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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불평등, 제2의 촛불 시위 부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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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불평등, 제2의 촛불 시위 부를 것”

익명 (미확인) | 화, 2017/12/26- 08:12

2016년 이전까지 한국정부가 발표한 불평등 상황에 대한 통계자료, 특히 지니계수를 접할 때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수치를 그대로 믿는다면 시장소득 기준으로는 0.35-0.36 수준이고, 세후 가처분소득에서는 0.31-0.32 수준으로 프랑스와 독일을 포함한 북유럽 몇 개 국가군을 제외하고는 OECD 국가 중에도 매우 양호한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실제 생활 속에서 느끼는 심각한 한국사회의 불평등한 현실과는 너무나 동 떨어져 있었다.

통계청이 부패하고 무능했던 탓이었는지, 아니면 지난 정권들이 현실의 심각함을 감추고자 의도적으로 조작가공하고 잘못된 자료를 발표하도록 지시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실 상황을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해야 할 국가운용의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채 발표함으로써, 정부의 공식적인 통계자료에 심각한 의문을 갖게 하였다.

때마침 지난 12월 21일 이데일리의 박종오 기자가 통계청이 새로운 방식으로 집계한 한국의 불평등 통계자료를 매우 상세하게 분석한 기사를 소개하였다(기사 아래 첨부).

촛불시민혁명 이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비로소 신뢰할 만한 통계자료가 새롭게 발표된 데에는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지난 십여 년 간 지난 정부의 엉터리 같은 통계자료를 치열하게 비판하고 집요하게 추적한 연구의 성과와 공로가 매우 지대하다고 할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대충대충 가계소득을 중심으로 불평등을 조사 분석하여 발표함으로써 음성적 탈루와 자산소득 등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부문에서 통계가 왜곡되고 미비된 상태에서 신뢰가 결여된 자료를 과감하게(?) 정부의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발표해 왔다. 이러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OECD는 아예 한국정부의 자료를 공식적인 비교의 대상에서 누락시켜온 저간의 사실이 부끄러울 뿐이다..

다행히 김낙년 교수의 노력 덕분에 OECD 기준에 근거하여 국세청 소득자료를 중심으로 분석한 정부의 최근 자료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항 목                      한국 수치      OECD 평균          최상국가             최악국가

시장지니계수          0.396            0.472                   0.382(스위스)   0.566(그리스)

가처분지니계수     0.354             0.317                   0.256(덴마크)    0.459(멕시코)

소득재분배효과      0.042            0.155                  0.251(아일랜드)  0.019(멕시코)

소득5분율 배수       7.0                 5.4                        3.6(덴마크)       10.4(멕시코)

 빈곤층 비중               17.8             11.7                       5.5(덴마크)       17.8(한국)

 

우선 한국의 시장지니계수가 최우량 국가인 스위스와 근접한다는 것은 여전히 통계수치에 결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지난 20년간 진행되어 온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범위와 내용으로 비추어 볼 때, 시장지니계수가 대략 OECD 평균수치인 0.47 주변에 있어야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따라서 무엇이 미진하고 탈락되었는지 살펴보는 일이 여전히 전문가들의 연구 과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국가의 재분배 기능은 가장 불량한 수준

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역할로서 재분배효과인데 이 분야에 있어서는 한국이 멕시코, 칠레 그리고 터어키 등과 더불어 가장 불량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한국이 현대적 시민국가로서 제 역할을 못하는 미성숙함과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것으로 뒤에 별도로 다시 언급하고자 한다.

기존 분배 지표가 불평등 수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보완한 지표를 적용할 결과 한국의 소득 불평등이 세계 주요국 중 최상위인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미지: 국민일보)

소득의 5배율, 즉 상위 20%의 소득과 하위 20% 소득의 상대 배율은 전통적 자본제 사회의 소위 20:80 이론에 기초한 것으로, 2017년 현재에는 단순한 비교수치라는 것 외에는 사실상 별 의미가 없다. 바닥으로의 질주(rush to the bottom)로 극빈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부의 대부분을 소수가 장악하게 된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는, 이를 10:90 또는 1:99의 실상을 분석하는 데이터로 대치하여야 한다.

소득10배율, 즉 상위 10%의 소득과 하위 10% 소득 배율을 표현할 때도 노동소득과 자산소득 분야 그리고 종합적 소득 등으로 분리하고 세분화하여 분석할 때만이 한국사회의 구체적 실상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필자의 감으로는 종합소득을 기준으로 소득 10배율을 산정한다면 ’12’를 넘어설 정도로 매우 심각할 것으로 추정한다.

불평등을 파악하는 더욱 생생한 자료는 상위 1.0 %가 차지하는 자산 소득의 비중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데 있다. 현재로써는 이에 대한 자료가 매우 빈약하여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우나, 예건데 공식화된 자본시장의 배당소득을 개인의 1.0%가 80-90%를 차지한다거나, 역시 거래가 가능한 양질의 부동산의 대부분을 1.0%의 개인과 법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향후 이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와 분석이 요구된다.

 

상대적 빈곤층 비중은 세계 최대 수준

모든 불평등의 현상이 집약된 상대적 빈곤층의 비중, 즉 가처분 평균소득의 50% 수준에도 못 미치는 시민들의 비중에 있어서, 한국이 단연 세계 최악의 일등국가라는 것이 이번 발표 내용의 핵심이다. 앞에 제시한 모든 자료는 이 점을 확인하고 조명하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단순히 상대 빈곤율이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는 사실을 넘어서서, 일하는 가난 즉 아무리 뼈 빠지게 일하고, 일년에 2150 시간이 넘도록 세계 최장의 살인적인 노동을 하여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카스트화로 고착된 한국사회 빈곤의 형태와 현실을 이제 우리 스스로 고백하고 고발해야 한다.

이러한 빈곤을 해결하기 위하여, 동시대를 살아가는 가난한 이웃 시민들의 인간적 존엄과 연대의 과정으로 최저임금을 1만원대로 개선하자는 정책에 대하여 수구적 언론과 못된 지식인들이 보여준 광기적 패악에 대하여 필자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최저임금의 현실화에 들어가는 사회 총비용이 20-25조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한국사회가 일 년에 생산하는 순부가가치의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1.0% 정도의 사회적 부를 천애의 가난 속에 갇혀 신음하는 이웃에게 배분하자는 사회연대적 정책에 대하여, 더구나 위에서 보여준 한국 불평등 자료가 세계 최악의 수준임을 명명백백히 증언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반대하는 인간들에 대해서는 시민국가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깊이 되돌아 보도록 준엄하게 충고한다.

물론 급격하게 시행하는 정책이 가져올 역작용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정부는 최저임금의 일만 원 시대를 맞이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어려움과 부작용에 대해서 철저하게 분석하고 대비하여야 한다. 예컨대 최저임금의 적용범위를 상여금과 보조금을 포함한 (OT는 제외) 포괄적 임금 총액으로 규정해야 하며, 임금이 주목적이 아닌 특수고용, 예를 들자면 65세가 넘은 고령인구의 취업 등에서는 예외를 인정하는 규정을 분명하고 명쾌하게 설정해야 한다.

문제가 되는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 부문에 관해서는 당연히 부담액의 상당부분을 정부가 지원해 주는 일정의 유예기간과 범위를 분명히 하되, 최저임금의 인상이 당연히 산업의 생산성 제고를 위한 혁신적 기제로 작동하도록 채찍의 기능도 함께 지녀야 하며, 시민사회는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한다는 관점에서 적정한 서비스 비용의 인상을 수용하여야 한다.

이 모든 정책의 최상위 정점에는 공리적 시장의 논리를 넘어선 인간존엄의 실현과 시민연대라는 가치개념이 위치하여야 한다. 당장에 발생하는 어려움과 혼란을 핑계로 시급 일만 원의 선순환적 정책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균임금의 두 배가 넘는 보수 및 임금을 향후 십 년간 동결하는 시민연대적 결의를 통해 최저임금의 인상에 따른 국민경제적 부담을 완화시키는 것을 검토하는 것이 동시대인으로서 도리이자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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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2018년도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확정된 가운데 어수봉 위원장이 최저임금 표결 결과 앞을 지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제 현대적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서 재분배 기능에 대해서 다시 살펴 보고자 한다.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OECD 기준에 의거하여 수정 보완된 시장지니계수인 0.396 수준을 그나마 가처분계수인 0.354으로 낮추는 사회이전소득 효과를 내는 데 투입된 정부의 종합예산은 2016년 기준으로 순부가가치 생산 1,600조의 10.0 % 수준인 160조 정도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복지라는 개념조차 없던 것에 비하면 매우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 셈이다.

이 배경에는 지난 시절 IMF 위기를 극복하고자 혼신의 노력을 하면서 세계가 칭송할 만큼 가장 단시일 내 종합적인 사회안전망을 구축해낸 국민정부 시절의 노력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후 15년간 3번의 정부를 교체하면서도 질적인 비약 없이 국민의 정부가 설정한 정책의 단순한 양적 팽창과 퇴행을 되풀이 하여 오면서 불평등 재분배효과가 OECD 평균인 0.155의 4분의 일인 0.042으로 세계최저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산업대국으로서 참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재분배 효과를 향상시키는 수단과 정책으로 조세를 포함한 국민분담율을 향상시키는 것이 핵심적 과제이다. 물론 국민분담율을 높이기 전에, 선행적으로 음성 탈루의 조세 재원을 투명하게 발굴하는 노력과 매년 제로베이스 예산편성정책 개념을 도입하여 불요불급한 정부재정 수요를 줄이고 사회복지성 예산의 가용 지출액을 높여가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내부적 노력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는 것으로 OECD 국가들과 객관적인 비교를 통하여 보아도, 불평등 해소를 위해 사회안전망에 투입되는 공공적 지출 규모를 현재의 순부가가치 생산액의 10.0 % 수준에서 20%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설정하고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정책을 수립해 가는 것이 요구된다.

2016년 기준으로 말하면 위에 언급한 160조 수준인 공공성 지출을 두 배인 320조 이상 확대해 가야 한다. 다른 표현으로 말하자면, 국민부담율을 현재의 26% 수준에서 35% 이상 수준으로 확대하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조세 부담율을 현재 17-8% 수준에서 25% 이상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한편에서는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제기되는 법인세와 소득세의 미세조정조차도 수구적 정치집단의 극심한 반대로 인해 감당해 내지 못할 만큼 현재의 한국 정치구조가 퇴행적 원시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세정의 현실을 떠나 단순히 평가하는 법인세와 소득세의 세율 수준이 그 자체로는 국제적으로 비교하여도 대체로 합리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연간 160조 이상의 사회안전망 재원, 어디서 충당할 것인가?

그러면 어디에서 추가로 연간 160조가 넘는 사회안전망의 재원 수요을 충당해 나갈 것 인가 ?

우선적으로 단호한 세정개혁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일차적으로 다양한 이유와 정책적 근거로 설정된 일체의 사전적 세금감면 정책을 철폐하여 실효세율을 명목세율과 일치시키고, 이를 투명한 사후적 정책지원과 명분이 분명한 공공적 지출이라는 형식으로 재구성해야 하며, 최저 생계비 이상의 소득이 있는 모든 시민 개개인들은 예외없이 조세부담에 참여하여야 한다. 복지의 보편성 확보에는 반드시 중간계층의 보편적 세금부담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OECD 평균적 수준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복지재원은 여전히 요원하게 부족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사회경제 정책의 핵심에 있는 분이 한국의 불평등의 주요 원인은 경제활동의 소득, 즉 보수와 임금 등 격차에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반쪽만 맞는 이야기이다. 기업규모와 산업간의 격차, 재벌과 공공분야의 조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차별적 요소가 분명 한국사회의 불평등의 일부 주요 요인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시장지니계수는 오히려 OECD 평균보다 매우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고, 다시 언급하지만 법인세와 소득세의 미세조정으로는 필요한 정부재원을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여기서 한국사회의 소득의 원천으로서 자산의 구성과 분포를 상세하고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6년 기준으로 민간의 순자산 규모는 1경2,000조 수준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중에 금융자산 규모가 3,000조, 다양한 형태의 부동산 총합이 9,000조에 달한다고 한다. 여기에 금융자산이든 부동산 자산이든 간에 극소수의 상류층 시민과 재벌급 법인의 1.0%가 매매가 가능한 민간 순자산규모의 과반을 소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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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연합뉴스)

1경2000조의 자산 수익율이 연평균 4.0%라고 추정하여 보면, 약 500조에 달한다. 즉 1,600조의 국민생산 순부가가치 중에 대략 1,100조는 경제활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보수와 임금으로 이루어지고, 30%가 넘는 비중의 500조에 해당하는 금액이 불로소득인 자산소득 형태로 배분되고 있다고 추정되는 것이다. 물론 부동산 소유의 경우, 상당 비중이 비영리적 성격을 가진다고 항변할 수 있으나, 첫째는 비영리적이라고 해도 대체적인 수익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둘째는 다분히 유동적 투기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셋째 분포상 극소수의 손에 편재되어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한국사회는 지난 200여 년간의 서구사회를 연구해온 피켓트의 주장을 매우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야 하는 근거가 위에 언급한 현실조건에 있다. 피켓트는 자산규모 100만유로(약 13억원) 이상에는 연간 1.0%, 그리고 200만 유로 이상의 자산에는 연갼 2.0%의 세금을 부과하여야 세습적 불평등을 방지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이야기를 당장 시행할 수는 없다고 해도 그의 제안 내용은 불평등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사회에 매우 중요한 암시와 전망을 제시한다.

현실적으로는 금융과 부동산의 자산은 서로 분리하여 분석하여야 하며, 금융시장이 경제 현실에 갖는 주요한 순기능을 감안하여 기존의 금융시장에 충격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금융자산에 대한 추가적인 과세를 조정이 가능한 수준에서 점차적으로 확대해 가는 것을 연구해야 한다.

부동산의 경우는 이미 널리 회자되고 있듯이 서민생활에 지장이 없는 일정 규모 이상(예로서 5억원)에 대해 추가적인 보유세를 적용하되 무리없이 감당 가능한 수준인 0.5 %에서 시작하여 10년을 목표 기간으로 점차 세율을 미세적으로 누진적으로 확대하여 일정규모 이상의 보유자산에 대해 실효세율이 1.0 % 이상 올라가도록 장기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실시하면 사회안전망 구축과 보편적 복지정책에 필요한 재원을 상당 수준으로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에 대해 강력한 조세를 주장하는 전문가 그룹에서는 토지를 별도로 분류하여 접근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경청할 만한 이야기이다.

부동산 보유세를 단지 아파트 등 부동산 폭등을 규제하는 정책수단으로만 판단하는 청와대 참모의 일부에서, 부동산 보유세는 부동산 보유 자체가 당장 수익을 실현하지 못하기에 이를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참으로 한가하고 한심한 소리이다.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한국 자동차세는 자동차 보유가 수익을 실현해서 부과하는 건지 반문하고 싶다. 환경분담의 중과세 역시 환경악화가 개별적 영역에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실시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검토해 보길 요청한다.

부동산 보유세의 적용은 단순히 부동산 가격의 통제를 위한 정책수단을 넘어서 한국사회의 지속적 조건을 위협하는 불평등의 해소를 위하여 필요한 연대와 포용의 재원적 기초를 닦으려는 사회공학적 의지와 관점에서 검토해야 마땅하다.

 

“한국 사회 불평등 개선하지 못하면 또 다른 촛불 부를 것”

자동차 보유 여부와 환경 개선의 과제보다 우선하여 한국사회의 불평등 수준은 가히 폭동을 불러올 만큼 위험한 수위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수백만 명이 동시에 몰려나온 촛불시민혁명의 저류에 깔려 있는 사회경제적 배경이기도 하다. 다만 분단이라는 한국의 특수한 현실 기제가 사회폭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내부적 폭발 압력을 강제로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언제라도 가변적인 한국의 불평등한 현실이 가까운 미래에 미국의 협박과 북한의 핵무기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으로 폭발할 수 있다.

이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서는 중간층 시민들의 조세 참여를 광범위하게 확대하는 한편, 피켓트의 조언대로 일정한 수준이상의 자산소득과 보유에 대하여 합당한 수준의 세금을 누진적으로 과세할 필요가 긴급히 요구되는 시점에 서 있다. 다른 대안이 정말 없다면 복지세라는 특목세를 부가가치세 형식을 빌어 점진적으로 높여가는 것도 연구해야 한다.

현재의 수구적 정치구조가 장애물이 된다면 시민사회는 다시 수십만 수백만 명 단위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정치구조의 변화와 사회개혁을 요구하여야 한다.

다른백년은 한국의 불평등한 현실을 혁파하기 위해, 가용 가능한 연구인력 네트워크와 자원을 동원하여 현실 고발과 대안 마련에 노력을 다할 것이다. ‘하늘에는 영광이, 땅 위에는 평화가’.

2017.12.25.

 

한국 소득 불평등 OECD 6위…정부 재분배 역할 ‘최악’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한국의 소득 불평등이 세계 주요국 중 최상위인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5개국 중 여섯째로 불평등이 심한 것이다.

특히 정부의 소득세 등 조세 정책을 통한 재분배 효과가 다른 선진국보다 크게 뒤떨어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통계청이 21일 발표한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2015년 한국의 처분가능소득(세후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0.354로 집계됐다.  

지니계수는 한 국가의 소득 불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다. 0(완전 평등)에 가까울수록 소득 분배가 평등하고 1(완전 불평등)에 근접할수록 불평등하다는 뜻이다. 통계청은 기존 분배 지표가 고소득층 소득 축소 신고 등으로 불평등 수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이번에 국세청 과세 자료, 보건복지부 연금·수당 지급 자료 등 행정 자료를 활용해 보완한 지표를 새로 내놨다.

 

또 세후소득이 빈곤선인 중간 소득의 50%를 밑도는 인구 비중을 가리키는 ‘상대적 빈곤율’은 2015년 17.8%로 35개국 중 압도적인 1위였다. 빈곤층 인구가 OECD 평균(11.7%)보다 6.1%포인트나 많다.

한국의 지니계수는 비교 가능한 OECD 35개 회원국 평균(0.317)을 크게 웃돌았다. 불평등도는 멕시코(0.459), 칠레(0.454), 터키(0.404), 미국(0.390), 영국(0.360) 다음으로 높았다. OECD 회원국 중 여섯째로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이웃한 일본(0.330)이나 스페인(0.345), 그리스(0.340), 이탈리아(0.326) 등도 한국보다는 소득 불평등이 덜 심각했다. 복지가 잘 갖춰져 있는 스위스(0.297), 스웨덴(0.278), 노르웨이(0.272), 덴마크(0.256) 등은 세후 지니계수가 0.3을 밑돌았다.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약 2만 가구를 대상으로 한 가계금융·복지조사가 아닌 약 1만 1300가구를 표본 조사한 가계동향조사를 바탕으로 지니계수를 집계해 국제기구에 제출해 왔다. 가계동향조사 상의 2015년 세후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0.295였다. 이 자료에 기초해 한국의 소득 불평등도가 OECD 중하위권이라고 강조했지만, 이번 조사 개편을 통해 불평등이 극심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국내 세후 지니계수는 지난해 0.357로 1년 전보다 0.003포인트 상승해 국제 순위가 더 올랐을 가능성도 크다.

문제는 정부의 소득 재분배 정책 역할이 다른 주요국보다 훨씬 미흡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2015년 시장소득(세전소득) 기준 한국의 지니계수는 0.396으로 OECD 평균(0.472)보다 매우 낮았다. 소득 불평등도는 스위스(0.382), 아이슬란드(0.393) 다음으로 양호했다.

그러나 세금을 걷고 난 후 다시 측정한 한국의 소득 불평등 순위가 OECD 33위에서 6위로 급격히 상승하는 것이다. 세전과 세후 소득 불평등도가 이처럼 급격히 올라가는 나라는 OECD 35개 회원국 중 터키 뿐이다.  

 
상대적 빈곤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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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초등학생들이 홍콩의 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2014년 홍콩 우산혁명의 주역이었던 17세의 학생지도자 조슈아 웡(黃之鋒·Joshua Wong)은 이렇게 외쳤다. 홍콩 중심부를 ‘노란 우산 물결’로 뒤덮었던 우산혁명은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 체제에 대한 가장 대담한 도전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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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홍콩 행정장관의 간선제 방침에 항의하는 홍콩시민들이 대거 거리로 몰려나와 중국 정부의 방침에 반대의사를 밝혔다. ‘우산혁명’으로 불린 이 시위는 1989년 ‘천안문 시위’ 이후 최대 규모의 민주화 시위였다. (사진 출처: BBC)

2017년부터 홍콩 행정장관을 시민들이 직선으로 뽑더라도 중국이 원하는 2~3명의 인물 중에 고르게 하겠다는 중국의 결정이 기폭제가 됐다. 최루탄과 최루액을 우산으로 막아내고 거리를 깨끗이 정리하는 비폭력 평화시위의 물결에 서구 언론들은 찬사를 보냈다.

79일간의 투쟁은 진정한 직선제를 쟁취하지 못한 채 ‘미완의 혁명’으로 마무리됐다.

중국이 제시한 선거 안은 홍콩 입법회(한국의 국회 격)에서 부결되긴 했지만, 2017년 행정장관 선거는 지금처럼 간선제로 치러질 가능성도 커졌다. 그렇게 된다면 무늬뿐이라고는 해도 직선제보다 더 후퇴하는 셈이다. 중국이라는 거인 앞에서 어떤 몸짓을 해 보이더라도 결국 바위에 달걀 치기가 아니겠냐는 체념이 나올 법도 했다.

우산혁명 주역들의 약진

그러나 우산혁명의 파장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9월 28일 홍콩 시민들은 우산혁명 1주년을 기념해 또 다시 거리에 모여서 건재를 과시했다. 지난 2월에는 홍콩 중심가 중 하나인 카오룽(九龍) 반도 몽콕(旺角) 거리에서 대규모 폭력시위까지 벌어졌다.

어묵을 파는 노점상을 단속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고 해서 ‘어묵혁명’이란 별칭이 붙었다. 몽콕은 우산혁명 기간에도 가장 치열한 시위가 벌어졌던 곳이다. 시위대는 경찰관을 향해 벽돌과 쓰레기통, 유리병 등을 던졌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총을 겨누기도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절정은 아무래도 지난 9월5일 진행된 홍콩 입법회 선거(한국의 총선 격)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우산혁명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이 총선에서 홍콩의 자주를 주장하는 우산혁명의 주역들과 시민운동가 등이 의회 입성에 성공했다. 투표율은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최고인 58%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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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홍콩시민들이 홍콩 입법회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포스터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 출처: BBC)

현지 언론인 <빈과일보>의 분류에 따르면, 모두 70석 가운데 여권이라 할 수 있는 친중파(건제·建制)가 40석을 차지했다.

야권 중에는 민주주의를 지켜내자는 전통의 범민주파(泛民)가 23석, 우산혁명의 주역을 포함해 홍콩의 자주를 강조하는 신생 자결파(自決)가 6석, 범민주와 자결의 중간파가 1석을 차지했다. (국내 언론은 주로 친중파 40석, 범민주 22석, 자결파 8석으로 보도했다) 친중파와 범민주파가 양분해 왔던 입법회에 자결파라는 제3세력이 탄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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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자결파, 파란색-범민주파, 붉은색-친중파. 이번 총선에서 우산혁명의 주역들로 이뤄진 자결파들이 8석의 의석을 얻었다. (이미지 출처: South China Morning Post)

중요 법안에 대한 부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3분의 1선(24석) 이상을 확보하는 선전을 펼쳤다고는 하지만, 이전 친중파의 의석이 43석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범야권의 의석은 고작 3석 정도 늘어난 것에 불과하다.

홍콩의 특이한 선거제도 탓에 70석 가운데 직접 선거로 선출하는 지역구 후보는 35석에 불과하고, 간선·비례 직능대표가 35명인데 대부분 친중파로 채워지는 탓이다.

지역구 선거로만 보면 이번 선거의 진짜 의미는 범민주파의 의석이 줄어든 만큼 자결파 의원들이 늘어난 것, 즉 야권의 세대교체로도 해석할 수 있다. 새로 입성한 자결파 의원들의 면면이 이래저래 주목을 받는 이유다.

(참고로 자결파라고 해서 모두 중국으로부터 즉시 완전 독립을 주장하는 급진파는 아니다. ① 독립은 비현실적이지만 일국양제(一国两制·한 나라 두 체제, 1997년 홍콩은 대영제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반환됐지만 50년 동안은 다른 정치, 경제, 사법 체제를 유지하기로 약속했다)를 채택하면서 약속한 항인치항(港人治港, 홍콩 시민이 홍콩을 다스린다) 원칙만은 지켜라(자결·self-determination) ② 홍콩은 내륙 중국과 구별되는 또 다른 본토로서의 홍콩이며, 본토 문화를 지켜내야 한다(본토·localism) ③ 홍콩을 중국으로부터 독립시키자(독립· pro-independence) 등 세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홍콩의 미래는 스스로 결정해야”

가장 주목받았던 인물은 아무래도 우산혁명 주역들이 만든 정당 ‘데모시스토(香港衆志·Demosisto)’를 이끄는 네이선 로 주석(23·羅冠聰·Nathan Law)이었다. 그는 6석이 걸린 홍콩섬(港島) 지역구에서 2위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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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선 로(Nathan Law)

로 주석은 1991년 28세로 당선된 제임스 토 의원의 기록을 25년 만에 깨고 ‘최연소 입법회 의원’의 타이틀을 얻게 됐다.

로 주석은 2014년 홍콩의 대학학생회 연합체 홍콩전상학생연회(香港專上學生聯會·학련)의 상무위원 겸 홍콩 링난대 총학생회장으로서 우산혁명을 촉발시킨 주인공이다.

그는 중·고교생들의 단체인 학민사조(學民思潮) 위원장 조슈아 웡과 함께 3m 높이의 정부청사 철문을 넘어 청사 건물 앞 공민광장을 점거한 채 시위를 벌였다가 체포됐다.

당시 경찰이 후추스프레이 등을 이용해 강경 진압하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고 우산혁명이 촉발됐다. 로 주석은 이후 진행된 우산혁명 시위에도 주도적으로 나섰다.

로 주석은 지난해 학련을 이끄는 비서장으로 선출됐다. 우산혁명 1주년 기념집회에서 “정부에 대한 우리의 대응 방식에 사회가 표출한 실망감과 분노를 잘 이해하고 더 나아지도록 노력하겠다”며 거리 투쟁 대신 정치권 활동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어 웡과 함께 데모시스토당을 결성해 총선에 나섰다. 우산혁명 당시 공민광장 점거 시위가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며 한때 출마가 위태로워지기도 했지만 징역형을 면해 출마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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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 웡(Joshua Wong) (오른쪽)

로 주석과 함께하는 데모시스토당의 웡 비서장은 15살인 2012년 학민사조를 결성했다.

그는 홍콩 당국이 중국 공산당에 충성하도록 애국심을 고취하는 국민교육을 고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려고 하자 반대운동에 나서 저지시키기도 했다.

이번에 19세가 된 웡 비서장은 나이제한에 걸려 총선에 출마하지는 못했다. 입법회 의원의 출마 제한 나이는 21세다.

웡은 “중국 인민대표 회의 대의원 자격을 얻기 위한 최소 나이도 18세인데 말이 안 된다”며 홍콩 고등법원에 소장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로 주석과 웡 비서장 등이 결성한 데모시스토당은 홍콩의 독립을 직접 주장하지는 않는다. 독립이든 아니든 홍콩 사람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초 여론조사에서는 당선 가능성이 불투명한 것으로 나왔지만 젊은 층이 대거 투표장에 몰리면서 2위로 도약한 것으로 해석됐다. 로 주석은 새 입법회가 개원하면 홍콩의 미래를 결정할 국민 투표를 실시하자고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열혈 시민운동가의 당선

이번 선거에서 최대 이변의 주인공은 시민운동가 에디 추(38·朱凱迪·Eddie Chu Hoi-dick)가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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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추(Eddie Chu Hoi-dick)

신계서(新界西) 지역에 출마한 추는 무소속으로 나왔음에도 8만4121표를 얻어 지역구 당선자 35명 중 가장 많은 득표를 했다.

홍콩 언론은 그에게 ‘표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개표 결과 당선이 확정되자 예상치 못한 결과에 감격에 겨운 듯 벽에 기대 울기도 했다. 선거 자금도 부족해 많은 홍보포스터를 손으로 그려 붙였을 정도로 열악했던 유세 과정에서 나온 결과이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추는 홍콩중문대학을 졸업한 뒤 이란 테헤란 대학에서 페르시아어를 공부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등 페르시아어권 나라에 대한 뉴스를 홍콩 유력 일간지인 명보에 기고하는 프리랜서 기자로도 일했다.

본격적으로 환경 보호와 문화 보존 운동에 뛰어든 것은 2006년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퀸스피어와 스타페리 부두가 매립 사업으로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반대운동을 벌이면서부터다.

2009년에는 광저우-선전-홍콩을 잇는 고속철도 건설로 원주민들이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11년 그는 토지정의연맹(Land Justice League)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추는 홍콩의 독립은 홍콩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추의 활동은 홍콩의 기득권 세력에게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벌어지는 이란, 아프가니스탄 현장을 누빈 그이지만, 현재 그와 가족에게는 더한 위협도 가해지고 있다. 추의 행보가 지역구인 신계서 지역의 원주민들의 이권을 대변하는 향의국의 큰 반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홍콩 정부에서는 심각한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해 신계 지역에 1만7000호의 공공주택을 더 지으려고 했다가 4000호 수준으로 멈추고 말았는데, 추는 이것이 정부와 향의국, 신계 지역 삼합회 등이 결탁한 결과가 아니었냐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다 그는 선거 기간 중 향의국 유관 폭력 조직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고 경찰로부터 신변 보호까지 받게 됐다.

그런데도 그는 당당히 소신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신계 지역으로부터 오는 정치적 긴장과 폭력을 목격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입법회의 첫 번째 의제로 올릴 것이다.”

“자치가 아니라 독립”

데모시스토보다 더 급진적으로 평가되는 ‘청년신정(靑年新政·Youngspiration)’을 결성한 렁충항(30·梁頌恒·Sixtus “Baggio” Leung) 위원장과 야우와이칭(25·游蕙禎) 후보도 이번 선거에서 당선됐다.

청년신정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물과 식량의 중국 본토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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렁충항(Sixtus “Baggio” Leung)

렁충항은 홍콩시립대 총학생회장으로 우산혁명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가 진압되고 한 달 뒤 그는 청년신정을 만들었다. 그는 선거 종료 뒤 이렇게 말했다.

“우산혁명의 실패는 나와 다른 참여자들에게 한 가지 확신을 심어줬다. 베이징과의 급진적 결별이야말로 다가올 세대들에게 홍콩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일국양제는 이미 갈 길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야우와이칭은 청년신정의 렁충항과 함께 청년신정의 주요 멤버다. 그녀는 이번 선거에서 홍콩 입법회의 최연소 여성 의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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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우와이칭(Yau Wai-ching)

링난대에서 중문학을 전공했고 중국 문화에 애착을 갖고 있던 그 역시 우산혁명 참여를 계기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지방의회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아쉽게 친중파 후보에게 패배했던 그녀는 이번에 범민주파 거물 의원을 제치고 당선됐다.

야우와이칭은 “나 홀로 있을 때 내 힘은 적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청년신정이라는 팀이 될 때, 나아가 홍콩 인민이라는 팀이 될 때 우리의 힘은 매우 커질 수 있다. 나는 언젠가 우리가 오늘 흘린 땀과 피가 열매를 맺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과 폭력투쟁도 불사하는 가장 급진적인 독립파로 꼽히는 열혈공민(熱血公民·Civic Passion)의 웡잉탓(黃洋達·37)도 의원에 당선됐다. 열혈공민은 중국 정부가 홍콩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관련 조항을 홍콩기본법(홍콩의 헌법에 해당)에서 삭제하자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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웡잉탓(Cheng Chung-tai)(오른쪽)과 라우시우라이(Lau Siu-lai)

홍콩이공대 강사인 그는 우산혁명 참가 뒤 중국 본토인의 ‘병행수입’ 반대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병행수입이란 중국인들이 홍콩에 들어와 분유, 기저귀, 화장품 등의 물건을 사재기 한 뒤 중국에 되팔라 차익을 얻는 행위다.

웡잉탓은 가르치는 학생들의 부모들에게 학생들을 선동했다며 고소당하기도 할 정도로 자기 주장이 강하고 논쟁을 피하지 않는 편이다.

그는 선거 전 라디오 토론에 나와 “홍콩 정부에 대해 공격적인 전략을 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호소했다. 홍콩이라는 도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여전히 그는 홍콩 사람들이 적극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역시 홍콩이공대 강사인 라우시우라이(40·劉小麗)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범민주파 진영 중에서는 가장 많은 득표를 하며 당선됐다. 그녀는 라디오와 TV 토론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입지를 굳혔다.

성향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쪽인데 홍콩의 완전한 독립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라고 보고 지금처럼 고도의 자치권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의회 활약 기대…중국 압력 큰 변수

장외 투쟁의 열기가 현실 정치로 수렴되는 일이 드문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홍콩의 이런 분위기는 부럽기만 하다. 각 선거구에서 득표순으로 정해진 수의 의원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도 하다. 물론 새롭게 입법회에 입성한 젊은 얼굴들이 얼마나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홍콩의 젊은 세대가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산혁명의 배경에는 날이 갈수록 삶이 팍팍해지고 있는 젊은층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 자칫 홍콩이 중국 내의 이름 없는 삼류도시로 몰락해버릴 것이라는 절박감 등이 내재해 있다.

대다수의 홍콩 젊은이들은 자신을 ‘홍콩인’이라고 생각하지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국양제라지만, 홍콩은 중국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산혁명의 ‘센트럴을 점령하라’ 구호는 겉으론 실패로 보였지만 홍콩 사람들의 마음을 이미 상당부분 점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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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은 중국민과 다르다는 의식이 강하다. 그러한 의식이 이번 선거에서 자결파의 대거 의회 약진으로 표출됐다. 그러나 향후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 젊은 정치인들의 희망이 현실화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사진은 홍콩 상점에 전시된 마오쩌둥의 미니어쳐들. (사진 출처: http://www.alamy.com/stock-photo-china-hong-kong-island-central-mao-kit…)

상황은 녹록치 않다. 중국은 마음에 들지 않는 선거 결과를 보고 홍콩을 더욱 옥죌 가능성도 있다. 중국 국무원 홍콩 마카오 사무판공실은 선거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선거 무대를 이용해 ‘홍콩 독립’을 선전하는 것은 중국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며 “이번에 당선된 입법회 의원들이 중국 법률과 홍콩 법률에 맞게 직무를 수행해주기를 바란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홍콩의 열기는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 선거가 끝나고 지난달 28일 저녁에는 우산혁명 2주년 맞이 집회가 열었다. 참가자들은 행정장관 선거 직선제 도입 등을 또 다시 요구했다.

에디 추는 당선 직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홍콩 사람들이 우리의 미래를 민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믿어야 한다.”

목, 2016/10/0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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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대한항공 총수 가족들이 총출연하여 매스컴을 장식했던 유별난 갑질과 밀수입 및 불법행위 등에 대해 여전히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이들 가족들에 대한 형사처벌의 수준과 경영권 배제여부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돌출적이고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배경을 조양호 가족들만이 지닌 못된 관행과 버릇으로 제한하여 볼 것인지, 아니면 독점과 특혜로 점철되어온 개별 재벌 및 이에 결탁된 해당 공조직의 부패문제로 확장해서 접근할 것인지, 더 나가서는 한국 현대사에 뿌리를 내린 적폐와 봉건적 유제의 청산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개혁적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인지 결정해야할 매우 중요한 지점에 서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당연히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문제를 단순히 개별기업의 범위를 넘어서 한국사회가 추구해 가야하는 미래를 위해 중요한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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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한국사회를 전향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몇 번이나 놓쳤다. 우선 48년 9월 제헌국회에서 의결하고 공표된 반민특위법을 통해 나라를 팔아먹고 일제에 부역한 반민족적이고 기회적인 출세주의자들을 처단하고 그들이 형성해온 물적 조직적 기반을 해체하여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웠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권유지에만 눈이 먼 독부 이승만에 의해 자행된 초법적 공갈과 협박으로 무력화 되었던 아픈 역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또한 87년 민주화 대투쟁을 통하여 1961년 이래 기존의 군부개발독재에 의해 누적된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의 기득권 체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패러다임과 시민들의 참여와 합의의 기반위에서 출발할 기회가 있었으나, 양 김씨의 분열과 뒤이은 IMF 사태로 인해 재벌 등 독과점구도가 약화되기는커녕 국내의 기득권 체계와 국제적 자본이 결탁하여 신자유주의적 수탈체계를 강고하게 진행하여 왔다.

젊은 세대들은 절망속에 이를 헬조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 지난 2016/7년 간 시민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우리사회를 짓누르고 있던 남북의 적대적 대립관계가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로 접어들고 있으며, 지난 지방선거에서 수구적 정치집단을 압출시킴으로써 대대적인 적폐청산과 변혁의 계기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부터 문재인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손잡고 새로운 역사로 진입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오비이락처럼 돌출한 대한항공 총수 조양호 가족의 패악적이고 불법적 행위에 대해 단호한 대응으로 기득권 체계에 갇혀있는 한국의 사회경제적 구조에 대해 중대한 변혁을 가져올 기회로 삼아야 하며, 단순한 형사적 처벌과 일시적인 경영권 배제의 수준을 넘어서서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실험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대한항공의 역사와 지배구조

1962년에 설립되어 국내선을 주로 운용하던 국영기업 대한항공공사에 적자가 계속 누적되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6.25동란과 월남전의 군수물자 수송사업으로 급성장한 한진상사 조중훈 회장에게 이를 대신 인수하도록 강요하여 1967년 9월에 한진상사 산하에 민항인 대한항공이 출범한다. 태극문양을 단 국적 비행기가 해외로 나는 것을 갈망했던 박정희는 적자투성이 대한항공공사의 인수를 거부하던 조중훈에게 권총을 뽑아들고 인수를 강요했다는 비화를 남기기도 했다. 이를 뒤집어 이야기하면 선정된 민간기업에게 독점을 허용하고 수많은 특혜를 제공하면서 대한항공을 적극 육성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70년대 이후 중동건설의 붐으로 해외인력 및 자재 송출의 항공수요가 많아지면서 성장을 거듭하였고, 김영삼 정부의 해외여행 자유화로 일약 세계 20위권의 항공회사로 비약한다. 세계최초로 A300편을 도입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고 2000년 중반에는 화물수송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7년 기준으로 자산규모가 23조를 넘고 있으며, 매출액 11.8조를 실현하였고 8% 수준의 영억이익률에 종업원 18,550여명과 20여 개의 난삽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배구조를 보면 1대 주주인 주식회사 한진칼이 29.96%로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민연금이 12% 수준의 지분으로 2대 주주인 셈이다. 한진칼의 주주 구성을 살펴보면 조회장이 17.84%, 아들인 조원태가 2.34 %, 말썽의 중심에 섰던 조현아 조현민 두 딸이 각각 2.31%와 2.30%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가족친지의 특수관계 총지분율이 29.8%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항공의 주가수익배율(PER)은 3.9배로 국내기업의 KOSPI 평균인 9.9배에 한참 미달하고 있고, 동종의 경쟁업체들인 싱가포르 항공 22.3배와 호주 콴타즈 항공 11.2배의 15-3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주가수익배율이 이처럼 부실한 것은 조회장 일가가 개인적인 횡포와 부정뿐만 아니라 경영능력에 있어서도 국제적인 수준에 한참 미달임을 보여주고 있다. 연전에 문제가 된 계열사 한진해운 역시 능력이 부재한 며느리에게 경영책임을 맡기면서 결국 매우 소중한 한국 국적의 해운사 하나가 홀연히 사라진 경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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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투데이

이러한 배경과 중첩하여 기득권과 독과점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패러다임과 변혁의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 2018년 한국사회 과제상황을 고려하면, 부적격임을 스스로 연출한 대한항공의 총수가족 처리문제는 단순히 형사적 처벌과 일시적인 경영의 배제를 넘어서서 한국사회의 중심과제인 재벌체제에 대한 예행적 모범적 대응방식의 실험으로 진행을 구상해야 한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국민연기금을 포함한 기관투자자들이 한국의 간판 재벌 기업들의 경영과 지배구조의 의결과정에 반드시 참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연기금사회주의’논쟁은 기득체계를 대표하는 재벌과 자본가들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으로 한마디로 한국 현대사에서 벌어진 권력유착과 특혜의 과정에 무지한 매우 무책임한 발언이다.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 이래 인플레를 가장한 강제저축, 민족의 자존심을 팔아 들여온 대일청구 자금, 수천 명의 젊은 생명을 바친 월남파병 속에 전개된 이권, 밀수 및 삼분사건 등 온갖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로 이룩한 축재, 경제 쿠데타로 불리는 8.3 사채동결, 유신헌법과 군부독재를 통한 악랄한 노동운동의 탄압, IMF 이후 대기업에 투입한 엄청난 구제금융 등 한국사회가 동원할 수 있는 온갖 자원의 특혜와 혜택을 누리면서 형성된 것이 오늘날 독과점의 재벌기업들과 기득권 체계이다. 이제 시대를 달리하여 산업과 경제운용의 성과를 역차별적으로 국민 모두가 함께 공유해야 하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자 시대의 요청이며, 이에 연기금과 기관투자기관들은 마땅히 능동적으로 부응해야 한다.

한진칼의 경우를 들여다보면 조회장 일가의 특수 지분 29.8%에 대응하여, 국민연금이 11%, KB자산운용이 10%, 한국투자자산이 5% 수준을 가지고 있어 주요 기관투자자 지분이 26%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더하여 대한항공 직원과 일반시민들이 합세하여 한진칼 지분을 집중 매집하여 조회장 가족지분을 훨씬 능가하면 조회장 일가들의 경영권 참여를 항구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필자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대한항공의 노조 또는 직원회의가 중심이 되어 한진칼 주식 매입이라는 대대적인 시민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만약 대한항공 직원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하기에 전문성이 부족하면, 경실련 등 시민단체 누군가가 구심점이 되어 대한항공 직원과 더불어 시민들이 대거 참여하도록 독려하면서 한진칼의 지분에 대한 매집운동을 전개하고 매입한 지분의 권한을 몽땅 위임받아 기관투자자들과 연합하면서 문제가 된 조씨 가족을 경영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해당 산업에 밝은 전문경영인의 새시대를 열어야 한다.

한마디로 향후 언제라도 사회적 문제가 되는 재벌기업은 연기금등 공적 투자기관과 시민들이 연대하여 ‘국민의 기업’으로 재탄생시키는 첫걸음을 시작하여야 한다. 물론 실천 가능한 더욱 좋은 아이디어나 방식이 있으면 필자는 언제라도 흔쾌히 사재의 일부를 털어 새로운 제안에 참여할 것이다.

 

경제 운용의 새로운 구상이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전문경영인 체제의 출범이 책임경영에 대한 경험과 역사가 미천한 한국사회에서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이야기하지만, 대한항공이라는 기업의 적당한 규모와 항공수송이라는 특수분야라는 점을 고려하여 보면 전문경영인 체제의 도입을 실험적으로 과감하게 도입하고 진행할 가치가 매우 크다 할 것이다. 국민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재벌그룹에 소수 족벌의 가문이 전횡적이며 편법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을 더 이상 묵인해서는 아니 된다. 이에 때마침 사회적 문제로 제기된 대한항공을 예로 삼아 새로운 출발과 가능성의 계기를 삼아야 한다.

시야를 넓혀서 보면,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심각한 위기를 논하는 이 시점에서 회사의 지배구조를 규정하는 주식회사 방식의 회사법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시작해 봄 직하다. 현재의 유한책임으로 애매하게 규정된 대주주의 경영참여 방식은 반드시 공식적이며 법적 지위를 강제적으로 부여하고 이에 따른 결과에 대해 무한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경영참여권을 제한하고 다만 합의된 수준에서 이익 공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만 허용해야 한다.

더 나가서 회사의 경영권과 이익처분권을 오로지 자본 중심으로 결정하는 방식에서 자본과 노동과 기술과 소비자와 해당사회와 환경단체들이 공히 참여하여 합의하는 공동결정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본인이 일생동안 성취한 성공과 부는 살아생전에는 당연히 향유할 권리를 갖되, 죽음을 앞두고는 그동안 형성한 재산의 기여를 자신이 속한 지리 자연과 해당 사회와 함께 나누는 것이 마땅하기에 일정액 이상의 재산전체를 의무적으로 사회적으로 상속시키는 것도 연구해야 할 주제이다. 

관행적이며 습관적 입장과 관점으로는 격변하는 현하 산업사회의 구조 이행과 경제 현안을 해결할 수 없음이 명증하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일자리 현상이 이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21세기의 경제운용에 대한 키워드는 배분과 순환이며 국가의 조세정책이 핵심을 이루게 된다. 보유세 등 자산세를 누진적으로 강화하여 자본의 탐욕을 규제하고 시장이 갖는 균형과 자원의 배분기능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에서, 경제활동 영역에 참여 – 협력 – 혁신 – 공유 – 포용 – 분배와 소비의 순환 과정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면 새로운 변화가 형성되고 지난 수백 년간 산업시대에서 형성되어 왔던 직업과는 질적으로 다른 형태로 미래의 일자리들이 제3의 섹터에서 우후주순으로 자라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현실의 변화를 바라보아야 한다.

월, 2018/06/18-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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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한겨레신문(2016. 10. 4)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성장과 안보’ 두 신화로 포장된 한국 보수우익의 실체를 드러낸 점에서 큰 역사적 기여(?)를 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은 오히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속살을 백일하에 들추어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최고 권력의 요구로 미르 재단, 케이(K)스포츠 재단을 설립했다가 강제 모금 의혹이 일자 갑자기 해산 결정을 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백남기씨 사망, 사인 진단, 부검 시비에 연루된 경찰, 검찰과 서울대병원의 대응들에 그것이 집약되어 있다.

이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는 한국의 ‘근대 국가’의 세 기둥, 즉 근대 관료조직, 시장경제, 그리고 시민사회가 뼈대 없는 껍데기였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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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요구에 재벌은 일사분란하게 돈을 모았고, 최고의 전문가라는 대통령의 주치의는 명백한 사망원인을 바꿔치기 했다. 박근혜정부에서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대통령의 비민주적 행태가 아니라, 권력 앞에서 집단의 자율 규범과 전문가의 직업 윤리를 쉽게 내뺑겨치는 모습이다. 그만큼 한국 민주주의의 토대가 허약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5시간 만에 작전하듯이 재단 설립을 인가한 문화체육관광부, 그리고 이사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수십억원의 회삿돈을 한날한시에 입금한 재벌들, 그리고 문제가 되니 모든 자료를 파기해버리는 전경련의 모습은 거의 범죄집단을 연상케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공조직인 정부, 가장 막강한 사조직인 전경련과 재벌 기업이 권력자의 요구에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이 나라가 거의 왕조국가이거나 전체주의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그들 간의 은밀한 먹이사슬이 얼마나 강고한지도 짐작하게 해준다.

한편 경찰이 시위 농민에게 물대포 ‘직사살수’를 해서 식물인간 상태를 만들었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 사망하니 검찰은 그가 ‘외인’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부검을 실시하려 하고, 한국 최고 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은 그가 ‘병사’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는 경·검과 더불어 전문가의 직업윤리도 일거에 무너진 어이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행태를 변호하고 싶지는 않지만, 권력의 요구 앞에 한국에서 가장 힘 있는 공조직과 사조직이 도구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사실에 우리는 정말 허탈하고 할 말을 잊는다.

과거 독재권력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검찰, 보수언론을 사유물로 생각하면서 범죄를 종용했고, 그들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뭉갰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역대 어떤 대통령이나 정부기관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규정과 절차를 어기지는 않았고, 이렇게 사건을 은폐하고 손바닥으로 달을 가리는 식으로 둘러대지는 못했다.

박근혜 정권 덕분(?)에 우리는 한국이 아직 근대 국민국가의 초입에도 제대로 들어서지 못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2차대전 후 미국은 일본에서 전쟁범죄의 기둥인 재벌을 해체하였으며, 독일에서는 나치 학살 범죄자들을 처벌했다. 그래서 독일과 일본은 민주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들 나라의 살아남은 극우세력과 대기업이 아무리 노골적인 권력욕과 이윤추구 욕망을 드러내더라도, 정당, 관료, 법, 시민사회가 그것을 저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지금의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의 정치도 엉망이다. 그래도 국익을 위해 일하고 법을 존중하는 엘리트 집단과 공조직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식민지, 독재 시절의 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한 한국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에는 애국심과 직업적 자존심을 갖는 우익 정치세력, 고위 관료, 기업가, 전문가가 거의 없다. 이게 진정한 국가 위기다.

갑신정변의 주역인 서재필은 “나라가 망하려면 애국자들을 먼저 죽인다”고 말했지만, 박근혜 정권과 친박세력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여당, 사법부, 관료집단, 공기업 등에서 소신과 양심을 가진 사람을 모두 내쫓았고, 출세욕이나 자신의 약점 때문에 권력자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할 사람들만 골라서 기용했는데, 그들의 생존 본능으로 국가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모든 일이 대통령과 청와대로 통하면 관료, 시장, 시민사회는 별로 할 일이 없다. 이들 기관의 자체 매뉴얼이나 규정은 권력의 요구 앞에 휴지 조각으로 변했다.

오늘의 한국인은 썩은 세 기둥으로 지은 집 안에서 불안에 떨고 있다. 한국이 왜 40년 전 유신시대, 아니 120년 전의 왕조시대로 후퇴했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대선과 정권교체에 답이 있지 않다. 국가의 세 썩은 기둥을 다시 세워야 한다.

월, 2016/10/1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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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은, 정치권에서 맘대로 만든 객관식 답안 중에서 국민들이 욕을 하며 차악을 고르는 기성정치 관행이 철퇴를 맞을 것입니다.

스마트폰을 든 국민들이 서로 소통 연대하며 공통의 주장과 요구를 만들어 관철해낼 것입니다. 그게 바로 대한민국 ‘혁명적 변화’의 시작이고 중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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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성남시장이 내년 대선에서 야권의 ‘다크호스’가 될 것이라고 점치는 사람이 많다. 이런 기대감을 반영하듯, 최근 그의 지지율도 가파르고 오르고 있다.

차기 대통령 선거로 향하는 이재명 성남 시장의 기세가 무섭다.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집단의 이합집산이 아닌 국민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한 이 시장은 주요 여론조사에서 최근 석 달 사이 지지율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리며 야권의 유력 차기 대선주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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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시장은 한국갤럽의 10월 정기조사에서 처음으로 5%대의 벽을 넘어섰다. (자료: 한국갤럽)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3일 내놓은 정기 여론조사에서 이 시장은 지지율 5.2%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5.1%)을 따돌리고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5위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의 10월 정기조사에서는 처음으로 지지율 5%의 벽을 넘어서며 전체 5위를 기록했다. 이 시장은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 박원순 서울시장과 2위 군을 형성하고 있다.

선두를 다투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는 아직 격차가 적지 않지만,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나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 등 여야의 거물 정치인은 모두 따돌렸다.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지 6년 만이다.

이 시장은 중앙정부가 예산삭감이라는 칼날을 휘두르는 상황에서 청년배당ㆍ무상교복ㆍ공공산후조리 등 차별화된 복지정책을 관철시켜 내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이 시장에게 다윗의 다섯 물맷돌이 돼 주고 있다.

‘문재인 대세론’ 속에 대선 흥행의 불쏘시개 역할로 그칠지, 뒤집기 한판을 펼치며 반전 드라마를 써낼지 이 시장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붉은 진달래에 가슴 시렸던 ‘공돌이’ 

이 시장은 초등학교 끝으로 공장 노동자가 됐다. 가난은 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지만 그가 삶을 끌어갈 수 있게 하는 힘을 키울 수 있게 했다.

1964년 경북 안동의 한 산골에서 산전(山田)을 일구며 생활하는 빈농의 집에서 태어난 이 시장을, 지독한 가난은 내내 따라다녔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부모님이 7남매를 데리고 경기 성남의 상대원 시장 뒷골목 반지하 단칸방으로 옮겨온 뒤 이 시장은 목걸이 공장, 고무 공장을 거쳐 상대원공단의 냉장고 공장 ‘공돌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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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성남1공단의 모습. 1970년 광주대단지 항쟁을 겪었던 정부는 성남 이주 철거민 고용을 위해 1974년에 제1, 2공단, 1976년에 제3공단을 준공됐다. 이 공단은 성남지역에서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이재명도 어릴 시절, 이곳 공장에서 일했다. (자료: 성남시)

중학교 진학은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이 시장은 “식어버린 밥과 딱딱하게 굳은 오뎅조림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으며 일했다”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기기도 했다.

그는 “공장 앞산에서 온 산을 뒤덮은 채 무더기로 붉게 피어난 진달래가 눈에 들어왔다. 숟가락을 집어 던지고 눈앞에 펼쳐진 붉은 파도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여느 공돌이처럼 시커먼 공장철문을 넘을 용기는 내지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 일하다 프레스 기계에 왼쪽 팔목 뼈 하나가 잘리는 사고로 평생 왼팔이 구부러지는 장애까지 안았다. 열일곱 사춘기에 접어들자 장애인이라는 사실과 희망 없는 현실을 탓하며 두 번이나 스스로 삶을 등지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살아남은 그는 죽을 힘으로 살기로 작정하고 공부했고, 중ㆍ고교 검정고시를 거쳐 1982년 중앙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공장에서 일하며 받았던 월급 8만원보다 많은 매달 20만원을 장학금으로 받았다. 집에 생활비를 보태고 공장에 다니던 다른 형제들의 공부도 도울 수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맛본 ‘성공’이었다.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 시장은 “판•검사가 돼 이제 정말 잘 먹고 잘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출세길 버리고 인권변호사 투신

잘 먹고 잘살겠다던 다짐은 198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그 의미가 달라진다. 이 시장은 사법연수원 시절 가입한 노동법학회에서 변호사이던 노 전 대통령의 강연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됐다. ‘저렇게도 살 수 있나’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고 한다.

88년 연수원에서 잘릴 각오로 ‘정기승 대법원장 인준 반대 성명서’를 쓰게 되면서 평생의 힘이 되는 동지들도 생겨났다. ‘87년 체제’가 만들어지던 격변기이던 당시 연수원 동기이던 문병호 국민의당 전 의원,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뜻을 같이 했다.

연수원을 마친 1989년 이 시장은 판ㆍ검사 임관이라는 미래가 보장된 길을 포기하고, 사실상의 고향인 성남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다. 문 전 의원과 정 의원도 각각 인천 부평, 경기 의정부로 갔다.

이 시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혼자였다면 두렵고 불안했을 텐데, 동료를 보면서 ‘그렇지 않다(외롭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연수원 시절을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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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변호사시절이던 2002년 1월, 이른바 ‘파크뷰 특혜분양사건’ 대책위를 이끌면서 당시 김병량 성남시장과 파크뷰 아파트 건설 시행사 에이치원개발 홍원표 회장, 고위공직자, 검찰 간부간에 ‘친분관계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녹음테이프를 폭로했고, 이 일로 고초를 겪었다.

이 시장은 서민을 위한 무료변론, 양심수와 시국사건 변론 등에 나서는 한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활동에서 힘을 쏟는다. 1995년 훗날 성남참여연대로 이름을 바꾼 성남시민모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시민운동에도 투신했다.

2002년 분당 파크뷰 개발 특혜 비리를 언론에 폭로했다 구속되는 등 탄압을 받았다. 이 시장은 “소년노동자의 기억은 저의 근육에 박히고 힘줄에 스미고 핏줄로 흘러 오늘날 저를 밀어가는 힘이 됐다. 공장 프레스에 눌려 더는 펴지지 않는 굽은 팔을 펴보려던 그 상처 가득한 소년노동자의 마음이 노동에 대한 합리적 보상과 대우가 주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길에 저를 서게 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이 정치에 뛰어든 직접적인 계기는 2004년 성남 시립의료원 건립 운동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전국 최초로 주민이 발의한 시립의료원 조례가 시의회에서 47초 만에 날치기 폐기되는 것에 항의하다가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수배된 적이 있다”며 “(숨어 있던)교회 지하에서 시장이 돼 직접 시립의료원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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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시장이 2014년 성남시립의료원 건립 공사 기공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 시장은 10년 전, 시립의료원 조례가 시의회에서 47초 만에 날치기 폐기된 것을 계기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직접 시장이 돼 10년 전의 꿈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 차례 낙선의 고배를 마신 이 시장은 2010년 당선된 뒤 다짐대로 성남 시립의료원 건설을 시작했다.

중앙정부에 맞서는 복지 지자체장

이 시장은 재선을 하는 동안 청년배당ㆍ무상교복ㆍ공공산후조리 등을 내놓으며 복지정책을 상징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잇단 복지 정책에 제동을 거는 중앙정부와 맞서면서 전국적 인지도를 갖춘 대중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청년배당 등에 대해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맹공을 퍼부을수록 정치인으로서의 이 시장의 주가는 높아지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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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시장은 2016년 1월, 중앙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년배당’을 성남지역 각 동 주민자치센터를 통해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 시장이 손에 쥔 무기는 SNS다. SNS는 보수언론의 허위보도, 왜곡조작에 해명하고 싸울 유일한 보호수단이라는 게 이 시장의 생각이다. 여느 자치단체장과 달리 SNS를 통해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등에서 20여만명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정책 논란이 한창이던 때 이 시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를 한다고 전 국민에 사기 쳐서 대통령이 되고는 국가 빚은 사상최대로 늘리고 꼼수 서민증세에 애들 분유값 지원까지 줄이고 있다. 시기질투심으로 유치한 ‘증세 없는 복지 금지법’ 만들 생각은 버리고 ‘공약 이행 강제법’이나 만드는 게 어떤가”라고 일갈했다.

SNS상에서는 이 시장의 발언을 속 시원하다는 뜻의 ‘사이다’로 추켜세우며 열광적 지지를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시장은 SNS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 야권의 차기 대선 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 시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닮았지만, 그 보다 영리하고 치밀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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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시장만큼 찬사와 비판을한 몸에 받는 정치인도 드물다. 야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기대를 받고 있지만, 지나치게 공격적인 태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내년 대선 레이스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하다. 사진은 2015년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박근혜정부 복지후퇴 저지 토크콘서트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왼쪽부터) 박원순, 문재인, 이재명. (사진 출처: www.speco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71791)

하지만 내년 대선 도전 여부에 대해서는 “당장은 정권 교체를 위해, 축구로 치면 야권 핵심 지지층의 욕구를 대변하는 중앙수비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는 일인경기가 아닌 집단경기”라며 “팀원으로서 팀 안에서 각자 역량과 소질에 맞는 역할을 나누어 맡고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먼저다. 팀이 이겨야 MVP도 있다”고 적었다. 중앙수비수로서 차기 대선이라는 큰 경기를 대비한 조율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이 당장은 중앙수비수로 시작하지만 장기간 이어질 대선 경선 레이스에서 어떤 포지션으로 자리를 옮길지는 알 수 없다.

이 시장은 “지는 것도 습관이다. 철저하게 준비해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해야 한다. 일단 준비를 잘해야 한다. 나도 그렇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 뭘 하더라도 대충하지는 않을 거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금, 2016/10/1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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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고등법원, 판사 등 우리들은 사법부를 상당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법 행정을 관할하는 대법원 산하 기관인 법원행정처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그리하여 잘 보이지 않는 법원행정처는 사실 권력기관 중의 권력기관이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권력’의 전형이다. 

법원행정처는 법관의 재판을 보조한다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스스로 법관에 대한 감시, 감독기관으로 기능하면서 전체 법관과 전체 재판을 획일화시키고 있다. 이렇듯 사법 관료화의 핵심으로 부상한 법원행정처는 매두 독특하고도 기이한 기구이다. 법원행정처는 대법관으로 상징되는 사법부 수뇌부를 충원하기 위한 인력풀이라는 의미를 넘어, 대법관으로서의 ‘승진’을 기회로 구래로부터 형성되어온 내부적 불문율이 세습되는 통로로 작용하기도 한다. 즉 사법부의 엘리트를 집합시키고 그 능력을 활용하는 싱크탱크로서의 역할 수행과 더불어 그들을 훈육하고 통제하는 제2의 사관학교로서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결국 법원행정처는 인사관리실이나 기획조정실이라는 시스템을 통하여 법원 전체를 통제하는 강력한 중앙을 구축시키고 있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사법부란 조직이 아니다. 한 명 한 명의 법관이 곧 심판기관이요 사법부이다. 따라서 한 명 한 명의 법관이 소신껏 재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곧 사법권의 독립이다. 특히 법관의 ‘승진’이라는 개념은 법관의 직무와 기본적으로 부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법부는 군사 독재시대의 사법부의 틀을 유지하면서 상급자에 의한 주관적 근무평정을 전제로 한 피라미드식 다단계 승진구조로 인하여 법원 내부에 관료주의의 폐단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러한 관료주의는 독립적인 법관의 판단에 장애를 일으킬 위험 내지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사법부의 독립과 양립할 수 없다.

소수 사법 엘리트에 의한 시민의 통치는 민주주의의 틀에 명백하게 위배된다.  법치란 결코 법치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오로지 민주주의 실현의 유효한 수단으로서의 법치여야 한다는 점을 반드시 인식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법원행정처는 보이지 않는 사법 권력으로서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

※ 다른백년연구원은 <정책비평>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개혁해야 할 정책 과제를 산업, 금융, 고용/노동, 외교/안보, 안전, 관료제/선거제도 등 분야별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본 글에 대해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자 하시는 분께서는 언제든지 연락주십시오. 다른백년연구원은 열린 공간, 열띤 토론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백년, 새로운 사회를 위한 담론을 기획해나갈 것입니다. 

 

월, 2016/10/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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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지난 11일, 갤럭시노트7의 생산 중단을 공시했다. 갤럭시노트7은 8월 2일 미국 뉴욕에서 최초로 공개된 이후에 홍채인식 등 최신기술을 장착한 스마트폰으로 찬사를 받았으며, 이른바 대박을 터트릴 조짐도 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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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노트7은 하이엔드 시장에서 아이폰을 견제할 신제품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잇단 발화 사건으로 출시된 지 2달 만에 단종되고 말았다. 사진은 지난 8월,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이 새로 출시된 갤럭시노트7을 설명하는 모습.

그러나 화려한 출시는 두 달만에 ‘단종(斷種)’이라는 비극으로 끝을 맺었다. 

갤럭시노트7의 참담한 실패…삼성 리스크 대비해야

출시 직후부터 갤럭시노트7의 발화 사례들이 국내외에서 보고되었는데, 급기야 9월 2일에 삼성전자는 배터리 결합을 공식 확인하고 전량 교환을 발표했다. 이어서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가 공식 리콜을 발표했고, 다른 세계 각국의 규제당국도 동일한 조치를 취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결함이 있다던 삼성SDI의 배터리를 교체한 새 기기를 9월 19일부터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 배터리를 장착한 갤럭시노트7이 또 다시 발화하는 사건이 국내외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10월 9일에 버라이존, AT&T, T-모바일 등 주요 미국 이동통신사들이 갤럭시노트7의 판매 및 교환 중단을 발표하였고, 발화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이뤄지기도 전인 11일에 삼성전자는 단종 조치라는 극약 처방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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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최초 발화 사건 이후 밧데리 문제라며 전량 리콜을 실시했다. 그러나 밧데리 문제를 개선한 제품에서도 다시 발화사건이 발생하자 결국 단종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첫 발화 사건이 있었을 때,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있었지만, 성급한 결정으로 그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진 출처: http://macguyver.kr/1525)

갤럭시노트7의 단종으로 삼성전자는 약 7조원의 손실을 입게 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 7조원은 판매된 갤럭시노트7의 교환이나 환불 그리고 단종 결정으로 인한 미판매 손실 등 갤럭시노트7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손실일 뿐이다.

즉, 갤럭시노트7 사태로 인한 삼성전자에 대한 소비자 신뢰의 저하와 이에 따른 향후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대한 수요 감소를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사실 1년에 20조~30조원의 이익을 내는 삼성전자 입장에서 7조원의 손실은 감당하지 못 할 수준의 타격은 아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사건이 삼성전자의 후속 스마트폰 모델의 판매에 미칠 영향이다.

결국 갤럭시S8이 언제, 어떤 사양으로 출시되고 이 새로운 제품에 대한 소비자와 시장의 반응이 어떠할 지가 관건인 것이다. 만약 갤럭시S8이 또 다시 결함을 보이거나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삼성전자의 모바일 부문의 미래는 매우 암울해진다.

갤럭시노트7 사태는 삼성전자의 몰락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삼성 리스크(risk)를 정부가 더 이상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노키아의 몰락’ 전철 밟을까

삼성전자는 한국의 대표적 기업이다. 시가총액이 2016년 4월 8일 종가기준으로 약 203조원으로, 2위와 3위 기업인 한국전력과 현대자동차보다 6배 이상 많다.

삼성전자는 또한 삼성그룹이라는 국내 최대 재벌의 핵심 계열사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4년 말 기준으로 삼성그룹의 매출액은 약 303조 원이고 자산총액은 약 623조 원인데, 이는 GDP 대비 20.4%와 42.0%에 각각 해당하는 수치이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60여개의 계열사로 구성된 삼성그룹 매출액의 약 46%, 당기순이익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부문 덕분에 세계적 기업이 된 삼성전자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스마트폰에서의 성공 때문이었다.

삼성전자는 2012년 휴대폰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올랐는데, 2012년과 2013년에 휴대폰 부문은 삼성전자 매출의 50% 전후 그리고 영업이익의 70% 정도를 차지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 휴대폰 부문의 영업이익이 급감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삼성전자도 노키아의 전철을 밟을까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단절적 혁신’의 세계…어떤 기업도 망할 수 있어

노키아는 1990년대 초에 휴대폰 제조업에 뛰어들어, 1998년에 세계 1위에 올랐다. 그러나 2010년까지 세계 1위였던 노키아는 불과 3년 만인 2013년 11월 19일에 휴대폰 사업부문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13년간 세계 정상에 있던 노키아가 왜 이처럼 몰락한 것일까? 1위 사업자로 자만하고 안주했던 것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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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 휴대폰 시장의 최강자였다. 그랬던 노키아가 불과 몇 년 사이에 몰락하고 말았다. 휴대폰같은 최첨단 산업일수록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뒤엎는 ‘창조적 파괴’, ‘단절적 변화’가 발생하며, 이전의 환경에서 성공한 기업일수록 단절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역설이 생겨난다. (이미지 출처: http://m.blog.naver.com/dexterlee/220426483749)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이라는 신기술의 파고를 타고 휴대폰 시장의 최강자가 된 노키아는 자금력이 충분한 선도 기업이 그 지위를 유지하려면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복잡하고 광범위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에 따라 연구개발(R&D) 투자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과감한 혁신을 선도할 별도 조직을 만들었다. 또 신기술을 가진 기업을 인수하거나 다른 기업들과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그 결과, 노키아는 스마트폰의 도래와 중요성을 가장 먼저 인식하고 스마트폰을 가장 먼저 만들었으며, 휴대폰 시장이 하드웨어 중심에서 ‘콘텐츠·서비스 중심’으로 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앱스토어 사업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키아는 결국 몰락했다. 노키아의 몰락은 한마디로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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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의 마지막 CEO 스테판 엘롭(Stephen Elop). 그는 2010년 노키아의 CEO가 된 뒤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합병을 성사시킨 뒤 2014년 물러났다. CEO에서 물러나는 마지막 연설에서 그는 “우리는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망했다(we didn’t do anything wrong, but somehow, we lost)라고 말했다. 그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일어나는 단절적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진 출처: http://theusbport.com/nokia-ceo-stephen-elop-leave-microsoft/573)

노키아는 스마트폰의 도래를 예측했고, 무선 인터넷이나 콘텐츠·서비스에 대한 잠재적 수요를 자신들의 기존 휴대폰의 틀 안에서 ‘점진적’ 혁신으로 수용하고자 했다.

이에 반해 애플은 손가락을 사용하는 터치스크린 스마트폰으로 기존 휴대폰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단절적’ 혁신을 꾀했다.

사실 애플의 아이폰이 도입된 직후에도 터치스크린 스마트폰이 판을 뒤집는 혁신이라는 것을 많은 전문가들도 인지하지 못했다. 따라서 기존 휴대폰 시장에서 막대한 이윤을 올리고 있던 노키아가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단절적 혁신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은 합리적 선택이었다.

도전 기업에 의한 단절적 혁신이 선도기업을 도태시키는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는 산업과 국가를 불문하고 IT 분야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비즈니스 컴퓨터의 개척자고 지배적 기업이었던 IBM은 PC혁명이라는 단절적 혁신으로 몰락했으며, PC 시대의 절대강자였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으로 쇠퇴했다.

컬러 TV의 최강자였던 소니는 디지털 TV라는 단절적 혁신으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아날로그 휴대폰 1위 사업자였던 모토롤라도 2세대 디지털 휴대폰의 선도기업이었던 노키아도 몰락했다. 스마트폰 시장의 선두주자인 애플과 삼성전자도 예기치 못한 단절적 혁신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개연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경직된 조직문화가 몰락 앞당겨

그런데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는 이런 단절적 혁신이 일어나기 이전 삼성전자가 몰락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주고 있다.

사실 갤럭시노트7의 단종 사태는 2008-2009년 사이에 노키아에서 일어난 상황과 유사한 면이 있다.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되고 구글을 중심으로한 안드로이드 연합이 결성되면서,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강한 압력을 받았다.

또한 중국, 인도 등의 기업들의 추격으로 이 당시 노키아가 가장 높은 이윤을 내고 있던 신생국가 시장에서 중간 가격대의 피처폰 수요도 급감하고 있었다.

피처폰의 실적 부진과 스마트폰에서 거센 도전에 직면한 노키아의 최고경영진은 노키아 중간관리자들에게 아이폰의 앱스토어에 필적할 수 있는 노키아 앱스토어인 오비를 빨리 개장하라고 지시했는데, 중간관리자들은 지시받은 날짜를 맞추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하고서도 할 수 있다고 보고했었다.

노키아의 중간관리자들 역시 성공한 기업의 자기 영역에서 작은 왕국을 구축하고 있었으며, 지시한 날짜를 지키기 어렵다는 솔직히 이야기하면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앱스토어 오비는 두 번의 연기 끝에 21개월만에 늦장 개장되고, 노키아는 소비자의 신뢰를 잃게 된다. 이 사건은 노키아의 몰락을 재촉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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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와 관련해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삼성사옥 1층에서 수요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삼성그룹 사장단의 모습. (왼쪽 사진). 갤럭시노트7 사태로 이재용 부사장의 리더십이 도마에 올랐다. 이건희 회장의 장남으로 그룹을 물려받는 그는 아직까지 한 번도 제대로 사업을 성공시킨 적이 없다는 것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사진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0/13/2016101300355.html)

삼성전자 역시 최근 중국 제조사들에게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을 잠식당하고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애플의 아이폰과 힘겨운 경쟁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경영진이 새로운 기능을 가진 새 모형을 경쟁사인 애플보다 빨리 출시하라고 중간경영진에게 독촉했을 개연성이 높다.

또 중간경영진은 충분한 품질 검사를 마치지 않은 제품을 제시된 날짜에 맞춰 무리하게 출시했을 것이다. 그 결과 전대미문의 스마트폰 발화 사건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더 심각한 것은 발화 원인에 대한 충분한 조사 없이, 삼성SDI의 배터리 문제로 신속히 결론내리고 새 기기를 곧장 시장에 내놓았던 데 있다.

최소한 노키아의 기술진과 중간관리자들은 준비가 되지 않은 제품을 출시하도록 거짓보고를 하지는 않았음 고려하면,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진과 기술진 및 중간관리자 사이에는 노키아가 몰락할 당시보다도 더 심각한 소통의 문제를 안고 있음을 의심하게 만든다. 만약 삼성전자가 몰락하게 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삼성전자가 망해도 한국이 사는 길

노키아의 전성기 때 핀란드를 ‘단일 기업 경제(one-firm economy)’라고 부를 만큼, 노키아가 차지하는 핀란드 경제에서의 비중은 매우 컸다. 그러나 노키아의 몰락은 핀란드 경제 위기로 전이되지 않았다. 오히려 벤처 창업 열기로 이어지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노키아의 몰락이 새로운 성장 동력의 등장으로 이어진 것은 퇴직자에게 벤처교육과 자본금을 지원한 노키아의 브리짓 프로그램과 실업보험제도를 포함한 핀란드의 사회안전망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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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는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병된 이후 실업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직, 새로운 직업훈련, 창업지원 등 다양한 브리짓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미지 출처: http://www.allaboutsymbian.com/flow/item/15297_Nokias_Bridge_program_ai…)

그러나 삼성전자의 몰락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은 노키아의 경우와 사뭇 다를 수 있다.

삼성그룹의 수직적 계열화와 금산복합 순환출자구조, 그리고 우리 사회의 사회안전망의 부재로 인해 삼성전자의 몰락이 삼성그룹의 몰락, 그리고 국가 경제의 위기로 전이될 개연성이 높다.

시뮬레이션 결과에 의하면, 삼성전자 주식 가치의 폭락은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의 동반 파산으로 이어진다. 삼성그룹 계열사들과 하청기업들이 줄도산할 경우 실업률이 약 7.1%p 상승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한국의 실업률이 3.5% 정도이므로, 이는 실업률이 3배로 증가함을 의미한다.

삼성그룹의 붕괴는 국민연금에 약 19조원의 투자손실을 야기하며, 2014년 기준으로 4조3천5백억원의 법인세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도산은 국내 보험업의 위기로 전이될 수 있고, 삼성그룹과 하청기업들의 도산은 국내 은행들의 부실화로 연결될 것이다. 이런 예상을 하는 외국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에서 이탈하면서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삼성전자의 몰락은 1997년 외환위기보다 더 혹독한 경제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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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의 매출은 한국 GDP의 5분의 1을 차지한다. 또 삼성그룹 매출의 절반은 삼성전자에서 나온다. 한국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다보니까 삼성의 위기가 한국경제의 위기로 전이되는 ‘시스템 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삼성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대적인 구조개혁이 절실한 시점이다. (사진 출처: http://m.it.chosun.com/m/m_article.html?no=2824275)

물론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이 건재해 휴대폰 사업이 망해도 기업 자체가 망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도체 부문의 기술혁신 속도가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고 반도체 가격이 경기변동에 민감함을 고려할 때, 삼성전자 휴대폰 부문의 몰락과 반도체 부문의 부진이 동시에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개 기업의 몰락이 경제위기로 전이되는 이른바 ‘시스템 리스크’가 존재할 때, 정부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한다. 2015년 5월 메르스 발병 초기에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최선의 시나리오에 집착해 재난을 자초했던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말과 동일한 논리이다.

삼성전자의 몰락이 국가경제 위기로 전이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는 삼성그룹에 의한 경제력집중을 해소하고 금산분리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2013년 이스라엘이 단행한 개혁조치는 우리에게 좋은 참고가 된다. 이와 함께 재도전의 발판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의 확충도 서둘러야 한다.

월, 2016/10/1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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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코리아엑스포제에 실린 필자의 ‘민간 싱크탱크가 한국의 정책을 망치고 있다‘(2016년 10월 12일)를 필자와 코리아엑스포제의 허락을 받아 번역, 게재한 것입니다.)

지난 10월 11일,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매경 미디어그룹이 주최한 세계지식포럼(WKF)이 열렸다. 이번 행사는 정책과 경제영역에서 한국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강연자는 칼라일펀드의 공동설립자인 데이비드 루빈스타인, 전 미국 부통령 딕 체니, 대북강경론자인 전 국무차관 웬디 셔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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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매경 미디어그룹이 주최한 세계지식포럼 모습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한국처럼 복잡한 나라가 딕 체니같은 사람을 초청할 수 있을까? 전쟁이 일어난 다른 나라에서 전범재판 피고로 불려 나와야 한다는 소리를 듣는 그가 어떻게 초청됐을까?

겉만 뻔지르하고, 알맹이없는 국제행사

지난 4월에는 아산정책연구원이 매년 전세계 전문가와 학자들을 초청해 여는 아산플레넘 행사에 참석했다. 이 행사는 남산 하야트호텔에서 열렸는데, 음식은 호화로왔고, 외국인 전문가들은 대학생 인턴들의 극진한 접대를 받았다.

방 한가운데 테이블에는 아산정책연구소가 만든 경제 및 국제관계 관련 영어 브로셔가 쌓여 있었다. 브로셔의 편집은 흠잡을데 없이 깔끔했다. 그러나 내용은 지루했고, 정직하지 못했다. 성장과 개발에 대한 진부한 주장만 가득했다.

전문가들의 말도 한결같이 피상적이고, 의례적이었다. 다른 싱크탱크와 정부기관에서 온 사람들은 기후변화, 빈부격차, 서구에서 극우파의 등장과 군국주의의 발호 등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말하길 꺼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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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아산정책연구원이 주최한 아산플래넘에서 초청인사들이 대담을 나누는 모습. (사진 출처: http://www.mayvan.co.kr/gnuboard4/bbs/board.php?bo_table=port&wr_id=424)

어떤 이유에서 내가 초청됐지만, 평소 존경하던 국내외 전문가는 초청받지 못했다.

그나마 초청받은 외국인 전문가는 빅터 차(Victor Cha),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 부르스 베넷(Bruce Bennett)처럼 매번 보던 얼굴들이었다. 이들은 남북한과 미국의 일반 국민들의 삶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으면서 한결같이 군사동맹과 자유무역협정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이다.

아시아 전문가 중에서 그 지역 언어에 능숙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개는 정부와 싱크탱크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불려온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들은 지난 20년동안 곧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허황된 주장을 반복하던 사람이었다. 그들의 분석은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북한을 마치 소외되고 적의를 가진 국가로 묘사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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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외교정책은 정부와 민간 싱크탱크 간의 긴밀한 소통과 협조 속에서 형성된다. 그런데 한국에서 대북문제 전문가로 소개되는 대개의 외국인 전문가들은 특정 입장과 정책만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 전문가라는 후광을 업고, 국내 정책을 왜곡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또 그들은 뻔뻔하게도 비싸고, 효용이 의심되는 사드와 같은 무기체계를 선전하는 글을 쓰곤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전하는 무기만 사용하면 안보를 지킬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곤 했다.

내 생각에는 그들이 그냥 집에 머물거나, 자신들의 부패를 깨닫고 조용히 물러났으면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진짜 안보를 걱정하는 사람, 기후변화와 드론 활성화 같이 실제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순위에 목매는 민간 싱크탱크

아산정책연구원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의 싱크탱크를 대표하는 곳이다. 이 연구소는 서울에서 많은 돈이 드는 회의를 열고, 전세계에서 전문가와 고위직 관료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활동들을 통해 아산정책연구원이 매우 중요한 곳임을 알릴 수는 있지만, 실제 그 활동을 통해 얻는 것은 거의 없다.

한국 언론은 한국의 싱크탱크가 낙후됐으며, 선진국 진입에 필요한 정책 혁신을 위해 싱크탱크가 필수적이라고 말하곤 한다.

많은 인턴학생들은 정치학이나 국제관계학과 관련된 그럴듯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싱크탱크에서 일한다. 어떤 사람은 싱크탱크 경력을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수단으로 삼는다. 그러나 싱크탱크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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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서울 장충동 서울클럽에서 열린 ‘한국 싱크탱크의 국제적 역할 확대’ 포럼 모습. (사진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012254831)

예컨대 제임스 매건 펜실베니아대학 교수가 만든 세계 싱크탱크 순위가 나올 때마다 한국에서는 안달복달하는 분위기가 있다. 2015년에는 KDI(33위), 대외경제정책연구원(48위), 동아시아연구원, 아산정책연구원, 국방연구원, 외교안보연구원, 세종연구소 등이 포함됐다.

이 순위는 재정, 인력규모, 유수저널 게재논문 수 등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이런 지표를 통해 과연 국가정책에 대한 싱크탱크의 영향력을 평가할 수 있을까.

또 이 순위는 연구의 정확성과 적절성은 반영하지 않는다. 대신 기업과 부유한 후원자로부터 얼마나 많은 돈을 받았는지는 후한 평가를 받는 기준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돈은 부패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사회적 비전을 가진 후원자가 의미있는 후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규모의 기업 후원은 종종 싱크탱크가 당면 문제에 대해 정직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방해한다. 왜냐하면 너무 적나라한 분석은 후원자를 불편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규모의 기업 후원은 싱크탱크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떨어뜨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문제가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포린어페어(Foreign Affairs)같은 저명한 잡지도 누구의 글을 실을지에 대해 협소한 관점으로 판단하고, 가끔 대기업이 추구할 만한 아젠다를 제시하기도 한다.

국가정책 도둑질하는 그들만의 리그

더욱 문제는 한국의 민간 싱크탱크가 갖고 있는 폐쇄성이다. 순위를 매기는 직원이 오면 한국 정부는 그들을 비공개로 열리는 싱크탱크의 세미나에 보낸다. 이런 세미나에서는 후원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목소리만 나온다.

세미나는 공개 토론을 통해 다양한 배경의 시민들을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서울에서 초청받은 행사는 매우 폐쇄적이었다. 최악의 경우는 아산정책연구원과 동아시아연구원이었다. 이들 싱크탱크는 자신들을 마치 고위 정책결정자들의 비밀클럽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이러한 싱크탱크들이 정책영역에서 하는 역할은 교육에서 학원이 하는 역할과 점점 닮아간다. 학원은 시험을 취업을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만들고, 교사들의 역할을 주변화함으로써 교육과 시험제도를 왜곡하고, 결국 교육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한국의 싱크탱크는 비영리기관이지만, 최고의 관심사는 돈을 모으거나, 또는 후원자의 생각을 널리 선전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과 후원자들을 위해 공공 정책과정을 도둑질하는 것과 같다.

한국의 싱크탱크는 정부 관리, 국책연구소 연구자, 대학교수들에 의해 이뤄져야 할 (공적인) 업무를 사익화한다. 그들은 그럴싸한 이벤트, 멋진 브로셔와 광고 등으로 자신들의 무책임과 협소한 이해관계를 은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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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민간을 아우르는 다양한 집단들이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는 정책공동체(policy community)에서 자유로운 정보교류와 협력을 통해 정책혁신이 이뤄진다. 그러나 국내의 정책공동체는 정부와 특정 민간 싱크탱크 간의 폐쇄된 네트워크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만들어진 정책이 과연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미지 출처: http://www2.ucsc.edu/whorulesamerica/power_elite/interlocks_and_interac…)

한국의 민간 싱크탱크가 정부보다 공공업무를 더 잘 할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한국정부를 현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부활동의 가장 중요한 과정, 즉 장기 국가 아젠더 설정을 사익화하기 위해서이다.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고,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는 민간 싱크탱크가 향후 20년간 한국이 해야 할 일을 제안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런 위험성은 실제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본 것과 같은 재앙을 모든 한국인이 향후 몇 백년동안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을 채 수없이 많은 무모한 대북대책을 부추기는데서 분명히 드러난다.

한국은 새로운 생각과 접근방식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혁신적인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여기서 정부 기관끼리 논쟁해야 한다. 또 이를 통해 각성된 정부 관료들이 정책결정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작지만 활기찬 정책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학자, NGO, 정부 관료, 대중들이 모두 참여하는 숙의가 이뤄져야 한다. 민간 싱크탱크처럼 불투명한 엘리트조직을 정책중개자인 양 격려하고 지원하는 현재의 상황은 결코 한국의 미래에 이롭지 않다.

화, 2016/10/1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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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내가 부른 이름대로 모습을 바꾸었다.”

오규원 시인의 시, 『꽃의 패러디』의 한 구절이다. 미국의 뮤지션 밥 딜런이 지난 10월 13일(한국시각)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불리자마자 전 세계는 각양각색의 시각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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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우드스탁 음악페스트발에서 노래하는 밥 딜런의 모습 (사진 출처: http://www.dailymail.co.uk/)

그에게 상을 쥐여준 사라 나디우스 스웨덴 한림원 사무총장은 “”밥 딜런의 노래는 귀를 위한 시’라고 극찬하며 고대 그리스 시인인 호머와 사포에 견줬다. 대중음악계는 음악의 위대함이 증명됐다고 열광했고, 그가 한때 상징했던 반전과 평화, 저항정신을 칭송했다. 

특히 60~70년대 대학에서 군부독재에 맞섰던 국내의 50대는 그를 ‘저항의 아이콘’으로 불러내며 향수에 젖었다. 하지만 이후 사회 참여에 거리를 둔 그의 행보에 ‘변절’이라는 비판이 따라붙기도 한다. 또 그는 ‘작가’가 아니라 ‘음악가’일 뿐이라는 냉소도 터져 나왔다. 그는 지난 며칠간 사람들이 부른 이름대로 모습을 바꾸고 있다.

이는 그의 삶과 음악이 대중음악은 물론 사회에 미친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런 다채로운 반응이 터져 나오는데는 저항의 아이콘에서 은둔자, 가스펠 가수 등으로 끊임없이 변모한 그의 이력이 큰 몫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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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임낫데어’에 등장하는6명의 배우는 모두 밥 딜런 한 사람이다. 그만큼 밥 딜런의 모습이 변화무쌍하고, 다채롭기 때문이다. 밥 딜런은 ‘나는 당신이 알고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서전 제목도 ‘아임낫데어’다.

그를 다룬 영화 <아임 낫 데어>(2008년, 토드 헤인즈 감독)는 아예 6명의 캐릭터와 배우를 통해 밥 딜런의 다양한 면모를 조명하기도 했다. 

#Blowin’ In The Wind(바람만이 아는 대답)

그는 1941년 미국 미네소타의 시골 마을에서 로버트 앨런 지머맨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소년 시절 엘비스 프레슬리 등 로큰롤 스타에 열광했던 그는 동시에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의 시를 읽고 ‘머릿속에 종이 울리는’ 경험을 한 문학 소년이었다고 한다. 

그가 성인이 돼서 새로운 이름으로 삼은 밥 딜런도 웨일스 출신 시인 딜런 토머스에서 따왔다. 그는 자신의 우상인 포크 뮤지션 우디 거스리를 만나기 위해 미네소타 대학을 중퇴하고 1961년 뉴욕으로 올라왔다. 

클럽 등을 떠돌며 기타를 연주하던 그는 1963년 발표한 ‘The Freewheelin’ Bob Dylan’이라는 앨범으로 단번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도 명곡으로 꼽히는 ‘Blowin’ In The Wind,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가 수록된 앨범이다. 

Yes,  how many deaths will it take till he knows/That too many people have died?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바람만이 아는 대답)

특히 ‘바람만이 아는 대답’은 시적인 노랫말에 평화와 반전 자유라는 가치를 담아 당시 미국사회를 휩쓴 베트남 반전 운동과 화학적 결합을 한다. 

한때 연인 사이였던 Joan Baez (조앤 바에즈), Peter, Paul and Mary (피터 폴 앤드 메리) 등 수많은 뮤지션이 부르기도 한 이 노래로 그는 반전과 저항의 아이콘으로 불리게 된다. 

읊조리듯 부르는 창법과 특유의 반골 이미지도 청년들을 열광케 했다. `밥 딜런 열풍’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군부독재에 신음하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한 줄기 빛으로 비추기도 했다. 

트윈폴리오, 한대수, 김민기, 양희은 등은 포크 음악을 통해 자유와 저항을 노래했다. 트윈폴리오의 멤버였던 윤형주씨는 “그의 저항정신이 한국 포크 1세대와 잘 맞았다”(조선일보 10월 14일 치 2면)고 말했다. 그의 수상 소식이 국내 주요 일간지의 1면 톱기사로 오른 것은  밥 딜런이 1960년대 한국 사회에 남긴 영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Mr. Tambourine Man”(미스터 탬버린맨)

Hey! Mr. Tambourine Man, Play a song for me(미스터 탬버린맨, 나를 위해 노래해줘)

하지만 그는 자신이 저항의 기수가 되는 것을 불편해했다고 한다. 또 다소 단조로운 포크 음악에 지루함을 느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스터 탬버린만>이라는 노래를 작곡한 1965년은 그의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자, 그의 추종자들에게는 충격의 해였다. 밥 딜런은 1965년 여름 뉴 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전자기타를 들고 나왔다.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하던 포크 음악에 전자기타를 드는 것은 ‘배신’으로 간주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공연에서 수많은 팬들이 그를 향해 야유했고 쓰레기를 던졌다. 그는 1966년 순회공연 중 갑자기 공연장을 떠나며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군중들 앞에서 저항 노래인 <We shall overcome>을 부르던 그는 이후 ‘우리’보다 ‘나’를 더 노래했다. 

<밥 딜런 평전>(실천문학사)을 쓴 마이크 마퀴스는 이에 대해 “아마도 딜런은 자신이 저항 가수의 상징으로 정형화되는 것을 두려워했는지 모른다. 바로 그의 내부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예술에 대한 야심이 그를 변화시켰을 것이다. 딜런의 운동 거부는 그래서 자기 해방을 위한 행동으로 비치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2005년 출간된 밥 딜런의 자서전 <크로니클스: 바람만이 아는 대답>에서 그는 “나는 세상에 대해 느낀 것을 정의하기 위해 노래하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시대의 양심으로서 의무를 회피하지 말고 밖으로 나와 그들을 어디론가 인도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내가 대변하고 있다는 세대와 공통적인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결국 그의 영혼은 ‘운동가’라기보다는 ‘예술가’에 더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는 예술가로서의 욕망과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끊임 없이 표출한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그가 포크프로테스트로부터 이탈한 것은 바로 ‘자유’와 등식화되는 ‘예술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는 저항성 대신 예술성을 얻었다”고 평했다.

#Like a Rolling Stone(구르는 돌처럼)

1965년 발표한 <구르는 돌처럼>으로 밥 딜런은 위대한 뮤지션으로 도약한다. 이 노래는 영국 잡지가 2005년 조사한 유명 가수와 영화배우 등 대중문화 스타들을 대상으로 ‘100년간 세상을 바꾼 음악, 영화, 책, TV프로그램’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고, 음악전문지 ‘롤링스톤’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로큰롤’로 선정되기도 했다.

노래 제목대로 그는 구르는 돌처럼 자유분방한 행보를 이어갔다. 1966년 오토바이 사고 부상을 이유로 은둔한 그는 히피 운동이 한창이었던 1960년대 말에 백인 음악의 전유물인 음악 장르 컨트리에 심취했다. 

저항의 아이콘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나아가 1970년대에는 기독교 원리주의에 심취해 ‘Slow Train Coming’이라는 가스펠 음반을 발표하고 종교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자선 행사에 얼굴을 내밀고, 사회 참여를 이어온 영국 밴드 U2의 보컬 보노와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부르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며 공연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I’m not there(나는 거기에 없다)

10월18일 현재까지 그는 노벨상 수상 이후 전 세계의 주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없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이 발표된 10월13일 저녁 진행한 콘서트에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단지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불렀고, 청중들이 “노벨상 수상자”라고 연호했지만 모른척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I’m not there>은 그를 다룬 영화이자 그가 발표한 노래의 제목이다. 예술가로서의 욕망을 끊임없이 보여온 그는 어쩌면 1960년대 반전과 흑인민권운동의 흐름에도, 1970년대 개인의 고독과 종교에 심취한 시기에도, 노벨상을 수상한 지금도 “나는 거기에 없다”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1965년 그는 한 기자회견에서 “스스로 가수라고 생각하나 시인이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전 그냥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이다”라고 답했다. 침묵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 답변일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씁쓸한 건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두고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파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척박한 현실이다. 

세계가 ‘귀로 듣는 시’에 대한 찬사와 비판을 하는 동안, 한국 사회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적 가치를 고민해야 하는 퇴행적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금, 2016/10/2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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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지구의 인구가 10억 명에 도달하는데 수천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 두 배인 20억이 되는 데 120년(1920)이 걸렸고, 40억이 되는데 겨우 50년이 걸렸다.

1970년 40억이던 인구가 80억이 되는 데는 훨씬 더 짧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약 70년 동안 인구의 수가 세 배나 등장한 것이다.

맬서스가 쓴 <인구론>의 가장 중요한 명제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느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는다는 것이다. 즉 인구 증가 속도를 식량 증가가 따라잡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 고전적 이론이 댄 브라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인페르노>에서는 조금 다르게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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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댄 브라운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영화에서 천재 생물학자 조브리트(벤 포스터 역)가 지구의 인구 과잉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오른쪽 사진)

인류는 하나의 커다란 오염체로 하나의 개체가 늘어갈수록 지구는 병들어 간다. 가령, 쓰레기를 버리고, 자원을 남용하며 지구를 온난화시킬 뿐만 아니라 개체 자체로서 이산화탄소를 뿜어낸다. 그래서 소설 속의 조브리스트라는 급진적 과학자는 인류는 인류 때문에 멸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급진적 이론의 바탕에는 지구의 역사와 함께 하는 대멸종의 기록이 있다. 천적이 없는 종은 결국 종적으로 멸하게 된다. 개체의 크기로 보나 힘으로 볼 때 대적할 종이 없었던 공룡의 멸종이 그 예시가 될 법하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야말로 현재 천적이 없는, 우세종이다. 호포 사피엔스로서 인류는 작은 몸의 한계를 생각하는 능력과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으로 극복하며 이제 지구상 거의 모든 종을 정복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정도라면 인류가 지구상에 너무 큰 부담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자면 인구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때엔 언제나 마치 약속된 듯 대 유행병이 돌았다.

중세 유럽사를 뒤바꾼 흑사병이나 20세기 초 전 세계를 죽음의 늪으로 몰아넣었던 콜레라 등이 바로 그런 질병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소설과 영화 속의 급진주의자들은 지나친 백신과 예방의학이 이러한 자연스러운 재난을 막기 때문에 인류라는 해악이 점점 더 커 나간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 조브리스트는 인구의 3분의 1을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바이러스를 만들어 살포하고자 한다. 작은 희생이 인류의 멸망을 막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조브리스트 같은 인물은 바로 광신도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사실 인구문제는 조브리스트처럼 선동적 광신도가 아니라 합리적 정치에 의해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 사실이다. 이는 인구문제가 포함된 환경문제 역시 정치적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조브리스트가 대중 강연에서 보여주는 인구증가 속도 그래프는 미국의 부통령 앨 고어의 대중 연설에서도 고스란히 등장한다. 단 한 글자도 틀리지 않을 정도이다. 지구의 시간을 자정 일분 전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유사하다.

다르다면, 앨 고어는 인간이 지혜와 겸양을 모아 환경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어나가자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 정치적 해결 중 하나에 탄소세가 포함되어 있다.

누군가 환경을 더 나쁘게 만든다면, 그래서 이 지구가 숨쉬기 힘들게 만든다면 정치적으로, 인간적으로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뺏는 것이다. 바로 돈, 더 많은 세금을 거둬서, 덜 쓰게 하고, 더 보호하게 하자는 게 바로 앨 고어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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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고어가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영화 ‘불편한 진실’에서 키노트 연설을 하는 모습. 정치는 문제를 제기하고, 관심을 끌어모아, 집단 행동을 일으킨다. 이런 정치적 행위를 통해 인간은 인간의 세상을 지옥으로부터 구출한다.

사실, 정치란 바로 급진주의자와 회의주의자가 각자의 극단적 방법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로서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방식이다.

동물이 집단 내 급속한 개체 증가의 위기를 자살이나 타살로 모면하려 한다면 인류는 생각하고, 합의하고, 서로를 도울 수 있기에 정치적으로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무조건 없애고, 무조건 줄이는 식의 방법은 말하자면 인류답지 못한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대화이다. 영화 <인페르노> 속의 조브리스트나 그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이론만이 옳고 타인은 그르다고 말한다. 아니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인류의 죄를 처단하는 자로 자임함으로써 인간이 아닌 신으로 스스로 승격시키는 모양새이다.

어떤 주장이든 과격한 것에는 거짓과 모순이 있기 마련이다. 정치적 해결이란 결국 더 작은 손해를 보는 쪽으로 더 많은 혜택을 찾아가는 인간의 지혜이다. <인페르노>, 만약, 지옥이 있다면 그곳은 오히려 정치가 없는 곳일테다.

금, 2016/10/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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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나 사이>는 2015년 전미 도서상, 2015 ’올해의 책‘ 최다 수상작이다.

저자 타네하시 코츠(Ta-Nehisi Coates)가 15살 자신의 아들에게 띄우는 편지글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은, 저자 자신의 흑인 정체성을 향한 기나긴 투쟁의 기록이자 여정이기도 하다.

1흑인 게토(ghetto) 지역에서 나고 자란 코츠는 최근 수 십년 간 미국사회에서 점점 더 격화되어 가는 공권력에 의한 흑인 살해가 단순히 과거 인종주의(racism)의 부활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국가의 성립에서부터 면면히 지속되어 온 사회구조적 폭력임을 지적한다.

즉 엉클 샘(Uncle Sam)의 이면에는 언제나 흑인들의 피가 있었으며, 그 피 위에서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미국은 지금도 여전히 그 피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코츠가 질문하는 것은 인종주의라는 프레임 그 자체이다.

왜냐하면 인종주의는 결코 인종의 산물이 아니며, 거꾸로 인종이야말로 바로 인종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곧 흑인이 있어서 인종주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흑인을 인종으로 구분하는 바로 그 사고방식이 문제라는 것. 흑인은 흑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종주의에 의해서 흑인으로 만들어진다는 것.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가.

폭력으로 만들어진 나라, 미국

미국 사회에서 흑인과 백인의 분리 거주는 짐 크로(Jim Crow)법 이후에도 공공연하게 조장되어 왔거니와, 노예 해방 이후 주정부와 행정지자체의 제도적 지원와 관습적 묵인 하에 흑백의 주거 분리를 암암리에 지지해 왔다.

남부의 흑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북부의 공업화된 도시로 몰려들었으며(산업화에 그에 따른 이촌향도는 전지구적인 보편적 현상이다), 이는 곧 백인과 흑인들이 같은 공간에서 날마다 얼굴을 맞대며 살게 되었음을 말한다.

흑인들과 주거 및 일상을 같이 하게 된 백인들은 사적인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화이트 플라이트(white flight)’다. 백인 중산층은 자신들만의 게토를 위해 도심을 떠나 교외의 전원주택지구로 앞 다투어 엑소더스(exodus)했으며, 이는 자연 도심에 남은 흑인들의 주거 지역의 슬럼화로 이어졌다.

백인들의 이탈로 인한 세수 감소, 그로 인한 지자제의 도심 투자 감소, ‘빨간줄(redlining)’에 기초한 도심 재개발 억제, 흑인에 대한 주택융자와 대출 제한 등으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슬럼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코츠는 바로 이러한 슬럼에서 나고 자랐다. 슬럼의 흑인들은 티브이와 미디어를 통해서, 한 두 블록 건너에는 살해당할 위험이 전혀 없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풍문으로 전해 듣는다.

볼티모어의 어느 한 거리의 다른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코츠 또한 유년시절부터 자신의 몸이 검다는 이유로 언제건 백인 공권력의 희생양이 될 수 있음을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체화했다. 이러한 두려움과 불안은 미국에서 흑인으로 태어난 모든 이들의 숙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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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토지역의 흑인들은 일상화된 폭력과 살해 위협에서 살아남고, 멸시당하지 않기 위해 실제 이상으로 ‘센 척’하는 허세에 길들여 있으며, 더욱더 폭력과 허세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흑인의 문화가 힙합 장르에 담겨 있다. (사진 출처: http://theboombox.com/)

그들은 철이 들면서 옷차림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학력이 짧다는 이유로, 직업이 없다는 이유로 다시 말해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폭력과 살해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그러한 두려움을 버티기 위해 건들거리는 걸음걸이와 끄덕이는 고갯짓, 악수를 배운다.

랩과 힙합, 허세와 폭력은 이들이 스스로가 흑인임을 말하는 또 하나의 언어이며, 언제건 살해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감추고자 하는 안간힘이기도 하다.

‘검은 몸뚱이, 나는 누구인가’

두려움과 불안의 나날들 속에서 코츠는 대체 이러한 현실이 어디로부터 유래하는지 질문한다. 도대체 왜 흑인은 미국에서 백인 몽상가들이 꾸는 꿈을 공유할 수 없으며, 이 나라는 왜 이토록 철저하게 백인들을 위한 나라(White America)인 것이며, 흑인들은 처음부터 그 하얀 꿈에서 배제당해야 했는가?

물음의 처음에서 코츠가 만났던 이름은 말콤 엑스(Malcolm X)였다. 그렇다, 백인들이 노예들에게 준 성을 거부하고자 스스로 X라는 성을 택했던 흑인 이슬람 민족주의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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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60년대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양대 산맥이었던 마틴 루터 킹(왼쪽)과 말콤엑스. 마틴 루터 킹이 기독교를 기반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이끌었다면, 말콤 엑스는 이슬람에 영향받는 흑인 민족주의에 기반한 폭력적 저항운동을 주장했다. 그러나 말콤 엑스는 1965년 3월, 16발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 1968년에는 마틴 루터 킹마저 암살당했다. (사진 출처: http://cyberin.co.kr/bbs/board.php?bo_table=etc4&wr_id=92)

‘풀뿌리들에게 보내는 전언’, ‘투표가 아니면 총탄을’이라는 말콤 엑스의 연설들은 1990년대 초 코츠가 십대 후반을 보내던 미국 흑인들의 랩과 음악에서 되살아나고 있었고, 수 십년의 세월을 거슬러 말콤 엑스의 육성은 코츠의 영혼을 천둥처럼 번개처럼 뒤흔들었다.

삶을 포기하지 말라는 그의 메시지는 백인의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 코츠에게 강렬한 계시가 되었으니,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코츠는 그만의 황야로 떠나야 할 터였다.

‘개인적 부주의’를 빌미로 하얀 몸과 하얀 곤봉, 하얀 총알에 의해 언제라도 파괴할 수 있는 검은 몸과 검은 삶, 검은 공동체는, 결코 포기되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미국이라는 것을, 또 다른 그 미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질문하는 자에게 축복 있을지니, 코츠는 자신의 존재론적 의문을 풀기 위해 흑인 지성의 메카(meca)인 하워드 대학(Howard University)으로 간다. 그는 강의실이 제공하는 구태의연한 정답들 대신 책더미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자 하였으며, 말콤 엑스가 감옥에서 그러했듯이 책을 통해 검은 몸의 자신과 그와 같은 검은 몸을 가진 이들의 기원과 전통, 역사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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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근처에 있는 하워드대학은 원래 아프리카계 미국인 성직자를 양성하기 위한 신학교로 설립됐지만, 많은 흑인 인권운동 지도자들을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도 임기 마지막 해인 2016년 5월, 이곳에서 졸업식 연설을 했다.(사진 출처: https://1boon.kakao.com/bookclub/curation20160514)

독학자로서의 읽기 속에서 코츠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 태생에서부터 흑인에 대한 억압과 폭력에 기초하였으며, 미국의 번영은 흑인 노동력에 대한 착취 위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간파한다.

남북 전쟁 당시 흑인 노예의 노동력 가치는 40억 달러였으며, 이는 미국 전체 산업의 가치보다 더 큰 것이었다. 당시 면화는 미국의 주요 수출품이었으며, 미국 최고의 부자들은 면화 재배지인 미시시피강 유역에 살았다(p.156).

결국 미국의 부는 흑인들의 몸을 댓가로 쌓아 올린 것이었으며, 이는 곧 흑인들의 몸이 미국 자본주의의 거름이자 마중물이었다는 것을, 미국의 흑인살해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기초가 된 유구한 전통이 오늘날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말하는 증거일 뿐이라는 것을!

차별받는 이가 어떻게 억압자를 포용할 수 있을까

존 레논은 “여성은 최후의 흑인이다”라고 말했다. 인종주의가 특정한 특성을 자연화, 본질화하면서 그 대상들을 모욕하고 파괴하려는 것이라면(p.15), 섹시즘(sexism) 역시 명백히 인종주의이다.

여성이 있는 다른 어느 곳과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에서 나는 차별받는 여성이다. 다른 흑인 부모들과 달리 코츠는 자신의 아들에게 ‘두 배는 잘 하라’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절반만 받아들이라’고 결단코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딸에게 틈만 나면 ‘(남자보다) 열 배는 잘 하라’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여자에게는) 다 나쁜 것이다’라고 말해 왔다.

코츠를 보며,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혹 나는 딸에게 증오과 반목만을 설파해 온 것은 아닌지, 그것을 넘어선 자기극복과 화해, 상생의 투쟁를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코츠의 이야기는 여러 모로 페미니즘, 그리고 차별에 놓인 모든 이들의 투쟁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가 흑인만의 위대성과 전통을 확인하고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그것이 결국 백인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그 대척점에서 모방하고자 하는 것임을 자각할 때, 자신의 아픔과 고통에 사로잡힐수록 더욱 백인들의 덫으로 끌려들어가게 된다는 역설에 직면할 때, 명백하고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명예를 잃지 않고 살기 위해 투쟁해야 함을 역설할 때, 나는 그와 내가 다른 자리에 있지 않음을 깊이 그리고 아프게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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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의한 흑인 총격살해 사건이 빈번해지자 미국 도시 전역에서 ‘흑인의 삶이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가 잇따랐다. 사진은 2015년 미네아폴리스에서 벌어진 Black Lives Matter 시위 모습. (사진 출처: http://www.startribune.com/)

코츠처럼 나 또한 여성으로서 나 자신의 인간다움을 경계하고 그 분노로부터 거리두기하고자 할 때, 백인과 남성의 이항대립항으로서의 흑인과 백인이 아닌 ‘흑인으로서의 흑인’, ‘여성으로서의 여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새로운 발견 속에서, 우리는 백인이나 남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새로운 보편성, 분노를 분노로써 되돌리고 폭력을 폭력으로써 앙갚음하지 않는 새로운 상생의 투쟁을 실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해서는 투쟁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투쟁은 스스로의 두려움과 불안을 넘어 제국의 하얀 질서 바깥으로 내딛는 날마다의 떨리는 한 걸음에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코츠가 여성을 포함한 차별받는 이들 모두에게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메시지이다.

그리고 이 날마다의 투쟁 속으로 눈 감고 기꺼이 자신을 내던질 때, 그 아득한 추락 혹은 비상 속에서 ‘톨스토이(Leo Tolstoy)는 줄루(Zulu)족에게도 톨스토이일 수 있다’는 희망의 보편성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검둥이로 살아갈 아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차별받는 이들에게

일찍이 미국 흑인 문학사에서 한 봉우리를 이룬 제임스 볼드윈은 열 네 살 조카를 위해 ‘다음 번엔 불(The Fire Next Time)’을 썼거니와, 코츠는 검은 그를 모방한 글쓰기를 통해 분노와 폭력을 넘어선 생존과 연대의 투쟁을 제안한다.

아무리 두려워도 나는 나 자신이어야 하며 누구도 내가 나 자신이고자 하는 권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이 냉소적이고도 낙관적인 검은 유물론자의 전언이다.

코츠는 서간문의 형태를 빌어 이러한 투쟁의 메시지를 다름 아닌 자신과 같은 검은 몸에 갇혀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이는 곧 자신의 아들이 자신과 같은 증오와 분노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 염원, 나아가 블랙 아메리칸들이 깊은 잠 속에서 깨어나 투쟁의 전선으로 나오기를 바라는 절박한 소망, 또 그간 검지 않다고 스스로를 속여 왔던, 백인이고자 하는 이들 모두에게 촉구하는 연대의 요청일 것이다.

그의 글이 서간문의 형태를 띨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자, 이제 우리가 그에게 답할 차례이다. 인간을 구분하고 그 인간을 차별하고자 할 때 인종주의는 작동한다. 빈자에게 게으르다고, 여성에게 수동적이라고, 장애인에게 비굴하다고, 청소년에게 아무 것도 모른다고,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너희 나라에 돌아가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단언할 때, 나는 다름 아닌 인종주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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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들은 우리 안의 흑인들이다. 다르거나 약하다는 이유로 타인을 차별하는 행위는 자기 안에 식민지를 만드는 것과 같다. 자기 종족의 일부가 억압받는 상황에서는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는 자각과 성찰이 필요하다.

용기 내어 그에게 ‘내 잘못이다(My bad)’라고 답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는 아마도 기꺼이 ‘당신이 옳았어(You straight)’라고 응수해 줄 것이다.

역자 오은숙은 그 자신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한 인문학도이다. 그래서일텐데, 번역이 간결하고 유려하여, 코츠의 원문이 절로 궁금해진다.

뿐만 아니라 그가 옮긴이 후기에서 제공하는 정보들은 대단히 압축적이고 유용하다. 타네하시라는 코츠의 이름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신들의 땅이라 부르던 누비아(Nubia)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더 찾아보니 누비아라는 말은 이집트인들이 지금의 이집트 남부와 수단 북동부에 살던 흑인들을 놉(Nob:노예라는 뜻)이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화, 2016/10/25-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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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경향신문(2016. 10. 26)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을 제의하기 직전까지 이런 내용의 칼럼을 쓰고 있었다.

경제는 바닥으로 내려앉고 민생은 파탄지경이다. 안보는 불안하고 사회는 분열과 갈등으로 찢어졌다. 정부 기능은 마비되고 장관들은 무기력하고 관료들은 나서지 않는다. 나라에 온전한 곳, 정상적인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권력에 균열이 생기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의 남다른 자질, 즉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킬 줄 아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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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대한 순수한 열정, 이것이 박근혜의 본질이고, 숱한 과오에도 권력을 집중할 수 있는 이유였다. 그러나 2대에 걸쳐 박근혜의 영혼을 지배한 또 다른 악령, 최씨 집안의 악령이 박근혜를 몰락시키고 있다. 사진은 1978년 당시 박근혜와 최순실의 모습.

한 줌의 권력도 샐 틈을 허용치 않는 편집증적인 권력 집착은 정부와 집권당에 대한 완벽한 지배를 가능하게 했다. 그게 아니면, 총선에 졌는데도 당내 반대 세력이 부상하기는커녕 지리멸렬해진 채 대통령 눈치를 보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박근혜 권력이 흔들리지 않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운이다. 대통령 때문에 총선에 참패했는데도 그 비서가 여당 대표가 된 일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뿐 아니다. 친박 대선후보가 없던 차에 반기문이 대선 출마 의지를 굳히고 있다. 게다가 문재인에게 시비 걸 수 있는 송민순 회고록까지 나왔다.

그러나 집권 5년차를 앞두고 반전이 일어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 발언 시비 때 다져진 팀워크와 노하우면 문재인을 북한과 내통한 반역자로 모는 일은 식은 죽 먹기여야 하는데 먹히지 않는다.

반면 최순실 게이트는 가려지는 게 아니라 더 커지더니 대통령 목전까지 왔다.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은 바닥을 향한 경쟁을 하고, 고정 지지층도 떠나고 있다.

어제의 행운이 오늘의 불운으로, 복이 화로 변하고 있다. 친박 지도부는 당의 적응력을 마비시키고, 지리멸렬 비박은 새누리의 대안 부재를 드러내며, 최순실·우병우는 분노하는 민심에 불을 댕기고 있다.

하지만 그는 개헌, 북한, 반기문이라는 세 개의 불씨를 키워 다가오는 어둠을 환하게 밝힐 생각에 마음 설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에 북한을 동원하는 낡은 수법이 먹힐지, 역풍이 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개헌은 대선 경쟁을 유리하게 바꾸려는 자에 의해 정략적으로 동원되는 순간 추진력이 떨어진다. 반기문이 계속 상승세를 탈지, 가라앉는 친박의 어깨 위에 올라탈지도 장담할 수 없다.

이대로 박근혜·이정현이 이끄는 쌍두마차를 타고 있다가는 함께 절벽으로 떨어진다. 박근혜는 몰라도 당은 살아남아야 한다. 새누리, 플랜 B를 준비해야 한다.

이렇게 칼럼의 마침표를 찍으려는데 박근혜가 개헌을 발표, 선수를 쳤다. 조용히 물러나지 않겠다, 죽어도 고삐를 놓지 않겠다는 신호였다.

여러 얼굴을 하고 있지만, 국정 파행·난맥·추문을 불러온 단 하나의 원인은 바로 그였다. 그 얼굴의 윤곽이 드러나는 순간 그는 개헌이라는 이름의 호리병을 던졌다.

그다운 한 수. 주변은 바다로 변하고 모두가 허우적거리며 헤맸다. 성공한 것 같았다. 정치권 전체를 개헌 소용돌이에 빠뜨리면 모두 대통령만 쳐다보는 구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러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모두를 위한 개헌? 개헌은 오직 한 사람의 탈출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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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박근혜 시대를 이렇게 기억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정부, 권력 장악을 위해 개헌 카드를 던진 정부, 그리고 최순실-박근혜 정부로. 어려웠던 야인시절, 박근혜를 도와 절대적 신임을 받았다는 최순실은 결국 대통령인 박근혜를 몰락시킨 주인공이 됐다.

그에게 권력은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 반대다. 권력이 목적이고 그 외 모든 것이 수단이다. 그의 수많은 정책이 그런 것처럼 개헌 역시 권력을 위한 소도구에 불과했다.

그가 항상 최선을 다해 집중하는 것, 그가 언제나 절실히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순수한 권력, 권력 자체다.

박근혜의 개헌 장단에 잠시나마 기쁨에 겨워 춤춘 정치 지도자들이 그걸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은둔의 왕국이 열리고 박근혜 정부의 껍질이 벗겨지면서 최순실 정부가 드러나자 모두가 외면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찰해야 한다. 왜 지난 4년간 박근혜의 ‘나의 투쟁’을 지켜보기만 하고 나아가 부추기고 때로는 앞장선 것일까?

특히 박근혜 몰락에 기여한 새누리당이 자문해야 한다. 그런데 이제 와서 박근혜 탈당 운운하며 책임전가부터 하고 있다.

우리 앞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많은 의문들이 있다. 엘리트 관료, 풍부한 정책적 대안을 갖고 있는 정부 자문기구, 유능한 참모를 그는 왜 마다했을까? 멀쩡한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왜 그는 여전히 억지 변명 한마디뿐일까?

황혼이 내리면 떠날 때가 왔음을 알아야 한다. 그건 최고 권력을 가진 자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앞의 운명을 거부하다 모든 것을 잃을 처지로 몰렸다. 권력을 향한 그의 긴 여정은 이렇게 끝나고 있다.

그의 탈권력은 이제 시작이다. 권력 축적만큼이나 해체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불편하고 심란할 것이다. 그러나 권력 해체에서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 않도록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수, 2016/10/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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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에 명실 공히 ‘이재용 시대’가 열리는 것일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8)이 오늘(10월 27일) 삼성전자 임시주총에서 등기이사로 선출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74)이 2008년 삼성그룹 비자금 사태로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이후 ‘오너’로서는 8년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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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빌딩 5층 다목적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전자 등기임원 선임 안건이 임시 주주총회에서 원안대로 통과됐다(오른쪽 사진). 삼성그룹 계열사 중 이 부회장이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린 것은 삼성전자가 처음이다.

현재 삼성전자 이사회는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을 비롯한 사내이사 4명,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사외이사 5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 부회장이 선임돼도 이상훈 사장이 사임해 9인 체제는 유지된다고 한다.

황태자에서 황제로

사실 2014년 이건희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2년여 동안 삼성은 이 부회장이 이끌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사 선임은 그동안 ‘재벌 3세’ 대주주로서 경영에 참여하던 것과는 결이 다르다. 본격적으로 삼성전자 이사회에 참여해 경영상의 중요한 결정에 직접 관여한다는 뜻이다.

책임도 커졌다. 등기이사는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정관을 위반하거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으면 회사와 함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회사와 관련된 민·형사 사건이 발생하면 법적 책임도 져야 한다.

보수도 공개된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연봉 5억원 이상인 등기임원의 보수를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8년부터는 비등기이사를 포함해 회사 내 연봉 5위권 임직원의 보수를 공개하도록 돼 있어 어차피 벌어질 일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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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그룹 승계과정은 항상 사회적 논란이 됐다. 이건희 회장이 공익재단을 이용해 그룹을 물려받은 과정은 이재용 부회장에게도 그대로 재현됐다. 교묘히 법망을 피해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피했던 것이다. 법 위에 재벌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사진 출처: http://m.ilyoseoul.co.kr/)

등기이사 선임은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미 지난해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되며 승계의 첫발을 내딛었다고 평가받았다.

이건희 회장이 가지고 있던 3가지 공식 직함 중 삼성전자 회장을 제외한 두 가지 직함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시가총액 240조원의 초거대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의 운명은 본격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두 손에 놓이게 됐다.

등기이사 선임 이후 첫 시험무대는 갤럭시노트7 폭발사고로 벌어진 위기를 돌파하는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벌가’ 티 안 내는 조용한 학생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 부회장은 경기초-청운중-경복고를 나왔다. 경기초는 서울 3대 사립초로 꼽히고, 경복고는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 재벌가 자제가 많이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학창시절 자체는 평범한 모범생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같이 초중고를 다닌 이들이 삼성가 자제라는 것을 모를 정도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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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생일을 맞은 이병철 선대 회장의 무릎에 앉아 있는 당시 5세인 이재용 부회장 모습 (왼쪽 사진). 경복고 졸업앨범에 실린 이재용 부회장 모습.

경복고 동창은 이렇게 술회한다. “이 부회장이 입학한 후 오래된 학교 건물이 초현대식으로 바뀌고 새 건물도 들어섰다. 교내 방송국이 생겼는데 당시로는 최첨단 시설이었다. 학급마다 큼지막한 삼성컬러TV가 한 대씩 보급됐고 당시로는 첨단방식인 아침TV 수업을 했다.

그땐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 부회장의 입학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학창시절에도 전혀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지 모를 정도로 겸손하고 티내지 않는 공부 잘하고 얌전한 학생이었다.”

이 부회장은 학창시절 성적도 상위권이었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중·고교 동창생들과 자주 만나는 편이며 경조사도 꼭 챙긴다고 한다.

한 고교 동창생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삼성 아들’로 통했던 이 사장은 학창 시절에도 교우관계가 매우 좋았다. 가끔씩 재용이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퍼질 때 그를 아는 동창생들은 ‘그럴 친구가 아닌데’라면서 그냥 피식 웃고 넘겼다.”

이 부회장은 1987년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진학한다. 동양사학과에 진학한 데는 “경영도 중요하지만 인간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이병철 선대 회장의 뜻이 컸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한편으론 서울대를 출입하는 계열사 일간지 기자까지 동원한 치열한 눈치작전 때문이란 얘기도 있다.

어쨌건 학력고사 점수 자체는 서울대에 지원할 수 있을 정도로 높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대학시절에는 눈에 띄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민주화 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던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학부 졸업 후 그는 게이오대에서 ‘일본 제조업 산업공동화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거쳐 경영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다.

그는 종종 소탈한 모습을 격의 없이 내비치기도 한다. 이 부회장은 소문난 야구광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녀들과 함께 야구장을 찾는 모습이 종종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한때 삼성라이온즈 경기를 직접 관람하러 나오면 무조건 이긴다는 ‘재용불패’로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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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이재용 부회장이 아들ㆍ딸 그리고 여동생 이부진(오른쪽) 호텔신라 사장과 함께 목동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스포츠한국)

한 기자가 인터뷰를 청하며 LG 휴대전화의 마이크를 들이밀자 갤럭시S6엣지를 차량 트렁크에서 꺼내 줬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 부회장은 ‘귀족 스포츠’로 불리는 승마 실력이 수준급이어서 1989년 제2회 아시아승마선수권대회 장애물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따기도 했다.

이 부회장뿐만 아니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 동생들도 승마를 했다고 하는데 “귀족이 되려면 승마는 기본”이기 때문이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한 번도 성공시킨 사업 없어…경영능력 의구심

삼성전자 이사회는 지난달 이재용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COO(최고운영책임자)로서 수년간 경영 전반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쌓았으며, 이건희 회장 와병 2년 동안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실적 반등, 사업 재편 등을 원만히 이끌며 경영자로서의 역량과 자질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변화무쌍한 IT 사업 환경 아래 미래 성장을 위한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와 핵심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 재편, 기업 문화 혁신 등이 지속 추진돼야 하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이사 선임과 공식적인 경영 참여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데 이사회가 의견을 모았다.”

이사회의 후한 평가와는 별개로,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은 아직 안정적인 평가를 받지는 못하는 형편이다.

보통 그의 경영능력에 대한 평가로 많이 거론되는 것이 지난 2000년 시작한 ‘e삼성’ 사업 실패다. 1990년대 말 세계적으로 ‘정보기술(IT) 열풍’이 불어 닥칠 즈음 이 부회장이 벌인 인터넷 사업이다.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이 사업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200억 원이 넘는 적자가 났고, 그 부실을 9개 계열사들에 넘겼다는 혐의까지 받는다. 시민단체들이 고발했지만 2008년 삼성특검은 이 부분을 무혐의 처분한다.

이 부회장은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로 본격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한해 100일 이상을 해외에서 머물며 삼성의 해외법인, 각국 현지 거래선들을 모두 둘러봤다고 한다. 상무, 전무로 승진했고, 2007년에는 삼성전자의 최고고객총괄책임자(CCO)라는 직책을 맡으며 삼성그룹의 모든 거래선과 주주, 잠재적 투자자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지난 10여 년 간 그룹 회장이 되기 위해 두루 인맥과 견문을 넓히는 시간을 가진 셈이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입원한 뒤 삼성전자의 실적은 공교롭게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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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은 아직까지 한 번도 자신의 이름으로 사업을 성공시킨 적이 없다. 갤럭시S6는 판매 부진, 갤럭시노트7은 폭발사건으로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그룹 후계자로서 뚜렷한 실적이 필요했던 이재용 부회장의 조급증이 무리수를 둔 결과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진 출처: http://news.donga.com/)

또 다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해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이재용폰’이라고 불리던 갤럭시S6의 흥행부진도 한몫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실적은 1년 만에 반등한다. 올해 2분기에는 갤럭시S7 판매 호조로 이 회장 입원 전 수준인 영업이익 8조원을 다시 돌파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 체제 이후 분기 최대 영업이익이었다.

갤럭시노트7의 출시와 흥행으로 ‘이재용 리더십’은 더욱 탄력을 받는 듯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 8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선제적인 계열사 가지치기, 과감한 인수합병과 실리콘밸리식 스타트업 문화를 접목한 컬쳐혁신이 ‘뉴 삼성’의 기틀을 만들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그러나 갤럭시노트7가 폭발사고와 리콜 실패, 단종으로 이어지면서 첫 위기관리 능력을 평가받고 있는 상황이다. 조기단종이라는 결정이 이재용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탈법과 편법으로 점철된 상속 과정

이 부회장의 최대 과제는 반도체와 스마트폰에 이어 그룹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뤄내는 것과 동시에 경영권을 완전하게 승계하는 일이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시너지 효과보다는 재산 승계 목적이 강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는 법정 공방으로까지 이어졌다. 지난 5월, 법원은 합병 당시 삼성물산 주가가 지나치게 낮게 책정됐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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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삼성그룹의 순환출자구조는 종전의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전기·삼성SDI→제일모직’에서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단순화됐다. 이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의 최대주주(16.5%)가 됨으로써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0.57%에 불과하지만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주요 자산인 제일모직 지분의 가치를 높게 평가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삼성물산 주가를 낮게 책정했다는 것이다. 현재 합병 무효 소송까지 진행 중이어서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

계열사 매각 역시도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과 맞물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학 계열사 매각도 최대 주주였던 이부진 사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최근 삼성 SDS의 분할 검토 방침이 나오면서 이것 역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핵심 사업인 물류 부문 사업을 떼 네 삼성물산과 합병한다는 방침에 당장 제2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태가 아니냐며 소액주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삼성SDS 지분 9.2%를 가진 이 부회장이 사실상 그룹 지주사격인 삼성물산 지배력을 강화하려고 무리수를 둔다는 것이다.

이미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상속 과정에서도 많은 사회적 비난을 감수해야 했던 이재용 부회장이 이를 어떻게 돌파할지는 미지수다.

이 상황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해 삼성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엘리엇이 삼성전자의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전환이라는, 삼성에게는 어쩌면 반가운 제안을 들고 나온 것도 관심거리다.

만약 삼성전자가 엘리엇의 제안대로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할 경우 엘리엇은 주가 상승으로 이득을 얻게 되고, 삼성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이득을 얻게 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엘리엇이 내년 3월 정기주총에서 이 안건을 들고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 부회장이 어떤 제안으로 되받아칠(품어 안을) 것인지도 관심사다.

“기술은 최첨단, 노동조건은 중세”

그룹 상속과 더불어 삼성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반인권, 반노동적 이미지를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도 주목을 받고 있다.

국제노총은 삼성을 ‘기술은 현대적인데 노동조건은 중세적인 기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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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급수골수성백혈병’ 판정을 받고 목숨을 잃은 고 이숙영, 황민웅, 황유미씨. 유가족들이 “산업재해 인정”을 촉구하며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영정사진을 들고 서 있다. (사진=이종란 노무사)

무노조 원칙 고수,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반도체 및 LCD 노동자의 직업병 문제, 삼성전자 하청업체 공장에서 벌어진 메틸알코올 실명 사건 등은 삼성의 이미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전보다 더 투명하고 세련된 삼성을 꿈꾸는 듯하지만, 아들의 영훈 국제중 입학 비리 의혹에서 보듯 여전히 구태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도 보인다.

‘이재용의 삼성’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목, 2016/10/2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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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국가 권력을 사유화한 최악의 사건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내각, 행정부와 사법부의 엘리트 관료 집단, 재벌 등이 하나가 되어 부정의한 방법으로 국가 권력을 사유화했다.

박근혜 정권의 독선과 불통 정치는 결국 ‘국가 권력의 사유화’와 ‘1인과의 소통’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최순실 1인을 단죄하는 것은 이 게이트의 본말을 전도하는 것이다. 최순실의 전횡과 월권을 허락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고, 그는 국민이 부여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헌법을 위반했다. 대한민국 헌법을 위반한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대통령일 수 없다.

황교안 총리를 포함한 박근혜 정부의 내각, 행정부, 사법부의 엘리트 관료 집단 또한 박근혜 정권의 권력 사유화에 조직적으로 관여하고 동참하였다. 행정부와 사법부를 오가면서 부패한 권력을 향유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였다.

민의를 대표해야 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국정조사 자체를 보이콧하면서 의회민주주의를 짓밟았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하고, 민의를 저버리면서 부패한 박근혜 정권 구하기에 나섰던 그들이 이제는 거국내각을 얘기한다.

부패한 정권을 창출하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그들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은 없다. 게다가 거대 재벌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수십억 씩 자본금을 대주면서 노동자, 중소기업, 영세한 자영업자들을 약탈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최순실을 단죄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부패한 박근혜 정권을 창출하고, 유지시켰던 한국 사회의 보수 기득권 세력의 권력 카르텔을 끊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오늘과 같은 이 참담한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다.

우리의 분노는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연루된 행정부와 사법부의 엘리트 관료집단, 거기에 자금을 대준 재벌, 더 나아가 의회 민주주의를 짓밟았던 국회를 향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범인 대통령 본인이,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부패 권력에 복무한 박근혜 정부 내각, 사법 당국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거나 조사를 수행할 수 없고, 제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국회에 이 모든 것을 맡길 수 없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수치스러운 오늘의 역사를 바로 잡고, 지금의 국가 위기 사태를 수습하고, 이와 같은 참담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시민사회가 주체가 되어 한국 사회의 새로운 전환을 이끌어야 할 때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정치 제도의 개혁을 위해 각계각층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에 대통령의 독선정치와 불통정치가 가능한 것은 대통령에 권력이 집중된 한국의 정치제도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시민사회가 주축이 되어 대한민국의 정치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지혜를 모을 수 있는 공론장을 제안한다. 

 2016년 11월 1일

다른백년 젊은연구자 모임 일동
 
김종권 김종철 김지애 이권능 이기찬 이인규 이현옥
유철규 장세호 정완규 정재원 정초원 진정란 한인임
화, 2016/11/0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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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 구테헤스(Antonio Guterres) 전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가 10월 13일 차기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구테헤스 전 대표는 반기문 총장이 물러나는 내년 1월부터 5년 임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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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3일, 차기 UN사무총장으로 선출된 안토니오 구테헤스. 그는 포르투칼 총리와 UN난민기구 대표를 맡았다. 사무총장 선출이 확정된 뒤 그의 첫 일성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것이었다.

‘난민 문제’에 뛰어든 행동파

구테헤스 내정자는 직업 외교관 출신의 반 사무총장과는 결을 달리하지만, 고인이 된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전 사무총장과 여러모로 닮았다. 

‘백신의 황제’, ‘아시아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이 전 총장은 빌 게이츠 등 유력 인사를 에이즈 퇴치 운동에 동참하도록 이끌었다. ‘경제 성장’, ‘안보’에만 쏠려있던 세계의 관심을 ‘빈곤’ 등의 문제로 옮겨놓는 데 기여했다. 질병 퇴치에 쓸 WHO 예산이 늘어난 건 당연하다.

‘난민의 아버지’로 불리는 구테헤스 내정자의 경우 헐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 등 유명 인사를 난민 구호 활동에 참여시키면서, 난민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이끌어 냈다. 난민 문제를 ‘우리 문제’로 인식을 바꿔 놓는 물꼬를 열었다.

한국인 최초로 국제기구 수장 자리에 오른 이 전 총장이 당초 가나 출신의 코피 아난 7대 유엔 사무총장 후임으로 유력했다는 점도 두 사람의 공통점으로 꼽힌다.

이 전 총장은 불행히도 차기 총장 선출을 앞두고 목전에 둔 2006년 5월 집무 중 뇌출혈로 쓰러진 뒤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이후 8대 유엔 수장 자리는 반기문 총장에게 돌아간다.

반면 구테헤스 내정자는 유엔 산하 기구 수장으로서 검증된 능력을 높이 평가 받으며 ‘유엔 최초’ 타이틀을 노렸던 ‘여성’ ‘동유럽’ 출신 후보들의 거센 도전을 따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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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반기문 UN사무총장과 구테헤스의 모습. 반 총장은 구테헤스가 차기 사무총장으로 뽑힌 것에 대해 최고의 선택(superb choice)라고 말했다. (사진 출처: BBC)

구테헤스 내정자와 반 총장과의 인연도 새삼 화제다. 반 총장은 지난해 10월 구테헤스 당시 UNHCR 최고대표의 임기 연장을 거부했다. 하지만 회원국들의 광범위한 동의가 이뤄진 인사 문제를 사무총장이 거부한 전례가 없어 뒷말이 끊이지 않았었다.

물리학도에서 민주화 투신…중도 좌파 총리 지내

구테헤스 내정자는 1949년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의 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졸업 당시 포르투갈 최우수 학생상을 받았을 정도로 모범생이었다. 아버지가 국영 전기회사 직원이었던 영향이었는지는 몰라도 대학으로 진학하며 택한 전공은 이론 물리학과 존기공학이었다.

1971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학교에 남아 조교로 물리학으로 가르치는 일에 만족했다. 물리학 박사가 돼 후학을 가르치고 싶다는 고교 시절 품었던 생의 첫 목표를 이룬 것이었다. 구테헤스 내정자는 미 CBS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 인생의 가장 환상적인 지적 열정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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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4월, 좌파 청년 장교들이 주도한 무혈 쿠데타로 이스타두노부 정권이 무너졌다. 이 혁명을 통해 포르투갈 인들은 처음으로 투표권, 전 국민 건강보험, 공공 교육, 노령 연금 및 노동권을 향유하게 됐다. 카네이션 혁명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혁명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혁명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거리의 군인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군인들이 그것을 총구에 꽂은데서 유래했다(왼쪽 사진). 2014년 카네이션혁명 4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리스본의 한 시민이 카네이션을 들고 있다.

하지만 대학 시절 목격했던 격변기 포루트갈 사회의 모습은 구테헤스 내정자를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당시 포르투갈은 민주화 열기로 들끓었다.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총리가 36년간의 재임 끝에 1968년 물러났지만 권위주의 통치체제를 청산하기까지 6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살라자르 전 총리 1970년 숨을 거뒀지만, 살라자르의 유산이자 파시즘에 기댄 ‘이스타두 노부’(신국가체제)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 탓이다.

민주화 혁명의 열기가 뜨거웠고, 구테헤스 내정자의 관심도 정치 외교 문제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대학을 벗어나 리스본 빈민가에서 사회운동을 시작한 그는 혁명에 눈을 뜬다. 구테헤스 내정자는 “우리나라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일도 물리학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내가 속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얻는다는 건 엄청난 기회였다”고 말했다.

구테헤스 내정자는 1972년 당시만 해도 합법화 되지 않았던 사회민주주의 정당 사회당(Partido Socialista)에 입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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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9월 포르투갈 총선을 앞두고 사회당 지도자였던 구테헤스가 지방의 한 시장을 방문하자 지지자들이 그를 무등에 태워 환호하고 있다. (사진 출처: http://www.gettyimages.pt/)

1974년 무혈 혁명인 ‘카네이션 혁명’이 성공한 이후 1976년 실시된 첫 직선제 총선에서 구테헤스 당선자는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직업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1992년 사회당 대표가 된 그는 1995년 총선에 승리하며 총리직에 오른다. 10년간 정권을 이어간 정치인 구테헤스는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전 그리스 총리 등과 함께 사회주의인터네셔널(SI)을 이끌며 좌파 지도자로 명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는 2005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사임한 뒤 UNHCR로 자리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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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총리 시절인 1999년, 구테헤스는 전세계 130여 개 중도좌파정당 모임인 사회주의자 인터네셔날(the socialist international)의 의장으로 선출됐다. 사진은 사회주의자 인터네셔날 회의에서 당시 블레어 영국 총리와 농담을 나누는 장면 (사진: BBC)

 안젤리나 졸리와 함께 한  ‘난민의 아버지’

구테헤스 내정자는 2005년 UNHCR 최고대표가 된 후 ‘난민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 그의 주 활동 무대였다. 2003년 이라크전 발발 이후 발생한 이라크 난민은 400만명에 달한다. 1948년 이후 최대 규모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ㆍ소말리아ㆍ콩고민주공화국 등 아프리카 3국에서 발생한 난민도 600만명에 이른다. 2011년 시작된 시리아 사태로 발생한 난민의 수는 지금까지 1,000만명을 넘어섰다.

구테헤스 내정자가 재임하는 10년 동안 난민 문제는 어느 때보다 심각했지만, 역대 어느 UNHCR 수장보다도 난민 문제를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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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가 구테헤스 UNHCR대표와 아프리카 난민들이 몰려온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안젤리나 졸리는 난민들을 따뜻하게 보호해준 섬 주민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사진 출처: AFP)

최고대표 시절 UNHCR 본부 인력을 3분의 1가량 축소하고 이 인력을 긴급구호 쪽에 배치하는 내부 개혁에 성공했다. 또 부유한 선진국이 난민들에게 국경을 열고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례로 2013년 시리아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50억달러의 지원금을 국제사회로부터 끌어내기도 했다.

구테헤스 내정자는 2012년 안젤리나 졸리를 UNHCR 특별대사로 영입하기도 했다. 난민 문제의 참상을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이 아니라 UNHCR을 대표하는 외교관으로서의 임무를 부여 했다.

구테헤스 내정자와 졸리는 2012년 터키 난민 캠프 방문을 시작으로 2013년 요르단, 2015년 몰타ㆍ시리아 등지를 찾아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동참을 촉구했고, 국제사회의 폭발적 참여를 이끌어 낸다.

구테헤스 내정자는 하지만 반 총장이 지난해 임기 연장안을 거부하면서 구테헤스 당시 UNHCR 최고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는 시리아 난민 문제 등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던 때여서 반 총장의 선택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로이터통신은 “UNHCR 최고대표 자리를 노리는 일부 국가들의 로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반 총장의 권한이긴 하지만, 불행한 결과”라고 비판할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반 총장의 선택이 구테헤스 차기 유엔 사무총장의 탄생에 기여한 측면이 없지 않다.

구테헤스 내정자는 유엔 사무총장 출마 선언을 하며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는 누군가 청색깃발(유엔기)을 볼 때 그들이 ‘나는 보호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장 취약한 이들 위해 봉사할 것”

구테헤스 내정자의 현장 중심의 실무 능력과 오랜 경험은 국제무대에서 높은 평가를 이끌어 내는 데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안보리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차기 유엔 사무총장 후보 선정 사실을 발표할 때는 비탈리 추르킨 러시아 유엔대사와 서맨사 파워 미국 유엔대사 등 15개 이사국 대사가 모두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단합된 모습은 이사국 스스로도 놀랄 만한 장면”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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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테헤스는 UNHCR 대표 시절, 선진국들이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BBC)

그테헤스 내정자는 지난 10월 6일 포르투갈 리스본 외교부에서 열린 후보 지명 후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을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소감을 대신했다.

그는 “분쟁ㆍ테러리즘의 피해자, 인권 침해의 피해자, 가난과 부정의의 피해자”들을 거명하며 이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세계가 직면한 중대한 도전에 맞서서 일하게 된 데 겸허한 자세를 취하고 싶다”고 소감으로 밝히기도 했다.

목, 2016/11/0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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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한겨레신문(2016. 11. 2)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더 이상의 새로운 폭로나 증거가 필요할까?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알았다. 

지난 4년 동안 일어난 일은 강남의 무속여인에게 대통령이 권한을 넘긴 결과라는 것을.

인사, 정책, 국정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 국민의 운명은 우리가 선출하지 않은 어떤 좀비 집단에 좌우되어 왔다는 것을.

비선의 추천으로 만들어진 현 내각은 ‘순실 내각’이며, 창조경제,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국정 교과서 등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입안, 선포, 추진된 정책이 ‘순실 정책’일 가능성이 크고, 국회에서의 논란에서도 오직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을 해온 새누리당은 실제로는 ‘순실당’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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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nocutnews.co.kr/)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은 법적, 도덕적, 정치적 정당성을 완전 상실했고, 그 어떤 인사권도 정책결정권도 행사할 자격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장 직무를 정지해야 하고, ‘순실 내각’이 해산되어야 하는 이유다.

지난 4년 동안 오직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극히 편의적으로 수사권을 발동한 현 검찰은 어떤 검찰권도 행사할 명분이 없다.

업무를 중단해야 할 대통령이 여전히 결정권을 갖고 있으니 ‘이명박의 우병우’로 불리는 최재경 검사가 민정수석으로 임명되고, 공항에서 즉각 구속해야 할 최대 피의자 최순실을 풀어주고, 모든 의혹 인물이 동시에 귀국하는 ‘공모 의혹’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이 계속 국가 대사를 결정하는 것을 지켜봐야 할까? 우리의 생명과 안전이 위태롭다.

정부수립 이후, 아니 고려, 조선 왕조시대를 돌아봐도 이번처럼 무자격 비선실세가 국정을 농단한 예는 없었다. 그래서 이것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고만 볼 수는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사력을 다하고 지난 4년 동안 박근혜 정권의 모든 실정을 철저하게 감췄던 새누리당-검찰-보수언론-재벌의 작품이었다.

구체적으로는 그가 공인으로서 판단력, 지적 능력, 의사결정력에 심각한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권력을 잡기 위해 박정희 향수를 활용하여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배후는 이명박의 새누리당과 핵심 기득권 세력이었다.

정윤회 문건 파동을 비롯해 그의 실정이 교정될 수 있는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것을 덮어 버리고 반대파를 종북으로 몰면서 외교, 안보, 경제 모든 점에서 한국을 벼랑으로 몰아가게 만든 주역은 새누리당이다.

최순실과 청와대 문고리 권력의 권력 농단은 검찰과 보수언론이 든든하게 뒤를 봐준다는 자신감 없이는 불가능했다.

과거 이승만 정권은 무너져도 그 기둥인 자유당은 다시 공화당으로 변신했고, 박정희가 사망하자 그에게 충성을 바치던 인물들은 민정당으로 재기했고, 전두환은 물러나도 그들은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변신해서 지금까지 권력을 누리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실질 권력세력이 대통령이나 몇 사람의 정치가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고, 새로운 프레임을 짜서 여론을 호도했기 때문이다. 지금 박근혜 동정론, 개헌론, 거국내각론이 그것이다. 특히 보수 언론은 지난 4년의 사실상의 국정 공백을 없었던 일처럼 만들거나 그동안 새누리당과 검찰이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고, 최순실 등의 권력 농단으로 이 사태를 몰아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새누리당은 당명을 바꾸어 재집권을 노릴 것이다. 침몰하는 배의 쥐 떼처럼 그들은 탈출 채비를 하고 있으며, 곧 박근혜 대통령도 버릴 것이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내년 대선을 인물 경쟁 구도로 몰아가거나 내각제 개헌을 추진할 것이다.

오늘 이 국가 대혼란의 책임자들이 이제 바지사장을 용도폐기하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나라에서 경제도 안보도 국가의 대내외적 품격도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국가의 모든 시스템을 완전히 무너뜨린 이 사태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우선이라고 본다. 그러자면 박근혜 대통령은 당장 직무를 중단해야 하고, 새누리당은 사과하고 친박계는 정계 은퇴해야 한다.

거국중립내각 검토해 볼 일이나, 독립된 검찰권이 보장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헌정질서 혼란 두려워할 것 없다. 지금은 정권교체를 훨씬 넘어서는, 국가 재구조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야당도 이 시대적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국민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목, 2016/11/0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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