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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나라에선 아이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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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나라에선 아이가 자란다

익명 (미확인) | 월, 2016/09/19- 17:22

최근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 3년간 박근혜 정권에서만 수 십조원의 관련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2015년기준 역시 세계최저수준인 1.2에 머물렀다 한다.

1960년대에는 매년 100만명정도의 신생아가 출생하였으나 2015년에는 겨우 40만명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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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하다고 알려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까지 조만간 경제가능 활동인구가 줄어들 것을 예상하면서 한국경제의 미래를 크게 걱정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정책당국자들만 아니라 진보적 진영 그리고 복지정책을 연구하는 분들까지 한국의 출생율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

예상되는 비난을 무릅쓰고 필자는 대한민국의 출산율에 대하여 매우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우선 이와 관련하여서 출산율 증대를 위해 한국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단시안적이고 지엽적인 정책에 대한 비판(“저출산은 문제가 아니라 질문“)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 통계학적인 인구감소에 따른 걱정들에 대하여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선 흔히 사용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라는 용어는 잘못된 것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성격이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치 ‘고령화’도 ‘저출산’처럼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느낌을 풍긴다.

이를 서로 분리해서 사용하는 것이 옳고, ‘고령화’는 예컨대 ‘평균수명개선’이라는 긍정적 단어로 바꾸어 사용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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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출산장려책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출산율의 감소는 장기적으로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문제의 요점은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현상과 통계학적 구성에 있음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저출산 인구감소’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출산율 저하와 인구감소를 염려하는 주요 배경에는 1) 경제활동인구 또는 생산담당인구의 감소, 2) 소비주체로서 인구수 감소에 따른 시장수요 격감과 경기침체, 3) 연금을 포함하여 현재 제도화된 각종 사회복지정책의 지속성 붕괴 등을 열거할 수 있다.

이웃한 일본의 장기적 경기침체의 주요 원인을 일차적으로 인구문제라고 진단한다고 하니, 앞으로 한국에 닥칠 상황을 우리에게 미리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저출산은 오히려 실업률 감소 요인

우선 경제활동인구의 감소에 대한 걱정은 앞으로 닥칠 미래의 모습인 제4차 산업혁명 및 알파고의 인공지능 시대와 매우 모순적이다.

신규 일자리는 고사하고 기존의 생산직뿐만 아니라 관리직과 전문직종까지 로봇과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대치될 것을 예상하는 미래사회에서 경제활동인구감소는 걱정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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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발전은 출산율 저하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로봇이 부족한 인간 노동력을 대체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Venturesafrica)

이제는 머릿수와 근육질의 과잉노동으로 생산과 서비스를 창출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축척해온 과학기술과 사회경제적 시스템으로 일상에 필요한 서비스와 물적 수요를 생산하고 제공받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인구가 감소하면 실업문제는 자연히 해소될 소지가 크다. 출생율 1.5 수준의 독일과 일본 젊은층의 실업율이 절대고용수준 정도로 낮은 것에 주목해 본다.

소비자 권력 강화해야 

인구감소에 따른 소비수요, 그리고 경제의 침체를 염려하는 것 역시 비슷한 설명이 가능하다. 우선 경제의 규모는 연간 만들어지는 부가가치의 총량이다. 되풀이하는 이야기이지만, 생산측면에서는 머릿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기술력과 시스템이 해결하는 만큼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핵심은 배분과 순환과 소비의 과정이며 이는 전적으로 경제권력의 이해를 둘러싼 정치사회적 이슈이다.

대다수의 시민들로 구성되는 소비주체들에게 더 많은 경제권력을 배분하고 양도하면 해결할 수 있는 주제이다.

최저임금의 대폭인상과 동일임금제 적용 등 노동배분율을 상응하게 높이고, 복지체계를 강화하여 균형적 순환이 가능한 재분배 과정을 설계하고, 필요하면 헬리콥터-드롭( helicopter- drop)등의 재정정책을 도입하고, 장기적으로는 기본소득을 실시하면 된다. 중앙대 김교성 교수가 지적했듯이 미래는 반드시 소비중심사회로 전환되어야 한다.

사회변화 반영한 복지제도 설계해야

아래에 예를 드는 덴마크를 포함하여, 북유럽을 위시한 유럽 선진형 복지체계는 제2산업혁명과 2차세계대전 전후 50여 년간의 황금기에 형성된 것이다. 물론 이들의 경험과 사례는 매우 소중한 인류자산이다.

그러나 새로운 상황과 시대의 흐름에는 새로운 상상력과 상응된 정책의 도입이 요구된다. 산업구조와 경제활동의 내용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미래가 다가오는데, 과거의 발자취에 머물러 연령과 인구통계학적 구조의 좁은 시야로 비탄력적인 복지체계를 설계하고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선 경제활동 가능연령이 18세부터 설정되여 있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고, 60-65세 이후에는 반드시 은퇴하리라는 것도 비논리적이다. 오히려 다가오는 21세기의 후반은 노인들의 경험과 지혜가 필요한 시대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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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범국민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사진 출처: http://www.ibu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489)

사회의 변화와 필요에 상응한 역할과 능력과 의사에 따라 경제와 사회복지의 정책이 탄력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물론 미래에서도 복지체계 또는 사회안전망으로서 교육, 의료, 주거 그리고 장애지원 등의 영역들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고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기본소득제도의 도입 여부와 수준이 복지체계에 대한 미래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본다.

인구감소 충격 최소화할 유연한 정책 필요

조만간 한국사회가 겪을 인구감소의 어려움보다 훨씬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화석연료가 고갈이 되는 시점 이후 한반도라는 물리적 지리적 환경적 제약조건 속에서도 반드시 식량과 에너지의 자급, 그리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조건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수치를 제시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1.1%로 OECD 국가들 중 최악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식량자급율도 오랫동안 2-30%에서 정체되고 있다. 지리적 한계로 65%이상이 산악지역인 남한의 가용면적당 인구밀도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인구가 감소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스럽다고 용기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인구의 감소가 적응과 통제가 가능한 수준의 유연적 과정( adoptive & manageable flexibility)으로 이루어지도록 유도하고 정착되어야 한다.

인구문제의 핵심은 상황변화에 대응하는 경제권력 배분 및 유연한 사회안전망의 구축과 소비중심사회로 전환하는 과감한 정책적 합의와 결단이 필요한데,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한국정치의 후진성과 무책임한 관료들의 미개함에 있을 뿐이다.

앞에서 언급한 일본의 암울한 현실도 소수에 닫힌 정치와 경직된 관료제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출산율 높이려면 ‘행복한 나라’ 만들어야

출산율문제로 돌아가 본다. 1.2라는 숫자는 물론 재앙적 수준이다. 정밀한 분석을 요하지만, 필자의 감각적 느낌으로는 1.5-1.7 정도이면 적응과 통제가 가능한 수준의 인구감소가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출산율이 1.8을 넘어서게 되면 평균수명개선과 더불어 제3국의 이민유입 등으로 Stock 인구수가 계속 증가하면서 한반도라는 지리환경의 물리적 조건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본다.

물론 1.5-1.7 수준으로 출산율을 회복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것이 오늘 한국의 현실이다. 조한혜정 교수가 언급하였듯이 단편적이고 지협적인 정책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구환경적 조건에서 포유류들은 생존에 위협을 받으면 절대로 새끼를 낳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진화된 포유류종인 인간의 젊은 세대들도 불안하고 내일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경제적 조건하에서는 자식을 낳는 않을 뿐만 아니라 결혼자체를 거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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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은 한 나라의 행복도의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한다. 태어난 아이가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만 기꺼이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출산율을 높이려면 사람들이 현재와 미래에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사진 출처: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0/06/2011100602548.ht…)

출산율을 높이는 가장 핵심적인 정책은 국민들이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가는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행복이 전제가 된 환경속에서 젊은이들이 안정되고 확실한 미래를 보장받으면 강요하지 않아도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능력만큼 아이들을 갖으려 할 것이다. 행복이라는 주제를 통해야, 비로소 인구문제는 자연스레 바람직한 순환과 균형을 찾아 갈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지구상에서 국민들이 행복한 나라로 알려진 국가들의 내용과 조건을 살펴보려 한다 (각 국의 사정을 알려면 클릭!!)

 

세상 어디에도 우리가 찾는 유토피아는 없다. 가장 행복한 나라들이라고 평가하지만 나름대로 문제점과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각자가 겪어온 역사과정과 사회경제적으로 처한 조건이 서로 달라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나름대로 느끼는 행복의 조건 몇 가지를 적어본다.

행복한 나라의 조건들

우선, 3개국 모두 기본적으로 농업이 잘 발달되여 있고 자연환경을 중심으로 생태조건이 매우 양호하다. 우리가 흔히 1차 산업으로 무시하고 소홀히 다루기 쉬운 농업기반이 환경의 생태적 순환을 유지시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재확인 시켜준다.

삼면이 축복받은 바다로 둘러쌓여 있고 65%의 산림이 아름다운 휴식공간을 제공해주는 대한민국은 어머니같은 역할을 하는 농촌과 더불어 행복을 제공해주는 자연의 기본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두 번째 공통점은 모두가 인구가 적은 상대적인 소국들이다. 인구소국이 갖는 함의는 자신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와 행정의 과정에 스스로가 참여하고 함께 결정하고 스스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한국의 정치시스템에 합의적 민주제를 도입하며, 국민투표와 국민청원 및 소환제를 활성화하고 시민의회의 도입과 주요사법권력의 주민직접선출 등 직접민주제적 요소를 강화하고, 지방분권을 더욱 발전시켜 주민참여와 자치를 확대해서 이들 소국들이 지닌 효과를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치와 자유가 행복의 기초가 된다.

세나라 모두 국가운영의 핵심 주제로 생태와 더불어 평화와 복지를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있다. 역사를 통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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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는 각 개인이 행복을 누리는 나라이고, 그래서 아이의 고고성이 끊이지 않는 나라이다. 그런데 박근혜 집권 이후 어느 누구도 충분히 행복해졌다는 이야기는 없다. 내 꿈이 백일몽이 된 것이다.

동북아 중심으로 새로이 조성되는 미중 강대국간 군사력 대치 과정속에, 핵무기와 사드배치 논쟁으로 상처투성인 한반도가 궁극적인 지향해야할 방향은 끝없이 살상무기로 무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위협이 없는 평화(협정)이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당연히 장구한 역사를 지닌 민족국가로서 정치적 군사적 주권회복이 매우 중요하다.

복지국가라는 주제는 박근혜 정부에서 체험하듯이, 오로지 선거에 이기기 위하여 작성된 기만적 각본이 아니라 항상적으로 국정운용의 주요한 실천의제로 설정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이 처한 현실을 생각하면, 대통령선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지리적 조건으로 형성된 공동체 의식과 가치가 매우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행복은 개인적인 내용이지만 혼자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두가 손을 잡고 노력할 때 이루진다는 부탄의 국왕과 덴마크 작가의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글을 맺는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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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경제위기 20년과 행복한 삶

 

 

이주하 |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지난 10월 13~14일 양일간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제7회 사회정책연합 공동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한국사회정책학회,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 한국사회보장학회,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등 사회복지정책과 관련된 여러 학회 및 연구기관들이 모여서 함께 소통하는 장인 연합학술대회의 올해 주제는 바로 “IMF 경제위기 20년, 한국 사회의 격차해소 전략과 정책”이었다. 한국 사회 전반에 미증유의 거대한 변화를 가져온 IMF 경제위기를 겪은 지 어느덧 20년이 되었다. 그 당시 출생한 아이들이 벌써 대학의 새내기가 된 것이다. IMF 경제위기가 초래한 가장 큰 문제점은 (학회 주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신자유주의의 적극적 도입으로 인한 불평등과 불안정성의 심화라 할 수 있다. 즉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비정규직이 본격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자살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1996년 12.9%였던 자살률(10만 명당 자살자 수)은 1998년 18.4%로 급증하였고, 이후 일시적으로 감소추세를 보이다가 2003년 신용카드 대란을 겪으면서 23.7%(2004년)로 다시 급등하였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1.2%(2010년)까지 치솟은 자살률은 2015년 24.6%로 다소 낮아졌으나 OECD 국가 평균은 12명으로 여전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결국 한국의 자살률은 2003년 이후 OECD 회원국 중 부동의 1위라는 불명예를 짊어지고 있는데, 노인자살률은 압도적으로 높고 청소년 자살률도 증가하고 있다. 

 

사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자살률 뿐 아니라 노인빈곤율, 저임금노동자비율, 임시직노동자비율, 성별임금격차, 노동시간, 저출산율, 사교육비, 산재사망률 등의 지표에서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인의 삶은 과연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발표한 다양한 행복지수의 국제비교를 살펴보면 한국은 (중)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일례로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이 조사한 ‘2015 세계의 국가별 행복지수’에서 한국은 전체 평균 71점보다 한참 낮은 하위권(59점)으로 조사대상 143개 국가 중 118번째에 그쳤고, 유엔 산하자문기구인 ‘지속가능한 발전해법 네트워크’가 발표한 ‘2015 세계행복보고서’에서는 10점 만점에 총 5.984점으로 158개 국가 중 47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OECD의 ‘2015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5.8점으로 OECD 평균 6.58점보다 낮았으며, 34개 회원국 가운데 27위를 차지하였다. 

 

흔히들 행복 혹은 삶의 질을 측정하고 평가할 때에는 개인이 느끼는 ‘주관적’ 삶의 질 내지는 만족도에 초점을 두는 방식과 개인이 처한 ‘객관적’ 조건과 자원에 초점을 두는 방식으로 구분지어 볼 수 있다. 행복을 주관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하버드대의 긍정심리학자 탈 벤-샤하르가 지적하였듯이 행복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행복을 손에 넣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들 수 있겠다. 탈 벤-샤하르 교수의 ‘행복’ 강의는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 예일대 셜리 케이건 교수의 ‘죽음’과 함께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3대 명강의로 꼽히는데, 그는 일상에서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의 4가지 요소로 관계맺기(socializing), 베풀기(giving), 집중하기(focusing), 극복하기(coping)를 제시하였다. 한편, 행복에 대해 주관적으로 느끼는 정도를 측정한 지표가 객관적인 삶의 질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부탄은 경제적으로 가난하지만 행복지수가 매우 높은 국가에 속한다. 어찌 보면 사회경제적 구조에 영향을 받는 소득에 좌우되는 빈곤도 결국 한 사회가 감내하기 힘들고 받아들여질 수 없는 수준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주관적이고 도덕적인 가치판단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빈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권고문 <복음의 기쁨>에서 “나이 든 노숙자가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것은 뉴스가 못 되는데, 주가가 2포인트 빠진 것은 어떻게 주요 뉴스가 될 수 있는가?”라고 던진 질문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주지하듯이 객관적인 측면에서 행복과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로는 소득을 들 수 있다. 이는 앞서 지적한 세 차례의 경제적 위기 상황이 자살률 증가에 미친 영향이나 OECD 평균의 4~5배에 달하는 한국의 높은 노인자살률은 상당부분 OECD 1위의 노인빈곤율에 기인하고 있다는 연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 이후에는 비록 소득이 늘어나더라도 행복의 증가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이스털린 역설(The Easterlin Paradox)’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주관적 행복에 있어서 소득을 중시하는 욕구이론(needs theory)과 만족점(satiation point)을 통해 행복의 상대성을 강조하는 이론 사이의 유명한 논쟁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소득과 행복의 관계에서 만족점을 인정한다면 어느 정도 수준이 적당한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만족점과 최저생계비, 국민최저선, 기본소득 등과의 관계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며, 현금급여 보다는 개별적 욕구에 기초한 서비스가 만족점을 수월하게 충족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생각해보야야 한다.

 

이스털린의 주장과 다른 맥락에서 세계적인 정치경제학자인 UC 버클리의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소득이 많고 소비를 더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님을 강조하였다. 그는 세계적 권위의 로즈 장학금(Rhodes Scholarship)을 받아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던 배 안에서 빌 클린턴과 만난 인연을 시작으로 클린턴 행정부 첫 번째 노동부 장관으로 입각하였고 미국의 신경제를 주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돌아오면 아무리 늦더라도 아빠가 집에 있는지를 알기 위해 깨워달라는 막내아들과의 선문답과 같은 대화 이후 깨달음을 느끼고 장관직을 사임하였다(<타임>은 그를 20세기에 가장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10대 장관으로 지명하였다!). 라이시가 주목한 것은 신경제가 주는 여러 혜택은 한층 더 필사적인 삶, 직업 불안정성,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라는 비용을 우리에게 부담시키고 있으며, 더 풍요로워진 세상이 결코 우리 삶을 더 행복하게 해 준다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인터넷이나 대형마트에서 싼 물건을 ‘득템’하거나 내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 오르면 기뻐하게 된다. 그런데 대형마트가 싸게 팔기 위해선 물품공급자에게 가격인하를 압박하고, 직원들의 임금을 삭감하며, 자원의 남획과 이에 따른 환경파괴를 감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우리나라의 현실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선 네이버 웹툰 <송곳>과 <쌉니다 천리마마트>를 보라!). 결국 소비자 본인과 주변인, 그리고 소비자의 존립기반인 공동체 전체는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러한 조치들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주가를 올리는 대표적인 방안이 대량해고와 인수합병인 상황에서 수익을 올리는 투자자는 언제든지 대량해고의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결국 라이시에 따르면 오늘날 ‘슈퍼자본주의’ 체제 하 권력이 ‘시민’의 손에서 ‘소비자’와 ‘투자자’ 쪽으로 이동하였는데, 이를 다시 되돌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라이시의 주장은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중요성을 환기시켜주고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닌 전후 서구 복지국가를 가능케 한 요체인 것이다.

 

행복 혹은 삶의 질에 대한 국제비교를 살펴보면 역시 복지선진국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상호연관성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흥미로운 점은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의 저자 토머스 게이건이 언급한 소위 ‘복지와 연애의 상관관계’이다. 즉 복지가 잘 갖춰진 나라에선 남녀가 상대방의 직장, 재력, 사회적 지위 보다는 매력, 개성, 인품을 보고 사귈 수 있기 때문에 연애성공률이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행복의 가장 근원적인 영역인 사랑에 있어서도 복지국가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수, 2017/11/0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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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힘으로 완성된 시민연구공간 희망모울을 기념하며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박진도 교수는 가난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부탄을 여행하면서 ‘부탄 행복의 비밀’을 펴냈습니다. 국민총행복(GNH)을 연구하는 부탄연구소에서 활동하고, 한국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는 등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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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10/1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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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기본적으로 개별적이고 주관적 요소가 강하지만, 국가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행복에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인간다움이 가능한 사회적 분위기를 유도하는 제도와 규범 그리고 자연친화적 환경 더하여 공유재가 풍요로운 조건에서, 개개인이 노력을 통하여 의식주 등 기본수요를 해결해 가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 각자가 지닌 덕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발현할 수 있는 조건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꼭 순서대로 나열할 일은 아니지만. 생명을 탄생시키고 유지하는데 기본 조건인 물과 공기가 으뜸을 차지할 것이다. 이것들은 원래 교환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말하자면 신이 선물로 제공하는 자연재(自然財)들이다. 그런데 산업화 과정에서 환경이 오염되면서 자연에서 공짜로 즐기던 물이 이제는 재처리된 상품으로 변질되어 돈으로 사서 마시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속도로 대기가 오염되면 멀지 않아 필수적으로 안전 마스크를 착용하고 별도로 산소를 구매하여 달고 다녀야 할 시대가 도래할 지도 모르겠다.

환경오염과 생태의 파괴로 인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숫자로 표시되는 경제적 지표와 돈으로만 딱 한번뿐인 삶의 성공여부를 계산하고 있다. 젊은 시절과 신혼 초 십여 년을 남들이 부러워하는 강남의 핵심지역에서 살다가 혼탁함과 소란을 피하여 공기좋고 물맑은 서울변두리 지역으로 탈출한 필자는 한국 부동산 광풍의 진원지인 강남지역을 지날 때마다 지난 시절의 기억이 겹치면서 참으로 묘한 생각이 든다.

꽉 막히는 교통체증과 매연 소음 그리고 하늘의 색깔을 잊고 살아야 하는 인위적인 고층 건축물에 둘러싸여 소란과 번잡함으로 사람의 영혼을 멍들게 하는 지역을 주요 매스콤들은 주거환경과 편이성이 뛰어난 지역이라고 떠들어 댄다. 솔직하자, 교육문제는 별도로 하고 주차 지옥과 고물가 등 주거의 쾌적성(amenity)으로 따지자면 최악의 수준이지만, 부동산이라는 자산의 투기적 가치가 가장 높고 이곳에서 형성되는 인적관계로 짜여지는 부패의 장막 속에 사회적 기득권과 불공정한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으며 이곳에 산다는 사실만으로 비인간적인 품격과 비루한 지위가 저절로 높아진다는 착각 속에, 몰려드는 가수요에 때문에 강남 부동산의 불패라는 해괴한 용어가 등장했다는 것을. 대체로 강남 지역은 생명으로 주어진 자신의 삶을 사는 온사람(全人間)들이 아니라 숫자와 과욕에 포로가 된 가인(假人)들로 가득찬 세상이다. 강남을 함께 지나던 유럽 친구는 숨막히게 빽빽한 고층 건물 사이에 밀집된 아파트촌들이 불우한 사무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몰려 사는 불량지역으로 보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것이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외국인의 눈에 비쳐진 강남 주거의 팩트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의 분류는 아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나열하자면, 시장에서 등가의 원칙에 의해 구매하는 사유재(私有財)와 자연과 국가 및 공동체가 제공하는 공공 또는 공유재(公有財), 그리고 생활 속에서 인연을 맺고 조우하는 사람들간에 형성되어 진행되는 관계재(關係財)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윤리철학에서 해방된 주류 경제학은 사람들의 삶을 온전히 포용하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가공적 프레임의 논리와 숫자로 재구성하고 생명의 논리에서 벗어나 임의적으로 해석해 가기 시작했다. 벤담식 공리주의가 도입되면서 산다는 것이 양적인 측정 대상이 되었고 제본스 등 한계효용 학파가 등장하여 우리의 일상을 수식과 도표로 바꾸어 놓으면서 개개인의 인격은 도표에서 움직이는 한 개의 점을 표현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이 가지는 자연적 품성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버렸고 자연환경은 자기회복의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각자가 처한 정치사회적 위치에서 나라에게 바치는 세금을 제한 후 남겨진 자원에 경험과 기량을 동원하여 만든 노동의 결과물을 교환하고 조우했던 물물교환식 시장이 근세로 들어오면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양적인 잣대와 점의 집합으로 표현되는 수요공급의 동선을 따라 오로지 자본의 이익실현이라는 가공의 법칙을 위하여 작동하기 시작했다. 근대경제학적 논리가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공리주의가 만들어낸 양적 등가의 법칙이란 조건 속에 삶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매매하고 소비하는 양태를 사유재의 거래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 언급한 방식으로 시장 거래를 통하여 구매하고 소유하며 소비하는 사유재는 기본적으로 제로섬( zero-sum)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음식 등 소비재뿐만 아니라 각종 내구적 재화와 서비스를 포함하여 한 사람이 이를 소유하거나 소비하면 이를 타인이 함께할 수 없는 특징을 가진다. 이에 더하여 홍수처럼 쏟아지는 상업적 광고 속에서 단순히 생활에 필요해서 소유하거나 소비하는 수준을 넘어서 지나치게 과다한 소비가 마치 약물 중독처럼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측면도 있고, 베블런이 지적하였듯이 자신의 지위와 재력을 타인에게 들어내고자 하는 과시적 성격의 구매형태도 꼴사납게 돌출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서는 아파트의 평수와 사는 지역이 자신의 사회적 신분을 알리는 기준이 되었고, 최근에는 이름깨나 알려진 외제차를 소유해야만 사회적으로 행세하는 존재인 듯 착각하게 되었다. 미술사에는 내용이 텅 빈 철학으로 천박하고 겉보기에만 그저 화려한 로코코라는 양식이 있다. 귀족 중심문화인 바로크에서 시민사회의 문화인 인상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에 나타난 양식으로 주된 배경은 상업주의와 산업시대의 초입 시대에 갑자기 부자가 된 부류들이 귀족의 흉내를 내면서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려는 욕구에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심에 있던 미술가 루벤스의 경우, 한국에서 조영남씨가 그리하였듯이, 쏟아지는 졸부들의 그림수요를 대량 공급하기 위하여 자신이 간단히 소묘와 스케치를 마치면 수십 명의 견습 제자들이 달려들어 그림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상업적인 성공의 방식으로 정당화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예술이 지녀야 하는 순수함과 독창성을 생각한다면 혀를 찰 일이다. 서울 거리에서 흔히 보듯이, 개념없이 겉모양만 화려하게 꾸민 예식장 건물외장 모습에서 위에 언급한 로코코 양식의 끝장을 본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속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반성적 사고능력을 상실한 한국인 졸부들의 허황되고 적나라한 모습이 내용도 없이 겉만 화려한 로코코 풍의 결혼식장의 모습과 겹쳐지는 착각이 든다.

타인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사유재와는 달리,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고 즐길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를 일단 공유재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요공급 곡선의 원리에 갇혀 있는 주류 경제학에서는 이를 수리적 경제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외부효과라는 용어로 설명하려 한다. 대부분 시민들이 주말이면 즐기는 자연적인 산과 바다, 도로 등 교통시설, 의무적인 교육기관, 공공 미술관과 도서관, 공원과 놀이터, 전력공급과 공공의 이동수단, 공공부조로 운용되는 의료 시스템 등 사회보장 제도, 더 나가서는 일반행정 및 국방과 방역시스템 등 우리 생활 주변에 널려 있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 공유재 또는 공공재이다. 사용 용도 및 성격과 유무상 여부 그리고 질적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겠지만 국가와 공공기관이 개입하고 관리하면서 여럿이 함께 사용하고 소비한다는 측면에서 광의적으로 공유재라는 이름으로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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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산업의 이익과 네오콘의 지위를 위하여 항시 지구상 어딘가에서 전쟁을 치루면서 전세계 군사비의 40% 정도인 700억불 이상을 지출하는 전쟁국가 미국은 한편에서는 국내의 사회간접시설이 형편없이 낙후되었고 공공의료 체계와 초중등 교육시설 등이 상대적인 유럽국가들에게 비하여 질과 양 모든 측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저하되어 있다고 한다. 요즘 들어 한국의 젊은이들이 헬조선을 외치지만 수천만의 빈민층 미국인들은 일상적으로 “Fucking USA” 를 입에 달고 살아간다.

미국에 사는 친지 분들이 한국에 오면 공공교통과 병원사용의 편리함 그리고 소비생활 등 미국보다 지내기가 편하다고 입을 모은다. 세계 최고 부자나라인 미국의 공공적 수준이 이러할진대, 지난 민주당의 대선경선 과정에서 미국의 국방비를 대폭 줄이고 절감된 예산을 공공의료, 공공교육 그리고 사회간접시설의 개선과 확충에 써야 한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역설했던 민주사회주의파 버니 샌더스 연방상원의원이 미국 서민들을 위한 미래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반대로 국민총생산액의 55% 이상을 공공적 영역에 사용하는 덴마크는 시민들이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금융기관에 지고 있는 일인당 개인의 빚도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한다. 빚더미를 안고 사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제공하는 공유재가 풍족하여, 불안과 궁핍함 대신에, 공공적 신뢰도와 함께 개별적인 행복지수도 덩달아 함께 높아진 것이다.

세계 곳곳을 출장 다녀본 경험이 있는 필자는 복지안전망 체계를 제외하면 한국이 사회적 인프라 등 공공영역에 있어서는 경제규모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다고 느낀다. 87년 민주항쟁의 성과와 문민정부 이래 도입한 지방자치제도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나타난 효과라고 볼 수 있다. 정치 수준과 공유재적 향유는 직접적인 함수관계를 형성한다.

여기서 한가지 반드시 언급하고 가야 하는 것은 요즈음 회자되고 있는 공유경제에 관한 것이다. 아마존 및 우버와 에어비엔비 등 벤처 전문기업들에 의해 온라인 통신기술을 기반으로 상품거래의 편익을 제공하고 기존에 투자된 고정자산과 시설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이 크게 증대되고 있는 점에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기능과 역할 자체는 당연히 높이 평가해야 하고 다다익선의 관점으로 확대 적용하는 것이 옳은 방향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통신기술과 인터넷 환경은 모두가 공유하고 활용하며 편리함을 즐긴다는 점에서 자연재와 같은 공유적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터넷 환경과 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사업과 거래를 독점하는 상황을 ‘공유재’로 착각하게 만든 ‘공유경제’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데는 매우 조심해야 할 함정이 있다. 반드시 ‘공유재’와 ‘공유경제’라는 용어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인터넷과 통신기술이 제공하는 사업망의 이점과 거래의 성과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되돌려 질 때 우리는 이를 공유재적(的)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공공재적 망을 이용하여 발생하는 거래의 이익을 국가단위 또는 세계적 규모로 독점하고 지배하는 형태를 ‘공유경제’라는 미명하에 묵인한다면 향후 인류 전체가 이들 거대 기업들에게 인질처럼 통제당할 위험성을 지닌다.

위에 언급한 기업들과 구글과 폐북 등 공룡처럼 커진 국제적 벤처기업들이 포장한 ‘공유경제’라는 가면을 벗기어 내고, 이들 기업을 국제적 협의를 통하여 공공적 과정을 거친 판단과 결정으로 통제하는 일이 인류 미래의 매우 중차대한 주제로 다가오고 있다. 공유경제의 플랫홈을 공유재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플랫홈 운용과정에의 공적 개입과 발생한 초과이익을 해당 국가 또는 국제사회로 환원하는 합의와 실행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양적 잣대와 수치로 삶을 평가하고 해석하는 주류경제학이 절대로 포착할 수 없는 내용이 필자가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공동체 속 상호성에 기반하는 관계재이다. 당연히 인간이란 존재는 동물계에서 출발하여 진화해온 탓에 의식주라는 기본재를 반드시 해결해야 하며, 이는 시장과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는 주된 배경이다. 의식주가 기본적으로 해결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 마음에서 우러나는 예절과 미소, 나눌수록 커진다는 도움의 손길, 함께하면 힘이 더욱 세지는 협력, 외로울 때 옆을 지켜주는 우정, 함께 즐기는 맛난 음식, 아름다운 산책길을 걷는 즐거움 등 일상의 마주침과 사건 속에서 형성되는 수많은 관계들이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소중한 주제로 다가온다.

의식주를 포함한 관계적 사건을 우리의 선조들은 동학의 가르침을 통하여 물물천(物物天) 사사천(事事天)이라고 이해했다. 사실 무형적인 의미를 지닌 ‘관계’라는 단어에 물품을 뜻하는 재(財)라는 꼬리를 붙이는 것이 설명모순이라고 느끼지만, 사유재 및 공유재와 대비하고자 하는 뜻도 있고 제3섹타 경제론이 추구하는 주제의 연속선 상에서 설명하고자 편하게 관계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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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전작 ‘다른백년을 꿈꾸자’라는 책에서도 소개한 이스털린의 역설이라는 이론이 있다. 이차원적 그라프에 국가별로 종축은 행복의 크기로 지표를 삼고 횡축은 GDP로 표시한 도표를 작성해보면 행복의 크기는 대략 15,000 – 20,000불까지는 정비례 함수로 증가하지만 20,000불이 넘어서면 횡축으로 평행선을 그리면서 GDP가 아무리 늘어도 행복의 크기는 늘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과다하게 GDP를 늘려가면 행복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는 이론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의식주라는 기본생활을 위하여 우리는 물질적 기반조건과 적정한 사회서비스의 공급망을 필요로 하지만 이를 충족하는 단계에 이르면 물적 조건과 행복과의 정비례적 함수관계가 상실되고 지나치면 오히려 반비례적 위험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더 많은 수입을 위하여 경제적 활동에 과다한 시간을 투입하면 오히려 개별적인 행복지수가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도 흔히 체험한다.

이스털린의 역설인 재화와 행복간 관계함수는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었던 ‘저녁이 있는 삶’의 이론적 배경이기도 하거니와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주당 최장시간 52시간의 정책과도 부합하는 이야기이다. 특히 주당 노동시간을 최장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은 삶의 질적인 향상이라는 본 글의 주제와는 별도로, 노동시간 단축으로 추가로 생성되는 일자리를 공유하면서 심각한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방책이기도 하고 더 나가서는 산업의 혁신적 기제로 작동할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인간이 집중해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의 한계는 매일 4-5시간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적정한 노동시간의 단축은 자기학습을 통하여 생산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생산공정, 경영기법, 설비개선, 신규시설투자와 더불어 새로운 과학기술 등 혁신요소의 도입을 촉진하게 된다.

몇 해 전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에 5분간 진행되는 TED 강연을 본 적이 있다. 미국의 동부벨트에서 정신과 치료 시스템을 운용하는 연구단체에서 70여 년간 긴 세월을 통하여 치료 대상을 추적해 본 결과 건강하게 오랜 수명과 행복한 삶을 누린 계층은, 돈이 많은 부자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공직자나 수입이 좋은 경영자도 아니었고, 평범하지만 사회적 참여에 열심이었고 친구가 많으며 이웃과 관계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것이 요지이었다.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결론이지만 전문가 집단에 의해 오랜 연구의 데이터를 통해서 재확인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관계재는 사유재처럼 시장의 등가적 법칙도 작동하지 않고 AóB 형태의 일대일 대응적 계약도 일방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교환되는 형식은 인격이 담아진 상호적 존중을 통하여 일대일의 맞대응보다는 방사적 형태일 수도 있고 물결과 같은 파장형태를 띨 수 도 있고 순환적인 고리형태로 나타낼 수도 있다. 교환되는 내용은 수고라는 형태의 노동과 감사라는 예의와 상대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감성의 상호적 교류가 주를 이루게 된다.  실제로 우리들 대부분, 지난 시간을 반추하면서 행복했던 장면들을 회상하여 보면, 대체로 물질적 풍요와 재력에 의해 제공된 사유재의 소유 또는 소비의 순간보다는 진심을 담아낸 상호적인 관계재의 교환과 접속들이 압도적일 것이다.

행복은 기본적으로 개별적이고 주관적 요소가 강하지만, 국가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행복에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인간다움을 사회적 분위기로 유도하는 제도와 규범 그리고 자연친화적 환경 더하여 공유재가 풍요로운 조건에서, 개개인이 노력을 통하여 의식주 등 기본수요를 해결해 가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 각자가 지닌 덕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발현할 수 있는 조건이다.

독과점이 통제되는 상태에서 시장적 순기능이 작동하여 일상 생활에 필요한 물질적 수요를 제공할 기반을 확대하고, 국민경제가 창출해 낸 부가가치의 적정 부분을 할당하여 국민 개개인 모두가 의식주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공공재적 기반과 사회안전망적 토대를 구축한 가운데 각자의 삶의 터전인 공동체 속에서 관계재를 꽃피우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를 들여다 보면, 공직자 임명 절차에 따른 청문회마다 예외없이 겪듯이 법제와 관행이 잘못된 탓으로 모두가 하나같이 투기꾼이요, 편법을 저지른 잠재적 범죄 집단들이다. 한국사회 만악(萬惡)의 근원인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서는 토지공개념에 입각하여 적정한 보유세를 부과하고 매매차익을 회수하는 수준의 누진적 양도차익과세를 실시하기만 하면 된다. 어려울 것 없이 본질적 핵심사항의 시시비비가 너무도 분명한데도 이를 훼방하는 온갖 거짓 논리와 위록지마에 눈을 감는 어리석음이 우리의 정치권을 뒤덮고 있다. 현재의 한국사회는 인류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만큼 부동산 투기의 광풍에 휘말려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고백하고 단호한 조치로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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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인간답게 살아갈 생활재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국민경제 수준인 GDP 2만 불을 훨씬 상회하여 3만 불에 도달한 나라에 천만이 넘는 시민이 매일 열심히 땀흘려 일을 해도 형벌 같은 가난(working poor)속에 시달리고 있으니 이를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기득권의 탐욕과 횡포가 극심하고 위에 언급한 로코코 양식처럼 천박한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우리의 일상을 구석구석 지배하는 가운데, 공동선을 추구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은 마냥 무지무능하고 국가 단위가 유지해야 할 공동체적 규범이 송두리째 무너졌고, 시민사회 역시 보수 진보 구별할 것 없이 각자가 속한 집단의 속좁은 이기주의와 특혜와 이해에 갇혀, 당연히 행하여야 할 이웃과 사회에 대한 사람의 도리가 사라져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근 집권당의 대표가 제시한 4만불 시대가 설령 눈 앞에 도래한다 해도, 시민 개개인이 인간답게 살아가기에는 너무 어려운 우리사회의 내적 구조적 실상이 여전히 그대로 놓여 있다. 문제는 GDP 등 재화의 양적 규모가 아니라 정치적 무능에 더한 사회경제적 규범과 공동체적 관계재의 실종에 있다.

우리의 긴 역사를 돌아보며 근본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여 10만이 넘는 평양시민 앞에서 연설하였듯이 배달민족은 매우 독특하다(exceptional). 필자의 앞 글 “한국역사 속 향촌의 자치운동”에서도 기술하였듯이 이화세상과 홍익인간이라는 오랜 전승의 좌표 속에 향음주례(鄕飮酒禮)의 공동체적 규범과 율곡선생이 내세웠던 해주 향약(鄕約)의 높은 뜻을 다시 일으키고 19세기말 근대화의 길에서 민중들의 자각 속에 동학이 크게 외쳤던 사인여천(事人如天)과 유무상자(有無相資)의 정신을 실천해 가야 한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추구하였듯이 정치권이 절치부심으로 앞장서서 사람이 사는 세상을 위해 모두에게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이를 실현하도록 항심으로 노력해야 한다.

월, 2018/10/2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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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는 평창동에서 성산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다양한 시민과 마포구 지역주민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한 연속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그간 시민참여, 고향사랑기부제를 주제로 한 세미나와 일상에서 변화를 일구는 활동가와의 대담 등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명사특강을 열며 많은 시민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는데요. 지난 10월 31일에는 성장 담론을 넘어서 행복 담론을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현장을 소개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트렌드는 누가 봐도 ‘적당히 벌어서 잘 살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 청년세대 내에서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행복 담론까지 유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은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함께 잘 살기를 택했던(또는 그걸 행복이라고 믿기에) 기성세대에게 쉽게 이해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지난달 17일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행복지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세대는 미래안정성에 불안을 느끼는 것으로, 60대 이상은 행복 관련 수치에서 가장 점수가 낮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희망제작소는 행복에 관한 물음을 풀어보고자 지난달 31일 <성장이 아닌 행복을 택하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열었습니다. 강연자로 나선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은 대학 교단에서 3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경제를 연구해왔습니다. 무엇보다 지역 간 격차를 줄이고 균형 있는 발전을 이뤄내기 위해 지역재단도 설립하는 등 헌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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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의 바람과 헌신에도 날이 갈수록 지역 간 격차가 벌어지고, 성실히 공부해 졸업했지만, 막상 취업난에 시달리는 제자들의 모습을 마주해야 했다고 말합니다. 박 이사장은 이러한 현실이 과연 개인의 문제인지를 묻습니다. “16년 이상 공부하고 대학까지 졸업했는데, 취업을 못 하면 네 잘못이 아닐 거야. 왜 분노하지 않니.” 그는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이 옳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경제성장 지상주의’가 만든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이라는 것이지요.

성장과 행복 사이 괴리가 큰 대한민국

한국의 경우 한 국가의 경제 규모를 나타내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불, 세계은행이 발표하는 GDP 순위는 15위(2018년 기준)입니다. 그러나 이에 걸맞지 않은 삶의 만족도가 생각거리를 던집니다. 2016년 발표된 UN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58개국 중 58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나은 생활지수에 따르면 38개국 중 28위를 차지했습니다. 박 이사장이 제시한 지표는 사회의 패러다임에서 비극이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1960년대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한 담론인 ‘경제성장 지상주의’는 우리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개인의 삶을 희생하고, 경제성장에만 몰두하는 분위기를 조장해왔습니다. 그 결과 물질적 풍요와 달리 성장 중독에 따른 불평등, 부의 양극화가 두드러졌습니다. 박 이사장의 주장대로 경제성장이 행복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어도, 완전한 행복을 가져올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복을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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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측정하는 국민총행복

박 이사장은 GDP를 넘어 ‘국민총행복’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1968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로버트 케네디 후보는 “GDP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측정한다”라고 일갈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케네디 후보는 GDP에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것은 포함하는 반면,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더라도 우리 삶에 가치 있는 것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일례로 우리 몸에 해로운 담배, 환경오염의 주범인 자동차는 GDP에 포함되지만, 우리의 건강 혹은 지혜는 물질로 거래되지 않기에 GDP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UN에서는 2011년 “행복이란 GDP가 아닌 보다 포용적이고 공평하고 균형 잡힌 발전.(holistic development)”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많은 이들이(아마 저처럼) 질문을 던질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가 가난해질 때 행복해지나요’ 박 이사장은 행복의 ‘다차원성’과 ‘집단성’을 언급하며 “행복은 주관적이나 객관적 조건 역시 중요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행복은 실현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성장의 과실이 고루 돌아가지 않는 이 사회에서 결국 개인이 느끼는 행복은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는 ‘아직 행복해지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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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국민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나라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세우는 나라, 바로 부탄입니다. 박 이사장은 부탄에서 행복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과연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나라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은 제게 부탄이 국민의 행복을 해석하는 시스템, 제도, 그리고 행복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부탄은 국내총생산(GDP)보다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 GNH)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부탄은 국민이 체감하는 행복의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체계적인 지표로 구성된 GNH 조사를 벌이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인상적인 부분은, 설문 결과 점수가 낮은 사람을 ‘불행한 사람’으로 단정짓지 않고,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국가와 국민이 노력한다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부탄의 시스템과 제도를 한국 사회에 바로 반영하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부탄 국민이 부러운 이유는 적어도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개인과 공동체의 행복보다는 경제성장에만 힘을 쏟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일 겁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의 행복에 관심을 표하고, 지표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박 이사장이 이끄는 ‘국민행복전환포럼’도 그 일환입니다.

지금 행복하신가요?

혹시 아니라고 대답하셨다면, 함께 행복해지는 건 어떨까요. 개인의 노력만으로 행복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요. 한 개인으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지방자치단체의 구성원으로서, 국민으로서, 우리가 행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라, ‘아직’ 행복하지 않은 것이니까요.

글: 유다인 | 이음센터 연구원·[email protected]
사진: 이음센터

수, 2018/11/0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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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작가는 지난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1995년 등단 이후 꾸준히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수작들을 선보이며 대선배 김수현 작가와 함께 현 한국드라마계의 양대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녀가 활동한 지난 20여 년 간은 국내 드라마사에서 제일 역동적인 시기였다. 데뷔 시기인 1990년대는 트렌디드라마가 처음 등장해 현대드라마의 주류문법을 완성했고, 중견작가 반열에 올라선 2000년대부터는 한류드라마와 막장드라마라는 두 가지 현상이 방송가를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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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노희경 작가(사진)는 작품성과 시청률 양 측면에서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이 시간 동안 드라마계에 일어난 결정적 변화는 ‘표피성’이다. 트렌디드라마가 속도감 있는 편집, 다채로운 색감의 영상, 감각적인 배경음악 등 형식미 강화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스펙터클화 하는 데 집중한 최초의 장르였다면, 여기에 스타캐스팅, 해외 로케이션, 화려한 세트 등이 더해져 외적 스케일을 한껏 키운 형태가 한류드라마였다. 그 변화의 끝에는 인간의 내면이 극단적으로 얄팍해지고 외적갈등만 자극적으로 부각된 막장드라마가 있었다.

노희경 드라마가 호평 받아온 이유는 이 극단적인 표피화의 시대를 거스르며 일관되게 인간의 내면을 탐구해왔다는 데 있다. 외적 갈등보다 등장인물들의 내적 갈등을 중심에 놓고 그 감정을 심층까지 파고들며 점층적으로 고조시켜나가는 특유의 서사 방식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강렬한 정서적 환기력을 이끌어냈다. 그녀의 스물세 번째 드라마인 tvN <디어 마이 프렌즈>는 이러한 인간 성찰의 힘이 원숙의 경지에 도달한 노희경 최고의 걸작이다.

 

드라마에는 평균 연령 67세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관찰자 역할인 37세 박완(고현정)을 제외하면, 86세 최고령자 오쌍분(김영옥)부터 63세 막내격인 장난희(고두심)까지, 8명의 주요인물이 모두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이 노인들은 나이가 많은 이들이라기보다는 노희경 인간 탐구의 최종성장형으로서 존재에 가깝다. 노희경은 인간을 근본적으로 심층적 내면을 지닌 존재로 바라보고, 내면의 깊이가 한층 심화되는 것을 성장으로 그려낸다. 물론 이 자체는 그리 새로운 관점이 아니다. 이미 ‘속이 깊다’는 말은 ‘어른스럽다’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중요한 건 어떤 과정을 통해 내면이 깊어지는가에 있다. 노희경 작가는 그것이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녀의 인물들은 대개 극 초반에는 상처와 결핍으로 마음의 벽을 쌓고 살아가다가 곧 자신과 닮은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고 유대관계를 맺으며 성장해나간다. 이때 이들의 상처는 사회적 의미를 띠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공동체 성장의 가능성으로도 확장된다.

<디어 마이 프렌즈>에는 남편에게 학대당하는 여성들, 미혼모, 과부, 이혼녀, 장애인, 가난한 노동자의 아픔 등 그동안 노희경 작품에서 다뤄진 거의 모든 사회적 상처가 총망라되어 있다. 이 드라마가 노희경의 가장 원숙한 작품인 것은 인물들이 이러한 사회적 상처를 이해하고 유대해가는 과정을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고 밀도 높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일 인상적인 사례는 ‘보수 꼰대’ 석균(신구)의 각성서사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족을 위해 ‘돈 버는 기계’로만 살아온 그는 자신의 노고만 중시한 나머지 철저히 이기적인 괴물이 됐다. 어느 날 아침 아내 정아(나문희)가 떠나고 혼자가 되자 비로소 스스로를 돌아본다. 자신이 그녀를 평생 노예처럼 부리고 발닦개처럼 취급해왔음을.

아내의 상처를 알아보면서 그의 시선은 조금씩 확장된다. 습관대로 버스에서 우악스럽게 자리를 뺏고 보니 쫓겨난 소녀의 장애가 눈에 들어오고, 평소 아내 친구들을 볼 때마다 쏟아낸 폭언들이 떠올려진다. 제일 심한 폭언을 퍼부었던 완이 앞에서 “세상에서 제일 큰 죄는 지 죄를 지가 모른다는 거”라고 고백하는 그의 반성은 뼈저리다.

석균의 뒤늦은 성장은 지금의 한국사회가 지닌 치명적 문제점을 시사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석균처럼 ‘먹고 살기 바빠서’라는 말로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심을 합리화하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상화된 태도다. 정부의 철학도 지배하고 있다.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약자들의 인권에서부터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태 등 얼마나 많은 사회적 이슈들이 ‘민생’으로 포장된 경제우선주의 앞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가.

물질적 가치가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현실에서 뚝심 있게 인간의 가치와 연대를 존중하는 노희경 드라마의 윤리적 태도는 지금 더욱 소중하다. 그리고 <디어 마이 프렌즈>는 이제 막 50대에 접어든 이 젊은 거장의 또 다른 20년과 성장을 기대하게 만든다.

월, 2016/06/2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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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기금고갈을 막기 위한 새로운 생각

 

김우창 ㅣ 카이스트 산업및시스템공학 교수

 

메르스의 여파로 잠시 주춤했던 공적연금강화에 대한 논의가 다시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공무원연금개혁안의 후속 조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사학연금과 군인연금의 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이러한 공적연금강화에 대한 논의의 중심에는 항상 국민연금이 있어왔다. 이는 국민연금의 가입자가 국민 중 절대 다수이며, 기금의 규모가 다른 공적연금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 500조원이 적립되어 있고, 30여년 후에는 GDP의 절반 정도인 2,50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산되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기금이 2060년 경에는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적연금과 관련된 대부분의 논의가 국민연금의 기금고갈을 어떻게 막는가에 대한 논의로 귀결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국민연금의 기금고갈을 막기 위해 일반적으로 제안되는 방법은 금융투자 수익률의 증대이다. 이는 2060년까지 투자수익률을 연평균 1% 높이면 기금 고갈이 4년, 2% 높이면 11년을 연장할 수 있다는 추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초과수익률 1%는 보험료율 2.5% 인상효과가 있다고 하니 아주 매력적인 주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투자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상당히 껄끄러운 주장이다. 투자수익은 위험과 불가분의 관계인데, 위의 추계에는 위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특성상 기금이 취할 수 있는 투자위험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임의로 정할 수 없으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만 정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험수준의 변경에 대한논의가 딱히 없는 것을 고려하면, 현재의 위험수준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암묵적인 합의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투자수익률을 높혀서 기금 고갈을 늦추자는 주장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현 위험 수준을 유지하면서”라는 전제를 새롭게 추가해야한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추가위험 없이 초과수익을 달성할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해보도록 한다. 초과수익률 달성은 두 가지 방법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 첫째는 “운”이요, 둘째는 “실력”이다.

 

안타깝게도 “운”으로 추가 수익률을 달성할 확률은 다음 표에 나타난 바와 같이 상당히 낮다. 향후 40년간 연평균 1% 포인트의 초과 수익률을 달성할 가능성은 5.7%밖에 되지 않으며 그 이상의 초과수익은 복권에 당첨될 정도의 확률로만 가능하다.

<1985년에 존재했던 673개의 뮤추얼 펀드 중 2014년까지 살아남은 것은 223개인데, 이 중 국민연금기금의 위험 (연수익률의 표준편차: 4%) 수준에서 시장인덱스 대비 연평균 1% 이상의 초과수익률을 낸 펀드는 하나밖에 없었으며, 연평균 2% 이상의 초과수익률을 낸 펀드는 단 하나도 없었다. 즉, “실력”을 통해, 혹은 “스타 펀드매니저” 영입을 통해 초과 위험없이 수익률을 연평균 1% 이상씩 내는 것은 실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운과 실력이 동시에 작용할 수도 있고, 통일 등의 극적인 외부상황변화 역시 고려해볼 수 있지만, 국민연금이 현 위험수준을 유지하면서 수익률을 높혀 기금고갈을 의미있는 수준으로 늦추는 것은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음이 확실해 보인다. 만약 위험을 증가하지 않고 연평균 1~3%의 초과 수익을 낼 수 있다면 모든 수단과 역량을 동원하여 추진해야 할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불가능함이 뻔히 보이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국민연금 기금고갈은 저출산 고령화 때문에 발생한다. 연금 보험료를 내는 젊은 세대는 줄어드는데 연금을 받는 노령층이 늘어나기에 수지적자가 발생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기금고갈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출산율이 충분히 높아진다면 기금고갈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즉, 국민연금의 투자대상을 금융시장에만 한정하지 않고 “인구”로 확장한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1000만원을 투자했을 때 인구가 0.4명 이상 증가된다고 가정하면 매년 기금의 1% 이내를 “인구증가에 투자”함으로써 향후 100년간 기금고갈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경우 인구증가투자의 수익률은 국민연금기금의 예상 금융투자수익률인 5.5%를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인구증가 투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높은 수익률을 발생시키는 매력적인 투자자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2500만원을 투자하여 1명의 신생아를 추가로 태어나게 할 수 있다면, 기금의 포트폴리오를99%의 금융투자와 1%의 인구투자로 구성하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금의 대부분을 주식·채권 등 금융부문에 투자하되, 그 일부를 사회투자를 통한 출산율 증가에 활용한다면 국민연금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충분히 높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구증가에 대한 투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큰 장점이 있다. 연금이나 기금과 같은 장기투자의 영역에서는 대체로 장기 채권에 대부분의 자산을 투자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부채가 상대적으로 먼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지급을 해야 하는 형태이므로, 연금이나 기금의 입장에서는 장기 듀레이션 채권에 매도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 상태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가장 크게 발생하는 위험인 이자율 리스크를 헷징하기 위해서는 자산 역시 듀레이션이 긴 채권들로 구성된 포트폴리오에 투자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를 면역 (immunization) 전략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러한 장기채권의 경우 신용위험 역시 크고, 신용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 발행되는 장기 채권은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추가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연금 및 기금들의 초장기채권의 수요가 늘어나는 반면 그 발행규모는 줄어들면서 국민연금기금의 현재 자산과 미래의 성장을 생각할 때, 원하는 수준의 우량장기채권을 확보하기 어렵거나, 혹은 확보하더라도 시장의 원리에 의해 비싸게 구매하고 싸게 팔게 만드는 시장 임팩트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구증가 투자의 현금흐름을 생각해보면 현 시점에 복지의 형태로 투자를 하고, 이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인구가 성장을 하여 경제활동을 하는 동안의 기여금을 수익으로 얻게 되는 형태이기 때문에, 전 세계의 금융시장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장기채권보다 듀레이션이 길 수 있으며, 따라서 자산과 부채 사이의 독립적인 움직임에 의해서 발생하는 위험을 효율적으로 줄여줄 수 있는 훌륭한 투자 대안이 될 수 있다. 즉, 인구증가 투자는 수익률을 무시하고서라도 자산-부채 관리 측면에서의 리스크 헷징 수단이 될 수 있으므로 그 자체로 이미 충분이 매력적인 투자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금융시장에서의 장기 채권에 대한 전망을 감안하면, 시장 임팩트 비용이 없고 듀레이션이 매우 긴 장기채권인 인구증가에 대한 투자에 대해 자산-부채 관리 모델의 관점에서, 혹은 위험관리의 관점에서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정부가 아닌 국민연금이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재원을 제공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사실 이는 간단하게 해결가능한 문제로, 정부가 발행한 장기채권을 국민연금이 매입하고, 이 금액을 정부가 인구증가 사업에 활용하되, 상환시점에서 인구증가율이 어느 이상이면 원금과 이자를 감면하는 방식을 취하면 된다. 만약 인구증가율이 충분히 높다면 상환액의 감면이 이루어지더라도 기금고갈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인구증가가 충분치 않은 경우에는 채권의 원금과 이자를 상환받을 수 있기에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이 없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재원과 투자 위험을 국민연금이 아닌 정부가 부담하는 형태로 만들 수 있다.

 

현재의 저출산 현상은 경제성장률 감소 혹은 국가경쟁력 하락의 수준을 넘어 국가의 존립마저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를 국민연금기금을 적절히 활용하여 극복할 수 있다면 기금고갈문제까지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가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월, 2015/08/1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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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한겨레신문(2016. 6. 14)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구의역 안전문(스크린도어) 사고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김군의 죽음을 계기로 서울형 노동혁명을 일으키겠다고 말했다. 일단 서울시의 원인규명 작업, 책임자 처벌, 대안을 기대해 보지만, 이것은 서울시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나는 한국의 뿌리 깊은 노동 비하 관행, 노동을 오직 비용으로만 보는 이 사회의 주류 지배층의 사고방식과 대학을 나와야 인간대접 받을 수 있다는 이 사회의 관행이 깊게 얽혀서 그를 죽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144만원의 월급 중 100만원을 저축해서 대학에 진학하려 했다. 그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노동조건을 감수한 이유는 생활비와 등록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메트로 자회사의 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였으며, 대학을 졸업하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었으리라.

지난 6월 2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중 숨진 김군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유가족을 만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었던 그는 고용불안 때문에 피켓시위도 했다. 그러나 그는 노동자의 권리를 집단적으로 제기할 수 없었고, 임금인상도 요구할 수 없었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도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손에 공구를 들지 않는 아버지 세대 메트로 출신 간부나 정규직 직원은 400만원의 월급을 챙겨도 자신은 거의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밖에 받지 못하면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이 역 저 역 미친 듯이 뛰어다니면서 ‘노오력’해야 했다.

그가 살았다면 1년짜리 계약은 갱신되었을지 모르지만, 과연 정규직의 희망이 실현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가 되면 과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열심히 돈을 모아 대학 졸업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자기소개서를 200번이나 써야 하는 지금의 대졸 백수 청년이 되진 않았을까?

그래도 19살의 젊디젊은 그는 이 사회가 만든 교육을 통해 정규직도 되고 관리자도 될 수 있다는 기성의 신화를 의문시할 수는 없었다. 현실을 그냥 감내하기에 그에게 ‘미래’는 너무 크게 열려 있었다. 불행히도 그에게 미래는 없었다.

노동비하/계층상승이라는 도그마는 이 사회 주류층의 이해관계에서 나온 것이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 시간제, 위험 작업장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기보다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 관리자들에게 더 높은 보상과 직업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은 자본주의 일반의 특징이 아니라 한국적 관존민비, 노동천시의 관행이고, 그 최대 수혜자들은 관료와 기업가들이다.

공기업 비용절감, 경영효율을 거의 폭력적으로 강제하면서도 자신들은 어떤 견제나 감시도 받지 않다가 퇴직 후에는 공기업에 한자리 차고앉은 이 나라 고학력 관료들의 특권과 부패, 언론과 지식인들의 반복되는 도그마 유포 역시 이해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기업이 위기에 처하면 경영자를 문책하지 않고 노동자부터 자르는 일은 가장 퇴영적인 한국식 신자유주의다.

메트로 노조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보다는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주요 업무 아웃소싱으로 자식 같은 청년들이 저임금과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모르는 체했고, 시민들은 자신이 비용을 더 부담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그들이 노동자의 파업을 죄악시하는 언론에 박수를 쳤기 때문에 청년들이 이 저임금의 위험한 노동을 감수했고, 대학 진학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다.

현재의 메트로 예산 범위 내에서도 김군은 250만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고, 노조와 시민사회의 감시권이 있었다면 그는 2인1조의 작업팀에서 일하면서 최소한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한국만큼이나 노동자 권리가 약한 일본도 시간제나 비정규직에게는 돈을 더 얹어준다. 배관공이 교수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고,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 격차를 더 줄일 수 있다면,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노동 존중과 노동권의 개념을 가르칠 수 있다면, 김군은 정비공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면서 대학 가기 위해 그렇게 무리하게 일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금, 2016/06/2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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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공식 출범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300여 명의 하객들이 행사가 열린 서울글로벌센터 회의장을 가득 메우고, 새로 출범하는 다른백년의 미래를 축하했습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다른백년 5인 이사들의 토크쇼. 김미경 PD의 사회로 열린 토크쇼에서 5인 이사들은 서로의 인연, 다른백년이라는 조직을 만든 이유, 향후 계획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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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백년 독수리 오형제, 5인 이사들의 토크쇼가 김미경PD의 사회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동춘 다른백년연구원 원장은 “내가 젊었을 때는 사병, 하사관의 입장에서 장교급 선생님들을 간판으로 모시고 여러 가지 일을 벌였는데, 내가 장교의 나이가 되고 보니, 사병과 하사관을 찾을 수 없다”며 “장교의 입장이 된 뒤에도 사병을 모으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김 원장은 ”앞으로 다른백년에 젊은 학자들, 활동가들이 더욱 많이 모여서 참신한 아이디어와 활동이 분출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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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창립대회에는 300여 명이 하객이 참석해 다른백년의 출범을 축하했다. 하객들이 5인 이사들의 토크쇼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은 “30년 넘게 신문기자로 일해오면서 항상 중립적인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했다”며 “그런 직업적 태도를 통해 세상을 비판해왔지만, 그런 비판이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지 못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의 움직임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팝페라 가수 율리아 신 교수의 노래와 프롬코리아팀의 북 공연은 행사장의 열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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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 신 교수의 노래(왼쪽)와 프롬코리아 팀의 북 공연으로 출범식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날 행사는 오후 7시30분에 시작해 9시쯤 마무리됐습니다.

그리고 프레시안에서도 이날 행사를 상세히 다뤘네요. (“그 많던 민주화 운동가들은 어디로 갔나”)

또 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도 다른백년 출범식을 말하고 있네요. (‘시민’과 ‘주민’, 대화가 필요하다)

월, 2016/06/2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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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아가씨> 두 작품의 관람 가능 연령은 몇 세일까? <아가씨>는 여배우 김민희의 파격적 정사장면이 있다고 하니 당연히 19금이라 여길 듯 싶다.

그렇다면 <곡성>은 어떨까? 몹시 훼손된 신체가 등장하고, 일가족 살인과 같은 끔찍하고도 잔혹한 일도 벌어진다. 그렇다면 과연 몇 세 관람이 적당할까? 정답은 15세 관람가이다.

15세 관람가, 만 15세 이상 관람을 권하는 영상물. 선정적, 폭력적 장면이 나올 수 있으나 청소년들도 충분히 관람할 수 있을 수준의 영상물을 가리켜 15세 관람가라고 부른다. <곡성>의 최종 관람 등급은 15세 관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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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스틸컷.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곡성>이 개봉한 이후 과연 <곡성>이 15세 관람가가 맞는가에 대한 격론이 오갔다. 공포, 스릴러, 미스테리와 같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곡성>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긴장과 공포일 것이다. 긴장과 공포는 관객에게는 충격으로 흡수된다. 물론 <곡성>에는 존속살해와 같은 끔찍한 일들이 출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살해 도구가 직접 등장하거나 살해 장면이 영화적으로 연출되지는 않는다. 직접적으로 연출된다는 점에서 찾자면 <곡성>에 연출된 가장 잔인한 장면은 아마도 닭의 목을 잘라 피를 받는 장면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성>을 보고 난 많은 관객들은 15세 관람가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는 영화가 무척이나 잔혹하고 공포스러웠다는 고백과도 같다. 비록 회칼이나 도끼로 신체를 훼손하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끝내 마음을 졸인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무섭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공포란 단순히 도구의 노출이나 장면의 재연이라는 물리적 현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국 영화의 등급은 이렇듯 아리송한 경우가 많다. 얼핏 보면 <곡성>보다 더 잔혹할 것도 없어 보이는 영화 <신세계>는 청소년관람불가이다. 아마도, 범죄조직이 벌이는 범죄라는 점에서 좀 더 엄격하게 폭력성을 살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신세계>에 등장했던 정청(황정민)이 했던 대사, “들어와, 들어와”는 전 연령이 보는 T.V개그 프로그램 및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대사로 차용된다. 이병헌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달콤한 인생>의 대사 중 하나인 “넌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가 전국민적인 유행어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말하자면, 패로디가 굉장한 인기를 끌어 모은 셈인데, 패로디의 원관념이 애당초 19세금이다. 영화의 장면이나 내용이 주말이면 방영되는 짜깁기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 소개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패로디는 단순히 소개된 정도가 아니라 대중적 소비가 축적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원관념으로서의 지위를 갖는 문화-놀이다. 19금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사가 패로디된다는 것은 그 만큼 그 영화가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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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가 19금이 되고, 또 어떤 영화는 청소년의 관람이 허용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문제적인 것은 대개의 한국 영화의 등급이 폭력에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선정성에는 과도하게 엄격한 잣대를 댄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선정성에는 단순히 성적인 호기심 유발이 아니라 사회경제 및 정치적 면까지 포함되어 있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청소년 관람 불가, 즉 19금을 받을뻔한 맥락도 여기에 닿아 있다. 남북한 병사들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한다는 묘사가 남북한 관계에 대한 오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주려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천만관객이상을 동원한 한국 영화는 모두 11편이다. 이 중에서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는 단 한편도 없다. 가장 많은 관람가는 15세 관람가였고, <국제시장>이나 <괴물>과 같은 작품은 12세 관람가였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15세였는데, 왜 <국제시장>은 12세 관람가였는지 그리고 한편 동성애가 암시되는 <왕의 남자>가 지금 같았으면 과연 15세 관람가가 가능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청소년 관람불가야 그래도 동의할 만 하지만 도대체 12세와 15세의 구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등급위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을 영화소비자들 역시 공유하는 사회적 합의여야 한다. 관객수를 몇 백 만 명씩 가늠하는 관람 등급이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나뉘고 구분되지 짐작할 수 없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검열은 한국 영화계에서 사라진 단어라고 하지만 체감상 영화 등급제도가 검열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는 비단, 영화표를 사는 데 나이가 걸려 민감한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닐테다. <다이빙벨>과 같은 작품의 상영에 단지 프로그래머들만의 결정이 전부가 될 수 없는 상황도 여기서 멀지 않다.

무릇 추상적인 기준에는 그림자가 많다. 좀 더 투명한 기준을 제시할 수 없다면 말 그대로 창작자의 견해가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어야한다. 등급을 나누는 일이 권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화, 2016/06/1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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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결과를 만들어낸 민심은 어떤 것이었을까.

14일,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사단법인 다른백년과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가 주관한 ‘여론조사로 살펴본 20대 총선결과’ 발표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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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서는 다른백년 리서치팀의 신승배 교수, 정완규 교수, 강흥수 센터장 등이 분석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여론조사는 20대 총선 이후 최초의 전국 조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신승배 교수는 정치효능감, 공동체의식, 기관만족도, 경제상황 인식, 정치상황 인식 등 다양한 변수에 대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정완규 교수는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유권자를 정당별 지지자로 구분한 뒤 각 지지자별 정당지지 이유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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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흥수 센터장은 “오늘은 기초적인 분석결과만을 공개했지만, 향후에 보다 심층적인 분석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여론조사분석결과는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디앤알(data & research)에 의뢰해 20대 총선 직후인 4월28일∼5월2일까지 실시됐다. 지역, 성, 연령별로 비례할당방식으로 표본을 추출했으며, 표본수는 전국 만 19∼69세 성인 남녀, 117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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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분석결과와 분석보고서는 조만간 다른백년 홈페이지에 공개될 예정이다.

화, 2016/06/1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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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6일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출범을 앞두고 김동춘 다른백년연구원 원장이 한겨레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한겨레신문(6월 9일)에 실린 김 원장의 인터뷰를 전재한다)

“지난 100년의 뒤틀린 근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백년을 모색해야 한다.”

‘시민사회’를 지향하는 각계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계에 봉착한 우리 사회의 근본문제를 진단하고 실천적 대안 담론을 기획하고 제시하려는 사단법인 ‘다른 백년’이 오는 16일 창립 보고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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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승동 선임기자

‘다른 백년’의 세 축인 연구와 논평, 포럼에서 연구분야 조직인 ‘다른백년연구원’의 원장(비상근)을 맡은 김동춘(사진) 성공회대 교수는 6일 “지난 60여년간의 근대화와 재벌주도 경제성장의 결과, 한국 사회가 양극화와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고, 남북 기득권 세력 권력 강화에 정치적으로 이용돼온 70년 분단체제가 더는 지탱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다른 백년을 시작하는 이유를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에게 지난 100년은 강요된 식민지적 근대화, 서구 따라잡기, 국가주의, 물질만능과 인간 존엄성 경시의 시대였다. 우리는 반쪽국가의 반쪽 주권, 남북 대결, 개발독재형 신자유주의를 재검토·청산하고 새로운 사회, 새로운 정치와 국가건설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니까 다른 백년이라는 이름에는 김 교수가 “반쯤은 성공이고 반쯤은 실패”라고 보는 지난 100년간의 한국 근현대사에서 그 ‘실패’를 앞으로 백년간 또다시 되풀이하게 해선 안 된다는 결의와 미래 비전이 담겨 있다. “지난 백년 우리의 근대는 처참했지만, 완전히 실패했다고 보진 않는다. 성장의 토대를 확립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도 사실이다.”

김 교수 등이 생각하는 ‘백년’의 기점은 한반도 근대의 출발점이자 전혀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펼쳐보였던 1894년 동학혁명이다. 그가 말한 “강요된 식민지적 근대화, 서구 따라잡기(추종), 국가주의, 물질만능과 인간 존엄성 경시”의 “뒤틀린” 지난 100년은 동학혁명이 일제 등 외세 개입과 내부 역량 부족으로 실패하지 않았다면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근대화와 인간 존엄성을 중시하는, 그와는 전혀 다른 100년이 될 수 있었다.

“이 모임이 시작된 2014년이 바로 동학혁명이 일어난 1894년 갑오년이 60년마다 돌아오는 갑오세의 두 번째에 해당하는 해, 곧 120년이 되는 해였다.” 2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출범하는 다른 백년은, 동학혁명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고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새로운 세상,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의 인권과 평등의 다른 100년을 세우자는 이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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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 기록화

다른 백년은 진보적 가치와 담론을 생산하고 확산하는 민간 싱크탱크인 ‘다른백년연구원’, 연구원에서 생산된 담론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매월 여는 토론회 중심의 ‘백년포럼’, 사회 현안들을 진단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논평 활동을 벌일 포럼 ‘백년을 위한 합의’를 축으로 민주주의 시민교육을 위한 부정기 프로그램 ‘백년학당’ 등으로 짜여 있다. 사무실은 서울 마포 도화동(독막로)에 “상근자 몇명을 두고 회의 등 간단한 행사를 치를 수 있는 정도의 공간”으로 마련했다.

김 교수는 다른 백년의 집행기관이요 중심인 위원회 형식의 ‘5인 이사회’와 10인 확대운영이사회의 핵심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원장을 맡고 있는 연구원은 “40~50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주주의·사회적 경제·자영업연구·평화통일 등 4개 분과팀이 있고, 이와는 별도 조직으로 설문조사 등을 벌이고 분석하는 리서치팀과 30~40대의 박사급 소장 연구자팀(일부 중복)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는 구미 시민사회를 떠받치는 버팀목의 하나인 민간 싱크탱크의 부재가 한국 사회의 중대한 취약점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이익을 대변하거나 실천담론이 부재한 아카데믹 위주의 대학 연구소, 선거용 단기 분석과 계파 나눠먹기 위주의 정당 연구소 등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엔지오(NGO)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시민단체인 일촌공동체를 만들고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 참여해온 이래경 이사장을 중심으로 김 교수,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 최상명 우석대 교수,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이 이사회에 참석한다.

그는 “1980년대 이후 그 줄기찬 민주화운동에 힘입어 국제사회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이자 가장 역동적인 나라로 칭송받던 한국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8년을 거치는 동안 일거에 후진국 수준으로 후퇴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며 “그만큼 우리 사회 민주화의 토대가 취약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백년은 바로 그 취약한 한국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시 탄탄히 쌓는 작업에 앞장서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 지지나 반대 등의 현실정치 개입은 하지 않을 것이다. 제도정치 바깥의 정치, 정당이 아닌 정치를 하려 한다.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 건설이다. 30년 민주화 운동의 에너지가 고갈된 만큼 미래의 정치가, 사회운동가들을 키울 것이다. 책임있고 행동하는 지식인을 키우고 실천적 지식 생산과 유통의 거점이 되는 대학 바깥의 대학이 되겠다. 대중과 소통하는 대안 언론의 구실도 하려 한다.”

그는 “국가, 시장, 사회의 실패와 지난 100년의 뒤틀린 근대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시민정치를 복원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전략으로 수출주도 성장주의 발전전략과 신자유주의 시장만능주의 발전경로를 수정해 생태와 사회의 조화를 고려한 성장과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지식정보기술 중심의 한국형 사회적 시장경제를 건설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사회력’(사회적인 힘)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사회력이란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문제를 집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힘, 보통사람들이 연대를 통해 강자에게 맞설 수 있는 힘, 그리고 자신의 대표를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킬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사회력이 고갈되면 경제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오는 16일 저녁 7시30분부터 종각역 앞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창립보고대회에서는 김 교수의 기조강연과 5인 이사 토크쇼, 팝페라 가수 율리아 신의 노래, 프롬코리아(FK)의 드럼 연주 등이 펼쳐진다.

한승동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목, 2016/06/0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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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경향신문(2016. 6. 1)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관련한 책을 검색해봤다. <세계의 대통령 반기문> <세계 위인전 WHO?- 반기문>과 같은 어린이용 책 목록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영어 연설문도 많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밑줄 그으며 학습해야 할 텍스트가 된 것이다. 간혹 성인용도 눈에 띈다. 그중 하나를 읽어보다 그만두었다. 독자를 초등학생 취급하는 영웅담이었다. 적어도 한국에서 그에 관해 책을 쓰는 방식은 오직 한 가지 같다. 그렇지 않다면 그를 초인으로만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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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그가 역대 사무총장 가운데 최악으로 평가받는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위인전의 주인공으로 계속 남을 수도 있던 그가 대권을 향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자신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은 결과다. ‘포린폴리시’는 사무총장 후보 시절 미국 외교협회에서 문답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2010년 이렇게 썼다. “단조롭고 어색한 영어, 공허한 답변들은 나를 깊이 잠들게 했다. 후보 때의 낮은 기대를 감안하더라도 임기 3분의 2를 마친 지금 반은 최악이다.”

‘가디언’은 사무총장 되고 처음 워싱턴을 방문, CSIS에서 연설했던 때를 회상하는 기사를 2010년에 썼다. “세계적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기 위해 수백명이 참석했다. 즉각 따분함과 실망감이 찾아왔다. 무미건조한 연설, 진부한 이야기들이 끝없이 되풀이되자 청중은 휴대전화와 블랙베리를 들여다보거나 허리를 굽힌 채 졸기 시작했다. 임기 4년째가 되어도 그는 개선되지 않았다.”

그를 비판할 때 등장하는 용어는 항상 같다. 단조로움, 우유부단, 진부함, 소심함. 여기에 ‘어디에도 없는 사람’ ‘소재불명’ ‘무기력한 관찰자’라는 딱지가 붙는다. 분쟁, 인도주의적 위기에 적시 대처하지 못해 재앙적 사태를 초래했다는 게 이유다. 반 총장 측은 ‘조용한 외교’를 오해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막후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그래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만 하면 곤란하다. 사무총장은 군사력도, 경제력도, 정치권력도 없다. 그런 건 강대국 차지다. 사무총장은 국제 규범, 정의를 대변하는 자로서 도덕적 권위를 활용, 세계의 양심을 일깨우고, 국제여론을 조성해야 한다. 조용한 외교만 했다면 직무유기에 가깝다. 사무총장이 가진 유일한 자원을 내다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사무총장은 결코 조용해서는 안 되는 자리다.

반 총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건 그만하자 사무총장은 본래 잘하기 어려운 자리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진짜 문제는 그의 능력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한국인은 그가 국제문제를 어떻게 다뤘는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 관심이 없다. 그저 ‘세계적 유명 인사가 된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주는 민족주의적 자부심에 만족했고, 그 만족 때문에 그를 대선 주자로 지지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가 국가를 이끌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해선 또 별 관심이 없다.

이런 식이면 내년 1월1일 그의 결심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세계 최대 기구의 최고 책임자 자리를 10년간 지내자마자 한 국가의 최고 권력 5년짜리를 향해 다시 욕망을 불태울지 말지는 그의 자유에 속하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면 된다. 최고 지도자 자격을 부여할지는 우리 시민의 주권에 속하는 일이다.

국제사회가 평가한 그와 국내에서 알려진 그는 대체로 일치한다. 그는 겸손하나 소심하고, 성실하나 결단력 없는 사람이다. 그를 관료 출신이라고 할 때 단순히 경력사항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업무 태도를 뜻하는 것이다. 관료란 주어진 목표를 잘 알려진 절차와 방법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다.

정치 지도자란 자기 비전에 따라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공동체의 운명을 헤쳐 나가는 사람이다. 그는 이런 덕목을 보여준 적이 없다. 노르웨이 유엔 부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대로 그에겐 비전과 리더십이 없다. 내년 대선까지 그걸 갖추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단기 학습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은 당원, 지지자, 정당 지도자들과 갈등하고 경쟁하며 협력하는 과정을 통해 단련되고 검증된 지도력, 이념·정책 없이 국가를 이끌어도 되는지 판단하면 된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범위를 파악하지 않은 채 국정을 맡겨도 되는지 결심하면 된다. 정치 밖 인기로 정치를 하고, 정당을 사적 욕망의 수단으로 써먹어도 되는지 고민하면 된다. 단기 대권 프로젝트라는 대선 지름길을 찾아내 정당 정치를 우회하고 그로 인해 정치적 퇴행을 무시할지 선택하면 된다. 정치가 좋아지지 않아도 삶이 나아질 수 있는지 생각하면 된다.

반기문 문제는 반기문의 문제이기 전에 시민의 문제다. 공동체를 누가 대표하고 이끌지 시민이 숙의하는가의 문제이다.

수, 2016/06/0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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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영국 중부의 보스턴 시. 인구 3만 5천 여 명의 중소도시인 이곳에 거주하는 40대 중반의 제인 아주머니.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23일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 탈퇴에 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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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3일 EU탈퇴를 묻는 영국민들의 국민투표 결과는 지역적으로 뚜렷이 대조됐다. 북서부는 잔류를, 남동부는 탈퇴를 선택했다. (이미지 출처: BBC)

10여 년 전부터 몰려들기 시작한 폴란드인, 헝가리인 등 신규 EU회원국 시민들이 시 전체 인구의 10%를 넘어섰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친구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보스턴 시는 75.6%가 탈퇴에 표를 던져 이번 국민투표에서 최고의 탈퇴 지지율을 기록).

#장면 2: 런던안의 런던이라 불리는 ‘더 시티’. 금융산업 중심지인 이곳에서 일하는 35세의 폴. 하루에도 수차례 프랑크푸르트나 파리에 있는 동료들과 업무상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보낸다. 폴과 함께 일하는 거의 모든 동료들이 EU 잔류에 표를 던졌다(더 시티는 잔류지지율이 75.3%로 최고를 기록).

BBC 방송이 현장 르포로 보도한 위의 두 사례는 양극화된 영국사회가 왜 EU 탈퇴를 선택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브렉시트 투표 결과는 BBC보도 참조).

바보야! 문제는 분배야

5월 초까지만 해도 EU잔류 지지가 거의 20% 앞섰다. 그런데 불과 6주 만에 무슨 마법이 일어난 걸까?

EU 탈퇴파가 이민문제를 과장하여 속인 전략이 매우 효과적이었다. 런던 같은 대도시는 사용되는 언어만도 200개가 넘는 개방적인 글로벌 도시다. 반면에 보스턴시 거주인의 2/3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다른 EU회원국의 시민들이 영국사람 보다 취업률이 높아 복지혜택 보다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납부했다. 그러나 2010년 경제위기 후, 살림살이가 팍팍해지자 중소도시 시민들은 이를 이민자 탓으로 돌렸다. 탈퇴파가 주장한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복지를 도둑질한다는 선전이 먹혀든 것이다.

이번에 60%이상의 탈퇴 지지가 나온 잉글랜드의 북동부, 중부지역은 경제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도시들이 밀집해있다. 과거 산업도시로 번창하다가 쇠퇴한곳이 많다.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경제위기까지 겹치고 이민자들이 몰려왔다.

세계화(유럽통합)로 번창한 곳은 EU의 단일시장을 당연한 생활의 일부분으로 여긴다. 일자리를 잃었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시민들은 정부에 대해 반감을 갖고 일자리를 앗아갔다고 여긴 EU를 비난한다. 얼굴없는 ‘브뤼셀의 관료’로 표현되는 EU가 희생양이 되었다. 정부가 소득 재분배에 더 신경을 쓰고 조세 정책도 개편해야 했는데. EU 잔류/탈퇴뿐만 아니라 세계화로 어려움을 겪는 많은 영국 시민들이 정부에 대한 모든 불만을 국민투표에 쏟아 부었다.

EU에서 나가는 영국: 장밋빛에서 먹빛으로

EU 탈퇴파는 유럽연합에서 나와 이민을 통제하고 EU의 온갖 규제에서 벗어나 경제가 번창할 수 있다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다. 탈퇴파 운동을 이끈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우리는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다. 이민을 통제하고 EU의 규제에서 벗어나 경제가 더 호전될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탈퇴가 결정된 24일 금요일 세계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커졌다.

EU는 상품과 서비스, 자본과 사람이 자유롭게 장벽없이 이동하는 단일시장이다. 인구 5억 여 명(영국 포함)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단일시장은 EU의 핵심 브랜드의 하나다. 그런데 영국이 교역의 45%를 보내는 EU 단일시장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민을 통제하려고 할까?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나 필립 해먼드 외무장관은 이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단일시장을 유지하면서 다른 EU 회원국 이민이 사회 복지 체제에 부담을 줄 정도로 몰려들면 이들의 복지혜택을 최대 7년까지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양보를 얻어냈다. 하지만 탈퇴 투표로 이번 재협상은 물거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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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탈퇴파를 이끌었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오는 10월 국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캐머론 총리가 물러나면 차기 총리로 유력하다. 뒤에 보이는 캐머론 총리는 영국을 분열시켰다는 이유로 지난 100년 동안 최악의 총리로 기록될 전망이다.

과연 차기 총리로 유력한 보리스 존슨은 J.K 롤링의 책 해리 포터처럼 마법을 부릴 수 있을까? 주권을 되찾아 국경을 통제하고 이민을 줄이겠다는 그의 발언은 단일시장과 이민자 수 제한이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왜곡했다.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캐머런의 절친인 그가 기본적인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골드만삭스나 JP모건, HSBC 같은 다국적 금융기관은 벌써부터 런던 소재 일부 인력을 프랑크푸르트나 파리, 더블린 등으로 이전하려 한다. 더시티에 본부를 두면 나머지 EU 27개 회원국 시장에 바로 접근할 수 있는데 EU 탈퇴로 이런 이점이 사라질 수 있다.

안타깝다. 브렉시트로 살림살이가 더 어려워질 사람은 바로 서민이다. 탈퇴파를 이끈 보리스 존슨이나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은 부자이기에 경기 침체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실리적인 영국 시민들이 정부 정책 수정을 다른 방식으로 요구해야지 자해와 같은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불확실성의 시대…우리의 운명은?

브렉시트는 EU에 아주 좋지 않은 시기에 터졌다. 유럽으로 몰려드는 난민은 터키에게 30억 유로(우리 돈으로 약 3조 9천억 여원)를 안겨주어 잠시 소강상태다. 그리스 경제위기는 물밑으로 들어갔을 뿐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이런데 영국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브렉시트라는 폭탄을 EU에 던져 버렸다.

미국과 함께 서구를 형성해 2차대전 후 국제질서를 함께 이끌어온 ‘유럽’이 브렉시트로 분열의 단초가 드러났다. 브렉시트를 가장 기뻐할 사람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다. 위대한 러시아의 국제무대 복귀를 목표로 세우고 서구 주도의 국제질서에 도전해 왔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런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기에 계속하여 협력을 강화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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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직후인 지난 25일 베이징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리고 미국 대선에서는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지지를 얻고 있다. 브렉시트는 영국판 ‘트럼프 현상’으로 불린다.

영국서 도화선이 된 신고립주의와 민족주의 바람이 미국으로도 불어가 더 강한 바람이 될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지지자들과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사회경제적 위치가 매우 유사하다. 세계화로 일자리를 잃었지만 기존 정치권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영국의 EU 잔류를 위해 국민투표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결국 그의 불장난에 집(영국)이 타고 있다. 누가 이 불길을 크게 번지기 전에 제대로 끌 수 있을까?

한 정치인의 잘못된 판단이 해당 국가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었음은 물론이고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혼돈을 주었다. 세계화는 거부할 수 없는 큰 흐름이라고 치자. 소득 재분배는 정부가 얼마든지 신경을 써서 세계화의 낙오자들을 보듬어 안을 수 있다. 영국의 국민투표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되는 이유다.

수, 2016/06/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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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영화제’는 없는데 ‘여성영화제’는 있는 이유에 대해 굳이 말해야 할까. 여성은 남성과 대비되는 생물학적 구분이 아니라, 남성이 대변하지 않는 새로운 가치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학적 여성이 새로운 가치를 구현하는 건 아니지만(지금 한국의 대통령을 보라), 많은 여성은 새로운 가치를 구현한다.

최근 부쩍 잦아진 여성혐오 논쟁에서 드러나듯,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그만큼 험난한 상황을 견뎌내 왔다는 뜻이다. 여성의 권익이 신장되는 과정에서 어떤 남성들이 불이익을 받았을 수 있으나, 수천년간 여성보다 더 많은 권력을 누려온 남성들이 ‘역차별’ 운운하는 건 넌센스다.

영화는 오랜 시간 남성의 영역이었다. 여배우를 ‘영화의 꽃’ 운운하며 받드는 척 하지만, 제작자, 연출, 기술 스태프 등의 대다수가 남성이었다.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간혹 제작자 심재명, 오정완, 이유진, 감독 임순례, 변영주 등 ‘유리 천장’을 뚫은 이들이 있었으나 다수는 아니었다. 심지어 카메라 같은 기계에 대해선 여성의 접근을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오랜 시간 남아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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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칸 영화제에서 수잔 서랜든(왼쪽)은 남자의 턱시도를 영상시키는 의상을 입었고, 줄리아 로버치는 맨발로 레드카펫을 밟았다. 여성은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는 드레스코드에 대한 상징적 비판이었다.

하지만 이제 영화현장에서도 다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5월 열린 제 69회 칸국제영화제에서는 상징적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세계 최고의 영화제인 칸영화제는 지난해 구설을 겪었다. 칸영화제의 프리미어 상영은 엄격한 드레스 코드로 유명한데, 지난해 상영 당시 몇몇 여성 관객들이 하이힐을 신지 않았다가 입장을 제지당한 것이다. 칸영화제 측은 “신발 높이에 대한 규정은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거센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올해 몇몇 여배우들은 지난해의 소동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배우 수전 서랜든은 남성 정장을 연상케하는 의상에 단화를 신었고, 줄리아 로버츠는 아예 맨발로 레드 카펫을 걸었다.

경쟁 부문에 초청된 여성 감독들의 영화도 예년에 비해 늘었다. 21편의 경쟁작 중 3편이 여성 감독의 영화였는데, 특히 독일 감독 마렌 아데의 <토니 에르트만>과 영국 감독 안드레아 아널드의 <아메리칸 허니>가 호평받았다. 영화제에 참석한 여성 감독, 배우들은 작심한 듯 영화계의 여성이 처한 현실에 대해 말했다.

<머니 몬스터>를 연출한 배우 조디 포스터는 “대형 영화에 많은 돈이 흘러들면서 스튜디오 수뇌부는 위험 요소가 있는 인물을 고용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에게 여성은 위험 요소다”라고 비판했다.

한국에서도 여성이 이끄는 새로운 움직임이 목격되고 있다. 이같은 흐름이 반가운 이유는 두 명의 남성 주인공이 쫓고 쫓기는 스릴러 영화들이 최근 한국영화에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특정 분위기의 영화가 관객의 이목을 끈다 싶으면 너도 나도 비슷한 영화들을 양산하는 것이 영화계의 속성이고, 영화의 장르가 그렇게 탄생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2000년대의 한국영화는 그 정도가 심했다. 30~40대 남우 2명이 나와 얽히고 설키는 영화들이 대다수였다.

그 사이 많은 재능있는 여배우들을 만날 일도 드물었따. 이는 한국영화가 여배우만이 체현할 수 있는 다양한 정서, 가치를 활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며, 그래서 다양성을 핵심으로 하는 영화의 활력을 스스로 놓아버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는 다양한 여성 감독들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조짐은 독립영화계에서 먼저 보였다. 독립영화계 최대 축제인 서울독립영화제에는 지난해 51편의 본선경쟁작이 선정됐는데, 그중 26편이 여성 감독의 작품이었다. 여성 감독의 수가 남성 감독을 넘어선 건 처음이었다. 여성 감독의 작품이 늘어나면서 영화의 소재와 주제도 이전에 비해 다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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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상단 왼쪽),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상단 오른쪽)는 여성감독만이 보여줄 수 있는 관점을 보여준다. 최근 개봉한 ‘굿바이 싱글'(하단)은 여성감독의 영화는 아니지만, 여성들 간의 연대를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주류 영화에서도 주목할만한 여성 감독들이 나오고 있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은 초등 4학년 소녀들의 우주를 그려낸 수작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소녀 선과 갓 전학와서 친구가 없는 소녀 지아는 금세 서로 친해진다. 학급에서 인기 많고 성적도 좋은 보라가 지아를 끌어들이면서 선과 지아의 관계엔 금이 간다. 중산층 이하로 보이는 선과 영국에서 살다온 상류층인 지아의 계급은 한눈에도 비교가 된다.

하지만 <우리들>의 장점은 둘의 갈등을 쉬운 계급갈등으로 치환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계급 갈등, 파국적 사건이 없이도 맺어지고 또 깨질 수 있는 관계와 감정의 미묘함을 그린다는 점에서, <우리들>은 현실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극적인 사건 없이는 이야기를 진행하지 못하는 한국 영화계에 대안적인 서사의 빛을 던진다.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는 다수의 비판, 소수의 호평을 들으며 상영된 영화였다. 연홍은 정치 신인의 아내이자 중학생 딸의 엄마다. 남편의 국회의원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첫날, 딸이 실종된다. 남편과 그의 캠프 사람들은 선거전에 악영향을 줄까봐 실종 사건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고, 연홍은 홀로 딸의 행방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딸의 비밀이 차츰 드러난다.

전형적인 스릴러물의 구조를 갖고 있지만, <비밀은 없다>는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기대되는 전형들을 모조리 거부한다. 편집은 혼란스러우며, 음악은 익숙하지 않은 관객의 귀를 괴롭게 하는 아방가르드 펑크 음악이다. 마치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로 작정한 듯한 이같은 태도는 <비밀은 없다>가 폭로하는 기성 체제의 음험함에 이빨을 드러낸다.

더 많은 여성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여성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하더라도, 여성의 삶과 감정을 다루는 영화가 나와야 한다.

세상의 이목, 판단에 신경쓰지 않는 ‘이상한’ 여배우가 등장하는 <굿바이 싱글>은 그 사례다. 극중 톱스타인 고주연은 자신과 전혀 다른 처지에 있던 여중생 단지와 여성의 연대를 맺는다. 얼핏 억지스러울 수도 있는 설정이지만 <굿바이 싱글>은 대중영화의 틀에서 이 연대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놓는다.

관객이 남성들만의 영화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명민한 영화인들은 한 발 먼저 감지했다.

월, 2016/07/04-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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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에 제가 여기에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캠페인을 이끌고 싶다고 했을 때 여러분 모두는 저를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웃음이 안 나오시죠?”

유럽의회 의원이기도 한 영국독립당(UKIP) 당수 나이젤 파라지(Nigel Farage)는 의회에서 조롱 섞인 연설을 내뱉었다.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EU 탈퇴로 결론이 난 후였다.

‘인종차별주의자에 가까운 괴짜들’(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정도로 치부됐던 영국독립당과 파라지는 브렉시트 이후 가장 많이 언급되는 정치세력 중 하나다.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파라지를 유럽의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위로 선정하면서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그의 가장 큰 성공, 혹은 실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성공’의 문턱에 다다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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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은 브렉시트 국민투표에 1000파운드를 건다고 했고, 그의 도박은 성공을 거뒀다. (사진 출처: http://www.express.co.uk/news/politics/649750/Nigel-Farage-bet-1-000-Br…)

대학 포기하고 금융분야에서 사회 첫 발

파라지는 지난 20여 년 전부터 ‘EU 탈퇴’를 주장해 왔다. 그리스와 독일처럼 구조적으로 ‘다른’ 경제체제를 지닌 나라들에 획일적인 금리가 적용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본래 보수당에서 활동했던 그는 1992년 존 메이저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EU 출범의 기틀을 마련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서명하자 당에서 뛰쳐나와 영국독립당 창당 멤버로 합류했다. 예전에는 EU 확대를 부르짖다가 일종의 ‘정치적 승부수’로 브렉시트를 택한 몇몇 정치인들과는 결이 다르다. 적어도 진짜 그게 옳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이젠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된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그는 정말로 활짝 웃으며 ‘환호작약’했다.

물론 일관성이 언제나 미덕은 아니다. 파라지의 언행에선 일관성을 넘어선 아집과 독선이 내비친다. 자신의 연설에 대해 동료 의원들의 야유가 이어지자 그는 맞받아친다. “여기에 계신 누구도 평생 동안 일을 제대로 끝내거나 비즈니스를 해보거나 무역을 해보거나 일자리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을 그냥 들으세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내가 해 봤는데’ 스타일이다.

파라지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 런던금속거래소에서 상품중개인으로 일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런던의 금융가인 ‘더 시티’로 바로 들어갔다. 그는 이런 진로를 선택하는데 크리켓 선수 출신의 교사 존 드웨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선생님은 내가 꽤 대담하고, 연단에 서는데 능숙하며, 세상의 이목을 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끌벅적하며, 뭘 팔아먹는데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있었다.”

파라지가 ‘정치’를 비전을 갖고 사람들을 조직하고 설득해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잘 먹힐 만한 ‘물건들’을 제시해 인기를 끌고 당선되는 잔기술로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는 드웨스 선생님이 이미 잘 파악하고 있었듯, 잘 팔릴만한 물건들은 잘 안다.

런던과 일부 대도시에는 돈과 기회가 넘치지만 그 외 지역은 날로 쇠퇴하고 있다. 실업은 만연해 있고, 공공서비스는 줄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무척 복잡한 문제지만 쉬운 표적이 하나 있다. 모든 것이 최근 어디서든 손쉽게 볼 수 있게 된 ‘이민자’ 때문이고, 결국 EU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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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 표지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의 상황을 ‘걸레가 된 유니온잭’으로 묘사했다. (사진출처: 이코노미스트)

파라지는 이런 정서에 편승해 “지하철을 탔더니 영어를 들을 수 없었다”며 사람들을 자극한다. 대놓고 이민자들과 살기 싫다고도 말한다. 그에게 무슬림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제5열’(간첩)일뿐이다. 브렉시트 홍보를 위해 그가 들고 나온 것도 난민들이 떼 지어 유럽으로 들어오는 포스터였다. 난민이라고 주장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경제적 이민이며 일부는 이슬람국가(IS)의 지원군이 될 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영국민족 강조하지만 다문화가정 출신

‘영국 사람’임을 강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파라지’라는 성은 먼 위그노 교도(16~17세기 프랑스 칼뱅파 신교도) 조상에게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19세기에 런던으로 이주한 독일계 출신이다. 이민자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 온 그이지만, 뿌리에는 프랑스와 독일계의 피가 스며있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파라지는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독일 국적 여성과 재혼해 두 아이를 낳았다. 그가 라디오 인터뷰 중 옆집에 루마니아 사람들이 이사 와서 신경 쓰인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있다. 그때 사회자는 파라지의 가족에 빗대 “독일 아내와 아이들이 옆집에 있는 것과 차이는 뭔가”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는 “당신은 그 차이를 알지 않느냐”고 눙쳤다.

이런 태도에서 짐작가지만, 파라지는 종종 인종주의자라고 비판받는다. 독립당 소속 유일한 여성 유럽의회 의원이 파라지를 “반여성적인 스탈린주의자 독재자”라고 비판하며 보수당으로 옮기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1차 대전 참전용사여서인지는 모르겠으나, 1차 대전의 격전지를 돌아보는데 큰 열정을 쏟는 그의 모습에서 ‘그레이트’ 브리튼을 열망하는 국가주의적 냄새가 나기도 한다. 물론 술을 엄청 마셔대기 위한 핑계거리라는 얘기도 있다.

한때 EU회의론자로서 그와 가까운 동지였다가 결별한 뒤 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리처드 노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만약 인종주의자라면, 그는 유능한 배우다. 그걸 잘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인종주의자라고 보지 않는다. 그저 구시대적인 대외강경론을 펼치는 애국주의자라고 본다.”

그러나 브렉시트 때문에 영국은 그가 바란 대로 ‘그레이트 브리튼’이 되기보다 ‘브리튼 소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벌써 스코틀랜드가 다시 독립을 꾀하고 있고 나라는 계층별, 지역별, 연령별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유럽의회 의원으로 정계 입문….영국 선거에서는 7전 전패

파라지는 전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잇따른 망언과 구설로 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인기는 꺾이지 않고 있다. BBC 기자는 ‘(비판이) 들러붙지 않는 나이젤’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유명인사’에 가깝게 자리매김한 것에는 그의 독특한 인생역정도 한몫 했다.

파라지는 1964년 영국 켄트주 판버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도 ‘더 시티’에서 일하는 주식중개인이었는데, 5살 때 이혼한 알콜중독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20대 초반이던 1985년 그는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다. 머리와 왼쪽 다리를 다쳤는데 거의 절단해야 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다. 회복에는 1년 가까이 걸렸다. 그때 자신을 간호해주던 간호사가 첫 번째 부인이 됐다.

이듬해에는 고환암에 걸려 왼쪽 고환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2010년 총선 때는 지지 호소 현수막을 단 경비행기를 타고 비행하다 추락하기도 했다. 사고 직후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리 회복해 지팡이를 짚은 채로 동료의 장례식장에 나타났다는 후문이 있다.

파라지는 1999년 남동잉글랜드 지역구에서 유럽의회 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정치인으로서 본격적 첫발을 내딛는다. 그렇게도 혐오하던 EU에 의원으로 입성한 이유를 묻자 그는 “밖에 있기보다 안에 들어가서 그곳을 바꾸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것이지, 유럽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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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 파라지(왼쪽 두번째)가 2014년 5월 26일, 영국의 유럽의회 선거에서 영국독립당(UKIP)이 108년 만에 보수당과 노동당의 양당체제를 무너뜨리고 1위로 도약하자 당원들과 환호하고 있다.

그는 2014년까지 연거푸 4선을 이뤄냈다. 특히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영국 양대 정당인 보수당과 노동당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양대 정당 체제가 무너진 것은 108년 만이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2013년 그를 100대 영향력 있는 우익 인사 중 캐머런 총리에 이어 2위로 선정했고, 2014년 <더 타임스>는 그를 올해의 영국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는 강경파 유럽통합회의론자들이 모여 있는 유럽의회 내 ‘자유와 직접민주주의’ 그룹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이 그룹에는 ‘독일을 위한 대안’ 같은 극우정당도 함께 속해 있다. 그는 의회 내에서 논쟁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EU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주목받았다. 2004년 그는 프랑스 출신의 자크 바로 교통 담당 EU 집행위원의 비리 은폐 시비를 폭로했고, 이듬해에는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의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그의 현란한 ‘개인플레이’에 비해 영국독립당 자체는 아직 기대에 못 비치는 성과를 내고 있다.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강한 면모를 보였지만, 아직 영국 의회 내에서는 단 한 석밖에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파라지 본인도 총선에 모두 7번이나 출마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파라지는 현재 최다 득표자 당선 방식인 영국의 소선거제도가 영국독립당에게는 ‘악몽’이라고 말한다. 2011년 선거제도를 ‘선호투표제’로 전환할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이를 지지하기도 했다.

열심히 마시고, 열심히 담배를 피우는 사람….그러나 ‘전략적 머리’ 없어

파라지를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그가 재미있고, 달변에다, 사리판단이 빠르고 똑똑하다고 말한다. 파라지는 성공회교도이자 크리켓의 광팬이며, 켄트 해안에서 혼자 평온히 낚시하는 걸 즐긴다.

상품중개인 시절 파라지의 고객이었던 친구 스티븐 스펜서는 이렇게 말했다. “특이하고, 행복하고, 쾌활하고, 솔직하고, 유머러스하다는 첫인상을 받았다. 그를 만나러 가면 늘 주변에는 죽이 잘 맞는 중개인들이 뭉쳐 있었는데, 피워대는 담배연기가 4피트나 치솟을 정도였다.”

그러나 리처드 노스는 이렇게 혹평하기도 한다. “골초인데다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신다. 라이프스타일은 형편없다. 그는 매우 친근하고, 과장되게 개방적인 사람처럼 다가오지만 그 이면은 매우 불안정하다. 그는 사람들과 디테일하게 오랜 기간 동안 관계를 맺지 못한다. 사실 그는 사람들을 이용하고 소비해버린다. 사람들은 그의 주변에 모여들고 그에게서 힘을 얻지만, 파라지의 내면을 보곤 환멸을 느끼게 된다. 나 같은 사람이 아마 수백은 될 거다.”

각종 ‘독설’과 ‘망언’에서 파라지의 그 불안한 면모가 읽힌다. 그는 2010년 헤르만 반롬푀이 EU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저급한 은행원 외모에 젖은 걸레 같은 카리스마를 가졌다”고 막말을 했다.

지난 3월에는 “국제사회의 현존 지도자 중 푸틴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미 대선에 대해서도 “트럼프의 인물됨이나 시각에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는 걸 막기 위해 나라면 그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해가지 못할 행동들도 보인다. 1999년 파라지는 BBC가 자신의 유럽의회 선거 캠페인을 넉 달 간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불법복제 해 판매했다가 공정거래 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프랑스 됭케르크에서 타고 있던 자동차 바퀴의 너트가 느슨하게 풀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자신에 대한 암살 음모가 아니었냐는 것이다.

그는 석탄발전소 폐쇄를 비판하면서 풍력발전에 반대한다. 영국이 못생기고 역겨운 풍차로 뒤덮일 거라는 것이다. 기후변화도 거짓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2008년 찰스 왕세자가 유럽의회에서 “기후변화에 대처하는데 EU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연설해서 기립박수를 받을 때 파라지는 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왕세자의 발언이 “최고로 순진하고 어리석다”고 했다가 왕실모독죄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파라지는 또 비만이 흡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해서 감자튀김(칩)과 도넛 가게를 없애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총기소유와 범죄는 상관이 없다”며 총기소유도 합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리처드 노스의 이런 걱정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열심히 살고, 열심히 마시고, 열심히 담배를 피우고 그게 파라지가 가진 매력이다. 그걸로 지지자들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당신이 진지하고 전략적 두뇌를 지닌, 당을 이끌고 발전시키고 확장해나갈 수 있는 정치가를 찾는다면, 그는 그 같은 인물은 아니다. 영국독립당의 비극은 아마도 이렇게 대단히 효과적인 얼굴을 지녔지만 그 인물이 전략적 두뇌가 없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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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 파라지는 지난 7월 4일, “할 일을 다했다”며 돌연 영국독립당 당수직을 사임했다. (사진 출처: http://www.itv.com/news/story/2016-07-04/live-updates-nigel-farage-resi…)

파라지는 4일(현지시각) 결국 영국독립당 당수직을 던지는 ‘극적인’ 결말을 스스로 선택했다. 이유는 “내 삶으로 돌아가길 바란다”는 것. 본래 직업적 정치인을 할 생각도 없었고, 자신의 정치적 목표인 EU 탈퇴가 달성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럽의회 의원직은 유지하고 브렉시트 협상 과정에서 ‘무언가’는 할 수 있겠지만 다시는 총선 출마도 하지 않고 당수직에 복귀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가디언>은 이렇게 표현했다. “심각하지 않은 사람, 하지만 심각한 정당”

화, 2016/07/0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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