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이 있다고 추정하고 기초생활을 보장해주지 않는 정부
- 이래도 세모녀법이라 할 것인가
박영아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1. 들어가며
2015. 1. 15. 보건복지부는「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하 “기초생활보장법”) 하위법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작년 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결국 통과되고야 만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의 시행을 위한 후속조치의 일환이다(특별한 언급이 없으면 이 글에서 “기초생활보장법”은 2014. 12. 30. 법률 제12933호로 개정된 것을 말한다). 통과 당시 정부는 "세모녀법"의 통과로 부양의무자기준이 완화되고, 탈수급 요인이 제고되며 보장수준이 현실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대대적 홍보를 하였다. 하지만 입법예고된 하위법령은 미약한 수준의 부양의무자기준 완화 외에 탈수급 요인 제고나 보장수준 현실화를 위한 내용이 없고, 심지어 그간 법적 근거 없이 지침으로 시행되어 왔던 ‘추정소득 부과’를 위한 근거를 마련하는 등 법으로 보장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지난 2. 12. 빈곤사회연대, 참여연대, 공감 등 47개 단체의 연대체인 기초법 개악 저지!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민생보위가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보건복지부에 기초생활보장법 하위법령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이하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지침으로 시행하다 법원판결에 의해 위법성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시행령 개정안에 포함시킨 추정소득 부과 문제에 대해 살펴보겠다.
2. 추정소득 부과의 문제: 가공소득 산입하여 수급권 침해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보장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여부 및 급여의 종류 및 액수는 본인과 부양의무자의 소득인정액에 따라 결정된다. 소득인정액은 소득평가액과 재산의 소득환산액을 합친 금액을 말한다. 기초생활보장법 제6조의3제1항에 따르면, 개별가구의 소득평가액은 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과 이전소득을 합한 개별가구의 실제소득에서 장애·질병·양육 등 가구 특성에 따른 지출요인, 근로를 유인하기 위한 요인, 그 밖에 추가적인 지출요인에 해당하는 금액을 감하여 산정한다.
기초생활보장법은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으로 하여금 관할지역에 거주하는 수급권자에 대한 급여를 직권으로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법 제21조제2항), 일반적으로 수급자로 선정되기 위해 수급권자 본인이 자신의 정확한 소득액을 입증해야 한다. 사실상 소득의 부재를 입증해야 하므로 생각만큼 쉽지 않은 작업이다. 예를 들어, 지난달에 소득이 있었다면, 근거자료가 생성되는 시차로 인해 현재 소득이 없다는 점을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수급신청자의 소득ㆍ재산조사는 일차적으로 각종 기관들이 연계되어 있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진다. 2014. 11.말 기준으로 연계되어 있는 기관은 근로복지공단, 한국고용정보원,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사립학교교직원연금관리공단, 국가보훈처, 군인연금관리공단, 병무청, 교통안전공단, 국토교통부, 금융기관, 국세청, 보험개발원, 농림수산식품부, 대법원, 법무부,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관리공단, 별정우체국연합회, 공무원연금관리공단, 한국지역정보개발원 및 안전행정부이다. 이들 기관을 통해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통해 제공되는 정보는 각종 보험급여, 퇴직급여, 금융재산, 자동차, 부동산, 이자수익, 국민연금, 피부양자정보, 보수월액, 일용근로자소득액, 종합소득세, 사업자등록정보를 비롯한 48종의 정보여서 사실상 모든 종류의 소득과 재산에 관한 정보를 망라하고 있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소득을 “추정”해서 “부과”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일까? “추정소득 부과”는 실제로 취업 또는 근로를 하지 않고 있고, 또 사회보장정보시스템 등으로 확인되는 소득이 없다 하더라도, 소득이 있다고 간주하여 수급에서 탈락시키거나 급여를 삭감하는 실무관행을 일컫는 말이다. 법적 근거는 없고, 보건복지부 지침으로 시행되고 있다. 없는 소득을 만들어주는 것이니 고마운 일일 수도 있으나, 실제로 확인된 소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득이 있다고 간주하여 수급자격을 박탈하거나 급여를 삭감하는 것인 만큼 생존권을 침해하는 매우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추정소득 부과”는 주로 수급자가 근로능력이 있는 경우 문제된다. 기초생활보장법은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의 경우 자활에 필요한 사업에 참가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생계급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자활사업 참가’라는 조건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 생계급여를 중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지침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일정한 기준에 따라 산정된 금액의 소득이 있는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생계급여 삭감이나 중지는 물론, 경우에 따라 수급자격까지 박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생계급여뿐만 아니라, 수급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의료급여까지 못 받게 되는 것이다. 법률로는 생계급여만을 중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시행과정에서 “추정소득 부과”라는 편법을 사용하여 수급자격 박탈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담당자가 “수급자격이 박탈될 수 있고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를 못 받게 될 수도 있다”라고 말만 해도, 조건부 수급자는 제시되는 조건이 무엇이든 따를 수밖에 없다. 조건부과의 원래 취지는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자활사업 “참가”를 장려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추정소득 부과라는 무지막지한 칼은 그러한 당초의 제도취지와 무관하게 단순한 압박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아 취업시장에 내몰린 수급자가 취업 후 두 달 만에 지병 악화로 사망한 비극적 사건까지 발생하게 된 것도(http://withgonggam.tistory.com/1515), 근로능력 판정에서부터 취업에 이르기까지 수급자의 진정한 의사가 한 번도 반영되지 않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관할 구청이 근로능력자인 아들에게 추정소득이 있다고 간주하고 아들이 속한 가구에 대해 급여감액처분을 한 사안에서 “이 사건 안내서(보건복지부 지침을 말함)의 추정소득 부과에 관한 부분은 헌법 제37조제2항의 법률유보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아무런 법규적 효력을 갖지 못한다고 할 것이어서 이를 근거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추정소득 부과처분을 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서울행정법원 2014. 2. 20. 선고 2013구합51800 판결). 위 판결은 고등법원에서도 유지되어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가 올해 초 발간한「2015년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안내」에서 추정소득 부과와 관련된 내용이 삭제되지 않았다. 명칭만 “보장기관 확인소득”으로 변경했을 뿐 부과사유나 부과방식은 대동소이 하다. 그리고 지침만으로는 “약”하다고 판단했는지, 이번에 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에도 추정소득 부과를 위한 근거규정을 신설하려 한다.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안 제3조의3에 따르면 법 제6조의3제1항에 따른 소득평가액은 장애인연금법에 따른 기초급여액 등을 차감한 금액에 (i) 수급(권)자의 소득 관련 자료가 없거나 불명확한 경우(제13호가목), 그리고 (ii) 최저임금 등을 고려할 때 소득관련 자료의 신뢰성이 없다고 보장기관이 인정한 경우(제13호나목)에 보장기관이 개별가구의 생활실태 등을 조사하여 추가로 확인한 소득(구체적 산정기준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한다)을 합산해서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현행의 추정소득 부과 관행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취지임을 알 수 있다. 우선, 소득 관련 자료가 없거나 불명확함에도 무엇을 근거로 소득을 확인하겠다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둘째, 확인된 소득이라면 따로 산정기준을 정할 필요가 없음에도, 구체적 ‘산정기준’을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다. 즉, 소득을 “확인”하지 않고, 일정한 기준에 따라 “산정”해서 확인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제13호나목은 더욱 가관이다.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소득을 신고한 경우, 최저임금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최저임금도 지급받지 못한 사실을 수급(권)자의 불이익으로 돌리는 웃지 못 할 발상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위 시행령안이 법률의 명시적 규정에 위배된다는 점에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법 제6조의3은 실제소득에서 장애·질병·양육 등 가구 특성에 따른 지출요인, 근로를 유인하기 위한 요인, 그 밖에 추가적인 지출요인에 해당하는 금액을 감하여 개별가구의 소득평가액을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즉, 소득이 있다고 추정하여 소득평가액에 가산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
3. 나오며
보장기관은 그동안 지침을 근거로 법률상 수급권이 있는 사람에게 추정소득을 부과함으로써 수급자격을 박탈하거나 급여를 삭감해 왔다. 재량의 여지가 없던 처분이 왜곡된 방식으로 시행되면서 사실상 재량처분으로 바뀌게 된 것인데, 보건복지부는 이제 시행령에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위법적 실무관행에 법률적 색깔을 입히려 한다. 하지만 가공소득의 산입은 국민에게 있지도 않는 빵을 먹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소득이 있다고 추정하고 급여를 깎는 것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어느 왕비의 말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