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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셔록의 워싱턴리포트⑥]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빠진 것,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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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셔록의 워싱턴리포트⑥]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빠진 것, 미국

익명 (미확인) | 목, 2017/09/14- 16:15

코리아타운에서 <택시운전사> 관람…광주 기억 다시 떠올라

지난달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있는 코리아타운에서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나는 지난 4월과 5월 광주에 다녀온 기억에 휩싸였다. 당시 나는 광주시의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내가 기증한 5.18 관련 미국 정부의 기밀해제 문서 3,500건을 5.18기록관이 수집한 유물, 사진, 부검보고서, 영상자료와 통합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 얼굴과 이름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거리나 식당에서 광주 시민들이 나를 알아보고는 다가와 함께 셀카를 찍고 이야기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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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셔록 기자와 김준태 시인

그들 중 일부는 김준태 시인처럼 5.18 당시 항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이었다. 다른 이들은 부모의 경험이나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통해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광주 시민들이 광주 학살의 참상을 최초로 찍어 전세계에 보도했던 독일 촬영기자 고 위르겐 힌츠페터에게 그랬던 것처럼,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내가 한 노력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영화에서 한 시민은 광주 사태 보도를 막으려는 정부의 탄압에 대해 “그들의 거짓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달라”고 광주를 떠나는 힌츠페터 기자에게 부탁한다. 광주 시민들은 그에게 공식 뉴스는 ‘말도 안 되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고, 군부가 사용한 ‘폭도’나 ‘빨갱이’라는 용어의 이면에 있는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을 ‘유언비어’를 퍼뜨린다고 매도했다고 말한다. 이 단어들은 나도 2017년에, 그리고 1980년대에 광주를 처음 방문했을 때 모두 들었던 적이 있는 것들이다.

힌츠페터의 영상이 광주항쟁 취재 계기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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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6일 광주 망월동에서 열린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 추모식.

그러나 나에 비하면 힌츠페터 기자의 공헌이 훨씬 더 크다. 힌츠페터 기자와 그를 군이 봉쇄한 광주시로 데리고 간 운전사 김사복은 광주 보도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의 진실을 기록하겠다는 힌츠페터 기자의 결심은 전두환의 군부가 정권을 잡으며 자행한 범죄를 만천하에 드러내며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중앙데일리가 보도한 것처럼, 그가 촬영한 영상은 “한국 역사상 가장 비통하고 괴로운 순간들 중 하나를 포착했다.” 그는 전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군부 파시즘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게 도움으로써 전두환과 그 정권의 평판에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그의 업적은 나에게도 개인적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1980년대에 대학원생이자 정치활동가로서 나는 그가 포착한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고, 광주에서 벌어진 일이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한 일이었다는 것을 금방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비록 그 영상을 힌츠페터 기자가 찍었다는 사실은 여러 해가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의 영상을 통해 알게 된 광주의 참상은 내가 5.18 당시 미국의 역할을 밝히는 데 큰 동력이 되었다. 나는 영원히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할 것이다.

2016년에 나는 그에게 직접 감사의 말을 전할 기회를 갖게 될 뻔했다. 그 해 5월, 광주시는 나를 포함하여 격동의 현장에 광주시에 있었던 몇몇 외국인 ‘5.18 언론인’ 을 사흘간의 행사에 초청했다. 안타깝게도 힌츠페터 기자는 그 해 1월에 세상을 떠났다. 대신 그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가 행사에 참석할 수 있었고, 2016년 5월 16일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린 망월동 묘역에서 연설을 했다. 망월동 묘역은 5.18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국립 5.18 민주묘지 옆에 있다. 나는 그녀의 연설과 현수막에 적혀 있는 힌츠페터 기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 크게 감동받았다.

나는 그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진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도 알 수 있었다. 내 필름에 기록된 것은 모두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 날 5.18 언론인들을 위한 오찬장에서 나는 브람슈테트 씨에게 그녀의 남편의 훌륭한 업적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했다. 최근에 나는 그녀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서울에서 <택시운전사>를 관람한 소식을 접하고 기뻤다.

광주학살 재조사에 5.18 당시 미국의 역할도 반드시 포함돼야

올해 5.18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광주 시내에서 60명 이상의 시민이 총에 맞아 숨진 1980년 5월 21일에 누가 발포명령을 내렸는지 규명하기위해 군부의 학살 사건을 조사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광주의 진실은 외면할 수 없는 분노였다”고 말했다. 이번주 초 한국 국방부는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헬리콥터에서 발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의혹과 전두환이 광주를 진압하기 위해 전투기를 준비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조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5월 21일에 군이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는 참혹한 장면은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잘 묘사하고 있으며, 전면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5.18의 진상규명에 있어 영화에서도, 국방부 조사에서도 중요한 부분이 빠졌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5.18 당시 미국의 역할이다.

내가 1996년에 광주항쟁 관련 기사에서 문서로 제시한 바대로 카터 행정부의 최고위 국가안보 관계자들은 1980년 5월 22일 백악관에 모여 당시 한국 군부를 지지하기로 합의했다. 그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두환과 그의 계엄군이 5월 18일부터 21일 사이에 발생한 참혹한 유혈사태에 책임이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 따라서 영화가 좀 더 정확하기 위해서는 군인들이 시민을 향해 발포한 다음날 미국 정부가 전두환의 광주 진압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었다는 사실을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자막으로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한국 사람들에게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을 알리고, 동시에 위대한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업적을 기릴 수 있을 것이다. 광주 시민들은 적어도 그 정도 대접은 받아야 한다.

※ 기사 원문(영어) 보기 | See original version(EN)


취재 : 팀 셔록
번역 : 임보영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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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 초기 삼성서울병원이 보건당국의 역학조사를 사실상 방해했다는 일부 언론의 의혹 제기에 대해 보건당국이 직접 부인하고 나선 가운데, 뉴스타파가 삼성서울병원에 파견됐던 한 역학조사관으로부터 당시 현장 상황을 직접 들었다. 이 역학조사관은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환자 접촉자 명단을 제대로 넘겨주지 않아 초기 역학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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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서울병원, 14번·35번 환자 자료 제출 제대로 안 해”

역학조사관 A씨는, 평택성모병원에서 1번 환자와 같은 병동에 머물다 삼성서울병원로 옮겨 5월 27일~29일 동안 응급실에 입원했던 35세 남성(14번 환자)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직후 현장으로 파견됐다.

이어 6월 1일엔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8세 남성도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A 조사관은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당시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그날 삼성서울병원에선 난리가 났다. 35번 환자가 이 병원 의사였던 데다, 확진 직전에 격리되지 않은 채로 서울 시내를 돌아니면서 1천5백여 명과 접촉했다는 사실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었다.
– A 역학조사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당국은 35번 환자의 확진 사실을 숨기다가 뉴스타파 등이 관련 사실을 보도한 이후인 6월 4일에야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보건당국은 그때도 ‘D병원 의료진’으로 표기해 삼성서울병원의 실명을 감춰줬다. (관련기사 : 정부, 메르스 확진 ‘삼성서울병원 의사’ 누락 발표)

A조사관은 6월 1일부터 35번 환자의 감염 경로와 동선을 파악해 추가 감염 의심자들을 추적하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역학조사 업무는 곧 한계에 부딪혔다. 35번 환자를 감염시켰을 것으로 추정된 14번 환자에 대한 조사가 선행돼야 감염경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지만, 삼성서울병원 측에서 넘겨준 14번 환자와의 접촉자 명단이 너무나 부실했기 때문이다. 당시 현장 역학조사관들이 확보한 명단은 환자와 의료진을 포함해 190여 명으로 나중에 삼성서울병원 측이 밝힌 893명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주소와 연락처가 없이 입퇴원 날짜만 덩그러니 기록돼 있었다.

나보다 앞서 파견됐던 선임연구원의 말을 들어보니, 삼성서울병원으로부터 14번 환자 접촉자 명단을 당장 받으려 했지만 그게 안 됐다고 한다. 명단이 있어야 뭐라도 조사를 시작할 텐데 도통 넘겨주질 않더라고 하더라.
– A역학조사관

A조사관은 자신도 앞서 파견된 조사관들과 똑같은 일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나도 35번 환자와 접촉한 환자와 의료진 명단을 넘겨받긴 했는데 범위가 너무 좁았다. 삼성서울병원 실무자에게 명단을 더 달라고 요구하고, 왜 안 주는 거냐고 따져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35번 환자가 병원 내에서 접촉한 사람들에 대한 조사에 한계가 있다보니 병원 밖에서 만났다는 1천5백 명을 추적하는 것이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 A 역학조사관

평택 파견 역학조사과장이 삼성에 ‘자료 제출하라’ 공문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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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서울병원에 파견된 역학조사관들이 기본적인 접촉자 명단조차 넘겨받지 못하고 있던 상황. 그러나 당시 삼성서울병원 현장에는 이같은 문제를 통제하고 대응할 보건당국 책임자가 나와 있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이 A조사관의 증언이다.

삼성서울병원이 접촉자 명단을 계속 안 넘겨주는 것에 대해서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과) 과장님도 알고 계셨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본부 차원에서 어떻게 조치하겠다거나 현장에서 어떻게 대응하라는 지침이 전혀 오질 않았다. 당시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던 다른 병원에는 보건당국의 국장 또는 과장급 책임자가 현장 책임자로 파견됐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삼성서울병원 파견자 중 선임은 책임연구원 한 명뿐이었다.
– A 역학조사관

뉴스타파 취재 결과 보건당국은 6월 3일에야 삼성서울병원에 접촉자 명단 제출에 협조라하는 정식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공문 발송을 지시한 것은 배근량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과장. 그런데 당시 그는 이같은 업무를 지시할 위치에 있던 당국자가 아니었다.

배 과장은 당시 평택성모병원에 파견돼 있었다. 5월 20일 첫 환자 발생 직후엔 역학조사관들을 파견하고 통제하는 역할 전반을 맡았지만 5월 28일 중앙메르스대책본부가 출범한 뒤로는 평택지역 현장대응팀만 이끌도록 역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평택지역 책임자였던 배 과장이 삼성서울병원에 공문을 보내는데 관여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삼성서울병원에 나가있던 역학조사관들이, 접촉자 명단이 제대로 넘어오지도 않고 주소와 연락처가 빠진 명단만 온다며 나에게 불만을 제기했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가 꾸려진 5월 28일 이전까지는 내가 직속 상관이었으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엔 나도 지휘부가 아니라 중앙대책본부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현장대응팀 책임자에 불과했다. 평택성모병원에 파견 중이었으니, 사실 삼성서울병원에 대해선 내가 가타부타할 권한은 없었다. 그러나 삼성서울병원에 나가 있는 조사관들이 아무리 기다려도 명단이 오지 않는다고 나에게 계속 토로하길래, 보다 못해 6월 3일에 질병관리본부 연구원에게 지시해 삼성서울병원 측에 주소와 연락처가 제대로 적힌 명단을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라고 했던 것이다.
– 배근량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과장

결국 삼성서울병원은 현장에 파견된 역학조사관들의 기본적인 명단 제출 요구에 비협조로 일관했고, 평택성모병원에 파견돼 있던 역학조사과장이 삼성서울병원에 정식 문서를 보내도록 사실상 ‘비선 지시’를 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중앙대책본부 차원의 삼성서울병원 통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던 셈이다.

배근량 과장을 통해 공문이 발송된 후 삼성서울병원은 14번 환자와 응급실에서 접촉한 600여 명의 명단을 보건당국에 추가로 제출했다. 14번 환자를 조사하기 위해 역학조사관 3명이 파견된 지 5일 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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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5월 29일부터 6월 3일까지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통제를 담당한 책임자는 누구였을까. 그리고 삼성서울병원 측의 접촉자 명단 제출이 계속 늦어지는데도 보건당국 의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뉴스타파는 A조사관과 배근량 과장의 증언을 토대로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측에 이에 관한 해명을 수 차례 요구했으나 끝내 답변이 오지 않았다.

화, 2015/07/0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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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2016년,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뉴스타파는 이것이 박근혜-최순실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뉴스타파는 박근혜-최순실 체제가 탄생하는데 기여하고, 그 체제 유지가 가능하도록 조력하고 방조한 이른바 ‘부역자’들을 일일이 찾아내 모두 기록하려고 한다. 그 네번째 작업으로, 뉴스타파는 최악의 ‘청와대 방송’가운데 하나로 지목받아온 MBC의 내부 부역자들에 주목했다.

지난 11월 7일 MBC 보도국 게시판에는 사회 1부 데스크인 김주만 기자가 쓴 “뉴스 개선은 보도국장의 퇴진으로 시작해야 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김 기자는 MBC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 태도를 비판하면서 보도국장이 “기자들이 기사 가치로 판단하지 않고, 국장이 싫어하지 않을까, 부장에게 찍히지 않을까 눈치를 보는 보도국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 2일에는 김희웅 MBC 기자협회장이 사내게시판에 “우리는 공범입니다”라는 글을 올려 그동안의 MBC 보도 행태를 자성했다.그는 “사(私)가 MBC 뉴스를 망쳤습니다. MBC 뉴스를 망치면 잘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랬습니다”라고 꼬집었다.간부들이 보직 유지나 출세를 위해 MBC뉴스를 망쳤다고 비판한 것이다.

최기화 보도국장을 비롯해 주요 보직에 올라있는 MBC의 최고 경영진들이 이끈 MBC 뉴스는 그동안 신뢰도와 영향력 면에서 JTBC등에도 뒤처지게 됐고(관련기사),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에서도 가장 소극적이었다는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MBC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정권에 의해 장악됐다고 평가받는 또다른 공영방송 KBS 9시 뉴스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거의 유사한 패턴을 보여왔다.

1. 9월 20일 한겨레에서 최순실과 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이 처음 보도된 뒤에도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2.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에 관련 의혹을 보도할 때는 철저히 여야 정치 공방으로만 취급했다. MBC뉴스만 보면 관련 의혹은 모두 야권의 공세처럼 보였다.

다만 KBS와 차이를 보인 대목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씨와 관련한 연설문 유출 의혹을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한 10월 25일에도 MBC 뉴스데스크는 “하루 만에 책임 인정, 시간 끌기보다 사과로 정면 돌파”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청와대의 방어적 입장을 충실히 전달하려 한 점이다.10월 25일 이 보도만 놓고 보자면 MBC가 오히려 KBS보다 더 적극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끝까지 변호하려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어제 한 종편방송사의 PC파일 입수 보도 이후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전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개헌준비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하에 모든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됩니다.10월 25일 MBC 뉴스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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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방송’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정권 친화적인 뉴스를 통해 이른바 ‘출세와 영달’의 자리를 누려온 MBC의 최고위 간부들은 방송독립과 언론자유를 외쳐온 MBC의 간판 기자와 피디들을 해직시키고,그 자리를 말 잘 듣는 대체 인력으로 채워왔다. 지난 10년 가까이 MBC 내부의 언론 자유를 탄압하고,청와대 눈치 보기에 급급해 온 MBC의 주요 간부들이야말로 박근혜-최순실 체제에 일조한 공범들이다.


취재: 이유정
촬영: 김수영
편집: 정지성

수, 2016/11/0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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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 1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출국 금지 조치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검찰은 지난 11월 초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츠사업 총괄사장 등 삼성그룹 관계자에 대해 출국 금지 조치를 했지만, 이 부회장에 대해서는 별도의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특검이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입주한 당일(13일), 이 부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것은 향후 삼성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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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은 당초 검찰 공소장에 포함되지 않았던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죄’ 혐의 적용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는 참고인 신분이었던 대기업 총수들 역시 피의자로 수사 대상에 오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뇌물죄 적용의 핵심은 미르재단, K스포츠 두 재단에 기업들이 ‘대가성’ 출연을 했는지 여부다. 특검 측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녹음파일 등 검찰로 인계받은 수사 자료를 근거로 뇌물죄 적용을 자신하고 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재벌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인 204억 원을 출연한 삼성그룹은 박영수 특검의 주요 수사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삼성은 재단 출연금 외에도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의 독일 훈련을 위해 코레스포츠에 37억 원을, 정유라 씨의 말 구입비로 43억 원을 지원했다. 또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가 소유한 한국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는 16억 원을 후원하는 등 총 300억 원 상당의 돈을 최씨 일가에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4일 도종환 의원실이 공개한 계약서에 따르면 당초 삼성이 코레스포츠에 지원하기로 계약한 액수는 총 220억 원으로 최순실 사태가 없었다면 최 씨 일가에 대한 삼성의 지원 규모는 140억 원 이상 추가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최씨 일가에 대한 삼성의 지원은 그룹사 승계 과정에서 나온 여러 문제를 정부가 묵인해 준 대가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에 결정적 역할을 한 국민연금의 찬성 입장이 박근혜 정부와 삼성 간 모종의 협의 하에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당시 국민연금은 제일모직의 기업 가치는 과대평가하는 반면, 삼성물산의 기업 가치를 과소평가 함으로써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였던 이재용 일가에 유리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관련 기사 : 국민연금, 삼성물산 ‘적정 합병 비율 1:0.46′ 도 엉터리)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 본부장은 외부 전문가로 이루어진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게 의결권 행사를 일임해왔던 관행을 깨고 내부 임직원으로 구성된 투자위원회에서 합병 찬성을 의결했다. 투자위원회 위원들 가운데 3명을 회의 직전 자기 사람으로 교체했고, 회의 3일 전에는 서초동 삼성 사옥으로 찾아가 이재용 부회장을 만났다. (관련기사 : 국민연금, 이재용 세습 이렇게 도왔다) 이같은 이례적 결정의 절대적 수혜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으로 삼성전자 지분 4%를 포함,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하게 된 이 부회장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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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은 지난 6일 열린 국정조사 1차 청문회에 출석해 “최순실 씨 일가에 돈을 지원하게 된 과정에 대해 전혀 몰랐으며 모두 사후에 보고받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취재 : 오대양

금, 2016/12/1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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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노위 “정리해고 부당”->1·2심 “경영상 해고 불가피”->대법 “원심이 법리 오해, 파기환송”

한화투자증권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에게 복직의 가능성이 열렸다. 대법원이 한화투자증권의 정리해고가 타당하다고 판결한 원심이 잘못됐다며 파기환송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정리해고 이후 3년 6개월 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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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대법원 제2부(주심 조희대)는 한화투자증권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정리해고가 타당하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던 서울고등법원의 원심이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며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대법원은 특히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과 ‘해고회피 노력’에 대한 판단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원고(한화투자증권)가 정리해고 조치를 취한 2014년 2월 9일 당시는 이미 감원된 인원이 382명으로 최종 감원목표인 350명을 상회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최종 감원 목표를 상회해 감원한 상황에서 사측이 추가로 정리해고를 했다면, 이는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성이 있다거나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대법원은 “사측은 정리해고 전후로 정규직 55명, 계약직 59명, 임원 6명을 채용하고 승진인사를 단행하는 한편 일부 부서에 대해서만 성과급 15억원을 지급했다”며 “그 비용지출 규모가 정리해고로 절감되는 비용에 비해 훨씬 크다고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사측이 적절한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지 못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 관련기사 : 600명 해고 한화증권, 뒤로는 60억 돈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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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사측의 정리해고가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 요건을 모두 갖춘 정당한 해고라고 단정한 원심의 판단에는 정리해고의 요건 중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및 ‘정리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한화투자증권은 지난 2013년 12월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를 이유로 직원 350명을 감원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사측은 희망퇴직 대상자를 선정하고 퇴직신청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은 노동자 7명이 2014년 2월 정리해고 됐다. 정리해고자 7명은 부당해고라며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선 노동자들이 패소했으나, 중앙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가 맞다”고 판정했다.

중노위 결정은 법원에서 다시 뒤집어졌다. 한화투자증권측은 “중노위 결정을 받아드릴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경영상 정리해고가 불가피했다”는 사측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결정하면서 한화투자증권의 정리해고 당위성은 고법에서 다시 심판받게 됐다.

한화투자증권 노동자들을 변호해 온 김선수 변호사는 “사측이 정리해고 요건을 갖추지 않고, 꼭 해고를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사정들이 있었음에도 해고를 한 것에 대해 1·2심에선 너무 가볍게 판단한 반면 대법원에서는 엄격하고 신중하게 해석했다”며 “고법에서 다시 심리를 하겠지만, 이미 대법원에서 사측이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만큼 노동자들의 원직복직 가능성은 높아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화투자증권 측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아직 판결문을 받아 보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어떠한 결정도 한 게 없다”고 밝혔다. 앞서 한화투자증권 측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2011년~2013년 회사의 누적적자가 1500억 원에 달해 긴박한 경영상 위기였으므로 당시 정리해고는 부당해고가 아니다”고 답한 바 있다.

당시 구조조정의 책임자였던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도 지난 2월 ‘주진형의 경제민주화’라는 팟캐스트에서 “한화투자증권의 구조조정은 해야 되는 일이라서 한 일이다. 한 번도 악역이라 생각한 적 없다”며 “구조조정을 악마시, 죄악시하는 사람은 (월급) 상위 몇%인 노동자들이다. 구조조정은 노동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발전의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주 전 사장에게도 대법 판결에 대한 입장을 묻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 2013년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던 당시 한화투자증권 주진형 대표이사

▲ 2013년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던 당시 한화투자증권 주진형 대표이사

앞서 뉴스타파는 한화투자증권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고졸직원의 절반 가량을 채용한 지 1년 만에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사실상 해고하고, 희망퇴직을 거부한 직원들을 모두 정리해고 했다고 보도했다. 또 경영상 이유로 직원들을 구조조정하면서 김승연 회장 가족이 100%지분을 보유한 총수일가 기업에는 지난 2011~2013년 적자규모에 맞먹는 1300억 원의 일감을 몰아주고, 정리해고 직후 홍보팀, 인사팀 등 일부 부서에는 15억의 성과급을 지급, 경영상 위기가 맞는지 의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금, 2017/06/3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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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기록한 14일에도 박근혜 즉각 퇴진과 조기 탄핵을 촉구하는 주말 촛불집회가 12주 연속으로 서울 광화문 광장 등 전국 각지에서 열렸다. 서울의 경우 낮 기온이 영하 4도까지 내려가고 바람까지 강하게 불면서 체감 온도는 더 떨어졌지만, 박근혜 조기 탄핵을 열망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꺾지는 못했다.

이번 12차 촛불집회에서는 박근혜 정권에 뇌물을 전달한 것으로 의심을 사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재벌 총수들을 구속해 수사하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공작 정치의 주범인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도 구속하라는 외침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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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박근혜 세월호 7시간 자료를 비판하며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이와 함께 유성기업, 갑을 오토텍 노동자, YTN과 MBC 해직 언론인 등 오랜 기간 동안 이명박근혜 정권에 맞서 싸웠던 노동자들이 연단에 나와 국민의 힘으로 언론을 제자리로 돌리고 노동 현장의 문제들을 해결하자고 촉구하기도 했다.

 전두환 군부 독재정권의 고문으로 희생된 박종철 열사 30주기 추모식도 본집회에 앞서 열렸다. 기념사업회는 87년 6월 민주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가 30년 만에 타오른 촛불 혁명을 통해 되살아났다며 미완의 민주 승리를 이번에 꼭 이뤄내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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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새해 첫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을 외치며 분신한 고 정원 스님의 시민 사회장도 함께 열렸다. 서울대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친 스님들과 추모객들은 조계사 앞 노제를 거쳐 광화문광장에서 영결식을 열고 고인을 추모했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본 집회가 끝나자 박근혜 조기 탄핵, 재벌 총수 구속, 공작정치 책임자 처벌, 제2의 박근혜 구실을 하고 있는 황교안 권한 대행의 사퇴를 외치며 청와대와 SK, 롯데 그룹 본사 앞까지 행진한 뒤 집회를 평화롭게 마무리 지었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살을 에는 강추위 속에서도 서울 광화문 13만 명, 전국 14만 6천여 명이 이날 집회에 참여한 것으로 추산했다.

한편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50여 개 단체로 구성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측도 서울 대학로와 서울광장 등지에서 집회를 열었고 ‘탄핵 무효’를 외치며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취재:김새봄
촬영:김남범, 신영철
편집:윤석민

일, 2017/01/15-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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