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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언>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 발족 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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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언>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 발족 선언문

익명 (미확인) | 목, 2016/01/14- 17:11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 발족 선언문2015년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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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기간 동안 우 수석의 처가 회사와 최순실 소유 회사 사이에 지속적인 물품 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결과 확인됐다.

또한 검찰이 최순실 씨 ‘비밀아지트’ 의혹이 제기된 대명비발디파크를 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이 리조트 운영회사인 대명레저산업도 최순실 씨 회사와 지속적으로 물품 거래를 해 온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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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전 수석 장모 회사 ‘삼남개발’ 최소 6개월 이상 최 씨 회사와 금품 거래

뉴스타파는 지난달 10일,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최순실 씨와의 연결고리를 최초로 확인해 보도한 바 있다. 우 전 수석의 장모인 김장자 씨가 대표로 있는 골프장 운영회사 ‘삼남개발’이 최 씨 소유 커피 판매 회사 두 곳(‘존앤룩씨앤씨’와 ‘티알씨’)에서 160만 원 가량의 원두커피를 거래했다는 내용이었다. 거래 액수가 크지는 않았지만 최 씨 소유 회사가 설립된 지 불과 8일 만에 커피원두를 대량으로 구입한 것이어서 친분에 의한 거래가 아니었는지 의문이 제기됐다(관련기사 : 우병우-최순실, 연결고리 확인).

6개월 이상 커피 원두 80kg 거래

그런데 이번에는 삼남개발이 최 씨 회사에서 장기간 커피원두를 구입해 왔음이 추가로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최 씨 관련 회사 ‘플레이그라운드’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서 입수한 700쪽 분량의 문서 더미에서 삼남개발과 최순실 회사 간의 거래내역이 담긴 세금계산서와 매출장을 추가로 발견했다. 이번에 확인된 거래내역은 모두 우 전 수석의 청와대 재직 당시 이뤄졌던 것으로, 우 전 수석이 최 씨의 국정농단을 몰랐을 리 없다는 의심을 뒷받침하는 증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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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씨 소유 커피 판매 회사 ‘티알씨’의 매출장에 따르면, 삼남개발은 최소 6개월간 정기적으로 티알씨와 거래했다. 2015년 4월부터 9월까지 매달 거래가 이뤄졌다. 커피원두로만 총 80kg, 금액으로는 464만 원 어치다. 이상한 점은 정작 삼남개발이 사용하는 커피 원두는 최 씨 회사의 제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삼남개발이 운영하는 골프장 내 레스토랑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최 씨 회사를 알지도 못 하고, 10년째 다른 곳의 원두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대체 삼남개발은 어떤 목적으로 최 씨 회사에서 매달 지속적으로 커피원두를 대량으로 구매했던 것일까. 뉴스타파는 삼남개발 측에 어떤 목적으로 최 씨 회사에서 원두를 구입했는지, 누가 구입한 것인지 수차례 연락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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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보도 이후 우 전 수석과 최 씨와의 연결고리는 속속 드러나고 있다. 차은택 씨의 변호인은 지난달 27일 “최순실 씨와 차은택 씨가 김장자 회장과 함께 김 회장의 골프장 기흥컨트리클럽에서 골프를 친 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차씨의 변호인은 “골프회동의 시점은 우병우 전 수석이 청와대에 입성한 직후” 라고 덧붙였다.

‘대명레저산업’ 도 최 씨 회사와 지속적 거래

뉴스타파가 입수한 최 씨 회사의 세금계산서와 매출장을 보면, 삼남개발 말고도 주목되는 회사가 한 곳 더 있다. 바로 대명레저산업이다. 대명레저산업은 최 씨 일가가 분양권을 구입하고, 비밀아지트로 종종 이용한 것으로 알려진 대명비발디파크를 운영하는 회사다.

최 씨가 대명레저산업이 운영하는 고급 승마클럽의 책임자 인사에 관여하고,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특수가 예상되는 리조트 사업에 눈독을 들였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검찰도 지난 10월 28일 대명비발디파크의 최 씨 관련 입출입 기록을 압수수색하고, 최 씨와 대명그룹과의 관계를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대명그룹 측은 “최순실 씨는 단순히 콘도 회원”이라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입수한 세금계산서와 매출장에 따르면 대명레저산업 역시 최 씨의 커피판매 회사와 최소 6개월 이상 거래한 것으로 나온다. 단순한 콘도 회원 관계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최 씨 소유 회사 ‘티알씨’의 세금계산서와 매출장을 살펴보면, 대명레저산업도 삼남개발과 같은 시점인 2015년 4월 14일, 최 씨 회사에서 원두를 구입하기 시작한 것으로 나온다. 이날은 티알씨 설립(2015년 4월 6일)에서 불과 8일이 지났을 때다. 대명레저산업은 2015년 4월부터 9월까지 매달 커피원두를 구입, 6개월 간 거래액수가 1000만 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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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곳도 리조트 내 커피숍이나 레스토랑에선 최 씨 회사의 원두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000만 원 가량의 원두를 어떤 목적으로, 왜 구입했는지, 최 씨와의 관계 때문은 아니었는지 의심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티알씨라는 회사는 처음 들어보는데요?저희는 계속 다른 업체에서 원두를 구입해 왔고, 최근에 구입처를 바꿨는데 그 곳도 티알씨는 아닙니다.대명 비발디파크 내 카페 관계자

최 씨 회사에 매출장에는 프라디아라는 회사와도 거래를 해 온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 곳은 차은택 씨가 등기이사로 등재된 곳이다. 프라디아 측은 “커피 원두 거래는 차은택 이사와 무관하고, 최 씨 회사에서 영업을 해 와 구매해 본 것”이라며 “거래를 하긴 했지만, 원두가 맛이 없고 반응이 안 좋아 금방 다른 업체로 바꿨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최 씨 소유 회사가 원두 거래를 한 업체들은 삼남개발, 대명레저산업, 프라디아 등 단 3곳으로, 모두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의혹이 제기 회사들이다. 단순히 영업상 목적으로 원두 거래를 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따라서 이 회사들이 왜 굳이 최 씨 회사에서 커피원두를 구입했는지, 최순실 게이트에 깊숙이 개입돼 있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 진행될 특검과 국정조사에서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월, 2016/12/0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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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함경북도 청진시 방진동에 1층짜리 건물 ‘은월루’가 있다. 현재는 진료소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전혀 다른 용도로 쓰였던 곳이다. 1936년에 세워진 은월루는 해방 전까지 일본 군의 ‘위안소’였다. 현재 일본군의 ‘위안소’는 남북한 통틀어 은월루, 단 한 곳 뿐이다.

1999년만해도 은월루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풍월루’라는 이름의 또 다른 일본군 ‘위안소’가 있었다. 이 두 ‘위안소’ 모두 일본군 군속을 지낸 조선인 윤두만이 일제 해군의 지휘를 받아 만들었다. 일본군 일반 병사들은 은월루, 고급 장교들은 풍월루를 찾았다고 한다.

▲ 북한 함경북초 청진시 방진동에 위치한 은월루다. 1936년에 세워진 은월루는 해방 전까지 일본 군의 ‘위안소'였다. 현재는 진료소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일본군의 ‘위안소’는 남북한 통틀어 은월루, 단 한 곳 뿐이다.

▲ 북한 함경북초 청진시 방진동에 위치한 은월루다. 1936년에 세워진 은월루는 해방 전까지 일본 군의 ‘위안소’였다. 현재는 진료소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일본군의 ‘위안소’는 남북한 통틀어 은월루, 단 한 곳 뿐이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이 두 곳의 영상을 입수해 공개한다. 또 지난 주에 이어 또다른 4명의 북한 거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도 함께 공개한다. 일본 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가 1999년, 2015년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해 담아온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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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일제와 일본군이 ‘위안부’ 전쟁 범죄에 직접 개입한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가 발견됐다. 1938년 일제 육군성 법무과가 작성한 ‘군 위안소 종업부 모집에 관한 건’에는 현지 부대 사정에 따라 군 ‘위안소’를 운영한 것으로 나와있다.

이놈들이 와서 하는 행위가 뭐냐 접수에 와서 먼저 그 앞에 전시된 ‘위안부’ 사진들을 쭉 봅니다. 자기가 지정된 그 번호에 가서 줄을 서게 됩니다. 복도에 있는 놈들이 시간을 보다가 시간이 지나면 못 살게 문을 걷어찹니다.

신낙천 / 함경북도 청진시 방진동 주민

1944년에 연합군이 촬영한 이 사진은 일본군 ‘위안부’가 얼마나 잔악한 피해를 입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만삭 소녀가 북한 거주 ‘위안부’ 故 박영심 할머니다. 이토 다카시는 1999년 박영심 할머니를 만나 인터뷰했다.

▲ 故 박영심 할머니는 일제가 항복한 뒤 연합군에 포로로 붙잡혔다. 오른쪽 임신한 소녀가 박영심 할머니다.

▲ 故 박영심 할머니는 일제가 항복한 뒤 연합군에 포로로 붙잡혔다. 오른쪽 임신한 소녀가 박영심 할머니다.

북한 거주 일본군 ‘위안부’는 218명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끌려가기 전에는 식모, 보모, 가사노동 등의 직업을 가졌던 조선의 평범한 소녀들이었다. 이 평범한 소녀들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일종의 군수품 취급을 당했다.

박영심 할머니는 17세에 중국 난징의 일본군 ‘위안소’에 끌려가 3년동안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그 뒤에는 싱가포르에서 1년, 미얀마 전쟁터로 끌려가 2년. 모두 6년동안 지옥 같은 곳에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일본군의 만행에 저항하면 돌아오는 것은 더 큰 고통과 상처였다.

▲ 故 박영심 할머니(1921-2006)는 17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 故 박영심 할머니(1921-2006)는 17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일본군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콱 쨌지요. 뭐 피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중국 병원이 있어서 이거 가서 꿰매고… 상처가 한 50cm 될 것 같아. 그 일본놈이 정말 만행을 한 생각하면… 17살 먹었다고 해도 아기입니다. 아기. 정말 생각하면 때려죽여도 시원찮습니다.
故 박영심 할머니

▲ 故 곽금녀 할머니(1924-2007)는 17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 故 곽금녀 할머니(1924-2007)는 17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장교들이 들어와서 막 안고 그런 거 막 싫다 그러니까 이 손을 잡아당겨서 비틀면서… 나이 16살 먹은 아이가 알긴 합니까. 자궁이라는 건 조그맣고 하니까 그런 다음에 처음 깨서 보니까 아래 피투성이가… 걷지를 못하고 그렇게 악독한 행동을 해놓고서는 자기 잘못을 빌지 못하고. 여자 20명이 다 그랬습니다. 16살, 17살 먹은 소녀를 끌어다가…
故 곽금녀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는 매독 예방주사를 맞아가며 일본군에 희생당했다.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는 매독 주사의 부작용은 불임이다.

▲ 故 로농숙 할머니(1920년 생. 생사 불명)는 16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 故 로농숙 할머니(1920년 생. 생사 불명)는 16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주사 이름이 606호라 그래요. 그런데 그것 맞으면 아이가 안 생긴다고 해서 놓더구먼요. 한 주에 한 번도 놓고 한 달에 두번도 놓고 그렇게 해요. 그 주사 맞으면요 한 30분은 정신이 없어서 드러누워 있어야 해요. 군복을 입고 들어와서 주사를 놓아요.. (일본군이) 제일 많이 올 때가 일요일, 한 30명 씩 오는 날도 있고…
– 故 로농숙 할머니

북한의 ‘일제의 조선 강점 피해조사위원회’는 일제와 일본군이 ‘위안소’를 설치하고 조선 여성 등 아시아 각국에서 20만 명을 강제로 끌어와 일본군에게 ‘성봉사’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일제의 침략전쟁이 활발했던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일본군 ‘위안소’가 동아시아 곳곳에 있었다. 1942년 일제 육군성 과장회의 업무일지에는 당시 일본군 ‘위안소’가 중국과 동남아시아, 태평양 등에 400여 곳이나 설치돼 있다고 기록돼 있다.

▲ 故 유선옥 할머니(1923-2003)는 17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 故 유선옥 할머니(1923-2003)는 17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위안소’에서 어디 일절 나가지도 못하게 한단 말이야. 말 안 들으면 이렇게 죽인다 하는 식으로 모가지 툭툭 잘라서 우리 앞에 주고 벤 건 가마에 넣어다 삶더구먼. 삶아서 너네 한 모금씩 먹으라고 먹이더라고 강제적으로 먹여줘요.
故 유선옥 할머니

수많은 피해자들의 증언과 증거 기록이 있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로 연행한 증거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리고 99년 이토 씨가 처음 방문했을 때 남아있던 일본군 ‘위안소’인 ‘풍해루’는 16년 만에 사라져 밭으로 변해있었다. ‘은월루도 눈에 띄게 훼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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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그 누구보다 피눈물을 흘리며 평생을 살아온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은 고통스러운 증언을 남긴 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당시 지옥 같은 나날들을 회상하며 세상에 이야기를 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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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다른 거 없습니다. 그저 요구하는 건 보상을 우리 죽기 전에 해주는 것을 바랍니다. 그것도 국민 기금으로 하지 말고 나라의 돈으로 하라. 나라가 할 일이지. 국민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다. 정말이지 가슴이 막 터져오고 또 터져오고 내 배가 찢어진 것 생각하면 어떻게 할지 몰라.

– 故 박영심 할머니

금, 2016/03/1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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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가 박근혜 대통령의 올케 서향희(42) 변호사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변호사를 휴업한 상태였던 2013년 ‘철거왕 이금열’ 사건에 간여한 행위가 변호사법에 위반되는지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변협의 이번 조사는 지난 8월 25일 방송된 뉴스타파 보도에 따른 조치다. 뉴스타파는 ‘대통령 올케 서향희, 2013년 철거왕 이금열 사건 개입’ 제하의 기사를 통해, 변호사 업무를 휴업 중이던 서 씨가 횡령, 정관계 로비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던 다원그룹 이금열 회장 사건에 간여한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서 씨가 검찰 수사를 피해 도피 중이던 이금열 회장을 만나 사건 수임을 약속하고, 자신과 특수관계인 법무법인을 끌어들인 뒤, 5억 원의 변호사비 흥정에도 직접 간여했다는 내용이었다. 서 씨는 뉴스타파와 가진 6차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관련 의혹을 상당 부분 시인했다.

변협 법제팀의 한 관계자는 뉴스타파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변협 소속 변호사로부터 서향희 변호사의 변호사법 위반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질의가 들어와 조사가 시작됐다. 현재 법제팀에서 변호사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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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향희 사진 제공 : 한국일보

서 씨가 ‘철거왕 이금열’ 사건에 끌어들인 법무법인 세한은 서 씨와 특수관계인 곳이다. 2011년 서 씨가 설립해 대표를 맡았던 법무법인 새빛 출신 변호사 7~8명이 주축이 돼 2013년 2월 설립됐다. 대표를 맡고 있는 송모 변호사(전 부장판사)는 서 씨의 연수원 시절 은사이자 한때 법무법인을 함께 운영했던 사람이다.

서향희 변호사, ‘예비 직장’에 사건 알선 의혹

그러나 서 씨와 법무법인 세한의 관계는 단순한 인적관계를 넘어선다. 뉴스타파는 서 씨와 관련된 취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 법무법인이 서 씨에게는 조만간 입사할 ‘예비 직장’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결정된 직후인 2012년 8월 변호사 업무를 중단했던 서 씨가 수차례 세한 측 관계자를 통해 변호사 업무 재개를 타진했고, 세한 측과 입사 시기를 저울질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법무법인 세한의 이영세 고문변호사(전 부장검사)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작년쯤에도 서 변호사가 ‘언제쯤 변호사 업무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냐’고 내게 문의하면서 자문을 구한 일이 있다. 나는 ‘(2016년 4월) 총선이 끝날 때까지는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서 변호사가 변호사 업무에 복귀한다면, 당연히 세한에서 시작할 것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법무법인 세한에 이금열 사건을 소개할 당시 서 씨는 변호사를 휴업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법무법인 세한은 설립 당시부터 서 씨와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홍보하며 중요한 영업전략으로 삼았다. 세한 홈페이지에 “서향희 변호사와 함께 하던 변호사들이 만든 법무법인”이라는 내용의 소개 글을 게재했을 정도. 이영세 세한 고문변호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법무법인 설립 당시 공동대표였던 강모 변호사는 홈페이지에 버젓이 서 변호사와의 관계를 홍보했다. 내부에서 이것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2013년 이금열 회장 사건 당시에도 검찰은 서향희 변호사가 이금열 회장 사건에 간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변호사의 설명대로라면, 서 씨가 이금열 회장 사건을 세한에 소개한 행위는 단순 알선이 아닌 ‘예비 직장인의 영업활동’이 된다. 또 소속 변호사도 아닌 서 씨가 법무법인의 영업활동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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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향희 사진 제공 : 한국일보

현행 변호사법은 ‘금품·향응 또는 그 밖의 이익을 받거나 받기로 약속하고 특정 변호사나 그 사무직원에게 사건을 소개·알선하는 행위를 하지 못한다’(34조)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서 씨의 사건 소개와 입사 약속 등이 서로 관련돼 있다면, 대가에 대한 약속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한 변호사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할 여지가 생긴다. 이와 관련 변협의 한 관계자는 “민감한 사안이다. (뉴스타파) 보도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신중히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향희, “법무법인 세한에 알선한 사건 더 있다”

뉴스타파는 서 씨와 주고받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서 씨가 이금열 회장 사건 외에도 여러 건의 형사사건을 ‘예비 직장’인 법무법인 세한에 소개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서 씨는 8월 13일 뉴스타파에 보낸 답변을 통해 “(이금열 사건 외에) 한 두 개 형사 사건을 법무법인 세한에 더 소개했다. 그 중엔 의뢰인과 고소인이 같은 사람인 사건도 있었다…내 새끼같은 변호사들이 일하는 곳이어서 다른 곳에 사건을 맡기지 않고 세한에 소개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 씨의 변호사법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은 9월 19일 열리는 변협 법제위원회에서 심의될 예정이다. 만약 변호사법 위반 사실이 인정되면, 변협은 윤리위원회를 통해 징계절차에 착수하게 된다.


취재 : 한상진 강민수
촬영 : 김수영

금, 2016/09/0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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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역사학계는 물론 과거 여당측 인사들조차 반대했던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로 바꾸어야할 명분이 거의 없는데도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데는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정부시절의 역사를 미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올바르고 균형잡힌 역사교과서가 국정교과서?

지난 10월 12일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방행 방식을 현행 검정에서 국정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2011년 역사과목 교과서가 완전히 검정체제로 바뀐 지 6년만의 일이다. 교육부는 이념논쟁을 종식하고 올바르고 균형잡힌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해선 국가가 발행하는 국정체제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974년 박정희 정부가 도입한 국정 역사교과서는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1997년 고교 근현대사가 검정체제로 바뀐데 이어 2011년 중고교 역사 과목 전체가 검정체제로 바뀌었다. 당시에는 여야 의원 모두 검정 교과서를 독재시대를 청산한 결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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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시절 사용된 고교 국사교과서

▲ 유신시절 사용된 고교 국사교과서

이런 검정 역사교과서를 국정 체제로 바꾸겠다고 교육부가 검토한 건 불과 2년도 되지 않는다. 2013년 교육부 업무보고에는 교과서의 발행 방식을 바꾸겠다는 단 한줄의 언급도 나와 있지 않다가 2014년 업무보고에 갑자기 등장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1월 친일, 독재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현장에서 거의 채택되지 않자, 2014년 2월 교육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이번 기회에 사실에 근거한 균형잡힌 역사교과서 개발 등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교육부 공문에 따르면 교육부는 이 지시를 받아 교과서 개선 작업을 추진했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지지하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현장에서 외면받자, 아예 국가가 발행하는 방식인 국정체제로 교과서 발행 방식을 바꿔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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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각계 의견수렴을 하겠다며 지난해 토론회와 여론조사를 실시했지만 그 결과도 발표하지 않았고 반대여론이 압도적이었던 토론회 결과도 무시했다.

2014년 8월 교육부가 주관한 교과서 발행 체제 개선 토론회 참석자 중 국정화 찬성자는 13명 중 3명에 불과했다. 당시 토론회에 참석해 국정화 반대 의견을 냈던 강종훈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당시 토론회 의견을 반영했다면 지금의 국정화 방침이 나올 수 없다”며 “정부는 다수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입맛에 맞는 의견만 들었다. 이는 상식적인 여론수렴을 거쳤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뿐 아니라 현재 국정화 추진 핵심인사인 황우여 교육부장관, 김재춘 교육부 차관,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도 과거에는 모두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반대했었다. 불과 2년 전에는 새누리당 부설 여의도 연구소에서도 국정화를 반대하는 취지의 보고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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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모든 것이 바뀌었다.

도대체 왜?

이처럽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국정화 강행의 이유에 대해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버지인 박정희를 관계를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임시정부 국무위원 차리석 선생의 후손인 차영조 씨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인 박정희와 김용조의 친일행적을 미화하기 위해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라며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 아버지의 군사쿠데타와 유신을 미화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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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방송출연을 통해 자신의 역사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바 있다. 1989년 MBC 박경재 시사토론 ‘박근혜 씨 아버지를 말하다’에서 당시 박 대통령은 “나는 5.16을 구국의 혁명이라고 믿고 있다”며 “그동안 매도당하고 있었던 유신, 5.16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 해야한다. 그게 뭐가 잘못됐느냐고 당장 비난을 받더라도 사람들을 설득시켜야 한다. 그게 정치”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그는 “그래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런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다. 부모님에 대해서 잘못된 것을 하나라도 바로 잡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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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 발언에 담긴 역사 인식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1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발표에 지지를 표하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가치관을 확립하도록 하는 것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우리가 필연적으로 해주어야할 사명”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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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는 제대로된 국정 교과서가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미 연세대를 시작으로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각 대학 사학과 교수들의 성명이 이어지고 있다.

목, 2015/10/1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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