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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 31회 예고 “누구를 위한 설악산 케이블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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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 31회 예고 “누구를 위한 설악산 케이블카인가?”

익명 (미확인) | 목, 2015/10/29- 21:47

지난 달, 설악산 대청봉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한 가족의 동영상이 SNS에서 화제가 됐다. 이들은 설악산 정상에서 연주를 한 이유에 대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으로 파괴될 지 모르는 설악산의 아름다움에 대해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국립공원에 케이블카가 설치되는 것은 지난 1980년 내장산 케이블카 이후 35년 만이다.

▲ 설악산 대청봉에서 연주회를 열어 화제가 된 박영욱(42. 원주시)씨 가족

▲ 설악산 대청봉에서 연주회를 열어 화제가 된 박영욱(42. 원주시)씨 가족

▲ 설악산 국립공원,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는 지난 8월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조건부 승인했다.

▲ 설악산 국립공원,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는 지난 8월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조건부 승인했다.

지난해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강원도 평창을 방문해 관광객 유치를 위해 ‘설악산 케이블카 조기 추진’을 언급한 이후 사업은 일사천리로 추진이 됐다. 박대통령의 언급이 있은지 일년도 되지 않은 지난 8월 28일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는 산양 등 멸종 위기종 보호대책 수립과 탐방로 회피 대책을 강화하는 등의 7가지 사항을 보완하는 것을 전제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조건부 승인했다.

▲ 1970년 부터 운행 중인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이 완공되는 2018년이 되면 설악산에는 2개 노선의 케이블카가 운영된다.

▲ 1970년 부터 운행 중인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이 완공되는 2018년이 되면 설악산에는 2개 노선의 케이블카가 운영된다.

케이블카 가이드라인에 부합되지 않는다며 지난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나 무산되었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사업’. 그동안 불허의 이유였던 7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조건이라는 단서까지 달아가며 환경부가 사업을 승인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립공원 설악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케이블카 설치 사업의 진실을 뉴스타파 <목격자들>이 취재했다.


방송 : 10월 31일 밤 11시 시민방송 RTV
다시보기 : newstapa.org/witness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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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tophobia’ 치과 공포증을 뜻한다. 치과를 찾는 환자들이 공포와 불안을 느낀다는 것인데, 최근에는 치과 치료 공포증보다는 오히려 치료비에 혼란을 느끼는 환자들이 더 많은 듯 하다.

진단부터 치료비까지 ‘고무줄’ 진료비

최근 대학생 임 모 씨는 사랑니 발치를 위해 한 치과의원을 찾았다. 치아가 많이 손상되었다며 치료비 250만 원을 진단받았다. 치료비가 만만치 않아 또 다른 치과 의원 2곳을 더 들렀는데, 여기서는 각각 280만 원, 100만 원 가량의 치료비를 진단받았다. 치료해야 할 충치의 개수도 모두 달랐다.

목격자들 제작진이 서울 시내 10개 치과 의원에서 진료를 받았더니…

뉴스타파 목격자들 제작진은 직접 서울 내 10곳의 치과 의원을 찾아 진료를 받아봤다. 제작진은 이미 3년 전 치아 4개의 충치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 치과의원별 진료 결과는 어땠을까? 10곳 모두 치료해야 할 충치 진단은 물론 치료 비용도 달랐다.

1개의 충치 치료만으로 충분한다고 진단한 곳도 있었고 최대 4개의 치아 치료가 필요하다는 곳도 있었다. 치료비 역시 최소 8만 원에서 최대 90만 원까지 제각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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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타파 제작진이 서울시내 치과의원 10곳에서 받은 진단 내용

▲ 뉴스타파 제작진이 서울시내 치과의원 10곳에서 받은 진단 내용

최근 몇년 사이 과잉 치과 진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35년 동안 치과를 운영해온 한 치과의원 원장은 과잉 진료의 원인으로 치열한 경쟁 상황을 지적했다. 우후죽순 생겨난 치과의원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료비 단가를 낮추게 되고, 수익을 위해 불필요한 치료를 권유한다는 것이다. 2017년 현재 전국의 치과 의료기관은 17,463개다.

대한치과의사협회는 과잉진료는 일부 치과의 일탈행위이고 오해라고 설명했다. 초기에 진행되는 충치에 대해 설명하는 의사와 설명하지 않는 의사가 있기 때문에 충치 개수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재윤 치과의사협회 홍보이사는 “실제 충치가 없는데도 있다며 치료를 하게끔 하는 치과의사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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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비 담합 의혹도 제기된다. 지난 8월부터 충주시 치과의사회가 담합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 조사를 받고 있다. 충주 치과의원들끼리 임플란트 수가 등 진료비를 담합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치과 의원에 보복을 했다는 것이다. 지난 1999년과 2008년 각각 부산시치과의사회와 광주전남지역 치과의사회가 진료비 가격 등을 담합했다가 적발돼 과징금 부과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이번주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치과 의원들의 과잉 진료 논란과 담합 행위 의혹을 취재했다.


취재작가: 오승아
글 구성: 정재홍
촬영, 연출:김한구

월, 2017/09/1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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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태어났던 지난해 1월,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검찰 조사가 시작됐고, 전 국민이 참사의 진실을 알기 시작했다. 난 대부분의 피해자들처럼 아파트에 살고 있고, 요즘처럼 건조한 날씨에는 가습기를 자주 켠다. 그리고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면 우리 부부는 함께 밤을 새우며 아이 곁을 지킨다. 요즘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3월 말부터 8개월째이다.

참사가 일어난 지 6년이 지났다. 환경부에서 발표한 잠재적 피해자는 30-50만 명에 이른다. 피해를 신청한 5,945명 중 3,610명은 아직 피해 여부에 대한 판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6년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조사가 완료된 2천여 명 중 3백여 명만이 피해 인과관계가 증명됐고, 대다수의 신청자들은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지난 8월 27일 6주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대회가 열렸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특별법’에 따른 환경부의 대책을 설명하는 시간은 피해자로 인정받지 신청자들의 하소연과 피해 인정 범위 확대 요구로 채워졌다.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대회(2017년 8월 27일)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대회(2017년 8월 27일)

가습기 살균제 3단계 피해자 윤미애 씨는 지난 5월 폐이식 수술을 받았다. 2015년부터 서서히 나빠졌던 몸 상태는 지난 1월부터 급격히 나빠졌고 폐이식 수술까지 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지만 아직은 안심하기 힘든 상황, 게다가 호흡량을 늘리기 위한 치료 때문에 목소리까지 잃었다. 소리는 나오지 않지만 그녀의 입이 말한다.

어쩔 수 없이 몸이 아프고 힘든데 금전적인 것까지 너무나 힘든 상황이라서 부담을 덜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애들이 보고 싶어요 아이들이 우울증이 오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빨리 집에 가고 싶어요.

윤미애 씨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윤미애 씨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윤미애 씨

2년 전 폐이식 수술을 받은 3단계 피해자 안은주 씨는 운동선수 출신으로 가습기 피해를 입기 전 생활체육선수와 체육교사로 활동했다. 폐이식 수술을 받기 전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피해자 구제 활동에 앞장섰다. 지난 8월 8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 시행을 하루 앞두고 새로 부임한 김은경 환경부장관이 안은주 씨를 찾았다. 그간 참았던 울음이 쏟아졌다.

정부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왜 1단계 2단 3단계 나눠가지고 대체 어쩌란 말이에요 지금.

안은주 씨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안은주 씨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안은주 씨

김은경 장관은 1, 2, 3, 4 피해 단계 구분을 없애고 피해자 인정을 확대하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하지만 단계 폐지나 피해 인정 확대는 시행되지 않았고, 안은주 씨와 윤미애 씨처럼 중증 환자 4가족에 대해서만 3,000만 원의 긴급의료비 지원이 있었을 뿐이었다. 폐이식 수술 비용 때문에 아직 수술을 받지 못한 채, 가족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생을 이어가는 박영숙 씨와 남편은 여전히 소극적인 피해 인정기준에 대한 문제 제기를 위해 응급차에 몸을 싣고 기자회견에 나섰다. 남편 김태종 씨가 마이크를 들었다.

이 사람 같은 경우는 죽는 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거든요, 집사람은 개인회생 중이고 저는 신용 회복 중입니다. 앞으로 폐이식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몇억이 들어가는데, 그 비용을 저희는 감당할 수가 없어요.

김태종 씨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박영숙 씨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박영숙 씨

지난 11월 23일 사회적 참사 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위해 가습기 살균제 3, 4단계 피해자들이 영하의 날씨에도 국회 앞에 텐트를 쳤다. 법은 통과됐지만 아직도 해결되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들의 바람이 이뤄지길 희망한다.

▲ 국회에서 농성 중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 국회에서 농성 중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제작 : 김종관 독립다큐감독

금, 2017/12/2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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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빈딘성에 있는 떠이빈 사의 옛 이름은 ‘빈안 사’였다. ‘빈안’은 우리말로 ‘평안(平安)’을 뜻한다. 그런데 1966년 이후 ‘서쪽의 영광’이라는 뜻의 ‘떠이빈(Tay Vinh·西榮)’으로 이름을 바뀌었다. 마을 주민들은 더 이상 평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6년 2월부터 3월 사이에 빈딘성 15개 지역에서 민간인 학살이 벌어졌다. 이른바 ‘빈안학살’ 희생자는 1004명. 대부분이 노인, 부녀자, 아이들이었다. ‘빈안학살’을 자행한 것은 한국군 맹호부대 3개 중대로 파악됐다. 종전 이후 베트남 정부가 조사한 결과다.

베트남 사람들은 ‘빈안학살’이 있었던 시기에 맞춰 ‘따이한 제사’를 지낸다. ‘따이한’은 베트남어로 ‘대한’을 의미한다. ‘따이한 제사’는 온 마을 사람들이 한 날 한 시에 몰살 당했기 때문에 마을 단위의 합동 제사로 진행된다.

▲ 2016년 2월 25일, 베트남 고자이 마을에서는 한국군에게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유가족을 중심으로 한 합동제사가 이루어졌다. 이른바 ‘대한’이라는 의미의 따이한 제사라고 불린다.

▲ 2016년 2월 25일, 베트남 고자이 마을에서는 한국군에게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유가족을 중심으로 한 합동제사가 이루어졌다. 이른바 ‘대한’이라는 의미의 따이한 제사라고 불린다.

지난 2월 25일, ‘빈안학살’ 지역인 고자이 마을에서 50주기 따이한 제사가 열렸다. 이 날은 한국 평화기행단 일행도 제사에 참석했다. 한국인이 따이한 제사에 참배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학살 피해 유가족들은 한국인을 경계해 왔다.

제사상 옆에는 위령비와 벽화가 있다. 벽화는 ‘빈안학살’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려졌다고 한다. 벽화 속 수류탄을 손에 든 한국군, 그의 군복 팔뚝 위에는 호랑이 마크가 표시돼 있다. 맹호부대 마크였다.

▲ 따이한 제사가 열리는 고자이 마을에는 당시 학살 현장의 벽화가 설치되어 있다.

▲ 따이한 제사가 열리는 고자이 마을에는 당시 학살 현장의 벽화가 설치되어 있다.

▲ 베트남 빈안(현 빈딘) 지역에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모자이크 벽화가 있다. 군복에는 맹호부대 마크가 그려져있다.

▲ 베트남 빈안(현 빈딘) 지역에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모자이크 벽화가 있다. 군복에는 맹호부대 마크가 그려져있다.

취재진은 ‘빈안학살’ 생존자인 응우옌 떤 런 씨를 만났다.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도 ‘빈안학살’에서 희생됐다. 한국군들은 마을 주민들을 모두 마을 앞 들판으로 모이게 했다. 런 씨도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끌려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모든 총기들이 마을 주민들을 향해 발포되기 시작했다, 포연이 가득했고 수류탄도 곳곳에서 터졌다. 런 씨는 어머니가 자신을 품는 탓에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시 그의 나이가 15세였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떤 런(65세)씨가 학살 현장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떤 런(65세)씨가 학살 현장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포연이 가득했어요. 그 속에서 저는 직접 제 눈으로 봤습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가 터졌고 어떤 사람은 팔이 잘려나갔고 어떤 사람은 다리가 잘려나갔고 어떤 사람은 창자가 배 밖으로 다 나와 있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아픈 광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수류탄을 맞은) 어머니 다리는 완전히 사라졌고요. 하반신이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위쪽으로도 굉장히 심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여동생은 머리가 터졌는데 온 사지를 비비면서 광란적으로 그렇게 비명과 신음을 질러대다가 오후 9시에 죽었어요. 제가 다시 의식을 찾고 눈을 떴을 때 일어나보니까 세상에 저 혼자인 거예요. 그때는 제가 “엄마… 하나님…”이란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응우옌 떤 런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

그렇다면 참전군인들은 기억은 어떨까?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국내 베트남전 참전 단체 관계자들을 잇따라 만났다. 고엽제전우회와 베트남참전자회다. 이들 단체는 한국군이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는 “당시 작전을 하기 한 두 달 전부터 주민들에게 마을을 빠져나가라고 하는 선무활동을 진행했기 때문에 민간인 학살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김성욱 사무총장은 “한국군은 베트남전에서 민간인 학살을 하지 않았다”며 ‘빈안학살'을 부인했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김성욱 사무총장은 “한국군은 베트남전에서 민간인 학살을 하지 않았다”며 ‘빈안학살’을 부인했다.

내가 몇 번 누누이 얘기하지만 우리 한국국민이 그렇게 독하고 잔인하지를 못해요. 얼마나 한국 사람들이 인정이 많고 가슴이 넓고 감성이 풍부한데 그렇게 어린아이들을 무자비하게 죽여. 그건 아니다 이런 얘기예요. 그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내가 가서 무릎 꿇고 석고대죄할게요
김성욱 /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사무총장

또 다른 베트남 전쟁 관련 단체 역시 ‘빈안학살’을 부인했다. 우용락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회장 등 관계자들은 “한국군은 대민활동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민간인들에게 인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다만 베트콩과 민간인을 구별하기 힘들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베트콩들이 민간인이었던 것처럼 꾸미고 뻥튀기를 하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에서 취재진에 보여준 사진, 이 단체는 전쟁 중 민간인과 베트콩의 구별이 힘들다는 점을 강조했다.

▲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에서 취재진에 보여준 사진, 이 단체는 전쟁 중 민간인과 베트콩의 구별이 힘들다는 점을 강조했다.

쏘다 보면, 전쟁하다 보면 어린 애도 맞을 수 있는 거고 안 나오는 사람들 99%는 전부 다 사상이 안 좋은 사람들이다, 베트콩들이다. 그런데 지금 북베트남이 이겨버리고 나니까 자기들이 전부 다 민간인이었던 것처럼 해서 피해를 봤다, 이렇게 뻥튀기를 해서 얘기하는 그런 게 있어요.
우용락 /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회장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의 기억은 어떨까? 수소문 끝에 학살 현장에 있었다는 군인을 찾았지만 대부분 만남을 피하거나 인터뷰를 거절했다. 취재진은 참전군인 김영만 씨를 만났다. 김 씨는 현재 마산,창원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있다. 김 씨는 1966년 10월부터 부상으로 제대하기 전까지 5개월 동안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해병 청룡부대 소속이었다.

김 씨는 전쟁 중 사람을 죽이는 데 점점 무감각해져가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가 있던 부대 안에서는 베트콩으로 의심돼 포로들을 총살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처형되는 포로들이 베트콩인지 민간인인지 확인하는 절차조차 없었다고 했다. 복무 기간은 짧았지만 그는 전쟁의 광기를 경험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사람이 동물 중에서도 가장 빨리 미쳐버리는 동물이 인간이지 싶어요. 거의 복수심이지. 전우들이 많은 피해를 입고 한 것에 대해서 복수를 해야 할 때,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는 복수의 대상이 베트콩이죠. 베트콩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마을 전체에 확장을 해버리니까 노인이고 애들이고 할 것 없이 막 그냥 무차별적으로… 그래서 그런 민간인 학살이 생긴 거죠
김영만(70세) / 베트남전 참전군인

▲1966년 10월, 해병 청룡부대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김영만 씨. 베트남 포로를 처형한 경험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1966년 10월, 해병 청룡부대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김영만 씨. 베트남 포로를 처형한 경험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50년이 흐른 지금, 전쟁의 기억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전쟁 속에 있었던 이들은 종종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기억한다. 기억은 진실과 다르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이번 주에 이어 다음 주에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집중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연속 방송한다.


취재작가 박은현
글 구성 김근라
연출 김한구

금, 2016/05/2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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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9일 세월호가 올라왔다. 참사 이후 1,089일 만이다.3년만에 수면위로 올라온 세월호는 부서질듯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들뜨며 탔던 하얀배는 곳곳이 녹슬고 훼손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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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습자 가족들은 사진 없이 이름만 있는 영정을 들고 세월호의 마지막 항해를 동행하며 목포 신항으로 이동했다. 가족들은 목포 신항에서 새로운 기다림을 시작했다.

그러나 육상 거치 작업부터 더뎠다. 선체 무게를 제대로 측정해 대비하지 못한 탓이다. 가족들은 배 안에 쌓인 뻘을 맨 손이라도 파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문 감식가 없이 작업이 이뤄지면서 미수습자의 유골로 추정된 뼛조각이 동물뼈로 확인되는 등 가족들에게 또 다른 아픔을 안겨주기도 했다.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달라지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냥 배를 앞에 두고 바라보고만 있는 심정이 참… 미안하다, 미안할 뿐이죠. 아침에 일어나서 배 앞에 다녀오면 (다윤이한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허흥환 (미수습자 허다윤 아버지)

2014년 4월 16일 날, 그 시간에 멈춰 서있는 9명의 가족입니다. 어떤 것도,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은화, 다윤이, 현철이, 영인이, 양승진 선생님, 고창석 선생님, 권재근 님, 어린 혁규, 이영숙 님, 마지막 1명까지 최선을 다해서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겠다는 그 약속을 정부와 국민이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이금희 (미수습자 조은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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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미수습자 수습과 선체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었다. 이제 아이들은 엄마의 바람대로 집에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지난 20여 일 동안 세월호 인양, 육상 거치 작업의 현장과 미수습자 가족들의 또 다른 기다림을 카메라에 담았다.


취재작가 김지음
글 구성 고희갑
연출 박정대

금, 2017/04/1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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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8일 반올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이종란 노무사가 새로운 직업병 제보자를 만났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2011년부터 14년까지 삼성 반도체 화성공장 협력체 직원으로 일했다고 했다. 그리고 퇴사 이듬해 악성 림프종 판정을 받았다. 협력업체 직원이던 그는 설비 세척, 소모품 교체, 재조립 업무를 담당했다. 그 과정에는 여러 가지 화학약품이 사용된다고 말했다. 당시 처리했던 화학 물질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는 잘 알지 못했다. 회사에서 제대로 알려주는 이는 없었다.

3월 29일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가 229번째 삼성 직업병을 호소하는 제보자를 만나고 있다. 그는 약 3년간 삼성반도체 화성공장 협력업체 직원으로 일하다가, 최근 악성림프종 판정을 받았다.

▲ 3월 29일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가 229번째 삼성 직업병을 호소하는 제보자를 만나고 있다.
그는 약 3년간 삼성반도체 화성공장 협력업체 직원으로 일하다가, 최근 악성림프종 판정을 받았다.

지금까지 반올림에 삼성 반도체와 LCD 관련 공장에서 일하다 직업병을 호소한 이는 229명에 이른다. 이 중 2007년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반도체 원판(웨이퍼) 세정업무를 담당했던 황유미 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숨지는 등 모두 79명이 사망했다.

故 황유미 씨의 생전 모습

▲ 故 황유미 씨의 생전 모습

삼성 측은 최근 시설 현대화로 더욱 안전해졌다고 말한다. 또 ‘유해물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 ‘업무와는 관계는 없는 일’이라며 직업병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삼성 반도체와 LCD 작업장의 안전보건진단 보고서도 대부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영업 비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반올림 측은 노동자의 안전 관련 사안을 ‘영업 비밀’을 명분으로 비공개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삼성이 10년 동안 풀지 않고 있는 직업병 문제. 반올림과 일부 직업병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오늘도 삼성전자 사옥 인근에서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500일이 넘고 있다. 이들의 바람은 삼성이 직업병 책임을 인정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더 이상 직업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취재작가 김지음 글 구성 김근라 연출 김한구

금, 2017/03/3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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