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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남한당국에게 종미를 벗어난 민족자주의 원칙을 요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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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남한당국에게 종미를 벗어난 민족자주의 원칙을 요구하다

admin | 화, 2019/11/05- 23:10

최근 북이 남과 미국을 다루는 태도는 확실히 다르다.

스톡홀름 회담 결렬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향한 북의 메시지는 비록 연내 시한이라는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매우 유화적이다. 김계관 외무성 고문의 10월 24일 개인 담화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는 미국이 어떻게 이번 년말을 지혜롭게 넘기는가를 보고 싶다.”

반면,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영 180° 다르다. 그것도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선다. 그는 금강산 관광 지구를 현지지도 한 자리에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하여 싹 쓸어내도록 하고…”에서 확실하게 확인된다. 문재인 정부에게 화가 나도 엄청 화가 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이런 상반된 인식이 발생했을까?

정말 이 상황을 정부와 청와대는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소망적 접근이 아닌, 내재적 접근을 통해 북의 정확한 의도를 분석해내는 것이 그 여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그런데도… 친(親)여권은 정권의 눈치 때문에, 전문가들은 실력이 부족하거나 정권 눈 밖에 나기 싫어서, 그리고 보수야권은 아예 ‘북(김정은) 생각읽기’에는 애당초 관심 없고 오직 문재인 정부만을 공격하기에 바쁘다(평화번영정책에 대해). 그렇게 지금 대한민국은 민족이 처해진 운명보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하면서 총선을 향해 무한질주하기에 바쁘다.

백번양보해 보수야권과 그 추종지식인들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러하지 말아야 할 자칭 친여 대북전문가들 조차도 북의 생각읽기를 본질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정부와 집권여당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예의 그 희망적 사고에 맞는 맞춤형 ‘북 생각읽기’에 여념 없다.

정말 이 시점에서 한반도 번영과 평화, 통일을 위해 전문가로서, 해당 관료로서, 청와대 참모로서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성찰적으로 고민하고 제언하기보다는 온통 기회주의자들뿐이다. 배는 가라앉으려고 하고 있는데 이에는 아랑곳없이 탑승하고자만 하는 이들로 넘쳐난다.

이름하여 남북교류협력의 상징이고, 국민들 속에는 평화와 통일의 절실함을 심어줬던 금강산관광이 영구 중단되게 생겼는데도 정부는 정부대로 상황 관리만 하려하고, 전문가들은 전문가대로 이 문제가 북미 고래 싸움에서 파생된 새우 등 터진 꼴로 시간이 좀 지나면 해결될 수 있다는 등 그렇게 ‘별 것 아니다’며 진단해 낸다.

해서 이 글은 이런 상황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그 상황의 심각성과, 도저히 상상살 수 없었던-적폐정부가 물러나면 적어도 남북관계는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관광 재개·개성공단 재가동 등 민족 내부문제 정도는 ‘순풍에 돛단 듯 잘 풀릴 것’이라고 내다봤으나, 그런 기대와는 정반대로 최악의 상황까지 직면한 남북관계가 잘 풀려지기 위해서는 현재의 남북관계 경색국면을 본질로 읽고, 경색국면을 타개할 방도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데 (조그마한 도움이나마)도움을 주고자 쓰여 진다. 그것도 아무도 접근하려 하지 않는 본질로서 말이다.

우선은 ‘금강산 남측 시설물 철거’ 지시배경에 대한 팩트체크이다.

①김정은 위원장의 ‘선임자들’의 정책을 비판한데 대해 일각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을 지칭했다는 보도가 여과 없이 막 나오고 있는데, 엉터리 해석도 이런 해석이 없다. 북에서는 ‘영생’하는 ‘영원한’수령들을 지칭할 때 쓰는 용어는 선대(先代)라는 표현을 쓰지 선임자라고 지칭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선임자들’은 금강산관광 지구를 정책적으로 책임진 관계부분의 책임일꾼을 말한다. 이름하여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유관부서의 수장들을 일컫는다.

②‘선임자들’의 정책을 비판했다하여 금강산관광 개발 그 (정책)자체가 잘못되었다로 오독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김정은 위원장의 비판 문장을 맥락적으로 이해해보면 ▲남측의존 정책 ▲과도한 남북관계 발전과 연계 ▲‘우리식’ 건축물 양식 배재이다. 즉, 세계적인 명산답게 너무 남북관계에만 얽매이지 말고 ‘우리식 건설’작풍을 최대한 발휘하여 세계적인 관광시설, 인민의 휴양시설로 탈바꿈 시키라는 것이다.

③둘째(②)와 마찬가지로 김정은 위원장의 비판을 맥락적으로 이해해 본다면 남측정부-문재인정부에 대한 불만이 엄청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양공동선언 2조 2항에서는 “남과 북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고”에 합의했고, 이를 해결하는 방도로서는 4.27판문점선언에서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에 합의, 이것도 모자라 미국의 대북제재가 작동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본인이 직접 나서 올 신년사에서 ‘조건 없는’재개까지 언급했으나, 이를 함께 풀고자 하는 이행의지가 없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강한 유감과 실망감의 표현이 그렇게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금강산 남측 시설물 철거’지시는 다름아닌, 문재인 정부가 그 원인제공자라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문재인 정부로 인해 발생한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을 해야만 문제의 본질이 정확하게 보는 것이고, 그리고 해석을 그렇게 해야만 또 문재인 정부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개성공단(강조, 필자)또한 그 운명이 금강산관광과의 운명과도 하등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상황이 그렇게 심각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 정부(통일부와 청와대)는 사태의 심각성을 그렇게 이해하려하기 보다는 상황관리 차원에서 ‘남북관계가 완전히 문 닫힌 것은 아니며’, ‘협의’가 아니라 ‘합의’발언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며 이것은 보기에 따라 대화 모멘텀이 살아있다는 증명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낸다. 참으로 ‘편안한’해석이다.

‘태도변화’없이는 금강산관광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재가동 운명도 간단치가 않건만, 생각이 어쩌면 그렇게 나이브할 수 있을까?

(정부와 청와대의 그런 인식과는) 상관없이 촛불정부가 처해진 남북문제는 분명 바람 앞에 선 등불과 같다. 미국에게 그렇게까지 과잉충성 하지 않아도 되었건만, 친미관료들과 참모들로 인해 명(明)대신 미국(美)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현대판 신(新)재조지은(再造之恩)이 완벽하게 부활했고, 비례해서 대한민국은 미국 스스로가 그렇게 말하고 있듯이 ‘대한민국은 자신들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나라(트럼프의 정확한 워딩은 “그들(한국)은 우리 승인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보다 더 미국이 NO할 것이 두려워 ‘알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뼈 속까지 숭미사상DNA가 내재되어 있는 현 정부로 전락되었다.

과한 비유라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는 문재인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미국의 대북제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사업이었다.

이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의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발언만으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개인 北관광, 제재대상 아냐..통일부 허락할지의 문제”(2019.10.24., 기자간담회 중에서)발언이 그것이다.(그리고 이 사실 확인은 현 정부가 이제까지 국민들을 속여 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위 발언은 사실 통일부 장관이 해야 될 워딩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외교부 장관의 입에서 나온 답변이라 그것이 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다시말해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개인 北관광, 제재대상 아냐… 외교부가 허락할지의 문제’그렇게 해야 했고, 그러면서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외교부와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뭐 그 정도는 해야 되는 것이었다.

그래야 통일부의 존재이유도 있는데, 그런데도 이 발언을 통일부장관 대신 외교부장관이 했다? 참으로 자기 역할이 뭔지도, 되게 못난 통일부가 되어버렸다. 정말 통일부가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상황은 이렇게 이 정부의 대북정책, 남북정책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까지 와버렸다.

이정도 해놓고 다음으로 우리가 한번 본질적으로 상황체크를 해야 할 부분은 북의 남에 대한 태도가 확연하게 바뀐 시점이 언제인지 한번 체크해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정확한 해법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문재인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면서 이뤄진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고 난 이후부터가 분명한듯하다.

이때부터 북은 남에 대해 선미후남(先美後南)으로 돌아섰고, 지금은 점차적으로 통미봉남(通美封南)으로까지 이동시켜 나가고 있다.

비례해 북이 문재인 정부와 대통령에 대해서도 지난 적폐정부와 하등 다를바없는 비난을 쏟아낸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약칭, 조평통)가 8월 16일에 발표한 성명이 그 정점이다.

“아래 사람들이 써준 것을 그대로 졸졸 내리읽는 남조선 당국자가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강조, 필자. 여기서 ‘남조선 당국자는 문재인 대통령을 지칭하고 있음)애써 의연함을 연출하며 북조선이 핵이 아닌 경제와 번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역설하는 모습을 보면 겁에 잔뜩 질린 것이 역력하다. 두고 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앉을 생각도 없다.(강조, 필자)”

그렇다면 북이 왜 이런 망발을 쏟아냈고, 위에서와 같이 ‘금강산 남측 시설물 철거’지시와 같은 그런 극단적 조치가 이뤄졌을까하는 문제인데, 여기에는 적어도 3가지 이유는 분명하다.

그 전에 우선 단초를 한번 찾아보자. 북의 김성 UN대사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4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9월 30일)은 그 단초를 분명하게 찾아준다.

“불과 한 해 전 북과 남, 온겨레와 국제사회를 크게 격동시킨 역사적인 북남선언들은 오늘 이행단계에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대사는 “북남선언들의 이행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은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고 돌아앉아서는 우리를 겨냥한 최신 공격형 무기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 군사연습을 강행한 남조선 당국의 이중적 행태에서 기인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우리를 겨냥한 최신 공격형 무기 반입과 미국과 남조선의 합동 군사연습은 상대방에 대한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며, 무력증강을 하지 않기로 합의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에 대한 난폭한 위반이며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데 대한 불만이다. 이름하여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의 핵심은 국제적인 대북제제의 틀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금강산 관광 등 민족내부의 문제만큼은 당사자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전혀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이다.

둘째는, 4.27판문점선언에 따라 남북 간에 조성되어 있는 군사적 긴장과 군비확산문제에 대해 군사적 긴장완화와 군축문제를 그 핵심으로 하는 남북부속합의서까지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F-35A 등 최신 공격형 무기 반입을 하는 등 그 역행에 대한 불만이다.

셋째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북미간의 새로운 관계수립을 위한 그 사전약속으로 한미합동군사훈련과 전략자산무기 반입 등을 중지하기로 약속했음에도 이 약속이 지켜지고 있지 않은데 대한 불만인데, 이 불만이 문재인 정부를 향하는 지점은 미국이 이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을 때는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가 이 약속이행을 미국에게 상기시키면서 미국에 대해 북과 한 약속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선제적으로 한미합동 군사훈련의 불필요성을 미국에게 설득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는 점(백번양보하여 정부의 논리대로 작전권 이양으로 인한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정말로 최소한 꼭 필요하다면 이 문제는 북과 충분히 협의하여 북이 오해하지 않도록 사전 조치 후 시행하는 것이 맞지, 그냥 한미동맹의 논리에 포획돼 주권국가로서의 당연한 권리운운하면서 밀어붙이는 것은 아무래도 남북문제를 풀어가야 할 한 해당국가로서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또 지난 9월 한미정상회담에서와 같이 향후 3년간 무기구매계획을 발표하는 등 군사 분야에서의 부속합의서가 전혀 지켜지지 않는데 대한 불만이 극도로 달한 것이다.

북이 문재인 정부에게 가지는 불만은 이렇듯 명확한 3가지이다. 그러면서 북은 또 향후 남북관계가 복원되고 진전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해법도 내놓는다.

김성 대사의 같은 날 발언인데, 거기서 그는 남북관계 개선문제와 관련해 “남조선 당국의 사대적 본성과 민족공동의 이익을 침해하는 외세 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북남선언의 성실한 이행으로 민족 앞에 지닌 자기 책임을 다할 때에만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바로 위 사실로부터 향후 남북관계가 복원되고 정상화되려면 적어도 2가지 입장이 or적이 아니라, and적으로 결합되어져야만 이제까지 드리워진 남북관계 먹구름이 걷어치워짐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외세 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에서 확인받듯이 민족공조에 나서라는 말이다. 이를 현재 처해진 북미 간, 남북 간의 상황과 조건을 고려하여 정치적 의미로 재해석해내면 한반도 비핵화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한미동맹에 근거해 자리 매김된 중재자 역할 대신, 때로는 판문점선언에서 확인되어진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에 선 당사자 역할로 되돌아오라는 말이고, 특히 금강산관광 재개문제나 개성공단 재개문제와 같은 그런 민족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당사자역할에 충실하라는 말이다.

둘째는, ‘북남선언의 성실한 이행’에서 확인받듯이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을 제발 이행하라는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김성 대사가 UN발언으로 확인되어진 ‘첫째, 둘째, 셋째’문제의식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 전제하에 이를 이번 금강산관광 지구에 대해 ‘남측시설물을 싹 들어내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내용을 대입시켜보면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으로 되돌아와야 하고, 정상간 합의된 남북선언에 대해서는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몸짓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예하면 금강산관광의 경우 대북제재 사항이 아님으로 ‘조건 없이’ 즉시 이행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마련을 위한 남북이 함께 가칭TF(강조, 필자. 명칭은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협상전략팀)을 꾸려 해법을 모색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남북관계의 입구는 반드시 열릴 것이다.

 

통일뉴스, 2019년 10월 26일자와 동시 게재된 글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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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헌정체제가 수립된 후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사회에서 개헌 얘기가 나오지 않은 때는 단 한 해도 없었다. 그런데 최근의 개헌론은 시민사회의 호응이 상당해졌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과거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사실 시민사회에서 87년 민주주의 체제의 ‘실질적 의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시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 그것도 언제부턴가는 경제력 수준이 세계 10위권을 넘볼 정도라고 하는 제법 잘 사는 민주주의 국가의 대다수 시민이 왜 아직도 먹고사는 문제로 힘들어 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도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됐다. 수많은 시민이 양극화의 심화, 비정규직 노동자 및 영세 자영업자의 급증, 청년세대의 불안, 인간 소외 등의 이 심각한 사회 분열 양상을 대체 언제까지 두고만 볼 것이냐고 한탄했다. 2017년 촛불 광장에선 ‘이게 나라냐’는 외침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프레시안
사진 출처: 프레시안

 

한국의 현 사회경제 상황은 “집합적 결정은 다수 혹은 최대다수의 선호에 따른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즉 다수결의 원칙이 관철되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원칙이 (엇비슷하게나마) 지켜지고 있다면 어떻게 이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이익이 소수에 불과한 강자들의 이익에 번번이 압도당하는 상황이, 그리하여 불공정과 불평등이 심화‧확대되는 상황이 이렇게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겠는가. 요컨대, 87년 민주주의 체제에선 다수결의 원칙이 너무도 심하게 무시되거나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교과서적 개념을 따르자면, 87년 체제는 제대로 된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라고 하기도 어렵다. 대의제 민주주의란 민주국가의 주인인 시민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대표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그들을 통하여 국가공동체를 간접 운영하는 민주주의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수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대표를 갖지 못하고 있다면, 즉 대표가 없는 상태로 ‘방치되어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상태에 있는 국가를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라고 인정하기는 곤란하다.

그런데 한국 시민의 대다수는 자신들의 선호와 이익을 대표하는 유능한 정치적 대리인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 소상공인, 청년 등의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들 중 누가 자신들의 유력한 정치적 대리인을 갖고 있는가. 실상이 이러하니 사회 구성원의 다수 혹은 최대다수의 선호가 존중되길 바라는 건 애당초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정치적 대표성을 보장하는 개헌이 이뤄져야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 소임은 일반시민들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정치적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해줌으로써 그들이 사회경제적 강자에 맞설 수 있는 정치적 길항력을 갖추게 하는 데에 있다. 노동이 자본과, 중소상공인이 대기업과, 청년이 장년과,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과 적어도 정치의 장에서는 동등한 파트너십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자유와 평등을 수호할 수 있는 정책과 법, 제도 등은 적절하게 공급될 수 있다.

87년 체제의 수립 이후 만약 대의제 민주주의가 본령대로 작동하고, 따라서 정치가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시장에서의 길항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왔더라면, 한국의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수준은 지금쯤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런데 87년 체제는 약자들에게 정치적 대표성을 제대로 제공해주지 못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양극화의 고착은 그 결과일 뿐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국가 구성원의 대다수인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선호와 이익, 즉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는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를 갖추기만 한다면, 시대정신의 구현, 곧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은 지금부터 시작해도 충분히 달성 가능한 일이 된다. 단, 그러기 위해선, 헌정체제의 개혁 즉 개헌이 불가피하며, 그 핵심 목표는 정치적 대표성을 시민들에게 두루 보장하는 데 있어야 한다.

수, 2018/04/1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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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남한과 북한이 한국전쟁의 종전과 한반도 평화체제의 시작을 반드시 자신들만의 힘으로 추진해야 할 이유는 없다. 북한의 단계적 핵 보유능력 포기는 종전이나 평화체제와 같은 프로젝트와 병행하여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가 곧 실현될 듯도 하다.

이를 통해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가 즉각 다차원적인 가치라는 이점을 누릴 것이다. 과거의 투자와 현재의 필요, 미래의 이익을 고려할 때 이런 이점은 한국과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를 넘어 미국에까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게 상당히 확실해 보이지만, 정부의 많은 관료와 전문가, 언론인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이들 중 상당수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두고 상충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반응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들의 의견은 행정이나 공개토론뿐 아니라 지도자들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번 달 여러 중요한 회의와 기회가 다가오는 만큼 특히 아래 세 지도자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 한겨레)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헤스 (Antonio Gutierrez). 9월에 열리는 유엔총회는 한국 문제에 추진력을 더하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유엔은 회원국이 요청하기 전까지는 행동에 나설 수 없으므로 유엔 사무총장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책임을 피할 변명거리가 있다. 그러나 유엔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위하여 창설되었다. 유엔은 최근 수십 년간 다양한 국면에서 미국의 협박을 받아왔으며, 수많은 일방적 결의안을 통해 마치 북한은 핵 억지력을 가질 합당한 사유가 없는 듯 굴면서도 북한보다 강력한 다른 당사자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협상을 시작하라고 요구하지 못했다.

곧 열리는 유엔총회가 남북한이 진행 중인 협상에 신뢰성과 정당성 그리고 지속성을 부여한다면 과거 유엔의 이 부끄러운 기록이 가려질 수도 있을 것이다. 유엔이 나약함과 불안정성이 과감한 행동의 걸림돌이 되기보다는, 유엔의 그러한 약점이 과감한 행동을 위한 동기가 되어야 한다. 코피 아난의 죽음이 유엔 본부의 뜻을 한데 모으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가 처했던 환경은 오늘날 구테헤스가 처한 환경과는 다르지만, 협박에 맞설 수 있는 정치적 기민함과 능력, 필요할 때는 단호한 그의 모습은 유엔의 역할을 어떻게 활용하여야 하는지 상기시켜준다.

한국 대통령 문재인. 이제 한미 동맹의 진부하고 모양새 사나운 컨셉을 벗어날 때도 되었다. 한미 동맹은 수십 년간 한미 양국에서 반(反) 화해 및 반(反) 민주주의 단체들에 의해 이용되었다. 이는 한국전쟁에서 그리고 그 이후 한국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수많은 국가의 군인과 애국자들에 대한 모욕이다. 현 주한미국대사 해리 해리스(Harry Harris)와 주한미군 사령관 빈센트 브룩스(Vincent Brooks)는 이 단순해 보이지만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한미관계에 대한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왜 이런 한미 동맹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이 청와대를 쥐락펴락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런 믿음의 핵심은 한국이 불안정하고 연약한 동맹국의 지도자가 부리는 변덕에 복종해야 한다는 기대에 있다. 그러나 이 허술한 우정은 교묘한 조종, 공허한 이데올로기, 또는 박애주의의 달콤함으로 금이 가거나 몰락할 수 있기에 지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당혹스러운 발상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길목마다 한미 동맹은 바위처럼 견고하다. 이 순간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의 이익이나 백악관의 정치 혼란을 미국의 이익과 혼동한다면 그것은 용서받지 못할 실수이다. 미국의 이익은 단계적 비핵화,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식, 남북간 평화 구축, 제재 완화 및 경제 발전에 분명하게 맞춰져 있다. 대다수의 노련한 미국인들은 이 점을 알고 있다.

칼럼_180911(4)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Donald Trump). 대통령으로서 트럼프에게는 여러 역설적인 부분이 많다. 그중 하나는 트럼프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야말로 그의 외교정책 중 유일하게 나쁘지 않은 지점이라는 것이다. 부시와 오바마의 한반도 정책이 속절없이 실패하고 있을 때 트럼프는 판을 뒤집었다. 다만 그의 공은 판을 뒤집은 순간, 시작과 동시에 끝났음이 분명해졌다. 미국은 앞으로 수년간 방관자의 태도를 고수할 것이다. 이는 폼페오 미 국무부 장관의 언동이나 미국의 다른 정부 관료들, 그리고 이번 주 한반도 문제를 위한 “조정관”을 임명했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제 다른 누군가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그렇다고 한국과 미국 간 어떤 갈등이 필요하다거나 한반도 상황의 진전에서 미국을 배제하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한반도를 둘러싼 현실로 미국을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격언의 한 구절처럼,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으나,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트럼프가 물을 마시기까지 굉장한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고, 어쩌면 영영 안 마실 수도 있다. 그런데 한반도는 그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미국 정부가 지난번 개발을 위한 북한의 비핵화 거래를 파기한 이후 이미 17년을 기다려왔다. 한국의 대통령 단임제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도 3년여밖에 남지 않았다. 미국 정부의 능력이 급격히 쇠락하는 지금,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의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앞장설 수도 있지만, 이는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단둘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다른 강대국들의 지지 하에, 현재 미국이 채울 수 없는 것들은 오직 유엔만이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게 잘만 된다면 9월은 큰 변화를 불러오는 달이 될 수도 있다.

화, 2018/09/1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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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9월21일 세계평화의 날을 맞이하여 미국내 최대 반전평화단체인 ‘Peace Action, 대표 Kevin Martin이 commondreams.org를 통해 한반도 내 평화를 격려하고 지원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다른백년은 내용을 원문과 함께 번역문을  신속하게 게재하여 평화와 통일을 열망하는 모든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처럼 귀한 한국인들의 평화에 대한 역사적 소망은 전세계, 특히 미국인과 미행정부가 축복하고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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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의 평화라는 열차가 힘차게 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9.21)은 세계평화의 날이지만, 항시 전쟁상태에 빠져있는 미국에서는 주목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Pace e Bene 가 벌리고 있는 비폭력 캠페인 덕분에 미국과 세계 여러 곳에서 평화행동( Peace Action)을 위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세계의 전쟁과 평화 상태에 대한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과 동맹들이 개입한 전쟁의 상황은 참혹하다. 지금 이순간에도 미군의 영향하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예멘, 리비아, 소말리아, 그리고 수많은 국가에서는 소중한 평화 또는 이를 기대할 만한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핵금지조약 (JCPOA)을 성실히 이행한 이란에 대하여, 오히려 자신들이 약속을 파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무력을 통해 협박하고자 애를 태우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주택과 교통시설, 사회기반시설 개선, 교육, 지속가능조건의 확산과 그린경제 등에 투입되어야 할 소중한 세금들이 세계 최대의 전쟁기구에 투입되고 있다. 매우 위험한 유행병처럼, 총기사건, 탈산업화, 이윤추구의 탐욕 등이 잔인스럽게 우리 사회를 불평등과 절망 속에 빠져들게 한다. 세계평화지수에 의하면 163개국 중에 미국이 121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더 낮게 나오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 fire & fury’를 언급하고 이에 북한지도자 김정은이 핵위협으로 대응했던 일년 전을 돌이켜 보면, 누군들 한반도가 이제 세계평화의 밝은 빛을 제공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이번 주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의 평화라는 열차가 힘차게 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한국전쟁의 핑계로 만들어진 유엔사령부라는 허울을 쓴 미군부가 남북간의 철도라인 연결시험운행을 방해한 사건과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다음 주 문대통령과 트럼프가 유엔에서 만나 남북정상간 있었던 대화의 내용을 검토하고 10월 중순 빠른 시일 내 두번째 김-트럼프 간 회담이 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동시에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수주 내에 북한 방문을 재개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한반도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서 남북간 정상회담 결과를 긍정적으로 언급했지만, 그의 현재 정책은 냉전시대의 사고에 머물러 있다. 미행정부는 북한이 수용할 만한 안전보장과 제재완화에 대한 내용의 제안도 없이 일방적으로 북한에게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는 가공할 핵무기체계를 향상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북한에 결핵이 창궐하여 전 지역에 퍼질 상황에 처해 있으며, UNICEF 가 6만명 이상의 어린이가 아사 직전에 있음을 경고한 상황을 감안하면 미국의 조치는 매우 비인조적이다. 

NGO단체들이 북한을 방문하여 식량과 질병의 위기를 지원하려고 인도적 조치에 대한 제재의 완화를 요청하였음에도 미국은 오히려 제재조치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상기에 언급한 철도연결 사업을 훼방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 개설한 남북연락사무소의 설치조차 반대하였다.

미국이 진심으로 한반도 평화를 지원하고자 한다면, 현재의 강경한 재제조치를 즉각적으로 완화하여, 남북이산가족의 만남을 지원하고 북한과 협력하여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전사자 유해반환작업을 지속해야 한다

추가로, 1953년에 잠정적으로 서명한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종전선언의 서명에 동의하여야 한다. 북한은, 자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지구상의 최대 군사작전이며 일년에 두 차례씩 실시하던 한미군사훈련을 중지 또는 축소한 점에 답하면서, 지속적으로 핵무기와 미사일의 개발을 중단하였고, 핵과 미사일 의 주요한 시설을 파괴하고 폐쇄하였다. 이러한 행동對행동(freeze to freeze)의 실천은 지난 동계올림픽 이후 이루어 왔다.

미국 상원의 승인을 득해야 하지만, 이러한 동결행동의 실천은 평화협정의 협상과정에서 남북간 그리고 미군간에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의 감축과 같은 내용을 합의하고 문건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진행은 북한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안전보장에 핵무기가 필요 없다는 것을 확신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이는 최대압력의 제재정책이 아닌 최대 포용정책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한국인들은 1950년이래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분단상황에 대하여 이제는 평화를 이루고 민족간에 화해와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 이처럼 귀한 한국인들의 평화에 대한 소망은 전세계, 특히 미국인과 미행정부가 축복하고 지원해야 한다.

 

Kevin Martin

케빈 마틴씨는 미국내 20만명이 후원하는 평화와 반전운동의 최대조직인

평화행동과 평화행동교육기금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는 또한 한국 내 평화네트워크, 사회정의, 인권과 전역예비군, 한미친선 단체들 등

그룹 또는 개별단위로 협력하고 있다.

토, 2018/09/2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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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최근 대서양을 마주한 미국과 영국의 정치판에 새로운 사회주의 그룹이 강력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Financial Times 의 경제해설가인 Mr. Martin Sandbu 는 북유럽의 사회주의정책에 대한 매우 신선한 시선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는 양국의 사회주의 그룹에게 독선적이고 교조적 입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미래를 열어가도록 몇 가지 조언을 던지고 있다. 우선 북유럽국가들은 세계화에 친화적인 높은 개방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개별 기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외부환경을 국가단위의 강력한 사회안전망으로 유연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역동적 복지국가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부실한 실업복지 탓에 실업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현실에서 격렬한 노조의 저항으로 산업의 구조조정이 심히 어려운 한국의 현실에 매우 소중한 이야기이다. 또한 북유럽이 복지라는 주제를 넘어 혁신과 성장 영역에서 가장 모범적 국가로 성장한 원동력은 노동시장의 강력한 사회연대임금(compressed wage), 즉 임금간 격차를 축소시킨 것이 혁신기제로 작동하여 산업구조의 전환과 신규 투자를 강력히 유도한다는 설명이다. 한국 경제의 현재적 어려움을 모두 최저임금 탓이라고 몰아가고 있는 기득권 세력과 보수언론들이 반드시 귀를 기울어야 할 대목이다. 다른백년은 ‘최저임금의 적정인상’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혁신정책 임을 다시 천명하는 바이다.


 

때로는 가장 예측 가능한 일이 가장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되는 ‘사회주의’ 를 보라. 이들 국가에서 사회주의가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로 재탄생하고 있다.

10 여 년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자본주의의 실패한 민낯을 드러냈고, 덕분에 좌파 정치인들에게도 유권자의 지지를 얻을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선진국의 기존 좌파 정당 중 대다수가 기득권과 타협하면서 정치세력을 키우지 못하고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렸다. 재기가 아니라 후퇴를 하는 듯 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아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좌파 정치인들은 1990년대 소위 “제3의 길”을 거부한 이들이다.

영국에서는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이 당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최근 당원수가 급증한 노동당의 당수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2016년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사회주의운동이 경선에서 인기를 끌며,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이 위협을 느끼며 기부금 모금을 위해 뛰도록 만들기도 했다. 최근 미국의 정가에서는 샌더스와 뜻을 같이하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 그리고 라시다-틀라입(Rashida Tlaib) 등이 민주당의 당선이 확실한 주요 지역구 연방의회의 경선에서 승리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젊은 미국인의 약 절반 가량이 “자본주의”보다 새로이 등장하는 “사회주의”를 선호한다.

그 결과 이 새로운 사회주의자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사회주의는 보편적 의료서비스나 근로조건의 개선과 같은 정책이 작동하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사회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표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반대개념이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지지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코리 로빈(Corey Robin)은 대립적 정치이론으로 “사회주의”를 옹호한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자유를 박탈하는 반면 사회주의는 노동자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경쟁 내지는 양립이 불가능한 제도로 보고 있다.

이러한 개념적 차이는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냉전시대라면 이런 생각이 힘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적 이분법이 가능했을 때에도 북유럽은 분명 자본주의의 경계 안에 속해 있었다. 그저 “자본주의”에 반대되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찬성한다는 것은 새로운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에 가장 근접한 북유럽 사회의 경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그 동안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구성요소, 즉 생산수단의 국유와 사유, 공적 규제와 시장 경쟁, 세금에 의한 재분배와 고용주와 노동자가 결정하는 임금 등을 혼합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혼합경제-mixed economy”라는 말로 표현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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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정책이 바로 보편적 복지라고 불리는 평등한 복지 정책이다.

만약 오늘의 사회주의자들이 이 혼합체에서 자본주의가 하는 역할을 무시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리더를 따를 수조차 없게 된다. “사회주의자” 라고 부르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들은 북유럽에서 다음의 세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

첫째, 북유럽은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포용한다. 이들의 혼합경제 모델은 국제무역 노출도가 높은 국가라는 점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이는 우연이 아니다. 시민들은 무역이 부를 창출한다는 것과, 그러나 급작스러운 글로벌 변동성의 위험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음을 이해했고, 그 결과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보험적 요소에 대한 지지가 높아졌다.

즉 “사회주의”를 표방하려고 한다면, 경제적 개방성만은 확실한 사회주의적 요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미국 좌파는 오히려 무역 자체를 반대해 자신들과 북유럽 모델을 연계하려는 노력을 무력화한다.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이 들고나온 “Lexit”, 즉 유럽 국가 간 원활한 무역을 가능케하는 규칙을 벗어나자는 유혹 역시 마찬가지다.

둘째, 북유럽의 경제평등주의는 개괄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상세내용까지 알려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상세내용이다. 북유럽 모델의 성공은 고도로 압축된 (조세 및 이전지출 전) 시장임금의 분배 등 매우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달리, 부와 자본소득의 분배, 정책을 통한 사회임금 이전 등은 다른 국가들도 시행하는 일반적 내용이다. 북유럽의 성공은 재분배의 극대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국가의 재분배적 권한에 과도하게 의존할 필요가 없는 산업영역의 효율적 경제를 구축함으로써 가능했다.

이는 세번째 교훈과 맞닿아 있다. 북유럽 모델의 성공은 대부분 국가들처럼 직접적 개입이 아니라, 특별히 노동시장 내 사회조직 간의 균형잡힌 상호작용에서 기인한다. 사회주의 옹호자들은 북유럽 경제 내 노동조합의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이들은 경영주들의 합리적 구성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세상을 그저 노동자 대 자본가로만 보면 경영주들이 더 합리적으로 구성될수록 노동자의 권리에는 손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북유럽의 사례를 보면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합리적으로 구성된 조직에서 개별 기업에게 부담인 듯 보이는 사실(예건데 노동조합과 연대임금)이 경영주에게 오히려 전체 비즈니스에 이득을 가져오는지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는 압축된 임금구조(평균적 사회연대임금)가 생산성을 증진시켜왔다. 경쟁력이 없는 산업분야에 노동력을 비생산적으로 사용하기엔 대가가 너무 크고, 차라리 숙련된 노동력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면 기업은 혁신적 산업 분야에 투자를 가속화하고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일 것이다. 같은 논리로써 능숙한 기업 경영인은 기술진보로 인한 혼란을 겪는 노동자와 기업 그리고 정부간의 적응과 조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만약 이것이 영미에서 이야기하는 새로운 사회주의라면,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더욱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며, 북유럽인들은 세계 1,2차 대전 사이에 형성한 자유/중도주의의 위대한 통찰, 즉 지혜로운 정부의 개입은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노동자들에게 더욱 좋은 경제 시스템을 만든다는 주장을 옹호하는 것이다. 기득권과 타협적인 사회주의 중도파는 금융위기 전과 후의 과정에서 나쁜 평판을 얻었을 수 있다. 그러나 새로이 시작하는 사회주의자가 결벽증 때문에 북유럽의 유연하고 역동적인 사회주의를 거부한다면 그들의 목표 역시 좌절되고 말 것이다.

 

Financial Times

마틴 샌드부(Martin Sandbu)

 

 

 

금, 2018/09/2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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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미국의 정계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거센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민주당의 개방적 경선제에 사회민주주의연대(SDA, Social Democrats of America) 회원들이 대거 참여하며 뉴욕주 연방의회 하원 후보로 남미계 30대 약관의 여성 코르테즈(Cortez)가 지명되면서 돌풍을 일으킨 데 이어, 미시간 주에서도 라시다 타리브(Rashida Tlaib) 라는 아랍계 중년여성이 확정되는 등 이제 민주당내에는 SDA에서 참여한 젊은 세대와 유색계통의 여성들이 역사적 대세로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민주당 기존 지도부와 주류언론은 이들 돌풍을 잠재우려 온갖 노력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하지만, 이들 사회민주주의연대의 현실적 정치 목표는 비현실적인 트럼프의 탄핵이나 연방의회의 장악이 아니라, 일단 무기력하고 타협적 현실에 익숙해진 미국 민주당내에서 실천적 변혁을 통하여 보건과 교육 등에 진보적 정책을 실현하는데 있다. 이는 단지 태평양 건너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지율 4-50%선을 유지하면서도 1%선의 민주평화당만큼도 정치적 몫과 역할을 못해내는 집권여당인 한국의 민주당에 던지는 경고이자 메시지이다. 현실 안주와 타협 그리고 민생과 민본을 외면한 채 자신만의 정치공학적 행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한국사회 전망과 더불어 집권여당 민주당의 미래는 암울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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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다 타리브(Rashida Tlaib)가 자신의 디트로이트 선거운동 본부에서 민주당 하원의원 예비선거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사진: 뉴욕타임즈 안소니 란지로테 (Anthony Lanzilote))

지난 화요일 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의 일원인 라시다 타리브(Rashida Tlaib)가 미시간 주 예비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무슬림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의회에 입성할 가능성을 굳혔다. 미주리 주 주민투표에서는 공화당 주 의회를 통과한 반 노조법안, 일명 “일할 권리(right to work)” 법안이 2대 1의 표차로 폐기되었다. 예상하지 못한 승리는 또 있었다. 진보성향의 미주리 퍼거슨 시의원인 웨슬리 벨 (Wesley Bell)이 오랜 시간 한 사람이 독점한 세인트 루이스 카운티 검사직을 사실상 쟁취하게 되었다. 많은 인권운동가들은 기존 검사가 지난 2014년 경찰이 10대 흑인소년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을 총으로 사살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고, 그 결과 폭동을 야기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음날 뉴스의 헤드라인은 민주당 내 좌파가 벽에 부딪혔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타리브의 승리로 미 의회 내에 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이하 D.S.A.)의 목소리가 대변될 가능성이 배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CNN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의 운동이 예비선거에서 그다지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다”라고 했고, 미국 정치전문 일간지 폴리티코는 “사회주의의 추락”을 단언했다. Fox News는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와 오카시오-코르테즈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선구자의 불씨는 꺼졌다”라는 헤드라인을 내보냈다.

이런 식의 보도는 오카시오-코르테즈가 급작스레 주목을 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유명세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손에 땀을 쥐는 쉽지 않은 과정을 통해 경선에서 승리했고, 자신의 가치를 카리스마 넘치게, 열렬하게 대변해왔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민주당의 새로운 얼굴로 부상하면서 킹메이커로서 그녀에게 거는 기대가 터무니없이 커져버렸다. 

사실 좌파 후보들의 예비선거 패배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예비선거에서 이기는 좌파 후보들이 반가운 놀라움이다. 따분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진보정치의 진정한 이야기는 반갑지만 익숙하지 않은 좌파 실용주의의 발생 덕분에 생기는 크고 작은 승리를 꾸준히 축적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꽤 최근까지 좌파 선거운동의 가장 눈에 띄는 실체는 남루한 녹색당(Green Party)이었다. 이는 오하이오의 12번째 하원의원 선거구에서 치러진 특별선거에서 자신을 외계인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조 맨칙(Joe Manchik)이 1,129표를 획득하며 힘을 과시했다. 이때 민주당의 대니 오코너(Danny O’Connor)는 공화당 후보를 1,564표 차로 뒤쫓고 있었고, 아직 개표하지 않은 잠정투표가 3,500표의 잠정투표가 남은 상황이었다.

 

녹색당이라는 대안이 없었다면 맨칙을 지지한 상당수의 유권자가 과연 민주당에 힘을 실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끝없는 논쟁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이제껏 녹색당이 습관적으로 비운의 3등 역할을 하며 그들의 표면적 가치를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인가 했다는 증거는 보지 못했다.

 

녹색당은 때로 이러한 선거를 두고 운동을 시작하는 도구라 정당화하지만, 실제로 어떤 운동을 시작하지는 않는 듯하다. 랠프 네이더(Ralph Nader)는 2000년 대통령선거 이후 내게 녹색당의 허술함을 설명하며 “녹색당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확대하는 법을 모른다”면서, “녹색당만의 독특한 성격입니다. 기금 마련을 싫어하고, 마을과 공동체의 소수자 중 한사람으로서 조용히 살고자 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와 달리 좌파 운동의 새로운 세대는 자신의 의견을 확장하는데 능하다. D.S.A.만 보아도 2016년 선거 이후 상당한 좌파 정치 권력을 쌓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네이더가 조지 부시(George W. Bush)의 당선을 도운 이후 지난 18년간 녹색당이 쌓은 것보다 더 많다.

 

1990년대 기독교 우파(Christian Right)가 그리하였듯이, 정의를 추구하는 민주당원들(Justice Democrats)과 노동가족당(Working Families Party) 등의 단체를 포함하는 이 신세대 좌파 유권자들은 민주당을 바닥부터 갈아엎으려고 하고 있다. 이 활동가들은 지역 형사 정책을 즉각 개혁할 수 있는 방법인 검사 선출에 특히 집중해왔다. (필라델피아에서는 지난해 좌파단체의 도움으로 인권변호사인 래리 크라스너(Larry Krasner)가 지방검사에 선출되었다. 그는 여러 개혁안 중 하나로 경범죄 및 비폭력 중범죄에 대한 현금 보석을 종결했다.) 

오카시오-코르테즈와 샌더스가 지지하는 후보 몇 명이 지난 화요일 예비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맞다. 미시간 주지사 경선과 캔자스 의회 경선에서 각각 패한 압둘 엘-사예드(Abdul El-Sayed)와 브렌트 웰더(Brent Welder)가 그들이다. 그러나 해당 선거의 승자인 미시간의 그레첸 위트머(Gretchen Whitmer)와 캔자스의 샤리스 데이비즈(Sharice Davids)가 주류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은 민주당의 중심이 얼마나 많이 좌측으로 움직였는지를 보여준다.

위트머(Whitmer)는 최저임금 $15와 마리화나 합법화, 주 유치원 보편화(statewide universal preschool)을 지지한다. 데이비즈는 미국 원주민 출신 레즈비언이며, 전직 이종격투기 선수이자 변호사, 그리고 배드애스 페미니스트로서 선거에 임하고 있다. 데이비즈의 선거 광고 중 하나에는 그가 복싱장에서 훈련 중인 모습이 등장하기도 한다. 해당 광고에서 데이비즈는 “2018년이다. 여성, 미국원주민, 동성애자, 실업자, 불완전취업자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분명한 사실 하나. 트럼프와 공화당은 우리에게 관심도 없다.” 

데이비즈의 선거운동은 정체성과 표현을 강조하는 반면, 그에게 패한 웰더는 포퓰리스트 경제학을 강조했다. 민주당은 오랫동안 이 진보적인 우선순위들 간의 정확한 균형을 따지려 할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들 모두가 진보적인 우선순위들이라는 것이다. 데이비즈의 승리 후, 오카시오-코르데즈는 그에게 축하 트윗을 보냈다. “당신의 승리는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습니다.”

“혼란에 빠진 민주당”이라는 표현은 민주당이 스스로를 일컫는 표현이다. 하지만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전쟁인 것은 아니다.”

 

미셸 골드버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더 네이션(The Nation)의 선임작가로도 활동했다.

목, 2018/08/1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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