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10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문 당선인은 다자 구도 속에서 득표율 과반을 얻지는 못했지만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으며 당선을 확정했다.
문 당선인은 9일 밤 11시 40분쯤 지지자들이 운집한 광화문 광장을 찾아 대선 승리의 소감을 전했다. 문 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던진 핵심 메시지는 ‘통합’과 ‘개혁’이었다. 그는 2분 남짓의 짧은 연설을 통해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또 “혼신의 힘을 다해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며 ‘정의, 원칙, 상식이 구현되는 나라다운 나라’를 새 정부의 국정 목표로 제시했다.
광화문 광장을 찾은 시민들도 ‘문재인 대통령’을 연호하며 문 당선인의 당선을 환영했다. 시민들은 문 당선인에게 안전과 노동이 중시되는 사회, 차별없는 사회를 주문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선거 결과를 수용했다. 9일 오후 10시 반쯤 개표상황실을 찾은 홍 후보는 “무너진 자유한국당을 복원한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안 후보도 개표 상황실을 찾아 “변화의 열망에 부응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며 “대한민국이 새로운 대통령과 함께 미래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힘들고 외로운 선거였지만 국민들 덕분에 흔들리지 않고 올 수 있었다”며 “다시 하나가 되어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이번 선거가 정의당의 새로운 도약 계기가 될 것”이라며 “국민의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열망을 받아 또다시 출발하겠다”고 말했다.
이들 언론보도 기사의 행간에는 마치 종주국 황제의 역린을 건드렸으니 이제 큰 일이 났다 식의 경고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듯하다. 이는 수구집단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공갈협박( black mail) 수법이다.
필자는 지난 칼럼(한미정상회담, 잠시 미루는게 맞다)을 통해 문대통령의 방미를 수 개월 뒤로 연기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결정된 일정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두 문(two Moons)의 환상적 콤비 플레이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오히려 정당한 보도의 초점은 미주대륙의 절대적 패권국가와 국제정치의 균형자라는 엄청난 지위의 강대국 미국 대통령으로서 트럼프의 자격미달과 오만함을 질책하고 비난했어야 마땅했다.
상기의 기사를 ‘트럼프의 격노’라는 제목으로 다룬 언론사들은 자신이 속한 국적부터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 만약에 자신들이 국적이 대한민국이라면 국가의 주권과 체면을 팔아먹는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고, 이러한 비난을 거부하고 싶다면 그들의 실제적 조국이 미합중국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정학적 지옥, 한반도의 숙명인가
이야기가 나온 김에 현재의 한미관계를 좀더 솔직하게 따져 들어가 보자.
서구가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18세기 이래 국제정치를 판단하는 두 가지 시각 또는 이론이 길항하고 있다 한다. 한가지는 패권적 현실주의이며, 다른 시각은 상호적인 자유주의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벌어진 제국주의간의 식민지 쟁탈과 패권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사의 비극을 대단원으로 국제사회는 치열한 성찰과 반성이 이루어졌다. 수세기에 걸친 전쟁의 원인으로 작동한 패권주의를 견제하고자 다양한 국제기구와 시스템을 구축하여 상호주의의 입장을 강화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유엔을 비롯한 상호주의적 노력은 미소 양 진영의 대립으로 무력화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패전국도 아니며 제국주의의 희생자였던 한반도는 오히려 분단과 민족동란이라는 비극을 거쳐서 오늘까지도 여전히 휴전이라는 잠재적 전쟁상황에 놓여 있다.
1989년 소련의 붕괴로 냉전적 대결의 종식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를 기대하였으나, 오히려 미국이 일방적 패권주의를 강화하면서 국제사회의 폐해가 심해가는 중에, 중국과 인도의 굴기, 유럽연합의 탄생, 이슬람 문명과 러시아의 재기가 이루어 졌다.
바야흐로 다원적 패권주의 시대를 눈앞에 두면서, 한편에서는 극우적 민족주의가 발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상호주의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2000년 6월, 일본 도쿄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이 시기는 대북문제접근에서 한국과 미국 간의 협력이 가장 잘 이뤄지던 시기로 평가된다.
이런 와중에 제2차대전 직후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어섰던 국력이 20% 수준으로 축소되면서 미국은 초강대국으로서 지위가 흔들리는 가운데,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소프트 파워의 급격한 상실 등 심각한 불균형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지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대 일본전쟁의 전승국인 미국에 의해 이루어진 해방, 그리고 공산화를 시도했던 북한 때문에 치른 민족동란을 겪으면서 지난 70년간의 세월은 한미동맹이 아니라 일방적이고 편승적인 한미종속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이는 동시에 피동적인 종속관계를 합리적인 동맹관계로 이동시켜야 하는 주권국가로서의 과제상황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의 전개는 역동적이고 이러한 역사의 파고를 능동적으로 타고 넘는 자만이 미래의 주인공이다.
지난 70년 간의 한미관계는 김대중-클린턴 시절의 3년기간을 제외하고는 미국의 일방적 역사이다. 강자에 의해 형성되는 일방적 역사라는 것은 동시에 매우 위험하고 예측이 어렵다는 뜻을 포함한다.
김대중-클린턴의 황금기 같은 3년은 소중한 기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남북이산가족들이 만나고, 금강산 관광이 이루어지고, 개성공단의 경제적 협력이 이루어졌고, 연평 해전이라는 위기가 있었음에도 굳건한 평화와 국방의 토대가 이루어 졌다.
황금기 같은 3년의 기간 동안에는 한반도 문제를 남한정부가 주도하고 미국이 뒤에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후 들어선 부시 정권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1990년 이래 애써 이루어 놓은 북미간의 중요한 합의협정(agreement frame: AF)이 일방적으로 파기되고, 천하에 무식한 이명박 정권하에 이루어진 ‘선제적 비핵화 전략- 편승하기(bandwagonning)’과 무책임한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라는 허울이 어우러져 극심한 상호불신 속에 한반도의 비핵화는 물거품이 되었다.
클린턴 행정부 시기의 한미 밀월은 부시 행정부 이후 흔들리기 시작했고,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직면한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더욱 집착하기 시작했다. (이미지 출처: http://www.azquotes.com/)
북한의 자해적 핵무장 수준이 동아시아 전역과 미국본토를 대상으로 상호확실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 MAD)의 국면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매년 되풀이되는 한미군사훈련에 소위 미국의 전력자산이라는 초현대적 무기들이 대거 동원되면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장면이 반복적으로 연출되고 있는 현실이다.
남북한 민족 모두에게 일대의 위기국면인 동시에 동아시아와 전세계를 전쟁으로 몰아가는 불장난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분명하게 미국의 대중국 봉쇄의도가 숨겨져 있다.
한반도의 운명을 우리의 손으로
문재인 정부하에 한국사회의 내부적인 주요 과제는 양극화 완화와 더불어 일자리창출을 포함한 불황극복이다. 당연히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산업과 경제정책, 교육과 사회정책을 강구해야 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노력과 정책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조건이 해결되지 못하고 국제적으로 상호적인 자유주의가 보장되지 못하면 실제적인 성과를 결코 이루어 낼 수 없다.
다시 말하면 한미관계가 그간의 일방적 종속관계에서 합리적 동맹관계로 조정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정치적 번영과 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수출중심국가인 한국에게는 외적 조건이 내부적 성과를 확실하게 규정한다.
이러한 인식에서 중장기적으로 미국중심의 패권적 현실주의라는 입장을 인정하면서도 수평적이고 합리적 동맹관계로 가는 중간단계의 종속적 동맹관계라는 과정을 거쳐가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그 핵심적 주제는 당장의 현실로 전시작전권의 이양과 장기적인 동아시아의 집단적 안보체제의 구축이다.
한편에서는 패권국가로서 미국의 위치를 전적으로 인정하되, 한반도의 미사일방어체제로 일방적 편입과 한미일 군사동맹을 동의해서는 아니 된다. 이는 한국을 영구적으로 미국의 절대적 영향하에 종속국가로 묵어두는 함정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열강의 각축은 역사적으로 한반도를 지정학적인 지옥으로 만들었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은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관점에서 생존과 번영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http://www.fmkorea.com)
문재인 정부는 당당하고도 당연하게 법적 근거가 없는 전시작전권의 반환을 요구하면서 한국적 미사일 방어체계를 포함한 자주국방의 요지를 미국에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이는 주권국가로서 행사해야 하는 일차적 조건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사드의 문제는 잠정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문제해결의 주역은 당연히 대한민국이어야 하고 한반도 역사라는 차량의 운전석에는 문재인 정부가 앉아야 한다.
한미일 군사동맹은 시대에 뒤떨어진 퇴행적 패권주의 산물이다. 우선 중국에 맞서 한국이 일본과 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현실적인 이해관계에서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시에 미국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역사의 흐름에 역주행하는 자살 골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다원적 시대에 맞게 공존공영의 상호주의라는 큰 주류를 형성하면서 미국은 국제적 패자로서 동아시아의 균형적 중재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중국의 굴기에서 오는 잠재적 지역 패권의 위험을 견제하는 방식은 대결적 한미일 군사동맹이 아니라, 지역의 관계 국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나토방식의 집단적 지역방위체계 방향에서 해결해가는 것이 옳다.
일본은 과거 대동아권의 꿈을 꾸는 군사대국의 미망에서 벗어나면 아시아 이웃국가들과 함께하는 보통국가로 길이 열릴 것이다.
중국은 과거의 패권적 종주국의 부활을 기대하는 것보다 경제와 군사의 대국으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는 것이 근대사의 치욕을 벗어나 중국몽(中國夢)을 이루는 것이다.
러시아 역시 유러시아의 강국답게 미중일 사이에 이해를 조정하는 보증국가로서 명분과 실리를 살리는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호주, 베트남, 동남아 등은 중간국가(middle power)로서 균형자적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큰 그림의 시나리오와 연출은 당연히 미국의 몫이어야 한다.
특히 한국은 해양국가와 대륙국가들을 교량하는 중추적 핵심적 역할을 해 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과 북핵의 문제는 북한정권의 생존과 평화보장의 문제로 접근하면 예상보다 너무 손쉽게 풀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다만 남한정부는 통일의 시각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양국관계의 정상화라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주변 국가들의 우려와 견제를 덜어내는 일이라고 판단된다.
상호이익에 근거한 진짜 동맹을 만들자
문재인 정부의 미국 전략은 그간의 종속적인 한미관계를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동맹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의 출발점에 서야 한다.
한미동맹은 한국의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장치인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에만 의존하는 동맹의존증은 오히려 한국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오는 6월 말,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동맹의 파트너로서 자신의 생존을 위한 스스로의 생각과 플랜을 제시하고, 이를 미국과 조율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sbs)
동맹은 강자의 일방적 강요가 아니라 공동의 이익이라는 기초 위에서 서로간의 다른 시각과 현안을 조정해 가는 관계이다.
문대통령의 방미 길은 패권국가인 미국의 지위와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트럼프 행정부뿐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사회에 대하여 당당하게 한국정부의 입장과 비전을 밝히면서, 이해가 같은 지점에서는 굳건히 악수를 나누고, 입장과 시각이 다른 분야에서는 서로의 입장을 십분 경청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동시에 한반도의 안전과 미래에 관해서는 분명한 주도권을 요구해야 한다. 아닌 것은 미소를 품고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여섯번에 걸친 대선 후보 토론회. 언론들은 토론회가 끝날 때마다 대선 후보들의 발언을 요리조리 따져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 다음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거짓을 사실인 양 그대로 주장했다. 뉴스타파는 토론회에서 되풀이된 후보들의 거짓 발언을 모아보았다.
강성 귀족 노조 때문에 기업이 해외로 나가고 있다.
홍준표 후보 (4월 13일, 23일, 25일 토론회)
▶ 홍준표 후보가 인용했던 대한상공회의소 자료를 보면 강성 노조 문제를 해결해야 국내 투자가 활성화된다는 말이 없다. 국내 투자를 활성화 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 ▲역차별 해소 ▲U턴 기업 지원 ▲기업가정신 고취 등 4가지를 꼽고 있다. 구체적 세부 사안으로 보면, 투자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에 대한 진입 규제를 완화하는 등 기업 규제 수준을 대폭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외국인 투자자에 비해 한국인 국내 투자가 역차별받고 있다며 국내 기업에 대한 혜택 제공을 강조했다.
또 한국수출입은행이 지난해 12월에 낸 ‘2015년 해외직접투자 경영분석’을 보면, 해외 투자목적을 설문조사한 결과 ‘현지시장 진출’이 목적이라는 법인 수가 46.4%로 가장 많았고 수출촉진 23.3%, 저임금 활용이 13.6% 순이었다. 노조에 대한 언급은 아예 설문에 들어있지 않았다.
한미 국방장관 회의 같은 상황변화가 있어서 사드입장이 바뀌었다. 5차 핵실험도 상황변화다.
안철수 후보(4월 13일, 25일 토론회)
▶ 안철수 후보가 상황이 바뀌었다고 언급한 지난해 10월 20일 한미 국방장관은 연례 안보협의회이다. 그러나 당시 성명에 사드에 관해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주한미군의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약속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해 7월 8일 한미 양국이 공동발표한 대로 사드 배치를 지체없이 진행하기로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또 지난해 7월 8일 류제승 국방정책실장과 토마스 밴달 주한미군사령부 참모장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사드 배치를 결정한 이후 한미 양국간에 사드에 관해서는 어떤 중대한 변화가 없었다. 그동안 변화가 있었다면 사드 배치 지역이 성주 성산포대에서 성주 롯데골프장으로 바뀐 것, 지난해 9월 북한이 5차 핵실험을 실시한 것, 그리고 사드배치에 대한 찬성여론이 처음보다 높아진 것 밖에 없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는 5차 핵실험 이후인 지난해 11월13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 OECD의 공공부문 고용 통계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OECD에서 말하는 공공부문 고용은 일반정부와 공기업을 모두 합한 개념으로 일반정부에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회보장기금 그리고 정부 당국에 의해 통제되는 각종 기관과 비영리기관이 포함되고 공기업에는 정부가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기업들이 모두 포함된다. 따라서 OECD의 공공부문 통계는 공무원뿐만 아니라 공기업에 고용된 직원까지 포함해 나라별로 같은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 맞다.
당시 우리나라는 ILO에 제출한 고용통계가 없었기 때문에 행정자치부가 OECD가 요구한 기준에 맞추어 각 부처에서 자료를 취합해 제출했다. 여기엔 기획재정부가 관리하는 공기업과 지방정부가 관리하는 지방공기업이 모두 포함돼 있다. 한국만 다른 기준으로 작성된 통계가 아니다.
▶ 2006년 11월 1일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김승규 사퇴를 둘러싼 의혹들’이란 이 글에서 “일부 비판론자(some critics)들은 노 대통령이 10월 25일(미국 현지시각) 청와대 내부회의에서 김 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고 말한다”고 적었다. 이 글에서 언급된 일부 비판론자들이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었다.
또 김승규 전 원장은 위키리크스 문서가 공개된 직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청와대 일부 참모들은 간첩 수사를 하면 북한을 자극해 화해 무드를 깰 수 있다고 우려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이런 참모들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김 전 원장은 대통령이 일심회 사건 수사에 압력을 가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김 전 원장은 2012년 5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수사 도중 청와대로부터 ‘수사를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언질이 많이 왔다, 청와대 참모 대부분이 반대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청와대 참모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문 전 실장은 아니다. 그분은 합리적인 데다, 법률가(변호사)이다. 어떻게 수사를 반대할 수 있겠나”고 밝혔다.
시기적으로도 김승규 전 국정원장이 사퇴한 시점은 2006년 10월로 문재인 후보가 청와대 민정수석에서 사퇴한 2006년 5월 이후다. 문 후보는 2007년 3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복귀했다.
▶ ‘주적’개념은 1994년 3월 판문점에서 열린 제8차 실무접촉에서 북측 박영수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을 계기로 등장했다. 당시 박 대표는 “서울이 여기서 멀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되고 만다”는 공격적인 발언을 한 것을 계기로 국방백서에서 처음 사용됐다. 이양호 전 국방장관 시절 발간한 ‘1995년 국방백서’는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하면서…”라는 문구를 넣어 ‘주적’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이후 2004년 참여정부 당시 윤광웅 국방장관 재임 때 발행한 ‘2004 국방백서’에서 주적 용어가 삭제됐다.
정부가 2016년에 발간한 국방백서 제2절1항 국방목표에는 북한이 아닌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기회는 분명 있었다. ‘정치 검찰’이란 오명을 씻어낼 기회가 왔지만, 검찰은 외면했다. 2014년 12월 터졌던 정윤회 국정 개입 사건 얘기다. 당시 세계일보가 보도한 청와대 문건에는 비선 실세 정윤회씨가 청와대 비서관들과 비밀 모임을 갖고 국정을 농단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이상한 방향으로만 흘러갔다. 의혹은 사라지고 문서를 유출한 사람을 찾는데만 혈안이 됐다. 달을 가리켰는데, 손가락만 쳐다보는 식이었다.
의혹이 불거진 직후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사실상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내 논란을 불렀다. 검찰 수사는 대통령 발언만 맴돌았다.
이번에 문건을 외부에 유출한 것도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행위다.박근혜 대통령/ 2014년 12월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발언
예상대로 검찰은 문건 내용이 허위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문건 유출자만 기소한 뒤 사건을 종결했다.
이후 수사 라인에 있던 검사들은 하나같이 승진했다. 수사 책임자였던 김수남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대검 차장을 거쳐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실무 책임자였던 유상범 3차장도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담당검사였던 임관혁 부장검사는 핵심보직인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을 2년이나 지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당시 수사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속속들이 확인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를 뒤흔든 비선실세 최순실의 존재가 확인됐고, 그를 둘러싼 의혹이 베일을 벗었다. 대기업 기부금 강제모금, 국정 문건 유출부터 대학입시비리와 체육계 비리까지, 의혹은 그야말로 끝이 없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했고, 국민들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2년 전 검찰이 제대로 수사했다면, 지금과 같은 불행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정윤회 문건에 분명히 현재 사태를 예견할 수 있는 최순실 내지는 정윤회 국정 농단이 명백히 있었고, 검찰이 이를 알았으면 수사를 했어야 했습니다. 당시 검찰 수사는 명백한 직무유기고, 그때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이 사건이 곪아터지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최강욱 변호사
‘청와대 부속기관’ 전락한 검찰…뿌리는 우병우?
▲ 2015년 3월, 우병우 민정수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뒤 악수를 하고 있다.
검찰이 청와대 부속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은 박근혜 정부 내내 제기됐다. 특히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청와대 입성 이후 정도가 심해졌다. 코드 수사, 찍어내기 수사 시비가 끝없이 제기됐다. 검찰 요직에 이른바 ‘우병우 사단’ 검사들이 배치된다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청와대도, 검찰도 묵묵무답으로 일관했다.
검찰 안팎에서 인정하는 우병우 사단은 적어도 십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현재 검찰의 주요 보직을 꿰차고 있다. 김주현 대검 차장, 김기동 부패범죄특별수사단, 전현준 대구지검장 등이다.
우병우 전 수석의 대학 동창인 최윤수 차장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거쳐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검사장 승진 불과 2달만에 국정원 2차장에 임명됐다. 국정원 2차장은 국내 정보를 총괄하는 국정원의 핵심 보직이다. 검찰 인사를 총괄하는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도 우 전 수석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검사라면 누구나 탐내는 이 자리를 안 국장은 2년째 맡고 있다.
안 국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노회찬 의원과 설전을 벌여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노회찬 의원 – 엘시티 수사에 대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가 갑니까?
안태근 검찰국장 – 기억이 없습니다
노회찬 의원 – 뭐가 없다고요? 기억이 없다고요? 보고한 사실이 없는 게 아니라 기억이 없다고요?
안태근 검찰국장 – 보고 안했을 수도 있고요.
노회찬 의원 – 보고 안했을 수도 있고요? 누가요?
안태근 검찰국장 – 제가 보고한 기억이 없습니다.
노회찬 의원 – 보고 안했으면 안 한 거지, 보고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에요? 답변을 그따위로 하는 거에요? 아니면 아닌 것이고 모르면 모르는 것이지 기억이 없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안태근 검찰국장 – 그럼 모르겠습니다.
국회 법사위, 2016.11.16
우 전 수석 본인도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검찰의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75억 원을 출연한 뒤 검찰의 압수수색 전날 돌려받은 것과 관련, 우 전 수석은 수사 정보를 최순실 측에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과연 우병우 사단이 장악한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를 할 수 있을까?
지금 검찰, 국정원에 우병우 사단이 포진해 있습니다. 자, 특별수사본부장 이영렬, 특별수사팀장 윤갑근 이미 얘기했고요. 정수봉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이 우병우 수석에게 그동안에 범죄정보를 수집한다는 이유를 가지고 모든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이것 수사해야 되지 않습니까?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긴급현안질의, 2016.11.11
이명박 정부 때는 주로 간첩 사건 등을 수사했던 검사들이 승승장구 했다. 반면 박근혜 정부에선 우 전 수석 같은 정권의 핵심인사과 손잡은 검사들, 이른바 정치 검사들이 약진했다. 법과 원칙보다, 권력의 단맛에 사로잡혔던 검찰은 이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공범 중 하나였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치 기사 뒤집어보기>는 한국 정치 보도를 어떻게 보아야 할 지에 대한 정치기사 모니터링 팀의 의견을 제시하는 연재글입니다.
여덟 번째 글은 남효정 팀원의 <‘여론’ 만드는 여론조사 보도, 믿어도 되나?> 입니다.
<정치 기사 뒤집어보기>는 매주 화요일, 목요일 총 11회에 걸쳐 게시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군주론>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정치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여론’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로마사논고>에서 “관리의 임명이나 발탁과 같은 중요한 일에서 현자는 결코 여론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후 여론은 직접 민주주의를 주창한 루소 등 여러 학자를 통해 발전했다.
여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를 가시화할 도구가 필요하다. 바로 ‘여론조사’다. 그리고 여론조사 결과는 언론의 보도를 만나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
차기 대선후보로 주로 언급되는 사람은 김무성,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 정도다. 그 중 김무성, 문재인 대표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연합뉴스
심 후보의 꿈은 애초 교육자였다.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거듭 응시해 1978년 합격했다. 아버지도 교사였고 언니도 교사였던 영향이 컸다.
‘긴급조치 세대’로 시위현장을 누비기도 했지만, 긴 생머리에 미니스커트, 7㎝ 높이 하이힐 차림의 얼치기 운동권에 가까웠다.
심 후보는 언론 인터뷰에서 “재수까지 해서 대학 들어가면 지긋지긋한 참고서 말고 책 실컷 읽고, 여행 맘대로 다리고, 연애 멋있게 해봐야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괜찮다 싶은) 남학생들 찍어서 뒤를 좇다 보면 영락없이 운동권인 거에요. 그 세계를 들어가야겠더라”라고 말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읽은 책 한 권이 뚜렷해 보이던 진로를 뒤흔든다. 심 후보가 “내 인생의 진로를 밝히는 등불”이라고 표현하는 ‘전태일 평전’이다.
직업훈련소를 다니며 어렵사리 미상사 자격증을 딴 뒤, 구로공단으로 가 노동운동에 투신한다.
미싱사 ‘김혜란’…8만원 월급쟁이에게 500만원 현상금
심 후보는 ‘걸크러쉬’(여성이 다른 여성을 선망하거나 동경하는 마음)의 면모를 과시한다. 여학생을 ‘학회의 꽃’, ‘학생회의 꽃’ 으로나 생각하던 때다. 당시 운동권에서도 만연했던 가부장제 문화를 깨기 위해 나섰다.
1980년 최초로 총여학생회를 만들었고, 초대 총여학생회장에 선출된다. 여학생만의 학회도 만들었다. 여성이 보조역이 아닌 주체로 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구로공단에서 야학활동을 하던 그는 구로3공단 남성전기에 ‘김혜란’이라는 이름으로 취업하면서 눌러앉는다.
13~16세의 어린 여공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다 다림질용 프레스 기계에 손이 눌리는 끔찍한 산업재해를 당하면서도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경험하고 그들과 함께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1985년 6월, 서울 구로공단 대우어패럴 노동자들이 구속자 석방과 노동악법 철폐를 외치며 농성을 벌였다(왼쪽 사진). 창틀에 걸터앉아 구호를 외치는 대우어패럴 노동자의 모습. <사진=구로동맹파업20주년기념사업추진위>
1983년 세 번째 직장인 대우어패럴에서 미싱사로 취업했지만, 1985년 해고된다. 그 해 6월 대우어패럴 노조 지도부가 구속되면서 ‘구로동맹파업’이 발생한다. 이 파업은 구사대 폭력과 경찰의 탄압으로 1주일 만에 끝났다.
심 후보는 노동사상 최초의 정치연대 파업투쟁으로 불리는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전국에 지명수배 된다. 국가보안법위반 혐의까지 씌워졌다.
미상사로 받던 월급이 8만원이었던 당시 현상금만 500만원이었다. 경찰에게는 1계급 특진 포상도 걸렸다.
심 후보는 9시 뉴스 화면에서 지명수배 소식과 함께 자신의 얼굴이 뜨는 것을 숨어서 지켜봤다. 그는 “서울대 사범대에 합격했을 때, 온 동네에 자랑을 하고 다니던 아버지는 운동권 딸이 전국에 지명 수배되자 말을 잃으셨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9년간 이어진 수배 생활의 시작이다. 구로동맹파업으로 1,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해고됐다.
심 후보의 소재를 밝히라며 지인들에게 가해진 모진 고문은 더 큰 상처였다. 물 고문, 전기 고문 등 극악한 인권 탄압이 횡행했던 시절이다.
김문수는 보일러공으로 취직해 도루코의 노동위원장으로 활약했다. 사진은 노동운동탄압규탄대회 방해에 항의하는 모습.
구로동맹파업 공개 상황실이 위치했던 전태일기념사업회의 사무국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심상정이 있는 곳을 대라”고 다그침을 받으며 전기 고문을 받다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대학 후배로 유시민 작가의 친동생이기도 한 유시주 희망제작소 기획이사 등도 물고문의 고초를 겪어야 했다.
국내 최초 산별 협상으로 주5일제 관철…금속노조 ‘철의 여인’
심 후보는 9년의 도피생활 끝에 1993년 체포됐다. 오랫동안 전담반을 따돌려 온 거물이 잡혔다는 소식에 “얼굴 좀 보자”고 수사관들이 몰려오기도 했다.
재판 끝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만삭의 몸으로 재판장에 선 심 후보를 본 판사는 “무죄를 선고하고 싶으나 관련 법규가 최소한 집행유예를 선고하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정부는 2001년 구로동맹파업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관련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줬다.
심 후보는 수배자 신분이었을 때도 노동운동에 주저함이 없었다. 구로동맹파업을 계기로 기업 단위의 노동조합을 뛰어 넘는 대중정치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탠다.
1985년 8월 창립된 서노련은 이듬해 전두환 정권에 의해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로 규정된다. 보안사령부를 동원한 관련자 구속과 고문 등의 탄압을 받으며 사실상 해체된다.
심 후보는 뒤이어 1988년 전국노동단체협의회 결성에 참여하고,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만들어지면서 쟁의국장ㆍ조직국장 등의 중책을 맡는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발전적 해체를 하며 1995년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만들어진 뒤로 심 후보는 민주금속연맹ㆍ금속산업연맹에서 활동했다.
금속연맹이 산별 노조인 전국금속노동조합으로 발전해서도 사무차장으로 자리를 지켰다. 금속노조는 2003년 국내 최초로 산별 중앙교섭을 통해 ‘임금삭감 없는 주5일 근무제’ 도입 합의를 이끌어 낸다.
심 후보에게 ‘철의 여인’이란 별명이 생긴 게 이 때다.
진보정당 비례 1번으로 원내 진출
노동운동가로 25년 외길을 걸었던 심 후보는 2004년 민주노동당 소속 비례대표 1번으로 17대 국회에 입성한다. 진보정당 원내진출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어깨에 짊어졌다.
노동운동으로 잔뼈가 굵었지만, 경제 분야에서 발군의 역량을 과시한다. 경제부처에서 장ㆍ차관을 역임한 의원들이 혀를 내 두를 정도였다.
일례로 등원 첫해 국정감사에서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를 상대로 재경부가 역외선물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방어하다 1조8,000억원 가량의 외환보유고를 날린 사실을 추궁해 밝혀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문제를 주도적으로 파헤치기도 했다. 지배구조 및 승계 문제 등 삼성의 편법ㆍ탈법ㆍ불법 행위를 밝혀내며 ‘삼성 저격수’, ‘재벌ㆍ대기업 저승사자’로 불리기도 했다.
17대 국회에서 여야를 통틀어 최고의 의정활동을 보인 국회의원으로 꼽혔지만, 2008년 총선 경기 고양 덕양갑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고양 덕양갑에 재출마해 170여표 차이의 신승을 거두며 수도권 최초의 진보정당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다.
민노당 해체 시련…탈당 뒤 정의당
하지만 시련이 연이어 닥쳤다. 초대 공동대표를 맡았던 통합진보당이 19대 총선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구 당권파에 의해 부정투표가 이뤄진 사실이 드러나면서 내홍에 휩싸인다.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 심상정 대표가 2008년 2월3일 서울 센트럴시티 밀레니엄홀에서 열린 임시 당 대회에서 혁신안이 부결되자 퇴장하고 있다. (사진출처: 경향신문)
5월 열린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심 후보 등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공동대표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지만, 폭력사태가 벌어지면서 사태가 악화된다.
8월 부정투표의 수혜자로 꼽혔던 이석기ㆍ김재연 당시 의원의 제명안이 의원총회에서 부결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심 후보는 결국 탈당을 택한 뒤 진보정의당을 거쳐 지금의 정의당을 창당한다.
그리고 2016년 20대 총선에도 연거푸 당선돼 진보정당 사상 첫 3선 중진의원이 된다.
진보정치의 간판스타…”반드시 완주”
심 후보 대선 도전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권영길 전 의원에게 패했다.
2012년 대선에서는 진보정의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를 선언했지만,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단일화라는 대의 속에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를 지지하며 후보 직을 사퇴했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가 지난 3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정의당 정당연설회에서 해바라기 분장차림으로 자리하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부담은 앞선 두 번의 도전에 비할 수 없이 크다. 진보정당의 부활, 명가의 재건이라는 과제가 모두 심 후보의 어깨에 실려 있다.
앞선 15~17대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가 얻었던 득표율 3%를 넘어서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지는 조기대선이라는 환경은 의석 수 6석의 초미니 정당인 정의당에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수세에 몰리기라도 한다면 또다시 정권교체를 대의로 하는 후보단일화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심 후보는 두 자릿수 득표를 자신하며 “이번엔 끝까지 완주한다”는 말로 필승각오를 다지고 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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