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복지칼럼] 망각의 자유를 허하라

지역

[복지칼럼] 망각의 자유를 허하라

익명 (미확인) | 목, 2015/09/10- 17:20

망각의 자유를 허하라

 

김진석 l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인간에게 번뇌가 많은 것은 기억 때문이지. 잊을 수만 있다면 매일 매일이 새로울 거야.”

 

지금은 고전이 되어버린 오래된 영화 속에서 번민에 가득 찬 주인공이 마시면 과거를 잊게 된다는 신비의 술을 권하며 역시나 과거의 상처를 안고 현실 도피를 선택한 친구에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 친구는 그 술을 마시지 않고 자신의 (아픈) 기억을 고수하기로 한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여러 선물들 중에 으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망각이라는 선물이 없었다면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물리적, 정신적 고통과 좌절, 수치와 오욕의 순간들이 내 머릿속에 켜켜이, 그것도 생생하게 쌓여있을 터이니 견디기 힘든 지경이었을 것이다. 어느 여름날, 하필이면 사람 많은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신호무시하고 튀어나온 자동차와 충돌로 산산조각 나버린 바이크 라이딩의 로망, 뜨거운 아스팔트길을 나뒹굴던 그날의 신체적 고통, 그보다 더한 정신적 쪽팔림(!), 그보다 다시 백배는 더했던 망가진 ‘신상’ 125cc 바이크에 대한 낭패감의 기억도 생생할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첫 사랑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그 밤의 기억은 또 어떠한가? 이런 기억이라면 그냥 오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련하게 남아있는 게 좋지 지금보다 더 생생하게 내 기억 속에서 재생되는 것은 끔찍한 일일 것이다.

 

개인과 집단에게, 혹은 한 사회와 나라에게 과거의 일들은 어떤 식으로든 조금씩 잊혀져가는 법이다. 예외적이긴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앨범 속 사진처럼 생생하게 오래오래 남는 일들이 있다. 심지어 잊고 싶은데도 잊히지 않는, 노력할수록 오히려 더 생생해지는 사건들이다. 그런 반면에 어떤 일들은 망각이라는 자연적인 현상을 거스를지라도 잊지 말아야 하는, 혹은 잊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다. 개인이든 사회든 망각을 거슬러 과거의 일을 현재에 붙잡아두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런 일이 많지 않으면 좋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우리는 그런 일들을 너무 자주 경험하고 있다.

 

잊고 싶은데 잊히지 않는 일에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듯이, 잊지 않기로 결정하고 의식적인 노력을 하는 일에도 타당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전자의 경우가 대부분 개인적인 이유라면 후자의 경우는 많은 경우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 역사만 보더라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강점과 수탈의 기억, 4.3 제주, 4.19와 5.18, 6.10으로 이어지는 민중항쟁과 희생의 기억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그리고 가장 최근 세월호의 기억들은 잊을래야 잊을 수도, 그리고 잊혀서도 안 되는 기억들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사건들이 잊혀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미 많은 대가를 치렀다. 이처럼 소위 ‘과거의 사건’들에 금쪽같은 ‘현재의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기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합의들은 결국 그런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의 시간으로 회귀할 수 없다는, 회귀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이다. 과거로의 회귀는 결국 기억에서 지우고 싶으나 의식적으로 지우지 않고 있는 그런 (주로 비극적인) 사건들이 현재에 반복될 수 있는 가능성에 노출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먼 과거를 잠시 접어두고 가까운 과거, 혹은 현재로 돌아와 얘기해보자. 세월호, 메르스, 그리고 최근 故 고현철 교수의 죽음, 이들 사건들은 언뜻 동떨어져 보이지만 2014년과 2015년 대한민국의 현재를 규정하는 사건들에 포함할 수 있다. 세월호 사태는 무한 이윤을 추구하는 광폭한 자본주의의 질주 속에서 우선순위에서 물러나있던 안전에 대한 불감증과 재난상황에서 국가의 존재이유와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성찰의 계기로 작동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 또한 대형 민간병원 중심의 의료체계가 공공의료 인프라의 부재와 중첩되었을 때 우리 사회가 노출될 수 있는 보건의료적 재앙상황에 대한 현재적 경고이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사건이다. 故 고현철 교수의 죽음은 어떠한가? 그의 죽음은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거대자본과 절대 권력의 입맛에 맞게 ‘선진화’와 ‘구조개혁’을 강요받고 있는 2015년 현재 대한민국 대학과 대학교육에 대한 사망선고에 다름 아니다.

 

이들 사건들은 모두 ‘현재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라도 잊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사건들이다. 문제는 이런 사건들을 과거에 묶어두려는 움직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세월호 사고로 295명이 목숨을 잃고 여전히 9명이 수중에 갇혀있는 사태로 전화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아직 이 사태의 진상에 한 발짝도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수백, 수천만 시민의 단식과 서명, 거리 행진으로 얻어낸 특별조사위원회는 정부의 비협조 등의 이유로 인해 여전히 기대한 바와 같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한 쪽에서는 이제 그만 ‘잊자’고,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종용한다. 메르스 사태도 마찬가지다. 총리가 나서서 국제적인 권고사항마저 무시한 채 서둘러 종식을 선언하고 “모든 일상생활을 정상화”할 것을 주문한다. 재발방지와 진상규명에 대한 대책보다는 메르스로 인해 줄어든 관광객 유치와 관광산업 부활을 위한 잰 걸음을 옮긴다.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의료 ‘전문가’로 지명하였으니 이제 의료 ‘선진화’를 위해 힘을 모으자 한다. 故 고현철 교수는 강요된 ‘선진화’와 기형적인 ‘구조조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종된 대학과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는 뜻을 남기고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갔다. 이에 대해 주무부처는 묵묵부답이고 일부 언론은 고인의 유지와 다르게 총장직선제를 둘러싼 대학 내 갈등의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 대학교육이 위기상황이니 위기극복을 위한 효율적 방안 마련에 온 대학구성원이 노력할 때라는 주장이다. 이들 모두 과거의 일은 과거에 묻어두고 현재에 집중하자는 말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과거에도 항상 있어왔다. 그리고 역사는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자는 쪽이 누구인지 주목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의 경우 그 사건에 결정적인 귀책사유가 있는 세력이거나 그들과 한 패이기 때문이다. 일본 제국주의 수탈의 역사를 잊자는 이들이 그렇고, 4.3 제주의 아픈 역사와 5.18의 한풀이는 이제 충분하지 않느냐는 이들이 그렇다. 망각에 대한 사회적 강요인 것이다. 그러한 패턴은 지금 현재 세월호와 메르스, 故 고현철 교수의 죽음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아직은 잊을 때가 아니니, 잊을만한 때가 되면 내가, 그들이 알아서 잊을 터이니 망각을 강요하지 마라. 강요된 망각은 과거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뿐이며, 사건의 당사자들에게는 더 큰 상처를 되새김질하게 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망각의 대상과 망각의 때에 선택의 자유, ‘망각의 자유’를 허하라.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취생몽사’, 즉 마시기만 하면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신비의 술을 마신 주인공은 다 지운 줄 알았으나 오히려 더 생생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친구가 권하는 술을 마시지 않고 아픈 기억을 간직하기로 한 다른 주인공은? 그 역시 도피를 접고 아프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로 돌아간다. ‘취생몽사’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DSC_7721 - 복사본.JPG

6월 1일 보건의료노조 기자회견 @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노조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한국 전염 이후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대응을 통해 메르스 확산 방지와 국가방역체계 구축, 메르스사태 해결의 근본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보건의료 노조는 29일과 30일 두 차례의 성명서를 통해 환자안전, 직원안전 비상체계의 구축, 국가방역체계 확립을 위한 종합대책을 통해 정확하고 올바른 정보의 공개하고 형재 위기대응 수준을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시킬 것을 요구했다.

6월 1일 월요일 10시, 청와대 앞에서 메르스 확산 방지와 국가방역체계 구축을 위한 특별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가 총괄하는 메르스 대응 범정부 종합대책기구를 구성하라”고 촉구했다. 뒤이은 6월 2일과 3일 “메르스 3차 감염 현실화! 대응체계를 격상하라”, “정부는 전국민을 메르스환자로 만들려 하는가?”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 정부의 방역검사시스템 정비, 인력보강 등 ▲메르스 발생병원과 발생지역 명단을 공개할 것 ▲메르스 최초환자 접촉자와 2차 감염자 접촉자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할 것 ▲자가격리자와 가족을 관리하기 위한 매뉴얼을 만들고 메르스 감염여부에 대한 검사를 의무화할 것 ▲메르스환자 접촉병원이 아닌 일반병원과 메르스 의심환자나 확진환자가 아닌 일반국민들에게 메르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고, 명확한 행동요령을 제시할 것 ▲메르스 대응 수준을 주의단계에서 경계단계로 격상하고, 청와대가 직접 총괄하는 메르스 종합대책기구를 구성등 “선제적 방역망을 구축하고 메르스 확대 방지와 근본적 해결을 위한 5대 해법을 추진하라”고 제시했다.


DSC_7738 - 복사본.JPG

DSC_7799 - 복사본.JPG

6월 1일 보건의료노조 기자회견 @보건의료노조


같은 날인 3일, 메르스로 인한 국민생명과 안전을 위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메르스의 상황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메르스 상황판’을 만들어 보건의료노조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메르스 상황판은 접속자 폭주로 인해 보건의료노조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6월 4일 목요일, “메르스사태 대응! 대한민국 의료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 은폐와 통제, 무방비 병원내 감염, 취약한 의료인프라, 컨드롤타워 부재 등 의료선진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지적하며,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한 국가총동원체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DSC_7888 - 복사본.JPG

6월 5일 보건의료노조 기자회견 @보건의료노조



6월 5일 금요일 오전 11시, 보건의료노조 회의실에서 [메르스 진료현장 긴급 점검결과 발표 및 특별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재난을 선포하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것을 주장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메르스환자 진료와 관련한 현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정부는 메르스 정보를 차단하지 말고 메르스 감염을 차단하라”고 촉구했다.



DSC_7898 - 복사본.JPG

6월 5일 보건의료노조 기자회견 @보건의료노조


DSC_7904 - 복사본.JPG

6월 5일 보건의료노조 기자회견 @보건의료노조


DSC_7909 - 복사본.JPG

6월 5일 보건의료노조 기자회견 @보건의료노조


DSC_7932 - 복사본.JPG

6월 5일 보건의료노조 기자회견 @보건의료노조


DSC_7941 - 복사본.JPG

6월 5일 보건의료노조 기자회견 @보건의료노조



월, 2015/06/08- 01:07
143
0

메르스 사태 진상규명 촉구 노동․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메르스, 이제 덮으려 하는가?

 

2015년 7월 28일_기자회견_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주최_메르스진상규명및책임자처벌촉구기자회견 (1)

 

[기자회견 개요]

- 일시 : 2015년 7월 28일(화) 오전 10시

- 장소 : 국회 정문

- 사회 : 김재헌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 공동상황실장

- 여는 말 : 박석운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 상임공동대표

- 규탄 발언 : 유지현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위원장,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최보희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이수정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부장, 장호종 노동자연대 활동가

- 기자회견문 낭독

 

 

[공동 기자회견문]

메르스, 이제 덮으려 하는가?
박근혜 대통령 사과!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국민·환자 피해 배상을 촉구한다

 

메르스 확산 방지와 조기 종결, 국회 차원의 종합대책 마련, 근본적인 감염병 관리대책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6월 8일 구성된 국회 메르스특위(중동호흡기증후군 대책 특별위원회)가 7월 28일 활동을 종료한다.

 

국회 메르스특위는 51일간의 활동기간 동안 8차례 전체회의와 1차례의 현장시찰을 진행했다. 8차례의 전체회의는 ▲현안보고 3회 ▲한국-WHO 메르스 합동평가단 평가결과 논의 1회 ▲메르스 관련 병원 대응 경과 점검회의 2회 ▲메르스 관련 전문가 의견 청취 1회 등으로 진행됐고, 현장시찰은 평택시청에서 평택시 메르스 확산방지대책과 피해상황을 점검하는 활동으로 진행됐다.

 

국회 메르스특위는 오늘 7월 28일 메르스 재발방지와 감염병 예방을 위한 정부의 이행촉구 결의안을 의결하는 것으로 모든 활동을 종료할 예정이다. 이 결의안에 어떤 내용이 담길 것인지 살펴봐야 하겠지만, 국회 메르스특위의 활동내용은 부실로 시작해 부실로 끝나게 됐다.

 

메르스 사태는 186명의 확진자, 36명의 사망자, 1만 6693명의 격리자를 발생시켰고 국민들을 공포와 불안으로 내몰았다. 또한 국민들의 일상생활이 위축되는 등 엄청난 사회적 손실이 발생했다. 메르스 사태를 통해 감염병 예방과 관리가 얼마나 취약한지, 국가방역체계와 공공의료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여지없이 드러났다.

 

따라서, 메르스 국회 특위는 메르스 사태의 진상 규명과 관련 책임자에 대한 문책 조치, 피해 실태조사와 배상대책 마련,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과 개선대책 마련 등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그러나, 국회 메르스특위는 이러한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

 

첫째, 메르스 사태의 진상규명과 관련 책임자에 대한 문책 조치가 부실하다. 메르스 국회 특위는 메르스 사태의 확산 원인과 관련 ▲방역당국의 초동대응 부실 ▲정보공개의 지연 ▲메르스 대응 컨트롤타워 혼선 ▲정부-지자체-의료기관간 협력체계 구축 미흡 ▲방역관리 부실 등을 지적하면서도 관련 책임자에 대한 어떤 문책 조치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둘째, 감염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한 인력·조직·시설·장비 등 감염예방관리 인프라를 튼튼하게 구축하기 위한 대안 제시가 부실하다. 메르스 국회 특위는 음압격리병실 확충, 감염병 보호장비 확충,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필요한 전문인력 확충, 실효성 있는 방역관리 대응 매뉴얼 제작과 체계적인 교육훈련, 감염병전문병원과 국가재난병원 설립 등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도 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셋째, 의료전달체계 개선과 보건의료인력 확충 등 감염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대안 마련이 부실하다. 국회 메르스 특위는 취약한 병원내 감염관리, 응급실 과밀화, 간병·문병 문화, 비좁은 병실면적과 다인실 구조, 닥터 쇼핑 등의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빅5병원을 중심으로 한 환자쏠림과 의료기관 양극화 해소, 대형화·고급화를 통한 수익경쟁체제 탈피, 1·2·3차 의료전달체계 개선,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보건의료인력 확충 등 감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넷째, 메르스 피해에 대한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피해를 배상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예산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7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메르스 피해보상을 위해 2,500억 원의 추경예산이 통과됐다. 그러나, 이것은 메르스 사태로 인한 피해배상책으로는 너무나 부족하다. 메르스 국회 특위는 메르스 사태로 인해 의료기관, 의료기관 종사자, 국민들이 입은 피해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고, 관련 의료기관, 지역, 업종 관계자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현장방문활동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메르스 국회 특위의 이같은 활동은 국민이 국회에 부여한 권한과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의 피해는 전면 배상되어야 하고, 제2, 제3의 메르스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국가방역체계는 완벽하게 구축되어야 한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첫째, 메르스 사태 초동대응 실패와 메르스 확산,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관리 부실, 허술한 국가방역체계 운영과 관련한 진상규명과 문책 조치가 있어야 한다. 메르스 사태는 초기에 막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지 못해 186명의 확진자와 36명의 사망자를 낸 인재였고, 20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사회적 손실을 초래한 대형 참사였다. 메르스 사태를 부른 원인진단과 책임 규명 없이 보건행정기구를 개편하고 관련 책임자의 직위를 승격하는 것만으로는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을 수 없다. 우리는 메르스 사태의 책임을 물어 질병관리본부장과 보건복지부장관 즉각 경질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촉구한다.

 

둘째, 메르스 사태의 원인 진단과 책임 규명, 그리고 제2의 메르스 사태 방지를 위한 근본대안 마련을 위해 국정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국회는 메르스 특위 활동으로 메르스 사태와 관련한 국가의 책임을 다했다고 자위할 것이 아니라 부실한 메르스 특위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우리는 메르스 사태 원인 진단과 책임 규명, 감염병 예방·관리와 국가방역체계 구축을 위한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한다.

 

셋째, 9월 4일부터 시작되는 국회 국정감사는 메르스 국정감사가 되어야 하고, 2015년 정기국회는 메르스 국회가 되어야 한다. 메르스 국정감사에서는 메르스 사태의 원인 진단과 책임 규명,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부실한 역학조사와 허술한 관리 실태 조사, 부실한 국가방역체계와 감염관리 실태 파악을 바탕으로 국가 차원의 방역체계 구축을 위한 근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정기국회에서는 메르스 피해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와 배상대책을 마련하고, 감염병 예방과 대응을 위한 인력·시설·장비 등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이에 필요한 예산 확보와 법·제도 정비가 추진되어야 한다. 우리는 메르스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과 문책 조치, 메르스 사태 해결을 위한 예산 확충과 법제도 정비를 위해 메르스 국감과 메르스 예산, 메르스 법제정을 촉구한다.

 

넷째, 메르스 피해에 대한 충분한 배상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메르스 피해지원을 2,500억 원의 추경예산만으로 한정하는 것은 메르스와 사투를 벌여온 의료기관과 보건의료 종사자, 피해를 입은 지역과 국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고, 메르스 사태의 근본 원인인 국가방역체계 구축 과제를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메르스 사태로 인해 의료기관과 보건의료 종사자, 국민, 지역과 업종이 입은 피해 실태를 전면적으로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면적인 피해배상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다섯째,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대한민국 보건의료체계는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메르스 사태를 통해 허술한 국가방역체계, 빅5병원을 필두로 수익성 추구 중심의 치열한 경쟁체제, 의료기관 양극화와 1·2·3차 의료전달체계 붕괴, 취약한 공공의료, 만성적인 인력부족 등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 지 여실히 드러났다. 우리는 감염병전문병원 설립과 감염병 예방·관리를 위한 시설·장비, 인력 인프라 구축, 의료기관 양극화 해소와 1·2·3차 의료전달체계 구축, 포괄간호서비스 조기 제도화, 보건의료산업에 양질의 일자리 50만개 창출, 의료민영화·영리화정책 전면 폐기 등 공공성 중심의 획기적인 보건의료정책 전환을 촉구한다.

 

정부의 메르스 종식선언이 임박했다. 이제 정부는 메르스 사태를 덮으려 하는가?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에 따르면 메르스 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이고 있는 1명의 환자가 최종 음성 반응을 보이는 날로부터 28일이 지난 시점에 종식선언을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정부가 한 달이나 앞서 메르스 종식선언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아직 메르스 사태 과제는 산적해 있다. 정부는 메르스 사태 종식선언으로 메르스 사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메르스 교훈을 망각하려 하는가? 메르스 종식은 메르스 사태 해결의 끝이 아니라 왜곡된 보건의료체계를 바로 세우기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메르스 사태는 흐지부지 잊혀져서도 안되고, 정략적으로 종결되어서도 안된다. 우리는 ▲메르스 사태 진상규명과 문책 조치, 질병관리본부장과 보건복지부장관 경질,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사과 ▲메르스 사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메르스 사태 해결을 위한 국정감사, 예산 편성, 법체계 정비 ▲메르스 피해 전면 조사와 전면적인 피해배상대책 마련 ▲공공의료 강화와 공공성 중심의 보건의료정책 변화를 위해 완강해 투쟁해나갈 것이다.

 

2015년 7월 28일

의료민영화ㆍ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의료민영화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화, 2015/07/28- 13:32
140
0
일 요미우리, 메르스 사망자 유족 소송제기 타전 – 정부 과실과 병원의 부실대응에 대한 소송제기 – 일 언론, 박근혜 정권 치부 집중 보도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9일 메르스 감염 사망자 유족들과 감염자 가족들이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한 사실을 보도했다. 이 신문은 소송을 제기한 유가족 및 감염자 가족, 격리자들이 신속한 방역을 취하지 않은 정부 과실과 병원의 부실대응을 ...
월, 2015/07/13- 08:14
136
0

사회서비스 전달체계 개편 논의, 더 이상 늦추지 말자 

 

 

김형용 |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혼란스럽다. 우리에게 필요한 복지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삶의 어느 순간 어려움에 봉착할 때가 있고, 그 누군가 넘어졌을 때 옆에 있는 이들이 지체 없이 나서서 일으켜 세워 주는 것이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 너나 할 것 없이 빠듯한 살림살이에 도움은 주로 외원에 의지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렀다. 국민들이 벌어들이는 돈도 세계에서 열한 번째로 크니 가난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는 쓰러진 누군가를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일단 도움이 절실히 요구되는 어떤 이를 가정해 보자. 어디를 찾아가야 할 것인가? 급여법에 따르면 보장기관으로서 지방자치단체는 사회보장급여의 신청, 조사, 결정, 지급, 사후관리 등에 대한 일련의 절차와 방법에 책임을 지니고 있다. 나라에 도움을 구하면 공무원이 곧바로 사정을 살펴서 어떻게 도와줄지 결정하고 집행하며 이후에 어려움이 해결되었는지까지 살핀다는 것이다. 이런 체계가 아예 없었던 적도 있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그런데 막상 찾아가면 당황스럽다. 도와달라고 갔더니 수급자격을 조사하기 위하여 소득과 재산 뿐 아니라 가족관계, 금융거래, 신용정보, 보험료, 출입국, 병무, 교정 등 모든 사생활 정보가 한 번에 조회되고 현장조사까지 이루어질 수 있다. 빅브라더 감시체계일지언정 선의를 의심하지 말고 여기까지 참아보자. 소득보장인 경우에는 제공 여부 및 제공 유형이 쉽게 결정된다. 대기기간이 있지만 한두 달 내에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사회서비스이다. 도움을 원하는 일들은 현금보다 훨씬 다채롭다. 주부양자가 입원한 경우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하고, 가출한 아이를 찾아서 토닥거려줄 사람이 필요하고, 구직능력이 부족한 이들이 직장을 찾는데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며, 독거노인의 집에 방문하여 이불빨래를 해주거나 반찬을 만들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사회서비스는 이렇게 돈이 아니라 사람이 무언가 도움을 주는 일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도움은 지방자치단체가 연결해 주기 어렵다. 시군구나 동주민센터의 공무원이 이러한 서비스를 주는 사람도 아니고 결국 민간 사회복지기관에 부탁할 뿐인데, 민간 사회복지기관은 어디까지나 제3자에게 부탁받았을 뿐이고 정해진 급여유형이 있는 것도 아니니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다. 결국 지방자치단체는 민간 기관이 어떤 서비스를 결정했고 얼마나 만났는지를 알지 못하니 도움을 청한 이의 어려움이 해결되었는지 또한 알 수가 없다.  

 

오늘날 복지의 화두는 사회서비스이다. 사회적 위기가 단지 소득중단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예산도 보육과 요양, 정신건강, 재활 등 보편적 돌봄과 사회참여 영역에서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지역사회에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은 공공이 아니라 아직도 민간이다. 상당수 시설은 개인이 운영하거나 사회복지법인이 수탁받아 운영하고 있는데, 사회복지법인이라 하더라도 민법상의 재단법인에 대한 특별법인적 성격을 보이고 있으니 공공기관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소득보장급여와 달리 지방자치단체가 명확한 급여를 지시할 수 없고, 민관협력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급여를 임의적으로 의뢰한다. 결국 사회서비스는 수급권자의 권리성이 모호하게 남아있을 수밖에 없고, 아무리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해 보았자 최종적으로 도움을 받는 이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바우처나 장기요양보험과 같이 수급권자에게 직접 급여를 지급함으로서 수급권을 보장하려는 시도로 이어졌지만, 정작 도움을 주는 이들은 도움을 청한 이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영리생산자에 다름 아니었다. 왜 우리는 단순하지만 꼭 필요로 되는 사회서비스를 민간 부문으로 남겨놓는가? 사회서비스를 포함한 사회보장급여가 보장기관인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라면 이러한 업무를 왜 민간인에게 위임하고 있는가라는 말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모순이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보이는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공공부문 일자리는 2015년 기준 233만 6천개로 총 취업자의 8.9%에 불과하다. 이는 OECD 국가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은 수치이고, OECD 26개국 중에서 꼴찌이다. 터키, 멕시코, 칠레보다도 낮다. 사회보장급여로서 사회서비스를 공공서비스로 만들지 못하고, 민간 조직에 위임한 간접고용으로 구조화함으로서 공적 책임성을 회피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수치이다. 

 

더 이상한 점은 우리나라에 이미 보건복지부 산하 약 6만 여개의 사회복지시설이 있는데 국고보조시설이건 지방이양시설이건 거의 모든 사회복지시설은 정부의 재정지원에 의존하여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민간 시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서비스 인프라 측면에서 보면 시설을 건립하는 비용 그리고 이를 유지하는 기능보강비까지 국고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을 지고 있고, 민간이 건립한 시설이라고 하더라도 인건비를 비롯하여 경상비의 대부분은 공공이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영주체가 민간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사회서비스 제공을 공식적으로 의뢰할 수 없고 협력만 부탁한다는 것은 보장기관이 해야 할 일을 방기하는 것이자 계약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의 개선은 공공인프라를 더 많이 촘촘하게 만들자는 아이디어만으로는 안 된다. 이미 공공 부문에 존재하는 사회복지시설들을 그냥 민간 부문으로 간주하고, 민간이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라는 것은 보장기관의 책임회피에 다름 아니다. 공공부문의 사회복지시설을 민간에 맡김으로서 생기는 문제는 이용자를 보면 명확하다. 시설을 누가 이용하는가이다. 사회복지관과 노인복지관을 비롯한 이용시설들은 시설 근처에 사는 주민만 이용한다.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러 온 사회서비스 수급권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시군구 주민이라도 시설이용의 격차는 지리적 접근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 제공하는 사회서비스도 사회보장급여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듯하다. 노인복지관의 이용노인들은 경로식당이나 체육 또는 문화 프로그램이 주된 활동이다. 생활시설은 어떠한가? 장애인이건 노인이건 전국 어디에 살던지 스스로 골라서 신청하는 것이므로, 누가 어떠한 경로로 입소하게 되는지 지방자치단체는 알지 못한다. 도움을 요청한 이에게 사회보장급여를 전달하는 책임이 보장기관에 있다는 급여법은 사회서비스에 있어 무색하다. 

 

이러한 사회서비스 전달체계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우선 지방자치단체의 책임과 권한이 명확히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찾아갈 곳은 이웃이나 자선봉사단체가 아니라 지역사회보장의 책임이 있는 시군구나 읍면동이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 책임은 오로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권한을 가지고 사회서비스 전달체계가 적절히 작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면 권한은 어디로 행사되어야 하는가? 공공부문의 사회서비스 조직이어야 한다. 비영리 민간은 자신들의 존립목적과 상관없이 정부기관에 종속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 재정지원 사회서비스 조직들을 공공부문에 편입하고, 그에 걸맞은 인력양성과 고용관계를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사회서비스공단이 그 방안일 수 있다. 사회서비스공단이 공공부문 노동자로 사회서비스 인력을 확보한다면, 이들이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전달체계 내 사회서비스 급여제공자라는 정체성과 책무성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올해와 내년, 자치분권과 사회서비스공단 국정과제가 본격 실험대에 오른다. 구체적인 모형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어서 빨리 전개되기를 바랄 뿐이다.

목, 2018/03/01- 18:26
133
0

탈시설화와 커뮤니티 케어

 

김도희 |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과격한 운동용 개념’이라고 여겨지던 ‘탈시설화’란 용어가 공공연히 정부의 정책과제로 등장하게 된 것을 보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탈시설이 운동적 차원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살고자 하는 곳에서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방식으로 살 권리가 있다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광범위한 지역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공동생활을 하도록 강요하고,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결정과 자신의 삶에 대해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없으며, 조직의 필요가 거주하는 개인의 필요보다 우선되는 곳(유럽집행위원회, 2012)’에 살도록 내몰아서는 안 되며, 장애 때문에 보편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경우는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 역시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탈시설화’에 관한 몇 가지 시선들

‘탈시설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관하여 크게 두 가지 갈래가 있다. 첫 번째 관점은 탈시설화를 광의로 정의한다. 기존의 시설을 개선하고 탈시설을 지향하는 일련의 과정과 노력을 모두 탈시설화로 이해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탈시설+화(化)’라는 표현으로 이해한다. 두 번째 관점은 탈시설화를 보다 엄격하게 협의로 정의한다. 즉,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의 보편적 주택에서 ‘자립생활’을 하는 경우만을 탈시설화로 정의하며, ‘시설화’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로서의 ‘탈(脫)+시설화’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러한 정의가 시사하는 바는, 시설의 문제는 운영보다는 구조의 문제라는 것이다. 단지 대형거주시설을 폐쇄해야 한다는 등의 물리적 공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예산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서비스 전달체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고민 하에 국정철학이 바뀌어야 함을 뜻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누구나 같은 시간에 일어나 다 같이 밥을 먹고, 약을 먹고, TV를 보고, 목욕을 하는, 그래서 모두가 같은 취향과 기억과 삶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거주공간을 선택하고, 누구와 같이 살지를 고르고, 개인의 의지대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사생활이 보장되는 보편적 인권의 가치들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탈시설화는 단순히 시설 - 탈시설의 이분법적 논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탈시설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커뮤니티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지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탈시설화를 엄격하게 정의하는 견해에 의하면, ⅰ) 거주공간을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이전하고, ⅱ) 가정과 같은 보편적인 환경에서 거주서비스를 제공하며, ⅲ) 제약을 최소화함으로써 거주인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ⅳ) 사생활과 소유권을 보장하며, ⅴ) 사회적 관계와 심리적 회복을 통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탈시설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미 2014년 유엔 장애인권위원회에서도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국가보고서 심의 최종견해」에서 ‘장애에 대한 인권적 모델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탈시설화 전략 개발’, ‘정신 또는 지적 장애를 포함하여 장애를 이유로 한 자유의 박탈을 전제하고 있는 현행 법률조항 폐지’를 촉구한 바 있다. 

 

다른 나라들은 ‘탈시설화’를 어떻게 추진하고 있나

물론 지구상의 대부분의 국가는 근대기를 거치면서 노동능력이 부족한 장애인에 대해 시설수용 중심의 정책을 펴왔다. 미국만 보더라도 시설 설립이 최고조에 달했던 1970년대에는 700명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시설에 2800명을 수용하기도 하였다. 이 같은 대규모 시설 위주의 정책은 미국 연방법원의 ‘펜허스트 판결(1978년)’을 계기로 달라지기 시작한다. 대규모 시설인 펜허스트처럼 지역사회와 분리되고 불평등한 환경에서는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주 정부가 모든 시설 거주인에게 새로운 주거지와 생활환경을 마련해줄 것을 명한 것이다. 뒤이은 ‘옴스테드 판결(1999년)’ 역시 지역사회 치료가 더 적절하다고 판단된 정신장애인들에게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기반 치료를 제공할 것을 명하였다. 이후 미국은 장애인 정책을 지역사회 위주 정책으로 전환하였고, 장애 - 비장애를 분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영국의 탈시설화는 정부정책이 사회서비스를 통제하는 방식에서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1990년 ‘지역사회 돌봄법’을 시작으로 2004년 ‘돌봄법’에서 지방정부로 하여금 장애인 ‘돌봄 및 지원계획’을 세우고, 그 평가에 기초해 ‘개인예산’을 제공할 의무를 부담하도록 한 것이다. 캐나다는 장애인의 지역사회통합을 촉진하기 위해 ‘사회통합법’을 제정하여 비용의 직접지불이나 지역사회 서비스 등을 체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호주 역시 매우 구체적으로 체계적인 장애인통합계획이 지역사회서비스계획과 함께 추진되고 있다. 스웨덴은 일정 기간 내에 모든 시설을 폐지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했다. 1993년 ‘장애인 지원 및 서비스법’을 제정하여 국가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1997년에는 남아 있던 장애인 수용 병원 및 시설을 폐쇄하는 법을 시행하였다. 이렇듯 다른 나라들도 자국의 사정에 맞는 탈시설 - 사회통합 정책을 고안하고 시행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한국의 ‘탈시설화’ 그리고 ‘커뮤니티 케어’ 

한국은 현재 약 1,500개의 장애인거주시설과 약 30,000명의 시설 거주인이 있다. 사실 지방정부에서는 이미 탈시설 방법들이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다. 서울시는 시설거주 장애인을 대상으로 탈시설 욕구조사를 진행하여 2009년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를 설립하였고, 2013년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5개년 계획」을 발표해 체험홈, 자립생활주택, 자립생활가정 등 탈시설 전환주거를 제공하고, 탈시설 정착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중앙정부는 차라리 조금 늦은 편이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는 장애인과 정신질환자 등 취약계층의 사회정착 지원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커뮤니티 케어’란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시설보호 대신 지역사회 내에서 돌봄, 주거, 치료 등 필요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여 살아가게 하는 서비스 체계를 말한다.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1970년대 이후 ‘커뮤니티 케어’ 정책을 펴고 있고, 보건복지부 역시 거주시설이나 요양시설에서 지내는 거주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지역사회에 정착해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 ‘커뮤니티 케어’는 ‘탈시설화’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이다. 

 

그래서 복지부도 상반기 내로 '커뮤니티 케어' 로드맵을 마련해 '탈시설화'를 추진한다고 한 것으로 읽힌다. 이를 위한 방편으로 ‘장애인복지법’을 개정해 탈시설화를 개념정의하고, 탈시설지원센터를 설치하며, 퇴소하는 거주인에게 우선적으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주거, 고용, 돌봄, 교육, 여가 등 지역사회 인프라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탈시설화’가 추진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지만, ‘커뮤니티 케어’를 시기상조라고 반대하는 목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2010년 장애인연금제도, 2011년 활동보조지원제도 도입을 통해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지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책적 토대는 갖추어졌다고 본다. 국가예산을 편성하는데 장애인지적 관점을 반영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도 발의되었다. 무엇보다 국가정책이 준비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시작되지 못하면 그것은 아마도 시도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누구도 변화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되기에 결국 예산과 속도가 관건이다. 정부가 탈시설화 - 사회통합 정책을 국가의 책임과 시급한 과업으로 인식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첫 단추를 잘 꿰려면 

정부의 정책의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근거가 되는 법률에 그 내용을 충실히 담는 것이 중요하다. 법률의 모습을 하나로 고정할 필요는 없다. 장애인복지법을 개정하는 방법, 시설폐쇄와 탈시설 내용만을 담은 독립적인 법안으로서 시설폐쇄법이나 탈시설지원법을 제정하는 방법, 현재 범장애계가 추진 중인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제정하는 방법 등 다양한 양상이 가능하다. 물론 이 중에 택일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또 다른 방식이 제안되거나 여러 개의 법이 중첩되어 시행될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의 장애인복지법 개정도 안 좋은 방법이라 단언하지는 않는다. 다만 탈시설화 개념을 정의하고, 탈시설지원센터를 만드는 2~3조항의 개정만으로 실효적인 제도의 작동을 담보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온전한 자기결정권 행사를 위한 정보접근방식의 개선, 수요자 입장의 탈시설 절차, 탈시설화 전문인력의 양성, 탈시설 지원 전달체계의 구축, 탈시설 이후 재입소나 노숙, 범법행위 등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한 심리상담・사회적 관계망 형성, 모니터링과 추적조사 등등 수많은 과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건복지부 내 부서 간뿐만 아니라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행정안전부 등 관련 부처 간, 실제로 당사자와 직접 접촉하고 지원할 각 지방정부와의 유기적이고 긴밀한 협조가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탈시설화’든 ‘커뮤니티 케어’든, 이는 사람을 위한 제도인 동시에 완전한 사회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해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참여해야 할 의무이다. 제도 안의 사람을 생각하고, 이들의 온전한 삶을 담아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기대해본다.  

금, 2018/06/01- 16:23
13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