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출신의 푸른 눈의 수행자 현각 스님이 지난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 불교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 데 따른 파장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본인은 “형편없는 한국어 실력 때문에 생긴 오해”라며 조계종을 떠날 뜻을 밝힌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파문은 더 커지고 있다.
불행히도 현각 스님을 향한 조계종 주류의 비판은 “한국 불교에서 상위 1% 대접을 받아놓고 25년이 지난 이제서야 왜 비판에 나선 것이냐”로 모아지는 모양새다. 소모적 논쟁 속에 과도한 기복문화와 수행정신의 퇴락, 완고한 민족주의라는 현각 스님이 던진 화두는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조계종 종권 다툼 한창이던 1998년 ‘푸른 눈 수행자’로 주목
현각 스님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소개된 건 지난 1998년 부처님오신날을 즈음해 방영된 KBS 특집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다. 연이어 그 해 11월 KBS 일요스페셜 만행(卍行) 2부작이 방영되자 대중의 관심이 폭발했다.
미국 예일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과 미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한 ‘스펙’부터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하버드대를 나온 34세 푸른 눈의 수행자가 오직 깨달음을 위해 진리를 찾아 명산고찰을 돌며 용맹정진 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신선했지만, 총무원장 선출을 앞두고 조계사 점거 사태가 재발하는 등 종권(宗權)을 차지하기 위한 이전투구가 벌어지던 당시 조계종 종단의 실상과 대비되며 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측면도 있다.
경호 용역 회사 직원, 물대포까지 동원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조계종 승려들의 모습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던 그 때, 한국불교는 “따뜻한 할머니의 품 같다”는 현각 스님의 말씀은 우리사회에 큰 울림을 전했다.
이듬해 출간한 책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가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현각 스님도 스타덤에 오른다. 책이 인기를 끌면서 대표적 TV 아침 프로그램인 ‘아침마당’에도 나가고, 라디오도 나가고 특강도 해야 했다.
외모가 출중하다는 점은 인기를 더하는 요인이었다. 현각 스님은 2010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그래서 창피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수행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야 하는데, 자신의 겉모습은 사람들에게 유혹만 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에 아름다운 비구니 스님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보면 사랑에 빠지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러자 비구니 스님이 칼로 자신의 얼굴을 난도질했다. 내가 그 비구니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 말라. 비슷한 심정이었다는 얘기다”라고 설명했다.
여자친구 청혼 뒤로 하고 입산… “죽을 때까지 한국서 수행 정진”
현각 스님(속명 폴 뮌젠)은 1964년 미국 뉴저지주 라이웨이에서 아홉 형제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부모는 자녀 모두를 카톨릭 중ㆍ고교에 진학시켰고, 현각 스님은 형제들 중에서도 유독 가톨릭 신부가 되리라는 부모의 큰 기대를 받고 자랐다.
하지만 1983년 예일대에 진학한 현각 스님은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을 함께 지켜보며 자란 동시대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중남미에 무기를 수출하고 뒷돈을 대주며 전쟁을 부추기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반대를 외쳤고, 인종차별정책으로 비난을 받던 남아프리카공화국 기업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얻던 예일대 총장을 향해 투자 중단을 요구하며 퇴진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파티와 여흥이 넘쳐나는 자유로운 미국 젊은이의 전형적 생활도 즐겼다. 현각 스님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지만,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또 찾아 헤매야 했다”며 “전도 양양한 미래도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은 늘 허전했다”고 20대 시절을 설명했다.
현각 스님은 1987년 대학을 졸업한 뒤 철학의 본고장인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철학과로 진학했고, 이후 프랑스 아일랜드 영국 등 14개국을 유랑하며 방황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1989년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월스트리트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일했지만, 맞지 않는 옷이었다.
25세의 현각 스님은 물질주의의 최전선인 월스트리트의 삶에 절망을 느껴 자살을 결심했다. 미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에서 투신 직전까지 갔던 그를 돌려세운 건 한 흑인 노숙자였다. 남은 돈을 모두 털어 건네자 그 노숙자는 “오늘이 며칠인지 알아? 오늘은 네 생일이야. 나중에 내가 한 말을 떠올리면 이해하게 될 거야”라며 축가를 불러줬다고 한다.
현각 스님은 “어쩌면 관음보살의 현신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저서를 통해 고백했다.
1999년 출간된 현각 스님의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미국 최고 엘리트였던 그가 번뇌의 고리를 끊는 진리를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 불교에 귀의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사진 출처: http://koridol.tistory.com/4379)
현각 스님은 가톨릭 신부가 될 생각에 그 해 하버드 대학 신학대학원 비교종교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강연을 위해 하버드대를 방문한 숭산 스님을 만나 한국 불교와 인연을 맺으면서 인생의 항로도 달라진다.
1992년 대학원 졸업 후 여자친구의 청혼까지 뒤로 한 채 입산한다. 선종(禪宗)의 개창자인 육조 혜능 대사가 모셔진 중국 조계산 남화사에서 계를 받고 출가했다. 1996년 경남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비구계를 받았고, 2001년 8월 화계사에서 숭산 스님에게 공식 인가를 받았다.
현각 스님은 1999년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혜능 스님 선 수행의 전통이 가장 잘 이어져 훌륭한 고승이 많은 것은 한국불교의 자랑”이라며 “나는 죽을 때까지 한국에서 수행에 정진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한국 불교의 배타성ㆍ상업화가 ‘깨달음’ 방해
한국 불교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던 현각 스님이 돌연 한국을 떠난 건 지난 2008년의 일이다. 유럽에서의 ‘만행’이 명분이었지만, 스승인 숭산 스님이 입적(2004년)한 날부터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수행이 아니라 그야말로 ‘쇼’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유럽으로 떠난 그는 2009년 독일 레겐스부르크에 ‘불이(不二)선원’이라는 선방을 개원하며 독일에 정착했다. 물론 한국에서의 ‘동안거’(冬安居) 만큼은 거르지 않는 등 한국 불교와의 인연은 이어왔다.
숭산 스님의 가르침이 좋아 출가했고, 그 때문에 한국도 좋아하게 됐다던 그는 지난 3월 언론 인터뷰에서“한국 불교는 나 같은 외국인이 보기엔 아직 너무 배타적이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국 불교가 지나친 상업화의 길로 가는 현실도 번뇌를 불러왔다. 현각 스님은 특히 ‘한국 불교 세계화’를 표방하며 사찰음식 박람회와 같은 이벤트성 행사에 주력하는 조계종 종단을 향해 죽비를 세게 내리쳤다.
2014년 미주 한국일보와의 영문 인터뷰에서 “조계종 지도부는 문화상품을 ‘수출’하려 애쓰고 있다”며 “진정한 영적 진리를 알고자 하는 마음의 허기를 충족시킬 수 없는 순전히 문화상품에 불과한 이것에 너무 많은 돈이 쓰여지는 게 나를 슬프게 한다”고 밝혔다.
그는 “박람회에서 홍보하는 사찰음식 메뉴를 보면 거개가 사찰에서 비구나 비구니가 먹는 음식도 아니다. 일년에 한번쯤 어떤 대사 때가 아니면 결코 구경도 할 수 없는 진수성찬 채식요리”라며 “부처님은 승려들에게 거리에서 걸식을 하라고 가르치셨다”고 일침을 가했다.
현각 스님은 지난 2013년 현대불교 창간기념 인터뷰에서는 한국 불교가 주목하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대해 “불교를 ‘깨달음’에서 단순한 문화차원에서의 ‘관광 상품’으로 변화 시켰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템플스테이는 중요한 경제적 기회와 대중 매체 속에서의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어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매우 위험하다”며 “모든 것을 돈 중심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상업화의 부작용을 경계했다.
현각 스님이 최근 논란이 된 페이스북 글에서 “누구나 자기 본성을 볼 수 있는 열린 그 자리는 그냥 기복 종교로 귀복시켰다. 왜냐하면 기복= $”라고 썼던 고민의 뿌리를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도발’ 좋기로 소문난 대구 동화사 갓바위 앞에서 기도하는 신도들의 모습(왼쪽). 그리고 그곳에 적힌 문구. 종교가 사바대중의 근심을 덜어주고, 작은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면 좋은 것이지만, 현각은 그것이 부처가 말한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511-33/12369745)
조계종은 최근의 논란과 관련해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중앙승가대 교수인 자현 스님은 페이스북 글과 불교신문 기고문 등을 통해 “현각 스님이 주목 받은 것은 깨달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출가하자마자 무슨 깨달음이 있었겠는가? 그것은 단지 하버드를 졸업한 미국의 백인이라는 측면이 작용한 결과였을 뿐”이라고 현각 스님을 향한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현 스님은 특히 “2015년 총 수입이 가장 많은 사찰은 서울 강남 봉은사인데 총 수입이 210억8,700만원에 불과하다”며 “봉은사는 수 조원의 자산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바른불교재가모임 상임대표인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현각 스님이 한국 불교 비판 소식이 전해진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각 스님이 느낀 여러 모습에 대해 (재가모임도) 같은 문제점을 지적해왔다”며 “그가 굴종의 신앙을 유지하는 신도들과 욕심을 채우려는 종단 승려들에게 많은 실망을 느낀 것 같다”고 섰다.
정보를 얻는 유일한 방식인 한국의 언론을 통해서 북한과의 미래 약속에 관한 논의를 지켜보는 것은 매우 혼란스럽고 불편한 과정이다. 이들 매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평양 당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진정으로 관심을 표명하는 정치인으로 북한의 비핵화와 국제사회 진입에만 관심이 있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에 있는 나의 친구들은 전혀 트럼프를 그렇게 인식하고 있지 않다. 화석 연료나 프라이빗 뱅킹과 같은 파괴적인 사업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극소수의 억만장자들을 대표하는 그와 그의 전시 내각은 미국 건국 이래 가장 부패한 정부를 구성했다. 그들이 사용한 통치 방식은 전체주의 정부로 극소수의 억만장자들에 의한 부의 통제를 공고히 하면서 우선은 이란과 그 다음으로는 러시아 및 중국과 대규모 전쟁 즉 세계 대전을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인데 이는 국내 통제를 강화하고 군사 장비 및 무기 판매와 전세계 광물 자원의 전용을 통해 부를 창출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트럼프는 정부의 모든 권한을 무력화하고 공공 기관의 민영화와 감세를 통해 다국적 기업이 부를 창출할 수 있도록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끝없는 전쟁, 부유층에 대한 감세 및 교도소와 군대 자체의 급진적 민영화를 촉진하면서 임기 2년을 보냈다.
트럼프가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없으며 그는 이러한 기후변화 시대에 인류 전체를 쓰러뜨리려고 위협하는 타락한 제국의 얼굴이다. 이 사기꾼이 평양 당국과의 대화 노력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수 있다는 얘기를 어떻게 그처럼 많은 평범한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담당 기관이 너무도 부패하고 타락하여 그러한 냉소적인 결과가 전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본거지 워싱턴 DC 현지에서 실제로 그를 지켜본 많은 이들은 최근 새로 전개된 사건들이 훨씬 더 불안한 패턴임을 시사한다. ‘평양 책략’은 군사 분쟁과 세계 대전을 위한 체계적인 계획으로부터 한국과 일본 및 세계인들의 주위를 딴 데로 돌리려는 수단으로 미래의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내어놓은 거대한 카니발 쇼처럼 보인다. 아마도 그런 전쟁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일련의 분류된 지침보다 더 나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실제 상황으로 가정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우리는 국가 차원에서 시민들로 하여금 석유에 의존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경제적 및 법적 수단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신재생 에너지로 나아가려는 모든 노력을 무산시키려고 하는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의 결정에 심오한 의미가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그것은 이들이 보통 사람들의 미래를 돌보지 않는 이기적인 인간들이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심각한 정신병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 문명을 종식시킴으로써 어쩌면 인류의 멸망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계획을 기꺼이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이 갖고 있는 정치, 경제 권력을 통해 그와 같은 위험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면 그들은 세계 대전과 핵전쟁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우리가 믿을만한 모든 이유들이 있다.
우리는 현재 미국 정부가 민주주의가 아닌 사이코패스주의 다시 말해 사이코패스들에 의해 운영되는 정부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 파괴적이며 재앙을 초래할 조치들을 전적으로 취할 수 있는 정부라는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공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들 자신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난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정상 회담은 트럼프 행정부의 국제 관계에 대한 “스펙터클 정책” 접근 방식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성조기’와 북한의 ‘인공기’가 교대로 나타나도록 엉성하게 설계된 회의장 배경을 보았을 때 나는 꿈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간단하게 잠에서 깨어날 수 없었다.
복잡하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번 정상 회담은 몇 명의 아마추어들에 의해 졸속으로 이루어졌다. 이제 우리는 진실에 직면하고 있다. 성급하고 엉성하며 엉망으로 이루어졌던 미북 정상 회담은 너무 일찍 실상이 드러났으며 그에 따른 무시무시한 결과물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달라!”며 외치고 있다.
이 회담은 액면 이하로 할인 판매한다는 중고차 세일즈맨의 속임수처럼 한량들과 식객들을 놓친 바람잡이와 포주들이 함께 모여 내놓은 정책으로 이루어진 국제관계였다.
그러나 당신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가장 확실한 것은 그 합의가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북한과의 일종의 합의가 어쩌면 대규모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회담은 전반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표현 수단인 프로복싱 세계 헤비급 타이틀 매치와 같은 방식으로 판매되었다. 트럼프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 지명자나 마이크 멀린 전 합참의장과 같이 계속 투덜거리며 전쟁을 주장해온 매파들의 도움을 통해 그의 생각대로 회담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상당히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계속 암시해왔다. 이 정상 회담의 사전 준비는 큰 상금이 걸린 싸움과 유사했을 뿐이다.
트럼프는 이러한 흥미 있고 무시무시한 일상에서 책임이 따르고 감상이 아닌 세부사항으로 그를 지루하게 만드는 실제 정책 입안보다 훨씬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우스꽝스러운 순간 동안 진행된 본 정상회담은 전혀 재미가 없었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유명한 구절을 비틀어 해석해보면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무능함의 연속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김정은에게 보여주었을 것으로 가정되는 동영상을 소개했는데, 그 내용은 급진적이고 과도한 개발 및 국민들(소비자와 저임금 노동자)의 착취 또는 미국과의 전면전 사이에서 국가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되어 있다.
김정은과 트럼프 모두 이번 회담에서 긴장해 있는 모습이 눈에 역력했다. 김정은에게서 그런 모습이 더욱 두드러졌는데 그것은 단지 그가 수십 년 동안 카지노를 운영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형적인 트럼프의 시간이었다. 의심스러울 때는 판돈을 두 배로 하라. 그러면 모두가 뒤를 따를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몽유병자들의 세상에서 장님은 왕이다.”
이러한 페블 비치와 리얼리티 TV를 혼합한 행사의 장소로 싱가포르가 선정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싱가포르는 국가가 아니지만 아시아, 중동 및 동남아의 글로벌 자본이 이번 정상 회담이 열렸던 카펠라 호텔과 같은 고급 호텔의 초현실적 세계로 들어가는 공간이다. 싱가포르는 가난한 사람들이 거의 없고 외부인 출입 제한 주택지와 같이 지역 내 문제들로부터 스스로를 조심스럽게 차단시켜왔던 곳으로 ‘사형이 있는 디즈니랜드’ 라는 농담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그런 초현실적 정상 회담을 위한 완벽한 장소이다.
이 독점적 행사는 북한을 국제 사회로 초청한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김정은을 억만장자 클럽으로 불러 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권과 관련해 몇 가지 질문이 있었지만 결핵과 영양실조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본 회담의 전체적인 과정은 청중의 양심이 아니라 기본 욕구에 호소하는 식으로 매우 반지성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정상회담 후 열린 트럼프의 기자회견은 부풀려진 감정과 연관되는 것들로 채워졌으며 어떤 논리도 찾을 수 없었다. 계획되지 않은 정상 회담은 날림으로 이루어진 정치적 계책에 불과했다.
트럼프의 말과 행동은 정상 회담 이후 기본적으로 동일했는데 막연하게 돌파구를 암시하고 평화 이야기를 했지만 그가 6개월 내에 전쟁 위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제도적 보장은 없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구속력이 있는 모든 계약 및 합의를 무시, 경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7년 트럼프는 UN에서 행한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9월 트럼프의 UN 연설에서는 이란에게 전쟁 위협을 가한 반면에 북한에 대해서는 어떤 약속도 하지 않은 채 찬사를 늘어놓았다.
당시 그는 “미국은 미국인들에 의해 통치된다. 우리는 글로벌리즘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며 애국심의 교리를 수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인류 공동체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보편적 법 규정을 찾으려는 모든 노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경멸을 나타내면서 법적 구속력의 반환을 제안했다.
트럼프 치하에서 미국으로 인해 야기된 위험에 우리는 어떤 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정치적 무술을 연습해야 한다. 우리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자기 홍보를 위해 우리에게 던졌던 힘을 가져와서 새롭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능숙하게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이러한 방향 전환을 위해서는 우리가 시민들의 엄청난 집중과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가 한반도에서 진정하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전쟁 수행에 비견될 정도로 많은 용기와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R&D자금 6.7조원을 비롯하여 총 14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집행하고, 수많은 국책연구소와 과학관 등을 지휘하는, 대한민국의 기술과 과학 관련 최고 사령탑이다. 구체적으로는 과학기술정책의 수립·총괄·조정·평가, 과학기술의 연구개발·협력·진흥, 과학기술인력 양성, 원자력 연구·개발·생산·이용, 국가정보화 기획·정보보호·정보문화, 방송·통신의 융합·진흥 및 전파관리, 정보통신산업, 우편·우편환 및 우편대체에 관한 사무 등이다. 다시 말해 기술과 과학의 진흥을 통해 산업의 기반과 동력을 제공하고,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중차대한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고 담당하는 부처가 ‘눈먼돈’의 산실로,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하기보다는 일부 학피아와 봉건적 도제를 강요하며 세금을 탕진하는 자들의 보호자가 되고 있다는 과학기술 종사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 원성의 근원을 살펴 과기부가 제대로 설 수 있는 방안을 나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현재 – 산업혁명의 막바지, 구조조정이 필요한 때
우선 문제의 근원을 살피려면 우리나라의 현재 경제와 그와 관련된 과학기술적 상황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30~40년 간 산업혁명을 진행해 왔으며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여기서 산업혁명이란 영국이 1750년대 이래, 미국과 프랑스가 1830년 즈음, 독일, 일본이 1880년 즈음에 치렀던 전 사회적 차원의 변화로서 봉건사회체제로부터 자본주의화, 선진산업국가로의 전화를 말하는 것이다. 인구 5천만이상으로는 지금까지 6개 나라만이 (사회주의러시아를 포함하면 7개) 이 과정을 겪었고 이제 우리나라가 7번째가 되는 것이다. 그 전과 비교하여 경제 전반과 정치/사회/문화 모든 사회적 기반이 총체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예로서 스페인 같은 나라는 산업혁명을 아직 거치지 못한 나라로서 금융, 산업 전반에서 유로 다른 나라에 비해 후진적이며 자족적이기 보다는 대외의존 상태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1980년대까지 G5모임이 되어 오던 것이 이태리와 캐나다(인구 3천5백만)를 포함하여 G7이 된 것이다.
산업혁명의 중간에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중소기업들이 아직도 ‘테일러리즘(Taylorism)’ 혹은 ‘포디즘(Fordism)’ 수준에도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산업혁명이 완결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현재 1인당 GDP 3만불 언저리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성장이 멈추었다는 소리를 하는데, 이는 GDP가 실제 경제성장을 표현한다고 생각하는 주류경제학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환률조정 혹은 산업구조조정에 따라 국민소득이 변화하는 극적인 예를 말하기 위해, 1985년 뉴욕에서 있었던 플라자합의를 살펴보다. G5(미국제외)가 미국의 요구(레이건)에 따라 이미 5년간 50%의 평가절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를 해소한다는 명목아래 달러가치 절하, 마르크, 엔화의 절상을 결의했습니다. 그 결과 1년 뒤에는 달러 당 250엔에서 120엔대로 되었습니다. 이때 일본과 독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경제성장률은 3% 정도였는데 달러로 환산한 소득은 1년 만에 2배가 되었습니다. 1985년 플라자 경우는 극단적인 환률>>소득증가의 케이스이지만, 미국의 적자가 계속되는 오늘날도 유럽이나 한국이나 중국 등은 환률의 변동요인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 수준의 산업국가에서조차 경제성장은 1년에 3% 넘기기 쉽지 않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떻게 4만불, 5만불 소득의 국가가 될 수 있을까? 답은 산업 구조조정, 산업 체질개선에 있다. 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면 자연히 환률은 (인위적으로 저작하지 않는다면) 조정되게 되어 있다. 일본이 그토록 격심한 환률 조정 상황에서 살아남은 것도 산업에서의 경쟁력이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에서의 경쟁력이 독일과 함께 세계 1~2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산업구조조정의 과정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제 실질적인 산업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중소기업의 세계화, IT화, 글로벌 수준의 기술 보유, 노동생산성 향상, 설비 고도화를 통한 구조조정을 통해서 국가의 미래를 찾아야 한다고 하겠다. (현재 우리나라 6만7천개의 중소제조업 회사들에서 대부분은 100억 미만 매출이 차지하고 있고 이들은 1인당 매출액이 1억이 채 되지 못하는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정책의 근거에는 1인당 매출이 3억 정도이고 업체수도 1/2정도로 통합되는 큰 그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국가, 사회적 차원에서의 재정, 기술지원과 노동정책이 준비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과기부가 제대로 해야 할 일 – 지원사업에서 직접성, 투명성 제고
과기부 정책의 기조는 기초과학기술과 교육을 담당하는 부분과 산업기술과 이를 뒷밭침할 과학기반을 조성하는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기초분야는 순수과학, 수학과 통계학, 전산의 토대과학을 지원하는 것으로 꾸준하고 일관성있는 사업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기초분야가 아닌 응용분야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는 R&D 자금은 용처는 물론 실제 현장과의 연관성과 파급효과를 따져서 지원되어야 한다. 즉 이 분야는 철저히 산업지원과 괘를 같이 해야만 하는 것이다. (많은 공과대학 교수들의 일탈, 연구비 유용 건들을 보면, 이 분야의 정부지원금을 ‘눈먼돈’, ‘먼저먹는놈이임자인돈’ 등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기부의 정책이 제대로 된 길을 가려면 위에서 말한대로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중소기업 산업지원분야는 철저히 중소제조기업을 위한 산학협력과 육성지원 사업으로 되어야 한다. R&D자금을 대기업에서 유용하지 못하도록 함은 물론이고 중소기업의 체질개선을 위해 집중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 예로써 생산기술연구원은 박사급 연구원들이 자신의 연구과제에 맞는 기업들을 찾아서 협업하는 절차를 선호한다. 이는 거꾸로 기술지원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이 먼저 생기원을 찾아와서 자신의 기업에 맞는 기술지원 가능 연구원을 만나는 과정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 과정이 지방대학의 산학협력에서도 마찬가지로 변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핵심과제 중의 하나인 일자리창출은 1만원 최저임금과도 닿아 있다. 질좋은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도 중소기업에서는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외국인 노동자조차 구하기 힘들어 하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결국 일자리 창출의 기조는 Job sharing/노동시간 단축과 중소제조기업 생산기술, 경영, 금융 능력 향상이라는 2가지를 동시에 진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과기부는 중소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의 R&D 예산을 집행하는 곳이다. 최저임금 1만원, 1만5천원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산업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일은 과기부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할 사업이다.
문재인 정부 핵심과제 중의 하나인 4차 산업 (Industry 4.0)의 진행은 당연히 과기부가 주도할 것이다. 스마트공장 추진, 기술혁신,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는 중소제조기업 구조조정을 통해서 이 과제가 제대로 수행될 수 있다. 대기업은 일자리 창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고 정부의 이들에 대한 지원은 이미 의미가 없다. 도리어 대기업은 곳간에 쌓아 둔 유보자금을 풀어서 협력업체 경쟁력 강화에 투자하는 것이 자신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기계설계(CAD/CAM), 금형제작, 로봇(CPS), 자동차전장, 센서제작, 해킹/보안, AI와 데이터베이스 등과 관련하여 집중지원과 체질개선이 요구된다.
성공하는 창업은 8~90% 정도가 현업에서 경험을 가진 인력들이 시작하는 경우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에게 창업, 그것도 서비스업종에서 창업을 하라면서 정부가 나서서 지원하는 것은 한마디로 산소통도 없이 심해로 뛰어들도록 하는 미친 짓이다.(지방의 많은 대학들은 교수들에게 창업창직을 유도하도록 하고, 그에 대한 정부지원금을 주고 있다) 실제로 창업지원은 이들을 위한 (금융지원)기반과 규제해소 등에만 집중한다면 성과를 볼 수 있다. 기존 중소기업 업종과 창업업종에 특별히 차별을 둘 필요가 없으며 도리어 산학협력을 강화하고 제대로 정착시켜 이와 연계하여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
과기부의 또 다른 축이 될 기초과학과 기술 진흥과 관련하여 보자면, 올바른 연구환경 조성과 프로젝트의 통합이 필요하다. 우선 먼저 혼란스러운 정부출연과 프로젝트들을 과감하게 통합하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지나치게 세분되어 있는 연구지원체계를 조정하여 중심적인 Post를 정한 후 책임을 나누는 분권화 정책도 필요하다. 자연과학과 수학, 전산 각 세부 분야 당 나뉘어진 연구중심을 적절히 통합하고 일상적 지원은 분권화된 연구중심이 담당하고 시의적 지원은 중앙에서 지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감사기능의 강화는 시급하다. 감사기능의 강화를 통해서 연구환경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연구자들의 열악한 처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국민세금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주체들로 내외부 감시와 고발을 활성화해야 한다. 도제식 전근대적인 연구환경이 일상적인 국내실정에 대하여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여 이를 뒷받침하는 형태가 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루빨리 연구환경의 정상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학교, 연구소, 정부와 기업출연 연구중심들을 표준적인 연구환경과 투명한 비용관리를 감당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첨언) 문재인 정부의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당장 해체되어야 한다.
1) 우선 위원회의 면면이 산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며 설사 있다해도 2000년대 초의 IT붐 때처럼 IT로 한몫 잡자는 분위기를 옹호하는 것, 즉 앞서말한 온갖 허황된 미사여구로 눈먼돈에 빨대를 꽂으려는 행위에 대해 용인하는, 혹은 부추기는 사람들이다.
2) 더욱이 우리나라는 1차 아니면 2차 산업전환(혁명?), 아무려면 산업화의 중도에 있는데 즉 산업혁명을 한번도 제대로 완수하지도 못했는데 어찌 4차산업혁명을 말하고 있는가?
3) 또한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에서 그 단계 구분에서 ‘Industry 4.0’를 그대로 표절한 것이고, 더욱이 핵심적으로는 역사적 결절점이자 사회 전변을 의미하는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함부로 갖다 붙임으로써 인문학적 소양이라고는 개뿔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용어인 것이다. 실상은 이 말의 창시자라는 쉬밥은 기본적으로 장사꾼이고 이 사람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겠지만 문제는 우리나라가 그에 동조하는 업자와 매스컴의 말에 미혹되어 국가위원회를 만들고…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것 아니겠는가?
2012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선거에 뛰어들었을 무렵, 당시 영상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진보 정당에서 넘어와 돈도 조직도 배경도 없이 뛰어든 선거였다. 운동원도 차량도 없이 지하철과 기차로 전국을 돌면서 당원들을 만난다. 다른 후보의 선거운동원을 상대로 주로 선거운동을 한다고 자조하면서도 기죽지 않는다. 어묵으로 식사를 대신하면서도 ‘준비된 게 많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 이후로도 사람들은 그를 잘 몰랐다. 이제야 사람들은 그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면서 ‘국감스타’로 떠오른 국회의원 박용진 이야기다. 그가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해 내놓은 유아교육법, 사립학교법, 학교급식법 개정안은 ‘박용진 3법’이라고 불린다. 국회의원으로서 법 앞에 자신의 이름이 붙는 ‘영광’까지 누렸다.
반짝 등장은 아니었다. 국회에 입성한 후 그의 별명은 ‘삼성 저격수’였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에 제대로 과세를 하지 않았다며 문제제기를 해 1093억원을 환수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 정황을 드러낸 내부 문건을 폭로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기득권의 심기를 건드리다 쫓겨나다시피 정무위원회에서 나와 교육위원회로 옮긴 뒤에 터뜨린 게 사립유치원 문제다.
그는 한편으로 “두렵고 무섭다”고 한다. 사립유치원 쪽의 집단행동과 쏟아지는 비난도 무섭지만, 유치원 문제 하나 바로잡는 일도 “혁명을 해야 할 판”으로 어렵다는 사실 자체가 더 그렇다. 6년 전 영상에 비하면 흰머리와 주름살이 부쩍 늘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슈도, 그 자신조차도 잊혀질 것을 알기에 빨리 법제화해야 한다는 초조감도 묻어난다.
박용진의 집무실에는 선거 포스터 3개가 붙어 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더불어민주당으로 출마했던 16, 18, 20대 3번의 총선 포스터다. 과거 진보정당 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던 포스터까지 왜 붙여놨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잊지 않으려고 한다.”
2012년 최고위원 선거에서 결국 2.76%의 득표로 꼴지를 했지만 그는 말했다. “신나고 재밌다. 진보 정당 했던 사람들은 국민 여러분의 관심에 굶주려 있다. 말할 수 있는 공간과 자리가 없어 힘들었다.” 여전히 그는 ‘신나게’ 정치를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국회의원
■ 바꾸자고 주장하기보다 바꾸는 정치를
박용진 의원은 1971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경찰공무원이었는데,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대공 형사’였다고 한다. 부친의 근무지가 바뀌면서 1979년 서울 강북구로 이사와 화계초, 신일중을 거쳐 신일고에 진학했다. 훗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되는 이수호 선생님이 고교 2학년 시절 담임이었다.
1989년 전교조 결성으로 이수호 선생님이 구속되자 박용진은 당시 고3이었음에도 교내시위를 주도하는 등 선생님을 구하는 데 나섰다. 이수호 선생님은 그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학창시절부터 정치에 뜻을 두었던 것 같다. 관념적이거나 명분을 앞세워 폼을 잡는 형이 아니라, 현실생활에서 불합리한 것을 어떻게 고치고 어떤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서 실용화하는가 등에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려 애쓰는 형이었다.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며 개선책을 제시해 교사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1990년 성균관대 사회학과에 입학했고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명지대생 강경대가 집회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했고 이어 격화된 정국 속에서 학교 선배이기도 한 김귀정이 시위 도중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박용진은 시신이 안치된 백병원으로 가서 장례가 마무리될 때까지 그곳에 있기도 했다. 그는 “시대가 무서워서 무서움을 떨치기 위해 맞서야 했던 시절”이라고 회상한다.
1994년에는 성균관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됐고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지부인 북부총련 의장을 지냈다. 그해 6월 전국철도기관사협의회와 서울지하철노동조합,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의 연대파업을 지원하다가 구속돼 첫 번째 옥고를 치렀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군에 입대한 그는 1997년 제대 후 복학해 김귀정추모사업회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경찰공무원이던 아버지 뵙기가 죄송해” 취업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사회운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출근이 가까워진 어느 날 아내에게 사회운동을 하고 싶고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자 아내는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고 한다.
사회운동의 첫 공간은 민주주의 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으로 택했다. 97년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독자 후보를 내려고 한다는 소식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전국연합 정치부장 자리 제안을 받고 대선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해 보고 싶어 참여했다. 그해 9월 결성된 국민승리21에 파견돼 대변인실 언론부장을 지내며 권영길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과 함께 선거를 치렀다.
이때 경험은 훗날 그의 행보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열정만 갖고 덤벼들었지만 후보만 내면 민중들은 따라올 것이라는 식의 아마추어적인 선거 운동이었다. 여론조사에서 1%대의 지지율이 나왔지만 믿지 않았다. ‘일어나라 코리아!’ 같은 정체불명의 선거 구호로 나섰다가 비웃음만 사기도 했다. 박용진은 이때 진보진영의 실력 부족을 뼈저리게 실감했다고 했다. 대중들을 선동의 대상이 아니라 대화의 대상으로 삼아 꾸준히 마음을 움직여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 방법은 진보 정당 창당이었다. 국민승리21은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이어졌고 박용진도 함께했다.
창당 직후 총선에서 서울 강북구을에 출마해 13.3%를 득표했다. 당내에서 서울지역 최고 득표율이었다. 이어 당 전국집행위원(최고위원)에도 선출됐다.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전국민중대회에 나섰다가 또 다시 구속돼 2년 1개월 동안 징역살이를 했다. 결혼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혼인신고도 제대로 못한 아내는 신혼집을 정리하고 시부모와 살림을 합쳐야만 했다.
사면으로 풀려났지만 복권이 되지 못해 2004년 총선에는 출마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이 원내 10석의 제3당으로 떠올랐고 그는 당 대변인이 됐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때는 분당에 반대했지만 진보신당이 결성되자 자리를 옮겼다. 진보신당 소속으로 강북구을에 두 번째로 출마해 11.8%를 득표했지만 또 낙선했다.
2010년에는 진보신당 부대표가 됐다. 그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진보신당이 독자적 길을 걷기보다는 진보정당 계열, 필요하면 민주당까지 포함해서 통합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상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정당운동이 사회운동으로 머물기보다는 현실에서 어쨌든 승리를 일궈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2011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통합 논의조차 무산되자 그는 탈당했다. 통합진보당 동참도 거부했다.
대신 문성근이 주도하는 ‘국민의 명령’ 운동에 참여했고, 2011년 ‘혁신과 통합’ 상임운영위원으로 야권 통합 운동에 합류했다. 혁신과 통합이 결성한 ‘시민통합당’ 지도위원이 됐고, 시민통합당이 민주당과 합당해 만든 민주통합당 창당에 함께했다. 진보진영에서는 ‘배신자’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박용진은 저서 <과감한 전환>에서 “진보 정치가 제시하는 진보적 가치,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동의한다면 연대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박용진은 한 인터뷰에서 민주당 행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 10년 죽기 살기로 해 봤습니다. 하루도 논 적이 없어요. 수천 명이 감옥에 가고, 수많은 사람이 진보정당의 집권을 기대하다 생을 마쳤습니다. 온 가족을 당원으로 가입시키고, 있는 거 없는 거 다 바치면서 당을 세웠어요. 그런데 안 돼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혁명의 시대가 가 버렸습니다. 더 이상 봉기나 민중항쟁을 만들어 낼 수 없어요. 무엇보다 국민이 달라졌죠. 2년에 한 번씩 어느 때는 1년에 두 번 큰 선거를 치르면서 국민들은 집권자의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짱돌과 화염병 대신 투표로 심판하는 시대입니다. 안 되는 걸 안 된다고 하고, 새로운 노선을 찾아가는 것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아니잖아요.”
민주통합당에서는 최고위원 선거에 나서기도 했지만 낙선했다. 당 대표가 8~9번 바뀌는 동안 2년여 간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늘 ‘비주류’라는 꼬리표가 그를 따라다녔다. 대변인이었지만 내밀한 이야기는 자기들끼리만 했고, 당에서 자리를 못 잡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문을 뒤적이고 기자들이랑 이야기하고 당 방어하면서” 일에만 파묻혀 지냈다.
2016년 총선에서 강북구을에 다시 출마해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선 직후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비서실장으로 발탁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진보정치를 표방해 온 그가 보수의 길을 걸어온 김종인 대표를 보좌하게 된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박 의원을 이 당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판단했다”며 비서실장 임명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계파나 오래된 관습에서 자유롭다는 얘기다. 박용진은 김종인 위원장이 마지막 의원총회에서 “당신들의 지적인 만족을 위해 정당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라고 일갈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이 “정치적 이익을 공유하는 세력 정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한 정치세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 비주류, 미운오리? 즐겁게 안고 가는 정치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박용진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삼성 특검에 의해 확인된 1199개 차명계좌의 4조5000억원대 돈을 삼성이 벌금과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찾아간 사실을 지적했다. 그러자 금융위원회는 오히려 이것이 ‘합법적’이라며 삼성을 두둔하고 나섰다. 박용진이 끈질기게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자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종합 국정감사 때 “이건희 차명계좌는 차등과세 대상”이라며 항복했다.
현대자동차 세타2엔진 결함에 대한 문제도 지적했다. 이 문제 역시 국토부는 현대차를 두둔하고 나섰으나 현대차로부터 미국 소비자 기준으로 국내 소비자도 리콜을 받을 수 있도록 약속을 받아냈다. 이런 과정을 겪은 박용진은 진정한 적폐가 관료 세력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무위에서도 드러내놓고 불편해 했던 사람들은 관료들이었다. 차명계좌 건도 10년이 넘도록 어떤 조치도 없다가 지적을 받자 오히려 잘했다고 버텼다. 관료들은 과거 선배들이 한 결정들을 뒤바꾸는 일을 성경을 찢는 일처럼 싫어한다. 대책을 가져오라고 하면 과거했던 재탕·삼탕 정책들을 가져온다. 일이 잘못되면 관료가 책임지는 게 아니라 정치가 책임진다. 대통령이 책임지고 여당이 책임져야 한다.”
그는 의원에 당선되고 나서도 늘 ‘비주류’였다. ‘김종인 사람’으로 분류됐고, 당에서도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았다. 청와대 오찬에 참석한 뒤 페이스북에 “밥은 부실해도 성공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넘쳤다”는 글을 남겼다가 ‘반찬 투정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정부·여당이 밀어붙인 인터넷전문은행법에 강하게 반대하면서 정무위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왔다.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부담스러워 일부러 배제했다고 전해진다.
교육위원회로 옮긴 뒤 그가 들고 나온 이슈가 바로 사립유치원 문제다. 그도 밝혔듯이 ‘정치하는 엄마들’ 같은 시민단체들이 꾸준히 제기한 이슈였지만 정작 정치인들은 목소리를 내주지 않았다. 정치인들에게 사립학교 문제는 건드리기 어려운 이슈다. 사학 세력들은 “당선시킬 순 없어도 낙선시킬 수는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많다.
사립유치원 문제를 이슈화한 것에 대해 박용진은 “선무당이 사람 잡고, 대타가 홈런 친 것”이라고 표현한다. 어떤 이들은 단순히 ‘똘끼’ 덕분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용기였음에는 분명하다. 덕분에 그는 당의 ‘미운 오리새끼’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로 떠올랐다.
현재는 사립유치원 문제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는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소명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삼성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전자가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고 생각하기에 이 엄청난 기업이 잘 되기를 바라서 문제를 바로잡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3월부터 전국을 돌며 재벌개혁 강연을 하고 있다. 100회가 목표인데, 지금까지 40여 차례 진행했고 3000명이 넘는 시민을 만났다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벌개혁에 사람들이 관심이 없을 것 같나? 그런데 한 시간 반 강연이 끝나면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나’라며 눈이 동그랗게 된다. 저 광 팔러 다니는 거 아니다. 박용진 도와줄 의병 모으는 거다. 어휴,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겠나. 찾아줄 때 잘해야지.”
종교가 가톨릭인 그의 세례명은 베드로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를 시켜주겠다고 하셨듯 나도 그런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최종 목표는 여느 정치인이라도 한 번쯤 꿈꿨을 ‘대통령’이라고 말한다. 지금 그의 당면 과제는 “민주당이라는 거함을 내 작은 노라도 저어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그의 노질은 조금의 성과도 냈다. 사립유치원 문제 제기를 계기로 청와대와 정부에 끌려가던 국회와 정당이 모처럼 이슈의 중심에 섰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는 <과감한 전환> 추천사에서 박용진에 대해 이렇게 썼다. “박토에서 시작된 진보 정당 창당 과정은 외로움과의 싸움이었지만, 박용진은 항상 희망과 미래를 말했다.” 돈도 빽도 없이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할 때도 그랬지만, 그는 어쨌든 뭐든 ‘즐겁게 안고 가겠다’는 말을 잊지 않는 사람이다.
이젠 퇴임한 김동연 전 기재부장관은 우리나라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신성장으로 가야하고, “혁신성장은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해하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꾸준히 경제 체질을 바꾸고 구조개혁해야 한다”며 경제체질을 바꾸기 위한 노동개혁을 주장하고,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궁극적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우리나라의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이 김동연장관의 발언과 같이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며 노동시장의 유연화일까?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면 경제가 성장할까?
노동시장 유연화는 기업(고용주)이 필요한 최소 수준의 노동력만큼을 고용하고 경기변동에 따라 임시적·단기적 노동력을 탄력적으로 활용하는 유연화 전략으로 고용형태의 유연화, 노동의 외주화, 근무형태의 유연화(탄력근로확대)로 나타난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정책을 한마디로 말하면 기업의 인건비부담 감소정책이다.
1.노동개혁이 필요한가?
노동개혁이 필요한 이유로는 우리나라산업의 국제경쟁력이 낮아져서 생산수준이 낮아지고, 생산수준이 낮아졌기 때문에 고용도 낮아졌다. 기업의 인건비부담을 낮추어줌으로서 국제경쟁력을 상승시켜 산업의 생산을 증가시키고 고용도 증가시킬 수가 있다. 그래서 노동개혁을 해서 기업의 인건비부담을 낮추어 줘야한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산업의 생산수준이 낮고 고용수준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산업의 국제경쟁력이 낮기 때문에 생산수준이 낮고 고용수준이 낮다고 만은 볼 수 없다. 이유는 우리나라산업의 국제경쟁력이 낮다면 무역적자가 발생하여야 하는데 2018년 10월 현재의 무역수지는 흑자이기 때문이다.
무역흑자가 발생하는데도 불구하고 산업의 생산이 낮아지고 고용이 감소한다면 이는 우리나라산업의 국제경쟁력이 낮아지기 때문이 아니고 다른 이유가 있다.
산업생산이 낮아지는 이유로는 국제경쟁력의 악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소득분배가 잘못되어 가계의 소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에 발생할 수도 있고, 국내산업의 자원배분시스템이 잘못되어 고용을 적게 하는 산업의 생산은 증가하지만 고용을 많이 하는 산업의 생산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경우에도 발생할 수가 있다.
생산가액은 판매됨으로서 확정되고, 소비는 구매됨으로 시작되며, 국민경제에서의 소비는 구매를 말한다. 그러므로 생산과 소비는 같다. 생산은 노동과 자본의 결합으로 기업에서 이루어지고, 노동으로 분배되는 소득(생산)이 임금이고, 기업으로 배분되는 소득이 영업이익이다.
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소비도 같이 증가해야 하고,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생산만큼 소비도 같이 증가해야 한다.
생산의 증가는 1차적으로 기업의 몫이고, 생산을 증가시키는 방법은 자원배분(생산요소의 가격결정과 조세와 예산지출)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소비의 주체는 가계이고, 소비는 자원배분(생산요소의 가격결정과 조세와 예산지출)에 의해서 결정되고, 그 중에서 임금수준의 결정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소비도 같이 증가시켜야 하고, 소비의 증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임금이다. 임금수준을 낮추는 방식으로는 경제를 성장시킬 수가 없고, 고용도 생산도 증가시킬 수가 없다.
노동개혁으로 우리나라의 성장률을 높이거나 고용을 확대하거나 생산을 증가시킬 수가 없고, 더 나아가서 김동연장관의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방향 자체가 틀렸다.
2.소비의 감소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
소비의 주체는 가계이다. 소비가 감소하는 이유는 가계의 소득이 감소하고 소득분배가 악화하기 때문이고, 가계의 소득이 감소하는 이유는 생산된 소득을 분배함에 있어서 기업으로의 배분이 증가하고, 가계로의 배분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기업소득이 영업이익이고, 가계소득의 대부분이 노동소득인 임금이다.
기업으로의 소득배분이 증가하면 생산(공급)이 증가하고, 가계로의 소득배분이 감소하면 소비(유효수요)가 감소한다. 공급이 증가하고 수요가 감소하면 재고가 증가한다.
재고가 증가하면 가격이 하락하고, 가격이 하락하면 한계기업이 생산에서 퇴출되면서 산업의 가격경쟁력이 상승하고, 가격경쟁력이 상승하면 무역흑자가 발생한다. 무역흑자가 증가하면 자본수지의 변동 등 다른 변수가 없다면 환율이 하락하고, 환율이 하락하면 수입이 증가하고 수출이 감소하여 무역흑자가 감소하면서 무역이 균형을 이룬다. 무역이 균형을 이루는 과정에서 수입증가에 의한 내수산업의 생산감소가 뒤따른다.
한계기업의 생산퇴출과 내수산업의 생산감소에 의한 생산감소가 1회의 무역흑자에 의한 생산증가보다 훨씬 더 많다. 단 환율하락에 의한 국내소득의 구매력상승효과는 있다.
한계기업은 고용계수가 대단히 높다. 한계기업의 생산감소는 곧 바로 고용의 위기로 고용대란으로 직결된다.
3.산업구조의 문제
생산요소의 가격변화가 산업구조를 변화시키고,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생산요소의 가격을 변화시킨다.
장치산업의 생산이 확대되고 노동기술산업의 생산이 감소하면 고용이 감소하고, 고용이 감소하면서 노동소득이 감소하고, 노동소득이 감소하여 가계소득이 감소하고, 가계소득이 감소하면 소비가 감소하며, 소비감소의 승수만큼 생산이 감소한다.
장치산업의 생산 확대는 자본비용이 감소하기 때문이며, 자본우대정책 때문이다. 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우대정책을 폐지해야 하고, 자본비용을 증가시킬 필요가 있다.
금융산업은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금융에 대한 규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산업용 전기료를 낮추어주는 정책도 장치산업의 생산을 확대한다. 산업용전기료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은 고용계수가 낮고 중소기업은 고용계수가 낮다. 대기업의 생산이 증가하면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의 생산이 낮아지면서 전체 고용이 감소하고 노동소득도 감소한다. 노동소득 감소액의 소비승수만큼 생산이 감소한다.
4.노동시장의 유연화정책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한마디로 말하면 기업의 인건비감소정책이다. 인건비가 감소하는 경우에 국민소득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검토해보면 노동시장유연화정책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수가 있다.
1)노동시장의 유연화에 의해서 국내기업의 인건비가 10조원 감소한다면 기업의 이윤은 1차적으로 10조원 증가하고, 이윤율이 10%라면 100조원까지 생산증가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생산의 증가는 소비의 증가와 같으므로 생산증가는 국내소비의 증가에 더하여 무역흑자의 증가와 같다고 추론해볼 수 있다.
인건비가 10조원 감소할 때 수출이 얼마나 증가할지는 현재로서는 계산할 수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국내 생산의 감소 33.33조원과 비슷할 것이라 추측해보지만 별로 의미가 없다. 이유는 무역이 균형을 이루면 수입증가와 상쇄되기 때문이다.
자본수지의 변동없이 수출이 증가하고 무역흑자가 발생하면 환율이 하락하면서 수입이 증가하고 수출이 감소하면서 무역이 균형을 이루고, 수입증가에 의한 내수산업의 생산감소도 수출증가에 의한 생산증가만큼 발생한다. 단 1회의 무역흑자에 의한 생산(소득)증가와 환율하락에 의한 국내소득의 구매력상승효과가 있다.
인건비 10조원 감소에 의한 소득증가효과는 1회의 무역흑자에 의한 생산증가효과와 환율하락에 의한 구매력증가효과 밖에는 없고, 소득감소효과는 인건비감소액의 3.3배(소비승수)인 33.33조원으로 계산할 수 있다.
수출산업의 고용계수는 매우 낮고, 내수산업의 고용계수는 매우 높다. 수출산업의 생산증가에 의한 노동소득의 증가보다 내수산업의 생산감소에 의한 노동소득의 감소가 훨씬 더 많다. 수출산업의 노동소득증가에서 내수산업의 노동소득감소의 차액의 소비승수(약3.3)만큼 국내생산이 더 감소할 것이라고 추론해본다.
소비감소에 의한 국내생산의 감소를 부채(재정적자와 기업 및 가계부채)를 증가시켜 완화시킨다고 해도 이제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한다.
김동연장관의 노동시장의 유연화정책이 시행되면 노동시장의 붕괴로, 산업의 붕괴로, 우리나라 경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 예측해본다.
미국은 중국과 그리고 전세계와 무역전면전을 시작할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종잡을 수 없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한 사람, 관세에만 집착하는 관세맨(Tariff Man)은 무식하고, 변덕스러운 데다가 망상에 젖어있다.
왜 이 모든 것을 한 사람 때문이라고 하는지 살펴보자. 2016년 미국대선과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이 , 이제 대중이 세계화에 격렬히 반발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떠들썩했던 것에 비해 지난 2년여 간의 반발은 규모도 작고 피상적 이었다.
도날드 트럼프의 관세정책과 국제협정 탈퇴위협을 지지하는 두터운 지지층은 대체 어디 있나? 큰 기업들은 무역전쟁 전망만 나와도 질색한다. 무역전쟁 가능성이 높아질 때마다 주가는 곤두박질친다. 트럼프 방식의 무역보호주의는 혜택층인 노동계조차 결집 시키지 못했다.
그 와중에 해외무역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의 비율은 사상 최고치에 근접하고 있다. 계속 무역을 비판하는 자들은 확고한 정책신념보다는 트럼프에 대한 충성심으로 변덕스런 편견을 고수하는 듯하다. 실제로 2016년 대선기간, 자칭 공화당인 트럼프 지지파는 무역협정에 찬성했다가 반대했다가, 트럼프가 무역협상을 하는 듯 하자 다시 찬성하며 갈팡질팡했다. (사실 미국은 언제나 동아시아 구가들과 무역전쟁 중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보호무역주의를 옹호하는 강력한 지지층도 없는데 우리는 왜 무역전쟁 직전까지 치달은 것인가? 한마디로 미국의 무역법 탓이다.
과거 미국의회는 관세법안에 특정 이익집단을 위한 혜택을 가득 집어넣었고, 이는 미국의 경제와 외교 모두에 파괴적 영향을 끼쳤다. 이에 1930년대 루즈벨트 대통령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에 이른다. 다른 국가와의 무역협상은 행정부가 담당하고, 그 결과에 대해 의회가 투표로 가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이후 세계무역기구WTO를 탄생시키며 글로벌 협상의 본보기가 되었다.
미국의 무역정책 입안자들은 이윽고 위기 시에는 이러한 제도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유사시 외부의 압박을 완화할 방도가 필요했고, 무역법을 통해 특정 상황에서 새로운 입법절차 없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한다. 여기서 특정상황이란 주로 국가안보를 보호하거나,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항하거나, 급격한 해외경쟁에 직면한 산업에 조정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 등을 말한다.
다시 말해 미국의 무역법은 부패하고 무책임한 의회의 해악을 억제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무역에 관한 상당한 재량권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지난80여 년간 문제없이 잘 운영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통령이 부패하고 무책임한 경우는 생각을 못했다. 현재 무역전쟁을 일으키려고 안달이 난 것은 트럼프 하나인 듯 하지만, 그가 무역에 대해 사실상 독점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트럼프는 이 권한을 가지고 뭘 하려는 걸까? 협상을 시도하지만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무역시장에서 그는 그저 대책없는 반항아다.
그는 스스로를 관세맨(Tariff Man)이라고 선언하면서도 관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관세는 외국인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아니다. 관세는 미국의소비자에게부과되는세금이다.
거래를 할 때 트럼프는 본질이 아니라 그저 “승리”를 선포할 수 있는 지에만 신경을 쓰는 듯 하다. 그는NAFTA를 대신할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 출범을 주장해왔으나, 실제 들여다 보면 기존의 NAFTA를 아주 조금 수정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그간 수많은 영역에서 드러난 그의 국제외교적 무능력이 무역협상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주에는 중국과 광범위한 무역합의를 도출했다고 밝혔지만, 곧이어J.P. Morgan은 고객보고서를 통해 트럼프의 주장은 “완전히 날조되었거나 심각하게 과장된 것”이라고 평했다.
금주 초 투자자들의 깨달음과 함께 주가는 크게 하락했다. 앞서 말했듯, 기업은 진심으로 무역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한가지 분명히 해두자. 중국은 세계경제의 훌륭한 참여자는 확실히 아니다. 특히 지적재산권과 관련하여 부정행위를 일삼고 있으며, 중국기업들은 기술을 빼내어 간다. 그러므로 무역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강경해질 필요가 있다.
다만 이는 중국의 부정행위로 고통받는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여 실행되어야 하며,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무역정책의 기본도 모르고, 공격적으로 모두를 들쑤시며 (캐나다산 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해 국가안보 를보호한다? 진심인가?), 미팅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차 정직하게 말할 수 없는 자와 누가 한 배를 타겠는가.
불행하게도 그런 자가 지금 미국의 수장이고, 그가 자제하도록 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따라서 세계무역의 미래는 도날드 트럼프의 의식흐름에 달려있는 셈이니 참으로 불편한 노릇이다.
편집자 주: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국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트럼프 미 대통령은 상황의 반전이라는 전개보다는 현상이라는 봉합에 중점을 두고 있는 듯 하다. 이에 대하여 영국의 정치분석가인 Tom Fowdy는 CGTN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서 트럼프의 아젠다 리스트에 우선 순위가 북한에서 중국과 중동으로 확실하게 이동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동시에 남북한 당국이 합심하여 미국의 의도와 별개로 민족사적 관점에서 대북제재를 뚫고 한반도의 상황을 주도해 가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최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핵 협상과 관련된 진행 상황을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트위터를 통해 게시했다.
“서두를 필요 없다,” 혹은 “잘 되어가고 있다”는 말들과 함께 김정은 위원장이 옳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치면서, 북한 문제에 대하여 최근 몇 달간 진척이 없음을 비판하는 미국 내 여론을 일축했다.
그가 언급한 말들을 보면, 작년까지만 해도 트럼프 행정부가 평양의 문제에 대해 취했던 조급한 접근 방식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시 워싱턴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서지 않는다면 선제적 군사행동을 취하겠다는 협박까지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거시적인 정치적 맥락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일련의 언급들은 트럼프의 대외정책 우선순위가 변화되었음을 점점 더 확실하게 알리고 있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서 설정했던 가장 중요한 목표들은 바뀌거나 버려지지 않았겠지만,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더 큰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린 대중, 대이란 이슈에 목을 걸고 있는 상태다.
결과적으로, 제재만 유지한다면 평양에 대해 한 수 앞서 가고 있는 것이라는 가정 하에, 트럼프는 김정은이 종국에는 미국과 거래를 성사시키려 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판단으로 미 대통령은 행정부 내 매파의 영향력을 무시하고 북한과의 협상에서 기꺼이 시간적 여유를 가지려는 것으로 보인다.
2017년 트럼프 당선자로서 대통령 집무실을 넘겨 받을 때, 그는 북한문제를 대외정책 이슈에 있어서 최우선 순위로 설정하기로 했다. 그가 스스로 정한 임무란 무엇인가? 그건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제조를 멈추게 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라는 트윗을 남겼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급격히 확대되어, 워싱턴 내 기류가 바뀐 것을 인식한 평양 측에서 핵 능력을 최대한 빠르게 발전시키는 최고점의 상황에 이르게 하였다. 결국 모든 일은 트럼프가 스스로 언급했던, 북한을 “화염과 격노”로 “파괴”하겠다는 위협으로 인해 현재의 지경(북한의 ICBM 성공)에 이르렀던 것이며, 이는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바이기도 하다. 하지만, 북한 핵문제는 처음부터 트럼프의 가장 큰 목표가 아니었다. 대신 중국이라는 더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다.
2018년이 되자, 상황은 악화됐던 것만큼이나 급하게 변했다. 전쟁 위협과 끝없이 진행되었던 미사일 실험은 서울의 중재로 이루어진 워싱턴과 평양 양측의 대화로 인해 중지된 상태이다. 두 지도자들이 싱가포르에서 만났을 때, 트럼프는 “핵 위협은 끝났다”는 말로 서슴없이 승리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토록 빠르게 북핵 문제가 봉합된 만큼, 다른 문제가 부상했다. 그 문제는 다름 아닌 중국과 무역전쟁이었다. 4월이 되기가 무섭게 트럼프는 북핵 위기가 끝났음을 직감했고, 이제 더 어렵고 정치적 의미가 큰 안건을 손볼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실제로 2017년 한 해 동안, 트럼프는 북한 문제를 가장 우선시 했고, 그렇게 함으로서 베이징의 성실한 협조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는 트럼프가 북한 공격이라는 적극적인 전술을 곧바로 실행에 옮겼더라면 불가능 했을지 모를, 서로간 선의에 기반한 협조였다. 그리곤 북한이 대화의 장에 들어서고 있음이 명확해지자, 우선 순위는 자동적으로 즉시 바뀌었다. 트럼프가 중국에 대해 관세를 곧바로 꺼내든 것이다.
그 이후로, 트럼프의 정책 리스트에는 중국에 대항하는 요소들이 급부상했고 평양은 이제 그 중요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트럼프의 트윗 협박은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적 군사행동이 아닌 중국과의 관세 확대와 전면으로 확장된 경제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거의 매달, 트럼프 행정부는 아프리카에서 이루어지는 일대일로 정책과 대만 문제를 언급하면서 Huawei에 대한 공격을 확대하고 있으며, 대중 강경책은 다양한 형태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한편, 북한 이슈는 멈춰서 버렸다. 미국이 협상의 수단으로 평양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진척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태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실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수많은 일들을 거래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트럼프는 2017년에 적용된 경제제재가 김정은을 결국 무릎 꿇게 만들 우월한 영향력의 협상 수단이라고 보고 있다. 물론, 북한이 일방적으로 약자의 위치에만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전제는 잘못 되었다.
결국 트럼프는 이러한 판단 때문에 대외정책 분석가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비판들이 그에게 큰 영향을 준 것 같진 않다. 미국 국내를 향해 그는 아직 자신이 이겼다고 주장하고 있고, 궁극적으로는 그 점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트럼프가 정해두었던 기준선은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핵 능력을 김정은이 갖추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었고, 기준선은 이미 충족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을 주창하는 국수주의적 기준과 “핵의 비확산”이라는 두 개의 국제적 의제를 분리시킬 수 있었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미국우선”의 이익 만을 중요시하고, 후자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비록 북한과 협상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으며 내년 초에 있을 정상회담이 교착상태의 돌파구를 마련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음에도 트럼프는 급할 것이 없다. 그는 오히려 편한 상태에 있다. 더 큰 우선 과제라는 승부수들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문제의 중요성을 격하시키고 매파 각료들을 멀리할 수 있는 정치적 여유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새해 첫날입니다. 동트기 전, 고요한 새벽입니다. 2019년을 선생님과의 서신으로 출발합니다. 두근두근, 한 해를 여는 신고식입니다. 심호흡을 깊이 하고 반듯하게 자리에 앉았습니다. 처음처럼, 새 마음을 새깁니다. 지금 이 순간의 초심을 6개월 내내 지속하고 싶습니다.
지난 연말을 돌아봅니다. 학술행사 참여 차 베이징에 다녀왔습니다. 마침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춤한 때였습니다. 천안문 광장의 국가박물관에서는 ‘위대한 변혁’을 주제로 한 전시가 한창이었습니다. 한참을 줄을 서고 기다린 끝에야 겨우 관람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실망스러웠습니다. 고속철도, 고속도로, 고속인터넷, 세계 최장의 교각과 달 탐사 등 시종 물질개벽의 성취를 일방으로 선전합니다. 경제강국, 기술강국, 우주강국, 군사강국만 도드라지게 꾸며두었습니다.
물론 지난 40년 중국이 이룩한 상전벽해는 괄목할 것입니다. 그 성취를 더욱 실감나게 해준 것은 공교롭게도 기내에서 시청한 영화 한 편이었습니다. 제목이 유별납니다. <Crazy Rich Asians>. 아시아인이라고 했지만 실은 중국인 이야기입니다. 더 정확히는 ‘글로벌 중국인’이라 해야겠군요. 도입부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주인공 커플이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나눈 대화가 지인의 SNS를 통해 싱가포르에 계시는 부모님에게도 곧장 알려집니다. 뉴욕, 상하이, 홍콩, 타이베이, 싱가포르, 런던 등 글로벌 도시들을 가로지르며 실시간 이어지는 연결망이 대단합니다. 200년 오래된 화교 네트워크와 20년 새로운 온라인 네트워크가 결합된 21세기의 디지털-화교망을 실감나게 연출합니다. 누천년의 아날로그 공동체와 새천년의 디지털 커뮤니티가 합류한 모양새입니다. 신대륙과 구대륙을 아우르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횡단하는 글로벌 차이나의 현재입니다.
‘Crazy Rich’, 영화 제목이 상기하는 것처럼 중국은 이미 물질개벽의 수준에서 미국과 유럽에 육박했습니다. 구미를 능가하는 것 또한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격차는 더더욱 벌어질 것입니다. 2049년, 중화인민공화국 일백주년에는 명실상부 G1이 될 공산이 큽니다. 새로운 현상만도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오래된 지위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세계사는 아편전쟁 이전으로 반전하고 있습니다. 저 나라의 지도층이 부쩍 ‘책임대국’을 강조하는 것 또한 ‘익숙한 미래’를 예비하고 대비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 준비의 일환으로 사상계에서는 ‘천하’나 ‘대동’이라는 말도 자주 쓰고 있습니다. 이번 베이징대학의 한 연구소 개소식 또한 ‘천하’를 핵심 키워드로 삼고 있었습니다. 천하질서가 무너졌다고 호들갑이었던 것이 불과 120년 전입니다. 동아시아인의 장구한 역사 감각으로 미루어 보면 백년의 대란은 잠시, 일시에 그칩니다. 일치일란(一治一亂)의 한 주기, 변주일 뿐입니다. 천하는 붕괴되기는커녕 더욱 확장되고 심화된 형태로 다시 굴기하고 있습니다. 이번 세기에는 동아시아로만 한정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따라 아랍으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아메리카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천하위공”(天下爲公)이라는 오래된 사자성어가 “Global First”라는 신조어로 번안되고 있음을 곳곳에서 목도합니다. 보호주의로 퇴각하고 국가주의로 퇴행하고 있는 구미에 맞선 대안적 지구사상으로 매력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신천하, ‘다시 천하’의 기세가 하늘을 찌릅니다.
동아시아인으로서 천하의 귀환을 마다할 것 없다 여깁니다. 40년 항산을 갖추었으니, 다음 40년은 항심을 다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천하론을 추수하는 것만으로는 썩 석연치 않습니다. 지난 백년을 지나 ‘다시 천년’으로 복귀하는 것 또한 영 마뜩치 않습니다. 다행히도 천하대란의 벽두, 우리들의 선조들이 자생적으로 토해낸 모던한 개념이 솟구쳤습니다. 바로 ‘개벽’입니다. 저들에게 ‘천하’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개벽’이 있습니다. 저들이 끝내 ‘천하’를 고수하고 사수할 때, 우리는 ‘개벽’을 창안하고 창조했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선생님의 책 <한국 근대의 탄생>을 다시 펼쳐 든 까닭입니다. 저에게는 단연 2018년 ‘올해의 책’으로 꼽는 수작입니다. 완미해서가 아닙니다. ‘다시 개벽’의 물꼬를 틔우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21세기 다른 백년, 다른 나라, 다른 문명의 단서가 숱하게 묻혀있는 보물창고 같은 저서입니다. 부디 더욱 널리 읽혀지기를 바랍니다.
2. 다시 개벽!
아시다시피 저는 유라시아를 천일 간 유랑했습니다. 근대의 고약한 시공간 개념을 철폐하고 싶었습니다. 공간적으로 서구와 비서구를 무 자르듯 나누고, 시간적으로 전통과 근대에 만리장성을 쌓아둔 딱딱하고 단단한 고정관념을 부셔버리고 싶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가 다시 합류하고 고전과 미래가 소통하는 21세기의 포스트모던한 진풍경을 두 눈에 담고 두 발로 누비고 싶었습니다. 귀로에 접어들며 뜻밖의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서구적 근대가 산출한 겹겹의 분단체제의 심층에 성(聖)과 속(俗)의 분단체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상과 지상의 분단체제라고도 하겠습니다. 자연과 자유의 분화라고도 하겠습니다. 속이 성을 압도했습니다. 지상의 논리가 천상의 도리를 압살했습니다. 자유가 자연에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그 근대화=세속화의 교조주의가 곳곳에서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성과 속이 다시 합류하고 있는 모습을 도처에서 목격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성속합작’이라고 말을 즐겨 쓰게 된 연유입니다. 탈서구적 세계화, 지구적 근대의 정수였습니다. 허나 탈세속화의 끝이 비단 종교의 귀환이 아니었음이 백미입니다. 기성종교가 축적한 문명적 자산이 대안적인 ‘라이프 스타일’로 업데이트되고 업그레이드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영성화’라고 표현합니다. 특정계급만 향유하던 일상을 한층 성스럽게 영위하는 삶의 기술이 대중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삶의 양식의 추구가 ‘새 정치’도 추동하고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2.0’, 권리(權利)의 민주화에서 천리(天理)의 민주화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전혀 낯선 모습만은 아니었습니다. 거듭 거푸 동학운동을 떠올렸습니다. 사람을 하늘로 모시고 만물을 한울로 섬기는 동학이 목하 지구사의 대세, 메가트렌드와 합치한다고 여겼습니다. 귀국하면 신동학 운동에 투신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 자신을 ‘개벽파’로 자임하게 된 것입니다. 동무와 동지가 있을까, 동덕(同德)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눈을 찔러온 것이 선생님이 쓰신 일련의 논문들입니다. 이틀을 몰아서 ‘조성환 읽기’에 몰두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찾아뵈어야 할 분으로 첫 손에 꼽았습니다. 처음 뵌 것이 작년 봄, 4월입니다. 익산의 원광대학교 앞, 아담한 카페였습니다. 그 후로 학교 안과 밖에서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넌지시 서신 형태의 연재를 제안한 것이 늦가을 무렵이었습니다. 기꺼이, 망설임 없이 수락해 주셨죠. 신이 났습니다. 흥에 겨웠습니다. 덕분에 신년 맞이가 더욱 신명이 납니다.
<개벽파 선언!>. 철학자와 사학자가 나누는 이 대화에 임하는 저의 기대부터 밝혀두려 합니다. 사학과 철학의 앙상블, 사상사의 졸가리를 새로이 세우고 싶습니다. 제 선생님과 선배님들이 서술한 한국근현대사는 한마디로 ‘개화사’입니다. 문명개화, 서구적 근대로 향해 진보하는 150년사를 뼈대로 삼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에 기초하여 1,500년 과거사도 기술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좌/우와 진보/보수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쪽은 식민지 근대화와 개발독재의 성취를 높이 치고, 다른 쪽은 항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높게 삽니다. 그러나 심급에서 ‘탈아입구’의 대서사는 공유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지구사의 대반전을 맞춤하여 ‘개벽사’(開闢史)를 새로이 쓰고 싶습니다. 1860년 동학 창도 이래 150년사를 통으로 갈아엎고 싶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턱없이 벅찹니다. 공부도 아직 미진합니다. 밑천이 모자란 정도가 아닙니다.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그래서 먼저 개벽사를 정리하고 계신 선생님의 도움을 긴히 빌고자 합니다.
개벽사의 서술은 개벽학의 수립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현재의 대학은 개화학교입니다. 학과체제부터 커리큘럼까지 온통 개화독재입니다. 절절하게, 열렬하게 개벽대학을 염원합니다. 그리고 새 학파의 등장은 새 정파 탄생의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개벽파를 규합하고 개벽당의 출범까지 내다봅니다. 물론 서두를 이유는 조금도 없습니다. 철학이 부재한 새 정당과 새 정치의 좌초를 이미 숱하게 목도한 터입니다. 정당보다 시급한 것이 학당입니다. 공교육 학교와 사교육 학원 사이, 학당의 새 길을 모색합니다. 공/사로 나뉘되 학교와 학원 또한 일백년 개화의 관성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응당 개벽학당의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할 것입니다. 개벽사의 서술, 개벽학의 수립, 개벽파의 규합, 개벽당의 출범, 그리하여 끝내 개벽국가의 탄생을 목도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먼저 마당을 깔고 피리를 불면 재야의 인재와 강호의 고수들이 속속 모여들기를 희구합니다. 무엇보다 다른 백년의 주인공, 새 천년에 태어난 1020세대의 호응을 깊이 갈망합니다.
3. 디톡스
바야흐로 2019년입니다. 3.1운동 100주년입니다. 3.1운동부터가 ‘다시 개벽’운동이었습니다. 19세말 천하대란 속에 좌절한 동학혁명이 3.1운동의 기개로 20세기를 열어젖혔던 것입니다. 1919년에서 다시 백 년 째, ‘또 다시 개벽’, 개벽 2.0을 궁리합니다.
옥스퍼드 사전이 2018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것이 ‘Toxic’이었습니다. 깊이 공감합니다. 과연 유럽과 아시아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극서와 극동이 하나의 지구를 공유합니다. 폭염과 폭한이 유난스럽습니다. 미세먼지는 나날이 극성입니다. 지난 백년, 개화득세의 후과입니다. 적폐 중의 적폐, 19세기말 문명개화 이래 누적된 ‘개화 중독증’을 서둘러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개벽파 선언>이 그 해독제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의 디톡스 운동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중독에서 해독으로, 포스트모던, 포스트 웨스트, 포스트 트루스 시대정신과도 부합합니다.
미리 오해는 피하고 싶습니다. 개벽이 개화를 능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개화와 개벽의 대합장/대합창을 도모합니다. 서방학과 동방학을 회통한 신동학을 추구합니다. 천주와 천하와 천도가 융합하는 다시 개벽을 소망합니다. 해원상생(解寃相生), 일방의 승리가 아니라 쌍방의 조화를 탐색합니다. 지난 연말, 한해를 마감하는 술자리에서 애용했던 건배사가 하나 있습니다.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 남긴 방명록 문구입니다. <한국 근대의 탄생>의 부제 ‘개화에서 개벽으로’야말로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에 딱 어울리는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맹목적 척사로 치달았던 북조선과 맹종적 개화로 내달렸던 남한이 다시 어울어지는 최선의 방편 또한 양쪽에서 공히 잊혀졌던 개벽파를 더불어 재건해가는 데 있다고 여깁니다. 2019년을 개벽파 재건의 원년으로 삼읍시다.
첫 글은 이쯤에서 닫습니다. 책에서 제기한 도전적인 내용들은 차근차근 여쭙겠습니다. 화면에서 눈을 거두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새 해가 떠오릅니다. 개벽의 새벽이 밝아옵니다.
필자는 지난 번 칼럼에서 중국공산당 19차 당 대회와 관련한 국내 언론의 보도가 시진핑 일인의 권력 강화에만 초점을 맞춘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였다. 당시 국내외 언론들은 당 대회가 ‘시진핑 사상’을 강조하고 이후 그것이 헌법에 정식 수록되었음을 근거로 시진핑이 마치 마오쩌동과 같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까지 해석하였다. 이 같은 해석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이번 호에선 ‘시진핑 사상’에 대해서 다루어보고자 한다.
먼저 논란이 된 소위 ‘시진핑 사상’의 실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국내외 언론에서 ‘시진핑 사상’이라고 약칭해서 부르는 이 이론의 정확한 명칭은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사상‘이다. 그런데 진작 이 같은 ‘시진핑 사상’ 이란 것을 뜯어보면, 이론 명칭에 ‘시진핑’ 이란 개인 이름이 들어간 것 외에는 별반 개인독재의 내용이나 요소들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예컨대 그 같은 사상이 탄생하게 된 동기에 있어서 보자면, “신시대에 어떠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견지하고 발전시킬 것인가, 중국특색 사회주의라는 이 중대한 시대적 과제를 어떻게 견지하고 발전시킬 것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둘러싸고” 이 사상이 탄생하였다고 하였다.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의 18기 중앙위원회 보고에 관한 결의>, 이하 <결의>로 약칭)
또 그것을 탄생시킨 주체와 관련해서도 분명히 ‘우리당’ 이라고 하였는데, 즉 시진핑 개인이 창안한 것이 아니라, “당과 인민의 실천 경험과 집단적 지혜의 결정판으로써” 생겨났다고 하였다. (위 <결의>)
우리는 여기서 ‘시진핑 사상’이 새로 탄생한 사상이나 이론 앞에 당시 당지도자 명칭을 붙여준다는 중국공산당의 관행이 적용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시진핑 사상’은 그에 앞선 사상 이론과의 일정한 연관 선상에서 그것을 새롭게 계승 발전한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음도 발견할 수 있다. 즉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사상은 맑스레닌주의, 마오쩌동사상, 등소평이론, ‘3개 대표’ 중요사상, 과학적 발전관의 계승이자 발전이며, 맑스주의 중국화의 최신 성과” 라는 것이다. (위 <결의>) 이것은 시진핑이란 한 천재에 의해 갑자기 하늘로부터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난 이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단지 사상이론 앞에 개인의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 외에는, 우리가 소위 ‘시진핑 사상’으로부터 어떤 개인숭배의 요소를 발견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이 같은 사상이론이 나오게 되었는지 그 출현배경과 관련해서 중국공산당의 철학적 입장에 대한 이해가 일정 정도 필요하다. 필자의 관찰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은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대단히 중시하는 조직이다. 양자의 관계에 있어서 보자면,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적 관점에 입각하여 실천의 일차적 우위성을 인정한다. 즉 인식(이론)은 실천으로부터 나오며, 또 그 진리성 여부도 실천을 통해 최종 검증된다고 간주한다. 이와 동시에 이론의 능동성, 즉 실천을 지도하는 과학적 이론의 중요성 또한 인정한다. 이 때문에 인민대중과 당의 일정한 실천 활동 뒤에는 반드시 이론적 총괄이 뒤따라야 하며, 이 같은 이론은 다시 인민대중과 당의 정확한 실천을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개혁개방의 40년의 역사는 이렇듯 끊임없이 이론과 실천이 상호 작용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중국은 13억 인구를 대상으로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결합하는 거대한 실험을 수행하면서도,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는 달리 별반 큰 실수를 범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이끌어 올 수 있었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중국에서 대략 10년 주기로 매번 새 지도부가 들어설 때마다 왜 새로운 이론과 사상이 등장하는지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이 같은 중국공산당의 인식론에 입각한 것이며, 달리 보면 이는 그들의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형식상의 선전이나 개인의 우상화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각 지도자 이름과 관련된 사상과 이론을 보노라면 당시 중국이 부딪쳤던 핵심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예컨대 ‘등소평 이론’은 사회주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건설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학설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초기 개혁개방을 위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이후 장쩌민의 ‘3개 대표이론’은 개혁개방이 본격화한 상황에서 당 건설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이 담겨져 있다. 후진타오 시절의 ‘과학적 발전관’은 당시 20여년의 발전을 통해 초기 ‘선부론’ 전략과 양적위주 발전이 점차 한계에 부딪치게 된 상황에서, 어떻게 ‘균형발전’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져 있다. 따라서 진작 중요한 것은 사상이나 이론 앞에 붙는 개인의 명칭보다도, 바로 이 같은 특정 이론이나 사상이 태어나는 배경과 동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2기에 들어선 지금의 시진핑 지도부가 맞부딪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중국사회 ‘주요모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간 중국사회에는 과연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였나?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지난 세기 70년대 후반 개혁개방을 본격적으로 실시한 이래, 40년에 걸친 세월동안 거의 매년 9%이상의 성장을 하는 등 놀랄만한 경제 및 사회발전을 이룩하였다. 이에 따라서 인민대중의 욕구에도 변화가 생겼으며, 처음에는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주거할 데가 있는 생활(温饱)에 대한 바램으로부터, 점차 좀 더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생활로 변화 발전하게 되었다. 당 대회 보고서는 이 같은 시대 상황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중국특색의 사회주의가 신시대에 진입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주요모순은 이미 인민의 날로 성장하는 아름다운 생활(美好生活)에 대한 요구와, (이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주) 불균형과 불충분한 발전 간의 모순으로 변화되었다. 우리나라는 십 수억 명의 풍족하게 먹고 입는 문제를 안정적으로 해결하였으며, 전체적으로 볼 때 소강사회(小康社会)를 실현하였고, 머지않아 장차 전면적인 소강사회 건설을 이룰 것이다. 인민대중의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수요가 날로 광범위해지고 있으며, 물질문화 생활에 대해 더욱 높은 요구를 제기할 뿐만 아니라, 또한 민주·법치·공평·정의·안전·환경 등 측면에서의 요구가 날로 성장하고 있다. 동시에 우리나라 사회생산력 수준은 전체적으로 현저하게 제고되었으며, 사회생산능력이 많은 영역에서 세계 선두에 진입함으로써, 더욱 현저해진 문제는 발전이 불균형하고 불충분한 문제이다. 이는 이미 인민의 날로 성장하는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수요를 만족시키는 주요한 제약요소로 되고 있다.”(<19차 당 대회 보고>)
여기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란 명칭에서 언급되는 ‘신시대’ 개념에 대해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신시대’ 개념은 보통 ‘지구화시대’라는 국제적 개념을 지칭하거나, 인공지능 등 제4차 과학기술혁명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인류역사적 개념과는 달리, 단순히 중국사회의 내부의 변화를 설명하는 개념임에 유의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중국사회 ‘주요모순’ 변화의 배경이 된다. 또 이 같은 ‘신시대’는 몇몇 지도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중국 인민의 장기간의 노력과 투쟁을 통해 맞이한 것임이 강조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대회는 강조하길, 장기간의 노력을 경과하여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는 신시대에 진입하였다. 이는 우리나라의 발전에 관한 새로운 역사적 위치 규정이다.”라고 언명되고 있는 것이다. (위 <결의>)
그럼에도 한국 언론이 중국공산당의 당 대회를 보도하면서 일면에만 치우치고 그 전체적 메시지를 읽지 못하는 것은, 지난 번 지적했듯이 일차적으로는 공산주의국가는 독재국가이기에 그에 관한 보도는 특정 개인에의 권력집중에 맞춰져야 한다는 뿌리 깊은 선입관이 작용한다. 이와 함께 지적되어야 할 것은, 중국에서 ‘주요모순’ 개념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국내언론의 무감각이다.
중국공산당에 대해 어느 정도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주요모순’이란 개념이 중국공산당 내에서 아무렇게나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이해한다. 그것은 마오쩌동의 대표적인 철학저술인 <모순론>에서 매우 중시되는 개념인데, 거의 ‘한 시대’를 규정할 때나 그 개념을 사용하며 또 그 변화를 논한다. 지금 이 같은 ‘주요모순’이 다시 거론되는 것은 시대적인 변화가 발생했다는 뜻이며, 이 ‘신시대’에 대한 규정과 관련해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그간 대중들의 급격한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인한 인민 요구의 큰 변화가 그 주요한 내용을 이룬다. 이 때문에 과거와는 달리 단순한 경제성장이나 물질적 만족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및 정치민주화 그리고 생태환경에 대한 요구와 같은 ‘정신적 요구‘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인민이 주인인 사회주의체제는 분명 이 같은 대중의 요구를 일차적으로 만족시켜주어야만 하는데, 이 때문에 앞으로 정치적으로 본다면 민주주의가 더욱 강조될 수밖에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실제 시진핑 자신이 행하였던 19차 당 대회 보고의 주요 내용들은 대부분 그와 관련된 걸로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이번에 당규와 헌법 개정을 통해서 삼차 연임 제한을 철폐한 목적이 단순히 시진핑 일인권력의 강화를 위한 것이었다면, 이는 아마도 이 같은 시대적 흐름을 스스로 거스르는 것이 될 것이며, 당이 언급한 ‘주요모순’ 규정과도 충돌되는 결과를 빚게 된다.
필자가 지난여름 중국을 방문했을 때 그곳 벗들과 나눈 대화를 여기서 잠시 소개하자면, 그들 역시도 시진핑의 삼차 연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해석은 한국 사람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관건적 시기에 처한 지금의 중국으로서는 시진핑 개인의 삼차 연임 가능성은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2020년 전면적인 소강사회 실현, 2035년 기본적인 현대화 목표 달성, 2050년 현대화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목표를 지향하는 중국으로서는, 우선 지금부터 2030년까지의 기간을 무사히 넘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대내외적인 도전과 위험 요소도 훨씬 줄어들 것이며, 이에 따라 중국은 경제와 사회 전반에 있어 좀 더 안정적인 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의 대중압박이 날로 강화되고 이에 따라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시진핑과 같이 기층에서 단련되어 이미 그 지도력이 검증된 지도자의 존재는, 혹시 그로부터 초래될지도 모르는 ‘독재’의 위험성보다도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기를 무사히 통과하고 나면, 중국사회는 어차피 몇몇 정치지도자가 아닌 보다 안정적인 사회적 기반위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당사자들의 판단은 확실히 국외자의 시각과는 다름을 느낄 수 있다. 물론 8억이라는 세계에서 제일 큰 인터넷 인구를 갖고 있는 지금의 중국에서 과거와 같은 일인독재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들 생각의 기초에 깔려있다.
한국은 20세기 그 어느 때보다도 2018년에 더욱 중간국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16-2017년 겨울에 있었던 촛불시위를 통해 회복능력을 증명했던 민주주의 사회, 2018년에 보여준 평화, 비핵화 및 발전을 위한 장을 철저하게 추구하고자 했던 용기는 국제사회로부터 충분히 인정받을 만 합니다. 한국의 외교적 노력의 수준, 범위, 섬세함은 많은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놀라게 할 수도 있는데, 이는 한국인들이 지닌 결단력을 인정받게 된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2019년에는 한국으로부터 보다 많은 것을 기대되어야 할 것을 위한 토대가 이미 마련되었습니다.
위험성이 높은 만큼, 기대 또한 높습니다. 한국이 현재 펼치고 있는 진지한 게임은 심오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마치 체스 게임과 같고, 문재인 정부는 어쩌면 동시에 3가지 혹은 4가지의 복합 게임을 해야 합니다. 대체적으로 지난 시기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 정부들이 등한시했던 태도로 인해, 이들 모두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에 새로이 취임함에 따라 더욱 대응책 마련에 바빠지게 된 셈입니다. 2018년 한해가 마무리되고, 그동안 취했던 조치가 잠시 중단됨에 따라, 2019년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날지를 상상해 보는 것은 매우 유용합니다.
한국은 중간국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요?
남한과 북한 간의 관계 회복은 언제나 한국이 중간 국가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 필수 전제조건이었습니다. 우리는 남북간의 지속적인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했던 1998년부터 2008년까지의 故 김대중 및 노무현 정부로부터 그것을 목격했습니다. 특히 故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북한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국내 민주주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에 그런 방향으로 실현되었습니다. 故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은 최초로 권력 집단들의 평화적 변화 및 민주적 제도의 확립과 통합을 이끌었습니다. 한국의 새로운 민주적 정당성은 미국의 참여적 협조와 더불어 북한과의 관계를 맺는 것을 용이하게 했습니다. 한국에서 이뤄졌던 것들 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비핵화 및 평화 구축 합의는 때때로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이후 여러 해 동안 유효하게 이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다음 10년 동안 이명박 및 박근혜대통령이 행정부를 이끄는 동안 부패로 인해 정부의 국내 권력과 정당성이 저하되고, 북한을 대한 비현실적인 전략이 추진됨에 따라, 한국이 중간 국가로서의 성장은 지연되게 되었음을 목격했습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에서 다시 기승을 부렸던 자유를 제한하는 요소들은 통치방식(거버넌스)과 외교적 구조의 현대화를 지연시켰으며, 협력하는 남북 평화 구축이 가져올 전략 재설정에 저항했습니다. 그 중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성공적인 한국 복원을 위해서 필요한 2가지 핵심 요소인 국내 민주화 및 합리적인 북한과의 관계 맺기를 무시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단지 두 가지 사례에 주목하기 위해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정부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이데올로기적 프레임을 바탕으로 한 정당을 법적으로 금지하면서 한국을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통치했습니다. 그녀는 또한 현실가능성이 없고, 대중의 지지를 거의 얻지 못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북한 흡수통일정책을 옹호했습니다.
다행스럽게 2018년에 동북아시아와 미국 간에 가졌던 외교 행사들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엿보였던 한반도의 가능성을 떠올리는 방식으로 그런 상황 쪽으로 반전시켰습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진행되었던 각종 계획과 전략적 조정들은 이제 없어지고 수정되었습니다. 올해의 전개는 북한과 남한, 그리고 북한과 미국 간의 관계가 역사적 진보를 이뤄냈던 지난 경험을 토대로 성립되고 전진되어야만 합니다.
오늘날 미국이 취하고 있는 입장이 주된 장애물
1998-2002 당시와 현재의 주요 차이점은 바로 미국이 취하고 있는 입장입니다. 1990년대에 미국은 전쟁억제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북한의 핵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모색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1994년 북미간 핵동결협약의 결과를 이끌었으며, 이는 1997년 말에 한국에서 포용적 정책에 대한 생각을 지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오늘 시점에 다시 남한과 북한 모두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중국인들은 다시 한 번 그러한 과정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연출과 대외적 무력 위협에 대한 포기 의지에도 불구하고,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미국이 현재 사실상 어떤 거래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미국내 다른 인사들이 나서서 주요 의사결정자로 이끌기 보다는, 당사자인 한국이 이끌어야만 할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라는 이슈에 대해서 미국 내에는 이를 이끌 수 있는 인물이 없으므로, 반드시 한국이 대신해서 행동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이러한 상황은 예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함없이 미국 정부의 정책들은, 지난 행정부에서 새로운 행정부로 바뀌었을 때에도, 미국의 희망에 따라 한국의 국익을 희생시키라는 강한 압력을 통해서 오랫동안 남한에 가해져 왔습니다. 이는 한 세대를 넘어 그 어느 때보다도 미국이 약하고, 혼란스럽고, 정책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왜 미국이 2017년과 2018년에 남한과 북한 간의 관계가 급격히 발전하는 중심 속에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남북한에 대한 상기 전략의 유일한 장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도발적인 군사 훈련을 포기하고 정상급 외교를 받아들임으로써 15년간의 백악관 정책을 배제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예전 입장으로부터 멀리 벗어나려는 미국의 능력을 소진시켰다는 것이 점점 명백해지고 있습니다. 이전의 “전략적 인내” 사고 요소들은 그들 자신이 취해야 할 것에 대해 분명히 하도록 만들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 및 전개(발전)에 대한 장애물부터 지지자까지의 중심점을 어떻게 완수할 수 있었는지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어떠한 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입장이 바뀌지 않는다면, 내년 초에 두 번째 미국과 북한 정상 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낮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능력에 대해 검증 가능한 상한 및 하한선에 대한 상당 부분이 UN 제재로부터 완화되어야만 합니다. 이는 최소한 1994년 이래로 쭉 그래왔습니다. 비핵화는 북한과 미국관의 외교 관계가 바뀌는 경우에만 실현 가능할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들이 이뤄졌던 때에 주요 외교 및 경제 개방이 협상의 일부로서 등장했었고, 이는 다시금 기대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경제 및 외교 개방을 위해 핵 및 미사일 생산능력을 거래하는 것에 대해 심각해하고 있을지라도, 그는 이제는 미국이 상호 수락할 수 있는 거래를 다시 시작하는 데 심각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한국 내 일부 또한 동일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어떤 거래가 효과가 있을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좋은 제안들이 제시되었습니다. 이전 한국 통일부 이종석 및 정세현 장관, 그리고 이전에 핵 확산 방지에 대한 미 국무부 특별고문이었던 로버트 아인혼(Robert Einhorn)이 제시한 의견들은 가능하면서도 훌륭한 출발 원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전 한국 통일부 이종석 장관은 공정하든 공정하지 않든, 미국 정부는 북한이 먼저 제안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 제안은 비핵화에 대한 광범위하고 중대한 조치들을 포함해야만 합니다. 로버트 아인혼(Robert Einhorn)은 북한이 제시할 수 있는 적절한 제안은 핵분열성 물질들이 생산되는 모든 장소를 알리고, 개발을 중단하고, 그것들을 검사하도록 개방하는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정세현 전임 통일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가 나름대로의 구체적인 계획을 분명히 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들 중 누구도 구체적인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그러한 제안을 한다면, 있을법한 미국의 반발과는 관계없이 유엔이 제재를 완화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
이제 한국 정부는 2017년과 2018년에는 이룰 수 없었던 것을 해야만 합니다. 그것들에는 모든 측면에게 있어서 우호적인 시작점이 될 수 있는 분명한 거래를 제안하고, 주변국과 우호국 그리고 동맹국들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청하면서, 연계된 핵무기와 미사일 및 경제개발과 관련된 거래에 대한 확실한 진전을 돕는 데 있어서의 UN 개입의 요청 등이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러한 제안과 거래가 전적으로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세련된 방식으로 한국의 이해와 더불어 미국과 석연치 않은 동맹관계를 지닌 주변 국가들의 이익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전진해 가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미국이 이 거래를 지지하도록 이끌어야만 할 것입니다. 한국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외부적 도움(지도)를 필요로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논리 정연한 전략적 비전, 보다 일관된 정책 수립,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는 명확하고 지속적인 목소리를 지닐 때, 한국 정부가 안보 부분에서 의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좋은 소식은 지난 19개월간 해왔던 고된 일들이 여러 방면에서 그 결실을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 및 국제단체 뿐 만 아니라 여전히 불안정한 북한, 변덕스러운 미국, 그리고 경계하고 있는 아시아 근방국가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방향을 찾는 데 있어서의 복잡성과 요구조건들은 보다 강화된 역량과 집중적인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필히 담대해야 하지만,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새로운 유연성을 포함해서 지금까지의 운이 계속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대신에 미래에 대해 명확하게 길을 안내해주어야 하며, 격언에 있는 바와 같이 자신의 운은 자신 스스로 만들어나가야만 합니다.
영문 원본
Korean Peninsula progress will require Seoul to lead its alliance with Washington in 2019
Stephen Costello
South Korea acted more like a middle power in 2018 than at any time in a century. International recognition of its resilient democratic society, showcased through the “Candlelight” demonstrations in the Winter of 2016-2017, and of its courage in exhaustively pursuing openings for peace, denuclearization, and development this year, is well-deserved. The level, breadth, and delicacy of its diplomatic efforts would exhaust many other countries, but Koreans are righty known for their determination. It may not be fair, but the bar has been raised for what should be expected from Seoul in 2019.
Expectations are high because the stakes are high. The dead-serious games Seoul is playing will have profound consequences. Each is like a chess game, and the administration must play three or four at once. This government did not create any of these diplomatic/strategic crises. But largely due to neglect by previous administrations in Seoul, Washington and Pyongyang, they were all becoming more urgent as Moon assumed office in May 2017. As this year ends there is a pause in the action, so it is useful to imagine what could and should happen in 2019.
Can Korea act as a middle power?
Inter-Korean rapprochement has always been the essential pre-condition for Seoul’s realization of its middle power potential. We saw this during the presidencies of Kim Dae Jung and Roh Moo Hyun from 1998 to 2008, when sustained South-North efforts began to bear fruit. They did so because Kim in particular insisted that domestic democratic advancement was required to both confront and engage North Korea. Kim’s election led to the first-ever peaceful change of power groups and the establishment and consolidation of democratic institutions. Seoul’s new democratic legitimacy facilitated it’s engagement with North Korea, as did coordinated engagement by the US. The most successful denuclearization and peace-building agreements ever accomplished on Korea were implemented in these years, albeit sometimes haltingly.
But the next decade saw the growth of South Korea’s middle power delayed as corruption drained the administrations’ domestic power and legitimacy, and unrealistic strategies towards the North were pursued during the Lee Myung Bak and Park Guen Hye presidencies. From 2008 to 2017 resurgent illiberal elements in Korea stalled modernization of governance and diplomatic structures, and resisted the strategic reset that cooperative North-South peace-building would produce. Park Guen-hye in particular ignored the two central elements of any successful Korean reintegration: democratization at home, and smart engagement with the North. Instead, she returned to authoritarian methods at home, creating an extensive government blacklist of opponents and outlawing a political party on ideological grounds, to note just two examples. She also advocated a mythical absorption policy toward the North, which had no practical prospects and gained scant popular support.
During 2018, diplomatic events in Northeast Asia and the US have altered the status quo in ways that recall the possibilities for the Peninsula that were last glimpsed in the late 1990s and early 2000s. Plans and strategic adjustments that were underway at that time are now being dusted off and updated. This year’s developments should be framed by that experience, when both North-South and North-US relations were making historic advances.
Today the US position is the main obstacle
The key difference between then and now is the position of the US. In the 1990s, the US began exploring ways to engage Pyongyang on the nuclear issue, while still maintaining deterrence. This resulted in the 1994 US-DPRK Agreed Framework, which was strengthened by the election of the engagement-minded Kim Dae-jung in South Korea at the end of 1997. Today both North and South Koreans are again ready to move ahead, and the Chinese once again are supportive of the process. But the US, despite President Trump’s unconventional theatrics and willingness to abandon regularly-scheduled sabre-rattling, is not capable of playing a leading role.
For the US to accept virtually any deal now, it will have to be led to it, rather than leading others as the prime decision-maker. No other actor can or will lead the US on this issue, so Seoul must. Although this situation was predicted when Moon was elected, there have long been strong pressures on Korean governments to sacrifice national interests to America’s wishes, even when Washington’s policies have changed radically from one administration to the next. That may help explain why the US was placed in the center of rapidly-evolving North-South relations in 2017 and 2018, despite its being weaker, more confused, and less able to make policy than at any time in over a generation.
The sole advantage of this strategy for the two Koreas has been Trump’s rejection of 15 years of White House policy by abandoning the most provocative military exercises, and embracing summit level diplomacy. But it is becoming clear that these efforts have exhausted Washington’s ability to steer away from its former posture. Elements of the previous “strategic patience” thinking have reasserted themselves, and Trump shows no sign of grasping how the US could complete its pivot from obstacle to supporter of Peninsular denuclearization and development. A second US-DPRK summit early next year is unlikely unless the US position changes.
What will forward movement require?
Verifiable capping and rollback of North Korea’s nuclear and missile capabilities requires major relief from UN sanctions. This has been the case since at least 1994. Denuclearization would be possible only in a changed North Korean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the US. The last time these goals were accomplished, major diplomatic and economic openings emerged as part of the deal, and this should be expected again. However, even if Kim Jung-un is serious about trading nuclear and missile capabilities for economic and diplomatic openings, he is surely by now sensing that the US is not serious about returning to a mutually acceptable exchange. Some in South Korea are coming to the same conclusion.
No one knows precisely what deal would work, but good suggestions have been offered. Ideas from former South Korean Unification Ministers Lee Jong-seok and Jeong Se-hyun, and from Robert Einhorn, former Special Advisor to the US State Department on nonproliferation, lay out some excellent starting principles. Lee’s point is that, fair or not, this US administration requires that North Korea to make its offer first. That offer should contain broad and serious steps toward denuclearization. Einhorn suggests that an appropriate proposal from North Korea would be to identify all sites where fissile materials are produced, freeze development, and open them to inspection. Jeong urges the Moon administration to specify a concrete plan of its own. None of them says so, but if Kim Jung-un were to make such an offer, it could be the basis for significant UN sanctions relief, regardless of possible pushback from the US.
South Korea’s options
Now the Seoul administration may have to do what it declined to do in 2017 and 2018: put forward a clear deal that would be a winning starting point for all sides, seek specific help from neighbors, friends and allies, and engage the United Nations to help secure progress on the linked nuclear, missile and economic development deals. Many specialists believe the deal is entirely possible. But Seoul would have to grow into a self-confident and bold promoter of its own interests and those of its currently inarticulate US ally, and to do so in a sophisticated way. And it would have to lead the US to support this deal. That can be done. The US needs guidance now more than ever.
All of this suggests that a coherent strategic vision, more cohesive policy-making, and a clear and sustained voice advocating its position will help the Korean government achieve its agenda in the security sphere. The good news is that the past 19 months of grueling work has paid off in multiple ways. But the complexity and requirements of navigating among a still-insecure Pyongyang, a capricious Washington, and wary Asian neighbors, as well as concerned European friends and international groups, demands enhanced capacities and focused effort. The Moon Administration must be bold to succeed, but it cannot expect its luck so far – including the new flexibility by Kim and Trump – to continue. Instead, it must clearly show the way, and make its own luck, as the saying goes.
문재인 정부의 올해는 ‘천당에서 지옥으로’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지지율의 부침이 극심했다. 2006년 지방선거 참패의 완벽한 복수라고 할 대첩의 기억은 이제 희미하기만 하다. 전운이 감돌던 위기감, 남북 정상의 연이은 만남이 가져온 감동과 기쁨, 사상 초유의 북미 정상회담이 야기한 흥분도 기억 저편에 있다. 눈 밝은 시인의 표현을 빌어 말해 보자.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근본적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소를 미룬 결과는 지지율 폭락
이 정부의 가장 큰 패착은 참여정부 당시의 경험을 오독했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포스트를 맡고 있는 사람들은 대통령을 포함해 많은 경우 참여정부 당시에 포스트를 맡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참여정부 실패(낮은 지지율, 연이은 선거패배, 정권채창출 실패, 노 대통령의 서거 등)의 가장 큰 원인을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정책(물론 참여정부의 정책패키지가 근본적이고 급진적이었는가는 논쟁적인 주제다)의 추진에서 찾는 것 같다. 즉 ‘시간이 한참 경과한 후에 나타나는데다 다수 유권자들에게 소구되지도 않는 정책들을 펼치다가 지지율 하락과 선거 참패를 불러왔고 급기야 노무현을 잃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의 인식이 이런 수준이라면 펼 수 있는 정책 조합과 선거전략은 자명하다. 거의 모두가 동의하는 남북 관계의 획기적 개선(남북 경협이 비약적으로 증진되면 투자와 고용, 성장의 돌파구가 열릴 수도 있다)에 올인하고, 사회경제적 모순과 개혁은 관리하는 수준에서 운용하며, 가급적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방향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적어도 사회경제 개혁에 관한 한 문재인 정부가 그간 보인 스탠스를 보면 이같은 분석이 타당해 보인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인식과 처방이 모두 틀렸다는 데 있다. 남북 관계라는 마차로 사회경제적 모순이라는 말을 견인할 수는 없으며, 양극화로 집약되는 대한민국의 사회경제적 모순은 국민적 일체감과 유대감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정치적 반대자를 만들지 않는 정치는 반(反)정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처음부터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소에 정책과 정무를 복무시키는 것이 옳았다. 그리고 그 힘으로 남북관계를 힘있게 추동해야 했다.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소에 올인하면 적극적 지지자들과 격렬한 반대자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단언컨대 지속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위태롭기 그지 없는 지지율 80%보다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소에 올인하며 획득한 콘크리트 지지율 55%가 압도적으로 힘이 세며 바람직하다. 문재인 정부는 근본적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소를 미루고 그 대신 지지율을 얻으려고 했지만, 결과는 재앙으로 나타났다. 한 마디로 ‘게도 구럭도 잃은’ 셈이다.
부동산공화국 혁파부터 시작하자
부동산 문제야말로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 대표적 영역이다. 집이 없는 중산층과 서민들은 문재인 정부 시절에 집값에 신경쓰지 않고 살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었다. 물론 그 믿음은 완전히 배신당했다.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경제는 압도적으로 부동산이다. 작년 7월 이후 본격화 된 문재인 정부 지지율 하락이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과 타이밍을 같이 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놀라운 대목은 문재인 정부가 이런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 책임이 큰 김수현 수석을 정책실장으로 승진시킨 것을 보면 말이다.
좋다. 지나간 것은 잊자. 앞으로가 중요하다. 사면초가 상태에 몰린 문재인 정부가 다시 비상할 수 있는 길은 자명하다.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소에 올인하면서 그걸 지렛대로 정치적 지지층을 강력히 복원시키는 길이 그것이다. 어렵고 힘든 길임을 안다.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소에 올인한다고 해서 그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공화국 혁파에 나서면 당장은 건설투자가 줄고, 고용지표가 악화되며, 부동산 자산이 감소할 것이다. 정치적 후폭풍도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완화되는 대한민국’, ‘공정과 혁신이 가능한 대한민국’,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부동산공화국을 혁파하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공화국 혁파로 생기는 정치적 반대자만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정치적 지지자들(그들의 수는 압도적으로 많다)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부동산공화국 혁파의 수혜자들(언뜻 비조직적으로 보이고 미덥지 않게 여길 수도 있는)에 대한 믿음을 지녀야 한다. 그런 안목과 믿음 없이 어떻게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겠는가?
내가 생각하는 노무현 정신이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역사와 대의에 헌신하는 태도 그리고 그런 태도를 지닌 정치인과 정당을 시민들은 끝내 지지하고 지켜준다는 믿음의 결합이다. 노무현 정신을 이해하고 실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노무현을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신의 계승자이길 간절히 바란다. 나는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신을 계승해 올해부터 부동산공화국 혁파의 담대한 길을 뚜벅 뚜벅 걷길 희망한다.
편집자 주: 한국은행은 2017년 미국이 주도한 경제제제로 북한에는 -3.5%의 경제후퇴가 있었다고 발표하였고, 남한과 미국의 정책당국자들은 북한이 마치 제재에 굴복하여 미국과의 협상에 응한 것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 아래의 칼럼은 소련체제가 무너지기 이전부터 동유럽과 사회주의국가의 사회경제 문제에 정통해 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교의 동아시아 학과장인 R. Frank 교수의 글로, 북한 경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매우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고 있으며, 제재가 풀리면 높은 수준의 경제적 성취도 가능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북미 간에 핵과 미사일시험, 그리고 서로 괴멸을 입에 담던 위험한 설전으로 얼룩졌던 2017년을 지나, 2018년의 한반도에는 정상회담과 비핵화와 협력선언들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급격한 변화에 대한 설명중 하나는, 미국의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펼쳐온 “최대압박” 캠페인이 성공을 거둬 김정은이 경제제재의 강도높은 압력에 굴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장기전략이나 경제에 대한 평가 중 그 어느 것도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 블록의 붕괴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부터 비상체제 아래로 들어갔다. 선군정책 이라고 불리는 이 체제는 2013년 김정은에 의해 공식적으로 끝이 났고, 이제 핵과 경제개발을 동시에 진행하는 병진노선이 그 뒤를 이었다. 5년 뒤, 2018년 4월이 되자, 병진노선의 성공이 선포되었다. 병진노선은 5개년 계획에 따라 모든 자원을 경제개발에 투입하는 정책으로, 2016년 제7차 조선노동당 전당대회에서 발표된 바 있다.
북한이 빠른 경제발전을 위해 취할법한 방법으로 동아시아 개발모델의 형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방식의 변종은 일본, 남한, 대만, 그리고 중국에서 관찰되기도 한다. 권위주의적이고 강력한 국가, 수입대체제에 대한 선호, 인건비가 낮고 교육수준이 높은 노동력과, 북한에서도 부정될 수 없는, 유교적 노동관이라고 부를만한 무언가가 구성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동아시아 모델의 구성요소 중 현재 북한에는 없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수출주도적인 경제구조, 그리고 많은 양의 기술과 자본유입이 그것이다. 이 요소들 중 어느 것도 쌍방간, 다자간의 경제제재가 유지되는 한 외부에서 도입될 수 없는데, 이러한 제재들을 지속하는 결정적인 역할은 미국이 수행하고 있다.
상기적 관점에서 볼 때, 지난 1월 평창 올림픽에서 시작된 뒤 1년간 몇 차례 이어진 남북 정상회담을 거치며 속도가 붙은 외교적 행동에는, 국제적 경제교류를 통한 북한의 장기적 경제발전에 대한 대한민국의 거부를 철회시키겠다는 전략적 목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전략적 관점은 관계회복에 임하는 북한측의 동기에 대한 기존의 분석과는 다르다. 기존의 관점은 경제제재로 인한 상황의 악화를 통해 평양이 무릎을 꿇게 하였으며, 대화에 임하게 하였다고 판단하여 왔다. 하지만 북한의 현 상태에 대한 명백한 증거들에 비추어 본다면, 상기의 판단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본다고 해도 모순되는 주장이라는 결론이 나올 것이다.
한국은행이 2018년 7월 발표한 수치를 보면 2017년 북한의 경제는 3.5퍼센트 후퇴하였으며, 이는 경기불황으로 인해 평양이 협상테이블에 앉을수 밖에 없었다는 판단을 뒷받침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한국은행의 예측은 북한의 대외무역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이러한 대외무역의 주요한 상대는(관련자료의 출처 또한) 중국이다. 중국의 무역자료가 지닌 신뢰성에 대한, 그리고 자주와 경제자립정책을 수십 년 간 펼쳐왔던(비록 주장하는 바처럼 언제나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라의 경제상태에 대외무역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의문이 떠오르게 된다.
국영화 비율이 높은 국가들에서는 GDP규모를 엿볼 수 있는 수단인 북한의 공식 세수자료를 보면, 2017년 세수는 4.9 퍼센트 성장했다. 그리고 2018년 10월에 있었던 흔치 않은 여러 번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경제학자는 북한이 2016-17년 사이에 2.96조 달러였던 GDP를 3.07조 달러로 성장시켰다고 주장했고, 이는 3.7퍼센트의 증가율이다. 두 가지의 수치 모두 한국은행의 -3.5퍼센트 성장률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올해 북한 내부에서 들려온 일화들로 미루어 봐도, 경제위기의 징후는 나타나지 않는다. 대규모 토목사업들 또한 관찰된다. 원산 관광특구나 삼지연 지방의 초대형 사업들뿐만 아니라, 평양에서 중국 접경지역인 신의주에 이르는 주요도로에 들어선 주유소들까지, 모든 것들은 늘어나는 경제활동의 지표이다. 고속도로들에선 소형 승합차들이 택시영업을 하고 있고, 트럭들이 새로운 중산층들인 부유한 상인들과 탈중앙화된 국영기업체들의 화물을 실어 나르고 있다. 평양은 반복되는 작은 규모의 교통체증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다.
두 번의 연례 무역박람회는 비중있는 국제회사의 불참에도 불구하고, 지역주민들과 사업체들에게 있어 바쁜 행사였다. 바쁜 소비활동들이 장마당들과 광복지구 백화점의 쇼핑센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Daily NK를 비롯해 북한에 자리잡은 정보망들을 통해 보고되는 물가 수준도 비교적 안정적이며,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의 압력이 자리잡고 있다는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2018년은 느리지만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북한경제에는 비교적 괜찮은 한 해 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는 없었던 한 해로 보인다.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현실은 일부 경제제재에 의한 것이며, 2018년에 시작된 관계회복의 진행이 멈추지 않는다면 이러한 제재를 제거하는 것이 현실적인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다.
Rudiger Frank
University of Vienna 동아시아 학과장과 동아시아 경제사회위원회의 의장을 역임
나는 예술인이지만 평화운동가를 자임하며 활동한지도 오래되어서 이 참에 진보와 보수에 대한 나의 생각을 간단하게라도 정리해야겠다. 그래야 앞으로 ‘유라시아 평화의 길’ 평화운동을 표방하는 시민단체를 건설해서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우리나라의 평화통일을 생각해도 ‘평화의 길 찾기’에 분명한 길이 보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평화의 길을 찾아가려면 세 가지의 문이 열려야 한다. 남남간 상호적대시를 하고 있는 제도의 개선, 경제양극화를 해소하는 경제개혁, 이질성에 대한 문화적 다양성 이해의 3가지 문을 여는 것이다. 적대성, 양극화, 이질성의 문을 열어야만 하는 것이다. 말처럼 쉽지 않으나 평화통일로 가는 길은 길목을 막고 선 남남갈등의 해소 없이는 불가능하다. 적어도 국민 여론이 7~80%가 동의하는 정도의 평화의 길로 대세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민주국가의 보편적 가치가 방향이 되는 길이라면 1차적으로 대세를 만든다. 성숙한 민주국가를 만들어가는 길이 평화통일로 가는 첫 길이라고 생각한다. 민주국가 내에서 보수든 진보든 중도든 자기입장을 분명히 하며 공정한 정치 개임을 벌려야 한다.
<3.1아리랑> 유화 50호, 2012년 김봉준 작.
우선 국가론부터 다시 공부해야 하니 들여다보자. “사회 전체의 구성원들을 지배하는 강제적인 제도로서의 국가는 플라톤이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생명력을 가지는 유기체로 파악한 이래 홉스 ·루소 등의 사회계약에 의한 국가론을 거쳐 헤겔의 절대정신이 발현된 최고의 조직체로서 언급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국가에 대한 규정은 마르크스의 등장으로 계급적 지배를 은폐하려는 관념론으로 비판되었고, 이에 따라 마르크스주의의 국가론은 국가를 철저히 계급지배의 관점에서 파악하였다.” <두산 백과사전의 국가론>
현대국가들은 여러 국가론에 정합하든 안 하든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민의를 최대한 반영하는 국가형태 여부로 국가의 정당성을 판가름한다. 민의는 자유로운 언론과 표현의 자유와 결사 집회의 자유 아래 선거로 반영되고 시스템도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의 분립으로 형성된다면 대체로 민주국가라고 부른다. 국가 시스템도 정치권력의 헤게모니가 작동하고 다양한 계급계층의 이익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어서 민의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국가에서 ‘민주국가’를 정향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입장 차이가 있고 누가 정치권력을 민주선거로 획득하느냐에 따라 정권의 향배가 결정된다. 그러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와 선거의 공정성은 민주주의의 기초다.
한국이 남남 갈등이 심한 것은 민주주의 기초가 아직도 취약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증표다. 공정한 정치 개임을 펼치지 않는다면 정치적 아젠다는 민의를 대변하지도 못한다. 소수파든 다수파든 정치적 견해를 형성하는 정당으로 모아지려면 시민사회의 여론 형성에서부터 공정한 여론조성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론조성 과정을 왜곡시키면 여기서부터 남남갈등이 생긴다. 한국사회는 여론조성 과정의 왜곡으로 아직도 해묵은 남남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누적시켜 왔다. ‘전두환 복권시도’, ‘사법적폐’, ‘의회의 후진성’, ‘가짜 뉴스 언론’ ‘태극기 집회들’ 등등 합리적 논의가 불가능한 극우적 세력이 자본권력과 함께한다. 여기에 파생한 문화권력도 만만치 않다. 정상적인 진보와 보수의 선의의 경쟁과 합의가 너무나 안된다.
우선 진보와 보수를 정상적인 상태가 되려면 어떠해야 하는가. 보수는 시장자유와 국가안보 평화, 그리고 경제성장과 후생복리의 가치를 지향하는 나라를 구상한다. 진보는 보다 평등한 복지, 인간의 품위를 지키는 인권,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지향하는 나라를 구상한다. 여기에 보수나 진보나 공통된 가치로 생태보존, 사회안전, 정의가 있다.
진보와 보수는 서로 강조점이 다르다. 그래서 우선순위가 다르게 정해지고 국가 구상도 달라지게 된다. 그러나 대략 우리가 진보든 보수든 생각하는 정상적 민주국가관은 이상 일곱 가지 가치를 갖춘다. 자유, 평화, 인권, 복지, 안전, 생태보존, 정의의 나라다. 이 일곱 가지 중에서 몇 가지 가치를 위해 몇 가지 가치는 희생 되어도 된다는 방식의 지배력을 국가가 배타적으로 행사하고 있다면 그것은 민주국가가 아니다.
최소국가론이든, 계급적 국가론이든, 홉스 루소의 사회계약 국가론이든 간에 일리는 있으나 충분치 않다. 계급국가주의는 명백히 실패했고, 최소국가론은 약자와 다수의 인권과 복지를 방기하며, 사회계약 국가론은 미완의 국가론이다. 오늘날에는 생태 인권 복지 등 시민권과 문화정체성이 다른 국가들을 볼 때 일반론으로는 부족하다. 현대에서 국가는 적어도 위의 일곱 가지 가치 요소를 지녀 민주국가의 면모를 갖추어야 탈국가주의를 피할 수 있다. 국가 지배세력의 엉터리 국가주의로 무지막지한 폭력을 써온 제국주의 국가와 독재국가는 평화세계와 민주국가 건설에 장애가 되는 게 현실이다.
국가를 계급적 지배에 두려는 국가론은 한 물 갔다. 7가지 공동선을 가치로 하는 국가가 정상국가이며 이 7가지 공동선을 반영한다면 어떤 국가형태든 인정된다. 시민의 자유로운 교류와 연대로 세계인은 자기가 사는 사회를 민주국가로 앞당기고, 세계평화시민으로 나가려는 노력이 정보공유의 세계화로 앞당겨 지고 있다.
여기에 인류가 이룩한 민주국가의 7가지 가치에 하나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 종족의 문화이다. 종족마다 오랜 전통 속에서 형성해온 언어, 통과의례문화, 전통풍속 등 원형문화의 가치다. 또는 어머니문화로 상징되는 밈(meme) 문화다. 이것들은 인류족이 오랫동안 생태지리 속에서 적층하여 온 삶의 지혜와 생활양식이다. 이것은 민주국가의 7가지 가치에서 처음엔 배치되기도 하고 부합하기도 하고 충돌도 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가치와 개성적 문화가치는 상호 보완하며 풍요로운 인류평화와 박애의 문화를 형성하는 자기 정체성의 기초다. 각자 지구촌마다 인류생태적 토양 아래 7가지 가치는 자기 나름들의 심층문화 솥단지(아키타입과 밈) 속에서 잉태하여 평화문명으로 키워져 형성될 것이다. 우리도 그 산통을 겪어 왔다. 민주가치를 소화하고 포태하는 심층문화는 평화와 사랑의 신성한 힘이다. 한국의 문화정체성의 뿌리는 동학파(개벽파)로 명명할만하다. 해양세력의 개화파나, 수구주의 벽사파의 갈등 속에서 동학파는 좌절했다. 100년전 3.1혁명으로 민중은 다시 개혁의 중심을 잡으려 했으나 현실적으론 좌절하고 망명정부로 계승한다. 왕정복귀의 부정으로 벽사파는 소멸하고(친일파로 이동), 식민지 속에서 국내 개화파는 친일파가 되고 해외 개화파는 훗날 친미파로 돌아온다. 중심을 잃은 국가론은 분단과 6.25 전쟁으로 더욱 수렁에 빠져서 독재정권으로 비정상적 국가형태를 유지하다가 기나긴 민주화 혁명을 만들어간다. 중심을 잃은 나라는 늘 혼란스러웠고 미완의 혁명이지만 거의 평화적으로 민주국가의 가치를 하나하나 쟁취하며 오늘에 이른다. 민중(시민)은 스스로 자기 중심을 잡아가며 7가지 민주국가가치를 찾아가고 있고 그 중심에 정체성 있는 문화의 힘이 작동하고 있었다.
조선인민공화국은 남북통일의 대상이다. 그것도 평화통일이다. 한국부터 남남갈등을 평화적으로 해소하고 민주국가로 정리해야 하겠다. 조선인민공화국은 계급독재로 사회주의 건설을 하려 하였지만 실패해왔다. 북은 서방세계가 말하는 다원주의 민주국가로 급격한 이행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럴만한 경제력도 없고 역사적 성장도 없다. 스탈린식 사회주의를 일당독재로 이루고, 수령 세습화로까지 더 나가며 김일성 왕국을 만들었다. 여기에 갑자기 7가지 국가가치를 한꺼번에 이루기를 요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북은 남과 국가정체성뿐만 아니라 문화정체성이 다르다. 동질성을 이해하기는 쉽지만 이질성부터 이해해야 한다. 변하지 않는다면 모를가. 급변사태로 북에서 정변이 일어나 스스로 붕괴하지 않는 한 먼저 공격하여 타도 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국제사회에 정상국가로 진출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세계질서는 물론 동아시아와 남북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도 났다.
그러니 변화를 강요하지 말고 스스로 변화하기를 남은 기다리고 도와준다. 평화시민운동이 이점을 명백히 하자. 비핵화와 제재 해소가 행동대 행동으로 마무리되고 북미수교 되는 과정을 남은 방해하지 말고 도와주어야 한다. 북미수교가 결열 되더라도 북이 말하는 ‘새로운 길’은 있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여 중러북남미일의 다자간 평화협정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평화의 길은 반드시 북미수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한미동맹은 한국이 국익차원에서 유리하다면 지속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해양세력의 전초기지처럼 성장했으니, 한미군사동맹은 국가차원에서 상호필요성이 있다면 철수가 능사는 아니다. 한미간 군사동맹은 경제협력과 한국의 경제 의존성과 국제질서의 안정적 관리에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북은 중국과 러시아에 의존해왔고 남은 미국과 일본 등 서방국에 의존하는 국제관계 속에서 본다면 다자간 평화협정의 길이 보다 안전 할 것이다. 북은 그냥 죽는 길을 택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북이 북미 단독협상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 반드시 유리하지 만도 않다.
때가 아니면 기다리고 서로 상생의 길을 찾아서 평화를 이루는 것이 동학파 홍익인간이고 接化群生 사상이다. 급변사태보다 점진적 변화를 바란다. 세계에서 완전한 정상국가의 모델은 없다. 21C세계시민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과제다.
북은 평화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보다 정상적인 국가형태를 갖추어 갈 것이다. 남쪽이 그것을 도와야 할 것이고 때로는 자문하고 보호도 해야 할 것이다. 북도 4.27선언 이후 이미 새로운 평화국가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남북갈등을 조장하며 분단을 유지해서 이득을 보아온 분단체제를 극복하려면 인내와 비폭력의 남북평화시대가 한 세대 이상 거쳐야 할 지도 모른다. 150년을 기다려온 개벽세상인데 200년인들 못 기다리겠는가. 남이나 북이나 국가폭력과 체제억압으로 희생된 민중의 넋을 생각하면 더 이상 싸우지 말아야 한다. 저 시베리아에 아직도 살아 있는 교포 고려인을 만나면 늘 하는 말이다. 조국분단으로 가장 피해를 입은 동포들 목소리다. “제발 남북이 더 이상 싸우지 말고 평화통일 하기를 바란다.”
7 가지 민주국가가치는 어머니 배속에서 거듭 나듯 자기 문화 속에서 숙성해서 시민적 깨달음 (성불, 뉴빙, 무아, 모심, 신명 등 등)으로 현대 인류는 평화의 세계를 찾아 왔다. 본성적 문화는 ‘어머니 문화’이다. 사랑과 평화를 본성적 문화속에서 키워서 일곱 가지 민주가치를 자기문화화 해왔다. 그래서 한국의 민주주의도 생산적이고 자기 정체성을 가진 창발적 민주문화가 틀림 없다. 이것을 나는 ‘隆平문화’라고 부른다. 평화가 드높은 격조를 갖춘 평화주의이다. 촛불혁명은 150년 개벽과 혁명의 좌절 속에서 성찰하며 깨달음으로 자라고 자라난 평화혁명이다. 이전에 그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명예혁명이고 21세기 평화문명을 예감하게 한다. 누구는 “평화세계는 요원하다.” “언제나 올지 모르는 개꿈”이라 말한다. 제국의 힘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니 한미동맹으로 북진통일하고 만주까지 우리가 접수할 기회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평화를 강조하는 것은 전쟁으로 승리해서 평화를 정당화하려는 낡은 평화론이 아니다. 설사 전쟁이 일어나도 6.25가 보여주듯이 국제전으로 간다. 상대는 무기력한 폐멸 국가인가. 이런 주장은 갈등과 전쟁을 부추기는 잔악한 반평화주의다.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각축에서 어느 쪽에도 빌붙지 않고 영세중립국으로 가는, 동이문화의 弘益人間 理化世界 接化群生의 사상을 이어 중심 있는 평화의 길을 찾을 것이다. 이 길이 서로 싸우지 않고 모두 이기는 평화의 길이다. ‘어머니’가 말씀에 평화의 이치가 있다. “남북 군인 모두 어머니 자식이다. 더 이상 싸우지 마라”
이병한 선생님, 새해 벽두에 보내주신 개벽소식 잘 받아보았습니다. 마침 새해 첫 출근길이었습니다. 천지가 잠자고 있을 때 서울에서 보낸 편지를 천지가 깨어날 무렵에 열차 안에서 읽을 수 있다니, 새삼 물질개벽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첫날 일과를 마치고 대학 근처의 심야카페에 와서 답장을 쓰고 있습니다. 곧 자정이 되려 합니다.
편지를 일독하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논어』에 나오는 “후생가외”라는 말의 의미였습니다. 대개는 후학의 <실력>의 출중함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인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실력>보다도 <힘>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세대의 기상이 넘쳐 기성세대가 두려움을 느낄 정도라는 것이죠.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프레시안》에 쓰신 글의 부제가 “유학국가에서 동학국가로”여서 깜짝 놀랐는데, 이번에는 “개벽국가의 탄생”이라는 표현에 거듭 놀랐습니다.
제가 아무리 개벽파를 자칭한다고 해도 “동학국가”나 “개벽국가”와 같은 대담한 표현은 감히 쓰지 못합니다. 지식이나 지혜는 배울 수 있을지 몰라도 기개나 기운은 압도당하는 것이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정보가 공유되는 세상에서는 “역발산(力拔山) 기개세(氣蓋世)”와 같은 패기가 정말 중요하겠다 싶습니다. 지난 겨울에 소개해주신 하자센터의 ‘공공하는 청년들’에게서도 같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한반도의 대통령인양 나대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거리로 뛰쳐나와 남북평화를 노래하기 시작했더니 거짓말처럼 남북대화가 시작됐다는 그 용감한 십대들 말입니다. 평화의 뒤에는 용기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런 패기는 젊은 세대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있었던 원광대학교 시무식에서도 박맹수 신임총장께서 “개벽대학”이라는 표현을 쓰시더군요. 신임 이사장님도 신년사에서 같은 표현을 쓰셨고요. “원광대학이 다시 개벽하여 개벽대학으로 만들자”는 취지였습니다. 이 기세에도 제가 압도당했습니다. 두 분 다 저보다는 한 세대 위의 분들입니다. 이번에는 “선생가외”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 이념으로 “개벽의 일꾼”을 길러내자고 개교한 원광대학교가 왜 그동안 “개벽대학”이라는 슬로건을 내놓지 못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혹시 뭔가에 억눌려 주저주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개화(서학)나 척사(유학)에 억눌려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원광대학교의 모습이 그동안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첫 번째 화두로 제기하신 중국의 ‘다시 천하’ 이야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중국의 근황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득 “천하위공(天下爲公)”을 “천하이공(天下二公)”으로 바꿔야 하는 시점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이 스스로를 ‘공’(보편)이라고 자처하던 시대에서 미국이라는 새로운 ‘공’이 등장하게 되었으니까요. 고공(古公)과 신공(新公)의 상박(相搏)이라고나 할까요? 아마도 이 이공(二公) 사이에서, ‘척사’와 ‘개화’ 사이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서, 김태창선생님 식으로 말하면 ‘공공’을 열기 위해서, ‘개벽’을 들고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식의 근대의 시작이었고, 그래서 “한국 근대의 탄생”은 “한국 개벽의 탄생”으로 바꿔 말할 수 있고요.
2. 다시 근대
사실 제가 ‘한국의 근대’라는 진부한 주제를 다시 꺼낼 수 있기까지에는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의 ‘인도-아프리카 연구’와 선생님의 『유라시아 견문』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학에서 원불교에 이르는 개벽종교만으로는 “개벽이 근대”이고, 그 근대는 “영성적 근대”였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프리카가 그랬고, 인도가 그랬고, 이란이 그랬고, 러시아가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성속합작”을 하고 있다는 전문가와 견문가의 ‘증언’을 듣고 나서야 확신이 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선생님께서 작년 5월 1일에 원광대학교에서 발표하신 <나와 동북아시아/유라시아 연구>의 충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치 『장자』에 나오는 우물 안 개구리가 동해의 자라에게 바다이야기를 처음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동안 동아시아 전통과 서구 근대에 갇혀 있던 자신의 좁은 시야를 뼈저리게 반성하게 해준 자리였습니다. 30여 년 전에 서울에서 김용옥 선생님의 동양학 저서를 처음 접했을 때, 그리고 15년 전에 일본에서 Brook Ziporyn 교수의 노장 해석을 처음 접했을 때 이후로 받은 세 번째 지적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작년에 꼽은 최고의 글은 당연히 선생님의 견문록입니다. 특히 《프레시안》에 실린 두아라 교수와의 인터뷰, 1979년의 이슬람혁명 이야기, 그리고 《한울안신문》에 실린 인터뷰가 압권이었습니다. 세상이 ‘다시 개벽’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칭 ‘개벽파’라면서 원광대에 나타나셨을 때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우리의 치우친 근대사를 다시 쓸 수 있는 고수가 나타났구나 하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도 한국의 젊은이들 중에는 과거의 제가 그랬던처럼, 개화와 척사 사이에서, 서학과 유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적어도 다음 세대에게만큼은 제가 걸었던 것과 같은 정신적 방황의 길을 반복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앞 세대를 원망하면서 살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디 잊혀진 ‘개벽사’를 복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3. 부채와 치유
몇 년 전에 우연히 서울의 홍은동에 있는 대종교 총본사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총본사라고는 하지만 굽이굽이 비탈길을 올라가서 산꼭대기에 허름한 건물이 두어 채 있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 놀란 것은 창고에 방치된 채 쌓여 있는 방대한 대종교 경전과 문헌들이었습니다. 그 귀중한 문서들이 전혀 관리되지 않은 채, 방 한 곳에 랩으로 쌓여 있었습니다. 도서목록도 없었고 자료정리도 전혀 안 되어 있었습니다. 자료실이나 박물관 같은 것은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럴 인력이나 재정도 없으니까요.
독립운동의 중추였음에도 방치되어 있는 대종교 문헌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이나 안동에 있는 국학진흥원에 비교하면 너무나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유학 연구에는 나라에서 방대한 재정을 쏟아 부으면서 정작 항일독립투쟁을 가장 치열하게 전개했다고 하는 대종교에 대해서는 왜 저렇게 냉정하고 무심하나 싶었습니다. 신종교라는 편견이 있어서일까요? 이렇다 할 가문이 없어서일까요?
저는 비록 종교는 없지만 그냥 한국의 소중한 사상자원으로 느껴졌습니다. 가문을 떠나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주벌판의 혹한의 전장에서, 혹독한 감옥에서, 수련을 해가면서 써내려간 경전과 문헌들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대 규장각, 고전번역원, 안동의 국학진흥원… 온통 조선시대 유학을 연구하는 기관들뿐입니다. 이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한국학의 편중과 독식을 뼈저리게 절감하게 해준 사건이었습니다. 유학이 싫어서가 아니라 불균형은 불건강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오구라 기조 교수가 한국인들은 ‘우리’ 아니면 ‘남’이라고 했는데, 유학은 ‘우리’지만 대종교는 ‘남’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대종교는 비록 ‘개벽’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을지 몰라도 ‘개천(開天)’을 말했습니다. “새로운 하늘을 연다”는 개천은 “새로운 세상을 열자”는 개벽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종교도 큰 틀에서는 개벽종교이자 개벽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개벽이 ‘부채’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공에 상관없이 이 땅에서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과의례처럼 연구해야 할 숙제 같은 느낌입니다.
개벽을 모르고서 한국의 근대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최근에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온 『문명의 대전환을 공부하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근대성에 관해 토론한 책이었는데, 어느 선생님께서 “개벽파는 척사파의 일종이 아닌가요?”라는 발언을 하시더군요. 불과 몇 년 전의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개벽사상을 모르고서 한국의 근대를 논한다는 것은 계몽주의를 모르고서 서구의 근대를 논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한국의 근대에 관한 모든 논의는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모래성을 쌓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개벽의 역사는 어두운 과거, 패배한 역사라서 보기가 싫다고도 하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피해가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면서 개벽사를 읽어내려 가다 보면 거기에도 밝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부채’이자 동시에 ‘치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적하신대로 중국의 지식인들이 천하를 고수하고, 일본의 위정자들이 개화에 기댈 때, 한국의 민중들은 개벽을 창안했기 때문입니다.
4. 개벽의 힘
지난 연말에 일본의 동북대학에서 ‘토착적 근대’를 주제로 한일공동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발표자로 참석하신 동경대학교의 이타가키 유조 명예교수께서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동학의 보편성을 설명하는 일이다”는 총평을 하셨습니다. 주최측인 동북대학의 가타오카 류 교수는 학술대회 후기에서 “한국의 동학이나 촛불혁명과 비견할만한 일본사상의 지하수맥을 발견하는 작업을 한국과의 공동연구의 형태로 지속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근대성을 주제로 몇 년 동안 지속적인 학술교류를 한 끝에 마침내 양국 연구자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졌음을 느꼈습니다. 비록 소수의 인원이었지만 해원상생의 가능성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이 “개벽의 힘”입니다.
일본 동북대학에서 열린 학술대회
학술대회가 끝나고 우리는 일본적 개벽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하치노헤에 있는 안도 쇼에키 자료관을 방문했습니다. 18세기에 동북지방에서 활약한 안도 쇼에키는 극심한 기근에 3천여명의 농민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당시의 사무라이 지배층을 “성인의 이름을 빌려 무위도식하는 도둑놈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성인 중심의 지배질서를 정면으로 비판한 동아시아 최초의 사상가였습니다. 동학식으로 말하면 향벽설위에서 향아설위로의 전환을 시도했다고나 할 까요? 비록 동학처럼 세력화가 되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메이지시대에 농민들과 함께 공해반대 운동을 벌인 다나카 쇼조의 유적지를 찾아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지적하신대로 개벽의 가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서구 근대의 중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최근에 일본에서 활동하는 어느 중국인 연구자가 한국에 와서 “전 세계에서 서구 근대의 독을 가장 많이 먹은 나라는 한중일 삼국이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곡을 찌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정작 중독이 된 당사자들은 이 말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아프리카 케냐의 작가 구기와 지 옹오는 “정신의 탈식민지화”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디톡스 작업이야말로 개벽학에서 말하는 정신개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아직도 개벽이 여전히 진행중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필자 주: 모두 신년 벽두부터 북의 신년사를 분석하느라 무척 바쁘다. 격세지감이다. 언제부터 우리사회가 북의 신년사에 이렇게 관심을 가졌던가? 과거에는 주로 운동권이, 그것도 NL진영 정도가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그런 신년사가 이제는 대한민국의 정계, 언론계, 학계를 넘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희한한’ 일이다. 왜 그렇게 북 존재가 180°로 확 바뀌었을까? 뭐니 뭐니 해도 그 중심에는 북의 핵무력 완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밖에 달리 설명할 길도 없다. 그 전제하에 이 글은 총 세 번에 걸쳐 2019년도 북 신년사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유는 많은 분들이 북 신년사를 분석해 내었지만, 본질을 제대로 짚은 신년사가 많이 없기 때문이다.(본인 또한 제대로 된 신년사에 접근하기 노력할 뿐 ‘완전하다’는 것은 아님을 밝혀둔다.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제 1부는 <2019년 北 신년사 제대로 읽기: 북 내부문제>이다. 제 2부는 <2019년 北 신년사 제대로 읽기: 남북문제>이다. 좀 의역하면 ‘남북문제에 있어 2019년 북 신년사에서 오독하지 말아야 할 것들’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마지막 편에 해당되는 제 3부는 미국문제(대외정책)에 해당되는 <2019년 北 신년사 분석: “새로운 길”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실리게 된다. 독자들의 많은 필독을 원하고, 문재인 정부에게는 제대로 된 이해에 바탕 해 2019년도는 남북, 북미관계 정책을 세워내는데 도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에게는 북 드려다 보기와 관련해 꼭 빠져나와야할 하나의 ‘악마의 늪’이 있다. 필자가 누누이 얘기하고 있는 ‘희망적 사고’이다. 단 한 번도 이제까지 예측이 맞지 않았지만 지금이나 예나 북이 언젠가는 자본주의적 방식의 개혁·개방에 나설 수밖에 없고, 더 나아가서는 체제전환이 반드시 이뤄진다는 확신이 그것이다.
그 믿음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을까?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본다. 결론에는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가 우월하다는 체제우월주의를 그 근간으로 하여 현실적으로는 현실사회주의 붕괴경험이 우리 사회(대한민국) 전체에 사회주의체제는 언젠가는 반드시 붕괴된다는 확신과 환상을 심어놓았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세계적인 역사학자들(대표적인 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조차도 ‘자유민주주의의 최종 승리’로 단언했고,(그러나 그도 지금은 자신의 과거 주장을 완전히 뒤집어, 획기적인 부의 재분배만이 오늘의 민주주의 후퇴를 해결할 수 있으며, 사회주의가 다시 돌아올 수밖에(강조, 필자) 없다고까지 강조하여 말하고 있다.) 기정사실화되었다.
즉, 망할 수밖에 없는 사회주의체제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북을 인식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사회주의체제인 북이 자신들이 설정한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을 위해 뭔가의 조그마한 변화 시도조차, 또는 제도를 조금이라도 손질하면 이건 금방 ‘개혁· 개방’의 신호, 체제전환의 징조로 확대 해석되었다. 강성국가 앞에 ‘사회주의’라는 형용사가 붙어 있는데도 말이다.
역지사지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인데도 절대 역지사지 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체제인 우리가 사회양극화 현상 및 비민주적인 제도를 개선한다하여 이를 (사회주의에로의) 체제전환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비록 정치적 논쟁은 있을 수 있으나, 절대로 체제전환과 (사회주의에로 진입하기 위한) ‘개혁·개방’을 상상해내지는 않을 것이다. 똑같이 북에게도 적용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해서 이번 신년사는 그 연장선상에서 쓰고자 한다. 철저하게 역지사지 할 것이고, 희망적 사고에 함몰되지 않을 것이고, 있는 그대로의 북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할 것이다.
경험적으로도 충분히 증명되었으니 이제는 그럴 때가 되었다. 즉, 이 ‘빈곤한 상상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 북은 이제까지 열 백번도 더 체제전환이 일어났어야 했고, 개혁·개방이 되었어야 했으나 그러한 본질적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그 늪과 인식오류에서 벗어나야만 함을 안내하고 있어서 그렇다.
8-90년대 사회주의권이 멸망했을 때도, 90년대 초 제2의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김일성 주석사망 때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때도 모든 언론과 정치권, (북)전문가들은 북은 이제 정말로 정권이 붕괴되거나 체제전환이 일어난다고 했으나 그러한 현실은 방생하지 않았다.
또 그 사이에 수많은 제도의 변화들, 7.1경제관리개선조치, 6.28방침, 포전담당제, 기업책임관리제 도입 등 수많은 조치들이 일어났고, 그때마다 ‘개혁·개방’과 연결시키려했으나 북은 여전히, 아니 더 소리 높여 사회주의 완전승리노선의 정당성만을 얘기하고 있다. 그것도 ‘사회주의 강성국가’, ‘사회주의 완전승리’, ‘사회주의 문명국가’ 등 온통 ‘사회주의’뿐으로 말이다.
그런데도 언제까지 ‘변화’와 ‘조치’를 ‘개혁·개방’으로, ‘체제전환’으로 해석하고 이해해야만 할 것인가? 그런 해석과 이해로는 절대 옳은 대북정책이 나올 수 없고, 옳은 남북관계가 만들어질 수 없다. 제발 이제는 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자. 그 연장선상에서 ‘공존·공리·공영’에 입각한 대북관을 세워내자. 그렇게 북을 온전하게 보고, 그만큼 옳은 대북정책과 남북관계를 만들어내자.
사진: 중앙일보
이번 신년사 해석이 그런 북을 인식하는데 일조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글쓰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전제는 깔고 가고자 한다. 우선은 일반적 의미에서 북 신년사가 항상 그러하였듯이 그 기본골격이 북 내부문제, 남북문제, 북미문제(대외정책)였다. 올해(2019)도 그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음을 전제하고자 한다.
다음으로는 신년사에서 필자가 눈여겨 본 단어가 네 개 였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첫째, “국가제일주의”, 둘째, “농장원”, 셋째, “전 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방안”, 그리고 그 넷째가 “새로운 길”.(첫째와 둘째는 1부에서, 셋째는 2부에서, 넷째는 3부에서 주로 다뤄질 것이다.)
또한 세부적인 내용은 많은 분들이 분석을 하였음으로 본 글은 주로 전략적 이해가 필요하거나 오독한 부분, 간과한 부분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그리고 참고사항은 다음과 같다. 영역별 총괄평가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그 전제를 깔고, 그 전제와 눈여겨 본 ‘네 개’를 중심으로 내재적 관점에서 해석풀이(혹은, 주석달기)를 한번 해보겠다는 것이다.
▶ 북 내부: 자강력 중심의 사회주의 노선의 정당성 확인과 사회주의 완전승리노선에 의거한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나갈 데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표적 오독: 사회주의 국가인 북이 사회주의체제 방식으로 그 한해를 총화·결속하고, 그 방향에서 전망을 세워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울 텐데, 이를 ‘죽자 살자’고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이해하고 개혁·개방에 대한 희망적 사고를 버리지 못한다.)
▶ 남북관계: ‘사실상의’ 전쟁 없는 남북불가침시대로 진입했으며, 이를 토대삼아 ‘민족공조’의 새 시대 개척과 전 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방안에 힘을 쏟는 한해가 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대표적 오독: ‘대가없는’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재개를 2020년 국가발전전략 5개년과 연동하여 해석해내는 것, 민족공조문제를 문재인 정부의 운전자론으로 축소·왜곡하는 것 등이다.)
▶ 북미관계: 핵동결 확약과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그리고 조선반도에서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 및 ‘새로운’ 북미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표명, 그러면서도 북이 먼저 주동적으로 취한 선의의 행동에 대해 계속 미국이 인내심을 시험하려 든다면 ‘새로운 길’모색이라는 엄중 경고를 날렸다. (대표적 오독: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불이해‘북핵만의 비핵화’, ‘새로운 길’에 대해 병진노선의 부활이니, 중국과의 밀월 등으로 오독)
자, 그럼 한번 시작해보자.
“정세와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국가제일주의를 신념으로 간직하고 우리 식으로 사회주의경제건설을 힘 있게 다그쳐나가며 세대를 이어 지켜온 소중한 사회주의 우리 집을 우리 손으로 세상에 보란 듯이 훌륭하게 꾸려나갈(중략)”
‘우리국가제일주의’가 공식적으로 신년사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다.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한 ‘우리민족제일주의’, 국가의 근본이 인민에게 있음을 강조한 ‘인민대중제일주의’에 이어 2017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우리국가제일주의를 올해(2019) 신년사에 이렇게 등장시킨 것이다. ‘민족’, ‘인민’, ‘(사회주의)국가’를 3위 일체화 한 것이다. 좀 더 그들의 사상인 주체사상에 입각해 그 (철학적)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수령-당-대중의 3위 일체라는 논리구조와 맞닿아 있다. 그렇게 민족, 인민, 사회주의국가를 운명공동체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국가제일주의’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사회주의체제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최고야’라고 한 것과 같게 된다.
또한 주목해서 봐야할 지점은 사회주의 국가체제의 기본에 아주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제7차 당 대회(2016)를 통해 밝힌 사회주의 완전승리노선 그 연장선상에서 신년사가 발표되어 있어서 그렇다. 이유는 다음과 같은 문장 속에 그 비밀이 담겨져 있다고 봐야한다.
“2018년은 우리 당의 자주노선과 전략적 결단에 의하여 대내외 종사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사회주의 건설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역사적인 해였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당의 자주노선’과 ‘전략적 결단’일 텐데 먼저, 당의 자주노선은 2016년 제7차 당 대회에서 채택된 ‘사회주의 완전승리노선’을 일컫는 것으로 보이고, 다음으로 전략적 결단은 2017년도에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경제건설 총집중노선(이하, 경제건설 총력노선)의 선포인 듯하다.
그러면서도 또 들여다봐야 할 것이 ‘사회주의 건설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이다. 어떤 의미일까? 2016년 제 7차 당 대회에서 채택한 사회주의완전승리노선과 경제건설 총력노선에 의거한 사회주의 강국건설 그 내용적 형태가 사회주의 문명국가로의 ‘새로운 단계’진입일 텐데, 그 문명국가가 철저하게 사회주의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렇듯 이번 신년사에서의 독해핵심은 총괄적으로 북 체제가 자본주의적으로 해석해내어져야만 하는 그 어떤 내용도, 또 체제전환과 관련한 그 어떤 힌트도 유추할 수 없는 완벽한 사회주의 완전승리노선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 어떤 원인을 조금이나마 발견할 수 있는 희망적 근거가 그 어디에도 없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북이 제아무리 수령제중심의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띄고 있다손 치더라도 수령 개인의 독단과 독선, 제멋대로 할 수 있다는 그런 이미지와는 아주 거리가 먼 모습의 확인이다. 신년사가 2016년에 채택된 사회주의 완전승리노선에 의해 발표되어졌다는 그 사실이 집단과 조직 속에 있는 수령임이 확인되어져서 그렇다.
더 불어 또 하나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자력갱생의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나가자.”라는 총적구호가 그것인데, 여기서 우리가 해석해 내어야 하는 것은 ‘새로운 북미관계’의 최종종착지가 서방세계의 경제지원이라는 비(非)등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철회와 그 조건으로 확보되는 열린 ‘경제적 공간’에서 그 사회주의 방식의 자립, 자강, 과학기술혁명에 의거한 ‘새로운 진격로’가 만들어 가겠다는 그런 방침을 확약하였다는 사실이다.
즉, 북이 요구하는 대북제재완화와 해제를 자꾸만 경제적 지원으로 해석해서는 안 될 이유가 그렇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첨언하자면 제재완화와 해제는 자신들이 설정하고 있는 ‘사회주의 경제적 공간’을 확장하는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된다는 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음의 문장도 의미심장하다. “지난해 4월에 진행된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는 병진 노선의 위대한 승리 하에 토대하여 우리 혁명을 새롭게 상승시키고 사회주의 전진 속도를 계속 높여나가는 데서 전환적 우위를 가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가 그것인데, 확인은 국가 핵무력 완성(2017.11.29.)에 따른 ‘경제건설 총력노선’으로의 전략적 노선의 정당성과 ‘사회주의 전진 속도를 계속 높여나가는 데서 전환적 우위를 가지는 중요한 계기’에서 확인받는 것은 병진노선에 의해 마련된 그 예비, 즉 “국방비를 추가적으로 늘이지 않고도 전쟁억제력과 방위력의 효과를 결정적으로 높임으로써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힘을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데 있다”(2013년 3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빈말이 아님을 증명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전환적 우위’로 말이다.
실천적으로도 위 총화가 이제까지 증명해내지 못했던 퍼즐이 완성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이제까지 인민생활소비품에 있어 절대 다수(90% 이상)의 중국산에서 국산화비율이 높아진 이유확인이 그것이다. 즉, 북(조선)이 2018년 한 해 동안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총력노선으로 전환한 이후 자력갱생에 의한 사회주의경제건설에 얼마나 힘썼는가하는 점은 김정은 위원장의 경제집중 현지지도뿐만 아니라 ‘군수공업부문에서 군사장비만 생산한 것이 아니라 경제건설에 요구되는 각종 기계제품들과 인민소비품들을 생산한 사실’에서도 뚜렷이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핵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총력노선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가 보다 분명해진 것이다.
참고로 이 부분과 관련된 부가적인 설명을 다음과 같이 좀 하고자 한다. 농업부문인데, 아시다시피 북은 여전히 식량사정이 좋지 않다. 한 해 약 64만여톤(FAO발표, 2018년 기준)이 더 필요할 만큼 그 어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 ‘경제건설노선의 새로운 전환적 국면’에서 확인받듯이 관련하여 그 변화의 싹은 분명 보인다는 점이다.
즉, 과거에 비해 농업부분에서 지속적으로 현저히 개선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종석 박사조차도 <한겨레신문>에 “요즘 북한이 굶지 않는 이유, ‘다수확 농민’”(2019.1.06.)이라는 칼럼을 기고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2019) 신년사에서 언급한 ‘다수확 농장원(농민)’에 주목한다고 하였는데, 정확한 문장은 “농업부문에서 알곡증산을 위하여 이악하게 투쟁한 결과 불리한 일기조건에서도 다수확을 이룩한 단위들과 농장원들이 수많이 배출되였습니다.”이다.
바로 이 부분이다. 이 박사의 분석에 아쉬움이 좀 남는 부분 때문이다. 그도 사회주의 경제조치의 일환으로 마련된(제도 개선된) 포전담당제를 누구나 유혹에 빠지고 싶었던, 그 예의 자본주의적 방식의 ‘개인농’으로 이해했다. 과연 그런가?
반론은 다음과 같다. 우선 그 첫째, 이 글을 쓰면서 대전제했던 그 수많은 제도개선과 같이 포전담당제도 농업부분에 있어 사회주의적 제도개선의 범위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6.28방침‘을 일컫는다. 그 방침에 따르면 기간 대단위 중심의 즉, 집단관리체제는 그 생산과 분배시스템에서 큰 약점이 발견되었는데 다름 아닌 평균주의(강조, 필자)가 농민들의 생산 열의를 떨어뜨리는 주범이라는 총화토대가 그것이다. 즉, ’필요에 의한 분배법칙‘이 작동되는 공산주의와는 달리 ’능력에 의해 분배‘되는 사회주의체제하에서의 평균주의는 생산성 저하를 빗겨나가지 못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15-30명 내외의 분조개념을 5명 이내의 포전개념으로 바꾼 것이다. 즉, 제대로 댄 사회주의 분배원칙을 재구축해 생산성 증대에 기여할 수 있는 최적의 협동농장체제를 구축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북(조선)식 표현으로는 사회주의 경제법칙 내에서의 ‘개건’이 이고, 이는 자본주의적 방식을 도입한다는 의미에서의 ‘개혁’과는 다른 개념임을 알 수 있다.(물론 결과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둘째는 북의 자립경제노선에서 근본정신에서 해당되는 자력갱생의 정신을 간과한 부분이다. 북은 아시다시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립이후 단 한 번도 자력갱생노선을 포기해 본적이 없다. 사회주의 우방국인 중국과 소련과의 관계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일관되게 자력갱생, 자립경제노선의 끈을 절대 놓지 않았다. 그 결과 사회주의권 경제가 망하고, 곧이어 불어 닥친 제2차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또 이 지구상에서 유례가 없는 각종 제재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북은 자력으로 현존하는 과학기술에서 가장 앞선 총합체라 할 수 있는 (국가) 핵무력을 완성한 그런 국가가 되었다. 자력갱생의 위력을 충분히 입증주고도 남는다. 따라서 농업부분에서도 국제사회의 지원과 의존보다는 ‘주체’농법에 의거한 자력갱생의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하는 그 문제의식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셋째는 예의 그 “단위들과 농장원들”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문제인데, 즉 국가계획경제의 통제범위를 벗어났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인데, 이 문제 역시 북이 이번 신년사에서도 강조하고 있듯이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갖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와 통제 하에 분명 있다. 그런 만큼 이 점을 간과해서도 안 되는 점이다. 즉, 북은 사회주의 경제법칙에 따른 계획경제를 실현하겠다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그 개념이 국가의 통일적 지도와 통제이다. 그 전제하에 집단주의체제의 형태가 과거의 15-30명 내외의 분조개념에서 지금은 5명 내외의 포전담당제로 바뀌었는데 이 또한 국가중앙의 통일적 지도와 통제 범위 안에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북이 취하고 있는 관리방법의 혁신, 사업체계의 정비 등 모두는 국가 차원에서 그 통제와 지도 범위 안에서 이뤄지는 내각의 기업(협동농장) 지도, 기업(협동농장) 경영 방식 등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北 내부문제 분석 마지막 글로 북은 올해(2019) 그 총적구호로 “‘자력갱생의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나가자.’”를 내새웠다. 이는 누가 뭐래도 자강력제일주의와 자체의 과학기술혁명에 의거한 사회주의 자립경제노선을 명확히 했음을 의미한다. 해석은 이른바 서방세계와 보수수구세력들이 갖고 있는 그 희망적 기대; 개혁개방 노선과 체제전환에 대한 명확한 반대에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제가 해제된다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자강력제일주의와 자체의 과학기술혁명에 의거한 사회주의 자립경제노선을 보완해주는 역할(보완재) 그 이상이하도 아님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즉, 북의 경제노선은 철저하게 자립경제노선이라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경제이론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개발도상국이 취하는 일반적인 방식 차관, 외자유치, 원조 등과는 확연히 다른 자립경제노선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경제특구를 통해 외자유치도 이는 말 그대로 제한된 특별구역에만 해당되는 것으로서 이것이 국가 경제성장의 주요 변수가 못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듯 자본주의 경제이론과는 완전히 다른 북의 경제노선이고, 이 노선이 과연 끝까지 성공할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는 분명 지켜볼 일이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북이 미국과의 관계개선 목적으로, 7.1경제관리개선조치 등 그 모두를 자본주의적 방식에로의 개혁·개방과 체제전환의 징조로 파악하는 것은 너무나도 관성적인 희망적 사고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자강력제일주의에 대해서도 ‘닫힌’폐쇄형 사회주의 자립경제노선으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즉, 그렇게 폐쇄형 운운하기 이전에 미국과 국제사회가 언제 한번 북에게 기회를 준 적이 있었던가? 이것을 먼저 물어봐야 하고, 그 다음서야 국제사회와 유례없는 미국의 대북제제가 지속되고 있는 상태에서는 북(조선)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주’ 사회주의 자립경제노선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닫힌‘자주적’은 대북제제와 그렇게 연동되어 있고, 열린‘자주적’은 대북제제 해제와 그렇게 연동되어 갈 것이다. 또한 1960-80년대까지 그러하였듯이 미국과 관계가 개선된다 하더라도 ‘자주’개념은 여전히 유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야만 다음의 신년사 문장이 정확하게 해석가능 해진다. “우리는 자체의 기술력과 자원, 전체 인민의 높은 창조 정신과 혁명적 열의에 의하여 국가 경제 발전의 전략적 목표를 성과적으로 달성하며 새로운 장성 단계로 이행하여야 합니다.” 이를 통해 올해도(2019) 여전히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국가목표를 완수하려 하는 북이 보인다. “인민 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은 우리 당과 국가의 제일가는 중대사입니다.”
통일뉴스, 2019년 1월 10일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가 공동게재에 동의하여 실린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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