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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322] '헬조선', '일베'와는 다르다: 한국 사회 변화의 새로운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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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322] '헬조선', '일베'와는 다르다: 한국 사회 변화의 새로운 에너지

익명 (미확인) | 수, 2015/09/16- 15:38

'헬조선', '일베'와는 다르다

한국 사회 변화의 새로운 에너지

 

정태석 전북대학교 교수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헬조선, 헬조선 연구소, 헬조선 뉴스 등 각종 인터넷 사이트들이 생겨나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의, 공정성, 합리성, 공존의 가치가 외면받고 있는 답답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고, 조롱하고 냉소하는 글들과 기사들이 가득하다.

 

헬조선은 지옥을 의미하는 '헬(hell)'과 전근대 왕조 사회인 '조선'의 합성어이다. 한국 사회가 지옥 같기도 하고 조선 시대처럼 전통적 신분 사회처럼 꽉 막혀있기도 하다는 말이다. 한국 사회가 많은 젊은이들에게 이런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젊은이들에게 미래가 없는 암울한 사회를 만들어 놓았으니 기성세대가 크게 반성해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지금은 기성세대가 돼버린 40대 후반, 50대 초반 세대는 소위 '민주화 세대'라고 불리고 있는데, 이 세대 역시 지옥 같은 암울한 사회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1980년 '서울의 봄'을 군사 쿠데타로 무참히 짓밟아버린 전두환 군부 세력의 독재 하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던 많은 젊은이들은, 민주주의의 새벽이 올 것 같지 않은 현실에서 울분을 터트리며 분노하고 또 좌절했다. 비록 젊음을 무기로 민주주의를 향한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았지만 그 시절은 그렇게 정치적으로는 암울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경제적으로는 젊은이들이 좋은 일자리에 취직하거나 먹고살 걱정을 크게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젊은 세대는 정치적으로는 과거에 비해 민주화된 사회에 살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좋은 일자리를 얻기가 어렵고 소득이 낮아 부모에게 의존하게 되는 암울한 현실에 놓여있다. 게다가 민주주의가 발달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온갖 불법과 부정행위가 판치고 있고 비합리적인 관행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문화적으로도 권위주의적, 위계적, 차별적이며 세속적 이익에 몰두하는,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가치와 태도가 지배적이다. 그러니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장해 수평적, 다원적, 합리적인 가치를 익힌 젊은이들에게 한국 사회가 어찌 '헬조선'이라 불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젊은 세대의 좌절은 당장 좋은 일자리를 얻기 힘들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사교육이다 보충 수업이다 하면서 치열한 성적 경쟁, 입시 경쟁 속에서 힘들게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또 대학까지 졸업을 했지만, 고생한 만큼의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또 미래도 없어 보이는 것이다.

 

부자들이 사는 아파트의 용역 경비 업체 소속 경비원이 아파트 주민에게 인격 모독을 당하고, 복지 사각지대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등 차별과 무시와 무관심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사회, 그리고 경찰, 검찰, 사법부가 여당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조사를 회피하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면서도 야당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사소한 범법 행위에 대해서조차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등, 권력에 의해 법의 공정성이 무너져버린 사회, 나라에 충성한 사람보다 정권에 충성한 사람들이 더 떵떵거리며 대접받는 사회, 재벌가 자녀들이나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이 직원들, 승무원들에게 온갖 권세를 부리며 갑질을 해대는 사회, 권력가의 자녀들이 군 복무, 취업 등에서 특혜를 받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경쟁이 판치는 사회, 이런 사회가 어떻게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민주화를 성취했던 기성세대는 민주화 이후 사회를 돌보려고 하기보다는 부동산 투기 등 불로소득 추구, 자녀 사교육 투자, 성적 및 취업 경쟁 등 세속적 성취와 성공을 위한 이기적 경쟁에 몰두했고 점점 스스로 기득권 세력이 돼갔다. 그렇게 미래를 외면하는 동안 한국 사회는 재벌 중심, 고용 불안정, 불공정한 분배, 비정규직 증가, 소득 양극화 등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사회 문제들을 안고 있는 사회가 됐다. 경쟁에 내몰리는 사회, 약자들을 짓밟는 사회, 신뢰 없는 사회, 결국 젊은이들이 좌절하도록 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기성세대는 권위주의적, 위계적, 보수적 태도를 보이면서 젊은이들을 비난하는 '꼰대'가 됐다.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의 개인주의, 나약함, 예의 없음을 탓하지만, 알고 보면 이들은 기성세대를 보고 배운 것이니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을 나무라기 전에 스스로 젊은이들에게 어떤 본보기가 됐고 어떤 미래를 걱정했는지를 반성해보아야 한다. 정의도, 공정함도, 합리성도, 인권도, 복지도, 공동체적 가치도 사라져버린 사회, 미래 세대를 걱정하고 배려하지 않는 사회가 바로 젊은이들 눈에 비친 현재의 한국사회인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불만과 좌절이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터져 나왔던 사례를 알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일베 현상'이다. 일베에 가담했던 젊은이들은 온라인상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기도 했고, 세월호 관련 농성 현장에 나타나 농성하는 사람들을 비아냥거리며 집단 행동을 하기도 했다. 철없는 젊은이들, 고등학생들의 감정적 행동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극단적이고 조직적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행동은 사실 젊은 세대의 좌절과 욕구불만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신성한 것, 고귀한 것의 권위를 무너뜨림으로써 좌절된 욕구와 불만에 대한 대리만족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그 밑에는 '민주화 세대'를 비난하고 조롱하려는 정서가 깔려있었다. 기성세대는 민주화 이후 좋은 시절을 맞아 존중받고 또 대접받으며 살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자녀인 자신들은 더 심한 입시 경쟁, 일자리 경쟁에 내몰리며 무시당하고 비교당하면서 심적인 불안과 좌절과 무기력 속에 살고 있으니 기성세대가 좋게 보일 리가 없다. 말하자면 잘난 척하는 꼰대의 모습이 보기 싫은 것이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헬조선' 현상도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절망스러운 현실에 대한 젊은 세대의 좌절과 분노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일베' 현상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헬조선'은 나름대로 냉정한 현실 분석에 기초해 조롱하고 냉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베'와 다르다. 일베가 보수적, 공격적 논리 속에서 기성의 도덕적 권위에 대한 감정적 공격과 비윤리적 자기 정당화를 통해 자기만족을 얻고자 한 것이라면, 헬조선은 나름대로 합리성과 공정성의 잣대를 가지고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사회에 대한 사회 구조적 분석을 하면서 자신들의 불만과 좌절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정치적으로 더 진보적이다.

 

겉으로는 성장했지만 재벌 중심의 부의 편중과 양극화로 경제적 기회가 제한돼 있는 한국 사회에서 다수의 젊은이들은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다. 안정된 직장과 경제적 여유가 없다 보니 미래를 계획하기가 어려워 결혼도 출산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그래서 이들은 '삼포 세대'나 '오포 세대'로 불린다. 그런데 이것은 저항의 몸짓이기도 하다. 미래가 없는 현실에서 자신의 아이들도 좋은 일자리를 가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에 아이를 낳아서 자본가들, 부자들 등 기득권자의 노예로 살도록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좋은 일자리도 없는 데 아이를 낳으라고 하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그래서 심지어 한국을 떠나는 것이 꿈이 됐다.

 

개인주의화된 사회에서 살아온 이들에게는 기성세대처럼 민주화라는 고상한 이상도 없고, 불합리한 현실에 저항하기 위해 힘을 합칠 수 있는 조직적 기반도 없다. 그저 예능과 소비로 즐거움을 얻고, 결혼 기피, 출산 거부 등으로 개인적인 저항을 하며 사회를 경멸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고 현실을 개혁할 힘도 없는 젊은이들로서는 그저 '헬조선'으로 사회를 냉소하면서 좌절감을 표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헬조선에서 벗어나려면 기성세대가 미래를 적극적으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남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도 공범이라는 성찰적 태도를 지녀야 하는 것이다. 헬조선에서 벗어나려면 비판적 젊은 세대와 성찰적 기성세대의 공감과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성세대가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책임 있는 개혁 주도 세력으로 나설 때 사회도 좀 더 살만하게 될 것이고 젊은이들도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다행히도 '헬조선'을 말하는 젊은이들은 분노하고 조롱하고 좌절하고 냉소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정의와 공정성, 합리성의 잣대를 가지고 냉철하게 사회 부조리를 분석해내고 있어서 공감의 여지는 크다. 기성세대가 이들의 분노와 좌절에 공감하고 자기성찰을 통해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젊은 세대의 불만과 증오의 감정은 새로운 변화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보수정권인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경제 개혁, 노동 개혁, 규제 개혁, 교육 개혁 등 온통 개혁을 내세우고 있지만 여전히 기득권의 유지에 혈안이 돼있다. 우리는 개혁이라는 말에 현혹돼서는 안 되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어떤 개혁인지를 따져야 한다. 개혁으로 부의 분배를 공정하게 하는 것인지, 시장 경쟁이 시장권력의 통제를 통해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인지, 노동의 대가를 공정하게 지불하도록 하는 것인지, 일자리가 세대별로 적절하게 배분되도록 하는 것인지, 복지 제도가 누구든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인지 등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우리의 정치적 선택이 헬조선을 유지할 것인가 변화시킬 것인가를 결정해주기 때문이다. 기득권자들, 부자들을 더 배부르게 하는 정치 세력을 교체할 때 헬조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지금 젊은 시민들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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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꺼진 불' 되지 않으려면

탄핵 이후 시민적 진보

 

이양수 한양대학교 강사

 

을씨년스럽지만 봄기운이 완연하다. 어김없는 봄이지만, 분노의 겨울을 보내야 했던 시민들에겐 이제야 봄의 향기를 맡는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촛불 혁명은 마침내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마무리되었다. 133일 1500만의 촛불은 대통령의 무능, 무책임, 불성실에 대한 고발의 함성이자 미래를 향한 정의의 깃발이었다. 비폭력, 평화의 메시지는 강렬했다. 무능을 지혜로 탈바꿈시킨 마력이었다. 헌정사에 오롯이 기억될 촛불 혁명은 분명 시민적 진보의 값진 승리이리라. 불의 앞엔 이념도, 고질적인 지역주의도, 갑질도 없었다. 내일을 염려하고 후손을 걱정하는, 그래서 구습을 단호하게 청산하고 철폐하라는 준엄한 양심의 소리만이 울렸다. 사회 개혁을 위한 통합의 소리였다.

 

돌이켜보면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는 대변혁의 주춧돌이었다. 침묵보다 행동이 위대함을 보여주었고,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확인한 건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거짓은 진실로, 불의는 정의로, 폭력은 비폭력으로 대응하는 건전한 시민의식을 내보였다. 우리는 당당하고 솔직한 대통령이길 바랐지만, 무책임한 대통령, 공사 구분 없는 대통령, 일방통행의 대통령은 참으로 몰염치한 대통령이었다. 온갖 억측과 권모술수에도 우리의 일관된 의지는 꺾을 수 없다. 아무리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도 진정성의 벽 앞에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법의 소명은 건전한 시민의 양심과 다르지 않다. 온갖 불신과 회의를 불식하기에 충분한 값진 경험이었다. 

 

탄핵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낡은 의식과 편견은 아직도 탄핵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이 역사적 사건은 한 시대의 종말을 고한다. 87 체제, 민주화 시대의 극복에 한 걸음 다가서고 있다. 이제 시민의 시대를 알린다. 물론 시민의 시대는 선언일 뿐, 구체적 실체가 없다. 오로지 참여를 통해 만들어야만 달성될 수 있는 이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선언에서 우리는 소망을 찾는다. 적극적 참여자든 침묵한 자든 각자의 가슴엔 작은 불씨처럼 타오르는 희망의 촛불이 있다. 이념, 계급, 지역을 넘어 주권자로서 시민이 탄생되고 있다. 나라를 걱정하고 미래를 염려하는, 공통의 이야기로 하나 됨을 찾을 동시대인이 누리는 특권이다. 시민의 자리는 제3의 지대다. 권력자도, 그저 피 권력자도 아닌, 주체적 시민들의 연대, 평화와 정의의 메아리를 품을 줄 아는 새로운 형태의 연대의 지대다.

 

가시밭길의 사회 개혁 

 

역사적 사건은 순간이다. 순간이 지나면 냉정한 현실은 산 자의 몫이다. 박근혜 시대의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무책임한 행동의 책임은 우리 시민의 숙제로 넘겨졌다. 국내외 상황은 정말 녹록 치 않다. 앞으로 상황 또한 나날이 악화일로다. 단기간에 해결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갈지 걱정이 앞선다. 차기 대통령이 짊어질 짐은 너무도 무겁다.

 

상황에 슬기롭게 대처할 지도자가 필요하긴 하지만, 모든 문제를 단번에 풀 마법은 없다.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목도한 우리가 또 다른 제왕을 갈망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려울수록 천천히 가야 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소중한 체험을 실현 가능한 비전으로 담아내는 지혜의 전략이 필요하다. 고정관념은 깨되, 시민의 정서와 상식에 부합한 상상이 필요하다. 이번 경험에서 배운 중요한 시민의 교훈은 사회 개혁을 위한 훌륭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우선, 통합은 풀어야 할 정치적 당면 과제다. 의견의 반목과 대립은 또 다른 원한과 분노로 폭력의 고리를 만든다. 깨끗하게 승복하지 않는 박근혜의 침묵은 추후 통합의 어려움을 가늠케 한다. 누구나 말할 자유,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어 말할 수 있다. 더욱이 헌재 판결에서 블랙리스트 작성의 위헌 여부는 결정하지 않아 여전히 논쟁의 빌미가 크다. 하지만 폭력을 동반한 기본적 자유의 훼손은 명백한 범죄 행위다. 따라서 기본권 수호와 통합의 일관된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의견의 다양성은 삶의 다양성, 가치의 다양성을 전제로 하므로, 의견의 차이만으로 탄압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우리의 당면 과제는 생각과 의견의 차이를 체제의 유연성으로 어떻게 통합하느냐에 달렸다. 의견을 개진하고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더욱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되, 폭력이 배제된 절차로 승화시켜야 한다. 사회 개혁의 성공은 분명 분열보다 통합에 달려 있다. 

 

사회 개혁을 위해선 정치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정당, 정치인의 셈법은 시민의 입장과 다를 수 있다. 권력을 잡기 위한 행동, 공적 행동의 가능성은 반드시 일치되지 않는다. 당선을 위한 무분별한 공약에 대한 현명한 판단은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다. 불의에 대한 비판 정신은 이해관계와 다르다. 정치의 힘은 불의를 정의로 바꾸는 데 있다. 값진 우리 경험의 성과는 불의와 불공정에서 진실의 정치적 비전을 상상하는 데 있었다. 현실에 없는 것을 꿈꾸는 능력에서 정치의 자양분이 솟아난다. 상상이 결여되면 늘 비참하고 참담한 현실에 굴복하고 만다. 이번 정부의 교훈을 두고두고 새겨야 한다. 

 

권력자의 권한을 통제할 방법에 관한 논의도 필요하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판결에서 "정치적 무능이나 정책 결정상의 잘못"은 파면의 사유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정치적 무능이나 정책 결정은 정치력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력의 자의성을 판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도자의 무책임은 너무도 막대한 피해를 주기 때문에, 명확한 권한 명시가 필요하다. 명확한 제도적 규정이 없으면 법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해 전횡을 부릴 수 있다. 권력 분산 방법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심도 높은 논의가 필요하다. 이에 대한 논의는 추후 전개될 개헌 논의의 중요한 축이기에 더욱 심도 높은 토론이 진행돼야 한다.

 

망각보다 기억을 

 

과거는 현재를 만들어내는 틀과 같다. 어떤 주형을 만들었는지가 현재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과거는 외부의 힘에 의존해야 했다. 늘 과거를 주어진 임무처럼 받아들였다. 신념 없는 이념으로 주인의식을 가지지 못했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망각해야 할지 공동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 해냈다.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스스로 확인했다. "이게 나라다!"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해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다. 그러나 시간이 시간을 갉아먹는다. 거대한 탑을 세워도 시간 앞에서 그 흔적은 지워지고 만다. 우리의 기억만이 그 시간을 소환할 뿐이다. 2017년 3월 10일. 길이 기억에 남을 날이 되려면 꺼지지 않는 정신의 횃불로 남아야 한다. 이름 없는 자의 기억, 이 시간을 기억하고 싶은 사람의 소망으로 남아야 한다. 기억은 촛불 혁명을 진짜 '혁명'으로 만들 것이다. 시민적 진보의 미래가 여기에 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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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03/1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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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 대한 건강관리책무를 영리화시키는 정부

민간 건강관리서비스 사업 도입은 건강서비스를 상품화하여 영리 목적으로 제공

개인의 동의 없이 건강정보를 영리사업자에게 제공을 허용하는 가이드라인은 위헌, 위법임

 

정부는 오늘(2/17) ‘새로운 서비스산업∙농림어업 중심의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하였다. 정부가 발표한 투자활성화 대책에는 4대 서비스 산업 분야의 육성 방안이 논의되었고 특히 헬스케어 산업의 경우 건강관리서비스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건강서비스관리의 도입은 경제 활성화란 미명 하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공공보건의료 차원에서 책임져야 하는 국민의 질환예방, 건강 유지 등에 대한 공적 책임 부분을 시장에 맡기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이미 이명박 정부 때 법 제정을 추진하려다 무산된 바 있는 건강관리서비스를 다시 언급하며 행정규칙에 불과한 가이드라인만으로 건강관리 영리화를 추진한다면, 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법률에 의하지 아니한 국민의 권리 제한에 해당하여 위헌`위법한 조치이며, 반민주적인 행정 독재이다. 이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 이찬진 변호사)는 정부가 보건소 등 공공의료체계 및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공공보건의료를 강화하여 국민들의 건강증진 및 관리 서비스 제공을 확대하여야 함에도, 법을 위반하여 보건의료분야를 시장에 맡기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정부가 헌법상의 국가의 국민에 대한 건강권 보장 책임을 포기하는 처사임을 지적하며 당장 민간 영리 건강관리서비스 도입 추진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2010년 당시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이던 변웅전 의원(자유선진당)은 건강관리서비스 추진을 위해 국회에 「건강관리서비스법」을 입법 발의하였으며, 그 내용은 의료서비스와 건강관리서비스를 구분하여, 의사 면허가 없는 일반 사업자에게 건강관리서비스 기관 설립 허용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보험회사, 제약회사 등이 건강서비스를 상품화하여 영리 목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결국 이 법 제정은 시민사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행정규칙에 불과한 가이드라인만으로 건강서비스관리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건강관리서비스를 실시하기 위해서 건강관리서비스 기관이 환자의 진단, 처방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하는데, 「개인정보보호법」제23조에서는 의료정보 처리를 제한하는 규정이 있으며 「의료법」 제21조에서는 진료기록은 환자 동의하에서만 의료인 간 개별적 확인 및 송부가 가능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기관과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기업 등이 환자정보를 교류하는 것은 상업목적 활용 및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위험성이 있다. 더구나 법률의 위임 없이 가이드라인으로 실시하겠다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및 의료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 또한 건강관리서비스는 건강서비스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민간보험사와 결합하여 의료영리화를 촉진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정부는 서비스산업발전,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 하에 보건, 의료 분야 시장화 정책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건강관리서비스 도입도 그 일환이다.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공적 보험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커녕 건강관리서비스를 시장화하는 것을 보면, 현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의 건강권을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헌법 제36조 제3항에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듯이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명백한 책임이 있는바, 당장 건강증진서비스 정책 및 의료민영화 추진 계획을 당장 철회하고, 공공의료 및 건강보험체계에서 공적인 국민건강관리사업을 확대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일 수 있는 적극적 방안을 내놓을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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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6/02/1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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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의료기 기업 퍼주기 시행규칙 개정 철회해야 한다.

국민들이 치료를 위해 모아둔 건강보험료로 사적기업의 이익을 채우는 행위는 금지돼야

공보험으로 일상적 진찰, 검사, 재활까지 임상시험을 지원하는 나라는 없어

공익적 임상연구는 공공기관에서 시행하여, 그 특허도 공공소유일 때로 한정해야.

 

정부는 지난 4월 14일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리고 오늘(5월 24일)이 의견수렴 마지막 날이다. 이 시행규칙 개정안은 임상시험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다루고 있다. 이는 제약업체 몰아주기 법인 '첨단의료복합단지 지정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시행규칙 개정이라고 하지만 모법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점을 담고 있다.

 

한국에서 임상시험은 사적 기업인 제약회사와 의료기기회사가 주로 시행하고 있으며, 공보험인 건강보험 재정으로 민간기업의 연구개발을 돕는 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행위다. 건강보험의 공익성과 건강보험 재정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국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이번 개정령안은 폐기되어야 한다.

 

1. 민간기업의 임상시험에 대한 공보험의 광범한 지원은 건강보험 민영화에 다름 아니다.
이번 개정안은 임상시험 대상인 약제, 의료기기 뿐 아니라, 임상시험 전후의 진찰, 진단, 재활까지 모두 건강보험재정으로 지원하려 한다. 민간기업이 자신의 주주들과 투자자들의 이익을 위해 수행하는 연구개발은 연구윤리 측면에서도 전적으로 개발 기업이 책임지는 게 맞다. 특히 임상시험 대상자의 사전 검진, 진찰 그리고 임상시험 이후 재활까지 이번 시행령에 포함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이는 건강보험의 공적 목적을 사적기업의 이윤을 위해 유용한다는 점에서 건강보험 민영화 조치로 부를만하다.

 

2. 임상시험의 건강보험 적용은 가뜩이나 조장되고 있는 부분별한 임상시험 확대를 부른다.
서울이 현재 전세계 임상시험 1위 도시이다. 이는 정부가 말하듯 자랑할 만한 것만은 아니다. 임상시험의 상당수가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자국에서 하기 힘든 시험을 한국에서 하는 경우다. 여기에 약제에 대한 무분별한 등재로 생동성 임상시험도 계속 늘어가고 있다. 소득이 없는 젊은이들을 임상시험 대상으로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는 정상이라고 볼 수 없다. 여기에다 임상시험을 조장하는 건강보험 적용은 수많은 임상시험 대행기관의 난립과 임상시험 폭주를 불러 올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임상시험에 대해서도 참여자들의 안전과 연구윤리를 강화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3. 공익적 임상시험의 임의 판단은 위험하다.
이번 개정안에는 보건복지부가 판단한 ‘공익적 임상시험’에 대해서 건강보험을 적용한다고 명시해 두었다. 그러나 공익적 임상시험의 명확한 정의가 없어, 사실 모든 임상시험이 의학발전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공익적 임상시험에 해당될 수도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때문에 만약 공익적이라고 하려면 개발이익의 사회 환원만이 아니라, 임상시험 결과 자체를 공공이 공유해야 한다. 이는 공공기관에서 공공소유로 할 때에만 명확해 질 것이다. 따라서 시행규칙의 행정독재가 우려되는 제한 조항도 ‘공익적 임상시험’이 아니라, 공공이 수행하는 임상시험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 건강보험이 무려 17조 원 이상 남아있으나, 정부는 이를 국민들의 의료비 절감에 전혀 쓰고 있지 않다. 도리어 최근에는 이 돈을 고수익 금융상품에 투자하겠다는 위원회를 만들려 한다. 이는 건강보험의 애초 설립취지를 깡그리 무시하고, 국민들이 내는 건강보험료를 금융자본과 제약자본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처사이다. 병원 인수합병, 부대사업 확대, 영리자회사 허용 등등의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도 정부가 걸핏하면 반박이라고 내놓은 것이 ‘건강보험을 지키니 의료 민영화는 아니다’는 논리였다. 건강보험으로 임상시험을 지원하는 것이 건강보험을 지키는 행위인가? 이익은 사유화하고, 위험은 공공화하는 전형적인 민영화가 아닌가?

 

건강보험은 국민의 것으로 제약회사와 의료기기회사가 전유해서도, 돈벌이를 위한 금융투자에 이용되어서도 곤란하다. 건강보험을 훼손하려는 이 같은 행위에 우리는 반대하며, 정부는 건강보험의 임상시험 지원 근거를 정한 이번 시행규칙 개정안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

 

2016년 5월 24일

의료민영화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화, 2016/05/2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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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일 사법적폐청산문화제 웹홍보물

 

양승태 구속처벌! 특별재판부 설치!

적폐법관 탄핵! 피해 원상회복!

사법적폐 청산 문화제

 

  • 일시 : 2018년 9월 1일 (토) 오후 5시
  • 장소 : 대법원 앞 (2호선 서초역 6번출구)
  • 주최 :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 진행
    • 1부 : 문화제 (발언 및 공연, 공동선언문 낭독 등)
    • 2부 : 항의행동
  • 문의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02-723-0666

 

화, 2018/08/28-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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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고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는,
금융위의 「신용정보법」 개정에 반대한다

27일(수) 경실련,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공동 기자회견 개최
개인신용정보 활용하기 위해 동의절차도 보호장치도 최소화한 금융위. 개인정보 보호의 기본원칙도 무시한 「신용정보법」 개정 중단해야
정보주체의 동의절차 강화하고 재식별화가 불가능한 모델 마련 우선돼야

 


지난 18일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는 ▲개인정보보호법제의 중복 적용 문제를 해결하고 ▲신용정보의 빅데이터 활용 등을 위해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신용정보법」) 전면 개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20일 입법예고를 시행했습니다. 작년 6월 빅데이터 활성화를 위해 「신용정보법 시행령」 개정할 것이라는 기존 계획을 뛰어 넘어 모법인 「신용정보법」 자체를 개정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위험성을 제기하는 여러 목소리를 무시한 채, 개인정보를 범위를 축소하여 금융소비자들을 유출 등의 피해에 노출 시키고 업체들의 무분별한 개인신용정보 활용을 허가해주는 개정에 불과합니다. 이에 경실련,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는 「신용정보법」 개정에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다양한 개인정보보호법제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 중요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금융위가 내놓은 개정안은 규제완화와 산업 활성화 측면만 강조하다 보니 개인정보의 중요성을 망각하여 그 보호의 기능을 기존에 비해 크게 후퇴시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각종 산업부문이 서로 융합되어가면서 정보 또한 온·오프라인의 구분을 넘어 결합·축적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 개정안은 「신용정보법」의 적용대상을 축소시켰습니다. 이는 기업들의 무책임한 개인정보 수집·이용 등을 제한하고 있는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제의 두터운 보호장치를 헐어내는 것임은 물론이거니와 개인정보보호법제의 입법취지를 크게 손상한 것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금융위는 여전히 비식별 정보가 개인신용정보에 해당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기업 등이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고도 이를 빅데이터 분석 등에 이용해도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무관한 대법원 판결(해당 대법원 판결은 개인신용정보의 범위에 관한 것으로써, 신용에 관한 정보만을 개인신용정보로 본다는 신용정보법 관련 판결이다. 즉 해당 법에 따라 신용정보보호법에 따른 개인신용정보는 아니지만 개인정보보호법 등에서 규정하는 개인정보에 해당함은 명백합니다. 이 판결을 현재 개정안의 취지에 비추어 보아 어떠한 의미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까지 인용한 것을 보면 개인신용정보와 개인정보를 분리하여 개인신용정보를 빅데이터 산업 등에 무분별하게 활용하고자 허용하는 것이 이번 개정의 목적임은 분명해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개인정보를 비식별화 하더라도 ▲재식별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 정보 증가, ▲데이터 공개의 증가, ▲맞춤형 광고 데이터의 증가와 데이터 집중의 심화, ▲데이터 마이닝 및 프로파일링 기술의 가속화, ▲사물통신 환경과 비식별 정보의 폭증 등으로 인해 재식별의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기업은 “보다 정밀한 경영 및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재식별 의지가 높은 주체중 하나”입니다(한국정보화진흥원, 2014, “개인정보 비식별화에 대한 적정성 자율평가 안내서” pp.17-20.). 따라서 금융소비자들은 물론 수많은 시민들의 정보가 무분별하게 수집되고 이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만 금융위는 이에 대한 어떠한 고민도, 아무런 대비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개정안에 비식별 정보를 제공받은 자의 재식별 금지(개정안 제32조의2제7항)하는 조항을 신설할 정도로 쉽게 재식별 될 수 있음을 자인하면서도, 어떠한 대안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금융위의 인식과는 달리, 개인정보보호법제들은 개인정보의 수집부터 이용까지 그 범위와 목적을 명확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보주체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생활 침해 등이 최소화되는 상황에서만 정보의 수집과 유통 및 활용을 허하는 것을 주요한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인권이 이익에 우선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금융위의 경도된 입장으로 일관된 금번 개정안은 정보산업의 건강을 해치는 개악이자 우리 헌법의 대원칙에 역행하는 그야말로 심대한 오류임이 분명합니다.

 

경실련과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는 개인정보보호의 기본원칙마저 무시한 채 진행되는 금융위의 「신용정보법」 개정에 대해 반대해왔습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해왔고, 개악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 입장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첫째, 비식별 개인정보의 활용에 대한 논의에 앞서 비식별의 구체적인 정도와 기준설정에 관한 공개적인 논의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현재 국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비식별화의 수준이 국제적 기준에 비해 낮아 재식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둘째, 재식별 방지를 위한 현실적인 방안 또는 구체적인 기술에 대하여 명확히 설명하여 정보주체인 국민들의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 어떤 나라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개인정보와 관련한 많은 사건들을 겪어왔기 때문에, 국민들이 신뢰할 수 없는 그 어떠한 정보의 가공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셋째, 개인정보에 관한 그 어떠한 새로운 논의도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제가 허하는 범주 내에서, 그리고 우리 헌법의 정신에 부합하는 형태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에 비추어 보자면, 금융위가 시도하는 금번 「신용정보법」의 개악은 그야말로 일탈일 수밖에 없습니다. 

 

비식별 개인정보에 대한 올바른 논의의 진행하기 위해서, 금융위는 이렇듯 잘못된 접근으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의 개인정보 관련기관은 물론 정보인권 및 프라이버시 관련 시민사회와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세 단체는 향후에도 적극적인 입법 저지 운동 등 시민들의 안전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대응을 지속할 것입니다.


금융위의 「신용정보법 개정안」에 대한 시민단체 공동 기자회견

 

○ 일 시 : 2016년 4월 27일(수) 오전 11시
○ 장 소 : 금융위원회 앞
○ 기자회견 순서

- 사회 : 경실련 박지호 간사

- 기자회견 개최 취지 설명 : 경실련 박지호 간사
- 「신용정보법 개정안」 주요 문제점 설명 – 진보넷 장여경 활동가
- 기자회견문 낭독 – 참여연대 김은정 간사
- 금융위 의견서 제출
  ※ 참여연대는 이번 신용정보법 개정안과 관련하여 보다 엄밀한 검토를 거친 의견서를 추후 발표 예정임. 

 

<기자회견문>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고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는, 금융위의 「신용정보법」 개정에 반대한다

 

우리 세 단체는 시민들의 개인정보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특히 오늘은 정부의 안일한 개인정보 정책을 비판하고 반대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약 4억 건이 넘는 개인정보가 유출됐습니다. 온 시민들의 개인정보가 전 세계의 “공공재”로 활용되고 있는 현실에 시민들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방치 속에 기업은 자사 이익을 위해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수집·이용했고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정부는 말 그래도 방치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한 시민들과의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2014년초 카드3사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건이후, 정부는 개인정보 주체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자기정보결정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금융위원회가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신용정보법 개정안」)을 내놓으며 이 약속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제의 중복 적용 문제를 해결”하고 “신용정보의 빅데이터 활용”등을 위함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정부는 시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규제를 일방적으로 완화하려 합니다.

이는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개인정보 범위를 과도하게 축소하여 업체들의 무분별한 활용을 허가해주는 것에 불과하고,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을 개인정보 유출 등의 피해에 노출 시키는 것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규제완화와 산업 활성화 측면만 강조하다 보니 개인정보의 중요성을 망각하여 그 보호의 기능을 기존에 비해 크게 후퇴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세 단체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먼저, 「신용정보법」의 적용대상을 축소시키는 것에 반대합니다. 오늘날 각종 산업이 서로 융합되고, 정보는 온·오프라인의 구분을 넘어 결합·축적되어가고 있습니다. 개별적인 금융 산업이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용정보를 보호하는 법제를 「신용정보법」으로 축소할 경우, 기업들의 무책임한 개인정보 이용 등을 제한하고 있는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제의 두터운 보호장치를 헐어내고 그 입법취지를 크게 손상시키게 됩니다.

 

또한 비식별화 작업을 거친 신용정보를 기업이 무분별하게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것 역시 반대합니다. 이는 시민들의 개인정보 보호 강화 요구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정부의 주장과 달리 비식별화된 개인정보도 개인정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 등이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비식별화 작업은 충분한 안전장치가 될 수 없습니다. ▲재식별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 정보 증가, ▲데이터 공개의 증가, ▲데이터 마이닝 및 프로파일링 기술의 가속화 등으로 인해 재식별의 위험이 너무나 높습니다. 금융위원회 역시 스스로 개정안에 비식별 정보를 제공받은 자의 재식별을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할 정도로 쉽게 재식별 될 수 있음을 자인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무분별한 제도를 수정할 것이 아니라, 개인정보의 비식별화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정도와 기준설정은 공개적이고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또한 근본적인 대안으로서 재식별 방지를 위한 현실적인 방안 또는 구체적인 기술에 대하여 명확히 설명하고, 정보주체인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만 합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제들은 개인정보의 수집부터 이용까지 그 범위와 목적을 명확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보주체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생활 침해 등이 최소화되는 상황에서만 정보의 수집과 유통 및 활용을 허하는 것을 주요한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우리 인권이 이익에 우선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금융위원회의 경도된 입장으로 일관된 금번 개정안은 정보산업의 건강을 해치는 개악이자 우리 헌법의 대원칙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기업이 아닌 시민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정부가 개인정보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제가 허하는 범주 내에서, 그리고 우리 헌법의 정신에 부합하는 형태이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기를 요구합니다.


2016년 4월 27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 진보네트워크센터 ‧ 참여연대

 

수, 2016/04/2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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