기 아사히 신문에 게재한 기명 광고들.

김용주, 일제 징병제 관련해 “자식을 기뻐하며 바쳐라”

김용주는 1943년 서울 부민관에서 열린 전선공직자대회에 참석해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화를 꾀”해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을 우선적 과제로 밝혔다. 김용주는 또 전쟁에 동원되는 조선 청년들의 부모를 향해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고, “귀여운 자식이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들어 모시어질 영광”이라 표현 등의 강도 높은 친일 발언을 했다.

▲ 전선공직자대회에 참가한 김용주는 내선일체와 황국신민, 천황의 귀일 등 징병을 독려하는 발언을 했다.

▲ 전선공직자대회에 참가한 김용주는 내선일체와 황국신민, 천황의 귀일 등 징병을 독려하는 발언을 했다.

당시 경북도회 의원 40명 가운데 전선공직자대회에 참석한 조선인 의원은 단 두 명으로 기록돼 있다. 바로 경북지역 대표적 친일파인 서병조, 그리고 김용주다.

이밖에 김용주는 여러 친일단체에도 주요 임원으로 참여했다. 일제가 조선인들의 전쟁협력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조직한 ‘국민총력’과 ‘조선임전보국단’의 주요 보직을 두루 맡았다. 당시 경북도회 의원이던 김용주는 1941년 5월, 국민총력 경북 수산연맹 이사로 선출되고 같은 해 7월, 평의원으로 임명된다.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이기도 했던 그는 1941년 12월,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 상임이사로 선출됐다. 당시 김용주와 함께 조선임전보국단의 경북지부 상임이사로 있던 서병조, 정해붕, 문명기는 지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결정한 친일파 1,006명에 포함된 인사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김용주가 1937년 이후 해방될 때까지 10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에 벌인 각종 친일행위는 적극적인 전쟁범죄행위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아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 씨의 주요 친일 행적을 시기별로 정리한 타임라인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 해촌 김용주
    1905.7.29 – 1985.1.27
    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05. 7. 29.

    경남 함양군 함양면 신관리 출생

  • 1923.

    조선 식산은행 본점 취직

    6개월 만에 포항지점으로 전출. 경북 영일군 포항읍 이주 정착.

    ※ 식산은행 : 1918년 설립한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식민 경제 지배에서 동양척식회사와 함께 금융 측면에서 뒷받침했던 핵심 기관 중 하나.

  • 1924.

    ‘영일청년회’ 지육부장

    독서회 조직 및 노동야학 개설. 이후 교사로 참여

  • 1926. 5. 28.

    독서회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

    검사분국으로 송치(5.30)됐으나 이틀 만에 방면

    출처 : 시대일보(時代日報) 1926년 6월 3일 2면

  • 1926.

    삼일상회(三一商會, 철도화물운송업) 설립

    “삼일 민족운동의 정신을 본받는다는 뜻에서 붙인 것인데, 일찍이 민족의식에 눈떠 청년운동에 열중했던 나의 심혼을 표시한 그 상호는 다분히 의식적이고 민족적인 인상을 풍기었다. ”

    출처 : 김용주 회고록 “풍설시대80년” 중

  • 1927. 7. 22.

    신간회 영일지회 정치부 간사

    ※ 신간회(新幹會) : 1927년 2월 민족주의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이 연합하여 창립한 민족협동 독립운동 단체

    출처 : 조선일보(朝鮮日報) 1927년 7월 25일 2면
    중외일보(中外日報) 1927년 7월 27일 4면

  • 1936. 3.

    포항 영흥학교 인계 경영 및 교장 취임

    출처 : 동아일보(東亞日報) 1936년 3월 24일 4면

  • 1936. 9. 20.

    경상북도 포항 읍회 의원(민선) 당선

    출처 : 매일신보 1936년 9월 22일 조간 4면

  • 1937. 5. 10.

    경상북도 도회의원(영일군, 민선)

    1945년 해방때까지 도회 의원 유지

    출처 : 조선총독부 관보 1937년 7월 6일
    매일신보 1937년 5월 12일 석간 1면

  • 1940. 2. 23.

    “국체명징관 내에서는 내선관계의 역사적 연원을 증명하는 자료를 진열하여 내선일체의 정신적 심도를 올려야.” 발언 – 12회 경북도희 회의 발언

    김용주 의원, 설치를 고려하는 국체명징관 내에서는 내선관계의 역사적 연원을 증명하는 자료를 진열하여 내선일체의 정신적 심도를 올릴 것.

    ※국체명징관(國體明徵館) : 국체명징(國體明徵) 즉, 황도정신(皇道情神)의 보급이라는 미명 아래 조선인들의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를 촉진한다는 목적으로 세운 건물.

    출처: 동아일보 1940년 2월 27일 자 석간 7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0. 2. 24.

    “충량한 황국신민으로서 내선일체의 이상에 향하고 있으므로 옛날과 같이 불온사상을 가진 자는 한명도 있지 않으므로 반도 교육에 일대 전환할 시기인 줄 생각한다.” 발언 – 제12회 경북도회 회의

    김용주씨 (포항) 반도인은 황도정신에서 황국신민으로서 충량한 내선일체의 이상에 향하고 있음으로 옛날과 같이 불온사상을 가진 자는 한명도 있지 않으므로 반도교육에 일대 전환할 시기인줄 생각한다.

    출처 : 매일신보 1940년 2월 26일(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0. 7. 11.

    김용주 창씨개명

    金龍周(김용주) – 金田龍周(가네다 류슈)

    출처 : 조선총독부관보(朝鮮總督府官報) 1940년 12월 20일

  • 1940. 11.

    일본 기원 2600년 축전 기념식전 및 봉축회 초대받음

    1941년 친일파 김갑순이 발행하는 조선신문사가 발행한 명단 중 김용주 수록 게재
    1941년 9월 일본동맹통신사 발행 “흥아일본건국사”에 명단 중 김용주 수록 게재

    ※ 일본 기원 2600년 축전(紀元二千六百年祝典) : 1940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기원 2600년 봉축식, 일본은 전시체제를 맞아 일본의 위대성을 대내외에 알리는 대대적인 선전활동을 벌였다.

    출처 : 기원 2600년 축전기념 광영록(紀元二千六百年祝典記念光榮錄) – 조선신문사(朝鮮新聞社), 1941.10, 46쪽(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일본내각관보 1941년 11월 21일 21쪽

  • 1941. 5. 17.

    국민총력 경상북도수산연맹 이사 선임

    水産團體도 結合, 翼贊體制를 整備, 慶北聯盟 結成式 擧行(수산단체도 결합, 익찬체제를 정비, 경북연맹 결성식 거행)

    ※ 국민총력 경상북도수산연맹 : 조선인의 황국신민화와 전쟁동원을 목적으로 조직된 조선총독부의 최대 관변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 산하 단체

    출처 : 매일신보(每日新報) 1941년 5월 20일 석간 3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1. 7. 16.

    국민총력 경상북도연맹 평의원, 도회의원 자격으로 임명

    1) 總力慶北聯盟, 新道議 網羅 後 最初 常會, 中心論題는 生活新體制(총력경북연맹, 신도의 망라 후 최초 상회, 중심논제는 생활신체제)

    2) 道會議員を評議員に加へ, 慶北, 聯盟役員の常會を開へ(도회의원을 평의원에 가입, 경북, 련맹역원의 상회를 개최)

    ※ 국민총력 경상북도연맹 : 조선인의 황국신민화와 전쟁동원을 목적으로 조직된 조선총독부의 최대 관변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의 지방 조직

    출처
    1)매일신보 1941년 7월 18일 3면
    2)경성일보 1941년 7월 18일 2면

  • 1941. 9.

    대구국체명징관 1천원 헌납, 대구신사 2천원 헌납

    ※국체명징관(國體明徵館) : 국체명징(國體明徵) 즉, 황도정신(皇道情神)의 보급이라는 미명 아래 조선인들의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를 촉진한다는 목적으로 세운 건물.

    출처 : 日本同盟通信社, 1941.9, 330~332쪽
    (皇統[皇紀]二千六百年記念誌)興亞日本建國史 ; 朝鮮銃後奉公錄(황통[황기]2600년기념지) 흥아일본건국사 ; 조선총후봉공록)(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1. 9.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참여

    ※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 일제가 침략전쟁을 진행하면서 조선인들의 전쟁 협력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조직한 전시체제기 최대의 조선인 민간조직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 참여 주요 인물
    지부장 : 장직상 (중충원 참의)
    이사장 : 신옥(신현구) 중추원 참의
    상임이사 : 서병조(중추원 참의) 문명기(중추원 참의), 정해붕(중추원 참의), 김용주 등

    출처 : 朝鮮臨戰報國團發起人·役員 名簿, “朝鮮臨戰報國團槪要”(조선임전보국단발기인·역원 명부 “조선임전보국단개요”) 27쪽(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1. 10. 8~10.

    친일파 문명기(중추원 참의)와 함께 영덕과 영천 지역에서 개로운동을 독려

    국민개로운동의 취지를 철저히 이해시켜 불노유한무직자(不勞有閑無職者)들을 적극적으로 동원하여 전시체제와 개로체제를 확립하도록 되었다. 중추원참의, 도의원 시찰일정은 다음과 같다.

    개로운동을 독려, 중추원참의, 도의들이 선두서
    文明琦一郞·金田龍周 氏, 동행자 森 職組 書記 10월 8일, 10월 10일 영덕·영천 양 군(兩郡)에
    (이하 생략)

    ※ 국민개로운동 : 일제가 전쟁 수행에 필요한 조선인의 노동력동원을 목적으로 조선인의 근로보국을 주장하면서 실시한 운동

    출처 : 매일신보 1941년 10월 7일 경상판 조간 3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1. 12. 7.

    조선임전보국단 경상북도지부 상임이사 임명 및 ‘황군장병에게 감사의 전보를 보낼 것을 제안’ 발언 제안

    1) 臨戰報國團 慶北支部設立, 結成은 卄九日擧行(임전보국단 경북지부설립, 결성은 29일 거행)

    2) 一死報國을 盟誓, 臨戰報國團 慶北支部 結成式, 七日, 盛大하게 擧行(일사보국을 맹서, 임전보국단 경북지부 결성식, 7일, 성대하게 거행)

    출처
    1) 매일신보(每日新報) 1941년 11월 24일 3면

    2) 매일신보 1941년 12월 9일 석간 3면 (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2. 1. 10.

    조선임전보국단 경상북도 사업부장 임명

    大邱府民號十機! -臨戰報國團 支部와 協力實現에 邁進(대구부민호 10기! -임전보국단 지부와 협력실현에 매진)

    출처 : 매일신보 1942년 1월 12일 2면

  • 1942. 2. 27.

    조선임전보국단 경상북도지부, 미국과 영국을 격멸한 군용기 5대 헌납

    기사에는 임전보국단 경북지부의 단체명이 나오지만, 김용주 등 경부지부 간부들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임보단서도 활동. 경북서 오기를 헌납

    경북 영일군은 애국기 헌납에 압도적인 성과를 보인 대표적인 지역의 하나이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한지 불과 2달 후인 1942년 2월 경북 영일군에서만 총 8대의 군용기가 헌납되었다. 경북지역에서 2월말까지 30대 가량 헌납된 것을 감안하면 일개 군 단위의 실적으로는 놀라운 결과라 할 수 있다. 이후 8월말까지 전국에서 헌납된 비행기는 280여대에 달했다. 도청소재재지가 아닌 지방에서 헌납기 명명식이 거행된 곳은 5대 이상의 실적을 올린 함남의 원산과 경북의 영일 단 두 곳이었다.(출처 : 민족문제연구소)

    출처 : 매일신보 1942년 2월 27일 석간 3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2. 3. 11.

    “북지방면에서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위해 밤낮으로 악전고투를 계속하고 있는 장병들에게 도민을 대표하여 감사전보를 발송하자”고 제안 – 제15회 경북도회 회의 중

    尨大 豫算을 俎上에, 慶北道會 開幕(第15會), 劈頭 感謝電報 發送을 決議(방대 예산을 조상[도마 위]에, 경북도회 개막(제15회), 벽두 감사전보 발송을 결의)

    출처 : 매일신보 1942년 3월 13일 경상판 석간 3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3. 9. 8.

    징병제실시에 대한 감사의 뜻을 결의하기 위한 광고를 기명으로 게재

    광고 왼쪽 두 번째 줄 金田龍周 (김용주) 게재

    (廣告)待望의 徵兵制 實施,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半島의 靑少年들이여((광고)대망의 징병제 실시,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반도의 청소년들이여)

    “대망의 징병제 실시,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반도의 청소년들이여… 난폭하기 짝이 없는 숙적 미영을 지금이야말로 물리쳐 멸망시키자. 징병제 실시에 대한 반도 동포의 간절한 요망을 드디어 구현했다. 반도 동포도 내지 장병으로 자리매김하여 당당히 대동아전쟁의 전열에 끼게 된 것이다. 우리 반도의 정예여. 일시동인의 천황의 위덕(大御稜威) 아래, 우리 반도의 인재가 빈틈없는 전우애로 미영 격멸의 전선에 서는 날이 온 것이다. 이 기쁨, 이 감사, 시정 30여년 역사에 전례가 없는 대전환이며 영광이다. 지금은 세계 대동란이 한창인데, 팔굉일우의 대이상을 내걸고 대동아의 천지에 깊숙이 진군하여 황국의 흥폐를 양 어깨에 짊어진 황군이 숙적 미영 격멸에 혁혁한 전과를 거듭하는 가을. 2천 5백만 반도동포, 특히 젊은 반도청년에 거는 기대가 실로 크다. 일억의 환호와 축복 속에 있는 반도의 젊은이들이여. 궐연히 일어나라! 결전이 자네들을 부른다.”

    출처 : 아사히신문(朝日新聞) 남선판(南鮮版) 1943년 9월 8일 4면
    아사히신문 중선판(中鮮版) 1943년 9월 8일 4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3. 10. 2.

    경북도회 의원 자격으로 전선공직자대회(全鮮公職者大會)에 참석

    경북도회 의원 40명 가운데 조선인 참석은 2명. 친일파 서병조와 함께 김용주 참석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기 위해 일본정신문화를 키워온 신사(神祠)를 건립해 감사의 뜻을 발휘해야 한다”고 발언.

    銃後의 戰列에 總立, 第二日 公職者大會에 滅敵의 熱火漲溢, 各議員들의 熱論(총후의 전열에 총립, 제이일 공직자대회에 멸적의 열화창일[맹렬히 넘치다] 각 의원들의 열론[열띤토론])


    김전용주 (경북도회 의원)씨가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정신문화의 양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 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귀축 미영 격멸에 돌진할 것을 촉진해야

    출처 : 매일신보 1943년 10월 3일 석간 2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3. 10. 2.

    경북도회 의원 자격으로 전선공직자대회(全鮮公職者大會)에 참석해 징병독려, 천황께 귀일 등 발언

    황국신민이 되기 위한 5가지 구체적인 방안 발언, 특히 일본에 강제 징용 될 조선 청년들의 부모를 향해 “반도의 부모가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을 가질 것을 강조하는 발언

    가장 급한 일은 반도 민중에게 고루고루 일본정신문화의 진수를 확실히 통하게 하고,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화를 꾀하여 이로써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그 구체적 방책으로 다음 5가지 항목을 들고 싶습니다. 첫째, 각 면에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모든 민중으로 하여금 신을 공경하고 신앙생활을 하게끔 하면 일본정신의 진수에 철저히 젖어들게 할 수 있습니다…(중략)그러므로 앞으로 징병을 보낼 반도의 부모로서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과 귀여운 자식이 호국의 신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들어 모시어 질 그 영광을 충분히 인식하여 모든 것을 신께 귀일하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신에 대한 신앙을 철저히 하여 현세의 신이신 천황께 귀일하는 것입니다.

    출처 : 徵兵制施行感謝 敵米英擊滅 決意宣揚 全鮮公職者大會記錄(징병제시행감사 적미영격멸 결의선양 전선공직자대회기록) 全鮮公職者大會事務局(전선공직자대회사무국) 1944년 1월(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4. 7. 9.

    일제에 전투 비행기 헌납 선전 광고 기명 게재

    “결전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를!”라는 제목의 비행기 헌납 광고 기명 게재
    왼쪽 두 번째에 김전용주 이름 나옴.

    “결전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를!, 승리냐 죽음이냐의 결전
    시국은 확실히 승리냐 죽음이냐의 결전의 한 가운데로 돌입하고, 더욱이 적은 공군으로써 승패를 결정지으려고 한다. 이때를 맞이하여 우리는 혁혁한 전과의 그늘에서 산화한 고귀한 영령 또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 적의 맹렬한 공습하에서 묵묵히 (조국)수호에 애쓰는 우리 아버지, 우리 아들, 우리 형, 우리 동생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과 그리고 “좀더 비행기를”이라고 외치는 필사의 요청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출처 : 아사히신문 남선판 1944년 7월 9일 4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8월 15일, 김무성 부친 김용주 ‘미화’ 평전 출간돼

김무성 대표 측은 부친의 친일 행적에 대해 지금까지 “부친은 애국자적인 삶을 살았다”며 “부친의 이름이 도용되거나 날조된 것이다”라고 주장해 왔다. 김무성 대표의 홈페이지에 마련된 ‘나의 아버지’라는 코너에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해촌 김용주 선생”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의 평전이 지난 8월 15일 출판됐다.

▲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의 평전이 지난 8월 15일 출판됐다.

해방 70년을 맞은 지난 8월 15일에는 김무성 대표 부친 김용주의 평전 <강을 건너는 산>이 출판됐다. 평전이라고 쓰여 있지만 김용주의 친일 의혹과 관련해서는 단 한 줄도 다루고 있지 않다.

김용주 평전 표지에는 ‘광복 70주년 기획, 새로운 역사인물 찾기 ①’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평전 어디에도 이 시리즈의 기획의도나 다음 편 인물, 다음편 출판 예정일 등이 언급되지 않았다. 출판사 측은 “다음 편 인물로 거론되는 분들이 있다”고 밝혔다.

김무성 대표 측은 또 “친일인명사전에 부친이 등재되지 않았기 때문에 친일파가 아니다”라고 주장해 왔다.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해방직후 반민특위가 반민족 행위자로 7천 명 정도를 구상했지만,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는 1,006 명밖에 구상할 수밖에 없었다”며 “진상규명위에서 지정한 1,006명이 아니라고 친일파가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8월 15일 출판된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 평전 <강을 건너는 산>

▲ 8월 15일 출판된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 평전 <강을 건너는 산>

김무성 대표의 ‘역사 전쟁’

김무성 대표는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좌파와의 역사 전쟁’을 외치고 있다. “진보 좌파 세력들이 건국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굴욕의 역사라고 깎아 내리고 있다” (7월31일, LA 동포간담회)며 “좌파와의 역사 전쟁을 승리고 종식시켜야 된다” (2013년9월4일, 새누리당 근현대사 역사교실)고 주장해 왔다.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킨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긍정적인 사관에 의한 교과서”(2013년9월25일)라고 옹호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역사는 공과 과가 있는데, 이제는 공만 봐야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친일파 처단을 다룬 영화 <암살> 국회초청 상영회를 주관했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친일파 처단을 다룬 영화 <암살> 국회초청 상영회를 주관했다.

뉴스타파는 ‘군용기 헌납’과 ‘징병 독려’ 기명 광고 등 새로 발견된 김용주 씨의 친일 행적과 관련해 김무성 대표 측에 입장을 서면을 통해 물어봤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또 직접 찾아가 질의했지만 보좌진들은 기자를 막았고, 김무성 대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취재: 박중석, 김경래, 김새봄
촬영 편집 : 최형석, 김남범, 신승진, 정지성, 윤석민, 박서영
타임라인 구성 : 임종헌, 최미정
자료 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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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이탈리에서 유학하며 활동해온 성악가 김상진 씨는 2014년 말 서울대 음대 성악과 시간강사 채용에 합격했다. 김 씨는 귀국해 지난해 1년 동안 서울대에서 학생들에게 성악 실기를 가르쳤다.

김상진씨 공연사진

사진설명 : 김상진 씨는 유학 기간에 이탈리와 독일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사진 가운데 공연하는 김 씨의 모습)

서울대 음대의 갑작스런 신규 강사 채용 공고, 1년만에 무더기로 ‘해고’당해

그런데 서울대는 지난해 12월 돌연 음대 강사를 새로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비록 1년 단위로 매년 계약하는 시간강사이지만, 그동안 서울대에서는 관행적으로 최대 5년 동안 재임용해왔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김씨는 1년 만에 사실상 해고된 것이다.

천막농성안 김상진씨와 전유진씨

사진설명 : 서울대 성악과 강사 김상진 씨와 전유진씨가 서울대 본관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그동안 서울대 음대가 시간강사 임용기간을 최대 5년으로 정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성악과의 경우 학생 지도의 연속성을 위해서다.

“성악 기술을 자기 몸에 익숙하게 만드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1년 배우고 또 다른 사람한테 2년 배우고 또 1년 배웠다가는 좋은 성공을 거둘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학생이 그 기술을 다 배울 때까지 (시간강사) 임기가 4년 내지 5년 이렇게 이어져 왔거든요”

– 김상진 / 서울대 성악과 시간강사  

서울대 측은 시간강사 채용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고 하지만, 수많은 강사들이 1년 만에 강의실에서 쫓겨나게 됐다.  새 학기가 2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김상진씨는 여전히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 본관 앞에서 천막 농성 중이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이상한 교과개편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강의를 하던 시간강사 채효정 씨는 지난해 12월, 대학측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그동안 자신이 담당했던 세 강좌 중 두 개는 이번 학기에 개설되지 않고 한 강좌는 아예 폐지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강의비개설 통보메일

사진설명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시간강사 채효정 씨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날,  대학교 측으로 받은 이메일

 

채효정씨

사진 설명 : 채효정 씨가 맡았던 강좌 중 학교 측의 융복합 지원을 받았던 것도 있지만 폐지되거나 이번 학기에 개설되지 않았다.

채 씨 뿐만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지난 2년 동안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없어진 과목이 200개에 이른다. 대부분이 시간강사들이 맡았던 강의였다. 대학 측은 교육 철학에 부합하는지, 커리큘럼은 적합 한지 파악해 교과개편은을 한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강사들은 전임교수 확보율을 높이기 위해 꼼수를 쓴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교육부는 각 대학에 전임교수의 강의 담당 비율을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상당수 대학들은 전임 교수를 추가로 채용하지 않은 채 시간강사를 해고하는 방식으로 전임교수의 강의 담당 비율을 높이고 있다.   

서울대 본관앞 천막농성 사진

사진설명 :  시간 강사 등 비정규직 교수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보따리 장수’가 아니라 대학 구성원의 하나라는 인식 전환과 합당한 대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일반 대학에서 시간강사는 6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이 전체 강의 중 28%가량을 맡고 있다. 대학 강의에서 상당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여전히 ‘보따리 장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안정한 고용과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고 있다.

취재작가 박은현

글 구성 정재홍

연출 남태제

금, 2016/02/19-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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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해킹사건으로 국가기관의 내국인 불법사찰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를 수사한다며 법원의 영장 없이 중국에 거주하는 내국인의 차량에 위치추적기를 장착해 감시활동을 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결과 확인됐다.

경찰 지시로 공작원이 장기간 내국인 위치 추적

대공수사 협조자로 오랜 기간 활동해 온 이상철(가명) 씨는 지난 27일 뉴스타파 취재진과 만나 “지난 2013년 10월부터 두 달 간 인천해양경찰청 보안수사대 김모 경위의 의뢰를 받아 중국에 체류하는 한 한국인 사업가의 차량에 중국인을 시켜 몰래 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하고 동선을 파악해 왔다”고 밝혔다.

범죄 혐의자라도 위치추적기를 사용해 감시하려면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야 한다. 해외에서 진행하는 수사라면 해당 국가의 사법당국에 협조를 얻어 수사해야 한다. 경찰은 이런 절차를 모두 생략하고 임의로 위치추적을 협조자에게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반적으로 GPS위치추적기는 통신사에 등록해 사용한다. 하지만 이번에 경찰이 공작원에게 제공한 위치추적기는 이런 등록절차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등록을 하지 않으면 발각되더라도 장치 구매자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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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김 경위가 위치추적기 운용 주체를 절대로 들키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 했다”며 “김 경위가 ‘만약 위치추적기가 걸릴 때를 대비해 도주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놓고, 도주가 안 될 경우에는 끝까지 부인하고, 절대 운영 주체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 하게 하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이 씨는 위치추적기를 현지 중국인들을 시켜 감시 대상자의 차량 뒷범퍼 안 쪽에 부착했다. 보름에 한 번씩 장치를 떼내 대상자의 동선기록을 확보했다. 누적된 기록은 한국에 있는 김 모 경위에게 보냈다.

그렇게 두 달 간 감시를 벌였지만 결정적인 단서는 확보하지 못했다. 이 씨는 “감시 대상자가 북한에 넘어가는 것을 포착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두 달 동안 그런 정황은 확보하지 못 했다”며 “아무리 간첩을 잡기 위한 목적이라도 법을 어겨가면서 수사를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해 자신은 수사협조에서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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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김 경위는 해경이 해체된 이후 인천 중부경찰서로 자리를 옮긴 상태다. 취재진은 왜 불법적인 방법으로 수사를 벌였는지 해명을 듣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김 경위는 만남을 피했다.

대신 기자와의 메신저 대화를 통해 “감시 대상자의 사무실이 허허벌판에 있어 추적이 어려워 위치추적기를 사용하게 됐다”며, “대상자의 동선 파악을 통해 채증을 하려고 했을 뿐 불법적으로 수집한 위치정보를 절대 증거로 이용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수사한 점을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국가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김 경위는 또 “당시 수사에 윗선의 개입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수사라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위치 추적을 하면 되는 것이고, 중국이라면 중국의 사법당국의 협조를 받아 수사를 진행했으면 될 일”이라며 “이는 명백히 위치정보 보호법상 처벌대상”이라고 지적했다.

“경찰 뿐만 아니라 더 높은 국가기관도 위치추적기 구매”

이번 사건에서 경찰이 공작원에게 제공한 위치추적기를 판매한 업체 홈페이지에는 주요 거래처로 경찰청이 소개돼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홍보용으로 경찰청을 소개했을 뿐 실제로 납품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청 보안과 관계자도 “경찰에서 위치추적기와 같은 장치를 구매한 적도 없고 수사에 사용한 적도 없다”며 “휴대폰이나 CCTV 등이 아닌 위치추적기 등을 이용한 수사는 첩보영화에나 나오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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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위치추적기를 취급하는 업체들의 홈페이지에는 주요 거래처에 주로 경찰이 적혀있고, 청와대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위치추적기 업체 관계자는 “최근에만 관공서에 100대 이상의 위치추적기를 팔았다”며 “실제 경찰이 수사 목적으로 위치추적기를 구매해 간 적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경찰 뿐만 아니라 더 높은 국가기관도 위치추적기를 구매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더 높은 국가기관이 정보기관이냐는 질문에는 “거기까지 자세하게 (말하기) 어렵다”고 대답을 피했다.

또 다른 위치추적기 업체 관계자는 “원래 위치추적기는 기업의 차량이나 영업관리용으로 나온 것인데, 간혹 악용하는 사례가 있다”며 “관공서 등 많이 납품하고 있지만 그들이 사가는 목적을 분명히 밝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목적으로 쓰는 지 알 길도 없고 막을 길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 수사기관이 GPS위치추적기를 불법적으로 사용한 것이 드러난 만큼, 또 다른 사례는 없는지, 국가기관이 위치추적기를 구매한 목적은 무엇이었는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최근 국정원 해킹사건처럼 국가기관이 안보를 앞세우면서 국민의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는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아무리 필요에 의한 수사라도 현행법을 어겨가면서 하는 것은 법치를 내세우는 국가기관의 형용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목, 2015/07/30-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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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6일 이탈리아 보안업체 ‘해킹팀’의 내부자료가 유출돼 인터넷에 공개된 후 우리나라의 국가정보원도 이 업체로부터 감청프로그램을 구입해 사용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복잡한 내용도 많고 확인되지 않은 채 유통되는 정보도 많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몇가지 사항에 대해 문답식으로 풀어봤습니다. 앞으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주시면 취재를 통해 함께 답을 찾아나가도록 하겠습니다.


Q.국정원이 구입, 운용한 해킹팀의 RCS에서 ‘타깃 20개’란 어떤 의미인가? 국정원장은 20명 분의 해킹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한다.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도입해서 운용한 RCS 프로그램의 타깃(target)은 20개다. 이는 동시에 최대한 20개까지 감시가 가능하다는 의미다(해당항목으로 이동).

국정원장의 해명은 해킹을 20명만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는 동시에 감시가 가능한 것이 20명이다. 실제 연 감시 대상은 훨씬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해킹팀이 나나테크에 보낸 제안서에서 설명하는 타깃에 대한 개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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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모니터링하고 있는 타깃 20개 가운데 더 이상 감시할 필요가 없는 타깃 5개를 삭제하면 새로운 타깃 5개에 추가로 스파이웨어를 설치해 다시 20개까지 모니터링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될 경우 국정원이 해킹한 타깃은 모두 25개가 되지만 동시 모니터링 하고 있는 타깃은 20개가 된다.


Q. 동시 감시 대상이 20개라는 것은 예를 들어 국정원이 감시가 필요한 대상 100개를 미리 감염시켜 놓은 뒤에 필요에 따라 감시 대상 20개 안에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고 보기는 힘들다. 국정원 관리자와 해킹팀이 2014년 7월7일 주고받은 메일을 보자. 에이전트는 휴대폰이나 PC 등의 목표물에 설치해 해당 기기에서 정보를 빼내오는 해킹용 스파이웨어를 말한다.


국정원:
우리의 라이선스는 동시에 최대한 20개의 에이전트를 운영하는 것이다.
만약 에이전트 하나를 멈추게 하면 시스템에서 사용되는 에이전트 수에서 제외되는 것인가? (즉, 에이전트를 하나 더 쓸 수 있게 되는 건가?)
해킹팀:
에이전트를 일시적으로 작동 중지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원히 멈출 수만 있다.
백도어를 닫아야 새로운 에이전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질의 응답은 다음날인 7월8일 이메일로 이어진다.

국정원:
메뉴얼 38페이지 ‘RCS 9.3 Technician.pdf’에 있는 “일시적인 에이전트 작동 중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해킹팀:
뭔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다. 메뉴얼에 “에이전트 활동은 모든 모듈을 중지시키고 동기화 상태로만 놓아두면 에이전트를 삭제하지 않고도 일시적으로 멈추어둘 수 있다.”라고 돼 있는 부분은 만약 백도어의 모든 모듈을 중지시키면 에이전트 활동을 일시적으로 멈춰둘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렇더라도 에이전트는 사용 중인 것이고, 동기화 중인 것이고, 시스템은 백도어를 통해 항상 통신을 주고 받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라이선스 상에 새로운 타깃을 감염시킬수 있는 에이전트 여분이 없으면 백도어 하나를 닫던지(그리고 그 에이전트는 더이상 다시 열 수 없다.) 아니면 우리 판매부서에 연락해야한다.


(※RCS에는 여러 모듈(기능의 작동단위)이 있는데 기능에 따라 CALL 모듈, CHAT 모듈, PHOTO 모듈 등이 있다. CALL 모듈을 작동시키면 CALL을 감시할 수 있고 CHAT 모듈을 작동시키면 CHAT을 가로챌 수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예를 들어 타깃 100개를 한꺼번에 해킹해 놓고서 필요한 것들을 골라서 그 때 그 때 20개 안에 넣었다 뺐다 바꿔가면서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Q.그렇다면 이미 20개를 가득 채워서 동시에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1개의 타깃에 추가로 스파이웨어가 설치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실제로 다른 나라의 고객이 해킹딤에 질문했다. 30개 타깃에 대한 라이선스를 갖고 있고 현재 30개를 동시에 감시하고 있는데 만약 3개월 전에 감염파일을 담아 보낸 이메일을 감시 대상이 이제서야 열어서 감염될 경우 어떻게 되냐는 것이다.

이럴 경우 31번째 타깃은 대기열(queue)에 위치하게 된다고 해킹팀은 답한다. 살아만 있을 뿐 자료를 빼오는데는 써먹을 수는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따라서 라이선스 1개를 추가로 구입하거나 아니면 기존에 감시중인 타깃 하나를 제거해야 31번째 타깃의 에이전트가 활성된다는게 해킹팀의 설명이다.(▷관련 메일)

국정원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 2013년 7월29일에 오간 이메일들(TICKET ID:!SMZ-100-78952)을 보면 “최근 타깃 3개가 감염된 것을 알게 돼서 기존 타깃 3개를 삭제했다. 그런데도 (감염된 타깃이) 대기열에서 시스템으로 들어오지 않고 대시보드에 추가할 수도 없다”면서 “3개의 공간이 있는데도 감염된 에이전트 2개가 20시간째 대기열에 머물러 있다”고 질문한다.

당시 국정원이 문제를 설명하면서 보낸 RCS 콘솔의 스크린샷이다.

▲ 빨간색 사각형이 국정원 직원이 직접 표시한 부분이다. 20개 타깃 가운데 3개의 여유가 있음을 보여준다.

▲ 빨간색 사각형이 국정원 직원이 직접 표시한 부분이다. 20개 타깃 가운데 3개의 여유가 있음을 보여준다.

스크린샷 제일 상단에 있는 RCS:DB 항목에서 상태가 ‘2connections’ 라고 돼 있는 부분이 대기열에 있는 타깃 2개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에이전트가 17/20로 3개의 여유분이 있으니 바로 시스템과 동기화돼서 감시 가능 상태에 들어와야 하는데 여전히 대기열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결국 국정원이 해킹팀의 조언대로 콜렉터를 다시 부팅하면서 해결이 된다.(▷관련 이메일)


Q.그렇다면 국정원이 천 명, 만 명의 타깃을 감염시켜 대기열에 위치시켜 놓은 뒤에, 20개씩 차례대로 동시 감시 대상으로 올리면 이론적으로는 감염시켜놓은 모든 타깃을 숫자 제한없이 감시할 수 있다는 말 아닌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해킹팀 RCS 운영 상황으로 볼 때 현실적으는 어렵다. 먼저 앞에서 국정원이 언급했던 대시보드가 무엇인지 보자.

▲ 2012년, 다른 나라의 고객이 해킹팀에 보낸 대시보드 스크린샷. 감염된 PC와 휴대폰별로 작동시킬 수 있는 항목이 한 눈에 보인다.

▲ 2012년, 다른 나라의 고객이 해킹팀에 보낸 대시보드 스크린샷. 감염된 PC와 휴대폰별로 작동시킬 수 있는 항목이 한 눈에 보인다.

타깃을 대시보드에 추가한다는 것은 기능별로 타깃을 살펴보겠다는 의미다. 사진 왼쪽에 감염된 기기들이 나오고 각각 제공되는 기능이 일목요연하게 표시된다. 휴대폰의 경우 일정,통화,채팅,메모리,이메일,마이크,위치 등에 대한 기능이 제공됨을 알 수 있다.

대시보드에 감염대상을 추가하고 나면 각종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다음은 작업 명령을 내리는 화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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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 중인 스마트폰의 스크린샷을 찍어 전송받을 수도 있고 마이크를 작동시켜 녹음을 할 수 도 있다.

RCS는 이렇게 필요한 타깃의 기기 특성과 운영체제, 사용프로그램에 맞춰 취약점을 공격하고 일단 스파이웨어를 설치한 뒤에는 타깃의 활동 하나 하나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다. 목표물의 음성 통화나 채팅, 사진 등을 감시하다가 필요한 때 자료를 빼오는 시스템이다.

또 목표물을 해킹하기 위해서는 취약점 공격에 필요한 URL이나 감염파일이 필요한데, 국정원이 직접 만드는 게 아니라 해킹팀에 요청해서 받아야 한다. 뉴스타파가 분석한 결과 지난 2013년 5월부터 2년 동안 국정원이 해킹팀으로 받은 URL이나 감염파일은 모두 320여 개였다. 이것이 모두 성공했다 하더라도 목표물은 2년 동안 320여 개가 되지만 이 가운데는 한 번 실패했다 다시 요청받은 것도 있어 실제 목표물은 320개 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

또 국정원은 주로 해킹을 위해 문자나 이메일로 스파이웨어가 심어져 있는 URL을 보내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 경우 URL은 한 개의 목표물만 감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다수의 목표물에 문자나 이메일을 발송해 다수를 한꺼번에 감염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동시 감시대상이 20개라 하더라도 사실상 무제한으로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RCS의 운영특성으로 볼 때 현실적으로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물론 이것은 해킹팀 RCS에 한정된 얘기고, 국정원이 다른 해킹 프로그램들을 운용해 더 많은 목표물을 감시하고 있는지 여부는 현재로선 확인된 바가 없다.

금, 2015/07/2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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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음주 단속에 항의하다 경찰의 팔을 꺾었다며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던 박 철(53) 씨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26일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청주지방법원 형사1부(부장판사 구창모)는 지난 8월 19일 충북 충주에 사는 박 씨의 위증 사건 항소심 재판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당시 청주지법은 경찰이 촬영한 동영상을 토대로 “피고인이 경찰의 팔을 잡아 비틀거나 한 일이 없음에도 (경찰이) 갑자기 무슨 이유에서 인가 폭행을 당한 것인 양 행동한 것으로 볼 여지가 높다”고 판시했다. 당시 청주지법의 판결은 앞서 두 번의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을 뒤집은 것이었다.

박 씨는 지난 2009년 경찰의 음주 단속에 항의하다 경찰의 팔을 꺾어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입건됐고 대법원에서 벌금 200만 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박 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부인 최옥자 씨가 위증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 교육공무원직에서 파면됐고, 아내의 재판에 증인으로 섰던 박 씨가 다시 위증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아왔다. 2014년 4월 1심에서는 벌금 500만원 형을 선고 받았으나 올해 8월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이번에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받은 것이다.

세 사건은 모두 박 씨가 경찰의 팔을 꺾었느냐가 핵심 쟁점이었다. 이번에 대법원이 청주지방법원의 2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박 씨가 경찰의 팔을 꺾지 않았다는 사실이 인정된 것이다. 박 철 씨와 부인 최옥자 씨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토대로 이미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공무집행방해 사건과 부인의 위증 사건에 대해서도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 26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박 철(사진 오른쪽) 씨와 부인 최옥자 씨.

▲ 26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박 철(사진 오른쪽) 씨와 부인 최옥자 씨.

이날 선고를 받은 박 철 씨는 “긴 날 동안 마음 조리면서 살아왔는데 오늘 같은 날이 올 것을 믿고 있었다”며 “저와 함께 끝까지 무죄를 밝히기 위해 애써주신 박 훈 변호사, 안혜정 변호사, 고상만 인권운동가, 뉴스타파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부인 최옥자 씨는 “제가 유치원에 복직을 하면 안전한 생활을 위해 애쓰는 분들이 경찰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지 걱정이 된다”며 “빨리 교육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 관련 기사
– 경찰의 팔은 누가 꺾었나
– “경찰 팔 꺾지 않았다”…6년 만에 무죄

※ 관련 칼럼 : 경찰의 팔은 누가 꺾었나…풀리지 않는 의문들

목, 2015/11/26-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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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형 비리 의혹의 최정점.. 그러나 베일에 쌓인 최순실

최근 언론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인물이라면 단연 최순실 씨가 첫 손에 꼽힐 것이다. (그는 최근 최서원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으나 언론에 알려진 대로 과거의 이름인 최순실을 쓰기로 한다. ) 최 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으며, 각종 비리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 한복이나 각종 장신구 등을 마련해 전달했다는 사소한 의심에서부터 청와대 인사에 개입하고 정체 불명의 재단을 설립해 기업들로부터 수백 억 원의 출연금을 거둬들인 것 아니냐는 권력형 비리 의혹까지, 최 씨를 둘러싼 백화점식 의혹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 씨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의 얼굴 생김조차 몇 년 전 한겨레와 시사인이 촬영한 사진 두 장에 의해 겨우 확인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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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최순실 – 박근혜 영상 최초 발굴

뉴스타파는 최순실 씨와 박근혜 대통령이 함께 촬영된 영상을 최초로 발굴했다. 1979년 6월 10일 한양대학교에서 촬영된 영상이다. 당시 온 사회를 휩쓸었던 ‘새마음 운동’의 일환으로 ‘제 1회 새마음 제전’이라는 행사가 열렸는데, 이 행사에 당시 박근혜 새마음 봉사단 총재가 깜짝 방문했다. 마치 연예인처럼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손을 흔드는 박근혜 총재의 옆을 최순실 씨가 그림자처럼 수행했다. 대통령의 딸이자 퍼스트 레이디였던 박근혜 총재의 바로 옆에 밀착해 경호원의 제지도 받지 않은 채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영상에는 담겨 있다. 두 사람이 단상에서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촬영됐다.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사장 등 유수의 기업인들도 이 행사에 참여했는데, 이들은 박근혜 총재의 근처에도 오지 못한 채 멀찌감치 따로 떨어져 앉아 있었다. 당시 박근혜 총재의 나이는 불과 27살, 최순실 씨의 나이는 23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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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음 봉사단, 최태민-박근혜-최순실의 연결 고리

이 날 두 사람이 만나 친밀한 모습을 보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 날 행사를 주최한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의 회장이 최순실 씨였기 때문이다. 최 씨는 당시 단국대 대학원 1학년에 재학중이었다. 최순실 씨의 아버지인 최태민 씨는 ‘새마음 갖기 운동본부’를 창설한 뒤 스스로 본부장을 맡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새마음 봉사단’ 총재를, 최순실 씨는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당시 경향신문은 최순실씨가 ’새마음 제전’의 개회사를 했다는 내용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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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음 갖기 운동본부’는 충, 효, 예라는 세 가지 기치를 앞세워 국민들의 정신 개조를 목표로 하는 관변 조직이었다. 그 활동 범위와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박정희 대통령을 참석시켜 범국민 궐기 대회를 여는가 하면, 새마음 병원과 새마음 학교를 지어 운영하고 대형 스포츠 행사를 주최하기도 했다. 이런 행사에는 당대의 거물급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줄을 서서 참석했다. 전국에 지역별 본부를 만들고 초,중,고 각급 학교별로도 조직을 만들었다. 각 기업들 내부에도 ‘새마음 봉사단 직장봉사단’이 창설됐다. 당시 영상을 보면 심지어 연예인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새마음 갖기 대회를 여는가 하면 버스 안내양들을 동원해 새마음 봉사단 조직을 만들기까지 했다. 박근혜 총재는 이 모든 행사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다.

박근혜 총재는 심지어 직접 “새마음의 길” 이라는 책을 써서 발간했다.그의 첫 저서였다.책이 나오자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모여 성대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이러한 ‘새마음 갖기 운동’의 근본이 되는 ‘새마음’의 창시자가 바로 최태민 목사였고 그 딸이 최순실 씨였으니 박근혜와 최순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떠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뉴스타파가 발굴한 영상은 바로 그 관계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순실 – 박근혜의 40년 우정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되고 이듬해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인생 최대의 시련기를 보내게 된다. 최순실 씨는 이 시기에도 충실하게 대통령의 옆을 지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의 관계가 다시 수면으로 노출된 것은 이른바 육영재단 사태 때이다. 1990년 육영 재단의 직원들과 육영수 여사 숭모회 회원들이 재단 운영에 불만을 품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 씨에게 진정을 제기한다. 불만의 핵심은 최태민씨가 재단 운영에 지나치게 간섭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 일로 노태우 대통령은 육영재단에 경찰 2개 중대를 파견하는 등 육영재단 ‘정상화’를 시도하는데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런데 이 일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이 바로 최순실 씨였다. 당시 경향 신문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최(태민)씨가 87년 재단직원들에게 반감을 산 것은 현재는 폐간된 어깨동무, 꿈나라 등 어린이 잡지 편집에 딸 순실씨가 간여하는 등 육영이 목적인 어린이 회관을 수익 사업체로 전환시키려 한데서 비롯됐다.

1990년11월 17일 경향신문 “육영재단 속불은 안 꺼졌다”

그로부터 7년 뒤 오랜 은둔의 시기를 마치고 정치계에 입문한 박근혜 대통령 곁에는 역시 최순실 씨의 그림자가 있었다.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정윤회 씨가 바로 최순실 씨의 남편이었던 것. 박근혜 정부의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른바 ‘문고리 3인방’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 역시 정윤회 씨가 발탁한 인물들이다.

2006년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는 지방선거 유세를 하던 중 칼로 얼굴을 베이는 정치 테러를 당한다. 이 때 병실을 지켰던 사람 역시 최순실씨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7년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한나라당 경선에서도, 박근혜 캠프를 비선에서 지휘한 것은 최순실 씨의 남편인 정윤회 씨였다는 얘기 역시 떠돌아 다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40년 우정’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자, 두 사람의 우정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린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씨의 입장에서는, 40년 동안 곁을 지켰던 ‘친구’인만큼 그 권력도 나눠가질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1년 차였던 2013년 4월, 승마 선수인 최순실 씨의 딸이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했다가 탈락한다. 그러자 얼마 뒤 박근혜 대통령은 체육계에 대한 광범위한 감사를 지시한다. 물론 감사 대상에는 승마협회도 포함되어 있었다. 승마협회에 대한 문체부의 특별 감사 결과, “승마협회 뿐 아니라 최순실 씨 쪽에도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해서 보고한 체육국장과 체육정책과장이 갑자기 경질된다. 당시 문체부 장관이었던 유진룡 씨는 뒷날 이 문책 인사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것이라고 폭로했다.

이러한 사정은 이른바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 을 계기로 알려지게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3년 차에 벌어진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 역시 그 도화선에는 최순실 씨가 있었다. 이 때 유출됐다는 이른바 청와대 문건은, 다름아닌 “최순실 씨의 남편인 정윤회 씨가 문고리 3인방 등 비선 실세를 통해 공무원 인사에 개입하는 등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 는 내용의 공직기강 비서관실 문건이었다. 검찰의 부실 수사 의혹 속에 이 사건은 흐지부지 되었다.

그러나 감추어둔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집권 4년 차인 올해, 이번에는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 의혹이 터져 나왔다.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의 냄새가 나는 사건이다. 정관도 회의록도 엉터리인 두 재단의 설립 인가가 하루 만에 떨어졌다. 공무원들은 재단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세종시에서 서울로 출장까지 와서 서류를 받아갔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지정기부금 단체 지정도 단박에 받아냈다. 이 과정 역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서류에 일부 흠결이 있었으나 기재부는 문제삼지 않았다. 재단이 설립되자 기업들은 불과 보름만에 770억 원을 몰아주었다. 사정이 어렵다며 수천 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사회적으로 약속했던 재산 출연 약속은 제대로 이행하지 않던 기업들이 일사불란하게 수십 억 원씩을 갹출한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주도하는 각종 행사와 사업에 두 재단이 참여하기 시작한다. 일반 기업이나 재단으로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이 재단들의 설립 과정을 최순실 씨가 주도했으며 K-스포츠 재단의 경우 이사장까지 자신의 측근으로 지목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 K-스포츠재단(왼쪽), 미르재단(오른쪽) 사무실

▲ K-스포츠재단(왼쪽), 미르재단(오른쪽) 사무실

박근혜 대통령은 이같은 의혹이 불거지자 “이런 비상 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의혹을 원천 봉쇄하고 나섰다. 2년 전 비선 실세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때와 똑같은 대응이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발굴한 최순실-박근혜의 동영상은, 두 사람의 관계가 매우 오래전부터 친밀했다는 것, 그리고 두 사람의 40년 우정이 사적인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매우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취재 : 최윤원, 심인보, 강민수, 정재원
촬영 : 김남범
편집 : 정지성

목, 2016/09/2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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