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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중 위기’와 사측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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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중 위기’와 사측 전략?

익명 (미확인) | 월, 2018/12/31- 12:53

[목차]

  1. 진짜 경영위기 맞나?
  2. 일시적인 위기인가, 근본적 위기인가?
  3. 위기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나?
  4. 사측의 예견되는 전략
  5.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현대차의 일부 현장 활동가들은 작금의 현대차 위기를 아직도 다소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기껏해야 몇몇 악재 때문에 발생한 일시적 경영악화 내지는 인위적인 수치조작을 통한 회사 측의 의례적인 ‘엄살’ 정도로 받아들인다. 적어도 현대차에 있어선 앞으로도 당분간 지난 1998년과 같은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이다. 그 근거로 사측과 노조는 이미 단체협약을 통해 대략 매년 2천 명씩 발생하는 정년퇴임을 통한 자연감축 방식으로, 향후 10년간 2만 명을 줄이기로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 6만여 명의 인력이 4만 명 정도로 축소되게 되어, 미래차 보급에 따라 엔진이나 변속기 등 기존 부속품이 없어지게 되는 것에 따른 인원감축 분을 얼추 맞출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 공연히 대규모 구조조정 운운하는 것은 현장에 불안감만을 조성하고, 오히려 ‘고통분담’을 호소하는 회사 측에 좋은 빌미를 제공할 뿐이라는 것이다.

과연 지금의 현대차 위기는 이렇듯 대규모 구조조정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낙관적’인 것일까? 일부 활동가들의 이 같은 판단과는 달리, 현장 내 30~40대 비교적 젊은 층의 정서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감도는 것 같다. 50대 이상의 고참 들이야 이제 곧 정년퇴임할 것이기에 걱정이 덜 하겠지만, 아직도 창창하니 현대차에 머물러 있어야만 하는 젊은이들로서는 그렇지가 않은 가 보다. 그들은 아마도 정년을 다 채울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욱 강하다.

이들 젊은 노동자들의 걱정은 사실 공연한 것이 아니다. 사측 경영진 스스로가 현재 현대차의 미래에 대해 별로 자신감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다음의 인용문을 한 번 보도록 하자.

“현대·기아차 경영진은 최근 판매량 회복 시점을 전망한 내부보고서를 보고 혼란에 빠졌다. 이 보고서에는 미국과 중국시장 판매량 회복이 단기간에 불가능해 최대 판매량(801만대)을 기록했던 2015년 수준으로 올라오는 시점을 5년 뒤인 2023년으로 봤다. 2023년 판매량이 회복되더라도 세계시장 점유율은 2015년 8%대에서 7%대로 떨어진다. 이 같은 전망도 신차 라인업을 다양화하고, 신흥시장에서도 견조 한 성장을 지속한다는 전제에서다.” ([현대차 大해부]② “美·中빅마켓서 고전… 판매량 회복까지 최소 5년”, 조선닷컴, 2018.05.30.)

다소 비관적인 이 같은 판단은 학계와 자동차업계, 증권업계 애널리스트 등의 주류적인 생각인 것 같다. 이들은 현대차가 내년까지 미국과 중국시장에서 어려운 상황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며, 최소한 “새로운 신차 사이클이 시작되는 시점까지는 고전이 계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필자가 보기엔 이러한 판단 역시도 아직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측면이 있다. 이들은 지금 현대차의 경영위기가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 그 근원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하다. 또 현대차가 향후 부딪치게 될 자동차업계의 대변혁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 사실을 말하면, 지금의 위기는 현대차의 존폐와 관계될 뿐만 아니라, 조만간에 한국경제 전반을 혼란으로 몰아넣을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생각은 필자의 기우에 불과할까?

본인이 그렇게 판단하는 데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지금 불행하게도 현대차는 ‘3중 위기를 동시에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국제 자본주의 위기, 한국경제의 위기, 그리고 현대차의 자체 경영위기다. 이하에서 이들 하나하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1) 국제 자본주의 위기

먼저, IMF 외환위기 때와 지금의 국제적 상황이 크게 달라졌음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 미국의 국제적 패권 지위가 크게 흔들리는 중이다. 이 때문에 세계 자본주의는 지난 금융위기 이후 수습은커녕 시간이 갈수록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지금 일국적 차원을 벗어나 지구화단계에 들어선 자본주의에 있어서는, 누군가가 나서 전 지구적 차원에서 세계경제의 균형자적 역할을 해줄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신자유주의가 한창 기세를 떨칠 무렵인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그 같은 역할은 미국의 몫이었다. 미국은 자신의 달러패권을 이용하여 세계경제에 있어 ‘소비중심’으로서의 역할을 나름대로 수행하였으며, 이를 통해 세계 자본주의는 자신의 과잉생산 압박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도 2008년 금융위기를 맞이한 이후에는 태도가 달라졌다. 지금은 제 살 궁리에 급급한 실정인데, 현재 미국과 유럽을 휩쓸고 있는 포퓰리즘의 열풍은 신자유주의 이후 방향을 찾지 못하는 자본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계 자본주의는 지금 ‘일국주의’로 후퇴하느냐, 지구화를 향한 전진을 계속하느냐의 갈림길에 서있으며, 현재 횡행하는 보호무역주의는 세계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자본주의 전반의 모순을 한층 격화시킬 것이다.

지금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중미 간 무역전쟁은 미국의 대중 억제전략, 그리고 미국경제 자체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올라온 사정이 함께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발하였다. (필자의 레디앙 발표 글, “중미 무역전쟁―패권국가 미국의 최후 공세” 참조) 자력만으로는 자국 경쟁력의 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충분히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미국은 자신의 패권국가의 지위를 최대한 활용하여 다른 나라에 자신의 부담을 전가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그간의 중·미 간 무역전쟁의 진행과정이 보여주었듯이, 중국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기에 다른 동맹국들에게 부과되는 ‘고통 분담액’은 반대급부로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점이 미국이 전통적인 동맹국이라 할 수 있는 유럽연합과 일본, 그리고 멕시코·케나다 등을 포함하여 그야말로 적과 우군을 가리지 않고 지금 무차별적인 무역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이다.

미국은 현재 거대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그리고 빈부격차의 심화와 고용불안으로 인해 광범위한 저소득층의 불만이 폭발직전에 와있다. 이처럼 ‘자기 코가 석자’ 인 상황에서 다른 동맹국들의 형편을 봐줄 수 있는 형편이 전혀 아닌 것이다.

이처럼 한국이 1997년 IMF 위기를 맞이할 때와는 상황이 분명히 달라졌다. 그 땐 미국이 소련의 붕괴로 인해 유일패권의 지위를 확고히 하였으며, 국제 자본주의 지도자로서 나름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 같은 미국이 이끄는 세계 자본주의는 당시 외환위기에 처한 한국경제에 대해 어느 정도 활로를 열어 줄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한국은 외환위기를 비교적 빨리 소화할 수 있었으며, 이후 세계경제의 확장기조와 인접국인 중국시장의 지속적인 확대, 그리고 엔고와 같은 유리한 조건들을 십분 활용하면서 다시 재기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이젠 그러한 조건들이 대부분 사라진 상태이며, 다만 엄중한 각국 간의 경쟁만이 남아 있다. 트럼프가 취임한 직후 즉각 한미FTA 재협상을 요구한 데서 보듯, 미국은 오히려 자국시장을 방어하고 한국시장을 공략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당장 걱정되는 것이 미국의 ‘자동차관세 25%’이다. 얼마 전 GM이 미국 내 5개와 해외 2개 공장에 대한 폐쇄와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 하자, 트럼프대통령은 “수입자동차 관세를 매기면 GM공장이 문을 안 닫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트럼프의 이 같은 위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이 때문에 유럽연합을 비롯한 주요 대미 자동차수출국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 G20의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을 통해 중미 무역전쟁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이 카드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 이는 현대차를 포함한 전체 한국 자동차산업에 또 다른 커다란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르노삼성자동차와 한국GM의 국내 생산량은 반 토막 날 것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또 한 해 50만~60만 대 정도 대미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현대-기아차로서도 생산 공장 2개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정도의 타격을 입게 된다. 이쯤 되면 현재 고사 직전의 부품회사들도 곧바로 직격탄을 맞고 무너질 공산이 크다. 현대차 노조가 “만약 미국의 한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25% 관세폭탄이 현실화되면 대재앙 쓰나미로 다가와 한국자동차산업 몰락의 핵폭탄이 될 것” (현대자동차지부, 2018년12월10일자 성명) 이라고 말한 것은 결코 과장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2) 한국경제의 위기

지금 세계는 유례없는 신 과학기술혁명의 파도 한 가운데에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처 미래기술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한국은 자신이 그동안 자랑해왔던 제반 분야들을 하나 둘씩 내려놓고 있는 중이다. 처음 조선업종에 이어 지금은 자동차, 그리고 머지않은 장래에 반도체로 확대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재벌경영’의 구조적 족쇄에 갇혀 있는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물론이고, 국가적 차원에서도 별 다른 뾰쪽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기술혁명은 그 어느 때와 달리 개별 기업차원의 혁신능력뿐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전 국가적 차원의 종합적인 혁신체계 구축이 요구된다. 국가는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체계 및 연구시설과 함께, 주택·의료·환경 등의 복지시설을 제공할 의무를 짊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튼튼한 사회보장체계의 구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 그러나 취약한 재벌체제에 기초한 한국의 국가권력은 이런 면에서 볼 때 너무나도 부족하다. 능력과 의지 모두 결핍되어 있는데, 더욱 한심한 것은 지금 와서 이러한 것들을 갖추기에 이미 시기가 상당히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혀 그를 위한 사회적 합의조차 이루어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사회 역시도 이미 기존의 산업구조와 사회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안 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변화를 위한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 전형적인 위기상황임을 알 수 있다.

한국사회는 그 대신 늘어만 가는 비정규직으로 인해, 빈부격차와 사회갈등은 날로 심화되고 인재는 고갈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더욱 황폐해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이미 15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이다. 이미 통제력을 상실한 가계부채는 날마다 새로운 기록을 갱신하면서 도대체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최근 저신용·저소득자가 주로 몰리는 2금융권의 대출이 많이 불어난다는 소식은 매우 불길한 징조로 들린다. 그것은 벼랑 끝에 몰린 한계 채무자들의 마지막 도피처일 가능성이 크다. 금리가 은행보다 훨씬 높은 보험·카드사·대부업 등 제2금융권의 대출은 올해 3분기까지 19조원이 늘어나서 대출 잔액은 이미 414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전체 가계대출의 27%를 차지하는 것이자, 2017년 한국 전체 GDP의 25%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이처럼 위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한국경제의 전반적 상황은 현대차의 경영위기탈피 가능성을 더욱 낮게 한다. 현대차가 당면한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내수의 뒷받침과 함께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는 그럴만한 여력이 없는 실정이다. 오히려 향후 경제위기와 서민층 파산의 급증으로 내수의 급격한 위축이 예견되는데, 이는 현대차의 경영위기를 진일보 촉진하게 될 것이다.

(3) 현대차 자체의 경영위기

현대차는 지금 전통 내연기관차 부문에서는 중국의 급속한 추격으로 인해 기존의 지위를 위협받고 있으며, 미래차(친환경차, 지능형차) 분야에서는 세계 선두그룹들과 비교해 추격이 쉽지 않을 만큼 거리가 생긴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이하 두 가지 사실은 앞으로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a) 이미 급락한 영업이익률을 단기간에 회복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듯이 영업이익률은 연구개발비 규모와 비중을 결정하는 객관적인 제약조건이 된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도 시급한 연구개발투자가 크게 제약될 것이라는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폭스바겐, 도요타, GM 등 세계 주요 메이커들은 하나 같이 기존 내연기관차 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을 아직 수익이 나지 않는 미래차의 연구개발비로 쏟아 붓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처럼 기존 내연기관차 분야에서 일정한 영업이익률이 올라주어야 미래차 경쟁에서도 뒤처지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엄중한 상황에서 이제 적자 직전까지 내몰리고 있는 현대차의 경영성적은, 향후 연구개발투자를 근본적으로 제약하게 만들어 선두주자와의 격차가 좁혀지기는커녕 더욱 벌어지게 만드는 악순환을 발생시킬 수 있다.

(b) 여전히 ‘후계승계’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는 불안한 리더쉽. 총수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먼저 고려해야하는 한국의 재벌경영은 위기 극복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핵심 사업으로의 집중을 위해 비업무용 부동산, 세계 각지에 편재한 생산기지, 관계회사와의 복잡한 거래를 과감하게 정리하는 것은 한국 재벌의 속성 상 쉽지가 않다. 이 점은 GM이 위기 극복을 위해 취했던 태도와 좋은 대조가 된다. GM은 지난해에 독일 자회사 오펠과 영국 복스홀을 매각하면서 유럽 시장에서 과감히 손을 뗐다. 이어서 인도나 남아공 등에서도 잇따라 철수하여, 미국과 중국 등 돈이 되는 거대 시장에만 집중하는 전략으로 수익을 늘렸다. 이렇듯 구조조정을 통해 절감한 비용과 자산은 대부분 자율주행차와 카셰어링 등 신사업에 투자하였다. 그 결과 올 초 미국의 기술평가업체인 내비건트리서치로부터 자율주행차 개발에 나선 기업들에 대한 기술력과 비전, 상용화 전략, 생산력 등 10개 지표에 대한 종합 평가에서 GM이 가장 앞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차 大해부]①’800만대의 저주’에 갇힌 현대차‘)

재벌경영으로 얽히고설킨 현대차가 이렇듯 오직 회사만의 발전을 위한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향후 현대차 위기와 한국경제의 위기는 서로 맞물리며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최대 자동차업체인 현대기아차그룹의 위기는 그 자체로서 한국경제 전반의 위기를 촉진 할 것이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생산액과 부가가치, 수출액, 종업원 수 모두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략 10%로 단일산업 중 규모가 매우 크다. 산업네트워크 분석을 통해서 보면, 자동차산업 및 1차 금속제품 산업이 우리나라 제조업에서 중심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들 산업은 겉으로 드러난 성과보다도 국민경제에서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i-KIET산업경제이슈, 제6호, 2017년2월6일) 이 같은 국민경제에 있어 핵심적인 지주산업의 몰락은 기존 조선업 불황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충격을 가져올 수밖에 없으며,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한꺼번에 사라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업체와 8800여 곳에 달하는 협력업체가 직접 고용한 인력은 35만5000명이다. 판매 및 물류, 서비스 등 간접고용 인력까지 더하면 국내 자동차산업의 고용 인력은 17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도처에 인화물질로 겹겹이 둘러싸인 현대차는 사실상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 현대차의 예견되는 앞날은 도대체 어떠한 것일까? 필자가 보기엔 근본적 전환의 계기를 지금 마련하지 못한다면 독자생존이 어렵다고 본다. 기존의 내연기관차 시대에는 나름대로 틈새시장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앞으로 완전자율주행과 차량공유의 시대가 오면 어차피 세계 자동차시장은 플랫폼 경쟁에서 앞서있는 소수의 업체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기술혁명은, IT와 기존 고급 기술력을 가진 두 선진 부분의 연합에 의한 소수 몇 개의 메이저를 중심으로 세계 자동차산업을 재편하게끔 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가다가는 현대차를 비롯한 한국 자동차산업 전반은 이들의 하위 파트너 내지는 심지어는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기술종속과 플랫폼 의존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지금 애플이 대부분의 핸드폰 제조회사로부터 높은 사용료를 받아 가듯 상당히 높은 특허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하청업체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아직 완전히 공개되지 않은 대형악재 하나가 현대차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필자의 이 같은 판단에 힘을 실어준다. 그것은 ‘대형 리콜사태’인데, 지난 2015년9월과 2017년3월 미국에서 실시된 현대차와 기아차의 세타2 엔진 결함 리콜에 대한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의 적정성 조사 결과가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포쓰저널>의 김성현기자가 쓴 기사에 따르면, NHTSA는 이미 조사를 마무리한 채 현대 기아차 측과 벌금 액수 등 후속조치에 대한 합의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며, 최종 결과는 이르면 12월 늦어도 내년 초에는 나올 전망이다. 조사 대상은 2011년―2014년 식 세타2 엔진을 장착한 현대차와 기아차 등 총 6개 차종인데, 이들을 모두 합치면 대략 290만대나 되는 규모이다. 해당 차종에서 이미 ‘미충돌 발화 사고’로 사망자까지 발생한 상태인데, 미국 정비업계에 따르면 현대 소나타를 기준으로 할 경우 엔진 교체 비용은 대당 300만원 안팎으로, 총 8조5천억 원 가량이 소요 될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기준으로 볼 때 현대차 2년간의 순이익에 해당되는 액수이다. 여기에다 만약 현대·기아차가 엔진 결함을 속인 것으로 판정되면 형사처벌과 민사상 손해배상이 더해지게 되며, 미국 시장에서의 이미지 실추와 신뢰도 추락까지 감내해야 한다.(“현대차·기아차 세타2 엔진 발화원인 ‘거짓보고’ 의혹 NHTSA 조만간 결론”, 포쓰저널, 2018년11월20일자)

그렇잖아도 경영위기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현대차에게 있어 이 사건은 결정타가 될 수도 있다. 국제 독점자본은 그때쯤 가면 아마도 각종 내우외환의 위기에 빠진 현대차를 헐값에 인수하거나, 지배주주 자격으로 자본 참여를 통해 자신의 글로벌 생산체계에 편입시키려 할 것이다. 한국 재벌과의 연합은 그들에게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직접 표면에 나서지 않고서도 한국의 잘 정비된 ‘비정규직제도’와 국가의 특혜를 충분히 활용하면서 초과착취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위기 시나리오’가 지금 당장 실현되기 보다는 향후 몇 년 간에 걸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부자가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 말이 있듯이, 명색이 세계 5대 자동차 메이커의 하나면서 국내에 독점적 지위를 구축한 현대기아차그룹은 향후 일정한 시간을 두고 쇠락해 갈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3중 위기’에 직면한 현대차는 ‘주관적 의지’만 가지고서는 지금의 하강 추세를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회사는 가능한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위기의 전면적 폭발을 누르려 할 것이지만, 그러나 위기의 점진적 진척을 막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고찰로부터 우리는 현대차 경영진이 들고 나올 카드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기술적 변화를 감안 하고 중국의 맹렬한 추격을 염두에 두면서, 결국 가까운 시기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회사 측은 오히려 ‘어차피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대차 경영위기를 역공의 기회로 삼으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마침 지금은 문재인정부가 경제위기로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며 구석에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현대차가 자신의 경영위기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차츰 구조조정 전략을 구체화한다면, 추가적인 다음과 같은 이득도 기대할 수 있다. 즉 경영위기는 현대차 개별 자본만의 문제가 아니며, 또 ‘재벌경영’ 때문에 생긴 것도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경제 전반의 거시경제 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과오를 덮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이며, 거기에다 ‘경제위기’의 책임을 문재인정부에게 돌림으로써, 이 정부의 재벌개혁에 대한 예봉을 꺾어 ‘타협적’이게 만들 수 있는 계기로도 삼을 수 있다.

어찌되었든 현대차 정규직노동자와 사측의 지금까지의 일종의 잠정적 타협과 휴전의 시기는 점차 지나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현대차는 이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여 기존의 경영전략을 일대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있다. 현대차의 운명에 있어 남은 것은 두 가지 방향밖에 없다. 자본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의 구조조정이든지, 아니면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재벌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든지 둘 중 하나이다. 분명한 것은 그 어느 쪽이든 지금까지의 ‘산업평화’는 깨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며, 그에 따른 상호간 ‘위기’의 책임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회사는 벌써부터 현장규율 강화를 들먹이며 현장의 주도권을 탈환하려는 움직임을 점차 노골화하고 있다. 예년과 다르게 금년 초부터 관리직 200여명에 대한 권고사직을 실시하였고, 그밖에도 노조 감시용 혐의를 받고 있는 ‘담장 감시카메라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사측은 또 지난 11월16일자로 의장3부 B조 도아반원 대부분에 대해 ‘작업표준 미준수(변칙근무)’를 이유로 중징계(감봉)하는 조치를 내렸다.

물론 이와 함께 회사 측 말을 잘 듣는 어용 대의원과 노조간부의 양성 작업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현대차노조를 확실히 자신들의 통제 하에 두어야만 앞으로 경영위기의 진척에 따른 일감 줄이기, 인원감축, 노동강도 강화 등의 구조조정 작업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용 대의원들에 대한 매수 작업도 사실상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2000년대 초 경기가 좋을 때와는 달리 이들을 돈으로 달랠 수 있는 재정 기반이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재벌이 그간 정규직과의 타협을 가능케 했던 물적 조건은 지금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현대차가 위기 심화정도에 따라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다분한 가운데, 일부 활동가들이 아직도 사측과 노조가 향후 10년간 2만 명의 ‘자연감소’를 협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별반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상황인식이 대단히 느슨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문제는 그 ‘10년’ 이란 긴 세월에 있다. 지금처럼 4차 산업혁명의 진행 속도가 빠르고, 지금까지의 내연기관 시대와 획을 긋는 자동차업계의 일대 혁명적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시기에 있어 10년이란 세월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아주 긴 세월’이 된다. 그 동안 어떤 일도 발생할 수 있으며, 실제 경제위기가 도래할 경우 자본가들의 약속은 반 푼 값어치도 안 되는 한 장의 종이쪽지에 불과하다. 안이하게 그들의 약속을 믿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는 ‘허약한’ 노조에 대해 자본가들이 신의를 지켜야 할 이유가 있을까.

 

Redian, 12월 16일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는 공동게재에 동의함).

시민들의 의견

(사)다른백년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단비뉴스팀과 함께 ‘사랑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6편에 걸쳐 우리 주변의 삶을 들여다본다. 장시간 노동자, 청년 실업자, 경쟁에 시달리는 직장인, 노인, 청소년들이 그들이다.  

노인은 말동무를 찾아 매일같이 탑골공원에 간다. 취업 못한 청년은 안전한 직장을 가질 때까지 스스로 고립된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직장인은 연인을 만날 시간조차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사랑은 사치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다. 

당신은 사랑하고 계십니까. 

<프롤로그> 1. “들어줘서 고마워”      2. 한국인의 밥상

한국에서 ‘식구(食口)’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2014 국민 건강 통계’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 3417명 중 가족과 함께 아침을 먹는 사람은 44.7%로 절반이 채 안 됐다. 이는 2005년 조사 결과인 62.9%보다 18.2%포인트가량 줄어든 수치다.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다고 대답한 사람도 64.9%로 3명 중 2명에 불과했다.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사람의 비율은 2005년 76.1%에서 2008년 68.6%, 2012년 65.7%로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

반면, ‘혼밥족(族)’은 늘고 있다. 지난해 SK텔레콤이 대학생 및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혼밥 실태 및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96.4%가 혼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혼밥을 경험하지 못한 이는 3.6%에 불과했다.

특히 일주일에 10회 이상 혼자 밥을 먹는다고 답한 사람은 3명 중 2명(66.8%)이었다.

#1. 마트근무자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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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근무자 이모씨(26)의 저녁 밥상.

마트 근무자 이모(26)씨는 제육볶음과 오징어젓갈, 콩자반으로 늦은 저녁을 먹는다.

이씨는 9시 30분부터 21시 30분까지 일한다. 식사시간에 편히 밥을 먹지도 못한다.

이씨는 방직공장에서도 두 달여 일했다. 6시에 출근해 15시에 퇴근했고, 주간 조일 때는 13시부터 23시까지 일했다. 30도가 넘는 뜨거운 공장에서 쉬는 시간 없이 일했고 주말도 출근했다.

몸이 버티지 못해 그만두고 두 번 만에 새 직장을 구했다. 직장 근처에서 집을 구하다 보니 친구와 연락이 뜸해졌다.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이씨는 “일도, 사람도 쉬운 게 없다”면서 “힘들 때 서로 다독일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 노량진 고시준비생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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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준비생 이모씨(27)씨의 밥상

노량진 취업 준비생들은 고시 뷔페에서 홀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다.

한 끼에 4천5백 원 수준이지만 한 달권을 끊으면 더 저렴하다. 이모(27)씨도 그중 하나다.

급하게 점심을 먹고 나온 그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씨는 경찰공무원을 준비 중이다. 노량진에 온 지 넉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매주 어울리던 친구들을 만날 겨를 없이 바쁘게 산다. 연애는 합격 이후로 미룬 지 오래다.

매일 마주치는 학원 수강생들과 인사를 나누거나 함께 스터디를 하는 일은 없다. 그는 저녁에도 같은 고시 뷔페에서 끼니를 때울 생각이다.

#3. 자영업자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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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박모씨의 밥상

박모(61)씨는 남편과 24시간 편의점을 운영한다. IMF 끝 무렵 남편이 명예퇴직을 당하고 알음알음으로 시작한 일이다.

인건비를 줄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몰라 부부는 하루를 둘로 쪼개 반씩 근무를 한다. 교대시간 전후 두 시간 남짓이 박씨가 하루 중 애들 아빠를 만나는 유일한 시간이다.

오전 10시 반. 박씨는 늦은 아침과 이른 점심 사이의 첫 끼니를 먹는다. 다시 오후 3시 반. 남편이 오고 박씨는 빈집으로 돌아간다.

주말도 휴가도 없는 연중무휴의 도돌이표 하루는 12년째다. 박씨가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그거 두 개 사면, 하나 더 드려요”다. 서른 발자국만 가면 있는 이웃 편의점에 대해 그는 “얼굴도 몰라요”라며 웃었다.

#4. 고3 수험생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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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수험생 이모군(19)의 밥상.

이모(19)군은 대치동 패스트푸드점을 찾았다. 휴일이라 집에서 공부하다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나왔다. 혼자 햄버거를 먹고 다시 돌아갈 생각이다.

‘수능이나 대입 준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냐’는 질문에 “6월에 모의고사가 있어서 부담되지만 자신있다”고 답했다.

한 살 많은 여자친구와 지난해 헤어졌다. 수시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여자친구는 공부를 이유로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다.

관계를 묻는 말에 “가족과의 사이도 친구와의 사이도 나쁠 건 없다”며 별로 생각해 본 적 없는 듯 무심하게 답했다.

#5. 직장인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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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모씨(54)의 밥상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모(54)씨는 영어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막 학원에서 강의를 듣고 오는 길이었다.

단출한 파이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이 그의 점심이었다. 김씨는 끼니를 때우면서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했다.

모 대기업에서 일하는 그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영어학원에 다닌다. 정년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꼭 필요한 영어를 놓을 순 없다.

추가 질문에 난감해하던 김씨는 “제가 영어 듣기를 해야 해서”라고 말하며 이어폰을 꽂았다.

혼자 식사를 하는 이유는 세대별로 달랐다. 최근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오유진 박사가 ‘1인 가구 증가 양상 및 혼자 식사의 영양’이라는 보고서에서 20~60대 직장인 4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대는 혼밥을 하는 이유로 ‘여유롭게 먹을 수 있어서’(24.2%)를 가장 많이 꼽았다.

반면, 30대 이상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식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30대와 50대 이상은 ‘같이 먹을 사람을 찾기 어려워서’ 홀로 먹는다고 답한 비율(30대 38.7%, 50대 37.9%)이 가장 많았다. 40대는 ‘시간이 없어서’ 홀로 먹는 비율이 29.2%로 10명 중 3명꼴이었다.

한국인에게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닌 타인과 관계를 맺는 매개체다. 함께 밥 먹으며 소통함으로써 정신적인 유대감이 생기고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된다. 하지만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누군가와 함께하는 식사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일, 2017/02/05-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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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른백년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단비뉴스팀과 함께 ‘사랑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6편에 걸쳐 우리 주변의 삶을 들여다본다. 장시간 노동자, 청년 실업자, 경쟁에 시달리는 직장인, 노인, 청소년들이 그들이다.  

노인은 말동무를 찾아 매일같이 탑골공원에 간다. 취업 못한 청년은 안전한 직장을 가질 때까지 스스로 고립된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직장인은 연인을 만날 시간조차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사랑은 사치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다. 

당신은 사랑하고 계십니까. 

<프롤로그> 1. “들어줘서 고마워”      2. 한국인의 밥상

# 1. 

김모(남·80)씨는 28년간 부동산 임대 관리업을 하다가 재작년에 일을 그만뒀다. 지난해 이맘때 아내가 골수암으로 사망하면서 처음으로 탑골공원을 찾았다.

일주일에 다섯 번가량 탑골공원에 오는 김씨는 임시공휴일에도 아침 9시부터 공원에 있었다. 큰아들 내외와 두 손녀가 김씨 소유의 서울 서초동 42평 빌라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집에서 쉬는 가족들 눈치가 보여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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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공원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김씨는 공원 뒤편에 있는 낙원상가 지하 식당에서 홀로 콩국수를 먹었다. 가끔 외롭기도 하지만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두 시간 넘게 기자와 이야기를 나눈 김씨는 “오랜만에 누군가와 길게 이야기를 나눴다”며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

#2.

 6년 전 이씨(27·여)는 독립해 서울로 올라왔다. 고3 때 학교를 자퇴한 뒤였다. 서울 건국대 주변에 월세가 48만원인 고시원을 얻었다. 월세는 부모님께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생활비마저 손을 벌리기는 부담스러웠다.

이씨는 하루 12시간씩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시급은 4000원이 조금 넘었다. 호프집 점원, 사무보조 등을 전전하던 이씨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점점 연락을 끊었다. 그녀는 “소속이 없고 알바로 하루살이를 하다보니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고 했다.

주위 친구들 대부분 대학을 다녀 친구들의 이야기에 공감이 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자기를 소개하는 상황도 싫었다. 그녀는 “고민이 있어도 사람들이 자기 얘기처럼 들어주지 않을 거 같지 않아서 말하지 않았다”며 “가족한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3.

류모(28․여)씨는 4년차 초등학교 교사다. 류 씨는 온종일 그가 담임을 맡고 있는 서른두 명의 아이들과 함께 보낸다. 함께 책을 읽고, 수업을 하고, 밥을 먹는다. 그는 “초등교육은 아이들과의 유대가 중요해요.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죠.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감정노동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동료 교사들과는 점심시간 후 20분 정도 티타임을 하는 게 전부다. 최근 성과급제가 시행되고 개인주의적인 분위기가 퍼지면서 그마저도 요원해졌다.

퇴근 후에는 대개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낸다. 대학 시절 친구들은 취업 후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고, 하나 둘 남아 있는 친구에게도 ‘다들 바쁘고 피곤하겠지’하는 생각에 선뜻 만나자고 말을 꺼내기 힘들다.

류 씨가 그나마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남자친구이지만, 그래도 힘들다는 말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는 “서로 힘든 이야기만 하면 아마 서로 금방 지칠 거예요. 그냥 ‘난 괜찮아’하고 지나가는 거죠. 속은 그렇지 않지만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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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flickr)

한국인은 각자의 섬에서 살아간다. 소통하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외롭고 쓸쓸한 모습은 닮았다. 노인도 청년도 매일 만나는 사람은 있지만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은 없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맡은 역할을 다할 뿐이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생각수업>에서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는 ‘즐거운 나의 집’은 피곤한 이들이 녹초가 되어 만나는 ‘일종의 숙박업소’가 되어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고민이 있어도 진심으로 공감하고 들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견딜 수 있다. 일상에 치여 각자의 의무를 다하기에 바쁜 한국인은 감정을 교류하고 서로를 지지해 줄 가족 혹은 친구와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다. 모두와 연결되어 있지만 소통은 요원한 이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5 삶의 질> 보고서는 우리가 마주하는 빈약한 사회관계망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2015년 삶의 질 보고서 (자료 출처: OECD)

한국은 곤경에 처했을 때 의지할만한 친척이나 친구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사회 관계 지원’ 항목에서 72.37점으로 OECD 국가 중 꼴찌였다.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한 아일랜드, 스위스보다 20여 점이나 부족하고, 회원국 평균인 88.02점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같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는 80~90점대를 기록했다.

특히 한국은 나이가 들수록 어려울 때 주위에 도움을 요청할 만한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15~29세)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90점대의 높은 사회관계망을 형성했지만, 30·40대가 되면서 70점대로, 50대를 넘어서자 60점대 초반까지 사회관계지수가 급락했다.

50대 이상만 놓고 보면 1위 아이슬란드와 36점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연령대별 격차도 OECD에서 가장 크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와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가 올해 발표한 연구보고서 <연결되어야 건강하다: 사회지원망과 사회정신건강>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보인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에 최소한 직간접적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 접촉하는 빈도가 가족은 2009년 72.6%에서 2012년 67.9%로, 친구는 2009년 63.6%에서 2012년 62.5%로, 이웃은 2009년에 62.0%에서 2012년에 50.3%로 떨어졌다.

구혜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는 관계가 단절된 원인에 대해 “사람들은 대개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며 “다만 도움을 요청할 지인이 없을 때 국가나 공동체 차원의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한데 한국은 사회적 지원망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1차적으로 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사람들을 지역사회에서 지원해주고 2차적으로 국거거 지원망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과주의가 관계 단절을 불러온다는 지적도 있다. 김영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시간노동센터 연구위원은 “일의 가치가 최우선인 한국 사회에서는 일 이외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놀고, 멍 때리고, 햇볕을 쬐는 다양한 시간의 가치는 부차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중심적 가치 이외에 다양한 가치를 담아내는 ‘문화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 2017/02/05-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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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른백년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단비뉴스팀과 함께 ‘사랑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6편에 걸쳐 우리 주변의 삶을 들여다본다. 장시간 노동자, 청년 실업자, 경쟁에 시달리는 직장인, 노인, 청소년들이 그들이다.  

노인은 말동무를 찾아 매일같이 탑골공원에 간다. 취업 못한 청년은 안전한 직장을 가질 때까지 스스로 고립된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직장인은 연인을 만날 시간조차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사랑은 사치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다. 

당신은 사랑하고 계십니까. 

<프롤로그> 1. “들어줘서 고마워”      2. 한국인의 밥상

<청년 실업자> 1. “사랑도 유예가 되나요?”  2. “연애도 사치일 뿐”   

사랑을 짐으로 여기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취업 준비에 모든 걸 쏟느라 타인과 관계 맺을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단다. 1970~80년대에 청년 시절을 보내며 사랑을 해온 부모세대는 오늘날 자식세대를 어떻게 바라볼까?

두 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청년의 사랑을 주제로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눠봤다. 그들은 지금 사랑하고 있을까?

      <참석자>

  • 김주희(28·여·가명) : 8개월 차 공무원 시험 준비생, 마지막 연애는 2년 전
  • 조수현(28·여·가명) : 6년 차 임용고시 준비생, 3개월 전 이별
  • 박필규(59·남·가명) : 공무원 정년퇴직, 3남매를 둔 아버지
  • 이지숙(56·여·가명) : 소규모 개인사업, 1남 1녀를 둔 어머니

Q: 지금 사랑하고 있나요?

조수현(28·이하 조) :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도 사랑한다. 할 일이 바빠도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게 우선이다. 힘들 때 힘이 되어주고 싶다. 같이 있으면 좋고 의지가 된다. 하지만 이성과의 사랑은 단절됐다.

김주희(28·이하 김) : 다들 사랑은 하고 있지 않을까. 가족은 당연히 사랑하고, 취미도 사랑한다. 음악 듣는 걸 좋아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의 힙합 가수 에미넴의 CD를 듣고 음악에 관심 갖게 됐다. 그러나 연애는 안 한다.

박필규(59·이하 박) :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해왔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면서 나와 생각이 달라지고 벽이 생긴 것 같다. 대화하고 싶어도 세대 차이 때문에 잘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이지숙(56·이하 이) : 자녀와의 관계를 사랑으로 유지하고 있다. 아들·딸과 매일 통화하고, 문자나 카톡도 거의 두세 번 이상 주고받는다. 얘들이 소통하기 위해 더 노력해준다.

Q: 왜 연애를 하지 않나요?

김(28) : 작년까지는 결혼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났었는데 지금 만나는 배우자와 안정된 직업을 가진 후에 만날 배우자가 다를 것 같더라. 직업을 갖고 좀 더 떳떳했을 때 마음도 편할 것 같다. 공부하면서 연애를 해봤는데 준비 기간만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과감히 잘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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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28) : 연애할 때 상대가 직장을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 상황이 다르니까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었고 갈등이 많았다. 온종일 공부를 해야 하는데 자꾸 시간 뺏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몇 번 헤어지고 나서는 연애를 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28) : 같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슬럼프를 겪는 기간이 다르니까 나는 공부가 잘돼도 그 친구는 집중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취업준비생은 철저히 고립 돼서 고독하게 공부하는 게 맞다.

조(28) : 특히 계획한 공부량을 못 채웠을 때 주말에 보충해야 하는데 데이트 때문에 계속 미루는 경우가 많았다. 또 남자친구와 다투고 나면 신경 쓰이고 짜증 나서 공부가 안됐다. 자기 직장 생활 힘들다고 징징거리며 하소연할 때 정말 들어주기 싫더라. 남자친구가 쇼핑할 때 같이 가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많이 허탈했다. 내건 사주지도 않으면서 시간만 정말 아깝더라. (웃음)

김(28) : 맞다. 공부하고 있다가 남자친구가 기분전환 시켜준다며 나오라고 해서 재밌게 놀다가 막상 집에 돌아오면 허탈해진다. 남들보다 뒤처진 기분이 들고 시간 버렸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남자친구가 술 먹으러 가서 연락이 잘 안 되거나 늦어지면 신경 쓰여서 집중도 안 된다.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날 정도다. (웃음)

조(28) :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지금 연애하는 게 나한테는 사치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된다.

Q: 공부하느라 사랑하지 못하는 청년, 부모세대는 어떻게 바라보나?

이(56) : 우리 딸도 대학원 박사 과정 공부 중이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걸 보면 ‘내가 딸의 진로를 잘못 잡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걱정하는 것보다 자식세대가 훨씬 잘해주고 있다.

박(59) : 상당히 공감된다. 큰딸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 포기하고 지금은 과외 선생을 하고 있다. 열심히 하는데도 취업이 안 되니까 부모로서 답답하다. 얼마 전에 딸이 남자친구와 헤어지자 선을 보게 하려 했다. 그런데 먼저 물어보는 게 ‘딸 무슨 일 하나?’였다. 과외를 한다고 하니까 표정이 달라지더라. 직장 없으면 결혼하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적령기는 다가오고 취직은 안 되고 진퇴양난이다.

이(56) : 우리가 아이를 너무 오냐오냐하며 별 어려움 없이 키우다 보니 자식 세대가 인내와 배려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사랑을 찾는 것도 어려운 게 아닐까. 조건부터 생각하게 되고. 특히 요즘 세대는 더불어 사는 걸 어려워하니까 외로워지는 것 같다. 공무원 준비하면서 나만 보는 건 위험하다. 나중에 취직하면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달을 것이다. 사회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더불어 살려고 노력하면서 그 속에서 사랑을 찾았으면 좋겠다.

김(28) : 실은 나도 사교적이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성격대로 살면 절대 합격할 수가 없다. 다른 친구들은 책을 외울 정도로 공부하는데 사람들과 관계 맺는 데 시간을 쓴다면 그들의 들러리가 될 뿐이다. 인간관계가 끊기는 건 싫지만 어쩔 수 없다.

조(28) : 취업이 어려운 게 사회 구조적 문제인데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인간관계를 소중하게 여겨라? 글쎄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사회 탓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지금 누군가에게 시간이나 노력을 들일 수는 없지만, 함께 사는 삶에 대한 가치관은 항상 기억하려고 한다.

Q: 부모세대가 젊은 시절이던 70~80년대의 사랑은 어땠나?

이(56) : 그때는 지금처럼 이것저것 따지는 현명함이 부족했다. (웃음) 연애를 시작했을 당시는 이미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조건을 보고 사람 만나는 것보다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돼 연애했다. 또 사랑에 대한 성 개념도 훨씬 순수했다. 손잡고 뽀뽀하면 결혼해야 하는 줄 알았다. 상대방과 어느 정도의 만남이 이뤄지고, 그 사람이 좋아지고, 일정 기간 만나다 보면 ‘아 이 사람하고 결혼해야 하는가보다’이런 생각으로 살았던 것 같다. 조건을 보는 사랑이라기보다 만나면서 좋아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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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sbs)

박(59) : 광주 충장로나 금남로의 다방에서 만나 연애를 했다. 장발에 멋진 목소리를 가진 DJ가 틀어주는 음악을 듣고 사랑을 속삭이곤 했다. 비가 오는 날에 그런 목소리와 음악을 들으면 뿅 갈 수밖에 없다. 정말 사랑에 빠지기 쉬웠다. 그런 곳에서 연애했다. 또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에 무등산에 있는 유명 관광호텔에 가면 부모와 함께 나온 남녀가 선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방을 찾으려고 이름을 적은 팻말을 들고 호텔 안을 돌아다니곤 했다. 그때는 이것저것 조건 안 따지는 순수한 사랑도 있었고, 선을 보고 사랑을 하기도 했다.

이(56) : 맞다. 정말 낭만적이었다. 나도 연애할 때 다방에 가서 팝송을 자주 들었다. 남편이 ‘월간팝송’을 볼 정도로 팝을 굉장히 좋아했고, 항상 가면 신청해서 곡을 들려주곤 했다.

박(59) : 군대를 다녀와서 25살 무렵에 공무원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 청년들처럼 나도 젊었을 때 취직이 최우선이었다. 시골에서 너무 어렵게 살았다. 빨리 공무원이 돼 돈을 벌고 가정을 꾸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때도 취업은 어려웠다. 그래도 우정을 깊이 생각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끈끈하게 유지하면서 사랑하고 공부했다.

이(56) : 우리 세대는 지금 청년들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였다. 덜 각박한 세상이었다. 지금은 모든 게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 그러다 보니 청년 세대가 일상생활, 사랑에 더 조바심을 가지는 것 같다.

화, 2017/02/07-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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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국제사회를 이끌 지도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빈이민 행정명령’을 강행하는 등 설마 했던 ‘묻지마 정치’를 강행하고 나서면서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것이다.

북미 유럽 등 서구 중심의 행사이던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도 올해는 중국의 무대가 됐다. ‘잘 듣는 리더십, 책임 있는 리더십’이라는 대주제 아래 개최된 포럼에 시진핑은 기조발제자로 나서 중국이 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를 책임 있게 끌고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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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월 17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http://www.voakorea.com)

미중의 갈등은 환율전쟁,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전장을 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놓고 한반도가 미중 갈등의 최대 격전지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중이 사드 배치를 안보 차원을 넘어 자존심 경쟁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우리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미중의 각축전 속에 우리 기업들도 유무형의 제재를 당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트럼프와 맞짱 뜰 인물

시진핑은 10년 전인 2007년 중국 공산당 17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되기 전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다. 중국 공산당 혁명 원로의 자녀 그룹인 태자당(太子黨)의 일원이거나 중국 유명 가수 펑리위안(彭麗媛)의 남편으로 더 많이 언급됐다.

하지만 지금은 명실상부한 주요 2개국(G2) 지도자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면승부를 예고하면서 한반도에도 쓰나미 경보가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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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1980년대 초, 커화 전 주영대사의 딸 커샤오밍과 결혼했지만, 성격차이로 헤어진 뒤 펑리위안과 다시 결혼했다. 펑리위안은 중국의 유명가수이다. 사진은 펑리위안이 노래하는 모습.

시진핑의 첫번째 부인 커샤오밍(柯小明)이 몇 해 전 영국에서 발행하는 화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진핑은 이상주의자가 아니다”고 밝힌 평가는 눈 여겨 볼 대목이다. 커샤오밍은 시진핑과 1982년 결혼해 3년 만에 해어진 후 영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는 “(시진핑은) 하는 일마다 빈틈없이 계획을 세웠고, 꾸준하게 밀어붙였다”며 “나는 그가 잠재력이 있다고 여겼지만, 너무 융통성이 없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공산당 원로 자제…문화혁명으로 고초

시진핑은 자신을 산시(陝西)성 출신이라고 밝힌다. 1953년 베이징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의 고향을 따라서다.

시중쉰은 중국 공산당 최고위급 원로다. 13세 어린 나이에 중국 혁명을 위한 전선에 동참했고, 15세에 학생운동을 이유로 국민당 정권에 의해 구금된 전력이 있는 공산당의 핵심 멤버였다.

21세에는 시베이(西北)지구 소비에트 주석을 맡아 산시, 간쑤(甘肅) 일대를 통틀어 3인자라는 높은 지위에 올랐다. 이들 지역은 앞서 중국 공산당 홍군(紅軍)의 대장정 최후 근거지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시중쉰은 베이징으로 옮겨와서는 중앙선전부장 등을 맡으며 승승장구해 저우언라이(周恩來)의 휘하로 들어가 중국 국무원 부총리 겸 비서장 직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던 1966년 정권전복을 노렸다는 누명을 쓰고 실각해 16년간 구금, 가택연금을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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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사진은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에게 붙잡힌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의 모습. 두번째 사진은 1958년 당시 정무원 비서장이었던 아버지와 찍은 사진. 왼쪽 첫번째가 시진핑이고, 가운데는 동생 시위안핑. 마지막 사진은 1975년 칭화대 재학 당시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시진핑이 정치적 자산을 쌓게 되는 계기는 아버지의 실각과 함께 찾아온다. 산시는 정치적 요람이 돼 준다. 여느 태자당과 다르지 않게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던 그는 ‘반동 가족’으로 낙인 찍혀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이 될 수 없었다.

대신 1968년 산시성 옌안(延安)의 옌촨(延川)현 량자허(梁家河)라는 작은 산촌의 생산대에 배치된다.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도시 청년들을 농촌으로 강제 투입하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샹산샤샹(上山下鄕) 정책의 일환이었다.

황토고원으로 잘 알려진 척박한 예안에서의 토굴 생활은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베이징으로 달아났다 구금되기도 했다. 시진핑은 “군중 속으로 들어가 기회를 찾으라”는 팔로군 항일전사 출신인 이모와 이모부의 조언을 듣고 생각을 고쳐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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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지방으로 하방했을 당시, 수척해진 시진핑의 모습 (왼쪽에서 두번째)

량자허 사람들 신임을 얻게 된 시진핑은 공산주의청년단 가입을 시도한다. ‘반동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번번히 거절당했지만, 8번의 도전 끝에 가입 허가를 받는다. 공산당입당은 10번 거절 된 뒤 11번째만인 1974년 이뤄진다. 시진핑은 끝내 공산당 최하층관리 자리인 량자허 대대 지부 서기가 된다. 시진핑이 정치적으로 첫발을 뗀 순간이다.

베이징 귀환의 순간은 머지 않아 찾아 온다. 문화대혁명이 끝날 즈음 그간 학생을 모집하지 않았던 대학이 ‘공농병(工農兵) 추천생’이라는 이름으로 학생을 뽑기 시작했다. 시진핑은 1975년 예안지구 몫으로 배정된 중국 명문 칭화(淸華)대 입학 추천장 2장 중 한 장의 주인이 된다.

시진핑은 젊은 날의 산시 생활에 대해 “생산대 생활을 하던 기간 동안 옌안의 간부와 군중은 나를 보호해주고, 나를 길러주었습니다. 예안은 나의 생명의 근원이고,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으며,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회고했다.

지방에서 성공 사례 만들어

문화대혁명이 끝나면서 시진핑의 삶의 궤도는 더 크게 바뀐다. 아버지 시중쉰이 1978년 명예회복과 함께 광둥(廣東)성 최고위 책임자가 된다.

마오쩌뚱 사후 최고 실력자로 떠오른 중국 개혁개방의 기수 덩샤오핑(鄧小平)의 뜻이 작용했다. 중국 개혁개방의 효시인 선전(深圳) 경제특구를 열어 해외자본 투자유치에 잇따라 성공하며 경제발전을 진두지휘 한다.

시진핑의 성공에는 어버지의 후광을 배제할 수 없지만, 행정관료로서의 탁월한 능력과 정세를 읽는 정치적 감각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79년 칭화대를 졸업하면서 국무원 부총리이자 중앙군사위원회 비서장으로 당시 최고 실세이던 겅뱌오(耿飈)의 비서가 되는 기회를 잡는다. 겅뱌오는 시중쉰과 고난을 함께 했던 전우였다. 시진핑은 겅뱌오를 수행하기 위해 인민해방군에 입대하면서 중앙관료로서의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시진핑의 눈에 겅뱌오는 지는 해였다. 시진핑은 1982년 지방근무를 자청해 허베이(河北)성 스좌좡(石家莊)시 정딩(正定)현 부서기로 자리를 옮긴다. 당 고위 자제 가운데 지방행을 자청한 건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었다. 겅뱌오가 실각하기 두 달 전으로 타이밍도 절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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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딩현 부서기 시절, 집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진핑의 모습

시진핑은 정딩현에서 관광특구 사업에 힘을 쏟는다. 대불사(大佛寺), 서유기궁(西遊記宮) 개발이 대표적이다.

가장 큰 성과는 왕푸린(王扶林)이 감독한 CCTV 드라마 <홍루몽>의 배경이 되는 룽궈푸(榮國府) 건립이다. 막대한 예산을 필요로 하는 사업이어서 현 재정을 파탄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정딩현은 일약 전국에서 손꼽히는 관광지로 탈바꿈 한다. 홍루몽 드라마 작가 커윈루(柯雲路)는 당시 시진핑을 모델로 장편소설 ‘신성’을 섰고, 이후 TV 드라마로 각색되기도 했다.

신중한 처신….마침내 최고 자리 올라

시진핑은 1985년 푸젠(福建)성으로 자리를 옮겨 푸젠성 유일의 경제특구로 선망의 대상이던 샤먼(廈門)시 부시장을 맡았다. 하지만 개혁파가 보수파와의 권력투쟁 끝에 밀려나면서 개혁 개방의 불은 꺼졌고 개혁개방으로 성과를 내려던 시진핑의 계획도 틀어진다. 시진핑은 1988년부터는 푸젠성의 최고 낙후지역으로 꼽히는 닝더(寧德)지구 서기로 밀려난다.

하지만 시진핑을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1989년 텐안문(天安門) 사태를 전후한 이 정치적 혼란기에 시진핑은 반부패 활동에 전념하며 후일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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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푸젠성 닝더시 서기 시절 곡괭이를 들고 농촌 활동에 나선 시진핑의 모습 (오른쪽 첫번째)

시진핑은 당시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을 되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부패 활동은 지역 인민들의 전폭적 지지지를 받았고, 이 사실이 1990년 ‘인민일보’에 보도되면서 전국적 관심을 끌게 된다.

시진핑은 하지만 ‘튀지 않는 개혁’을 이어간다. ‘작은 불로 온수를 끓이되 불은 꺼지지 않게 한다’는 게 관료로서의 원칙이자 자신의 생존을 위한 법칙이었다. 시진핑은 이후 푸젠성 부서기, 성장으로 승진하며 17년 6개월 동안 푸젠성에서 활동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진핑은 중국의 최고 권력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2002년 저장(浙江)성 부서기에 취임한 지 40일만에 서기였던 장더장(張德江)이 광동성 서기로 자리를 옮기면서 서기로 승진하는 행운을 거머쥔다.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지역의 1인자가 되면서 시진핑은 같은 태자당 출신으로 당시 랴오닝(遼寧)성 성장이던 보시라이(薄熙來), 공청단 출신의 랴오닝성 서기 리커창(李克强), 장쑤(江蘇)성 서기 리위안차오(李源潮) 등과 함께 차세대 중국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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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대 최고 지도자들의 외교정책 방향. (이미지 출처: http://news.moyiza.com/)

시진핑은 2007년 상하이(上海) 서기로 발령 받는다. 정파간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권력기반이던 상하이방의 거점과도 같은 곳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해 17차 당대회에서 중국 최고 권력기관인 공산당 정치국의 상무위원으로 선출된다.

대권 가도를 앞서 달리던 리커창보다 높은 권력서열에 놓이면서 중국의 새로운 별의 탄생을 예고했다. 이듬해인 2008년 중국 국가 부주석, 2013년 국가 주석 직에 오르며 권력 승계를 마무리 했다.

수, 2017/02/08-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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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이란 일반적으로 공동의 목적과 비전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의 집합체로 이해하고 있다. 조직은 구성원들이 각자 고유한 직무를 맡아 조직의 비전과 목적을 향해 서로 협력할 때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구현하게 된다.

그렇다면 각 직무는 고유한 성과를 창출할 책임(성과책임) 또는 그 업무수행과정을 대내외에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책임(설명책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을 소위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라고 하며, 어느 직무든지 사전적으로 규명되어 각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에 명확히 기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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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insightofgscaltex.com/)

그러니까 조직에는 각 직무(job)의 성과책임이 규명되어 있고 그 직무에 적합한 사람이 선발·배치되는 것이 인사조직론의 기본이다. 

조직의 목적과 비전이 이 성과책임이라는 어카운터빌리티를 통해 각 직무로 분해되어 스며들어가게 된다. 직무담당자들은 자신의 직무에 부여된 성과책임을 인식한 후, 업무활동을 함으로써 자신에게 부여된 성과책임을 완수해 가는 것이 일반적인 조직운영과정이다. 이런 과정은 조금 복잡하긴 하지만 다음과 같은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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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여섯 개의 개념이 서로 맞물려 상호작용하면서 일어나는 경영현상을 도식화 한 것이다. 이것을 경영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인사조직론에서 플랫폼이란 조직구성원들이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현할 수 있는 정신적, 경제적, 물리적 토대를 의미한다.

조직의 비전과 전략에서부터 출발하라

이런 플랫폼은 조직의 비전으로부터 출발한다. 매력적인 비전(compelling vision)에 의해 구성원들의 가슴에 열정을 심어줌으로써 창의력을 발휘하게 한다. 이것이 성과창출에는 가장 강력한 촉매제이다.

이러한 매력적인 비전으로부터 전략(strategy)이 수립되며 그 전략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지원기능으로서 조직(organization)이 합리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이때 조직의 비전, 목적, 방향, 가치 등이 각 직무의 성과책임(accountability)에 적절히 배분되어 스며들어가 있어야 한다. 각 직무는 이 성과책임에 근거하여 성과목표를 스스로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직무가 설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직무가 요구하는 역량에 부합하도록 선발·배치되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채용에서 출발하여 급여보상을 거쳐 퇴출까지의 모든 인사과정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여섯 개의 경영개념이 플랫폼을 형성하여 운영되는 사이클은 다음과 같은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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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중시하는 게르만, 스칸디나비아 모델에서 배우자!

이러한 경영플랫폼 운영모델의 최초의 촉발점은 리더십이다. 리더십은 타인을 이끌거나 명령하는 역할이 아니라 조직구성원들과 함께 매력적인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조직에 생명력 또는 활력(vitality)을 불어넣어주는 역할과 그런 환경조건을 조성하는 역할이다.

이러한 인사조직모델이 유럽의 게르만 모델과 스칸디나비아 모델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모든 조직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게르만 모델을 채용하고 있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과 스칸디나비아 모델을 정착시킨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같은 국가에서는 가장 인간중심적인 인사조직체계를 갖추었다.

경쟁이 아닌 협력을 장려하는 인사조직모델은 경제적으로 거의 완전고용을 이룰 정도로 경쟁력이 있는 모델이다.

현재 취업문제뿐만 아니라 자살률과 노인빈곤율 등에서 심각한 수준에 이른 우리나라는 게르만 모델 또는 스칸디나비아 모델을 검토해볼만하다.

우리가 이런 선진모델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아래 <그림3>에서 보듯이 인류역사에서 크게 보면 조직개념이 몇 차례 극적으로 변화해왔고 우리도 이런 변화의 물결에 적응해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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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연봉제…지나친 경쟁은 오히려 ‘독’

인류는 지금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 1935~)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1953~)과 같은 철학자들에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공동체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실제로 게르만 모델이나 스칸디나비이 모델은 이미 1970년대 이전부터 그런 사회를 지향하고 있으며 지금은 이런 국가와 조직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조직 대부분에서 구성원들 간 경쟁을 부추기는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조직 내의 커다란 갈등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조직의 효율성과 창의성을 현저히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된다.

심지어 경쟁체제를 신봉하던 미국의 포천 500대 기업 중에서 약 70% 가량은 성과연봉제를 위한 상대평가제도를 이미 포기하고 있다.

당근과 채찍의 상징인 성과연봉제와 같이 경쟁을 부추기는 문화에서는 조직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조직의 경쟁력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내부경쟁은 상호 협력을 깨뜨리고 있고, 정보를 공유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도 조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분권화되고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DANO)

과거 관료화된 조직의 비효율 때문에 여러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는 뜨거운 가슴으로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하여 함께 성취하려는 리더십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구성원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것은 아니었다. 원인과 결과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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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moneytop.tistory.com/)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의 세계적인 기업들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들은 인간존중의 조직문화를 추구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경영진과 구성원들이 함께 매력적인 비전을 마련하고 이를 추구하기 위해 협동심을 가지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르만 모델 또는 스칸디나비아 모델과 아주 유사하다.

이런 인간존중의 사상과 철학이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인간존중의 경영모델을 심도 있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데는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서부의 신생 IT업체들과 게르만 모델을 추구하는 유럽 기업들의 인사조직 실무를 관찰해보면, 상명하복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포기한지 오래되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은 한결같이 분권화된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 즉 Decentralized Autonomous Networked Organization(DANO)의 경영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국가운영방식도 바뀌어야 하며, 모든 공공기관들이 이런 분권화된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게르만 모델 또는 스칸디나비아 모델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이미 1970년대 이전부터 DANO의 경영방식으로 전환하여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구현하고 있다. 독일, 스위스 등 지금 제조업 차원에서의 혁명적인 변화인 인더스트리 4.0을 이끌고 원동력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단순한 구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조직운영방식을 분권화된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으로 전환해야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목, 2017/02/0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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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자 시리즈>

다른백년은 ‘금주의인물’ 코너를 통해 매주 소개해 온 인물 가운데 이번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을 추려 <대선후보자 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어떤 후보자는 소개 시점이 빨라 지금 상황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직 소개하지 않은 후보자도 있습니다.

대선 후보자들의 과거 행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이번 시리즈가 올바른 선택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마운드에 오른 폐족, 안희정 충남도지사 (2016. 9. 13)

SNS를 든 싸움닭, 이재명 성남시장 (2016. 10. 14)

말이 통하는 보수주의자, 유승민 의원 (2017. 1. 20)

계급배반을 꿈꾸는 금수저, 남경필 경기도지사

‘남경필의 직민’ 남경필 경기도지사(52)의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 이름이다. ‘직민’은 ‘직접 민주주의다’의 준말이다. 페이지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직접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고 표방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3일 업데이트한 커버 이미지는 촛불 사진을 배경으로 ‘직접 민주주의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보수 정당 출신의 남 지사에게 ‘직접 민주주의’라는 캐치프레이즈는 꽤 생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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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 후보의 페이스북 첫 페이지(위 사진)와 2014년 지방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모습

페이지 개설을 한 지는 최소 2~3년은 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름이 처음부터 ‘직민’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요즘 그가 완전히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경기도의 아들 남경필이 대한민국의 딸 박근혜를 지켜내겠습니다.” 불과 3년 전인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남 지사가 토해냈던 연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시대정신에 빨리 반응하는 정치인

그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 박 대통령, 친박 세력과 선을 긋자 누리꾼들은 당시 연설 사진을 걸며 조롱했다. 남경필 지사는 곧바로 그 사진을 받아 ‘깊이 반성하고 사과드립니다!’라는 글과 함께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고 쿨하게 ‘반성’했다.

“광화문광장에 모인 100만 국민이 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정치는 삼류, 국민은 일류’ 맞습니다. 우리 정치는 아직도 삼류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오의 한 가운데에 제가 서 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로 남 지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변했다. 그 변화에서 진정성을 보고 박수를 치든 가식이라고 딱지를 붙이고 침을 뱉든 자유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25일 오전 여의도 바른정당 당사에서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남경필 후보가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바른정당 중앙당사에서 제 19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사진 출처: 브레이크뉴스)

문제는 따로 있다. 지난달 25일 대선 출마 선언을 했지만 대선 주자로서 존재감이 너무 미미하다. 2월 2주차 리얼미터의 대선 주자 지지도 여론조사에서는 1.6%로 겨우 9위로 턱걸이했고,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1% 미만으로 이름조차 거명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대선 주자로 나서기 전부터 ‘대한민국 리빌딩’을 외치며 연정과 협치, 수도 이전, 모병제 등 굵직굵직한 의제를 제시했고 지난 12일에는 사교육을 전면 폐지하는 ‘교육 김영란법’을 제정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내걸었지만 왠지 공허해 보인다.

남 지사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떼놓기 어려운 황교안, 김무성, 유승민 등과는 다른 결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부분 존재감이 미미한 여권 대선 주자들 사이에서 그가 언제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확률도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차차기 주자쯤으로 분류되던 그가 혼란한 정국의 틈바구니에서 단숨에 대선 주자로 꾸준히 꼽히고 있는 이유다.

그는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촛불로 드러난 변화의 열망을 믿습니다. 2017년을 ‘대한민국 리빌딩’의 원년으로 만듭시다. ‘철 지난 이념 논쟁’에 매몰되지 말고 오로지 국가와 국민의 미래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오렌지’라는 오랜 딱지

“군대를 가보질 않았으니까 가고 싶은 군대 타령이나 하고 있지. 국회의원이나 도지사 같은 거 말고 남경필이 본인은 부모 잘 만나서 유학도 다녀오고 아버지 대신해서 지역구도 젊은 나이에 물려받아 편하게 국회의원 생활했지. 공장 같은 곳이든 9급 공무원이든 취업해보세요.”

남경필 지사의 모병제 주장에 반대하며 한 누리꾼이 달아 놓은 댓글이다. 함부로 예의 없이 썼다는 것만 제외하면, 시민들이 남 지사에 대해 가진 인상 혹은 편견을 함축적으로 담아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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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돌때, 아버지 고 남평우 의원과 함께 찍은 사진(왼쪽)과 경복고 졸업 당시, 어머니 김민정 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

잘난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다. 8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운동 경험도 없다. 일명 ‘오렌지’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는 남 지사에게 꼬리표처럼 달려 있다.

2003년 남경필 의원으로부터 군사정권 시절 고문을 자행했다는 의혹으로 인적 쇄신 요구를 받은 정형근 의원이 “내가 조국을 위해 일할 때 남 의원은 미국에서 오렌지족 하면서 떵떵거리지 않았느냐”고 맞받아친 뒤 생긴 별명이다.

남 지사의 집안은 수원의 지역 유지다. 아버지는 남평우 전 신한국당(새누리당의 전신) 의원이다. 조부 남상학이 창업한 경남여객을 물려받아 운영한 사업가로 경인일보를 인수해 언론계에도 진출했다. 정계로도 발을 뻗어 14~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이어 당선되며 지역에서 기반을 확실히 닦았다.

경복고를 졸업하고 1984년 연세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 남 지사는 1990년 부친이 운영하는 경인일보에 입사해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2년의 짧은 신문사 생활을 접고 미국 유학길에 오를 즈음 그에게 정치는 남의 일이었다.

예일대에서 MBA 과정을 밟은 그는 뉴욕대 도시행정학 박사과정에 들어간다. 그때쯤만 해도 남 지사의 목표는 부친이 운영하던 사업체를 물려받기 위해 경영수업을 착실히 밟자는 정도였을 터다.

33세에 부친 지역구에서 뱃지…’남원정’ 개혁파로 활동

1998년 부친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실시된 재보궐선거는 그의 인생 향로를 바꾼다. 어머니는 장례식 마지막 날 장남이 정치인이 되길 원했다는 아버지의 유지를 아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그는 고민 끝에 학업을 중단하고 부친의 지역구인 수원 팔달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때 나이가 불과 33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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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7월 수원 팔달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남경필 후보가 당시 한나라당 서청원 사무총장(맨 왼쪽), 이한동 부총재(오른쪽에서 둘째) 등으로부터 축하인사를 받고 있다. (사진 출처: 중앙일보)

2001년에는 당시 대선을 준비하던 이회창 총재에게 발탁돼 대변인에 기용되는 등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다.

대선 패배는 남 지사에게 다시 한 번 갈림길로 다가왔다. 남 지사는 지금까지도 그를 설명할 때 붙는 수식어인 ‘당내 개혁 소장파’의 길을 선택한다. 원희룡, 정병국 의원 등과 함께 ‘남원정’이라고 불리며 당 쇄신 운동을 벌였다.

2003년 ‘보수의 개혁’을 주장한 최병렬 의원을 당 대표로 만드는 데 공헌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도 동참한다. 그런데 정작 탄핵 역풍이 불자 최 대표 체제를 허물고 박근혜 체제를 출범시키는데 주역을 맡았다.

그러다가 2007년 대선에서는 박근혜가 아닌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다. 이번에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에게 불출마를 촉구한다. MB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다 사찰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개혁, 소장파라는 말이 거창하지만 결국 럭비공처럼 이리저리 기회주의적으로 움직인 것에 불과한 것 아니었냐는 비판도 나온다.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비판하면서 반사이익만 얻으려고 했지 실제 뭔가를 이룬 것은 없다는 지적도 뼈아프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정현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에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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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 후보가 지난달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개혁보수신당(지금의 ‘바른정당’) 창당추진회의에서 정병국 창당추진위원장(왼쪽), 원희룡 제주지사(가운데) 등과 어깨동무하고 있다. (사진 출처: 한국일보)

남 지사는 “힘 있는 사람에게 붙는다면 기회주의적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겠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닌 당 대표에게 반기를 든 것이 어떻게 기회주의냐”라고 항변한다.

그럼에도 본인도 인정하듯 “스스로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누군가를 내세워 뜻을 대신해주길 바란 건 착오였다.

남 지사는 지난해 12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지난 일들을 돌아보니 누가 대신해주는 건 없더라. 직접 해야 한다는 게 나의 결론”이라고 말한다. 힘 있는 보수정치인을 계몽시켜서 세상을 바꿔보려는 노선은 ‘실패’했으며 박근혜 정권을 계기로 완전히 ‘끝났다’.

경기도 연정, 모병제, 수도이전….잇따른 전향적 정책 

남 지사는 이제 더는 당내 개혁·소장파이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걸 본인 스스로도 알고 있다. 남 지사는 아직 50대지만 19대 국회까지 내리 5선을 일궜다. 거물급 야권 인사인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를 누르고 2014년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까지 당선됐다.

자녀의 군 복무 중 후임병 폭행 및 가혹행위 사건이 벌어졌고 부인과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정치 생명을 위협받는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그는 이제 ‘진짜’ 정치인으로서 본격적인 출발선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남 지사의 대표 브랜드는 ‘연정’과 ‘협치’다. 19대 국회에서도 국회선진화법 발의를 주도했다.

경기도지사로 부임하면서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연정을 시도했다. 1기로 사회통합부지사를 야당 인사에게 내주고 3개 실국 업무를 실제 관장하게 했다. 2기에는 연정부지사로 이름을 바꿔 권한을 더 강화했다.

여소야대인 경기도의회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냉소적 시각도 있지만 어쨌든 무리 없이 안착해가고 있다는 평가다.

남 지사는 “연정의 가장 좋은 효과는 정치의 불확실성 제거이며 이렇게 되자 경제인들도 상당히 안정적으로 투자해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졌다”고 자평한다.

정치에서 ‘협치형 대통령제’를 추구하는 남 지사는 경제 분야에선 질서와 자유를 동시에 강조하면서 공유적 시장경제를 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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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 후보는 첫번째 대선 공약으로 모병제를 들고 나왔다. 사진은 2016년 9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모병제희망모임 1차 토크에 참석한 모습 (왼쪽 첫번째).  (사진 출처: http://www.huffingtonpost.kr)

그는 “‘흙수저, 금수저론’의 핵심은 군과 교육”이라고 말한다. ‘돈 있고 빽 있는’ 사람은 군대를 안가거나 가도 꽃보직을 받는 징병제, 교육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불공정하다고 느끼게 하는 사교육과 이를 토대로 벌어지는 입시 고통과 학벌주의가 한국 사회를 좀먹고 있다고 진단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래서 들고 나온 것이 모병제이고, 사교육 금지 국민투표다. “모병제는 정의롭지 못하다”는 유승민 의원의 반응에 남 지사가 유독 민감해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또 하나의 굵직한 정책은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함께 들고나온 수도 이전 공약이다. 국회와 청와대, 대법원, 대검찰청까지 세종시로 이전하자고 주장한다.

전통적으로 수도 이전에 반대해 온 수도권 자치단체장이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정책을 들고 나온 이유에 대해 남 지사는 “규모를 추구하는 것보다 실질적인 삶의 질에 더 도움이 된다”고 되받아친다.

물론 굵직굵직한 의제들에 대해 더 크게 던지고 싶은 질문은 ‘실현가능성’이다. 지사는 반문한다. “대한민국 이대로 가잔 말이냐. 다른 대안이 있나.”

공감은 가지만 공교롭게도 남 지사가 내놓은 개혁 의제들은 지지 기반인 보수층에게서는 외면 받고 있다. 중도나 진보층은 남 지사에게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너무 순탄하고 해맑아서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의 발언에서 쉽게 제쳐두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느껴진다.

“전작권 환수문제든 핵무기 개발문제든 모병제든 낡아빠진 반공 이데올로기와 미국 우산 속에 안주하는 것으로는 해결이 될 수 없다”

“대통령이 되면 김부겸 의원을 장관으로 쓰겠다. 팀 오브 라이벌스(Team of Rivals)가 꿈이다.”

“나처럼 부유층 출신이지만 대통령이 된 뒤 기득권층의 세금을 늘리고 서민 정책을 강력히 추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Frankl D. Roosevelt;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Photograph. November 9th 1932. (Photo by Imagno/Getty Images) Franklin D. Roosevelt; PrŠsident der USA. Photographie. 9.11.1932.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욕의 손꼽히는 부유층 출신이었지만, 미국 역사상 가장 진보적이고, 노동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한 대통령이었다. 대표적인 계급배반 정치인인 셈이다. 그가 민주당원이 된 것도 그의 당숙이면서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었던 테오토르 루스벨트와 다른 길을 걷기 위해서였다. 특히 한국처럼 이념적 지평이 좁은 나라에서는 보수당 출신 대통령일수록 이념적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운 장점이 있다. 과연 남경필도 그럴 수 있을까.

중앙일보에서 남경필 지사를 인터뷰한 도올 김용옥은 이렇게 말했다.

“남경필은 자기 스스로를 ‘오렌지족’이라고 규정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인물이 반드시 고생을 하고 큰 사람이라야 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약자의 ‘르쌍띠망’(원한)에 젖은 사람은 사회에 대한 분노 때문에 전체를 포섭하지 못하는 좁은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고생을 하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대국을 포섭하고, 다양성을 포용할 수도 있다. 남경필은 너무 순탄하게 컸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청순하고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누구에게든지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화, 2017/02/14-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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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경향신문(2017. 2. 7)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북핵 문제는 상당 부분 북·미 간 문제다. 북·미 간 타협과 갈등으로 점철된 북핵 문제의 긴 역사가 잘 말해준다.

그런데도 오바마 정부는 북한의 목줄을 쥐고 있다는 이유로 중국이 쉽게 끝낼 수 있다며 중국에 떠넘겼다. 그런데 그건 미국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미국은 선제타격으로 북한을 무릎 꿇릴 수도 있고, 대북 경제 지원으로 북한 태도를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모두 그게 전략적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오바마가 북핵 문제를 북·중 간의 문제로 바꿔치기하려 갖은 노력을 했음에도 실패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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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북한이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처음이고, 트럼프가 아베 신조 총리와 회담을 하는 시점이었다. 이번 미사일 발사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문제를 직면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과 트럼프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김정은은 손을 뻗어 트럼프의 옷깃을 건드리는 데 성공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 단계에 있다고 발표하자 트럼프는 “그럴 일 없을 것”이라고 즉각 반응했다.

그리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을 한국과 일본에 보내 북핵을 주요 위협으로 다룰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북·미가 신호를 주고받은 것은 미·중이 서로 책임전가하며 시간을 낭비한 것보다는 나아 보인다.

그러나 이건 두 거친 남자가 치명적 무기를 다루는 일이다. 김정은은 정말 ICBM을 발사하거나 6차 핵실험을 할지 모른다. 트럼프와 네오콘 못지않은 그의 주변 인물들도 어떤 카드를 꺼낼지 알 수 없다.

이런 정세에서는 종잇장 차이로도 험한 대결과 큰 거래라는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김정은·트럼프 간 교신이 반가우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이유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협상을 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예측불가능성과 불확실성은 잘 알려져 있다. 안 그래도 불안정한 게 요즘 한반도 주변 정세다.

2016년 한국 국방백서는 미국이 군사 우위를 지키는 가운데 중국, 러시아, 일본이 해·공군 중심의 군사력을 경쟁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2016년 1월 기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의 군사비 합계는 세계 군사비의 57.6%다. 동북아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군비를 쓰고 가장 치명적인 무기로 상대를 겨누는, 세계 최고의 중무장 지역이다.

이런 긴장 상태라도 대화와 교류가 활발하다면 위기감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 북·미 사이뿐 아니라 한·중, 한·일, 북·중, 중·일 사이를 채우고 있는 것은 깊은 불신과 적대감이다. 이런 상태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결정, 불에 기름을 부은 형국이 되었다.

한반도와 주변에 지금 모자란 것은 군비, 무기, 적의가 아니다. 부족한 건 대화다. 급한 것도 대화다.

그렇다면 정당하다는 이유만으로 상대가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는 건 피해야 한다. 북한이 수용할 것 같지 않은 당위적 주장보다 북한이 원하고 한·미가 들어줄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필요하다.

바로 한·미 연합훈련 일시 중단이다. 북한은 연합훈련을 일시 중단하면 핵실험도 일시 중단하겠다고 줄기차게 제안했지만 한·미는 일관되게 거부했다. 결과는 핵전력을 총동원한 더 강력한 훈련, 북핵 개발의 가속화, 한반도와 주변에 만연한 위험과 불안이다.

그럴수록 한국은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3각 협력체제에 깊숙이 끌려들어갔다. 그렇게 해서라도 한반도에 평화가 온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훈련 일시 중단은 비핵화에 관한 북한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낡은 도그마를 깨는 선제적 조치다. 그건 북한을 대화의 마당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한반도 문제와 북핵의 핵심에도 다가가게 해준다는 점에서 상당한 파급력을 갖고 있다.

북핵은 평화의 부재가 낳은 것이다. 과감하게 군사 문제로 대화의 물꼬를 튼다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로도 진전시킬 수 있다. 미·중에 휘둘려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수렁에 빠진 한반도 상황을 탈피하고 싶다면 한국이 군사적 긴장 완화와 군비통제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서울에 온 매티스는 북핵 문제에 관해 A부터 Z까지, 24시간 365일 긴밀히 소통하고, 3각 협력 및 연합훈련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더 강력하게 한국을 미국의 손안에 틀어쥐고, 북한과 중국에 맞서겠다는 말로 들린다. 다음 한국 정부가 너무 나서지 못하게 미리 쐐기를 박아 놓자는 것일 수도 있다.

김정은의 무모한 모험을 부추겨도 안되고, 트럼프의 변덕에 휘둘려도 안된다. 그러자면 선택해야 한다. 김정은·트럼프가 추는 지뢰밭 위의 탱고를 구경만 할 것인가. 아니면, 한반도 운명의 주인으로서 나설 것인가.

화, 2017/02/14-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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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른백년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단비뉴스팀과 함께 ‘사랑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6편에 걸쳐 우리 주변의 삶을 들여다본다. 장시간 노동자, 청년 실업자, 경쟁에 시달리는 직장인, 노인, 청소년들이 그들이다.  

노인은 말동무를 찾아 매일같이 탑골공원에 간다. 취업 못한 청년은 안전한 직장을 가질 때까지 스스로 고립된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직장인은 연인을 만날 시간조차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사랑은 사치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다. 

당신은 사랑하고 계십니까. 

<프롤로그> 1. “들어줘서 고마워”      2. 한국인의 밥상

<청년 실업자> 1. “사랑도 유예가 되나요?”  2. “연애도 사치일 뿐”   

<자영업자> 1. “주말도, 휴일도 없는 30시간 편의점이예요”  2.  쉽게 문 열고, 쉽게 망한다

천호동은 2005년 전후로 상권이 발전했다. 먹자골목・로데오거리・아울렛거리와 백화점・마트, 골목가게와 시장이 공존한다. 천호동에선 신장개업한 점포와 폐업을 준비하는 점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천호동의 한 부동산업자는 “무리하게 빚을 내 점포를 열다 폐업하는 자영업자도 부지기수”라고 말한다.

경쟁도 심하다. 더 많은 손님을 잡고 높아지는 임대료를 부담하기 위해 상인들은 장시간 노동을 택했다.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기 보다는 가족을 동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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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역 현대백화점 뒤편으로 가보면 3층 정도 되는 상가가 길게 뻗어있다. 상가건물 앞에는 노점상이 좌판을 깔았다. 일명 ‘깔세’라 불리는 노점상이다. 깔세는 건물 세입자 점포 앞에서 단기 임대를 내 장사를 하는 방식이다. 보증금이나 권리금을 건물주에게 내지 않고 건물을 임대한 세입자에게 월세를 지불한다. 권리금이나 보증금과 같이 목돈이 없어도 장사할 수 있긴 하지만 월세는 조금 비싸다. 깔세 노점상은 점포 세입자의 권리금과 보증금의 1%를 매달 월세로 지불한다.

서원배(52)씨는 월세 150만원짜리 깔세로 5평 남짓한 와플노점을 운영한다. 서씨는 호텔 식당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요식업체를 전전하다 와플노점을 열었다. 일하는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여기에 재료준비 시간을 더하면 총 15시간이다.

서씨는 “임금근로자가 아무리 힘들다 해도 자영업자와 비교하면 천국”이라며 “자영업은 소규모나 대규모나 직장생활 두 세배를 일해야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설이나 추석 빼고는 매일매일 좌판을 벌린다. 주력상품인 벨기에 와플은 개당 1000원이다. 일반 점포에서 2000원에 파는 상품이다. 1000원짜리 와플로 수지를 맞추려면 일반 점포보다 배는 더 팔아야 한다.

아르바이트도 아까워…내 몸으로 때운다

천호시장 입구에서 2년째 국수가게를 운영하는 안숙자(54)씨도 장시간 노동과 가족 노동을 택했다. 안씨는 아침 8시부터 밤 11시~12시까지 일한다. 휴일은 따로 없다. 쉬는 시간은 손님 없을 때 5분에서 10분 정도다. 일이 버겁지만 사람을 사서 쓰기도 어렵다. 일당이 버겁다. 퇴직한 남편도 가게로 출근해 일을 돕는다.

안씨는 남편 몰래 일을 시작했다. 남편이 직장을 잃자 생계를 위해 국수가게를 연 가정주부였다. 부부가 함께 일을 하지만, 벌이는 시원찮다. 월수입이 남편 퇴직 전 월급 절반이다. 안씨 남편은 “자영업자들이 말을 안해서 그렇지 IMF 때보다 힘들다”라고 말한다.

편의점 점주 이씨(64)는 아르바이트를 쓰지 않는다. 아들과 2교대로 일하는 이씨는 매일 새벽 4시 반에 출근해 오후 4시까지 일한다. 식사시간, 휴식시간, 휴가도 따로 없다. 60이 넘은 나이에 버거운 일이지만 이씨는 직접 일을 한다.

“아르바이트는 일을 하지 않아요. 하루 매출이 60만원 가까이 준다니까. 청소도 안하고 돈도 비고, 도둑질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인건비도 버거운데 매출도 줄어요. 결국 내가 직접 합니다.”

이씨는 편의점에서 파는 즉석식품으로 식사를 해결한다. 잠은 하루에 5~6시간 밖에 자지 못한다. 먹는 게 부실하고 잠자는 시간도 없으니 몸은 힘들다. 이씨는 보약을 지어먹으며 버티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에 박했다. 사람들 수입이 늘면 더 많이 사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나가는 돈은 확실한데, 들어올 돈은 불확실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돈을 쥔 사람들이 자신의 가게로 들어온다는 확신이 없어서다.

“먹고 살기 바뻐서…”

이들에게 있어 최선은 경기부양이다. 경기가 좋아져 사람들 씀씀이가 커지기만 기다린다. 그러나 몇 년째 체감 경기는 좋아지지 않았다. 총선 때 투표했냐는 질문에 편의점 점주 이씨는 고개를 저었다. 투표하러갈 시간에 하나라도 더 파는 게 이득이란 이유였다.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을 하니 가족과 이야기할 시간도 적다. 국수가게 안씨는 딸과 아들이 있지만 연락하기 쉽지 않다. 가족이 각자 알아서 사는 형편이다. 가족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다보니 친구와 주변 이웃에게도 관심이 옅어진다.

편의점 점주 이씨는 이웃상인과 친하냐는 질문에 고개만 저었다. 현재 인간관계는 오직 가족, 그리고 같은 프랜차이즈 점주와의 네트워크만 있다고 말한다.

와플노점 서씨는 “자영업자는 다 포기해야 한다”는 말로 자영업자의 ‘관계’를 설명한다. 가족과 여유 있게 식사를 하거나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게 사실상 불가능하단 의미다.

이웃상인과 오해가 생긴 상인도 있다. 상권을 지나는 소비자는 늘지 않는데 경쟁자만 늘어나니 서로가 박해졌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40대 김씨는 “유독 ‘깔세’ 매장이 많이 들어서 문제”라며 “한, 두 달 짧게 세를 내고 장사해가는 사람들이라 질 나쁜 상품을 대량으로 싸게 판다”라고 말한다. 깔세 상인에게 손님을 뺏긴다는 푸념이다.

IT회사에 다니다 프랜차이즈 샌드위치가게 오픈을 준비 중인 박씨(55)는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표정이었다. 박씨는 “잘 되도 걱정, 안 되도 걱정”이라며 “장사가 잘되면 다른 자영업자도 이곳에 같은 가게를 열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이들에게 있어 옆집 상인은 같은 골목에서 장사하는 이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잠재적 경쟁자였다.

치킨게임에 빠진 자영업자들

두 운전자가 서로 정면충돌하는 코스로 마주보고 달려온다. 먼저 피하는 사람에게는 겁쟁이란 뜻의 ‘치킨'(Chicken)이란 멸칭이 붙는다. 1950년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치킨게임’이다.

현재 자영업 현장에서도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자영업 치킨게임 참여자는 자신의 배포와 호기를 증명하기 위해 이 판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경기도 성남에서 호프집을 하는 40대 이씨는 “저 업종이 잘된다니 내가 해도 잘되리라는 믿음이 있는 거 같다”라고 자영업 치킨게임을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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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etoday.co.kr)

2016년 들어선 여기에 새로운 게임 참여자가 들어왔다. 명예퇴직이나 정년을 맞이한 베이비부머세대다.

신촌에서 대포집을 운영하는 한씨(63)는 본래 외국계기업을 다니던 직장인이었다. 한씨는 “100세 시대라는데 아직 30년은 더 살아야 한다”라며 “물가는 오르고, 자녀 부양도 해야 해서 가게를 인수했다”라고 말했다. 재취업을 하자니 뽑아주는 회사가 없다. 경기 불황으로 고용도 적은데다, 직업재교육도 쉽지 않다. 인건비 부담 탓에 아르바이트를 고용도 버겁다.

경기 침체가 시작된 2000년대 후반, 소규모 부부창업이 인기를 끈 것도 이 때문이다. 편의점은 부부가 2교대로, 음식점은 부부가 홀서빙과 부엌일을 나눠 맡는 방식이다.

골목상권으로 들어오는 대형 프랜차이즈와 대기업도 자영업자에겐 큰 걸림돌이다. 호프집 사장 이씨는 “프랜차이즈와 대기업도 골목으로 들어오는데 TV에서 대놓고 홍보해주는 식당도 골목에 들어온다”라며 “우리 가게가 경쟁할 수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자본과 기술, 노하우, 홍보에서도 밀리는 영세자영업자가 택하는 길은 ‘노오력’이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다.

신촌에서 닭요리집을 하는 박종운(62세)씨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공기업을 다니던 그는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2008년 명예퇴직을 택하고 퇴직금으로 가게를 열었다. 삼계탕집, 횟집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가게다.

유력한 경제지에서 창업 모범케이스라고 소개하기까지 했다. 부인과 함께 출퇴근하며 부지런히 일한 보상이었다. 그런데 2015년, 구청에서 그의 점포가 있는 토지에 호텔설립인가를 냈다. 건물주는 상가를 매물로 내놨다. 박씨는 건물주와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해외에 있는 건물주를 만날 수는 없다. 오로지 변호사와 이야기하라는 전언만 올 뿐이다. 그는 말한다.

“얼마 전 친구가 연락이 왔어요. 가게 시작하고 나서 손에 꼽는 친구 연락이라 반갑게 받았는데요. 은퇴를 앞두고 장사를 시작하고 싶은데 저한테 물어보고 싶다고 연락한 거에요. 그래서 한마디 했죠. 건물주에게 니 돈 다 먹힌다고.”

자영업 비율 OECD 5위…장사 안 되고, 대출 부담까지

자영업자는 점점 줄고 있다. 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쓸고 간 후, 한국 자영업자는 580만 여명까지 치솟다 2012년부터 줄었다.

지난해 5월 통계청이 발표한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비임금 근로자 중 자영업자 규모는 555만1000명으로 전년대비 10만5000명이 감소했다. 그러나 아직도 자영업자 비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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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행한 ‘OECD 팩트북 2015~2016’을 보면 2014년 기준 한국 자영업자 비율은 26.8%다. OECD가 조사한 36개국 중 5번째다.

자영업자에게 더 큰 문제는 ‘대출’이다. 자영업자는 줄었지만 대출금액은 늘었다. 지난해 5월,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4월 한 달에만 국내은행 자영업자 대출은 2조3000억원이 늘었다. 전체 기업대출 증가폭(5조8000억원)의 39.6%다.

빚을 내 창업한 자영업자가 불경기에 장사가 잘 되지 않자 또 빚을 내 점포를 근근이 굴리고 있다는 의미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자영업으로 넘어온다. 이들은 명예퇴직금 만으로 30년을 먹고 살아야 한다. 재취업은 어렵다. 잘된다는 요식업을 하자니 조리기술이나 장비가 부족하다. 이 탓에 은퇴한 자영업자는 보통 운영이 쉬운 프랜차이즈를 택한다. 본사에서 조리법과 운영노하우를 알려주니 창업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서다.

하지만 그만큼 망하는 사람도 많다. 신촌 대폿집 사장 한씨(65)는 “7년 전과 비교했을 때, 신촌 상권의 90% 정도가 주인이 바뀌었고, 주인이 바뀌는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라며 “‘잘 된다’란 광고만 믿고 프랜차이즈 가게를 여는 사람이 상당수다”라고 말했다.

분당에서 호프집을 하는 이씨는 “상권조사와 현장조사, 가게운영준비 없이 ‘월 000만원 수익보장’이란 프랜차이즈 가맹문의만 보고 가게를 연 은퇴자도 많다”라고 말했다.

자영업자 양산하는 시스템…근본적 일자리 대책 절실

준비가 덜 된 만큼 폐업하는 자영업자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2015년 현대경제연구원이 펴낸 <자영업자 진입·퇴출 추계와 특징>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자영업 퇴출자(65만6000명)는 진입자(58만2000명)를 초과했다.

KB금융지수경영연구소는 2015년 1월에 펴낸 <국내자영업자 현황과 업종별 생멸통계>에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자영업자는 OECD평균인 16.1%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추정했다. 자영업자가 국내 소비자 구매력보다 과다하단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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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blog.daum.net/)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국내 은행 자영업자 대출규모는 239조 3000억원이다.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 등 제2금융권 대출까지 합하면 지난해 6월말 기준으로 519원5000억원이다. 수익보다 갚아야할 이자가 크다면 자영업자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폐업하는 자영업자를 복지로 떠안아주기엔 600조원 적자인 국가재정상황이 녹록치 않다. 그렇다고 각 가정에서 받아들이기도 가계부채 1200조원이 걸린다. 이런 상황에서 은퇴한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자영업에 몰리는 인구 역시 늘어나고 있다.

<한계가족>을 펴낸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서성민 연구이사는 자영업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인 대책을 주문한다. 그는 정부가 내놓은 자영업자에게 대출을 쉽게 해주거나 특별상권지역지정 대책이 오히려 자영업자를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중장년을 자영업자로 내모는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 이사는 “중장년인구가 자영업에 몰리지 않게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주체는 당연히 기업”이라고 말한다. 기업이 혁신과 투자를 계속해야 좋은 일자리가 나온다는 이야기다.

불경기가 계속되면서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든다. 손쉽게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부동산 투기에 집중하거나 골목상권 서비스업에 진출한 기업을 찾기가 쉬워졌다. 일자리가 없으니 돈 벌 길이 없는 가계는 무리하게 재테크, 부동산 투기에 참여했다. 결국 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채로 돌아와 만성적인 내수 침체를 일으켰다.

서 이사는 “일자리 시작은 교육, 일자리가 끝나는 지점은 복지”라며 “복지 부담도 결국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한다.

고령화가 이미 진행된 선진국 역시 복지부담 증가와 세수감소로 정부재정적자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 역시, 중장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버산업을 육성하는 투자가 이뤄져야한다는 주장이다.

월, 2017/02/20-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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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른백년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단비뉴스팀과 함께 ‘사랑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6편에 걸쳐 우리 주변의 삶을 들여다본다. 장시간 노동자, 청년 실업자, 경쟁에 시달리는 직장인, 노인, 청소년들이 그들이다.  

노인은 말동무를 찾아 매일같이 탑골공원에 간다. 취업 못한 청년은 안전한 직장을 가질 때까지 스스로 고립된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직장인은 연인을 만날 시간조차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사랑은 사치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다. 

당신은 사랑하고 계십니까. 

<프롤로그> 1. “들어줘서 고마워”      2. 한국인의 밥상

<청년 실업자> 1. “사랑도 유예가 되나요?”  2. “연애도 사치일 뿐”   

<자영업자> 1. “주말도, 휴일도 없는 30시간 편의점이예요”  2. 쉽게 문 열고, 쉽게 망한다.

(이 글은  전남 광주에서 24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혜숙씨(가명)의 육성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런 형식을 ‘사람책’이라고 한다. 

또 이 글은 경향신문( “365일 하루 30시간 부부 맞교대…군대 간 아들 면회도 못 갔어요)에 전재됐다)

남편이랑 저랑 둘이서 13년째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어요. 아르바이트는 안 써요. 하루 24시간을 둘로 쪼개서 반반씩 근무하는 셈이죠. 저는 보통 새벽 3시쯤 일어나요. 식사를 준비해 놓고 도시락을 싸서 부지런히 집을 나서면 4시 반에서 5시 사이에 남편이 있는 가게에 도착해요.

아무래도 남편이 야간에 고생을 하니까 10분이라도 더 빨리 가려고 애를 쓰죠. 이때가 하루 중 남편과 제가 만나는 유일한 시간이에요. 교대시간 전후로 한 두 시간 남짓이요. 그 시간 동안은 둘이 목이 터져라 얘기를 하죠. 진상손님 흉도 보고, 못했던 잔소리도 하고. 그때는 손님도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손님이 오면 대화를 못하잖아요.

하루 2시간, 한 달에 이틀 반나절을 함께하는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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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쯤 남편이 집으로 가고 나면, 그날 팔 빵을 구워요. 우리 편의점은 빵이랑 쿠키를 직접 구워서 팔아요. 그리고 8시부터는 상온제품, 유제품 등 연달아 들어오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재고가 없는 건 추가 발주를 넣어요.

틈틈이 빵을 굽고 포장하면서 손님을 받다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요. 보통 오전 11시 전에 가게에서 첫 끼를 먹죠.

정오가 되면 근처 대학에서 학생들이 점심을 해결하러 몰려들거든요. 그 전에 해치워야 해요. 밥은 카운터 안쪽에 간이식탁을 펴놓고, 집에서 싸온 몇 가지 반찬이랑 먹어요.

어떤 날은 손님이 몰려서 한 끼 먹는 데 두 시간씩 걸리기도 해요. 오후 3시 반쯤 남편이 다시 오면 저는 집으로 돌아가요. 정말 하루가 금방 가죠.

편의점 일이 편하다는 말은 다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예요. 정말 혼자서는 손발이 모자라죠. 쉽게 생각하고 덜컥 편의점을 시작했다가 한 달 만에 두 손 들고 나가는 경우도 여럿 봤어요.

저희끼리는 24시간이 아니라 ‘30시간 편의점’으로 이름을 고쳐야 한다고 말해요. 혼자서는 도저히 창고정리나 청소를 하기 힘들어서, 교대시간 전후로 둘이 같이 근무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사실상 남편은 하루에 15시간 이상 가게 일을 하고 있어요. 자영업이 다 그렇긴 하지만요.

주말도 휴일도 없는 연중무휴의 도돌이표 하루

편의점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가정주부였고, 남편은 은행에 다녔어요. 은행 지점장을 7~8년 정도 했어요. 2000년도였을 거예요. 외환위기 칼바람을 간신히 피했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마지막 해고바람이 불었어요. 그때 명예퇴직을 당했죠.

남편이 40대 후반이었고 첫째는 고3, 둘째는 겨우 중2였어요. 돈 들어갈 일이 너무 많은 시기였죠. 남편이 작은 개인회사에 재취업을 했었어요. 그런데 자금을 끌어오고 영업을 해야 하는 일이라 남편이 많이 힘들어했어요. 그만뒀죠.

당시에 은행에서 받은 퇴직금도 있고 집에 목돈이 꽤 있었는데, 사기꾼이 붙더라고요. 사기도 여러 번 당했어요. 남편이 돈을 벌어보겠다며 주식도 하고 사업투자도 했지만 다 여의치 않았어요.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그때 지인이 편의점을 하고 있었어요. 물어보니, 편의점은 장사경험이나 별다른 수완이 없어도 해볼 만하겠더라고요.

그때는 편의점 매출이 많지 않아도 본사에서 점주들한테 최저수입을 보장해주기도 했고. 그렇게 알음알음 시작하게 됐어요. 본사에서 주는 최저보장금이라도 다 챙겨보자고 생각했죠.

매장을 세 번 옮기면서 편의점을 하는 12년 동안, 제가 몸이 아팠을 때 잠깐 빼고는 아르바이트를 쓴 적이 없어요. 저희는 편의점을 처음 할 때 누군가에게 뭘 팔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컸어요. 지금도 서로 “장사는 정말 나랑 안 맞아”라고 말하죠.

영업을 잘해서 떼돈을 벌 자신도, 능력도 없었어요. 인건비를 줄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몰랐죠. 그래서 초기에는 둘이서 하루에 열대여섯 시간씩 근무하며 일을 배웠어요. 편의점이라는 게 쉬는 날이 없잖아요. 가게를 시작한 뒤부터 12년째 저희 부부는 주말도 휴가도 없이 집과 가게만 오가며 지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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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부부는 끼니 때가 되면 편의점 한 구석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을 허겁지겁 먹는다. 사진은 김씨가 싸온 도시락 모습.

요즘에는 제가 몸 관리를 하느라 일주일에 세 번, 퇴근 후에 운동을 다니긴 하지만 집에 가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자려고 하죠. 몸이 너무 힘드니까. 하루 대여섯 시간 정도 자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는 아들 방학 때만 기다려요. 기댈 곳은 우리 아들밖에 없으니까. 둘째 아들이 다른 지역에서 대학원을 다니는데 방학이면 집에 와서 가게 일을 도와주거든요. 아들 덕에 일주일에 하루 이틀만 가게를 쉬어도 감지덕지죠.

편의점과 집 밖에서는 잠수인생

저희는 아들 둘 다 군대 면회를 한번도 못 갔어요. 첫째는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입소할 때 데려다준 게 끝이었고, 둘째는 면회는커녕 군대 갈 때 데려다주지도 못했어요. 편의점을 하니까 하는 수 없었어요.

그러다 잠깐 편의점을 쉬었던 5개월 동안 집에 있으면서 애들 밥해주고 집안일하면서 보냈는데, 작은아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엄마가 집에서 밥을 해준다고. “엄마, 너무 좋아. 너무 좋아” 그러더라고요. 미안했어요. 둘째가 중2 때부터 제가 편의점을 한다고 집에 없었으니까요.

저희가 친정이나 시댁 식구가 참 많은데, 결혼식 등 경조사에 참석 못한 지도 10년이 넘은 것 같아요. 못 갔어요, 한번도. 가려면 또 대충 하고 갈 수는 없잖아요.

남편도 저도 365일 24시간을 편의점과 집만 왔다 갔다 하니까 입고 갈 옷이 없는 거예요. 애들 아빠도 회사 다닐 때 입던 낡은 양복 밖에 없고. 그런 상황이 돼 있었어요. 옷을 사고 구두를 사고 또 준비를 하고, 그러기가 싫었어요. 여유도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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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남편은 은행지점장으로 일했지만 2000년 갑자기 정리해고를 당했다. 사진은 1998 외환위기때 대량해고를 당한 한 은행원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모습 (사진 출처: http://www.gokorea.kr)

친구들이 자식 결혼한다고 연락이 오면, 저는 몸이 아파서 못 간다고 하고 애들 아빠는 일 때문에 못 간다고 말해요. 그래서 저희 부부는 우리 아이들 결혼할 때 아무도 안 오겠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친정어머니가 치매예요. 처음에 남매들끼리 돌아가면서 돌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편의점 일을 하면서는 제가 어머니를 모실 수 없잖아요. 그때가 두 번째로 했던 편의점 매장 계약이 종료되고 잠깐 쉴 때였는데, 새로 편의점을 열기 전까지 한 20일 정도 저희 집에서 친정어머니를 모셨어요. 이게 마지막이다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어느 날은 오빠가 전화를 해서 “이제 네 차례니까 네가 좀 모시라”고 하는 거예요. 전 “다들 사는 거 바쁘고 힘들어서 집에서 어머니 모시기 힘드니까 요양원에 가시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독하게 말해버렸어요.

남편이 은행에 다니고 제가 집안 일만 할 때는 사교모임이 많았어요. 취미생활도 하고. 그런데 편의점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친구들 모임에도 제가 먼저 잠수를 타게 되더라고요. 계속 모임에 나가지 않다보니 연락이 점점 줄고 자연스럽게 아무도 안 만나게 됐어요.

지금은 같이 편의점 하면서 알게 된 친구 말고는 연락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종일 편의점에 있다 보면 전화 통화를 하다가도 손님이 오면 끊어야 하고, 시간 내서 누굴 만나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동네 주민 모임은 회비만 내고 있어요.

자주 오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편의점은 단골 개념이 적기도 하고, 손님들과는 절대 친하게 안 지내요. 되도록 말 섞지 않으려고 하죠. 외상을 달라고 하거나,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거절하기 어려워지거든요. 또 까딱 잘못하면 사기당하니까. 몇 걸음만 가면 근처 편의점이 두 곳이나 있는데 거긴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주인 얼굴도 몰라요.

저희 부부는 편의점이나 집이 아닌 곳에서는 일종의 잠수를 타고 있는 거예요. 사회생활, 사적인 생활 모두에서요. 라디오에서 저와 비슷한 사연만 나와도 꺼버리고 독하게 일만 했어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이런저런 관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마음 아파하지 않기로 했어요. 살다보니, 외롭고 슬프고 그런 감상에 젖어서는 내가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감정이 늙어버린 것 같아요.

“자식들 때문이 아니면 이걸 왜 하겠어요?”

두 번째 편의점 계약이 만료되던 때가 저희가 편의점을 시작한 지 딱 10년째 될 즈음이었어요. 처음 가게는 유흥가에서 했고, 그 다음 가게는 중학교 앞에서 했는데 술꾼들, 사고치는 중학생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사람들한테 굉장히 치였죠.

정말 편의점 하면서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다고 느꼈을 정도예요. 오는 손님들도 다 미워 보이고. 그래서 계약이 만료되면 다시는 편의점을 안 하려고 마음먹었었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행이나 다니면서 푹 쉬려고 했어요. 그런데 쉬면서 수입이 딱 끊기고, 있는 돈만 쓰니까 금방 불안해지더라고요.

연금 조금 나오는 것 가지고는 생활하기 힘들어요. 우리가 앞으로 10년만 살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살지도 모르는데 한 푼이라도 더 벌어놔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다른 일을 해보려고 집에서 가까운 직업훈련소에 몇 달 다녔어요. 저는 제봉을 배우고 남편은 양재를 했어요. 편의점을 그만두고 앞으로는 무조건 둘이서 붙어 다니자고 합의를 했거든요. 계속 서로 못 보고 살았으니까.

2개월 넘게 다녔는데 전망이 너무 없어서 그만뒀어요. 직업훈련소는 별로 쓸모가 없어요. 정부는 왜 그런 데 돈을 쓰나 몰라요. 그러고는 5개월 만에 다시 편의점을 열었어요. 남편이랑 편의점 쪽은 쳐다보지도 말자고 했었는데, 다시 24시 편의점을 하게 된 거예요. 이 나이에 저희가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편의점을 다시 하게 된 건 아이들 때문이라고 볼 수 있죠. 자식들이 다 독립했으면 저희가 왜 이걸 하고 있겠어요?

첫째는 아직 경제적으로 자리를 못 잡았고, 둘째는 취직 대신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했으니까요. 우리 애들 나이가 서른넷, 서른하나예요. 예전 같았으면 벌써 독립해서 장가갈 나이인데 아직 그러지 못해서 저희 부부가 이러고 있죠.

저희 또래들이 요즘에는 다 자식 때문에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는 것 같아요. 세상이 그렇게 변해서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참 힘든 건 사실이에요. 힘들어요.

가게를 그만두면 남편과 여행을 가고 싶어요.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한번도 못 갔어요. 그런데 자식들 결혼도 안 시켰고 아직 할 일이 많아요. 사회적으로 복지가 최저생활이라도 가능한 정도만 지원되면, 저희가 편의점을 그만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월, 2017/02/2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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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결정이 3월 10일 전후에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헌재가 최종 변론을 이달 24일에 종결하겠다고 천명하면서 불확실하기만 했던 탄핵과 대선 일정의 윤곽이 잡혀 가고 있다.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과 법관의 양심, 그리고 시민의 상식대로라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의심할 수 없다.

하지만 연인원 1,000만이 넘는 촛불시민들이 열여섯 번의 주말 저녁을 광장에 모여도 꿈쩍 않는 대통령의 나라이다. 최순실, 김기춘, 조윤선, 그리고 이재용까지 구속되고, 새누리당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변했다’, ‘끝났다’는 말은 감히 할 수 없다.

1일 오전 서울 중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0차 변론기일에서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이 청구인-피청구인 대리인단의 출석을 확인하고 있다.
헌재가 20일, 박근혜 대통령의 최종 변론시한을 오는 24일까지로 못 박음으로써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의 임기 종료일인 3월 13일 이전에 탄핵심판에 대한 최종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세 명의 대선 후보 지지율 합이 60%에 달하고 있지만 ‘시대교체’는커녕 ‘정권교체’마저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 그것은 태극기를 무기처럼 휘두르고 ‘멸공의 횃불’을 소리 높여 부르는 이들 때문이 아니라 대한민국 보수 세력의 기반과 기득권을 결코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재벌도, 사학도, 교회도, 엘리트 집단도 그대로다. 그들 힘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북한 역시 그대로다. 아니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3월 탄핵…두 달 안에 대선

모든 불확실함과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날짜는 하루하루 지나고 있다. 이정미 헌법재판관 퇴임 이전 선고가능 날짜를 3월 9일로 잡고 D-○일을 계산하는 사람들이 이미 많다. 그날이 ‘그날’이 되길 기대하는 마음은 점점 뜨거워지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이도 늘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3월 9일만이 아니라 5월 9일 즈음을 기준으로 D-○일이라 셈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그렇고, 캠프 멤버들이 그렇고, 당직자들도 그렇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경선인단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탄핵시계가 빨라질수록 대선시계도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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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 탄핵 인용 결정이 나올 경우 대선은 두 달 안에 치뤄져야 한다. 각 당의 당내경선, 본선거 등 사상 유래없이 숨가쁜 대선이 될 전망이다. (이미지 출처: YTN)

나쁘다는 게 아니다. 마땅히 서둘러야 하고, 당연히 서두르게 된다. 탄핵 결정되면 대선까지 겨우 두 달이다. 그나마 경선 일정을 빼면 각 당 후보가 실제 맞붙는 기간은 한 달 정도에 불과하다. 탄핵결정 당일부터 대선이 치러질 두 달 동안을 하루 단위로 준비해도 시간은 모자라고, 부족하다.

각 후보 캠프와 정당에서는 이미 사실상 D-100일 작전을 치밀하게 수행하고 있다. 아무리 탄핵이 이뤄지더라도 ‘적폐청산과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은 정권교체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수위 없이 출범하는 새 정부

D+1. ‘그날’ 다음날이면 모든 게 저절로 바뀌는가? ‘그날’ 대통령 말고 누가, 뭐가 바뀔까? 신임 대통령이 청와대로 출근하면서 차기 정부가 바로 출범한다. ‘인수인계’를 위한 인수위원회가 이번에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에 충성을 맹세했거나 최소한 그 기준에 부합한다고 검증된 비서진들이 신임 대통령의 출근을 맞는다. 수석과 비서관, 그리고 과거 여당에서 파견된 행정관들은 당일 바로 사표를 수리하더라도, 정부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을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당선자 캠프에서 누가, 어떤 자리를 갈 것인지 미리 정해두지 않으면 첫날부터 혼선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 그것은 미리 할 수도, 느긋이 할 수도 없다. 자주 언급되는 예비내각(shadow cabinet)은 오히려 덜 시급한 문제다. ‘인사(人事)’, 즉 다양한 사람에 대한 다층적 검증의 시간인 인수위원회가 없는 상황은 결코 간단치 않다.

D+15. 캠프 출신 전문가나 실무자들 중 일부는 인수위원회에 참여하면서 다음 정부에서 계속 같이 일할 지에 대해 서로 확인한다. 각 부처에서 파견된 관료들,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들도 자신의 실력과 인맥을 뽐내며 영전의 기회를 도모한다. 누군가는 청와대에서, 누군가는 원래 자기 자리에서 새로 출범한 정부의 성공을 위한 역할을 한다.

인수위원회는 그렇게 검증과 교감의 시간이 된다. 그런데 그 시간이 없다. 박근혜 정부 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누가, 어떻게 채울 것인가는 ‘적폐청산과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위한 첫걸음이다. 그런데 그 첫걸음을 손도, 발도, 하물며 눈도, 귀도 없이 떼야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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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12월 대선이 끝나면 다음해 2월까지 약 68일 간 인수위가 운영된다. 인수위에서는 차기 정부의 장차관 등 핵심 인사를 선정하고, 차기정부의 국정과제를 선별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선 다음날부터 국정운영을 시작하기 때문에 혼란이 불가피하다. 사진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왼쪽)와 박근혜 당선인 인수위 현판식 모습.

보통 청와대 파견 관료들에 대한 검증에 2,3주 정도 걸리는 걸 고려하면 D+15을 넘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남아 있는 관료들 가운데는 적극적으로 청와대로 입성을 꾀했던 이도 있고, 정권 후반기라 청와대에서 나가지도 못했던 경우도 있다.

청와대 진입과 승진을 꿈꾸며 자기 인맥과 출신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파견을 기다리고 있는 관료들도 부처마다 가득하다. 민정수석실의 인사검증을 통과했더라도 누군지도 모른 채 청와대 비서진을 꾸려야 할 지경이다. 마냥 지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D+30. 유일호 재정경제부 장관, 이준식 교육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 한민구 국방부 장관,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홍용표 통일부 장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이병호 국정원장 등과 함께 국무회의를 한다. 국무회의 개최 정족수와 인사청문회 등 때문에 장관의 사표는 쉽게 수리할 수 없다.

설령 대선 기간 동안 예비내각을 이미 발표했더라도 그들에 대한 ‘인사검증’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다음 정부 인사청문회에 적용될 도덕적 기준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야당과 보수언론의 공세보다 촛불시민의 기대가 훨씬 무겁고, 무섭다. 한명이라도 삐끗하면 그때부터 혼란과 추락이 시작된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 역시 윤창중 대변인, 김용준 국무총리 내정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김병관 국방부장관 내정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등 계속된 인사참사에서 예고되었다.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대표는 “준비된 대통령”임을 매일 강조하고 있다. 만약 그가 당선이 된다면 검증 시간이 부족했다는 말은 감히 꺼낼 수도 없다.

예산, 정기국회…우왕좌왕하다 망할 수도

D+100. 박근혜 정부가 짠 내년 예산안이 5월말 확정된다. 신임 대통령으로서는 예산안에 손을 댈 수 있다면 어떻게든 손을 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박근혜 정부가 짜 놓은 예산으로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 일해야 한다. 하물며 거기에는 최순실 예산마저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는 게 예산전문가들의 설명이다.

7월 세제개편안, 8월 추경 예산으로 당선자와 집권여당의 정책의지를 내년 예산에 일부라도 반영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이며,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미리, 그리고 구체적으로 준비하지 않고서는 내년 예산안을 건드리기 어렵다.

다음 정부의 ‘수권 역량’은 인사와 예산, 그리고 조직에 대한 종합적이고 세부적인 준비 정도를 통해 평가될 것이다. 단지 역대정부 장·차관 출신들의 이름과 숫자만으로는 부족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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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장관 등 공직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그리고 9월 정기국회와 국정감사를 치뤄야 한다. 누가 집권하든지 여소야대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협치든, 연정이든, 대통령의 정치력을 극대화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D+6개월. 어렵사리 내각 구성과 예산안 조정이 마무리되면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국정감사가 열리고 법안과 예산안 심사가 진행된다.

정부 출범 이후 첫 국정감사에서는 싸드 배치와 중국의 반발, 미국의 경제압력, 일본과 위안부 문제 재협상, 북핵과 미사일 실험, 가계부채와 구조조정, 그리고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지진까지 다뤄질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새로운 정부의 대응과 책임이 주되게 다뤄질 것이다. 동시에 검찰개혁과 재벌개혁 등 ‘적폐청산’을 위한 성과에 대한 시민적 요구는 더욱 커지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사실상 공모했던 주요 부처와 관료들에 대한 책임을 물으라는 압력은 계속 거셀 것이다.

법안심사 과정에서 정부조직개편 논의가 시작이라도 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집권여당은 주요 공약들을 ‘개혁입법’으로 정기국회에 내놓겠지만 여야 대립과정에서 어느 하나 쉽게 통과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1년, 대선 7개월째 되는 2018년 12월 9일 광화문 광장에서 ‘환호와 경축’의 불꽃이 아니라 ‘불만과 좌절’의 촛불이 다시 타오를 수도 있다. 그 모습에 따라 D+1년이 되는 내년 지방선거의 승패가 좌우될 것이다.

업무연속성 계획 세워야

탄핵도, 대선도 아직 D-○일인데 D+100일, D+6개월을 미리 고민하는 것이 “하늘이 무너질 것을 걱정하는 기나라 사람(杞人憂天)”의 어리석음일 수 있다. 어쩌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일 지도 모른다.

이번 대선은 해방 직후 반민특위 정도가 내걸 수 있었던 ‘적폐청산과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이라는 어마어마한 역사적 과업을 수행할 대통령을 뽑는 선거다(후보들 대부분 그렇게 얘기한다).

그런데 우리는 반민특위의 처절한 실패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참여정부 출신 장·차관이 캠프에 많다고, 자유한국당과 ‘대연정’을 한다고 ‘적폐청산’이 실현될 수는 없다. 작살을 내겠다는 신념과 사이다 발언만으로도 당연히 어렵다.

D-100일의 “어떻게 하면 집권할 것인가?”라는 고민만큼, 아니 그보다 더욱 집요하게, D+100일의 “집권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 탄핵-조기 대선-인수위 없는 정권 출범이라는 비상상황 인만큼 캠프나 정당 차원의 업무 연속성 계획(BCP, Business Continuity Plan)이 세워져 있어야 한다. 그에 따라 목표-일정-주체-전략 등이 정해지고,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적폐청산과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요구하는 시민들에 대한 집권세력의 ‘응답과 책임’(responsibility)을 말할 수 있다. 정권교체가 끝이 아니라 시작인 이유다.

월, 2017/02/20-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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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자 시리즈>

다른백년은 ‘금주의인물’ 코너를 통해 매주 소개해 온 인물 가운데 이번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을 추려 <대선후보자 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어떤 후보자는 소개 시점이 빨라 지금 상황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직 소개하지 않은 후보자도 있습니다.

대선 후보자들의 과거 행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이번 시리즈가 올바른 선택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마운드에 오른 폐족, 안희정 충남도지사 (2016. 9. 13)

SNS를 든 싸움닭, 이재명 성남시장 (2016. 10. 14)

말이 통하는 보수주의자, 유승민 의원 (2017. 1. 20)

계급배반을 꿈꾸는 금수저, 남경필 경기도지사 (2017. 2. 14)

아스팔트 우파의 마지막 희망,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은 ’관운’이 좋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는 1980년 만성 담마진(두드러기)로 병역을 면제받고 이듬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징병 신체검사를 받은 365만여명 가운데 담마진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남성은 4명에 불과하다 (2016년 6월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자료). 

2006년과 2007년 검사장 인사에서 두 번이나 미끄러졌지만 고검장은 사법시험 동기 가운데 가장 빨리 올랐다. 고검장을 끝으로 검사복을 벗었지만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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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권한대행은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장관,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 권한대행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현재 박근혜 탄핵 이후 방향을 잃은 냉전보수세력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국무총리에 오를 때도 운이 따랐다. 2015년 5월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 게이트로 취임 두 달 만에 낙마하며 갑자기 국무총리가 됐다. 2016년 11월에는 김병준 책임 총리 후보자가 임명되며 ‘실업자’가 될 뻔 했지만, 복잡한 정치 상황 속에서 오히려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맡았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출마를 포기하자 여권 주자 가운데 여론조사 지지율 1위에 오르며 ‘황교안 대망론’까지 불고 있다. 

이제 그의 운은 시험대에 올랐다. 박근혜 정권의 핵심이었던 그가 박근혜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할지, 아니면 억세게 좋은 운이 그에게 다시 날개를 달아줄지 말이다.

“나는 흙수저”…유신시절 학도호국단장

 “여러분은 나를 금수저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흙수저 중의 무수저다.”

2016년 12월27일 기자 간담회에서 황 권한대행은 자신이 ‘무수저’라며 6.25 전쟁 당시 월남한 가족사를 언급했다. 그는 1957년 서울 용산에서 태어났는데, 북에서 피난 온 아버지가 고물상으로 가족을 먹여 살렸다고 한다. 

그는 법무부 장관 재직시절 모교인 봉래초등학교에 방문한 자리에서 부유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언급하며 “돈을 많이 벌거나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초·중등학교까지 황 권한대행은 반장을 도맡아 하는 등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지금의 그의 성향은 경기고 재학시절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동기생이던 이종걸 민주당 의원과 노회찬 정의당 대표는 유신 선포 1주년을 맞아 유신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뿌렸지만 황 권한대항은 이에 동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3학년 때 학도호국단의 연대장(학생 대표)을 맡기도 했다. 학도호국단은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위한 ‘10월 유신’ 을 밀어붙이며 학생회를 폐지하고 만든 준군사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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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왼쪽부터 황교안, 이종걸, 노회찬. 이들은 경기고 72회 동기들이다. 아래 사진은 1975년 경기고 학도호국단 연대장때의 황교안 총리(맨 앞쪽 어깨띠와 완장을 찬 이)의 모습. (사진 출처: 경기고 졸업사진)

그가 총리에 올랐을 때 이종걸과 노회찬은 “황교안 총리는 학창시절 모범생이었다. 당시 어린 마음에도 대부분 학생들이 독재 정권에 대해 비판적이어서 어용조직인 학도호국단 간부를 맡으려 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서울대 법대를 노렸지만 실패한 그는 재수 끝에 1977년 성균관 법대에 입학해 고시공부에 매진했다. 반유신 투쟁이 본격화되는 시기였지만, 그는 ‘운 좋게’ 병역면제를 받은 뒤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총리 청문회 당시 군 병원의 공식 진단 6일 전에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끝내 의혹이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았다.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운 피부병을 앓고도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기도 했다.

확신형 공안검사…민주정부에서 밀려나

그는 검사로 임용된 뒤 공안검사의 길을 걸었다. 대부분 공안검사들이 공안 경력을 내세우기 꺼리지만, 그는 법무부 장관 시절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장관보다 공안검사가 가장 적성에 맞는다”고 밝혔다. 

그는 1987년 서울지검 공안검사를 시작으로 대검찰청 공안 1·3과장과 서울지검 공안2부장을 지냈으며, 공안을 총괄하는 서울지검 2차장을 맡았다. 김현희 칼(KAL)기 폭파 사건과 임수경 방북 사건, 1980년대 말 학생 운동 등 여러 굵직한 공안 사건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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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권한대행이 1988년 펴낸 ‘국가보안법’. 그는 이 책으로 ‘미스터 국보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며 민주주의와 인권의 중요성이 커졌지만 그는 공안검사의 ‘본색’을 고수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김대중 정부 출범 첫해인 1998년  <국가보안법 해설>이란 책을 써서 ‘미스터 보안법’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2009년에 쓴 <집회·시위법 해설>에서 “집시법 역시 4·19 혁명 이후 각종 집회와 시위가 급증하여 무질서와 사회 불안이 극에 달한 상황 속에서 5·16 혁명 직후 제정됐다”며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규정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공안검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꿋꿋이 고수했다.

아예 그는 ‘좌파정권에 저항하다 밉보인 투사’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검사장 인사에 밀린 것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미운털이 박혀서라는 주장이었다. 

2011년 그는 부산고검장 시절 교회에서 한 특강에서 이렇게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김대중씨는 계속 재야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경찰에서도 조사를 받고 검찰에서도 조사받고 정부하고는 계속 갈등했던 분이다. 그런데 이런 분이 대통령 딱 되고 나니까 그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에 있던 검사들이 전부 좌천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안부 검사들에 의해 대우중공업 사태와 관련해 구속까지 된 분이다.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니까 공안부에 오래 있던 사람들에 대해 여전히 곱지가 않았다”

박근혜 아바타…공안통치 좌장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부름을 받은 그는 법무부 장관, 총리를 거치며 정권의 해결사 노릇을 했다. 

2013년 9월 법무부 장관 재직 당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중 ‘혼외자’ 의혹이 불거진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의 감찰을 지시해 옷을 벗게 했다.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하자 “법률가의 양심”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보였다. 당연히 대선개입 사건 수사는 힘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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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은 법무부장관시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개입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를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이 사건이 박근혜정부의 정통성과 직결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철저히 박근혜의 아바타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헌정 사상 최초인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를 총지휘하기도 했다. 

검찰이 세월호 참사 이후 해경 123 정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하려던 것을 막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 기간 연장 요청에 그는 20일 현재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으며 야당의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실정법보다 교회법이 우선

공안검사와 함께 그를 설명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독실한 기독교 신앙이다. 문제는 그의 신앙이 공적인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7년 경기도 성남시 분당 샘물교회 교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다가 탈레반에 납치됐을 때 무분별한 선교활동에 대한 비판이 일자,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그런데 과연 납치된 그들은 비난받을 일을 한 것인가?”라고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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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권한대행 부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왼쪽 사진은 2012년 2월 열린 ‘변호사 친교의 밤’에서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는 황교안의 모습. 오른쪽은 아내 최지영씨가 낸 복음성가집 앨범 (사진 출처: http://www.bluetoday.net/)

그가 쓴 <교회와 법 이야기>에서 “주일에 사법시험 치르는 것을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결정해 유감이다”라며 실정법 위에 교회 논리를 앞세우기도 했다. 

결국 그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공안검사’, ‘독실한 기독교 신앙’, ‘박근혜 정권의 해결사’ 등을 꼽을 수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철저하게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지향했고, 이른바 ‘애국 보수세력’의 가치를 대변해왔다. 

실제로 그의 대망론을 부채질하는 것은 자유한국당(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몸으로 막겠다는 ‘아스팔트 우파’들이다. 

그는 현재 자신의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안 하며 주가를 높이고 있다. 황 권한대행의 출마 가능성에 대해 여론조사지지율이 20%까지 오르지 않으면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권한대행이라는 중책을 쉽게 내려놓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분명한 건 광장의 촛불 민심은 그를 황교안 개인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의 ‘아바타’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화, 2017/02/2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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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긴장을 낮추는 조치를 취하고, 이란과는 제재 해제 및 관계정상화 합의를 이행할 것임을 밝히면서 많은 사람들이 안도하고 있다. 파국은 피했지만, 그렇다고 안심하긴 이르다.

트럼프는 또 다른 군사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또 그의 통치방식은 미국의 시스템을 파괴해 미국 뿐 아니라 세계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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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grist.org/)

우리는 먼저 트럼프의 승리를 가져온 미국 정치와 거버넌스의 몰락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건 어떤 미치광이가 갑자기 미국을 장악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정책이 결정되고 집행되는 구조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뻔뻔하게 공직을 원하는 사람이 나타난 경우이다.

철저히 민영화된 미국

미국의 정책결정은 민간컨설팅업체와 투자은행으로 넘어갔다. 1960년대에는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절반 이상이 정부로 갔지만, 지금은 그 비율이 5%에 불과하다. 정부는 점차 기업에 지배당하고 있고, 공무원들은 정치의 횡포에 저항할 정도의 자기 확신이 부족하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돌로 만든 성당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맨손으로 벽을 치면서 오르락내리락 거리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미치광이로 여기고, 그가 권력을 잡을 거라고 생각치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맨주먹으로 벽을 뚫자 성당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곧 무너졌다. 견고했던 성당이 갑자기 무너지자 그에게 마법과 같은 힘이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광대트럼프-B3_한글

사실 트럼프의 정치적 성공은 지난 20년 동안 미국에서 진행된 민영화의 결과물이다.

트럼프의 목적은 정부의 공식제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와 기업사냥꾼 출신 참모들은 사익을 위해 미국의 자산을 빼돌리고, 섞은 시체만을 남겨두려고 한다. 그는 내각에 정부 해체를 원하는 독수리와 하이에나들을 임명했다. 예컨대 트럼프의 수석전략가 베넌은 러시아혁명가 레닌처럼 정부를 무너뜨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건 빙산의 일각이다.

데보스 교육부장관은 공교육을 파괴하려고 한다. 프루이트 환경청장은 정유회사에 깊이 연루돼 있고, 페리 에너지부장관, 틸러슨 국무장관처럼 기후변화를 부정한다.

이같은 미국 정부의 철저한 몰락은 미국 시민들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이다.

부실한 미국, 전세계를 위협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아프카니스탄 산악지대에 숨어 있는 테러리스트들이 아니다. 진짜 위협은 미국 내부에 있다. 미국 안에는 수 천개의 핵무기, 독극물, 핵처리시설, 거대한 석유파이프라인과 정유소, 해안시추구 등 잠재적 위협시설이 잔뜩 있다. 이것들을 안전하게 관리하려면 잘 훈련된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그런 유능한 전문가와 공무원들을 해고하고, 예산을 삭감함으로써 이런 위협물질들이 전세계를 위협하도록 방치하고 있다.

지금 미국은 지난 60년 동안 모아온 위험물질에 대해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과 안전기준이 부족하다. 미국에는 항구, 다리, 파이프라인, 발전소, 철도 등을 관리할 전문가들이 부족하다. 미국의 금융, 교육 등의 제도적 토대가 급속히 해체되는 것은 미국 뿐 아니라 세계의 안전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사태는 더욱 나빠지고 있다. 교육과 유지보수 관련 예산의 삭감은 전문가들을 훈련하고, 그들에게 적정 임금을 주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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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killingthebreeze.com/)

브루킹스연구소의 켓츠(Bruce Katz)에 따르면, 기반시설, 교육, 혁신과 관련된 예산이 2013년 GDP대비 3.1%에서 2024년 2.2%로 크게 감소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분야 예산은 지난 40년 동안 3.8%였고, 미국은 향후 50년 동안 막대한 기반시설 개선이 필요한데도, 이렇게 예산이 삭감되고 있다. 이처럼 트럼프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최근 미국 핵무기회사 직원의 부정시험 사건이 있었다. 수 천개의 핵무기를 관리하는 직원이 핵미사일 관련 기계 구매 관련 시험에서 답안지를 베끼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수 만명의 목숨을 앗아갈 일련의 사고, 부주의, 소통부재의 최근판일 뿐이다.

≪명령과 통제(Command and Control)≫를 쓴 슈로저(Eric Schlosser)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히로시마와 같은 불행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행운덕분일지도 모른다. 이 순간에도 트럼프는 핵무기를 늘리자고 말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엔지니어협회(ASCE)가 발간한 ‘미국의 기반시설’ 보고서에 따르면, 교통, 식수, 에너지, 다리, 댐 등 미국의 기반시설 수준은 평균 D+ 였다. 지난 15년동안의 투자 부재가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정부 관료제를 비난하는 정치선전때문에 유능한 공무원을 채용하지 못한 정부는 이런 재앙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부실하게 관리되는 화학물질

콜린 전 국무장관의 비서실장이었던 윌커슨에 따르면, 미군 화학물질청(U.S.Army Chemical Materials Agency)은 20년 전, 화학비축물을 파괴하겠다고 약속했는데, 현재 파괴율은 50%에 그치고 있다 (러시아는 70% 가량을 파괴했다).

위험한 무기를 유지, 관리하는 것은 인력이 많이 투입되고, 해당 지역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이 일은 비밀주의와 무관심 때문에 쉽지 않다. 즉 군대는 비밀을 유지하려고 하고, 일반 대중은 큰 관심이 없다. 많은 화학무기가 비교적 안전하게 보관돼 있지만(이원물질은 분리 보관되고, 이것들이 결합될 때 위험해진다), 어떤 화학물질들은 그렇지 않다. 이것들은 눈에 띄지 않고, 큰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부실하게 관리된다.

군사 쓰레기는 이런 문제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다. 미국은 화학쓰레기, 수명을 다한 원자력발전소, 핵 물질, 기름찌꺼기, 송유관, 그리고 광산 등으로 뒤덮혀 있다. 이것들을 안전하게 관리하려면 인력과 시설에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방치된 핵폐기물

미국은 민간의 핵에너지 이용과 핵무기 프로그램과 관련해 세계에서 가장 큰 처리시설을 갖고 있다. 이는 후쿠시마 원전 12개와 맞먹는다. 미국은 6만5000 톤 이상의 핵폐기물을 배출하는데, 이 중 상당수는 안전하지 않은 장소에 보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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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theverge.com/)

IPS의 핵전문가 알바레즈는 “이들 중 상당수가 방사능물질이지만, 미국의 핵폐기물처리장은 일반적 산업 폐기물 처리장처럼 만들어졌다. 그 중 일부는 큰 쇼핑몰이나 자동차 판매점를 만들 때 쓰는 건축재료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만약 이 중 한 곳에서 사고가 난다면, 그 피해규모는 체르노빌 때보다 60배 이상일 것이다.

에너지부는 공중안전은 아랑곳없이 매립지에 방사능물질을 쏟아붓고 있다. 1940-50년대에도 미주리주 브리지톤의 웨스트레이크 매립장에 방사능물질이 버려졌다. 이렇게 되면, 화재나 홍수가 났을 때, 대중의 안전을 크게 위협하게 된다.

또 최근 워싱턴주의 한포드 핵페기물 단체(Hanford nuclear waste complex)의 조사에 따르면, 28개 핵폐기물 저장탱크에서 심각한 결함이 발견됐다. 이 중 하나에서는 2012년부터 누출이 발견됐다. 이곳은 1950년대의 플루토늄 실험 때부터 존재했었는데, 여기에는 5백만 갤런의 방사능 물질이 저장돼 있다.

지속되는 환경 파괴

석탄산업은 산 정상을 조금씩 갈아먹으면서 그곳을 생명이 살 수 없는 불모지를 바꿔버린다. 그리고 강과 호수에 독극물을 흘려보낸다. 규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1990년대부터 석탄회사는 신기술을 갖고, 웨스트 버지니아, 켄터키, 버지나아, 테네시 주 등에서 델러웨어 주 보다 큰 땅을 파헤져다. 이런 채굴로 인해 천 마일 이상의 냇가가 사라졌다.

최근 채굴에 쓰이는 화학물질로 웨스트버지니아의 엘크강이 오염되면서 30만 명 이상이 식수를 구할 수 없었다. 이런 오염사고는 파산한 회사의 책임이지만, 사실 연방정부 공무원들이 전혀 검사를 하지 않았던 책임도 크다. 회사도 지방공무원도 오염사건에 대한 비상 계획을 세우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로부터 몇 주후에 노스캐롤라이나 에덴에서 송유관 누출로 3만9000톤의 비소 함유 석탄재가 근처 단 강으로 흘러들어갔다.

주(洲)의 검사 및 규제 관련 예산이 축소된 것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위험물질 관련 사고에 대한 준비와 훈련에 대한 예산지원이 줄어들면서 인력 훈련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석탄․석유산업 노동자는 안전불감증으로 엄청나게 죽어 나간다. 직장안전관리처(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에 따르면, 텍사스에서 안전규칙을 감독하는 인원은 단 95명이다. 그나마 훈련 경험이 있는 인원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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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채굴에 동의하는 사람은 석유시추, 특히 최신기술인 수력을 이용한 시추에 찬성할 것이다. 시추는 지하암반층에서 천연가스와 원유를 빼내는 것인데, 이를 위해 땅 속으로 물과 모래, 다양한 화학물질을 밀어 넣는다. 이 과정에서 식수를 오염시키는 독성 화학물질이 표면 아래로 침투된다. 이 화학물질의 독성은 너무 강해서 거의 정수가 불가능할 정도다.

시추는 해당지역을 완전히 초토화시킨다. 시추드릴이 계속 움직이면서 독성물질을 퍼뜨리고 식수를 오염시킨다.

이렇게 수십년동안 땅속으로 침투된 벤졸, 포름산 등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대한 규제, 보수관리, 재난대책 등이 없다면, 현재의 시추붐(boom)은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폭탄(bomb)이 될 것이다.

재앙은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점점 더 치열해지는 에너지원 발굴은 해양 시추와 같은 극단적 방법을 만들어냈고, 이것은 에너지회사에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2010년 멕시코만에서의 원유 유출로 사망자 11명, 1만6000마일의 해안이 오염됐다. 그 비용만 약 400억 달러에 달한다. 그 사고 이후에도 미국 정부는 쉘(shell)에게 알라스카 해변의 심해를 시추하는 것을 승인했다.

빈번해진 대홍수, 기후변화를 믿지 않는 트럼프

유지보수, 검사, 규제 관련 예산의 삭감은 미래의 대재앙과 수 백억 달러의 피해를 야기할 것이다. 미국의 열악한 기반시설 외에도 기후변화는 또 다른 장애물이 될 것이다.

기후변화 뉴욕패널에 따르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100년에 한번 발생할 대홍수가 2050년쯤에는 35-55년 사이에 한 번, 2080년에는 15-30년에 한번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Rose Machado, left, walks in waist high floodwater as her neighbors' trailer burns in Lafitte, La., after Hurricane Rita passed through the area, Saturday, Sept. 24, 2005.  The person at right is not identified.  (AP Photo/Kevork Djansezian)
(사진출처: AP Photo)

국가허리케인센터에 따르면,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손실액은 1080억 달러, 2012년 샌디의 손실액은 500억 달러였다. 기반시설에 대한 유지관리가 부실한 상태에서 기후변화는 대재앙을 초래한다. 다음 재앙에 의한 손실은 9. 11테러를 훌쩍 뛰어넘을지도 모르는데, 미국은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줄이고 있다.

불행히도 안전문제의 직접적 피해자인 유권자들은 비싼 로비스트를 고용하지 못한다. 언론은 이 문제를 다루지도 않는다. 예산 삭감에 대해 관련 인력과 전문가들은 워싱턴 D.C에서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한다.

오늘날 워싱턴의 정치문화는 미디어에 지배당하고 있는데, 의원들은 재선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에 무관심하다.

단 몇 번의 재앙으로 미국은 무릎을 꿇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수퍼파워는 자기 내부의 상처로 인해 파멸할 것이고, 그로 인한 환경파괴의 여파는 전세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수, 2017/02/2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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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백년포럼이 시즌제를 도입하면서 완전히 새롭게 시작됩니다.

백년포럼은 (사)다른백년이 주관하는 대중적 공론장으로, 지난해 매달 한 번씩 개최하면서 주로 한국사회의 경로 변경과 관련된 의제를 공론화해왔습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시즌제, TED식 강연과 현장청중투표 등을 도입하는 등 내용과 형식 양 측면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됩니다.

시즌제는 특정 의제에 대해 3-4개의 주제를 일정 기간 안에 집중적으로 발표하는 형식을 말합니다. 올해 첫시즌의 의제는 시민의회로, 이 주제를 놓고 3월 한 달 동안 세 차례의 포럼이 집중적으로 개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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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포럼은 최근 시민의회법을 발의한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회 포럼은 시민의회의 저자권자로 유명한 김상준 경희대 교수가, 3회 포럼은 추첨민주주의 전문가인 이지문 박사가 발표자로 나섭니다.

또 청중들은 투표기를 활용해 현장에서 즉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생동감 넘치는 쌍방향 토론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 바랍니다.

포럼 시즌1 포스터

 

목, 2017/02/2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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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자 시리즈>

다른백년은 ‘금주의인물’ 코너를 통해 매주 소개해 온 인물 가운데 이번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을 추려 <대선후보자 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어떤 후보자는 소개 시점이 빨라 지금 상황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직 소개하지 않은 후보자도 있습니다.

대선 후보자들의 과거 행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이번 시리즈가 올바른 선택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마운드에 오른 폐족, 안희정 충남도지사 (2016. 9. 13)

SNS를 든 싸움닭, 이재명 성남시장 (2016. 10. 14)

말이 통하는 보수주의자, 유승민 의원 (2017. 1. 20)

계급배반을 꿈꾸는 금수저, 남경필 경기도지사 (2017. 2. 14)

‘아스팔트 우파’의 마지막 희망,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2017. 2. 21)

길 잃은 ‘새정치’,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그런 말은 짐승만도 못한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지난 13일 광주에서 열린 광주전남언론인포럼 초청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지난 대선에서 적극적으로 문재인 후보를 지원하지 않아 실망감을 줬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안 전 대표는 “양보만으로도 고맙다는 것이 (정치의) 기본적 도리 아니냐. 동물도 고마움을 안다”며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후보를 양보한 이후 40회가 넘는 전국 유세, 그리고 4회에 걸친 공동유세를 했다. 선거 전날 밤에는 그 추운 서울 강남역 사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다”고 핏대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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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에겐 권력의지가 충만해졌고, 화법도 단호해져다는 평가가 많다. 정치판에서 단련됐지만, 그를 상징하던 ‘새정치’의 프리미엄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강철수로…안철수Ver. 3.0 으로 변신 중

부드러운 이미지의 안 전 대표가 작심한 듯 ‘센 발언’을 쏟아내자, 드디어 ‘독철수’(독한 안철수)가 됐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정치권에서는 대선 후보의 제1 덕목으로 꼽히는 ‘권력의지’ 측면에서 안 전 대표가 자격 요건을 갖춰가고 있는 것이라며, 비문(비 문재인) 진영을 중심으로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지지자들은 “간 보는 ‘간철수’ 말고, ‘강철수’(강한 안철수)가 되라, 울트라 철수, 최강 철수가 돼야 한다”고 요구에 호응하는 모습에 “우리 안철수가 달라졌다”며 환호했다. 물론 경쟁자들은 안 전 대표가 권력에 눈이 멀어 ‘막철수’(막 나가는 안철수)가 됐다고 깎아 내린다.

안 전 대표에게 지난 5년여의 시간은 영욕의 시간이었다.  2011년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적 열망 속에 ‘안철수 현상’ ‘안철수 신드롬’이라는 말과 함께 등장했고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 안철수’로 전격 변신했지만, 부침이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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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6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문재인과 안철수가 단일화에 전격 합의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단일화는 선거 승리로 이어지지 못했고, 두고두고 논란이 됐다. (사진 출처: 데일리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아름다운 단일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이전투구였다. ‘단일화 피로감’만 키웠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고, 대선 무대에 서 보지도 못한 채 패배의 책임은 오롯이 나눠져야 했다.

앞으로의 5년을 준비하는 안 전 대표는 그 사이 ‘Ver 3.0(V3)’가 됐다. 재선 국회의원이 됐고, 새정치민주연합과 국민의당 등 당 대표도 두 번이나 지내며 두 차례의 업그레이드됐다.

바이러스 백신 ‘V3’처럼 ‘정치인 안철수 V3’도 시민들의 폭발적 관심과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이번 대선에서만큼은 안 전 대표가 누군가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하거나 중도에 후보 직을 사퇴하는 모습은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에 만연한 ‘시스템 바이러스’를 없앨 백신으로 어떤 것을 채택할 지의 선택은 오로지 ‘민주주의의 유저(사용자)’인 유권자 몫이다.

가난한 의사 아버지 보고 자란 책벌레

안 전 대표는 1962년 2월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안 전 대표의 아버지 안응모씨가 밀양에 있던 육군병원 군의관으로 결핵 환자를 치료하던 때다.

아버지 안씨는 1963년 전역 후 부산 범천동에서 개원했다. 피난민이 많이 모여 사는 판자촌이었고, 자연스레 가정 형편이 어려운 환자를 무료로 진료하는 일이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대표가 대선에 출마한 2012년까지 이 지역에서 49년간 범천의원 원장으로 진료를 하며, 큰 돈을 버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혹자는 안 전 대표의 삶의 뿌리를 이곳에서 찾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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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부친 안응모 원장과 모친 박귀남 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 아래는 중학교 졸업식에서 부친, 두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소년 안철수’는 유별날 게 없었다. 그 모습은 안 전 대표가 2009년 출간한 책 ‘행복바이러스 안철수’에서 엿볼 수 있다. 초등학생을 위한 자서전으로 불리는 책이다. 

안 전 대표는 본인 스스로는 두드러지게 잘 하는 게 하나도 없어 열등감에 사로잡힐 정도였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호기심이 대단했다. 알을 품으면 새끼가 태어난다는 얘기를 듣고 메추리알을 품고 자다 알을 깨뜨렸을 정도로 엉뚱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 전기에 나오는 거위 알 일화를 아직 몰랐을 때였다고 한다.

책 읽기를 유독 좋아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쯤에는 학교 내 도서관에 있던 책을 거의 다 읽었다. 장난으로 대출카드 모두에 자기 이름을 적어 놓은 걸로 선생님들이 오해하기도 했다. 안 전 대표는 “평생 읽은 책의 절반 정도를 중학교 때까지 다 읽었다”고 한다.

하지만 성적은 중간 정도였고, 성격은 내성적이었다. 안 전 대표는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에서 “학교를 한 살 빨리 입학해 키가 제일 작았고 공부를 못했다”며 “초등학교 내내 ‘수’ ‘우’가 별로 없었는데, 성적표에 ‘수’가 보이는 게 제 이름 철수였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1등을 못해봤지만,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이과에서 1등이었고,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공대를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의대 진학을 원했다고 한다. 

컴퓨터 백신 개발…의사에서 벤처CEO로 변신

의대 본과 1학년이던 1982년 하숙집 친구의 컴퓨터를 보고는 그 매력에 곧장 빠져든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가 1988년 한국에 상륙하면서 6년간 애지중지 해온 자신의 컴퓨터도 감염되자 안 전 대표는 직접 치료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파키스탄의 한 컴퓨터 프로그램 상점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 형제가 1986년 만든 ‘브레인’ 바이러스다. 그렇게 일명 ‘V1’으로 불리는 컴퓨터 바이러스 첫 백신(Vaccine)을 만들었다. 해외에서는 ‘안티 바이러스’ 라 불리는 스프트웨어가 한국에서는 백신이라는 이름으로 붙게 된 유래다. 안 전 대표는 연 이에 V2, V3 백신도 개발했다. 그리고 플로피디스크에 담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안 전 대표는 1989년 단국대 의대 전임강사로 임용된 뒤 27세에 최연소 의예과 학과장이 되면서 다시 한번 주목을 받는다. 이후 7년간은 낮에는 의사, 새벽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이중생활을 했다.

해군 군의관으로 복무(1991~1994년)할 때도 새로 발견되는 바이러스에 맞춰 백신을 업그레이드 배포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안 전 대표는 “컴퓨터를 하면서 느꼈던 성취감을 의학 공부로는 느낄 수 없었다”며 제대 후 1995년 ‘안철수 연구소’를 세우면서 이중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창업 후 3, 4년 동안은 직업 월급을 줄 돈이 없어서 부인인 김미경 서울대 의대 교수 월급에 손을 대야 했다. “단 한 달만이라도 월초에 월급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소원”이던 시절이다.

1999년 체르노빌(CIH) 바이러스 감염 사태로 기회가 찾아왔다. 창업 4년만에 흑자 전환을 이뤘고, 2001년 코스닥 상장사가 된다. 2004년 매출 300억원을 돌파하며, 안 전 대표는 벤처창업 1세대를 대표하는 성공한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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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안철수연구소가 백신 기업에서 통합보안 기업으로 변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당시 CEO였던 안철수가 파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한 CI광고.

안 전 대표는 회사가 안정 궤도에 오르자 2005년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부인과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났다. 안 전 대표는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김 교수는 워싱턴주립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안 전 대표 부부는 2008년 귀국 후 나란히 카이스트(KAIST) 교수가 됐다. 2011년엔 모교인 서울대 교수로 같이 자리를 옮긴다.

‘무릎팍도사’  출연 이후 안풍(安風)… 아름답지 않았던 ‘단일화’

안 전 대표는 2009년 MBC 예능 프로그램인 ‘무릎팍도사’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의 폭발적 관심을 받게 된다.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과 의기투합해 시작한 ‘지방대학 기 살리기’ 강연은 법률 스님과 인연을 맺어주며 ‘청춘콘서트’로 이어진다.

‘젊은이의 멘토’라는 이미지를 굳혀가던 2011년 여름, 안 전 대표가 서울시장 재ㆍ보궐 선거 출마 의사를 내비치자 시민들이 뜨겁게 반응했다.

안 전 대표는 단숨에 지지율 50%를 넘어서며 유력 후보로 자리매김 한다. 지지율 5%에 그쳤던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조건 없이 후보 자리를 양보하는 결단으로 정치권 안팎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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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안철수는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줬다. 당시 단일화 합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장에서 서로 포옹하는 모습.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법칙 아래 ‘이합집산’을 거듭하던 기성 정치권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국민들은 안 전 대표의 ‘아름다운 양보’에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찾기 시작했다. 안 전 대표는 단숨에 유력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안 전 대표는 대선을 앞두고 있던 2012년 7월 각종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안철수의 생각’을 내놓으며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준비한다. 당시 예비 대선후보들이 차례로 출연하던 SBS TV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도 출연하며 대중들의 기대치를 높였다. 그리고 그해 9월 “진심의 정치를 하겠다”며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한다.

하지만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야권 후보단일화를 이루겠다며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와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안철수 신드롬’을 급격히 식어간다. ‘아름다운 단일화’를 하겠다는 약속과 달리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단일화 피로감’만 키운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안 전 대표가 11월 23일 대선 후보등록일(25, 26일)을 목전에 두고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할 것을 선언한다”며 돌연 대선 후보직 사퇴를 선언하자 그칠 것 같지 않던 안풍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신당 창당 후 돌연 통합…새롭지 않은 ‘새정치’

대선 이후 미국에 머물던 안 전 대표는 2013년 4월 재ㆍ보궐 선거에서 서울 노원병에 출마하면서 원내 입성에 성공한다.

안 전 대표는 ‘새정치’의 가치를 완성하겠다며 신당 창당을 추진했고, 김성식ㆍ금태섭 의원 등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인사들도 안 전 대표를 돕기 위해 다시 모였다.

그런데 안 전 대표가 별안간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와 통합을 결정하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기대보다는 실망의 목소리가 컸다.

그렇게 탄생한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2015년 12월 문재인 전 대표의 패권에 밀려나면서 끝내 탈당했다. 정치권에서는 “3대 미스터리가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북한 김정은의 생각 그리고 안철수의 새정치다”라는 조롱이 나돌기도 했다.

불분명한 화법과 우유부단한 태도 탓에 ‘간철수’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다녔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최장집ㆍ장하성 고려대 교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송호창 전 의원 등 안 전 대표 주변에 있던 이들은 소통 문제를 지적하며 그를 떠난 게 뼈아팠다.

국민의당 창당 승부수… 대선에도 통할까?

안 전 대표는 지난해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신당 창당이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당 안팎의 우려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독자노선 의지를 꺾지 않았다. 선거 결과 국민의당이 38석으로 단숨에 제3당의 자리에 오르면서 안 전 대표 또한 대선 재도전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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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창당했지만, 당내 김한길 의원(왼쪽)과 천정배 공동대표(가운데)로부터 야권연대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안철수는 이들 주장에 대해 “연대는 없다”고 쐐기를 박았고,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이 옳았음이 증명됐다. (사진출처:http://m.monthly.chosun.com/)

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는 박 대통령의 ‘하야’를 강한 어조로 주장했다. ‘간철수’의 이미지를 벗고 ‘강철수’(강한 안철수)로 변신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귀국 이후에는 반 전 총장과의 거센 연대 요구에도 ‘자강론’이 우선이라며 꿋꿋이 버텨내면서 정치인으로서의 근성을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안 전 대표 앞에 놓인 현실은 여전히 녹녹하지 않다. 안 전 대표가 내세우는 중도ㆍ실용 노선은 확장성이 큰 반면 일관성을 지켜나가기가 쉽지 않다. 

당장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와 관련해 ‘오락가락 행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성공한 벤처사업가라는 장점을 살려 ‘4차 산업혁명’을 자신의 정책 브랜드로 띄우려 힘을 쏟아 붇고 있지만 성과는 미미해 보인다.

안 전 대표의 지지율이 주춤하는 사이 중도ㆍ실용의 영토를 안희정 충남지사가 장악해 가며 ‘안희정 대안론’을 키우고 있기도 하다. 한국갤럽이 지난 25일 내놓은 정례 여론조사 결과 안 전 대표는 지지율 8%로 문 전 대표(32%)와 안 지사(21%)에 크게 뒤졌다. 이재명 성남시장,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함께 3위권을 형성했다.

하지만 안 전 대표는 “이번 대선은 저 안철수와 문재인의 대결이 될 것”이라며 “저는 이 싸움에서 이길 자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안 전 대표 측은 특히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이 끝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탄핵 심판 결론 이후 보수 지지층 표심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헌재 결론 이후 선출할 민주당 대선 후보로 누가 뽑히느냐도 대권의 향배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안 전 대표는 9일 JTBC 뉴스룸 연속대담에 출현해 “대선 직전에 거의 한 90일, 100일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생길 거라고 한다”며 “저는 (누구와도 연대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목, 2017/03/02-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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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일(화), 오후6시30분, 르호봇 신촌점 1층에서 백년포럼 시즌1의 두번째 포럼이 ‘왜 시민사회인가, 시민의회의 논리와 사례’라는 주제로 열립니다. 

백년포럼은 (사)다른백년이 주관하는 대중적 공론장으로, 올해부터 시즌제 도입, TED식 강연, 현장청중투표 등을 도입하는 등 내용과 형식 양 측면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됐습니다. 

지난 3일 국회소회의실에서 열린 첫번째 포럼 ‘개헌, 시민의회법, 시민의회의 제도화’는 금요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60여 명의 청중들이 몰려  근래 보기 드문 진지하고 열띤 토론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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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03/03-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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