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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사건의 정치 ― 재생산을 넘어 발명으로』(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지음, 이성혁 옮김)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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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사건의 정치 ― 재생산을 넘어 발명으로』(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지음, 이성혁 옮김) 출간되었습니다!

익명 (미확인) | 토, 2017/11/11-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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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정치

La politica dell'evento

재생산을 넘어 발명으로

 

균형(정치경제학)과 통합(뒤르켐), 재생산(부르디외),
대립(맑스주의), 경쟁(다위니즘), 평등(랑시에르)을 넘어

생성변화, 발명, 창조, 특이화의 사건을 사유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지은이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  옮긴이  이성혁  |  정가  19,000원  |  쪽수  332쪽
출판일  2017년 10월 31일  |  판형  신국판 (139*208) 무선 |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도서분류  아우또노미아총서 57  |  ISBN  978-89-6195-170-8 93300

 

 

현대의 저항 정치는 ‘시-예술’적인 것과의 삼투작용 속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더욱 사건적인 성격을 띠어가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저항 정치는 시적 상상력이 더욱 요구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능성의 발명으로부터 정치의 가능성을 사고하고 있는 『사건의 정치』는,
현대의 저항 정치가 가지고 있는 시적이고 예술적인 성격을 적실하게 드러내고 있는 책이다.

 

 

『사건의 정치』 간략한 소개

 

이 책에서 랏자라또는 현대 사상의 급진적 정치성을 되살리면서 현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권력에 저항하고 사회를 변혁하는 길을 모색한다. 그는 들뢰즈/가타리푸코 등의 급진적인 현대사상을 바탕으로 바흐친빠졸리니, 라이프니츠타르드와 같은 이들의 사상을 재평가하고 ‘구제’하며 현실화한다.

랏자라또는
타르드의 ‘신모나드론’에서, 미시와 거시의 영역을 횡단하면서 사회의 변화를 사유할 수 있는 개념들과 방법론을 찾아낸다. 이 ‘모나돌로지’는 사회와 개인, 전체와 부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를 구조주의와는 다르게 사고할 수 있는 길을 열며, 최근 논의되고 있는 ‘정동이론’을 심화시킬 돌파구를 마련한다.

랏자라또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는 발명과 창조가 이루어지는 자신의 외부를 포위·감금하고 포획하여 사유화함으로써 부를 축적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사건의 정치’란, 자본과 권력에 의해 포획된 발명의 사건성과 그 가능성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저항과 함께 차이화를 증폭하여 현대 사회의 통제와 관리를 넘어서면서 ‘구성 권력’의 힘을 증대하는 정치다.

랏자라또는 다수자의 척도로부터 탈주하고 차이를 생성하면서 자신의 삶을 자유로이 구성하는
‘소수자-되기’에서 대안적인 정치적 주체화를 찾아낸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랑시에르의 ‘평등의 정치학’은 다수자의 척도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있으며 평등의 요구를 넘어서서 전개되는 차이화의 운동을 생각하지 않는다. 랏자라또는 평등의 쟁취와 함께 차이의 생성을 추구하는 정치학을, 즉 ‘평등의 정치학’을 넘어서 ‘소수자의 정치학’ 또는 ‘차이의 정치학’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사건의 정치』 출간의 의미

 

이 책의 저자인 랏자라또는 정치철학자 안또니오 네그리의 제자로서, 잡지 『뮐띠뛰드』(Multitudes)지의 창간 발기인이자 편집위원이며, 반(反)WTO·반G8 운동과 (이 책에도 등장하는) 엥떼르미땅이나 불안정생활자(프레카리아트) 등의 연대조직 활동에 참가하는 등 실천적인 지식인이기도 하다. 최근 그의 책 『부채인간』과 『기호와 기계』의 한국어판 출간으로, 랏자라또는 한국에서도 꽤 알려져 있는 현대 사상가이다. 2004년에 원서가 출간된 이 책 『사건의 정치』는 랏자라또의 이론적·철학적 바탕을 다진 책으로 평가받는다.

랏자라또의 책이 가지는 미덕 중 하나는, 그의
이론적 탐구가 항상 사회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성실한 대응 속에서 그 사건을 이해하고, 급진적인 입장에서 대안적인 전망을 찾아나가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도 역시 그러한데, ‘사건의 철학’은 이 책의 서두에서 사건의 예로서 소개되고 있는 1999년의 ‘시애틀 봉기’에서 촉발되어 사유되고 있다. 랏자라또는 시애틀 봉기라는 사건에 대해 사유하면서, 주체의 철학은 더 이상 이러한 사건들이 열어 놓는 정치적 시공간을 사유하거나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고 평가한다. 이에 그는 사건의 특이성에 대해 사유해 왔던 라이프니츠와 가브리엘 타르드의 모나드론, 미하일 바흐친의 대화주의의 의의를 들뢰즈의 잠재성의 철학을 경유하여 재조명하고 재구성한다.

또한 그의 정치 철학과 실천 이론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변동과 긴밀한 관련을 맺는다. 포스트포디즘과 신자유주의로 특징지을 수 있는 현 자본주의에서는, 예전과는 다른 양상의 사회가 펼쳐지고 있다. 사회적·경제적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배제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노동에 관한 여러 규제가 없어지면서 비정규고용이 확대되고, 홈리스, 워킹 푸어 등이 문제로 나타났다.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우울증에 빠지거나 과로로 인한 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분리되어 협력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기존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운동은 변화된 자본주의 아래에서 보수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 『사건의 정치』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인지적 노동과 다운사이징, 고용의 유동화를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포디즘 시대의 현 자본주의에서, 이 시대를 극복할 대항책은 기존의 노동운동의 연장선상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다.

변화된 자본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이론을 모색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과제로, 근본적인(radical) 사유가 필요하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철학적 논의로 채워지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점이야말로 이 책이 지닌 장점으로, 이 책이 노동문제에 관한 일반적인 책이나 아카데믹한 철학서와는 그 유를 달리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책의 앞부분인 1~2장에서 전개된 철학적 담론은 3장과 4장의 현대 사회와 문화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 그리고 5장에서의 프랑스에서 전개된 ‘엥떼르미땅’의 투쟁이 지닌 현대적 의의의 도출과 ‘차이의 정치학’에 대한 논의와 긴밀하게 결합된다. 그의 책은 현대사회에서 나타난 사건들에 대한 이론적 응답이며 그 사건이 열어놓는 지평에서 대안을 찾아가는 작업의 산물이다.

사건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건의 철학에 대하여


랏자라또 사상의 철학적 바탕을 가장 잘 보여준 부분은 1장 「사건과 정치」이다. 1장은 주로 라이프니츠와 타르드의 모나드론, 그리고 들뢰즈의 철학을 통해 ‘사건’과 ‘가능성’에 대해 철학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랏자라또는 사건의 철학을 ‘헤겔-맑스’의 전통이 제시한 ‘주체의 철학’과 선명하게 대조하면서 설명한다. 주체의 철학이 동일성의 철학이라면 사건의 철학은 차이의 철학이다. 노동을 핵심 개념으로 삼고 있는 주체의 철학에서 가능성은 결국 동일성의 반복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된다면, 사건의 철학에서 가능성은 차이의 생성과 반복으로 인식된다. 주체의 철학은 사건을 ‘객체’로서 인식하여 주체의 동일성으로 회수하고 그 사건의 차이성이 지닌 역능을 박탈한다. 이와는 달리 사건의 철학은 사건이 열어놓는 시공간에서 그 차이성을 더욱 가동하여 새로운 일관성을 구축해나간다.

랏자라또의 사상에서
사건이란, 계획된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것, 조리에 맞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한 것,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것이다. 또한 사건은 균질적이고 정지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것이 서로 혼합된 동적인 공간에서 일어난다. 균질적이고 정지된 공간으로 보여도, 거기에 이질적인 것이 혼입된다면 혼합에 의해 예상 밖의 사건이 일어나면서 공간 전체가 변모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건은 앞으로 어떠한 꽃을 피울지 아무도 모르는 식물의 종자와 비슷하다. 그 종자는 모두가 이종혼교적(異種混交, hybrid)이고 각자가 고유의 미래의 꽃 ― 바꾸어 말하면 고유한 가능세계 ― 을 자신 안에 숨기고 있다. 사건을 그와 같이 포착할 때, 우리들은 ‘가능태’로부터 ‘현실태’로의 이행으로서 세계를 포착하는, 예전의 자연철학 계보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근세 말의 철학자
라이프니츠개개의 사건(모나드)이 내포하고 있는 무수한 가능세계신의 은총에 의해 ‘유일한 세계’ 안에서 조화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근대가 되면, 이번에는 국가가 그때까지의 신을 대신하여 초월적인 입장에서 개개의 사건(주체)을 총괄하고 무수한 가능세계를 ‘규율훈련’에 의해 균질화하고, 관리하게 된다. ― “여러 규율사회는 라이프니츠의 신처럼 작용한다.” 푸코의 ‘생명권력론’이 보여주듯이, 탄생, 노화, 병, 죽음이라는 인간의 삶에 얽혀 있는 사건(결국 ‘삶’은 사건이다)은 권력에 의해 관리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또 노동은 계획에 의거하여 ‘유일한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본질적 수단이 된다.

통제사회의 도래와 인지정치


19세기 말부터 진행된 미디어와 교환수단의 급속한 발달은 그 이전과는 이질적인 노동과 사회의 상태를 부상시켰다. 19세기 말의 사회학자 타르드는 거리를 둔 사람들 사이의 ‘뇌의 협동’으로서의 노동과 미디어를 통해 사고하는 다양한 ‘공중’들의 등장을 밝혔다. 그와 같은 세계는 국가와 당이라는 초월자의 계획에 의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집합화된 뇌’가 산출하는 사건(발명)에 의해 변화되는 세계이며, 무수한 가능세계가 공립(共立)하는 세계이다. ‘유일한 세계’에 입각한 권력은 그와 같은 가능세계의 증식을 막아야만 한다. 그때 미디어는 ‘유일한 세계’와 ‘무수한 가능세계’ 사이의 투쟁의 무대가 된다. 즉 그것은 ‘단일언어주의’와 ‘복수언어주의’ 사이의 투쟁(바흐친)이다. 랏자라또는 이러한 상황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정치를 ‘인지정치’라고 이름붙이고, 독자적인 분석을 행한다.

그와 같이 새로이 등장한 사회의 잠재성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변화하여 공장노동의 모델이 기능하지 않게 되고, 권력의 움직임이 외재적인 작용양식(규율훈련)에서 내재적인 작용양식(통제)으로 이행하면서 뚜렷하게 현재(顯在)화했다. 이러한 시대 변화에 맞추어 자본주의는 노동양식을 크게 변화시켰지만(포디즘에서 포스트포디즘에로), 이에 대해
노동운동 쪽은 변함없이 공장노동 모델에 의거하면서 예전의 자본주의와의 타협의 산물(복지국가)에 그대로 매달려 있다는 문제를 갖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이미 사건을 ‘포획’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무력화하는) 것에 비해 노동운동 쪽은 여전히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랏자라또의 진단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기업은 무엇을 착취하는가?

랏자라또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기업’을 공장과 구별한다. 기업은 미리 가능세계를 생산함으로써 ‘대안은 없’는 세계를 창출하여 이를 통해 착취를 행한다. 다시 말하면, 기업은 자신이 만든 가능세계만이 가능하며 다른 세계의 도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도록 사람들을 변조하고, 그들이 그 한정된 세계 속에서만 욕망하게 만들며, 그럼으로써 착취의 우주를 형성한다.(그래서 이에 대항하여 대안세계화 운동은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구호를 내세웠다.) 가능성을 한정하여 절취하는 작금의 자본주의는 부채로 운영되는 현 금융 자본주의 시스템과 직결된다. 이는 이제 현대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현재 시간만을 착취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의 시간을 착취함으로써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랏자라또는,
현 자본주의가 마이크로소프트사나 구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뇌의 협동’이 형성한 공통적인 것을 절취하면서 가치를 축적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기업보다 먼저 존재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 외부에서 형성되는 집단적 뇌의 공통적인 발명과 창조이다. 기업은 이를 통해 창출된 공통재를 포획하여 사유화하고, 발명되고 있는 가능성을 회수하여 가치 회로 속으로 구깃구깃 집어넣는다. 이에 따라 이루어지는 가능성의 봉쇄란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한 ‘외부의 감금’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과 기업은, 발명과 창조가 이루어지는 자신의 외부를 포위·감금하고 포획하여 사유화함으로써 부를 축적한다. 사건을 발명하고 구성하는 정치를 생각하는 랏자라또에게
‘사건의 정치’란, 이렇듯 자본과 권력에 의해 포획된 발명의 사건성과 그 가능성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것, 그러니까 저항과 함께 차이화를 증폭하여 현대 사회의 통제와 관리를 넘어서는 동시에 ‘구성 권력’의 힘을 증대하는 것이다. 정치에서 가능성의 발명과 그 사건성을 증폭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실험이 필요하다.

‘사건론적 전회’ ― 바흐친의 대화이론에 대하여

랏자라또에 따르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흐친의 사건론적 전회’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바흐친에게서 모든 발화행위는 사회적 행위이다. 바흐친에 의하면, 언어행위(즉 ‘발화행위’)와 분리된 낱말과 문법형식, 명제는 단순히 잠재적인 의미작용에 봉사하기 위한 ‘기술적 기호’에 불과하다. 이러한 언어의 잠재성은 언어행위에 의해 개체화되고, 특이화되며, 현실화되는(달성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들을 또 하나의 존재영역, 즉 ‘대화’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한다. 언어를 구성하는 단어와 명제를 하나의 완전한 언어행위로, 즉 하나의 ‘전체’로 변용하는 것은 전(前)-개체적인 정동의 힘, 논리-정치적인 힘이다. 그것은 언어의 바깥에 있으면서 언표행위의 안쪽에 있는 힘이다.

모든 언표행위는 그 속에 이해와 ‘능동적 책임’, ‘입장표명’, ‘관점’, ‘적극적 평가’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한 내용은 화자가 그때 기대하고 있었던 것과는 무관하게 야기된다. 이와 같은 대화성의 개념을 사용하여 우리들은 공공(公共) 공간의 변천을 생각할 수 있다. 봉기와 같은 사건에서, 우리들이 발견하는 것은 바흐친이 기술한 것처럼 전략적 행위이다. 즉 한편으로 언표는 다른 언표와 서로 대립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들은 서로 보완하고 기댄다. 바흐친의 대화주의는, 언표는 그 자체가 다른 언표에 대한 응답임을 밝힌다. 그것은 다른 언표와의 차이를 분명히 하면서 다른 언표를 확인하고, 다른 언표에 의거하면서 공공 공간 안으로 파고든다. 그래서
언표행위를 언어 안에 폐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포스트사회주의 정치운동 ― 평등의 정치를 넘어 차이의 정치로


들뢰즈/가타리의 개념인 ‘소수자’는 어떤 신원에 국한되기보다는 다수자의 척도로부터 탈주하면서 다른 존재로 변화하는 존재, 생성 변화하면서 운동해나가는 존재를 지칭한다. 흑인이나 여성 중에도, 어떤 한계에 부딪칠 수는 있겠지만 다수자가 되어버린 이가 있을 수 있다. 그가 어떤 신원이든 사회의 척도에서 벗어나면서 자신을 생성 변화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는 ‘소수자’에 합당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랏자라또는 현대인들이 다수자에 편입되기를 욕망하면서 다수자의 척도에 자신의 삶을 맞추고 스스로 통제하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그것은 그가 여성이든지 동성애자든지 흑인이든지간에, 다수자에 종속된 삶을 사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그 척도로부터 탈주하고 자신의 삶을 자유로이 구성하는 ‘소수자-되기’에서 랏자라또는 대안적인 정치적 주체화를 찾는다.

‘평등의 정치’를 주장하는 랑시에르의 논의를 랏자라또가 비판하고 있는 것은 이와 관련된다. 불평등의 사회에서 평등의 획득은 중요하지만(라자라또가 평등을 위한 운동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몫이 없는 자가 평등하게 몫을 요구한다’는 랑시에르의 ‘평등의 정치’는 다수자의 척도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평등과 함께 차이화 하는 운동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랏자라또는 평가한다. 그는 평등의 권리를 넘어 차이화의 생성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모범적인 예로 다나 해러웨이나 로지 브라이도티의 페미니즘을 들고 있다. 그 페미니즘들은, 남성이라는 다수자의 거울로서의 여성을 남성과 평등한 위치로 끌어올리는 것을 넘어서, 다수자의 척도를 형성하는 자기동일성의 논리를 해체(이는 ‘여성’이라는 주체를 해체하는 것이기도 하다)하고 차이를 생성하는 주체를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랏자라또는 평등의 쟁취와 함께 이러한 차이의 생성을 추구하는 정치학, 즉 ‘평등의 정치학’을 넘어서는 ‘소수자의 정치학’ 또는 ‘차이의 정치학’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랏자라또는
‘사건’에 기반한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사건들을 어떻게 내재적인 방식으로 결부시킬지를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비록 힘든 일이라고 해도 복지국가의 재건과는 다른 대안을 탐구해야만 한다. 복지국가 시대가 다양체로서의 소수자를 단일성으로서의 다수자에 복종시키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저자가 이론적으로 중시하는 것은 라이프니츠 이래 ‘사건의 철학’에서 과제로 되고 있는 ‘조정’(調整) 개념, 특히 들뢰즈의 ‘조정’ 개념이다. 그리고 현대의 구체적인 ‘조정’ 시도로서 저자는 프랑스에서의 엥떼르미땅과 불안정생산자들의 ‘연대조직’을 들고 있다.

한국에서 『사건의 정치』 출간의 의의


한국의 촛불 운동이 보여주었듯이 사회의 심대한 변화는 아무도 예측 못한 사건을 통해 벌어진다는 것, 이 사건에 어떻게 대응하고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고 실효화하는가가 사회 운동의 미래에 중요한 열쇠가 되리라는 것은 노동운동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의 상황 전개에서도 보았듯이, 사건에 잠재해 있는 가능성의 중요성은 점차 한국사회에서도 커져가고 있으며,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 어떠한 표현을 전개하고 어떠한 행동을 물질적으로 조직하느냐가 사회 변화에 관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건에 대해, 그 사건의 성격을 ‘동일성의 철학’으로 재단하여 대응한다면, 그것은 그 사건이 지니는 잠재성과 가능성을 도리어 협소하게 만들고 특정한 틀에 가두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이 있다. 또한 그러한 틀에 박힌 대응은 사건의 장에서 더 이상 영향력을 가지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건이 가지고 있는 미지의 힘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가능성을 발명하면서 사건의 시공간으로부터 차이를 생성해나가자고 주장하는 이 『사건의 정치』가 뜻 가진 이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활발하게 토론된다면, 이 책은 앞으로 한국에서 전개될 실천적인 이론 담론과 사회운동에 어떤 ‘가능성’(이 책의 핵심 개념이다)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 『사건의 정치』와 새로운 정치의 발명

 

모든 발명은 (위대하든지 사소하든지간에) 사건이다. 그 사건은 그 자체 안에는 어떠한 가치도 포함하지 않지만, 가능태를 새롭게 창조하기에 모든 가치의 전제조건이 된다. 발명은 여러 믿음과 욕망의 흐름 사이의 협동이고, 연결이며, 그들의 흐름을 새로운 방법으로 재편성하는 것이다.
― 1. 사건과 정치, 50쪽

 

생명정치의 기술은 삶에 표적을 두고 있고, 그것은 인류라는 생물 존재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생명정치의 기술은, 병과 실업, 노화와 죽음에 관계하면서 삶을 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통제 기술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삶 (및 생명체)의 개념이다.
― 2. 통제사회에서 삶과 생명체의 개념, 92~93쪽

 

현대 자본주의가 행하는 일은 뇌의 협동의 파괴다. … 자본주의가 공중과 공중의 집단적인 지각 및 지성을 만들어 내는 방식은 완전히 반-생산적으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욕망과 믿음의 방식을 자본가의 가치관이 명하는 주체화 형식에 따르도록 하여 사람들의 주체성을 빈약하고 동질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 3. 기업과 신모나돌로지, 173~174쪽

 

권위에 대한 비판이 사건의 철학과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실천의 전제가 되는 것일까? 권위주의적 발화는 창조를 촉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창조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적 발화(“종교적 발화, 도덕적 발화, 성인의 발화, 교수의 발화 … . 그 발화들은 이른바 ‘아버지들’의 발화이다”)는 우리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자유로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 4. 표현과 소통의 대립, 211쪽

 

현대의 전쟁은 다수자/소수자 장치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측면을 명확히 한다. 즉 모든 인간은 잠재적으로는 소수자이며, 다수자의 사실은 개인의 사실이 아니라는 측면이다. 즉 다수자의 모델은 구체적인 개개의 인간에 관여하지 않는 공허한 모델이지만, 생성변화는 세계 전체와 관련된다.
― 5. 포스트사회주의 정치운동에서 저항과 창조, 301쪽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Maurizio Lazzarato, 1955~ )

이탈리아 출신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1980년대 초에 프랑스로 망명, 파리 제8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 정보기술, 비물질노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율주의 잡지 『뮐띠뛰드』(Multitudes)지의 창간 발기인이자 편집위원이다. 비물질노동, 임금노동의 종말, ‘포스트사회주의’ 운동, 인지자본주의와 그 한계, 생명정치·생명경제 개념 등이 연구 주제이다. 저서 『부채인간』(메디치미디어, 2012)은 한국어를 포함하여 11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2013년 서울 일민미술관의 <애니미즘> 전시회에 시각예술가 안젤라 멜리토풀로스와 함께 작업한 영상 작품 <배치>와 <입자들의 삶>이 전시되었고 작품 소개를 위해 방한하기도 하였다. 저서로 『비물질노동과 다중』(공저, 갈무리, 2005), 『기호와 기계』(갈무리, 2017), 『사건의 정치』(갈무리, 2017), 『부채통치』(Gouverner par la dette, 갈무리, 근간), 『정치의 실험들』(Expérimentations politiques, 갈무리, 근간), 『발명의 힘』(Puissances de l’invention, 2002), 『불평등의 정부』(Le gouvernement des inégalités, 2008), 『전쟁과 자본』(공저, Guerres et capital, 2016) 등이 있다.

 

옮긴이

이성혁 (Lee Seong Hyuk, 1967~ )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세명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2003년 『대한매일신문』 신춘문예 평론부문에 「경악의 얼굴 ― 기형도론」이 당선된 후 현장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불꽃과 트임』(푸른사상, 2005), 『불화의 상상력과 기억의 시학』(리토피아, 2011), 『서정시와 실재』(푸른사상, 2011), 『미래의 시를 향하여』(갈무리, 2013), 『모더니티에 대항하는 역린』(새미, 2015)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이마무라 히토시, 『화폐 인문학』(자음과모음, 2010, 공역)이 있다.

 

 

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기호와 기계』(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지음, 신병현‧심성보 옮김, 갈무리, 2017)

 

들뢰즈와 가따리의 기호론으로 자크 랑시에르,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빠올로 비르노, 주디스 버틀러,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안또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등에까지 걸쳐 있는 언어중심적 정치이론을 비판하면서 물질적 흐름과 기계들의 흐름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기호들을 분석한다. “자본은 기호로 움직인다.”는 가따리의 주장에 근거하여 “오늘날 비판이론은 언어와 재현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고 있는가?”, “오늘날 기호들이 정치, 경제, 주체성의 생산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묻고 이로부터 자본주의 비판을 위한 새로운 이론과 비재현적 주체 이론을 전개한다.

 

『절대민주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7)

 

전 세계적 정치상황과 사회운동에 대한 경험적 분석을 통해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속에서 진동해온 민주주의 논쟁을 절대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지평의 발견과 발명을 통해 한 걸음 더 전진시키려는 것으로 이러한 주제의 단행본으로서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책이다. ‘절대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대선 이후 초미의 관심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는 ‘사회대개혁’이라는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구체화해 나가야 할지를 사유할 개념적 틀과 근거를 제공한다.

 

『예술인간의 탄생』(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5)

 

예술의 일반화, ‘누구나’의 예술가화, 모든 것의 예술 작품화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예술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센세이셔널한 예술종말론들이 유행하고 있다. 어째서인가? 종말로 파악할 만큼 급격한 예술의 위치와 양태변화는 항상 새로운 주체성의 대두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단토, 가라타니 고진, 벤야민 등의 예술종말론들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 나타난 예술적 변화를 예술종말로 파악한 과거의 관점들(헤겔, 맑스)을 산업자본주의에서 인지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다른 맥락에서 되풀이하는 것이다.

 

『인지자본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1)

 

'인지자본주의'는 인지노동의 착취를 주요한 특징으로 삼는 자본주의이다. 우리는 이 개념을 통해서 현대자본주의를 다시 사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문제설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다. 이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금융자본이 아니라 인지노동이 현대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을 가져오는 힘이라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그 노동의 역사적 진화와 혁신의 과정을 중심적 문제로 부각시킬 수 있다.

 

『비물질노동과 다중』(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외 지음, 갈무리, 2005)

 

'신자유주의, 정보사회, 탈산업사회, 주목경제, 신경제, 포스트 포드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응답을 한 권에 엮은 책. '물질노동이 헤게모니에서 비물질노동의 헤게모니'로의 노동형태 변화를 주요 현상으로 지적하고, 비물질노동의 두 축인 정동노동과 지성노동을 분석한 후, '다중'이라는 새로운 주체성의 형성에 비물질노동이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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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x젠더, 재생산을 말하다] 출산을 결정하는 여성, 여성을 결정하는 사회, 사회를 마주하는 장애

 
김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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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한국사회에서 임신과 출산은 인구정책의 기조에 따라서 국가로부터 관리되고 간섭받는 영역이었다. 임신을 중단할 것인가 지속할 것인가의 문제에서도 철저하게 국가가 허용하는 사유와 처벌하는 사유가 나누어져 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성관계와 양육 등의 문제에 대해서 장애를 가진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고민하며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이 활동해왔다. 앞으로 8차에 걸친 연재를 통해서 장애/여성의 재생산권리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연재는 비마이너와 공동게재된다.

나는 남성 시각장애인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공익인권변호사로 활동해오면서 여성의 권리에 관한 구체적인 고민과 활동을 해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런 내가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장애 태아 낙태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임신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장애 태아의 생명권은 서로 충돌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장애계와 여성계가 대립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 상황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기획단에 참여하게 되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vs 장애 태아의 생명권?

임신출산에 대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확보하는 문제에 대해서 장애계의 시각은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낙태에 대한 제한이 사라질 경우에 장애 태아 낙태가 더 쉽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하는 것 같다. 형법에서 낙태를 처벌하고 있음에도 장애 태아 낙태는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중론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산전검사가 건강보험의 지원 아래 시행되고 산부인과에서 비보험 검사도 권장하면서 임신 초기에 태아의 장애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는 늘고 있다. 이 경우 선별적 낙태가 고려되고 시행되기도 한다고 한다. 결국, 장애 태아 낙태가 용이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낙태가 허용될 경우 장애계에는 그나마 있는 제한이 사라진다는 불안함이 있는 것 같다.

직접 차별을 당할 때만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내가 차별을 당하지 않더라도 나와 비슷한 대상이 차별당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시각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태아가 낙태를 당하는 것을 본다면 나는 몹시 씁쓸한 감정을 느낄 것 같다. 장애계에서 장애 태아 낙태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장애를 이유로 한 배제와 거부, 그것과 장애를 가진 태아를 원치 않는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면서 장애 태아가 단지 그 이유로 낙태되지 않도록 하는 묘안이 존재할까. 예전에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많은 여아들이 낙태되었었다. 여아 낙태가 줄어든 것은 낙태를 금지해서라기보다는 남아선호사상이 사라진 영향이 더 크다. 이처럼 근본적으로 장애 태아 낙태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살기 좋은 세상이 와야 한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결국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장애 태아의 생명권은 충돌하는 것인가. 그 사이 접점은 없는가. 내가 존경하는 장애 활동가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위 사진:2007년 5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불구로 태어날 수 있는 태아의 낙태는 가능하다"는 발언에 대한 항의 기자회견 (출처: 오마이뉴스)


여성의 재생산 과정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여성이 아이를 낙태하는 것이 온전히 여성만의 결정일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입고 나갈 옷을 고를 때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묻곤 한다. 하물며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낙태 결정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아마도 여성은 낙태를 결정하기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태아가 장애가 있다고 알려 주는 의사, 그 사실을 공유하는 배우자나 파트너, 고민을 이야기할 가족과 친구 등등. 이때 여성이 만나는 사람들이 여성에게 해준 조언은 여성의 판단에 영향을 줄 것이다. 태아를 낙태했을 때 혹은 낳았을 때 자신이 어떤 사회적 지지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정보와 가능성이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결국, 여성의 낙태 결정은 사실은 여성을 둘러싼 사회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임신, 출산, 육아를 포함한 여성의 재생산은 그 여성을 둘러싼 사회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결정된다. 이는 장애 여성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사회의 지지와 축복을 받는다. 하지만 장애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반대와 우려를 받는다. 심지어 모자보건법 14조는 사실상 장애를 가진 부모의 재생산권리를 제한하는 효과를 가진다.(*) 기획단의 장애 여성 인터뷰에서 시어머니에게 낙태를 종용받은 장애 여성의 사례, 불임 시술을 권유받은 장애 여성의 사례 등을 만날 수 있었다. 장애 여성은 재생산 과정에서도 차별을 경험하고 있었다.

여성의 재생산이 그 여성을 둘러싼 사회와의 상호작용으로 결정됨에도 불구하고 태아 낙태에 대한 비난은 여성 개인에게 집중된다. 낙태에 대한 논쟁의 구도도 여성과 태아의 대립으로 그려진다. 사회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육아에 있어서도 여성의 부담이 큰 편이다. 빙산의 일각처럼 재생산을 둘러싼 사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정점에 있는 여성 개인이 부각된다. 이런 양상은 재생산의 책임을 여성 개인에게 돌리는 억압적인 모습이다. 

태아가 장애를 가졌다는 진단을 받을 때 의사는 태아의 상태를 알리고 대응 방안으로 낙태를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정부에서 장애 태아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는다(오히려 ‘산전 기형아 검사’에 대한 국가 안내에서는 기형아 출산은 고통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도 장애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오히려 장애아 육아의 어려움, 부정적인 면이 부각될지도 모른다. 장애아 육아의 문제는 오로지 그 아이를 낳은 여성이나 그 가족의 몫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그 여성이 낙태를 선택할 가능성은 높을 것이다.

이런 여성의 경우는 장애인이 장애 진단을 받을 때와 비슷한 점이 있다. 내가 처음 안과에서 실명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의사는 눈의 상태와 대응 요법에 대해서만 이야기 해주었다. 내가 시각장애인으로 등록했을 때에도 복지 서비스에 대한 안내는 없었다.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장애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까지 내가 접한 시각장애인은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장애는 온전히 나 개인의 문제, 내 가족의 고민이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몇 년씩 집에 틀어박혀 사는 장애인들도 많다.

문제는 장애에 대한 두려움을 조장하는 사회

장애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듯이 임신, 출산, 육아를 둘러싼 재생산의 문제도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이 만나는 다양한 장벽을 제거하지 않는 것이 사회적 책임을 장애인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이듯, 아무런 사회적 지원 없이 여성에게 아이를 낳아 기르라는 것 또한 사회적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 태아의 낙태 문제 또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장애 태아의 생명권의 대립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장애계와 여성계는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장애인들이 장애를 진단받았을 때 곧바로 장애에 대한 정보와 복지 서비스가 개인에게 맞춰서 제공되는 사회를 꿈꾼다. 마찬가지로 태아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진단받았을 때 그 여성과 가족에게 장애에 대한 정보와 장애아 육아 등 복지 서비스에 대한 안내가 제공되는 사회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사회라면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규정이 없더라도 장애 태아 낙태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장애 태아 낙태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장애아 육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장애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일 수 있다. 무엇보다 장애에 대한 두려움을 조장하는 시도부터 단호히 배척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장애계가 싸워야 하는 대상은 여성이 아니라 장애에 대한 두려움을 조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물론 그 사회에는 여성도 포함되니 여성은 바꾸어야 하는 대상이자 함께 해야 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나는 장애 때문에 불편하다. 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 장애 태아에 대해서도 태어나면 불편하겠지만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모자보건법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② 법 제14조제1항제1호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은 연골무형성증, 낭성섬유증 및 그 밖의 유전성 질환으로서 그 질환이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질환으로 한다.

목, 2015/12/24-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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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6/09/2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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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노자, 사랑과 무위의 철학자


강사 이임찬

개강 2016년 10월 11일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3시 (8강, 140,000원)


강좌취지

노자(老子)는 동양의 정신세계를 떠받치는 세 개의 큰 기둥[儒彿道] 중 하나인 도가 철학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입니다. 따라서 그의 철학에는 도가 철학의 기본적 문제의식과 이상이 원형적 형태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후 등장한 장자(莊子)와 황로학(黃老學)은 각각 노자 철학의 생명론과 정치론을 심화시킨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노자』보다 『도덕경(道德經)』이라는 책이름이 더 유명합니다. 이는 노자가 도(道)와 덕(德)의 문제에 대해 최초로 철학적으로 사유했다는 사실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의 철학에는 자신이 살았던 문명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비판이 녹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전통’, ‘세계[道]’, ‘인간[德]’이라는 창을 통해 노자 무위(無爲)의 철학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노자』보다 노자 철학을 더 잘 보여 주는 해설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가능한 많이 『노자』의 원문(번역문 제공)을 함께 읽으며 노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으려 합니다. 물론 노자 철학에 대한 전체적 이해가 필요한 경우 강의의 방식도 적극 활용할 것입니다.


1강 노자와 『노자』 소개
2강 노자의 전통 비판과 문명의 전환
3강 노자의 인식틀과 철학의 구조
4강 道, 세계에 대한 이해(1): 1장 강독
5강 道, 세계에 대한 이해(2): 40장, 2장 강독
6강 德, 인간에 대한 반성적 검토(1): 欲, 知, 爲
7강 德, 인간에 대한 반성적 검토(2): 38장 강독
8강 玄德, 無爲 그리고 玄同의 이상


참고문헌

1. 이운구 역, 『한비자』(「解老」, 「喩老」), 파주: 한길사, 2002.
2. 이석명 역, 『노자 도덕경 하상공장구』, 서울: 소명, 2005.
3. 임채우 역, 『왕필의 노자』, 파주: 한길사, 2005.
4. 초횡 편, 이현주 역, 『노자익』, 서울: 두레, 2000.
5, 진고응 주해, 최재목, 박종연 역, 『진고응이 풀이한 노자』, 경산: 영남대학교출판부, 2008.
6. 김용옥, 『老子와 21세기』(1, 2, 3), 서울: 통나무, 1999-2000.
7. 최진석,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서울: 소나무, 2001.
8. 김형효, 『사유하는 도덕경』, 서울: 소나무, 2004.
9. 장대년, 김백희 역, 『중국철학대강: 중국철학문제사』, 서울: 까치, 1998.
10. 풍우란, 박성규 역, 『중국철학사(상)』, 서울: 까치글방, 1999.


강사소개

서강대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중국 북경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노자, 장자, 황로학 등을 중심으로 제자백가의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현대 중국 철학』(공역), 『직하학 연구』를 우리말로 옮겼으며, 계간 『삶이 보이는 창』 편집위원이다.


[철학]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 논고』와 『모나드론』 읽기


강사 소서영

개강 2016년 10월 12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7:30 (8강, 140,000원)


강좌취지

이번 강좌에서 우리는 라이프니츠를 대표하는 두 저작, 『형이상학 논고』와 『모나드론』을 함께 읽으며 쉽게 잡히지 않는 라이프니츠의 철학 사상을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형이상학 논고』는 1686년 40세의 라이프니츠가 아르노에게 목록 형식으로 보낸 자신의 철학적 테제를 더 상세히 발전시킨 텍스트입니다. 『형이상학 논고』가 성숙한 라이프니츠 사유의 시작을 보여준다면, 1714년 쓰여진 『모나드론』은 라이프니츠의 말년, 그의 철학적 지향이 도달한 곳에서 그가 이룬 성과를 짧지만 체계적인 논증을 통해 보여주려 합니다. 자연학과 논리학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자신의 형이상학적 논증의 필연성을 보여주려는 『형이상학 논고』에서 단순한 실체, 모나드를 중심으로 완결된 형이상학 체계를 구성하려는 『모나드론』까지 라이프니츠의 사유는 계속 변화하고 발전했습니다. 이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라이프니츠에게 끝나지 않는, 17세기 근대 사유의 형성과 모순을 설명해 줄 그 시기의 철학적 난제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강좌가 급진적 회의론이 태동하던 시기에 라이프니츠는 어떻게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원리적으로 가능하다는 고유한 철학적 낙관주의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낙관주의를 설명하고 보장할 근본적 방법, 근거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을 이어갔는지 배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1강 라이프니츠의 시대 : 시대 배경과 라이프니츠의 철학적 낙관주의
2강 『형이상학 논고』와 『모나드론』의 전반적인 비교
3강 연장 개념에 대한 비판과 실체의 조건
4강 실체적 형상의 문제 : ‘힘’에서 ‘행위’로
5강 개체적 실체의 완전 개념과 모나드 : 완전성, 단일성, 단순성
6강 이유의 원리
7강 신, 질서의 기원과 형이상학의 문제
8강 가능한 최선의 세계, 실존의 의미


참고문헌

고트프리드 빌헬름 라이프니츠, 『형이상학 논고』, 아카넷, 윤선구 역
고트프리드 빌헬름 라이프니츠·앙투안 아르노, 『라이프니츠와 아르노의 서신』, 아카넷, 이상명 역


강사소개

연세대학교 전산학과를 졸업했다. 홍익대학교 철학대학원 미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프랑스 파리 제4대학에서 라이프니츠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철학] 스피노자 『윤리학』(Ethica) 1부 강독


강사 이혁주

개강 2016년 10월 7일부터 매주 금요일 저녁 7:30 (10강, 175,000원)


강좌취지

서양철학사의 위대한 저작을 아무리 좁혀 잡아도 스피노자의 『윤리학』(Ethica)을 제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는 마치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듯 논적들의 용어와 근본 테제를 받아들이지만 “점령군 대포를 점령군 자신을 향해 돌려놓는 것처럼 적의 이론적 요새를 완전히 돌려놓는 방식으로 재배치”(알튀세르)합니다. 이를테면 “신에 관하여”라는 제목을 붙인 『윤리학』 1부에서 신에 관한 적들의 정의를 토대로 “군림하기 위해 존재할 필요조차 없는 유일한 존재는 신뿐”(보들레르)이라는 것을 밝히는 식이지요.
철학 저술로서는 생경하기 그지없는 기하학적 방식에 따라 서술되었고 스피노자 자신도 그 형식 위에서 글 쓰는 ‘번거로움’을 토로한 적이 있었던 만큼(『윤리학』 4부 정리18 주석), 『윤리학』을 펼쳐 본 사람이 느끼는 어려움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윤리학』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독려하며 떠올렸을 “모든 고귀한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드물다”는 윤리학 말미의 문장은 그 책을 읽을 미래 독자들인 우리들 역시 고무합니다. 그의 작업이 그러했을 것처럼 그의 논증을 좇아가 보는 일 또한 쉽지 않겠지만 “고귀한” 일이겠지요.


※ 본 강의는 한 학기 동안 『윤리학』의 1부 “신에 대하여”를 강독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 총 5부로 되어 있는 『윤리학』 완독을 목표로 1학기에 한 부씩 강독하는 강좌의 첫 꼭지입니다.

1강 스피노자의 생애와 저작 소개 / 기하학적 방법에 관하여
2강 1부의 정의와 공리들
3강 정리1~8: 유한 실체는 없으며 실체는 무한하다
4강 정리9~11: 무한한 실체인 신이 필연적으로 실존한다.
5강 정리12~15: 실체는 분할불가능하며 유일하다.
6강 정리16~23: 무한 양태(1)
7강 정리16~23: 무한 양태(2)
8강 정리24~29: 유한한 실재들의 인과
9강 정리30~36: 신의 지성과 의지/신의 역량과 본질
10강 1부 부록


참고문헌

스피노자, 『윤리학』(첫 시간에 번역본에 대한 안내가 있을 것이니, 구입하지 않으신 분들은 미리 구입하지 마세요)
스티븐 내들러, 이혁주 옮김, 『에티카를 읽는다』(그린비, 2014)
* 없는 분들은 2쇄를 준비하세요. 1쇄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새로 2쇄를 구입하실 필요 없습니다.


강사소개

연세대 철학과 강사. 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스피노자의 평행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스티븐 내들러의 『에티카를 읽는다』를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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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6/12/1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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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기계

Transparent Machine

화이트헤드와 영화의 소멸

이 책은 영화의 밀림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이정표다.
투명하다는 것, 그것은 단지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합생과 변환의 과정 이외엔 더 숨길 것도, 더 보여줄 것도 없다는 의미다. 예술영화든, 상업영화든, 공포영화든, SF영화든, 실험영화든, 신파영화든 상관없다. 모든 영화는 투명하다. 변신 이외에 다른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지은이  김곡  |  정가  45,000원  |  쪽수  840쪽
출판일  2018년 10월 26일  |  판형  신국판 무선 (152*225)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총서명  Cupiditas, 카이로스총서 53
ISBN  978-89-6195-186-9 93680   |  CIP제어번호  CIP2018028527
도서분류  1. 영화 2. 철학 3. 미학 4. 예술 5. 정치

 

 

“단언할 수 있다. 이 책은 화염병처럼 쓰여졌다. 이 책을 쓴 김곡은, 아마도, 아마도 틀림없이, 집어던지는 심정으로 썼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건 당신의 책상을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 영화는 세계를 다시 한 번 시작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까? 김곡은 망설이지 않고 맞받아칠 것이다. 물론이죠. 믿지 않는 당신을 향해서 이 책은 달려든다.” ― 정성일 (영화평론가)

 

 

『투명기계』 간략한 소개

 

영화가 또 하나의 철학일 수 있을까? 단지 철학적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영사되고 감상되고 심지어 편집되는 빛의 철학일 수 있을까? 『투명기계』는 그 대답이다. 라이프니츠, 니체, 화이트헤드, 맑스 등을 가로지르며, 소비에트, 네오리얼리즘, 누벨바그, 뉴저먼 시네마 등 영화사의 굵직한 사조들을 아우른다. 장르영화(공포, SF)뿐 아니라 실험영화(애니메이션, 구조주의)도 다룬다. 한국영화도 놓치지 않았다. 유현목과 베르히만, 임권택과 타르코프스키의 비교뿐만 아니라, 한국 뉴웨이브와 신파에 대한 최초의 철학적 접근. 영화의 세기에 영화의 홍수 속에서 표류하던 사람들이 애타게 찾고 있던 책이 드디어 출판되었다. 이제부터 이 책을 읽지 않고 영화에 대해 논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투명기계』 상세한 소개

 

이 책은 아주 구체적인 경험으로부터 시작한다. ‘영화를 본다’는 결코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일뿐더러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체험하는 상황이다. 스크린 앞에 앉아보라. 막이 오르고, 이미지가 투사되면, 내 온몸과 정신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내 신체와 내가 속한 세계가 잠시 잊히는 것과 같이, 나의 시간은 소멸되어 영화의 시간 속으로 그야말로 ‘빨려들어 간다.’ 혹은 ‘흡수된다.’ 이 ‘빨려들어 간다’는 사태를 지시하기 위해 우리는 ‘분위기’라는 아주 좋은 단어를 이미 가지고 있다. 분위기는 스크린에 풍경을 실질적으로 펼쳐냄으로써, 다른 예술장르(문학, 연극, TV … )와는 차별화되어, 영화만이 가지는, 진정 영화적인 요소다. 이 책은 바로 저 사태로부터 영화사를 다시 한번 읽어내려는 시도다.

영화가 또 하나의 철학일 수 있을까?

이 책은 ‘영화가 또 하나의 철학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단지 철학적 대상이 아닌, 그 자체로 영사되고 감상되고 심지어 우리 머릿속에서, 혹은 우리의 몸과 함께 편집되는 빛의 철학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

저 질문에 답해왔던 책들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 질문에 좀 더 엄격하게 답해보려 한다면,
영화의 철학은 매우 비본질주의적 철학이어야 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영화에서는 시간마저 편집되며, (그것이 샷이든, 몽타주든) 순수한 관계만으로 직조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때문에 ‘시간은 지속이다’라는 익숙한 정식을 버리고(왜냐하면 그것은 아직 시간을 실체로 남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소멸이다’라는 정식으로부터 영화를 다시 읽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화이트헤드의 철학에 호소하는 이유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이야말로 세계에 어떤 실체도 남기지 않으려는, 순수한 관계의 철학, 비본질주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의 시간론 : 시간은 소멸이다.

‘시간은 소멸이다’라는
화이트헤드의 시간론은 다른 어떤 시간론보다도 영화의 시간성을 가장 잘 해명한다. 영화의 몸통이라 할 수 있는 필름스트립이 바로 ‘시간=소멸’의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표면과 표면이 부딪혀서 운동을 창발해내는 메커니즘으로서, 최소한 근대 이후엔 원자론이란 이유만으로 탄압당해 온 시간의 구도다.

이 책은 그것을 영화에서 다시 찾으려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영화를 하나의 원자론으로 다시 읽으려는 책이기도 하다. 단, 원자론의 정수가 ‘시간=소멸’과 동의적인 ‘원자들에는 마지막 원자가 없다’라는 비본질주의적 정식이라는 한에서 말이다.

최소한 베르그송의 사상이 유행하기 시작한 이후, 우리는 이제껏 영화의 시간을 지속으로 사유해 왔다. 이 사유습관에 비추어 보면 영화의 몸통이 필름스트립이란 이유만으로 영화사를 원자론적으로 재해석한다는 것은 매우 어색한 일이며, 심지어 불쾌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식이 사실보다 앞설 순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그동안 열광했고 또 투쟁했던 수많은 영화들이 얼마나 원자론적이었나, 우리가 느꼈던 그 흥분과 비애는 또 얼마나 ‘시간=소멸’이라는 정식에 입각해 있었나를 분석해 보려고 한다.

영화사를 수놓았던 표현들에 이름을 붙인다

이 책은 영화사를 수놓았던 수많은 표면들에 이름을 하나씩 붙여보고자 한다. 또 가능하다면, 그 유형들을 분류하여 시간의 상이한 회로들을 분류해보고, 또 그 각각 안에서 유사하거나 대립하는 작가들을 다시 분류해 보고자 한다. 이 분류법이 또 다시 어색할 순 있겠다.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간의 네 가지 회로다(과거, 현재, 미래, 영원). 우리는 영화의 시간을 네 가지 회로들(폐쇄, 스트로크, 병렬, 변신)로 나누었고, 영화사를 각각의 회로에 대응하는 사조나 장르로 분류하고, 또 그 안에서 세부분류될 수 있는 작가나 작가군으로 재차 분류하였다. 각각의 회로는 특유의 표면양태(각각 퇴행, 모방, 평행, 변신)를 가질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변주되는 일반적 문법(각각 풋티징, 플릭커, 프린팅, 이멀전) 또한 가진다. 반대로 각 영화는 각자만의 존재론적 회로와 그 고유한 기법들로 각기 상이한 시간의 실현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평론집이 아니라, 유형학 혹은 계통학에 가깝다. 단 그것은 원자론적 유형학이다.

변신은 모든 영화의 공통패턴이며, 영화철학은 연극철학으로 귀결된다

아마도 이 네 가지 회로가 공통적으로 지시하는 구체적 사태는 아마도 ‘시간=지속’보다는 ‘시간=소멸’로서 더 잘 해명되는 ‘변신’이라는 사태일 것이다. 변신은 모든 영화의 공통패턴으로서, 비록 그것이 기억, 위장, 전이, 변형 등 상이한 양태로 나타날 손 치더라도, 어떤 영화의 어떤 회로도 직조하는 영화의 가장 근본적인 핵심속성이다. 비록 4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겠으나, 변신은 우리가 고전 몽타주에서도 그 흔적과 징후를 찾을 수 있으며, 또 그것이 어떻게 고전몽타주에서 현대몽타주로, 그리고 네 가지 회로들을 횡단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변신이라는 테마가 이르는 영화적 결론은, 불행히도 영화적이라기보다는 연극적이라는 게 이 책의 또 다른 결론 중 하나다. 왜냐하면 변신은 배역과 무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영화철학이 끝내 연극철학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이 또 다시 어색하고 불쾌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역시 우리가 스크린이 상상과 실재, 이미지와 세계, 배우와 관객, 결국 순간과 지속을 나누는 차단막이라는 본질주의적 구도에 익숙하기 때문이지, 결코 영화의 본성이 연극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반대로 영화는 연극적일 때, 그의 시간을 가장 잘 소멸시킨다. 그때 가장 잘 변신하기 때문이다.이 변신을 지시하기 위해 우리가 택한 단어가, 화이트헤드가 자신의 가능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썼던 그, “투명”이란 개념이다.

모든 영화는 투명하다

모든 원자가 투명한 것처럼,
모든 영화는 투명하다. 변신을 너무 잘하기 때문이다. 투명하다는 것, 그것은 단지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합생과 변환의 과정 이외엔 더 숨길 것도, 더 보여줄 것도 없다는 의미다. 변신 이외에 다른 정체성이 없다는 의미다. 이런 의미로라면, 심지어 우리가 으레 경멸조로 말하는 신파영화마저 투명하다.

편집되고 미장센 되는 과정으로서의 시간의 회로 안에서, 그것이 펼쳐내는
투명성 안에서 잘난 영화와 못난 영화의 구분 따위는 없다. 소위 예술영화뿐만 아니라, 상업영화와 실험영화도 최대한 포괄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어떤 측면에서도 서구영화들에 결코 뒤지지 않을, 동양의 영화들도 최대한 포괄하려고 했다(특히 한국 : 유현목, 김수용, 김기영, 임권택, 이원세, 이유섭, 박윤교, 변장호, 심우섭, 남기남, 하길종, 이장호, 배창호, 장길수, 이명세, 정지영 … ).

큰 틀에서
이 책은 리얼리즘에 반대하고, 연극학에 동의한다. 또한 모더니즘 비평에 반대하고 무속학에 동의한다. 후자 쪽이 네 가지 회로의 공통목표인 ‘변신’을 더 잘 해명하기 때문이다. 고로 이 책의 부대목표는 영화와 함께 화이트헤드 철학이 얼마나 현대 퍼포먼스 인류학에 가까웠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 인터뷰

 

Q. ‘투명기계’라는 제목이 강렬하고 인상적인데 그것의 의미에 대해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기계’란 말은 이제 익숙합니다.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를 가로지르거나, 그 둘 모두를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문제는 ‘투명’일 것입니다. 이 책에서 투명이란 말은 단지 안 보인다는 그런 통례적 용법으로 쓰이고 있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투명은, 항구적 변신을 지칭하는 개념으로서, 변함이라는 사태 이외엔 어떤 다른 정체성을 지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화이트헤드는 이 개념을 가능태의 실현방식에 관련해서 사용했는데요, 이 책에선 그것을 가능태의 한 속성처럼 업그레이드해서 쓰고 있습니다.) 영화는 너무 투명합니다. 변신을 너무 잘하기 때문이죠. 영화는 투명기계입니다.

Q. 책이 목차만 훑어보아도 대작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영화세계에 관해 거의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영화가 단지 철학적 대상이 아닌, 또 하나의 철학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많은 저자들과 책들이 대답해 온 건 사실입니다. 허나 대부분이 ‘시간=지속’이라는 구도 속에서 그런 생각들을 전개하였습니다. 이 책은 반대로 ‘시간=소멸’이라는 구도로부터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시간관이 변신이라는 사태를 더 잘 해명하기 때문입니다. 변신은 이전의 정체성을 소멸시키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 매우 운명적인 사태입니다. 영화는 그걸 너무 잘합니다.

Q. 영화를 투명기계로 사유하는 이 책을 접하거나 읽는 독자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책은 들뢰즈의 『시네마』일 것 같습니다. 들뢰즈의 『시네마』는 각 장마다 베르그송을 전유하고 응용하면서 스크린을 불투명한 것으로, 우주의 빛이 투과하지 못하는 불투명한 막으로 사유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자께서는 이 책에서 화이트헤드를 주요한 준거로 삼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며 들뢰즈 『시네마』와의 차이는 무엇인지요?

영화의 시간은 지속되기 전에 편집되기 때문입니다. 변신하기 위해섭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베르그송적이기 전에 화이트헤드적입니다. 영화의 몸통을 이루는 필름스트립은 정확히 그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여러 장의 스냅사진들이 운동을 창발하는 형식으로. 영화의 본성이 지속이고 그 고유함이 베르그송적이라고 말하려면, 영화의 이 물질적 조건을 사상한 뒤 출발해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모든 것을 그로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불쾌한 유물론의 혐의를 뒤집어쓰더라도.

분명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진 않습니다. 하지만, 굴뚝의 구조에 따라 연기의 색깔이 달라지지, 결코 그 역이 아닙니다.


Q. 국내외에서 출간된 다른 영화 서적들과 비교할 때 이 책 『투명기계』가 갖는 차별점, 이 책의 특이성과 고유함도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글쎄요. 이 책이 지시하고자 하는 영화의 본성, 투명성에 거의 예외가 없음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외 없음은 단지 경우의 수가 많다는 것이 아닌, 우리가 단지 실용적이거나 때로는 권력적인 목적을 위해서 작위적으로 나누어놓은 범주들(리얼리즘/판타스틱, 예술영화/상업영화, 극영화/실험영화 … )의 경계선을 무력화시킴을 의미합니다.

이 책이 소비에트 영화, 독일 표현주의부터, 미국건국영화들(서부극, 느와르 … )과 현대 할리우드 영화들(SF, 공포, 액션 … ), 반대로 종교적이거나 금욕적인 예술영화로부터 도발적이고 혁명적인 실험영화까지 모두를, 같은 식으로 서양영화뿐만 동양영화까지 아우르려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모든 영화가 평등한 투명기계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만이 우리 스스로 영화에 대해서 양산해내는 편견과 경멸, 먹물 먹고 맴맴 하는 자의식 엘리트주의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경멸조로 말하곤 하는 신파영화조차, 그것이 영화로서는, 르느와르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만큼 똑같이 투명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화의 투명성, 이 앞에서 예술영화와 상업영화, 극영화와 실험영화, 리얼리즘영화와 장르영화의 구분 따위는 없습니다. 그건 영화가 불투명하다고 쉽게 가정해버리는 이들의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사태입니다.

이 책은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책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들은 무조건 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서양영화에 너무 매몰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섣불리 오리엔탈리즘으로 도망치지 않으려 분투했습니다. 실제로 영화는 그 둘 중 어느 것으로도 작동되지 않으며, 단지 우리의 펜촉과 뇌세포, 그리고 입버릇이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할 뿐입니다.

또 하나, 영화의 본성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해오던 영화적이란 개념과는 너무나 다름을, 심지어 그것은 연극적임을 강조하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연극학의 도움은 필수적이었고, 특히 통일성을 피하면서도 이야기를 직조하는 현대적 몽타주의 경향에 주석을 위해선 동양연극학, 특히 한국민속극의 참조가 불가피했습니다. 일례로, 다시 오리엔탈리즘에 회귀하는 일 없이도 펠리니의 영화가 어찌 마당극적이라 말할 수 없을지요?

또 하나, 영화의 가장 기본적 본성 중 하나인 변신을 설명하기 위해 인류학과 무속학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빙의는 단지 귀신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영화엔 빙의가 있으며, 반대로 빙의가 없는 영화는 없습니다. (어떤 영화도 선험적인 공포영화라는 테제는 바로 이 빙의 개념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같은 까닭으로 빙의는 우리가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또 하나, 예술영화와 상업영화, 극영화와 실험영화, 리얼리즘영화와 장르영화의 선재적 구분들에 저항하려고 했습니다. 그러한 범주들은 우리의 머릿속에나, 혹은 권력으로 점철된 지식의 강단에서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투명성으로서의 영화는 어떤 장르, 어떤 형식, 어떤 스타일, 어떤 예산규모를 편애하지 않습니다. 그것의 역사는 어떤 조건이 주어져도 아름답게 생존해내는 생물의 진화과정과 같습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추천사

 

단언할 수 있다. 이 책은 화염병처럼 쓰여졌다. 이 책을 쓴 김곡은, 아마도, 아마도 틀림없이, 집어던지는 심정으로 썼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건 당신의 책상을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영화에 바쳤던 자신의 청춘에 대한 가책과 원한, 분노로 가득한 행간들. 그런 다음 김곡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승리를 향해 밀고 나아가기 시작한다. 어떤 승리? 이 책의 마지막 문장. “다시 한 번, Da Capo!” 영화는 세계를 다시 한 번 시작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까? 김곡은 망설이지 않고 맞받아칠 것이다. 물론이죠. 믿지 않는 당신을 향해서 이 책은 달려든다. 얼핏 보면 지식의 도구상자처럼 보이지만 속으면 안 된다. 누구보다도 화이트헤드. 영화라는 ‘과정’, 세계라는 ‘실재’. 그 둘 사이를 오가는 ‘느낌’의 명제들. 아니, 차라리 선언들. 김곡은 자유자재로 수많은 영화 장면들을 ‘등위적 분할’ 하고 난 다음 스크린이라는 ‘평탄한 장소’ 위에서 흥미진진하게 ‘연장적 결합’을 한다. 그러면 거기서 달려드는 수많은 영화제목들이, 정말 많은 이름들이, 끝도 없이 등장하는 개념들이, 영화에 관한 거의 모든 용어들이, 마치 드릴처럼 당신의 뇌를 뚫고 들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맙소사! 그러니 이 책을 붙잡기 전에 주의하기 바란다. 행여 여기서 어떤 지식도 훔쳐갈 생각을 하지 마라. 김곡은 이 책을 당신에게 집어던지기 전에 웅변하는 것만 같다. 나는 이제 동굴을 떠납니다. 미래를 밝히는 화염병, 그림자와의 격투. 부디 이 책을 한밤중에 읽지 마시길. 당신은 퇴각로를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훌륭한 적이라는 친구를 곁에 두어야 한다” 니체의 그 유명한 말. 이 책은 그 말을 훔칠 자격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은이 소개

 

김곡 (Kim Gok)

본업은 영화감독이다. 공동작업자 김선과 함께 ‘곡사’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한다. <자본당 선언>, <고갈>, <방독피> 등으로 베니스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 밴쿠버 영화제, 부산 영화제, 모스크바 영화제, 로테르담 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으며, 상업영화로는 <화이트>, <앰뷸런스>, <기계령>(<무서운 이야기> 시리즈) 같은 공포영화들을 연출하였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영화 프로젝트에 참가하였으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자가당착>(2010)으로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와 소송 투쟁하기도 했다. 현재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포함한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전공은 철학이다.

 

 

책 속에서 : 『투명기계』와 영화의 투명성

 

실상 영화는 단지 우리 눈앞에서만 일어나는 사태가 아니다. 그건 우리 눈 뒤에서도, 뇌 안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며, 엄밀히 말해선 스크린에 견주어도 하나도 꿀릴 것 없는 우리의 망막, 피부, 필름과 나 사이의 그 간극, 보이지 않지만 너무나 충만한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내부와 외부 어디에도 독점적으로 속하지 않음으로써 그 둘을 접붙이는 그들의 공통경계로서의 표면에서.

― 들어가기, 6쪽

 

반대로 베르그송은 영화를 혐오했다. 원자론을 혐오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개념에 있어서건 이미지에 있어서건 “영화적 환영”을 준다는 점에서 원자론과 영화는 그렇게 한통속처럼 보였다. 반면 “지속”은 원자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 1부 1장 소멸의 원자론 : 화이트헤드, 베르그송, 필름, 27쪽

 

브루스 엘더는 에이젠슈테인 체계에서 러시아 상징주의, 중세 신비주의, 심지어 오컬티즘의 흔적까지 찾아서 보여준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에이젠슈테인이 과학을 포기하고 신비주의자가 되었음을 의미하기보다는, 외려 그가 가장 유물론적 수준으로부터 가장 우주론적 수준으로까지 연역과 종합의 논리를 창출해냈음을 의미할 터다. 다른 소비에트 작가들과 견주어봤을 때 에이젠슈테인의 독창성은 여기에 있다.

― 1부 3장 표면의 초기 형태들, 67쪽

 

신화는 바보들의 놀잇감이다. 그것은 사소한 승패에 열중할 때의 흥겨움, 편을 나누고 역할을 교대하는 도취감, 내기해 놓고 기다릴 때의 설렘으로만 존재하는 대상이다. 하길종은 완벽한 장면을 보여준다. 신문팔이 소년이 거스름돈을 고스란히 가지고 돌아오는지 내기 걸어보는 믿음 놀이가 그것이다(<바보들의 … >). 이밖에도 달리기 놀이(<병태와 영자>), 이장호의 보쌈놀이(<바보선언>)가 있을 수 있고, 배창호의 시간멈추기 놀이(<고래사냥 2>)가 있을 수 있다.

― 1부 8장 역사의 신화, 179쪽

 

다큐멘터리 영화야말로 모방의 장르에 속한다. 그것은 세상을 더욱 엄격하게 모방하기 때문이다. 베르토프가 한편으로는 소비에트의 거시적 몽타주와 거리를 두었다면 그가 다큐멘터리 전통에 속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이후의 다큐멘터리 작가들과 이론가들이 그에게 이끌렸다면 그가 매우 엄밀한 개념을 통해서 다큐멘터리의 존재론을 정의하고 또 실천해 보였기 때문이다.

― 2부 3장 다큐멘터리, 242쪽

 

히치콕은 뉴턴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신과 사물 사이에 편재하는 절대공간(vacuum)처럼, 관객은 연출자와 등장인물 사이에서 “신의 감각중추”(sensorium Dei)가 되므로 그는 물리적 용량이 더 허용되는 만큼 도덕적 책무를 더 져야 하는 셈이다.

― 2부 6장 화이트헤드의 두 번째 모험 : 프레이밍 이론, 305쪽

 

갱스터 영화보다 2틈 위상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장르는 없다. 갱스터는 쌍곡선(과장hyperbole)의 인간이기 때문이다(권세 확장, 부의 축적, 힘의 과시 등). 그 불법성은 도시와의 계약을 문제로 삼을 뿐 여기엔 아직 그 평면의 반전이 포함되어 있진 않다. 반전은 그 과장된 행동선들이 꺾이고 또 함입해서 주체 자신을 향할 때 일어난다. 갱스터 장르의 2틈은 ‘배신’이다.

― 3부 2장 내러티브의 비유클리드적 변형, 385쪽

 

모든 것은 <E.T.>와 함께 달라졌다. 스필버그는 더 이상 외부에 낯설게 남아있지 않고, 인간과 친구가 되고 소통하는 외계인을 보여준다. 또한 외계인은 초대되거나 이미 여기에 와있고(<미지와의 조우>), 인간의 연인이자 친구이다(카펜터 <스타맨>, 로빈스 <8 번가의 기적>). 테크놀로지 역시 더 이상 인간을 위협하는 외부가 아니라 온전히 인간 공동체의 역사를 이루며(트럼벌 <사일런트 러닝>, 와이즈 <스타 트렉>), 미래 역시 낯선 시대가 아니라 친숙한 것들의 잡종짬뽕이다(리들리 스콧 <블레이드 러너>).

― 3부 3장 미래의 내러티브, 461쪽

 

자유간접화법은 신학적인 동시에 정치적 문제다. 모든 말들을 신의 간접화법으로 전락시키는 로고스의 체계는 교회뿐만 아니라 가부장제와 파시즘에 들어앉아 모든 궁핍을 정신 탓으로 돌리며 정작 그 자신은 육체를 좀먹고 있기 때문이다. 파졸리니가 ‘미메시스’를 말한다면 이를 비판하기 위해서다.

― 4부 2장 영원과 육체, 567쪽

 

공포영화를 정의하는 단 하나의 술어, 그것은 전염(contagion)이다. 원한, 살의, 광기, 트라우마, 무엇보다도 그 고통이 전염된다. 물론 전염을 항상 물질적인 것이라 볼 수 없다. 그러나 전염이 정신적인 양상을 띨 때조차 공포영화의 전염은 육체적이다. 전염은 이물異物 과의 접촉이기 때문이다.

― 4부 3장 공포영화, 595쪽

 

김기영이 결국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맑스주의의 용어법 그대로 소멸충동과 불멸충동의 공존이라는 “모순적 법칙”과 그 “내적 모순들의 전개”다. 하녀들은 독점자본주의 그 자체다. 그리고 축적이 한계에 다다라 과농축된 불멸소의 무게 자체가 장애물이 될 때, 하녀는 마지막 소멸을 결단해서 불멸을 보존해야 한다.

― 4부 5장 김기영, 667쪽

 

영화에서 데모스의 이상적인 형태는 투명기계다. 샤먼기계 혹은 리미노이드 기계. 친구와 적들 사이에서 그의 평판은 변신 이외에 다른 현존방식을 모르는 변신바보다. 그는 개헌밖에는 자신의 재현법을 모르는 입법바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다시 ‘절차의 투명성’과 같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의미하진 않는다. 이때 투명성은 지식과 행정의 투명성이 아니라 권력과 변전의 투명성이기 때문이다.

― 4부 9장 결론, 776쪽

 

 

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영화와 공간 ― 동시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미학적 실천』(이승민 지음, 갈무리, 2017)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어제와 오늘을 ‘공간’을 키워드로 하여 비평하고 재편성하였다. 이 책은 ‘왜 공간이 부상하기 시작했을까?’에 대한 거시적 물음에서부터 ‘재개발 투쟁과 은폐된 역사를 파헤치는 비판 정신에서 출발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공간은 지금 어떤 기능을 하고 있을까?’라는 로컬적 질문까지 아우르면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역사를 공간으로 재편성하는 동시에 2010년 이후 부상한 영화의 공간(들)을 정리해서 공간의 의미를 펼치며 다양한 함의를 부여한다.

 

『천만 관객의 영화 천만 표의 정치』(정병기 지음, 갈무리, 2016)

대선에서 경쟁력 있는 제3후보가 적어도 한 명이라도 출마한다면, 1,000만이라는 숫자는 유효 투표의 약 3분의 1에 해당해 당선 확정에 근사한 수치다. 2005년 이후 천만 관객을 넘은 한국 영화들은 권력과 관련되는 내용을 다루었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사회 부조리와 관련된 이슈들을 주로 다루었다.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한국 사회의 정치 문화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문화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들뢰즈의 씨네마톨로지』(조성훈 지음, 갈무리, 2012)

씨네마톨로지란 영화(cinema)와 증후학(symptomatology)의 합성어로 들뢰즈가 <시네마> 1권, 2권에서 제시한 이미지 분류학을 말한다. 이미지를 질적 차이에 따라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그러한 분류학은 우리 삶에 어떤 함의를 가질까? 이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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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11/1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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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정부부처 고위 관료들의 성향과 전력 등을 파악해 정리한 인맥 관리 리스트 등 대외비 문서를 뉴스타파가 최초로 입수했다. 이 문서는 삼성전자 대관업무팀이 정부 부처 등에 대한 로비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대관(對官) 업무란 정부나 국회 등을 상대로 한 기업의 대외협력업무, 즉 일종의 로비행위를 지칭한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삼성전자 내부 문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대외기관 핵심인사 현황>이란 100여 쪽짜리 보고서다. 여기에는 대관업무팀의 운영목적이 “관계기관별 대외업무 단위별 커뮤니케이션 채널 구축” 및 “주요현안 사전 정보센싱, 지지기반 확보, 당사 의견 건의 등”으로 기재돼 있다. 접촉 채널을 구축해 삼성전자의 이익에 맞게 주요 현안에 대처하는 게 대관 업무의 목적이라는 뜻이다.

특히 삼성전자 대관업무팀의 이 내부 문서엔 청와대와 특정 정부 부처가 “협력 채널”이라고 적시돼 있고, 정부기관과 청와대 비서실 등의 조직도가 함께 그려져 있다. 이는 삼성이 자신들의 사업 영역과 관련이 있는 정부 기관에 줄을 대기 위해 전사적으로 담당 정부 부처 등을 지정해서 관리해왔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이 내부 문서를 제보한 삼성의 전 대관업무 담당자는 해당 문서에 파란색 글씨로 표시된 정부 부처나 기관들은 자신이 소속된 대관업무팀이 담당한 곳이라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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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부서 별로 담당할 정부 기관 등을 지정하고 정부부처와 청와대의 조직도를 그려넣은 뒤 삼성은 ‘대외기관 핵심인사’들을 한사람씩 파악해 경력과 성향 분석 리스트를 만들었다.

리스트에 오른 ‘핵심인사’들엔 ‘합리적 업무 스타일, 온화한 인품, 소탈한 성격’ 등의 인물평이 기재돼 있다. 하지만 이렇게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평가만 적혀 있는게 아니다.

‘강압적 업무 추진, 직설적, 참고자료 욕심이 많아 과장급들이 백자료를 많이 준비해야 한다, 부내에서 주류 국장급 대상에서는 제외되는 인사, 보신주의 성향이다, 다소 권위적이며 전형적인 공무원 스타일이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이기적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정치적이며 언론플레이에 신경 쓴다, 후배직원들에게 모욕적 언사도 서슴치 않아 존경받지 못하는 인물, 사시 동기들 중 지검장 승진 대상 5순위 내 등 매우 구체적이고 부정적인 평가도 여럿 발견된다. 거의 사찰수준의 보고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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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주무국장, 가전/IT분야 주무 국장, 당사 UHDTV사업 연관성 큼, 당사 스마트TV사업 연관성 큼’ 등 삼성전자 제품이나 사업과 관련된 정부 부처의 부서들은 따로 명기해 놓기도 했다. 산업자원부의 한 국장에 대해서는 “4-5년전 친동생이 당사(삼성전자)의 홍보팀 경력이 있다”며 ‘핵심인사’ 주변의 특이 인물도 파악해 놨다.

공정거래위원회나 중소기업청의 최고위직 관료에 대해 ‘대기업 저승사자’라거나, ‘친중소기업 성향’이라고 평가한 부분도 눈에 띈다. 거대기업인 삼성전자 입장에서 이른바 ‘적군’을 따로 분류해 놓은 것이다. 정부고위 관료들이 골프를 치는지, 술이나 담배를 하는지, 종교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해 놓거나 친한 지인들이 누구인지 파악해놓은 이유도 유사 시 원활하게 정부 고위 관료들을 접촉하기 위한 인맥관리 수단으로 활용하려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삼성은 이런 자료를 통해 자신들이 접근하기 편한 상대를 고르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공정위의 한 국장에 대해서는 “기업보다는 공정위의 입장을 중시하는 편임”이라고 적어놓거나 “대기업 저승사자로 조사가 철저하고 깐깐하다”고 평했다. 하지만 다른 국장이나 과장에 대해서는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다, “기업에 대해 합리적 생각을 갖고 있다”고 묘사해 놨다. 뭔가 대화가 통할 여지가 있다는 평가를 내부에서 공유한 것이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 일부 주요 보직 과장과 국장에 대해서는 “당사와도 오랫동안 우호적 관계 유지중”, 또는 “친 대기업 성향을 가졌음”이라고 명시했다. 삼성에 의해 이런 평가를 받은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삼성전자의 핵심사업부문들과 직접 연관을 맺고 있는 부서의 과장과 국장 급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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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친대기업 성향을 가졌음”이라고 명시한 산업통상자원부의 과장은 취재진에게 자신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기업에게는 다 잘해준다”고 답변했다. 삼성 자료에 ”당사와도 오랫동안 우호적 관계 유지 중”이라고 묘사된 산업자원부의 국장급 고위 공무원은 자신은 특별히 삼성과 우호적 관계를 맺지 않았다며 삼성 문건에 기재된 내용을 부인했다.

삼성의 이 내부 자료를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제보한 삼성전자 전 대관업무 담당자는 10만여 명의 삼성전자 직원뿐만 아니라 수백 개에 이르는 삼성전자 협력업체 임직원들의 인맥과 이 보고서의 공직자들을 매칭시킨다면 “삼성이 뚫지 못할 곳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삼성은 꾸준한 로비를 위해 관련 부처 과장 한 명만 바뀌어도 보고서를 ‘판갈이’하고 주요 내용은 모두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에 보고된다고 증언했다.

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의 대관업무팀이 만든 이 내부 자료는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중소기업청, 관세청, 동반성장위 등 9개 정부기관과 유관단체들의 과장, 국장, 실장, 장관등 고위직 125명의 현황이 파악돼 있다.

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의 대관업무팀 40여 명이 맡고 있는 정부 기관과 유관 단체들이 모두 9곳인 점을 감안하면, 삼성전자 내의 미래전략실이나 노출되지 않은 또 다른 조직, 그리고 삼성그룹 각 계열사들의 대관업무팀이 다른 정부 부처나 국회, 사법, 정보, 언론 기관 등을 이중 삼중으로 담당하면서 주요 인사들의 성향을 파악해 관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뉴스타파 취재진이 입수한 고위관료 성향 파악 리스트는 삼성그룹이 관리하는 전체 ‘대외기관 핵심인사’ 리스트 가운데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뉴스타파는 삼성전자가 왜 ‘대외기관 핵심인사” 리스트 등을 만들었는지 답변해주기를 요청했지만 삼성전자 측은 답변을 거부했다.


취재:최경영
촬영:김기철,김수영
C.G:정동우,하난희
편집:윤석민

목, 2017/01/1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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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에 삼성전자 대관( 對官)업무팀의 ‘대외기관 핵심인사 현황’ 등 내부 문서를 건넨 제보자는 삼성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삼성의 입김이 정부, 국회, 검찰, 법원, 언론 등 우리 사회 모든 곳에 미치지 않는 데가 없다고 말했다. 또 그렇게 하기 위해 삼성은 막대한 돈과 시간, 인적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자신이 소속된 곳은 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였지만 사실은 ‘상생’이 아니라 오직 ‘삼성’의 이익만을 위해 일했다는 사실에 그는 괴로웠다고 말했다.

실제 그가 제보한 ‘대외비’ 문서에는 ‘대관업무 기능강화’를 위해 “상생협력센터내 업무팀 통합에 따라 대관 업무기능을 효율적으로 재편, 운영”하겠다고 적혀있다. ”공정위와 국회는 업무팀으로 통합”하고 “산업부 관련 업무는 상생협력팀으로 통합한다”, 다만 “미래부, 방통위, 총리실의 규제개혁과 관련해서는 업무팀에 기능을 유지”시킨다는 내용도 있다.

제보자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사실상 삼성’전자’와 삼성’후자’로 나뉜다고 한다. 이는 삼성 임직원들 사이에 흔히 통용되는 말이라고 한다. 삼성전자에 삼성의 모든 돈과 인적자원이 집중되어 있음을 상징하는 삼성그룹 내 속어다. 그는 삼성전자 내에서도 이른바 ‘본사’가 따로 있으며 대관업무는 이 ‘본사’업무에 속해 대관업무 담당자들을 뽑을 때는 사내에서 따로 시험까지 치른다고 증언했다. 실제 취재진이 확인한 대관업무 담당자들의 이전 경력도 본사에서 경리, 관세, 구매기획, 하도급 업무를 했던 사람부터 로스쿨 출신까지 다양했다. 취재진이 확보한 대관업무 담당자들의 경력서류를 보면 4개월짜리 신참부터 24년 동안 대관업무만 한 베테랑 부장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현 장관이 행정부 과장이던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대관업무 담당자도 있었다고 한다. 제보자의 증언이다.

가령 산업부의 그 때 윤상직 장관이 있을 때였거든요.윤상직 장관이 과장일때부터 명함을 돌리신 분이 제 상사로 계셨었어요.그 분이 힘들게 채널을 하나 여신 거거든요.그리고 어떻게 하냐면.계속 갑니다.3개월동안,계속 명함을 돌려요.그러면 정부에서도 어린 친구가 명함 돌리고 있으니까 한 번 와보라고 하겠죠.너 누구야.저 삼성전자에서 왔습니다.해서 친해지게 되거든요.그분이 과장,국장 되시고 결국에는 차관,장관까지 올라가게 되는 거잖아요.

취재진이 윤상직 의원(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확인한 결과 제보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윤 의원은 제보자의 상사와 오랜 지인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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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 전무였던 한 인사도 센터 내 대관업무팀 존재를 인정했다. 그렇다면 상생협력센터내의 대관업무 담당자들은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다시 제보자의 말을 들어보자.

제일 중요한 것은 센싱이구요.센싱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은 제가 교육을 받아서 아는 내용이고요.그런 센싱하는 주요 사이트가 국회의안정보시스템입니다.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업무팀이랄지 대외업무를 하시는 분들이 정보들을 받아요.사람이 친해지다보면 보도가 되기 전에 미리 자료를 입수할 수 있습니다.그 담당자들이랑 친하기 때문에.그럼 그런 것들이 센싱인 거거든요.미리 대응을 할 수가 있는거죠.부고나 그런 것들을 보고 이제 정부기관의 (주요 인사) 친인척이 돌아가셨다고 하면은 가서 인사할 수는 있는거잖아요.

정부 관료나 국회의원실을 찾아가 정보를 수집하고, 그 사람들을 접촉하기 위해 부고 등의 기사가 나면 조의금을 전달하면서 안면을 텄다는 말이다.

대기업도 돈을 쓰고,사람을 쓰고 해서 얻는 정보들이잖아요.그래서 폐쇄된 정보긴 하지만.사람 고문해서 옛날에 김기춘…아 김기춘이라고 하면 안 되나.뭐 그런 것처럼.고문한게 아니라.잘 구슬려 가지고.돈도 주고.뭐 협박한 것도 아니고.

제보자는 삼성이 막대한 돈과 인적 자원을 동원해 삼성의 이익과 관련된 중요 정보들을 취합하는데 이 가운데 핵심 정보들은 모두 미래전략실로 보고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취합된 정보를 가지고 삼성이 목표로 했던 것은 결국 삼성에게 불리한 법안이나 정책을 무력화시키는 것, 또는 삼성에게 유리한 정책들을 입안시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분(부장)이 이야기 하신 게 이제 상생협력센터인데,상생을 생각하면 안된다고.삼성을 위해서 생각해야지 기획이 나온다고.그런데 굉장히 쇼킹했는데.한 몇 개월 지나고 나니까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어떤 기획을 하더라도.아,삼성을 위해서 해야하는구나.

삼성전자의 홈페이지를 보면 상생협력센터는 삼성전자가 중소기업 등과의 이른바 ‘상생경영’을 위해 세운 CEO 직속 조직이라고 설명돼 있지만 제보자에 의하면 직원 120여 명 가운데 40명 안팎이 대관업무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다 삼성전자의 수뇌부라고 할 수 있는 미래전략실에는 전략1, 2팀과 커뮤니케이션팀, 인사지원팀, 경영진단팀, 기획팀 등 6개 팀이 있다. 이 팀들은 팀장이 사장이나 부사장급이고, 각 팀장 밑에 보통 전무나 상무급만 서너 명이상 배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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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가 입수한 삼성전자의 조직도를 보면 삼성 미래전략실에는 거의 전담으로 배치된 법무팀이 따로 있었다. 이 곳에도 50-60 명의 변호사들이 포진해 있다고 한다. 이는 삼성전자 법무실과는 별도의 조직이다. 제보자는 자신이 소속돼 있던 상생협력센터 내의 대관업무팀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업무팀들이 삼성 계열사 별로 따로 있다고 증언했다. 결국 상무급 이상만 수십 명이라는 삼성전자의 미래전략실, 상생협력센터의 대관업무팀, 그리고 각 계열사 별로 별도로 존재하는 대관업무팀, 때때로 대관업무를 보조하는 전 계열사의 홍보팀 등을 모두 감안하면 삼성에서 정부와 국회 등 외부 기관을 상대로 사실상의 로비를 하고 있는 임직원은 최대 천명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한 기업 집단이 이처럼 거대한 로비조직을 운영한다면 정부나 국회 등의 공적 기관이 공정한 시장 경제를 중재, 관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제보자 역시 그 부분을 가장 우려했다.

정직하게 플레이하시는 분들이 제대로 리워드(보상)를 못받으시는 것 같더라구요.한국사회 자체가.그래서 상대방이 어떤 플레이를 하는지 알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거기서 제가 중점적으로 생각했던 게 법안도 건드릴수있다.대기업이… 정상적이 아닌 플레이를 한다는 것 자체가.그 사람(이재용)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그런 인식들이 좀 바뀌어야 하고…


취재:최경영
촬영:김기철,김수영
C.G:정동우,하난희
편집:윤석민

목, 2017/01/1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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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책이다. 샹탈 무페는 이 책을 ‘포퓰리즘 계기가 드러내는 현재 정세의 본질과 도전을 좌파가 시급하게 이해’하고, 지금이 좌파가 신자유주의 우파의 권력독점을 깨고 민주적 권력을 창출하는 최적의 기회임을 알리려 썼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무페는 왜 이토록 시급한 주장을 좌파를 향해 펼칠까? 무페에게 신자유주의가 지배해 온 지난 40여 년간 (무페는 자신의 분석을 서유럽으로 제한한다) 서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정치적 무능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나아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변함없이 무능력한 정당들은 권력 장악을 위해 신자유주의 아래 금융 자본주의의 강제적 명령을 수용하면서, 정치를 우파와 좌파 엘리트 집단 사이 ‘중도적 합의’로 축소해 버렸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1985년에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을 쓸 때만 하더라도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대한 무페의 생각은 이 정도로 절망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소비에트 해체 이후 사회민주주의 정당 스스로 신자유주의에 갇혀 대중주권과 평등이라는 민주적 이상 추구를 포기하고, 대중들의 탈정치화를 촉진했을 때, 무페의 생각은 크게 달라졌다.

사진: 한겨레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악화한 신자유주의 맥락에서 변질된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넘어서는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위한 좌파의 새로운 과제를 주장한다. 이 새로운 좌파의 과제는 무능력한 기존 좌파의 회생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통제불능의 사회경제적 양극화, 불평등 확산, 부채 증가, 나쁜 노동의 확산, 젠트리피케이션 심화 등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하고 점점 심화하는 자본주의의 약탈 행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또한 우파 포퓰리즘이 외국인 혐오, 인종주의, 사회적 약자 차별 등 반인권적이고 배타적인 가치를 내세워 헤게모니를 장악해 가는 것을 저지하고 민주적 가치를 복원하는 대안 헤게모니 세력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제는 전통적 좌파처럼 노동자 계급을 절대화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 달리, ‘노동자 계급’ 정체성은 다양한 가치와 어떻게 접합되는가에 따라 민주적 가치와 부딪힐 수도, 가장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주체가 될 수도 있다. 노동자 계급은 모든 세계시민의 수평적 관계를 나타내는 정체성이 되거나, ‘국민’과 결합하여 가장 폐쇄적인 정체성이 되는, 즉 좌·우파 포퓰리즘 어느 특성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좌파의 과제는 신자유주의라는 전 지구적 신조와 헤게모니가 유기적 위기에 처하고, 정치사회적으로 도전받는 ‘포퓰리즘 계기’에 좌파가 전통적 전략이 아닌 새로운 정치전략을 통해 시급히 개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전략은 곧 좌파 포퓰리즘 정치이다. 우선 무페는 포퓰리즘이란 ‘사회를 두 진영으로 분리하는 정치적 경계를 구성하고, ‘권력자들’에 맞선 ‘패배자들’의 동원을 위한 담론 전략’이라는 라클라우의 정의를 따른다. ‘국민’, ‘민족’, ‘인종’처럼 수평적으로 확장될 수 없는 폐쇄적이고 차별적인 정체성과 결합한 우파 포퓰리즘이 정치사회적 배제와 차별화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는 시도라면, 좌파 포퓰리즘은 이에 맞서는 전략이다. 좌파 포퓰리즘은 한가지 정체성이나 가치를 중심으로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경계를 형성하지 않고, 평등주의적 대중주권을 내세운다. 이 정체성은 다른 정체성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서로 등가 관계를 형성하고 이 관계를 보다 다양한 정체성과 민주적 가치로 끊임없이 확산한다. 이를 통해 ‘대중’의 새로운 민주적 정체성이 구성된다. 따라서 좌파 포퓰리즘은 전체주의적 경향의 우파 포퓰리즘과 달리 하나의 정체성을 절대적 대표로 인정하지 않는 반본질주의 입장에서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을 추진한다. 이 새로운 정체성의 ‘이름’이 바로 새로운 헤게모니, 그리고 이 특수한 좌파 포퓰리즘의 이름이 된다.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대중’은 소유적 개인주의 및 대의제의 자유주의와 끊임없이 경합하며 탈정치와 과두제의 포스트 민주주의에 저항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서유럽을 먼저 장악해가는 우파 포퓰리즘이 대중을 사로잡은 공감 방식이다. 이것은 좌파의 무능력이기도 하다. 그간 좌파는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승리를 그 지지자들 탓으로 돌리면서, 우파가 지지자들의 마음을 얻은 방식에서 교훈을 얻기를 꺼려했다. 무페는 ‘자신들의 문제에 신경 써주는 유일한 자들이 우파 포퓰리즘 정당뿐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이 정당들에 마음이 끌리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고 본다. 물론, 혐오와 차별이 보편 가치가 될 수 없기에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수사적 표현은 진리와 충돌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좌파가 평등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목표를 추구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언어적 표현으로 대중과 정서적 공감을 해야 한다.

잘못하면 포퓰리즘의 이론적 논쟁은 걸리버 여행기의 달걀 논쟁이 될 수 있다. 지금은 훈고학적 논쟁보다 어떤 이름으로 드러나든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통한 좌파 포퓰리즘 정치의 출발이 시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배제와 차별의 우파 포퓰리즘의 승리가 분명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살아남은 모든 자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교수신문, 2019년 3월 12일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가 공동게재에 동의하여 실린 것임).

 

이승원

서울대·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월, 2019/03/1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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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상반기 서리풀 학당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



 1. 강좌 개설의 배경


성인기 삶의 가장 많은 부분은 일터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의 다수는 노동자입니다. 그럼에도 공중보건 영역에서는 ‘퇴근 후 개인’, 노동자가 아닌 ‘시민/주민’의 건강문제에 초점을 두고, ‘산업보건’ 영역은 공중보건과 별개의 특수한 분야인 것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노동자 건강’이라고 하면 전통적인 건설현장, 제조업에 종사하는 ‘산업역군’을 떠올리는 사람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러나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는 노동자, 하루 종일 코딩라인과 씨름하는 개발노동자, 기획 업무에 눈코 뜰 새 없는 사무직 노동자 등 산업구조 변화와 함께 전혀 새로운 근로환경, 새로운 건강위험 요인들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추락, 소음, 화학물질 같은 전통적인 위험요인도 여전히 상존하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게임개발자의 과로사와 휴대폰 제조 노동자의 메탄올 중독, 콜센터 노동자의 우울증이라는 상이한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별 위험요인에 대한 기술적 접근을 넘어설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계약직, 하청, 파견, 호출 등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 고용은 일의 내용을 떠나 노동자들의 건강에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2017년 상반기 서리풀 학당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와 노동건강연대가 함께 진행합니다. 총 10강에 걸쳐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관점에서 노동자 건강 문제를 정의하고 현황, 인식, 대응의 전 과정을 정치경제 맥락에서 분석하고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이 문제에 관심 있는 학생, 연구자와 활동가, 정책결정자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2. 강좌 구성


1) 3월 28일 (화) 사회불평등과 일하는 사람의 건강


․강사: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사회역학 전공)


․노동안전보건 연구자/활동가에게는 일하는 사람의 건강문제를 의학적 혹은 기술관리적 관점이 아닌, 공중보건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필요성 제기. 보건학 연구자/활동가에게는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성인기 건강과 삶 전반에 중요한 이슈임을 제기.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프레임에 따른 건강불평등 맥락에서 노동안전보건 이해하기

 


2) 4월 4일 (화) 세계화시대 4차 산업혁명과 노동사회 변화


․강사: 장석준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사회학/진보정치 전공)


․세계화 시대 국내외 산업구조의 변동과 그에 따른 노동시장의 변화 소개. 그와 더불어 나타난 정치적 지형의 변동과 노동계급의 대응 혹은 전망


 

3) 4월 11일 (화) 기술/사회 변화는 노동환경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강사: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직업환경의학 전공)


․2강에서 살펴본 국내외 산업구조와 기술의 변화, 사회정치적 맥락의 변화가 가져온 근로환경과 안전보건 위험의 변화


 

4) 4월 18일 (화) 대한민국 일터에서 누가, 얼마나 아프고 다치는가?


․강사: 김인아 (한양대학교 보건대학원, 직업환경의학 전공)


․3강에서 살펴본 근로환경, 위험요인 변화에 따른 국내 직업성 질환/손상 역학의 변천과 문제의 규모, 특성


 


5) 4월 25일 (화) 보건 체계 안에서 직업안전보건 체계 이해하기


․강사: 임준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보건정책학 전공)


․한국의 보건의료/공중보건 체계의 맥락 안에서 예방/진단/치료/재활에 이르는 직업안전보건 체계의 전반을 소개


 


6) 5월 9일 (화) 직업성 손상/질환 ‘인식’의 딜레마


․강사: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직업보건 전공)


․직업병을 진단하고 인정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직업성 손상/질환의 인과 모형, 인식체계에 대한 비판적 검토

 


7) 5월 16일 (화)  직업안전보건 규제와 거버넌스


․강사: 장원기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 보건정책학 전공)


․사회적 영역에서 규제의 의의를 소개하고, 신자유주의 규제완화의 국내 현황, 맥락, 노동자 건강에 미친 영향을 제기

 


8) 5월 23일 (화) 직업보건과학, 전문가에 대한 비판적 탐구


․강사: 김현주 (이화의료원, 직업환경의학 전공)


․직업안전보건 문제의 연구 현장과 전문가의 이중적 위치에 따른 딜레마를 소개하고 대안을 모색


 

9) 5월 30일 (화) 산재보상의 정치성


․강사: 유성규 (노무법인 참터, 공인노무사)


․국내 산재보험 제도의 역사적 연원과 진화, 사회보장제도로서의 문제점에 대한 정치경제 분석과 국내 주요 논쟁 사례 검토

 


10) 6월 13일 (화) 한국의 노동자 건강권 운동


․강사: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직업환경의학 전공)


․일하는 사람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진행된 다양한 운동의 경험을 소개하고, 이후의 방향 논의


 

3. 일시와 장소


장소: 노동건강연대 세미나실 (7호선 남성역 4번 출구 – 수강자 많으면 장소 변경)

일시: 매주 화요일 저녁 7시~9시 (3월 28일 ~ 6월 13일 총 10회, 휴일 제외)

 


4. 신청방법


이메일 접수 [email protected] (이름, 소속, 연락처 보낸 후 수강료 입금)

신청마감: 2017년 3월 20일 (월), 수강인원 15명 이내 (선착순)

수강료: 20만원 (계좌: 하나은행 199-910004-60804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

* 노동건강연대 회원은 수강료의 30%를 할인해 드립니다. 강의신청 시 '노동건강연대 회원'임을

명시해 주세요. (노동건강연대 회원가입 : http://www.laborhealth.or.kr/donation)

개별 강의 신청은 받지 않습니다.

문의: 김성이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 ([email protected], 02-535-1848)

  

월, 2017/03/0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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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 노동의 확대와 복지국가 혁명1) 

 

백승호 |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질적으로 변화해 왔다. 산업구조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전환되는 서비스 경제사회가 도래하였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인지혁명은 자본축적의 원천을 노동력에서 지식과 정보로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변화는 고용계약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표준적 고용관계(Standard Employment Relationship, SER)가 해체되었고, 비전형적이면서 유연한 고용이 확대되었다. 이들 일자리의 대부분은 여성, 노인, 청년 등 노동시장 취약계층에 의해 충당되었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경제, 사회구조의 변화는 삶의 불안정성을 일상화해왔다. 이러한 삶의 불안정성은 고용의 불안정성, 소득의 불안정성, 사회적 보호의 불안정으로 이어지는 불안정성의 순환구조를 형성하고 있다(이승윤, 백승호, 김윤영, 2017).  

 

플랫폼 경제와 고용의 불안정성

불안정 노동과 관련하여 우선 주목해야할 것이 고용의 불안정성이다. 고용불안정성은 소득불안정성, 사회적 보호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지는 근본적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전통적 산업사회에서 정규 고용관계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안정적 생활을 영위하게 하는 근간이었다. 기본적으로 정규 고용관계는 다섯 가지 특징이 있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무기계약이고, 전일제이며, 종속 고용이다. 또한 상당한 근로소득을 제공하고, 정부의 보조금 지원이 없는 고용관계이다(Eichhorst 등, 2012). 그러나 정규 고용관계는 전 세계적으로 지속적인 감소추세에 있고, 동시에 정규 고용관계를 벗어난 비표준적 고용형태의 다각화가 심화되고 있다. 고용형태의 다각화 방식은 크게 근로기간을 제약하는 방식과 고용관계의 속성을 2자 고용관계에서 삼각 근로관계나 위장된 고용관계로 변형시키는 방식(가짜 자영업, 파견근로나 용역근로와 같은 삼각근로관계, 도급근로)이 있다(서정희, 백승호, 2017). 

 

고용의 불안정성 확대와 관련하여 최근에 플랫폼 노동이 주목받고 있다. 플랫폼이란 재화와 서비스가 거래되는 온라인상의 기반을 의미하며, 플랫폼 노동이란 이러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상품처럼 거래되는 노동을 의미한다(황덕순 외, 2016). 플랫폼 경제에서의 근로관계 혹은 계약관계는 보통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크라우드 노동(crowdwork)이고, 다른 하나는 주문형 앱 노동(on-demand work via app)이다. 먼저 주문형 앱 노동은 온라인 플랫폼이 수요공급의 중개역할을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대면접촉이 이루어지는 형태의 노동을 의미한다. 택시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버, 한국에서의 대리운전 및 퀵서비스 음식배달 앱 노동이 대표적인 예이다(황덕순 외, 2016). 반면에 크라우드 노동(crowdwork)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중개되어 온라인으로 불특정 다수의 노동자들이 참여하여 이루어지는 군중노동을 의미한다. 아마존 미캐니컬 터크(Amazon Mechenical Turk, AMT)가 대표적이다. 아마존 미캐니컬 터크는 작업 요청자가 플랫폼에 작업 내용을 등록하면, 다수의 군중들이 작업을 하고 작업한 양만큼 보상을 받는 서비스이다. 

 

이상과 같은 플랫폼 경제의 고용관계는 기존의 산업노동관계와 구분하여 ‘디지털 고용관계’로 명명되기도 한다(황덕순 외, 2016). 디지털 고용관계에서는 고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가 플랫폼을 통해 업무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 경우 전형적인 삼각 계약 관계가 관찰된다. 한편으로는 고객(기업, 최종사용자, 클라이언트, 작업요구자)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재화와 서비스 제공자)가 있으며, 온라인 플랫폼이 이들을 중개함으로써 경제과정이 이루어진다. 온라인 플랫폼에 고객은 일감을 의뢰하고, 노동자는 그 일을 받아 가는데, 온라인 플랫폼 운영자는 웹사이트를 관리하고 개발하거나, 노동자와 고객의 계약관계를 중재하는 일종의 노동시장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에서는 누가 이용자인지, 누가 근로자인지 사전에 알기 어렵고, 고객이 특정인을 선택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자가 근로자인지, 아니면 자영업자인지, 또한 사용자는 누구인지 규명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이들 플랫폼 경제에서의 고용관계는 표준적 고용관계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모호한 고용관계(이주희 등, 2015), 가짜자영업관계(서정희, 박경하, 2015)가 온라인 플랫폼 기반에서 훨씬 더 용이해진다. 불안정 고용의 확산과 관련하여 플랫폼 노동이 지목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까지 플랫폼 노동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는 거의 없다. 맥킨지글로벌 연구소의 최근 보고서는(Manyika et al., 2016) 독립노동자에 대한 현황조사를 통해 플랫폼 노동이 널리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 보고서는 독립노동자의 특성을 ‘높은 수준의 자율성, 업무나 판매량을 기반으로 한 보상, 소비자와의 단기간 계약관계’로 정의하고 영국 등의 독립노동자를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 30%, 미국 26%, 독일 25%, 스웨덴 28%, 스페인 31%가 독립노동자로서 온라인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었다. 미국의 프리랜서 유니온에 따르면 2014년 전체 노동인구의 34%가 긱 노동자(gig worker: 조직과 정해진 출퇴근 시간 없이 수입을 올리는 노동자), 일용직, 임시직, 우버 드라이버를 포함한 온/오프라인 인력업체 계약자 등 독립계약자와 자영업자라고 보고하고 있고, 회 계법인 Intuit는 2020년 전체 노동인구의 40%가 독립계약자, 프리랜서 등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Intuit, 2010). 한국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아직 온라인 플랫폼 노동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플랫폼 경제 소득 및 사회적 보호의 불안정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노동력의 활용은 기업의 이익극대화 논리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력을 착취하는 특별한 작업방식이 조장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 결과 플랫폼 노동자들은 사회적 보호 수준이 매우 열악할 뿐 아니라, 대부분 최저소득 집단에 속해있으며, 근로조건이 매우 열악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황덕순, 2016). 먼저 한국의 경우 플랫폼 노동의 사회보험 배제 수준은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플랫폼 노동의 사회보험 배제는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의 사회보험 배제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플랫폼 노동은 특수형태고용의 조직방식 변화, 임금근로자의 특수형태고용 전환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황덕순, 2016), 플랫폼 노동에서도 특수고용형태와 동일한 논리도 사회보험의 법적 배제가 발생한다. 기존의 조사결과들을 살펴보면, 특수형태고용 노동자들의 사회보험 적용률은 불과 7%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사회보험적용 비율은 산재보험이 12%인 것을 제외하면, 고용보험, 공적연금, 국민건강보험에서의 적용률이 약 7% 수준에 불과했다(조돈문 외, 2015).

 

플랫폼 노동자들은 사회보험 뿐 아니라 소득수준도 매우 낮다. 앱을 이용한 대리운전과 음식배달업에 대한 실태조사결과를 보면, 대리운전의 경우 프로그램 사용료, 대리운전보험료, 이동비용을 제외한 월 순수입은 평균 181.5만원이었고, 200만원 미만인 사람들의 비율이 60%에 달했다(황덕순, 2016). 앱음식 배달업의 경우에는 각종 비용을 제외한 월 순수입이 평균 230만원으로 전체 근로자 평균임금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이는 조사대상 61% 이상이 10시간 이상 일하는 앱음식 배달업의 장시간 노동 관행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며, 시간당 임금은 8,790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황덕순, 2016). 

 

또한 플랫폼 노동자들의 소득수준은 편차가 큰 것으로 보인다. 2015년에 ILO에서 실시한 미국과 인도의 크라우드 노동자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들 노동자의 평균 소득은 1-5.5달러였지만, 아마존 미캐니컬 터크 근로자의 10%는 시간당 10달러 이상의 수입을 유지하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아마존 미캐니컬 터크 업무의 90%는 시간당 2달러 이하의 업무였다(황덕순 외, 2016). 플랫폼 노동의 소득수준은 대부분의 저소득 노동자와 일부 고학력, 고숙련 중심의 고소득 노동자로 양극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질적인 변화와 복지국가 혁명

앞에서 고용, 소득, 사회적 보호의 불안정성이 순환되고 불안정 노동이 확산되는 근본적인 원인을 고용형태의 다각화로 설명하였다. 복지국가에서 고용계약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전통적 복지국가의 사회정책이 유급노동에 대한 보호 특히 임금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주요한 목적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적 산업사회에서의 표준적 고용관계가 해체되어 간다는 것은 전통적 복지국가의 설계도를 다시 그려야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고려해야할 것이 있다. 자본주의의 질적인 변화이다. 그 변화의 핵심은 산업자본주의에서 인지자본주의로의 전환이다. 현 단계 자본주의는 노동력에 의해서 가치가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에 의해서 가치가 창출된다. 지식과 정보의 조직화를 통해 가치가 창출된다는 것은 자본형성에서 사회적 성격이 강화됨을 의미한다. 여기서 사회적 성격은 지식축적의 역사성, 집단성과 관련된다. 지식은 오랜 시간을 거쳐 축적되는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지식은 동시대 대중들의 집단적 활동에 의해 축적된다. 이는 인지혁명의 시대에 특히 더 그러하다. 특히 4차 산업혁명에서 중요한 가치 창출 수단인 빅 데이터는 시민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자료를 검색하고, 이메일을 보내고, 온라인 쇼핑을 하는 과정에서 생산된다. 심지어는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도 빅 데이터는 구축된다. 

 

이 빅 데이터는 알고리즘 기술의 혁신적 발달과 결합하며 자본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2) 과거와 달리 생산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노동자 뿐 아니라, 직접적 생산과정의 외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빅 데이터가 자본축적의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반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기반 기업들도 빅 데이터를 광고 및 생산과정에서 활용함으로써 가치를 창출한다. 프로슈머(prosumer)3)라는 개념은 이러한 현상들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들은 초과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신들이 개발한 알고리즘을 공개하여 하나의 플랫폼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그 알고리즘 속에서 활동함으로써 지대를 극대화하게 하는 전략을 선호한다. 이것이 이른바 플랫폼 경제 과정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산된 지대는 현재 지대 형성에 기여한 일반지성에게 분배되기보다는 플랫폼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통적 산업사회의 토지라는 공유지에 비견되는 인지자본주의 시대의 '가상 토지'라는 공유지에서 기업들은 새롭게 지대를 추구 하고 있고, 플랫폼 경제에서 이러한 지대는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플랫폼 기업들의 지대 독점에 대한 규제는 매우 제한적이다. 가이 스탠딩(Standing, 2016)은 지식특허에 과도한 독점권을 부여하고 지대 추구를 용인하는 현대 자본주의를 지대자본주의(rentier capitalism)라 명명하며 비판하고 있다.4) 

 

인지자본주의로의 전환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생산과정에 기여한 일반지성들에 대한 시장에서의 1차적 분배를 왜곡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재분배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전통적 산업사회에 만들어진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체제는 노동을 전제로 한 재분배 시스템이다. 그러나 인지자본주의하에서의 노동시장은 ‘플랫폼 노동’, ‘모호한 고용’ 등이 확산되면서 전통적 사회보험 시스템에 포괄되지 못하는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체제는 더 이상 인지자본주의라는 생산체제의 질적인 변화를 반영하여 사회적 보호의 기능을 충분히 실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전통적 산업사회의 복지체제와 새롭게 변화되고 있는 생산체제 사이의 제도적 부정합은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자리 창출 전략이나 사회보험 강화전략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국가에서 더 나아가 기본소득 중심의 새로운 복지국가 혁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본소득은 모두가 가치 창출에 참여하고 있지만, 일부 플랫폼 기업들에게 독점되고 있는 부를 공정하게 배당하는 방식의 1차적 분배 혁명이며, 노동 없는 미래의 도래에 대비하기 위한 2차적 복지국가 혁명이다. 

 

복지국가 제도들의 정합적 재구성

물론 여기서 언급하는 복지국가 혁명이라는 것이 현 시점에서 기본소득으로 사회보험을 대체해야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기본소득과 사회보험은 상호보완적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 사회보장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보아도 사회변화에 의해서 새롭게 도입된 제도와 이전의 제도들 사이의 관계는 대체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인 관계였다. 서구에서 16세기 대량 빈곤이 발생하자 기존의 빈곤구제 방식이었던 자선은 대량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대량빈곤이라는 새로운 문제는 공공부조의 제도화로 이어졌다. 하지만 공공부조 이전 시기 빈곤구제의 역할을 담당했던 자선은 사라지지 않고 공공부조와 상호보완적인 기능을 수행하였다. 

 

19세기 말 이후 빈곤을 넘어 실업, 질병, 노령으로 인한 소득상실의 문제가 새로운 사회문제도 등장하면서 기존의 공공부조 제도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이는 사회보험의 도입으로 이어졌고, 사회보험이 복지국가의 핵심적 제도로 안착되는 과정에서도, 이전의 공공부조 제도는 소멸되기는커녕 오히려 사회보험과의 상호보완적 관계 속에서 발전되어왔다. 현 시기 필요한 복지국가 혁명도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한 불공정한 분배의 문제 뿐 아니라, 기존의 사회보험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사회적 위험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기본소득이 요구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논의는 기본소득과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정합적 재구성 방식에 있다.

 

 


1) 이 글은 김교성, 백승호, 서정희, 이승윤(2018). 기본소득이 온다. 한국형 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 사회평론 아카데미.(3월 발간)의 일부를 수정하였습니다.

2)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기업 시가총액 순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기업들의 가치는 주로 빅데이터를 통해 창출된다. 2018년 1월 기준 기업 시가총액은 애플 927조원(1위), 구글 778조원(2위), 페이스북 547조원(5위)이다. 2017년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는 1,600조였다. 
3)  프로슈머(prosumer)는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를 합성한 신조어이다. 이 개념은 소비자가 소비 뿐 아니라 제품개발과 유통과정에서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음을 강조하기위해 사용되고 있다. 
4) 2016년 기준 구글이 ‘플레이스토어’를 통해 한국에서 벌어들인 매출 규모만 약 4조 5천 억 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구글은 이 매출의 30%를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가기 때문에, 플레이스토어 판매 수수료 수익만 1조 3천 억 원 규모이다. 이런 매출에 부과할 수 있는 세금이 부가가치세와 법인세이다. 부가가치세는 2015년부터 부과되었는데, 구글은 부과된 부가가치세 10% 만큼 앱 가격을 인상하여 과세부담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였다. 법인세의 경우 국내에 고정사업장을 둔 기업에 부과할 수 있는데, 구글은 고정사업장이라 할 수 있는 ‘서버’를 싱가폴에 두고 있기 때문에 수수료 수익에 대해 국세청은 법인세를 부과하고 있지 못하다. 구글 뿐 아니라, 페이스북, 애플 등도 마찬가지이다.  

 


 

<참고문헌>

김교성, 백승호, 서정희, 이승윤(2018). 기본소득이 온다. 한국형 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 사회평론아카데미.

서정희, 백승호(2017). 4차산업혁명 시대의 사회보장 개혁: 플랫폼 노동에서의 사용종속관계와 기본소득. 법과사회, 56. 

서정희ㆍ박경하(2016). “한국의 가짜 자영업 추정을 통해서 본 비정규 근로자 규모의 오류”. 「한국사회정책」 제23권 3호.

이승윤, 백승호, 김윤영(2017). 한국의 불안정 노동자. 후마니타스.

이주희, 정성진, 안민영, 유은경(2015). “모호한 고용관계의 한국적 특성 및 전망”. 「동향과전망」, 제95호.

조돈문 외. (2015). 민간부문 비정규직 인권상황 실태조사 :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를 중심으로. 국가인권위원회 발간자료, 1-395. 

황덕순 외(2016). 「고용관계 변화와 사회복지 패러다임 연구」. 한국노동연구원.

 

Eichhorst, Werner, and Paul Marx(2017). "Whatever Works: Dualization and the Service Economy in Bismarckian Welfare States." In The Age of Dualization: The Changing Face of Inequality in Deindustrializing Societies: Oxford University Press.

Intuit(2010). Twenty Trends That Will Shape The Next Decade. INTUIT 2020 Report. 

Manyika et al.(2016). Independent Work: Choice, Necessity, and The Gig Economy, McKinsey Global Institute.

Standing, G. (2016). The Corruption of Capitalism: Why Rentiers Thrive and Work Does Not Pay. Biteback Publishing.

 
목, 2018/03/0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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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 노동의 시대

 

신광영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문제제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불안정 고용이 새로운 시대의 키워드가 되었다. 취업을 통해서 임금소득을 얻어야 생존이 가능한 대다수 사람들에게 고용안정은 개인과 가족의 삶의 안정과 직결된다. 고용의 불안정은 삶의 불안정을 가져와 삶의 질을 낮추고 있다.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비표준적인 고용형태는 정규직과는 다른 고용형태 일반을 지칭한다. 표준적인 고용은 지속적으로 고용이 보장이 되고(open ended), 전일제(full time)로 일을 하며, 직접(direct) 고용되어 고용주의 지시에 따라서 일을 하고, 고용주로부터 보수를 받는 고용관계를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형태에서 벗어난 고용형태는 과거에도 많이 있었다. 임시직이나 일일고용 형태는 지속적으로 고용이 보장되지 않았고, 전일제가 아닌 경우도 많다. 농업과 같이 노동력 수요가 계절적으로 변하거나, 건설업과 같이 사업 자체가 불규칙한 경우, 전통적으로 비정규직 고용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불안정 노동이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전통적인 산업 이외에 새로운 산업 부문에서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ILO, 2016: 69). 

 

오늘날 문제가 되는 불안정 고용은 정규직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을 대체하면서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 정규직 고용은 줄어드는 반면, 비정규직 고용은 계속해서 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비자발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 비정규직 취업은 고용불안정과 저임금뿐만 아니라 기술 숙련과 경력 축적이 불가능하게 되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전 생애에 걸쳐서 빈곤층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즉, 일시적인 경제적 어려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에 걸친 어려움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더 나아가, 저임금 노동자들이 증가하면서, 내수 시장에서 소비력이 위축되어, 불안정 고용의 증가가 경제 불황의 원인이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인정하면서 불평등을 줄이고, 가계소득을 늘려 성장을 회복하고자 하는 포용성장(inclusive growth) 논의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첨병이었던 IMF나 세계은행도 주도적으로 포용성장을 내세우고 있다.

 

불안정 고용의 귀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고용불안정과 저임금을 특징으로 하는 비정규직의 급증으로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정치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 1998년 노-사-정이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노동시장 유연화’를 합의한 이후, 비정규직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2002년 비정규직 정의를 둘러싼 노사 합의가 이루어진 이후 만들어지기 시작한 비정규직 통계는 2002년과 2004년 사이에 비정규직 비율이 27.4%에서 37%로 거의 10% 증가하였음을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비정규직 고용의 대폭발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급격한 증가였다. 

 

비정규직 고용의 증가는 한국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구한 모든 나라에서 비정규직이 증가하였다. 물론 비정규직의 경제적 지위와 사회적 안전망은 나라에 따라서 크게 다르기 때문에, 비정규직은 곧 근로빈곤과 생활불안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비정규직 고용은 대체로 사회경제적 지위의 하락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고용의 증가는 불평등 심화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비정규직과 관련하여 대두된 논의 중의 하나가 프레카리아트 논의이다. 프레카리아트는 2011년 영국의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은 그의 저서 <프레카리아트: 새로운 위험한 계급>(Precariat: The dangerous class)에서 제시한 신조어로, 불안정한(precarious)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의미한다. 그는 프레카리아트가 영국에서 가장 박탈된 하층 계급을 구성한다고 보았다.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한 경제적 지위와 심리상태를 특징으로 하며,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등장한 새로운 계급이라는 것이다. 스탠딩의 논의는 고용이 안정되어 있고, 일정 수준의 임금이 보장되는 기존의 표준적 고용체제, 특히 단체교섭을 통해서 고용과 임금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고용계약과는 달리, 프레카리아트는 비표준적 고용 체제를 대표하며, 시장변화에 따라서 고용지위가 변화하고 임금도 달라진다는 점에서 불안정성을 주된 특징으로 한다고 보았다. 

 

가이 스탠딩의 논의는 산업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진화한 신자유주의적 변화가 일어나기 전과 후를 비교하면서, 2차 대전 이후에 형성된 고용관계가 오늘날 크게 변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2차 대전 이전에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고용보호와 단체교섭이 제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용 보호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임금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미국 사회학자 마이클 뷰라오이(Michael Burawoy)(1983)는 이것을 시장전제주의(market despotism)라고 불렀다. 시장전제주의 하에서 노동에 대한 통제는 시장변화에 따른 노동력 수요와 임금 수준의 변화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개별 노동자들은 시장의 노동력 수요에 따라서 고용되거나 해고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개별 노동자들은 시장 논리에 근거한 자본의 전제적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전 구자유주의 하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고용 불안정과 소득 불안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점에서 가이 스탠딩이 새로운 위험한 계급이라고 주장한 프레카리아트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계급은 아니다.

 

전후에 유럽에서 형성된 새로운 고용체제는 노사 타협을 통해서 노동과 자본의 이익을 서로 교환하는 사회적 조합주의(social corporatism)로 특징지어진다. 사회적 조합주의는 전국적인 수준에서 노동과 자본 간 교섭이 이루어지는 북유럽이나 산업별로 이루어지는 교섭이 이루어지는 독일같이 제도적인 수준에서 교섭의 수준이 나라마다 달라지만, 공통의 원리는 노동과 자본의 이해관계가 상호 대립적이면서 동시에 의존적이라는 특징을 제도화한 것이다. 노동과 자본은 이윤과 임금이라는 경제적 성과의 배분을 둘러싸고 이해를 달리한다. 과거 노동조합이 조직되지 않았을 때에는 성과의 배분은 자본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저임금의 보편화였다. 비대칭적인 권력관계 속에서 노동자들은 저임금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러나 저임금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조직화되고, 일방적인 임금 결정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이윤의 배분을 둘러싼 이해갈등으로 나타났다.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점차 노동자들도 참정권과 더불어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권을 확보하기 시작했고, 노동과 자본 간의 권력관계의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이윤의 배분을 둘러싼 노사 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파업이 아니라 교섭을 통해서 해결하는 단체교섭제도가 도입되었다. 전후 서구에서 자리 잡은 ‘사회적 조합주의’는 노사 간 계급 타협의 성과이자, 민주적으로 이해 갈등을 조정하는 제도로서 기능하였다.

 

 

불안정 노동의 역학

역사적으로 비서구 사회에서는 두 가지 과정을 거쳐서 노동 형태의 변화를 경험하였다. 먼저,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점차 비공식 부문(informal sector)이 축소되고, 공식부문의 확대가 나타났고, 이에 따라 비공식 부문의 절대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비정규직 고용이 축소되는 과정이다.1)  

 

농업사회에서 관습적으로 이루어졌던 일과 보상에 관한 규범들이 산업화를 통해서 각종 법과 제도에 의해서 규제되기 시작했다. 국가가 최저임금, 노동시간, 노동환경, 건강, 산업재해와 퇴직금이나 연금 등과 관련된 법과 제도를 통해서 노동을 규제하는 방식으로의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표 1-1> A에서 D로의 변화를 지칭한다. 공식부문은 현대 산업사회에서와 같이 경제활동이 각종 제도에 의해 규제를 받는 영역을 지칭한다. 임금은 세금이나 연금과 관련되어 있고, 노동시간이나 산업재해는 법에 의해서 규제되며, 고용과 관련하여서도 차별금지와 같은 법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퇴직금과 연금도 법과 제도에 의해서 다루어진다. 이러한 법과 제도에 의해서 규제되는 영역이 공식부문이고, 그렇지 않는 나머지 경제활동 영역이 비공식 부문이다(Feige 2016). 아프리카, 남미와 동남아시아와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산업화가 덜 진행되어 관련된 법과 제도가 없거나, 있더라도 법과 제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경제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불안정 노동은 비공식 부문의 비정규직(<표 1-1>의 A)에서 공식부문의 비정규직으로 변화를 보였다. 산업화 초기엔 표준적인 고용체제가 발달하지 않았고, 노동에 대한 법적, 제도적 규제도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산업화 초기의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억압적인 통제를 일상적으로 경험하였다. 국가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보다는 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면서, 각종 국가 기관을 동원하여 노동자들의 불만을 관리하고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막았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나타나는 비정규직 고용은 대부분 비공식 부문에서 나타나는 고용형태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근대적인 생산방식과 고용관계를 촉진시켰다. 그리하여 근대사회에서 표준적인 고용의 확산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법과 제도에 의해서 규제되는 고용관계가 확산되고, 노동운동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권리가 증진되면서, 고용관계도 표준적인 형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산업화는 전체적으로 비공식 부문의 축소와 공식부문의 확대를 가져왔다. 이것은 고용과 해고, 임금과 각종 수당, 연금을 포함한 복지 등에서 예측 가능한 규칙들이 만들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고용이 이루어지면서 나타난 변화이다. 이것이 <표 1-1>에서 A에서 D로의 변화이다.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확산은 표준적인 고용체제의 붕괴를 가져왔고, 공식부문 내에서도 비정규직(<표 1-1>의 C)이 양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비정규직 고용이 허용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비표준적인 노동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임시직이나 일일 고용과 같은 인력의 탄력적 활용에 초점을 맞춘 비표준적 고용 이외에도 용역이나 파견근로를 이용한 간접고용, 제한된 기간 동안만 일하는 기간제 고용이나 단시간 노동 등이 새롭게 등장했다. 많은 기업들이 수량적 유연화와 기능적 유연화를 추구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기업은 비정규직 고용을 이용하여 채용, 관리, 복지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필요한 노동자들을 용역회사나 하청기업을 통해서 조달할 수 있게 되었다(Kalleberg et al., 2003). 그렇게 <표 1-1>에서 C가 크게 증가하였다. 20세기 후반부터 비정규직 노동이 축소되는 추세가 약화되고, 오히려 표준적인 노동이 약화되고 비표준적 노동이 강화되는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불안정 노동의 성격과 규모는 나라마다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주로 비공식 부문에서 이루어지는 비표준적 노동이 불안정 노동을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2012년 비공식 부문 노동자는 7,070만 명으로 전체 피고용자의 62.71%를 차지하였다. 공식 부문의 경우에도 기간제 고용이나 외주의 형태로 비표준적 노동을 활용하면서, 공식 부문의 70%가 불안정 노동 상태에 놓여 있다(ADB, 2014: 24). 대조적으로 일본의 경우는 통계적으로 비공식 부문은 거의 사라졌고, 공식 부문의 비정규직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데,  2015년 비정규직 고용 비율은 37.5%로 1997년 29.9%보다 크게 늘었다. 한국의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계속해서 증가하여 2016년 644만 명에 달하였지만, 피고용자 중 비정규직의 비율은 2007년 35.9%로 정점에 도달했다가 2016년 32.8%로 비중은 약간 줄어들었다. 

 

먼저 불안정 노동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하여, 불안정 노동이 주로 자발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비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가를 구분할 수 있다. 불안정 노동이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라면 그것은 노동보다 여가를 더 선호하는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네덜란드의 경우, 시간제 고용의 비율이 2016년 38.5%로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았다(OECD, 2016: 31. 참고로 한국은 10.6%). 네덜란드의 경우 자발적 비정규직의 비율도 대단히 높아서 2015년 시간제 노동의 50% 정도가 자발적 선택에 의한 노동이었다(OECD 2015: 31). 한국의 경우도 2016년 자발적 비정규직 비율이 시간제 고용의 42.2%를 차지하였다(통계청 2-16). 불가리아나 루마니아 같은 동유럽 국가들에서 자발적인 시간제 고용이 비율이 높아, 시간제 고용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터키에서는 93%에 달하였다. 스페인과 이태리의 시간제 고용의 경우도 50% 이상이 비자발적 비정규직이었지만, 미국의 비자발적 시간제 노동은 27%로 국가 간 차이가 대단히 컸다(OECD, 2015: 31).

 

그러나 자발적 시간제의 경우, 여성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과 가정을 고려한 선택의 결과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선택이 진정한 자발적 선택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불안정 노동의 증가는 고용계약과 사업계약의 성격을 모두 지니는 근로계약을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사업계약을 통해서 일을 하지만, 일은 노동계약의 성격을 지니는 경우를 말한다.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도구나 기기를 조달하는 방식으로 일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경제활동 수단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노동자와 다르다. 일반 노동자들의 경우는 전적으로 경제활동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일터에서 지급을 받는다. 그러나 일의 성격은 고용된 노동자와 동일한 경우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차를 가지고 화물을 운송하는 지입 차주나 택배기사는, 차를 소유하고 있고 사업계약을 통해서 특수 고용직으로 분류되며, 이들이 맺는 계약은 근로계약과 사업계약의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피고용자도 고용주도 아니라는 점에서 자영업자에 속하지만, 임금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특정 계약주체(갑)와 종속적 관계를 맺는 계약주체(을)라는 점에서 종속적 자영업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책적 대응

불안전 고용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것은 경제 주체인 개인, 기업과 국가 간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각 경제주체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고용문제에서 국가는 공공부문의 경우만 직접적으로 특정한 고용정책을 취할 수 있고, 민간 부문은 사기업이 고용정책이 주체이기 때문에, 노동, 자본과 국가 사이의 사회적 합의를 통한 해결책 모색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정책적 방향은 크게 4가지 요소를 포함하여야 한다. 첫째, 노동시장의 규제완화에서 규제강화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노동시간과 임금에서의 규제완화는 ‘저임금을 향한 경쟁’을 촉발시켜,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의 등장과 비정규직 차별을 정당화하는데 기여하였다. 고용과 관련된 차별과 배제를 막기 위하여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강화하여, 적어도 하는 일이 같은 경우에 발생하는 시간당 임금의 차별을 막아야 한다. 또한 시간제, 파견근로, 특수고용직과 같은 다양한 비정규직 보호를 위하여 노동시간과 노동조건에 규제가 더 강화되어야 한다. 산업이나 업무와 관련하여 비정규직의 남용을 막는 입법을 통하여 비정규직 남용을 막는 것이 필요하다. 비용을 줄이기 위한 비정규직 고용은 비정규직의 업무 과다와 산업안전 소홀로 인하여 산재사망자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규제강화는 시급한 과제로 남아 있다. 

 

둘째,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의 등장과 비정규직의 낮은 임금은 단체교섭에 영향을 받지 않는 노동자들의 확대로 인하여 더욱 확산되고 있고, 이는 근로 빈곤층의 확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직 부문에서 이루어진 단체교섭이 미조직 부문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단체교섭 적용 범위의 확대가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경우를 보면, 노조 조직률은 한국과 같이 낮은 수준이지만, 단체교섭의 적용률은 90% 이상에 달하고 있어서, ‘바닥을 향한 질주’가 제어되고 있다. 또한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법적으로 넓게 인정하는 입법을 통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조를 쉽게 조직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캐나다, 스페인, 독일의 경우처럼, 특수고용직과 같이 노동계약이 아닌 종속적인 개인 사업자들도 조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이 필요하다(ILO, 2016: 27).

 

셋째, 사회적 안전망의 강화가 필요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회적 안전망을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더 강화시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도록 한다. 위험 수준이 높은 집단에게 더 강화된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여, 비정규직 노동으로 인한 다양한 불이익을 상쇄할 수 있도록 한다. 실업수당을 받을 자격이 주어지는 노동기간과 노동시간을 축소시켜, 비정규직으로 인한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또한 노동시장 소득이 낮은 경우, 사회복지제도를 통하여 보완하는 제도적 상보성을 강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시장제도와 복지제도의 연계를 통하여 개인과 가족의 생활이 위협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예는 네덜란드나 덴마크의 유연안정(flexicurity) 모형에서 찾을 수 있다(조돈문 2016). 

 

넷째,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인적 자본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직업훈련과 경력개발 기회를 확대시켜야 한다. 비정규직 고용은 특수한 기술이나 새로운 역량의 축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노동시간이 불규칙할 뿐만 아니라, 재정적으로 은행 대출이나 융자를 받기도 힘들기 때문에, 특수한 직업교육이나 기술을 습득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장기실업 상태에 놓여 있거나 혹은 출산과 보육으로 오랫동안 직장을 떠나있는 경우에 발생하는 역량 하락을 극복하기 위한 재취업 역량강화 정책도 필요하다. 

 

 


1) 비공식 부문은 ‘비공식 경제’ 혹은 ‘그림자 경제(shadow economy)’라고도 불리며, 비공식 부문의 정의는 다양하다. 여기에서는 기본의 법과 제도에 의해서 포괄되지 않은 노동이 이루어지는 부문이나 경제를 지칭한다. 비공식 부문의 규모는 나라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비공식 부문 종사자는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7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큰데, 이는 북유럽 국가들과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이에 대한 논의는 Feige(2016)을 볼 것.

 


<참고문헌>

조돈문. 2016. 노동시장의 유연성-안정성 균형을 위한 실험, 후마니타스. 

Asia Development Bank(ADB) (2014). Precarious Work in Asia-Pacific Region, Manila: ADB.

Asao, Yutaka. 2010. Overview of Non-regular Employment in Japan, JILPT  neth.

Burawoy, Michael. 1983. “Between the Labor Process and the State: The Changing Face of Factory Regimes Under Advanced Capitalism”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48, 5: 587-605.  

ILO. 2015. Non-standard forms of employment, Geneva: ILO.

______. 2016. Non-standard employment around the world: Understanding challenges, shaping prospects, Geneva: ILO.  

Feige, Edgar L. (2016). "Reflections on the Meaning and Measurement of Unobserved Economies: What do we really know about the "Shadow Economy"?". Journal of Tax Administration (30/1).

Kalleberg, Arne L. 2003. “Flexible Firms and Labor Market Segmentation: Effects of Workplace Restructuring on Jobs and Workers.” Work and Occupations 30:  154-175.

OECD. 2016. OECD Labor Force Statistics 2016, Paris: OECD. 

 
목, 2018/03/01-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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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장지연 |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불안정한 노동은 곧 불안정한 삶이다. 적어도 일정 기간 고용과 소득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될 때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세우고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는 평범한 삶을 꿈꿔 볼 수가 있을 텐데 그럴 수가 없다. 중년의 불안정노동은 자녀에게 필요한 교육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빈곤의 대물림이며, 자신의 노후 빈곤으로 이어진다. 

 

불안정한 노동은 또한 무한경쟁의 삶이다. 지금 나의 일자리가 언제 다른 사람의 일자리로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좀 더 싼 임금으로 일할 수 있다며 고용주에게 읍소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우리 스스로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하고 있는 시장의 효율성이고 경쟁의 미덕이다. 문제는 이것이 ‘인간의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정신에는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결과는 ‘바닥을 향한 질주(race to the bottom)’이다. 노동과 자본의 관계는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 있기 때문에 균형을 조금이나마 맞춰보고자 근로기준법이 있고, 사회보험 가입의무 같은 제도가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 대응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 할 권리를 부여한다. 그런데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에게는 이 모든 것이 그림의 떡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나 최저임금 인상,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일자리 안정자금 같은 정책들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불안정한 노동은 단순히 한시적 고용(temporary employment)의 문제가 아니다. 고용주가 노동자를 단기적으로 고용해서 발생하는 문제는 노동 전반을 불안정하게 하는 현상의 절반만 설명할 뿐이다. 고용주는 하청이나 특고(특수형태근로종사자) 노동자에 대해 ‘우리 회사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미국의 한 학자는 이것을 ‘노동자 털어내기’라고 부른다(데이비드 와일, 2016, 『균열일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당의 배달노동자였던 사람이 지금은 스스로를 ‘개인사업자’라고 이해하고 있다. 아프거나 사고가 나면 일감과 함께 소득이 끊기는데, 이게 모두 내가 책임져야할 일이라고 한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으로 화두가 되고 이에 대응하여 ‘기간제법’이 제정된 시기가 2007년이니, 겨우 10년 만에 불안정 노동의 문제는 기간제 노동 뿐 아니라 간접고용, 특고, 위장자영의 문제로 오히려 확산되는 양상이다. 한두 가지 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 되겠다. 하지만 불안정 노동자의 증가가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상황인 것은 아니다. 이번 호 기획기사들이 뜻을 모으고 지혜를 모으는 중요한 한 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목, 2018/03/0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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