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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 반출, 21세기식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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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 반출, 21세기식 접근이 필요하다

익명 (미확인) | 화, 2016/08/16- 15:31

구글 지도 반출, 21세기식 접근이 필요하다

글 | 허광준(오픈넷 정책실장)

 

이 글은 총 두 편입니다. 1편은 지도 반출 문제, 2편은 지도의 보안 처리 문제를 다룹니다. (필자)

  1. → 구글 지도 반출, 21세기식 접근이 필요하다
  2. 보안 처리: 구시대적 지도 검열

 

지난 6월 초 구글이 한국 지도 반출을 재신청하면서 비롯된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정부나 구글, 국내 업체 등 이해 당사자들이 내놓는 주장이 뒤섞이며 사실관계조차 헷갈리고, 정보통신 서비스 영역을 넘어 안보나 국가 자존심까지 입길에 오르고 있다.

7월에 세계를 급속히 달군 포켓몬 고 열풍도 이러한 논란에 부채질했다. 한국이 게임 서비스 지역에서 제외된 것이 구글 지도로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좀 더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보면 이 문제에는 몇 가지 이슈가 꼬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꼬인 데에는 이유가 있지만, 여하튼 이런 가닥을 차근차근 분리하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원칙들을 적용한다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

다음에 실릴 글과 함께 두 차례에 걸쳐 한국 지도 정보의 국외 반출 문제, 그리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차례로 짚어 본다.

 

한국에서 지도 쓰기를 포기하는 외국인들

Danielle Conway지난 5월 19일, 오픈넷이 주최한 포럼 ‘시각장애인을 위한 저작권 혁신 조약’에서 발제를 할 사람은 미국 메인 대학교 법학교수인 다니엘 콘웨이(Danielle Conway, 사진) 박사였다. 그녀는 아주 오래전에 한국을 한 번 다녀간 적이 있을 뿐이다. 당연히 서울 지리에 깜깜하다.

숙소인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포럼이 열리는 선릉역 부근 행사장까지 오는 길을 알려주어야 했다. 어떤 교통편을 이용해 올지 몰라서, 일단 지도부터 보냈다. 한국인이 흔히 쓰는 네이버나 다음 지도는 그녀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영어로 표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글 지도로 이미지를 떠서 이메일로 보냈다.

콘웨이 박사는 택시를 타고 왔다. 목적지를 못 찾아서 선릉역 부근을 뱅뱅 돌던 기사가 결국 내게 전화를 했다. 행사는 이미 시작되었고, 발제자가 40분도 더 늦는 바람에 토론자가 먼저 마이크를 잡는 일이 벌어졌다. 택시요금은 정상보다 세 배 가량 더 나왔다. 콘웨이 박사는 이렇게 요금이 비정상적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구글 지도에는 택시를 이용한 경로 서비스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도 서비스에 관한 한, 외국인에게 한국은 남미 원시림이나 다름없다. 8월부터 오픈넷에서 인턴쉽을 하는 미국 대학생 댄 베이티코는 서울에서 지도 쓰기를 아예 포기했다. 그가 한국을 오기 전에 거쳐왔던 대만, 네팔, 베트남에서는 겪지 않았던 일이었다.

물론 이것은 두 가지 이유로 그렇다. 국내 업체의 지도는 영어 서비스를 하지 않고, 다양한 언어 지원을 해서 국제 표준이 되다시피 한 구글 지도는 국내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일부 외국인이 한국에서 길을 찾는 문제라면 그리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외국인이야 헤매든 말든 우리는 우리식대로 살면 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초 지도 서비스를 근간으로 한 각종 부가 서비스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같은 태반에서 태어날 다양한 미래의 서비스들도 근본적으로 잉태될 수 없다는 점은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에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가 안보 위협하는 지도 반출 안 된다?

구글이 지도 반출을 신청한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자사 서비스를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 그리고 구글의 주장에 따르면 이를 기반으로 하여 개별 기업들이 다양한 서비스를 꽃피우도록 하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서 지도 정보를 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 것은 단순하면서도 다분히 의도된 오해 때문이다. 즉 구글의 지도 반출에 반대하는 측이 이 문제를 국가 안보 이슈로 틀 지어버린 것이다. 이들은 ‘구글이 한국의 안보 특수성을 무시하고 보안시설이 다 드러난 지도를 국외로 가져가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와 관련한 사실관계를 정리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 구글은 현재 한국 지도를 극히 제한적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2. 이 지도는 SK플래닛(모회사는 SK텔레콤)이 소유한 것이며, 구글은 비용을 지불하고 이 지도를 사용하고 있다.
  3. 즉, 구글은 자체로 한국 지도를 돌리는 게 아니라 SK플래닛에서 돌아가는 지도를 보여주기만 한다.
  4. SK플래닛 지도는 다음 지도나 네이버 지도와 마찬가지로 정부 규정에 따라 보안 처리된 지도다.
  5. 구글이 지도를 반출하겠다는 의미는, 이 SK플래닛 지도 데이터를 해외의 서버에서도 쓸 수 있게 해달라는 말이다.

따라서, 구글이 보안 처리되지 않고 속속들이 다 보이는 지도 데이터를 외국으로 가져가려 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가져가려는 지도는 네이버나 다음의 지도와 마찬가지로 보안 처리된 데이터다. 보안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당장에라도 반출을 허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법을 위반하는 일도 아니다. 한국 법은 지도 정보 반출을 금하고 있지만, 예외적으로 허용할 길을 열어두고 있다. 그 결정을 위해 정부 부처 간 협의체(‘공간정보 국외반출 협의체’)까지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협의체가 반출 허용 결정을 내리기만 하면 된다. 물론 필요성이 없다면 불허 결정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지도 반출로 얻거나 잃을 이익을 따져 내릴 정책적 판단이다.

안보를 걸고넘어지는 주장은 모두 이러한 사실을 모르거나 아니면 일부러 무시한다고 보면 된다. 안보 때문에 안 된다고 주장하는 측은 예컨대 다음과 같은 기사에서 동력을 얻는다.

“정부는 지도데이터에서 중요 안보시설을 삭제할 것을 반출조건으로 내걸고 있고 구글은 이에 강력히 반대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국토부 “지도반출 불허해 포켓몬 고 불가능한 것 아니다” (2016. 7. 14) 중에서

이런 서술은, 구글이 안보시설이 속속들이 표시된 지도를 가져가려고 한다는 오해를 조장한다.

 

위성사진에서 뺨 맞고 지도에 화풀이

오해든 착각이든, 안보 문제가 있으므로 지도 반출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반출 허용 여부를 결정해야 할 정부가 그런 여론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반출 대상이 되는 지도와 직접 관련이 없는 위성사진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알듯 구글의 위성사진은 한국 정부가 가리고 싶어 하는 시설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정부에서 볼 때, 외국 기업이라 손을 쓸 수 없어 하릴없이 두고 보기는 하지만 눈엣가시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반출 대상 지도 데이터와 직접 관련이 없는 구글의 위성사진과 관련한 사실관계도 정리해 보자.

  1. 구글 지도에 나오는 한국의 위성사진은 .co.kr 버전과 .com 버전이 있다.
  2. 한국 주소인 .co.kr로 보이는 위성 이미지는 해상도가 낮아 희미하게 보인다.
  3. 이것은 구글이 한국 법규를 따르려고 일부러 해상도를 떨어뜨린 결과다.
  4. 한편 한국법이 적용되지 않는 외국 주소인 .com으로는 선명한 이미지가 보인다.

한국 웹주소와 해외 웹주소를 다르게 하여, 해외 주소로 접속하면 다 볼 수 있게 한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거꾸로 보자면, 한국에서는 법이 그렇게 강제하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그렇게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의 차이다.

어쨌든 구글 국내 위성사진에는 흐릿하게 나오는 주요 시설물들이 .com 사진에는 선명하게 다 보인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은 정부의 숙원 사업이다. (이것이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은 밑에서 다시 자세히 쓴다.) 따라서 구글이 지도 반출을 신청하고 이에 대해 여론이 안보를 이유로 부정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정부에게 반가운 상황이다. (반출 대상 지도가 아닌) 위성사진을 손보도록 요구하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8월 말까지 응답을 내놔야 하는 정부가 가장 선호할 만한 해결 방식은, 구글에 기왕의 SK플래닛 지도 데이터 반출을 허용하는 대신, 그 조건으로 구글 위성사진(.com)을 국내 업체의 사진처럼 보안 처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이미 쓰고 있는 지도 반출을 허용해 주면서 숙원 사업이던 위성사진 물칠을 성사시킬 수 있는 빅딜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구글에게 이례적으로 서버를 자국 안에 들여오도록 강제함으로써 국제 사회에 권위주의 국가의 인상을 또 하나 더하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 되는 방안이기도 하다.

문제는 구글이 이런 제안을 받을 것이냐이다.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구글코리아는 그 이유로 세 가지를 든다. 첫째, 한국의 지형을 그대로 다 보여주는 외국 위성사진이 널린 마당에 구글만 지우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요구다. 둘째, 이용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외국 기업의 서비스에 검열을 가하는 것이다. 셋째, 구글은 위성사진에 스스로 보안 처리한 적이 없다.

참고로, 위키피디아에는 세계 위성사진에서 희미하게 처리된 지역을 표시한 목록이 있다. 여기에는 구글이나 빙(MS의 검색엔진) 위성사진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 지역을 클릭해 실제로 가 보면 정상적으로 보이는 곳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구글은 지도 상태 때문에 희미하게 보이지 않은 경우일 뿐이며, 해당 지역을 보여주는 더 좋은 지도가 입수되면 계속 업데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첫 번째 이유가 시사적이다. 정부는 구글의 위성사진을 보안 처리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한국을 다 보여주는 위성사진은 구글 말고도 널려 있다. 어찌어찌 하여 구글 사진을 물칠하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악의 없는 이용자의 시각만 가로막을 뿐, 실제로 악의를 가진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아래 사진들은 네이버, 다음 같은 한국 지도 서비스들과, 접속하는 데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 외국 지도 서비스들의 위성사진을 통해 본 경복궁과 청와대 모습이다.

 

이뿐만 아니다. 온라인으로 무료 서비스되는 이들 위성사진 말고도, 사진을 상업적으로 파는 많은 위성사진 업체가 있다. Esri.com, digitalglobe.com 등이 그중 일부다. 이 업체들은 누구든 돈만 내면 무료 위성사진보다 훨씬 더 높은 해상도의 사진을 제공한다.

국제적으로 이용되는 이들 지도 서비스를 열면, 한국인만 못 보고 있는 장면들이 크고 아름답게 나타난다. 구글의 위성사진을 지우려 하는 정부 노력은, 이 모든 지도들도 막아낼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

결국, 정부는 다국적 기업을 상대로 하여 안보의 깃발을 높이 들고 애국적 싸움에 나선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안보 실익이 전혀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지도 반출 문제와 관련이 없다는 것은 덤이다.

 

한국에 서버를 설치하라?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지도 반출 논란에 대한 한 가지 처방은 구글이 서버를 한국에 설치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핏 해결책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구글이 SK플래닛 지도 데이터를 한국에 있는 서버에서만 돌린다면 반출 논란은 당연히 필요 없게 된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구글은 전 세계 지도 데이터를 현재 15개 국가에 산재하는 데이터 센터에 분산 배치하고 클라우드 기반으로 운영하고 있다. 어떤 한 나라의 데이터를 돌리기 위해 그 나라에 서버를 설치한 일은 한 번도 없다. 이렇게 지역에 데이터를 묶어버리면 안정성 유지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억지다. 국내의 시각만 가진 정부나 업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취월장하여 언젠가 국경을 넘어 세계로 진출해야 할 국내 기업이 겪어야 할 일일 수도 있다.

게다가 국내에 서버를 설치하라는 것은 정보의 국경 없는 자유로운 흐름이라는 인터넷의 대원칙에도 어긋난다. 데이터를 수집된 국가 안에 묶어두려는 이른바 데이터 국지화의 경제적 문제점을 새삼 지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구글이 한국에 서버를 두기를 꺼리는 또 하나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 2011~12년에 구글은 아시아 지역 세 곳에 대형 서버를 구축하기로 하고 지역을 물색했다. 세계 최대 검색 엔진의 거대한 서버 시설을 유치하는 데서 올 경제 효과를 염두에 두고 한국도 열심히 유치 운동을 했다. 그러나 구글 서버는 대만, 싱가포르, 홍콩으로 갔다.

한국이 제외된 데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2011년 5월 한국 경찰은 모바일 광고의 위치정보 수집 사건을 수사하면서 구글코리아와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압수수색했다. 그뿐만 아니라 수사 당국이 영장 없이도 이동통신사를 찔러서 이용자 정보를 마음껏 캐내 가는 나라가 한국이다. 구글 서버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뒤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나라에 서버를 두고 싶어 하는 인터넷 기업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세금 받고 싶으면 법규부터 고쳐라

여기서 지도 반출 이슈와 상관없는 또 하나의 애국 프레임이 등장한다. 구글이 한국에 세금을 내지 않고 부도덕하게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법’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지만, 그 어조는 사악하고 패륜적인 반국가단체를 나무라는 양상이다.

이런 주장은 구글이 한국에서 돈 한 푼 내지 않고 사업을 하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구글코리아는 물론 세금을 낸다. 구글이 한국에서 창출한 수익 전체에 대해 적절한 세금을 내고 있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구글은 현재 한국법과 국제 규정이 정하고 허용한 바에 따라 기업을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가 있다면 구글이 아니라 법규다. 구글이 창출하는 이윤에 대해 세금을 제대로 물리고 싶다면, 그렇게 하도록 법을 제·개정하고 규정을 정비하면 된다. 세법을 개정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의견이 있고, 이미 그렇게 하는 나라들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차원에서 그런 방안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일은 하지 않으면서 기업을 나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해결책도 될 수 없다.

구글이 세계적 강자이기는 하지만, 구글 지도 서비스가 한국에 개시된다고 해서 한국인이 바로 구글 대마왕에 종속되리란 보장은 없다. 구글이 한국어 검색 서비스를 시작한 지 15년 이상 지났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네이버가 지배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구글을 쓰는 사람이 늘어간다면, 이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구글의 서비스에 만족하는 사람이 는다는 뜻일 뿐이다. 다른 기업 역시 그런 만족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일 것이다.

정부는 곧 구글의 지도 반출 신청에 대한 응답을 내놓아야 한다. 지도 반출과 직접 관련이 없는 안보나 준탈세 프레임에 휩쓸리기보다, 지도 데이터 개방이 이용자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실제로 어떤 효용이나 불이익을 가져올까를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좀 더 생산적인 접근일 것이다.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온라인 기업들의 규모가 막대하게 커지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하며 새로운 형태의 사업 모델을 구축하여 실물 경제의 주역으로 부상하는 기업들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사회가 기업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방식을 새로이 검토해야 할 필요를 제기한다. 안보 필요에서부터 납세의 의무까지, 명분과 구호만으로 성취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많지 않다.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기반으로 형성된 온라인 세상을 살기 위한 21세기 패러다임을 고민해야 할 때다.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 게재하였습니다. (201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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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선물을 걷어차버리나

서버 현지화와 클라우드 이용을 제한하자는 주장은 힘없는 개인들의 정보력·홍보력 확장을 억제하고, 감시와 검열을 피할 수 있는 길을 막자는 것이다.

글 |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픈넷 이사)

 

국민이 애용하는 해외 인터넷 서비스의 서버를 국내에 두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논의된다. 심지어 클라우드처럼 정보의 국외 이전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기술의 경우, 금융권에서는 아예 기술 전개 자체를 제한하자는 주장도 등장한다. 이유는 명시적인 것과 암묵적인 것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해외 인터넷 업체가 국내에 서버를 두지 않으니 개인정보를 침해하거나 불법 표현물을 방치해도 규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는 ‘국내에서 돈을 벌어가는 해외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려면 국내·국제 세법에 따라 이들의 ‘사업장’인 서버를 국내에 두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현재 망 사업자들이 카카오나 네이버에서 엄청난 회선료를 받아가듯 해외 업체한테도 회선료를 ‘망 이용 대가’로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러시아 수준의 ‘밀착 규제’ 원하는가 

하나씩 얘기해보자. 첫째, 해외 업체에 대한 규제 권한부터 살펴보면, 필자는 강력한 개인정보보호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진행한 공익 소송 대다수가 개인정보보호권에 근거했다. 그러나 정보의 국외 이전 자체를 금지하거나 기술의 전개 자체를 제한하는 방식은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개인정보 보호의 ‘골드 스탠더드’가 되는 유럽연합의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도 역외 이전 자체를 금지하지 않는다. 정보 보관지의 개인정보보호법제가 적정한지 평가하여 적정성 판단을 받은 국가에 대해서는 정보를 자유롭게 이전하도록 한다. 서버를 국내에만 둬야 한다는 주장과는 큰 거리가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해외 기업에 대한 막강한 규제권을 이미 한국 정부가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한 차단 권한이다. 이미 수많은 해외 서버가 불법 정보를 국내에 유입한다거나 개인정보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차단되었다. 이는 다른 산업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예를 들어 중국의 김치 업체가 위생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김치 공장을 국내에 둘 것을 의무화하는가? 그 중국 업체의 김치가 국내에 들어오지 않도록 하면 그만 아닌가? 그 이상의 밀착된 규제를 하고자 하는 러시아나 중국은 서버의 국내 설치를 의무화한다. 우리가 이들 나라를 따라갈 것인가?

구글·페이스북·아마존 같은 초거대 기업들에게 시원하게 돈 좀 받아보자는 것을 말릴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서버를 국내에 두도록 하는 방식은 인터넷이 인류에게 준 선물, 즉 힘없는 개인들도 막강한 정부와 기업에 맞서 서로 정보를 모으고 나눌 수 있는 정보력과 홍보력, 그리고 감시와 검열을 피해 유통 경로를 정할 수 있는 특권을 걷어차버리는 것이다.

둘째, 해외 기업의 국내 소득 과세 문제를 따져보자. 기업은 전 세계에 재화와 용역을 수출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수출 기업은 외국에서 소득을 올린다. 그렇다고 해서 현지 정부에 소득세를 내지는 않는다. 소득세는 소득을 올리기 위한 행위가 어디에서 벌어지는가를 기준으로 과세한다. 이는 국제 세법의 상식이고 이중과세를 방지한다. 구글·페이스북의 국내 소득에 대해 과세하려면 현대, 기아 자동차의 미국 내 소득 과세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논의되는 ‘구글세’는 소득에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부가가치세다. 국경이 없는 인터넷의 성격을 전제로 하고 새로운 국제 세법을 만들려는 OECD의 논의가 마무리돼간다. 그 와중에 한국 혼자 소득세를 부과하겠다고 서버 위치를 붙들고 늘어졌을 때의 결과는 뻔하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 것이다.

셋째, ‘망 이용 대가’ 문제다. 망 사업자가 인터넷 접속을 제공하지도 않는 해외 업체에 전화 회사처럼 정보 배달료를 받겠다는 욕심이다. 이는 인터넷의 구동 방식에 완전히 반한다. 해외에는 ‘망 이용 대가’라는 말 자체가 없다. 오직 자신과 직접 접속하는 망 사업자와 받는 접속료가 있을 뿐이다.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유선 85%, 무선 100%를 과점하는 대기업 3사는,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높은 접속료를 국내 인터넷 기업들에게 받는다. 혹시 ‘망 이용 대가론’을 근거로 이렇게 받는다면 접속료부터 낮출 일이다.

 

* 위 글은 시사IN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8.12.14.)

월, 2018/12/1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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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xe_content"><h1>'디지털세' 어떻게 봐야 할까?</h1> <h2>조세국가 위협하는 디지털경제의 과세기반 침식</h2> <p> </p> <p><strong>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strong></p> <p> </p> <p style="text-align:justify;">주지하다시피 기업의 최고 목적은 공공성이나 사회적 선이 아니라 이윤의 추구이다. 그럼에도 노동시장과 조세국가가 수립된 현대에 기업의 이윤 추구가 사회적으로 승인되고 정당화되는 근거는 결국 그 과정에서 일자리와 세금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 기반 기업들의 일자리와 세금 기여도는 계속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디지털경제에서 이 추세는 내재적이고 구조적인 성격으로 보인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이런 상황에서 디지털경제의 강자들로 부상한 플랫폼 기업들에게 공공이 공유지분권을 설정해 공유부(共有副) 배당의 재정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금민, <데이터 기술 R&D PIE는 '공유지분권에 입각한 사회배당'과 결합되어야 한다> <a href="https://bit.ly/2InD8tV&quot; rel="nofollow">참조</a>) 그렇다고 이런 근본적인 대안 추구가 인터넷 기업들의 일자리와 세금 기여도를 높이려는 정책적 노력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기본소득이 아니더라도 공공성을 제고하기 위한 재정의 상당 부분이 상당한 기간 동안 세금에서 나와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strong>기재부의 월권적 디지털세 반대 표명</strong></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런 점에서 기획재정부가 세계적인 도입 움직임이 일고 있는 '디지털 서비스세'(digital service tax)와 관련해 "우리나라에 도입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여러 모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다국적기업의 법인세에 대한 국제규범은 고정사업장(permanent establishments)이 있을 경우에 과세할 수 있으며, 물리적 고정사업장 없이 제공되는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에 대해서는 서버를 둔 국가를 과세 관할국으로 하는 국제 합의가 2003년 마련됐다. </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디지털세는 이러한 법인세 국제규범 하에서 서버를 해외에 둔 ICT 기업들의 국내 법인세 회피 문제가 심각해지자 고정사업장에 대한 새로운 국제규범이 합의될 때까지 ICT 기업들의 매출이 발생한 관할지에서 매출액 대비 일정 비율로 법인세를 갈음토록 하는 세금이다. 기재부는 이에 대해 지난 14일 '최근 EU 등의 다국적 IT 기업에 대한 법인세 과세' 관련한 배경 설명을 통해 내국 법인에 대한 중복 과세, 소득기반 법인세 과세 원칙 위반, 부가세와의 중복과세 등을 이유로 사실상 디지털세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기재부의 반대는 우선 조세의 항목과 세율을 결정하는 권한이 국회에 부여되어 있음에도 행정부가 먼저 나서서 특정 세금의 도입 가능성을 부정하는 행위로서 다소간 월권적이다. 20대 국회에는 이미 부가가치세법이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법 개정안의 형태로 이른바 '구글세' 부과를 가능케 하는 법률안이 상당수 발의된 상태이고, 디지털세를 포함한 관련 논의가 각종 토론회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디지털세라는 특정 세목이 국회가 발의하고 논의한 다른 세목들과 성격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기재부의 디지털세 반대는 다국적 인터넷 기업들에 대한 여하한 형태의 증세에도 정부가 반대한다는 메시지로 읽힐 소지가 크다. 과세는 주권의 핵심적인 내용이고 그 권한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보유함으로써 국민 주권의 원리가 구현된다. 기재부가 먼저 나서서 가이드라인을 칠 일은 아닌 것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디지털세 도입이 입법기술적 어려움을 제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재부의 반대는 이 세금의 필요성이 제기된 맥락을 생략하고 시야를 지나치게 입법기술적 문제로 한정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디지털세가 제기된 맥락을 살펴보자.</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다국적 인터넷기업들의 세금 회피가 전통적인 다국적기업들의 그것과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리적 고정사업장을 두지 않아도 인터넷 기반의 서비스 상품을 제공할 수 있는 특성 때문에 세금 회피가 훨씬 더 일반화되고 과세도 기술적으로 더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여기에 해외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각종 세제 혜택을 주는 글로벌 차원의 신자유주의 감세 경쟁까지 가세한 형국이다. </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strong>디지털경제의 과세기반 침식</strong></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OECD는 ICT 기업들의 합법적인 주요 세금회피 방식을 몇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가장 전형적인 것으로 고정사업장 회피다. 둘째, 과세 관할국들 사이에 과세 제도의 차이를 이용해 세금을 가장 적게 내는 방식으로 이익을 할당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구글과 애플은 법인세가 싼 아일랜드에 2개 이상의 아일랜드 법인을 설립해 글로벌 이익을 분할하는 일명 더블 아일리쉬(Double Irish) 전략을 사용한다. 셋째, 공제액 최대화다. 이자, 로열티 등의 형태로 공제액을 최대화해서 한 국가에서 과세표준을 최소화할 수 있다. 미국에 본사를 둔 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본사에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소득 원천지국에서의 과세가능한 소득을 줄이는 방식을 쓴다. 넷째, 국가들 사이의 조세협약을 이용한 원천징수세 회피다. 이를 일명 조세협약 쇼핑(treaty shopping)이라고도 한다. </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다국적 ICT 기업들의 조세 회피에 관한 체계적인 통계는 없지만 전통적인 기업들에 비해 세금을 현저히 적게 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자료는 많다. 유럽집행위원회는 2018년 유럽연합 안에서 전통적인 다국적기업들의 법인세 실효세율이 23.2%인 것에 비해 다국적 인터넷기업들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9.5%에 불과하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의 연결재무제표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구글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약 17% 정도이다. 세계에서 버는 모든 이익에 대해 미국을 포함해 모든 나라의 법인세 납부실적을 반영한 수치다. 2015년 미국의 법인세율이 35%(트럼프의 법인세 감세조치 이후 현재는 21%)인 점을 감안하면 절반 정도를 법인세로 내는 셈이다. 글로벌 이익에서 미국으로 귀속되는 비중은 46%이다. 법인세율이 낮은 아일랜드(12.5%)와 싱가포르(17%)에 이익을 분산 귀속시켜 세금을 낮추는 전략이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구글은 그나마 세금 납부 실적이 양호한 기업에 속한다는 평가가 있다. 국민국가 단위로 살펴보면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 구글과 애플 등 일부 다국적 ICT 기업들은 한국에 자회사 법인을 설립해 법인세를 내고 있다. 그런데 구글코리아의 경우 광고서비스 등 상대적으로 소액의 매출만 국내 소득원으로 계산해 법인세를 납부하고 있다. 2016년 앱 판매 등으로 약 4조5,000억원 매출을 올린 구글플레이의 거대 매출과 그 이익에 대해서는 구글아시아퍼시픽이 소재한 싱가포르에 서버를 두고 싱가포르에 법인세를 납부하고 있다. 주식회사가 아닌 유한회사로 등록해 기업공개도 되지 않은 까닭에 법인세를 얼마나 냈는지 공식 확인할 수 없지만, 한국에서 올린 수익과 대비한 과세액은 여론 무마용 생색내기 정도로 볼 수 있다. 페이스북코리아 역시 한국에서 올린 이익을 서버를 둔 아일랜드에 귀속시켜 지금까지 법인세를 내지 않았다. 네이버 등 국내 ICT 기업들이 세금 역차별을 제기하는 배경이다. </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이처럼 다국적 인터넷기업들의 세금 회피의 심각성은 디지털 전환의 불가역적 추세를 감안할 때 가까운 미래에 현대 조세국가의 존립을 위협할 수준이다. 이 때문에 디지털경제의 과세기반 침식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오래 전부터 진행돼 왔다. OECD 재정위원회가 2012년부터 추진한 BEPS(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OECD는 2020년까지 종래의 고정사업장을 대신하는 '중요한 디지털 실체'(significant digital presence) 등으로 새로운 고정사업장 개념의 도입을 제안해 놓은 상태이다. 그 핵심은 물리적 고정사업장이나 서버 소재지가 아니라 영업과 이익이 이뤄지는 사업 활동의 실질을 기준으로 과세 관할국을 지정하려는 시도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strong>국제규범 마련 때까지는 적극 검토 필요한 디지털세</strong></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하지만 국제적 노력의 전망이 밝은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다국적 ICT 기업들이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고 미국으로 귀속된 이익에 대해서는 미국이 법인세를 과세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개별 국가에서 과세를 하게 된다면 미국은 이들 기업에 대한 과세 기반을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된다. 미국이 이를 순순히 수용하리라 기대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유럽연합집행위원회가 현행 법인세를 대체하는 디지털세 도입을 제안한 것은 지금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절박함도 있지만 가까운 장래에 새로운 국제규범이 합의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 측면을 반영한다. 유럽연합이 제안한 디지털세는 온라인 광고, 사용자 데이터 판매, P2P 플랫폼 서비스 등의 디지털 서비스를 통해 창출된 매출액에 3% 세율로 부과하는 새로운 법인세 개념이다. 이렇게 되면 적어도 고정사업장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하지만 EU 차원의 이런 노력도 결실을 맺지 못해 지난해 12월 EU경제재정이사회(ECOFIN)에서 디지털세 도입을 위한 합의에 실패했고, 지금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주요국들이 개별적으로 디지털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디지털경제에서 과세 문제가 구조적 난제로 부상했음을 알 수 있다. </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기재부가 제시한 디지털세 반대의 근거는 현행 국내 및 국제 조세 질서를 전제로 입법기술적으로 일정하게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는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디지털세 도입을 적극 추진 중인 사실은 이 문제가 단순히 입법기술적 차원에서 결정될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기재부는 디지털세 도입에 반대하며 다국적 ICT 기업들에 대한 과세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는데,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너무 안이한 접근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과세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과세표준을 실제로 벌어들인 이익보다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하는 것이 문제인데, 과세 행정을 강화한들 과세액이 미세조정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디지털세 도입이 기존의 법인세에 더해 디지털세까지 추가로 내게 되어 국내 ICT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 된다는 주장은, 이미 존재하는 역차별은 승인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디지털세 도입이 국내 기업들에게 역차별이 되지 않게 하는 입법기술은 불가능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조세 역진성만 강화시키고 있는 각종 법인세 감면 규정을 이런 데 활용할 방법이 정말 없을까? 국회가 발의한 법안들도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디지털경제의 과세기반 침식을 막는 수단이 반드시 디지털세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적어도 새로운 국제규범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거부를 위한 근거를 찾는 노력보다 도입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blockquote> <p style="text-align:justify;">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a href="http://www.pressian.com/news/review_list_all.html?rvw_no=1661&quot; rel="nofollow">목록 바로가기(클릭)</a><br />  <br />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p> </blockquote> <p> </p> <p> </p> <p>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p> <p style="text-align:justify;"> </p></div>
월, 2019/03/0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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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방송 심의: 또 하나의 갈라파고스 규제

글 | 박경신(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픈넷 이사)

 

방송을 인터넷으로 뿌리면 ‘방송’으로 규제하나 ‘인터넷’으로 규제하나 – 미네르바, 참여연대, 옥수수 등

방통심의위가 방송사들이 자신들의 웹사이트로 뿌리는 콘텐츠를 ‘유사방송’이라고 부르며 방송수준으로 심의하겠다고 나섰다. ‘스브스 뉴스’나 ‘EBSi’ 인터넷 강의 콘텐츠 같은 것을 방송사가 만들었다는 이유로 불법이 아니라도 저속하거나 편향되기만 해도 규제한다는 것인데 제재의 수위만 다를 뿐 방송처럼 심의하겠다는 것에는 여야가 한목소리인 듯 하다.

스브스 뉴스나 EBSi 인터넷 강의는 국가특허를 받은 공공매체로 송출되는 콘텐츠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도 아닌 콘텐츠를 국가기관이 규제한다는 것은 헌법의 표현의 자유에 어긋나는 것이다.

불법이 아닌 방송콘텐츠를 저속하거나 편향된다는 이유만으로 규제해도 표현의 자유에 어긋나지 않는 이유는, 방송은 공중파라는 공공재를 국가특허로 몇몇 사업자들에게 불하하는 대가로 이들 사업자들에게 특별한 공적 책무를 부과하면서 만들어진 매체이기 때문이다. ‘전파는 국민 모두의 것이고 그걸 당신들에게 맡겼으니 공공성 있게 써달라’는 것이다. 인터넷에 뿌리는 콘텐츠는 그럴 정당성이 없다.

“방송사가 국가특허로 신뢰도와 영향력을 키웠으니 이들이 만든 콘텐츠는 인터넷으로 나가더라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답답한 노릇이다. 국가특허로 신뢰도와 영향력을 키운 것이 방송사뿐인가? 국립대학교인 서울대학교는 어떤가? 원래 국영기업있던 KT는 어떤가? 이들이 내는 논평, 연구 결과, 인터넷 콘텐츠도 다 방송 수준으로 심의할 것인가?

물론 일반적으로 국가특허로 신뢰도와 영향력을 키웠다면 국가특허를 받은 측면의 사업을 규제하면 된다. 망사업자들(KT, SKT, LGU+)이 ‘기간통신사업자’라며 또 다른 특별한 규제를 받는 것도 역시 주파수 및 도로 아래의 전선관 등 국가특허에 의한 공공재를 불하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특허를 받는 측면에 대해서만 특별규제를 하면 되는 것이지 그들이 하는 다른 사업에까지 규제를 확장하는 것은 정당성이 없다. KT가 영화제작에 참여하면 그 영화도 기간통신사업으로 규제할 것인가? (참고로 이들이 만드는 <옥수수>나 방송사업자들과 합작하기로 한 <푹>까지 방송처럼 규제하는 것도 위헌이다.)

왜 방송사나 망사업자같은 ‘갑’들을 보호하려 하냐고? ‘신뢰도와 영향력이 있다면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명제의 피해자들 중에 바로 미네르바 같은 사람이 있다. 그가 20만 명의 팔로워가 있고 정권에 위협이 되니 전기통신기존법 조항을 유신정권 때의 유언비어유포죄와 같은 거라고 우겨서 그 죄로 잡아넣은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사람들이 잘 따르면 그 사람을 더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사회는 평화로운 혁명이 불가능한 사회이다. 정부와 기업 돈 한 푼 받지 않고 순수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로 운영되는 참여연대 보고 “권력기관”이라고 부르는 궤변하고 비슷한 것이다.

‘표현이 인기 있거나 설득력 있다고 해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명제는 시민들뿐만 아니라 거대기업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진영논리는 정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에서도 우리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갈 원리를 세워야 하는 것이지 우리 중에 누가 누구를 누르는 것이 경제개혁이 아니다. 다시 표현의 자유로 돌아가자면 우리나라가 인터넷을 OECD 유일의 갈라파고스 규제들로 겹겹이 둘러싸서 혁신이고 뭐고 다 마비시키고 있는 것도 결국 그놈의 영향력과 인기 아니겠는가.

(법령도 누가 자세히 살펴봤으면 좋겠다. 아래 법령을 종합해보면 ‘유사방송’ 규제라는 게 ‘전기통신회선을 통해 일반에게 공개목적으로 “편성”을 통해 제공되는 것’에 적용되는 것인데 “편성”은 실시간 송출을 전제로 한 개념이다. 스브스 뉴스나 인강을 편성시간을 기다려서 보지는 않지 않는가. 내 생각에 위 정의에 들어가는 것은 IPTV에서 VOD를 뺀 나머지 방송밖에 없고 이들은 이미 방송심의를 받고 있다. 이 규정으로 스브스 뉴스, EBSi 같은 걸 규제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방송법 제100조와 32조, 방송법 시행령 제21조 (출처: 미디어스)

* 이 글은 박경신 교수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2019.01.11.)

금, 2019/01/1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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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 이용 대가’는 없다

글 | 박경신(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픈넷이사)

 

요즘 구글, 네이버, 카카오 등의 인터넷기업에 ‘망 이용 대가’를 물려야 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진다. 5G 시대에는 망사업자들이 인터넷기업들에 ‘고속’ 인터넷을 비싸게 팔 수 있어야 한다거나 국외 인터넷기업들에 국내 접속료를 받아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이 정치적, 경제적 민주화의 도구로 여겨져온 것은 인터넷의 ‘참여적인 매체’로서의 성격 때문이었다. 힘없는 개인들도 방송이나 신문과 같이 대중에게 동시에 호소할 수 있는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생산자가 되어 이들의 ‘참여’ 아래 여론과 산업이 형성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만인이 만인에게 한꺼번에 소통할 수 있는 인터넷은 어떻게 물리적으로 가능할까? 수억 개의 모든 단말이 다른 단말에 직접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터넷의 혁명은 그렇게 하지 않고도 모두가 서로 통신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모두가 서로의 전령이 되어주기로 한 것이다. A와 Z 사이의 통신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B, C, D, E, F, G 등 많은 단말들이 물을 먼 곳에서 길어서 불을 끌 때 사람들이 줄을 서서 양동이를 전달하듯, 차례대로 정보 전달을 하기로 약속했다. 모든 단말이 각자 자신의 이웃 단말이 전달한 정보를 다른 방향의 이웃 단말에게 전달하는 소임에만 충실하면 모두가 모두에게, 즉 C도 W에게, L도 H에게 통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인터넷의 혁명이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또 하나의 원칙이 필요했는데 각자가 자신의 이웃 단말과의 통신에 대해서 돈을 받지 않기로도 약속한 것이다. 우편이나 전화처럼 발신자나 수신자에게 돈을 받으려 했다면 발신자와 수신자는 중간에 몇개의 단말을 거쳤는가에 따라서 비용을 물고 그 비용은 각각의 중간 단말에게 배분됐어야 할 것인데 이를 정산하는 거래 비용만으로 인터넷은 붕괴되었을 것이다. 결국 자신에게 전달된 정보가 누구에게서 왔고 누구에게로 가는지 어떤 내용인지에 관계없이 다음 사람에게 무료로 전달해준다는 원칙이 정립됐다. 이렇게 모두가 모두의 정보 전달에 기여하는 대신 서로 간에 배달료를 받지 않는다는 원칙이 바로 망중립성이다. 정보 전달에 대해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더 빠른 전달 또는 더 안정적인 전달에 대해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과 등가이고 망중립성의 더 잘 알려진 표현인 ‘우대 금지’(no prioritization) 원리이다. 인터넷의 민주성은 모두가 서로의 정보 전달에 무상으로 기여한다는 참여적인 기초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덕분에 인터넷은 무료 정보의 바다가 되기도 했다. 내 웹사이트에 다른 대륙의 누군가가 접속하여 정보를 퍼간다고 해서 내가 정보전달료를 물어야 한다면 나는 웹사이트에 무료로 정보를 올리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들의 정보까지 받아 올려 또다른 사람들이 퍼가도록 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다음 메일, 네이버 검색, 카카오톡, 유튜브, 페이스북을 우리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망중립성 덕택이다.

그런데 시대가 흘러 서로간의 연결을 대행해주고 돈을 받는 기업이 생겨났다. 이게 바로 망사업자이다. 망사업자는 많은 단말들 사이의 연결을 통제하게 되어 지금은 A에서 Z까지 가는 동안 30개의 단말을 거친다면 그중 10개쯤을 통제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가 됐다. 이를 바탕으로 망사업자들은 ‘정보전달 전 구간은 아니라도 상당 부분을 책임지므로 배달료를 받겠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전선의 용량을 키워서 한꺼번에 많은 정보가 자신과 오가도록 하는 접속료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이게 바로 한국 망사업자들이 ‘망 이용 대가’라고 부르는 것인데 외국에서는 이런 표현 자체가 없다. 굳이 대응되는 단어를 찾자면 ‘(망사업자의) 최종소비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요금’을 발신자로부터 받겠다는 의미로 ‘터미네이션 피’(termination fee)라고 부른다. 전화망 사업자들끼리는 이것을 받지만 인터넷에서는 금기시되어왔다.

‘망 이용 대가’라는 개념은 인터넷의 작동 원리에 정면으로 위배되고 결국 인터넷의 참여적 매체로서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국내 망사업자가 그렇게 돈을 번다면 외국의 망사업자들도 자신이 한국 국경까지 정보 전달을 한 것에 대한 ‘망 이용 대가’를 한국의 이용자나 망사업자들로부터 받으려 들 것이다. 심지어는 유력한 정보 제공자들은 국내 이용자가 정보를 퍼갈 때만 유료로 하려 들 것이며 ‘정보의 바다’는 한국에서만 귀신같이 증발해버릴 것이다.

* 위 글은 한겨레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8.11.19.)

화, 2018/11/2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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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경신(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픈넷 이사)

‘우리는 불완전한 지식에 터잡은 어떤 예언에 우리의 구원을 의존한다.’ 홈스 판사가 사상의 자유시장 이론을 설파한 소수의견에 나오는 문장이다.

진실은 누군가에 의해 배타적으로 점지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발언으로부터 현출된다(emergence). 명제가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사실과 다르고 불명확한 ‘공익’을 해한다는 이유로 형사 또는 민사적으로 벌하는 제도, 즉 허위사실유포죄에 대한 국제인권과 헌법의 평가는 명백하다. 불완전한 의혹 제기들이 가능해야 진실이 현출될 수 있는데 어떤 명제가 당장 근거가 부실하다고 하여 처벌하게 되면 진실은 영원히 현출되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표현에 대한 제한은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명예훼손, 사기 등을 제재하는 이유는 특정인에 대해 특정할 수 있는 피해를 발생시킬 위험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허위명제들을 처벌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독재보위를 위해 이용되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긴급조치 1호와 9호의 유언비어유포죄이다. 국민들이 사람을 욕하지 않고 유신헌법을 욕해도 처벌할 수 있도록 급조된 법제이다. 가깝게는 미네르바의 이명박 정부 환율정책 비판을 처벌하려는 시도에 동원되었던 전기통신기본법 47조도 있다. 또 MBC 의 광우병 보도를 관련 정책 담당자의 명예훼손으로 환원하여 기소하려고 했던 시도 역시 허위사실유포죄와 다를 것이 없다. 위 시도들 모두 우리나라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결정되거나 파기되었다.

그런데 2021년 민주당이 이와 비슷한 법을 다시 만들려고 하고 있다.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를 보도하거나 매개하는 행위”를 위법행위로 규정하고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을 저지르면 그 피해에 대해 법원이 5배수 배상을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단순히 허위보도가 피해를 초래한다고 해서 모두 민사책임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었다.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 때문에 표현에 대한 민사적 제재도 명예훼손, 저작권 침해 등 유형화되고 특정화된 인격권 침해나 재산상 피해가 있을 경우에만 인정되어왔다. 이번 개정안은, 형사처벌은 아니지만 5배수 손배에 의한 위축효과 역시 강력하여 민사법적으로 허위사실유포죄를 부활시킨 것과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정보를…매개하는 행위”에 대해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까지 부과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들이 언론사별로 제휴·제공 여부를 결정할 뿐이지 기사별로 제공 여부를 결정하지 않기 때문에 개별 기사의 내용은 물론 그 불법성에 대해 알 수가 없다는 면에서 자기책임원칙에도 위반된다. 결국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는 조금이라도 논란이 될 만한 기사들을 자진해서 삭제 차단할 것이며 언론의 자유는 사적검열에 처하게 된다.

더욱 가관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을 추정하는 조항이다. 즉 징벌적 손배가 부당함을 입증하지 못하면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5배수 손배를 감당하라는 것인데,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하여 보도한 경우’를 보자. 인터뷰 기회를 얻기 위해 무단횡단이나 과속을 하는 경우, 잠입취재를 위해 신분을 숨기는 경우가 모두 포함될 텐데 탐사보도가 위축될 것이다. 삼성X파일, 계룡대 내 ‘룸살롱’, 유아원 급식위생 모두 ‘위법적 취재’로 거악을 드러낸 보도인데 기사가 부정확하면 5배수 손배를 감수해야 한다. 인터넷기사에 정정보도청구 표시가 되지 않는 경우 ‘왜곡된 기사제목’, ‘왜곡된 시각자료’, 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충분한 검증없이’ 인용하는 경우도 징벌적 손배의 부과를 추정하고 있는데 모두 기존의 법이나 판례로 포섭되지 않았던 새로운 위법행위를 창설하는 것뿐만 아니라 입증책임까지 언론에 전가하고 있다.

인권 면에서 이번 정부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와 달랐던 것은 명예훼손 형사처벌이나 허위사실유포죄로 공적토론을 입막음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그 영예를 걷어차버린다. 언론은 우리의 거울이다. 언론은 우리가 읽고 싶어 하는 기사를 쓰며 결국 우리 스스로의 정치적·역사적 정체성만큼 다양한 기사들이 쏟아져나오게 된다. ‘개혁’의 칼자루는 정부·여당이 쥐게 마련인데 ‘언론개혁’은 ‘국민개조’를 의미한다. 이런 식의 강압적인 ‘언론개혁’이라면 5공 때의 ‘정의사회 구현’과 무엇이 다른가.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했습니다. (2021.08.21.)

월, 2021/08/0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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