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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373] 정세균이 옳고, 이정현이 틀렸다 : 김재수 장관 해임 건의안의 위법성과 정당성 논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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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373] 정세균이 옳고, 이정현이 틀렸다 : 김재수 장관 해임 건의안의 위법성과 정당성 논란에 대해

익명 (미확인) | 화, 2016/09/27- 10:11

정세균이 옳고, 이정현이 틀렸다

김재수 장관 해임 건의안의 위법성과 정당성 논란에 대해

 

좌세준 변호사
 
박근혜 대통령이 김재수 장관 해임 건의안 수용을 거부했다. 역대 여섯 건의 장관 해임 건의 중 다섯 번은 대통령이 국회의 해임 건의를 어떠한 형태로든 받아들였는데, 박 대통령은 헌정 사상 '초유'의 거부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문제는 청와대만이 아니라 새누리당도 국회의장 형사 고발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것인데, 새누리당에 그 많다는 율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정세균 의장은 과연 국회법을 위반하여 가면서까지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일까?

 

아마 새누리당은 알면서도 짐짓 '포커페이스'로 "국회법 위반"이라 밀어붙여 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번 해임 건의안 의결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국회법 위반' 논란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로스쿨 1학년 정도면 배우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새누리당 의원들과 청와대 참모들이 모르지는 않겠지만, 확인 차원에서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겠다.

 

23일 밤 국회방송을 통해 생중계된 김재수 장관 해임 건의안 처리 과정을 지켜봤다. 23일 자정 직전까지 진행되던 제8차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 도중 정세균 의장은 본회의 차수 변경 및 의사 일정 변경을 통해 24일 0시가 넘은 시점-국회사무처 보도 자료에 따르면 24일 0시 18분경-에 제9차 본회의 개의를 선언한 다음, 해임 건의안 표결에 들어갔고 투표 결과 가결을 선포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의장석 앞까지 나와 강력히 문제 제기한 부분은 정세균 의장이 국회법 제77조에서 정한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 차수를 변경하고 의사 일정을 변경했다는 것이다. 해임 건의안 통과 후 국회사무처가 낸 보도 자료에 따르면 "차수 변경을 위해 회기 전체 의사 일정 변경(안) 및 당일 의사 일정(안)을 작성하여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 : 9.23(금) 23시 40분경"이라고 되어 있다. 이에 대한 새누리당의 반응이 "종이 한 장 보내 통보한 것은 협의가 아니다"인 것을 보면, 새누리당은 "산회를 선포하고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을 문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나온 새누리당 측의 '국회법 위반' 관련 주장은 사실상 이것이 전부다.

 

그렇다면, 국회법 제77조가 규정하고 있는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의 협의" 절차에 대해 우리 헌법재판소는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국회법상 '협의'의 개념은 의견을 교환하고 수렴하는 절차라는 성질상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그에 대한 판단과 결정은 종국적으로 국회의장에게 맡겨져 있다."

 

위 헌재 결정은 17대 국회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이 김원기 국회의장을 상대로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청구 사건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2005년 12월 9일 국회 본회의 마지막 날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가결되는 과정에서 김원기 국회의장이 "야당인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아무런 협의도 거치지 아니한 채 본래의 의사 일정상 다섯 번째로 예정되어 있던 사립학교법 개정안 심의를 첫 번째로 일방적으로 변경하였는데, 이는 협의를 거쳐 의사 일정을 변경하도록 규정한 국회법 제77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맡고 있었고, 위 개정안 통과 직후 엄동설한에 이듬해 1월까지 '장외 투쟁'까지 돌입했던 터라 가히 '잊지 못할' 사건이었을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08년 4월 24일 위와 같이 결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고 있다.

 

"피청구인 국회의장은 장내 소란으로 국회법에 따른 정상적인 의사 진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효율적인 회의 진행을 위하여 의사 일정 제5항이던 사립학교법 중 개정법률안을 제일 먼저 상정하여 심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점, 사립학교법 중 개정법률안의 상정 자체에 반대하던 한나라당 대표의원과의 협의는 실질적인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던 점, 당시 회의록에 의하면 한나라당 의원들을 포함하여 274명의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출석하고 있는 것으로 기재되어 있으므로 의사 일정을 변경하더라도 그 자체로 국회의원들의 심의·표결에 지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피청구인이 한나라당 대표의원과 직접 협의 없이 의사 일정 순서를 변경하였다고 하여 국회법 제77조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

 

8년 전에 있었던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이번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상황과 비교하여 보면 정세균 의장을 '직권 남용'으로 형사고발한다는 새누리당의 카드가 무리수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23일 자정 직전까지 이루어진 헌정 사상 '초유'의 장관 답변 필리버스터를 통해 해임 건의안 상정 자체를 거부하는 새누리당의 의사가 명백히 확인되는 상황이었고,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국회의장이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협의하는 것은 실질적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던 점, 정세균 의장은 새누리당 의원들도 본회의장에 출석하고 있는 가운데 차수 변경과 의안 심의 순서 변경을 직접 고지하였던 점 등이 모두 위 2005년 12월 본회의 당시의 상황과 일치한다. 차이가 있다면 의안 상정 순서 변경 외에 본회의 차수 변경이 있었다는 것인데, 국회법 제76조 제2항, 제78조 등에 비추어 볼 때 차수 변경 절차의 위법을 주장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가 이번 해임 건의안 처리 과정의 '위법성' 논란에 대한 결론이다. 그렇다면 위법성 논란을 넘어, 야당의 해임건의안 제출과 가결, 해임 건의안 수용을 거부한 박 대통령의 결정을 정치적 '정당성'의 잣대로 재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25일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보냈다는 문자 메시지에 따르면 청와대가 해임 건의안 수용을 거부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임명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장관에게 직무 능력과 무관하게 해임을 건의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24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했다는 "형식적 요건도 갖추지 않은 해임 건의안 통과는 유감"이라는 발언도 같은 맥락의 입장 표명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청와대의 이와 같은 입장은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의 요건이나 제도적 취지를 완전히 오해한 데서 나온 것이다.

 

우리 헌법 제63조 제1항은 "국회는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라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해임 건의를 할 수 있는 요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헌법 제65조 제1항이 국무위원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의 경우 "직무 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는 요건을 명시하고 있는 것과 명백히 구별된다. 한 마디로 우리 헌법은 "직무 능력과 무관한 사유"로도 국회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를 의결할 수 있도록 예정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우리 헌법은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건의의 권한을 대통령이 갖는 국무위원 임명권에 대한 국회의 통제장치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 의결은 장관의 직무 수행과 관련한 '법적인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인 반면, 해임 건의는 대통령의 장관 임명권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위한 제도인 것이다. 따라서 이번 장관 해임 건의안 의결을 두고 "직무 능력과 무관한 해임 건의"라거나 "형식적 요건"을 거론하는 것은 난센스이자 허튼소리에 불과하다.

 

청와대가 "장관 해임 건의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헌법상 규정이 없다"는 이유, 이른바 '기속력'을 이유로 해임 건의안 수용을 거부하는 것 또한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무위원 해임 건의 규정의 정치적 기능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오랜만에 펼쳐본 헌법 교과서를 보면 국무위원 해임건의 부분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해임 건의가 갖는 기속력의 강약은 해석론이나 헌법 이론의 문제가 아니고 해임 건의가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정치 상황의 여러 변수에 의해서 정해진다고 할 것이다. 바로 이곳에 우리 각료 해임 건의권의 개방성과 정치성이 있다."

 

박 대통령이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한 결정은 '합법성'의 영역을 떠나 정치적으로 '옳은' 선택인가, '그른' 선택인가를 판단하는 '정치적 정당성'의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가 이루어진 최근의 정치 상황의 여러 변수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청와대 참모진들의 정치적 감각이 발휘되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이번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를 국회법 위반이나 국회의장에 대한 형사고발로 접근하는 새누리당의 선택이나, 청와대가 해임 건의안 수용을 거부하겠다고 한 결정은 한 마디로 '법'과 '정치' 모두를 무덤으로 가지고 가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헌정 사상 '초유'의 카드를 꺼내 든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보다 나은 카드를 선택할 시간과 기회는 아직 충분히 남아 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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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같은 세상, 더는 당하고 싶지 않다면...

기억과 심판, 감시와 투표

 

안진걸 2016총선시민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지금 이 순간, 여야 정당들이 막판까지 공천 문제로 시끄럽다. 정치와 민주주의는 늘 시끄러운 것이기도 하고, 실제로 야단법석 토론도 하고 논쟁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번엔 그 시끄러움들이 전혀 달갑지 않은 것은 나만은 아니리라.

 

새누리당은 '친박'으로도 모자라서 진짜로 진실한 친박(진박)들만 공천하기 위해 공당(公堂)을 사실상 '박근혜 사당(私黨)'으로 만들어버렸고, 그 과정에서 2016총선시민네트워크를 필두로 한 시민사회의 부적격자 공천 배제 요구를 거의 수용하지 않고 있다. 그 문제 많은 용산 참사 주도자 김석기, 경제와 민생을 망친 최경환, 거의 대부분 시민, 사회단체로부터 공통으로 낙천 촉구자로 꼽힌 김무성, 이노근 등에 대한 공천이 그대로 강행되었다.

 

새누리당은 문제 정당답게 지역구뿐만 아니라 비례대표에서도 시민사회가 좌시만해서는 안 되는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애초에 시민사회가 강력히 반대했던 김재철 전 문화방송 사장, 민동석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쇠고기 협상 대표 등은 빠졌지만, 철도 민영화 강행에 앞장서고 그 과정에서 철도 민영화를 반대하던 철도 노동자 수천 명에 대한 징계를 자행한 최연혜 전 코레일 사장이 비례대표 5번에 이름을 올렸고, 온갖 왜곡된 논리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설파하면서 역사 정의 파괴에 앞장선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도 비례대표 9번에 공천되었다.

 

또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거론하며 "시체 장사" "거지 근성" 등의 막말 표현이 담긴 글을 SNS로 공유하여 물의를 일으켰던 대한약사회 김순례 부회장도 15번에 배정했다. 김순례 씨의 경우 당시 대한약사회가 나서서 3개월 직무 정지의 징계를 내렸고,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인물임에도 비례대표 공천이 강행됐다. 세월호 가족들과 세월호 참사로 상처받은 우리 국민들을 두 번, 세 번 피눈물나게 하는 일을 지금 집권 여당이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도 문제가 만만치 않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무려 다섯 번째 비례대표로 나섰는데, 당 대표 격인 비대위원장이 스스로 비례대표로 나서는 것은 직능과 부문, 사회적 약자들의 대표성을 확보하고, 국회의 국민 대표성을 보강하자는 비례대표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은 면이 있는데다, 더 큰 문제는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일부 비대위원이 자신들의 특수관계인들을 비례대표 안정권에 일방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비례대표 제도의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비대위는 비례대표가 시민사회의 요구대로 늘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54석에서 47석으로 7석이나 줄어든 것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신중했어야 했을 것이다. 후보 면면에서도 이후 많은 부분 수정되기는 했지만, 애초에 발표된 명단에 포함된 인사들 중 상당수가 사회 경제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활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인사들이라는 측면에서 시민사회와 각계각층의 강력한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이것이 진정 혼용무도한 집권 세력에 대한 심판을 주도하고, 민주주의와 민생, 평화의 대안과 희망을 보여주어야 할 야당의 모습이란 말인지 절규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당에서도 당 대표들의 측근들이 대거 비례대표에 배정된다는 설에서부터, 공천관리위원들이 사퇴하고 비례대표 후보를 신청한 것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진행되다가 지난 23일에서야 비례 후보들의 명단이 확정되었는데, 특정 당 대표의 측근들이 대거 포진되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비례대표 공천과 관련해서는 정의당이 가장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애초부터 당원 투표를 통해서 뽑기로 했고, 1인 1표제만 실시함으로써 1인 다표제의 경우,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후보들 간의 합종연횡을 통한 잡음과 분란의 소지도 최소화한 것이다. 그를 통해 오랫동안 진보 정당 활성화에 헌신해온 이정미 부대표, 대표적인 국방 전문가인 김종대 디펜스21편집장, 언론 시민 운동에 앞장서온 추혜선 전 언론연대 사무총장 등이 상위 순번으로 선출되었는데, 비례대표 전체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직능과 부문 그리고 사회, 정치적 약자들의 대표성을 보강, 보장하자는 비례대표 제도의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할 것이다.

역시 녹색당도 당원들의 총투표 등 모범적인 과정을 통해서 비례대표 후보들을 선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비례 1, 2번 후보가 당선 후 임기의 절반씩을 역임하기로 한 신선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어 눈길도 끌고 호평도 받고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비례대표 공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번 총선, 전체적으로 상황이 매우 혼란스럽다. 폭정과 악행을 일삼는 집권 여당의 무도함은 하늘을 찌르고 있지만, 이에 대한 야권의 대응이 참으로 답답하기만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민사회 일각에서도, 상당한 이들이 이번 총선은 희망이 없다고 체념하고, 투표율도 저조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난 8년 동안을 언론이 장악된 채로, 민주주의와 민생, 그리고 평화와 인권이 파괴된 지옥 같은 나날들을 겪었는데, 이렇게 당할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설령 상황이 안 좋다 해도 시민, 사회단체, 뜻있는 국민들까지도 체념하고 주춤한다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민생, 평화는 대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뭐라도 해야 한다, 뭐라도 해보자, 뭐라도 할 수 있다"라는 정신으로 이번 총선에 적극 대응하고 있는 것이 바로 총선넷이다.

 

현재 총선넷은 전국의 시민, 사회단체들과 함께 공천 부적격자들을 선정하여 발표하고, 각 정당에 공천하지 말거나 공천을 철회할 것을 맹렬히 촉구하고 있고, 그럼에도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부적격자 상당수가 공천이 강행되고 있기에, 이제는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부적격자에 대한 낙선 캠페인과 집권 세력 심판 운동을 벼르고 있다.

 

총선넷 홈페이지(☞바로 가기)에는 그동안 각계각층의 연대기구들이 선정한 낙천 촉구 대상 명단, 총선넷이 이를 종합하여 최종 선정한 낙천 운동 대상 후보들의 면면과 사유, 그리고 전국의 총선 후보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총선넷의 매일매일의 활동 뉴스를 볼 수 있고, 국가 기관 및 관변 단체의 부당한 선거 개입 감시 캠페인, 좋은 정책 제안하기 시민 캠페인과 총선넷 유권자위원회 활동 등 다양한 캠페인을 접할 수도 있고, 누구라도 적극 참여도 할 수 있다.

 

한편, 총선이 20여 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선거 분위기가 안 뜨고 정책이 실종된 선거가 또 있었을까 싶다. 지난 총선, 대선만 해도 경제 민주화, 복지 국가, 민생 살리기, 반값 등록금 등 다양한 정책이 큰 이슈가 되지 않았던가. 이렇게 정책과 공약이 실종된 데에는,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문제점도 크지만, 국민의 심금을 울리는 제대로 된 공약 하나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는 제1야당의 책임도 가볍지 않을 것이다. 늦었지만, 여야 정당과 후보들이 지금부터라도 심각한 양극화와 민생고 심화, 중소기업 중소상공인들의 좌절, 비정규직 노동자 무주택 서민 청년 세대의 절망 문제에 대해 해법이 될 수 있는 많은 정책들과 공약들을 제시해줄 것을 촉구해본다.

 

총선넷은 위에서도 소개한 것처럼, 지금 곳곳에서 활발하게 "기억과 심판, 감시와 투표"를 호소하고 있다. 또한, 아주 유익하고 재미있는 캠페인도 실제로 병행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3분 총선' 캠페인이다. 3분이면 누구나 자기 지역 후보를 자세히 알 수 있다는 취지로 3분 총선 홈페이지 (☞바로 가기)에 들어가면 자기 지역의 후보들에 대해서 언제든지, 아주 자세한 정보를 볼 수 있어 우리 국민들이 각 후보들에 대해 정확하게 투표할 수 있는 근거와 흥미까지를 제공하고 있다.

 

비록 총선넷이 전체 시민 사회를 모두 대변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2000년, 2004년 총선연대 활동에 비하면 그 파괴력과 영향력은 줄어들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이 혼용무도한 집권 세력의 심판 운동에 나서야 하고, 그 심판의 근거를 정확하게 제공하고 전파해야 할 것이다. 또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에서도 부적격한 후보가 있다면 과감하게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 것도 우리 시민, 사회단체들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어지러운 총선 국면에서도, 의도적으로 선거 분위기를 죽이고 심판을 비껴가려는 집권 세력에 맞서, 우리 국민들을 위하는 좋은 정책을 기를 쓰고 부각시키는 일을 꼭 해야 하지 않을까. 그 길에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총선넷이 있고, 총선넷은 시민들 속으로 지금 달려가고 있다. 시민 여러분들께도 더 많은 관심과 참여 당부드린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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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6/03/2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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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한 나라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

세월호 2주기, 다음 참사 때란 없다

 

최현정 임상심리학박사,  트라우마치유센터 사회적협동조합 사람마음

 

치유가 허락되지 않는 유가족

 

세월호 참사 2주기가 왔다. 겨울 지나고 봄이 올 것이 당연하듯, 앞으로도 참사의 주기는 계속 오고 말 것이다. 간혹 매체를 통해서나 거리에서나 희생자 가족을 만나게 되는데, 날이 갈수록 얼굴이 새까맣게 깡깡 마르는 게 보인다. 모호하게 굳어버린 이들의 표정에 자동으로 한탄한다. 울분과 자책의 고통으로 까맣게 타버린 표정이 안타까워 죽겠다. 가족은 한 번도 제대로 애도해 본 적이 없는 거다.

 

트라우마 심리치료가 직업이라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고통의 강도가 다른 것은 아니지만, 어떤 트라우마의 경우 심리지원에서 그 회복 경로가 달라진다. 경로가 굴곡지고 가는 길이 훨씬 더디다. 두 가지 정서가 관련 있다. 하나는 자책감, 다른 하나는 분노이다. 특히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자책과 분노인 경우다. 대부분의 트라우마가 사실 자책이나 분노와 관련 있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일 때 특히 이 자책과 분노는 무자비하다. 이런 종류의 자책과 분노는 보통의 감정과는 다르다. 신체와 마음의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그런 종류의 체험이다. 당연히, 슬픔을 온전히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

 

자책이 관여하는 트라우마에서 당사자가 회복을 희망하기까지는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이들은 회복이 '필요하다니까' 심리 지원을 요청하지만, 진심으로 치유를 희망하는 쪽으로 마음먹지는 않는다. 참사로 떠난 사람을 향한 자책은 고통에서 자유롭기를 절대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대신 아프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돌이킬 수 없이 떠난 사람의 고통을 대신 느껴야 하므로, 회복은커녕, 애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분노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2차 청문회에 갔다. 자본의 탐욕과 무책임한 사람의 무능력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도 속에서 불길이 치솟을 일이다. 그런데 의문스러운 정황에서도 증인은 답이 없다. 인양 과정에 대한 의문을 추궁해도 고위직 공무원은 사회성 좋은 미소를 띠고 앉아 있다. 나 같으면 세상 사람이 다 밉고 지겨울 지경이다. 그런데 아무리 진실을 밝히려 혹은 못 찾은 가족을 찾으려 노력해도 거대한 벽 앞에 가로막히니, 자기 가슴 치며 자책할 수밖에 없다.


애도할 수 없는 비정한 나라

 

고통 받은 자들이 자책해야 하는 사회는 비정상이다. 세월호 참사 가족들의 고통이 지속된다면 그것은 국가와 사회가 야기한 것이다. 가족들이 정신질환이 있어서도, 욕심이 많아서도 아니다. 국가와 사회가 애도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었는가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앞으로 무얼 개선해야 참사를 예방하는지 국가가 점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면 애도도, 기억도, 치유도 소용없다. 한국은 애도할 수 없는 비정한 나라다. 사람들이 죽어서 그것을 알려주는 무서운 나라다.

 

이와 같은 나라에서 함께 사는 국민이라면 무엇이 가족의 애도를 막았는지 질문해야 한다. 국가는 치유센터를 버젓이 만들어 놓았지만 애도의 조건을 말살시켰으므로 아무 소용이 없다. 사실 가족들은 오래전부터 애도하게 해달라고 울부짖었다. 진상 규명의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애도를 시작하려면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진실 없이 애도란 없다. 진실을 밝혀내겠다는 아이와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고 나서야만 부모는 마음 놓고 슬퍼할 수 있다. 애도가 시작되려면 못 돌아온 가족이 돌아와야 한다. 장례도 못 치러주었는데 슬픔은 웃기는 이야기고, 매일은 공포의 연속일 뿐이다. 살아남은 아이들이 마음껏 슬퍼하지 못하고 자기 가슴을 치거나 숨죽여 산다. 이미 고통 받은 사람들이 고통의 이유까지 대답해야 할 의무는 없는데, 국가가 의무를 져버리니 결국 이는 고통 받은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정말 가슴 칠 일이 또 있다. 타이밍 절묘한 보상 대책으로 진상 규명이나 처벌을 피하는 행위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다. 국가는 참사의 진상 규명도 끝나지 않았는데 보상금을 지급한다고 나왔다. 회복을 책임질 국가가 국민에게 저지른 가해 행위다. 더 이상 국가에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보상의 조건이므로, 보상은 진실을 외면하는 쉬운 수단이다. 심지어 여론을 오염시키면서 가족들이 안전하게 사회로 복귀하는 길을 훼방 놓고 가족들의 심적 고통을 악화시켰다.

 

막혀버린 애도는 강도 높은 만성 스트레스가 된다. 강도 높은 스트레스가 불러일으키는 것은 심리적인 고통에 더하여 급성‧만성 질환, 술, 약물, 그리고 때 이른 죽음 혹은 스스로에 의한 죽음이다. 얼마 전에 4.16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을 살펴보았다. 그 중에서 의료 지원에 관한 법률을 보니까, 의료 지원 기간은 이미 끝나 있다. 진상 규명은 시작 단계고 애도는 시작되지도 않았음에도. 생존자와 가족들이 원하는 기관에서 심리치료와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기한도 정해져 있다. 근거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지만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법률로 정해놓은 거다. 이건 바꾸어야 한다. 실상에 안 맞는 시행령은 겉치레 아니고 뭔가.

 

여전히 남아 있는 '나머지' 사람들의 몫

 

가끔 안산의 합동 분향소에 간다. 가서 염치없게도 영정 사진 앞에서 제발 너희 가족들을 돌봐 달라고 간청한다. 이 가족들은 엄청난 일들을 해내고 있는데, 자책하면서 시들어가는 것만 같다. 가족들은 이 비정하기 짝이 없는, 무능한, 만성 고질병 속 대한민국 사회에서 진상규명을 주장하고, 특별법을 이끌어내고, 특조위도 만들었다. 이 특별법은 개정되어야 하고, 특검이 생겨야 진상 규명이 박차를 가할 테지만, 가족들은 이미 대단하다.

 

지금 다시, 처음 시민의 마음이 그러했듯이, 가족들이 이룬 것을 시민들이 보고, 다시 나설 차례인 것 같다. 미약한 속에서 만약 무언가가 이루어졌다면 희생된 자들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이루어낸 것이다. 나머지는 나머지 사람들의 몫으로 채울 일이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양심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는 것,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실에 관심을 갖는 것, 책임을 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타인을 탓하지 않는 것, 고통 받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고, 세상의 일들에 무심코 돌을 던지지 않는 것. 그런 것들을 계속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만큼은, 한국 사회의 고질병에 넘어가면 안 될 것 같다. 한국 사회가 개선될 가능성을 이 가족들이 열어 주었는데 놓칠 수 없다. 내가 죽임을 당할지도 모를 앞날을 이 가족들이 고쳐 준다고 하는데 놓칠 수 없다. 이번에야 만큼은 진실을 밝히고, 마음껏 애도하고, 정의로움 가운데에서 고통 받은 사람들이 치유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내야 한다. 다음 참사 때란 없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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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6/04/1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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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그래도 희망은 20대였다

청년들의 정치 참여가 대한민국을 바꾼다

 

정태석 전북대학교 교수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야권이 패배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비례대표를 포함하여 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이 당선되어, 여소야대에다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되는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의원이 문재인 대표 체제에 반기를 들면서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하고 천정배 의원 등과 연합하여 국민의당을 창당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야권 분열에 따른 패배를 점쳤다. 새누리당은 한편으로는 남북 긴장 관계와 북한을 이용하는 안보와 반공 논리로 보수층을 결집시켜려 애썼고, 다른 한편으로는 친노 패권주의 논리를 확산시키며 야권 분열을 더욱 부추기려 애썼다. TV조선, 채널A, MBN 등 종합 편성 채널과 YTN, <연합뉴스> 등 보도 채널, 그리고 심지어 공중파인 한국방송공사(KBS), 문화방송(MBC)까지 열심히 북한 소식을 앞세우며 안보 불안 심리를 조장하려 했고, 친노 패권주의 비판으로 국민의당을 띄우면서 야권 분열을 부추기려고 애썼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도 인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주인공 송중기를 앞세워 안보와 애국심 등 보수 심리를 자극하는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다.

과거와 같은 정치의 흐름이었다면 아마도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패배라는 결과가 나온 것은,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의 집권이 지속되는 동안 민심이 서서히 등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인데, 결국 언론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도 이미 떠난 민심을 되돌리기가 어려웠던 셈이다. 사실 선거가 있기 전에 주변 사람들은 야권 분열과 50대 이상 고령층의 강한 보수 성향으로 인해 새누리당이 대승을 거두거나 최소한 과반수 의석을 얻을 것이라고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종편 등 언론의 영향으로 국민들의 보수 성향이 강화되었을 것이라고 우려했고, 또 청년들이 보수적이며 투표를 잘 하지 않는다며 답답해했다.

하지만 나는 종편 등 언론의 영향이 생각처럼 그리 크지 않다고 반박하는 편이었다. 종편은 어차피 보수층인 고령층들이 주로 보고 있고, 젊은 층, 특히 청년들은 TV 자체를 거의 보지 않고 인터넷으로 소통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청년들이 보수적이며 투표를 잘 하지 않는다는 것도 386 세대의 잘못된 선입견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만 19세와 20대는 18대 대선에서 70%에 가까운 투표 참여율(전체 75.8%)을 보여주었고, 문재인 야권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65.8%로 30대(66.5%) 다음으로 높았다. 그래서 청년들이 암울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만을 투표를 통해 표출한다면 야권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내심 품고 있었다. '헬조선' 담론도 그러한 기대를 품게 한 하나의 근거였다.

 

아무래도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안보니 종북 좌파니 하는 낡은 레코드판으로도 가릴 수 없는 현실적인 삶의 문제로 봐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번 선거야말로 경기 침체 속에서 진정으로 경제, 일자리, 양육, 복지 등 삶의 문제가 선택의 현실적 기준이 되었던, 그러면서도 집권 여당의 온갖 왜곡과 과장에도 쉽게 속을 수 없었던 선거였다. 그리고 청년들의 분노와 정치 참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선거였다.

국민들은 거짓 정책으로 국민들을 속이려고 한 정권, 아버지 박정희를 정당화하기 위해 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한 정권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선거 운동 막판에 위기를 느껴 당의 간판 인물들이 무릎을 꿇으며 사죄하는 정치쇼를 벌였지만, 한두 마디 립서비스나 감정에 호소하는 정치쇼로 마음을 돌리기에는 시민들의 삶은 너무 팍팍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새누리당의 텃밭이었던 대구, 부산, 경남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다수 당선된 것은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한다.

길게 보면 새누리당의 참패는 그동안의 정부와 국회의 실정과 오만의 결과였다. 여소야대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특별히 잘해서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독선과 여권의 헛발질이 이루어낸 합작품인 셈이다. 19대 총선에서 간신히 과반을 획득한 새누리당과 18대 대선에서 박정희 향수와 함께 경제 민주화와 복지 확대 공약 등으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 보여준 통치 과정은, 국민들, 특히 청년들이 정치가 얼마나 국민들을 속일 수 있으며, 또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얼마나 암울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각성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우선 기초 노령 연금의 후퇴는 복지가 취약한 60대 이상 노인들의 삶을 비루하게 만들었다. 낮은 소득과 높은 자살률은 새누리당이 안보와 종북 타령으로 노인들을 붙잡아두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영남에서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데에는 고령층의 혼란과 지지 철회가 한몫을 했다고 짐작된다. 50대는 조기 퇴직이나 자영업 부진 등으로 생계가 어려운 데다, 청년이 된 자녀들의 취업도 걱정이고 부모 부양도 걱정이다. 그러니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부의 재벌 집중, 소득 양극화, 갑을 관계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새누리당 정권을 선뜻 지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중고생을 자녀로 둔 40대는 주택 마련과 자녀 교육을 위한 비용 지출로 고통을 받고 있는 데다가, 자녀 또래의 많은 고등학생이 희생된 세월호 사고를 겪으면서 국가에 대한 불신마저 커졌다. 어린이를 자녀로 둔 30대는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를 고집하며 후보 시절에 공약한 보육비 지원마저 교육청에 떠넘기려는 모습을 보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였다. 많은 청년들은 높은 청년 실업률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좋은 일자리를 얻기 어려워 좌절에 빠져있다. 이처럼 경기 침체와 취약한 복지 속에서 소득 양극화와 일자리, 비정규직 문제 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은 애초부터 지지의 유지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제대로 된 구조 개혁의 청사진이 없는 상태에서, 부모의 임금을 깎아서 청년 비정규직을 늘리고 부모의 일자리를 쉽게 빼앗아 자녀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기만적인 정책을 경제 살리기 법안이라고 우기고 있는 정권에게 누가 지지를 보낼 수 있겠는가? 부의 재벌 집중과 소득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재벌 대기업 살리기, '증세 없는 복지' 등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는 정권에게 누가 지지를 보낼 수 있겠는가? 정부는 청년 수당 등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적인 복지 정책에 제동을 걸고 도지사는 공공 시설인 의료원의 폐원을 강행하는 그런 집권 여당에 대해 누가 지지를 보낼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제시한 일자리 정책들을 통해 약속한 일자리를 모두 모으면 완전 고용을 달성하고도 남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왜 실업률이 줄어들지 않는지에 대해 아무런 근본적 성찰과 해명도 없이, 경제 살리기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야당이 문제라며 '국회 심판론'을 들고 나오는 정권에게 누가 지지를 보낼 수 있겠는가?

후쿠시마 핵 발전소 사고의 교훈도 잊어버리고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환경 정책이나 핵 에너지 정책을 후퇴시키고 있는 정권에게 누가 지지를 보낼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의 기초인 언론 자유와 인권을 후퇴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면서 국민들의 이념과 역사 의식마저 통제하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하는 정권에게 누가 지지를 보낼 수 있겠는가? 더구나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 세월호 사고에 대한 정부의 대응 실패에 대하여 책임 소재를 밝히는 일에 서도 책임 회피와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니 누가 정부를 믿고 집권 여당을 지지할 수 있겠는가?

보수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총선에서 후보를 결정하는 데 기준이 된 요인들 중 1위를 차지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짐작컨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후보 결정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황당하고 기만적인 정책들을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우기면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솔직하게 고백한 같은 당의 유승민 의원에 대해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다고 색깔이 불분명한 사람으로 몰아 이한구 공천심사위원장을 통해 탈당을 강요한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포용을 모르는 '원한과 아집의 정치'가 중도보수층, 대구와 경북의 지지층의 이반을 낳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번 20대 총선의 전체 투표율은 58.0%로서 19대 총선 54.2%에 비해 약간 상승했다. KBS 출구 조사에서 나타난 연령대별 투표율을 보면, 20대 이하가 49.4%로 19대 총선 41.5%에 비해 투표율이 상당히 상승했다. 물론 추정치여서 약간의 변동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상승이다. 이것은 청년들이 지난 4년간 새누리당의 의정 활동을 보면서, 높은 청년 실업률과 비정규직 취업이라는 현실적인 처지를 개선하는 데에는 대선 못지않게 총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30대 역시 49.5%로 19대 총선 45.5%에 비해 상승했고, 반면에 40대, 50대, 60대 이상은 각각 54.1%, 65.0%, 70.6%로 19대 총선에 비해 2~3% 정도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선관위 집계 결과 20대 총선에서의 사전 투표율이 12.19%로 전체 투표자 수 기준으로는 21.0%에 달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전 투표자 중 20대 이하의 비율이 25.8%로 60대 이상의 비율 23.2%보다 높다고 추정되고 있는데, 물론 선관위의 최종 집계가 나오면 확인이 되겠지만, 이러한 현상들은 '청년의 투표 참여'가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겠다.

또한 지역별로 볼 때, 대구의 투표율이 54.8%로 최저를 기록했고 경북도 56.7%로 평균보다 낮은 수치를 보여준 것은 새누리당에 대한 실망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에 광주는 61.6%, 전북은 62.9%, 최고치를 기록한 전남은 63.7% 등 평균을 웃도는 투표율로서 19대에 평균을 밑돌던 것과 비교하여 큰 폭의 상승을 보여준 것인데, 이것은 예전에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실망을 기권으로 표출할 수밖에 없었던 호남의 유권자들이 국민의당이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등장함에 따라 투표 참여의 계기가 생겨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전체적으로 세대별, 지역별 투표율을 보면 청년의 선거 참여가 제법 크게 늘었으며, 새누리당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텃밭에서도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진보적인 젊은 층이 점차 성장하고 보수적인 고령층이 점차 쇠퇴하는 인구학적 변화에 비추어볼 때, 근본적인 혁신과 변화가 없는 한 새누리당이 집권할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은 야권이 집권하여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책을 통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낸다는 사실을 전제할 때 가능한 일이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한 가지는 새누리당에 반대한 유권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점이다. 야권 분열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수도권에서 현실적인 당선 가능성을 고려하여 유권자들이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기 때문이었다. 수도권 유권자들이 야권 분열로 새누리당 후보다 당선되는 결과를 피하려고 스스로 후보 단일화를 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우리는 국민의당이 야권 분열로 인한 혼란을 가져다주었지만 결과적으로 여소야대에 양면적인 긍정적 효과를 낳았다고 짐작해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층의 표를 끌어온 효과가 있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수도권에서 위기 의식을 형성하여 더불어민주당 후보로의 암묵적 단일화에 기여했던 것이다.

그런데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석권하게 된 것은 무슨 연유일까? 호남에서는 어차피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각성을 요구하는 민심이 강했기에 국민의당 후보에게로 지지가 쏠렸고, 그 결과가 국민의당의 석권으로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것이 진정으로 호남의 유권자들이 국민의당의 이념과 정책을 지지했다거나 국민의당을 새정치를 하는 혁신적인 정당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천정배 의원과 안철수 의원이 연대하여 국민의당을 만들고, 또 공천에서 탈락하여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의원들을 특별한 기준 없이 끌어모아 원내 교섭단체를 만들려고 애쓴 모습을 보면서 혁신을 기대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안철수 의원 스스로가 혁신이 쉽지 않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국민의당은 이념적, 정책적 노선도 불분명하고 혁신의 의미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출마의 기회를 잡으려는 정치인들에게 국회의원 후보 자리를 제공해준 정당의 꼴이 되었다. 그것도 주로 호남 정치인들을 구제해준 정당이 되었다.

그 결과 국민의당은 반(反) 문재인과 친노 패권주의 비판으로 뭉친 정당이 되었다. 국민의당이 수도권의 두 석을 제외하면 유독 호남, 특히 광주·전남에서 지역구를 석권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한 호남 정치인들이 호남 주민들의 소외감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정서를 정략적으로 동원하여 실체도 불분명한 친노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 논리를 증폭시킨 결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는 신선한 대항마를 내세우지 못한 더불어민주당의 한계도 한몫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당원들에 의해 선출된, 집권하고 있지도 않은 야당의 대표를 패권주의로 몰아붙인 것은 권력 투쟁을 위한 정략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이 헛발질을 하는 동안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체제를 앞세워 경제를 쟁점화하면서도 우클릭을 통해 중도·보수층을 끌어들이려고 애썼고, 국민의당은 혁신을 내세운 틈새 전략으로 광범위한 중도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애썼다. 이들 사이에서 진보 정당인 정의당은 야권 연대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이념과 정책의 색깔을 내세우는 차별화를 통해 중도, 진보층의 지지를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정의당은 야권 분열이라는 악재로 인해 당에 대한 지지도만큼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청년의 적극적인 선거 참여'에 의한 여소야대의 결과에 안도하면서도, 국회의원 선거가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성찰해 보아야 한다. 우선 당의 지도부가 공천권을 독점하며 당원 민주주의를 가로막아 선거철만 되면 지분 논란, 탈당, 분당, 이합집산 현상이 나타나고, 이념적, 정책적 차별성이 없는 당의 분화를 다당제의 논리로 정당화하고 있는 비민주적 정당 제도를 민주적인 정당 제도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청년들이 지역구 후보가 되고 또 당선되기까지 너무나 큰 현실의 벽이 존재하고 있고,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 선거 공약과 국회의원 선거공약 간의 차별성을 찾아내기 어렵고, 득표를 위해 정치인들이 무분별한 지역 개발 논리를 앞세워 지역 이기주의 정서를 부추기도록 하고, 정당 지지율과 의석 점유율 간의 괴리를 키우고, 지지하는 정당 후보를 마음 놓고 찍지 못하고 많은 사표를 통해 투표의 대표성을 왜곡시키는 지역구 선거 제도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지역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익, 다양한 가치를 골고루 공정하게 대표할 수 있도록 하는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로의 개혁과 당내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통해 국민들의 다양한 의사가 민주적으로 공정하게 대표될 수 있을 때, 청년들의 정치참여도 활발해지고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토론하고 경쟁하는 선진적인 정치 문화도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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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6/04/27-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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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시평 316]

 

국립현대미술관을 박차고 나온 젊은 예술가들

젊은 예술가들의 2015년

 

현시원 갤러리 시청각 큐레이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스케일이 큰 만큼 문제도 많다. 관장 선출에 난항을 거듭하는 최악의 행정 상황도 문제거니와 그 전시장에서 젊고 새로운 에너지를 찾기란 쉽지 않다. 거대한 동시대 미술관 안에서 젊고 날 선 에너지를 찾기 힘들다면, 새로운 현대 미술은 도대체 어디 숨은 걸까?

 

힌트는 서울 시내 안팎에 불꽃이 터져 나오듯 자리 잡은 신생 공간에, 그리고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를 통한 젊은 예술인들의 동시다발적인 교류와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2015년 서울에서 벌어지는 젊은 미술의 움직임에는 과거형의 행동과 아직 행동이 되지 않은 미래(의 바람)들이 뒤섞여있다. 문제의식과 해결 방안이 몇 겹으로 꼬인 그물과 같이 얽혀있는 것이다. 그리고 특정 세대나 집단, 모임과 불화하며 살아있는 제3, 제4의 다른 젊은 주체들은 부지불식 간에 무엇인가 도모한다. 미술을 둘러싼 지금 현실에서 분명한 것은 이 움직임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관 주도의 기회와 자본의 틀이 포섭하지 못하는 들쭉날쭉한 에너지들로 가득 찬 젊은 미술 주체는 스스로 공간이라는 조건을 무기로 새 창작, 기획, 전시 관람의 형태를 조직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변화를 요구하는 구체적인 주장을 내거는 '운동'을 조직하는가 하면, 신생 공간들이 모여 이전에 없던 행사를 기획한다. 이러한 젊은 미술의 움직임은 어떻게 '젊은 움직임'이라는 모호한 수사를 구체적인 장면으로 돌파해낼 수 있을까. 이 돌파의 뜀뛰기가 될 현실의 근거들을 몇 측면에서 들춰보면 이렇다.

 

우선 2015년 미술 현장 곳곳에서 '청년'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양식 자체의 변화를 볼 수 있다. 198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청년 작가' 전이라는 명칭으로 출발한 '젊은 모색' 전이 '젊은 작가'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 여기서 젊다는 것은 갑을 관계처럼 명시적이지는 않더라도 권력 관계에서의 하위 존재에 해당하는 이들을 지칭해왔다. 기관의 선택이나 지원을 받음으로써 미술 작업을 완성하는 기회를 얻으며 자신의 작품을 전시장을 통해 선보이는 일련의 행정 절차와 목표는 젊은 예술가가 스스로 만들어낸 구조가 아니었다. 꽤 괜찮은 예술 작품으로의 승인과 미술작가 되기의 절차를 기존 제도가 장착하고 답습하는 일종의 패턴이었다.

 

그런 반면 지난해 말 한 토론회 자리에서 의견을 제기해 촉발된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은 청년 스스로가 '청년'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자신들의 목표와 행동 절차를 구체적으로 도모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의미 이전에 그것은 돌출된 행동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현상이 분명했다. 미술계 파장 안에서 스스로를 청년이라 부르고 행동이라 주장하며 앞으로 해나갈 일을 점친다는 점에서 그것은 현재로써는 작아도 앞으로 커질 선언이기도 했다.

 

2015년 초 움직임을 가시화한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청년관을 언급하는 상징적이며 또 구체적인 이중 성격의 몸체를 내세웠다. 이와 동시에 지난 2월 홍대 강의실 727호에서 토론회와 특강을 개최하기도 했고 의견을 모으고 활동을 기록하는 웹사이트(☞바로 가기)도 열었다. 여기서 또 한 번 이때 발언하는 청년 예술가들은 1990년 또는 2000년대 중반 무렵의 젊은 작가들이 미대를 졸업하거나 유학을 다녀와 이제 막 신작의 아이디어로 가득한 상태로 기존 미술계의 선배 작가와 비교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강력하게 구분되었다. 2015년의 시점에 서 있는 모종의 청년 예술가는 2010년대 이후 착취와 기회의 무대를 무기력하게 회전하며 살아가는 동시대의 다른 청년들과 현실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문제적인 현실 주체로 자리했다. 기존 미술계의 입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작업의 활성화에 자극이 되는 작업실도, 전시도, 생활의 방식도 부재한 상황을 돌파하여 자체적으로 수립해나가고자 하는 방법의 창안이 핵심이 되었다. 왜 하필 국립현대미술관이냐며 의심과 의아함을 사기도 한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은 거대 미술관이 지리멸렬하게 자리하는 한 여전히 생동감 있는 의제로 잠시 숨을 고르는 듯 보인다. 청년 예술인을 위한 기회라는 모델을 청년들 스스로 수립하려는 사이 국립현대미술관은 여전히 관장직 선출에 실패했다.

 

사실 특정 의제를 지닌 운동이 미술계의 세대교체의 열망을 뚫고 등장한 것은 지금 이곳에 아무것도 없다는 의심에서 시작된 것이다. 누가 불러준 이름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전시 공간, 활동 공간, 교류 공간인 즉 신생 공간을 만들어 조직해내는 그들은 작가이기도 하고 지망생이기도 하고 관람자이기도 했다. 부채춤을 추며 리퍼트 미 대사의 쾌유를 응원하고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가 '주술'에 빠진 2015년 대한민국 현실을 살펴볼 때, 믿을만한 가치와 합리적인 형태의 제도는 기존 미술계에서도 기대하기 어렵다. 청년 미술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제도에 외화된 불만보다는 내재된 불안을 동력 삼아 현재 미술계에 에너지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서울 시내에 산재한, 이제 막 시작하는 '공간들'은 이들 젊은 미술가들의 생존, 다시 말해 존재의 필수불가결한 근거지가 된다. 지금 청년 예술가들이 터 잡은 곳은 관장 잡음을 둘러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상징하는 기존 기관이나 제도가 아니라 파편적으로 흩어지고 모이는 새로운 공간들인 것이다. 지금 서울을 무대로국리 생겨나고 있는 미술 공간은 사이즈도 형태도 운영 방식도 제각각이며,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부터 4층짜리 재개발을 앞두고 비어있던 건물에 이르기까지 속세의 다종 다기한 갈등과 조건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 하나의 이름으로 불러낼 수 없다. 대안 공간도 아니며 오직 신생 공간만도 아니고, 미술 공간도 아니며 공간이 아예 없기도 하다. 그러나 공간을 자기 주도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작가, 기획자, 비평가 등은 2015년의 시점에 유효한 미술 작업의 조건들을 만들어내고,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생동하는 관객들과 조우한다.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의 주력이 되었던 연말 토론회를 개최한 이들이 2013년 11월 말 문을 연 전시 공간 '시청각', '커먼센터'를 비롯해 '케이크갤러리', '반지하', '교역소' 등 서울에서 미술공간을 운영하는 작가 혹은 기획자였음을 떠올려보자. 미술평론가 임근준의 사회 아래, 기획집단 유능사가 기획한 '청춘과 잉여'의 폐막 즈음 열린 이 자리에서는 전시 공간을 운영하는 각 공간 운영자들이 각자의 상황을 발언하는 것에 이어 국립현대미술관에 청년을 위한 시공간을 요구하자는 구체적 발의로 이어졌다. 천차만별로 존재하는 청년 예술인의 새로운 움직임과 동선을 짜낸 것의 공통분모는 단연코 '공간'이자 이 공간을 꿰뚫어 젊은 작가들이 만들어낸 작업들로 이어내는 변화무쌍한 '시간'이었다. 현재 별다른 가시적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은 미술의 세대 변화를 주장하는 상징적 목소리로 여전히 동시대를 살며, 젊은 전시공간을 바지런히 찾아다니는 미술 관람객들과 조우한다.

 

한편 새로 생긴 공간 몇 곳을 이어 전시와 프로젝트의 다른 방식을 게임화한 '던전' 프로젝트는 확연히 다른 작품과 젊은 작가들이 다층적으로 응시하는 동시대를 이전과 다른 프리젠테이션 형태로 보여주었다. 더욱이 오는 10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상봉동 '굿즈' 등을 중심으로 15개의 전시공간이 자발적으로 주최해 열리는 '굿-즈'라는 행사는, 판매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알리려는 형태적 전환을 시도하는 새 시도로 이합집산하는 에너지를 힘 있게 모아보는 획기적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청년이 주도적으로 개입하고 짜낼 수 있는, 'K-아트'로 호명되고 수출되기를 목적으로 하는 도구적 예술이 아니라 기존 패턴의 고인 물을 뒤집어버리는 독자적 구조라는 점에서 2015년 현재 30여 곳에 이르는 개별 전시 공간의 폭발적 증가와 활성화는 주목해야 할 일대 사건이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만큼의 지속성을 갖느냐를 팔짱 낀 채 지켜볼 일이 아니라 그 지속성을 위해 행동하는 근본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의 젊은 작가들은 현실 정치 사회를 둘러싼 이슈를 소재화하거나 이를 재현하는 문제로는 현실을 꿰뚫어 나가 바라볼 수 없음을 안다. 현대 미술은 보이는 것으로 가득한 인터넷 이미지와 동행하고, 축적이 불가능한 휘발성 사회를 응시하며, 현 정권을 비롯한 기존 미술계의 무기력함에 직접 새 영역을 만드는 것으로 대항한다.

 

'청년 예술 행동과 미술의 세대 교체'라는 주제를 받아든 내가 떠올린 답안지 같은 단어는 미술사학자 클레어 비숍의 <래디컬 뮤제올로지(Radical Museology)> 안에도 있었다. 2013년에 출간된 빨간 색 표지의 이 작은 책은 유럽의 미술관 세 곳을 예로 들며 신자유주의 시대 미술관이 어떤 가치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가를 주장한다. 그러나 빨간 책에 담긴 내용을 들여다보면, 제목과 붉은 색을 보고 예술 또는 미술관의 급진적인 것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가진 독자는 실망할 것이다.

 

저자는 동시대 예술을 움직이고 만들어내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가치 판단 아래 움직이는 미술 기관, 제도의 시간과 가치에 대한 이해라고 적는다. 그러니까 급진적인 것은 저 멀리 이제 사라진 명왕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이 시간에 누가 어떻게 합의된 가치를 부여하고 새롭게 터져 나오는 에너지를 함께 키워나가고 저장하느냐는 것이라는 것이다. 미술관 소장품 구축, 교육, 전시, 운영의 방향을 촘촘하게 짜고 재구성하는 일은 동시대 예술이 부여하는 시간과 가치의 구체적인 당대적 업무다.

 

미술관이 긴 시간을 보고 별자리 짜듯 촘촘히 움직여야 한다면 진정 급진적인 것은 이 틀 안의 구획으로는 따라잡고 제때 명명할 수 없는 살아있는, 불꽃 튀는 젊은 예술가들이다. 오늘도 젊은 예술가들은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하느라 동선을 짠다. 이 젊은 시간, 아직 마르지 않은 땅에 신선한 활기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이들의 행동이다. 이미 시작된 이 행동이 있어 미술을 만들고 보는 2015년의 이곳은 어느 때보다 구체적이고 흥미진진하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금, 2015/07/3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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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배 이상 '징벌적 손해 배상'은 위헌? 500배도 가능해!

3배 아니라 12배로도 부족하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징벌적 손해 배상이 무엇인지는 이제 잘 알려져 있다. 기업들이 특정 영업 행위가 소비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알거나 우려하면서도 실제 발생하는 손해를 보전해 주기만 하면 그 영업 행위를 지속하는 것이 이윤이 되는 상황이 있을 수 있고, 이때 기업의 자산 규모에 비추어 영업 행위를 중단시키기에 충분한 동기가 될 만한 배상액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는 논의를 보면 대부분 실손해의 몇 배수 정도면 충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박영선 의원안을 포함하는 3배수 안인데 이렇게 실손해의 몇 배수로 하는 것으로는 징벌적 손해 배상의 원래 목적인 재발 방지 효과를 구현할 수 없다.

 

간단히 유명한 예를 들어보자. 한 사람이 군중을 향해 총을 쐈는데 실제로 총을 맞은 사람은 없고 누군가의 10달러짜리 선글라스 하나만 부서졌다고 가정하자. 실손해는 10달러이지만 배심원은 그 사람이 앞으로 그런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교훈을 주기 위해서 수천 달러의 배상을 물릴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그 사람이 부자라면 30달러나 120달러 정도의 징벌적 손배로는 재발 방지 효과를 낼 수 없을 것이다. 미 연방대법원은 위 우화를 언급한 사건에서 실손해의 500배에 가까운 징벌적 손해 배상 평결을 승인하였는데, "실손해의 몇 배인지는 고려 대상의 하나일 뿐 다른 사람에게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는 손해의 규모"도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에서는 TXO라는 대형 정유 업체가 법적 사실적 근거 없이 석유 및 가스 채굴권 확인의 소를 제기하며 채굴권 소유주를 괴롭힌 것에 대해 실손해액, 즉, 위 채굴권 확인의 소 방어 비용인 1만9000달러 외에 가해자 측의 자산을 고려하여 1000만 달러의 징벌적 손배 판결이 내려졌는데 미 연방대법원은 이를 승인한 것이었다.) 즉 법으로 처음부터 실손해의 배수로 정해놓는 것은 재발 방지 효과를 낼 수 없는 것이다.

 

조금 복잡한 예를 들어보자. 자동차 10만 대를 팔았는데 설계상 결함이 발견되었다고 하자. 이 결함이 실제 사고를 일으킬 확률은 1000대 중의 1대라고 가정하면 제조 업체가 리콜을 하지 않으면 100건의 사고가 예상된다. 사고 1건당 제조 업체가 지불할 배상액은 5000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50억 원의 손해 배상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10만 대 모두를 리콜하는 경우 1대당 30만 원의 수리 비용이 든다면 모두 300억 원의 비용이 든다. 그렇다면, 제조 업체 입장에서는 리콜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윤이 된다. 특히 그 이윤의 크기가 250억 원에 이르기 때문에 3배수의 징벌적 손해 배상, 즉 50억에 3을 곱한 결과인 150억 원을 부과하더라도 리콜을 할 동기가 되지 않는다.

 

미국에 있는 분야별 3배수 손배(treble damages)가 존재하지만 징벌 손배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다. (참고로 3배수 손배는 실제 손배를 합쳐서 3배이므로 추가 액수만 보자면 2배수 손배다.) 징벌 손배는 원고가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있음을 "명백하고 확신할 수 있는 증거"로 입증함은 물론 재발 방지 효과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건에 있어서만 피고의 자산 규모를 감안하여 책정된다. 그런데 3배수 손배는 이와 같이 엄격한 입증 책임을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정해진 특정 분야들에 있어서 중과실 정도만 입증되면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분야별 3배수 손배는 임금 체불, 담합, 독점 행위, 주택 임대차 위반, 특허 상표 침해, 환경 훼손 등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행위들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이들 분야 소송에서는 항상 징벌 손배와 배수 손배 두 가지 모두 가능하지만 양쪽을 다 받을 수는 없다. 각 사건에서 배수 손배 정도만을 명할지 징벌 손배를 명할지는 당사자들이 제시한 증거에 따라 판사나 배심원이 정하게 된다.

 

아마도 우리나라 징벌적 손해 배상에 배수 제한을 두려고 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25개 주에 징벌 손배 배수 제한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모양인데 이것은 심각한 오해다. 뉴욕, 캘리포니아, 텍사스 주와 같은 메이저들에 배수 제한이 없고 또 하나 메이저 주인 일리노이 주의 3배수 제한은 형사 처벌된 행위에는 애초에 적용되지 않는다. 다른 배수 제한을 둔 주들도 매우 심한 행위에 대해서는 모두 비슷한 예외들을 통해 배수 제한을 면제한다. 미국에 오래 산 나 같은 사람도 어디 있는지 지도를 찾아봐야 되는 네브래스카 주 같은 곳 말고는 옥시 사건같이 형사 처벌이 확실시되는 사건에는 미국 전역에 징벌적 손해 배상 액수에 제한이 없다고 보면 된다.

 

또 하나 배수 제한을 주장하는 분들이 전해 들었을지 모르는 말, "미국 연방대법원이 10배 이상 징벌 손배는 위헌이라고 판정했다"는 말은 "심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는 단서를 빼놓고 말하면 괴담 수준이 된다. 왜냐하면 이 단서 때문에 해당 사건인 BMW vs. Gore 사건 이후 실제로 미국의 평균 징벌 손배액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BMW 판결이 허용한 예외가 수월하게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BMW 사건 자체가 야외에 두었다가 산성비 맞은 새 차에 도색을 다시 입혀 팔았다는 이유로 하자담보 손배 청구가 된 거라서 결함 때문에 사람이 죽고 다치는 기존 징벌 손배 사건들과 거리가 있었다. 이때 실손해가 4000달러였고, BMW가 1000대를 그런 식으로 팔았다는 증거 때문에 이익 환수 차원에서 1000배 징벌 손배로 400만 달러를 내린 건데, 연방대법원에서 "페인트칠을 다시 했어도 BMW는 BMW 아니냐. 누가 죽고 다친 것도 아니고…" 하는 차원에서 깎으라고 한 것이었고 원심 주법원은 이에 따라 징벌 손배를 깎았다는 게 5만 달러로 깎은 거였다.

 

당해 사건 최고심이 '웬만하면 10배 이상 하지 말라'는데 구태여 12.5배를 내린 이유가 뭐겠는가. 저 판결을 가지고 우리 징벌 손배도 배수 제한을 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자동차 재도색 사건이 한국에선 어떻게 다루어졌을지 생각을 해보기 바란다. "10배수 초과 위헌론"은 상상 속에 있을 뿐이다.

 

실제로 징벌적 손해 배상이 재발 방지 효과를 내려면 배수 제한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단, 노동, 공정 거래, 주거 등 특수 분야에 있어서는 징벌적 손해 배상을 보완하기 위한 배수 제한을 두는 것은 옳은 일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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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수, 2016/06/2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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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가 예견한 성과 연봉제의 비극

공공 분야 성과 연봉제는 실패 예정된 정책

 

장흥배 노동당 정책실장

 

공공과 금융 분야에 성과 연봉제를 전면 도입하려는 정부의 계획에 해당 분야의 노동조합이 9월 말 대규모 파업으로 맞섬에 따라 이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될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는 '신의 직장', '철밥통' 등의 용어에 담긴 따가운 여론을 등에 업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최근 실시된 여론 조사는 국민의 74%가 성과 연봉제의 조기 도입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에게는 성과 연봉제를 밀어붙이는 뒤편에서 전문성이라고는 전무한 낙하산을 공공 기관 경영진에 대거 투하하는 정권의 후안무치에 국민들도 혀를 내두르는 게 아닐까.

 

세계적으로 실패한 공공 분야 성과 연동 임금제를 왜?

 

1990년대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각국 정부는 정부 기관 및 공공 기관에 성과 연동 임금 제도를 도입하였다. 직원들에게 노동 동기를 부여하고 개인 및 조직의 실적을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었다. 2005년 OECD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성과 연동 임금제는 철저히 실패했다. 인건비와 행정 비용은 오히려 증가하고, 직원들은 성과 평가의 공정성을 회의하며, 실제로 객관적인 성과 평가의 방법도 있을 수 없었다. 심지어 한국GM,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민간 기업도 기존의 전면적인 성과 관리 제도의 폐해를 인식하고 폐지하는 추세이다.

 

신자유주의 경영 기법에 정통한 한국의 관료들은 무엇 때문에 이미 세계적으로 실패한 정책을 도입하려는 것일까? 노동계가 성과 연봉제를 반대하는 바로 그 이유야말로 정부와 자본이 이 제도를 도입하려는 이유가 아닐까? 노동자들이 '개인'으로서 실적 경쟁으로 내몰리고 결과적으로 노동조합으로 단결하려는 동기와 연대 의식을 상실하는 것, 비용·수익 등의 각종 숫자로 업무를 평가함으로써 직원들 개개인이 공공 기관의 고유 목적인 '공공성'을 망각하게 하여 공공 분야에 사기업 경영 원칙이 확립되는 사태야말로 성과 연봉제의 목적이 아닐까?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 유력한 근거가 기획재정부의 성과 연봉제 설계 방식이다. 정부안은 기본 연봉을 제외한 성과 연봉의 차등 폭을 2배 이상으로 확대하고, 이 성과 연봉은 상대 평가에 따라 정해진다. 연구에 따르면 공공 기관 4급 직원의 경우 직장 안의 동급 동료와 연봉 차이가 최대 486만 원까지 벌어질 수 있다. 실적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의 연봉을 가져가는 방식, 즉 제로섬 방식으로 설계된 것이다.

 

실적 경쟁의 경제적 비효율

 

애덤 스미스가 240년 전에 <국부론>에서 밝힌 사실은 성과 연봉제에 대해 여전히 교훈적이다.

 

"노동자들은 성과급제 임금에 의해 후한 보수를 받을 때 과로하기 쉽고, 수년 안에 자신의 건강과 육체를 망치기 쉽다."

 

4급 직원 기준 최대 월 40만 원의 급여 차이가 제로섬 방식으로 작동할 때는 노동자들의 과로를 훨씬 넘어서는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지난 9월 8일 국회에서 열린 '공공 부문 성과주의 도입에 따른 국민 피해 증언 및 해결 방안' 토론회에서는 이런 우려가 공공 부문의 현장에서 이미 현실화된 다양한 사례들이 쏟아져 나왔다. 핵심은 공공 기관 고유의 목적인 공공성이 훼손되고 그 피해를 공공 서비스의 이용자인 국민들이 입게 된다는 것이다.

 

보훈병원의 3급 이상 간부직과 의사직을 대상으로 적용되는 성과 연봉제는 과잉 진료와 과소 진료를 남발한다. 9년간 성과 연봉제를 적용했다가 심각한 부작용으로 다시 호봉제로 전환한 서울시동부병원의 경우 성과 연봉제가 적용된 9년간 취약 계층 환자보다 일반 환자와 보험 환자 중심의 병원 운영 방침이 확립됐다. 강원도의 5개 지방의료원에 적용된 성과 연봉제 평가 항목에서는 수익성 지표가 90점을 차지한 반면 보건의료 서비스라는 공익성 지표는 10점에 불과했다. 경찰 분야의 성과주의는 고문까지 낳았으며, 소방 분야에서는 허위 보고와 실적 조작이 일어났다.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성과 연봉제가 직원들 사이의 경쟁을 통해 조직이나 기관 전체의 경제적 성과를 높인다는 명분으로 추진됨에도 실제에서는 경제적 비효율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농촌진흥기관에 도입된 성과주의는 개인의 연구 성과를 양적으로 높여 잡기 위해 연구 성과물을 잘게 쪼개어 건수를 올리는 방식을 낳았다.

 

"기술의 상호 작용, 재배 기술 적용 시간의 중복과 상쇄 효과 등에 대한 검토가 충분하지 않게 되어 완성도가 떨어져 농가에서 스스로 여러 기술을 종합해야 한다."

 

성과주의 경영은 지표화하기 어려운 협력과 협업의 가치를 축출하는 경향을 띨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의료, 경찰, 소방, 연구 등의 공공 분야에서 '협력과 협업'이야말로 효율을 높이는 원동력임을 여러 사례는 웅변하고 있다. 오로지 화폐적 인센티브로 직원 간 과당 경쟁을 유도하는 정부의 성과 연봉제는 협력과 협업이 낳는 효율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 실패 예정된 정책은 폐기되어야 한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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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6/09/2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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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내 나는 박근혜 정부야말로 부검 대상!

죽음의 정치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는 폭력을 독점한다. 그러기에 국가는 죽음의 정치를 벌인다. 국가는 사람을 죽이고 또 살린다. 북한 붕괴론을 암시하며 공멸의 위험도 불사하려는 대통령의 국군의 날 기념사나, 주변의 군사적 긴장을 극단으로 몰고 갈 사드의 배치, 지진대 위에 자리한 핵발전소 등은 이를 대변한다.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하라고 국민을 강박하는 것은 국가 혹은 언제나 그의 이름을 차용할 권리를 확보한 정부다. 국가에 국민의 삶과 죽음은 절대 가치가 아니라 절대 수단이다. 살림을 볼모로 국민을 겁박하며 죽임을 핑계로 국민 위에 군림한다. 그것이 국가가 독점하는 폭력의 실체다.

 

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을 둘러싼 논란은 이런 죽음의 정치를 재차 되살린다. 박근혜 정부에 항의하는 민중 총궐기가 있었고, 경찰은 이를 대공비 작전을 펼치듯 강제 진압하였고, 이 과정에서 고인은 경찰의 직사 살수에 타격받아 사망하였다. 사실은 이렇게 명료하다.

 

하지만, 세간의 이목은 엉뚱한 곳으로 이끌린다. 한 병원의 신경외과 과장이 궤변이나 다름 없는 이유를 대어가며 내린 병사 판정 때문이다. 민중 총궐기와 그것이 비판하고자 한 정부의 실정과 그것을 강제 진압했던 경찰의 폭력과 그 과정에서 희생된 한 생명이 아니라, 참 구질구질하게 만들어진 그 사망 진단서가 대중의 관심을 호도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망 진단서는 의사의 전문성보다는 국가의 생체 권력이 앞서는 영역이다. 무엇을 사망으로 간주하며 무엇을 그 원인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뿐 아니라 죽음 자체를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 관계의 틀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까지 그 모두가 의학에 선행하는 국가법의 영역인 것이다. 그러기에 '외인사'는 국가 폭력의 결정체인 수사권이 발동되는 예후가 되며, '병사'는 이제 장례와 애도가 허용된다는 국가의 처분이나 다름 없다. 죽음에 관한 신의 영역을 국가가 가로채고 나선 것이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 안티고네가 국가 형벌권의 대상이 되어 버린 오빠(혹은 삼촌)의 주검을 두고 번민하여야 했었던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법의학은 의학이기 이전에 법학이자, 동시에 세심한 통치술의 한 부분일 뿐이다.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왜?"라는 법적 인과 관계로 환원해 버리는 것이 이 법의학의 이데올로기다. 거기서는 어떻게 죽었는가는 묻지 않는다. 쌀값 인상의 공약을 저버린 대통령의 식언에 항의하다, 불법적인 차벽을 앞세운 국가 폭력에 저항하다, 혹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라는 자신의 기본권을 행사하다 과잉 경비에 나선 경찰의 살수차에 피격되어 죽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심폐 정지와 급성신부전과 급성경막하출혈이 가장 중차대한 문제인 것처럼 가장한다. 총체적인 정책 실패와 죽임까지 불사한 국가 폭력을 대상으로 치열하게 전개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가, 한 전문가의 자의적 사망 진단이라는 개인의 문제로 전치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고인의 시신에 대한 부검 영장을 발부한 사태는 정확하게 그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주검을 해부함으로써 죽음을 해부하고, 그를 통해 어떻게 죽었는가의 문제를 왜 죽었는가의 문제로 대체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법원은 1차 부검 영장 신청은 기각하였다. 경찰은 검찰 지휘하에 또 영장을 신청하였다. 그러자 법원은 추가 소명을 요구하는 것으로 약간의 어색함을 다스리고는 곧장 전대미문의 조건부 부검 영장이라는 것을 발부했다. 부검 장소와 부검 절차, 참관인 등을 유족과 협의해서 정하고 부검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라는 조건이 달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영장 발부 행위는 그 자체 심각한 하자를 가진다.

 

우선, 부검 영장의 발부 요건이 어떻게 충족되었는가가 의문스럽다. 부검은 언제나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고인과 그 유족에게 적지 않은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이에, 기존의 증거나 자료들에 의해 외인사라는 점이 충분히 입증될 수 있으면 부검이라는 추가적인 강제 수사는 하지 않는 것이 옳다. 역으로 부검을 실시하려면 외인사가 아닐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어야 한다. 즉 경찰-검찰이 기존의 증거에 대하여 합리적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증거나 소명을 제시했어야 한다.

 

그런데 법원은 "병사"로 기재된 사망 진단서에도 불구하고 제1차 결정에서는 영장 청구를 기각하였다. 법원은 이미 "진료 기록 내역을 압수해 조사하는 것을 넘어 사체에 대한 압수 및 검증까지 허용하는 것은 필요성과 상당성(타당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다. 진료 기록만으로 외인사임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으며 그 사실을 뒤엎을 만한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는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제2차 결정에서는 자료 보완을 요구한(사실 보완 요구 자체도 이례적인 것이다) 후 기다렸다는 듯이 부검 영장을 발부하였다. 사실 관계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이 부분에서 되려 우리가 법관의 판단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법관의 생각을 바꾸게 만든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검찰-경찰이 어떤 용빼는 재주가 있어 순식간에 법관의 판단까지 바꿀 만큼 그렇게 중대한 자료를 만들어 소명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둘째, 이 부검 영장은 가해자에게 증거를 찾아내도록 한다. 주지하듯 경찰은 살수차 운용 경관에서부터 당시 현장지휘부, 그리고 전현직 경찰총수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이 사건의 폭력성을 부인해 왔다. 살수도 지침대로 했고 지휘도 제대로 이루어졌으며, 민중 총궐기에 대한 집회 관리도 전혀 잘못된 것이 털끝만큼도 없다는 것이 경찰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래서 경찰은 내부적인 감찰도 중단하고 검찰은 검찰대로 수사에 손을 놓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증거나 자료, 증언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한통속이 되어 자신들의 결백을 강변한다.

 

여기에 정부‧여당까지 나아가 보수 논객들까지 편들고 나선다. 설상가상격으로 부검을 담당하게 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의조차 부검이 필요하다고 공식 선언을 하였다. 누가 봐도 외인사인 것을, 누가 봐도 직사 살수에 의한 죽임인 것을, 그 부검의들은 한 목소리로 아니라고 하면서 가해자인 경찰의 편을 들고 있다. 어떤 면으로 보더라도 부검의 객관성과 중립성을 장담하지 못하는 구조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경찰에게 부검을 맡길 때 그 부검의 결과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절차에서는 그 어떠한 정의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도 저 법관은 가해자인 경찰과 그의 한 손인 부검의에게 고인의 시신을 맡겨 버렸다.

 

셋째, 이 과정에서 사망의 이유와 원인이 교착되어 버린다. 고인의 사망에 이른 일련의 과정은 철저하게 정치적이다. 물론 살수차 운용 경관과 그 현장 지휘부, 경찰 총수까지 그 행위에 합당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벽과 살수차, 막대한 경찰력 등의 폭력을 동원하여 국민의 입과 귀를 막게끔 지시한 통치권력과 그에 부종하는 정치권력에 대한 책임추궁이다. 혹은 우리의 삶을 이토록 옥죄고도 우리들을 "개돼지"라고 명명하기에 스스럼이 없는 일단의 지배 세력들에게 이 세상은 국민이 주인임을 보여주는 일이다. 경찰이 부검의 논란을 일으킨 것은 경찰관 몇 명의 문책을 피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 사건이 이렇게 정치화되어 현 정치 권력에 대한 책임 추궁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 두려울 따름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민중총궐기의 정치를 부검의 정치로 되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검 영장을 발부한 법관은, 그리고 그가 속한 이 땅의 사법부는 이런 정치적 소명에 전혀 익숙하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지나치게 법에 충실함으로써 스스로가 또 다른 아이히만이 되기를 자처한다. 사법관의 지배(juristo-cracy)라는 것은 이렇게 발생한다. 정치의 문제를 법의 문제로 환원한 채 모든 것을 경직된 법교리 속에 매달아버리는, 저 권위주의 체제가 행사하던 탈정치화의 패악이 이렇게 반복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는 죽음과 주검까지도 철저하게 도구화하고 통치의 수단으로 삼는 그 엄청난 폭력이 내재되어 있다. "망자의 몸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정희진의 질문은 이 지점에서 아주 적절해진다. 고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외치다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국가이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의 귓전을 울려 퍼진다. 그의 죽음과 그의 함성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국가는 '망자의 몸'을 부검이라는 이름으로 탈취하고자 온갖 힘을 다한다. 그의 몸에 부착된 그의 목소리를 떼어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함성이 부검의의 칼날에 갈가리 헤쳐져 우리의 귀에까지 와 닿지 못하게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저 법관의 영장 발부 결정은 너무도 무모해진다.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렇게 저렇게 붙인 조건들 때문에 가뜩이나 빗나간 문제의 해결 고리조차도 더 어지럽게 만들어 버렸다. 부검 영장의 경우 집행장이 아니라 허가장의 성격을 가지는 것인 만큼, 그가 힘을 실어 제시한 조건들은 영장의 중요 부분으로 그것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영장 자체가 효력을 상실하여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법리는 사족처럼 초라하다. 고인의 사망은 누가 보더라도 물대포의 타격에 의한 외인사이며, 그 배경에는 민중들의 목소리를 적대하며 전투적으로 지워버리고자 하는 폭력적인 정권이 존재함 또한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부검 영장을 발부하는 법관의 치졸한 법리로는 도저히 가리지 못하는 그 엄중한 우리들의 정치가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검 영장이 진정으로 가리켜야 하는 곳은 따로 있게 된다.

 

그것은 고인의 시신이 아니라, 이 땅에서 처절하게 죽임을 당한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의 시신과 벌써 부패의 썩은 냄새를 풍기는 이 땅의 통치 권력이 죽여버린 민주주의의 시신이다. 백남기 특검법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은 그래서 의미 있어 보인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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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6/10/07-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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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직원이 사이버 방범대원?

국가사이버안보기본법, 제2의 사이버테러방지법

 

오병일 정보인권연구소 이사

 

지난 9월 1일 국가정보원은 '국가사이버안보기본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법은 이름만 바꾼 '사이버테러 방지법'이며, 민간 정보통신망에 대한 국정원의 감시와 사찰을 확대할 국정원 권한 강화법이다.

 

올해 초, 국가비상사태라는 (물론 그러한 사태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지만) 황당한 명분으로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을 직권 상정하고, 192시간에 걸친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에도 결국 국회를 통과한 것을 모두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밀어붙였던 또 하나의 법안이 사이버테러방지법이었는데, 정의화 국회의장도 이것까지 직권 상정하는 것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결국 사이버테러 방지법은 19대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그러나 사이버테러 방지법에 대한 국정원의 열망은 멈추지 않는다. '국가 사이버위기 관리 법안', '국가 사이버테러 방지 등에 관한 법률안' 등 이름만 바뀌었을 뿐 18대, 19대 국회에서 계속 발의되었고, 이미 20대 국회에서도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 대표 발의로 '국가 사이버안보에 관한 법률안'이 국정원의 입법예고안과 별개로 발의돼있다.

 

국가사이버안보 기본법을 반대해야 하는 이유 

 

그럼, 이 법률안이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보자. 입법예고안은 국정원에 다음과 같은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법안에서 국가정보원의 역할
- 지원기관에 사실상 국정원 영향 하에 있는 국가보안기술연구소 포함 (제2조 7호)
- 국가사이버안보 실무위원회 공동 운영 (제5조 3항)
- 사이버안보 기본계획 수립·시행 권한 (제7조 1항)
- 사이버안보 실태 평가 권한 (제8조)
- 국가 차원의 일원화된 신고 및 조사 체계 운영 (제12조 1항)
-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사이버 공격'의 신고 접수 (제12조 2항)
-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사이버공격'에 대한 사고조사 (제12조 4항)
- 사이버위기대책본부의 구성 관여 (제15조 2항)

 

우선 법률안은 국정원이 국가사이버안보 실무위원회를 공동 운영하고 사이버안보 기본계획을 수립, 시행하도록 함으로써 콘트롤타워로서의 실질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고 있다. 비밀정보기관에 국가 사이버보안의 콘트롤타워를 맡기는 나라는 없다. 이는 마치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이나 중앙정보국(CIA)이 미국 사이버보안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법률안은 국정원이 공공기관 및 민간업체의 정보통신망에 침해 사고 조사를 명분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침해사고 조사는 일종의 수사와 유사한 과정으로 볼 수 있는데, 국정원이 이를 통해 공공기관과 민간업체의 민감한 정보에 접근하여 이들을 감시, 사찰할 우려가 있다. 지난 '사이버테러방지법'에 대한 비판을 의식했는지, 이번 법률안에는 포털 등이 명시적으로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국가사이버안보위원회가 의결을 통해 법률의 규율 대상이 되는 '책임기관'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포털이나 언론 등으로 그 대상이 확대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국가정보원은 공공기관들의 사이버 보안에 대한 실태 평가도 할 수 있는데, 시행령이 어떻게 제정되느냐에 따라 법원, 국회, 헌법재판소, 선관위 등의 사이버 보안 관련 정보와 시설에 접근할 수 있다. 비밀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국회, 법원 등의 사이버 보안을 관할하는 것은 헌법기관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지금까지 국내 정치 개입, 민간인 사찰 등으로 물의를 빚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회나 법원의 통제를 받지 않는 국정원이 사이버 보안을 명분으로 포털이나 주요 대기업, 언론사, 국회 등의 정보통신망에 접근하여 민감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다면 국정원의 정치 공작이 더욱 심각해질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국정원은 사이버 보안에서 손을 떼라!

 

이미 국정원은 '국가사이버안전관리규정'에 근거하여, 국가 및 공공기관망 에 대한 관리 권한과 함께, '국가사이버안전센터'를 통해 '민관군 사이버위협 합동대응팀'을 이끌고 있다. 또한, 정보 보호 시스템에 대한 인증, 암호 인증 등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국내 보안 업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사이버 보안(Cyber Security)을 국가 안보(National Security)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물론 북한의 사이버 공격이 있을 수도 있고, 중대한 사이버 공격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이버 공격이 북한이나 국가안보에 관련된 것은 아니다. 호기심이 많은 해커에서부터 인터넷 상의 크고 작은 사기꾼이나 범죄자들까지, 혹은 해외의 정보기관이나 심지어 국정원까지 누구나 사이버 공격자가 될 수 있다. 지난 2015년, 국정원도 RCS라는 해킹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악성 코드를 유포해왔음이 드러나지 않았나. 사이버보안은 예방, 탐지, 복구, 대응 등 여러 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누가 공격자이든 정보통신망을 운영하는 기관은 자신에게 필요한 보안 조치를 취해야 한다. 조사 결과 범죄와 관련되어 있다면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하면 된다.

 

국정원에 국가 사이버보안에 대한 콘트롤타워를 맡기는 것은 오프라인으로 비유하자면 국정원이 민간의 자치적인 방범부터 경찰과 검찰까지 통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국정원의 기본 직무 범위를 한참 벗어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나라가 비밀정보기관에 사이버보안에 대한 콘트롤타워를 맡기고 있는가! 국가적 콘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면 국회의 감독을 받을 수 있는 일반 행정기관이 담당해야 한다. 

 

이제 국가사이버안보기본법에 대한 반대라는 네거티브적 접근에서 벗어나서, 국정원으로부터 사이버보안 업무를 분리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국정원의 개혁과 국정원에 대한 입법적, 사법적 감독의 강화와 함께 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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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6/10/1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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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의 거래 대상이 된 노동자 건강권

위험의 외주화, 언제까지 방치해야 하나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재벌 대기업은 피해자가 아니라 공범이었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건강권은 정권과 재벌의 거래 대상이었다.

 

2015년 7월 박근혜 대통령이 재벌 대기업 총수 17명을 만나, 재단 설립과 모금을 요구한 이후 두 달 만인 9월 16일 새누리당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오래된 요구였던 파견 확대를 포함한 노동 개악 5법을 전격 발의했다. 미르재단에 대한 기업의 입금이 완료된 바로 다음날인 10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시정 연설에서 노동 개악 5법과 서비스 발전 기본법 등 재벌의 이익을 위한 법들의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또 2015년 12월말 K스포츠재단에 대한 기업의 입금 완료 이후 다시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 개악 5법의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그리고, 메탄올 중독 사고로 20대 청년 노동자 5명이 실명 위기에 빠진 사실이 보도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파견법 통과를 촉구했고, 기업들이 벌린 서명 운동에 대통령이 직접 서명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노동 개악 5법 중에는 실업 급여 확대를 위한 고용보험법과 출‧퇴근 재해 산재 전면 적용을 위한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초 실업 급여 제도 개선은 고용보험 전문위원회에서, 출퇴근 재해 산재보험 적용은 산재 예방 정책 전문위원회에서 2015년 초부터 제도 개선 과제로 논의 중이던 사안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노동 개악 5법으로 포함되어 기간제, 파견제 확대 등 노동 개악 입법의 거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급작스런 발표는 노동부 해당 주무 과장, 국장 등 일선 부서에서도 당황한 흔적이 역력했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소위 '당근'으로 노동개악 법안과 일괄처리 방침을 고수했다.

 

국정 농단의 흔적은 박근혜 정권의 규제 완화에서도 나타난다. "규제는 암 덩어리, 쳐부숴야 할 원수. 단두대로 보내야" 등 통상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발언들이 규제 완화 정책 개혁 드라이브에서 쏟아져 나왔다. 기업들의 민원 해결인 규제 완화를 정부 부처별로 '손톱 및 가시'라는 이름으로 가속화했고, 정책으로 시행하던 규제 일몰제, 규제 비용 총량제 등을 아예 입법으로 추진하고, 규제개혁위원회 인사를 대폭 물갈이하는 등 대대적인 총공세를 밀어붙였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노동자,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현실이 전 분야에 걸쳐 끊임없이 제기되었지만, 박근혜 정권은 요지부동이었다.

국정 농단으로 전국이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일 현대중공업에서는 40대 하청 노동자가 작업 중 추락으로 사망했다. 올해 들어 11번째, 권오갑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취임 이후 18번째 산재 사망이다. 노동부는 10월 19일부터 2주간 감독관 등 50여 명을 투입해 특별감독을 한 바 있으나, 현장 개선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사업장의 법 위반 사실을 적발하는 겉핥기식 점검과, 푼돈 수준인 과태료 처분과 시정명령 남발로 현장이 개선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참으로 황당한 정부 대책이다.

 

문제는 조선업의 다단계 하청 고용인데, 이에 대한 근본적 해결 방안을 찾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산재 사망 1위인 한국의 하청 노동자 산재 사망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6년 국정 감사에서도 하청 산재 사망에 대한 추가적인 사실이 계속 드러났다. 주요 30개 기업의 산재 사망 중 하청 노동자 비율은 96%에 달했다.

 

하청 산재 사망은 공기업에서도 심각하게 나타났다. 지난 5년간 발전 공기업 5개사 산재 사고의 96.6%는 하청 노동자였고, 이중 사망 사고 21명은 전원 하청 노동자였다. 남부발전의 사고 중 90%는 재하도급에서 발생했다. 2016년 당기 순이익만 9조4000억이 예상되는 한국전력공사에서 하청 노동자의 산재 발생은 원청 정규직 노동자의 39배에 달했다. 지난해만 87명의 하청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고, 지난 5년으로 확대하면 총 710명의 하청 노동자가 한전의 협력사에서 일하다 산재로 사망했다.

 

그러나, 동일한 배전 작업을 하는 한전의 원청 정규직 노동자는 1인당 연간 73만 원 상당의 안전 장구 지급이 되는 데 비해, 한전 하청 노동자 평균 3~4명이 팀 작업을 하는 1건 공사당 책정된 안전 관리비는 1만7000여 원에 불과했다. 지진으로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지속되는 가운데, 원전의 방사선 관리, 용수 처리, 정비 등 운영 인력의 37%가 하청 노동자임이 드러났다. 최근 원전 사고 81건 중 71건이 하청 노동자 사고이고, 사망 6명은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방사선 피폭도 하청 노동자는 일반인의 14배, 정규직 노동자의 10배에 달했다. 더구나, 지난 7월과 9월 울산과 경주의 지진 발생 당시 하청 비정규 노동자는 지진 경보 알림 대상에서도 제외되었다.

 

지난 5월 구의역에서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 사고로 19살 청년 노동자가 사망했다. 성수역, 강남역에 이어 3번째 사고였고, 다양한 원인이 있었지만, 결정적 이유 중의 하나는 외주화 문제였다. "1시간 이내에 출동하지 않으면 패널티를 부과하는 원청의 과업지시서는 하청 노동자들을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시간에 쫓겨 위험 작업을 감수하는 상황으로 몰고 갔고, 하청 노동자는 급박한 위험에도 지하철 기관사에게 알리려면 9단계를 거쳐야만 했다. 2011년 인천공항철도 5명 사망 사고, 지난 9월 경주 지진 코레일 선로 보수 사고에서도 '열차 진입'이라는 단순 정보가 전달되지 않은 것이 사고원인이었다.

 

화학 물질 사고에서도 가스 농도 특정 등 단순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고, 노량진 수몰 사고 때도 폭우가 계속 내리고 있다는 단순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다. 하청 노동자의 산재 사망 사고의 대부분은 고도의 기술적 문제도, 고비용이 들어가는 안전설비 문제도 아닌 경우가 대다수이다. 한국의 산재 사망, 특히 하청 산재 사망은 기초적인 안전 교육, 위험 정보, 보호 장구 지급등 기초적인 안전보건 조치가 지켜지지 않아 발생하고 있다. 너무도 단순한 이러한 것들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바로 하청 고용이라는 고용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국정 농단으로 거래 대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이제 위험의 외주화 금지 입법, 원청의 책임 강화 입법, 규제 완화 중단으로 즉각적인 개선이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여소야대라는 국회에서 관련 법안들은 정부의 지속적인 반대 입장과 국회의 무책임한 태도로 표류되고 있다. 더욱이 위험의 외주화 금지, 생명 안전 업무 직접 고용과 관련된 법안들은 구의역, 남양주역 사고 이후 앞 다투어 발의되었지만,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

 

하청 고용을 숙명으로 알고 있는 건설업의 경우,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는 30%에서 50% 내외로 원청이 직접 고용하여 시공하는 직접 시공제를 실시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70% 이상의 직접 시공을 계약 조건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영국 건설 노동자의 11배, 미국 건설노동자의 6배가 넘는 하청 건설노동자가 매년 산재로 사망하고 있다.

 

유럽 등에서는 '사업 이전에 관한 입법 지침'에 따라서, 사내 하도급 계약 시에도 그 일이 존속하는 한 고용 승계와 노동 조건 유지를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제3자 보호 효과가 있는 계약'을 적용하여 하청 노동자가 산재로 인한 피해를 입었을 경우에 원청 사업주에게 직접 손해 배상 청구권을 갖도록 하고 있다. 또한 한국으로 치면 법령 수준의 효력을 지니는 다양한 안전 보건 가이드와 매뉴얼을 통해서 하청 노동자의 위험성 평가, 사고 조사 참여, 안전 보건 조치 등을 통해 하청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보호 의무를 원청에 부여하고 있다.

 

중국은 2014년 안전 생산법을 개정하면서 "사업주가 안전 생산 조건이나 상응한 자질을 갖추지 못한 단체 또는 개인에게 하청을 주거나 임대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또한 동법 제 100조에는 46조를 위반해서 하청을 주거나 임대하는 경우에는 시정 명령을 내리고 위법 소득을 몰수하도록 하고 있다. 또, 기한 내에 시정하지 않으면 생산 정지, 휴업 정비 등을 명령하도록 되어 있다. 외국뿐 아니라 한국의 국내 법률에도 다양한 조건으로 도급 및 재하도급을 금지하는 개별 법률이 많다. 이제 도급 금지는 성역의 대상이 아니다.

 

지난 5월 구의역 사고 이후 서울시는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의 안전 업무직 7개를 직접 고용으로 전환했다. 고용 형태와 노동 조건 등 아직 해결 과제가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사례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서울시는 직접 고용으로 전환하면서, 외주화로 인해 하청 업체에 지급되었던 간접 비용을 없애서, 하청 노동자의 임금 등 노동 조건을 일부 개선하고, 외주화로 인한 치명적인 안전 위험 요소도 해결한 것이다. 그러나 전국의 철도, 지하철을 비롯한 수많은 하청 고용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하청 노동자의 죽음과 시민의 불안은 지속되고 있다. 재벌 대기업 혹은 공공기업의 무분별한 외주화 남발. 이제는 입법으로 중단되어야 한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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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6/11/1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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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도 '직접 밝히라' 한 '7시간'이 진짜 중요한 이유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탄핵의 연결고리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지난 12월 7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재적인원 300명 중 234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그동안 우왕좌왕하던 국회가 촛불 민심에 의해 견인된 결과다. 탄핵소추안의 국회 가결에도 불구하고 광장의 촛불은 지속되고 있다. 광장의 외침은 박근혜 개인을 향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 사태를 통해 드러난 국민 없는 국가에 대해 주권자인 국민들의 분노와 항의가 촛불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 항의는 이미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본격화된 것이다.

 

지난 12일 자 <중앙일보>에 따르면 광장 민심을 키워드로 분석하니, 박 대통령, 촛불, 세월호 순으로 많았다고 한다. 19일 자 <연합뉴스>에서도 2016년 사회관계서비스망(SNS) 등 온라인에서 회자된 키워드가 박근혜, 최순실, 세월호 순이었다고 한다. 세월호는 지난해 조사에서도 1위에 올랐었다.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과 "참사 당일 국가는 없었다"는 깨우침은 정확히 같은 분노를 담고 있다. 이는 박근혜 체제에 대한 광장의 심판 의지가 커져갈수록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을 비롯한 세월호 진실에 대한 요구도 커져갈 수밖에 없음을 일깨워준다.

 

그런데, 광장의 일체감과는 달리 정치권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나 인양 등을 정치적으로 의제화하는 데 소극적이기 이를 데 없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대통령의 헌법상 직무 불이행 문제를 포함시키는 것을 망설였던 야당의 미적지근한 태도를 들 수 있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비박계 새누리당 의원들의 탄핵소추 동참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겠냐는 것이었지만, 야당 스스로 '세월호 7시간'으로 상징되는 대통령의 직무 유기와 직권 남용을 문제 삼고 심지 않았다는 정황은 얼마든지 있다. 이미 탄핵 사유가 될 만한 여러 가지 근거들이 확보되었는데, 굳이 형사적 입증이 힘든 세월호 7시간을 탄핵 사유에 포함시켜서 탄핵 심판의 조속한 확정에 장애를 조성할 필요가 없지 않냐는 것이 당시 야당 측의 해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22일 1차 심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7시간 의혹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고 박 대통령 변호인 측을 강하게 압박했다. 헌재의 생각은 야당의 생각과 다소 다른 모양이다.편집자)

비록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들의 강력한 항의 속에 야당도 비박계도 세월호 문제를 '생명권 침해'로 규정해 탄핵결의안에 포함시키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지만, 앞으로도 이 문제를 탄핵 사유로 입증하는데 얼마나 실질적 노력을 기울일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헌법 전문가가 아닌 필자가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루는 것은 한계 밖의 일일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쟁점에 대해 몇 마디 언급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7시간' 문제가 거론된 이래 청와대는 "대통령과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논리로 책임을 모면하려 해왔다. 그러나 대통령 보좌기구인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형식상 구조구난을 직접 지휘하는 기구인가 혹은 정보수집 분석 기구인가 하는 것은 이 문제의 본질과 무관하다. 행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초대형 참사의 구조구난과 이를 위한 구조자원의 적절한 동원에 과연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가 본질적인 질문이다. 게다가 대통령 자신이 이 참사의 구조구난 업무에 법적 의무가 없다고 변명하는 것 자체가 대통령답지 못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지난 2년 반 이상의 기간 동안 대통령이 헌법기관인 국회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행한 공적 업무에 대한 최소한의 일지조차 공개하기를 거부하고, 이에 대한 조사권을 보유한 특조위의 자료 요구 등에도 일체 협력하지 않은 것을 입법기관인 국회가 탄핵소추의 사유로 주장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은 일관되게 "대통령의 사생활이 궁금한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공무 수행이 꼭 필요했던 그 절박한 시간에 대통령이 어떤 공적 활동을 수행했는지를 알고 싶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이 상식적인 요구를 말할 수 없이 폭압적인 방식으로 억누르고 핍박한 대통령의 직무 유기와 직권 남용은 반드시 심판받아야 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사유로 인용되어야 한다. 헌재와 국회는 세월호 7시간이 포함된 탄핵안을 조속하고도 철저하게 처리하여 박근혜에게서 대통령직을 박탈해야 한다.

 

더불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 의해 불법적으로 강제 종료된 4.16세월호참사진상규명특별조사위원회를 다시 활동하게 하기 위한 국회의 노력도 시급하다. 박근혜의 방패막이를 자처한 새누리당의 방해 행위에 의해 국회는 특조위의 강제 종료를 수수방관해야 했다. 20대 국회에 들어서도 특조위의 지속적인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특별법 개정안, 혹은 보다 강화된 새로운 2기 특조위 구성을 위한 특별법의 재제정안 중 그 어느 것도 처리되지 않고, 정부와 여당의 방해에 의해 가로막혀 있는 상태이다. 국회는 애초 가족이 요구했던 기소권-수사권을 갖춘 더욱 독립적이고 강력한 특조위를 조속히 재구성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한편, 최근 공개한 김영한 비망록이나 국정원 보고 문건 등에 따르면 정부는 '세월호 사고'를 정부에 부담을 주는 사건으로 여겨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사회 단체들의 진상규명운동을 파괴하려는 체계적인 공작을 펼쳐왔다. 정부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경험과 능력을 갖춘 인양업체를 배제하고, 결과적으로 연내 인양이 불가능한 상황을 연출해 낸 것도 그 일환이라 할 수 있다. 탄핵안 논의가 헌재에서 진행되는 동안 권한대행 체제는 참사 당일 대통령의 업무일지를 국민에게 공개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데 부역해 온 모든 공무원들의 처벌하거나 징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세월호를 조속히 인양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문제는 황교안이다. 황교안 권한대행은 법무부 장관과 총리 시절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을 핍박하기 위해 검찰 조직에 부당한 압력을 가하는 등 공작 정치를 주도한 대표적인 부역 인사다. 세월호 진상규명 방해와 은폐 행위를 온전히 심판하기 위해서도 우선 황교안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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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6/12/2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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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불확실성’ 트럼프의 미국은 어디로?

환율 전쟁 불똥, 한국은 어떻게 피하나

조성대 한신대학교 교수

 

대통령직에 취임하자마자 트럼프는 지난달 21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폐기 발표, 23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선언, 24일 '키스톤 XL' 등의 송유관 건설을 허가하는 행정명령, 25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라는 행정명령, 27일 무슬림 7개국 국민들의 입국과 비자발급을 중단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데 이어 31일 중국, 독일, 일본 등과의 환율 전쟁 선포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 돈키호테식 행보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2016년 미국 대선에서부터 현재까지 차례로 짚어보자.

 

트럼프 현상의 버팀목은 중하층 백인들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공화당으로 엑소더스를 시작했는데, 흑인 대통령에 대한 인종적 편견과 함께 다음의 정치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1990년대 이래 미국 경제가 월가로 상징되는 금융자본주의로 재편되어온 것에 대해 냉소적이었다. 미국의 양대 정당이 월가 자본가의 이익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WTO와 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해 생산직 일자리가 멕시코 등 제3세계로 빠져나가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남은 일자리도 중남미 국가들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히스패닉 이민자들이 다 앗아갔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 안의 불법 이민자들이 남은 복지마저 약탈해갔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당연히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불법 이민에 관대했던 공화당의 주류들이 마음에 와 닿을 리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시선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란 슬로건 아래 "해외로 이전한 공장들을 되돌리고", "불법 이민자들을 즉시 추방하며", "멕시코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세우며", "모든 무슬림의 입국을 거부할 것"이라 외치는 트럼프에게로 향했다. 즉 트럼프는 미국 사회가 ‘갈색화’되어가고 있음을 우려하는 인종적 우파와 세계화와 양극화로 삶의 방향을 잃은 블루칼라 백인들을 대변하는 하나의 시대 현상이었다.

 

이런 배경 아래 취임 이후 트럼프가 보인 일련의 막무가내 행보는 블루칼라 백인 중심의 "미국 우선(America First)"주의에 입각한 일방주의, 중상주의(현실주의, 보호주의), 인종주의적 반이민주의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취임사에서 트럼프는 첫 번째 정책 목표로 50조 달러어치로 추정되는 셰일가스 및 유전의 적극적인 개발로 에너지 독립 국가를 건설할 것을 제시했다. 에너지 수입 감소로 물가를 잡고 생산 확대로 생긴 이윤을 공공 인프라를 구축에 투자하면 고용 확대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향후 10년 동안 2500만 개 일자리와 4%의 성장을 약속했다. 또 소득세와 법인세도 감면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감세와 동시에 공적 지출의 확대 때문에 발생하는 재정 압박을 어떻게 감당할지 잘 모르겠다. 심지어 트럼프는 네 번째 정책 목표로 미국 패권과 힘에 의한 평화를 위해 압도적인 군사력을 유지할 것임을 천명했다. 그러나 국방비 증액은 당연한 결과로 재정 압박이 더욱 부추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군비 경쟁을 부추길 위험도 다분하다. 

 

트럼프는 이러한 재정 팽창의 위험을 일방적 중상주의로 돌파하려는 듯하다. 그래서 여섯 번째 정책 과제에서 “강하고 공정한(tough and fair)” 무역협정을 강조했다. 혹자는 FTA 폐기 및 TPP 탈퇴를 고립주의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정확히는 미국 노동자 제일주의에 입각한 미국 우선의 무역 강화가 정답일 것이다. 중국이 일차 표적이 될 것이 분명하다. 무역 불균형에 대한 보복 관세와 달러 약세를 위한 환율 전쟁 선포 등이 예상된다. 심지어 트럼프는 하나의 중국 정책도 부정하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중국과 한판 뜰 기세이다. 그러나 이 역시 잘 먹힐지 의문이다. 중국의 상당히 발달한 내수 시장과 역대 최고급으로 보유하고 있는 달러 및 미국 국채는 공격에 버틸 체력과 언제든 반격할 무기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트럼프의 인종주의적 반이민 정책도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당장 중동 지역의 평화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란의 반발이 두드러진다. 특히 이란과의 대형 계약의 연이은 무산과 핵개발 재장전 가능성은 엄청난 복병이 될 수 있다. 국내 저항도 만만치 않다. 전국적인 시위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지난 1월 30일 국무부 관료 100여 명이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비난하는 연판장을 돌리기도 했다. 급기야 연방법원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지난 3일 시애틀 연방 지방법원은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이 자유권을 명시한 수정헌법 1조를 위반했으며 미국 전역에서 그 시행을 잠정 중단하라고 판결했다. 물론 법적 다툼의 최종 결론은 연방대법원에서 내려지겠지만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은 출발부터 삐걱거리게 되었다. 

 

미국 우선에 입각한 일방주의 및 중상주의는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니다. 과거 공화당 행정부에서도 보복 관세를 부여하는 수퍼301조 등이 공격적으로 활용되었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강도가 더 세질 것으로 예상될 뿐이다. 사드 배치는 당연한 수순이 될 전망이다. 주한미군 주둔을 위한 한국 정부의 분담금을 증액하라는 요구가 더 강해질 것이다. 한미 FTA의 재협상 요구도 예견된다. 환율 전쟁의 불똥이 우리에게도 튈지도 모른다. 모든 쟁점에서 미국 우선의 공정성이 기준이 될 것이다.  

 

문제는 그 공정성의 잣대가 트럼프만이 아는 고무줄이라는 데에 있다. 눈앞에 닥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실제 대선 기간 중 트럼프는 즉자적인 제안을 쏟아내었다가 철회한 적이 많았다. 김정은은 미치광이라고 했다가 이후 당선되면 김정은과 대화할 것이라고 번복하기도 했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크다. 이 돌발적 돈키호테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여우의 간교함과 사자의 용기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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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02/0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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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 공약'이라더니, 기본소득이 뜨고 있다

[시민정치시평] 2017년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말한다는 것

 

김주온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아직은 헌재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지만, 촛불 시민들의 열망을 담은 조기 대선은 기정사실화 됐다. 각 정당의 후보들도 윤곽을 드러내고 공약을 발표한다. 새 정부는 인수위원회 활동 없이 바로 임기를 시작하기에 장기적 비전과 구체적인 정책 모두에 대한 검증이 모자람이 없어야 한다.

 

이 판국에 기본소득 역시 주요 화두 중 하나로 떠올랐다. 촛불 광장 초기에 급상승하는 지지율을 보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청년배당에서부터 이어진 기본소득 논의에 일찍이 불을 지핀 덕이기도 하다. 대선 출마 선언과 거의 동시에 발표된 그의 단호한 주장에 다른 후보들도 차례로 기본소득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후보들이 기본소득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녹색당과 노동당의 기본소득 정책이 시기상조라 불렸던 지난 총선이 불과 1년 전임을 상기해보자. 심지어 기본소득을 진보정당의 "황당 공약"이라고 평했던 신문은 기본소득은 원래 우파적 정책이라며 스리슬쩍 말을 바꾸기도 했다.

 

실현 가능성 논의를 넘어

 

지난 1년간 우리 사회가 만들어온 기본소득 논의는 실현 가능 여부가 주를 이룬다. "그래서 기본소득이 지금 한국에서 가능한가?"로 요약되는 질문은 공약의 현실성을 따지기 위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 물음만을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질문으로 삼는 상황이 아쉽다.

 

현실을 고정한 채 실현 가능성만을 공학적으로 따지는 걸 넘어,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선택의 기준 자체를 심판대에 세워보자. 지금은 소수 정치인이나 엘리트만이 아닌 다양한 시민들의 주도로 우리가 꿈꾸는 나라의 틀을 새로 짜야 할 때다. 가난한 이도, 장애인도, 여성도, 소수자도, 어린이도, 동물도 안전하고 자유롭게 함께 사는 세상의 밑그림을 그려볼 기회의 시간이다.

뜨거운 토론을 전개할 사회적 시공간이 절실하다. 나는 기본소득이 그 물꼬를 터줄 잠재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여러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고자, 혹은 최소한 그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서라도 지지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 모두의 정동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매력적인 의제다.

 

기본소득을 말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가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일은 당장 법안을 발의하고 실험을 확대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언제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이 허락된 적이 있었나? 한국처럼 의제 휘발성이 큰 나라에서 단기간에 기본소득이 주요 의제로 부상하는 게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특히 기득 정치세력과 기업들이 기본소득을 외치는 맥락은 자유와 평등의 철학적 기반 위에 세워지는 분배 정치의 관점과 거리가 멀다.

 

정부는 기계화, 정보화로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드는 미래에 초래될 사회적 혼란을 관리하기 위해서, 기업은 "해고는 살인이다"와 "비정규직 철폐"의 구호가 여전히 유효한 끔찍한 한국 사회에 더 많은 '유연성'을 도입하기 위해서 기본소득을 부르짖고 있다. 이들은 자원과 권력을 가지고 담론의 향방을 결정하려 한다. 그렇지만 이들의 의도와는 다른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반대로 기본소득 이후 이러저러한 긍정적 효과가 생길 거라는 예측도 마찬가지의 한계를 지닌다.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는 어떨까? 우리 사회의 기본소득 논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기본소득'에 대해' 말하는 것을 넘어서, 기본소득'으로' 말하기

 

나름 꽤 다양한 사람들과 기본소득 얘기를 나눠오며 느낀 바가 있다. 기본소득에 대한 설명을 처음 듣고 어떤 질문을 하는가는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한다. 즉, 평소 자신의 관심사나 신념, 편견 등이 드러난다. 재밌는 것은 몇 가지 빈번한 질문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구분하는 게 여타의 정치적 아젠다들을 좌우파로 나누듯 쉬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의 경계를 흔들어 그 안에서도 균열을 야기한다. 노동이나 생태와 같은 주제가 그렇다. 여성의 임파워먼트(empowerment, 권한 부여), 시민권 강화와 관련해 기존 성 역할의 고착화가 심해지리란 의견과 아닌 의견으로 나뉜다. 재원 조달 및 제도화 과정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국가와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다. 또한 동료시민인 타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시장과 화폐라는 역사적 산물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알 수 있다. 예술 혹은 예술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그렇다. 의문이 제기되는 순서는 다르지만 조금 오래 이야기하다 보면 방금 얘기한 주제들은 거의 빼놓지 않고 한 번쯤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실현 가능성만을 중심으로 하는 논의를 넘어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기본소득을 제안한다. 기본소득을 렌즈 삼아 경제 성장 패러다임과 미래의 일과 노동, 젠더 문제나 복지국가론을 투과시켜볼 수 있다. 사람들도 이를 매개로 자신이 원하는 삶의 미래, 사회의 미래에 대해 더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제도 완성의 종착점으로서보다 새로운 상상, 편견에 열린 자세를 마주하는 시작점으로서 말이다.

 

국가의 부를 공유하라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기본소득에 찬성하지만…"으로 운을 떼는 사람이 최근 확연히 늘어난 것을 봐도 그렇다. 그렇다면 이제 기본소득의 무엇에 대해 얘기할 것인지, 어떤 입장으로 얘기하는지 명확히 해보자. 막연한 찬성 혹은 반대보다는 기본소득의 무엇을 어떤 관점에서 지지하고, 지지하지 않는지를 밝히는 것이 구체적인 논의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을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면, 그건 기본소득 개념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정책적 분화에 대한 토론이 된다. 또 한편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괜한 거부감'을 곰곰이 뜯어볼 때, 기저에 자리한 여성혐오적인 편견이나 노동에 대한 편견 혹은 스스로에 대한 혐오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들을 좀 더 드러내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부터 솔직하게 말해본다. 2017년의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얘기할 때, 무엇을 얘기하는지를 넘어서 어떤 태도로 얘기하는지 역시 중요하다. '욕망'이나 '자유'와 같은 단어는 이제껏 한국 사회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웠다. 하지만 이 단어들 역시 무엇을 반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다음을 꿈꾸기 위해 필요한 말이 아닐까. '성실한 빈민'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인간 극장'식의 재현 말고, '한국형 생애주기'에 의해 박제되지 않고 특수성을 재단당하지 않는 단독자로서의 삶을 존중하자. 그래서 가구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의 기본소득이 특히 중요하다. 각자가 충분한 시간을 버는 일이고 곧 사회적 논의의 시간을 모으는 일이다. 소진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소생시키는 시간을 바란다.

 

지난해 우리는 국가 최정점의 권력을 가진 이가 참으로 성실하고도 뻔뻔하게 사익을 추구해온 행태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우리야말로 당당해지자. 말로만 갖게 되는 권리가 무용하다면, 손에 쥔 구체적인 '몫'으로 들어올 원래 우리의 것을 요구하자. 국가의 부를 공유하라 외치자.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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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7/02/2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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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시평 311]

 

론스타와 '만수르', 사냥에 쓰는 총은 따로 있다!

국제 중재 회부제 폐지해야

 

송기호 변호사

 

국제 중재 회부라는 낯선 말이 시민의 일상에 뛰어들었다. 론스타의 5조 원 대의 국제 중재 회부 사건의 2차 변론 기일이 오는 29일에 시작한다. '하노칼'이라는 아부다비 '만수르'의 회사도 한국을 국제 중재에 회부했다. 게다가 '엔텍합'이라는 이란 회사도 한국을 회부 의향서를 보냈다.

 

이제는 법전과 법률 용어 사전에서 뛰어나와 한국의 거리에서 활보하는 국제 중재 회부란 무엇인가. 기업이 국가의 국회, 정부, 법원을 국제 중재에 회부하는 것이다. 이 제도의 일차적 특징은 기업이 영업을 하는 나라의 사법부에 복종하지 않는 점이다. 론스타와 만수르는 공통적으로 이미 한국의 법원에 세금 소송을 하고 있거나 패소했다. 그런데도 다시 한국의 세금 부과가 부당하다며 국제 중재로 한국을 끌고 갔다. 이렇게 되면 조세 부과에 대한 한국 법원의 최종적 권위는 크게 흔들린다.

 

실체가 없는 5조 원 청구

 

그러나 이 제도는 그저 사법부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전반을 심각하게 후퇴시켰다.

 

론스타 사건을 보자. 이 회사가 청구하는 돈이 애초 4조6000억 원에서, 5조1328억 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론스타 청구액의 실체를 아는 국민은 없다.

 

론스타 국제 중재 대비를 위해 쓰는 돈이 112억3400만 원이다. 2013년도부터 사용한 예산을 합하면 219억5200만 원이다. 게다가 만에 하나 한국이 패소하면 론스타는 납세자에게 막대한 청구서를 보낼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은 론스타의 5조 원 청구가 어떻게 계산되어 나온 숫자인지조차 모른다.

 

론스타는 2006년 5월에 국민은행에 6조3000억 원에 파는 주식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이 성사됐다면 론스타는 4조1430억 원의 이익을 남길 수 있었으나 계약은 그해 11월에 파기됐다.

 

론스타는 지금 이 계약 파기가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에서 비롯했으므로 그 차액을 청구하는가?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5년이라는 중재 회부 시한이 지났기 때문이다. 론스타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제 중재 회부 의향서를 보낸 날짜인 2012년 5월 21일은 계약 파기일로부터 이미 5년이 지났다.

 

론스타와 만수르의 국제 중재 회부는 한국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심각한 후퇴이다. 입법자가 제정한 법률은 종이 장식처럼 됐다. 공공기관 정보공개법에 따라, 민변이 5조 원의 실체 공개를 요구해도, 정부는 밝히지 않는다. 만수르가 왜 한국을 국제 중재에 회부했는지, 그 회부 의향서를 공개하라고 요구해도, 거부한다.

 

공공 정책을 조준하는 무기

 

론스타와 만수르 사건의 값비싼 교훈은 국제 중재 회부권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주(오스트레일리아)는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이를 제외했으며, 작년에 유출된 환태평양 동반자 협정(TPP) 협정문에서도 호주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조건부 조항이 들어가 있었다. 호주 의회는 한국 호주 FTA에 대해 기업의 국제중재 회부권한에 대해 재협상할 것을 결의했다.

 

독일 경제부 장관 가브리엘(Sigmar Gabriel)과 유럽연합(EU) 국제통상 담당 집행위원 융커(Jean–Claude Juncker)도 미국과 유럽연합의 FTA에서 기업에 국제 중재 회부권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에콰도르, 볼리비아, 베네수엘라가 국제 중재 회부권의 산실인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 조약에서 탈퇴했다. 인도네시아도 기업의 국제 중재 회부권을 포함한 투자보장협정을 종료시키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남아공도 스페인 네덜란드 독일 등과 체결한 투자 보장 협장을 해지했다.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도 <2014년 ISDS 연례 보고서>도 이 제도가 투자를 촉진한다는 증거는 없다고 분석했다.

 

최근의 국제 중재 회부 사건을 보면 국민을 위한 공공 의료 정책마저 국제 중재 회부권의 과녁임을 알 수 있다.

 

미국 제약회사가 의약품 특허권을 인정하지 않은 캐나다 법원 판결에 맞서 5억 달러의 배상을 요구하며 캐나다를 국제 중재에 회부한 일라이 릴리 사건(Eli Lilly)이 있다. 이는 캐나다 법원의 특허 심사 기준에 대한 해석 권한을 정면 도전한 사건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미 FTA에서 "국민 건강, 안전, 환경 등 공익 목적의 비차별적 공공정책의 경우 수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두었으니, 한국의 공공 정책은 공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과 다르다. 이런 조항에서도 기업은 공공 정책을 국제 중재에 회부했다.

 

예를 들면, CAFTA(중미 일부 국가와 미국의 FTA) 부속서 10-C에는 위와 같은 한미 FTA 조항이 있지만, 퍼시픽 림 마이닝 사건(Pacific Rim Mining)에서 국제 중재를 막지 못했다. 이 회사는 금광 채굴 허가에 필요한 환경 보호 조치를 이행하지 못해 허가를 거부당하자 3억 달러의 배상을 요구하며 엘살바도르를 국제 중재에 회부했다.

 

페루-미국 FTA 부속서 10-B에도 위와 같은 한미 FTA 조항이 있지만 렝코 마이닝 사건(Renco mining)에서도 국제 중재 회부를 막지 못했다. 페루 정부가 부여한 오염 제거와 환경 복원 의무 이행기간을 연장해 주지 않았다면서 8억 달러의 손해 배상을 요구하며 페루-미국 FTA에 근거해 국제 중재에 회부했다.

 

경제 위기와 국제 중재 회부권

 

특히 스페인, 그리스, 사이프러스 등 경제 위기를 겪은 유럽의 나라들의 긴축 정책에 대항하는 국제 중재 회부를 보면, 국가의 정책 자율권을 얼마나 해치는지를 알 수 있다.

 

스페인은 재생 가능 에너지 보조금을 삭감하고 전력 생산에 과세한 것을 이유로 국제 펀드들로부터 7억 유로 배상을 요구하는 국제중재를, 그리스는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국제 금융 기관으로부터 국채 정책 변경을 이유로 국제 중재를(Postova 사건), 사이프러스는 부실은행의 건전성 강화를 위해 공적 자금을 투입해 국가 보유 지분을 높였다는 이유로, 10억 유로나 되는 엄청난 배상금을 요구하는 국제 중재(Marfin Investment Group 사건)를 당했다.

 

이처럼 경제 위기에 처한 국가의 비상 정책에 대해 국제 중재로 대항하는 사례는 이미 아르헨티나가 55건의 국제중재에 회부된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나의 결론은 국제 중재 회부제의 폐지이다. 한국과 같이 자국 화폐가 국제 금융 시장을 주도하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국제 중재 회부권을 수용해서는 안 된다. 론스타와 만수르 사건에서 얻은 값비싼 교훈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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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06/24-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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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시평 310]

 

고삐 풀린 빅 데이터는 빅 브라더로 간다

[시민정치시평] 개인 정보 보호 규제의 방향

 

장흥배 참여연대 경제노동팀장

 

하버드 대학교의 L. 스위니(Latanya Sweeney) 교수 팀은 2013년 4월 '인간 게놈 프로젝트 참여자의 이름 식별하기'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 연구는 미국의 유전자 정보 웹사이트에서 우편번호, 생년월일, 성(性), 약물 치료, 진단, 수술 기록 등의 정보 579개를 정보 주인의 이름만 없는 상태로 내려받아 이를 실명이 있는 미국의 유권자 정보와 대조하여 게놈 프로젝트 참여자 정보의 주인 이름을 알아맞히는 실험 결과를 다룬 것이다. 연구팀은 130개 정보의 주인을 추정했고, 그중에 121개가 실제 주인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연구는 이른바 '빅 데이터'(Big Data)를 이용해 비식별 정보를 식별 정보로 전환하는 기술의 경이와 위험을 보여주고 있다. 빅 데이터란 정보통신 기술,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거대한 양의 디지털 정보가 생성되는 환경에서 새로 정립된 정보 개념으로, 정보 풀(pool)에서 부가 가치 창출을 목적으로 특정한 정보들을 추출, 조합, 분석하는 기술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의 새로운 심야 버스 노선 '올빼미버스', 교통 안내 서비스에 날씨(weather) 정보를 결합한 기상청의 '웨비게이션' 등 공공 서비스 분야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금융위 '재식별화 위험' 의도적 무시

 

공공 서비스 못지않게 금융 산업에서도 빅데이터를 활용하려는 이해와 요구가 크다. IT와 금융의 융합에 의한 새로운 금융 산업을 가리키는 핀테크(Fintech) 육성 방안에서 빅 데이터 활성화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6월 3일 발표한 빅 데이터 활성화 방안의 핵심은 신용정보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비식별'(de-identification) 정보를 신용 정보에서 제외함으로써 빅 데이터에 활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신용정보법은 신용 정보의 수집과 활용에 엄격한 개인 동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는데, 비식별 정보는 그러한 개인 동의 없이도 빅데이터에 자유롭게 활용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법률의 위임 범위를 벗어나 시행령을 개정해 걸림돌을 제거하겠다는 행정 독재의 문제는 별개로 치자. 금융위 발표에는 스위니 교수 팀이 경고한 재식별화(re-identification)의 위험성에 대한 대응 방안이 한 줄도 언급되지 않았다. 재식별화란 비식별 정보가 빅 데이터 기술을 거쳐 식별화된 정보로 전환되는 과정 및 그 정보를 가리킨다. 금융위가 이 위험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미 국내외에 빅 데이터에 의한 개인 정보의 재식별화 위협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그러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개인 정보 보호 규제가 입안되는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규제는 기존의 정보 수집 규제에서 정보 활용 규제로 전환하는 것이 특징이다. 교통카드 이용 정보, 폐쇄회로(CC)TV 등 개인이 일일이 동의 절차를 밟지 않은 수많은 개인 정보가 수집되고 유통되는 환경에서 정보 수집만을 규제하는 것으로는 효과적으로 개인 정보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규제 추세에서도 재식별화 위험에 대한 안전장치 문제는 각별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내 개인 정보를 나의 동의 없이 수집․이용하겠다는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방송통신망법 등이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해 설계한 규범은 정보 주체의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빅 데이터 환경에서 정보 주체의 질문은 바뀔 수밖에 없다. '내 개인 정보를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활용하고, 나의 식별․비식별 정보를 누군가 자유롭게 활용해 내 신분이 항상적으로 식별될 위험에 빠뜨리겠다는 것인가?

 

국내외의 새로운 개인 정보 보호 규제의 추세는 바로 정보 주체의 전환된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2014년 5월 오바마 대통령에게 두 개의 보고서(<빅 데이터 : 기회의 활용과 가치의 보존>, <빅데이터와 사생활 보호 : 기술적 관점>)가 제출되었다. 보고서는 정보 주체에 대한 통지와 동의에 의존하는 기존의 규제 대신 정보가 활용되는 맥락에 따라 규제자가 의도하는 결과를 정보 활용자에게 부과하는 것을 새로운 규제의 방향으로 제시하였다.

 

사정은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2013년에 시작된 유럽연합의 정보 보호 규정(Data Protection Regulation) 개정 논의는 재식별화 문제와 유사한 프로파일링(profiling) 문제를 쟁점으로 다루고 있다. 프로파일링은 직업 수행 능력, 경제 상황, 물리적 위치, 건강 상태, 취향 등의 민감한 개인 정보를 분석하거나 예측하는 것으로, 개정안은 프로파일링의 방식과 범위에 대한 제한을 다루고 있다. 개정안은 이 밖에도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 '명시적 동의(explicit consent)'와 같은, 디지털 환경에서 각별히 부상한 개인 정보 보호의 쟁점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개정안은 2016년 안에 모든 유럽연합 가입국이 준수해야 하는 규제(regulation) 형태로 유럽의회를 통과할 예정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보호의 방향부터 새로 정립해야

 

초보적 수준이지만 우리나라 방송통신위원회도 빅 데이터 처리와 관련한 개인 정보 보호 지침을 2014년 12월 '빅 데이터 개인 정보 보호 가이드라인'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핵심은 빅 데이터 활용에서 재식별화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다. 방통위는 정보 수집 단계에서 비식별화 조치가 필요하고, 재식별화된 정보는 즉시 파기하거나 또는 비식별화 조치를 취할 것을 규정했다. 따라서 재식별화 위험에 대한 제한이 없는 금융위의 빅 데이터 활성화 방안은 어렵게 만들어진 방통위 가이드라인을 무력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안전장치 없는 빅 데이터는 우리나라에서 특별히 위험하다.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주민등록번호라는 강력한 식별 키(key)가 존재한다. 여기에 지난해 1월 카드 3사의 개인 신용 정보 1억 건 유출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개인 정보들이 수많은 영리 기업에 의해 불법으로 수집․유통되고 있다. 조선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날마다 한국인의 개인 정보 거래 제안이 올라온다. 개인 정보의 수집 및 거래가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초민감 정보인 개인 질병 정보도 신용 정보로 생명보험협회가 수집․관리해 왔으며, 이제 금융위는 개인 질병 정보를 신용 정보 집중 기관으로 넘겨 비식별화 상태로 빅 데이터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종합하면, 우리나라는 불법 또는 합법으로 수집․유통되고 있는 초민감 개인 정보들이 빅 데이터를 통해 영리 목적으로 다른 분야에서도 식별화될 위험이 어느 나라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산업은 항상 미래 성장 동력, 일자리 창출과 같은 유토피아의 모습으로 소개된다. 금융위의 핀테크 산업 육성 전략, 빅 데이터 활성화 방안에 소개되는 해외 사례들은 개인 정보의 침해가 일상화된 우리나라에서 마치 개인 정보 보호 규제 때문에 산업 발전이 지체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것은 대체로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어느 날 보험회사가 불법 또는 합법으로 취득한 당신의 유전자 정보를 손에 쥐고 당신의 보험 가입을 승인할 것인지 말 것인지, 승인한다면 얼마의 보험료를 책정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미래를 그려보라. 진실은 그럴듯하게 꾸며진 정부 기관의 보도 자료보다는 이런 상상 안에 훨씬 풍부하게 담겨 있다.

 

이런 종류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두려움은 긴 역사를 자랑하지만, 빅 데이터 환경에서는 잠재적 위협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현실화된 위협이다. 2012년 2월,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슈퍼마켓 체인점 '타겟'의 미니애폴리스 지점이 한 여고생의 임신 사실을 해당 학생의 부모보다 먼저 파악해 광고 마케팅에 활용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타겟은 이 여고생이 임신 관련 상품에 관심을 보였다는 정보를 다른 정보와 결합해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의 임신 사실을 식별하였다.

 

빅 데이터는 분명히 복리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 정보를 방어막 없이 기업의 이윤 추구와 정보 권력의 통제 동기에 맡기는 것은 생활의 편리나 경제적 부가 가치의 생산으로 만회할 수 없는 가치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필요에 따라 '익명으로 살아갈 자유의 박탈'은 현대 산업 사회에서 인간의 실존을 위협하는 재앙이다. 그런 면에서 금융위의 빅 데이터 활성화 방안은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물신화된 국가 경쟁력에 대한 강박이 아니라 빅 데이터 환경이 프라이버시에 대해 제기하는 도전을 점검하고, 보호 규제의 방향부터 새롭게 정립하는 일이다.

 

수, 2015/06/1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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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5/06/0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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