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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세션 미리보기] 전체세션 - 세월호와 기업책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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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세션 미리보기] 전체세션 - 세월호와 기업책임성

익명 (미확인) | 수, 2016/01/20- 14:45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가 주관한다. 416연대 김혜진 공동위원장이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 무엇이 달라졌나?’라는 주제로 운을 떼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 집행위원장이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강문대 변호사가 기업책임법의 필요성과 현재적 의미에 대해 발표한다. 토론에서는 그간의 활동 영상을 상영할 계획이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무엇일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원인이 되지 않는 영역이 없을 것이다. 쌓이고 쌓여왔던 수많은 문제들이 낳은 결과이다. 그러나 이렇게 분석해서는 재발을 막을 수 없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청해진해운과 경영진이 일차적인 책임주체라고 인식한다. 뿐만 아니라 이를 일상적으로 관리·감독해야 했던 행정당국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기업은 수익을 실현하되 안전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하고 국민이 안전할 수 있도록 감독업무를 대행하는 것이 행정당국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반론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책임주체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규제가 규제로서 작동하지 못하는 문제, 즉 처벌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2007년에 세칭 기업살인법이 제정되었다. 1987년 세월호와 유사한 참사가 발생한 후에 제정된 것이다. 캐나다나 호주 등의 국가에서는 이미 이전부터 관련법이 존재하고 있다.

 

지난 1년간 활발히 활동해 온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세월호 참사와 같은 불행한 현대사를 쓰지 않기 위한 팁을 찾아보자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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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빨리 죽기를 바라는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87) 할머니가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지급받던 생활지원금, 알량한 60만∼70만원이 없어진다 한다. 보건복지부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중복 지원 사업을 중단할 계획이라 통보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무능으로 야만의 시간을 통과한 이들 앞에서 정부는 주판알만 열심히 튕기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살아남는 것이 ‘죄’가 되는 나라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난다. 피해자 지원과 추모를 위한 활동을 돕기 위해서다. 정부는 피해자를 지원하고 추모하는 데 기본이 없어, 접할수록 놀랍다.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다. 완전 황무지다. 전문가도 별로 없다. 그야말로 세월호 피해자들이 호구 조사하듯이 관공서와 관련 기관, 전문가들을 이 잡듯이 찾는다.


지난 세월호 인권 실태조사 과정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생존자는 이런 말을 공무원에게서 들었다. “그래도 선생님은 살지 않았습니까?” 이후 그는 세월호와 관련된 말을 하지 않는다. 살아남은 것이 ‘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계 수단이 모두 바다에 빠져버린 화물기사들에게 돌아온 대답도 차가웠다. 다시 운전대를 잡아야만 지원 가능하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희생자 주검을 직접 수습했던 민간 잠수사와 피해자들 곁에서 고통을 함께 나눈 자원봉사자들은 피해자 지원 특별법 대상도 되지 못했다. 실태조사 당시 25명의 민간 잠수사 중 7명은 각종 어려움으로 생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한 잠수사는 “만약 이런 일이 또 발생하게 되면 누가 나서서 돕겠느냐”고 물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 곳곳에서 일하던 자원봉사자들도 범정부사고대책본부 해체 뒤 지원체계 없이 흩어졌다. 그들 중에 어떤 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어떤 이는 중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구조와 주검 수습에 참여한 전남 진도 어민들의 생계도 참혹했다. 그러나 정부는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들 모두가 입은 정서적·신체적 상처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


참사 이전, 당시, 그리고 이후에도 국가는 없었다. 오히려 피해자가 되는 순간 온갖 종류의 모욕에 2차, 3차 피해를 입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은 정부와 여당 주도의 혐오와 모욕을 줄기차게 당하고 있다. 기억하지 못하면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 재난이고 참사다.


위안부 할머니, 징용 피해자, 고문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과거의 상처를 현재까지 오롯이 안고 산다. 정부가 나서서 하는 게 없거나, 나쁜 쪽으로만 일하고 있어서다. 인권 피해는 어느 시대, 지역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사후 대책을 통해 피해자를 위로하고 제대로 지원하고 기억할 때, 유사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피해자를 위한 나라가 아니다. 운 나쁘게 피해자가 된다면, 뼈저리게 느낀다. 이건 국가가 아니다.


다른 사회를 준비하는 4·16 선언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도, 세월호 피해자와 희생자 가족들에게도 희망이 있었다면 이름 없는 시민들이었다. 타인의 고통을 나눌 줄 아는 선하고 정의로운 이웃들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딛고 다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4·16 인권선언이 준비되고 있다. 풀뿌리 토론을 통해 집단적 지혜를 모으고 있다.


여기 우리가 버릴 나라가 있다면, 또한 우리를 버티게 하는 이웃들이 있다. 토론하고 모이고 꿈꾸고 연대할 자유를 버리지 않은 시민들이다. 당신 입장에서 ‘혼조차 비정상’이라 폄하됐지만 당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그들 말이다. 죽어도 이해할 수 없는 ‘혼’을 가진 사람들 말이다.


2015년 11월 18일 한겨레21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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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5/11/2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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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월호 추모 그림전시회를 참가하고… – 22일 열린 시카고 세사모의 세월호 집회 – 2학년 3반 33번 최윤민 언니 최윤아 편집부 지난 10월 22일, 토요일 오후 3시, 시카고 다운타운 밀레니엄 파크에서 아주 특별한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바로 시카고의 새로운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밀레니엄 공원의 조각물 ‘완두콩’ (the Bean) 앞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추모 그림 전시회였습니다. 304명의 ...
월, 2016/10/2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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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155억 원을 노무현 정부 때 탕감하면서 살아났다. 문 후보가 민정수석 할 때다. 법정관리를 하면 채권단의 동의를 얻어야 탕감이 된다. 그런데 거기 채권자가 캠코하고 그 다음에 예금보험공사하고 전부 공공기관이다. 개인 채권은 별로 없다. 그럼 그것을 탕감하려면 그 사람들이 청와대 승낙을 안 받았겠나. 청와대 법률관리를 하는 게 민정수석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세월호 배지를 달고 지금 어떻게 보면 세월호 사건이 터지게 된 가장 원천적 원인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한국기자협회 주최로 열린 19대 대선 후보자 초청 합동토론회에서 또다시 ‘참여정부의 세월호 책임설”을 꺼냈다.

SBS가 주관한 대선후보 TV 토론회 ⓒ 미디어오늘

▲ SBS가 주관한 대선후보 TV 토론회 ⓒ 미디어오늘

과연 홍 후보의 말은 사실일까?

홍 후보는 지난 3월 29일에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겨냥해 “세월호 유병언이 노무현 정권 때 1150억 원을 탕감받았다”, “문재인 씨는 유병언 씨 회사의 파산관재인”이었다고 했다가 “파산관재인 부분은 잘못 알았다”면서 번복하기도 했다.

1.세모 빚 탕감 시, 문재인 후보는 민정수석이었나?

세월호를 운영했던 청해진해운의 모회사 (주)세모는 1999년 최종부도를 맞고 인천지방법원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원래 (주)세모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2008년까지 채무변제를 완료하겠다는 계획을 냈었지만 계획과 달리 절반정도 밖에 채무를 상환하지 못했다. 2007년 12월 채권단은 (주)세모에 대해 감자 후 신주와 상환우선주를 발행하는 내용의 회사정리계획 변경안을 제출했고 법원의 인가를 받았다. 채권자들에게 발행된 상환우선주는 주당 580만 원에 19,916주로 총 1,155억원의 채무가 출자전환됐다.

홍 후보는 “(문 후보가)정부 산하 모든 기관을 틀어쥐고 있는 민정수석”이라고 말했지만 (주)세모가 빚을 탕감하던 2007년 말 당시,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 비서실장을 하던 때다. 문 후보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시기는 2003년 2월부터 2004년 2월, 2005년 1월부터 2006년 5월까지 두 차례였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대통령과 법무부와 검찰총장 사이의 업무를 보좌하고 국민 여론 및 민심 동향을 파악하는 청와대 직속 감찰 조직이다.

2. 채권자가 전부 공공기관이었고 개인 채권은 별로 없었다?

당시 주요 채권자 중의 하나였던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주)세모의 정리계획변경 결정 당시 채권은 총 2,316억 원이었는데 공익채권 71억 원과 정리담보권 191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정리채권은 총 2,053억 원이었다.

정리채권 가운데는 개인사채가 578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보증보험 408억 원, 캠코 3백억 원, 농협중앙회 148억 원, 예보(정리금융공사) 98억 원 순이었다. 나머지 약 5백억 원은 사적 금융회사 등 다양한 채권으로 구성돼 있다. 공공기관의 채권은 모두 954억 원으로 전체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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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빚탕감에 청와대 승낙이 있었다?

홍준표 후보는 (주)세모의 빚탕감 과정에서 청와대의 승낙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채권단의 결정에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는지는 현실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채권단의 구성을 보면,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구조로 보기는 힘들다.

예보의 한 관계자는 “음모설 차원에서 제기한다면야 할 수는 있겠지만 개인사채도 5백억 원이 넘는데다 이름을 처음 들어볼 정도로 공공성이 없는 채권자들이 많은데, 공공기관 외의 나머지 채권단에게까지 정부가 압력을 넣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4. 세월호 참사가 빚탕감 때문이다?

2008년 1월 새무리, 다판다, 문진미디어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주)세모를 337억 원에 인수했다. 이들 회사는 유병언 일가가 사실상 소유한 회사다.

막대한 부채를 떠안고 있는 회사를 기업회생절차를 통해 빚을 탕감받은 뒤 헐값에 되사는 전형적인 법정관리 악용 사례가 바로 (주)세모 사례였다.

때문에 대법원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법정관리 기업의 전 사주가 법인회생제도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M&A 심사를 엄격하게 하는 내용이 포함된 세월호 사건 관련 사법부 종합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파산재판부 경험이 많은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유병언 씨의 세모처럼 법정관리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면서 “이에 대한 책임은 법정관리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주체에게 물어야하는 것이지 빚을 탕감해준 채권단이나 정부에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으로는 과도한 규제완화와 선박안전검사 체계의 허술, 정부의 부실한 관리감독과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 등 많은 요인들이 제기돼 왔다. 때문에 세월호 참사의 근원을 모회사에 대한 부채탕감 탓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취재:최기훈 강민수 연다혜

목, 2017/04/13-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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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입니다. 3년이 지났습니다. 쓰라린 그 날의 기억. 온 세상에 봄기운이 가득하지만, 우리의 마음 한 편은 아직 차가운 바다를 향해 있습니다. 그리고 진실은 여전히 깊은 물 속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잊지 않았다는, 잊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은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여전히 아프고 쓰라린 기억

•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아이가 물었다. “아빠, 우리나라에는 울트라 파워 해군과 경찰이 많잖아요. 그런데 왜 못 구해요?” 이 질문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 권기태 소장권한대행(부소장)

•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공포와 고통,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절망적이었던 가족들의 마음. 모든 것이 비용으로 치환되는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 옥세진 사회의제팀 팀장

• 생사가 갈리던 순간. ‘전원 구조’ 발표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나의 안일함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 김현수 사회의제팀 선임연구원

• 거짓말 같던 순간. 많은 사람에게 눈물과 가슴 속 묵직함을 던져준 상처. 그리고 여전히 진행형인 아픔. – 정창기 목민관클럽팀 팀장

• 가슴이 미어진다. 눈물이 난다. 왜 생때같은 아이들이 죽어야 하는가. 분노가 치밀고 울화통이 터진다. – 송정복 목민관클럽팀 연구위원

• 지워지지 않는 상처. 거대한 죽음을 생생히 목격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과 분노에 몸서리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보낸 메시지를 보면,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 – 이원혜 후원사업팀 팀장

• 기억해야 할 아픈 역사. – 김희경 후원사업팀 선임연구원

• 국민을 지켜줄 능력과 사명감이 없는 국가의 실체와 마주했고, 민주주의 뒤에 숨어있던 • 권력의 실체와 마주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나의 무기력과 마주했던 시간. 세월호 참사는 나를 시민으로 다시 깨어나게 했다. – 박다겸 후원사업팀 연구원

• 잊지 못할 기억, 잊지 않을 기억, 잊고 싶지 않은 기억. 여러 수식어를 붙여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세월호. – 방연주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봄바람을 쐬어도, 꽃이 지천으로 망울을 터뜨려도 따뜻해지지 않는 마음. 그날 이후 봄은 내게 더는 ‘포근한 계절’이 아니다. – 최은영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것. – 박흥석 지속가능발전팀 선임연구원

• 그날 이후 우리는 모두 아이들을 잃은 사람들이라는 회복할 수 없는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 송하진 지속가능발전팀 연구원

•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걸까? 힘들지만 그래도 살만하다고 위로해왔는데, 참사를 겪으며 ‘이건 아니잖아’라는 생각을 했다. 하루하루 무심하게 살아온 날을 뒤돌아보게 한다. – 한현숙 경영지원실 연구위원

• 먹먹한 기억. 적극적인 악(惡)에는 더 적극적인 선(善)이 필요하다. – 박정호 경영지원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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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국가, 자본의 탐욕이 불러온 비극

• 딸 아이 생일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 짓밟고서라도 나와 내 가족만 잘 살면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통해 국가의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 없이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사건을 목도하면서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내 가족, 내 자식을 위해서라도 국가와 정치, 우리가 사는 이 공동체에 더는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 황세원 사회의제팀 선임연구원

• 안전불감증과 탐욕, 이기심,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로 인해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된 날. – 임은영 지역정책팀 선임연구원

• ‘전원 구조’라는 뉴스 속보를 보고 마음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이 다시 들썩였다. 잊을 수 없는 그 날. 무능한 국가, 자본의 탐욕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는지 깨달은 날. – 안수정 지역정책팀 연구원

• 국가의 역할을 곱씹게 된 계기. 기본적 안전도 보장 못 하는 이 나라를 믿고 따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 기점. – 이다현 지역정책팀 연구원

• 국가의 의미를 고민하고, 돈의 논리로 굴러가던 세상을 성찰하고, 슬퍼할 권리를 막고 막말만 뱉어대던 사람들을 보며 이런 어른으로는 살지 않겠다 다짐했던 시간. – 김수영 시민사업팀 연구원

• 어제보다 더 생생하게 기억나는 날. 세월호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넘어 한국사회가 쌓아온 수많은 지속불가능성을 집약해 보여줬다. – 정환훈 지속가능발전팀 연구원

• 안전이란? 국가의 역할이란? 책임, 권한, 의무의 의미가 뿌리째 흔들린 사건. 살릴 수 있었다. 살려야 했다. 물에 잠긴 밝지만 슬픈 노란색. – 안영삼 웹팀 팀장

• 선장이 책임을 다하지 않아 무고한 학생들과 시민이 세상을 떠났고, 대통령이 책임을 다하지 않아 국민의 마음이 미어졌다. – 오승화 웹팀 연구원

•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사유하게 해 준 잊을 수 없는 사건. – 양이현경 희망기획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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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진상규명,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 피해자와 희생자 가족의 마음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침몰하는 배를 보며 얼어붙은 내 마음이 아직도 녹지 않은 것 같다. 탐욕, 권력에 대한 맹목적 복종, 부당함에 대한 무관심 등 사고 원인을 명확하게 밝히고, 이를 통해 얻는 교훈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제2의 세월호’를 막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 김지헌 지역정책팀 팀장

•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가슴에 사무치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 준 날. 무기력한 국가를 보며 시민이 행동해야 함을 깨닫게 한 사건. 아프지만, 지켜내지 못했다는 모두의 죄책감이 결국에는 변화를 이끌 희망이 될 것이다. – 오지은 지역정책팀 선임연구원

• 대한민국 국민 가슴 한편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는 세월호. 차근차근, 하나하나, 진실은 꼭 밝혀져야 한다. – 강현주 시민사업팀 팀장

• 배는 아주 천천히, 느리게 가라앉았다. 아무도 구하지 못하는 그 순간을 오랫동안 봐야 했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 까맣게 타들어 갔는데, 그게 무엇인지 몰라서 애도를 끝낼 수가 없다. 진실이 밝혀지고, 기억이 제도에 단단히 자리 잡을 때야 비로소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서로를 더 믿을 수 있게 되고 노란 리본을 떼어도 좋은 날이 어서 오길 바란다. – 백희원 시민사업팀 연구원

•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 숨겨져 있던 많은 문제가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지만, 잊지 않고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을 보며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박반석 시민사업팀 연구원

• 세상에 무수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 날. 이 질문으로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 인은숙 지속가능발전팀 팀장

• 예전에는 가만히 있어도 괜찮았다. 익숙한 것에는 무의식적으로 순응했다. 하지만 참사 이후에는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지 의문을 품게 됐다.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지킬 것은 지키자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 조준형 지속가능발전팀 연구원

• 무수히 많은 ‘만약에’가 머물렀던 3년의 시간. 그러나 되돌릴 수 없기에 어떤 방식으로 ‘함께’ 나아갈지 ‘같이’ 고민해야 한다. – 조현진 목민관클럽팀 연구원

• 희망제작소 입사 3일째던 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동참해왔다고 믿어온 날들에 대한 파괴와 배반의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을 인정해야 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빚을 지고 있다. 이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 – 유혜승 희망기획팀·미디어홍보팀 팀장

• 국가의 존재 이유에 관한 의문이 강하게 들었던 날. 보이는 것에만 신경쓰는 언론에 강한 불신이 생겼다. 진실은 꼭 밝혀져야 한다. 분노, 슬픔, 무력함을 넘어 새로운 대안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 정은숙 경영지원실 실장

– 정리 : 최은영 |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화, 2017/04/1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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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9일 세월호가 올라왔다. 참사 이후 1,089일 만이다.3년만에 수면위로 올라온 세월호는 부서질듯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들뜨며 탔던 하얀배는 곳곳이 녹슬고 훼손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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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습자 가족들은 사진 없이 이름만 있는 영정을 들고 세월호의 마지막 항해를 동행하며 목포 신항으로 이동했다. 가족들은 목포 신항에서 새로운 기다림을 시작했다.

그러나 육상 거치 작업부터 더뎠다. 선체 무게를 제대로 측정해 대비하지 못한 탓이다. 가족들은 배 안에 쌓인 뻘을 맨 손이라도 파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문 감식가 없이 작업이 이뤄지면서 미수습자의 유골로 추정된 뼛조각이 동물뼈로 확인되는 등 가족들에게 또 다른 아픔을 안겨주기도 했다.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달라지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냥 배를 앞에 두고 바라보고만 있는 심정이 참… 미안하다, 미안할 뿐이죠. 아침에 일어나서 배 앞에 다녀오면 (다윤이한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허흥환 (미수습자 허다윤 아버지)

2014년 4월 16일 날, 그 시간에 멈춰 서있는 9명의 가족입니다. 어떤 것도,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은화, 다윤이, 현철이, 영인이, 양승진 선생님, 고창석 선생님, 권재근 님, 어린 혁규, 이영숙 님, 마지막 1명까지 최선을 다해서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겠다는 그 약속을 정부와 국민이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이금희 (미수습자 조은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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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미수습자 수습과 선체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었다. 이제 아이들은 엄마의 바람대로 집에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지난 20여 일 동안 세월호 인양, 육상 거치 작업의 현장과 미수습자 가족들의 또 다른 기다림을 카메라에 담았다.


취재작가 김지음
글 구성 고희갑
연출 박정대

금, 2017/04/1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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