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목격자들]딴따라 행진(The Parade Of Artist)

지역

[목격자들]딴따라 행진(The Parade Of Artist)

익명 (미확인) | 월, 2015/09/14- 07:05

예술가를 바라보는 시선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예술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로 보는 시선이고 두번 째는 예술가들을 낮춰 부를 때 흔히 사용하는 ‘딴따라’로 보는 시선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딴따라’라는 단어에는 예술가에 대한 편견 즉, ‘노동 하지 않는 사람’, ‘사회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세간의 생각이 투영되어 있다. 그들은 정말 노동하지 않고, 사회에 관심없는 사람들일까? 2015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조금 다른 ‘딴따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상의 얼굴을 그리다

신주욱 작가,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알리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와 ‘진실을 인양하라’ 등의 작품을 그렸다. 그는 주로 돌아가신 분들의 얼굴을 그린다.

단지 얼굴을 그린다는 게 그림이 아니라 그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신주욱 작가

▲ 지난 8월 21일 장기기증자 가족들과 함께 장기기증자 얼굴을 그리기 행사에 참여한 신주욱 작가.

▲ 지난 8월 21일 장기기증자 가족들과 함께 장기기증자 얼굴을 그리기 행사에 참여한 신주욱 작가.

그가 지난 8월 한 단체가 주관하는 장기기증자들의 얼굴을 그리는 행사에 나섰다. 장기기증 유가족들은 일일이 손 편지에 사진을 동봉해 얼굴을 그려 달라 보내주었다. 신 작가가 장기기중자들의 얼굴에 밑그림을 그리고 나면, 유가족들은 머리카락, 눈, 코, 입을 그리며 그리운 얼굴을 완성해 간다. 한 시간의 그리기가 끝나면 가족들의 얼굴에는 비로소 미소가 띈다. 신 작가가 세상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그만의 방식이다.

이동수 화백은 20여 년 동안 시사만평을 그려온 시사만화가로 노동자와 철거민 등 사회적 약자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왔다. ‘거리의 만화가’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는 오늘도 우리가 모르는 세상의 얼굴을 그리고 있다.

▲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캐리커처를 주로 그리는 시사만화가 이동수 씨. 사람들의 기쁨이 그에게 힘이 된다.

▲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캐리커처를 주로 그리는 시사만화가 이동수 씨. 사람들의 기쁨이 그에게 힘이 된다.

스스로 선 음악가들

8월 29일, 서울 한남동에서 ‘자립심 페스티벌’ 이 열렸다. 최근 한남동 일대에 문화 거리가 형성되면서 부동산 임대료가 치솟았고, 결국 비싼 임대료에 소상공인들이 내몰리게 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비판하고 극복하기 위한 음악 행사였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운영진을 맡고 있는 황경하씨는 거대 기획사나 매니지먼트사에 휩쓸리지 않는 음악을 하려고 조합을 만들었다. 기획에서부터 음향, 무대, 진행까지 음악인들이 직접 만들어가면서 음악인들이 음악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황 씨의 소망이다.

▲ 자립음악생산조합 운영위원이자 음악가인 황경하 씨. 그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작업실을 잃는 음악가들이라고 말한다.

▲ 자립음악생산조합 운영위원이자 음악가인 황경하 씨. 그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작업실을 잃는 음악가들이라고 말한다.

당신의 오아시스는 어디인가요?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에서 노총각 ‘염소팔’ 역을 맡고 있는 배우 고훈목 씨. 연극 활동 만으로는 생계를 잇기 힘들어 대리 운전을 하고 있다. 고 씨는 연극을 통해 세상에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말한다.

경제 논리가 주로 작동하는 세상에서 숨을 돌릴 수 있는 것이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연극이고 이를 통해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에서 활동중인 배우 고훈목 씨. 그에게 가장 소중한 순간은 연극을 즐기는 바로 이 순간이다.

▲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에서 활동중인 배우 고훈목 씨. 그에게 가장 소중한 순간은 연극을 즐기는 바로 이 순간이다.

이들에게 삶의 오아시스는 어디에 있을까? 무엇이 그들을 거리로 이끌고, 무엇이 그들을 사람들 곁에 설 수 있게 하는 걸까? 2015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딴따라’들을 목격자들 카메라에 담았다.


취재 작가 : 박은현
글 구성 : 김근라
연출 : 박정대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한 달 동안 오픈채팅에 쏟아진 5천 명의 목소리

# 2017년 11월 1일

SNS 오픈채팅 “직장갑질119”가 만들어졌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 달 동안 5,634명의 직장인이 참여했다. 모두 40,207번의 대화가 오갔고 2,021건의 갑질 피해를 호소했다. 하루 평균 68건의 갑질 신고가 이어진 것이다. 참여한 직장인들도 다양했다. 간호사, 보육교사, 방송사 작가, 카센터 직원, 콜센터 직원 등이다.

▲지난 11월 1일 개설한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

▲지난 11월 1일 개설한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

# 2,021건의 갑질 피해가 접수되다.

부당해고, 임금체불에서 시간외수당 미지급, 직장 내 성희롱과 성추행, 간부들의 폭언과 욕설, 야근과 휴일근로 강요, 고용주의 가정일에 직원을 사적으로 동원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간호사들에게 재단 행사에 선정적인 장기자랑을 요구하고, 휴일에 직원들을 불러 김장을 담그게 하거나, 자녀 결혼식장에서 일을 시켰다는 내용도 있었다.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 야근, 퇴사, 폭언, 욕, 해고, 폭행, 무시, 화 등이다.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 야근, 퇴사, 폭언, 욕, 해고, 폭행, 무시, 화 등이다.

# 241명이 네트워크로 연결해 활동하다.

오픈채팅 ‘직장갑질119’는 노동조합 활동가, 비정규직 노동운동가, 노무사, 변호사 등 241명의 노동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네트워크형 공익단체다. 노동조합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중소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법률적 자문을 제공하고 스스로 권익을 찾도록 지원하고 있다.

▲ 직장갑질119 스태프 회의. 직장갑질119 활동에는 노무사, 변호사, 노동활동가 등 241명의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하고있다.

▲ 직장갑질119 스태프 회의. 직장갑질119 활동에는 노무사, 변호사, 노동활동가 등 241명의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하고있다.

<목격자들> 오픈채팅에서 노조결성까지 한 달 동안의 기록 담아 2부로 방송

# 2017년 12월 1일, 노조 만들어지다.

오픈채팅은 직장인들에게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공간이 됐다. 스스로 문제 해결을 위해 뭉치게 했고 노조까지 만들게 했다. 12월 1일 한림재단 성심병원 5개 지부가 모여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직장갑질119을 통해 탄생한 첫 번째 노동조합이다. 그동안 노조가 없었던 곳이다. 오픈채팅에서 시작해 오프라인 모임과 노조를 만들기까지 험난했다고 한다.

▲12월 7일 직장갑질119 가면무도회에서 만난 갑질 피해 제보자

▲12월 7일 직장갑질119 가면무도회에서 만난 갑질 피해 제보자

# 2017년 12월 7일, 가면무도회 열리다.

노동자들이 가면을 쓰고 함께 모였다. 직장에서 갑질 피해를 증언하는 가면무도회다. 자신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서는 아직은 가면이 필요하다. 그러나 ‘을(乙)’들이 조금씩 자신들의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스스로를, 일터를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오픈채팅에서 오프라인까지 ‘갑질 박멸’에 나선 직장인들의 한 달 동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1부와 2부로 방송한다.


취재작가 김지음, 오승아
글 구성 김근라
취재 연출 남태제, 박정대

화, 2017/12/12- 20:11
228
0

이번 주 <목격자들>은 성심병원 노동자들이 직장갑질119 오픈채팅에서 병원의 갑질 실태 폭로를 시작한 후부터 노동조합을 결성하기까지 한 달 동안의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11월 2일. 직장내 ‘갑질’ 피해 고발 창구인 ‘직장갑질119 오픈채팅’에 한림대 재단 성심병원 노동자들의 제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성심병원의 간호사, 의료기사, 행정직원들은 한림대학교 재단 계열의 성심병원 6곳(춘천성심병원, 평촌성심병원, 강남성심병원, 한강성심병원, 동탄성심병원, 강남성심병원)에서 계속되어온 임금체불과 초과근로 강요, 선정적인 장기자랑 강요 등 갑질 실태를 고발했다.

2017121801_01

장기자랑에 관심이 집중됐는데, 그건 극히 일부고요. 버티면서 일하는 사람이 더 많아요.

C 성심병원 간호사

2017121801_02

터질 게 드디어 터졌다. 너무 늦게 터졌다. 이런 생각이 들죠.

A 성심병원 간호사

직장갑질119는 오픈채팅과 이메일을 통해 이들의 증언을 모았다. 조기출근, 근무시간 외에 행해지는 화상회의, 병원청소와 각종 행사 준비, 임신한 근로자에 대한 야간 근무 강요 등 만성적인 초과근로 강요와 초과근로수당 미지급은 시작에 불과했다. 폭언과 이른 바 ‘태움 문화’ 등 직장 내 괴롭힘, 분실 의료 비품 구매 강요와 특정 정치인에 대한 후원 강요 등 성심병원의 갑질은 끝이 없었다.

2017121801_03

간호사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전문 댄서처럼 몇 시간씩 거의 한 달 이상 연습하거든요. 내가 간호사인지 춤꾼인지 헷갈릴 정도로…

B 성심병원 간호사

2017121801_04

‘임신해도 야간 근무해야 하니까 (야간 근무 동의)청구서 작성해야 해’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C 성심병원 간호사

일주일 전에 청소 구역을 정해주고 (Clean hospital 행사일) 3-4일 전에 검사해요. 일주일 동안 내내 청소를 하는 거죠. 칫솔로 윤냈어요. 스테인리스 같은 경우는 치약으로 윤을 내면 깨끗해지잖아요. 그것도 저희가 했어요. 근무시간 외로

F 성심병원 간호사

11월 9일 직장갑질119는 성심병원 노동자들을 위한 온라인 모임을 개설했고,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원에 나섰다. 온라인 모임을 바탕으로, 12월 1일 한림대학교의료원 소속 4개 성심병원(한림(평촌), 강남, 동탄, 한강) 노동자들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한림대의료원지부를 설립했다. 성심병원 개원 이후 30여 년만의 일이자, 직장갑질119의 도움으로 결성된 첫 노동조합이다.

성심병원에 노동조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1년 춘천성심병원에서 200여 명 규모로 민주노조가 만들어졌으나, 기업노조를 만든 병원 측의 와해전략으로 조합원들이 대거 탈퇴해, 10여 명의 조합원만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해왔을 뿐이다.

춘천성심병원의 민주노조가 사실상 실패했던 경험은 이후 한림대 재단 계열 성심병원 6곳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결성에 나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오픈채팅과 온라인 모임이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어, 보건노조 한림대의료원지부의 설립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 따르면, 노조가입대상 3000여명 가운데 1,500여명이 가입해 사내 과반 노조가 될 경우 한림대의료원 지부는 노동자 대표로서 단체교섭권을 가지게 된다. 보건의료노조 한림대학교의료원 지부는 12월 17일 현재 2,100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한 상태로, 기업노조인 한림대춘천성심병원 노동조합과 교섭권을 다투고 있다.

월, 2017/12/18- 20:35
289
0

내 아이가 태어났던 지난해 1월,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검찰 조사가 시작됐고, 전 국민이 참사의 진실을 알기 시작했다. 난 대부분의 피해자들처럼 아파트에 살고 있고, 요즘처럼 건조한 날씨에는 가습기를 자주 켠다. 그리고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면 우리 부부는 함께 밤을 새우며 아이 곁을 지킨다. 요즘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3월 말부터 8개월째이다.

참사가 일어난 지 6년이 지났다. 환경부에서 발표한 잠재적 피해자는 30-50만 명에 이른다. 피해를 신청한 5,945명 중 3,610명은 아직 피해 여부에 대한 판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6년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조사가 완료된 2천여 명 중 3백여 명만이 피해 인과관계가 증명됐고, 대다수의 신청자들은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지난 8월 27일 6주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대회가 열렸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특별법’에 따른 환경부의 대책을 설명하는 시간은 피해자로 인정받지 신청자들의 하소연과 피해 인정 범위 확대 요구로 채워졌다.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대회(2017년 8월 27일)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대회(2017년 8월 27일)

가습기 살균제 3단계 피해자 윤미애 씨는 지난 5월 폐이식 수술을 받았다. 2015년부터 서서히 나빠졌던 몸 상태는 지난 1월부터 급격히 나빠졌고 폐이식 수술까지 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지만 아직은 안심하기 힘든 상황, 게다가 호흡량을 늘리기 위한 치료 때문에 목소리까지 잃었다. 소리는 나오지 않지만 그녀의 입이 말한다.

어쩔 수 없이 몸이 아프고 힘든데 금전적인 것까지 너무나 힘든 상황이라서 부담을 덜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애들이 보고 싶어요 아이들이 우울증이 오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빨리 집에 가고 싶어요.

윤미애 씨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윤미애 씨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윤미애 씨

2년 전 폐이식 수술을 받은 3단계 피해자 안은주 씨는 운동선수 출신으로 가습기 피해를 입기 전 생활체육선수와 체육교사로 활동했다. 폐이식 수술을 받기 전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피해자 구제 활동에 앞장섰다. 지난 8월 8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 시행을 하루 앞두고 새로 부임한 김은경 환경부장관이 안은주 씨를 찾았다. 그간 참았던 울음이 쏟아졌다.

정부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왜 1단계 2단 3단계 나눠가지고 대체 어쩌란 말이에요 지금.

안은주 씨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안은주 씨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안은주 씨

김은경 장관은 1, 2, 3, 4 피해 단계 구분을 없애고 피해자 인정을 확대하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하지만 단계 폐지나 피해 인정 확대는 시행되지 않았고, 안은주 씨와 윤미애 씨처럼 중증 환자 4가족에 대해서만 3,000만 원의 긴급의료비 지원이 있었을 뿐이었다. 폐이식 수술 비용 때문에 아직 수술을 받지 못한 채, 가족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생을 이어가는 박영숙 씨와 남편은 여전히 소극적인 피해 인정기준에 대한 문제 제기를 위해 응급차에 몸을 싣고 기자회견에 나섰다. 남편 김태종 씨가 마이크를 들었다.

이 사람 같은 경우는 죽는 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거든요, 집사람은 개인회생 중이고 저는 신용 회복 중입니다. 앞으로 폐이식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몇억이 들어가는데, 그 비용을 저희는 감당할 수가 없어요.

김태종 씨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박영숙 씨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박영숙 씨

지난 11월 23일 사회적 참사 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위해 가습기 살균제 3, 4단계 피해자들이 영하의 날씨에도 국회 앞에 텐트를 쳤다. 법은 통과됐지만 아직도 해결되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들의 바람이 이뤄지길 희망한다.

▲ 국회에서 농성 중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 국회에서 농성 중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제작 : 김종관 독립다큐감독

금, 2017/12/22- 18:22
304
0

내 아이가 태어났던 지난해 1월,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검찰 조사가 시작됐고, 전 국민이 참사의 진실을 알기 시작했다. 난 대부분의 피해자들처럼 아파트에 살고 있고, 요즘처럼 건조한 날씨에는 가습기를 자주 켠다. 그리고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면 우리 부부는 함께 밤을 새우며 아이 곁을 지킨다. 요즘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3월 말부터 8개월째이다.

참사가 일어난 지 6년이 지났다. 환경부에서 발표한 잠재적 피해자는 30-50만 명에 이른다. 피해를 신청한 5,945명 중 3,610명은 아직 피해 여부에 대한 판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6년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조사가 완료된 2천여 명 중 3백여 명만이 피해 인과관계가 증명됐고, 대다수의 신청자들은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지난 8월 27일 6주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대회가 열렸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특별법’에 따른 환경부의 대책을 설명하는 시간은 피해자로 인정받지 신청자들의 하소연과 피해 인정 범위 확대 요구로 채워졌다.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대회(2017년 8월 27일)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대회(2017년 8월 27일)

가습기 살균제 3단계 피해자 윤미애 씨는 지난 5월 폐이식 수술을 받았다. 2015년부터 서서히 나빠졌던 몸 상태는 지난 1월부터 급격히 나빠졌고 폐이식 수술까지 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지만 아직은 안심하기 힘든 상황, 게다가 호흡량을 늘리기 위한 치료 때문에 목소리까지 잃었다. 소리는 나오지 않지만 그녀의 입이 말한다.

어쩔 수 없이 몸이 아프고 힘든데 금전적인 것까지 너무나 힘든 상황이라서 부담을 덜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애들이 보고 싶어요 아이들이 우울증이 오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빨리 집에 가고 싶어요.

윤미애 씨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윤미애 씨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윤미애 씨

2년 전 폐이식 수술을 받은 3단계 피해자 안은주 씨는 운동선수 출신으로 가습기 피해를 입기 전 생활체육선수와 체육교사로 활동했다. 폐이식 수술을 받기 전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피해자 구제 활동에 앞장섰다. 지난 8월 8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 시행을 하루 앞두고 새로 부임한 김은경 환경부장관이 안은주 씨를 찾았다. 그간 참았던 울음이 쏟아졌다.

정부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왜 1단계 2단 3단계 나눠가지고 대체 어쩌란 말이에요 지금.

안은주 씨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안은주 씨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안은주 씨

김은경 장관은 1, 2, 3, 4 피해 단계 구분을 없애고 피해자 인정을 확대하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하지만 단계 폐지나 피해 인정 확대는 시행되지 않았고, 안은주 씨와 윤미애 씨처럼 중증 환자 4가족에 대해서만 3,000만 원의 긴급의료비 지원이 있었을 뿐이었다. 폐이식 수술 비용 때문에 아직 수술을 받지 못한 채, 가족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생을 이어가는 박영숙 씨와 남편은 여전히 소극적인 피해 인정기준에 대한 문제 제기를 위해 응급차에 몸을 싣고 기자회견에 나섰다. 남편 김태종 씨가 마이크를 들었다.

이 사람 같은 경우는 죽는 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거든요, 집사람은 개인회생 중이고 저는 신용 회복 중입니다. 앞으로 폐이식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몇억이 들어가는데, 그 비용을 저희는 감당할 수가 없어요.

김태종 씨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박영숙 씨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박영숙 씨

지난 11월 23일 사회적 참사 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위해 가습기 살균제 3, 4단계 피해자들이 영하의 날씨에도 국회 앞에 텐트를 쳤다. 법은 통과됐지만 아직도 해결되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들의 바람이 이뤄지길 희망한다.

▲ 국회에서 농성 중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 국회에서 농성 중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제작 : 김종관 독립다큐감독

금, 2017/12/22- 18:22
219
0

이번 주 <목격자들>은 성심병원 노동자들이 직장갑질119 오픈채팅에서 병원의 갑질 실태 폭로를 시작한 후부터 노동조합을 결성하기까지 한 달 동안의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11월 2일. 직장내 ‘갑질’ 피해 고발 창구인 ‘직장갑질119 오픈채팅’에 한림대 재단 성심병원 노동자들의 제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성심병원의 간호사, 의료기사, 행정직원들은 한림대학교 재단 계열의 성심병원 6곳(춘천성심병원, 평촌성심병원, 강남성심병원, 한강성심병원, 동탄성심병원, 강동성심병원)에서 계속되어온 임금체불과 초과근로 강요, 선정적인 장기자랑 강요 등 갑질 실태를 고발했다.

2017121801_01

장기자랑에 관심이 집중됐는데, 그건 극히 일부고요. 버티면서 일하는 사람이 더 많아요.

C 성심병원 간호사

2017121801_02

터질 게 드디어 터졌다. 너무 늦게 터졌다. 이런 생각이 들죠.

A 성심병원 간호사

직장갑질119는 오픈채팅과 이메일을 통해 이들의 증언을 모았다. 조기출근, 근무시간 외에 행해지는 화상회의, 병원청소와 각종 행사 준비, 임신한 근로자에 대한 야간 근무 강요 등 만성적인 초과근로 강요와 초과근로수당 미지급은 시작에 불과했다. 폭언과 이른 바 ‘태움 문화’ 등 직장 내 괴롭힘, 분실 의료 비품 구매 강요와 특정 정치인에 대한 후원 강요 등 성심병원의 갑질은 끝이 없었다.

2017121801_03

간호사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전문 댄서처럼 몇 시간씩 거의 한 달 이상 연습하거든요. 내가 간호사인지 춤꾼인지 헷갈릴 정도로…

B 성심병원 간호사

2017121801_04

‘임신해도 야간 근무해야 하니까 (야간 근무 동의)청구서 작성해야 해’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C 성심병원 간호사

일주일 전에 청소 구역을 정해주고 (Clean hospital 행사일) 3-4일 전에 검사해요. 일주일 동안 내내 청소를 하는 거죠. 칫솔로 윤냈어요. 스테인리스 같은 경우는 치약으로 윤을 내면 깨끗해지잖아요. 그것도 저희가 했어요. 근무시간 외로

F 성심병원 간호사

11월 9일 직장갑질119는 성심병원 노동자들을 위한 온라인 모임을 개설했고,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원에 나섰다. 온라인 모임을 바탕으로, 12월 1일 한림대학교의료원 소속 4개 성심병원(한림(평촌), 강남, 동탄, 한강) 노동자들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한림대의료원지부를 설립했다. 성심병원 개원 이후 30여 년만의 일이자, 직장갑질119의 도움으로 결성된 첫 노동조합이다.

성심병원에 노동조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1년 춘천성심병원에서 200여 명 규모로 민주노조가 만들어졌으나, 기업노조를 만든 병원 측의 와해전략으로 조합원들이 대거 탈퇴해, 10여 명의 조합원만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해왔을 뿐이다.

춘천성심병원의 민주노조가 사실상 실패했던 경험은 이후 한림대 재단 계열 성심병원 6곳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결성에 나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오픈채팅과 온라인 모임이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어, 보건노조 한림대의료원지부의 설립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 따르면, 노조가입대상 3000여명 가운데 1,500여명이 가입해 사내 과반 노조가 될 경우 한림대의료원 지부는 노동자 대표로서 단체교섭권을 가지게 된다. 보건의료노조 한림대학교의료원 지부는 12월 17일 현재 2,100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한 상태로, 기업노조인 한림대춘천성심병원 노동조합과 교섭권을 다투고 있다.

월, 2017/12/18- 20:35
198
0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

수많은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에 의해 포승줄에 묶인 채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상당수 시민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광주교도소에) 군인들이 배치되고 우리는 퇴근을 못 하게 돼 있었지. 저녁 무렵에 트럭으로 사람을 싣고 왔는데 사람을 퍼 놨다고 할까 뭐랄까… 쌀가마 자루처럼 던져 놓으니까. 누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처음에는 구별을 못 했어요.

민경덕 / 5.18 당시 광주교도소 의무과 직원

이렇게 끌려온 곳은 광주교도소였다. 5.18 당시 광주교도소는 계엄군의 작전본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순용 씨는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제3공수여단 11대대 지역대장이었다. 그는 당시 광주 교도소 곳곳에서 시신 20여 구가 암매장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시체를 수거해서 구덩이를 파고몇 군데 묻는 것을 제가 봤죠. 몇 구씩 두,세구 많게는 서,너구씩 구덩이 파기 좋은 곳에 담벼락에서 약간 떨어지거나 언덕길 높은 곳에 묻은 걸 제가 목격을 했죠.

신순용 (5.18 당시 3공수여단 11대대 지역대장)

지난 1995년 전두환 노태우 내란죄 등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검찰진술조서에도 광주교도소 암매장 증언이 나온다. 당시 3공수여단 본부대장 김 모 소령은 “전남대학교에서 광주교도소로 호송한 차량의 문을 열었을 때 2~3명이 밟혀 죽어 있었던 것을 확실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 당시 계엄군의 3공수여단 본부대장이었던 김 모 소령의 진술조서와 약도 (1995년 5월 29일 서울지검이 전두환의 내란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진술조서다.)

▲ 당시 계엄군의 3공수여단 본부대장이었던 김 모 소령의 진술조서와 약도 (1995년 5월 29일 서울지검이 전두환의 내란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진술조서다.)

2017년 11월 4일 옛 광주교도소에 대한 발굴작업이 시작됐다. 암매장에 관한 증언과 기록을 토대로 5.18기념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번 유해 발굴 작업은 2009년 3차 조사 이후 8년 만이다.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인 광주 북구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인근 발굴 작업 현장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인 광주 북구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인근 발굴 작업 현장

5.18 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으로 신고된 건수는 441건이다. 이 가운데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행방불명자는 81명이다. 암매장과 관련된 군 기록이 전면 공개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군의 특성상 지시와 보고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직접 암매장에 가담했던 군 관련자에 대한 재조사도 필요하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지난 한 달동안 암매장 지역으로 추정된 옛 광주교도소에서진행한 5.18 희생자의 대한 유해발굴 작업을 취재했다.


취재작가 김지음
글 구성 김근라
취재연출 김한구

금, 2017/12/29- 19:19
196
0

올해 최저시급은 7,530원이다. 지난해보다 1,060원 올랐다. 하루 3시간, 일주일에 15일 일하면 받게되는 주휴수당까지 합하면 한 시간에 받을 수 있는 돈은 9천 원 남짓 된다.

▲알바 생활 5년 차인 김승연 씨와 유태현 씨, 이번 주 '목격자들' 방송의 주인공이다.

▲알바 생활 5년 차인 김승연 씨와 유태현 씨, 이번 주 ‘목격자들’ 방송의 주인공이다.

시급이 많이 올라가서 좀 아껴 쓰는 걸 안 해보고 싶어요.
2+1, 1+1 행사상품만 찾아다니는 그런 게 조금 슬프기도 해요.

유태현 (26살 /5년 차 햄버거 배달 아르바이트생)

정말 조금 오른 건데 조금이라도 돈을 모을 수 있게 되었죠.
돈이 모이니까 좀 더 나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던 것 같아요.

김승연 (23살 / 5년 차 아르바이트생)

한 시간 일한 노동의 대가로 1,060원을 더 받는다는 것이 청춘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번 주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최저시급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취재작가: 오승아
글 구성: 최미혜
촬영, 연출: 이우리

목, 2018/01/04- 17:58
189
0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

수많은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에 의해 포승줄에 묶인 채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상당수 시민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광주교도소에) 군인들이 배치되고 우리는 퇴근을 못 하게 돼 있었지. 저녁 무렵에 트럭으로 사람을 싣고 왔는데 사람을 퍼 놨다고 할까 뭐랄까… 쌀가마 자루처럼 던져 놓으니까. 누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처음에는 구별을 못 했어요.

민경덕 / 5.18 당시 광주교도소 의무과 직원

이렇게 끌려온 곳은 광주교도소였다. 5.18 당시 광주교도소는 계엄군의 작전본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순용 씨는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제3공수여단 11대대 지역대장이었다. 그는 당시 광주 교도소 곳곳에서 시신 20여 구가 암매장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시체를 수거해서 구덩이를 파고몇 군데 묻는 것을 제가 봤죠. 몇 구씩 두,세구 많게는 서,너구씩 구덩이 파기 좋은 곳에 담벼락에서 약간 떨어지거나 언덕길 높은 곳에 묻은 걸 제가 목격을 했죠.

신순용 (5.18 당시 3공수여단 11대대 지역대장)

지난 1995년 전두환 노태우 내란죄 등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검찰진술조서에도 광주교도소 암매장 증언이 나온다. 당시 3공수여단 본부대장 김 모 소령은 “전남대학교에서 광주교도소로 호송한 차량의 문을 열었을 때 2~3명이 밟혀 죽어 있었던 것을 확실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 당시 계엄군의 3공수여단 본부대장이었던 김 모 소령의 진술조서와 약도 (1995년 5월 29일 서울지검이 전두환의 내란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진술조서다.)

▲ 당시 계엄군의 3공수여단 본부대장이었던 김 모 소령의 진술조서와 약도 (1995년 5월 29일 서울지검이 전두환의 내란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진술조서다.)

2017년 11월 4일 옛 광주교도소에 대한 발굴작업이 시작됐다. 암매장에 관한 증언과 기록을 토대로 5.18기념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번 유해 발굴 작업은 2009년 3차 조사 이후 8년 만이다.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인 광주 북구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인근 발굴 작업 현장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인 광주 북구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인근 발굴 작업 현장

5.18 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으로 신고된 건수는 441건이다. 이 가운데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행방불명자는 81명이다. 암매장과 관련된 군 기록이 전면 공개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군의 특성상 지시와 보고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직접 암매장에 가담했던 군 관련자에 대한 재조사도 필요하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지난 한 달동안 암매장 지역으로 추정된 옛 광주교도소에서진행한 5.18 희생자의 대한 유해발굴 작업을 취재했다.


취재작가 김지음
글 구성 김근라
취재연출 김한구

금, 2017/12/29- 19:19
187
0

올해 최저시급은 7,530원이다. 지난해보다 1,060원 올랐다. 하루 3시간, 일주일에 15일 일하면 받게되는 주휴수당까지 합하면 한 시간에 받을 수 있는 돈은 9천 원 남짓 된다.

▲알바 생활 5년 차인 김승연 씨와 유태현 씨, 이번 주 '목격자들' 방송의 주인공이다.

▲알바 생활 5년 차인 김승연 씨와 유태현 씨, 이번 주 ‘목격자들’ 방송의 주인공이다.

시급이 많이 올라가서 좀 아껴 쓰는 걸 안 해보고 싶어요.
2+1, 1+1 행사상품만 찾아다니는 그런 게 조금 슬프기도 해요.

유태현 (26살 /5년 차 햄버거 배달 아르바이트생)

정말 조금 오른 건데 조금이라도 돈을 모을 수 있게 되었죠.
돈이 모이니까 좀 더 나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던 것 같아요.

김승연 (23살 / 5년 차 아르바이트생)

한 시간 일한 노동의 대가로 1,060원을 더 받는다는 것이 청춘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번 주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최저시급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취재작가: 오승아
글 구성: 최미혜
촬영, 연출: 이우리

목, 2018/01/04- 17:58
232
0

원전 안전 홍보하는 한수원 직원들 신문 독자투고, 사측 개입한 정황 드러나

지난해 11월, 경북지역 6개 지역신문에 일제히 원전 안전을 강조하는 독자투고가 게재됐다. 11월 한 달 동안 모두 11건이다. 투고자는 모두 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 직원들이었다. 투고 내용은 원전의 안전을 강조하고 원전을 계속 유지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 일색이었다.

그런데, 뉴스타파 <목격자들>이 월성원자력본부의 내부 공문을 확인한 결과, 직원들의 독자투고 과정에서 한수원 사측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 “2017년 11월 언론사 독자투고 실적 알림”이라는 제목의 한수원 내부 공문

▲ “2017년 11월 언론사 독자투고 실적 알림”이라는 제목의 한수원 내부 공문

월성원자력본부가 작성한 ‘2017년 11월 언론사 독자투고 실적 알림’이라는 제목의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월성원자력본부는 2017년 1월, 회사 차원에서 ‘언론사 독자투고 시행 계획안’을 마련해 직원들의 독자투고 실적을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내부 공문에는 부서별로 언론사 독자투고 건수를 실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한수원이 직원들을 동원해 찬핵 여론을 조성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한수원 월성본부 측은 “회사 차원에서 독자투고를 독려한 것은 아니고, 직원들의 독자투고를 안내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수원 노조, 지난해부터 탈핵 인사 무차별 고소

한수원 노조는 또 지난해 8월부터 원전에 비판적인 교수와 탈핵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무더기로 형사 고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금까지 한수원 노조가 형사 고소했거나 고소를 예고한 이들은 모두 5명이다. 동국대 박종운 교수, 김익중 전 원자력안전위원,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를 맡고 있는 김영희 변호사,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등이다.

▲ 김익중 동국대 의과대학 교수(왼쪽),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오른쪽) 각각 지난해 8월과 9월 한수원 노조로부터 허위사실 유포한 혐의로 형사고소를 당했다.

▲ 김익중 동국대 의과대학 교수(왼쪽),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오른쪽) 각각 지난해 8월과 9월 한수원 노조로부터 허위사실 유포한 혐의로 형사고소를 당했다.

한수원 노조가 이들 탈핵 인사를 무더기로 고발한 이유는?

한수원 노조가 검찰에 제출한 고소장을 보면 이들 인사들이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한수원 노조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박종운, 김익중 두 교수의 경우, 언론 기고문 등에서 한수원 노조를 ‘(핵) 마피아’라고 지칭해 노조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주장이다. 한수원 노조의 검찰에 제출한 고소장에는 박종운, 김익중 두 교수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문제 삼고 있다.

정부·연구원·규제기관·학계가 똘똘 뭉쳐있다. 이런 마피아도 없을 거다.

박종운 교수 / 2017년 8월 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중

현재 한국 정부나 한수원은 원전 한 기를 하루만 가동하면 10억의 경제적 이득이 생긴다며 가동을 멈추려고 하지 않는다… 굳이 그들을 핵마피아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마피아처럼 조직의 이해관계를 깰 수 없기 때문이다.

김익중 교수 2016년 12월 19일 서울혁신파크 강연 중

그러나, 두 교수는 한수원 노조를 직접 지칭하지는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김 교수가 말한 한수원도 문맥상 한수원이라는 사업자 특히 경영진을 가리키는 것이지, 한수원 직원이나 노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박 교수는 한수원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명예훼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무리한 고소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수원 노조, “핵 마피아”라는 말 받아들일 수 없다.

이에 대해 한수원 노조는 원자력계를 비난하는 ‘핵마피아’ 표현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한수원의 노동자 뿐 아니라 원자력 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전체를 통틀어서 핵마피아라고 표현합니다. 저희는 그것을 전혀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예요… 원전 종사자는 전부다 문제가 있다고 전반적으로 그렇게 바라보시잖아요.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 김병기 위원장

저희들은 어쩔 수 없이 한수원이에요. 한수원이 그런 거짓을 하고 핵마피아라는 형태로 언급하시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대응을 한 거죠.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 법무담당 강창호 새울발전소지부장

“고등어, 대구, 명태 먹지 말라”는 발언도 고소 사유

한수원 노조는 “일본산과 북태평양 산 고등어, 명태, 대구에서 세슘이 검출되니 먹어서는 안된다”는 김익중 교수의 발언도 고소 사유로 삼았다. 기준치 이하의 방사능이 안전한데도 불구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해 불안감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또한 국내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30%”라는 발언도 고소사유에 포함시켰다. 원전사고의 가능성과 방사능 위험에 대한 경고까지 한수원 노조는 허위사실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수원 노조는 왜 무리한 고소를 하는 것일까?

한수원 노조가 박종운, 김익중 교수를 고소한 것은 2017년 8월과 9월. 신고리5,6호기 공론화가 한창 진행되던 시기였다. 당시 한수원 노조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반대를 앞장서서 주장했다. 당시 한수원 노조에게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여론의 형성이 절실했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20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시민참여단 여론조사 결과 59.5%대 40.5%로 건설 재개 의견이 높게 나왔음을 발표하고, 정부에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재개를 권고했다. 다음 달인 11월.월성원자력본부 직원들은 지역신문에 기고한 11건의 독자투고에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결과를 언급하며 탈원전은 시기상조임을 주장했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한수원 노조가 주도해 원자력 분야의 공기업 노조 5곳, 원자력 학계와 산업계의 전직 인사들로 구성된 “원자력살리기국민연대”, 원자력학회와 서울대원자력정책센터 등 원자력 학계가 참여하는 “원자력바로알기운동본부” 등과 함께 원자력정책연대를 결성해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폐지를 주장했다. 원자력정책연대는 현재 친원전을 주장하는 핵심체로 한수원 노조는 원자력정책연대의 출범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주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한수원 노조가 무리한 형사고소를 남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수원 사측이 어떤 방식으로 원전 찬반 여론에 개입하려 했는지 추적했다.


취재작가 김지음
글 구성 김근라
촬영 김성환 남태제
취재 연출 남태제

월, 2018/01/15- 18:25
345
0

2018년 1월, 경기도의 한 대학을 찾았습니다. 영하의 날씨에도 그는 바깥에서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2004년 교도관에서 정년퇴직한 이후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해왔다고 합니다. 70대였지만 여전히 건강해 보였습니다.

▲ 한재동 (71) 전 영등포 교도소 교도관

▲ 한재동 (71) 전 영등포 교도소 교도관

한재동 전 교도관, 영화 <1987>이 개봉하면서 그의 이름은 많이 알려졌습니다. 한 씨는 1987년 영등포 교도소 교도관 시절,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교도소 밖으로 비밀편지를 전하는 ‘비둘기’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 주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숨은 주역인 한재동 전 교도관을 만났습니다.

나도 사람이니까 겁이 전혀 안 난건 아니죠. 그러나 그건 약간이고 어떻게 하면 안 들키고 밖으로 잘 전달할까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었죠. 나 자신은 국가의 공무원이지만 국가에 충성하는 거지. 정부의 지시에 따르는 공무원이 아니다. 국민을 위한 공무원이지.

(비밀편지 전달이) 규정에는 어긋나지만 (독재정권의) 규정에 따르지 않으려고 애썼죠. 그냥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그냥 주저 없이 했어요.

한재동 전 영등포 교도소 교도관

취재작가 오승아
글 구성 신지현
연출 권오정

금, 2018/01/19- 16:46
177
0


[시민정치시평 316]

 

국립현대미술관을 박차고 나온 젊은 예술가들

젊은 예술가들의 2015년

 

현시원 갤러리 시청각 큐레이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스케일이 큰 만큼 문제도 많다. 관장 선출에 난항을 거듭하는 최악의 행정 상황도 문제거니와 그 전시장에서 젊고 새로운 에너지를 찾기란 쉽지 않다. 거대한 동시대 미술관 안에서 젊고 날 선 에너지를 찾기 힘들다면, 새로운 현대 미술은 도대체 어디 숨은 걸까?

 

힌트는 서울 시내 안팎에 불꽃이 터져 나오듯 자리 잡은 신생 공간에, 그리고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를 통한 젊은 예술인들의 동시다발적인 교류와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2015년 서울에서 벌어지는 젊은 미술의 움직임에는 과거형의 행동과 아직 행동이 되지 않은 미래(의 바람)들이 뒤섞여있다. 문제의식과 해결 방안이 몇 겹으로 꼬인 그물과 같이 얽혀있는 것이다. 그리고 특정 세대나 집단, 모임과 불화하며 살아있는 제3, 제4의 다른 젊은 주체들은 부지불식 간에 무엇인가 도모한다. 미술을 둘러싼 지금 현실에서 분명한 것은 이 움직임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관 주도의 기회와 자본의 틀이 포섭하지 못하는 들쭉날쭉한 에너지들로 가득 찬 젊은 미술 주체는 스스로 공간이라는 조건을 무기로 새 창작, 기획, 전시 관람의 형태를 조직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변화를 요구하는 구체적인 주장을 내거는 '운동'을 조직하는가 하면, 신생 공간들이 모여 이전에 없던 행사를 기획한다. 이러한 젊은 미술의 움직임은 어떻게 '젊은 움직임'이라는 모호한 수사를 구체적인 장면으로 돌파해낼 수 있을까. 이 돌파의 뜀뛰기가 될 현실의 근거들을 몇 측면에서 들춰보면 이렇다.

 

우선 2015년 미술 현장 곳곳에서 '청년'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양식 자체의 변화를 볼 수 있다. 198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청년 작가' 전이라는 명칭으로 출발한 '젊은 모색' 전이 '젊은 작가'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 여기서 젊다는 것은 갑을 관계처럼 명시적이지는 않더라도 권력 관계에서의 하위 존재에 해당하는 이들을 지칭해왔다. 기관의 선택이나 지원을 받음으로써 미술 작업을 완성하는 기회를 얻으며 자신의 작품을 전시장을 통해 선보이는 일련의 행정 절차와 목표는 젊은 예술가가 스스로 만들어낸 구조가 아니었다. 꽤 괜찮은 예술 작품으로의 승인과 미술작가 되기의 절차를 기존 제도가 장착하고 답습하는 일종의 패턴이었다.

 

그런 반면 지난해 말 한 토론회 자리에서 의견을 제기해 촉발된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은 청년 스스로가 '청년'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자신들의 목표와 행동 절차를 구체적으로 도모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의미 이전에 그것은 돌출된 행동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현상이 분명했다. 미술계 파장 안에서 스스로를 청년이라 부르고 행동이라 주장하며 앞으로 해나갈 일을 점친다는 점에서 그것은 현재로써는 작아도 앞으로 커질 선언이기도 했다.

 

2015년 초 움직임을 가시화한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청년관을 언급하는 상징적이며 또 구체적인 이중 성격의 몸체를 내세웠다. 이와 동시에 지난 2월 홍대 강의실 727호에서 토론회와 특강을 개최하기도 했고 의견을 모으고 활동을 기록하는 웹사이트(☞바로 가기)도 열었다. 여기서 또 한 번 이때 발언하는 청년 예술가들은 1990년 또는 2000년대 중반 무렵의 젊은 작가들이 미대를 졸업하거나 유학을 다녀와 이제 막 신작의 아이디어로 가득한 상태로 기존 미술계의 선배 작가와 비교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강력하게 구분되었다. 2015년의 시점에 서 있는 모종의 청년 예술가는 2010년대 이후 착취와 기회의 무대를 무기력하게 회전하며 살아가는 동시대의 다른 청년들과 현실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문제적인 현실 주체로 자리했다. 기존 미술계의 입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작업의 활성화에 자극이 되는 작업실도, 전시도, 생활의 방식도 부재한 상황을 돌파하여 자체적으로 수립해나가고자 하는 방법의 창안이 핵심이 되었다. 왜 하필 국립현대미술관이냐며 의심과 의아함을 사기도 한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은 거대 미술관이 지리멸렬하게 자리하는 한 여전히 생동감 있는 의제로 잠시 숨을 고르는 듯 보인다. 청년 예술인을 위한 기회라는 모델을 청년들 스스로 수립하려는 사이 국립현대미술관은 여전히 관장직 선출에 실패했다.

 

사실 특정 의제를 지닌 운동이 미술계의 세대교체의 열망을 뚫고 등장한 것은 지금 이곳에 아무것도 없다는 의심에서 시작된 것이다. 누가 불러준 이름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전시 공간, 활동 공간, 교류 공간인 즉 신생 공간을 만들어 조직해내는 그들은 작가이기도 하고 지망생이기도 하고 관람자이기도 했다. 부채춤을 추며 리퍼트 미 대사의 쾌유를 응원하고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가 '주술'에 빠진 2015년 대한민국 현실을 살펴볼 때, 믿을만한 가치와 합리적인 형태의 제도는 기존 미술계에서도 기대하기 어렵다. 청년 미술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제도에 외화된 불만보다는 내재된 불안을 동력 삼아 현재 미술계에 에너지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서울 시내에 산재한, 이제 막 시작하는 '공간들'은 이들 젊은 미술가들의 생존, 다시 말해 존재의 필수불가결한 근거지가 된다. 지금 청년 예술가들이 터 잡은 곳은 관장 잡음을 둘러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상징하는 기존 기관이나 제도가 아니라 파편적으로 흩어지고 모이는 새로운 공간들인 것이다. 지금 서울을 무대로국리 생겨나고 있는 미술 공간은 사이즈도 형태도 운영 방식도 제각각이며,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부터 4층짜리 재개발을 앞두고 비어있던 건물에 이르기까지 속세의 다종 다기한 갈등과 조건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 하나의 이름으로 불러낼 수 없다. 대안 공간도 아니며 오직 신생 공간만도 아니고, 미술 공간도 아니며 공간이 아예 없기도 하다. 그러나 공간을 자기 주도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작가, 기획자, 비평가 등은 2015년의 시점에 유효한 미술 작업의 조건들을 만들어내고,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생동하는 관객들과 조우한다.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의 주력이 되었던 연말 토론회를 개최한 이들이 2013년 11월 말 문을 연 전시 공간 '시청각', '커먼센터'를 비롯해 '케이크갤러리', '반지하', '교역소' 등 서울에서 미술공간을 운영하는 작가 혹은 기획자였음을 떠올려보자. 미술평론가 임근준의 사회 아래, 기획집단 유능사가 기획한 '청춘과 잉여'의 폐막 즈음 열린 이 자리에서는 전시 공간을 운영하는 각 공간 운영자들이 각자의 상황을 발언하는 것에 이어 국립현대미술관에 청년을 위한 시공간을 요구하자는 구체적 발의로 이어졌다. 천차만별로 존재하는 청년 예술인의 새로운 움직임과 동선을 짜낸 것의 공통분모는 단연코 '공간'이자 이 공간을 꿰뚫어 젊은 작가들이 만들어낸 작업들로 이어내는 변화무쌍한 '시간'이었다. 현재 별다른 가시적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은 미술의 세대 변화를 주장하는 상징적 목소리로 여전히 동시대를 살며, 젊은 전시공간을 바지런히 찾아다니는 미술 관람객들과 조우한다.

 

한편 새로 생긴 공간 몇 곳을 이어 전시와 프로젝트의 다른 방식을 게임화한 '던전' 프로젝트는 확연히 다른 작품과 젊은 작가들이 다층적으로 응시하는 동시대를 이전과 다른 프리젠테이션 형태로 보여주었다. 더욱이 오는 10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상봉동 '굿즈' 등을 중심으로 15개의 전시공간이 자발적으로 주최해 열리는 '굿-즈'라는 행사는, 판매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알리려는 형태적 전환을 시도하는 새 시도로 이합집산하는 에너지를 힘 있게 모아보는 획기적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청년이 주도적으로 개입하고 짜낼 수 있는, 'K-아트'로 호명되고 수출되기를 목적으로 하는 도구적 예술이 아니라 기존 패턴의 고인 물을 뒤집어버리는 독자적 구조라는 점에서 2015년 현재 30여 곳에 이르는 개별 전시 공간의 폭발적 증가와 활성화는 주목해야 할 일대 사건이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만큼의 지속성을 갖느냐를 팔짱 낀 채 지켜볼 일이 아니라 그 지속성을 위해 행동하는 근본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의 젊은 작가들은 현실 정치 사회를 둘러싼 이슈를 소재화하거나 이를 재현하는 문제로는 현실을 꿰뚫어 나가 바라볼 수 없음을 안다. 현대 미술은 보이는 것으로 가득한 인터넷 이미지와 동행하고, 축적이 불가능한 휘발성 사회를 응시하며, 현 정권을 비롯한 기존 미술계의 무기력함에 직접 새 영역을 만드는 것으로 대항한다.

 

'청년 예술 행동과 미술의 세대 교체'라는 주제를 받아든 내가 떠올린 답안지 같은 단어는 미술사학자 클레어 비숍의 <래디컬 뮤제올로지(Radical Museology)> 안에도 있었다. 2013년에 출간된 빨간 색 표지의 이 작은 책은 유럽의 미술관 세 곳을 예로 들며 신자유주의 시대 미술관이 어떤 가치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가를 주장한다. 그러나 빨간 책에 담긴 내용을 들여다보면, 제목과 붉은 색을 보고 예술 또는 미술관의 급진적인 것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가진 독자는 실망할 것이다.

 

저자는 동시대 예술을 움직이고 만들어내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가치 판단 아래 움직이는 미술 기관, 제도의 시간과 가치에 대한 이해라고 적는다. 그러니까 급진적인 것은 저 멀리 이제 사라진 명왕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이 시간에 누가 어떻게 합의된 가치를 부여하고 새롭게 터져 나오는 에너지를 함께 키워나가고 저장하느냐는 것이라는 것이다. 미술관 소장품 구축, 교육, 전시, 운영의 방향을 촘촘하게 짜고 재구성하는 일은 동시대 예술이 부여하는 시간과 가치의 구체적인 당대적 업무다.

 

미술관이 긴 시간을 보고 별자리 짜듯 촘촘히 움직여야 한다면 진정 급진적인 것은 이 틀 안의 구획으로는 따라잡고 제때 명명할 수 없는 살아있는, 불꽃 튀는 젊은 예술가들이다. 오늘도 젊은 예술가들은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하느라 동선을 짠다. 이 젊은 시간, 아직 마르지 않은 땅에 신선한 활기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이들의 행동이다. 이미 시작된 이 행동이 있어 미술을 만들고 보는 2015년의 이곳은 어느 때보다 구체적이고 흥미진진하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금, 2015/07/31- 10:33
46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