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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돈으로 의상비 현금결제?… 재산 내역 상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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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돈으로 의상비 현금결제?… 재산 내역 상 불가능

익명 (미확인) | 월, 2017/01/09- 22:08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비서 역할을 한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이 자신을 통해 대통령이 본인의 의상비를 현금으로 결제했다고 주장했지만, 뉴스타파가 박 대통령의 재산 증감 내역을 살펴본 결과 이 같은 주장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의상비 현금결제 주장이 거짓일 경우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의상비 뇌물 혐의가 추가될 수 있다.

윤전추 행정관은 지난 5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2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상비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노란 서류 봉투를 의상실에 갖다 주라 하셨다. 내용물을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현금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그러나 윤 행정관은 대통령의 의상비를 대신 지급하면서도 영수증을 챙기지 않았고 정확한 총액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 2017년 1월 5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3차 변론기일 윤전추 행정관 증인 신문 발언 중

박 대통령의 옷 구매량은 그동안의 언론 보도를 근거로 추산하면 한 해 90여 벌 정도이다. 패션업계에 따르면 한 벌당 가격은 대략 100에서 200만 원대로 추정된다. 최소 백만 원으로 잡아도 한 해 9천만 원이 옷값으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 연봉은 약 2억 원으로 윤 행정관의 주장대로라면 박 대통령은 최소한으로 잡아도 연봉의 절반 정도를 옷값으로 사용한 셈이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청와대는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정장뿐만 아니라 구두, 가방 등에 드는 모든 비용을 개인 비용으로 부담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출처: 하승수 전 녹색당 운영위원장 페이스북(박근혜 의상비 관련 정보공개소송에서 청와대가 제출한 준비서면자료 중 일부)

▲출처: 하승수 전 녹색당 운영위원장 페이스북(박근혜 의상비 관련 정보공개소송에서 청와대가 제출한 준비서면자료 중 일부)

그러나 지난달 7일 국회 국정조사특위에 출석한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는 박 대통령의 옷과 가방 등 비용 모두를 최순실 씨가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 2016년 12월 7일 국회 국조특위

박근혜 대통령의 재산은 대통령 취임 이후 2012년 21억 8,104만 5,000원에서 2016년 35억 1,924만 4,000원으로 계속 늘어났다. 의상대금 대납 논란이 제기되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재산은 2014년에서 2015년 사이 335,920,000원 증가했고, 다음 해 2016년까지 349,739,000원으로 매년 3억 원 이상 증가했다. 서울 삼성동 사저를 제외하고 예금만 살펴보더라도 2014년 533,585,000원이 2015년 809,505,000원으로 2016년에는 989,244,000원으로 계속 증가해왔다. 옷과 가방, 구두 등을 합쳤을 때 최소 1억 원 이상인데 이런 돈이 지급된 흔적이 없는 것이다.

 

 

▲ 출처: 고위공직자 재산정보공개 – 박근혜대통령

※ 박근혜 대통령 2014년 신고내역(링크)
※ 박근혜 대통령 2015년 신고내역(링크)
※ 박근혜 대통령 2016년 신고내역(링크)

박근혜 대통령의 의상비용을 최순실이 대납했다면 박 대통령에게는 또 다른 뇌물혐의가 추가될 수 있다. 대통령의 의상비를 현금으로 지급하면서 영수증이나 총액조차 확인하지 않았다는 윤 행정관의 진술에 위증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윤 행정관의 위증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윤 행정관은 ‘고영태를 전혀 모르는 사이’라고 증언했지만,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는 검찰에서 “윤 행정관으로부터 박 대통령의 신체 사이즈를 전해 들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고영태와 윤전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 2017년 1월 5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3차 변론기일 윤전추 행정관 증인 신문 발언 중

윤 행정관은 또 “최순실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아 의상실에 간 적은 단 한번도 없다”며 오히려 최순실이 자신이 의상 업무를 일부 도왔을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상실의 위치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못했다.

▲ 2017년 1월 5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3차 변론기일 윤전추 행정관 증인 신문 발언 중

▲ 2017년 1월 5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3차 변론기일 윤전추 행정관 증인 신문 발언 중


취재 : 연다혜 최문호 임보영
편집 : 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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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는 CIA 정보원이나 첩보 세계 관련자들이 당국의 눈을 피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작성 : 윌 피츠기번(Will Fitzgibbon)

재선 캠페인이 한창이던 1996년 8월의 어느 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캔자스 시티에 위치한 웨스틴 크라운 센터 호텔의 한 연회장을 찾았다. 선거 자금 25만 달러가 달린 행사 때문이었다. 그날의 주인공은 클린턴의 든든한 후원자 파하드 아지마(Farhad Azima). 아지마를 향해 서 있던 클린턴을 시작으로 참석자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이란 출신의 미국 전세 항공사 대표인 파하드 아지마는 미 행정부의 오랜 후원자다. 1995년 10월부터 1996년 12월 사이 백악관을 총 10회 방문했고, 대통령과 함께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1999년 12월 힐러리 클린턴이 상원 의원직에 출마하자 후원 행사를 열어 40명의 참석자들로부터 2,500 달러의 후원금을 모으기도 했다.

이러한 아지마의 민주당 기금모금 활동 덕분에 후일 그의 이력에 흥미로운 상황이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발생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정치 스캔들 ‘이란-콘드라(Iran-Contra)’사건으로 아지마 역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된다.

1980년대 중반, 레이건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미국인 인질 7명의 석방을 돕기 위해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고 그 이익으로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1985년에 아지마의 회사의 보잉 707기가 23톤에 달하는 군사 장비를 이란으로 운반했다. 그는 해당 비행기는 물론이고 그러한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는 ICIJ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란-콘트라 사건과 무관하다”고 답했다. 또한, “미국 내 모든 관련 기관에서 이미 조사를 받았고, ‘관련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면서 “사법 당국이나 규제 당국은 헛수고를 했고, 낚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Suddenutsche Zeitung, SZ), 언론 파트너가 함께 입수한 문건에는 미국에서 가장 화려한 정치 후원자 중 한 명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이란-콘트라 사건 관련자이기도 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억만장자 아드난 카쇼기(Adnan Khashoggi)의 역외 거래 관련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1997년부터 2015년 말 사이 작성된 1,100만이 넘는 문건에는 파나마 국적의 기업 Mossack Fonseca(MF)의 내부 활동상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MF는 기업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어 합법적인 기업 활동과 은밀한 첩보 세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데 전문성을 자랑하는 파나마 법률 회사다.

스파이들의 역외 거래 활동

이번 문건은 전직 CIA 요원과 무기 거래상들이 개인적, 사적 이익을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하는지에 대해 수백 건의 세부 사항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또한, 첩보 국장, 비밀 요원, 정보원 등 CIA와 다른 정보 기관에서 활동하던 기간이나 그 이후에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했던 수 많은 인물들의 활동 상황도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조지아대 로흐 K. 존슨 교수는 페이퍼 컴퍼니의 위장과 관련해 “자신이 스파이임을 밝히고 활동하는 사람은 없다”고 설명했다. 한 때 미국 정부정보활동조사특별위원회(속칭 ‘처치위원회 (Church Committee)’)의 자문을 역임했던 존슨 교수는 수십 년간 CIA의 위장 기업(front company)을 연구했다.

이번 문건에 포함된 MF의 고객 가운데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제1대 정보 국장 셰이크 카말 아드함(Sheikh Kamal Adham)과 콜롬비아의 퇴역 육군 소장 리카르도 루비아노그루트(Ricardo Rubianogroot), 그리고 의사에서 폴 카가메(Paul Kagame) 르완다 대통령의 정보 국장으로 변신한 엠마누엘 느다히로(Emmanuel Ndahiro) 준장(Brig. Gen.)도 포함되어 있다. 셰이크 카말 아드함은 미국 상원위원회에서 “1960년대 중반부터 1979년까지 CIA의 중동 지역 주요 소식통”으로 언급된 인물로 후일 미국의 은행 스캔들에 연루된 여러 페이퍼 컴퍼니를 소유했었고, 전직 콜롬비아 항공정보국장이기도 한 엠마누엘 느다히로는 항공 물류 기업의 주주였다.

아드함은 1999년 사망했고, 느다히로는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루비아노그루트는 항공 전자기기 회사(미국) 매입을 위해 설립된 West Tech Panama의 소주주였음을 자신이 ICIJ 파트너와 콜롬비아 탐사 보도 기관 Consejo de Redaccion에 확인시켜 주었다. 현재 이 회사는 파산 절차를 진행하는 중이다.

MF는 “우리는, 신규•예비 의뢰인에 대해 우리 업계가 준수해야 하는 현 규정과 기준보다 훨씬 철저한 실사를 실시하고 있다”면서 “의뢰인 상당수는 주요 중개 은행(correspondent banks)을 비롯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로펌, 금융기관을 통해 확보하고 있으며…따라서 신분이나 자금 출처에 대한 증빙서류 제공을 꺼리거나 그러한 서류 제공이 불가한 개인, 기관 등의 의뢰인과는 함께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성명을 통해 밝혔다.

한편, 스파이 세계를 모방한 사례도 문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위장 기업을 설립하려는 의뢰인을 대신해 한 금융 관계자가 MF에 보낸 2010년도 서신에는 “회사 이름을 ‘글로벌보험서비스(World Insurance Services Limited)’나 007영화에 등장한 ‘유니버셜무역회사(Universal Exports)’로 했으면 하는데, 그렇게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유니버셜무역회사는 이언 플레밍의 소설 “제임스 본드”에 등장하는 영국 첩보국의 위장 기업이다.

문건에 따르면, MF는 007 시리즈 제목과 악당의 이름을 따서 ‘Goldfinger,’ ‘SkyFall,’ ‘GoldenEye,’ ‘Moonraker,’ ‘Specgre,’ ‘Golfeld’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했고, 심지어는 ‘Octopussy’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해 달라는 요청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뢰인 중에는 실명이 오스틴 파워(Austin Powers), 잭 바우어(Jack Bauer, 유명 미국 드라마 ‘24시’ 주인공)인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후자의 경우 그 이름은 의뢰인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했던 직원이 우연히 해당 의뢰인을 술집에서 만나서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첩보 활동과 MF의 연계는 허구가 아닌 실제 상황이다.

항공업계

문건에 따르면, 당시 60개 이상의 항공기를 보유한 전세 항공사를 운영하던 파하드 아지마는 2000년에 MF와 함께 지사 형태의 첫 페이퍼 컴퍼니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했다. 회사명은 ‘ALG (Asia & Pacific) Limited’ 였다.

한편, MF는 2013년이 되어서야 아지마와 CIA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당시 의례적인 신설 기업 주주에 대한 배경 조사 과정에서 아지마의 CIA 연루설 관련 기사를 발견한 것이다. MF 직원들이 찾아낸 온라인 기사에는 그가 리비아로 무기를 밀매한 전직 CIA 요원에게 “항공•물류 서비스를 지원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한 그와 관련해서 CIA로부터 아지마를 “건들이지 말라(off limits)”는 경고를 받았다는 FBI 요원의 증언이 담긴 기사도 있었다.

MF가 아지마의 대리인에게 신원을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지마는 이후에도 MF의 의뢰인으로 남았고, 그와 관련해 놀라운 일들은 계속됐다.

MF가 호셍 호사인푸아(Hosshang 호사인푸아)와 CIA 간의 유착 관계에 대한 온라인 문서를 발견한지 1년 뒤, 미 재무부가 그를 수천만 달러가 경제 재제를 받던 이란의 국내 기업으로 흘러가는 것을 도운 인물이라고 언급했다.

문건에 따르면, 2011년에 조지아(옛 그루지아)의 한 호텔을 매입하려 했던 기업의 내부문서에도 아지마와 호사인푸아의 이름이 등장했다. 같은 해 재무부 관계자들이 호사인푸아가 플라이조지아(FlyGeorgia)라는 민간 항공사를 공동으로 설립한 뒤, 또 다른 두 명과 함께 이란으로 수백만 달러를 빼돌리기 시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이와 관련해서 3년 뒤에 처벌을 받았다.

호사인푸아는 2011년 11월부터 시작해 잠깐 동안만 유라시아 호텔 홀딩스(Eurasia Hotel Holdings Limited)의 주식을 보유했다. 그런데, 행정팀에서는 MF측에 호사인푸아는 회사와 관련이 없으며 그가 보유한 주식은 ‘행정 착오(administrative error)’로 발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상호를 ‘유라시아 항공 홀딩스(Eurasia Aviation Holdings)’로 변경한 뒤, 회사 전용기(Hawer Beechcraft 400XP)를 162만 5천달러에 구입한 것으로 밝혀 졌다.

아지마는 그 회사는 단지 전용기 구입을 위한 이용된 것일 뿐, 호사인푸아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ICJI에 해명했다.

또한, 당시 구입한 전용기의 사용지가 미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미국에 등록할 필요가 없었고, 회사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한 것은 세금 문제 때문이었다고 설명하면서, “나는 세금이란 세금은 모두 내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호사인푸아에게서는 아무런 언급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2013년 법적 처벌을 받기 전 이루어진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란과의 관계를 적극 부인하면서 “법적 조치를 피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답했다.

MF의 내부 문건에서 발견된 CIA와의 커넥션과 관련해 눈에 띄는 인물로 로프튀르 요한슨(Loftur Johannesson)도 있다. 올해 85세인 그는 아이슬랜드의 수도 레이캬비크(Rekyavik) 출신이다. 70년대와 80년대 CIA와 함께 일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의 반공 무장 단체에 무기를 공급한 인물로 책이나 신문에서 흔히 등장하고 있다. CIA를 위해 활동한 대가로 받은 돈으로 바베이도스에서는 저택을 프랑스에서는 포도 농장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 졌다.

요한슨이 MF의 내부 문서에 등장한 것은 2002년도로 첩보원 활동에서 은퇴한 지 한참이 지난 뒤였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와 파나마에 있는 페이퍼 컴퍼니 최소 4곳과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런던의 웨스터민스터 사원 뒤쪽 지역과 바베이도스 수변 단지 등에 고가의 주택을 소유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들 지역의 주택의 매매가는 한 채에 3,500만 달러에 이른다. 2015년 1월에는 MF서비스 대가로 수천 달러를 지불했다.

“요한슨씨는 항공 관련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제적인 사업가다. 그가 정보 기관을 위해 일을 했었을 것이라는 ICJI의 주장을 단호히 일축했다”고 대변이 ICJI에 전했다.

요원 ‘로코 & 008’ = 페이퍼 컴퍼니 설립 면허?

이란-콘트라 스캔들과 연루된 또 다른 인물로 아드난 캬쇼기(Adnan Khashoggi)를 들 수 있다. 아드닌 캬쇼기는 한 때 세계 최고의 ‘사치왕’으로 이름을 날렸던 사우디의 억만장자다. 1992년도 상원 보고서(공동 작성자- 존 케리 상원의원)에 따르면, 국제적인 무기 중개상이었던 그는 1970년대 미국과 사우디간에 있었던 수백만 달러 규모의 무기 거래 협상을 이끌었고 이란과의 무기(총) 거래가 “미국 정부에 유리하도록 이끈 핵심 인물”이었다.

카쇼기의 이름이 MF 문건에 처음 등장한 것은 그가 ISIS Overseas S.A라는 파나마 회사의 대표로 취임했던 1978년이다. MF와의 비즈니스는 대부분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에 이루어졌고, 적어도 4개 이상의 회사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MF의 문건에는 카쇼기가 소유한 회사들의 설립 목적은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중 두 곳 (Propicterrain S.A.와 Beachview Inc.)은 스페인과 카나리아 제도(the Grand Canaries islands)의 주택 담보대출 (mortgages for homes)과 관련이 있었다.

카쇼기가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대통령이 수백만 달러를 해외로 빼돌리는 것을 도운 혐의로 기소되어 전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던 그 해, MF는 아다난 캬쇼기 그룹(Adanan Khashoggi Group)이 지급한 돈을 처리하고 있었다. 비록 이후에 무혐의 처리가 되기는 했으나 당시 MF가 그의 과거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자료는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MF의 문건에는 MF가 2003년에 캬쇼기와의 거래를 중단한 것으로 나와 있다.

MF는 냉전 시대 적이라 해도 크게 차이를 두지 않았다.

‘요원 로코(Agent Rocco)’라는 가명으로 동독 비밀경찰의 스파이로 활동한 혐의로 기소되었던 그리스의 부호 소크라티스 코칼리스(Sokratis Kokkalis, 76세)도 명단에 있었다. 독일 의회 조사 결과, 코칼리스는 1960년대 초반에 독일과 러시아에서 거주하면서 주변 인물과 연락책에 대한 정보를 주기적으로 동독 비밀경찰에 제공한 것으로 밝혀 졌다. 그는 2010까지 그리스 축구단인 올림피아코스(Olympiakos)의 구단주였으며 현재 그리스 최대 통신사 (OTE)를 소유하고 있다.

MF는 2015년 2월 코칼리스 소유의 기업(Upton International Group)에 대한 의례적인 조사 과정에서 그가 첩보 활동에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MF 직원이 인터넷 검색 이후 작성한 기록을 보면 코칼리스는 “60년대 초에 간첩, 사기, 자금 세탁 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동독 당국에 의해 기소되었지만 결국 무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적혀 있다. MF 문건에 따르면 코칼리스의 대리인은 코칼리스 본인과 그가 소유한 회사, 회사 설립 목적에 대한 MF의 요청 사항에 응하지 않았다.

코칼리스 측으로부터는 아무런 의견도 들을 수 없었다. 이처럼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그도 한때 모든 혐의를 부인하면서 유명 정치인들과 언론(신문사)이 자신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2005년, MF 직원들이 기겁할 만한 일이 발생했다. MF의 회계장부에 스페인의 악명 높은 비밀 요원 프란시스코 파에사 산체스 (FRanscisco Paesa Sanchez)로 추정되는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산체스 관련 자료를 처음 찾아낸 한 직원이 “내용이 정말 오싹했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MF은 ‘프란시스코 P. 산체스 (Francisco P. Sanche z)’라는 인물이 이사로 있는 회사 7개를 설립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파에사는 부패 경찰서장, 분리주의자 등을 색출하면서 부를 축적했고 수백만 달러를 가지고 스페인에서 도피했다. 1998년, 파에사는 자신이 사망한 것으로 위장하고 그의 가족들은 파에사가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는 사망 진단서 발급받았다. 하지만, 수사 당국이 룩셈부르크에 있던 그를 추적해 찾아냈다. 파에사는 자신의 사망 보도에 ‘착오(misunderstanding)’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2005년 12월, 한 스페인 잡지에 모로코 호텔, 카지노, 골프장을 건설하고 소유하고 있는 파에사의 ‘비즈니스 네트워크’ 관련 기사가 실렸다. 해당 기사에는 MF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회사 7곳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2005년 10월, MF는 P. 산체스(파에사)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들과 관계를 끊기로 결정을 내렸다. MF는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스캔들이 당사의 이미지에 미칠 영향이 우려되어 이 같은 결정을 내기게 된 것”이라고 관련자에게 서면으로 거래 중단 사유를 밝혔다.

MF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의뢰인이 MF와의 거래와 관련된 사실 자료 특히 자신의 신원과 배경에 솔직하지 않은 경우, 이는 거래 관계 종료 사유로 충분하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파에사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검지는 없어도 이름은 두 개

2015년 3월,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클라우스 몰너(Claus Mollner)’라는 인물이 거의 30년 동안 MF의 고객이었던 것이다. 관련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페이스북(Facebook), 가계도, 언어적 검수(linguistic review) 자료 가운데 뜻밖의 자료를 찾아내면서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 자료들은 델라웨어 대학교에 있었다.

이 자료들에는 “클라우스 몰러(베르너 마우스(Werner Mauss)가 이용한 이름)”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008 요원(Agent 008)’ 또는 ‘검지 없는 남자(The Man of Nine Fingers)’로 알려 진 몰너, 즉 마우스는 ‘독일 최초의 비밀요원’으로 일컬어 지고 있다. 지금은 은퇴한 마우스의 웹사이트에는 ‘100개의 범죄 조직을 소탕(smashing 100 criminal groups)’ 작업에서의 그의 역할이 무용담처럼 설명되어 있다.

1966년에 콜롬비아 당국이 게릴라와 공모하여 여성을 납치하고 몸값의 일부를 빼돌린 혐의로 마우스를 기소했다. 마우스는 납치를 주도한 것이 자들이 반군 세력이 아니었으며 자신은 당시 몸값을 절대 빼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모든 작전은 독일 정부 기관과 관련 당국의 협조 여부에 영향을 받는다”고 밝혔다.

마우스의 실명이 MF의 내부 문건에 언급된 적은 없지만, 수 많은 자료들을 통해 파나마에 있는 그의 기업 네트워크를 자세히 알 수 있다. 적어도 두 개 회사가 독일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마우스의 변호사는 이번 탐사보도팀(ICJI, Sz, DNR, 등)에게 마우스는 사적인 이유로 역외 회사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면서, 그와 관련된 모든 관련 기업과 재단의 설립 목적은 “마우스가(家)의 재정적 이익(financial interests)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기업과 재단은 모두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고 그에 따른 세금도 모두 납부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MF의 내무 문건에 등장한 일부 기업은 평화적인 “인도적 지원 활동” 및 “병원, 수술 장비, 대규모 항생제 등 구호 물품 전달”을 위한 인질 협상 시에 이용됐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문건에 따르면, 2015년 3월 MF 직원이 구글 검색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몰너와 마우스의 연관성을 발견했다. 그러나, MF가 마우스의 실제 정체를 파악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그의 기업은 2015년도 까지 MF의 장부에 기록되어 있었다.

MF는 몰너든 마우스든 이름에 상관없이 자사의 고객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1988년 몰너를 인터뷰했던 기자로서 “베르너 마우스의 신분 은폐 능력은 그가 지닌 비밀 병기(capital)”였다고 생각한다.

※ 기사 원문 보기(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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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게이트 핵심 인물인 최순실 씨가 16일 오전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공개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탄핵심판 시작 후 헌법재판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최 씨는 이날 5시간에 걸친 신문 내내 ‘모르쇠’로 일관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증언은 모두 허위나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최 씨의 증언 중 주요 부분을 모아 영상으로 구성했다.

1) “세월호? 어제 일도 기억 못 해”

이날 최 씨는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 한상훈 전 청와대 조리장 등 다른 증인들의 진술이 모두 ‘허위’라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어제 일도 기억이 안 난다”며 답변을 피했다.

2) “다 고영태가 한 일이다”

최 씨는 ‘고영태의 진술은 완전 조작’이고, 오히려 고 씨가 2014년부터 자신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우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 공모했다고 주장했다.

3) 정 과장? 정 비서관?

최 씨는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을 ‘정 과장’이라고 불렀냐는 국회 대리인단의 질문에 ‘정 비서관’이라고 부른다고 했다가, 이후 다른 질문에 답변하다 무심코 ‘정 과장’이라고 호칭한 후 곧바로 ‘정 비서관’이라고 고쳐 말했다. 이후 정 씨가 언급된 질문에 대해서는 ‘그 얘기 이제 그만하고 싶다’, ‘아까 얘기했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4) “검찰 조서 도장 찍었지만 인정 못해”

최 씨는 “검찰 수사가 너무 강압적이라 거의 죽을 지경”이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강압수사와 폭언, 인신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검찰 조사 당시에 피의자신문조서에 도장은 찍었지만 지금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5) “돈 해 먹을 생각 없었다”

최 씨는 “유도 신문에는 대답 안 하겠다”며 진술을 거부하거나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뭐라고 대답하냐”고 반문하는 등 국회 대리인단과 여러 차례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최 씨는 또 자신이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을 통해 돈을 받은 적이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6) “대통령, 국민 잘살게 하고 싶어 했다”

최 씨는 ‘(박 대통령은) 어떻게 해서든 국민들을 잘 살게 하고 싶어했다’며 대통령을 엄호했다.

최순실 씨가 증인으로 출석한 헌재 탄핵심판 공개변론 전체 과정은 헌재 홈페이지(헌법재판소 공개변론 동영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검찰수사기록을 토대로 한 뉴스타파 보도와 비교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검찰수사기록 단독입수 – 탄핵사유 “차고 넘친다”
검찰수사기록 단독입수2 – 국기문란 증거 수두룩


취재 : 최문호 최윤원 임보영

수, 2017/01/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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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 전관예우. 이런 것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아무리 진실을 이야기하려고 해도 그냥 힘없는 국민 개인 혼자서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정말로 어렵다고 뼈저리게 느꼈죠.

제약사의 비리를 알리기 위해 5년째 싸우고 있는 최성조 박사. 유명 제약사의 수석연구원 자리를 내놓았을 때 만해도 이 싸움이 이렇게 길어지리라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최씨에게는 명백한 증거가 있었다.본인이 이 회사에서 있었던 어느 이상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당사자였던 것.재직 당시 그에게는 뜻밖의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이미 정부에 등록을 마치고 생산 중이었던 원료의약품 ‘덱시부프로펜’의 생산 공법을 개발하라는 지시였다.

이는 당시까지 이 제약사에 덱시부프로펜을 생산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이런 사정은 적어도 연구담당자였던 최씨가 이 회사를 그만뒀던 2010년까지 유효했다.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 원료의약품은 2004년부터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 이 제약사에서 전체 공정이 생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되어 있었다.

최씨는 5년의 싸움을 통해 당시 회사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더 높은 보험약가를 받기 위한 회사의 편법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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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2012년까지 국내에서 자가 생산한 제네릭(복제약) 제품에 대해 약값을 우대하는 정책을 시행했었다.여기에는 원료에서부터 완제의약품까지 모든 공정을 직접 해당 제약사가 만들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제약사의 기술 개발을 독려하기 위한 취지로 시행된 제도였다.

최씨의 전 직장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실제 원료의약품 덱시부프로펜의 생산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이 원료의약품에 대한 생산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허위로 꾸며 관계당국에 서류를 제출했다.

생산 기술이 없는 공정은 수입이 대신했다.최 박사의 말에 따르면 이 제약사는 중국 등지로부터 마지막 합성 단계만 남겨놓은 중간체등을 사서 마지막 합성 공정만 국내 공장에서 제조해 덱시부프로펜이라는 원료의약품을 만들어왔다.비유하자면 우리 경기미로 떡을 제조해 판매한다고 정부에 신고한 뒤 실제로는 중국산 찐쌀을 들여와 떡을 만들어 시중에 팔아 부당하게 폭리를 취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제약사의 편법은 최씨가 재직 시절 직접 사용했다는 내부 회의자료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최씨의 설명에 따르면, 이 자료는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감독 기관의 감시가 강화되자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제약사 생산부서가 연구부서에 보내온 요청 사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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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에 작성된 이 회의자료의 제목은 ‘최고가 관련품목’이다. 덱시부프로펜의 기술 수준은 가장 낮은 단계인 ‘C단계’로 되어 있다. ‘현재문제점’란에는 ‘생산schem(e)이 없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이 제약사에 덱시부프로펜 관련 생산기술이 없었음을 회사 내부서류에서 직설적으로 밝히고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 ‘대책’란에는 ‘중국제조처에서 제조기술 및 합성허가를 습득 후 중간체 구입 후 P-1까지 국내OEM 후 P-1만 자사에서 합성’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여기 쓰인 ‘P-1’은 완제품(덱시부프로펜)이 되기 위해서 1단계의 공정이 남았다는 뜻이다. 최씨의 주장대로 생산 기술이 없는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해외 수입과 국내 OEM을 활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3번의 거짓 신고…아무도 몰랐다

최씨는 퇴직 후 이같은 사실을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복지부 등 관할 기관에 알렸다. 제보의 일부는 사실로 드러나 일부 행정처분으로 이어지기도 했었지만, 최씨가 파악한 약가 편취 사건의 전말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최 박사가 여러 관할 기관을 거치며 깨달은 사실은 이들 정부 기관들이 제약사의 부당한 편법 이익을 방조하는 사실상의 조력자들이었다는 점이다.

최씨는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 덱시부프로펜을 만들겠다며 제출한 세차례의 제조기록서가 관할기관의 부실한 행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제약사가 3번이나 상식선에서 벗어난 엉터리 제조법을 제출했지만 정부관계기관 어디서도 이런 사실이 사전에 걸러지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2004년 이 제약사가 식약처로부터 처음 덱시부프로펜이라는 원료의약품을 허가받을 때 신고한 화학식은 사실 덱시부프로펜을 만드는 이전 단계,즉 이부프로펜까지의 제조법이었다.덱시부프로펜이 아예 만들어질 수 없는 화학식이지만 당시 식약처는 이게 허위 신고라는 사실도 모른 채 원료의약품 허가서를 내줬다.심평원은 이런 식약처의 서류를 그대로 믿고 신약에 준하는 최고가의 보험약가를 책정했다.

그리고 7년 뒤인 2011년,이 제약사가 식약처에 제출한 또다른 제조법 역시 식약처의 심사를 그대로 통과했지만 그로부터 6개월여가 지난 뒤에야,식약처는 이 제조법 또한 가짜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실제 구입한 적도, 사용한 적도 없는 원료가 사용된 것처럼 꾸며진 가짜 서류였던 것이다.이로 인해 이 제약사는 덱시부프로펜을 105일간 생산 금지하라는 행정처분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또 5개월 뒤, 이 제약사는 세번째 덱시부프로펜 제조법을 식약처에 신고한다.하지만 뉴스타파 취재결과 식약처에 제출한 이 3번째 제조법도 허위 신고일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이 제약사가 관할 기관에 제출한 제조기록서에 따르면,이 회사는 400Kg 내외의 원료를 사용해 250Kg의 덱시부프로펜을 얻은 것으로 명기하고 있다.하지만 취재진이 약학 전문가와 함께 이 제조기록서를 검토한 결과, 원료 400Kg을 가지고 이 제조법대로 만들 수 있는 덱시부프로펜의 양은 최대 125Kg 정도인 것으로 드러났다.신고한 제조법대로 제품을 생산했다면 제조기록서에 표기된 생산량의 절반정도의 의약품만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생산원가를 낮춰 이윤을 챙겨야 하는 제약사가 이렇게 수율이 떨어지는 의약품을 생산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이 제약사가 또 한번 감독 기관에 허위자료를 제출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서야 해당 신고역시 허위일 가능성이 높으며 현재 제약사에 대한 고발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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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나이티드제약 측은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이 사안이 이미 법적, 행정적 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더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회사는 지난 2012년 검찰로부터 약식기소 처분(관세법 위반 혐의 일부),식약처로부터 행정조치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실제 생산기술이 없으면서도 고가의 보험약가를 편취해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최 박사의 핵심 내부고발 사안에 대해서는 아직 어떤 처벌도 받은 적도 없다.한국유나이티드측은 생산기술도 없으면서 생산기술이 있는 것처럼 관계당국을 속여 고가의 보험약가를 편취해 왔다는 최박사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구체적인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회사측 전문연구원과 뉴스타파 취재진과의 대면 인터뷰에는 끝내 응하지 않았다.


취재 : 오대양, 최경영
촬영 : 김남범
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목, 2016/07/0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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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씨가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3개나 만든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혹시 아버지로부터 건네받았을지도 모르는 비자금과 관련된 것일까? 아니면 매형인 SK 최태원 회장과 관련된 일일까?

아버지 노태우의 비자금?

노재헌 씨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사실상 유령회사인 자본금 1달러 짜리 페이퍼 컴퍼니 3개를 만든 시점은 2012년 5월이다. 당시 상황을 복기해 보자.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징역 17년 형과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받았다. 8개월 뒤인 1997년 12월, 사면을 받아 감옥에서 풀려 나온 노태우 씨는 추징금을 갚아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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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징금을 갚는 방식은, 노태우 씨가 비자금을 맡겨둔 사람을 지목하면 검찰이 수사를 벌여 돈을 추징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노태우 씨가 누구에게 비자금을 맡겨두었는지가 드러난다. 대표적인 사람이 노태우 씨의 동생 노재우 씨와 사돈 신명수 씨다. 신명수 씨는 해표 식용유로 유명한 신동방그룹의 회장이다. 노태우 씨는 이런 방식으로 2011년 말까지 추징금의 90% 가량인 2,397억 원을 97차례에 걸쳐 납부했다. 그러나 2011년 이후부터는 추징금을 더 이상 내지 않았다. 낼 돈이 없다면서 동생 노재우 씨와 사돈 신명수 씨가 추징금을 마저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날선 법적 공방이 이어졌다. 여론의 관심도 높아져 갔다.

이 시기에 뜻밖의 변수가 생긴다. 2011년 3월 노재헌 씨의 부인이자 신명수 전 회장의 딸인 신정화 씨가 홍콩 법원에서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것. 신정화 씨는 재산 분할을 위해 노재헌 씨의 재산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한다. 이 사실은 2011년 12월 국내 언론에 보도됐고, 국내 언론들은 노재헌 씨에게 흘러 들어갔을지도 모르는 노태우 비자금이 이혼 소송을 통해 드러날 수도 있다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노태우 비자금이 노재헌 씨에게 전해졌을 수도 있다는 의혹은 이전부터 있었다. 동생과 사돈에게는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주면서 아들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는 게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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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헌 씨가 조세도피처인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 3곳을 만든 시점은 바로 이 때부터 5개월 뒤인 2012년 5월 18일이다. 남은 추징금 납부를 둘러싼 법적 공방과 이혼 소송 때문에 비자금 상속 여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남아있던 돈을 숨기기 위해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것은 아닐까? 페이퍼 컴퍼니를 동시에 3곳이나 만들고, 한 회사를 다른 회사의 주주로 등록하는 등 추적하기에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 역시 은밀한 돈을 감추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이에 부합하는 정황은 또 있다.

노재헌 씨가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지 1년 뒤인 2013년 5월 21일, 뉴스타파는 조세도피처에 회사를 설립한 한국인들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사흘 뒤 노재헌 씨는 페이퍼 컴퍼니 3곳의 이사직에서 동시에 사퇴했다. 페이퍼 컴퍼니가 보도될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이후 뉴스타파의 폭로 등에 힘입어 검찰이 전두환 일가에 대한 수사를 벌이자, 노태우 씨는 넉 달 뒤 남은 추징금 231억 원을 완납했다. 그러나 이 돈은 노태우 씨나 노재헌 씨가 내지 않았다. 동생 노재우 씨가 150억 원, 사돈 신명수 씨가 80억 원 이렇게 나누어 냈다. 만약 조세도피처의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아버지의 비자금을 숨기는 게 노재헌 씨의 목적이었다면 그 목적은 달성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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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헌 씨의 비자금 상속 여부와 관련해, 노재우 씨 측으로부터 흘러나온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추징금 납부를 둘러싸고 노태우, 노재우, 신명수가 공방을 벌이던 당시 나온 얘기다. 당시 노재우 씨의 법률 대리를 맡았던 이 모 변호사는 서울 연희동에 있는 노태우 씨의 자택의 별채 부지가 노재헌 씨 명의로 되어 있다며 이 부지의 구입자금이 아버지 노태우 비자금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등기부 등본 상에는 여전히 노재헌 씨가 불과 35살이던 2000년에 이 땅을 사들인 것으로 되어있다. 당시 시세는 10억 원이 넘었다. 이 밖에 대구 지묘동의 60평짜리 아파트와 30억 상당의 강원도 평창 고급 별장 역시 노태우 씨의 비자금으로 구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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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형인 SK 최태원 회장과 관련?

노재헌 씨의 페이퍼 컴퍼니가 매형인 SK 최태원 회장과 관련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재헌 씨는 ‘인크로스’라는 IT기업의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이며 최근까지도 주요 주주이자 등기 이사였다. 이 회사는 지난 2007년에 설립되었고, 그동안 대부분의 매출이 SK와의 거래 관계에서 발생해왔다. 2009년에는 200억 대의 매출을 올린 SK 계열사 크로스엠 인사이트를 단돈 40억 원에 인수했다. 이 인수로 연 93억 원이었던 인크로스의 매출은 360억 원대로 수직 상승했다. 2010년에는 매출 490억 원에 이르는 SK 계열사인 이노에이스를 인수 합병하는데, 지분 절반 이상을 매수하는 데 든 비용이 60억 원대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인크로스의 성장 과정이 SK의 도움 없이는 절대 불가능했을 거라는 점, 그리고 최태원 회장의 처남인 노재헌 씨가 주요 주주라는 점 때문에 인크로스가 사실은 처남을 앞세운 최태원 회장의 위장 회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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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회사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2010년 홍콩에 ‘인크로스 인터내셔널’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한 흔적이 나온다. 인크로스 인터내셔널의 대표는 노재헌 씨였다. 홍콩은 노재헌 씨에게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준 중개 회사가 있는 곳이다. 노재헌 씨가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시점도 노 씨가 인크로스 인터내셔널 대표로 재직하던 시기와 겹친다. 만약 노재헌 씨가 만든 페이퍼 컴퍼니가 인크로스와 연관된 것이라면, SK 최태원 회장과의 연관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노재헌 “개인적인 사업 목적으로 페이퍼 컴퍼니 만들었을 뿐”

뉴스타파는 조세도피처의 페이퍼 컴퍼니에 대한 노재헌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경로로 접촉을 시도했다. 노 씨가 상임 이사로 재직 중인 한 비영리 법인을 통해 열흘에 걸쳐 여러 차례 입장을 물었으나 답변이 없었다. 인터뷰를 요청한 지 열흘 만에 노재헌 씨는 인크로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입장을 전해왔다. “홍콩에서 살면서 사업 준비 차 1불 짜리 회사를 몇 개 만들어 두었는데, 이혼하고 결국 아무 것도 못했다. 대체 왜 문제를 삼는지 모르겠다”라는 것이 노재헌 씨의 답변이었다.

그러나 노 씨의 답변이 사실이라면, 왜 굳이 조세도피처인 버진 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왜 같은 시기에 회사를 세 곳이나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뉴스타파가 홍콩에서 만난 조세도피처 회사 설립 대행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조세도피처 회사들이 만들어지는 이유가 법인 명의의 계좌를 만들어 자금을 관리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추가 질의를 위해 노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노 씨는 더 이상 답변하지 않았다.

월, 2016/04/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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