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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꽃바위 하나오카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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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꽃바위 하나오카의 눈물

익명 (미확인) | 월, 2015/08/17- 07:05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5월 29일. 일본 동 광산 하나오카 광산 갱내에 갑자기 물이 차기 시작했다. 곧 붕괴 사고로 이어졌고, 23명이 갱도에 갇혔다.

사고 이틀 만에 기적적으로 조선인 한 명이 탈출했지만, 여전히 22명은 갱도에 갇혔다. 그러나 광산 측은 나머지 22명에 대한 구조 작업을 벌이지 않은 채 갱도의 입구를 막아버렸다. 모두 숨졌다. 남아있는 주 갱도를 보호하기 위해서 인명을 버린 반인륜적 조처였다.

희생자 가운데는 강제징용 당한 한국인도 있었다. 모두 11명. 그러나 70년이 지난 지금 애초 일본이 약속한 유골 발굴 및 송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해방 70년 특집으로 준비한 목격자들 <돌아오지 못한 유골들> 편에서는 일본 강점기 강제동원돼 끌려간 나나쓰다테 사건의 희생자를 포함해 최근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로 논란을 빚었던 군함도 하시마 탄광 등지에서 강제노동하다가 목숨을 잃고서도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지금까지도 유골조차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실태를 취재했다.


연출 : 안해룡
글 : 최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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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세월호 인양 작업의 시작인 선수들기 작업이 시작됐다. 이 작업은 크레인으로 세월호 갑판 부분 4곳에 와이어를 걸어 뱃머리를 5도 가량 들어 올린 후 바닥에 받침대를 설치하는 공정으로 인양 작업의 핵심이다.

그런데 작업 중 1,2번 와이어와 3,4번 와이어의 하중이 뒤바뀌면서 상당히 들어올렸던 뱃머리의 높이가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갑판부에 손상이 발생했다. 3번 와이어에 의해 6.5m 정도가 파이고 4번 와이어에 의해 7.1m가 파였다. 선체 폭 22m 중 약 3분의 1정도가 선수를 들기도 전에 크게 손상된 것이다.

▲ 지난 14일 세월호 갑판부가 3번 와이어에 의해 6.5m, 4번 와이어에 의해 7.1m가 파였다.

▲ 지난 14일 세월호 갑판부가 3번 와이어에 의해 6.5m, 4번 와이어에 의해 7.1m가 파였다.

해수부는 선체 파손의 원인이 너울이라고 밝혔다. 너울은 바람에 의해 일어나는 파도다. 해수부는 너울은 예측하기 힘든 기상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수부의 주장과 달리 세월호를 인양하기로 한 7, 8월에 침몰 해역에는 너울성 파도가 월 평균 5차례 이상 발생한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심지어 상하이샐비지는 당시 호주의 민간 기상예보업체로부터 너울 예보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 2016년 6월 16일, 세월호선체인양추진단 부단장이 세월호 인양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2016년 6월 16일, 세월호선체인양추진단 부단장이 세월호 인양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너울의 높이가 어느 정도 수준을 넘으면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하이샐비지 관계자는 제작진에게 통상적으로 너울이 1m를 넘으면 인양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기록에는 2미터가 넘는 너울이 밀어닥쳤는데도 세월호를 내려놓지 않고 강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이 세월호가 와이어에 의해 손상된 상태에서도 작업을 강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세월호를 언제 인양할 것인지 정부는 확답을 피하고 있다. 인양하더라도 선체조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제기된다. 충분한 조사기간과 수사권을 가진 특조위가 재출범하지 않는 한, 세월호의 진실은 영원히 수장될지 모를 위기를 맞았다.


취재작가 박은현
글구성 정재홍
연출 김한구

월, 2016/07/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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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과거사 사과 요구는 창피한 노릇”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 씨가 일본 영상매체 ‘니코니코’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사 관련 각종 망언을 쏟아냈다. ‘니코니코’는 지난 4일 밤 박근령 씨와 2시간 동안 대담한 동영상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니코니코는 지난달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영토문제 등 한일 관계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연속으로 방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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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령 씨는 이 대담에서 일본에 과거사와 관련해 계속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발언하고 일왕을 “천황폐하”라고 지칭했다. 또 위안부나 신사참배 등 한일 간의 민감한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령 씨는 대담에서 자신이 왜 일본에 왔는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대통령이 다 보고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령 씨의 부적절한 발언은 광복절을 앞두고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지만 청와대는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박근령 씨의 주요 발언 요지는 아래와 같다.

– 위안부 문제는 한일협정 때 다 끝난 이야기다.
–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을 타박하는 뉴스만 나가서 죄송하다.
– 한일협정은 한국 경제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노무현 정부는 과거사 청산을 정쟁에 이용했고 국익에 피해를 줬다.
– 일 총리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 한국 정부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다.
– 한국에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수, 2015/08/0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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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광화문 집회 현장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박.래.군.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 모두가 박래군이다’ ‘박래군을 석방하라’ 도대체 박래군이 누구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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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6일, 인권운동가 박래군이 구속됐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집회 등을 불법 주도했다는 혐의다. 구속 당시 그의 직함은 4.16 연대 상임운영위원이었다. 인권운동가로 살아온 지난 25년 동안 그의 이름 앞에 붙었던 수식은 수도 없이 많았다. 용산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평택미군기지 저지 범국민대책위 대변인, 쌍용차 희망지킴이, 밀양 송전탑 앞에서는 할머니의 아들이었고, 제주 강정에서는 어민의 아들이었고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겐 형님이었던 사람이었다.. ‘박래군’은 대한민국에서 억압받아온 ‘인권’의 동의어였다.

1988년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에서 시작해 27년 동안 인권운동에 투신해 온 박래군. 그에게 성별, 피부색, 신체적 조건 등 어떤 것도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었다. 농민 사이에선 농사꾼으로, 공장 노동자 사이에선 노동자로, 유가족 곁에선 유가족의 아픔을 가장 잘 이해할 줄 아는 타고난 인권운동가였다. 그 힘은 그 자신의 아픈 가족사에서 비롯됐다.

박래군을 알아가는 과정은 대한민국 인권운동의 역사를 더듬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의 대학 시절 선배부터 최근까지 함께 했던 세월호 유가족까지 ‘박래군이 지키려했던 인권’을 묻는다.

목, 2015/08/06-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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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달 간 광화문 촛불 집회에는 유달리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이 많았다. 6차 촛불집회가 있었던 12월 3일, 광화문 광장에 청소년들이 모였다. 청소년들은 연신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학생들이 광화문까지 촛불을 들고 나와 분노를 표출한 이유는 무엇일까?

▲12월 3일, 청소년 단체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 학생들이 레미제라블 OST를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개사해 집회 현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12월 3일, 청소년 단체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 학생들이 레미제라블 OST를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개사해 집회 현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16년 12월 5일 서울특별시교육청은 정유라에 대한 ‘최순실 교육농단 특정감사 결과’를 최종 발표했다. 그리고 정유라의 고교졸업을 취소했다. 또 청담고 전현직 교직원 7명, 선화예술학교(중학교 과정)에서 3명과 최순실 모녀를 금품 수수혐의로 수사 의뢰했다.

▲11월 22일 서울시교육청 행정사무감사에는 정유라의 고교학사 특혜와 관련된 청담고 전현직 교직원들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전 청담고 박모 교장은 정유라의 출결, 성적관리 특혜 의혹에 대해 단순 행정착오라며 특혜를 부인했다.

▲11월 22일 서울시교육청 행정사무감사에는 정유라의 고교학사 특혜와 관련된 청담고 전현직 교직원들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전 청담고 박모 교장은 정유라의 출결, 성적관리 특혜 의혹에 대해 단순 행정착오라며 특혜를 부인했다.

감사결과, 정유라는 청담고에서 출결, 성적 등 온갖 특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2012년 당시 고1 때 출석일수는 수업일수 194일 중 122일, 고2 때는 195일 중 137일, 고3 때는 193일 중 17일로 확인됐다. 고1 때 출석일 수 122일은 학년 과정 수료에 필요한 수업일수의 2/3인 129일을 채우지 못한 것이다.

또 무단 해외출국으로 인한 무단 결석이 출석으로 둔갑되거나 대회출전을 허위로 신고하는 방식으로 출석 인정 결석 처리가 이뤄 지기도 했다. 정유라의 담임교사들은 단순한 행정 사고라고 해명하고 대한승마협회의 공문에 의해 학교장이 최종 판단하는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정유라의 고1 담임교사는 2012년 12월 20일에 받은 정유라의 골절 진단서(측 상완골 경부의 분쇄골절)를 12월 21일 최초 질병결석처리에 사용후 같은 진단서로 12월 21일~12월 24일, 2013년 2월 1일에서 2월 8일의 질병결석처리에 재사용했다.

▲정유라의 고1 담임교사는 2012년 12월 20일에 받은 정유라의 골절 진단서(측 상완골 경부의 분쇄골절)를 12월 21일 최초 질병결석처리에 사용후 같은 진단서로 12월 21일~12월 24일, 2013년 2월 1일에서 2월 8일의 질병결석처리에 재사용했다.

정유라의 고1 담임교사는 2012년 12월 20일에 받은 정유라의 골절진단서를 2012년 12월 24일에서 28일, 2013년 2월 1일에서 2월 8일 동안 질병결석처리에 중복 사용해 논란이 일었다.

3학년 때는 대한승마협회에서 보낸 ‘마장마술 국가대표 합동훈련(3월24일~6월30일)’과 43일간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합동훈련(7월1일~9월24일)’ 협조 공문으로 거의 한 학기를 공결처리를 받았다. 그러나 확인결과 실제 훈련은 없었다. 이번 서울시교육청의 행정사무감사에 참여한 오경환 서울시의원은 문서 하나로 3개월 이상 학교를 안 나오는 것은 전례에 없던 일이라고 말했다.

또 1, 2, 3학년 담임교사 모두 정유라가 조퇴를 허용하면서 기록에는 출석으로 기재하는 등 정유라의 출결 관리가 매우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교육청의 학교체육업무 매뉴얼에 따르면 학습권 보장을 위해 체육특기생의 대회 참가일수는 연 3-4회로 제한하고 있다. 정유라 2학년 체육담당 교사는 최순실에게 대회출전 연 4회 제한 규정을 고려해 대회출전을 조정해달라고 전화를 했다가 수업중 학생들 앞에서 최순실로부터 폭언을 들어야 했다.

폭언 이후 체육교사는 결국 자진교체됐다. 체육교사 교체 이후 정유라의 체육 성적은 우수등급으로 올랐다. 2학년 2학기, 3학년 2학기에는 체육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체육교과우수상을 받았다.

▲정유라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2학년 때 체육교사가 교체된 이후 1학년 때 ‘보통’이었던 체육교과 성취도가 ‘우수’로 올랐다.

▲정유라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2학년 때 체육교사가 교체된 이후 1학년 때 ‘보통’이었던 체육교과 성취도가 ‘우수’로 올랐다.

정유라의 2학년 담임이었던 황 모 국어교사는 정유라의 국어수행평가 태도점수에 만점을 주기도 했다. 출석도 하지 않은 정유라가 국어수행평가 태도점수에서 만점을 받게 되자 같은 반 학생들은 담임교사에게 항의를 하기도 했다.

청담고 교직원들이 집단적으로 정유라에 학사특혜를 준 것에 대해 당시 청담고 교사들이 최순실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김 모 체육부장과 박 모 전교장이 최순실로부터 금품을 받은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김 체육부장은 30만 원을 받았지만, 이후 돌려줬다고 금품 수수 혐의를 부인했다.

정유라의 고교졸업은 취소되었지만 대학 입시, 학사관리 특혜뿐만이 아니라 고등학생 때마저도 특혜를 받아 쉽게 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에 청소년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취재작가 박은현
글 구성 정재홍
취재 연출 박정대

목, 2016/12/0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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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15년 전 행방불명된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다면, 그리고 그 아들이 간첩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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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남매 중 막내인 진창식 씨에게 셋째 형 항식 씨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삼척 토박이인 창식 씨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첫째, 둘째 형도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 됐기 때문입니다. 한국 전쟁 당시 4살이었던 창식 씨에게는 두 형과 함께한 추억은 물론 얼굴과 목소리조차 기억에 없었습니다.

창식 씨가 18세이던 1965년 어느 날, 전해 듣기만 했던 둘째 형 진현식 씨를 직접 마주치게 됐습니다. 남파 간첩이 돼 어머니를 만나러 온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목격이 되면 큰일이 날 수도 있어서 오래 만나지 못하고 어두운 곳에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는 다시 사라졌다고 합니다. 당시 반공 교육을 강하게 받은 창식 씨는 남이다시피 한 둘째 형을 신고해야 한다고 했지만, 어머니와 셋째 형은 차마 가족을 신고할 수는 없었습니다.

창식 씨는 그 날 이후 둘째 형을 한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북한에 갔던 둘째 형 현식 씨는 다시 가족을 보러 찾아왔습니다. 헤어지고 3년 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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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식 씨가 돌아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심한 부상을 입은 것입니다. 현식 씨는 마침 인근에 살고 있던 고종사촌 김상회 씨 집을 찾아갔습니다. 상회 씨는 가족을 위해 무조건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현식 씨가 권총을 들고 겁을 주는 바람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상회 씨 아들 태룡 씨는 당시 상황을 기억합니다.

꽤 긴 기간이 흘렀습니다. 73년 김상회 씨가 이사를 하면서 현식 씨는 다시 어머니 집으로 피신해야 했습니다. 당시 어머니 집에는 셋째 아들 항식씨 가족도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항식 씨의 아내는 온 가족이 위험해질 수 있는 탓에 둘째 형님을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함께 지내는 어머니를 보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집안의 불화가 점점 커지자 결국 둘째 현식 씨는 어느 날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수년 뒤 일가족 12명은 멸문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른바 삼척고정간첩단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두 집안의 가장 진항식, 김상회 씨는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83년 7월 2일 사형이 집행돼 집안의 기둥이었던 이들은 억울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창식 씨와 상회 씨 아들 태룡씨에게는 무기징역, 나머지 가족들에게도 징역10년 형 등 일가족이 장기수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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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고 있던 일가족이 하루아침에 고정간첩단이 돼 40년 동안 비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번 뉴스타파 <목격자들>에서는 어머니를 찾아온 남파 간첩 때문에 일가족이 고정간첩단으로 둔갑한 기구한 사연을 소개해드립니다.


촬영 : 김기철 김남범
글구성 : 정재홍
연출 : 신동윤
촬영 : 김영민

금, 2016/08/1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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