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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장’이 된 ‘임길동’,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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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장’이 된 ‘임길동’,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익명 (미확인) | 목, 2017/06/01- 10:37

‘임길동’에서 ‘영(young)실장’까지. 그를 수식하는 말에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이 배어있다.  ‘전대협 3기 의장’에서 ‘386의 대표주자’, 그리고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그의 삶 역시 롤러코스터를 탔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임종석(51) 대통령 비서실장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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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YTN)

임 비서실장이 ‘문재인호’의 훌륭한 조타수가 될 수 있을까. 그가 86그룹(80년대 운동권 그룹) 정치인들의 르네상스를 가져올 수 있을까. 그의 이름 앞에 오는 다양한 수식어로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어본다.

‘전대협 3기 의장’, ‘하이틴 스타’, ‘임길동’ 

그의 대학 시절을 수식하는 말들은 하나같이 ‘전설적인 학생 운동권’으로 수렴된다. 

전남 장흥 출신인 임 실장은 1986년 한양대 무기재료공학과에 입학한 뒤 그 시대 많은 젊은이가 그러하듯 학생운동에 자연스레 발을 들였다. 1989년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3기 의장에 뽑히며 임종석이라는 이름을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알렸다.

그가 등장하면 수천, 수만 명의 학생이 기립해서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을 외치며 전대협 진군가를 불렀다고 한다. (1990년 ‘한국을 움직이는 단체’ 3위의 주인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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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전대협 의장 시절의 모습

당시 학생운동의 전성기에서 수려한 외모와 호감을 주는 성격을 가진 임 실장은 학생운동 진영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다. 

몇 달씩 경찰 수배를 피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임길동’이란 별명을 얻은 것도 대중적 인기를 얻는데 한몫했다. 경찰 포위망이 좁혀지면 수많은 학생이 ‘내가 임종석’이라 외치면서 경찰 시선을 분산시켜 그의 탈출을 도왔다고 한다. 

‘임길동’의 명성은 하이틴 청소년 잡지에서 ‘인기스타 1위’로 뽑힐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1989년 6월 당시 임수경 전 민주당 의원(당시 한국외대)이 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그해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방북한 사건을 주도하며 노태우 정권의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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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대학생 시절의 임종석(두번째)과 임수경(세번째).

임 실장은 2008년 자신의 저서에서 “무기징역을 받아 더이상 바깥세상 구경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비장한 심정이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임 실장은 3년6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지금까지 그에게 ‘주사파’란 꼬리표가 붙는 이유다. 

이에 대해 최근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내가 아는 임종석은 더는 주사파가 아니다”라고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과거 이력으로 현재를 판단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386 대표주자’, ‘차세대 유망정치인’ 그리고 ‘숙주 정치’ 

형을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론’에 따라 전대협 출신인 이인영·우상호(민주당 의원), 오영식(민주당 전 의원) 등과 정치권에 발을 들인다. 이후 그의 정치는 빛과 그림자가 뚜렷했다. 

‘젊은 피’인 임 실장의 시작은 거칠 것이 없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최연소인 34살의 나이로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서울 성동구)에 당선됐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상정되자 열린우리당 의원이던 그가 국회의장석에 앉아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다 눈물을 흘리며 끌려나가는 장면은 아직도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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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될 당시, 국회본회의장에서 우는 모습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을 타고 17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는 등 그의 정치적 행보는 탄탄대로였다. 2006년 <월간중앙> 3월호가 386세대 국회의원 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유망한 386세대 정치인’으로 1위 (30.6%)로 선정되는 등 386의 대표주자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총선에서 떨어지고, 2011년 7월 삼화저축은행으로부터 1억44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 되며, 그에게 그림자가 드리운다. 

1심에서 유죄판결(징역 6월·집행유예 1년)을 받은 상태에서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에 임명되며 기지개를 켜나 했지만, 한 달 반 만에 자진 사퇴했다. 한명숙 당시 당 대표의 신임으로 사무총장에 올랐지만, ‘비리 인사’라는 비판과 함께 총선 공천 계파 갈등 책임론이 임 실장에게 향했기 때문이다. 총선도 불출마했다.

2014년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고서야 그는 다시 정치적 행보를 재개했다. 박원순 서울 시장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2014년 6·4 지방선거 캠프 총괄팀장과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맡아 행정 경험을 쌓았다. 그때부터 ‘박원순의 사람’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가 ‘터널’을 지나는 동안 그의 정치적 정체성인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386을 최근 일컫는 말)’ 정치인들은 “초심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으며 여의도 정치의 중심에서 멀어져갔다. 

특정 계파나 특정 주자에 기대 정치를 한다는 ‘숙주 정치’라는 비판까지 받았다.

‘왕실장 아닌 영실장’, ‘외모 패권주의’

하지만 그가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되며 다시 86그룹의 시대를 열고 있다는 평가가 따른다. 

조국 민정수석, 하승창 사회혁신수석,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등이 청와대 참모진 모두 50대로 80년대 학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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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노컷뉴스)

민주당 역시 86그룹이 주요 당직을 맡으며 전진 배치됐다. 

임 실장과 같이 대표적인 86그룹 주자로 꼽히는 전임 우상호 원내대표에 이어 운동권 그룹의 맏형격인 우원식 원내대표가 새로 선출됐다. 86그룹인 김태년 정책위의장, 김민석 민주연구원장 등이 전면 배치되기도 했다. 

 같은 86그룹인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임 비서실장의 임명에 대해 “김기춘 전 (박근혜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모든 내각을 사실상 통괄하고 지배하는 청와대의 느낌으로 다가갔다고 하다면 임종석 실장은 왕실장이 아니라 영실장”이라고 평가했다. 

네티즌들은 문 대통령과 임 실장, 조국 수석 등이 셔츠차림으로 커피잔을 들고 청와대를 산책하는 장면에 ‘외모 패권주의’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극찬하고 있다. 60~70대 위주의 참모로 둘러싸여 ‘불통’으로 대표되던 박근혜 청와대에 답답함을 느꼈던 이들이 ‘새로운 바람’에 열광하는 모습이다. 

결국 그가 이번에 새롭게 얻은 수식어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정치인 임종석’과 ‘86그룹’의 미래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인사 취지대로 개혁과 소통, 젊음의 역동성을 보여줘야 국민들의 지지가 계속될 것이다. 당연히 ‘문재인 정부’의 성패도 여기에 달려 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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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여론조사 공표 시한인 6일까지 나온 결과를 취합한 결과 광주 8곳과 전북 10곳, 전남 10곳 등 28개의 의석이... 경북 경주시, 경남 진주시갑ㆍ진주시을ㆍ양산시을 등 총 10곳뿐이다. 부산 사하구갑과 대구 달성군, 울산 남구갑...
수, 2016/04/0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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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대한민국의 정부는 중견국가(middle power)로서의 현실을 고려한 외교 정책을 수립하는 데에 일정한 진전을 보였다. 동아시아 지역의 ‘큰 게임’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동맹국인 미국과 현대적이면서 전향적이고 효율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평화실현 5원칙은 하나의 탁월한 출발이다. ‘제재와 압박(sanctions and pressure)’이라는 백악관의 환상과 그 네 번째 원칙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 모순을 조정해야 할 필요가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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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1월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한반도 평화정착 ▲한반도 비핵화 ▲남북문제의 주도적 해결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북한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 등 한반도 평화실현 5대 원칙을 천명했다.(사진: 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주 국회에서 명확하게 언급한 ‘3불(3 No)’ 원칙 또한 커다란 진전이다. 한국이 양보할 수 없는 독자적 이해관계가 당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이 언급이 6개월 전에 나왔을 수도 있겠지만, 수차례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 시점도 전혀 늦지 않다. 시진핑의 불법적인 보복이 가져온 80억 달러의 손해에 대하여 모종의 보상을 요구하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사드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은 여전히 사용할 수 있는 패를 쥐고 있다.

 

문 대통령, 한반도 평화실현 5대 원칙 고수할 수 있을까

그로부터 며칠 후 문 대통령은 강 장관의 언급을 옹호하고 재확인했다. 이를 두고, 외교적 해법이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으로부터의 후퇴라느니 중국에 대한 ‘한국의 굴종’이라고 떠드는 비판은 이미 예상된 일이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을 통해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비위를 맞추고 중국의 압력에 굴복하고 있어서 믿을만한 동맹이 아니’라는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는데, 이는 문 대통령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증거일 뿐이다.

북한을 둘러싼 문제와 한미 동맹에서,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발표한 원칙들을 고수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한국이 네 번째 평화원칙에 내재된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즉 압박과 제재를 어떻게 포용할 것인지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기본적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첫째, 더 많은 무력시위 혹은 국제적 고립과 경제 전쟁이 북한을 움직이는 데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은 허구이다. 20년 전 양국 간의 성공적 합의를 거부한 것은 평양이 아니라 워싱턴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북한은 서로에게 만족스럽고 신뢰할 만한 협상으로 복귀할 수 있음을 여전히 내비치고 있지만, 미국은 그런 의지를 전혀 보이고 있지 않다. 따라서 압박과 제재란, 어떤 국가의 불법적이고 국제적으로 위협이 되는 행위를 단순히 벌주려는 것이 아닌 이상, 잘못된 문제설정에서 나온 것이다.

둘째, 북한의 ‘위협’이란 적어도 지난 15년간 잘못된 단어 선택이며 또한 과장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미국 CIA와 다수의 전문가들이 지난 수년간 내놓은 보고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이 보여준 주요한 위협이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궁지에 몰리지 않는 한, 북한이 미국이나 여타 국가에 심각한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중국이나 러시아의 역량을 위협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북한을 용납할 수 없는 국제적 위협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수년에 걸친 전문가들의 분석과 달리, 김정은을 손 쓸 수 없는 미치광이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미국의 주장이 허위라는 점을 반증한다.

셋째, 현재 한국은, 미국 정부가 당황스럽게도,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미국이 이를 거부한다는 사실 또한 언론인과 전문가 그리고 정책결정자들이 주목해야 할 무언가를 드러낸다. 기존의 성공적인 합의는 서로가 만족할 만한 상호이익에 바탕을 두었는데, 트럼프 정부에게는, 이전의 두 정부도 마찬가지지만, 이를 다시 창출할 로드맵 혹은 계획이 전혀 없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요건은, 언제나 그랬듯이, 경제와 안보를 기반으로 하는 플랜이다.

 

한국 주도로 관계국들 연합 이끌어내야

만일 한국 정부가 신뢰할 만한 플랜을 제출하고, UN을 비롯하여 의욕적이고도 강력한 지지자들을 규합할 수 있다면, 한국은 오랫동안 이루지 못했던 염원, 즉 관계국들의 연합(coalition)을 이끌어 문제를 해결한다는 염원을 실현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여기에 우호적인 중국의 힘과 이해관계가 필요하다. 중국의 힘과 이해관계가 우호적이지 않을 경우, 중국의 외교적, 경제적 힘이 중국과 한국 및 미국의 공동이익을 증진하는 데 성공적으로 사용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의 이전 두 행정부 그리고 미국의 지난 세 행정부는 중국의 힘과 이해관계가 우호적이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이라는 전술적 환상에 젖어 있었다.

한국 정부의 명확하고도 실질적인 새 외교정책을 추진하는 데에는 다른 장애물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방문은 한국 정부가 원칙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며, 불가피하지만 얼른 처리하고 잊어야 할 것으로 보아야 한다. 트럼프 방문 이후 한국이 취해야 할 선택은 더욱 명백하며 한국이 져야 할 책임은 보다 긴급하다. 취소되기는 했지만 비무장지대 방문의 깜짝쇼를 벌이고 북한에 ‘항복’을 요구하는 국회 연설을 하는 등 트럼프가 뻔한 수를 둔 반면, 문재인 정부는 올바른 입장을 취하면서 현명하고도 인상적으로 미국 대표를 맞이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한국 정부가 지난주 새로이 표명한 입장을 약화시키는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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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이제는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운전석’에 제대로 앉아야 할 때다.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전국개인택시발전협의회 지지 선언식에서 택시 운전석에 탑승해 기사들과 함께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는 모습.( 사진: 뉴시스)

트럼프의 술수는 뻔해 보인다. “너희에게는 필요도 없겠지만, 미국 무기를 사들이는데 수십억 달러를 낭비해 주기만 한다면 너희 나라를 날려버리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거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새로운 것도 아니다. 한편 한국의 언론과 정책 전문가 상당수가, 일시적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라를 위한 염원을 포기한 듯이 보인다. 두 달 전만 해도 외교적 성과를 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정부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 와서는 워싱턴의 무모한 아마추어들이 꾸며낸 가상의 전쟁을 회피했다는 사실에 그저 만족한 듯이 보인다.

한국 언론, 나라 위한 염원 포기한 듯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그러한 마피아 식 강탈의 수용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에게는 해야 할 중대한 임무가 있으며 관련자들을 이끌어 합의에 도달하고자 하는 포부가 있다. 문 대통령이 이번 주 새롭게 시작할 것을 기대한다. 트럼프가 방문하는 동안, 청와대가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킨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가정하는 것은 전략적 실수가 될 것이다. 압박과 제재라는 환상을 추종한다면, 이제 새롭게 밝힌 명확한 원칙은 엉망이 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운전석’에 앉기를 두려워하거나 그럴 능력이 없을 경우, 누군가가 이미 뒷좌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향후 4년간 트렁크에 구겨 넣어진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트럼프의 표현대로 하자면 ‘슬픈’ 일이다.

일, 2017/11/1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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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앞으로 5년 동안 홍콩 특별행정구를 이끌 제5대 행정장관 선거는 예상대로 싱겁게 끝났다.

중국의 적극 지지를 등에 업은 친중파 캐리 람(林鄭月娥·59) 전 홍콩 정무사장이 선거인단의 유효 투표수 1163표 중 777표를 얻어 당선됐다. 여성으로는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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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캐리 람(林鄭月娥) 후보가 홍콩특별행정구 제5대 행정장관으로 당선된후 기자회견을 가졌다.

2014년 우산혁명 이후 홍콩의 자주화 목소리 커져

완전 보통 직선제 행정장관 선거를 요구하며 타올랐던 2014년 우산혁명의 열기를 떠올리면 다소 허망한 결과다. 직선제로 뽑더라도 입맛에 맞는 2~3명의 후보 중에서 고르게 하겠다는 중국의 조치에 맞서 홍콩 시민들은 뜨겁게 일어났었다.

‘무늬만 직선제’ 제안은 결국 입법회에서 무산됐지만 크게 보면 대세는 막지 못한 셈이다. 

오히려 중국의 무늬만 직선제 제안이라도 받아들이는 게 나았을까? 역사적 후퇴는 아니었을까? 답은 홍콩 시민들이 쥐고 있을 것이다.

우산혁명을 강경 진압한 공로로 행정장관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 캐리 람의 향후 행보도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간신히 절반을 넘긴 689표를 얻어 당선됐던 전임자 렁춘잉(梁振英) 행정장관은 임기 내내 ‘689’라고 조롱당했다. 캐리 람의 득표는 그보단 많았지만 홍콩 700만 민심을 대변하기는 턱없이 부족한 수다. 그 역시 앞으로 ‘777’로 조롱을 받으며 끝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홍콩의 미래가 분기점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홍콩우산혁명
홍콩 시민과 학생들이 중국의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에 반대하며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발생했는데, 당시 시위참가자들이 최루탄을 피하기 위해 우산을 많이 썼기 때문에 “우산 혁명(Umbrella Revolution)”으로 불린다.

우산혁명에 이어 지난 입법회 선거에서 홍콩의 자주를 주장하는 우산혁명의 주역들이 대거 의회 입성에 성공했다. (☞  홍콩의 ‘젊은 그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20년째, ‘일국양제’의 성공적 정착이라는 중국의 자화자찬과는 달리 홍콩 젊은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으로 매김하고 있다.

마거릿 대처에 빗대 ‘철의 여인’이라고 불렸던 람 당선자가 여전히 강경책으로 홍콩을 휘어잡을 수 있을까?

‘1등 소녀’ → ‘운동권학생’ → ‘철의 여인’

람 당선자는 1957년 중국 저장성 저우산시 출신의 저소득층 부모 아래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부모는 교육 수준이 낮았고 집안 형편은 가난했다. 다른 가족과 조그만 아파트를 나눠 써야 할 정도였다.

책상이 없어 침대에 앉아 숙제를 해야 할 정도였지만 그는 초중등 교육을 받았던 13년 내내 반에서 거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유일하게 1등을 놓쳤을 때가 있었는데 “왜 내가 1등이 아닐까”라며 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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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 람의 어린시절(왼쪽)과 젊은 시절의 모습 (사진출처: South China Morning Post)

홍콩대에 입학해 사회복지를 전공으로 택했던 그는 학생운동에 몸담기도 한다.

저소득층 지원과 좌파 학생 퇴학 철회를 요구하는 학생회 시위 등에 적극 참여했다. 여기서 훗날 범민주파 입법의원이 되는 이들과도 알고 지내게 된다.

사회를 좀 더 이해하고 학생운동에 깊게 참여하기 위해서 람은 전공까지 사회학으로 바꾸고 사회과학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한다.

람은 1980년 대학 졸업 뒤 홍콩 행정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다양한 부서를 거친다.  

홍콩 정부가 심각한 재정 적자에 시달리던 2000년에 사회복지국장으로 임명돼 사회보장 제도 긴축에 나서기도 한다. 복지 수혜자를 홍콩 거주 8년 이상인 자로 제한하는 정책을 펴서 새로운 이민자들을 배제시킨 것이다.

람은 2007년 도널드 창 행정장관에 의해 개발국장에 임명된다. 그는 취임 첫날부터 퀸즈 피어와 스타 페리 부두 철거 문제를 만지기 시작한다. 특히 퀸즈 피어는 역대 영국 총독들이 부임할 때 늘 입항했던 곳이며 영국 식민 통치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시민들의 추억이 어린 공간이었다.

홍콩 정부는 노후화된 이곳을 철거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환경보호와 문화보존의 입장에서 반대하는 시민운동가들도 많았다.

그러나 람은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지 말라”며 철거를 강행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거친 싸움꾼(tough fighter)’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편으로는 신계 지역의 불법 주택건축을 단속해 시민의 호응을 얻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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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취임한 렁충잉 행정장관(왼쪽). 그는 케리 람을 서열 2위인 정무사장에 임명했다.

2012년 취임한 렁춘잉 행정장관은 람을 국무총리격인 정무사장에 앉힌다.

그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가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를 ‘무늬만 직선제’로 바꾸기로 결정하자 선거제도 개정을 총괄한다.

이로 인해 우산혁명이 촉발되지만 람은 학생 지도자들과 공개토론까지 벌이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한다. 직선제 요구가 홍콩 기본법과 전인대 상무위의 결정 틀을 벗어난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대학 시절 어려운 상황에 있던 야마테이 지역 보트피플들에게 관심을 가져 학생운동을 했다는 람에게서는 한국 운동권 출신 보수 정치인들의 모습이 투영되기도 한다.

내가 해봤더니 안 된다, 이미 가능성이 없는 얘기다 라는 태도로 우산혁명의 젊은이들을 설득하려는 모습에서 그렇다.

람은 기어이 선거안 철회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79일 만에 시위대를 강제해산 시킨다. 체포자는 1000여명에 달했다.

람에게는 ‘철의 여인’ ‘홍콩판 마거릿 대처’라는 별명이 붙었다. 중국 수뇌부의 마음에 쏙 들었음은 물론이다. 반대로 한때 받았던 시민들의 높은 지지도는 급락했다.

베이징의 ‘보이지 않는 손’ 

람은 2017년 임기가 끝나면 가족들과 영국의 시골마을로 돌아가 은퇴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의 남편은 1982년 케임브리지 대학 연수 시절 만난 수학자 시우포 람 베이징 수도사범대 교수다. 남편은 영국 국적이며 두 아들 역시 영국 국적으로 영국의 대학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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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 람이 지난 3월 홍콩 행정장관에 당선된 직후 남편(왼쪽 첫번째), 아들(오른쪽 첫번째)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럼운 2017년 1월 정무사장직을 사임하고 행정장관 선거 출마를 발표한다. 그녀의 남편은 평소 “홍콩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다면 아마도 나중에 인생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공직생활을 격려해 줬다고 한다.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는 친중파에 맞선 야권인 범민주파의 지지를 받았던 존 창(曾俊華) 전 재정사장(기획재정부 장관 격)이 52.8%로 1위를 기록했다. 람은 32.1%로 2위에 그쳤다.

그러나 실제 선거에서 존 창은 365표를 얻는 데 그쳤다. 람은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하지 않고도 당선된 첫 행정장관이 됐다. 350만 유권자 중 25만 명 남짓이 1200명의 선거인단을 뽑아 행정장관을 선출하는 간선 중의 간선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이미 중국은 홍콩 행정장관을 내정하다시피 했다. 장더장(張德江)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일찌감치 선거인단 주요 인사를 불러 “공산당이 미는 유일한 후보는 람”이라고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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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정장관 선거에는 모두 5명이 출마했다. 왼쪽부터 Woo Kwok-hing, Regina Ip, John Tsang, Carrie Lam and Leung Kwok Hung. 그러나 중국 본토는 노골적으로 케리 람을 지원했다.

렁춘인 현 행정장관이 예상을 깨고 연임을 전격 포기한 것도 람의 출마 발판을 마련해주려는 것이었다는 관측도 나왔다. 행정장관 선거가 열린 홍콩컨벤션센터 맞은편에서는 중국의 선거 개입을 반대하고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구호가 울려 퍼졌지만 그뿐이었다.

이미 렁춘잉 전임 장관 때부터 그랬지만 이제 시진핑 주석은 노골적으로 자리 배치조차 ‘상사–부하’ 관계임을 강조한다.

지난 11일 람 당선자와 만난 시 주석은 테이블 상석에 앉았고 측면에 앉은 람 당선자와 업무회의 방식으로 대화를 나눴다.

후진타오 주석 때는 렁춘잉 장관과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눴던 것을 생각하면 점점 작은 것 하나에서조차 ‘중국의 일부’임을 새겨 넣고 있는 셈이다.

일국양제의 ‘외줄타기’, 성공할까

람은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일인 오는 7월1일 행정장관에 취임한다.

람은 당선 후 “홍콩은 심각한 분열과 좌절감을 안고 있다”며 “나의 최우선 과제는 분열을 치유하고 좌절감을 극복하고, 우리 사회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직선제를 향한 열망이 좌절된 데다 교육과 주택, 일자리 문제까지 누적된 홍콩에서 람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에 대한 ‘불만’을 막는 방패막이 정도로 임기를 끝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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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1일, 케리 람 홍콩 행정장관 당선자가 리커창 중국 총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 사진, 출처:South China Morning Post). 그러나 케리 람의 선출에 대해 우산혁명의 주역들은 불만이 많다. (오른쪽 사진, 출처:BBC)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렇게 보도했다. “캐리 람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냉랭한 민심을 되돌리지 못한다면 홍콩의 골 깊은 반중 정서와 중국 정부의 압력 사이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서민들의 삶과 동떨어진 그의 모습에서 불안의 징후는 증폭된다.

올해 1월 람은 정무사장 사퇴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화장실 휴지가 떨어져서 택시를 타고 옛 관저로 가서 휴지를 몇 통을 가져왔다”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오랜 공직 생활을 마치고 민간인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는 취지로 한 발언이었으나 “휴지를 사 본 적도 없나” “왜 관저 휴지를 가져와야 하나”는 시민들의 비난에 직면했다.

최근에는 지하철 이용하는데 회전식 개찰구를 지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다 수행원의 도움을 받고 간신히 통과하는 모습이 TV화면에 잡혀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람은 학창시절 가톨릭 계열 여학교에서 홍콩 사람들에게 봉사하겠다는 열망을 키웠고, 학생회장도 맡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람은 선생님에게 학생들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선생님은 그녀에게 말했다고 한다. “통제하지 말고, 일깨워라.(You don’t control, you inspire.)” 그 선생님의 말씀이 오늘날 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중국 귀속 후 역대 홍콩 행정장관들의 말로는 대부분 좋지 않았다. 중국 중앙정부의 통제와 홍콩 시민들의 독립 열망의 가운데서 외줄타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람에게도 지금 시험대가 다가오고 있다.

금, 2017/04/2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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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 공화당. 한국이 생각하는 미국의 정치 구조다. 그러나 이렇게 미국을 보면 지금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이 한국의 정치 담론에서 워낙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미국 문화와 제도는 무조건 ‘선진’이라는 믿음이 고착화되어 미국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미국 제도가 쇠락하고 있음을 인정하면 그 동안 한국이 쌓아온 가치와 우선순위의 모순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다. 한국이 미국의 정치를 보수 대 진보의 대립 구조로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믿음과 맞지 않는 사실이 발견되어도 결국엔 보수-진보의 이분법에 어떻게든 끼워 넣는다.

사실 미국 정치는 3개 정치 세력이 합종연횡(合從連橫)을 반복하는 삼국지에 가깝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아직 탄핵 당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이 삼각구도 덕분이다. 그럼 우리의 상식과 전혀 맞지 않는 미국판 삼국지 양상을 살펴보자.

영어 표현 ‘삼각 투쟁(three-way fight)’은 2006년 8월 3일 매튜 라이언스 (Matthew Lyons)가 블로그에 올린 논평 <적의 적을 지킨다(Defending My Enemy’s Enemy)>에서 시작됐다. 좌편향적이긴 하지만, 미국의 정치 현실을 정확히 짚어낸 글이다. 좌파와 우파, 억압과 해방의 이분법적 구조가 아니다. 글로벌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지배층과 혁명 좌파, 혁명 우파 등의 3개 진영에서 벌어지는 ‘삼각 투쟁’이다. 혁명 우파라고 하면 글로벌 자본의 지배구조를 다른 억압적 사회 질서로 대체하려는 극우파와 파시스트 등이 모두 포함된다고 그는 적었다.

이 글에서 나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지배층’ 대신 세계화를 신봉하는 ‘글로벌리스트’, ‘혁명 좌파’ 대신 ‘반세계화 진보’, ‘혁명 우파’ 대신 ‘반세계화 보수’로 명칭을 바꿔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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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 구조는 더 이상 민주당 대 공화당이 아니다. 미국 정치는 이제 3개 정치 세력이 합종연횡을 반복하는 삼국지에 가깝다. 우리의 상식과 전혀 맞지 않는 미국판 삼국지 양상을 알아야 트럼프도, 미국 정치도 제대로 보인다.

 

지금 미국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내전이 천천히 전개되고 있다. 갈등은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으며, 그렇게 되면 트럼프 정부가 아무리 원치 않아도 실질적 무력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생긴다.

한국인만큼 미국인도 자국의 모순된 정치 내러티브로 혼란을 겪고 있다. 이는 미디어 탓이 크다. 주류 언론에 한계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시민 대부분은 거대 미디어 기업 외에 다른 정보 경로가 없다.

고등교육을 받은 진보 중상위층의 노동자 무시도 삼각구조를 형성하는 데 한몫을 했다. 중상위 진보 계층은 가난한 노동자와 어떤 연결고리도 없기 때문에 소외된 노동자들은 흑인 등의 이민자로 구성된 엘리트 계층보다 반세계화 우파가 자신들을 더 대변해 준다고 믿는다. 반대로 진보 세력은 백인 저소득 노동자가 대표하는 이들 계층을 ‘무식한 인종 차별주의자’로 일축하며, 진정으로 소통하거나 이들의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 빈 자리에 트럼프가 뛰어들었다. ‘무시 받았다’고 믿는 이들 노동자 대부분은 백인이지만, 민주당을 지지하는 백인 계층과는 성격이 아주 다르다. 트럼프는 디트로이트 연설에서 외제차 수입 중단과 함께 미국 우선주의와 경제적 국수주의를 내세웠다. 민족 다양성만 주장하고 계급간 이슈나 전체 근로자 계층에 별다른 관심이 없고 기업의 돈을 많이 받는 민주당 의원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연설이다. 이렇게 트럼프는 적어도 노동자 백인에게는 확실한 점수를 땄다.

반세계화 진보의 눈에도 트럼프가 더 나은 선택이었다. 자유무역과 군수산업, 기성 정치와 글로벌 금융에 지나치게 밀착된 클린턴보다는 급진적 인종차별주의와 고립주의를 주장하긴 해도 트럼프가 덜 위험해 보였을 것이다.

이들은 (반세계화 보수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트럼프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면모를 털어주길 바랬다. 트럼프라면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거나 중동에서 분쟁을 확대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겠다느니, 1992년 이라크 침공이 실수였다느니 어이없는 발언을 많이 하긴 했다. 문제 발언 대부분 진심으로 한 말이겠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트럼프가 가져올 변화의 가능성을 믿은 것이다.

안타깝게도 정치 아마추어 트럼프는 군수산업 쪽에 어떤 인맥도 없었다. 백악관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정치’꾼’들에 둘러싸여 우리에 가둬지고 말았다. 그리고 극우파가 써준 대본이나 읽는 존재가 됐다.

그럼 진보 대 보수가 아닌, 글로벌리스트와 반세계화 진보, 반세계화 보수가 누구인지 살펴보자.

 

글로벌리스트

글로벌리스트가 신봉하는 이데올로기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이들은 진보처럼 자본 규제나 지방자치 정책을 주장하지 않으며, 보수처럼 기독교적 가치를 믿거나 인종과 민족, 성 정체성에 따라 어울릴 상대를 정하지도 않는다. 이들이 원하는 건 글로벌 자본을 온전히 통제하는 힘이다. 국가 제도에 관한 이들의 정치관은 가정환경에 따라 형성된 경우가 많으며, 이들에게는 세계 자본과 시장을 장악하려는 욕구가 모든 정치적 문제보다 우선한다. 이들의 세계관에 동의하고 글로벌 자본의 주요 원칙(상업은행의 자유로운 투자활동 보장, 이들을 위한 공적 자금 투입)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 또한 글로벌리스트다.

이들 글로벌리스트를 대표하는 후보가 바로 힐러리 클린턴이다. 제프 부시나 테드 크루즈 또한 글로벌리스트다. 글로벌리스트는 초당적 존재다. 골드만삭스나 록히드마틴 입장에서는 클린턴이나 부시, 크루즈가 다를 바 없다. 단지 일반 대중을 향한 언어가 소속 정당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민주당이 다양성과 기회, 혁신을 이야기한다면, 공화당은 기독교적 가치와 애국주의, 강한 국방, 법치주의를 내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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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월가가 지지하는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글로벌리스트를 대표한다. (이미지 출처:매일경제)

언어가 달라도 이들 글로벌리스트가 추구하는 이익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돈을 받는 대상이 다를 뿐이다. 민주당이 할리우드와 미디어, 제약사, 투자은행에서 돈을 받는다면, 공화당은 화석연료 기업과 방산업체, 월마트 같은 유통업체에서 돈을 받는다. 공략 대상과 사용 언어가 다르다고 글로벌리스트에 진보와 보수가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중요한 건 권력을 형성하는 돈이 어디에서 오느냐다. 그렇기 때문에 공화당 글로벌리스트는 트럼프처럼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싶어도 자신에게 돈을 후원하는 투자은행을 내칠 수 없고, 지지자들이 아무리 원해도 자유무역을 반대할 수 없다.

다양한 정치 분파가 ‘글로벌 자본’ 하나만 보고 뭉친 글로벌리스트 진영에서는 서로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 외부의 반대파에 손을 내미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원칙은 하나다. 무엇을 논의하더라도 무역과 금융의 세계화는 결코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부시와 크루즈의 경우 공화당의 지도자가 보여야 하는 강압적 카리스마를 보여야 하는 까닭에 권위적인 모습에 집중하다 보니 글로벌리스트들은 참여 정치와 다양성을 내세운 클린턴 쪽으로 기울었다.

 

반세계화 진보

보다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반세계화 진보는 적임자에게 나라를 맡기기만 한다면 정부가 그런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반세계화 진보 중에는 최근 정치에 입문해 정치판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세력이 많아지고 네트워크도 탄탄해졌지만, 사실 1940년대 이후 이들 반세계화 진보는 주류 정치에서 밀려나 있었다. 세력을 회복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리긴 했지만, 지난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가 받았던 열렬한 지지를 생각했을 때 다른 형태의 민중 운동이 가능해졌다는 생각도 든다.

세계 사회주의 웹사이트(WSWS: World Socialist Web Site)와 트루스디그(Truthdig) 등 반세계화 진보 (혹은 혁명) 미디어를 보면, 편향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긴 해도 기사 수준이나 품질 면에서 이미 뉴욕타임스를 앞지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들 웹사이트를 잘 모르겠지만, CIA 애널리스트 중에서는 유의미한 분석을 위해 비밀리에 이들의 기사와 보고서를 읽는 경우가 많다. 이미 기고를 하고 있거나 정보를 주고 있을 가능성 또한 크다.

한국에서는 눈치채기 어렵겠지만, 반세계화 진보는 미국에서 조용히 세력을 늘려가는 중이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커졌고, 5년 전과 비교했을 때 체제를 거부하는 혁명적 사고가 놀라울 정도로 널리 퍼졌다. 지난 대선의 버니 샌더스 열풍이 이를 잘 보여준다. 샌더스는 대선 기간 반세계화 진보 중 상당수를 지지층으로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그의 지지율이 급등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샌더스가 민주당의 권력구조를 흔드는 게 아닐까 크게 불안해 했다. 샌더스의 연설을 들으면 계급주의 사회에 대한 1930년대식 은유와 표현을 느낄 수 있다. 이후 샌더스가 자신들을 배신했다며 민주당을 떠난 반세계화 진보가 많다. 아직 조직력이 약하긴 하지만, 이들은 곧 자신만의 조직을 정비해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할 것이다.

Zack W., left, listens to Maurice Hardwick at a protest while Republican presidential candidate Donald Trump delivered an economic policy speech to the Detroit Economic Club in Detroit, Monday, Aug. 8, 2016. (AP Photo/Paul Sancya)
(사진: AP)

 

반세계화 보수

도널드 트럼프를 우상처럼 떠받드는 반세계화 보수는 계급과 정치 음모, 거대한 제도적 부패 쪽에서 점차 담론을 이끌고 있다. 진보 진영이 부패 문제를 몰상식한 개인의 범죄로 인식한 반면, 반세계화 보수는 이를 제도의 실패로 파악한다. 반세계화 보수 웹사이트 프리즌 플래닛(Prison Planet)은 충성스런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으며, 1930년대처럼 흑인과 무슬림을 쫓아내기 위한 움직임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 다음 차례는 유대인과 아시아인이 될 것이다. 이들은 9/11 사건 음모론에 대해서도 상세히 보도한다. 반세계화 보수는 뉴욕타임스가 확정한 9/11 사건의 내막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사우디 테러 분자 19명이 비행기를 납치해 세계무역센터(WTC)와 국방성 펜타곤을 공격했다는 주장이 말도 안 된다는 전문가 발언을 인용한다. 이런 음모론은 우익과 좌익 양쪽에서 제안된 바 있지만, 주류 언론과 클린턴, 샌더스, 촘스키 등이 대표하는 진보 정치 및 지식인 진영에서는 그런 말 자체를 하지 못한다. 그러나 론 폴과 도널드 트럼프처럼 반세계화 보수를 결집하려는 정치인들은 음모론을 공공연히 언급한다.

반세계화 보수는 따라가기 쉬운 단순 내러티브를 선호하며, 하버드 등 엘리트 기관에서 소외된 노동자 계급을 향해 손을 내민다. 트럼프가 미국의 체제 전체를 공격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이들의 소외감이 깊었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정치적 기반을 닦으려면 이들 반세계화 보수의 지지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지방 정치인이라면 이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오바마는 히스패닉아시아계뿐 아니라 동성애자 친구들을 두루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 투자은행가 혹은 변호사 등 엘리트 계층이다. 오바마는 아주 신중하게 말을 가렸지만, 지난 대선에서 그가 클린턴을 지지한 건 결국 어떤 의미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반면, 트럼프는 대선기간 중 누군가를 총으로 쏴도 지지자들은 날 떠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하고도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런 폭탄 발언을 하고도 대통령직에 당선되다니, 선례가 없는 일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빈부격차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 정치는 계급 투쟁으로 변모한다. 트럼프의 자문이었던 스티브 배넌은 이런 근본적 변화를 눈치챘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맞닥뜨린 적 없는 기성 정치인들은 변화하는 미국의 정치 구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는 ‘잊혀진 계급’ 백인 노동자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됐고, 그들은 트럼프에게 맹목적 충성심을 바쳤다. 트럼프가 기독교적 가치에 맞지 않는 발언을 하고, 자신들과 성분이 다른 억만장자라 하더라도 이들의 충성심은 변하지 않았다.

소위 급진적이라는 민주당 의원조차 당에서 정한 방침 때문에 노동자 계급이 가장 아프게 감내했던 자유무역의 부작용에 대해 거론하지 못했지만, 트럼프는 자유무역을 맹렬히 비판하며 이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줬다. 그렇게 해서 트럼프를 누구보다 먼저 지지하게 된 백인 중하위 계층은 지금도 트럼프의 ‘시멘트 지지층’으로 남아 있다. 트럼프 자신은 글로벌리스트에 가깝지만, 그는 청중이 원하는 걸 잡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트럼프는 지지층의 요구를 알아내고 이에 적절히 대응했기 때문에 도약을 이룰 수 있었다.

반세계화 보수와 백인 국수주의자들이 트럼프를 백악관에 밀어 넣긴 했지만, 사실 트럼프는 이들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그는 (반세계화 진보와 보수 모두가 싫어하는) 이스라엘과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반세계화 보수 중에는 이스라엘이라면 질색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트럼프의 이스라엘 편들기는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반세계화 보수 사이에서 유대인 공격이 벌써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글로벌리스트와 반세계화 진보, 그리고 반세계화 보수. 이들이 이룬 삼각형 안에서는 사안과 전략에 따라 서로 공격하고 편을 먹는 이합집산이 이어진다. 어쩔 때에는 반세계화 보수가 반세계화 진보와 팀을 이루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선례가 없는 이 현상은 최근 들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글로벌리스트와 반세계화 진보

소위 ‘배운 집안’ 출신이 많은 금융 쪽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다문화적 세계관과 관용의 원칙을 체화한 사람이 많다. 금융 자본의 흐름에 방해가 되는 세력만 아니라면 이들은 반세계화 진보 인사를 파티에 초대해 기꺼이 그의 강연을 들을 수 있다.

인도적 지원 및 복지 정책도 마찬가지다. 판을 뒤흔드는 혁명 정도가 아니라 의례적 진보 수준에 머문다면, 글로벌리스트는 기꺼이 이들의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글로벌리스트가 반세계화 진보와 의견을 같이 하는 분야가 바로 기후변화다.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글로벌리스트는 (자본의 이익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기후변화 분야에서는 둘 사이 많은 협력이 이루어진다. 글로벌리스트가 고안한 탄소거래제를 반세계화 진보에서 받아들이는 모순까지 감내할 정도다. 반세계화 진보는 도시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고, 아직까지 그 수가 많지 않다. 이들의 정치관에 동조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 정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반세계화 보수처럼 교회 네트워크를 구심점으로 가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들은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힘들다. 게다가 진보 지식인의 경우 굳이 선택하라면 백만장자에 가까울 정도로 부유층 출신이 많아서 노동자와 쉽사리 가까워지지 못하기 때문에 글로벌리스트와 연합할 필요성이 있다.

 

글로벌리스트와 반세계화 보수

반세계화 보수에 어필하기 위해 ‘권리’와 ‘자유’를 내세우는 건 글로벌리스트의 고전적 전략이다. 반세계화 보수가 애착을 갖는 낙태 및 흑인 범죄 등의 정치 이슈에 관해 공화당내 글로벌리스트가 반세계화 보수 편을 들어주면, 이들은 반대로 글로벌리스트에게 중요한 무역 및 금융 쪽에서 글로벌리스트를 지지하는 맞교환이 오래 전부터 이루어졌다. 항상 효과가 좋았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글로벌리스트와 반세계화 보수의 가장 일반적 협력 방식이다.

교도소 산업은 글로벌리스트와 반세계화 보수를 이어주는 중요한 고리다. 지금 미국의 교도소는 도시 슬럼가 출신 소수민족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 상당수가 시민의 안전보다 교도소 사업에 투자한 글로벌리스트의 투자 이익을 위해 갇혀 있다고 보는 냉정한 평가가 있다. 주로 한적한 지방에 위치한 교도소의 간수직은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가난한 백인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특히 군 복무 경력을 이용해 경찰이나 간수로 전역하는 코스가 아주 인기가 좋다. 저소득 백인은 글로벌리스트와 이들이 다른 국가 일에 여기저기 간섭하며 일으키는 제국주의 전쟁을 증오하지만, 얄궂게도 이들 전쟁은 저소득 백인 청년이 군인으로 경력을 쌓아서 경찰이나 교도소 간수로 옮겨갈 수 있는 유일한 사다리를 제공한다. 반세계화 보수는 군수 계약뿐 아니라 교도소 건설에 투자하는 글로벌리스트와 의도치 않는 공생관계를 갖는다. 글로벌리스트는 반세계화 보수의 이런 모순점을 공략해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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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잊혀진 계급’ 백인 노동자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됐고, 그들은 트럼프에게 맹목적 충성심을 바쳤다.

반세계화 진보와 반세계화 보수

반세계화 진보와 반세계화 보수의 연합은 삼각구도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만남이다. 신기하게도 극우와 극좌는 무역 및 금융 정책에서 의견을 같이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정부의 정당성을 완전한 부정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반정부 캠페인에서 극우와 극좌가 연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2016년 대선 기간 트럼프는 위키리크스 지지를 암시하는 발언을 했고, 샌더스를 지지하는 진보 웹사이트에는 보수 진영에서 만든 클린턴 비난 자료가 올라오기도 했다. 트럼프는 기성 정치인과 이들에게 돈을 대는 금융자본 및 미디어는 자신을 보호하고 배를 불린다는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가지고 있다. 기득권은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수조 달러를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있다. 이들은 워싱턴에서 권력을 손에 쥔 자와 글로벌 특수 이익집단을 위해 일한다. 이들에게 국민의 안녕은 안중에도 없다는 연설을 했는데, 이런 트럼프의 정부 기득권 비판은 진보 쪽에서도 많은 사람이 지지를 했기에 계속 될 수 있었다.

트럼프의 정부 비판 논리는 다수 유권자에게 먹혔다. 그는 버니 샌더스도 하지 못했던 수준으로 신랄하게 기득권과 정부를 비판했다. 당연히 진심은 아니다. 트럼프의 뒤에는 억만장자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표를 얻기 위해 한 말이거나 정말 별 생각 없이 한 말일 수 있다.

트럼프는 의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기 힘들지만, 힐러리 클린턴이라면 손쉽게 통과시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힐러리는 더 많은 분쟁을 일으키고 더 많은 피해를 줄 능력이 있다. 에너지 기업과 유착관계를 가진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면 기후변화를 악화시킬 재난적 프로그램을 트럼프보다 쉽게 통과시킬 것이라는 녹색당 대통령 후보자 질 슈타인의 발언을 보면 어떻게 해서 반세계화 진보와 반세계화 보수가 서로 손을 잡았는지, 그리고 왜 트럼프를 지지했는지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미국의 정치를 끌고 가는 삼각구조와 필요에 따른 이들의 연합을 설명했다. 2000년 이후부터 미국에서는 미국식 정치의 근간을 형성했던 가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부와 의회, 정치인은 국민을 소외시키는 정치를 펼쳤다. 국민은 이에 염증을 느꼈고, 떠나려는 지지자를 잡기 위해 수정된 정치 노선과 담화는 지금처럼 복잡하고 모순된 양상을 띠게 됐다.

삼각 대립과 이들의 합종연횡은 미국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독특하게 만들었지만, 언론에서는 이 점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보수 대 진보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지금의 미국 정치를 바라본다면 끊임 없이 이어지는 삼각구조의 권력 다툼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금, 2017/12/2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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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 KBS 핫라인, 실제로 있었다.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보도 내용에 개입하는 ‘핫라인’이 실제로 존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노골적으로 보도에 개입했다. 이정현 수석과 김시곤 국장 사이의 녹취는 오늘(6월 30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 노조)에 의해 공개됐다.

두 사람 사이의 실제 통화 내용은 충격적이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시종일관 고압적인 태도로 김시곤 국장에게 KBS 기사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으며 리포트를 빼달라든지 기사의 단어를 바꿔달라고 거침없이 요구했다. 김시곤 전 국장은 나름대로 저항을 하는 듯 했으나 결국에는 높은 곳으로부터 온 요구를 수용하는 모양새다.

해경 잘못 뭐가 있나? 비판하지 말라.

세월호 참사 닷새 뒤인 2014년 4월 21일, 이정현 수석은 김시곤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해경이 잘못이나 한 것처럼 그런 식으로 몰아가고, 이런 식으로 지금 국가가 어렵고 온 나라가 어려운데, 지금 이 시점에서 그렇게 그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 패는 게, 그게 맞습니까?

세월호 사건의 1차적 책임은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에게 있으니 해경을 비판하지 말라고 겁박한 것이다.

“배를 그렇게 오랫동안 몰았던 놈이면 그놈들한테 잘못이지 마이크로 뛰어내리지 못하게 한 그놈들이 잘못이지.”
(아니 1차적인 잘못은 그 선사하고 선원들한테 있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 아닙니까?)
“그러면요, 그러면 무엇 때문에 지금 해경이 저렇게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는 해경을 갖다가 지금 그런 식으로 말이요”

김시곤 보도국장은 결국 청와대 홍보수석의 협박과 읍소 앞에 결국 이렇게 말한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거 제가 참고로 하고요. 아니 이 선배,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있습니까, 솔직히.

그에 대한 이정현 수석의 화답.

아이 지금 이렇게 중요할 땐 극적으로 좀 도와주십시오. 극적으로. 이렇게 지금 어려울 때 말이요.

“대통령이 봤다.. 기사를 빼든지, 단어 바꿔서 다시 읽어라”

9일 뒤인 4월 30일, KBS 9시 뉴스에는 다시 해경을 비판하는 기사가 나간다. 사건 당일 해경이 언딘 잠수사들을 우선 투입하기 위해 해군 잠수사들의 진입을 막았다는 기사다. 이 기사는 KBS만의 특종 기사도 아니고 국방부가 낸 보도자료를 기사화한 것이다. .

“나 요거 하나만 살려주시오. 국방부. 그거. 그거 그거 하나 좀 살려주시오. 이게 국방부 이 사람들이.. “

“(국방부한테) 내가 그랬어. 야이 씨X놈들아. 너희 잠깐 벗어나려고 다른 부처를 이렇게..”

걸쭉한 욕과 함께 국방부를 탓하던 이정현 홍보 수석은 결국 이런 요구를 한다.

아예 그냥 다른 걸로 대체를 좀 해주던지 아니면 말만 바꾸면 되니까 한번만 더 녹음 좀 한 번만 더 해주시오.

김시곤 국장의 대답.

여기 조직이라는 게 그렇게는 안됩니다. 그렇게는 안되고 제가 하여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게요 내가.

실제로 9시 뉴스에 방송됐던 해경 비판 리포트 8건 가운데 1건은 9시 뉴스 이후 방송된 그날 밤 11시 뉴스에서 빠졌다. 이 날 이정현 수석이 그렇게 집요하게 개입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거 하필이면 또 세상에 (박근혜 대통령이) KBS를 오늘 봤네. 아이 한번만 도와주시오 국장님. 나 한번만 도와줘.

대통령의 ‘심기 경호’ 때문이었다. 청와대와 정부가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조사를 왜 그렇게 집요하게 막으려고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세월호 사건 전에도 이정현 홍보수석은 김시곤 국장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김 전 국장의 비망록에 따르면, 2013년 10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안뜰에서 아리랑 공연을 관람했다는 리포트를 왜 9시 뉴스 마지막에 배치했냐며 전화를 걸어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시곤 국장은 “원래 마지막 꼭지가 주목도가 높아서 배치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김시곤 국장에게만 전화했을까?

이정현 홍보수석 재임 시절, KBS는 윤창중 성추행 사건과 국정원 댓글 사건을 축소 보도했고, 대통령의 해외 순방 소식 등을 과잉 보도하는 등 일관되게 청와대에 유리한 보도 행태를 보였다. 김 전 국장의 비망록에 따르면 이는 길환영 전 KBS 사장의 지시 때문이었다고 한다.

길환영 사장은 이정현 수석의 전화를 받지 않았을까? 지난 2014년 KBS 기자협회 진상조사단은 길환영 사장에게 의혹을 해소할 수 있도록 통화 기록 공개를 요구했지만 길 사장은 이를 거절한 바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은 이런 일이 없을까? 정지환 현 KBS 보도국장에게 물어본 결과 그는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지금, KBS의 보도 행태를 보면 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월호 참사 관련 언론 보도는 이른바 ‘기레기’ 라는 말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언론에 대한 사회적 신뢰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다. 당시 언론이, 특히 공영 방송이 왜 그렇게 보도할 수 밖에 없었는지 역시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 대상이다. 이정현 홍보수석과 길환영 전 KBS 사장은 현재 언론노조와 세월호 특조위에 의해 방송법 위반 등으로 각각 고발당한 상태다. 세월호 사건 당시 청와대 보도 개입의 전모를 밝혀내는 것, 이것은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 기한이 연장되어야만 하는 수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다.


취재 : 김경래, 심인보
촬영 : 김기철

목, 2016/06/3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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