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해방 70년 특별기획] 친일과 망각 1부 ‘친일후손 1177′

지역

[해방 70년 특별기획] 친일과 망각 1부 ‘친일후손 1177′

익명 (미확인) | 목, 2015/08/06- 22:35

해방 70년을 맞아 뉴스타파는 처음으로 친일파 후손들을 최대한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대상은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확정 발표한 친일인사 1,006명의 후손이다. 특히 일제로부터 후작, 남작을 받은 귀족, 조선총독부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일제 강점기 최고 엘리트의 후손들을 집중적으로 추적했다. 그리고 지난 8개월동안의 작업끝에 뉴스타파는 친일파 후손 명단 1177명을 작성할 수 있었다.

취재팀은 친일파 후손들의 학력과 직은 물론, 거주형태, 주소지를 파악해 친일파 후손들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친일파 후손들에 대한 실증적으로 구체적인 통계분석의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또 뉴스타파는 친일파 후손들과 숱한 만남을 시도했다. 이들이 선대와 친일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려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친일 청산은 물론 친일 극복과 함께 사회구성원간 화합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찾으려 했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5월,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국내 최대 민간단체인 자유총연맹에 ‘좌파와의 전쟁’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확인됐다. 우파세력을 어떻게 결집시킬 것인지, 좌파세력과 어떻게 싸울 것인지에 대한 계획안을 만들어 제출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지시를 받은 뒤 자유총연맹은 A4 용지 7쪽 분량의 브리핑 자료를 만들었고, 청와대를 직접 찾아가 신동철(구속) 당시 국민소통비서관 앞에서 이 같은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실은 당시 청와대 보고 문서를 작성했던 전 자유총연맹 핵심관계자 A씨의 증언으로 확인됐다.

2017012603_01

A 씨는 최근 뉴스타파와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당시 보고가 사실상 새정부에 충성을 맹세하는 자리였다고 증언했다.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최OO 행정관이 처음 지시를 내렸다. 최 행정관은 비서관의 지시라며 ‘앞으로 자유총연맹이 박근혜 정부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등을 정리해 보고하라’고 말했다. 문서를 만든 뒤 위민관(청와대 비서동)의 한 사무실에서 신동철 당시 국민소통비서관을 모시고 1시간 남짓 브리핑을 진행했다. 사실상 새 정부에 충성맹세를 하는 자리였다.

전 자유총연맹 핵심관계자 A 씨

“청와대가 충성맹세 요구했다”

자유총연맹이 신 비서관에게 보고한 문건의 제목은 ‘통일을 위한 젊은 한국인(YKU / Youth for Korea Unification)’이다. “보수와 우파를 표방하는 대학생, 청년 조직 활동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다”거나 “편향된 자료와 교육으로 통일관과 국가관을 왜곡하는 현실을 타파해야 한다”는 따위의 전형적인 보수 우파 논리가 내용의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런 표현들이 눈에 띈다.

“20대의 두뇌와 심장을 사로잡아 (좌파와의) 이념전쟁(the war of ideas)에서 승리하여 젊은 우파 세력화 달성”
“흥미있는 이념정보제공으로 (10~20대의) 정신능력 배양, 우파 핵심으로 활동 독려”

자유총연맹 청와대 보고 문서 / 2013년 5월

문건을 만들고 직접 보고했던 A 씨는 당시 청와대가 자유총연맹을 믿지 못해 이 같은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자유총연맹의 (반좌파) 전투력이 예전만 못하다. 좌파에 맞서 싸우기 위한 계획을 새롭게 준비해야 한다’며 집요하게 활동계획서를 요구했다.

전 자유총연맹 핵심관계자 A 씨

A 씨는 보고를 받은 신 비서관이 “우파 결집, 좌파와의 전투를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를 여러차례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는 민간단체인 자유총연맹을 사실상 정권의 하부기관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자유총연맹이 우파진영을 결집, 진보진영에 대항하는 허브기관이 되기를 바랐다”고 덧붙였다.

지난 23일 뉴스타파는 2015년 10월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허현준 선임행정관이 자유총연맹에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한 바 있다. 청와대가 자유총연맹에 국정교과서 찬성 관제데모를 지시하고, 세월호 유가족과 특조위를 흠집내기 위한 공작을 진행한 사실을 담고 있는 내용이었다. 허 행정관이 국정교과서 문제와 세월호 문제를 좌파와의 전투로 규정하고 있는 내용이 공개돼 큰 논란을 불렀다.

검정교과서 집필진 문제점 및 좌파단체의 친북 반대한민국 행적 등 컨텐츠를 갖춘 2차 전투에도 대비하고, 반대진영의 대규모 시위에도 맞서는 준비를 미리 미리 구상하고 협의하여 함께 진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허현준 행정관/ 2015년 10월 30일

공직자(차관급)인 세월호특조위 박종운 위원이 홍씨의 대통령에 대한 극악 발언에 동조하며 박수치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허현준 행정관/2015년 11월 24일

자유총연맹 관제데모 지시에는 청와대 전체가 조직적으로 관여했다. 이병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정관주(구속) 국민소통비서관 등이 직접 나섰다. 이 실장은 허준영 당시 자유총연맹 총재에게, 정관주 비서관은 A씨에게 전화와 문자로 관제데모를 지시, 압박했다. 허준영 당시 자유총연맹 총재, A 씨 모두 “청와대가 하는 일에 적극 협조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자유총연맹 등 우파 진영을 조직적으로 지원했다는 사실은 특검수사에서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전경련을 움직여 보수단체들을 지원케 하면서, 청와대가 사실상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최근 특검에 출석한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청와대가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10여 곳을 찍어 구체적으로 금액까지 못 박아서 지원을 요구했다. 청와대 요구를 거부하는 게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들어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취재 : 한상진

목, 2017/01/26- 17:08
627
0
미 최고 주간지 오바마 박근혜 지지 옳은지 의문 표시 -더 네이션, ‘독재자의 딸 노동자들 탄압’ 맹비난 -오는 12월 5일 ‘2차 민중총궐기’ 임계점 될 수도 외신들의 박근혜 정권 비판 보도가 아버지 박정희와 광주 학살자 전두환 이후 최고조를 이루고 있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BBC, 파이낸셜타임스, 아사히신문. 디플로마 등 세계 언론을 대표하는 유수의 언론들이 일제히 박근혜 정권의 독재와 폭압적인 ...
금, 2015/12/04- 11:16
627
0

정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TF팀, 사무실 문 잠그고 3시간째 대치

 

박근혜 정부가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비밀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가동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TF팀 사무실이 있는 방송통신대에서 야당의원과 경찰, 교육부 직원의 대치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비밀 TF팀 사무실 컴퓨터 화면에 청와대를 뜻하는 ‘BH’라는 글자가 들어간 폴더가 떠 있는 장면을 촬영했습니다. 이는 이 비밀 TF팀이 청와대와 관련된 업무를 직전까지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오늘 밤 11시 현재 교육부의 교과서 국정화 TF팀이 있는 서울 혜화동 방통대 건물에는 야당의원과 당직자 30여명이 TF팀 사무실 내부 확인을 요구하며 현장에서 계속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방통대를 찾은 직후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100 여명은 TF팀 사무실이 있는 건물을 에워싸고 야당 관계자와 취재진의 출입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대치 상황이 3시간 넘게 지속됐지만 국정화 TF팀 직원들은 건물 내부의 전등을 모두 끄고 여전히 사무실 내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늘(10월 25일) 저녁 8시쯤 방통대 내 외국인 장학회관 건물 안에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 비밀 TF팀 사무실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뉴스타파 등 일부 언론사 취재진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 소속 국회의원 4명(도종환, 김태년, 유기홍(이상 새정치민주연합), 정진후 정의당 의원)과 보좌진들이 현장을 긴급 방문했습니다.

※ 관련 기사 : 정부, 국정화 TF팀 비밀 운영… “청와대에 일일보고”

야당 의원, 취재진 기습방문하자 불 끄고 창문 차단해

건물 입구에 도착한 의원들은 내부에 있던 직원 2명에게 교문위 소속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을 밝히고 문을 열어 줄 것을 요구하자 TF팀 관계자들은 황급히 사무실 안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이들은 사무실로 들어가 바로 문을 잠근 후 사무실 조명을 껐고, 창문 블라인드도 내렸습니다.

당시 사무실 안에 일하던 직원들은 몸을 숨기기에 바빴습니다. 일부는 취재진이 촬영을 시작하자 황급히 파티션 뒤로 몸을 숨기는가 하면, 어떤 이는 자신의 휴대전화까지 책상에 놓아둔 채 자리를 피하기도 했습니다. 직원들의 책상 위 컴퓨터 모니터는 직전까지 사용된 듯 그대로 켜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 순간 뉴스타파가 단독 촬영한 한 컴퓨터 화면에는 청와대를 뜻하는 ‘BH’라는 이름으로 된 폴더가 별도로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이는 앞서 뉴스타파가 보도했던 교육부 내부 문건의 내용처럼 이 태스크포스팀이 지속적으로 청와대에 국정교과서 관련 내용을 보고해 왔음을 보여주는 또다른 정황 증거입니다.

 

▲ ‘국정교과서 비밀 TF팀’ 직원의 컴퓨터 화면

▲ ‘국정교과서 비밀 TF팀’ 직원의 컴퓨터 화면

 

TF팀 컴퓨터 화면에 ‘BH’ 폴더 존재, 청와대 보고 내용 별도 관리 정황 드러나

또한 이 화면에는 이들 태스크포스팀 직원들이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15-교과서 분석’이라는 폴더 안에는 현행 중고등학교 교과서 내용을 비롯한 각종 교육자료에 대한 분석이 이뤄져 왔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는 하위 폴더 이름들이 나열돼 있습니다.

의원들과 당직자들은 비밀 TF팀 직원들과 함께 사무실 내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관복 교육부 기획조정실장 등에게 직접 전화를 하는 등 사무실 내 진입 요청을 계속하고 있지만 내부 직원들은 휴대폰을 꺼놓은 채 일체의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치 한 시간 뒤인 오후 9시쯤 경찰 100여 명이 현장에 출동해 건물을 에워싸고 외부인의 진입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현재 TF팀 내부에 있는 직원들은 뉴스타파 취재진이 확인한 숫자만 최소 5명 이상입니다.

일, 2015/10/25- 23:56
623
0
 
카테고리: 
 

[김종철 칼럼] 친일파 후손들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민주행동 공동대표)

오는 8월15일은 광복(光復)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70년은 길고도 긴 세월이다. 그 기간에 겨레는 ‘광복’이라는 문자의 뜻 그대로 빛을 되찾고 살았는가? 일제의 무자비한 압제와 수탈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는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70년 동안, 1960년의 4월혁명 이후 한 해 남짓, 1998년 2월부터 2008년 2월까지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를 빼면 60년 가까운 세월의 대부분은 독재와 쿠데타, 지배세력의 반민주적 행태로 얼룩졌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치·경제·군사·문화적으로 미국에 종속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일제에 강점당한 민중이 가장 열망한 것은 진정한 독립과 자주였다. 그러나 광복 70년이 되는 현재도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원인은 미군정에서부터 찾아야 마땅하다. 독일과 프랑스는 ‘친나치행위자들’을 가차없이 처단했는데 미군정은 오히려 친일분자들을 비호하고 중용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대한민국은 친일파나 그 후손이 득세해서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 인물은 대통령 박근혜와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이다.

박근혜는 2005년에 나온 <나의 삶 나의 아버지>(동아일보사 펴냄)라는 책에 실린 글(‘아버지의 딸로서’)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부모님을 닮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특히 정치를 시작한 뒤 아버지를 닮았다는 얘기를 더 많이 듣는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게 당연하겠지만, 정치인이 된 지금은 그 말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가르침은 모범을 보이는 것이고, 가장 큰 지혜는 삶의 모델을 보고 배워서 얻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인생에서 중요한 3가지 만남 중 하나가 스승을 잘 만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나의 부모님은 내 삶의 모델이다. 특히 정치인이 된 지금,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가 아니라 선배이자 스승이며 나침반과도 같은 존재다.”

‘선배이자 스승이며 나침반과도 같은 존재’인 아버지 박정희에 대해 박근혜는 무엇을 알고 있었을까?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보고 들었다면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1월 초에 공개한 자료(<만주신문> 1939년 3월 31일자)를 보면 박정희는 우리 겨레를 노예로 만든 일제의 수괴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청년 친일분자’였다. 일본육사를 졸업한 그는 만주군에 지원하면서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이라는 혈서와 함께 아래와 같은 글을 썼다.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할 각오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인용자)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 견마의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뼛속까지 ‘천황 폐하’에 대한 충성심으로 가득 찬 이런 박정희조차 박근혜에게는 ‘선배이자 스승이며 나침반과도 같은 존재’가 된다는 말인가? 박정희의 ‘심복’으로서 한때 비서실장 이후락이나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에 버금가는 권력을 휘두르던 강창성(전 보안사령관)은 <중앙일보> 1991년 12월 24일자(‘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에 이렇게 적었다.

"계엄 선포 한 달쯤 전인가(1971년 10월 17일 계엄이 선포되었다), 박 대통령이 나를 불러요. 집무실에 들어갔더니 박 대통령은 일본군 장교 복장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죽장화에 점퍼 차림인데 말채찍을 들고 있었어요. 박 대통령은 가끔 이런 복장을 즐기곤 했지요. 만주군 장교 시절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다카키 마사오 중위(박정희의 일본 이름)로 정일권 대위 등과 함께 일본군으로서 말 달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거죠. 박 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할 때면 그분은 항상 기분이 좋은 것 같았어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공식 집무실에서 식민지 시대 일본군 장교 복장을 하고 있는 모습을 청와대에서 살고 있던 박근혜는 보았을까 못 보았을까?

최근에는 박정희의 둘째 딸 박근령이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친일 만세’를 부르고 나섰다. 그는 7월 4일 공개된 ‘한일관계에 대한 생각을 말하다’라는 인터뷰(일본 포털사이트 <니코니코>)에서 일왕을 ‘천황폐하’라는 극존칭으로 불렀다. 그는 가장 민감한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 관해 “1980년대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히로히토 천황 폐하께서 ‘통석의 염’이라고 이야기했다”면서 “당시 천황께서 애통한 마음으로 사과의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그때 일본을 방문한 사람은 대통령 노태우였고 일왕은 아키히토였다. 박근령은 무지의 극치를 보이면서 아버지 못지않게 ‘천황폐하 만세’를 외친 것이었다. 그는 “일본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하며 “아베 총리께서 야스쿠니 참배하는 것을 두고 ‘앞으로 전쟁을 일으켜서’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공격했다.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 아베의 ‘대동아전쟁’ 합리화를 노골적으로 지지한 것이다. 과연 친일파 박정희의 딸다운 발상이다.

집권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은 지난 7월 말 미국을 방문했을 때 어릿광대 같은 ‘큰절 외교’로 나라 안팎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친일파 김용주의 아들이라는 비판에 시달려 왔다. 그 문제를 일찍이 제기했던 <한겨레> 선임기자 김의겸은 그가 미국 방문에서 돌아오기 직전 그 신문 8월 1일자 토요판 커버스토리(‘김무성과 아버지 김용주’)에 “아버지는 천황폐하 찬양… 아들은 미국 장군묘에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김의겸은 2년 전쯤 <한겨레>에 올린 「백년전쟁은 계속되는가」라는 칼럼에서 김무성을 거론하며 “부친인 김용주는 일제 때 경북도회 의원을 지냈고, 조선임전보국단 간부로서 ‘황군에게 위문편지를 보내자’는 운동을 펼쳤다”고 썼다가 김무성한테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를 당했다. 김의겸은 당시 김무성과 적당히 타협하고 ‘반론보도’를 실은 것을 뉘우치면서 이번에 옛 기록을 뒤져 김용주의 친일행적을 구체적으로 밝혀냈다.

김의겸은 한 역사학자의 도움을 받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1943년 10월 3일자 2면 기사에서 김용주의 명백한 친일행적을 발견했다. 김용주는 부민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선(全鮮)공직자대회에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연설을 했다.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 정신문화의 앙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 하도록 하여야 하며 “미영 격멸에 돌진할 것을 촉진”해야 한다.

김의겸은 그 대회 사무국이 1944년 1월에 발간한 <징병제 시행 감사 적미영격멸 결의 선양 전선공직자대회 기록>에서 A4용지로 3장이 넘는 김용주의 친일행위를 찾아냈다. 박수를 받으며 등단한 그는 “먼저 가장 급한 일은 반도 민중에게 고루고루 일본 정신문화의 진수를 확실히 통하게 하고,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를 꾀하여 이로써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외쳤다.

김의겸의 정밀 추적으로 김무성의 아버지 김용주가 명백한 친일파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2014년 6월 김무성이 새누리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을 때 나온 <새누리당 전당대회 특집>은 김용주가 ‘빛나는 애국자’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일제강점기 신문기사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노동야학 개설’ ‘3·1운동 정신 이어받아 삼일상회 설립’ ‘사재 2만원 던져 사립 영흥교를 신축’ ‘상공번영회 창립’ 등이다. 그런 ‘업적’이 애국이라고 치자. 그러나 일제의 조선 식민지 미화 구호인 ‘내선일체’와 ‘충실한 황국신민’을 부르짖은 그가 친일파가 아니라고 입증할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김무성과 그의 지지자들은 지난 여러 해 동안 김용주가 친일파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온갖 ‘자료들’을 제시해 왔다. 참으로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차라리 김무성이 “아버지는 분명히 친일행위를 했으니 공인인 내가 사과하고 앞으로 바른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면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친일파의 딸인 박근혜가 대통령 임기를 마칠 때쯤이면 친일파의 아들인 김무성이 19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크다. 추악한 역사의 도돌이표를 주권자인 국민이 언제까지 보고 참아야 하는가?

월, 2015/08/10- 09:33
617
0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공공기관인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별도의 심사 절차 없이, 김형수 미르재단 초대 이사장 부부가 기획한 공연에 2억 원 가까운 예산을 지원한 것으로 뉴스타파 목격자들 취재결과 드러났다.

지난해 4월,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극장 ‘용’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공연이 진행됐는데, 이 공연은 김형수 미르재단 초대 이사장이 예술감독을 맡았고 김 씨의 부인 김 모 씨가 제작사 대표다. 재단은 이 공연에 기획대관 공연 명목으로 1억 9천여 만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 취재진이 입수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사업계획안이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이 공연에 대관료, 부대설비비, 마케팅비를 지원해 총 1억 9천여 만원을 투자했다.

▲ 취재진이 입수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사업계획안이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이 공연에 대관료, 부대설비비, 마케팅비를 지원해 총 1억 9천여만 원을 투자했다.

그런데 이 과정이 공모나 별도의 심사 과정이 없이 김형태 사장의 지시로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재단 공연 관련 담당자는 지난해 10월 김형태 사장으로부터 기획대관 공연으로 진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기획대관 공연의 경우 공연제작사로부터 대관료를 받는 일반대관과 달리, 재단이 공연 시설과 설비에 투자하는 등 예산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기획 대관을 선정할 때는 1, 2차 심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심사과정이 생략된 것이다.

더구나 이 공연에 대한 사업 결과보고서에는 지원된 예산 1억 9천여만 원에 대한 예산 집행 내역이 아예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게 된 셈이다. 비선실세인 최순실 씨와 청와대가 개입돼 대기업으로부터 수백억 원을 모금한 미르재단의 초대 이사장을 지낸 김형수 씨 부부가 기획한 공연에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으로부터 특혜를 받은 의혹이 새롭게 드러난 것이다.

이 같은 특혜 의혹에 대해 공연제작사 대표 김 모 씨는 “김형태 사장과는 예술계에 있다 보니 알고 지냈던 사이였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고 해명하면서 “재단에서 지원해준 돈을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지원을 지시한 김형태 사장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김형태 사장은 또 재단 직원들을 대상으로 성추행 의혹이 제기됐다. 김 사장의 성추행 논란은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불거진 바 있다. 재단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은 김 사장이 여직원들의 발 사진을 찍고 허벅지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 김형태 사장이 찍은 직원들의 발사진

▲ 김형태 사장이 찍은 직원들의 발 사진

재단의 한 여성직원은 올해 2월 노래방 회식 자리에서 김 사장이 ‘허벅지를 만지고, 허리를 손에 감고 만지는’ 등 성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또 “자신에게 충성을 하면 승진시켜준다”면서 신체 접촉을 시도했다고 털어놨다.

이밖에 김 사장이 인사 전횡을 했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김 사장 눈 밖에 나면 퇴사를 강요당하는 직원도 있었다는 것이다. 재단 직원 A씨는 사장과의 회식 중 자리에서 먼저 일어난 이후부터 노골적인 징계성 인사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후 공연기획을 담당하다, 상품포장, 편의점에서 음료를 판매하는 등 전문성과 관련 없는 보직으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A씨가 퇴사를 하지 않자 김 사장은 인격 모독에 가까운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아래는 김형태 사장과 A씨가 나눈 대화의 일부다.

김형태 사장 : 왜 그렇게 살아? 이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니잖아. 악마가 하는 짓이지 내가 볼 때 너 귀신 쓰인 것 같아.
A씨 : 계속 다니고 싶어요. 사장님.
김형태 사장 : 아, 정말 고집 세네. 말 안 들을 거야? 내가 너를 인간으로서 포기해도? 인간이 아니구나, 인간쓰레기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도 너는 이 회사에 버티고 다니는 게 중요하니? 야, 눈 좀 봐봐. 고개 좀 들어봐. 야, 나 좀 봐봐. 죽어도 버텨야 되겠어? 어? 이 얼굴 못생겨진 거 봐.

김형태 사장이 취임한 2년 사이 재단 전체 정규직 직원 40명 중 30여 명이 퇴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형태 사장은 인디 밴드 황신혜 밴드의 리더 출신이다. 그는 2012년 대선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에 전문위원으로 발탁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대통령 소속 문화융성위원회 전문위원을 거쳐, 2014년 6월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사장에 임명됐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낙하산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김 사장은 사장 취임 당시 새마을 운동 모자를 쓰고, 새마을 깃발을 흔드는 등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남다른 충성심을 보였다. 또 재단 직원들은 김 사장이 회의시간에도 “나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에서 온 사람이야”라는 식의 발언을 자주 하는 등 자신이 ‘박근혜 사람’임을 자주 내비쳤다고 말했다.

심사 절차도 없이 예산을 지원하고, 직원을 상대로 성추행 의혹과 인신모독 격인 발언까지. 김형태 사장의 모습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참사’의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취재작가 곽이랑
글 구성 김초희
연출 박정대

금, 2016/11/04- 22:48
61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