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19차 촛불집회 “박근혜없는 3월,그래야 봄”

지역

19차 촛불집회 “박근혜없는 3월,그래야 봄”

익명 (미확인) | 토, 2017/03/04- 23:48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앞둔 마지막 주말,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19차 촛불집회에는 주최측 추산 95만 명의 시민들이 운집했다. 전국적으로는 105만 명이 촛불을 들었다. 이로써 지난해 10월 29일부터 본격화된 촛불 집회에 참여한 시민은 연인원 천 5백만 명을 돌파했다.

집회에 모인 시민들은 헌재의 탄핵 인용과 박근혜 대통령의 구속 수사를 요구했다. 특히, 이번 집회에서는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붉은 공굴리기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붉은 촛불이 켜지기도 했다. 이와함께 세월호 가족들로 구성된 4.16 합창단이 무대에 올라 세월호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고, 시민들은 노래를 따라부르며 이에 화답했다.

20170304_001

광화문 본 집회가 끝난 뒤 시민들은 “박근혜가 가야 봄이 온다”, “황교안도 퇴진하라”, “촛불이 승리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와 헌법재판소, 총리관저 등으로 행진하고 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와 집회를 마무리지었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오는 10일 또는 13일로 예상됨에 따라 선고 전날 저녁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선고 당일 아침은 헌법재판소 앞, 그리고 저녁에는 다시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낮 2시 서울시청 광장 등에서는 탄핵반대 집회가 열려 헌재의 탄핵심판을 앞둔 마지막 주말에 대규모 세대결 양상이 펼쳐졌다. 탄핵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시청앞 광장부터 남대문 앞까지 수 십만 명이 모였지만, 지난 3월 1일 집회와 비교하면 다소 인원이 줄었다.

20170304_002

이들은 헌재가 탄핵을 기각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탄핵기각 보다는 국회의 탄핵소추에 절차적인 문제가 있었다며 탄핵 각하를 주장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군가에 맞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가 하면, 무대에서는 국민교육헌장이 낭독되기도 했다.

탄핵심판 결정이 임박한 것을 반영하듯 헌법재판소에는 주말임에도 헌법재판관 8명 가운데 6명이 출근해 막바지 기록 검토와 함께 주중에 열릴 평의 준비에 주력했다.


취재:심인보
촬영:최형석
편집:박서영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사회복지공동모금회(공동모금회)가 세월호 국민성금의 38%를 지원하기로 한 사업인 '안전한 대한민국 만7들기 사업'에 대해 지난 1년3개월 동안 구체적인 계획조차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30일 공동모금회로부터 받은 '2015 세월호 성금 사용계획서'를 공개하고 이같이 지적했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공동모금회는 국민과 시민사회단체·기업 등으로부터 받은 성금 1141억원 중 62%인 706억4400만원을 세월호 희생자 및 피해자 지원에 사용하고, 나머지 38%인 434억9600만원은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 사업'을 지원하는 데에 쓸 예정이다.

 

공동모금회는 해당 자료에서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 관련사업' 지원 계획에 대해 "'안전문화센터 건립' 등을 기본방안으로 하고 기타 용도(사업 등) 및 세부 계획은 추후 심의할 예정"이라고 짤막히 기술했다.

 

또 세월호 성금에 대한 이자수익은 지난해 9월 첫 이자 발생을 시작으로 지난달까지 총 14억2000여만원이 모였다. 이에 대해 공동모금회는 "이자는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 관련사업'에 포함 예정'이라고 적었다.

 

공동모금회 관계자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 관련사업'은 세월호 침몰 참사와 같은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 교육 등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기부자의 의도에 따라 지원하고 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세부적인 안이 마련된 것은 아니고 추후 별도의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 계획을 마련할 것"이라며 "이자를 포함하는 것은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기부자의 의견과 희생자 유가족 등의 합의를 통해 의견을 낸 것이다"고 설명했다.

 

사업 관련 TF는 안전교육 관련 외부 전문가나 공동모금회 내부 위원 등을 포함해 구성될 전망이다.

 

정보공개센터는 "세월호 성금의 38%나 차지하는 사업에 대해 어떠한 구체적인 사항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며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날 동안 세부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 사항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다"고 비판했다.

 

이어 "세월호 성금의 구체적인 사용계획이 없는 점도 실망스러웠다"며 "국민이 하나 되어 한 뜻으로 모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 국민이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국민성금의 사용계획과 목적을 정기적인 주기를 정해 홈페이지나 정부 광고를 통해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며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고 피해자의 아픔을 감싸주기 위한 국민의 노력이 허투루 쓰이지 않게 투명하게 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공동모금회는 앞서 세월호 국민성금을 희생자 304명(사망자 295명·실종자 9명)의 유가족에게 2억100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생존자 가족 157명에게는 각 4200만원을, 구조 활동 중 사망한 민간잠수사 2명의 유가족에게는 각 1억500만원씩을 지원할 예정이다.

hm3346@

 

기사보러가기(클릭)

 

 

 

저작자 표시 비영리
월, 2015/09/07- 15:38
427
0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는 CIA 정보원이나 첩보 세계 관련자들이 당국의 눈을 피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작성 : 윌 피츠기번(Will Fitzgibbon)

재선 캠페인이 한창이던 1996년 8월의 어느 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캔자스 시티에 위치한 웨스틴 크라운 센터 호텔의 한 연회장을 찾았다. 선거 자금 25만 달러가 달린 행사 때문이었다. 그날의 주인공은 클린턴의 든든한 후원자 파하드 아지마(Farhad Azima). 아지마를 향해 서 있던 클린턴을 시작으로 참석자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이란 출신의 미국 전세 항공사 대표인 파하드 아지마는 미 행정부의 오랜 후원자다. 1995년 10월부터 1996년 12월 사이 백악관을 총 10회 방문했고, 대통령과 함께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1999년 12월 힐러리 클린턴이 상원 의원직에 출마하자 후원 행사를 열어 40명의 참석자들로부터 2,500 달러의 후원금을 모으기도 했다.

이러한 아지마의 민주당 기금모금 활동 덕분에 후일 그의 이력에 흥미로운 상황이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발생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정치 스캔들 ‘이란-콘드라(Iran-Contra)’사건으로 아지마 역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된다.

1980년대 중반, 레이건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미국인 인질 7명의 석방을 돕기 위해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고 그 이익으로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1985년에 아지마의 회사의 보잉 707기가 23톤에 달하는 군사 장비를 이란으로 운반했다. 그는 해당 비행기는 물론이고 그러한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는 ICIJ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란-콘트라 사건과 무관하다”고 답했다. 또한, “미국 내 모든 관련 기관에서 이미 조사를 받았고, ‘관련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면서 “사법 당국이나 규제 당국은 헛수고를 했고, 낚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Suddenutsche Zeitung, SZ), 언론 파트너가 함께 입수한 문건에는 미국에서 가장 화려한 정치 후원자 중 한 명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이란-콘트라 사건 관련자이기도 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억만장자 아드난 카쇼기(Adnan Khashoggi)의 역외 거래 관련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1997년부터 2015년 말 사이 작성된 1,100만이 넘는 문건에는 파나마 국적의 기업 Mossack Fonseca(MF)의 내부 활동상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MF는 기업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어 합법적인 기업 활동과 은밀한 첩보 세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데 전문성을 자랑하는 파나마 법률 회사다.

스파이들의 역외 거래 활동

이번 문건은 전직 CIA 요원과 무기 거래상들이 개인적, 사적 이익을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하는지에 대해 수백 건의 세부 사항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또한, 첩보 국장, 비밀 요원, 정보원 등 CIA와 다른 정보 기관에서 활동하던 기간이나 그 이후에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했던 수 많은 인물들의 활동 상황도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조지아대 로흐 K. 존슨 교수는 페이퍼 컴퍼니의 위장과 관련해 “자신이 스파이임을 밝히고 활동하는 사람은 없다”고 설명했다. 한 때 미국 정부정보활동조사특별위원회(속칭 ‘처치위원회 (Church Committee)’)의 자문을 역임했던 존슨 교수는 수십 년간 CIA의 위장 기업(front company)을 연구했다.

이번 문건에 포함된 MF의 고객 가운데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제1대 정보 국장 셰이크 카말 아드함(Sheikh Kamal Adham)과 콜롬비아의 퇴역 육군 소장 리카르도 루비아노그루트(Ricardo Rubianogroot), 그리고 의사에서 폴 카가메(Paul Kagame) 르완다 대통령의 정보 국장으로 변신한 엠마누엘 느다히로(Emmanuel Ndahiro) 준장(Brig. Gen.)도 포함되어 있다. 셰이크 카말 아드함은 미국 상원위원회에서 “1960년대 중반부터 1979년까지 CIA의 중동 지역 주요 소식통”으로 언급된 인물로 후일 미국의 은행 스캔들에 연루된 여러 페이퍼 컴퍼니를 소유했었고, 전직 콜롬비아 항공정보국장이기도 한 엠마누엘 느다히로는 항공 물류 기업의 주주였다.

아드함은 1999년 사망했고, 느다히로는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루비아노그루트는 항공 전자기기 회사(미국) 매입을 위해 설립된 West Tech Panama의 소주주였음을 자신이 ICIJ 파트너와 콜롬비아 탐사 보도 기관 Consejo de Redaccion에 확인시켜 주었다. 현재 이 회사는 파산 절차를 진행하는 중이다.

MF는 “우리는, 신규•예비 의뢰인에 대해 우리 업계가 준수해야 하는 현 규정과 기준보다 훨씬 철저한 실사를 실시하고 있다”면서 “의뢰인 상당수는 주요 중개 은행(correspondent banks)을 비롯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로펌, 금융기관을 통해 확보하고 있으며…따라서 신분이나 자금 출처에 대한 증빙서류 제공을 꺼리거나 그러한 서류 제공이 불가한 개인, 기관 등의 의뢰인과는 함께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성명을 통해 밝혔다.

한편, 스파이 세계를 모방한 사례도 문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위장 기업을 설립하려는 의뢰인을 대신해 한 금융 관계자가 MF에 보낸 2010년도 서신에는 “회사 이름을 ‘글로벌보험서비스(World Insurance Services Limited)’나 007영화에 등장한 ‘유니버셜무역회사(Universal Exports)’로 했으면 하는데, 그렇게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유니버셜무역회사는 이언 플레밍의 소설 “제임스 본드”에 등장하는 영국 첩보국의 위장 기업이다.

문건에 따르면, MF는 007 시리즈 제목과 악당의 이름을 따서 ‘Goldfinger,’ ‘SkyFall,’ ‘GoldenEye,’ ‘Moonraker,’ ‘Specgre,’ ‘Golfeld’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했고, 심지어는 ‘Octopussy’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해 달라는 요청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뢰인 중에는 실명이 오스틴 파워(Austin Powers), 잭 바우어(Jack Bauer, 유명 미국 드라마 ‘24시’ 주인공)인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후자의 경우 그 이름은 의뢰인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했던 직원이 우연히 해당 의뢰인을 술집에서 만나서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첩보 활동과 MF의 연계는 허구가 아닌 실제 상황이다.

항공업계

문건에 따르면, 당시 60개 이상의 항공기를 보유한 전세 항공사를 운영하던 파하드 아지마는 2000년에 MF와 함께 지사 형태의 첫 페이퍼 컴퍼니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했다. 회사명은 ‘ALG (Asia & Pacific) Limited’ 였다.

한편, MF는 2013년이 되어서야 아지마와 CIA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당시 의례적인 신설 기업 주주에 대한 배경 조사 과정에서 아지마의 CIA 연루설 관련 기사를 발견한 것이다. MF 직원들이 찾아낸 온라인 기사에는 그가 리비아로 무기를 밀매한 전직 CIA 요원에게 “항공•물류 서비스를 지원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한 그와 관련해서 CIA로부터 아지마를 “건들이지 말라(off limits)”는 경고를 받았다는 FBI 요원의 증언이 담긴 기사도 있었다.

MF가 아지마의 대리인에게 신원을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지마는 이후에도 MF의 의뢰인으로 남았고, 그와 관련해 놀라운 일들은 계속됐다.

MF가 호셍 호사인푸아(Hosshang 호사인푸아)와 CIA 간의 유착 관계에 대한 온라인 문서를 발견한지 1년 뒤, 미 재무부가 그를 수천만 달러가 경제 재제를 받던 이란의 국내 기업으로 흘러가는 것을 도운 인물이라고 언급했다.

문건에 따르면, 2011년에 조지아(옛 그루지아)의 한 호텔을 매입하려 했던 기업의 내부문서에도 아지마와 호사인푸아의 이름이 등장했다. 같은 해 재무부 관계자들이 호사인푸아가 플라이조지아(FlyGeorgia)라는 민간 항공사를 공동으로 설립한 뒤, 또 다른 두 명과 함께 이란으로 수백만 달러를 빼돌리기 시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이와 관련해서 3년 뒤에 처벌을 받았다.

호사인푸아는 2011년 11월부터 시작해 잠깐 동안만 유라시아 호텔 홀딩스(Eurasia Hotel Holdings Limited)의 주식을 보유했다. 그런데, 행정팀에서는 MF측에 호사인푸아는 회사와 관련이 없으며 그가 보유한 주식은 ‘행정 착오(administrative error)’로 발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상호를 ‘유라시아 항공 홀딩스(Eurasia Aviation Holdings)’로 변경한 뒤, 회사 전용기(Hawer Beechcraft 400XP)를 162만 5천달러에 구입한 것으로 밝혀 졌다.

아지마는 그 회사는 단지 전용기 구입을 위한 이용된 것일 뿐, 호사인푸아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ICJI에 해명했다.

또한, 당시 구입한 전용기의 사용지가 미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미국에 등록할 필요가 없었고, 회사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한 것은 세금 문제 때문이었다고 설명하면서, “나는 세금이란 세금은 모두 내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호사인푸아에게서는 아무런 언급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2013년 법적 처벌을 받기 전 이루어진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란과의 관계를 적극 부인하면서 “법적 조치를 피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답했다.

MF의 내부 문건에서 발견된 CIA와의 커넥션과 관련해 눈에 띄는 인물로 로프튀르 요한슨(Loftur Johannesson)도 있다. 올해 85세인 그는 아이슬랜드의 수도 레이캬비크(Rekyavik) 출신이다. 70년대와 80년대 CIA와 함께 일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의 반공 무장 단체에 무기를 공급한 인물로 책이나 신문에서 흔히 등장하고 있다. CIA를 위해 활동한 대가로 받은 돈으로 바베이도스에서는 저택을 프랑스에서는 포도 농장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 졌다.

요한슨이 MF의 내부 문서에 등장한 것은 2002년도로 첩보원 활동에서 은퇴한 지 한참이 지난 뒤였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와 파나마에 있는 페이퍼 컴퍼니 최소 4곳과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런던의 웨스터민스터 사원 뒤쪽 지역과 바베이도스 수변 단지 등에 고가의 주택을 소유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들 지역의 주택의 매매가는 한 채에 3,500만 달러에 이른다. 2015년 1월에는 MF서비스 대가로 수천 달러를 지불했다.

“요한슨씨는 항공 관련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제적인 사업가다. 그가 정보 기관을 위해 일을 했었을 것이라는 ICJI의 주장을 단호히 일축했다”고 대변이 ICJI에 전했다.

요원 ‘로코 & 008’ = 페이퍼 컴퍼니 설립 면허?

이란-콘트라 스캔들과 연루된 또 다른 인물로 아드난 캬쇼기(Adnan Khashoggi)를 들 수 있다. 아드닌 캬쇼기는 한 때 세계 최고의 ‘사치왕’으로 이름을 날렸던 사우디의 억만장자다. 1992년도 상원 보고서(공동 작성자- 존 케리 상원의원)에 따르면, 국제적인 무기 중개상이었던 그는 1970년대 미국과 사우디간에 있었던 수백만 달러 규모의 무기 거래 협상을 이끌었고 이란과의 무기(총) 거래가 “미국 정부에 유리하도록 이끈 핵심 인물”이었다.

카쇼기의 이름이 MF 문건에 처음 등장한 것은 그가 ISIS Overseas S.A라는 파나마 회사의 대표로 취임했던 1978년이다. MF와의 비즈니스는 대부분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에 이루어졌고, 적어도 4개 이상의 회사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MF의 문건에는 카쇼기가 소유한 회사들의 설립 목적은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중 두 곳 (Propicterrain S.A.와 Beachview Inc.)은 스페인과 카나리아 제도(the Grand Canaries islands)의 주택 담보대출 (mortgages for homes)과 관련이 있었다.

카쇼기가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대통령이 수백만 달러를 해외로 빼돌리는 것을 도운 혐의로 기소되어 전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던 그 해, MF는 아다난 캬쇼기 그룹(Adanan Khashoggi Group)이 지급한 돈을 처리하고 있었다. 비록 이후에 무혐의 처리가 되기는 했으나 당시 MF가 그의 과거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자료는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MF의 문건에는 MF가 2003년에 캬쇼기와의 거래를 중단한 것으로 나와 있다.

MF는 냉전 시대 적이라 해도 크게 차이를 두지 않았다.

‘요원 로코(Agent Rocco)’라는 가명으로 동독 비밀경찰의 스파이로 활동한 혐의로 기소되었던 그리스의 부호 소크라티스 코칼리스(Sokratis Kokkalis, 76세)도 명단에 있었다. 독일 의회 조사 결과, 코칼리스는 1960년대 초반에 독일과 러시아에서 거주하면서 주변 인물과 연락책에 대한 정보를 주기적으로 동독 비밀경찰에 제공한 것으로 밝혀 졌다. 그는 2010까지 그리스 축구단인 올림피아코스(Olympiakos)의 구단주였으며 현재 그리스 최대 통신사 (OTE)를 소유하고 있다.

MF는 2015년 2월 코칼리스 소유의 기업(Upton International Group)에 대한 의례적인 조사 과정에서 그가 첩보 활동에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MF 직원이 인터넷 검색 이후 작성한 기록을 보면 코칼리스는 “60년대 초에 간첩, 사기, 자금 세탁 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동독 당국에 의해 기소되었지만 결국 무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적혀 있다. MF 문건에 따르면 코칼리스의 대리인은 코칼리스 본인과 그가 소유한 회사, 회사 설립 목적에 대한 MF의 요청 사항에 응하지 않았다.

코칼리스 측으로부터는 아무런 의견도 들을 수 없었다. 이처럼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그도 한때 모든 혐의를 부인하면서 유명 정치인들과 언론(신문사)이 자신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2005년, MF 직원들이 기겁할 만한 일이 발생했다. MF의 회계장부에 스페인의 악명 높은 비밀 요원 프란시스코 파에사 산체스 (FRanscisco Paesa Sanchez)로 추정되는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산체스 관련 자료를 처음 찾아낸 한 직원이 “내용이 정말 오싹했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MF은 ‘프란시스코 P. 산체스 (Francisco P. Sanche z)’라는 인물이 이사로 있는 회사 7개를 설립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파에사는 부패 경찰서장, 분리주의자 등을 색출하면서 부를 축적했고 수백만 달러를 가지고 스페인에서 도피했다. 1998년, 파에사는 자신이 사망한 것으로 위장하고 그의 가족들은 파에사가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는 사망 진단서 발급받았다. 하지만, 수사 당국이 룩셈부르크에 있던 그를 추적해 찾아냈다. 파에사는 자신의 사망 보도에 ‘착오(misunderstanding)’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2005년 12월, 한 스페인 잡지에 모로코 호텔, 카지노, 골프장을 건설하고 소유하고 있는 파에사의 ‘비즈니스 네트워크’ 관련 기사가 실렸다. 해당 기사에는 MF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회사 7곳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2005년 10월, MF는 P. 산체스(파에사)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들과 관계를 끊기로 결정을 내렸다. MF는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스캔들이 당사의 이미지에 미칠 영향이 우려되어 이 같은 결정을 내기게 된 것”이라고 관련자에게 서면으로 거래 중단 사유를 밝혔다.

MF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의뢰인이 MF와의 거래와 관련된 사실 자료 특히 자신의 신원과 배경에 솔직하지 않은 경우, 이는 거래 관계 종료 사유로 충분하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파에사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검지는 없어도 이름은 두 개

2015년 3월,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클라우스 몰너(Claus Mollner)’라는 인물이 거의 30년 동안 MF의 고객이었던 것이다. 관련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페이스북(Facebook), 가계도, 언어적 검수(linguistic review) 자료 가운데 뜻밖의 자료를 찾아내면서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 자료들은 델라웨어 대학교에 있었다.

이 자료들에는 “클라우스 몰러(베르너 마우스(Werner Mauss)가 이용한 이름)”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008 요원(Agent 008)’ 또는 ‘검지 없는 남자(The Man of Nine Fingers)’로 알려 진 몰너, 즉 마우스는 ‘독일 최초의 비밀요원’으로 일컬어 지고 있다. 지금은 은퇴한 마우스의 웹사이트에는 ‘100개의 범죄 조직을 소탕(smashing 100 criminal groups)’ 작업에서의 그의 역할이 무용담처럼 설명되어 있다.

1966년에 콜롬비아 당국이 게릴라와 공모하여 여성을 납치하고 몸값의 일부를 빼돌린 혐의로 마우스를 기소했다. 마우스는 납치를 주도한 것이 자들이 반군 세력이 아니었으며 자신은 당시 몸값을 절대 빼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모든 작전은 독일 정부 기관과 관련 당국의 협조 여부에 영향을 받는다”고 밝혔다.

마우스의 실명이 MF의 내부 문건에 언급된 적은 없지만, 수 많은 자료들을 통해 파나마에 있는 그의 기업 네트워크를 자세히 알 수 있다. 적어도 두 개 회사가 독일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마우스의 변호사는 이번 탐사보도팀(ICJI, Sz, DNR, 등)에게 마우스는 사적인 이유로 역외 회사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면서, 그와 관련된 모든 관련 기업과 재단의 설립 목적은 “마우스가(家)의 재정적 이익(financial interests)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기업과 재단은 모두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고 그에 따른 세금도 모두 납부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MF의 내무 문건에 등장한 일부 기업은 평화적인 “인도적 지원 활동” 및 “병원, 수술 장비, 대규모 항생제 등 구호 물품 전달”을 위한 인질 협상 시에 이용됐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문건에 따르면, 2015년 3월 MF 직원이 구글 검색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몰너와 마우스의 연관성을 발견했다. 그러나, MF가 마우스의 실제 정체를 파악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그의 기업은 2015년도 까지 MF의 장부에 기록되어 있었다.

MF는 몰너든 마우스든 이름에 상관없이 자사의 고객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1988년 몰너를 인터뷰했던 기자로서 “베르너 마우스의 신분 은폐 능력은 그가 지닌 비밀 병기(capital)”였다고 생각한다.

※ 기사 원문 보기(영어)

 

수, 2016/04/06- 07:00
427
0

노재헌 연관 홍콩 페이퍼 컴퍼니 7곳 나와…BVI 회사와 연결

노재헌 씨와 연관된 홍콩 페이퍼 컴퍼니 7곳이 뉴스타파 취재결과 추가로 확인됐다. 특히 그 가운데 2곳은 뉴스타파가 모색 폰세카의 유출문서에서 발견한 노재헌 씨의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BVI) 페이퍼 컴퍼니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버진 아일랜드의 페이퍼 컴퍼니를 활용해 홍콩에 또 다른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것이다.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기는 했지만 전혀 사용하지 않고 친구와 지인에게 넘겼다는 노재헌 씨의 해명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추가로 발견된 노재헌 씨의 홍콩 페이퍼 컴퍼니들은 인크로스나 SK와도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노재헌, 인크로스, SK가 홍콩과 BVI 페이퍼 컴퍼니들을 통해 의문의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뉴스타파가 발견한 노 씨 연관 홍콩 페이퍼 컴퍼니는 7곳이다. 이 가운데 4곳은 노재헌씨가 직접 주주나 이사로 현재 등기되어 있거나, 예전에 등기되어 있던 곳이다. 2곳은 버진 아일랜드의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간접적으로 소유했다. 1곳은 의문의 인물인 김정환 씨를 통해 노재헌 씨와 연결됐다. 뉴스타파가 새롭게 발견한 노 씨의 페이퍼 컴퍼니 7곳의 주소는 모두 동일하다. 노 씨와 관련된 홍콩 페이퍼 컴퍼니 이름은 다음과 같다.

1) Global i Consulting : 2009년12월 설립. 노재헌이 주주 겸 이사
2) Shine Chance : 2010년 3월 설립. 노재헌이 주주 겸 이사
3) Luxe Life : 2012년 5월 25일 설립. Luxes International(버진 아일랜드)이 주주. 현재 주주는 인크로스 4) 인터내셔널
5) Inno-Pact : 2012년 5월 25일 설립. Luxes International(버진 아일랜드)이 주주. 현재 주주는 인크로스 홍콩.
6) Incross Hongkong : 2013년 5월 27일 설립. 김정환이 이사.
7) One Asia C&L : 2014년 9월 1일 설립. 노재헌이 이사. 노재헌 첸카이가 주식을 9대 1로 소유. 현재 이사는 김정환
8) K-entertainment : 2014년 9월 26일 설립. 노재헌이 주주 겸 이사

BVI의 페이퍼 컴퍼니가 홍콩 페이퍼 컴퍼니의 주주

뉴스타파가 이미 보도한 바와 같이, 노재헌 씨가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 3곳을 설립한 것은 2012년 5월 18일이다. 세 회사의 이름은 GCI Asia, One Asia, Luxes International이다. 이로부터 불과 1주일 뒤인 2012년 5월 25일, 노 씨는 홍콩에 페이퍼 컴퍼니 2곳을 만든다. 주식이 1주 뿐인 전형적인 페이퍼 컴퍼니다 .이 두 회사의 주주는 노 씨가 일주일 전 버진 아일랜드에 만든 페이퍼 컴퍼니 중 한 곳 , Luxes International이다. Luxes International의 주주는 노 씨의 또 다른 페이퍼 컴퍼니인 GCI asia다. GCI asia의 실소유주가 노 씨이기 때문에 노 씨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두 단계를 거쳐 두 회사를 새롭게 소유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 회사의 홍콩 등기부에 노 씨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뉴스타파는 이 회사의 설립 관련 서류에 기재된 서명이 노 씨의 서명과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결국 노재헌 씨가 버진 아일랜드에 회사를 설립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실소유주임을 숨긴 채 홍콩의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회사의 이름은 Luxes Life, Inno-Pact이다.

201604080201_01

201604080201_02

201604080201_03

의문의 인물 김정환 통해 인크로스 자회사에 주식 넘겨

이 두 회사의 이사직은 2012년과 2013년 차례로 김정환 씨에게 넘어간다. 김정환 씨는 2013년 5월 24일 노 씨의 버진 아일랜드 유령 회사 Luxes International의 이사직을 넘겨 받는 인물이다. 김 씨는 노 씨로부터 Luxes International의 이사직을 넘겨 받은 지 불과 사흘 뒤, Incross Hongkong을 설립한다. 그리고 나서 노 씨로부터 물려받은 홍콩의 유령회사, 즉 Luxe Life의 주식을 다시 Incross Hongkong에 넘긴다. 나머지 한 회사, 즉 Inno-Pact는 Incross International에 넘긴다. 그러니까 노재헌 씨는 버진 아일랜드의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홍콩에 또다시 유령 회사를 만들었고, 이 회사들은 김정환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크로스의 홍콩 현지 계열사들에게 넘어간 것이다.결국 어떤 계좌나 자산을 비밀리에 인크로스쪽에 넘기기 위해 복잡한 지배 구조를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201604080201_04

SK 벤처 운용사 대표 첸 카이와의 또 다른 연결 고리 발견

노재헌 씨의 페이퍼 컴퍼니와 SK와의 연결 고리도 추가로 발견됐다. 중국인 첸카이는 노재헌 씨의 버진 아일랜드 컴퍼니인 GCI Asia와 One asia의 이사직을 넘겨받은 인물이다. 첸카이가 SK 홍콩 현지 법인의 관계자라는 4월 6일자 문화일보 보도가 나가자, SK 측은 첸 카이가 SK텔레콤의 벤처펀드인 CVC의 운용을 담당하는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실토했다. 그런데 뉴스타파 취재 결과 첸 카이가 노재헌 씨의 또 다른 홍콩 페이퍼 컴퍼니에도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노재헌 씨는 2014년 9월 홍콩에 또 다른 페이퍼 컴퍼니인 One Asia C&L을 설립했다. 3개월 뒤 2014년 12월, 이 회사의 지분을 9대 1의 비율로 첸카이와 나누어 갖는다. 그리고 올해 1월 16일에는 이 회사의 이사직을 김정환이라는 인물에게 넘긴다. 이와 함께 첸카이가 지난해 4월 인크로스의 홍콩 자회사인 인크로스 인터내셔널의 지분 1%를 넘겨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201604080201_05

 

노재헌 씨와 SK 측은 노 씨와 첸카이가 스탠포드 동문으로서 개인적인 친분이 있을 뿐 회사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둘의 나이 차이가 9살이나 나는데다 단순한 친구 관계라고 보기에는 사업상 얽힌 부분이 너무 많아 보인다. 결국 여러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얽힌 노재헌씨와 SK, 인크로스의 삼각 관계를 이어주는 인물이 바로 첸카이와 김정환인 것으로 추정된다.

노재헌 씨의 페이퍼 컴퍼니 7곳은, 모두 똑같은 주소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주소는 인크로스의 홍콩 법인인 인크로스 인터내셔널의 주소와 일치한다. 주소가 일치하고, 노재헌과 김정환, 첸카이 등 몇몇 인물들이 이사와 주주를 번갈아 맡는 이 페이퍼 컴퍼니들은 어떤 목적으로 설립됐을까? 단순한 사업 상의 목적이었다면 대체 왜 이렇게 많은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고 왜 그렇게 복잡한 관계로 엮어 놓았을까?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SK와 인크로스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의혹은 점점 커지고 있다.

뉴스타파는 노재헌 씨와 김정환, 첸카이가 연관된 페이퍼 컴퍼니를 시각화 툴로 정리했다. 각각의 노드를 클릭하면 관계망이 펼쳐진다.


취재 : 심인보, 이유정, 정재원

 

금, 2016/04/08- 21:15
427
0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에도 주역은 전관 변호사들이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와 부장판사 출신의 최유정 변호사가 구속기소됐다. 이들은 앞으로 어떤 처벌을 받고,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과거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여러 법조비리 사건의 주인공들의 현재 모습을 보면 홍만표, 최유정 변호사의 미래를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1998년 발생한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 1999년 대전 법조비리, 2005년 윤상림게이트, 2006년 김홍수 게이트 연루자들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집행유예가 대부분, 다시 서초동 변호사로 활동

2016070104_01

뉴스타파 취재진은 과거 법조 비리 관련 법조인들을 예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근황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 법조계로 돌아와 활동 중이었고, 비리 사건 이후 더 화려하게 재기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이후 사면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의정부 법조비리의 주역이었던 이 모 변호사. 그는 당시 사건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서초동의 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과거 사건에 대해 언급하기를 한사코 꺼렸다.

아가씨(사무실 직원) 한 명 데리고 조용하게 살고 있어요. 친구들이 (사건)맡기고, 친척들이 맡기면 해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나는 사회에 대해서 잊었다니까. 나는 내가 사는 이 세상, 요만큼 안에서만 살고 있는 거야. 자연인으로서 그냥 생존만 하고 있는 거야.

같은 사건에 연루됐던 김 모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의 정직 2개월 징계를 받았던 그는 법조 비리 사건 이후 오히려 화려하게 재기했다. 미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났던 그는 공정거래법을 연구하고 돌아온 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송무담당관을 지냈다. 이 자리는 공정위가 조사한 사건을 검찰에 고소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높은 공정성이 요구되는 자리여서 개방형 공무원 직위로 운영되고 있다. 그 이후에 김 변호사는 외교통상부 한-EU FTA 자문위원과 방송통신위원회 법률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당시 사건을 반성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았다. 당시 판사들에게 준 돈을 ‘관행’이라고 합리화했다. 또 “검사들에게도 돈을 줬지만, 검찰은 수사하지 않았다”며 볼멘 소리를 늘어놨다.

지금은 몇 만원 이상도 문제가 되지만 그때는 판사든, 검사든 인사 치레 정도는 별 문제 안 되는, 용인된 시대였어요. 해방 전후부터 지금까지 다 그랬어요. 전국 어디서든 다 했어요. 다. 검사들이 지들 받은 것은 다 빼고, 판사들만 잡아서 처리시킨 게 의정부 사태예요.

김홍수 게이트에 연루돼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던 조 모 변호사. 그는 2010년 광복절 특사로 사면을 받은 뒤 줄곧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 역시 과거를 반성하지 않았고 후회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법무부가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인정해 나를 복권시켜줬다”고 말했다.

제가 법관 물러나게 된 데는 아쉽지만은 변호사라는 직업도 법관 못지 않게 보람이 있는 직업입니다. 법무부도 복권 신청도 안 했는데 저를 사면복권해줬어요. 솔직히 왜 그랬겠어요? 자기네들도 보기에 (기소가)무리했다, 미안했다 싶었겠죠.

법조계가 ‘불멸의 신성가족’으로 불리는 이유

2016070104_02

법조비리 전력자들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다시 법조계로 돌아올 수 있는 데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변호사법이 한몫하고 있다. 변호사법(5조)은 비리 법조인이 다시 법조계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터주고 있다. 금고형의 경우 형기 만료 5년 뒤, 집행유예는 그 기간이 끝나고 2년 뒤면 대한변호사협회(변협)에 변호사 등록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지금까지 변협에 의해 영구 퇴출된 변호사는 단 1명도 없었다. 변호사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을 규정하고 있는 변호사법이 오히려 비리 법조인들에게 쉽게 면죄부를 주는 셈이다.

법조 비리가 터질 때마다 나오는 대책도 변함없기는 마찬가지. 매번 눈가리고 아웅식의 대책이 반복되고 있다. 대법원은 6월 20일,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한 대책을 내놨다. 판사의 외부 전화를 녹음하고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업무를 제한한다는 것 등이다. 부당 변론 신고센터를 개설한다고 했지만 과거 대책의 반복일 뿐,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홍만표, 최유정 변호사의 미래를 짐작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취재: 강민수
영상: 김수영
편집: 윤석민

일, 2016/07/03- 21:00
427
0

 

세월호 유가족 홍영미씨의 위험사회 마주하기 

 "은밀하게 위험하게 : 위험사회 마주하기"이야기 마당 모두 발언 전문을 옮깁니다.  



은밀하게위험하게 이야기마당_재욱어머니.jpg  

 

 

세월호, 낡은 배를 운영할 수 있도록 법을 고쳐준 국회가 있었죠. 불법 증축을 눈감아준 감독기관이 있었습니다. 정해진 매뉴얼을 내팽게치고 가만히 있으라 말하면서 먼저 도망친 선장과 승무원들도 있었죠. 대통령에게 보고할 화면만 찾았던 공무원들이 있었고, 그저 보고만 듣고 자리를 안지켰던 대통령, 구조를 책임져야 하지만 퇴선 명령조차 내리지 않은 해경 지휘부, 배 안에 수 백명이 이 있음을 알고도 사설 구난 업체만 기다리며 골든타임을 허비해 버렸고, 터무니없는 공기주입 쇼로 국민들을 기만했습니다. 여러분들 기만 당한거 아시죠?

 

언론을 동원해서 왜곡보도를 일삼은 정부가 있었죠. 얼마 전에 드러났죠. 그 이정현이라는 작자가 단식을 한답니다. 이게 무슨... 진실을 뒤로한 채 숨어있는 언론 문제는 또 있었죠. 회장님만 뒤쫓았던 언론, 유병언 사건, , 말도 안되는... 저희 가족들은 그걸 보면서 정말 콧방귀를 꼈었는데요, 왜곡하고 은폐하고 숨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죠. 그 때, 잘 몰랐던 부모님들은 분노도 했는데, 이것이 분노해서 될 일이 아니고 어떤 식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것은 불 보듯 자명하고 뻔 한 결과였는데,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휘둘렸다는 거죠. 언론의 병폐였죠.

 

정치적인 계산하는 야당도 있었습니다. 여당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야당이 야합을 해서 특별법 엉망 진창으로 만들었죠. 반쪽짜리 특별법 만들고 반쪽짜리 시행령 만들고 그런 정치행태들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방해와 역할을 제대로 못하게 하는 지금 우리의 정치세력들 권력들이 또 있습니다. 그야말로 이 사회가 일치단결해서 배를 뒤집고 아이들이 죽어 가는데 합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현실을 눈으로 피부로 느낀 지난 2년 반 동안의, 저희 유가족 뿐 아니고 세월호에 관심이 있고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고자 규명하고자 관심 있는 모든 분들에게 보여준, 우리사회의 정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지만, 그걸 일일이 다 설명하자면 저희 가족들은 벌써 죽어도 다 죽었어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럼에도 지금도 잇몸이 성한 사람이 별로 없는데 이를 얼마나 깨물고 밤낮으로 부모님들이 참고, 또 참고 견디면서 이를 갈고 있는지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싸워야 할 일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지금은 요령이 생겨서요. 조절을 합니다. 싸움도 요령껏 조절합니다. 처음엔 몰라서 그냥 뭐, 그 장대 같은 경찰들 전경들 앞에서 몸싸움도 하고 옷도 훌러덩 벗어보고 별의 별짓도 다해보고 욕도 해보고 육박전도 해봤어요. 저희가 똥물만 안 뿌리고 화염병을 안 던졌을 뿐이지 그렇게 치열한 싸움, 국회 담벼락도 뛰어넘어 봤고, 해수부 담벼락도 뛰어넘어 봤습니다. 그런데 청와대 담벼락은 차마 안뚫리더라고요. 그렇게 긴 싸움을 해 봤고, 앞으로 더 긴 싸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 싸움을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아직은, 지금은 요령껏 준비를 하고 싸움의 방법들을 익혀가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런 일이 다시는 생기면 안되겠지만, 용산 참사 어르신들이라든지, 밀양 어르신들이 저희에게 정말 미안하다. 그 때 더 열심히 싸우지 못해서, 우리가 더 싸워서 해결해내지 못해서 너희들 같은 막내를 만나게 됬다. 너무나 젊은 사람들이 너무나 일찍 세상의 아픔을 경험하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이렇게 말씀 하셨는데, 만약에 이런 참사를, 죄송합니다.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사회 구조가 있어서 이런일이 또 일어 난다면 다시는 이런 과정을 겪지 말라고 저희가 손잡아주고 이끌어주고 그렇게 하려고 피나는 노력으로 싸움을 준비하고 있고, 또 싸우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국가와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이렇게, 그야말로 빤스하나 걸치지 않고 그대로 드러냈거든요. 그런데 이런 민낯을 드러내고 나서도 그 어디에서도 그 과정을 겪으면서 생명의 존엄, 생명의 가치와 안전에 대한 부분을 요만큼이라도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 국가는 세월호 참사 당시 컨트롤 타워가 전혀 없었고요. 그리고 수많은 가족들이 304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엄마 아빠 외가 친가 다 치면 3천명이 넘어요. 피해를 직간접 적으로 입은. 그리고 집단적 트라우마를 입은 안산시 시민들, 거기에 대한 컨트롤타워 매뉴얼, 심리, 지원에 대한 어떤 매뉴얼도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들이 요구하면 해결해주고, 이렇게 해달라 그러면 그때서 알아보고 안내해주고. 그런 과정들이 전부였어요. 그래서 특별조사위원회 만들고 이렇게 진상규명 하면서 다 해결된거 아니냐, 국가에서 국가배상 했으니까 (물론 배보상에 관한 부분은 아시겠지만) 다 해결된거 아니냐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는 상황의 정 반대의 입장. 저희가 세월호 참사는 지금도 계속 제2, 3의 피해와 해결해야 되는 부분들 아직 현재진행형이라는 것. 저희가 아니더라도 만약에 또 다른 누군가가 이런 일을 겪는다면 그들도 똑같은 과정으로 국가는 국가폭력을 유가족들에게 행사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유가족으로 사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고 모든 유가족들이 많은 유가족들이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거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월호 유가족이 이렇게 피터지게 싸우지 않으면 그동안 힘들게 싸워왔던 어르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못싸워줘서 미안해 라는 소리, 저희는 저희를 통해서 두 번다시 그런 이야기를 안해도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고, 세월호 유가족이 마지막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년 반 동안 그 어디에도 안전이나 생명 존엄의 가치에 대한 얘기들이 없었기 때문에 저희가 2년 반 동안 외친게 뭐냐면 진상조사를 통해서 반드시 책임자를 처벌해야 다시는 이런 일이 안생기고 그들이 뜨끔해야 이런 일들을 안 벌일 것이며,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 때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래서 안전한 사회로 가야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된다고 한목소리로 주구장창 모든 분들이 외쳤고 가족들이 외쳐댔습니다. 그런데 416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고 했던 그 수많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2년이 훌쩍 지난 지금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는 이 사회의 체감온도 어떻습니까. 백남기 어르신의 이 상황을 보더라도, 과연 이 외침이 얼마나 더 발전했을까. 우리가 외치는 만큼 사회가 변한다고 했는데 내가 도대체 어떻게 외쳤길래 지금 이상황이 되었을까. 굉장히 안타깝고 굉장히 먹먹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런 이야기를 또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한번 읽어 볼테니 그냥 한번 들어보세요.

 

침몰 원인조차 알지 못한 채 생때같은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은 900여일이 다 되가도록 곡기를 끊고 거리를 걸었고, 아이들 이름표를 달고 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고 피켓팅을 하고, 오늘도 피켓팅 하고 왔습니다. 새누리당. 안산시에 여당이 두명 되고 야당이 두명 된거 아시죠. 천인공노할 일이 또 벌어졌는데. 여당의원 두 명 중 한분은, 자기 조카가 희생이 되었어요. 그래서 그 분은 아프단 소리도 못하고 나름 중립적 입장을 지키면서 의지를 표명하고 교실 존치 문제 싸인도 했는데, 처음에 트라우메 센터를 건설해야 된다고 해야 했던 그 새누리당 의원은 당 정책에 반한다는 이유였겠죠? 지금은 당론에 따라서 세월호 특별법 개정도 반대하는 그런 여당 의원이 있습니다. 그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 들이 매일 피케팅을 합니다. 그래서 그가 깨어날 수 있도록. 그런 일들도 아직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회를 하고 진상규명과 안전사회를 외치고 아직도 전 국민들에게 전 국토를 싸돌아다니면서, 그리고 미국, 일본, 캐나다도 가면서 저희가 진상규명을 외치고 다니고 있습니다. 어떤 가족이 오늘 페북에 올렸습니다. 어제는 병원 길바닥에서 밤을 샜습니다. 오늘은 해수부 길바닥에서 또 밤을 지새야 합니까. 가족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간다! 투쟁! 그러고 또 올렸더라고요. 이렇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직은.

 

그런데요. 책임 있는 자들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일상으로 돌아가 경제를 살려야 되지 않겠냐. 그것이 애국하는 길이다. 하고 얘기 하고 있죠. 뭣이 애국인지 모르겠습니다. 해결은커녕 방향은 해산이면서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고 저희를 몰아붙이고 있죠. 인양, 돈이 많이 든다고 반대하는 정치인들은 그저 놀러가다 당하는 교통사고라는 식으로 유가족의 마음을 후벼 팠고요, 9명의 미수습자, 미수습자, 아직도 저 맹골수도 바닷 속에, 이 비가 오는데... 미수습자 가족들, 저도 그 마음을 몰라요. 여러분들은 아시겠어요?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몰라요. 애통하죠. 애통하다 하면서 그들을 인질로 삼고 있습니다. 이 정부가. 인양, 올해 안에 힘들꺼라고 어제 발표를 했더군요. 인양 쑈 하고 있습니다. 특조위가 혈세낭비라고 떠들어대더니 서둘러서 조사만료 땅땅 했죠. 졸속 종료 시키고자, 그렇죠. 법 위의 법으로, 법의 잣대를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하면서 불법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거죠. 지금까지 우리사회 수많은 세월호 들이 이런 식으로 수장되고 잊혀지도록 강요되어 오고 있습니다.

 

단순히 세월호 뿐이 아니죠. 여전히 이 사회는 안전이 이윤보다 먼저인 경우는 어디에도 없어 보이고요. 메르스 사태,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드배치, 지진대처, 백남기 어르신 살인 물대포, 구의역 사고, 위안부 협정, 역사교과서 국정화, 미르k스포츠 재단 등등 모든 면에서 망국으로 치닫는 위험의 연속들이, 지금도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저는 너무 화가 나요. 요즘은 화가 더 많이 나. 처음에는 몰랐기 때문에 그랬는데, 2년 이렇게 지나면서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납니다. 그리고 아이 꿈을 요즘 많이 꿔요. 부쩍 많이 나타나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제가 괴물이 되는 것 같아요. 그냥 불감증에 걸려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잇몸이 굉장히 아파요. 굉장히 어금니를 많이 깨뭅니다. 백남기 어르신, 우리 아버지잖아요. 아버지 저렇게 보낼 수 없거든요. 그 가족들의 마음을 이만큼이라도 안다면, 국가폭력 앞에 등 따시고 배부르게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절실하게 깨달은게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곧 세월호고, 세월호 참사로 이 사회의 재난과 위험의 문제가 더 이상 몇몇 개인 잘못이나 부주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 문제다. 우리 사회 안전 문제를 단순히 국가에 일임하는 것, 이건 아니다. 일임 해봐야 돌아오는 건 국가 폭력에 내가 희생자와 재물이 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다는 것, 그래서 스스로 책임지는 주인의식이 생긴 것 같애요. 저도. 저 자신도 정말 평범한 가정주부가, 내 가정만 중요했던 내가 투쟁을 외칠 수 있는 주인의식, 이 사회는 내가 변화시키지 않으면 절대 변하지 않는다. 내가 변하는 만큼 딱 그만큼만 변한다는 주인의식, 이런 것들이 생긴 것 같아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국가 존재의 목적을 깨버린 저들, 국민의 생명을 도구삼아 부패와 배신의 정치를 일삼으며 신뢰를 깨버린 위정자들을 우리는 더 이상 용서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용서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있습니다. 생명을 가지고 장난치는 일, 국민의 생명을 재물로 삼는 이런 정신을 가지고 있는 썪어 빠진 지도자, 이런 인격은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됩니다. 매뉴얼도 골든타임도 재해대책도 없는 뒷북치는 기가막힌 대한민국 사회에서 세금바쳐 가면서 각자 도생해야 하는 현실을 우리는 확인 했기에, 모두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매 순간 듭니다. 여러분들은 왜 이 자리에 와 계신가요. 절대로 용서할 수도 없고 용서해서도 안되기에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기에 그 뜨거운 가슴으로 이 자리에 계신거 아닌가요 묻고 싶습니다. 제 마음만 그런가요. 맞죠?

 

그래서 저희 가족들이 제안합니다. 행동하십시오. 그냥, 나 요만큼만 하면 되겠지, 이만큼만 내가 마음쓰면 되겠지. 그런 마음 말고. 어제 유경근 집행위원장님이 속에 있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백남기 농민 돌아가신 날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앞 추모제에서) 세상은 내가 변하는 만큼 딱 변한다. 내가, 변하기를 원하는 만큼 딱 변한다. 지금 여러분은 이 사회가 얼마만큼 변하길 원하십니까. 지금 우리는 목숨 걸고 해도 모자랄 판이다. 라고 얘기하시면서, 자기는 과연 목숨 걸고 했는가 그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도 굉장히, 나도 목숨 걸고 하고 있는가 돌아봅니다. 이런 자리를 통해서 다시 돌아봅니다. 아침에 눈 뜨면서 우리 아이 이름 부르면서 돌아봅니다. 그래서 지금은 행동해야 할 때, 이왕이면 뜨거운 가슴으로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사회 위험요소를 총체적으로 드러낸 사상 유례 없는 세월호 참사의 온전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없이는 안전사회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고요. 그래서 세월호 특조위에 안전사회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안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된다고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지금 저희가 활동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참사는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 그리고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서 시민의 생명을 위험에 빠트리는 일이 지속될 것이고요, 책임자가 처벌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월호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 운동은 지역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제2, 3의 세월호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고요, 416 진상규명 운동, 아프지만 아픔을 딛고 반드시 사과시켜서 반드시 우리의 희망으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아이들이 겪은 일이 바로 내 아이가 겪을 수 있는 일이고요, 백남기 어르신이 겪은 일이 바로 내 부모가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같은 대한민국 국민인 나, 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내가 겪는 일이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위기가 위기감을 우리는 안전사회 건설을 통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더 이상 남의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영혼을 가진 아이들이었습니다. 꽃봉오리 아이들이었어요. 그 아이들이, 저 하늘에서 김관홍 잠수사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백남기 할아버지를 마중나와 있을 겁니다. 이 시대의 아이들과 책임 있는 어른인 아저씨와 그리고 나이만 먹는 늙은이가 아닌 정말로 시대의 어르신이 만나서 어떤 미래를 꾸미고 그려낼 지는 모릅니다. 거기서 그들은 이런 난상 토론을 하면서 세상을 꾸며내고 그려내고 만들어내고 있을 껍니다. 지금 우리는 여기에서 함께 숙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생각합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확들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단어가 뭘까. 저는 그걸 엄마라고 생각합니다. 엄마, 엄마라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엄마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고요,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가장 마지막에 찾았을 그 안전한 단어, 엄마. 그래서 가장 안전한 존재가 되어서 가장 안전한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세상, 생명이 존중받고 안전이 보장되는 그 날까지, 이 엄마가,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이 함께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하는 사회를 만들어갔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6년 9월 27일, YWCA에서 열린 "은밀하게 위험하게 : 위험사회 마주하기"이야기 마당은 다양한 영역의 위험지대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발표를 했습니다. 

 

 은밀하게위험하게_이야기마당.jpg


"가족들이 가해자라는 죄의식이 있다. 세상에 알리는데 5년 넘게 걸렸지만 이제라도 많은 것들이 드러나고 있다. 옥시에서 사과를 처음으로 했다. 9월 말 기준 제보자만 4486명에 920명이나 사망했지만, 이제 시작이다. " -강찬호 옥시 가족 피해자 모임 대표

 

" 처음엔 몰랐다. 싸우다 보니 피해자가 많아졌고, 삼성이 정말 위험했던 곳이다. 반도체는 깨끗하다는 환상이 있지 않나. 삼성은 위험하다는걸 드러낸 싸움이었다. 전자산업은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가 절대다수다. 사람이 죽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위험한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산업이니 만큼, 삼성이 제대로 사과하고 반성하고, 안전해져야 한다. "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

 

"비밀은 위험하다! 4년 전 불산 누출 사고가 있었다. 그 때부터 이 운동이 시작되어 지역사회로 확장되고고 있다. 지금도 사람/노동자를 죽이는 화학물질은 기업의 영업비밀이라고 한다" -일과 건강 현재순 사무국장


"GMO, 안전한 먹을거리 운동만이 아니다. 그 뒤에 숨어있는 무차별한 기업의 이윤추구, 정치와 권력, 과학의 이름으로 생명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구조를 봐야한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소비자 운동이 중요하다" -두레 생협 유경순 센터장

 

"1년에만 2,400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다가 죽는다. 조합원 사망 소식도 이삼일 간격으로 듣는다.  위험한 노동환경 개선하는 일, 일터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 결국 우리 사회의 안전과 깊은 연결지점이 있을 것이다.민주노총 최명선 국장

 

금, 2016/09/30- 16:35
427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