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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셔록의 워싱턴리포트⑥]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빠진 것,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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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셔록의 워싱턴리포트⑥]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빠진 것, 미국

익명 (미확인) | 목, 2017/09/14- 16:15

코리아타운에서 <택시운전사> 관람…광주 기억 다시 떠올라

지난달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있는 코리아타운에서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나는 지난 4월과 5월 광주에 다녀온 기억에 휩싸였다. 당시 나는 광주시의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내가 기증한 5.18 관련 미국 정부의 기밀해제 문서 3,500건을 5.18기록관이 수집한 유물, 사진, 부검보고서, 영상자료와 통합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 얼굴과 이름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거리나 식당에서 광주 시민들이 나를 알아보고는 다가와 함께 셀카를 찍고 이야기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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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셔록 기자와 김준태 시인

그들 중 일부는 김준태 시인처럼 5.18 당시 항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이었다. 다른 이들은 부모의 경험이나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통해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광주 시민들이 광주 학살의 참상을 최초로 찍어 전세계에 보도했던 독일 촬영기자 고 위르겐 힌츠페터에게 그랬던 것처럼,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내가 한 노력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영화에서 한 시민은 광주 사태 보도를 막으려는 정부의 탄압에 대해 “그들의 거짓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달라”고 광주를 떠나는 힌츠페터 기자에게 부탁한다. 광주 시민들은 그에게 공식 뉴스는 ‘말도 안 되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고, 군부가 사용한 ‘폭도’나 ‘빨갱이’라는 용어의 이면에 있는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을 ‘유언비어’를 퍼뜨린다고 매도했다고 말한다. 이 단어들은 나도 2017년에, 그리고 1980년대에 광주를 처음 방문했을 때 모두 들었던 적이 있는 것들이다.

힌츠페터의 영상이 광주항쟁 취재 계기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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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6일 광주 망월동에서 열린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 추모식.

그러나 나에 비하면 힌츠페터 기자의 공헌이 훨씬 더 크다. 힌츠페터 기자와 그를 군이 봉쇄한 광주시로 데리고 간 운전사 김사복은 광주 보도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의 진실을 기록하겠다는 힌츠페터 기자의 결심은 전두환의 군부가 정권을 잡으며 자행한 범죄를 만천하에 드러내며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중앙데일리가 보도한 것처럼, 그가 촬영한 영상은 “한국 역사상 가장 비통하고 괴로운 순간들 중 하나를 포착했다.” 그는 전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군부 파시즘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게 도움으로써 전두환과 그 정권의 평판에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그의 업적은 나에게도 개인적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1980년대에 대학원생이자 정치활동가로서 나는 그가 포착한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고, 광주에서 벌어진 일이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한 일이었다는 것을 금방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비록 그 영상을 힌츠페터 기자가 찍었다는 사실은 여러 해가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의 영상을 통해 알게 된 광주의 참상은 내가 5.18 당시 미국의 역할을 밝히는 데 큰 동력이 되었다. 나는 영원히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할 것이다.

2016년에 나는 그에게 직접 감사의 말을 전할 기회를 갖게 될 뻔했다. 그 해 5월, 광주시는 나를 포함하여 격동의 현장에 광주시에 있었던 몇몇 외국인 ‘5.18 언론인’ 을 사흘간의 행사에 초청했다. 안타깝게도 힌츠페터 기자는 그 해 1월에 세상을 떠났다. 대신 그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가 행사에 참석할 수 있었고, 2016년 5월 16일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린 망월동 묘역에서 연설을 했다. 망월동 묘역은 5.18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국립 5.18 민주묘지 옆에 있다. 나는 그녀의 연설과 현수막에 적혀 있는 힌츠페터 기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 크게 감동받았다.

나는 그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진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도 알 수 있었다. 내 필름에 기록된 것은 모두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 날 5.18 언론인들을 위한 오찬장에서 나는 브람슈테트 씨에게 그녀의 남편의 훌륭한 업적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했다. 최근에 나는 그녀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서울에서 <택시운전사>를 관람한 소식을 접하고 기뻤다.

광주학살 재조사에 5.18 당시 미국의 역할도 반드시 포함돼야

올해 5.18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광주 시내에서 60명 이상의 시민이 총에 맞아 숨진 1980년 5월 21일에 누가 발포명령을 내렸는지 규명하기위해 군부의 학살 사건을 조사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광주의 진실은 외면할 수 없는 분노였다”고 말했다. 이번주 초 한국 국방부는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헬리콥터에서 발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의혹과 전두환이 광주를 진압하기 위해 전투기를 준비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조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5월 21일에 군이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는 참혹한 장면은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잘 묘사하고 있으며, 전면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5.18의 진상규명에 있어 영화에서도, 국방부 조사에서도 중요한 부분이 빠졌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5.18 당시 미국의 역할이다.

내가 1996년에 광주항쟁 관련 기사에서 문서로 제시한 바대로 카터 행정부의 최고위 국가안보 관계자들은 1980년 5월 22일 백악관에 모여 당시 한국 군부를 지지하기로 합의했다. 그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두환과 그의 계엄군이 5월 18일부터 21일 사이에 발생한 참혹한 유혈사태에 책임이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 따라서 영화가 좀 더 정확하기 위해서는 군인들이 시민을 향해 발포한 다음날 미국 정부가 전두환의 광주 진압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었다는 사실을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자막으로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한국 사람들에게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을 알리고, 동시에 위대한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업적을 기릴 수 있을 것이다. 광주 시민들은 적어도 그 정도 대접은 받아야 한다.

※ 기사 원문(영어) 보기 | See original version(EN)


취재 : 팀 셔록
번역 : 임보영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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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9 개각 대상자 9인 재테크 분석
– 9명중 4명은 20억 부동산 부자
– 송언석 차관, 출생 전 토지 6필지 매입

지난 10월 19일 발표된 9명의 신임 장·차관급 고위공직자들의 재산 내역을 분석한 결과 1인당 1년에 평균 1억 원 씩 재산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영 교육부차관은 재산 신고 내역이 없어 분석에서 제외했다). 또 9명 중 5명은 강남과 송파, 용산에 아파트 등 부동산을 가지고 있었다. 공시가격 기준으로 20억 원 이상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인사는 9명 중 4명이고, 10억 원 이상은 5명이다. 송언석 기획재정부 2차관은 출생 전에 매입한 것으로 돼 있는 토지 6필지를 포함해 13필지를 출생전이나 미성년 시절 매입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대한민국 정부 관보에 공개된 공직자 재산 내역과 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 자료 등을 바탕으로 이번에 발표된 장·차관급 인사 9명의 재산 증식 현황을 분석했다.  송언석 기획재정부 2차관의 재산이 31억 원으로 가장 많고, 20억 원 이상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공직자는 9명 중 4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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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언석 차관은 모두 토지 14필지를 소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김천시 구성면 미평리 668번지’ 토지는 1963년 생인 송 차관이 태어나기 5년 전인 1958년에 송 차관이 매입한 것으로 등기부등본에 기록돼 있다. 이처럼 송 차관이 출생하기 전에 송 차관 이름으로 매입된 토지는 모두 6필지로 확인됐다. 또 나머지 8필지 가운데 확인이 가능한 7필지도 모두 송 차관이 만 14세가 되기 이전에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송 차관은 성인이 되기 전 현재 가치로 2억 원이 넘는 자산을 본인 명의로 소유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김천시 등기소 관계자는 과거에는 토지 등기를 할 때 신원 확인 절차가 허술했고, 등기 접수를 할 때 계약서를 소급해서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왜 출생 전에 매입이 됐다고 기록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송언석 차관은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할아버지가 모은 재산을 물려준 사실상 증여였지만 매매로 잘 못 기록한 것 같다”며, “태어나기 전에 매매한 것으로 기록된 것은 단순한 오기이고, 증여세를 낸 증빙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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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대상인 9명의 고위공직자 가운데 5명(김영석 해양수산부장관후보자, 윤학배 해양수산부 차관, 조태용 국가안보실1차장, 방문규 복지부차관, 송언석 기재부2차관)은 강남과 송파, 용산구에 아파트 등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20억 원 이상의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공직자는 9명 중 4명이고, 10억 원 이상은 5명이다. 9명 공직자의 재산 가운데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의 비중은 72%가 넘었다. (부동산 관련 채무로 추정되는 금융 부채는 부동산 가액에서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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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의 증감 추이를 분석한 결과 1인당 1년 평균 1억 3백만 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태용 국가안보실 1차장의 경우 2014년 재산을 신고하면서 이태원의 자택을 토지와 건물로 분리 등기해 서류상으로 재산이 10억 원 이상 감소한 것으로 신고했다. 재산 증감 추이는 조태용 1차장을 제외한 8명의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계산했다.)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난 임성남 외교부1차관의 경우 재산이 1년 동안 2억 6천만 원 증가했다. 광진구 화양동의 건물이 1년 만에 9천 만 원 가량 올랐고, 임대료와 펀드 수익 등을 저축한 예금이 1억 원 가량 증가했기 때문이다. 김영석 해양수산부장관 후보자는 1년에 평균 4천만 원 정도 재산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 유학 비용으로 빚이 늘었기 때문이다.

▼ [표] 10.19 개각 고위공직자 9명 재산 내역 (단위 : 백만 원)

이름 부동산 소유 부동산 재산
총액
송언석
기재부2차관
2,616 대치동 아파트
방배동 아파트 등
3,126
임성남
외교부1차관
2,274 화양동 건물
경기도 광주 임야 등
2,897
방문규
복지부차관
2,071 서빙고동 아파트
방배동 아파트 등
2,838
조태용
국가안보실1차장
2,458 이태원동 주택
삼성동 상가 등
2,050
강호인
국토부장관
후보자
567 과천시 아파트
대구시 아파트 등
1,513
황인무
국방부차관
115 대전시 아파트
(전세) 등
1,099
김규현
외교안보수석
1,044 고양시 아파트
인천 송도동 아파트 등
932
윤학배
해수부차관
544 위례신도시 아파트
세종시 아파트 등
577
김영석
해수부장관
후보자
775 도곡동 아파트
고양시 아파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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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10/2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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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3일) 새벽 4시 10분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과 무소속 의원 171명이 서명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발의됐다. 표결은 다음주 금요일(9일) 진행될 예정이다. 탄핵안 의결 정족수는 국회의원 300명 중 3분의 2,최소 200명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탄핵안에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새누리당 비주류의 선택이 가결의 최종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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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안 발의를 앞두고 뉴스타파 취재진이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만난 새누리당 비주류 의원들은 대통령의 퇴진 일정을 놓고 여야가 일단 협의를 해야 된다고 선을 그었다. 새누리당 비주류 비상시국회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황영철 의원은 “아무런 협상도 하지 않은 채 탄핵으로만 올리겠다고 하면 국회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어느 한 방향으로만 가는 것이라고 본다”며 “하는 데까지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탄핵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도 “촛불 민심에 드러난 국민적 분노를 생각하면 즉각 탄핵이 맞는 것이지만 국가의 미래나 안정적인 국정 이양 수순을 밟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가장 실효성 있는 건 대통령의 자진 사퇴”라고 밝혔다.

매 주말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촉구하는 상황에서 여야 모두 촛불 민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여당의 탄핵안 동참을 어떻게 이끌거냐는 질문에 “탄핵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박근혜-최순실 의혹에 동조, 방조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도덕적 호소와 국민적 압력을 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의당 원내대표인 노회찬 의원은 “국민만 믿고 간다”며 시민들의 뜨거운 요청이 여당을 설득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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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표결을 6일 앞둔 시점에 열린 오늘(3일) ‘박근혜 즉각 퇴진 범국민 행동 6차 촛불 집회’는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시작됐다.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함께 새누리당의 해체를 촉구하면서 탄핵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새누리당은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탄핵안은 발의됐다. 9일 표결에서 탄핵안이 통과된다면 박근혜 씨의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는 정지된다.


제작: 박중석
취재: 이유정, 송원근
촬영: 정형민, 최형석, 김기철
편집: 윤석민

토, 2016/12/0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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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일부 보도됐던 청와대 유출 기밀문서 47건 목록 일체와 그 내용을 검찰 수사기록 입수를 통해 확보했다. 또 기밀문서 외에도 각 정부부처와 지자체의 업무보고 문서 26건을 포함해 검찰이 유출된 것으로 파악한 185건의 유출 문서 리스트도 모두 확인했다.

여기엔 기존에 알려진 유출 문서 외에도 최순실 씨의 국정개입을 가늠케하는 문서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청와대에서 유출된 문서를 통해 최순실 씨는 대통령과 사실상 대등한 위치에서 국정 추진 상황과 주요 정책 내용을 알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검찰이 최순실의 태블릿 PC와 데스트탑 PC에서 확보한 유출문서 185건 가운데 일부. 수석비서관회의와 국무회의는 빠짐없이 포함돼 있다.

▲ 검찰이 최순실의 태블릿 PC와 데스트탑 PC에서 확보한 유출문서 185건 가운데 일부. 수석비서관회의와 국무회의는 빠짐없이 포함돼 있다.

정호성 전 비서관은 검찰 조사에서 최순실 씨에게 여러가지 자료를 보냈지만, 특히 “수석비서관 회의와 국무회의 말씀자료는 거의 대부분 최순실씨에게 보내준 것으로 기억한다”고 진술했다.

정 전 비서관은 또 “대통령이 개개의 사안을 모두 지시한 것은 아니지만 큰 틀에서 최순실 씨의 의견을 들어보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따랐다”고 말해 문서 유출이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임을 시인했다.

검찰 수사기록을 통해 유출 문건의 내용 뿐만 아니라 문서 유출의 과정도 소상히 밝혀졌다.

검찰이 확인한 유출 문건 기간은 2013년 3월부터 2016년 4월까지로 정호성 전 비서관은 주로 최순실과 함께 사용한 지메일 계정([email protected])을 통해 문건을 보냈다. 계정 이름이 발음할 때 ‘지시’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정 전 비서관은 구형 대포폰 2개로 최 씨와 문서를 보내고 받을 때마다 문자메시지나 전화통화로 연락을 취했다.

▲ 검찰이 확보한 정호성 전 비서관 사용 대포폰에 남아있던 최순실 씨와의 문자메시지 수발신 내역

▲ 검찰이 확보한 정호성 전 비서관 사용 대포폰에 남아있던 최순실 씨와의 문자메시지 수발신 내역

2013년 3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확인된 통화와 문자교신이 1484회로 평균 하루 2번 꼴이었다.

▲ 검찰이 확보해 분석한 2013.3~2014.12 까지의 정호성과 최순실의 통신 기록 통계

▲ 검찰이 확보해 분석한 2013.3~2014.12 까지의 정호성과 최순실의 통신 기록 통계

검찰이 휴대폰에서 확인한 통신기록은 정 전 비서관의 문서유출 혐의를 입증하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통신기록이 대통령의 각종 일정과 정확히 겹치거나 문서 수발신 시각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정 전 비서관은 2015년 1월 이후에 사용한 대포폰은 버렸다고 진술했다. 정윤회 문건 파동이 발생했던 2014년 12월 직후이다. 대포폰 폐기 이후인 2015년부터의 유출 문건 확보가 많지 않았던 이유로 해석된다.

정 전 비서관은 “검찰이 자택을 압수수색할 때 처의 가방에서 구형 휴대폰 여러 대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정말 눈앞이 노래졌다”며 “압수수색이 끝나고 처를 붙잡고 정말 많이 울었다”고 진술했다.

울게 된 이유는 “자신 때문에 대통령이 곤경에 빠지는 게 되는 것은 아닌지 정말 속이 많이 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 전 비서관의 우려는 그대로 현실이 됐다. 실제로 여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주권주의를 위반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취재 최기훈
촬영 정형민
편집 박서영
CG 정동우

화, 2017/01/1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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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29일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의 조건부 사업 추진 승인을 받은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의 적절성과 타당성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국책 연구 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강원도 양양군이 제출한 ‘설악산 오색 삭도(케이블카) 설치사업 환경영향 평가서(초안)’를 검토한 결과, “입지의 적절성”과 “계획의 타당성”이 미흡할 뿐 아니라, 국립공원위원회의 조건부 심의 결과에 배치되고 부실 조사와 오류를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KEI의 검토 의견은 그동안 시민 환경 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돼온 주장과 대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지난해 국립공원위원회가 관광 활성화를 빌미로 찬반 격론에 이어 표결까지 가는 진통 끝에 조건부 승인을 내린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현재대로 추진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평가여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 설악산케이블카 사업 환경평가영향서(초안)에 대한 KEI의 검토 의견.

▲ 설악산케이블카 사업 환경평가영향서(초안)에 대한 KEI의 검토 의견.

KEI는 케이블카가 설치되는 지역의 산림 훼손 면적이나 수목량이 애당초 계획에 비해 감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증가하고 있고, 사업계획 대상지는 ‘아고산대’로 산양 등 법정 보호 동식물의 주 서식지일 가능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특히 상부 정류장 부근에 조성될 산책로에서 관광객이 이탈할 경우, 불과 260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백두대간에 직접적인 영향이 예상되고 그 수준은 매우 심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식물 현황의 경우 설치될 시설물로부터 100미터 범위 내를, 동물 현황의 경우 직접 영향권인 500미터와 간접영향권인 1,000미터를 중점 지역으로 설정해 조사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케이블카의 지주와 노선 부근만 조사해 현장의 현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문제점들은 국립공원위원회가 조건부 심의에서 제시한 ‘상부 정류장 주변 식물보호 대책 추진’과 ‘산양 문제 추가 조사와 멸종위기종 보호대책 수립’, ‘탐방로 회피대책 강화 방안 강구’ 등 7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KEI는 분석했다.

또 양양군은 공사와 소음 등 인위적 요인에 의해 동물들이 주변으로 회피하는 영향만을 예측했지만, 헬기 이용으로 포유류, 조류, 곤충류들의 짝짓기와 번식, 먹이와 영역 활동에 심각한 영향이 예상되고, 멸종 위기 종인 산양과 담비, 삵 등은 서식지 파편화로 개체군이 감소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사업 추진에 대한 반대 여론이 적지 않기 때문에, 주민 설명회와 공청회를 통해 환경 영향 평가에 대한 법적, 절차적 요건이 만족 된다 하더라도 환경 단체와 양양군 간의 추가적인 갈등 조정 노력이 필요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평가서에 수록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환경영향 평가 협의기관인 환경부(원주지방환경청)는 법령상 KEI의 검토 의견을 수렴하도록 돼 있다.

▲ 환경단체 원주지방환경청 항의방문. 2016.1.12(출처: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 환경단체 원주지방환경청 항의방문. 2016.1.12(출처: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설악산 국립공원지키기 국민 행동’과 ‘케이블카 반대 설악권 주민 대책위’등은 국책연구기관인 KEI조차도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의 타당성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며, 환경부는 양양군의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하고 사회적 기구를 통해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설악산 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 황인철 상황실장은 “설악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보호 구역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이대로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놓여진다면 다른 국립공원 역시 난 개발의 대상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며 환경부가 이번 KEI 검토 의견을 중시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원주지방환경청은 “양양군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는 초안이기 때문에 이번 KEI의 검토 의견을 포함해 지적 사항들을 보완해 본안에 반영되도록 전달할 예정”이라며, 다만 “초안이든 본안이든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할 수 있는 법령상 규정은 없고, 사업 추진 여부를 따질 수 있는 권한은 <국립공원위원회>에 있다”고 밝혔다.

화, 2016/02/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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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가 1980년대 초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 당시 생산된 외무부 비밀문서(작성된 지 30년이 지나 비밀해제되어 지난 3월 31일부터 일반에 공개됨)를 분석한 결과 겉으로는 일본 정부에 강하게 항의하던 전두환 정부가 막후에서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눈을 감거나 심지어 동조하는 모습까지 보인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1982년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의 반일 감정은 극에 달했습니다. 국민들은 역사를 바로 세우자며 십시일반 성금을 모았고, 이렇게 모아진 성금은 독립기념관 건립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왜곡 내용을 시정하겠다는 약속하자 구체적인 수정 사항을 제시했습니다. 즉각 수정이 필요한 13개, 조기 수정 19개, 그리고 기타 7개 등 모두 39개 항목이었습니다. 모두 심각한 역사 왜곡들이었습니다.

2년 뒤인 1984년,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이 여전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전두환 정부는 2년 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손으로 써서 외무부에 내려보낸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는 북괴가 조총련을 이용 일본 좌익계 노조 및 지식인을 이용 한일간의 이간을 노리는 바 한국의 언론은 이에 편성(‘편승’을 잘못 쓴 것으로 보임)하지 않도록 협조 하시요.

▲ 전두환 자필 지시문 1984.2.6

▲ 전두환 자필 지시문 1984.2.6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을 시정하자는 주장이 북한의 배후 조종을 받은 행위라는 거였습니다. 한국 정부의 저자세를 알았던지 일본 정부는 2년 전과는 반대로 한국 정부의 요구대로 교과서를 수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하게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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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과서 역사 왜곡 문제가 시한폭탄이라는 것을 직감한 외무부는 대책을 세웁니다. 1984년 4월에 작성된 문서에 나오는 대책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우선 정부 차원의 대책들은 대부분 실효성이 희박한 것들이었고, 대책의 상당 부분은 역사 왜곡 수정의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자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국민들이 알게 되면 국익에 해가 된다며 최대한 쟁점화를 억제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1984년 6월 말 일본 정부는 역사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일 한국대사가 검정 결과를 분석해 외무부 장관에게 긴급보고한 바에 따르면 역사 왜곡은 여전히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예를 들어 1982년 즉각 수정을 요구한 13개 항목 중 우선 일본의 ‘침략’ 부분은 8권 중 6권이 ‘침략’이 아닌 ‘진출’로 표현했습니다. 두 번째, 주권 박탈 항목은 13권 중 중 8권이 한국이 스스로 주권을 포기한 것처럼 기술했습니다. 의병 항목에서는 4권 중 3권이 ‘무장 반란’으로,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10권 중 한 곳도 시정하지 않고 ‘암살’로 기술하는 식이었습니다. 결론 부분에서 주일 대사는 언론이 이 문제를 부각시킬 경우 역사 왜곡이 다시 한일 간 외교 문제가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 주일 대사 전문 1984.6.26

▲ 주일 대사 전문 1984.6.26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국 외무부는 주일 대사의 보고 내용과는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습니다. 당시 외무부는 논평을 통해 “한국이 ‘즉각시정’ 을 요구한 사항에 대하여는 일단 대체로 시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고 발표했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당시 일본 정부는 한국 외무부에 즉각 수정 대상 13개 항목 중 한 권의 교과서 만이라도 수정됐을 경우 해당 항목에서 모든 교과서가 수정된 것처럼 통보했습니다. 외무부는 주일 한국 대사의 평가와 일본 정부의 통보 중 일본 정부의 통보를 수정 결과로 발표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자국 역사를 미화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라며 일본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태도까지 보였습니다. 특히 전두환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국내 언론 통제에 총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언론 대책의 핵심은 일본 교과서 관련 기사를 외신면에서만 다루도록 유도하고, 문공부와 외무부가 역할을 나눠 보도 통제를 시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사는 누가 왜곡하는 것일까요?

2015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합의는 하루도 못가서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무효 주장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20여 년 동안 풀지 못했던 난제를 풀어낸 자신의 노력을 인정해 달라고 주장했습니다. 국익을 위한 결정이었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30년이 지나서 ‘일본군 위안부’ 합의 관련 외교 문서가 비밀해제된다면 그제야 진실이 드러날 수 있을까요?


취재: 연다혜
촬영: 최형석

 

월, 2016/04/1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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