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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소식] 내성천은 지금 ① : 아이들은 언제까지 이 강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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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소식] 내성천은 지금 ① : 아이들은 언제까지 이 강을 찾을 수 있을까?

익명 (미확인) | 수, 2016/01/27- 13:12
9월 어느 토요일 아침, 하늘은 잔뜩 흐리기는 했지만 다행히 예보와는 달리 간밤에 약간의 비를 뿌린 후 더 내릴 기색은 아니어서 강을 걷는 데는 별 무리가 없어보였다. 생태지평 정팀장님은 나를 회룡포 초입 버스정류장에 내려준 후 영주댐 수몰예정지인 상류로 올라갔고, 나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클리어 화일 사진들을 넘겨보았다. 대구의 협동조합인 ‘곰네들’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내성천 탐방을 계획하면서 현장 안내를 맡겼는데, 어린 아이들과 함께 나눌 말을 다시 정리해보았다. 오래지않아서 이들이 탄 버스가 오고 함께 장안사 쪽으로 향했다. 

일행은 어린이와 어른이 반반으로 삼십 여명 되었다. 버스가 회룡교를 지나 산쪽으로 향하자 얼른 강과 마주하고 싶은 아이들이 다시 강과 멀어진다며 차에서 높은 소리로 한마디씩 한다. 주차장에 내려 대형 안내판을 보면서 이날의 일정을 설명하고 회룡포가 한 눈에 들어오는 비룡산 전망대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오르는 내내 조잘대는 것이 영락없는 병아리 떼였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어느 일요일 봄날, 담임선생님과 사모님 그리고 같은 반 아이들 여럿이서 서울 남산을 올랐던 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냥 같이 걷고 둘러앉아 같이 도시락을 먹으며 함께 웃고 하루를 보냈던 그 시간은 내 기억 속의 한 조각 작은 파편이지만 아주 사라지지 않은 채 어느 순간 문득문득 떠오른다. 사실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자연과의 교감이 더 중요하지 굳이 내 설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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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톱이 빈약해지고 풀이 들어온 회룡포 일대 2011.9 / 박용훈

전망대에서 바라본 회룡포는 많이 상해있었다. 생각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마을을 둘러싼 모래톱은 야위고 풀이 강 따라 짙게 올라오며 강 안 여기저기 사람의 때까지 탄 모습을 이렇게 또 마주하니 착잡했다. 아이들을 향해 말을 꺼냈다. “무엇이 보이나요?” “산이요” “하늘이요” “집이요” “논이요” “강은 안보여요?” “강도 있어요” “그래요, 이 모습을 잘 기억해두세요. 우리 땅은 보통 이렇게 같이 있어요” 다시 질문을 했다. “강은 저 가운데 산 뒤편에서부터 와서 이렇게 크게 한 바퀴 돌아 다시 원래 자리까지 가서야 돌아나가요. 그러면 애초부터 저 위에서 짧은 거리로 곧장 가면 금방 내려 갈 텐데 왜 이렇게 돌아서 갈까요?” 사실 나는 돌아가는 느림이 주는 어떤 것들에 대해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이를테면 이렇게 돌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 따위를. 잠깐 침묵이 흐르더니 내 턱밑에서 작은 목소리가 올라온다. “마을을 돌아서 물을 주려고요” 

올라오는 내내 따뜻한 고사리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올랐던 1학년 아이였다.  초롱초롱 맑은 눈망울의 어린이들이 혹시 의외의 답을 말하지는 않을까 잠깐 기대했지만 이렇게 뜻 깊은 답이 나올 줄 몰랐다. “우와, 지금 이 어린이가...” “저 지웅이예요” “아 그렇지, 기웅이가” “지웅이예요, 지 웅 이” “미안하다 지웅아... 지웅이 말대로 강물이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동물들에게 물을 주기 위해서 이렇게 빙 둘러서 돌아가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 저기 저 가운데서 산이 우뚝 솟아서 강에게 생명의 물을 골고루 주기 위해 돌아가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렇게 산들이 연이어 부탁하면서 강이 이렇게 빙 돌아가는 거예요” 물론 내 설명은 과학적으로는 오답이다. 아이들은 고학년이 되면 강이 먼저 흐르고 범람하여 기름진 땅이 생긴 후 마을이 생겼다는 것을 학교에서 배우게 되겠지만, 그때에도 지금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계속 지니면 좋겠다.

내려다보이는 강 가운데로 가기 위하여 곧장 하산하는 비탈길을 택했다. 하산길이 평소보다 조금 미끄러워서 나는 아이들끼리 서로 잡은 손을 놓고 혼자 걷게 하는 한편으로 나보다 앞서 걷지 말 것을 요구했지만 같이 온 사내 형제 두 녀석이 고집 세게 앞서려다가 기어코 한 아이가 젖은 나무계단의 경사진 측면을 밟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때다 싶어 바로 한 두 마디 나무라고 그제야 어린 형제는 앞서가려는 생각을 접는다. 그렇게 길 옆 숲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걸어서 우리는 강변까지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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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를 갖고 노는 아이들 주변으로 풀이 들어섰다 2015. 9 / 박용훈 

모두 모일 때까지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에 아이들은 모래밭에 앉아 모래를 가지고 논다. 위에서 바라본 것보다 물은 맑고 많은 물이 흘렀지만, 강변은 눈에 띄게 거칠고 초라했다. 다리를 건너며 보이는 모래톱은 몇 년 전보다 마을 쪽으로 움츠러들었고, 물과의 경계를 중심으로 빽빽이 자란 풀이 여러 곳에서 아이들 키를 훌쩍 넘었다. 이대로 몇 년 지나면 회룡포에서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모래톱은 지금보다도 훨씬 작아질 것이고, 크게 자란 풀들로 인해 아이들이 강안으로 접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다. 영주댐 환경영향평가서는 만곡부가 발달한 회룡포 구간은 댐 건설 후에도 하상유지가 가능할 것으로 분석하였고, 이후 4대강추진본부나 한국수자원공사는 언론과의 시시비비에서도 늘 같은 주장을 하였지만 회룡포는 더 이상 이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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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 회룡포 /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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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자리 2015. 9. 회룡포 / 박용훈

일행이 모두 모여 조금 더 쉰 후 풀이 낮게 올라온 곳을 찾아 강안으로 들어갔다. 검은등할미새 한 마리가 작은 모래톱에 서서 우리를 환영한다. 조금 큰 모래톱에는 재첩이 만든 작은 구멍들이 천지이다. 아이들 몇몇이 앉더니 재첩 잡는 재미에 자리를 뜰 줄 모른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자 오른쪽 풀숲에서 커다란 백로 한 마리가 솟아올라 아이들 앞에서 원을 그리며 뒤쪽으로 날아간다. 숨을 수 있는 수풀이 강에 생기는 것이 새들에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사람으로부터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천적들도 이 수풀을 이용할 것이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면 새들에게는 절대 불리하다고 볼 수 있다. 조금 떨어진 모래톱에서 흰목물떼새 한 마리가 종종거린다. 저 멀리 앞쪽에서 원앙 두 마리가 슬금슬금 강기슭 나무 뒤쪽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걷는 방향이라 서로 피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저만큼 가다보면 원앙이 나는 것을 볼 수 있을 테니 잘 지켜보라는 말을 해두었다. 갑자기 새 한 마리가 빨랫줄처럼 수면 위로 날아 눈 깜짝할 사이에 왼쪽 산기슭으로 사라진다. 언뜻 몸에 검푸른 빛이 도는 것이 물총새다. 여름 무렵 내성천에서는 수면을 낮게 날아 숲 아래 강기슭 흙 벼랑 쪽으로 향하는 물총새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둥지를 튼 것이다. 강을 걷다보면 날 때의 독특한 울음소리로 인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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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예정지 이산면의 원앙무리 2011. 8. / 박용훈

개구쟁이 티가 나는 한 사내아이가 옆의 친구에게 물총새는 잠수를 해서 물고기를 잡는데 이때 겹으로 된 눈 막이 눈을 보호한다고 설명한다. TV에 좋은 자연다큐프로그램들이 자주 방송되는데다가 낙동강이 흐르는 대구에는 영남자연생태보존회 등이 있어서 전문가들이 아이들과 강을 찾아서 탐방하는 프로그램들이 때때로 진행된다. 아이들 앞에서 어설프게 아는 척하다가는 망신하기 십상이다. 드디어 원앙이 얼추 대각선으로 솟아오르며 비행을 하는데 두 마리가 아니고 네 마리다. 눈 주위에 흰 테가 선명한 것이 이미 번식 철은 지나서 수놈은 아름다운 빛깔을 모두 벗었다. 조금 더 내려가자 다시 또 네 마리가 날아오른다. 모처럼 강을 찾은 아이들이 강에 사는 여러 새들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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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하류 강기슭의 한창 물이 오른 왕버드나무 군락 2015. 5 / 박용훈

강 좌안 따라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기슭에서 강변을 향해 줄지어 서 있는데 그 중에서 손을 뻗으면 가지가 잡히는 큰 왕버드나무 아래서 식생에 대해서 어른들 위주로 잠시 말을 나누었다. 버드나무는 홍수 시 강기슭을 보호하며, 물속으로 뻗은 융처럼 부드럽고 촘촘한 뿌리는 수서곤충 유충 등의 서식처가 되기도 하고, 그 큰 그늘은 한 여름 큰 물고기들이 쉴 수 있는 쉼터가 되기도 하는 하천생태계의 중요한 나무지만, 모래가 빠져나가고 강이 교란되면서 앞으로는 강 안쪽 모래톱에 버드나무들이 자리를 잡아서 언젠가 구담습지 같은 모습의 강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 어떤 생태계가 좋고 나쁘고의 차원이 아니라 한국의 독특한 모래강 생태계와 경관이 사라지는 것의 의미 등을 짧게 나누다가 모래톱으로 올라섰다. 강 걷기를 마친 것이다. 

구름이 낮게 깔린 어떤 매력적인 풍경이 강변 모래밭으로 다시 오도록 유혹하는 바람에 회룡포가 휘돌아 나가는 곳 한 군데에 자리를 잡았다. 이 일대는 작년까지만 해도 강안 모래가 무척 고운 입도를 보였던 곳으로 강 저쪽으로는 나무가 우거지고 이쪽은 깨끗한 모래밭이 펼쳐져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아주 좋은 조건이었는데, 올 여름부터 강 경계 쪽으로 두텁게 풀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난여름 오전 일찍 이곳을 둘러볼 때 한 가족이 모래밭으로 들어선 후 “엄마 강이 풀밭으로 변했어”라며 아이가 놀랐던 적이 있다. 가족은 10여분 정도 걸어보다가 이곳을 떠났다. 강을 따라 풀이 들어오면 전처럼 강에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에 어떤 부담을 느끼게 된다. 요즘은 “친수구역특별법”등 강을 손대고 변형해서 인공의 공간을 만드는 것을 ”친수“라고 말하지만 예전에 “친수”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 때의 자연스런 강에서 사람들은 지금보다 강과 훨씬 편안하고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한국을 방문하여 남한강, 낙동강, 금강을 돌아보고 내성천도 두 번이나 다녀간 베른하르트교수는 2011년 UBC 「태화강 모래의 비밀」과의 인터뷰에서 모래톱이 발달한 한국의 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강은 어떤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강을 향해 다가갈 수 있어야 하고, 물속에서 뛰어놀 수 있어야 하고, 발을 담글 수 있어야 한다. 바로 한국의 모래톱에서처럼 이런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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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봄만 해도 아이들이 놀기 좋았던 하류 회룡포 / 박용훈

우리는 돗자리를 깔고 저마다 싸온 여러 종류의 김밥과 과일들을 먹으며 즐거운 휴식시간을 가졌다. 거의 모두 식사를 마쳤을 즈음 작은 아이들은 이미 모래밭을 뛰어다닌다. 이곳을 떠나기 전 내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남았다. 아이들과 ‘자연공부’를 하는 일이다.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제법 큰 아이들은 이야기를 듣겠다는 태도가 보이지만 저학년 아이들은 장소만 바뀌었을 뿐 모래를 갖고 놀기에 여념이 없다. 훗날 아이들은 모래와 놀았던 시간은 기억해도 내 말은 한 마디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아주 어려서 서울 한강 백사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했던 장면은 드문드문 남아있지만 가족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이 없는 것처럼. 강에 와서 이렇게 모래밭에서 뛰놀고 행복해하는 이 아이들은 언제까지 이 강을 찾을 수 있을까? 

아이들과 모래톱을 걸으면서 야생동물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준비해온 사진들을 보여줬다. 제일 먼저 보여준 것은 수몰예정지 금강마을 앞 강가에서 2010년 여름 촬영한 동물 발자국이 들어간 강의 전경사진이었다. 아이들에게 젖은 모래 때문에 변형된 멧돼지 발자국임을 알려주고, 그런데 멧돼지가 보이느냐고 물었다. 멧돼지가 이 일대에 산다고 생각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비가 많이 와서 이 발자국조차 보이지 않으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물었다. 피카소 그림 같은 조개의 이동흔적과 수달의 발자국, 고라니와 새들의 발자국을 보여주었다. 강변에서 동물의 발자국들을 여러 번 보게 되면, 그 다음에는 이곳이 아닌 다른 유사한 풍경을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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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의 흔적, 이 흔적이 없으면 없는 것일까? 2010년 6월 영주댐 수몰예정지 금강마을 앞 / 박용훈

모래밭에서 수달 배설물에 모여 있거나 주둥이를 모래에 꽂고 수분을 취하는 나비, 모래밭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모양의 메뚜기와 참뜰길앞잡이를 보여주고, 다른 곤충을 잡아먹고 사는 이 곤충이 발견된다는 것의 의미를 물어보았다. 이 강의 터줏대감인 꼬마물떼새와 흰목물떼새를 보여주고, 알과 알이 놓여있는 모래의 모습과 모래와 비슷한 색깔을 띤 새끼들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모두 모래를 그냥 모래로만 생각하고 지나치면 보기가 어려운 것들이고, 눈앞에서 바로 보이지는 않아도 엄연히 이곳에 사는 것들의 모습이다. 어린 산양이 어미와 함께 있는 동영상을 보고서도 서식처를 훼손하면 안 된다는 환경부 스스로 만든 법제도에 어긋나는 설악산케이블카 설치 결정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일까? 나는 이날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사실 또는 진실의 의미 작은 조각 하나를 경험해보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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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몽대 앞에서의 꼬마물떼새. 모래톱에 풀이 들어오고 있다 2015. 6. / 박용훈
 
사진을 보여준 후 물새들이 알을 낳는 시기를 알려주고, 왜 새들이 이 때 알을 낳는지 물어보았다. 산을 내려오면서 고집스럽게 말을 듣지 않으려 했던 형제 중 큰 아이가 대답한다. “그때가 새들이 먹을 것이 많아서요” 나는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눈이 초롱초롱한 아이들로부터 차원 높은 답을 두 번이나 들었다 “우아!... 그래 이 때가 곤충들도 가장 많이 나타날 때지, 이 작은 물새들은 곤충을 가장 좋아하거든, 또 한 가지는 시기를 못 맞춰서 만약 부화 전에 장마가 오면 비가 온 후 강물이 불어서 알들이 모두 떠내려가거든, 그러니까 새들은 알을 언제 낳아야 잘 키울 수 있는지 그 ‘때’를 아는 것이지. 만약 이 ‘때’를 잘 모르는 새가 있다면 새끼를 낳고 가족을 이뤄서 함께 살기가 어렵게 되지. 여러분에게도 때가 있는데, 밥 먹을 때 밥 먹고, 놀 때 놀고, 공부할 때 공부하고...” 물새들이 몸으로 알고 있는 “때”가 사람이 만든 댐에 의해서 종종 무용지물이 되고, 이 작은 물새들이 점점 살기 힘들어진다는 이야기는 아쉽지만 시간이 없어서 이어가지 못했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했던 하루가 끝나고 아이들은 버스를 타고 대구로 향했다.

글과 사진 : 박용훈(초록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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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소식'은 초록사진가이자 생태지평 회원이신 박용훈 님이 사진과 글로 강 소식을 전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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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_사진1 원본크기 _DSC2811s 내성천 중류 예천.jpg

내성천 중류 예천, 모래강은 아이들을 엄마처럼 품었다. 모래강은 다시 흘러야 한다. 박용훈

국토부가 아닌 환경부가 시험담수라는 이름을 내걸고 영주댐 수문을 닫았다. ‘종합진단’을 끼워 넣었지만 거대한 녹조를 재현하고 멸종위기종 서식지를 훼손하는 일이다. 4대강 보를 ‘자연성 회복’ 방향으로 열어 조사하는 것과는 정반대 행보였다. ‘4대강 살리기는 생명 살리기’라고 홍보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사라진 내성천과 영주댐 이야기, 지금 내성천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떠올려 글을 쓰기 위해 숨을 크게 돌려야 했다. 벌써 아마득한 시간이 되어버린 그때를 찾아가려면, 사라진 것들을 하나하나 불러보려면…
내성천이라는 모래집이 있었다 
내성천은 백두대간 고산준령에서 봉화, 영주, 예천, 문경 쪽 영남지역으로 쏟아낸 물길들이 대간에서 뻗은 문수지맥과 만나 모여 흐르는 강이다. 대간 아래로 중생대에 관입한 화강암층이 오랜 세월 풍화하여 봉화-영주 분지를 만들었고, 물길들이 이곳의 모래를 끌어다 내성천에 부려놓아 우리나라 최고의 모래강으로 만들었다. 강과 산맥이 함께 흐르며 굽이마다 펼쳐놓은 하얀 모래밭과 그 여백이 조화를 이뤄 한국 최고의 산수라는 평을 받는다. 명승 110곳 가운데 4곳이 내성천 유역에 있을 정도로 강의 경관이 매우 빼어났다. 명승 제16호인 회룡포와 제19호인 선몽대일원이 내성천 하류에 있으며, 하류의 하곡 폭은 평균 700미터에 이른다.
2009년 여름, 4대강 사업 종합계획이 나온 뒤 ‘생태지평’을 따라 낙동강 보 예정지로 가다가 낙동강 구담습지와 멀지 않은 예천 오천교에서 이 강을 처음 보았다. 비가 왔는지 물이 조금 불었고, 모래가 가득했다. 그해 여름휴가 때 낙동강을 기록하는 일정에 내성천을 넣었다. 그 뒤 내 좌표를 다시 설정하는데 이 강의 존재는 매우 중요했다. 4대강 사업이 시작됐고, 강 이곳저곳에서 ‘속전속결’이란 표현에 걸맞은 ‘전쟁터’ 같은 죽음의 모습들을 마주해야 했다. 그러다 찾은 백두대간 아래 평은의 마을들은 여느 산골 고향마을이었고, 그곳을 흐르는 강은 그저 평화롭고 잔잔했다. 어디나 넓고 판판한 강은 햇살에 반짝이며 은빛 여울로 흘렀다. 
그곳의 모래는 강에 들어가 찬찬히 보면 알갱이들이 쉬지 않고 흘러갔다. 강물은 바닥의 두툼한 모래 덕에 그 빠름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모래 위로 자신의 모습을 일부만 보여준 채 흘러갔다. 한여름 밤 내성천 강변에서 반딧불이가 생명의 춤을 추듯, 강 안을 걷다 보면 무언가 반가움에 몸을 비비는 듯 차가운 물길이 발을 감싸곤 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모래 속과 모래 위에서 물은 모였다 갈라지고 다시 모이면서 바다로 향했다. 생각해보면, 흐르는 것들은 그것을 바람이라 하든 시간이라 하든, 또는 비라 하든 강이라 말하든 모두 섭리의 발현이다. 작은 모래알 하나도 지구의 다른 시간들이 서로 만나야 할 곳에서 만나 모래가 되어 그곳에 다다른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다가 무심히 내려놓은 곳에 상 없는 상을 새기다가 또 다른 강물을 만나 바다로 향했다. 그곳에 작은 언덕과 골을 이뤘다가 흩어지고, 다시 언덕이 생기고 골이 생겼다. 모든 생명이 다 인연을 따르는 것이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으며, 너무 얕지도 깊지도 않은 곳을 따라, 수줍은 듯 모래로 집을 삼는 흰수마자는 내성천이라는 모래집에 들어 뼈와 살과 비늘을 받은 내성천의 귀한 아이였다.
아름다운 지구 정원이 온갖 삶을 품었다 
비가 와서 큰물이 지면 수달과 고라니, 삵이 다녀간 모래들도 큰물을 따라 바다로 떠났다. 늘 그 자리를 지켜온 모래톱은 사실 그 자리를 지켜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래톱이었다. 만약 늘 그 자리를 지켜왔다면 풀과 나무가 자라 땅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래톱이 모래톱으로 있어야 하는 소명은 기실 다른 데 있었다. 작은 물새들은 이른 봄부터 강변에 맑고 높은 소리를 남기다가 어느 순간부터 도통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알락할미새들이 쌍쌍으로 강물 위에서 날렵한 곡예를 뽐내지만, 그것은 너무 조용해진 강변의 지루함을 깨려는 작은 마법이거나 대를 잇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물새들을 응원하기 위한 장엄한 화음임에 틀림없다. 흰목물떼새가 흰 모래밭 위에 가장 먼저 알을 낳아 품으면 시간을 두고 꼬마물떼새가 슬금슬금 자리를 잡는다. 강에 붙은 산에서는 황조롱이나 수리부엉이가 모래톱을 주시하고, 한낮 달궈진 모래밭에서 물새들은 서서 그늘을 만들거나 강물을 몸에 적신 뒤 살금살금 돌아와 알의 체온을 낮춰준다. 강에서 장마기 홍수는 큰 변곡점이다. 때가 되면 강이 몸을 부풀려서 떠나야 할 것들을 데리고 떠나는데, 물새들은 그 시간이 되기 전 서둘러 새끼를 키워낸다. 
큰물이 지나간 자리, 강과 연결된 작은 물웅덩이에는 치어들이 줄지어 오가고, 새 모래톱에는 낯익은 흔적들이 다시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사람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농사를 지어왔듯이, 그 강에서는 늘 그렇게 강물이 흘렀고, 흰수마자가 살아왔으며, 흰목물떼새가 해마다 온 힘을 다해 알을 품어왔다. 그 강에 들어서는 것은 수십억 년 동안 온갖 생명의 기운이 함께 빚어낸 아름다운 지구 정원의 문 하나를 여는 것이어서, 그것을 단박에 알아보는 아이들은 탄성을 지르며 강으로 뛰어가곤 했다. 
곶자왈에서 아이들이 내성천을 찾았다. 처음 강의 모래를 밟아본 아이들 표정에는 신기함이 가득했다. 몇 명의 어른과 10여 명의 아이들은 모래밭을 걷고, 모래 위에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함께 강을 건너고, 흠뻑 소나기를 맞고, 편을 나눠 꼬리잡기를 하고, 물 위에 둥둥 떠서 팔다리를 뻗은 채 눈을 감고 강물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내성천은 ‘아이들의 강’이 되었다. 그해 가을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수사님 한 분이 내성천을 찾았다. 비를 맞으면서도 동영상으로 강을 여러 날 기록한 그는 이 땅에서 피어날 여러 피카소의 싹을 영주댐이 없앨 것이라면서 탄식했다. 지난여름 회룡포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아픈 상처를 드러냈다. 아이들은 여전히 찾아왔고, 내성천은 품에 안았다. 바다 같던 그 품이 볼품없이 작아지고 있다. 
적당한 봄날 산마루에 서서 물결치는 연록의 잎들을 보면서 교과서에 실렸던 <신록예찬>을 떠올렸던 적이 있다. 그리고 강변에도 이런 계절이 있다는 것을 그 강에서 처음 알았다. 덩치가 가장 큰 왕버들은 작은 버드나무들에게 먼저 오는 봄을 양보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한꺼번에 연록의 빛을 뿜어냈다. 이에 화답하듯 강을 따라 이어진 산 여기저기에서 산벚꽃이 일제히 분홍빛을 뽐냈다. 볕 좋은 봄날에 강이 굽이굽이 펼치는 한 편의 카드섹션이었다. 평은과 이산에는 굵은 왕버들이 큰 군락을 이뤘었는데, 이산이 물새들에게는 좀 더 아늑했던지 봄이면 원앙을 비롯한 여러 야생오리들이 모여 느긋하게 봄볕을 즐겼고, 저녁이면 아름드리 20여 그루의 왕버들 가지마다 멧비둘기들이 수없이 날아와 앉았다. 늦봄, 산 절벽 밑 물가에 핀 하얀 찔레꽃은 그냥 예쁘고 소박할 뿐이어서 장사익이 부른 것처럼 “너무 슬프고 서러워서 목 놓아 울어야 하는” 그런 하얀 꽃은 결코 아니었다. 한여름이면 왕버들 그늘 아래로 물고기가 모여들었고, 맞은편 절벽 숲의 나무들에는 백로와 왜가리들이 적당히 자리 잡은 채 해를 산 뒤로 보냈다. 강을 따라 넓고 긴 모래밭과 너무 일찍 베어진 왕버들 군락 밑으로 70년 세월의 녹물이 교각에 밴 송리원철교가 있었고, 그 아래로 금강마을 사람들이 불로산이라 부른 크고 깊은 계곡이 별유천지로 펼쳐졌다. 계곡 숲 여기저기에서 작은 산새들의 고운 울림이 얕고 맑게 흐르는 강물 위를 타고 퍼져나갔고, 계곡의 침입자를 끝까지 주시하는 물떼새들과 달리 할미새들은 호기심 반 무관심 반으로 사람을 대했다. 수달은 곳곳에 흔적을 남겼는데, 그 계곡을 여러 번 찾았어도 먹황새가 그곳에서 해마다 겨울을 나는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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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 중류 예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흰수마자, 영주댐 건설로 자취를 감췄다.  박용훈
8년치 모래를 파낸 뒤 강은 숨을 멈췄다 
어느 날 많은 포클레인이 댐 상류의 평화로웠던 강으로 들어왔다. 흡사 4대강 준설현장을 다시 보는 듯했다. 영주시는 2012년 한 해에만 댐 상류에서 내려오는 8년치 양의 모래를 파냈다. 모래는 돈이 되는 골재였을 뿐, 환경부조차도 흰수마자의 서식처로 여기지 않은 듯했다. 4년 동안 모래를 파낸 뒤 2013년에는 다묵장어가 보이지 않았고, 2014년에는 흰수마자가 확인되지 않았다. 불로산 계곡에서 사람들의 발길을 멈춰 세웠던, 큰 바위를 뿌리로 감싼 왕버드나무가 어느 날 베어져 강물에 던져졌다. 그해 겨울 계곡에서는 요란한 전기톱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영주댐에서 상류로 20킬로미터 일대 강 양쪽 산의 나무들이 베어졌다. 평은과 이산의 왕버들도 모두 사라졌다. 이십여 마리씩 한가롭게 떠 있던 원앙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400년 된 느티나무가 천수를 누리지 못했고, 무엇보다 영남의 전통문화를 잘 간직해온 400년 된 마을들이 전통을 살리자는 21세기 초입에 사라졌으며, 531세대가 고향땅을 등져야 했다. 귀한 손님인 먹황새는 해마다 겨울을 보내던 계곡을 나와 강 여기저기를 떠돌았는데, 지난해 겨울에는 이 새를 보았노라고 반갑게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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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 상류 영주 금강마을 앞, 내성천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마음을 모았다.  박용훈

댐 하류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극심한 골재 채취와 댐 공사 뒤 모래가 하류로 흘러간 만큼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내성천은 점점 빈약해졌으며, 풀과 나무가 뿌리를 내리면서 모래톱들은 더 이상 바다를 향해 나아가지 못했다. 여뀌에 이어 달뿌리풀과 버드나무가 모래톱을 차지할수록 작은 물새들의 번식지는 줄어들었다. 넓고 판판하던 물길이 좁아지고 빨라진 채 깊어졌으며, 강바닥은 더욱 거칠어졌다. 고운 모래가 급속히 줄어들었고, 2017년까지 영주댐 사후환경영향조사에서 180개체 넘게 나왔던 흰수마자가 2018년도에는 단 9개체만 확인됐다. 내성천 모든 구간에서 흰수마자가 멸종의 벼랑으로 내몰리는 것이 확인되자 환경부는 서식처 복원은 외면한 채 치어 방류에 급급했다. 한편 2016년도부터 내성천 흰목물떼새에 대한 시민공동조사가 이어졌고, 해마다 이십 몇 개씩 둥지가 확인되면서 내성천이 국내 최고 서식지임을 확인했는데, 그 가운데 댐 상류의 서식밀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흰수마자나 흰목물떼새 모두 서식지 보전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환경부는 오히려 지난 9월에 영주댐 시험담수를 강행했다. 
정부는 영주댐의 목적은 ‘갈수기에 낙동강에 물을 흘려보내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이는 백두대간의 물을 받아 두툼한 모래층에 저장하면서 낙동강에 보내온 내성천이 잘 해오던 일이었다. 2016년 1차 시험담수를 했으나 녹조가 심해 2018년 3월, 김은경 전 장관 재임 시절에 전량 방류했다. 그 뒤 1년 반 동안 아무 일도 안 하던 환경부는 국토부에서 넘어온 수자원공사가 발전기 부하시험 같은 이유를 내세워 시험담수를 요청하자 댐의 철거·존치에 대한 처리방안 마련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확보하는 종합진단을 2년 동안 함께 하겠다면서 허가했다. 댐 착공 뒤 10년, 강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고, 흰수마자는 절멸 직전인 긴박한 때에 2중대 소리를 듣던 환경부가 이제 하천유지용수 공급용 댐이라는 새로운 댐의 시대를 열며 무대 전면에 나서는 모양새다.
몇 해 전 대구의 어린이들과 함께 회룡포 전망대에 오른 적이 있다. 강이 곧장 가면 편할 것을 왜 이렇게 한 바퀴 빙 돌아가느냐고 물었는데, 아직 고사리 손인 지웅이가 “마을을 돌아서 물을 주려고요”라고 말했다. 아이들만 할 수 있는 답이었다. 지웅이는 강에 도착하자 모래성을 쌓고 풀잎 물고기를 그 안에 띄워 놀았다. 흰수마자와 흰목물떼새를 위해, 그리고 지웅이를 위해 내성천은 예전처럼 흘러야 한다. 뒤늦은 면피성 조사가 아니라, 복원과 보전을 위한 결단이 필요한 때다. 그 결단에 지금 당신의 응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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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 268호 '강'특별호 '우리 땅 우리 강의 말'에 실린 글을 옮겨 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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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소식>은 초록사진가이자 생태지평 운영위원인 박용훈 님이 사진과 글로 강이 전하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필자 소개> 
박용훈 – ‘초록사진가’라는 이름으로 미처 알지 못한 아름다운 강, 우리가 잃어버린 강, 위기에 처한 우리의 강들을 사진에 담아 세상에 알리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내성천의 아름다움과 상처를 기록해왔다. 
화, 2020/03/24-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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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기념물 원앙의 서식지이자 용암으로 인해 형성된 독특한 주상절리대가 지반을 이뤄 한반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비경이 잠자고 있는 곳.”

 이런 설명을 들었을 때 일반적으로는 생태계 보호를 위해서는 물론 미래 세대를 위해 해당 지역이 엄정하게 보전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상식적으로도 이런 지역을 훼손한다는 것은 인간 외의 뭇 생명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뿐 아니라 앞으로 한반도에서 살아가야할 숱한 이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상식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식은 유감스럽게도 해군과 제주도청에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해군과 제주도가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부근 강정천 일대에서 진행 중인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로 인해 천연기념물 원앙이 크게 줄어들고, 주상절리의 붕괴가 가속화되는 등 심각한 생태계 교란과 환경 훼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불필요한 도로를 만들기 위한 무리한 공사가 벌어지는 탓에 경관 훼손은 물론 주민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현재 제주도가 제주민군복합형 관광미항에서 일주도로까지 이어지는 4차선 도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3월 3~6일 사이 주민들과 함께 강정천과 서귀포시 등을 살펴본 결과 주민들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강정천 내의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물가에서 편안히 먹이활동을 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어야 했을 원앙들이 강정천 외부로 쫓겨난 상태였고, 강정천 내 곳곳의 주상절리에서 새로 떨어져 나온 바위들이 목격됐습니다. 모두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가 아니었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고 여겨질 만한 현상들이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327호인 원앙은 강정천에서 대체로 가을, 겨울을 나며 일부 개체는 텃새화돼 강정천에서 서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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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4일 강정천에서 관찰된 원앙의 모습. 강정천을지키는사람들 제공.
 강정마을 주민들과 조류 전문가에 따르면 주로 가을, 겨울철 강정천 일대에서 서식하는 원앙의 수는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가 본격화된 뒤 예년의 1,500여 마리에서 3분의 1가량인 500마리 미만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주민들은 소음과 진동이 심한 시기에는 100마리 정도로 급감하기도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위협을 느낀 원앙들이 원래의 서식지인 강정천을 떠나 인근 지역으로 흩어졌을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강정천은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 식수를 제공하는 상수원보호구역이 있는 곳인 동시에 일부 농로를 제외하면 인적이 드문 구간이 대부분이어서 원앙을 포함한 야생동물들이 사람의 눈을 피해 자유롭게 활동을 하고, 휴식을 취할 공간이 다수 존재하는 하천이었습니다.

 이처럼 강정천 주변으로 쫓겨난 원앙들 중 일부는 강정천 대신 서귀포의 대표적 관광지 중 하나인 천지연폭포 등을 휴식처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실제 지난 4일 강정마을 주민들과 함께 방문한 천지연폭포에서는 약 150마리의 원앙이 관광객들의 접근이 어려운 물가 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관찰됐습니다. 물론 강정천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천지연 역시 원앙의 서식지이긴 합니다. 하지만 강정천이 도로 공사 이전처럼 원앙들에게 안전하게 느껴지는 상태였다면 다수의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시간대에 원앙들이 천지연에 모여있을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반대로 강정천 내에서 원앙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주민, 전문가들은 앞으로 계속해서 도로 공사가 진행되고, 교각이 완성돼 차량 통행량이 많아지면 원앙의 생존에 더욱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습니다.
 앞서 2020년 1월에는 집단 폐사한 원앙 13마리가 강정천에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조류보호협회 제주도지회는 당시 강정천 중상류에서 13마리의 원앙 사체를 발견했고, 날개가 부러진 원앙 1마리를 구조한 바 있습니다. 원앙 몸속에서 발견된 산탄총 총알로 인해 누군가 의도적으로 원앙을 향해 총을 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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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제주 강정천에서 발견된 원앙 사체. 강정천을지키는사람들 제공.
 강정천에서 쫓겨난 원앙들이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로 인한 생태계 교란의 대표적인 사례라면 주상절리 붕괴는 주민들의 안전마저 위협하는 사안이 되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실제 주민들과 함께 강정천 내를 살펴본 결과 기존에 자연스럽게 붕괴된 암반들과는 색상 등에서 확연히 구분되는 붕괴 현장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급격히 식으면서 만들어지는 돌기둥 모양의 지형으로 강정천 일대에는 수십m 높이의 주상절리가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습니다. 전문가들도 도로 공사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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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강정천 내 주상절리 일부가 붕괴된 모습. 강정천을지키는사람들 제공.

 이처럼 주상절리 붕괴가 광범위하게 확인된 뒤 주민들은 자체 조사단을 꾸려 강정천 내 주상절리 전체를 조사하기 시작한 상태입니다. 강정천 주변의 농지나 도로 등이 주상절리 위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아 주민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해군기지 진입도로로 인한 환경 훼손은 원앙을 내쫓고, 주상절리가 붕괴되는 등의 현상뿐만이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지역은 제주에서 두 번째로 넓은 상수원보호구역인데 공사가 시작된 후 오염물질이 강으로 흘러든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과 지난 2월에는 급기야 가정집 수돗물에서 깔따구 유충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깔따구는 매우 오염된 물인 4급수에 서식하는 생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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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강정천 상수원보호구역에서 실시 중인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 모습. 강정천을지키는사람들 제공.

 이처럼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가 주변 생태계와 주민 안전을 위협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은 공사 중지 가처분 소송을 법원에 제기해놓은 상태입니다. 특히 주민들은 기존 도로를 활용해도 되는데 불필요한 도로를 만들면서 이처럼 돌이키기 어려운 환경 훼손을 해군과 제주도가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해당지역은 문화재가 다수 출토되는 지역으로 현장을 찾은 날도 문화재 발굴팀의 현장 조사가 실시되었습니다. 공사 구역 내 다수 지역에서 문화재 발굴이 이미 이뤄진 상태이기도 합니다. 주민들은 또 공사가 시작된 이후 큰 비가 내릴 때는 기존에 없었던 수해가 발생하고 있고, 홍수로 인해 천연기념물인 500년 된 담팔수가 부러지기도 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해군과 제주도는 불필요한 공사를 중단하고, 주민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강정마을 주민, 환경단체 활동가 등이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 내용처럼 “공사장 주변 주상절리가 계속 무너지는 것이 공사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면 일단 공사를 중지하고, 붕괴 현상을 조사해야 마땅하”며 “공사를 얼른 진행하고 완공하는 것이 피해를 중단시키는 것이라는 제주도의 주장은 위험하고 무책임”하기 때문입니다.
화, 2021/04/2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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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4일 방문했던 경기 양평의 한 동물복지인증 산란계 농장은 최근 수 년 간 방문했던 동물 관련 취재현장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현장이었습니다. 꼬불꼬불한 농로를 지나 도착한 이 산란계 농장에서 처음 마주친 것은 치잎을 막고서 비켜주지 않는 닭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사과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있거나 뭔가 먹이를 찾거나, 흙으로 깃털을 깔끔하게 다듬고 있는 닭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닭들이 차바퀴에 깔릴까봐 선뜻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자 이 농장을 운영하고 계신 분이 전진하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천천히 가시면 알아서들 비켜요.” 그 말씀대로 액셀을 밟지 않은 상태에서 천천히 앞으로 가자 닭들은 귀찮다는 듯이 천천히 일어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혹시 밟히는 닭이 있을까 신경이 쓰여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닭들이 비키는지를 살펴봤는데 알아서들 비키는 모습에 괜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날 제가 방문했던 농장에서 살고 있는 약 7,500마리의 닭들은 국내에서 사육 중인 산란계나 육계 1억5747만 마리 가운데 어쩌면 상위 0.1%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닭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농장보다 더 좋은 사육환경을 마련해 놓으신 곳도 있을 수 있고, 어차피 4년이 지나면 다른 농장에 보내져 도축될 운명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농장에 있는 기간 동안만큼은 본성을 인정받으면서 불필요한 고통을 겪지 않고 지낸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흰 수탉들과 갈색의 암탉들이 초록색의 작은 사과 열매가 달린 나무 그늘에서 풀을 뜯고, 모래 목욕을 하는 모습은 “여기가 닭들의 천국인가”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하는 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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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의 한 동물복지인증 산란계 농장의 모습

    이 농장에서는 모두 3개의 계사에서 2,500여 마리씩의 닭을 기르고 있는데 낮에는 사과나무 과수원과 주변 야산에 방목했다가 밤에는 평사 형태의 계사로 들어가서 잠을 자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닭들은 평사에서 주는 사료를 먹기도 하지만 사과나무 아래쪽에 열린 열매를 먹기도 하고,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거나 곤충, 개구리 등을 잡아먹으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농장주분의 설명으로는 사료 외에 다른 먹이를 먹도록 하는 것은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사료만 듬뿍 먹어야 닭들의 산란율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애초에 동물복지인증 농장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다른 농장과는 달리 일정 부분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긴 합니다. 특히 정부에서 인증제도를 마련하고, 대형 마트 등에 판로가 개척되기 전까지는 다른 농장에서 생산된 계란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농장을 운영하는 분도 동물복지를 고려하면서 더 좋은 품질의 계란을 생산하지만 손해만 볼뿐이었던 시기가 꽤나 길었다고 합니다.
 이 농장의 평사는 3단, 4단으로 케이지가 쌓여있는 공장식 축산 방식의 농장과 달리 평평한 바닥 형태에 닭들이 자유롭게 올라갈 수 있는 횃대가 있는 구조였습니다. 평사 안에 있는 닭들은 본능대로 횃대 위로 올라가 서있기도 하고, 잠을 잘 수도 있는 것입니다. 동물복지농장 인증을 받으려면 케이지 대신 평사나 방사 사육을 해야 하며 1마리당 15㎝의 횃대를 제공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산란계 농장이 1㎡당 18마리를 기르는 데 비해 이 농장의 1㎡당 사육 수는 6마리에 불과했습니다. 
 면적도 차이가 크지만 다른 농장과의 무엇보다 크게 구별되는 점은 방사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다만 닭들이 알을 낳는 공간은 계사 안이 되도록 훈련을 시키고는 있었습니다. 알을 자유롭게 낳도록 했을 때는 과수원과 야산 곳곳의 맘에 드는 장소에서 알을 낳는 바람에 계란 수거가 불가능했던 탓이었습니다.
 이 농장과 반대로 전형적인 공장식 축산 방식의 산란계 농장은 ‘닭들의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공간이었습니다. 2019년 9월 방문했던 경기 남부의 한 산란계 농장은 농장이라는 말보다는 닭이라는 ‘계란 생산기계’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공장 같은 곳이었습니다. 실제 계사에 들어가기 전 외부에서 본 모습은 커다란 산업단지 내의 공장으로 보이는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계사 안에 들어가자 먼지와 냄새 때문에 제대로 숨을 쉬기도 어려운 좁은 공간 안에 닭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케이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먹이와 물 급여 등이 자동화된 농장이었지만 좁은 공간에서 많은 닭을 기르면서 쌓인 배설물의 냄새와 닭들이 만들어내는 먼지를 없애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몸을 움직이기도 쉽지 않은 케이지 안에 들어있는 닭들의 모습을 보며 연상된 것은 바로 ‘아우슈비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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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부의 한 공장식축산 방식 산란계 농장의 모습

 공장식축산 방식의 산란계 농장에서 닭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이렇게 평생을 좁은 공간에 갇혀서 알만 낳다가 도축당할 운명이라는 것뿐 아니라 해충 피해와 강제 환우를 들 수 있습니다. 해충 피해, 특히 진드기와 이는 닭들이 거의 매일같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안겨주는 존재입니다. 닭의 피를 빨아먹는 진드기와 이 등이 상시적으로 좁은 케이지 안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방문했던 공장식 축산 방식의 산란계 농장에서도 케이지의 금속 부분에 숱한 진드기가 달라붙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야행성인 진드기들은 닭들이 휴식을 취하는 밤에 활동하면서 닭피를 빨아먹습니다. 야생에서라면 모래목욕으로 진드기들을 떼어내겠지만 움직이기도 힘든 케이지 안에서 닭들은 진드기로 인한 고통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해충에 물려 가렵고, 따가운데 피할 길조차 없다면 그 고통이 얼마나 클까요. 앞서의 사과나무 과수원에 사는 닭들이나 다른 동물복지인증 농장에 사는 닭들은 모래목욕으로 진드기를 털어낼 수 있지만 공장식축산 농장에선 모래목욕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겠지요.
 이처럼 좁은 케이지 안에 존재하는 진드기들은 2017년 논란이 됐던 살충제 계란처럼 닭고기나 계란을 오염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닭을 도축하면서 계사를 비울 때 진드기들을 없애기 위해 살충제를 뿌리는데 계사 안에 잔류해 있던 살충제에 산란계들이 노출되면서 고기나 계란에도 살충제 성분이 잔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살충제를 뿌려도 진드기들의 번식력이 매우 강한 탓에 다른 계사에 남아있던 진드기가 번지는 것을 막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로 인해 축산업 관계자들 중에는 “공장식 축산을 생산된 계란은 살충제 때문에 안 먹는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좁고 더러운 환경에서 살다보니 닭이 병에 걸릴 위험도 높기 때문에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는 항생제를 다량으로 투여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아직 병이 돌고 있는 것도 아닌 데도 예방적 차원에서 항생제를 투여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닭들에게 큰 고통을 주는 또다른 요소는 강제환우, 즉 인위적인 털갈기를 유도하는 것과 부리 다듬기 등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즉 알 낳는 기계로서의 산란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들입니다. 강제 환우는 닭이 알을 많이 생산하도록 계사 안의 불을 끄고, 물을 주지 않으면서 깃털갈이를 하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닭은 알에서 깨어난 후 보통 130일 뒤면 산란이 가능해지는데 1년 정도가 지나면 산란률이 낮아집니다. 이때 일반 농장의 닭들은 산란률이 80%에서 50~60%로 낮아지게 되는데 강제환우를 하면 다시 산란률이 회복됩니다. 일반 농장에서는 약 2년 동안 최대 3번까지 강제환우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강제환우를 하는 동안 닭들은 극도의 목마름과 공포에 시달리게 됩니다.
 부리 다듬기는 사료를 골라먹지 못하도록, 또 다른 닭을 쪼지 못하도록 부리의 일부를 지지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 입장에서는 알을 더 많이, 빨리 생산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닭 입장에서 강제 환우와 부리 지지기는 이유 없이 당하는 고문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이렇게 상반되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닭들과 우리는 거의 매일 같이 간접적으로 연결되곤 합니다. 우리의 식생활 중에서도 계란은 바로 닭들의 고통과 직결되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크게 동물복지인증 농장과 공장식축산 농장으로 구분되는 두 사육환경에서 생산되는 계란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에서 파는 계란을 살펴보면 여러 개의 숫자와 알파벳이 써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숫자와 알파벳을 보면 그 계란이 어떤 농장에서 어떻게 사육된 닭에게서 나온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앞자리의 숫자 네 개는 산란일자입니다. 0630이면 6월 30일에 낳은 계란이라는 의미입니다. 날짜 뒤에 이어지는 알파벳은 각 농장의 생산자 고유번호입니다. 맨 마지막에는  1~4 중 하나의 숫자가 쓰여있는데 이 숫자가 바로 사육환경을 의미한다. 숫자 ‘1’은 방사 방식에서 생산된 계란이라는 의미다. 경향신문 취재진이 방문한 경기 연천 서연농장 같은 동물복지농장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마트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숫자 ‘2’는 평사에서 길렀다는 의미로 방사를 하지는 않지만 3이나 4에 비하면 비교적 닭의 복지를 존중한 환경에서 사육하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숫자 ‘3’은 기존보다는 개선된 케이지, 즉 케이지 사육이긴 하지만 마리당 면적을 넓힌 환경임을 의미하고, 4는 기존 케이지를 의미합니다.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계란 중에‘3’이 새겨진 계란은 거의 찾아보기 힘듦니다. 마트나 슈퍼마켓에서 파는 계란의 대부분은 숫자 ‘4’가 새겨진 계란, 즉 공장식 축산 방식의 좁은 케이지 환경에서 생산된 것입니다.
 동물복지를 표방한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이들은 닭들이 평생을 스트레스만 받으며 낳은 계란과 본성대로 살 수 있도록 존중받으며 낳은 계란은 영양적으로도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제가 찾아갔던 동물복지인증 농장의 농장주는 “동물복지 계란은 포함된 콜레스테롤도 일반 계란과 수치 차이가 크고, 영양 성분도 달라요”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모든 이들이 동물복지 계란을 사먹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공장식축산 농장의 계란보다 비쌀 뿐 아니라 아직까진 생산량 자체가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2020년 현재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산란계 농장은 모두 168곳뿐입니다.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체 산란계 농장 936곳의 17.9%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마릿수로는 전체 7,270만마리 중 3.93%에 불과한 286만마리 정도가 동물복지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습니다. 산란계 100마리 중 4마리만이 동물복지인증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는 것이지요. 육계 농장 가운데 동물복지인증 농장은 전체 1597곳의 6.1%가량인 97곳입니다. 마릿수로는 9,483만 마리 중 7.59% 정도인 720만마리가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습니다.
 최근 계란 가격이 폭등한 것은 역설적으로 동물복지 계란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게 하는 원인이 되면서 동물복지농장들에게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공장식축산 방식으로 생산된 일반 계란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동물복지 계란과의 가격 차이가 줄어들자 ‘이왕 비싸게 주고 먹는 거 동물복지 계란을 먹자’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입니다. 
 동물복지에 대한 생각은, 특히 농장동물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어차피 도축당할 운명인 닭에게까지 복지가 필요하냐고 묻는 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동물복지 방식으로 계란이나 닭고기를 생산하면 너무 비싸지고, 이는 소비자들의 권익을 해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닭에게 필요 이상의 고통을 주고, 사람에게도 살충제 위험을 안겨주는 공장식축산 농장은 동물복지를 훼손할뿐 아니라 지속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에서 진열대에 전시된 계란을 고르실 때 가격과 품질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그 계란을 낳은 닭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아직 국내의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사육 중인 1억 5,747만 마리의 닭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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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기자의 사람과 자연>은 필자가 경향신문 지면을 통해 소개한 사람과 동물, 환경에 대한 이야기와 지면에 다 담지 못했지만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습니다.  

<필자소개> 
김기범 생태지평연구소 운영위원 / 경향신문사 기자
2006년 경향신문 입사했고, 2013년 환경부를 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동물면 담당을 맡고 있으며 환경전문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2020년 3월부터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수, 2021/06/30-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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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경북 내성천 상류의 영주댐에서는 초당 3㎥의 물을 하류로 흘려보내는 방류가 시작됐습니다. 환경부는 내년 1월 31일 오후 5시까지 초당 3.6㎥에서 10㎥ 범위 내로 방류
를 실시할 계획입니다. 환경부는 당초 10월 15일부터 초당 50㎥의 물을 영주댐에서 하류로 흘려보낼 계획이었지만 영주 주민 일부가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무산된 바 있습니다.
 영주 내 14개 단체가 참여한 영주댐수호추진위원회, 영주시청 등은 영주댐에서 방류가 실시되면 농업용수가 부족해진다는 이유를 들어 지난달 14일부터 영주댐 하류에 천막과 컨테이너 등을 설치해 농성을 벌였습니다. 이들은 환경부의 영주댐 방류가 댐 철거를 위한 사전조치라면서 지자체와 지역민 동의 없는 댐 방류를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영주시는 댐과 연계한 수변 관광, 레포츠 사업 등이 방류로 인해 어려워질 수 있다며 방류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사실 영주댐에 가둬놓은 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수변 관광과 레포츠에 이용하겠다는 주민, 영주시청의 주장은 사실 식품 안전과 내성천에 관광을 온 시민들의 안전을 도외시한 주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녹조에 찌든 영주댐 상류의 물을 농업과 수변 관광에 이용하는 것은 인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4년 전인 2016년 환경부 산하 연구기관들은 녹조의 주원인인 남조류가 발생시키는 독성물질이 어류에 축적될 수 있으며 어류를 섭취한 사람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해당 독성물질이 농작물에 축적되는 것으로 인한 위험성도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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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대부분 지역의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웃돌면서 전국적으로 폭염 특보가 발효된 2019년 8월 8일 경북 영주시 영주댐 부근에 짙은 녹조가 끼어 있다.
 당시 국립환경과학원, 화학물질안전원 연구진이 발표한 ‘마이크로시스틴의 어류 내 축적성 및 인체 위해성 평가: 국내 저수지 사례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4대강이나 저수지 등에 발생하는 녹조의 주원인인 남조류가 내뿜는 독성물질의 인체 위해 가능성이 확인됐습니다. 마이크로시스틴은 남조류에 함유된 고농도 독성물질로, 열을 가해 조리해도 쉽게 파괴되지 않으며 주로 간질환을 일으킵니다.
 연구진은 2013년 7~10월 경기 수원의 일월저수지에서 저수지 내 대표적 서식 어류인 떡붕어, 붕어, 가물치를 포획해 마이크로시스틴 농도를 분석했습니다. 연구진은 주로 간과 내장에서 마이크로시스틴 농도가 높게 측정됐으며 일부 어류는 간이나 내장까지 먹을 경우 국제 기준치보다 1.5~2배 많은 양의 마이크로시스틴을 섭취하게 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에는 살코기에 포함된 마이크로시스틴의 양은 세계보건기구(WHO) 기준 이하였지만 간, 내장에서는 살코기에 포함된 양보다 각각 6배, 4배가량 많은 마이크로시스틴이 확인돼 어류 전체나 간을 함께 섭취할 때는 인체 건강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매년 녹조가 창궐하는 내성청과 낙동강의 어류를 섭취할 경우 위험성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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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이 농작물에 축적되는 것으로 인한 위험성도 간과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뉴질랜드 등 해외에서는 이미 어류, 농작물 등 마이크로시스틴의 생물 농축 가능성이 확인됐고, 브라질에서는 이 물질이 포함된 물을 혈액 투석에 사용해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바 있습니다.
 현재 영주댐의 수질은 독성 남조류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농업용수로 쓸 수 없는 수준까지 악화된 상태입니다. 정부가 영주댐을 만들면서 들었던 수질 개선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하천 생태계를 크게 훼손시키고 있는 영주댐을 이대로 존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독성 남조류의 창궐은 사실 1조1000억원 이상을 들인 영주댐에서 전면적인 방류가 실시되어야 함은 물론 하루라도 빨리 철거가 이뤄져야 할 이유 중 일부일 뿐입니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던 내성천은 영주댐 건설, 그리고 담수 이후 급속도로 황폐화되면서 자연을 훼손한 인간들에 대한 경고음을 날리고 있습니다. 특히 영주댐 담수는 내성천에 돌이키기 어려운, 어쩌면 후손들에게 지극히 아름다웠던 내성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게될 수도 있는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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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명승인 경북 예천 내성천 회룡포의 2011년 9월 모습. 한국 강의 특징인 백사장이 잘 보전돼 있다. 생태지평 시민생태조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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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명승인 경북 예천 내성천 회룡포의 2020년 10월 11일 모습. 모래가 줄어들고, 자갈이 늘어난 데다 다양한 식물들이 침투하면서 백사장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생태지평 시민생태조사단 제공.
 생태지평 시민조사단이 올해 확인한 내성천의 모습과 약 7~9년 전, 아직 내성천이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던 시기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마지막 모래강의 모습을 간직했던 이 하천이 어떻게 망가져가고 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경치 덕분에 국가명승으로까지 지정된 회룡포의 백사장은 자갈밭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상류로부터 모래 공급이 끊긴 탓입니다. 영주댐이 건설되고 상류로부터 중·하류로 내려가는 모래의 양이 급감하면서 빠르게 본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내성천의 현실이 회룡포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대로 백사장이었다면 자랄 수 없는 식물들도 침투하고 있습니다. 자갈밭으로 변한 영역과 식물들이 침투한 영역은 점점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지난해 9월 시험 담수가 시작되고, 댐 상류의 모래를 하류로 흘려보내는 배사문마저 닫히면서 하천 생태계의 훼손은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영주댐 건설과 담수 이후 가속화된 환경파괴로 매년 내성천에 찾아오던 먹황새는 2년째 자취를 감춘 상태입니다.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이자 천연기념물 제200호인 먹황새는 국내에선 거의 사라진 철새로, 영주댐 담수 이전에는 내성천에서 겨울철마다 한 개체가 목격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2018년부터는 먹황새가 관찰되지 않으면서 내성천의 자연환경이 급속도로 훼손되면서 서식환경 변화에 민감한 먹황새가 내성천을 찾지 않게 되었을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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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7일 서해 백령도에서 목격된 먹황새의 모습. 인천녹색연합 황해물범시민사업단 제공.
 논이나 바닷가에서 먹이를 찾는 황새와 달리 먹황새는 몸길이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은 탓에 물이 얕은 강에서만 서식하는 새입니다. 훼손되기 전 물이 얕았던 내성천은 먹황새가 살기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주로 절벽 위에서 잠을 자는 것을 고려하면 주변에 절벽이 많은 내성천은 먹황새에게 안성맞춤인 강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주댐으로 인해 훼손된 이후 내성천에서는 먹황새가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진 탓에 이리저리 헤매는 모습이 목격된 바 있습니다. 이전에는 먹이활동을 하는 시간이 1시간 정도였던 것이 영주댐 건설 이후에는 2~3시간으로 늘어났던 것입니다.
 지난달 백령도에서 먹황새가 관찰된 바 있지만 내성천에서 모습을 감춘 개체와 같은 개체인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인천녹색연합 황해물범시민사업단은 지난달 7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에서 먹황새의 모습을 포착해 공개한 바 있습니다. 먹황새는 황새목 황새과에 속하는 조류로 몸 길이는 95cm가량이다. 몸색깔은 전체적으로 광택이 있는 검은색이며 부리와 다리, 눈 주위는 붉고 가슴과 배 부분은 흰색이다. 농경지, 강 하구, 저수지, 하천, 풀이 우거진 습지 등을 주요 서식지로 삼는 새로, 주로 어류나 양서·파충류 등을 먹는다. 먹황새는 한반도 중부 이남에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겨울철새이자 한반도를 통과하는 나그네새이다. 국내에서는 주남저수지, 내성천, 대동댐, 낙동강 하류, 천수만 등지에서 관찰된 바 있다. 세계적으로는 동아시아, 남아프리카, 서남유럽, 동유럽 등에 분포합니다.
 내성천에서 자취를 감춘 생물은 먹황새만이 아닙니다. 멸종위기 어류인 흰수마자는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흰수마자의 수는 해마다 급감하고 있었지만 단 한 마리도 확인되지 않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습니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한국수자원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인용해 올해 내성천에서 흰수마자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고 22일 밝혔습니다. 수자원공사가 지난 5월 26~27일, 9월 27~28일, 10월 13~14일 세 차례에 걸쳐 흰수마자 서식현황을 조사했으나 한 마리도 확인되지 않은 것입니다.
 수공은 2014년부터 올해까지 네 차례에 걸쳐 총 1만5000마리의 흰수마자 치어를 내성천에 방류했지만 흰수마자의 개체 수는 늘어나기는커녕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수공이 연도별로 확인한 내성천의 흰수마자 수는 2014년 184마리, 2015년 181마리, 2016년 492마리, 2017년 184마리에서 2018년 9마리로 크게 줄어든 바 있습니다. 국립생태원이 2018년 5월부터 1년 동안 내성천 9개 구간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서도 흰수마자는 7마리가 3개 구간에서 확인됐을 뿐입니다. 한국 고유 어류이자 멸종위기종인 흰수마자는 유속이 빠르고 강바닥이 모래로 된 얕은 물에 주로 서식합니다. 전문가들은 현재처럼 자갈이 늘어난 환경에서는 서식하기 어려울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영주댐을 기준으로 한 내성천 상하류는 올해 긴 장마를 거치면서 크게 다른 변화상을 나타냈습니다. 댐 상류 20㎞ 지점의 석포교 일대는 홍수기를 거치며 모래톱이 넓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석포교 일대에서 확인된 모래는 비교적 고운 모래들이 많았지만 댐 하류 회룡포는 자갈밭으로 변할 정도로, 고운 모래들은 이미 사라진 상태입니다. 홍수로 인해 모래의 이동을 막는 댐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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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회룡포의 모습 . 아래 사진과 같은 위치. 생태지평 시민생태조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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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7일 회룡포. 위의 2013년 모습과 같은 위치. 생태지평 시민생태조사단 제공.
 영주댐과 내성천 관련 기사에 댓글로 달린 내용을 아래에 옮기면서 글을 맺고자 합니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댐은 언젠가는 사라져야 합니다. 그 시기가 빠를수록 자연 복원을 위한 비용과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줄어들 것입니다.
학창 시절 인근 낙동강 백사장은 소풍 가는 단골 코스였지요. 끝없이 펼쳐진 은빛 모래를 맨발로 밟으며 축구도 하고 씨름도 하고 3cm가 넘는 커다란 재첩만 골라잡았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하지만 지금 그곳은 그 추억의 모래밭은 간데없고 호수처럼 큰 물로 가득 찼지만 그 속엔 새우와 징거미 대신 큰빗이끼벌레가...모래 대신에 뻘이...고인 물은 썩고 흐르는 물은 맑다는 만고의 진리를 왜...무슨 이익이 있길래 거스를까? 고향을 볼 때마다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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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기자의 사람과 자연>은 필자가 경향신문 지면을 통해 소개한 사람과 동물, 환경에 대한 이야기와 지면에 다 담지 못했지만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습니다.  

<필자소개> 
김기범 생태지평연구소 운영위원 / 경향신문사 기자
2006년 경향신문 입사했고, 2013년 환경부를 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동물면 담당을 맡고 있으며 환경전문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2020년 3월부터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에서 공부할 예정입니다.
수, 2020/11/25-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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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_ 2007년 12월7일. 남극반도 킹조지 섬에서 펭귄 하나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남종영


세탁기에 빨래가 돌아가는 것처럼, 바다는 우리가 탄 배를 마음대로 휘저었다. 
“남극 환류에 진입한 겁니다. 남극에 들어가려면 꼭 치러야 할 의식이지요.”
휘청거리는 나에게 선장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객실의 탁자가 엎어졌다. 배를 따라오던 앨버트로스도 동행을 포기했다. 매일 세 차례씩 모이는 식당에 사람이 안 보일 때가 되고 나서야, 평안이 찾아왔다. 그리고 저 멀리서 은빛을 반짝이며 흘러내려오는 빙산이 보였다. 남극 환류는 남극대륙을 빙빙 도는 해류다. 배는 남극환류를 가로질러, 남극이 지배하는 영역에 들어섰다. 
킹조지 섬은 그러고서 하루를 더 항해해 도착했다. 이 섬은 남극에서 꼬리처럼 내려온 남극반도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정확히는 ‘아남극’이었다. 저기 먼 대륙의 땅의 탐험가들이 '거기도 남극이냐'라고 힐난할 만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바다가 주관한 의식을 치렀고 펭귄 또한 만날 수 있지 않은가? 
내가 남극에 온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기후변화를 취재하기 위해서였지만, 사실은 펭귄이 보고 싶어서였다. 
킹조지 섬 세종기지에서 해안가를 따라 2~3㎞ 가면, 대규모 펭귄 서식지가 있었다. 아델리펭귄, 젠투펭귄 등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중요한 곳이었다. 대원들은 이곳을 ‘펭귄 마을’이라고 불렀는데, 나로선 꽤 괜찮은 산책길의 목적지가 되었다. 
언덕 위에는 펭귄 마을이 있었지만, 여기저기 둥지가 있어 조심스러웠고 펭귄 또한 바다에서 새끼에게 줄 먹이를 실어나르느라 분주했기 때문에 혼자서 들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펭귄 마을로 가는 바닷길에는 어떤 날엔 바다코끼리가 엎드려 길을 막고, 펭귄들이 줄을 지어 걸어가곤 했다.
대부분의 펭귄은 한 번도 인간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도 그런 것이 남극에 인간이 발을 들여놓은 지 100년 남짓밖에 안 되었다. 펭귄이 정작 두려워 하는 것은 해표나 범고래 같은 일상의 포식자이지, 인간이 아니었다. 나는 가까이서 펭귄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서 펭귄을 쫓아다니면, 펭귄은 일정 거리 이상만 둔 채 도망갔다.
나는 전략을 바꾸기도 했다. 그리고 가만히 눈밭에 주저 앉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에게 쫓겨다니던 펭귄은 잠시 상황을 파악하는가 싶더니 한 발자국씩 나에게 다가왔다. 펭귄의 체취가 느껴질 만큼 가까와졌다. 펭귄에게 숨소리가 났다면, 그 횟수를 셀 수 있었으리라. 몇 초였을까. 고요한 시간이 흘렀다. 나는 엉뚱하게도 펭귄의 발을 찍었다. 돌밭으로 된 언덕을 종종걸음으로 오르고, 바다에서는 넓은 노가 되어주는 펭귄의 발. 사진을 찍자, 펭귄은 종종걸음으로 바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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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들었는데 신이 잠깐 왔다 간 순간, 소음과 혼란에서 갑자기 완벽한 조화가 찾아든 순간, 영원에 닿아있는 이 시간을 우리는 '에피파니'라고 부릅니다. 세계를 여행하며 만난 동물과 자연에 대한 짧은 생각을 한 장의 사진과 함께 담아봅니다.

<필자 소개>
남종영 생태지평연구소 운영위원 / <한겨레> 기자
15년 전 캐나다 처칠에서 북극곰을 만난 뒤 기후변화와 고래, 동물 등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화, 2020/08/25-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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