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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327] 교과서 전쟁, 야권이 놓치고 있는 것은… :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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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327] 교과서 전쟁, 야권이 놓치고 있는 것은… :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필요하다

익명 (미확인) | 수, 2015/10/28- 12:36

 

교과서 전쟁, 야권이 놓치고 있는 것은…

[시민정치시평]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필요하다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정부와 여당이 뜬금없고 어처구니없는 '역사 전쟁'을 시작했다.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정치적 합리성도 기본적인 양식도 없다. 역사학계 전체를 좌파라고 매도하질 않나, 자신들이 검정한 교과서가 주체사상을 가르친다고 생떼를 쓰지 않나, 막가파도 이런 식의 막무가내 몽니는 부리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전쟁이 시작된 데 대해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다. 이건 그냥 최고 권력자의 정치적 신원(伸冤) 투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지극히 위험한 정치와 교육의 사사화(私事化)다. 나라 꼴이 이게 뭔가 모르겠다.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권이 저항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어쩐지 길거리에 나온 어린 학생들만도 못한 인식으로 이 사태에 대처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뜸 '역사 왜곡'이 문제란다.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교과서가 역사 왜곡을 할 것이라서 반대한단다. 일단 논리적 허점부터 너무 분명해서, 당장 반박당하고 말았다. 그래도 계속해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이 친일을 했던 사실을 덮자고 이 모든 사단이 났다는 둥 하면서 열을 올린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지만, 정치적으로는 결국 모종의 음모론 이상이 되기 힘들 텐데도 자꾸 집권세력의 이념전쟁 프레임에 갇히려고만 한다. 어찌 이리도 무능한지 모르겠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신원투쟁을 멈출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현실적으로 교과서 국정화를 막을 마땅한 제도적-정치적 수단도 없는 것 같다. 야권은 '노동 개악' 같은 다른 중요한 의제들을 제쳐 놓고 마냥 이 문제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일 터인 데다 제대로 싸움을 이끌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결국 우리 시민들이 나서 정부 여당이 국정화 방침을 철회하도록 계속 압력을 가하는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반대의 초점을 좀 더 예리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뜬금없이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집권 세력이 이번 전쟁을 시작하면서 가지고 들어가는 강한 교육적 시각이 하나 있다. 바로 교과서를 통해 어린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를 알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근본 시각이다. 그 올바른 역사가 무엇이든, 이런 시각이 지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배우는 학생들의 존엄성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학생들은 그저 교과서와 교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특정한 방식의 사고와 지식을 주입받는 철저하게 수동적인 존재로만 전제된다. 학생들이 아직 미숙하기는 해도 온전하게 존엄한 시민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점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 야권이나 시민사회의 일부처럼 계속 역사 왜곡이나 '친일 미화' 따위에만 반대의 초점을 설정한다면, 이는 사실 집권 세력과 동일한 근본 시각을 공유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린 학생들이 국정 교과서 따위를 통해 기성세대가 원하는 방향의 생각을 갖도록 하겠다는 그와 같은 '주입식 교화 교육'에 대한 발상은 사실 집권 세력이 가령 전교조가 현재의 검인정 교과서로 학생들을 좌경화시킨다고 비난할 때에도 바탕에 깔고 있는 교육관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보다도 민주공화국의 기본 이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런 발상은 결국 교육을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근본에서 학생들을 저마다 불가침의 존엄성을 지닌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생각의 참된 주인이 되고, 그리하여 참된 시민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번 역사 전쟁의 격렬한 외양 뒤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에서 진짜로 심각한 문제는 단순히 역사 왜곡이나 친일 미화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헌법 정신을 부정하고 자라나는 학생들의 '민주적 시민성'을 왜곡할 것이라는 데 있다. 그것은 미래의 시민들을 저마다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당당한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지배세력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내면화한 '신민(臣民)'으로 길러내겠다는 은폐된 정치적 욕망의 표현일 뿐이다. 이는 결국 우리 학생들이 미숙하다는 이유로 그 인간적, 시민적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 수많은 어린 생명을 앗아갔던 그 '가만히 있으라' 교육을 더 강도를 높여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여기에 초점을 두고 싸워야 한다.

 

교육에서 어떤 사안에 대한 한 가지 시각만을 강요하고 대안적 관점들을 숨기는 것은 결국 피교육자를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인간적 주체로서가 아니라 조작 가능한 '사물' 같은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어리더라도 우리 학생들의 인간적, 시민적 존엄성을 인정한다면, 교육은 역사 문제든 다른 사회 문제든 다양한 시각과 논점을 제시하고 토론과 논쟁을 통해 그들이 스스로 세상과 삶을 보는 눈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데에 그 기본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소모적인 역사 전쟁이나 이념전쟁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이라도 민주공화국에서는 역사 문제처럼 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이견이 분분한 문제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구성원 모두가 신뢰할 만한 원칙을 찾아내는 일에 나서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결정적인 모범 사례가 있다. 통일 전의 분단국가 독일에서도 교육 문제를 두고 우리와 비슷한 사회적 갈등이 있었다. 좌우 진영은 서로에 대해 '의식화' 또는 '우민화' 교육을 그만두라며 날 선 이념전쟁을 치렀더랬다. 이 와중에 1976년 독일의 한 소도시 보이텔스바흐(Beutelsbach)에서 좌우 진영을 망라하는 정치가, 연구자, 교육자가 함께 모여 치열한 토론 끝에 우리나라에서는 '민주 시민 교육'이라고 부르는 '정치 교육'의 원칙을 합의해 내었다. 바로 '보이텔스바흐 합의(협약)'다.

 

이 합의에 따르면, 정치 교육은 △일방적인 주입식 교화 교육을 금지하며(강제 또는 교화의 금지), △학문과 정치에서 일어나는 논쟁을 교육에서도 그대로 재현하고(논쟁성에 대한 요청), △학생들이 정치적 상황과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따라 정치적인 행위 능력을 기르게끔(분석능력 및 학생의 이해관계 중심) 해야 한다. 이 합의는 단지 독일에서만이 아니라 많은 다른 민주 국가들에서도 중요한 민주 시민 교육의 원칙을 제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가령 영국에서는 아예 교육법 안에 유사한 원칙들을 담았다.

 

이 합의는 그 핵심에서 학생들의 인간적, 시민적 존엄성에 대한 존중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일방적인 주입식 교화교육을 지양하고,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쟁을 교실에서 재현하는 방식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것은 결국 학생 스스로가 판단하고 결정하며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끔 성장시키겠다는 정신의 표현이다. 정치보다 교육적 관점이 우선해야 한다는 인식의 표현으로, 우리 헌법에 명기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원칙'도(흔히 정치적 사안에 대한 회피의 원칙으로 오해되지만) 바로 이 점을 지시한다고 해야 한다.

 

정치권, 특히 야권에 권고하고 싶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에는 단호히 반대하되, 엉뚱한 역사 전쟁 프레임에 말려 허우적거리지 말고 올바른 프레임을 설정하여 시민사회 및 학계 등과 함께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합의 같은 것을 이끌어낼 수 있는 초정파적 합의기구 같은 것을 만드는 데 앞장서라고 말이다. 핏대 서린 이념전쟁에 계속 휘말리기보다는 그런 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야권이 우리의 소중한 미래 시민들과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진정성과 성숙한 문제 해결 능력을 가졌음을 입증하는 더 나은 길일 것이다. 솔로몬 재판에서 진짜 아기 엄마는 아기를 반 토막 내서 나누어 갖자는 제안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진짜임을 증명했다. 자칫 나라를 죽일 수도 있는 이 치졸한 역사 전쟁의 프레임은 따르지 않고 조용히 거부함으로써 진짜 '애국 세력'임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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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시평 316]

 

국립현대미술관을 박차고 나온 젊은 예술가들

젊은 예술가들의 2015년

 

현시원 갤러리 시청각 큐레이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스케일이 큰 만큼 문제도 많다. 관장 선출에 난항을 거듭하는 최악의 행정 상황도 문제거니와 그 전시장에서 젊고 새로운 에너지를 찾기란 쉽지 않다. 거대한 동시대 미술관 안에서 젊고 날 선 에너지를 찾기 힘들다면, 새로운 현대 미술은 도대체 어디 숨은 걸까?

 

힌트는 서울 시내 안팎에 불꽃이 터져 나오듯 자리 잡은 신생 공간에, 그리고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를 통한 젊은 예술인들의 동시다발적인 교류와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2015년 서울에서 벌어지는 젊은 미술의 움직임에는 과거형의 행동과 아직 행동이 되지 않은 미래(의 바람)들이 뒤섞여있다. 문제의식과 해결 방안이 몇 겹으로 꼬인 그물과 같이 얽혀있는 것이다. 그리고 특정 세대나 집단, 모임과 불화하며 살아있는 제3, 제4의 다른 젊은 주체들은 부지불식 간에 무엇인가 도모한다. 미술을 둘러싼 지금 현실에서 분명한 것은 이 움직임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관 주도의 기회와 자본의 틀이 포섭하지 못하는 들쭉날쭉한 에너지들로 가득 찬 젊은 미술 주체는 스스로 공간이라는 조건을 무기로 새 창작, 기획, 전시 관람의 형태를 조직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변화를 요구하는 구체적인 주장을 내거는 '운동'을 조직하는가 하면, 신생 공간들이 모여 이전에 없던 행사를 기획한다. 이러한 젊은 미술의 움직임은 어떻게 '젊은 움직임'이라는 모호한 수사를 구체적인 장면으로 돌파해낼 수 있을까. 이 돌파의 뜀뛰기가 될 현실의 근거들을 몇 측면에서 들춰보면 이렇다.

 

우선 2015년 미술 현장 곳곳에서 '청년'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양식 자체의 변화를 볼 수 있다. 198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청년 작가' 전이라는 명칭으로 출발한 '젊은 모색' 전이 '젊은 작가'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 여기서 젊다는 것은 갑을 관계처럼 명시적이지는 않더라도 권력 관계에서의 하위 존재에 해당하는 이들을 지칭해왔다. 기관의 선택이나 지원을 받음으로써 미술 작업을 완성하는 기회를 얻으며 자신의 작품을 전시장을 통해 선보이는 일련의 행정 절차와 목표는 젊은 예술가가 스스로 만들어낸 구조가 아니었다. 꽤 괜찮은 예술 작품으로의 승인과 미술작가 되기의 절차를 기존 제도가 장착하고 답습하는 일종의 패턴이었다.

 

그런 반면 지난해 말 한 토론회 자리에서 의견을 제기해 촉발된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은 청년 스스로가 '청년'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자신들의 목표와 행동 절차를 구체적으로 도모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의미 이전에 그것은 돌출된 행동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현상이 분명했다. 미술계 파장 안에서 스스로를 청년이라 부르고 행동이라 주장하며 앞으로 해나갈 일을 점친다는 점에서 그것은 현재로써는 작아도 앞으로 커질 선언이기도 했다.

 

2015년 초 움직임을 가시화한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청년관을 언급하는 상징적이며 또 구체적인 이중 성격의 몸체를 내세웠다. 이와 동시에 지난 2월 홍대 강의실 727호에서 토론회와 특강을 개최하기도 했고 의견을 모으고 활동을 기록하는 웹사이트(☞바로 가기)도 열었다. 여기서 또 한 번 이때 발언하는 청년 예술가들은 1990년 또는 2000년대 중반 무렵의 젊은 작가들이 미대를 졸업하거나 유학을 다녀와 이제 막 신작의 아이디어로 가득한 상태로 기존 미술계의 선배 작가와 비교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강력하게 구분되었다. 2015년의 시점에 서 있는 모종의 청년 예술가는 2010년대 이후 착취와 기회의 무대를 무기력하게 회전하며 살아가는 동시대의 다른 청년들과 현실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문제적인 현실 주체로 자리했다. 기존 미술계의 입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작업의 활성화에 자극이 되는 작업실도, 전시도, 생활의 방식도 부재한 상황을 돌파하여 자체적으로 수립해나가고자 하는 방법의 창안이 핵심이 되었다. 왜 하필 국립현대미술관이냐며 의심과 의아함을 사기도 한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은 거대 미술관이 지리멸렬하게 자리하는 한 여전히 생동감 있는 의제로 잠시 숨을 고르는 듯 보인다. 청년 예술인을 위한 기회라는 모델을 청년들 스스로 수립하려는 사이 국립현대미술관은 여전히 관장직 선출에 실패했다.

 

사실 특정 의제를 지닌 운동이 미술계의 세대교체의 열망을 뚫고 등장한 것은 지금 이곳에 아무것도 없다는 의심에서 시작된 것이다. 누가 불러준 이름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전시 공간, 활동 공간, 교류 공간인 즉 신생 공간을 만들어 조직해내는 그들은 작가이기도 하고 지망생이기도 하고 관람자이기도 했다. 부채춤을 추며 리퍼트 미 대사의 쾌유를 응원하고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가 '주술'에 빠진 2015년 대한민국 현실을 살펴볼 때, 믿을만한 가치와 합리적인 형태의 제도는 기존 미술계에서도 기대하기 어렵다. 청년 미술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제도에 외화된 불만보다는 내재된 불안을 동력 삼아 현재 미술계에 에너지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서울 시내에 산재한, 이제 막 시작하는 '공간들'은 이들 젊은 미술가들의 생존, 다시 말해 존재의 필수불가결한 근거지가 된다. 지금 청년 예술가들이 터 잡은 곳은 관장 잡음을 둘러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상징하는 기존 기관이나 제도가 아니라 파편적으로 흩어지고 모이는 새로운 공간들인 것이다. 지금 서울을 무대로국리 생겨나고 있는 미술 공간은 사이즈도 형태도 운영 방식도 제각각이며,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부터 4층짜리 재개발을 앞두고 비어있던 건물에 이르기까지 속세의 다종 다기한 갈등과 조건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 하나의 이름으로 불러낼 수 없다. 대안 공간도 아니며 오직 신생 공간만도 아니고, 미술 공간도 아니며 공간이 아예 없기도 하다. 그러나 공간을 자기 주도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작가, 기획자, 비평가 등은 2015년의 시점에 유효한 미술 작업의 조건들을 만들어내고,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생동하는 관객들과 조우한다.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의 주력이 되었던 연말 토론회를 개최한 이들이 2013년 11월 말 문을 연 전시 공간 '시청각', '커먼센터'를 비롯해 '케이크갤러리', '반지하', '교역소' 등 서울에서 미술공간을 운영하는 작가 혹은 기획자였음을 떠올려보자. 미술평론가 임근준의 사회 아래, 기획집단 유능사가 기획한 '청춘과 잉여'의 폐막 즈음 열린 이 자리에서는 전시 공간을 운영하는 각 공간 운영자들이 각자의 상황을 발언하는 것에 이어 국립현대미술관에 청년을 위한 시공간을 요구하자는 구체적 발의로 이어졌다. 천차만별로 존재하는 청년 예술인의 새로운 움직임과 동선을 짜낸 것의 공통분모는 단연코 '공간'이자 이 공간을 꿰뚫어 젊은 작가들이 만들어낸 작업들로 이어내는 변화무쌍한 '시간'이었다. 현재 별다른 가시적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은 미술의 세대 변화를 주장하는 상징적 목소리로 여전히 동시대를 살며, 젊은 전시공간을 바지런히 찾아다니는 미술 관람객들과 조우한다.

 

한편 새로 생긴 공간 몇 곳을 이어 전시와 프로젝트의 다른 방식을 게임화한 '던전' 프로젝트는 확연히 다른 작품과 젊은 작가들이 다층적으로 응시하는 동시대를 이전과 다른 프리젠테이션 형태로 보여주었다. 더욱이 오는 10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상봉동 '굿즈' 등을 중심으로 15개의 전시공간이 자발적으로 주최해 열리는 '굿-즈'라는 행사는, 판매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알리려는 형태적 전환을 시도하는 새 시도로 이합집산하는 에너지를 힘 있게 모아보는 획기적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청년이 주도적으로 개입하고 짜낼 수 있는, 'K-아트'로 호명되고 수출되기를 목적으로 하는 도구적 예술이 아니라 기존 패턴의 고인 물을 뒤집어버리는 독자적 구조라는 점에서 2015년 현재 30여 곳에 이르는 개별 전시 공간의 폭발적 증가와 활성화는 주목해야 할 일대 사건이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만큼의 지속성을 갖느냐를 팔짱 낀 채 지켜볼 일이 아니라 그 지속성을 위해 행동하는 근본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의 젊은 작가들은 현실 정치 사회를 둘러싼 이슈를 소재화하거나 이를 재현하는 문제로는 현실을 꿰뚫어 나가 바라볼 수 없음을 안다. 현대 미술은 보이는 것으로 가득한 인터넷 이미지와 동행하고, 축적이 불가능한 휘발성 사회를 응시하며, 현 정권을 비롯한 기존 미술계의 무기력함에 직접 새 영역을 만드는 것으로 대항한다.

 

'청년 예술 행동과 미술의 세대 교체'라는 주제를 받아든 내가 떠올린 답안지 같은 단어는 미술사학자 클레어 비숍의 <래디컬 뮤제올로지(Radical Museology)> 안에도 있었다. 2013년에 출간된 빨간 색 표지의 이 작은 책은 유럽의 미술관 세 곳을 예로 들며 신자유주의 시대 미술관이 어떤 가치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가를 주장한다. 그러나 빨간 책에 담긴 내용을 들여다보면, 제목과 붉은 색을 보고 예술 또는 미술관의 급진적인 것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가진 독자는 실망할 것이다.

 

저자는 동시대 예술을 움직이고 만들어내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가치 판단 아래 움직이는 미술 기관, 제도의 시간과 가치에 대한 이해라고 적는다. 그러니까 급진적인 것은 저 멀리 이제 사라진 명왕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이 시간에 누가 어떻게 합의된 가치를 부여하고 새롭게 터져 나오는 에너지를 함께 키워나가고 저장하느냐는 것이라는 것이다. 미술관 소장품 구축, 교육, 전시, 운영의 방향을 촘촘하게 짜고 재구성하는 일은 동시대 예술이 부여하는 시간과 가치의 구체적인 당대적 업무다.

 

미술관이 긴 시간을 보고 별자리 짜듯 촘촘히 움직여야 한다면 진정 급진적인 것은 이 틀 안의 구획으로는 따라잡고 제때 명명할 수 없는 살아있는, 불꽃 튀는 젊은 예술가들이다. 오늘도 젊은 예술가들은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하느라 동선을 짠다. 이 젊은 시간, 아직 마르지 않은 땅에 신선한 활기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이들의 행동이다. 이미 시작된 이 행동이 있어 미술을 만들고 보는 2015년의 이곳은 어느 때보다 구체적이고 흥미진진하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금, 2015/07/3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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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시평 311]

 

론스타와 '만수르', 사냥에 쓰는 총은 따로 있다!

국제 중재 회부제 폐지해야

 

송기호 변호사

 

국제 중재 회부라는 낯선 말이 시민의 일상에 뛰어들었다. 론스타의 5조 원 대의 국제 중재 회부 사건의 2차 변론 기일이 오는 29일에 시작한다. '하노칼'이라는 아부다비 '만수르'의 회사도 한국을 국제 중재에 회부했다. 게다가 '엔텍합'이라는 이란 회사도 한국을 회부 의향서를 보냈다.

 

이제는 법전과 법률 용어 사전에서 뛰어나와 한국의 거리에서 활보하는 국제 중재 회부란 무엇인가. 기업이 국가의 국회, 정부, 법원을 국제 중재에 회부하는 것이다. 이 제도의 일차적 특징은 기업이 영업을 하는 나라의 사법부에 복종하지 않는 점이다. 론스타와 만수르는 공통적으로 이미 한국의 법원에 세금 소송을 하고 있거나 패소했다. 그런데도 다시 한국의 세금 부과가 부당하다며 국제 중재로 한국을 끌고 갔다. 이렇게 되면 조세 부과에 대한 한국 법원의 최종적 권위는 크게 흔들린다.

 

실체가 없는 5조 원 청구

 

그러나 이 제도는 그저 사법부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전반을 심각하게 후퇴시켰다.

 

론스타 사건을 보자. 이 회사가 청구하는 돈이 애초 4조6000억 원에서, 5조1328억 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론스타 청구액의 실체를 아는 국민은 없다.

 

론스타 국제 중재 대비를 위해 쓰는 돈이 112억3400만 원이다. 2013년도부터 사용한 예산을 합하면 219억5200만 원이다. 게다가 만에 하나 한국이 패소하면 론스타는 납세자에게 막대한 청구서를 보낼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은 론스타의 5조 원 청구가 어떻게 계산되어 나온 숫자인지조차 모른다.

 

론스타는 2006년 5월에 국민은행에 6조3000억 원에 파는 주식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이 성사됐다면 론스타는 4조1430억 원의 이익을 남길 수 있었으나 계약은 그해 11월에 파기됐다.

 

론스타는 지금 이 계약 파기가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에서 비롯했으므로 그 차액을 청구하는가?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5년이라는 중재 회부 시한이 지났기 때문이다. 론스타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제 중재 회부 의향서를 보낸 날짜인 2012년 5월 21일은 계약 파기일로부터 이미 5년이 지났다.

 

론스타와 만수르의 국제 중재 회부는 한국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심각한 후퇴이다. 입법자가 제정한 법률은 종이 장식처럼 됐다. 공공기관 정보공개법에 따라, 민변이 5조 원의 실체 공개를 요구해도, 정부는 밝히지 않는다. 만수르가 왜 한국을 국제 중재에 회부했는지, 그 회부 의향서를 공개하라고 요구해도, 거부한다.

 

공공 정책을 조준하는 무기

 

론스타와 만수르 사건의 값비싼 교훈은 국제 중재 회부권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주(오스트레일리아)는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이를 제외했으며, 작년에 유출된 환태평양 동반자 협정(TPP) 협정문에서도 호주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조건부 조항이 들어가 있었다. 호주 의회는 한국 호주 FTA에 대해 기업의 국제중재 회부권한에 대해 재협상할 것을 결의했다.

 

독일 경제부 장관 가브리엘(Sigmar Gabriel)과 유럽연합(EU) 국제통상 담당 집행위원 융커(Jean–Claude Juncker)도 미국과 유럽연합의 FTA에서 기업에 국제 중재 회부권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에콰도르, 볼리비아, 베네수엘라가 국제 중재 회부권의 산실인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 조약에서 탈퇴했다. 인도네시아도 기업의 국제 중재 회부권을 포함한 투자보장협정을 종료시키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남아공도 스페인 네덜란드 독일 등과 체결한 투자 보장 협장을 해지했다.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도 <2014년 ISDS 연례 보고서>도 이 제도가 투자를 촉진한다는 증거는 없다고 분석했다.

 

최근의 국제 중재 회부 사건을 보면 국민을 위한 공공 의료 정책마저 국제 중재 회부권의 과녁임을 알 수 있다.

 

미국 제약회사가 의약품 특허권을 인정하지 않은 캐나다 법원 판결에 맞서 5억 달러의 배상을 요구하며 캐나다를 국제 중재에 회부한 일라이 릴리 사건(Eli Lilly)이 있다. 이는 캐나다 법원의 특허 심사 기준에 대한 해석 권한을 정면 도전한 사건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미 FTA에서 "국민 건강, 안전, 환경 등 공익 목적의 비차별적 공공정책의 경우 수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두었으니, 한국의 공공 정책은 공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과 다르다. 이런 조항에서도 기업은 공공 정책을 국제 중재에 회부했다.

 

예를 들면, CAFTA(중미 일부 국가와 미국의 FTA) 부속서 10-C에는 위와 같은 한미 FTA 조항이 있지만, 퍼시픽 림 마이닝 사건(Pacific Rim Mining)에서 국제 중재를 막지 못했다. 이 회사는 금광 채굴 허가에 필요한 환경 보호 조치를 이행하지 못해 허가를 거부당하자 3억 달러의 배상을 요구하며 엘살바도르를 국제 중재에 회부했다.

 

페루-미국 FTA 부속서 10-B에도 위와 같은 한미 FTA 조항이 있지만 렝코 마이닝 사건(Renco mining)에서도 국제 중재 회부를 막지 못했다. 페루 정부가 부여한 오염 제거와 환경 복원 의무 이행기간을 연장해 주지 않았다면서 8억 달러의 손해 배상을 요구하며 페루-미국 FTA에 근거해 국제 중재에 회부했다.

 

경제 위기와 국제 중재 회부권

 

특히 스페인, 그리스, 사이프러스 등 경제 위기를 겪은 유럽의 나라들의 긴축 정책에 대항하는 국제 중재 회부를 보면, 국가의 정책 자율권을 얼마나 해치는지를 알 수 있다.

 

스페인은 재생 가능 에너지 보조금을 삭감하고 전력 생산에 과세한 것을 이유로 국제 펀드들로부터 7억 유로 배상을 요구하는 국제중재를, 그리스는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국제 금융 기관으로부터 국채 정책 변경을 이유로 국제 중재를(Postova 사건), 사이프러스는 부실은행의 건전성 강화를 위해 공적 자금을 투입해 국가 보유 지분을 높였다는 이유로, 10억 유로나 되는 엄청난 배상금을 요구하는 국제 중재(Marfin Investment Group 사건)를 당했다.

 

이처럼 경제 위기에 처한 국가의 비상 정책에 대해 국제 중재로 대항하는 사례는 이미 아르헨티나가 55건의 국제중재에 회부된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나의 결론은 국제 중재 회부제의 폐지이다. 한국과 같이 자국 화폐가 국제 금융 시장을 주도하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국제 중재 회부권을 수용해서는 안 된다. 론스타와 만수르 사건에서 얻은 값비싼 교훈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수, 2015/06/24-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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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이병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내 최대 보수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 허준영 총재에게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교과서를 지지하는 ‘관제 데모’를 지시, 요청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또 당시 국민소통비서관이던 정관주(구속) 씨도 같은 내용의 요청을 자유총연맹에 전달한 사실도 확인됐다. 청와대 지시를 받은 뒤 5일 후 자유총연맹은 전국 지부에서 500여 명을 동원, 서울 광화문에서 국정교과서 찬성 집회를 열었다. 자유총연맹 전현직 핵심 간부들은 최근 <뉴스타파>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 같은 사실을 털어놨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2015년 10월 15일 허 총재가 전화와 문자로 이병기 실장의 요청을 받은 뒤, 전국 지부에 긴급 공문을 보내 사람들을 동원했다. 5일 간 준비해 청와대가 요청한 내용대로 관제데모에 나섰다. ”

(자유총연맹 핵심 임원 A 씨)

 

“이병기 실장이 허 총재에게 관제데모를 요청한 뒤, 정관주 국민소통비서관도 연락을 해 왔다. 청와대의 지시를 잘 따라 달라는 내용이었다.” (전 자유총연맹 핵심 임원 B씨)

이 전 실장으로부터 관제데모 부탁을 받은 허 전 총재도 뉴스타파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식인터뷰가 아님을 전제로 “A 씨가 말한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뉴스타파>는 또 같은 시기 청와대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 소속 허현준 행정관이 자유총연맹 간부 B 씨에게 국정 교과서 지지 집회를 지시, 요청한 사실을 보여주는 문자메시지 일체를 확보했다.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기간은 2015년 10월 19일부터 같은 해 12월까지다. 입수한 문자메시지에는 국정교과서 찬성 관제데모를 청와대가 요청한 것 외에도, 어떤 내용으로 시위를 할 것인지, 어떤 식으로 행사를 진행할 것인지를 일일이 지시한 내용도 보인다.

자유총연맹에 문자로 관제데모를 지시한 허 행정관은 지난해 초 논란이 된 어버이연합 관제데모 의혹에도 등장했던 인물이다. 그는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 등을 통해 청와대 입맛에 맞는 관제데모를 벌여줄 것을 지시, 요청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정부정책자료 널리 알려달라”

2015년 10월 19일 허 행정관이 자유총연맹 인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보면, 다음날로 예정된 서울 광화문집회 상황을 체크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자유총연맹 집회가 청와대와 교감속에 진행돼 왔음을 알 수 있다.  

스크린샷 2017-01-23 오후 5.46.44

“연맹 기자회견 준비가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자유총연맹 간부)  

본부장님! 수고 많으십니다. 행사 후 언론보도 결과 취합해서 보내주시면 활용하겠습니다. 건투를 빕니다.(허현준 행정관)”

같은 해 10월 27일로 예정된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앞두고 청와대가 자유총연맹 회원들을 국회로 동원한 사실도 문자메시지를 통해 확인됐다. 청와대가 대통령 시정연설에 보수단체 회원들을 조직적으로 불렀다는 의혹은 제기된 적이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수단체를 동원했는지는 확인된 바 없었다. 허 행정관과 자유총연맹은 대통령 시정연설을 앞두고 이런 내용의 문자를 주고 받았다.

“27일 오전 10시 국회 본관(본회의장) 시정연설. 경호 문제로 방청자 필요한 인적사항은 이름, 주소, 주민등록번호, 연락처입니다.(허현준 행정관/ 2015년 10월 21일)

관련건에 대해 (자유총연맹) 조직본부에 조치토록 지시했고, 인적사항 등에 대해서는 내일중으로 완료시키겠습니다. (자유총연맹 간부/ 2015년 10월 21일)

 

신원확인 등 사전 조치가 필요해서요. 내일 오전중으로 명단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현준 행정관/ 2015년 10월 21일)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기 위해 대표적인 보수단체인 자유총연맹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여러 단서도 확인됐다. 먼저 허 행정관은 자유총연맹에 어떤 논리로 국정교과서 반대여론과 싸울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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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홈페이지에 올바른 역사교과서 특별 홈피가 개통되어 있습니다. 정책설명자료와 홍보자료가 일부 게재되어 있고, 계속 업데이트를 하니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널리 알려주세요.” (허현준 행정관/ 2015년 10월 22일)

자유총연맹이 국정교과서 찬성을 위해 어떤 행사에서 어떤 발언을 하고, 어떤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할 것인지를 청와대에 보고하고, 청와대의 요청과 지시를 전달받은 내용도 확인됐다. 허 행정관이 자유총연맹에 보낸 문자를 보면, 당시 청와대가 국정교과서를 관철하는 문제를 사실상 친북, 반대한민국 세력과의 전쟁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다수 역사학자와 교사들이 반대하고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국정교과서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던 상황에서도 청와대가 친북과의 전쟁이란 명분으로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였음이 드러난 대목이어서 충격을 준다.

“교과서관련 추가 행사

경기도지부 한마음대회 11/2

하남시 잔디구장 경기대회 1200명 참석.

전국자유청년트래킹대회 11/28

대전 보문산 청년회원 1000명 참석

해당 행사에서 올바른 역사 바로세우기 촉구 결의문 낭독 등 실시 예정”

(자유총연맹 B씨 / 10월 30일)

 

“<관련 추가 일정>

허준영 회장 미국 방문시 관련 강연 및 결의대회 실시

11/3 시애틀, 11/5 알래스카

11/8 로스앤젤레스, 11/11 하와이

해외지부 국내 광고건 협의 중”

(자유총연맹 B씨 /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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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도서 찬성 의견제출서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11시 역사교과서 국정도서 확정고시 발표 후, 중순경 집필진 발표가 예정돼 있어 반대진영의 항의가 한동안 지속될 것입니다.

-11.7(토, 18시, 광화문) 국정교과서 반대 집중집회에 세월호특별법 제정 1주기 집회가 겸해질 것입니다.

-11.14(토, 16시, 광화문) 민중총궐기대회로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 있습니다.

집필진 공격에 대응하는, 검정교과서 집필진 문제점 및 좌파단체의 친북 반대한민국 행적 등 컨텐츠를 갖춘 2차 전투에도 대비하고, 반대진영의 대규모 시위에도 맞서는 준비를 미리 미리 구상하고 협의하여 함께 진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허현준 행정관/ 2015년 10월 30일)

 

“친북, 반대한민국 단체와의 2차 전투 대비하자”

지난해 4월, 어버이연합에 대한 전경련 지원, 관제데모 의혹이 제기됐지만 제대로 된 수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사를 맡은 검찰은 1년이 다 되어 가도록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관제데모 지시 의혹을 받았던 허현준 행정관이 어버이연합 의혹을 최초 보도한 시사저널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이 지난해 10월 26일 기각된 것이 이후 과정의 전부다.

반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중인 박영수 특검은 문화예술계 지원배제명단(일명 ‘블랙리스트’) 수사를 어버이연합 관련 사건으로 넓혀간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어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따라서 청와대가 보수단체들을 어떻게 관제데모에 동원해 여론을 왜곡했는지를 보여주는 허 행정관의 문자메시지는 향후 특검 수사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허현준 행정관, 관제데모 요청은 “통치행위, 즉 정무적 문제”

뉴스타파는 의혹의 핵심인 허 행정관에게 ‘왜 민간단체에 청와대가 관제데모를 요청했는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이와 같은 일을 실행했는지’를 물었다. 그는 대면인터뷰는 거부한 채 문자메시지를 통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전했다.

“저는 21012년 대선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국가운영을 위임 받은 박근혜 대통령 비서로서, 통치행위와 관련된 행위와 관련된 것이니 님이 나설 문제는 아닌 통치행위, 즉 정무적 문제라 판단됩니다.” (허현준 행정관)

 

행정자치부에서 일부 운영비를 보조받고 있지만, 엄연히 민간단체인 자유총연맹에 청와대가 관제데모를 요청하고 실행시켰다는 사실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무원 직권남용 권리 행사 방해 등 위법 소지가 다분하다. 최근 블랙리스트 문제로 구속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이 받고 있는 혐의도 바로 이 부분이다.  


취재 : 한상진, 강민수

 

월, 2017/01/2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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