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시평 432] 공수처 설치가 시급한 세가지 이유

지역

[시평 432] 공수처 설치가 시급한 세가지 이유

익명 (미확인) | 월, 2017/12/04- 17:41

공수처 설치가 시급한 세가지 이유

공수처, 제대로 만들자

 

최영승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지난해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국가적 대혼란 속에서 주권자 국민이 밝힌 촛불의 빛은 국가의 비전을 밝혀주었다. 이 사태를 둘러싼 흑막이 양파껍질과도 같이 하나둘 벗겨지자 거대한 비리의 먹이사슬이 얽혀 있음이 밝혀졌다. 이러한 총체적 부패 상황은 기존의 검찰, 특별검사나 특별감찰관제도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로써 오랜 동안 논의만 무성하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가 다시금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공수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가지는 기관이다. 쉽게 말하면 지금까지 보아 온 특검이 상설화되는 것과 같다. 이는 2006년 참여연대가 그 도입을 주장한 이래 그 동안 17차례나 국회에 입법발의 되어 온 이력이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정치권의 무관심과 법무부와 검찰의 반대로 번번이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하고 폐기되는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표면적으로는 총량만 늘이는 옥상옥(屋上屋)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으나 이면에는 그에 대한 두려움 또한 있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공수처는 검사는 물론 검찰이 손대지 못한 대통령 측근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 척결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공수처가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대략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다. 첫째, 권력형 비리로 오염된 나라를 정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공수처는 무엇보다도 정권실세나 권력자들의 비리를 척결하는 데 목적이 있다. 대체로 대통령 및 그 비서실 등의 고위직 공무원, 차관급 이상 공무원, 국회의원, 검사, 법관 등과 같은 성역(聖域)으로 여겨진 이들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존재를 이유로 효율성 문제를 들지만 이는 반대를 위한 반대에 불과하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하여 제대로 칼을 들이댄 적이 있었던가. 오히려 집권세력에 장악당하여 정권지킴이 역할에 충실한 감이 없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주변 권력자들의 부패는 끝간 데를 모르고 독버섯처럼 자라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 진작 공수처가 있었더라면 이런 국가적 불행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둘째, 무소불위 검찰을 제 자리에 돌려놓기 위하여도 필요하다. 알다시피 우리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장악하여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이런 검찰권에 구애를 펼치며 집권세력이 내미는 손을 맞잡고 검찰은 그에 의지하여 끝없이 권한확대를 추구해 왔다. 그 결과 검찰은 통제 불능의 권력기관으로 자가발전해 왔으며 내부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부패가 싹터왔다.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성추문 검사, 벤츠 검사, 오피스텔 123채 변호사 전관예우, 120억원 주식대박 현직 검사장 사건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정작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검찰은 늑장수사 및 제 식구 비리 감싸기에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검찰이 바로서면 나라가 바로 서는 것이 아니라 검찰만 바로 서면 나라가 바로 서는 처지에 놓였다. 한편 공수처는 권력형 비리를 척결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검찰권의 분산 및 견제기능을 수행하고 이것이 공정한 검찰권 행사를 가능케 한다는 순기능도 있다. 공수처가 비록 검찰수사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다지만 검찰 제자리 찾기의 일환이기도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의 유명무실이다. 한국사회에서 특검제는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의 산물이다. 하지만 상설특검법이라고 알려진 특검법은 실상을 알고 보면 '상설’이 아닌 특검 '임명절차법’에 불과하다. 따라서 특검 수사를 하려면 여전히 국회의결을 거쳐야 한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친인척 등 대통령과 특수관계에 있는 사람의 비위 행위에 대한 감찰을 위한 특별감찰관제도 또한 식물감찰관으로 불린다. 청와대가 감찰 내용 유출 의혹을 제기하면서 반강제적으로 쫓아낸 이석수 초대 특별감찰관의 예에서 보듯이 실효성이 전혀 없다. 오히려 예산 낭비 요인을 이유로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오는 데서 결국 공수처만이 유일한 대안임을 말해준다.

 

중요한 것은 공수처의 방향이다. 아무리 공수처가 필요하다지만 그 단추를 잘못 꿰면 누더기 법률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특검법이나 특별감찰관법에 다름없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공수처는 정치적 중립성이 그 핵심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선 독립기구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권의 입맛에 따라 조직의 향방이 좌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수처 스스로의 규칙제정권과 독자적 예산편성권이 주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다음으로 공수처장의 자격요건을 법조인만으로 한정할 이유가 없다. 처장에게는 실무보다는 조직을 독립적․중립적으로 이끌 수 있는 자질이 중요하다. 이러한 자질이 반드시 법조경력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처장 임명은 국회소속의 국회추천위원들로 구성된 추천위원회에서 후보를 추천하여 대통령이 형식적으로 임명하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처장 후보자의 다양화나 국회에 의한 후보 추천을 통하여 법조인만의 것이 아닌 국민의 공수처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검찰청 검사의 공수처 검사로의 진입을 최대한 억제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현직 검사 퇴직 후 곧바로 공수처 검사로 나아갈 수 있게 하면 검찰에 의하여 장악되어 기구의 효율성 문제에 시달릴 수 있다.

 

새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이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검찰이 선봉에 서서 그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 잘나가던 박근혜 정권 권력의 상징처럼 보이던 '문고리 3인방’도 하나같이 구치소로 향했다. 그런데 이 엄동설한에 적폐청산을 향한 검찰의 칼날이 매섭게 몰아칠수록 더 강해지는 의구심이 있다. 혹 검찰이 자신에 대한 개혁요구를 물 타기 하려는 것은 아닐까라는 노파심이다. 검찰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시절을 경험한 국민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이래서 평소 본분에 충실할 수 있는 공수처가 필요한 것이다. 공수처가 설치되면 최근 자유한국당에서 주장하는 국가정보원과 검찰의 특수활동비 관련 특검 요구도 필요 없게 된다. 고위공직자의 직무관련 범죄로서 당연히 공수처에서 수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공정거래위 개혁, 생색내기에 그쳐선 안 된다”

전속고발제 전면 폐지하고, 피해자 권리보호⋅구제 기능 강화해야
참여연대, 「공정위 법집행체계 개선 TF」 활동평가 보고서 발표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본부장 : 조형수 변호사)는 오늘(5/1) 공정거래위원회 개혁 점검보고서 시리즈 첫번째로, 공정거래위원회 법집행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 최종결과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보고서는 공정위가 공정거래 법 집행 시스템의 혁신 방안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8월 구성한 법집행체계 개선 태스크포스(이하 법집행체계TF)에서 지난 2월 11개 과제를 담은 최종보고서를 발간한 데 따른 것입니다. 참여연대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공정위가 사인의 금지청구제 도입, 징벌배상제 확대, 대체적 분쟁해결 제도(ADR)활성화, 집단소송제 도입 등에 대해 합의한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공정위 조직개편, 공정위에 대한 국민의 감시∙감독 강화와 같은 핵심 사안이 논의되지 않았고, 조사권 분담 및 전속고발제 폐지 등 권한 분산에 있어서 생색내기에 그쳤다며 비판했습니다. 참여연대는 공정위의 향후과제로 피해자 권리보호와 구제를 강화를 위한 조직 체계 개편, 국민의 통제와 감독을 받는 시스템 마련,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 등을 제시했고, 개선 과제 중 입법사항에 대해서는 책임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법집행체계 TF는 지난 2월 ▲사인의 금지청구제 도입 ▲가맹법, 유통업법, 대리점법상 전속고발제 폐지 ▲가맹분야에서 지자체와 조사권 · 분담 협업 체계 구축 ▲과징금 부과 수준 2배 상향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집단소송⋅부권소송 도입 ▲ 대체적 분쟁해결 제도 활성화  ▲ 피해자의 증거확보 능력 강화 ▲ 조사·사건 처리 절차 개선 ▲ 시장구조개선명령제 도입 ▲ 검찰과의 협업 강화 등 11개 과제를 선정해 최종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공정위는 TF 논의결과에 대해 향후 공정위 입장을 마련할 계획이며, 필요한 경우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 방안에 포함시킬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참여연대는 보고서를 통해, 먼저 법집행체계 개선TF의 구성부터 논의과제까지 공정위가 정해놓은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공정거래위 행정에 대한 국민의 감시·감독 강화와 같은 핵심적인 사안은 논의 자체가 이루지지 못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또 서울시 등이 신속한 피해 구제를 위해 가맹분야에 한해서는 불공정행위 전반에 대한 조사권을 요청했음에도 제한적인 권한만 지자체에 부여하기로 한 데에 그쳤고,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전속고발제 전면 폐지’도 일부 법률에 한해서만 폐지하기로 한 데 그쳤다며 비판했습니다.  다만 사인의 금지청구제 도입, 징벌배상제 확대, ADR활성화, 집단소송제 도입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 범위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있지만 진전된 결과라고 평가했습니다.

참여연대는 향후과제로 무엇보다 피해자 권리보호와 구제를 위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공정위의 이질적인 기능을 분리해 공정한 시장 내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는 기능과, 불공정한 행위로 피해를 입은 기업과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기능을 별도의 기관이 담당하도록 할 필요가 있으며, 조사와 심판 기능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공정위가 담함 의혹 사건에 대해 공소시효가 임박하거나 아예 공소시효를 넘겨 검찰에 고발하는 등 감시당국으로서 책임을 다 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전속고발제는 전면 폐지해야 하며, 불투명하고 불합리한 행정을 개선하기 위해 국민의 통제와 감시를 받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덧붙여 공정위가 발표한 과제 대부분이 입법 사항인 만큼 별도의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지속적인 관리와 점검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공정위 법집행체계 개선TF」 활동 평가 보고서

▣ 보도자료 [원문보기/다운로드]

 

 

화, 2018/05/01- 12:08
165
0

20180502_문재인정부민생정책1년평가 (2)

성과만큼 아쉬움도 많은 문재인 정부 1년 경제민주화 민생 정책 

국회 법안 처리, 적극적인 정부 역할 등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참여연대, ‘문재인 정부 1년 경제민주화 민생 정책 평가와 과제’ 좌담회 진행

주거부동산, 중소상인, 공정경제, 대학교육, 통신분야 정책 평가 결과 B학점 공공임대주택 및 주거복지 확대, 가맹법·대리점법 통과, 입학금 졸업유예제 폐지, 선택약정 할인 및 취약계층 통신요금 감면 확대 등 긍정적이지만 

주택임대차 안정화,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등 지지부진, 일부 공약 후퇴 아쉬워, 정부 뿐 아니라 국회의 초당적 협력 한 목소리로 촉구

일시 장소 : 2018. 5. 2. (수) 10시-12시, 참여연대 지하 느티나무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본부장 : 조형수 변호사)는 오늘(5/2) 국민들의 삶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거부동산, 중소상인, 공정경제, 대학교육, 통신분야 등에서 문재인 정부의 공약사항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평가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하는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경제민주화 민생 정책 평가와 과제’ 좌담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좌담회 발표 직후 각 분야의 평가를 맡은 전문가들이 해당 분야의 점수를 평점(4.5점 만점, 박근혜 정부를 만점 중 중간인 C+기준으로 상대평가)으로 평가한 결과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경제민주화 민생 정책 점수는 B학점으로 나타났습니다. 각 분야의 정책 평가를 맡은 전문가들은 ‘경제민주화와 민생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개혁정책과 방향에 대해 기대가 많았기에 성과만큼이나 아쉬움도 크다’며 실질적인 개혁을 위해 국회 법안 처리 등 후속과제가 많은 만큼 정부가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주거부동산 정책 평가를 맡은 이강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주거분과장과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장은 문재인 정부가 투기과열 지구 지정 및 투기지역 지정 확대, 해당 지역에서의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강화, 재개발 등 조합원 분양권 전매 제한 등의 정책을 시행하며 투기 억제를 위한 정부의 의지는 보여주었지만 기대에 비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 결과 서울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의 가격 안정세가 유지되고 있으나 강남권을 중심으로 가격 상승폭이 컸고 여전히 가격상승세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미 서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집값이 유지되고 있는만큼 정부가 주거안정을 위한 더욱 적극적인 정책 노력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위해 전세임대, 신혼부부용 분양전환 주택보다는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공공임대정책 방향을 획기적으로 전환하고 후분양제 도입을 통해 집값 거품을 제거해야 하며 주택임대차 안정화를 위해 민간의 임대사업자 등록 의무화, 계약갱신제도 등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김성달 팀장은 “남북정상회담을 보고 울컥했지만 현실로 돌아와 보면 크게 개선되지 않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다.”며 부동산 조세정의를 위한 세제 개편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기업 및 본사의 갑질 근절을 통한 공정경제, 중소상인 살리기 정책 분야의 평가를 맡은 양창영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중소상인공정분과장과 김동규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사무처장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취임 이후 공정거래위원회가 가맹·대리·대규모유통·하도급 등 분야의 갑질·불공정 대책을 잇따라 발표하고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이를 제도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국회에서도 가맹사업법, 대리점법 등의 일부 개정이 있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또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공정위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 받아온 박근혜 정부 당시 사건들의 재조사 방침을 밝히고, 갑질·불공정 신고에 대해 비교적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부분은 바람직하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여전히 심의절차종료제도 개선, 전속고발권 폐지, 공정위 자체에 대한 감시기능을 강화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한계가 있었고 지자체와의 조사권 분담, 가맹사업자나 대리점 단체 구성을 통한 협상력 강화에 필요한 제도 개선에도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정부의 중소상인 보호 대책이 경제민주화라는 큰 틀에서의 방향 제시 없이 정책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대통령 공약사항이었던 정부 산하 을지로위원회를 설치해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및 세밀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김동규 사무처장은 “카드수수료 일부 인하 등 개선이 없진 않으나, 중소상인이 체감할만 한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며 “현장과 당사자 목소리를 더 귀담아 듣기 위해서라도 범정부 차원의 을지로위원회 설치가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대학교육 분야 평가를 맡은 이명헌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교육분과장은 즉시 폐지가 아닌 점은 아쉽지만 임기 내에 단계적으로 대학입학금을 폐지하고 정부의 재정지원을 확대하기로 한 점, 학자금 대출금리를 2.25%에서 2.20로 인하한 점, 졸업유예 대학생에 대한 등록금 강제 징수를 금지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점 등은 적지 않은 성과이지만 여전히 대학등록금과 학자금 대출 부담이 큰 만큼 표준등록금제나 학자금 대출 무이자 정책, 등록금심의위원회 실질화를 위한 제도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통신 분야 평가를 맡은 한범석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통신분과장은 선택약정할인율이 25%로 인상되고 사회적 취약계층 요금이 감면되는 등 일부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공약사항이었던 기본료 폐지 정책을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후퇴시키면서 보였던 정책적 혼란을 지적하며, 여전히 기본료 폐지에 대한 국민 여론이 높은 만큼 공약이행 및 보편요금제 도입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전파법 시행령 및 고시 개정을 통해 주파수 할당 신청 시 통신비 인하 성과와 계획을 반영하도록 한 부분이 구체적으로 요금인하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에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하며, 알뜰폰에 대한 전파사용료 감면 적용, 도매요금 조정 등 지원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좌담회 발표 직후 각 분야의 평가를 맡은 전문가들이 해당 분야의 점수를 평점(4.5점 만점, 박근혜 정부를 만점 중 중간인 C+기준으로 상대평가)으로 평가한 결과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경제민주화 민생 정책 점수는 B(3.0)로 나타났으며, 분야별로 주거-부동산 분야는 B, 공정경제-중소상인 분야는 B, 대학교육 분야는 B+, 통신분야는 B-로 평가했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분명 지난 정부보다는 나아졌으나 국민들의 높은 기대에 불구하면 아직 체감이나 성과 면에서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이번 평가는 문재인 정부 5년의 과정에서 보면 아직 중간고사도 치르지 않은 쪽지시험 정도의 단계이기 때문에 다음 번 평가에서는 A학점을 맞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정부의 개혁과제를 입법으로 제도화시키기 위해 정부도 다시 한번 개혁과제를 정리하고 점검할 필요가 있으며, 국회 또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좌담회 사회를 맡은 조형수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은 총평을 통해 “그동안 정책의 핵심 가치로 ‘경제민주화와 민생’을 가장 전면에 내세웠던 정부는 바로 최악의 정경유착으로 막을 내린 박근혜 정부였다.”며, “문재인 정부가 촛불혁명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적폐청산과 갑을개혁,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는만큼 그동안의 성과보다 앞으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앞에서는 경제민주화와 민생을 외치면서도 정작 재벌대기업과 일부 기득권층의 이해를 대변했던 과거의 적폐를 각 정부부처가 철저히 반성해야 하며, 국회는 지방선거나 개헌과는 별개로 경제민주화와 민생 개혁을 위한 법안 처리를 위해 초당적인 협력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끝.

 

▣ 보도자료 [원문보기/다운로드]

▣ 좌담회 자료집 [원문보기/다운로드]

 

▣ 좌담회 개요

제목 :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경제민주화-민생 정책 평가와 과제’ 좌담회

일시 장소 : 2018. 5. 2.(수) 오전 10시 - 12시, 참여연대 지하 느티나무홀(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9길 16) 

주최 :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사회 : 조형수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본부장 

발표1. [주거] 이강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주거분과장

발표2. [부동산]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국책감시팀 팀장

발표3. [공정경제] 양창영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중소상인분과장

발표4. [중소상인] 김동규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사무처장

발표5. [고등교육] 이명헌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교육분과장

발표6. [통신] 한범석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통신분과장

 
수, 2018/05/02- 14:06
162
0

 

참여사회

2018.05

 

“언제 결혼할 거니?”

결혼할 사람도, 생각도 없는데

‘언제’냐고 물을 땐 늘 곤혹스럽습니다.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묻는다면 

얼마든지 대답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  atopy

 

 

여는글 꽃길 속 친이·친박과 감옥 속 두 전직 대통령 하태훈

아참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드는 참여사회 편집팀

 

특집. 결혼하지 않을 자유, 비혼

왜 결혼 안 하냐고 물어보시는 분들께 드리는 비혼 보고서 이유나

혼자여도 괜찮아 이진송

혼자 살아도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위하여 장민선

‘낭만적 사랑’ 이후의 사랑과 결혼 홍찬숙

 

사람

통인 죽음 같은 노동으로 빚어내는, 드라마  -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박유안 

만남 노인이 꽃을 꺾어드니 온 세계가 봄이로다 - 박진수 회원 주은경

 

칼럼

역사 살아남은 광주 시민군, 홍기일 권경원

여성 박근혜 씨와 김지영 씨들 류진희

 

만화

만화 이럴 줄 몰랐지 <어린이집에 다닌다> 소복이

 

살맛

읽자 땀 흘리지 않고 달리기를 즐기는 방법들 박태근

듣자 서승 선생과 베토벤의 아다지오 이채훈

떠나자 [일본 삿포로] 살아보는 여행의 매력 김은덕, 백종민

 

뉴스

현장 천 개의 바람이 되어 편집팀

공유 이달의 참여연대 박정은

심층 참여연대에 대한 거짓과 왜곡 보도에 단호하게 맞설 것 최재혁

심층 내 삶을 바꾸는 지방선거 오유진

심층 지방선거, 아동인권을 이야기하자 조준희

참여 아름다운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시민참여팀

 

알림

투명회계 질문과 답변 김현정

튼튼날개 참여연대에 날개를 달아주세요 김민정

 

 

수, 2018/05/02- 13:54
16
0

꽃길 속 친이·친박과
감옥 속 두 전직 대통령

 

글. 하태훈 참여연대 공동대표

참여연대 공동대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강의하고 연구하는 형법학자다. 참여연대 초창기부터 사법을 감시하고 개혁하는 일에 참여했다. ‘성실함이 만드는 신뢰감’이라는 이미지가 한결같도록 애써야겠다.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서초구에 살고 있다.

 

 

“박근혜 피고인을 징역 24년 및 벌금 180억 원에 처한다.” 제1심판결 주문(主文)이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헌재 탄핵 결정만큼이나 역사적인 판결이다. 주권자로부터 받은 권한을 남용하고 헌법수호 의무를 저버려 국가기강을 문란케 한 대통령에게 내린 준엄한 법의 심판이다. 한국의 법치와 민주주의의 승리다.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도 십 수 가지의 범죄혐의로 구속수감 중이다. 한국헌정사에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잃어버린 10년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퇴행시킨 무능하고도 정직하지 못한 국가지도자들이다. 입으로는 늘 국가와 국민을 말하면서 뇌물과 횡령 등 사익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닮은꼴 지도자다. 

 

책임정치는 실종되고 염치없는 정치인만 가득  

그러나 민주주의가 저토록 침식되는 데 일조했던 당시 집권여당의 정치인들은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군은 영어(囹圄)의 몸이지만 신하들은 여전히 꽃가마다. 모시던 임금이 몽매한 혼군(昏君)이 되어 화난 민심이 뒤집어질 때까지 방치한 부역자들 아니었던가. ‘친이’와 ‘친박’도 모자라 진박감별사까지 등장해 당을 좌지우지하며 호가호위했던 계파 가신들은 변함이 없다. 역사와 국민 앞에 죄인이라는 말뿐이었지 그에 걸맞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권좌에 오른 주군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칠 듯하더니 탄핵당하고, 구속되고, 유죄판결을 받아도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다. 국회의원직을 내던져서라도 충성심을 보일 법한데 아직 의원직을 건 이도 없다. 야 3당이 탄핵을 추진하면 손에 장을 지진다던 당시 집권여당의 대표는 찍소리도 없다. 집권여당의 책임이 적어도 반절 이상이건만 책임지는 자는 한 명도 없다. 처절한 반성을 입밖에 내뱉는 이도 없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는 자도 없다. 자기 당이 배출한 대통령이 저 지경인데 당내 인적 청산을 거론하는 이는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환골탈태와 보수의 재구성을 기대했건만 적당히 당을 쪼개고 갈라서는 선에서 면피하려는 양 간판만 바꿔 달았다. 염치없는 정치인들이다. 책임정치의 실종이다. 

 

적폐청산,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덜 성숙했다는 방증이다. 삼권분립이 작동하지 못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때로는 대통령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여당 국회의원 아니던가. 부역자들은 그대로 남아 적반하장만 일삼는다. 자신들이 모시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자 역사는 반복된다며 다음은 너희 차례라고 협박이나 날린다. 23년 만에 동시 수감이라는 초유의 사태에도 수적으로 거대한 제1야당으로 건재하면서 여전히 시대착오적 색깔론과 종북 프레임으로 무장한 채 사회주의 좌파개헌이라며 개헌도 저지하고 남북대화에도 딴죽을 건다.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으로 치부하며 정치개혁에도 미적거리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이야말로 대의민주주의의 선결과제인데 민의가 그대로 반영되는 선거제도로 바꾸려 해도 그들의 거부로 난망이다. 대한민국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 촛불정부의 훼방꾼이 그들의 민낯이다.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후보에 친박과 올드보이, 반탄핵파들로 채우는 뻔뻔함이 그대로다. 모두 반개혁적 인사들이다. 색깔론과 지역주의에 의존하는 구태 정치를 고수하는가 하면 사사건건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으며 반대를 일삼고 있다. 그들의 안중에 대한민국 바로세우기는 없다. 나라가 어디로 가든 내 안위에 문제가 없다면 상관없다는 태도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다음 총선에서 자리보전하기 계산만 있을 뿐이다. 그런 무책임한 정치인들 때문에 과거와의 단절은 답보 상태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이 그냥 흘러가고 있다. 

 

새누리당

수, 2018/05/02- 13:53
36
0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지방선거 4개 정책 및 공약 제안 발표

 

지방행정과 의회 개혁을 위한 방안 제안

전국공동 제안 외에도 각 지역단체별 지역공약도 추가 발표예정 

 

참여∙자치∙분권∙연대의 정신에 기반하여 활동하는 전국 20개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기구인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6.13 지방선거 D-40에 즈음하여 <2018 지방선거 후보자에게 제안하는 지방행정과 의회개혁 4가지 정책>을 오늘(5/2) 발표하였습니다.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이를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5개 정당 대표와 정책위원회 등에 보냈으며, 이들 정책을 각 정당들과 지방선거 출마 후보자들이 공약에 반영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정당이나 후보자들이 제안 정책들을 공약에 반영하는 경우 이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릴 예정입니다.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가 오늘 공동 제안하는 것은 투명하고 책임있는 지방자치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장 후보자와 지방의원 후보자들이 꼭 수용해야 할 지방행정 및 의회 개혁 정책 4가지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지방자치단체 합의제 감사위원회 도입 및 독립성 강화 △지방공공기관장 인사청문회 도입⋅강화와 임원추천위원회 구성 개선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정보공표 확대 및 정보공개심의회 구성 개선 △지방의회 예산안⋅조례안⋅결의(동의)안 100% ‘기명 투표’ 실시입니다. 

 

지방자치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부패를 방지할 수 있는 감사기능도 발전해야 하며, 지방자치단체장의 인사권에 대한 지방의회의 견제 기능도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주민들에게 더 많은 행정 정보를 공개해 지방자치단체의 투명성을 높여야 합니다. 나아가 지방의회 역시 국회처럼 예산, 조례 등의 안건은 반드시 기명투표를 하도록 해 지역 유권자들이 의원별 찬반표결 여부를 알 수 있고 지방의원들의 책임있는 의정활동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회원단체들은 각 시⋅도 지역에서 오랫동안 지방정부의 정책을 감시하고 대안을 제안하는 활동을 해 왔습니다. 이에 각 지역 회원단체들은 공동 정책제안만이 아니라 각 지역 현안에 대한 대안을 포함해 지역별 선거 정책제안을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 <2018 지방선거 후보자에게 제안하는 지방행정⋅의회 개혁 4가지 정책>

 

2018 지방선거 후보자에게 제안하는

지방행정⋅의회 개혁 4가지 정책

 

차 례

 

I. 지방자치단체 합의제 감사위원회 도입 및 독립성 강화

  • 합의제 감사위원회 설치 및 이를 위한 조례개정
  • 합의제 감사위원회의 독립성 강화를 위한 방법으로 위원장 및 위원 선임. 그 방법으로, ①지방의회가 선출하고 단체장이 임명하는 방식, ②단체장이 임명하고 지방의회가 동의하는 방식, ③주민선거에 의한 선출 등 선택 가능. 
  • 감사위원회의 전문성, 공정성 강화를 위해 감사부서의 예산편성, 인사권을 단체장으로부터 독립
  • 감사부서 공무원의 전문화를 위한 감사직렬제 시행

 

II. 지방공공기관장 인사청문회 도입⋅강화와 임원추천위원회 구성 개선

  • 지방공공기관장 후보의 자질 확인을 위한 지방의회 인사청문(간담)회 도입및 내실있는 실시
  • 지자체장의 영향력에서 독립적인 인사의 임원추천위원 다수 참여보장
  • 임원추천위원을 추천할 때, 해당 공공기관 소속 노동조합의 의견을 반영하거나 또는 노동자 대표 등 단체장의 영향력과 무관한 외부 인사를 추천할 것

 

III.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정보공표 확대 및 정보공개심의회 구성 개선

  • 행정정보공표제도 확대를 위해 공표 항목을 구체적으로 규정토록 조례를 개정하고 항목별 공표 주기·시기·방법·담당부서 등의 세부사항을 규정한 자치법규를 개정
  • 행정정보공표 내용의 충실성 및 적시성을 점검할 수 있는 시민모니터단 구성을 위한 조례개정 및 충실한 운영
  • 정보공개심의회 외부위원 구성 개선을 위한 외부위원의 공개모집 방식 위촉
  • 심의회 중 외부위원을 위원장으로 구성하여 심의회의 객관성과 공정성 제고
  • 퇴직 공무원 및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지원 법인 등에 소속된 자를 외부위원 위촉에서 배제하여 심의회의 객관성과 공정성 제고

 

IV. 지방의회 예산안⋅조례안⋅결의(동의)안 100% ‘기명 투표’ 실시

  • 최소한 예산안, 조례안, 각종 결의안과 동의안에 대해서는 반드시 기명 투표를 실시함.
  • 거수 또는 기립 투표를 할 경우에도, 반드시 거수 또는 기립한 의원들의 명단을 작성하여 회의록에 남기도록 함.

 

>>> 4가지 정책 제안서 전체 보러가기 [원문보기/다운로드] 

>>> 보도자료 [원문보기/다운로드]

 

 

2018. 5. 2.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경기북부참여연대 / 대구참여연대 /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 / 부산참여연대 /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 세종참여자치시민연대 / 여수시민협/울산시민연대 / 익산참여자치연대 / 인천평화복지연대 / 제주참여환경연대 / 참여연대 / 참여와자치를위한춘천시민연대 / 참여자치21(광주) /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 충남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 (전국20개단체)

 

수, 2018/05/02- 13:37
49
0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드는
참여사회

 

가정의 달, 5월입니다. 이런저런 기념일을 핑계 삼아 다만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소중한 가족들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어버이날, 어린이날도 모두 ‘정상가족’ 범주에서 생겨난 말이 아닌가 합니다. 한부모 가정도, 자녀가 없는 가정도, 1인가구도,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이들도 모두 ‘가족’으로서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생각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여사회』 5월호 <특집> 주제는 ‘비혼’에 대해 다뤄봅니다. 다양해진 가족형태, 1인가구의 증가 속에서 ‘비혼’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부장중심의 가족제도와, 결혼비용의 부담, 육아의 어려움 등 ‘비혼’이 등장하게 된 사회문화적 배경을 살펴보고 비혼을 선택한 이의 자기고백적 이야기, 그리고 비혼가구를 위한 법과 제도에 대해 알아봅니다. 또한 비혼을 선택하는 이유 그 이면에 숨은 ‘사랑’의 문제도 함께 짚어봅니다. 

 

이번 달 <통인>은 노동절을 맞아, 박유안 인터뷰어가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를 만나고 왔습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그의 형 故 이한빛 PD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비참한 방송노동 현실에 절망하며 괴로워했던 고인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출범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매일 즐겨보는 드라마 뒤에 숨은 노동자들의 현실을 마주해보시기 바랍니다. 

 

<만남>은 아카데미느티나무 전시회 준비에 한창인 박진수 회원을 인터뷰했습니다. 80세가 넘은 나이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만큼은 여느 젊은이 못지않습니다. 그는 올해 초 참여연대에 가입한 새내기 회원이기도 합니다. 부모님이 1930년대 사회주의운동과 독립운동에 몸 바친 사실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지만 갖은 고생 속에서도 놓치지 않았던 올곧은 생각과 삶에의 의지가 인터뷰와 그림 속에 담겨있습니다. 그의 전시는 5월 한 달 동안 참여연대 카페통인과 지하1층 느티나무홀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오며가며 많이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통인동에서

참여사회 편집진 올림

수, 2018/05/02- 13:36
13
0

속표지

 

특집1_결혼하지 않을 자유, 비혼

왜 결혼 안 하냐고 물어보시는 분들께
드리는 비혼 보고서 

글. 이유나 언니네트워크 운영지기

 

 

ááµáá©á«áá©áá©áá¥

비혼의 시대

<불후의 명곡>에서 박수홍이 비혼식 현수막을 걸어놓고 공연을 하고, <베틀트립>에서 김숙이 셀프웨딩 사진을 찍고, 케이블에서는 <비행소녀>라는 비혼 전문 프로그램이 방송된다. 오늘날 ‘비혼’이라는 말을 몰라서 다시 묻는 사람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아닐 미(未)를 써서 미혼(未婚).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에 사람은 결국 결혼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담겨있으니 이를 지양하고 결혼하지 않았다는 상태를 가리키거나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의미의 비혼(非婚)이라는 용어는 이제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를 이룬 듯하다. 문제는, 비혼이 그저 미혼에 대응되는 개념이나 존재로 다양하게 존재하는 삶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지기만 한다는 것이다. 

 

‘비혼’이라는 단어가 한국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또하나의문화에서 주최한 ‘비혼여성캠프’나 여성의 전화와 같은 여성단체 내에 생긴 ‘싱글여성모임’ 같이 주로 결혼제도를 벗어나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자조모임이 기사화되면서 사회적으로 통용되게 되었다. 당시에 비혼은 독신이나 싱글처럼 결혼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는 여성을 뜻하는 것으로 혼용되기도 했다.①

 

여성이 누군가의 딸, 혹은 아내, 어머니라는 남성과의 관계적 지위를 통해서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홀로’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은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균열을 내는 일이었다. 1990년,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24.8세였다. 사회는 이렇게 낮은 ‘결혼 적령기’를 놓친 여자들을 ‘노처녀’라고 부르며 문제적 여성으로 낙인찍었다. 노처녀가 아닌 독신이나 싱글, 비혼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것은 이성애적 결합을 전제하고 남성중심 시각에서 여성의 ‘결혼할’ 나이를 정하고 결혼을 위주로 여성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에 반대하는 행동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성 간 결합을 통한 가족의 구성과 그 안에서의 섹스, 출산, 양육만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보수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비혼’은 곧 ‘독신’임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비혼은 비단 결혼 바깥에 ‘혼자’ 존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혼하지 않는 삶에도 얼마든지 수많은 관계 맺기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럼으로써 비혼은 기존의 결혼, 가족제도가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위계화 하는 방식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독신, 싱글과는 다른 정치적 의미를 가진 언어이자 세계관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비혼여성입니다. 결혼하지 못한 미혼여성이 아닌,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선택한 비혼여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립된 섬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홀로 꽃필 수 있고, 함께 꽃필 수도 있는 자유롭고 완전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공동체를 꿈꿉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나가며, 다름이 문제가 아닌 더 큰 힘이 되는 공동체를 만들려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자유를 열망하는 이들의 축복과 함께! 비혼으로 홀로 또 함께 잘살겠노라고 신성하게 선언합니다. 

- 비혼선언문, 언니네트워크 제1회 비혼여성축제(2007년)

 

비혼이라는 문제, 비혼이라는 해답

‘남성’은 공적영역인 임금노동시장에서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은 사적영역인 가정에서 가사, 육아를 전담하는 젠더이분법적인 분업은 산업화 시대에 이상적인 핵가족 모델을 유지하는 핵심이었다. 이러한 성별분업은 이성애 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정상가족’의 재생산은 결국 이성애라는 섹슈얼리티를 정점에 놓고 그 위계를 재생산해냈으며 어떤 삶이 ‘정상적’인 여성의 삶인지를 규정했다. 이러한 성차별적 분업을 비판하면서 ‘정상적’인 여성/여성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질문이 쏟아졌고 ‘비혼’은 섹슈얼리티의 위계를 위협하는 존재이자 ‘정상가족’ 단위의 사회 유지 및 재생산을 방해하는 문젯거리로 지탄받았다. 

 

그동안 여성의 취업률은 1985년 40.9%에서 2016년 50.2%로 증가했지만 2015년 일·가정 양립지표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의 가사노동시간은 여성이 하루 평균 3시간 14분, 남성은 40분으로 여전히 여성이 전적으로 가사의 책임을 지고 있다. 

 

『기획된 가족』이나 『아내가뭄』, 『타임푸어』 등에서 지적되듯이 가사는 집에 돌아온 순간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가사를 책임지고 있는 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매분 매초의 분투이다. 자녀가 학교를 잘 마치고 제대로 된 동선을 따라서 학원에 가고 있는지, 하루 종일 선생님과 다른 학부모들과의 대화창과 전화기를 붙잡고 있어야 하는 주양육자에게 하루 평균 3시간 14분 가사노동시간이라는 것은 턱도 없는 일이다. 가사와 양육, 재생산 활동을 공적영역 외부의 것으로 치부해온 기존의 성별분업 체계는 여성의 이러한 활동을 비용으로 여기게 된다. 이는 곧 여성 노동자의 지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결국 출산과 양육을 기점으로 여성들은 임금노동시장에서 퇴장하고 커리어가 단절된다. 

 

2016년 기준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이 좋다고 대답한 여성의 비율은 47.5%로 과반수 이하로 떨어졌다. 그밖에도 1960년대 이후 피임법 보급에 따른 섹스 및 재생산권에 대한 통제력 증가, 결혼 전 연애 기간의 증가, 대학진학률과 교육기간의 증가, 결혼에 대한 사랑과 개인의 자유라는 개념, 자기 성취를 강조하는 사회적 압박 등, 왜 지금 이 시대에 비혼이 늘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은 수도 없이 많다. 

 

비혼은 이제 정말 비-혼이고 싶다

그러니까. 비혼으로서 받는 차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퍽 난감하다. 혼인과 가족 중심의 사회구조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 삶 전반에서 나타난다. 이성애중심적인 결혼과 가족 이외의 것을 상상하지 않는 사람들은 비혼도 여전히 자기가 아는 결혼과 가족에 관계된 것으로 상상한다. 비혼이 이성애중심적인 결혼을 ‘통해서’ 구성되는 가족, 젠더이분법적인 성역할,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사회구조, 재생산되는 ‘정상적인 여성’의 정의에 문제를 제기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결국 결혼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간다. 비혼이라는 용어가 아니라 비혼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위해서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비‘정상가족’운동이나 비‘정상여성’운동 쯤이 되려나. 

 


2000.12.21. <국민일보> [우리가 다시 쓰는 행복일기] <8·끝> 독신 가족 

 
수, 2018/05/02- 13:35
18
0

특집2_결혼하지 않을 자유, 비혼

혼자여도 괜찮아

글. 이진송 계간홀로 편집장, 『연애하지 않을 자유』 저자 

 

 

‘결혼공화국’, ‘연애의 시대’에 안녕들하신가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내가 서른이 된다면’이라는 주제로 수업 과제가 나왔다. 스무 살이 되면 성숙하고 세련된 어른이 될 줄 알았던 시절이니, 그보다 먼 서른의 삶은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여우원숭이의 그것만큼이나 낯설었다. 서른 살의 나는 집과 차를 소유하였으며 내 스타일의 남편도 있는(!) 커리어우먼이라고 썼다. 그때까지만 해도 결혼은 어른의 삶에 ‘당연히 있는’ 구성요소이자 필수적인 통과의례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알거나 만나는 사람들은 다 결혼했고, 모두들 “이제 시집가도 되겠다”라는 말로 나의 성장을 가늠했으며, 생리통 때문에 앓으면 “나중에 아기 낳으면 없어진다”라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친척 중에서 결혼하지 않은 삼촌이 한 분 있었지만 그는 ‘비혼의 가능성’보다는 ‘미혼의 비참함’을 담당하고 있었다. 자주 술에 취해 있었으며, 친척들은 가족이 없는 그를 걱정했다. 마치 그가 겪는 문제들이 결혼만 하면 사라지거나,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인하는 양. 

 

드라마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조롱하고, 뉴스에서는 고독사의 공포를 부추겼다. 영화에서는 아이를 낳음으로써 ‘그렇게 아버지’가 되고, 문학의 세계에서는 사랑받지 못해 미쳐버린 ‘B사감’이 남의 연애편지를 훔쳐보고 있었다. 토크쇼에 나오는 중년 이상의 연예인들은 모두 결혼했거나 사별했으며 결혼하지 않은 이들은 반드시 결혼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14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비혼’이라는 단어가 ‘미혼’을 물리치고 공중파 뉴스에 진출하고, 정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만혼과 저출산, 그리고 개인주의자(라고 쓰고 이기적이라고 비난하고 싶은) 청년세대를 우려한다. 그러나 결혼공화국 또는 연애의 시대는 여전히 안녕, 안녕들 하시다.

 

인간은 원래 반쪽짜리도, 짚신도 아니다 

5년 전, 나는 “남자친구 있으세요?”나 “왜 연애 안 하세요?”라는 질문에 지쳐 ‘비연애’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독립잡지 『계간홀로 :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창간했다. 연애하지 않는 상태를 비정상적인 것, 어딘가 하자 있는 것, 어서 ‘솔로탈출’해야 하는 감옥처럼 여기는 연애지상주의에, 에라이 침이라도 뱉어보자! 연애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구분되는 문화적 코드이고 사회적, 역사적 이데올로기가 반영된다. 결혼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이고, 그저 오래되었으며 ‘다들 하니까’라는 권위에 기댈 뿐이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3포 세대’는 이 세 가지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전제해야 가능한 명명이다. 상황이 나아지면 당연히 할 거라고 믿는, 포기가 아닌 ‘하지 않음’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 연애와 결혼이 오로지 이성애의, 비장애인의, 가임기의 인구에게만 허용되며 그 외는 배제한다는 기만은 싹 지운 채로. 

 

동아시아에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운명의 상대와 붉은 실로 이어져 있다는 미신이 있다. 플라톤의 『향연』에는 인간이 원래 둘씩 붙어 다니는 총체인간이었는데 신이 이를 찢어놓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헤드윅>의 넘버 ‘The origin of love’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인간이 자신의 반쪽을 그리워하며 찾아다니는 것이 ‘사랑’이라고 노래한다. 한국 속담은 더 직관적이고 노골적이다. ‘짚신도 짝이 있다’처럼 우리 사회는 이렇게 인간을 ‘세트’로 전제한다. 개인은 젓가락 한 짝처럼 불완전한 미완성품이기에, ‘세트’를 맞춘 자들만을 바람직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승인한다. 내 새끼손가락은 텅 비었고, 나는 반쪽이 아니고, 인간은 짚신이 아닌데 말이다. 

 

연애와 결혼이 반드시 행복은 아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손쉽게 연애와 결혼을 인간 생의 필수 요소로 규정한다. 연애/결혼하지 않는 사람의 하자를 확신하고, 하는 사람에게도 하자가 있다는 사실은 잊는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데이트 폭력과 가정 폭력이 발생하는지 설명을 좀 해봐요 네? 세상에는 해로운/착취적인/불평등한/폭력적인 연애와 결혼이 존재한다. 연애와 결혼은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고, 살면서 부딪치는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을 모조리 해결하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그러니 부디, “그러니까 연애/결혼 해.”라는 말로 누군가의 선택을 부정하거나 오롯한 1인분의 삶을 미완의 것으로 규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신성시와 낭만화를 걷어내는 일은, 우리의 선택지를 제한하고 삶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폭력에 저항하는 첫 번째 단계이다. 

 

행복은 결혼이나 연애와 결합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붙어 다니지는 않는다. 어디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 사람마다 기준과 목표와 삶의 색깔은 다 다르다. 이 결정권을 남에게 넘겨줘서는 안 된다. 20대 중반에 나는 생각했다. “연애하지 않아서 나는 불행한가?” 대답은 ‘아니오’였고, 그것은 세상이 나에 대해 하던 말과 달랐다. 내 스스로 나의 삶과 행복에 대해서 정의하면서 내가 소중히 하는 것과, 남들이 중요하다고 해도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가치들이 물에 뜬 기름처럼 선명해졌다. 원하는 대로 살려면 결혼은 필요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결혼은 내 삶에서 빠졌다. 유학이나 워킹홀리데이 같은 선택들과 함께. 

 

사람들은 여전히 묻는다. “왜 결혼 안 해?” 한때는 구구절절 답했다. 그러나 그조차 나의 비혼을, 어떤 상태를 설득시킬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부터는 그만두었다. ‘하지 않을 자유’가 없는 ‘할 자유’는 오직 강요에 불과하다. 연애와 결혼을 하지 않을 자유가 없는 세계에서 살면, 나의 선택이 온전히 자발적인 것이라고 믿고 나의 ‘하자 없음’을 증명하라는 압박에 시달린다. 그래서 나는 비혼에서 자발과 비자발을 구분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은 예측불허고, 누군가는 비혼을 이야기하다가 결혼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결혼을 꿈꾸지만 미뤄지거나 안 하기도 하니까. 살다 보면 비혼은 그냥 결심하고 자시고 없이 자연스럽게 ‘유지’되거나 끝나기도 한다. 결혼이 삶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선택이라면 비혼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지속하려는 선택이다. 혼자 사는 시민을 위한 제도나 시스템, 사회적 인식은 그 사람이 언젠가 결혼을 할지 말지 여부와 상관없이 ‘현재의 상태’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 이외의 공동체 관계를 법적으로 승인하고 보호하는 「생활동반자법」 발의에 함께 관심을 기울여주었으면 한다. 

 

결혼하지 않아도 불행하지 않을 사회를 꿈꾼다 

앞으로 비혼인 나는 많은 제도에서 소외되고 불이익을 받을 것이다. 영원히 우선순위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코 묻은 돈을 붓던 주택청약통장을 깼다. 누구와 살든 그 동반자가 남편이 아니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위협을 받아도 ‘남편’이 개입하여 해결해주지 않는 여자는 더 많은 시비에 걸릴 것이다. 사람들의 걱정처럼 언제 혼자 외로운 죽음을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나는 더 많은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고, 공동주거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주거 모델을 고민해보고, 나를 잘 돌보고, 내 일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여기기로 했다. 몇 년 전에는 함께 살 집을 사려고 친구들과 돈을 모아 정기적으로 로또를 사기도 했다. 현실적이지는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도 ‘함께’인 미래를 상상하는 친구들과 무언가를 같이 한다는 사실 자체가 되게 좋고 따뜻했다. 그렇게 살 것이다. 고통받는 결혼한 친구들과 연대하며 제도의 부당함을 규탄하고, 더 많은 비혼을 위한 제도와 시스템의 개선을 요구하고, 새롭고 다양한 비혼 여성들을 드라마와 토크쇼와 영화에서 보여 달라고 아우성을 치면서. 나보다 어린 여성들의 눈에 띄는 비혼의 즐거운 예시가 되어서, ‘결혼하지 않아도’ 죽거나 사라지거나 비참하거나 불행하지 않은 여자로 충실하게 늙을 것이다. 어떤 열일곱이 문득 자신의 서른 이후를 상상할 때, 결혼하지 않는 가능성에 한 오라기의 실이라도 더 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둘이어도 좋지만, 혼자여도 괜찮다. 나는 오롯한 1인분의 삶, 나를 성실히 먹이고 돌보고 기르며 나와 잘 지내볼 것이다. 

 

1ááµá«áá®á«áá´áá¡á±

수, 2018/05/02- 13:31
8
0

특집3_결혼하지 않을 자유, 비혼

혼자 살아도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위하여

글. 장민선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

 

 

결혼의 의미에 대한 과거와 현재 

예로부터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로서 완전한 성인이 되는 관문이자 가족을 이루게 되는 인생의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져왔다. 부모는 자녀를 결혼시키는 것을 큰 숙제라고 여기고, 소위 적령기를 넘기지 않고 결혼을 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임신, 출산과 깊은 연관을 가지는 것으로 보이는 결혼적령기는 최근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고 있다. 2017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평균 초혼연령은 2007년에 28.1세였다가 10년 새에 30.2세로 증가하였다. 남성도 2007년에는 31.1세였다가 2017년에는 평균 초혼 연령이 32.9세로 늘어났다.① 또한, 결혼하지 않은 남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결혼은 선택이다’라는 응답이 85%로 나타났고, 7명 중 1명은 비혼주의자라고 답했다. 이와 같이 결혼 연령은 점점 더 늦어지고 있고, 결혼은 선택이라고 보아 결혼하지 않는 ‘비혼’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표

 

혼인하지 않을 자유 vs. 혼인과 가족제도의 보장 

헌법상 자신의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기운명결정권’이 보장되어 있다. 따라서 누구든지 혼인을 하거나 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사람에게 우리의 법제도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헌법은 혼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동시에 제36조제1항②에서 혼인과 가족제도를 보장하고 있다. 헌법이 가족제도를 보호한다고 함은 가족생활에서 기본이 되는 부부관계와 친자관계가 각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양성평등이 유지되도록 보장하며, 이를 위반했을 때에는 그러한 행위의 배제를 요구하거나 그러한 행위 자체를 무효로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즉, 헌법상 보호를 받는 가족은 부부와 그 자녀로 구성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서 혼자 사는 1인가구는 다양한 가족정책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이러한 가족정책의 근간이 되는 「건강가정기본법」에서도 ‘건강가정’을 “가족구성원의 욕구가 충족되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가정”이라고 정의하면서 혼인과 혈연에 기초한 가족형태를 정상가족으로 여겨왔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2005년에 “동 법률은 혼인·혈연·입양에 기초하지 않은 가족 및 가정 형태를 수용하여 전국민을 적용대상으로 할 수 있도록, 가족·가정의 정의를 혼인·혈연·입양관계에 한정하지 말고 실재하는 다양한 가족형태를 포괄할 수 있는 가족 및 가정의 개념으로 수정하고, 이와 동시에 법률 제명도 중립적 명칭으로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2014년에는 국회에서 건강가정기본법을 혼인·혈연·입양 외에 가족 형성의 원인을 확대하고, ‘건강가정’의 개념을 삭제하여 ‘가족지원’과 같은 중립적인 용어로 바꾸고, 가정 및 혼인과 출산의 중요성 인식, 가족해체 예방 등에 관한 규정을 삭제하는 개정법률안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1인가구에 대한 법적 지원?

현행법상 가족정책이 다양한 가족형태를 포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2018년 1월 16일, 1인가구 지원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건강가정기본법의 개정이 이루어졌다. 개정법에서는 1인가구를 ‘1명이 단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생활단위’로 정의하고 건강가정기본계획의 수립시 1인가구의 복지 증진을 위한 대책을 포함하도록 하며, 가족실태조사에 1인가구의 연령별·성별·지역별 현황과 정책 수요 등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여 실시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보다 먼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1인가구의 지원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여 1인가구 증가에 대응하고 있는 곳도 있다. 서울특별시와 부산광역시가 대표적이며, 이들 조례에서는 1인 가구를 우리 사회 또 하나의 가족 구성으로 인정하면서 1인 가구의 사회적 관계망을 강화하여 새로운 가족형태(사회적 가족)를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1인가구에 대한 별다른 지원정책은 가시화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여전히 가족 중심적인 법제도 

드디어 1인가구가 법제도 안으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법제도는 여전히 혼인과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득공제에 있어서도 혼자 사는 비혼자의 경우 자녀가 있는 기혼자에 비해 공제율과 항목이 턱없이 부족하여 사실상 ‘싱글세’를 부담하는 효과가 있고, 주택마련을 위한 대출 요건에 있어서도 단독가구에 대한 요건을 강화하여 사실상 차별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③ 

 

또한, 각종 사회보장 제도 역시 가족으로 구성된 다인가구를 기준으로 설정되어서 1인가구는 이로부터 배제되거나 기본적인 생활의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민법에 규정된 친양자 제도도 그 요건을 3년 이상 혼인중인 부부로서 공동으로 입양할 것을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독신자로서 친양자 입양이 제한된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5인의 위헌의견④을 제시했으나 위헌결정정족수에 미치지 못하여 합헌⑤으로 판시한 바 있다. 혼자 살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이의 양육에 불리하다는 사회적 편견이 아직도 존재함을 알 수 있다. 

 

혼자 살아도 불편하지 않도록 

결혼하지 않기로 결정한 삶의 방식 역시 존중되어야 하므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간다는 이유로 불평등한 처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1인가구가 급증하는 현실에 있어서 가장 유념해야 할 지점이다. 오늘날과 같은 초 저출산 시대에 1인가구에 대한 차별금지 내지 지원을 언급하는데 반대여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전생애에 걸쳐 1인가구가 될 수 있고, 1인가구의 급증은 단순히 개인의 선택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구조적인 영향에 의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족구조의 변화에 대응한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혼자 살아가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법제도적 측면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결혼 적령기는 옛말”... 혼인율 43년만에 역대 최저, KBS 뉴스 2018. 3. 22 기사 참조.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서러운 ‘독신가구’, 디딤돌대출 한도·면적 줄어... ‘제2의 싱글세 논란’, news1 2018. 2. 12 기사 참조.

“친양자 입양 당시 기혼이라는 점이 양자의 복리증진에 적합한 양육환경을 절대적으로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독신자가 친양자 입양을 신청하더라도 법원이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친양자 입양의 허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편친 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타파되어야 할 대상인 바, 이를 이유로 독신자의 친양자 입양을 봉쇄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적 편견을 강화한다는 측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4인의 합헌 의견은 다음과 같다. “독신자를 친양자의 양친으로 하면 처음부터 편친 가정을 이루게 하고, 사실상 혼인 외의 자를 만드는 결과가 발생하므로, 독신자 가정은 기혼자 가정에 비하여 양자의 양육에 있어서 불리할 가능성이 높다”

 
수, 2018/05/02- 13:27
9
0

참여연대, 삼성생명·금융위에 사실상 보험업법을 위반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처분 계획 관련 질의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총자산의 3% 초과 보유는 사실상 위법,
보험업감독규정상 취득원가로 계상해 삼성전자 주식 보유에 면죄부
삼성생명에 초과분 처분 계획, 금융위에 감독규정 개정 계획 질의

 

 

2018.4.20.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 간부회의에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금융회사의 대기업 계열사 주식소유 문제”에 대해 ‘관련 법률이 개정될 때까지 해당 금융회사가 아무런 개선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법 개정 이전이라도 금융회사가 단계적‧자발적 개선조치를 실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방안을 적극 강구하기를 바란다(https://bit.ly/2KpqaJ9)’고 발언했다. 이는 「보험업법」의 입법취지를 사실상 위반하여 총자산의 3%를 초과하여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을 겨냥한 것으로, 사실상 고객의 돈으로 계열사 주식을 사들여 재벌총수의 기업집단 지배를 도와온 금융회사에 자구책을 주문한 것이다. 그러나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총자산의 3% 초과하여 보유할 수 있도록 면죄부를 만든 직접적 원인은 보험업감독규정으로, 관련 규정을 심의·의결하고 금융회사를 감시할 책무를 가진 금융위가 자신의 공을 입법부에 떠넘기고, 기업의 자발적 개선에 기댄 금융개혁을 천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에 오늘(5/2)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소장 : 김경율 회계사)는 ▲삼성생명에 총자산의 3%를 초과하여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에 대한 매각 계획을, ▲금융위에 관련 보험업감독규정 <별표 11> 개정 계획을 묻는 질의서를 각각 발송했다. 

 

현행 보험업법 제106조(자산운용의 방법 및 비율) 제1항 제6호는 보험회사가 그 자회사의 채권 및 주식을 총자산의 3% 이상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2017년 말 삼성생명의 총자산은 258.4조원이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은 시가(2017년 말 기준 254만8천원)로 약 27조 원 가량으로 삼성생명 총자산의 3%인 7.75조 원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보험업법의 입법취지를 거스르고 있는 이런 기형적인 현실은 보험회사의 자산운용비율을 결정하는 보험업감독규정 <별표 11(2011.3.22. 개정)>이 보험회사가 소유한 채권 및 주식의 금액(분자)은 취득원가로, 보험회사의 총자산(분모)은 공정가액(시가)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감독규정에 따른 삼성생명의 자산운용비율 산정 과정에서 삼성전자 주식은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보다 훨씬 낮은 취득원가(주당 약 53,000원 대)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삼성생명은 법에서 정한 한도를 훨씬 초과하여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할 수 있었다. 동일한 비율을 산정함에 있어 분자와 분모에 서로 다른 가치평가 방식을 적용하고 있는 보험업감독규정의 내용은 누가 보더라도 기형적이고, 금융회사의 자산건전성을 규제하기 위한 보험업법 입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이번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발언도 이런 기형적인 감독규정에 기대어 변칙적으로 계열사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그룹의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관행에 대한 우려와 경고를 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금융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삼성생명 측(https://bit.ly/2KpBKnq)은 ‘올해 계획된 삼성전자 자사주 소각으로 인한 (삼성전자 발행주식 총수의) 10% 초과분(「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제24조 위반 분)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팔 것’이라고 답했으나, 3%를 초과하는 비율에 대해서는 ‘고민스럽다’고만 밝혔다. 이에 참여연대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중 총자산의 3%를 초과하는 부분의 매각계획에 대한 질의서를 삼성생명에 발송했다.

 

또한 금융위는 삼성생명의 자발적인 조치를 촉구했다고 하나, 이는 사실상 금융위 본연의 업무에 대한 해태(懈怠)와 방기(放棄)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017년 국정감사에서도 보험업감독규정으로 인한 ‘삼성 특혜’ 논란에 대해 “감독규정을 개정했을 때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기 때문에 법 개정으로 다뤄야 한다(https://bit.ly/2JBbTYu)”고 발언하는 등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왔다. 이번 금융위원장의 금융혁신 관련 발언에 대해서도 금융위 측(https://bit.ly/2JErRkA)은 “법 개정을 통해야 할 사안이란 인식은 마찬가지지만, 기업이 스스로 준비를 거쳐야 하는 만큼 자발적 조치를 촉구한 것은 우리 입장에서도 한 발 더 나간 게 맞다”고 밝혔다 이는 명색이 ‘공정한 금융거래관행을 확립하기 위해 설립된 행정기관’인 금융위가 자신의 의무도, 권한도 잊은 채 재벌 대기업의 뒤꽁무니만 바라보는 꼴이다. 그러나 금융위의 의지만으로 의결할 수 있는 문제를 입법부에 떠넘기는 금융위의 태도는 금융감독과 금융개혁에 대한 진정성마저 의심케 한다. 이에 참여연대는 금융위에 질의서를 발송하여 보험업법 입법 취지를 위배하여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배를 가능케 한 보험업감독규정 <별표 11>을 개정할 계획이 있는지를 질의했다.

 

오는 5월 9일은 문재인 정부 수립 1주년이다. 각종 적폐 청산에 대해 보여준 의지와 11년 만의 남북정상회담 등 현 정부가 이룩한 성과는 괄목할만한 것이지만 유독 금융 분야에는 개혁의 칼끝이 무딘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당선 후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과제로 ‘재벌총수 일가 전횡방지 및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제시하면서, ▲재벌의 편법적 지배력 강화 차단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의결권 제한 강화 등의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금융위는 더 이상 물러서지도, 주저하지도 말고 각종 금융관련 제도개선 및 적폐청산에 나서야 한다. 특히 보험업감독규정 개정은 ‘금융 부분 적폐청산’의 좋은 시작이 될 법하다. 재벌의 자발적 개선만을 주문하거나 입법부에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스스로 보험업감독규정 개정을 조속히 단행하여 금융혁신에 대한 의지를 관련 이해당사자들에게 확실히 보여줄 것을 촉구한다.

 

 

[보도자료 원문보기]

 

 

▣ 별첨자료 1: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배 관련 보험업감독규정 개정 금융위 질의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배 관련 보험업감독규정 개정 질의서>

 

 

<질문>

금융위원회는 보험업감독규정 <별표 11> 제3호의 내용중 “취득원가를”을 “공정가액을”로 개정할 계획이 있습니까?

 

 

 

▣ 별첨자료 2: 삼성생명이 초과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매각에 대한 삼성생명 질의서

 

 

<삼성생명이 초과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매각에 대한 삼성생명 질의서>

 

 

<질문>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2017년 말 기준 삼성전자 주식 10,622,814주(지분율 8.23%, 보통주 기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2017년말 현재의 시가인 주당 254만8천원으로 환산할 때 약 27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입니다. 한편 2017년말 현재 삼성생명의 총자산은 258.4조원이므로 시가를 기준으로 한 삼성전자 주식의 보유규모는 총자산의 3%인 7.75조를 훨씬 상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보험회사가 그 자회사의 채권 및 주식을 총자산의 3% 이상 소유하는 것을 금지한 보험업법 제106조(자산운용의 방법 및 비율) 제1항 제6호의 입법취지에 배치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의 시가 평가를 전제로 삼성생명 총자산의 3%를 초과하는 삼성전자 지분을 자발적으로 매각할 계획이 있습니까? 

 
수, 2018/05/02- 13:25
124
0

특집4_결혼하지 않을 자유, 비혼

‘낭만적 사랑’ 이후의
사랑과 결혼

 

글. 홍찬숙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책임연구원

 

오늘날의 가족제도는 얼마나 보편성을 갖는 것일까? 2차 대전 이후 기능주의 사회학에서는 남성은 밖에서 일을 하여 가족을 부양하고 여성은 집안에서 가족을 돌보는 핵가족 형태가 인간 본성에 맞는 보편적 제도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68운동에서 시작된 서구의 신사회운동 및 연이은 문화변동 과정에서 핵가족제도의 보편성은 일종의 역사적 속임수로 의심되었다. 두 번의 세계전쟁을 일으킨 근대 자본주의문명에 회의를 느낀 당시의 젊은이들은 성과 사랑 역시 결혼제도라는 근대적 올가미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했다. 

 

열정적 사랑에서 낭만적 사랑으로

사실상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에게 사랑과 충절을 약속하는 결혼제도는 서구 사회에서 근대 후반에 나타난 현상으로서, 사회학자들은 이것을 ‘낭만적 사랑’이라고 부른다. 독일의 사회학자 루만이 설명하듯이, 이것의 앞선 형태는 ‘열정적 사랑’이었다. 이것은 근대 초에 나타나는 사랑의 형태로서, 결혼제도와는 양립할 수 없는 형태였다. 당시까지 결혼제도의 목적은 신분에 따라 달랐다. 성경에서부터 남녀의 성적 결합과 생식이 원죄의 산물로 설명되듯이, 중세 교회에서는 결혼의 목적을 영적 결합으로 보았고 육체적 결합은 불가피한 부작용 정도로 인정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결혼의 목적은 교회가 이념적으로 제시하는 것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았다. 세습귀족의 경우에는 가문의 재산을 지키는 것이 결혼의 목적이었다. 이것은 한국에서 고려 시대 결혼제도의 목적과 매우 유사하다. 고려 시대에는 귀족가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남성이 여성 가문으로 장가를 들어서, 그 자손이 외가의 제사를 지내는 관행이 성행했다. 그럴 경우 그 외손은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 서구의 게르만 문화에서도 자손은 아버지나 어머니 성 중 하나를 따를 수 있었다. 이것을 양변제(兩邊制)라고 한다. 그러나 근대로 가까워질수록 부계제가 강화되며 양변제를 밀어내게 된다. 한국의 경우에는 17세기 이후 조선에서 유교가 일반 평민층에까지 수용되면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

 

결혼제도의 목적

그렇다면 상속할 재산이 없는 일반 서민층에게 가족제도는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귀족의 가족제도와 비교할 때, 이에 대한 연구는 서구에서나 한국에서나 희소한 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우선 서구에서나 한국에서나 전통사회의 실제 가족규모는 오늘날의 핵가족 규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서구의 중세나 우리의 고려 시대의 경우 독신 비율이 높았다. 구교 기독교나 고려 불교가 모두 성적 결합이나 결혼을 부정하는 교리를 갖고 있었다. 또 동시에 고려 시대 절에서의 ‘탑돌이’가 오늘날 ‘불륜’이라고 부를만한 성관계를 상징하듯이, 서구의 구교 사제들도 사실혼 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종합하면, 중세에는 성관계와 사랑이 결혼/가족제도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았다.

 

앞서 말한 ‘열정적 사랑’은 따라서 소위 ‘불륜’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결투’ 등의 단어들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열정’은 인간이 제도를 통해 제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평민들 중에서도 재산을 상속할 필요성이 있는 시민계급이 성장하면서, ‘열정’은 결혼제도와 공존이 가능한 ‘도덕적 성질’을 부여받은 ‘낭만적 사랑’으로 길들여진다. 이제 사랑은 이성에 의해 통제될 수 있다고 여겨졌고, 결혼과 가족은 그런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제도로 설명되었다. 2차 대전 이후의 1950년대 서구사회에서는 경제부흥과 함께 이런 낭만적 사랑이 사회의 전 계층으로 골고루 확대되었다. 그리하여 사회학은 낭만적 사랑에 기초한 핵가족이 보편성을 갖는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렇게 핵가족의 보편성이 그 정점에 도달하였으므로 이제는 하강할 차례가 된 것 같았다. 68운동의 과정에서 핵가족과 그것의 기초인 전통적 성역할은 자발적 감정인 ‘사랑’이 아니라 계산적인 ‘재산상속’이나 위계적인 ‘남성지배’를 목적으로 하는 제도라고 비판받았다. 말하자면 다시 성/사랑과 결혼/가족제도의 연결고리가 풀어진 것이다. 결혼/가족제도의 내부구조는 전통적 성역할에 기초하므로, 그것의 약화는 곧 성역할의 변화를 의미한다. 전통적 성역할에 대한 반발로 가족제도가 거부되었을 수도 있고, 반대로 가족제도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전통적 성역할이 약화되었을 수도 있다. 

 

표2

 

여성의 개인화: 두 번째 개인화

어찌 됐건 이런 현상이 말해주는 것은, 근대적 핵가족제도가 약해지면서 특히 성역할과 관련하여 문화변동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이제 여성은 더 이상 남성의 부양대상이 아닐 뿐만 아니라, 남성을 내조하는 역할에서도 풀려나게 되었다. 이것을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과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은 ‘여성의 개인화’라고 불렀다. 벡은 특히 ‘개인화’를 근대성이 급진화하는 양상으로서 ‘두 번째의 개인화’라고 설명했다. ‘개인화’란 마르크스나 베버의 좀 더 오래된 개념으로 설명하면 ‘이중의 해방’을 의미한다. 즉 개인이 신분제적 구속에서 해방되는 동시에 공동체의 보호로부터도 해방되는 양면성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제 결혼 및 가족제도가 약화하면서 이런 양면적 과정이 여성에게도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개인화는 여성에게까지 ‘확대’되는 ‘급진성’을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2016년 유럽국가들의 혼외출산율을 보면 프랑스 59.7%, 스웨덴 54.9% 등 주로 북구와 서구를 중심으로 결혼/가족제도가 매우 약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독일에서 유학 중이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여전히 동거를 ‘야생결혼(wilde Ehe)’이라고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2000년대를 훌쩍 지나서야 서구에서도 동거나 혼외출산이 가족에 준하는 것으로 사회적 인정을 얻게 된다.

 

사랑의 문제, 빈곤의 문제

비혼이나 동거 등 법정혼인과 연결고리가 풀린 형태로 성과 사랑의 관계를 경험하(거나 또는 포기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인정을 얻기 위해 보내야 했던 세월은 그러나 법규범의 경우에는 오히려 짧은 편이다. 더 큰 문제는 빈곤인데, 앞서 말했듯이 개인화란 곧 공동체의 보호로부터도 풀려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근대 초 남성 중심의 개인화에서는 무소유 계급이 그런 과정을 통해 도시의 빈곤층으로 하락했다. 이제 ‘여성의 개인화’ 과정을 통해 여성이 더 이상 전통적 가족부양에 의존하기 어렵게 되면서, ‘빈곤의 여성화’가 진행되었다. 

 

따라서 ‘여성의 개인화’는 빈곤을 피하기 위해 다시 전통적 가족제도로 돌아가려는 ‘취집’과 같은 경향까지 광범위하게 포괄한다. 만일 빈곤위험과 무관하게 결혼/가족제도 밖에서 성과 사랑을 실현할 수 있다면, 기든스가 말하는 ‘합류적 사랑(confluent love)’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빈곤위험은 일반적으로 구조적인 성격을 가지므로 개인의 선택 밖에 있다. 따라서 ‘사랑’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제 ‘빈곤위험’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해야만 한다. 

수, 2018/05/02- 13:23
38
0

죽음 같은 노동으로 빚어내는, 드라마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글. 박유안

기웃기웃 번역가. 알트 출판사에서 일하는 그는 ‘까칠해도 친절하게’가 삶의 모토이며, ‘쟌 모리스를 번역한 작가’로 기억되길 바란다. 밤엔 주로 땅고 추며 논다. 맘 놓고 춤 출 수 있는 좋은 세상을 염원한다.

사진. 김경희 미디어홍보팀 간사 

 

 

우리가 매일 보는 드라마 뒤에 방송노동자가 있다. 그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 연출을 비롯해 작가, 촬영, 미술, 음향, 조명…. 오늘은 그들의 노동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인권센터’) 이한솔 이사는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로 활동하다 목숨을 던지며 처참한 방송노동 현실을 고발한 故 이한빛 PD의 동생이다. 입사 1년여 만에 벌어진 한빛 씨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방송노동, 특히 드라마 제작 환경 개선 운동은 동생 한솔 씨가 여러 사회운동단체들의 도움으로 대책위를 꾸려 지속적으로 노력한 결과, 지난 1월 한빛인권센터가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주 52시간 노동을 통해 노동자건강권을 이야기하는 시대, 장시간노동을 넘어 무제한노동에 시달리는 방송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왜 개선이 더딘지, 어떻게 해야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지, 이한솔 한빛인권센터 이사로부터 들어보았다. 

 

메인

 

한빛인권센터 일에, 민달팽이유니온 일에, 투잡 하신다고 들었다. 지금도 어디 다녀오시는가 보다?

민달팽이유니온이 청년 주거지원 사업을 하는 곳이어서, 성내동 청년임대주택 입주예정지를 다녀오는 길이다. 천호역 인근인데, 지역주민들이 ‘혐오시설 입주 반대’라며 조직화된 반대를 하신다. 그게 아님을 알리고자 하는 건데, 거창한 건 아니고 워낙 젊은 친구들의 일이라 재미나게 UCC 영상 만들고 그런다.

 

방송노동자를 위한 한빛인권센터가 지난 1월에 출범했다던데?

서울시와 협약을 맺어 방송업계 노동자 쉼터의 운영권을 위탁받는 형식으로 사업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상암동의 공간에 입주하려고 지금 인테리어 공사 중인데, 최근에도 드라마 <화요기> 제작현장에서 노동자가 추락사고로 중상을 입는 등, 과도한 노동, 열악한 노동의 문제가 이어져서 일단 상암동에 임시사무실을 얻어 특별근로감독 신청, 미디어신문고 개설을 통한 현장 제보 받기 등의 일을 하고 있다. 

 

방송노동 개선 중에서도 주로 드라마 제작 쪽에 집중하는 건가?

그렇다. 드라마제작환경 개선이 센터의 주된 목표이다. <혼술남녀> 사태 이후 대책위 시절부터 꾸준히 관련된 일을 해왔고, 이젠 방송노동자들도 많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동안 드라마 외주제작의 문제점 얘기가 많았는데?

드라마제작환경은 건설업종과 매우 흡사하다. 일단 방송사가 원청업체로 제작사와 주로 턴키계약을 한다. 그럼 제작사가 촬영, 미술, 조명, 음향 등 개별업체와 다시 계약하고, 이들 팀이 마치 인력시장에서 건설노동자 조달하듯 각 분야 팀원을 모집해 일하는 식이다. 이처럼 직접고용이 아니다 보니, 일 터지면 원청인 방송사나 제작사는 책임회피에 급급하다. 턴키계약이다 보니 제작현장의 노동자들이 임금을 얼마나, 어떻게 받는지 알 길이 없다. 

 

방송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노동조합은 없는 건가?

건설업계 일용직 노동조합이 불가능에 가깝듯, 방송업계도 계약 특성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미디어 신문고를 언급하셨는데, 대표적인 현장 제보가 있었다면? 제일 끔찍했던 사례를 말해 달라.

지금 한창 인기몰이 중인 C드라마의 경우, 현장제보를 통해 초기 대응을 잘 해 해결 국면을 맞고 있다. 초창기엔 센터에서 태스크포스를 꾸려서 직접 현장에 찾아가 인터뷰도 하고 드라마 <미스티> 같은 경우를 특별근로감독 대상으로 신청하고 그랬다면, 이제는 센터 활동이 알려지면서 신문고로 제보가 들어온다. C드라마도 그런 경우다. 그런데 해결 국면이라는 게 좀 기가 차긴 하다. 6일 21시간 노동(하루 3시간 휴식… 이 경우 집에 갈 수가 없다. 근처 찜질방에서 잠깐 눈 붙이고 나와야 한다)에서 7일 18시간 노동(휴일은 없어졌지만, 그나마 집에 가서 몇 시간 자고 나올 수 있다)으로 조정한 거니까 말이다.

 

꼭 그렇게 엄청난 노동시간을 퍼부어서 제작해야만 하나?

<혼술남녀> 때부터 이미 대두된 흐름인데, 지상파 3사 및 JTBC, CJ 등 대부분의 드라마가 예전엔 60분짜리였다가, 80분~100분 편성으로 늘어났다. CJ가 100분 편성을 고집하는 이유는 중간광고 넣어서 광고수입 늘리려는 거다. 그런데 주 2회분, 즉 200분 분량을 채우려면…. 삐끗하면 죽음 같은 노동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다. 앞서 말한 C드라마는 사전제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최근 미투운동으로 하차한 배우의 분량 때문에 재촬영이 이뤄지면서 노동 강도가 극악해졌다. 모든 현장엔 이런 변수가 발생하지만, 문제는 변수 발생의 부담이 모두 촬영현장 종사자의 몫이라는 데 있다. 태스크포스에서 조사해보니 평균 주 6일 20시간 노동이었다. 

 

암담하다. 그런 비인간적 노동이 어떻게 이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이뤄진단 말인가? 노동당국의 규제도 안 받나?

태스크포스에서 노동청에 특별근로감독 넣은 게 그런 이유에서다. 당시도 그랬지만, 결국은 미디어노동자의 근로자성 인정이 관건이다. 턴키 계약, 프리랜서 노동 등이 통상적 고용계약에 따른 노동이 아니라고 고용노동부는 나 몰라라 해버린다. 30년 넘게 이어진 업계 관행에 대한 고발과 문제제기가 <혼술남녀> 사태로 봇물을 이뤘다. 다행히 조금씩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지금 특별근로감독, 근로자성 인정 문제가 지방청에서 본청으로 넘어가 있다. 이제 장관이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 한번 결정나면 주 100~120시간 노동이 단숨에 주 52시간으로 바뀌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역으로, 근로자성 인정 못 받으면 문제해결이 어렵지 않을까 우려도 된다. 

 

왜 이런 끔찍한 현실이 그리 오래도록 공론화되지 못했을까?

방송가에 고질적인 문화가 있다. “너, 드라마 찍고 싶어 들어온 거 아냐?” 그러면서, 열정노동을 강요하는 문화가 팽배하다. 말이 좋아 문화지, 문제제기 했다가는 업계에서 아예 매장당한다는 그런 협박의 분위기 같은 거다. 가령 어느 팀이 문제제기를 한다고 치자. 그런데 이 팀은 1년에 4~5개의 드라마를 찍어야 겨우 굴러가는 팀인데, 문제제기를 했다, 안 써주면? 그렇게 팀 전체가 제작사로부터 배제되어 버리는 실정이다 보니, 다들 견디며 온 거다. 너무 수틀리고 못 견디면 개인이 그냥 떠나는 분위기다. 

 

<혼술남녀> 사태로 문제제기가 촉발되고, 결국 발뺌하던 CJ도 사과하고 기금 조성을 통해 한빛인권센터 출범까지 이르게 됐다. 하지만 무제한노동의 현실과 현장에서의 사고는 계속 재발하고 있다.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 어떻게 가능할까?

내가 드라마 업계에서 직접 일해본 건 아니지만, <혼술남녀> 사태 이후 연구하고 분석한 바에 따르자면, 첫째, 최대촬영의 기준을 마련해 엄수하게 해야 한다. 상한선을 못 박아 두자는 거다. 그럼 사전제작기간 늘릴 거고, 쪽대본도 안 나올 거고, 결국 노동조건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

 

둘째, 방송사의 편성 문제도 심각한 사안이다. 특히 방송3사의 합의가 중요하다. MBC 최승호 사장도 최근 그와 같은 개선책을 얘기했는데, 드라마는 60분 체제로 가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돌발변수는 무조건 일어난다. 그에 따라 노동자에게 가중되는 부담을 완충하려면 편성 부담부터 줄여야 한다.

 

셋째는 도제식 문화, 너무나 명백한 갑을구조의 개선이다. 이 부분을 개선하려면 먼저 원청 쪽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실 예능이든 드라마든 이제는 (외주제작이 너무 보편화된 나머지) 직접제작으로 되돌아가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우선 필요한 개선책이 원청의 책임을 높이는 방식이다. 외주제작이 불가피하다면, 외주제작 팀과 방송사가 직접 계약하는 식으로 가는 게 제일 좋다. 외주제작이라 해도 직접 계약이라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진다. 책임 소재 명확해지면, 방송사와 채널이 참으로 많은 요즘 상황에서 외주제작이 꼭 나쁜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서브

앞으로 한빛인권센터에서 할 일이 많아 보인다. 향후 센터의 주력이 될 사업을 꼽는다면?

일단은 방송노동자의 근로자로서의 지위 인정이다.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게 되면 제작환경이 급격히 변해 사전제작이 대세를 이룰 거고, 초과노동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 이처럼 커다란 분기점을 이룰 최대 화두이므로, 센터가 거의 ‘몰빵’ 수준으로 매달리고 있는 사안이다. 

 

새 정권이 들어서고 방송사를 둘러싼 환경도 많이 바뀌고 사회환경 전반도 바뀌고 있다. 그런 방송환경 전반의 변화에 거는 기대는?

사실 드라마제작 현장 노동자들의 실태가 이렇게 심각해지기 이전에 언론노조 등에서 먼저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었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묵인, 방관의 단계를 넘어 갑질을 자행하고 일그러진 문화를 정착시킨 데에는 방송사의 실권자들 책임도 있다. 약자인 현장 노동자들의 착취를 용인한 방송국이 있었던 거다. 정권의 변화, 상층부의 변화뿐만 아니라 방송사 실권자 분들도 마인드를 바꿔 비정규직이나 약자들의 입장을 헤아려 먼저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열악한 도제식 문화의 전통을 깨뜨릴 수 있다.

 

KBS, MBC 신임사장들은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겠다고 했고, 정규직인 PD분들도 그런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저의 형도 마찬가지 고민을 했던 거다. 정규직으로 들어가 자신이 관리자로서 한 행동이 자기가 어려서부터 비판해온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방향으로 가야만 했고, 거기서 환멸을 느낀 거였다. 

 

‘목숨을 건 도약’이라고 하지 않나. 이한빛 PD의 희생으로써 밝혀지기 시작한 방송노동의 현실을 두고, 이제 남은 사람들은 보다 나은 단계로 도약함으로써 그의 희생에 답해야 하겠다. 

지난 1년간 크게 안 바뀐다고 실망하거나 안타까워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지만, 앞서 말한 인기드라마 C드라마의 경우도 그렇듯 느리고 미약하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다. 희망을 잃지 말고 함께 힘을 모아 이뤄나가자고 당부드리고 싶다. 

 

대책위 활동을 하고 인권센터를 만드는 동안 대학도 졸업하고 자연스럽게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형님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자 미디어노동환경의 변화를 불러오는 길, 돌아보면 어떤가?

당시로써는 그게 당장 해야 할, 너무나 명백한 일이었다. 부모님도 그런 저를 내심 안쓰러워 하셨을지 모르지만, 별말씀 없으셨고, 내겐 그저 명확한 일이었을 뿐이다. 친구들도 한창 사회로 진출하는 즈음이긴 한데, 우리 세대를 보면 노동을 통해 자아실현을 꿈꾸는 시대는 이미 지나버린 게 아닌가 싶다. 꿈꾸던 직장에 들어가도 자아실현을 바랄 수는 없고, 오히려 실망만 많아지고 착취나 당할 뿐이다, 즉 노동은 노동일뿐이라는 풍조가 만연해진 거다. 자아실현은 노동이 아닌 곳에서 하는 거고, 노동은 그저 돈을 버는 일일 뿐이라는 거. 그런 점에서 내 일이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기쁜 일이라서 좋다. 민달팽이유니온도 그렇고, 센터 일도 그렇고, 나는 내가 하는 일, 좋다. 잘 맞다. 돈은 많이 못 벌지만.(웃음)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들도 만날 텐데, 어떤 얘기를 나누는지 궁금하다. 

친구들의 회사 욕, 상사 욕 들어주고, 주거상담, 노동상담도 해준다.(웃음) 꿈꾸던 회사에 들어가 꿈과 희망을 잃어가는 이야기, 그런데 그런 세상을 바꾸려는 친구가 옆에 있어 너무 좋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 실컷 들어주고 후원하라고 들이민다.(웃음)

 

대학에 다니면서 ‘주거권’을 얘기한 민달팽이유니온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전교조 창립멤버인 아버지를 보며 자라 사회를 바꾸는 게 의미 있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고, 굉장히 비정치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던 대학 학내에서도 자연스레 그런 활동판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다 사회운동 단체로 이끌고 나오는 일도 하게 되었고. 

 

특정 세대의 주거권을 다루는 데서 오는 한계도 있을 법한데?

한국의 주거빈곤층은 대개 청년층과 노년층에 포진한다. 20~30대 청년, 60대 이후 노년층의 40% 정도가 주거 빈곤 상태인 거다. 청년들에게 집을 달라는 운동이 아니라, 주거약자를 보호하라는 운동이다. 이를 위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모으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운동이다. 청년 세대 주거문제, 청년 노동 문제 등 세대별로 구분할 수 있는 문제냐는 우려의 시선이 여전히 크다는 것도 잘 안다. 어떤 세대가 어떤 감수성을 가지고 노동문제, 주거문제를 볼 때는 기존의 감수성의 틀에서와는 또 다를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집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던 세대와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세대가 보는 주거문제는 다를 수 있다. 그렇게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세대의 외침, 당사자의 외침으로서 청년주거, 청년노동의 문제를 봐주시면 좋겠다. 

 

 

‘이런 청년의 기운이라면, 이런 청년의 패러다임이라면, 거기에 기대 세상의 변화를 기대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인터뷰 말미,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복잡할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라고 했던가. 결국은 우리 삶의 기본인 노동현장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노동을 하며 살고 있건, 대한민국의 일상적인 노동의 터전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저 대기업들을 보라. 직원을 종 다루듯 하는 오너가 있는가 하면, 노조 파괴를 위해 온갖 비열한 술책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는 초일류기업도 있다. 우리는 그런 노동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길들여진다. 그렇게, 그렇게, 일그러진 노동 문화는 지긋지긋 이어져 별 힘 없는 개인을 집어삼킨다. 

 

그렇지만, 개인은 대개 무력하지만, 뭉친 개인들은 훌쩍 강해진다. 쌓인 불만과 부조리가 봇물처럼 터질 때, 서로의 뜻과 힘을 모아야 한다. 노동인권을 위해서는, 노동자의 건강과 존엄을 위해서는, 터지는 봇물을 잘 활용해야 한다. 드라마 너머, 카메라 너머, 거기 인간다운 노동을 위해 뜻을 모으는 방송노동자들이 있음을, 형을 대신해 그들을 위해 동분서주 중인 청년 활동가가 있음을, 드라마를 물리며 문득 떠올려 마땅하겠다.  

수, 2018/05/02- 11:55
34
0

노인이 꽃을 꺾어드니 온 세계가 봄이로다

박진수 회원 

 

인터뷰. 주은경 아카데미느티나무 원장

정리 및 사진. 이한나 미디어홍보팀 간사

 

메인 (2)

 

 

첫 만남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2017년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8.15 행사 <당신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뒤풀이 자리였다. 매년 민주화운동과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들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풋 프린팅 행사를 하고, 관련 유가족들이 함께 그 의미를 새기는 자리. 처음 보는 사람들이 함께 식사하는 다소 서먹하고 긴장된 분위기였다. 내 앞자리에 은퇴한 대학교수 같은 이미지의 그와 얘기하던 중, 그의 어머니가 1930년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였다는 걸 알게 됐다. 

“어머니는 맨날 경찰에게 쫓겨 다니고, 나는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어요. 나는 그림 그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완전 인텔리처럼 보이는 노인이 부모의 사상경력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못 나와 고생만 하고 살았는데, 그림을 그린다? 뭔가 강한 느낌이 왔다. 실례지만 지금 그림 보여주실 수 있느냐 물었다. 그가 수줍은 듯 작은 스케치북을 보여주었다. 크로키나 드로잉이 상당 수준이었다. 내가 참여연대에는 시민예술가가 무료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말씀드렸다. 이렇게 해서 그의 이번 5월 전시회가 성사되었다. 전시를 앞두고, 그의 화실을 찾았다. 부평구청역 근처 작은 건물 2층 중국집 옆 작은 공간이었다.   

“어릴 때부터 안 해본 일 없이 노동하며 살았어요. 작은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구요. 그런데 나이 60이 되어 난생처음 부천 원정동에 화실을 마련했는데 허구한 날 월세에 시달렸어요. 나중엔 한 일 년쯤 월세가 밀려서 내가 그때 정물풍경 그림을 열 몇 점을 주고 거길 접어야 했죠.” 

 

그때 작업실 월세라도 벌고자 그림 지도를 했지만 그를 찾아오는 이들은 하나같이 테크닉만 배우려고 했다. 심지어 나중에는 공모전에 입선해야 하니 그에게 직접 그림을 손봐달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한 3년 했나.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고요. 차라리 다른 거 해서 돈 버는 게 낫지. 그래서 여기 온 뒤부터는 가르치는 건 안 하기로 했어요. 그냥 월요일마다 화실을 열어둘 테니 원하는 사람은 와서 같이 그림 그리자고 했죠. 월요일만 되면 사람들이 부지런히 찾아옵니다. 여기 홍 선생도 그중의 한 사람이에요.

 

그렇게 인천 부천 등 각지에서 모여든 젊은 화가 친구들 7~8명이 매주 1회 크로키 모임을 하고 있단다.

“젊은 사람들이 우리 노인들과 얘기를 잘 안 하려고 하잖아요. 쉰 음식같이 시큼하고 맛이 간 옛날얘기나 하니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젊은 사람들 따라가려고 열심히 책도 보고 『참여사회』도 벌써 반이나 읽었어요.”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홍 선생이 한마디 거든다. 30대 나이의 홍 선생은 그와 함께 이 화실에서 그림을 그린 지 벌써 3년째다.

“선생님은 정말 젊으세요. 그림도 젊고. 생각도 젊고.”

 

화실에 놓인 그림들 중 유독 눈에 띄는 그림이 있다. 그림 속에는 가을낙엽처럼 바싹 마른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은 채 힘없이 벤치에 앉아 있다. 그 오른편에는 커다란 해바라기가 굵고 단단한 줄기를 꼿꼿이 세우며 서 있다. 

“오랫동안 여동생 집에서 머물다가 아흔이 좀 넘으셨을 때 우리 집에 모셔왔는데 그때 고속버스 휴게소에서 앉아있던 어머니 모습이에요. 그때 어머니가 저렇게 바짝 늙어 있었어요. 다행하게도 그 후 1~2년 사이에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죠. 어머니는 처녀 때부터 늘 몸이 약하셨어요. 근데 몸이 약해도 강단이 있는 사람이 있잖아요. 절대 어디 가서 굽히지 않는…. 우리 어머니가 그랬어요.”

 

해바라기

박진수 화백이 그린 이효정 할머니의 그림. 아직 미완성이다. ⓒ박진수 

 

빨간 줄

그림 속 할머니의 아들은 차분히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1930년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이효정 선생이다. 동덕여고를 졸업한 여성 지식인 이효정 선생, 그녀의 이야기는 이재유, 이관술 등의 활동을 담은 소설 『경성 트로이카』에 자세히 실려있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버지 또한 울산에서 교원노조사건 등으로 옥고를 치렀고 건국준비위원회 지역간부였다. 1938년 출생인 그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까지가 전부라고 했다. 

“열 살 때였나? 숨어 지내던 아버지를 어머니와 함께 찾아갔던 기억이 있어요. 그게 마지막이었죠. 말도 마세요. 동네 애들이 그냥 다 나보고 빨갱이라고 그랬어요. 저 새끼 빨갱이라고..(웃음) 이육사 선생이 어머니 친척이었고, 친가 외가 쪽 모두 독립운동가들이 많았어요. ”

 

‘빨갱이’. 이 무시무시한 단어는 저승사자처럼 늘 그를 쫓아다녔다. 어머니는 늘 경찰 피해 도망 다니고, 외할머니 손에 자란 그에게, 어린 시절 유일한 즐거움은 그림이었다. 

“나는 중학교도 못 들어갔지만, 당시 중학교 선생님들이 환경 미화하는 걸 도와주고 도화지, 물감 얻어 와서 혼자 그림을 그리곤 했죠. 그때 중학교 다니던 내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 나중에 경주의 예술가 윤경렬 선생님 집에 찾아갔어요. 내가 평생의 은사로 생각하는 분이요. 특별히 그림을 배운 건 아니고 그 집에 드나드는 예술가들 술 심부름 하며, 그들의 세계를 접했던 것 같아요 이응로, 박수근, 한묵 등 당시 최고의 예술가들을 윤경렬 선생님 댁에서 봤다니까요..”

 

하지만 그 시간도 오래가지 못했다. 60년대, 아버지가 남파간첩으로 내려왔다는 의혹 때문에 조사를 받았던 작은 아버지는 풀려난 후 음독자살을 했다. 너무도 자상했던 작은아버지였다. 형사들이 들이닥쳐 구둣발로 발길질을 당하고 집안은 쑥대밭이 되었다. 

“그 무렵 늘 정기적으로 형사들 앞에서 나의 생활을 조서형식으로 써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내 가까운 친구, 영향받은 사람을 다 써야 했죠. 그러니 스스로 가까운 사람들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어요. 윤경렬 선생님 댁도 그런 이유로 발을 끊다시피 했죠.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서울로 이사 와서 군대 제대한 뒤에는 내 담당 형사가 따로 있었어요. 다짜고짜 이런 거 저런 거 묻더니 몇 년 뒤에 또 다른 사람이 와서는 자기가 인계받았다 하더라고요. 그 뒤로도 무슨 소식 들은 거 없냐면서 계속 찾아왔어요. 한 군데서만 그러면 괜찮은데 경찰에서 오고, 중앙정보부에서 오고, 나중에는 군수사기관에서도 오더라고요. 한번은 우리 큰아들이 세 살 때였나, 군 트럭에 태워 나를 끌고 간 적도 있어요.” 

 

형사들이 왔다 가면 일하던 곳에서 쫓겨났고 가난하고 궁핍한 생활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그가 이십 대 청년에서 삼십 대의 가장이 된 후에도 주홍글씨는 지워지지 않았다. 

“신원조회에 항상 이렇게 대각선으로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어요. 내 동생들 다 그랬어요. 그게 스물일곱부터 시작해서 정확하게 마흔일곱 살에 없어졌으니까 거의 20년간 동향조사를 당한 거죠.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먹고살 길이 있으면 천리만리 다녔답니다. 공장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주머니에 날카로운 침이 나온다는 ‘낭중지추’라고 하죠? 난 낭중드라이버였어요.(웃음)”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엔 유독 노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노동자라 부르기도 어려울 만큼 힘없는 사람들. “밀고 끌고 당기다.” 그가 이번 전시회 제목으로 처음엔 이 말을 생각했다 한다. 이렇듯 자신에게 힘든 삶을 안겨준 부모를 원망한 적은 없었는지 물었다. 

"그냥 그런 줄 알았어요. 우리 집은 빨갱이인데요 뭐.(웃음) 참 오랫동안 생각해봤지만 한 번도 원망을 안 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그저 그게 아버지 어머니의 시대였고, 두 분 다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생각해요."  

 

밀다

박진수 <밀다> 2015作 ⓒ박진수 

 

원망한 적은 없어도 생채기는 남아 있었다. 어딜 가도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던 버릇은 나이 들어도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건 병적인 거 같아요. 어렸을 때 윽박질러놓으면 사람이 어디 가서 기를 못 펴요. 지금 내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도 신기해요. 통 어디 가서 입도 뻥긋 안 하고 살았어요. 나는 살면서 좌측통행도 한번 안 어겼답니다. 지킬 거 다 지키고, 새치기 한번 안하고 어딜 가든 늘 줄 서 있고. 근데 어느 날 대통령이 바뀌니까 우측통행하라고 해서 얼마나 당황했는지.(웃음)” 

 

대통령이 바뀐다는 것은 비단 우측통행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2006년, 대한민국 정부는 어머니 이효정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했다. 그때 어머니 나이가 93세. 그렇게 ‘독립유공자’로의 삶을 4년 누린 후 세상을 떠나셨다. 시대와 함께 그 역시 변화했다. 나이 오십이 다 되어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와 대화를 하면서 독서량이 상당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냥 서점에 가서 닥치는 대로 책을 사서 혼자 읽었어요. 아마 87년 무렵부터였을 거예요. 『전환시대의 논리』도 그때 읽었어요. 부모님의 시대와 나의 삶을 해석하는 힘을 키울 수 있었죠. 

 

되찾은 봄   

독서 외에도 그의 삶을 지켜준 건 그림이었다. 먹고 사느라 바빴던 시절에도 늘 작은 수첩에 드로잉과 스케치를 하던 그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게 된 건 나이 육십이 되고부터였다. 

“그때 내가 운영하던 작은 주물공장을 정리했어요. 돈 받을 것도 많았지만 이러다간 평생 돈 버는 데 매달려서 아무것도 못 할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아내에게 공장 정리한 돈을 주고 이제부터 난 그림 그리겠다고 했더니 좋다, 그리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때부터 계속 그림을 그렸죠. 개인전도 몇 번 했어요. 그런데 늘 이사를 다녀서 뭐 남은 게 없어요. 난 요즘 참 행복해요. 한번은 누가 나보고 물었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동안 언제가 가장 좋았냐고. 그래서 난 지금이라고 그랬어요. 지금 이때가 가장 좋다고. 사람들하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고, 오로지 그림만을 그리며 살 수 있으니까.” 

 

어머니가 독립유공자 인정을 받게 된 것, 그림을 원 없이 그릴 수 있게 된 것 말고도 그가 세상이 바뀌었음을 느낀 건 또 있었다.  

“촛불시위 할 때는 두 번 참여했어요. 그런데 길 한 가운데로 같이 나가지 못하고 바깥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어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더라고요. ‘와, 세상이 이렇게 바뀌는구나. 이 힘은 뭔가.’ 그렇게 촛불 하나 들고 길가에 서 있었는데…. 왜 나는 그 가운데로 못 끼는지 모르겠더라고요. 항상 그렇게 밖에서 서 있었어요. 근데 뭐라고 할까, 감동이라고 할까. 저 밑바닥에부터 가라앉아 있던 뭔가가 올라와요. 올라와서는…거기서 그렇게 울었어요.”

 

그의 눈이 붉어진다. 얘기를 듣는 나도 울컥 목이 멘다. 그렇게 그는 한참 동안 광화문 한켠에 서서 지난 세월의 묵은 때들을 덜어냈다. 그리고 올해 초 참여연대 회원이 되었고 지금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전시를 앞두고 있다. 

“회원이 되니 자부심을 느껴요. 나도 참여연대 저 끄트머리에 한 발이라도 걸쳤다는 자부심.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누가 참여연대가 뭐냐고 물으면 참여라는 건 이런 거고, 연대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저런 거라고 얘기해주고 싶은데 아직 공부가 덜 돼서.” 

 

그의 전시회 제목은 ‘시골의 노인이 꽃을 꺾어드니 온 세계가 봄이로다.’ 오랜 세월 돌고 돌아 과연 그의 세계에 봄이 온 것일까. 그에게 참여연대에서 함께해보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었다. 

“언제 참여연대 사람들과 같이 밖에 나가 그림 그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길을 가는 데 길동무가 있어야 해요. 길동무가 없으면 사람이 금방 지쳐요. 다리 아프다고 좀 앉고 싶다고 앉으면 그냥 거기 주저 앉아버려서 못 일어서거든요. 그렇지만 동무가 있으면 “야, 해지기 전에 좀 더 가자 하며, 서로 끌고 밀고 당기면서 가잖아요. 그래서 동무가 필요한 거예요. 참여연대가 가는 길이 바로 그런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 그리는 얘기에 그의 표정이 금세 밝아진다. 마치 18세 소년으로 돌아간 듯 형, 선, 색에 대한 이야기, 색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코 ‘쉰 음식처럼 시큼하고 맛이 간’ 이야기가 아니라 싱그럽고 화사한 봄꽃 같은 이야기다. 여든의 나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따뜻한 봄을 맞이하고 있는 그의 전시가 기다려진다. 

 

 

 

 

 

 

수, 2018/05/02- 11:50
35
0

살아남은 광주 시민군,
홍기일

글. 권경원 다큐멘터리 <1991, 봄> 감독 

 

 

“사진이고 뭐고 없어요. 가져가면 돌려주지를 않아.”

통화할 때마다 듣기만 하던 분이 세 번째 통화 만에 자신의 말을 툭 꺼내셨다. 많이들 다녀갔지만, 가져간 자료는 돌아오는 법이 없더라는 그녀의 말에는 오랜 세월 뱉어내지 못한 그녀의 마음도 함께 담겼다. 그녀는 1991년 5월 18일 분신했던 노동자 이정순의 동생 이옥자였다. 제작을 결심한 때부터 ‘뵙기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인터뷰이였는데, 인터뷰는커녕 고인의 사진 한 장 얻을 수 없는 사정이었다. 

 

두 해가 지나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드린 인터뷰 요청에도 답을 듣지 못했는데, 이틀이 지나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려오씨요.” 한달음에 찾은 곳은 순천 죽도봉이었다. 그녀의 언니가 남긴 어린 시절 사진의 배경에도 죽도봉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순천 동천이 흐르고 있었다. 촬영을 간 날은 한여름이어서 매미 소리가 요란했다. 매미 소리와 말소리가 뒤섞여 잘 들리지 않을 것 같아 망설이고 있던 차에 이옥자 씨가 말했다. “우리도 우리지만 기회되믄 홍기일이란 사람의 이야기도 감독님만큼은 알았으면 하요.” 

 

동천

죽도봉에서 보이는 순천 동천강

 

스무살의 광주 청년, 홍기일

홍기일은 19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 만 스무 살의 청년이었다. 나가면 죽는다는 부모의 만류에도 한사코 광주 시내로 나갔다고 현재 여든일곱의 노모인 조창님 씨는 증언한다. 저간의 사정은 자세히 전해지지 않으나 그는 광주의 살육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총상을 입었던 그는 화순에 있는 고모 집에서 1년 동안 약국만 다니면서 가료(加療)를 했다고 한다. “껍데기가 벗겨져 부렀어요.” 당시 그의 왼쪽 종아리 피부는 벗겨져 있었는데, 그 정도 상처라면 1년 동안 숨어서 치료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당신의 남편에게만큼은 그 모든 일을 비밀에 부쳤다. ‘아들은 일하러 갔다’고 그렇게만 일러두었다. 남편뿐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1985년 8월 15일, 광주 전남도청 앞

광주 학살의 원흉이 최고 권력을 누리는 동안, 홍기일은 건설 일용노동자로 자신의 삶을 살았다. 1985년은 그가 사우디에서 미장공으로 일한 뒤 귀국한 해였다. 그해 8월 15일 12시가 넘어 광주YMCA 앞 버스승강장에 서 있던 한 사람이 유인물을 나눠주던 청년을 목격한다. 

 

무심결에 받은 종이를 들고만 있을 뿐 펼쳐볼 생각 없는 덥고 나른한 낮이었다. 그러다가 하얀 연기 덩어리가 무슨 소리를 지르며 도로를 지나는 것이다. 갑자기 놀라움으로 순식간에 휘둥그러움을 뒤로 하고 여러 소란이 일기 시작하였다.

- 2009.8.17. <나주신문> 독자투고 중

 

홍기일은 광주 YMCA 앞 차도에서 구호를 외치고 ‘8.15를 맞이하는 뜨거움의 무등산이여!’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뿌린 뒤,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채 동구청 쪽을 향했다. 그의 노모는 그가 분신하기 며칠 전부터 수건을 자꾸 빨았다고 했다. 여러 장의 수건에는 거뭇거뭇한 것이 묻어 있었는데 며칠 동안 그 일이 반복되었다고 했다. 노모는 그것을 유인물을 찍어내느라 그랬다고 추측한다. 

 

85년 당시의 인쇄기는 복사기가 아니라 등사기가 보편적이었다. 등사원지 한 장으로 수백 장 정도를 인쇄할 수 있는데, 원지에 철필로 글씨를 쓰는 시간이 꽤 걸리는 데다, 원통에 원지를 붙이는 윤전식도 아니고 수동식 등사기였다면 종이를 한 장씩 밀어내고 제친 다음 다시 밀어야 하는 매우 불편한 인쇄기였다. 그는 알고 지낸 누군가에게 부탁하여, 등사기를 며칠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고,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오직 혼자만의 노동으로 찍어 냈던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가 아니었던 그는 그만큼 시간도 걸렸을 것이고 여기저기 묻은 잉크도 홀로 닦아내야 했을 것이다.

 

홍기일

 노동자 홍기일의 모습 

 

8.15를 맞이하는 뜨거움의 무등산이여!

그의 유서에는 80년 광주의 기억이 새겨져 있었다. “그토록 울부짖으며 부르짖던 민주가 자유가 뜨거움의 이름으로 5년이 흐른 이 시점에서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이 현실에 무등을 보기가 부끄러울 뿐입니다.” 가족에게 남긴 유서에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아버님 누군가 누군가가 우리 모두가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빈부의 격차를 떠나 산다는 의미의 지혜가 이처럼 허무하게 느껴지는 현실에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고 봐야 한다는 여러 사람들의 생각에 폭탄을 터뜨리기 위해선 성냥이 필요합니다.” 

 

그가 분신한 시점은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 한가운데였다. 그가 병상에 있었던 일주일 내내 경찰이 상주했다. 경찰과 타협 말라는 그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장례 절차는 경찰의 주도하에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돌이켜보면, 이정순의 동생 이옥자 씨와의 인터뷰가 있던 날도 여름 한가운데였다. 그녀는 언니의 알뜰한 삶을 회상할 때는 또렷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지만, 유가족으로서의 고립된 삶에 대한 이야기에 다다르자 말을 멈추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촬영에 가시 같았던 매미 소리만이 그녀의 흐느낌을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수, 2018/05/02- 11:44
44
0

박근혜 씨와
김지영 씨들

 

글. 류진희 성균관대 강사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했다. 탈/식민 서사, 장르, 매체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매체/장르/언어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관심 있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소녀들』,『그런 남자는 없다』를 같이 썼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에서 예정된 파국으로 

지난달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졌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불법수수 및 공천개입 관련 재판이 계속되겠지만, 작년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 1여 년 만에 비로소 한 매듭이 지어진 것이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숨죽인 침묵을 뚫고 터져 나온 환호는 국가의 오작동을 멈추고 스스로를 주권자로 위치시키는 선언과도 같았다.

 

그런데 수천 자에 이르는 탄핵소추의결서와 탄핵결정문, 그리고 구형논고에 매번 적시되던 ‘헌법수호의 의지’는 정작 피고인 박근혜 당사자에게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오로지 그의 최후 의견서에는 자신은 국가와 국민만 생각했을 뿐이라는 선언만 반복된다. 위임받은 권력으로서 대통령을, 애민정신 충만한 위정자로 이해하는 박근혜는 그렇기 때문에 시대착오적인 구시대의 유산으로 처분된다. 그가 직선제 개헌 이후 차떼기로 상징되는 부정부패 등 기존 정치의 위기를 발판으로 삼아 첫 과반을 득표한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망각된다. 

 

무엇보다 박근혜는 동북아 최초의 여성대통령이었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은 여성 이슈를 다른 당이 적극적으로 선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음이 이미 수차례 지적됐다. IMF 이후 경제성장 제일주의라는 신자유주의 정언 명령이 개발독재 정권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되살렸고, ‘여성’ 박근혜는 이를 덜 노골적으로 보이게 하는 알리바이였다. 아버지처럼 경제를 살리겠지만, 독재를 하지는 않겠지 등이 그에게 표를 던진 이유였다. 돌이켜보건대 박근혜의 당선은 박정희 동상에 절하는 어버이들 때문만이 아니었다. 여성이슈를 해일  앞의 조개나 공작쯤으로 치부한 채, 아파트 한 채로 앙상하게 남은 가부장 중심의 가족을 유지하려는 욕망들 때문이기도 했다.

 

‘82년생 김지영’의 왜곡된 변주 

실로 1987년 민주항쟁과 1997년 외환위기가 각각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로 교차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1997년, 1994년, 1988년 시간을 역진하며 인기리에 그려냈듯, 2000년대 직전의 시기는 그나마 좋았던 시기로 문화적으로 재현됐다. 기대할 수 없는 사회안전망을 천방지축 ‘개딸’들의 첫사랑 찾기라는 가족재생산 로맨스로 치환한 것이다. 

 

최근 여성 아이돌까지 읽었다는, 무시무시한 페미니스트 교본 『82년생 김지영』은 그 낭만화된 시대에 대해 여성 당사자가 각종 사건과 통계를 촘촘히 활용하여 정색하는 이야기이다. 지난 몇 년간 여성차별은 훨씬 교묘해졌고 여성혐오는 날로 기승을 부렸으며, 박근혜 정부의 양성평등 기조의 일가정양립 정책은 허구임이 증명됐다. 연애, 결혼, 출산은 남성에겐 성취해야 할 정상성의 표지이지만, 여성에게는 비정상성을 촉발하는 원인인 것이다. 

 

물론 ‘82년생 김지영’ 씨의 낯선 얼굴에 ‘74년생 유시민’ 씨나 ‘79년생 정대현’, ‘90년대 김지훈’ 씨까지 힘들다고 자못 진지하게 대거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김지영’ 씨의 내일을 신혼부부 주택 공급이나 국공립 어린이집 신청, 그리고 찾아가는 산후도우미 서비스로만 제시하려는 것이다. 이는 최근 논란이 된 서울시의 한 홍보물에 나타난 표현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성별화된 각 세대의 얼굴이 등장하고 고정된 성역할에 따른 그 세대의 과제가 제시된다. 보육과 양육이 초저출산 시대에 중요한 사안이기는 하나, 그것이 여성 이슈의 전부인양 말해져서는 곤란하다. 더군다나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허리 계층과 생산가능 청년인구의 모델로는 정확히 남성이 제시되고 있다. 이 구도에서 가족을 경유하지 않는 단독자로서 여성 시민과 청년 여성은 보이지 않는다. 

 

서울시포스터

지난 3월, 서울시의 세대별 맞춤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포스터는 성인지 관점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곳엔 늘 여성이 있었다

강조컨대 여성 정치를 세습적 권력으로서의 여성 대통령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완성으로서 여성 유권자로 논의했다면 대통령 박근혜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정희-박근혜’ 카르텔(Kartell)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절삭되고, 여전히 남성정치인은 자신이 스트롱맨(Strongman) 혹은 성군(聖君)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여기에 이화여대 시위를 비롯해 페미존(Femi-zone) 행진 등 여성들의 투쟁은 항쟁의 도화선이나 격발지로 강조되지 못하고, 하나의 에피소드로 삽입되기 일쑤다. 분명 82년생 김지영 씨는 스무 살 대학 입학한 그해 주한미군 장갑차 압살사건의 희생자 여중생 미선과 효순을 애도하는 작은 불꽃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반대 집회 때 쏟아져 나온 ‘촛불소녀’에 질세라 각 커뮤니티의 깃발을 들고 도도히 등장했던 ‘배운녀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진짜 어디선가 살고 있을 김지영 씨들도 2000년대 이후 헬조선의 낮과 밤을 고스란히 견뎌왔다. 2015년 봄, 흉흉한 메르스 정국에서 메갈리아 미러링에 포복절도하고, 2016년 봄,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라는 포스트잇에 고개를 주억거렸으리라. 그리고 우리도 제 몫과 제 목소리를 가진 시민이자 청년이라고 함께 외쳤다. 2017년 봄, 최초의 여성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하라는 시위행렬에 여성들도 있었다. ‘여성’ 대통령을 지지하겠다는 여성뿐 아니라 여성 ‘대통령’을 비판해야 한다는 여성들이 모두 있었다. 

 

이제 박근혜 전 대통령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비운의 영애도, 마땅히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할 국가 행정부의 수반도 아닌 자연인 박근혜 씨가 되었다. 그 역시 한 명의 시민으로 법률적 권리와 의무를 충실히 인정받고 실천하길 바란다. 마찬가지로 소설에선 차마 드러나지 않았던 김지영 씨들의 정치적 의견을 더 많이, 더 크게 듣고 싶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단지 한 사람으로 구현되지 않고 언제나 지향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그 과정에서 실질적 성 평등은 개헌 논의를 비롯해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더 높이는 방향으로, 강력하게 요구돼야 한다. 2018년 봄, 다시 몸이 욱신거리고 입이 달싹거리는 계절이다. 

 

수, 2018/05/02- 11:40
4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