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박상훈의 다시 민주주의다]침착하고 다정하고 자신있게

지역

[박상훈의 다시 민주주의다]침착하고 다정하고 자신있게

익명 (미확인) | 화, 2017/05/09- 15:54
입법부와 협력하지 않는 대통령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DB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여느 때처럼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 아닌, 곧바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제1시민’ 혹은 ‘시민 중의 시민’을 뽑는 선거 일정이 오늘로써 마무리된다. 승자가 누릴 기쁨의 시간은 짧을 것이다. ‘시민 속’을 누비며 경합해야 했던 대선 후보로서의 지위를 마치자마자, 하루아침에 ‘시민 앞’에 우뚝 선 최고 통치자로서 일을 시작해야 한다. 선거 후유증을 다독이며 숨을 돌릴 한동안의 여유가 내일의 대통령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수준의 대통령이라면, 일을 빨리 하는 것을 과시하려는 조급증에 빠지기 쉽다.

크고 빠른 성과에 연연하는 조급함은 한국의 역대 대통령 모두를 망가뜨린, 일종의 ‘정치적 질병’이었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조급증은 이번 대통령만의 특별한 위험은 아닌데, 다만 심리적 압박은 어느 대통령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런 압박을 견디지 못한 대통령일수록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일이 안 될 때마다 야당이나 반대파들이 협조해 주지 않는 것을 알리바이 삼아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청와대와 주변 참모들은 ‘국민과의 대화’나 ‘대국민 홍보 강화’를 빌미로 여론 정치를 확대하려는 충동을 절제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여야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집권당 내부에서조차 정상적인 정당 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이런 사태가 신정부에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부드러운 풍모와 유머, 침착함을 대통령이 잃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상황에서 빠른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새 대통령은 앞선 정부에서 임명된 내각과 앞선 대통령의 정책을 위해 마련된 예산을 갖고 출발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당 지도부 개편과 내각의 진용을 짜는 일을 서둘러야겠지만, 거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정부조직법을 손보고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 일을 하려면 추경 예산도 편성해야 한다. 내년도 예산안 준비도 코앞의 일이다. 보통의 신정부에서보다 훨씬 늦게 시작하는 일정이니 내실을 기하는 데 전념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게 입법부와의 좋은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야당과의 협의 능력이 중요할 텐데, 이는 집권당 지도부의 유능함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에서 제1의 권력기관은 입법부이며, 대통령도 이를 초월할 권력은 갖지 못한다. 통치 행위는 법에 입각해야 하고 그런 법을 제정하는 입법자에게 시민 주권이 위임되어 있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초 원리다. 입법부를 움직이는 것은 시민의 의사를 나눠서 대표하는 정당들이며, 이 가운데 집권당과 내각이 긴밀히 협력해서 정부를 관장하는 것을 ‘책임 정부’라 부른다. 박근혜 정부일 뿐 새누리당 정부가 아니었던 지난 정부에서 책임 정치가 어떻게 실종되는지를 보았듯이, 신정부 역시 정당의 정부가 아니라 특정 대통령 개인의 정부로 불리면 민주정치의 미래는 없다.

입법부와 싸우는 대통령은 최악이다. 안정된 당정 관계를 바탕으로 입법부와의 협력을 도모하고 여야 정치인을 넘나들어 대화를 이끌 수 있는 ‘다정한 자신감’은 민주적 리더십의 핵심 덕목이다.

혹자는 양당제로의 수렴 효과가 큰 대선에서조차 5당 구도가 유지된 만큼, 신정부하에서 다수 야당의 발언권은 강해질 것이라 말한다. 경제와 외교 등 이런저런 상황의 어려움을 들어 ‘신정부 조기 실패’를 예견된 일처럼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인간의 활동 가운데 정치만큼 독립 변수로서의 측면이 강한 것은 없다. 객관적인 상황이 좋아서 성공하고 상황이 나빠서 실패했다는 인과론이 적어도 정치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정치의 역할에 따라 나쁜 상황에서도 성공하고 좋은 상황인데도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에 훨씬 더 가깝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셰리 버먼 교수가 자신의 책 제목으로 삼은 것으로 유명한 ‘정치가 우선한다’는 테제야말로 민주주의의 본질이 아닐 수 없다. 주권이라고 하는 절대적 권력을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아 창의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단연코 정치의 역할이다.

민주정치의 이상은 ‘숙고된 결정’과 ‘합의적 변화’에 있는데, 이는 통치자의 자신감이 침착하고 다정한 리더십으로 실현될 때만 가능하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ISSUE/2017president/News?gid=84267160&date=20170509&path=#csidx2103e245134d6618c882c45214adee5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오늘(11/19) 오후 2시 30분 서울 대학로 흥사단에서 각계 시민사회노동농민 단체들 대표와 시민들이 함께 지난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참석했다가 경찰의 물대포 직사로 중상을 입은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기원하고 경찰의 폭력 진압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였습니다. 지금 병상에서 사투 중인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오늘 발표한 시국선언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살인폭력진압 경찰청장 사퇴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 시국선언문


 

 

11월 14일 개최된 민중총궐기에 대한 박근혜 정부와 경찰 당국의 대응이 많은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경찰 당국은 집회 당일, 차벽을 통해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와시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였습니다.

차벽은 시위 참가자와 국민을 격리시켜 ‘많은 국민에게 집회의 취지를 알린다’는 집회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는 것으로 이미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았고, 비록 완화되기는 했지만 법원으로부터도 “통행로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 당국은 이러한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판결을 외면한 채, 광화문과 청계광장, 종로의 통행을 완전히 가로막는 불법적 조치를 취했습니다.

 

공권력이 집회 참가자에게 ‘불법 필벌’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법을 지키고,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 것이며, 시위대의 ‘불법 행위’에 대한 사법처리를 행하기 이전에 경찰 당국의 불법적 집회방해 행위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경찰 당국은 집회 당일, 고압의 물대포와 고농도 캡사이신을 동원한 과도한 진압을 펼쳐, 백남기 농민이 중태에 빠져 있고, 수십명이 크게 다치는 참담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경찰 당국은 백남기 농민의 머리에 고압 물대포를 직사하였으며,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뒤에도 수십초 간 직사를 계속하였고, 구호조치를 취하러 온 이들에게까지 직사를 계속해 빠른 응급 치료를 가로막았습니다.

 

백남기 농민 뿐 아니라, 수많은 집회 참가자들의 얼굴에 고압 물대포의 직사가 이뤄졌으며, 참가자가 쓰러진 뒤에도 직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경찰 당국은 팔이 부러진 시민을 이송하려 온 구급차에까지 물대포를 직사해 구조를 방해하는 심각한 인권 침해를 자행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집회 이후 경찰 당국의 해명은 더욱 심각합니다. 경찰 당국은 살수차의 모니터로 시위 참가자의 하반신에 살수를 하는지, 참가자가 쓰러졌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백남기 농민과 집회 참가자들에게 쓰러진 이후에도 살수를 한 것이 아니며, 당시 진압 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살수차가 진압 수칙을 수행할 수 없다면, 그 살수차를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경찰 당국의 진압수칙에 따른 진압으로 참가자 한 명이 중태에 빠지고 수십명이 중상을 입었다면, 그러한 진압수칙은 즉시 개정되어야 할 것이며, 살수차 사용은 중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불통’과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14일 집회에 10만이 넘는, 2008년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촛불 이후 최대 참가자가 운집한 것은, 박근혜 정부가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 ‘임금피크제’, ‘일반해고제 도입’, ‘비정규직 사용기한 연장’ 등을 강행하였기 때문이며, 쌀 관세화 개방 이후에도 관세화 유예의 조건이었던 ‘밥쌀용 쌀 수입’을 지속하여 쌀값 폭락의 가속화를 방치하였기 때문이며,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친일-독재 미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박근혜 정부는 성난 민심에 불법적 차벽과 고압 물대포, 고농도 캡사이신으로 대응하였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모습을 어떻게 ‘불통’이라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떻게 지금 이 사회가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박근혜 정부는 국민과 소통해야 하고, 민주주의로 돌아가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일 벌어진 과잉 진압에 대해 사과하고, 경찰청장을 파면하며, 관련 책임자를 문책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강행되고 있는 소위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밥쌀용 쌀 수입’, ‘노점상과 철거민들에 대한 강제 철거’를 중단하고, 이들과 대화에 나서야 합니다.

 

우리 비상시국회의 참가자들은, 현재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간절히 기원하며, 향후 우리의 요구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임을 밝힙니다.

 

2015년 11월 19일

 

21C한국대학생연압 경기진보연대 경남진보연합 계승연대 광주노동자교육센터 광주인권운동센터 광주진보연대 교육희망네트워크 구속노동자후원회 노동건강연대 노동당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 노동자연대  대구경북진보연대 대전민중의힘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민권연대 민대협 민자통 미주노동자전국회의 민주노점상전국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수호공안탄압대책회의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주의국민행동 민주회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민중의힘 범민련남측본부 변혁재장전 보건의료단체연합 부산민중연대 빈곤사회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 사월혁명회 사회진보연대 상상행동 장애와여성 마실 서울인권영화제 서울진보연대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알바노조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예수살기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우리사회연구소 울산진보연대 원불교개벽위원회 이석기의원내란음모사건 피해자구명위원회 인권교육센터'들' 인권운동사랑방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빈민연합 전국여성노동조합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여성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철거민연합 전국학생행진 전남진보연대 전북진보연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전태일재단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청년유니온 청년좌파 청년하다 촛불교회 추모연대 통일광장 통일의길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무모회 평화와 통일을여는사람들 평화재향군인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교회와사회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한국가톨릭농민연합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진보연대 한국청년연대 한살림 등 116개 단체

 

목, 2015/11/19- 19:59
590
0

대한민국 밖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의 눈길을 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을 ‘세계는 지금’에서 소개합니다.

세계는 지금(11)
영국인들이 제레미 코빈을 좋아하는 이유?

좌파 공화주의자, 반왕정주의자, 급진주의자, 강성 좌파, 신념에 투철한 자, 구식 좌파, 반전주의자, 공산주의자. 누구를 지칭하는 말일까요? 올해 영국 노동당의 당수가 된 제레미 코빈에 대한 수식어들입니다. 영국 노동당에서도 가장 사회주의 색채가 강한 진보적 인물이 당수 선거에서 승리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세계가 주목했고,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cobin-3-400-300

Facebook © 2015

사실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영국 노동당은 80년대에 국유화 등의 강경 사회주의 노선을 지속하다가 대처에게 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했지요. 그러다가 97년 토니 블레어가 중도노선인 ‘제 3의 길’을 제시하며 정권을 되찾게 됩니다. 이후 13년간 노동당 정부가 통치하다가 지난 2010년 선거에서 패배해 보수당이 집권하게 됩니다. 노동당에서는 선거 패배 이후 토니 블레어의 계승자라고 할 수 있는 데이비드 밀리반드의 당수 선출이 유력했지만, 이변이 일어납니다. 당내에서 좌파로 간주되던 동생 에드워드 밀리반드가 노조의 지지를 받아 출마했는데 처음엔 꼴찌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속도로 형을 추격하더니 결국은 1.3% 차로 승리했습니다. 별명이 ‘레드 에드(Red Ed)’였으니, 노동당으로선 이 때 이미 상당히 진보색체를 강화한 셈입니다. 하지만 노동당이 올해 총선에서도 보수당에 패배하면서 에드워드 밀리반드는 당수직을 사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선거에서 제레미 코빈이 노동당 당수로 선출되었습니다.

cobin-400-300

Facebook © 2015

무명 좌파 의원에서 노동당 당수로
코빈의 승리는 에드 밀리반드의 승리보다 훨씬 큰 충격이었습니다. 에드 밀리반드는 당내에서 좌파로 분류되면서도 대체로 주류에 속한 반면, 코빈은 철저한 비주류였기 때문입니다. 후보 등록을 위해서 35명의 의원들이 서명을 해 주어야 하는데, 등록 직전까지도 15명에 불과해서 출마를 아예 못할 뻔 했습니다. 선거 흥행을 위해서 좌파 후보도 하나쯤 있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에, 코빈을 별로 지지하지도 않는 의원 20명이 서명을 해 주어서 간신히 출마했지요. 이 사람들은 나중에 크게 후회를 했다고도 합니다.

코빈은 노골적으로 사회주의자를 표방하고, 500번 넘게 당의 입장에 반대를 했습니다. 이라크 전쟁도 반대했지요. 제 3의 길 노선에 대해서는 줄곧 비판적이었습니다. 군주국인 영국에서 왕정 페지론자이기도 합니다. 여왕과의 첫 공식 대면에서 무릎을 꿇지 않아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제레미 코빈의 등장으로 노동당은 중도 노선에서 완전히 탈피했습니다. 공약도 적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보수당에서 3배나 오른 대학등록금의 철폐, 완전 민영화된 철도의 공영화, NHS(국가무상의료시스템) 민영화 중단, 에너지 산업 공영화 등을 내세웠습니다. 그가 구성한 그림자내각(쉐도우캐비넷-집권후의 장관등를 사전에 임명하는 제도)도 화제입니다.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수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총 31명 중 16명이 여성인데요, 여전히 내무/외무 장관 등 주요 직책이 남성이라는 비판에, 코빈은 우리 내각에서는 교육과 복지가 주요 직책이라고 응수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최근 우리가 접하고 있는 제레미 코빈 열풍의 대강입니다. 영국 노동당이 진보적 입장을 강화하고 있고, 당내에서 철저하게 비주류였던 한 무명의 좌파 의원이 당원과 일반인 참가자의 지지에 힘입어 당수로 선출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전부일까요?

cobin-400-282

Facebook © 2015

수수한 옆짚 아저씨의 친절한 정치
민주주의 선진국이고 제법 심각하기도 한 영국인들에게 제레미 코빈에 대해 물으면 ‘그의 정책이 진보적이라서 좋아한다’는 대답이 나올 것 같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코빈은 누구의 말도 잘 들어준다’, ‘격의없이 사람들과 이야기 한다’, ‘그는 약속한 것을 지킬 것 같은 사람’이라고 답합니다. 노선에 앞서 그 사람의 됨됨이가 신뢰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연설 스타일도 꽤나 충격적입니다. 논쟁의 전통이 강한 영국에서는 중고등학교에서부터 토론과 연설 교육에 중요하고, 대학에는 전문적인 클럽이 있습니다. 정치인을 꿈꾸는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런 문화를 접하지요.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와 몸짓, 상대를 적절히 비꼬는 풍자,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표현들을 여기에서 습득합니다. 잘 만들어진 한 명의 배우처럼 말이지요. 코빈은 달랐습니다. 그의 연설은 언제나 참 차분합니다. 수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옆 집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바로 여기서 ‘그는 기존 정치인과 다르다’며 신뢰를 보내고 있습니다.

cobin2-400-300

Facebook © 2015

코빈은 또 수수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노동당 연례 컨퍼런스에서 입고 나온 그의 자켓은 허름하기 짝이 없었지요. 그가 초선의원이던 시절에, 보수당 소속의 한 의원은 코빈이 누추한 차림으로 방송에 나오는 것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했을 정도입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무례한 요구이기도 한데, 코빈은 ‘의회는 패션쇼장이 아니라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대꾸했을 뿐이죠. 지금도 이런 서민적인 옷차림과 온화한 태도는 많은 호감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정치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고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노동당 연례 컨퍼런스에서 그는 특이한 연설을 하나 합니다. 노동당이 새로운 정치를 해야 한다면서 당원들에게 당부하는 말입니다. 한 대목을 옮겨볼까 합니다.

인신공격에 지친 시민들을 위하여
“우리가 새로운 정치를 위해 해야 하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나는 이미 당수 선거에서 이것을 대해 누차 말했습니다. 나는 어떤 종류의 개인적 비난도 믿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존중하십시오. 당신이 대우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을 대우하십시오. 동의하든 안하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논쟁하십시오. 나는 어떠한 무례한 행위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사회를 보살필 수 있는 더 친절한 정치(kinder politics)를 의망합니다. 모든 당원들에게 당부합니다. 누구에게든 인신공격을 하지 마십시오. 인터넷 공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가치를 정치로 다시 가져옵시다.” (제레미 코빈의 동영상 보기 ☞클릭)

영국에서는 제레미 코빈이, 미국에서는 버니 샌더스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한국의 진보진영에서도 이런 변화에 열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단지 그들의 노선 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을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며 덮어버린 샌더스, “누구에게든 인신공격을 하지 말라”는 코빈을 보면서, 한국의 진보가 배워야 할 것은 정치를 다시 복원하려는 노력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현존하는 정치를 비꼬고 비난하는 것만큼 정치혐오를 조장하는 것도 없고, 정치 혐오보다 진보에게 더 해로운 것도 없으니 말입니다.

글_이관후 (연구조정위원 / [email protected])

월, 2015/11/23- 14:34
589
0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국정농단 세력이 성신학원 이사들에게 외압을 행사, 각종 비리로 퇴진 요구에 시달리는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을 지난해 연임시킨 사실이 처음 드러났다.

심 총장은 서울 운정캠퍼스 부지를 매입하면서 땅 주인으로부터 자신의 아들 2명 명의로 각각 1억5천만 원씩 3억 원의 뒷돈을 받았다. 심 총장은 또 학생들의 등록금중 수억 원을 자신과 측근들의 소송비용으로 유용하는 등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의심받았지만 아무런 문제없이 대학 총장으로 다시 선임돼 그 배경에 의혹이 일었다.

현삼원 성신학원 이사는 “황우여 전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7월 송인준 성신학원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성신여대 총장 선임과 관련해 청와대 교문 수석의 지시를 따르라’며 외압을 가했다”고 13일 뉴스타파에 폭로했다.

20161213_001

현 이사는 지난 8월 정기 이사회가 열리던 날 송 이사장을 만나 “너무 섭섭하다. 황 장관이 당신을 믿었는데 심 총장을 연임시킬 수 있느냐”며 따져 묻자, 송 이사장이 “실은 말이야. 황 장관한테 전화를 받았는데, 황 장관 얘기가 교문 수석이 전화할 것이니까 거기에 따르면 된다. 사실 그렇게 된거야”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송인준 이사장은 처음에는 “청와대와 박백범 이사 등으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지 않았다”고 외압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그는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전화를 걸어 “황우여 전 장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성신여대 총장 선임과 교문수석이 전화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고 털어놨다.

당시 청와대 교문수석은 김상률 숙명여대 교수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물 중 한 명인 차은택의 외삼촌이다.

하지만 교문 수석이 직접 송인준 이사장에게 전화한 것은 아니고 대신 교육부에서 파견된 박백범 성신학원 이사가 교문수석의 의중을 전달하는 창구역할을 했다.

20161213_002_re

이에 대해 김 전 수석은 진행 상황만 보고 받았을뿐이라며 자세한 이야기는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해당한다고 답변을 피했다.

심화진 총장은 지난 2012년 해임위기에 몰렸을 때 나경원 의원의 측근 2명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긴 바 있다. 이 때문에 나경원 의원 딸의 부정 입학을 계기로 이른바 ‘상부상조’하는 관계가 형성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20161213_003

▲김상률 전 교문수석과 성신여대 심화진 총장

김상률 전 교문수석이 성신여대 총장 임면에 왜 관여했는지 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김 전 수석은 오는 15일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화, 2016/12/13- 17:37
588
0

대한민국의 5년을 결정지을 19대 대통령 선거가 눈 앞에 다가왔다. 이번 선거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당선자가 정권을 인수할 준비를 하기 위한 인수위를 꾸리지 못하고 곧바로 임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5월 9일 개표가 끝나면 이튿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당선자를 확정하고 그 뒤 선관위가 당선증을 교부하면 즉시 새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고 정부 요직 인선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현재 선거를 치르고 있는 캠프의 관계자들은 곧바로 이어지는 차기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대통령 캠프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은 어느 선거 때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뉴스타파는 주요 후보 다섯 명의 선거캠프를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선거운동 시작부터 지난 25일까지 각 후보의 캠프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명단 936명이다. 뉴스타파는 이들의 정치 이력과 출신 지역, 직업군, 재산, 나이 등을 전수조사했다.

문재인 캠프 543명…나머지 캠프 합친 것보다 많아

캠프의 규모는 후보별로 큰 차이가 난다. 가장 규모가 큰 곳은 더불어 민주당 문재인 캠프다. 공식 발표된 인원만 543명으로 다른 네 후보 캠프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안철수 캠프는 181명, 홍준표 캠프는 104명, 유승민 캠프는 63명, 심상정 캠프는 45명의 명단을 공식 발표했다. 문재인 캠프의 규모는 지지율 2위인 국민의당 안철수 캠프와 비교해도 3배 이상 크다.

2017042701_001

문재인 캠프 원혜영 인재영입위원장은 이에 대해서 “국정 농단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 조기 대선을 초래했고,  현존 정치 세력 가운데 제대로 된 정권 교체를 통해 나라를 바로 세울 역할을 할 정당은 더불어민주당 뿐이라는 분위기가 확립되어 있다보니 그런 분위기가 지지세나 인재 영입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문재인 캠프에는 이렇게 사람이 많다보니 같은 직책에 여러 명을 임명한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문재인 캠프의 국방 안보위원회에는 공동위원장이 11명, 부위원장이 28명이나 된다. 캠프 전체로 보면 직함에 ‘공동’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사람이 20%에 육박한다.

문재인 캠프에 비해 캠프 규모가 너무 작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안철수 캠프 손금주 대변인은 “현역 의원 수가 더불어민주당보다 적은 것도 이유겠지만, 안철수 후보 스스로가 방대한 조직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보다 모든 참여 인원이 적극적으로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는 작지만 빠른 선거 캠프를 원했고, 그런 차원에서 캠프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도 다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안철수 캠프에는 후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후보 직속의 핵심 위원회조차 위원장이 공석인 경우가 있다. 안철수 캠프 손금주 대변인은 이에 대해 “사람이 없다기 보다는 좋은 사람을 넣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누가 캠프를 이끄는가.. 캠프내 최대 그룹은?

문재인 캠프 내부의 최대 그룹은 참여정부 인맥이다. 참여정부나 노무현 재단 출신이 104명으로 전체의 19%를 차지했다.  특히 이 가운데 30% 가량은 참여정부의 청와대에서 각종 수석이나 비서관, 행정관으로 일했다. 지난해 총선 당시 영입된 이른바 ‘문재인 키즈’와 올해 대선을 겨냥해 영입된 인사도 18%로 참여정부 인맥과 비슷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도 3명 있었다.

2017042701_002

안철수 캠프의 최대 그룹은 안 후보의 측근 그룹으로 분류되는 정책네트워크 내일 출신과 2012년 진심 캠프 출신이었다. 두 번째로 많은 그룹은 김대중 정부 출신들이었다. 캠프 안에 호남의 다선 의원들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2012년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도 13%나 됐다.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나 행정부 출신이 3.7%였고, 박근혜 정부의  행정부 출신이 2명, 반기문을 지지했던 인사도 4명 있었다.

2017042701_003

자유한국당 홍준표 캠프와 바른 정당 유승민 캠프 내부의 최대 그룹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홍준표 캠프에는 이런 사람들이 40%였고, 유승민 캠프에는 65%나 됐다.  특히 홍준표 캠프에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 차관급 이상 공직자나 민정당 의원을 지낸 이들도 8명, 7.7%나 됐다.

2017042701_004

정의당 심상정 캠프의 경우 참여정부와 노무현 재단 출신 9%(4명)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캠프 인사가 진보정당 출신이었다. 정의당 선대위 박원석 공보단장은 “당이 가지고 있는 자원과 에너지를 최대화하는 것이 선거를 잘 치르는 방법이지 유명한 사람 모시기와 같은 그런 경쟁은 진보정당의 가치에도 안 맞고 또 실제 진보정당에 어울리지도 않는다는 판단을 선거 초반부터 했다”고 말했다.

안철수 캠프는 호남, 홍준표 캠프는 영남이 절반

캠프 참여 인사들의 출신 지역을 보면 홍준표 캠프와 안철수 캠프의 지역 편향성이 두드러졌다. 홍준표 캠프는 영남 출신이 절반을 넘었고, 안철수 캠프는 반대로 호남출신이 거의 절반이었다.

2017042701_005

2017042701_006

문재인 캠프는 호남 출신이 가장 많았지만 영남과 수도권 출신도 상당히 많았다.

2017042701_007

심상정 캠프와 유승민 캠프는 영남 출신이 가장 많았지만 수도권 출신 역시 비슷해 지역 편중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2017042701_008

문재인 캠프 – 군인, 안철수 캠프 – 학자, 홍준표 캠프-법조

캠프 인사들의 출신 직업을 보면 문재인 캠프는 군인, 안철수 캠프는 학자, 홍준표 캠프는 법조인 출신이 두드러졌다.

2017042701_009 2017042701_010 2017042701_011

이에 대해 문재인 캠프 원혜영 인재영입위원장은 “대선이 되면 야당 후보한테 색깔론을 제기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안보 분야에 복무한 사람들의 지지가 필요하다보니 영입에 중점을 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안철수 캠프는 핵심 정책 조직의 책임자들의 상당수가 학자 출신이라 현실 감각이 떨어질 수도 있지 않겠는냐는 지적에 대해  “본부장이나 위원장이 주도해서 의사 결정을 내리는 형태가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집단 지성을 발휘하는 의사 결정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기우”라고 설명했다.

유승민 캠프는 학자 출신과 법조인, 기업인이 많았고, 심상정 캠프는 시민사회단체와 노동단체 출신이 두드러졌다.

2017042701_012 2017042701_013

캠프 평균 재산 유승민>홍준표>안철수>문재인>심상정

캠프 참여 인사들의 평균 재산은 유승민 캠프가 51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홍준표 캠프가 그 다음, 그리고 안철수 문재인 캠프가 근소한 차이로 3,4위를 차지했다. 가장 평균 재산이 적었던 심상정 캠프의 경우, 유승민 캠프의 1/10 수준이었다.

2017042701_014

단, 재산의 경우 캠프 참여자들이 고위 공직자나 선출직 출마자가 아닌 경우가 많아 전체 조사대상의 절반 정도밖에 확인하지 못했다.

캠프 평균 연령, 홍준표>안철수>유승민>문재인>심상정

2017042701_015

평균 연령은 심상정 캠프가 49.9세로 가장 젊었고 문재인 캠프, 유승민 캠프, 안철수 캠프 순이었다. 홍준표 캠프의 평균 연령이 60.8세로 가장 높았다.

캠프 여성 비율, 심상정= 유승민>홍준표>문재인>안철수

2017042701_016

여러 캠프가 남녀 동수 내각 구성을 약속했지만 각 캠프의 여성 비율은 5개 후보 모두 20%가 채 되지 않았다. 유승민 심상정 캠프의 여성비율이 그나마 19%로 높은 편이었고 홍준표 캠프 14%, 문재인 캠프 12%, 안철수 캠프 11% 순이었다.


취재 : 심인보, 박중석, 오대양, 최윤원
리서치 : 한유주
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목, 2017/04/27- 21:04
588
0

2015-05-12 오후 11_17_00

조성주 정치발전소 공동대표

민주주의 좀먹는 ‘콜센터 정치’
[조성주의 생각] 민원의 정치

관료 조직과 공무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일까? 내 짧은 행정 경험에 의하면 그것은 ‘민원(民願)’이었다.

업무의 담당 공무원들에게 시민들이 제기하는 민원은 특이사항 없이 오로지 매뉴얼대로 일이 처리되며 돌아가기를 바라는 관료 조직에게 추가로 신경 쓰고 고민해야 할 과제들을 만든다. 특히 최근에는 개별 관료 조직이나 공무원들이 시민들을 판매자가 고객을 대하는 것처럼 친절하게 응대해야 한다는 서비스 정신까지 강조되다보니 ‘민원’을 처리하는 것은 공무원들에게 더욱더 힘들고 그만큼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다.

어느 행정 기관이나 공공 기관을 가더라도 1층에는 ‘민원실’이 있고 행정 기관들은 민원 서비스를 더 친절하고 간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혹자들은 그런 서비스의 친절함과 상세함을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행정이라고 칭송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민원’이라는 말만큼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는 단어는 없다고 생각한다.

1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각자 행정 기관에 민원을 제기한 사례가 있었다. 임금 계산이 잘못되어 체불 임금이 발생하였고 계약 기간 만료와 정규직 전환 등의 문제가 겹쳐서 복잡한 문제로 비화되었다. 담당 부서와 공무원은 100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복잡한 임금 문제와 계약 기간 문제 등을 일일이 찾아보고 응대하느라 다른 일을 전혀 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나는 문제 해결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차라리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기존에 조직되어 있는 노동조합으로 안내하여 해결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으나 오히려 화들짝 놀라며 “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냐”는 항의를 받아야 했다.

결국 이 노동자들은 각자가 개별적으로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하고 거친 항의를 반복하는 ‘악성 민원인’으로 돌변했고 수개월 동안 담당 부서는 이 문제를 두고 씨름하며 노동자들과 싸우다가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못한 채 몇몇 개인들이 알아서 행정 소송을 진행하는 형태로 정리되었다. 행정 조직도 노동자들도 어떤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서로 극심한 감정과 비용의 손해만 입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만약 처음부터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협상을 진행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1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처한 개별적 상황들은 모두 다르지만 조직으로 통합되는 순간 이 개별적 상황들은 자연스레 정리된다. 행정 조직 역시 개인들을 상대하며 일일이 설명을 반복하고 민원 처리를 하는 것보다 노동조합과 협상을 통해 문제를 단순화하고 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결이 가능했을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결사의 자유에 기초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인권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앞선 사례처럼 한국의 정치는 여전히 시민들이 조직화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시민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로 조직화되면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날 것처럼 걱정하지만 사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스스로 결사하고 조직함으로서 개인으로 있는 순간에 발생하는 갈등의 수와 강도를 줄이고 그 비용을 적게 만드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의 말을 빌리자면 ‘민주주의의 엔진’은 ‘갈등’이다. 한 사회의 주요한 갈등들이 확대되고 또 통합되면서 그 갈등들을 조율하고 다루는 과정에서 사회가 발전하고 또 시민성도 더 좋아진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서는 ‘민원’이라는 말이 ‘갈등’과 비슷하게 쓰이지만 그 지향하는 바와 결과가 분명히 다르다. ‘갈등’은 비슷한 문제에 처한 시민들이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그 힘을 통해서 사회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민원’이란 철저하게 개인으로 존재하면서 권력의 공정함과 선의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봉건영주나 왕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선의를 베풀 것을 기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설사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은 시민으로서의 대등한 관계가 아닌 동정심이나 특별한 호의에 기초해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더 많은 동정심을 자아낼 수 있는 특별한 처지의 개인이나 개인으로도 충분히 유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명망이 있는 지식인, 유명인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더 많이 반영되고 별다른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한 다수의 시민들은 소외된다.

물론 개별의 민원으로 존재할 때 보다 큰 규모의 갈등으로 문제가 확대될 때 들어가는 비용이나 부담도 있게 마련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이라면 이 갈등 비용을 국가가 대신 해결해주었다. 그것은 대개 공권력을 동원하여 집단으로 결사하지 못하도록 억누르거나 개인들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민주화가 된 이후로는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 갈등을 다루기 힘들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갈등을 다루는 비용은 곧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비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부분의 행정은 과거의 권위주의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방식은 도외시한다. 여전히 시민들이 ‘갈등의 당사자’가 아니라 ‘민원인’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쏟아지는 민원에 대한 대안으로 찾아낸 것은 시장의 방식이다.

언제부턴가 ‘민원’에 대한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미명 아래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것이 바로 수많은 ‘콜센터’들이다. 그것은 시민들에게 부여받은 책임의 방기이자 민주주의의 시장화와도 같은 것이다. 시민들에게 위임받은 권력이 ‘결사의 자유’를 기반으로 한 갈등의 사회적 조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콜센터 노동자들에게 친절한 서비스와 감정 노동을 강요하며 책임들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 우리 민주주의의 부끄러운 현실은 아닐까?


▲ 정부에서 운영하는 콜센터의 모습. ⓒ연합뉴스

 

원문보러가기

수, 2015/07/29- 19:48
58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