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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을 환영하고 대법원의 8년 직무유기를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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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을 환영하고 대법원의 8년 직무유기를 규탄한다.

익명 (미확인) | 목, 2015/06/25- 16:11

[논 평]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을 환영하고 대법원의 8년 직무유기를 규탄한다.

 

대법원은 오늘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 따른 노동조합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고용노동부의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하였다.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33조, 외국인의 지위를 보장한 헌법 제6조, 국적에 따른 근로조건의 차별대우를 금지한 근로기준법 제5조, 인종차별금지를 금지한 노조법 제9조 등에 비춰볼 때, 위 판결은 지극히 타당하고 상식적인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 판결이 나오기까지 대법원에서만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을 10년 전으로 돌려보자. 2005년 4월 24일 서울·경기·인천지역에서 취업해 일하고 있던 이주노동자 99명은 지역별 노동조합인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를 설립하고, 같은 달 5월 설립신고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 같은 해 6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은 노조 임원 및 조합원 일부가 출입국관리법상 취업 및 체류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므로 노조법상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며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이주노조는 고용노동부의 노조설립신고 반려처분이 법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헌법상 권리인 노동3권을 출입국관리법상 체류자격이 없다는 임의적 상황에 따라 차별하는 처분은 위법 · 무효이므로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2006년 2월 7일 서울행정법원 제13행정부(재판장 김태종 판사)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여 원고 청구를 기각했으나, 2007년 2월 1일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제11특별부(재판장 김수형 판사)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설립신고서 반려처분이 법적근거가 없는 것으로 위법하므로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2007년 2월 23일 고용노동부가 상고하여 대법원에서 심리가 시작된 이 사건은 대법원의 최장기 미제사건 기록을 갱신하며 무려 8년 동안이나 계류되어 왔다. 김황식 전 대법관, 후임 양창수 전 대법관을 거쳐 권순일 현 대법관에 이르기 까지 주심 대법관만 3명을 거쳤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결과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내국인 노동자들이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하여 노동조합 가입자격이 제한되거나, 이미 가입된 노동조합의 실체가 부정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주노동자들이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체류자격이 없더라도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한, 헌법상 노동3권이 제한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올해 제323차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에서 채택된 제374차 결사의자유위원회 보고서에서는 8년째 계류된 이주노조 설립신고 상고심을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체류자격에 상관없이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와 단체교섭권을 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을 한국 대법원과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대법원의 8년에 걸친 심리 지연으로, 이주노조는 모진 수난을 겪었다. 아노아르 후세인(방글라데시) 초대 위원장을 비롯해 미셀 카투이라(필리핀) 4대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이주노조 주요 임원들은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표적단속 되어 강제추방 당하거나, 입국이 거부되었다. 그럼에도 이주노조는 노동조합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노동자의 자주적인 단결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이주노동자 스스로 바꿔보겠다는 창립정신으로 끈질기게 싸워왔다. 우리 모임은 이주노조의 지난 10년 동안의 헌신적인 투쟁에 경의를 표하며 깊은 연대의 마음을 표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이 사건 판결 어디에도, 대법원이 지난 8년 동안 고심한 흔적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대법원은 오히려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눈 감았다. 한국경제의 가장 밑바닥을 책임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폭력과 비인간적인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목소리를 8년 동안 외면했다. 이는 인권의 보장과 정의의 구현이라는 사법부의 존재목적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최고법원의 권위와 존엄은 법원에 출입하려는 이주노조 조합원들의 투쟁조끼를 억지로 벗겨내려는 것이 아니라, 인권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스스로의 목적에 충실할 때 비로소 인정될 수 있음을 대법원이 지금이라도 깨닫길 바란다.

 

2015. 6. 2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한 택 근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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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 항일단체 노래 총정리한 <항일음악 330곡집> 눈길

1910년 8월 29일 기어이 한반도와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게 됐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기어이’는 2가지 뜻을 가진다고 한다. 하나는 ‘마지막에 이르러서’, 다음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라는 뜻이다.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이 빼앗겨 가고 있지만 그래도 설마설마 나라마저 없애겠냐 싶던 이들에게 ‘기어이’는 첫 번째 의미일 것이고, 어떻게 해서라도 일제에 빌붙어 공을 세우고 싶었던 이들에게 ‘기어이’는 두 번째 의미일 것이다.

경술국치 107주년을 맞이해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야 할 책이 한 권 나왔다. 바로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항일음악 330곡집>(노동은 편저, 민연주식회사)이다. 무려 728쪽, 가격은 7만 5000원이다.

자장가에도 광복 의지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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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음악 330곡집> 표지 ⓒ 민족문제연구소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사는 우리 역사 중 가장 중요한 대목 중 하나다. 그런데 독립운동 단체가 너무나 다양하고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설명하기 힘든 것이 우리 독립운동사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그 엄청난 노력과 희생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을까?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보게 됐다. 700쪽이 훨씬 넘는 어지간한 아령 무게만한 책은, 그 질감만으로도 ‘정말 엄청나게 했구나’라는 느낌이 절로 들게 한다. 

책은 단순하다. 곡마다 노래의 악보 한 쪽, 노래 설명 한 쪽으로 구성됐다. 다만 노래가 330곡이나 되다 보니 700쪽이 훨씬 넘는 것이다. ‘노래 모은 것이 뭐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떠돌이 생활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에게 무슨 백서나 체계적인 기록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노래로 자신의 신념과 정당성을 되새기고 알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독립운동가들이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역사를 전공한 필자도 전혀 알지 못한다. 기껏해야 스코틀랜드 노래 ‘올드 랭 사인’에 애국가 가사를 붙인 ‘독립군 애국가’ 정도만 알 뿐이다.

이 책이 대단한 건 330곡 목차만 보고 있더라도 독립운동에서 어떤 세력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종교적으로는 천도교, 대종교, 기독교가 있으며, 성향으로는 보수적인 위정척사부터 공산주의자까지 다양한 세력이 있었다.

독립운동단체들이 저마다 노래를 만들었기 때문에 제목이 같은 경우가 많았다. ‘애국가’라는 제목의 노래가 총 12곡이나 되며, ‘혁명가’ 5곡, ‘독립가’ 4곡, ‘조선의 노래’ 4곡, ‘용진가’ 3곡, ‘망향가’ 3곡, ‘전진가’ 3곡, ‘운동’이 3곡이다.

항일음악 보급에 가장 매진한 사람은 독립운동가 안창호 선생, 김인식 선생, 이범석 장군이었다. 특히 안창호 선생은 ‘애국가’와 ‘학도가’를 직접 작사하기도 했다.

역사적 인물이나 독립운동가에 대한 노래도 있었다. ‘단군가’, ‘도산선생 추도가’, ‘민충정공(민영환) 추도가’, ‘안중근 옥중가’, ‘우덕순(안중근과 함께 이토히로부미 처단을 결의한 사람)의 노래’, ‘을지문덕’, ‘이동녕선생 추도가’, ‘전씨(스티븐슨 사살한 전명운 의사) 애국가’, ‘정몽주 추모가’, ‘정숙(3.1운동 당시 일제에 참혹하게 피살된 소녀) 추도가’ 등이 있다.

또한 이 책은 1910년대, 1920년대, 1930년대, 1940년대 시대순으로 노래를 나열했는데, 가사를 읽다 보면 절로 시대적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910년대까지는 고어체에 가까웠던 우리 말이 1930~1940년대를 지나면서 현대어로 변해 가는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국어사적으로도 중요한 자료라 생각된다.

책에 숱한 노래가 있지만 필자의 가슴을 울린 노래는 ‘자장자장’이라는 노래다. 제목에서 짐작했듯이 일종의 자장가이다. 1910년대 초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노래는 작사 작곡자가 누군지 모른다. 자장자장 3절 가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장하다 자장자장 얼는 소학교
장하다 자장자장 발셔 중대학

박사동이 되고서 영웅동이 되어라

우리나라 광복사업에 아라 자장

우리 조상 중 어떤 이들은 자장가를 부르면서도 이 아이가 자라서 광복을 이끌길 바랐던 것이다. 다음으로 가슴을 울린 것은 ‘처의 명상’이라는 노래다.

보내는 가슴 씨원하랴 부디부디 잘가시오
인제가면 언제오나 언제나오나 정치없이 떠나는 설음의길
떠나는 몸도 쓰라려요 부디부디 잘있소
인제가면 오지못할 영원의길 쓰라린 이몸도 영 못만난다오
십년만에 만난 동생 이름조차 못 묻고
떠나는 얼굴에는 눈물만 젖어 이내몸 갈길이 아득하여요

보내는 사람 가는 사람 서로서로 울면서
손을들며 인사하며 눈물 흘리며 영원한 행복의 고개를넘자

이 노래도 작사 작곡자는 모르며, 중국 요녕성 일대에서 불러졌다고 한다. 정확한 통계를 낼 순 없지만 독립군에 나선다는 것은 80~90%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용케 살아남더라도 전쟁터에 휘말려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가족을 다시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노래 역시 장송곡이나 다름없는 “인제 가면 언제 오나”다.

이렇게 독립운동가들의 엄청난 희생이 있었기에 전 세계로부터 ‘일제가 무너지면 당연히 한민족은 독립해야지’라고 인정받았던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이 부르던 330곡을 모으는 건 매우 힘든 작업이었을 것이다. 곳곳에 남아 있는 파편을 수십 년 간 모으고 모은 결과물일 것이다. 이 역작을 낸 사람은 한국근현대음악사 권위자인 고 노동은 한국음악연구소장이다.

그는 한국 근현대 음악 관련 책을 30여 권 썼으며, 논문도 400여 편이나 남겼다. 안타깝게도 노 소장은 작년 12월 2일 지병으로 작고했다. 그가 남긴 원고를 가족과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해 이 책으로 만들었다. 비록 그는 갔지만 이 책은 독립운동사를 알리는데 매우 귀중한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나라를 빼앗겼나

경술국치 107주년이다. 경술국치가 언제인지도 모를 뿐더러 우리는 경술국치가 어떤 과정에서 이뤄졌는지 거의 모르고 있다. 부끄럽기 때문에 덮어 버린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나라를 빼앗겼을까?

1910년 7월 23일, ‘강경파’인 3대 통감 데라우치가 입국했다. 그의 임무는 단순했다. 대한제국을 멸망시키고 한반도를 완전히 일제의 통제 하에 두도록 기반을 닦는 것이었다. 데라우치가 입국하자 대한제국 멸망은 기정사실화가 됐다.

친일파에게는 이제 어떻게 하면 자신의 공을 더 인정받느냐가 핵심이었다. 당시 내각을 쥐고 있던 이완용과 일본서 일진회를 거느린 송병준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누가 먼저 일본의 마음에 드는 안을 가지고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 할 것인가? 결국 이 경쟁에서 이완용이 승리하게 된다.

8월 4일, 이완용은 비서 이인직(<혈의 누>를 쓴 사람)을 통해 데라우치에게 병합을 건의한다. 데라우치는 측근들에게 “그물도 안 쳤는데 물고기가 뛰어든다”며 환영했다.

8월 중순이 되자 이완용은 병합에 반대하는 인사를 통감부에 알리며 충성심을 끊임없이 내보였다. 한편으로는 총리대신 권한으로 병합 반대파인 학부대신 이용직을 일본 수해 위문 사절단으로 보냈다. 물론 이용직은 이완용의 속셈을 간파하고 와병을 핑계로 일본에 가지 않았다.

8월 15일, 순종 황제는 이재면을 흥친왕으로 봉했다. 흥선대원군의 첫째 아들인 이재면은 동생인 고종 황제에 대해 경쟁의식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면 왕이나 황제가 될까 노력한 끝에 드디어 일제에 의해 왕으로 봉해진다. 이는 일제가 한일병합 때 친일성향 황실대표로 참석시키기 위한 사전 조치였다.

8월 16일, 데라우치는 한일병합조약안 초안을 이완용과 조중응(농상공부대신)에게 협의토록 했고, 18일 내각회의에서 조약 내용과 절차를 결정했다.

8월 20일부터 일제는 전국에 흩어진 군대를 한성으로 집결토록 했으며. 2명 이상 모여 회합을 한다 싶으면 무조건 체포했다. 당시 한성 각 지역 경찰서 구치감에는 수천 명이 체포된 상태라고 하기도 한다. 일제는 궁궐 인근 평균 30미터 당 군인 1명씩 배치해 삼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8월 22일, 이완용은 (병합 반대파인 이용직에게는 알리지 않고) 어전회의 개최안을 순종에게 요구했다. 순종은 순순히 응했다고 한다. 이날 오후 1시 어전회의 개최 칙명이 내려졌다. 오후 1시, 칙명에 따라 이완용은 내각 대신을 소집했고, 황실대표로 흥친왕 이재면이 함께 했다. 오후 2시 순종 황제가 회의장에 등장했다. 순종 황제는 통치권 이양을 선언하고 병합조약체결 전권위원으로 이완용을 임명한다는 안에 옥새를 찍었다.

전권위원이 된 이완용은 데라우치가 기다리는 통감관저에 ‘뛰어서’ 갔다. 오후 4시, 일본 측 전권위원 데라우치가 조약안에 서명함으로써 한일병합조약은 성립됐고, 그날 저녁 통감관저에서 연회가 열렸다. 그러나 민중의 반발과 마침 27일이 순종 황제 즉위일이라 바로 발표하지는 못하고 29일에 발표하기로 했다.

8월 23일에는 토지조사위원회 설립안이 통과됐다. 이는 한반도 토지 수탈을 위한 기반이 됐다. 8월 26일경 기자들에게 병합조약안이 통과됐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8월 28일 조약안 전문이 언론사에 전송됐다.

그리고 운명의 날인 1910년 8월 29일. 순종 황제의 조칙으로 한일병합조약안이 공표됐다. 옥새만 찍혔고 황제의 수결(사인)은 없었지만 어쨌든 대한제국은 멸망했다. 경복궁에 일장기가 내걸렸고, 새 지배자인 일본 메이지 천황 조서와 조령이 발표됐다. 대한제국은 대일본제국 조선국으로 강등됐고, 순종은 이왕 전하·고종은 이태왕 전하로 부르고 일본 황실에 배속했으며, 모든 통치권은 조선총독부(임시로 통감부)가 관장한다는 것이다.

<2017-08-2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나라를 빼앗긴 뒤 독립운동가들은 이런 자장가를 불렀다오

※관련기사
☞서울신문: 동학농민운동부터 해방까지.. ‘항일음악 330곡’

☞경향신문: ‘항일음악’의 모든 것

☞연합뉴스: 악보로 보는 독립운동…’항일음악 모음집’ 국내 첫 출간



[바로가기] 항일음악 330곡집

화, 2017/08/2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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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문: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사랑방,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는 국민의당에 테러방지법에 대한 공식 입장을 묻는 공개질의서를 발송했다.

 

발표일자: 
2016/01/20

나머지 보기

수, 2016/01/20-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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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장관의 인신보호구제 관련 국회 답변에 대한 논평]

 

27일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현웅 법무부장관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변의 인신구제청구가 인권침해요소가 있다는 여론이 있다”는 질의에 “상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 문제는 탈북자에게 당신의 생명을 선택할 것이냐, 가족의 생명을 선택할 것이냐는 질문이 아니냐”라는 질문에 “네”라고 답하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탈북 종업원들 가족의 위임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인신보호구제심사청구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믿음의 법치를 토대로 준법문화를 정착시킨다는 법무부의 수장이, 인신보호법에 따른 절차 진행에 대한 ‘상당한 우려’를 표하는 상황에 대해 우리는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인신보호구제심사청구절차(이하 ‘인신구제절차’)는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수용된 지 80일이 넘도록 외부와의 어떤 접촉도 허용되지 않고 있는 종업원들의 건강과 안전을 확인하고 그들이 자신의 뜻에 따라 계속 수용상태를 받아들인 것인지 확인하는 절차이다. 이는 인신보호법이 보장하고 있는 절차이고, 그 이전에 딸들과 생이별한 상황에서 부모가 자신의 딸들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현재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조치이다.

 

2015. 11. 5. 유엔자유권위원회는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의 구금에 대해, 피구금자들이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이탈주민이 가능한 최단 기간만 구금되고, 피구금자들에게 구금기간 전반에 걸쳐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부여받고, 조사 중에도 변호인의 조력이 가능해야하고, 조사기간 및 방법 역시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도록 엄격히 제한되어야함을 보장해야한다”고 권고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또한 유엔 자의적 구금에 대한 실무그룹은 망명신청자나 이주자에 대하여, “구금되어있는 동안에도 전화‧팩스‧이메일을 통한 통신, 변호인 및 영사와의 접촉이 가능해야하고 사법당국 앞에 즉각 출두해야한다”는 내용의 기본적 권리원칙을 제시했다.

 

이미 ‘보호결정’이 났음에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수용 중인 것으로 알려진 종업원들은, 위와 같은 국제적 기준에 따른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에 따라 법원의 판단을 받기 위해 인신구제절차를 진행하는 것을 두고 인권침해요소가 있다며 우려를 표하는 법무부장관의 발언에서 ‘준법정신’과 ‘인권’은 찾아볼 수 없다. 이미 정부와 수용자인 국가정보원의 입을 통해 ‘자발적 탈북’임이 수차례 밝혀진 가운데, 대한민국 법원에서 법에 따른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종업원과 가족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규정하는 것은, “안전을 위해 법정에 내보낼 수 없다”는 국정원의 논리의 반복일 뿐이다.

 

법무부장관은 유엔자유권위원회의 권고사항을 이행하여야할 주무부서로서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변호인조력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반의 인권보호절차를 이행함과 아울러 사법부의 인신구제절차를 존중함으로써, 무소불위의 국정원에 의한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의 탈북민에 대한 반인도적 인권침해에 대한 감시통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를 요청하는 바이다.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인신보호구제사건 변호인단

월, 2016/06/2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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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인터넷실명제 합헌결정 유감

국회 페지법안 조속 처리 촉구

 

헌법재판소(헌재)가 30일 선거운동기간 중 인터넷언론사 게시판 등에 정당·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의 정보를 게시하려고 할 경우 실명확인을 받도록 한 공직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구 공직선거법 제82조의6 제1항, 제6항, 제7항, 제261조 제1항 제1호)에 대해 합헌 결정(재판관 5인 합헌, 4인 위헌 의견)을 선고했다.

 

헌재는 우선 “선거운동 등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선거의 공정성을 전제로 인정되는 것이며, 선거의 공정성은 그러한 자유의 한정원리로 기능할 수 있다”면서 “선거운동 등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할 경우에는 이를 제한하는 것이 헌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전제를 내세웠다.

 

이어 “선거운동기간 중 인터넷언론사 게시판 등을 통한 흑색선전이나 허위사실이 유포될 경우 광범위하고 신속한 정보의 왜곡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실명확인조항은 이러한 인터넷언론사를 통한 정보의 특성과 우리나라 선거문화의 현실 등을 고려하여 입법된 것으로 선거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것”이라면서 실명확인의 기간·대상이 제한되며 인터넷이용자는 실명확인을 통한 정보 게시 여부를 선택할 수 있고 실명확인에 별다른 시간·비용이 소요되는 것이 아닌 점 등을 이유로 “실명확인조항이 게시판 이용자의 정치적 익명표현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및 인터넷언론사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헌재의 이번 결정은 선거에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한 수단적 가치이고 자체가 헌법적 목표라고 볼 수는 없는 선거의 공정성을 절대화시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구성요소로서 다른 기본권에 비하여 우월한 효력을 가지며 국민주권과 민주주의 정치원리 실현을 위해 불가결한 전제가 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는 전도된 논리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재판관 4인 반대의견이 지적했듯이, 공직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필요가 있는 핵심적 기간인 선거운동기간 중에 선거 관련 익명의 의사표현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여 선거의 공정이란 입법목적 달성에 오히려 장애가 되며, 사후적으로 게시물 표현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기술 및 인터넷 이용 선거범죄에 대한 명예훼손죄·후보자비방죄 등 여러 규제수단이 있음에도 수사편의 및 선거관리의 효율성에만 치우쳐 사전적ㆍ예방적 규제로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여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반되는 등 위헌임이 명백하다.

 

이번 결정은 구 정보통신망법상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헌재의 위헌 결정(헌재 2012. 08. 23. 2010헌마47, 262 병합)과 모순되어, 정치적 의사표현을 보다 적극적이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할 선거 시기에 오히려 국민의 익명표현이 평소에 비해 더욱 제한된다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 공직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도입 이후 줄곧 학계·시민단체 등으로부터 폐지론이 거세었던 것은 물론, 위 구 정보통신망법 위헌 결정 뒤로는 집행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마저 폐지 법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하고 이번 결정 사건 심리 중 이해관계 국가기관으로서의 의견 제출 시 극히 이례적으로 “의견 없음” 회신을 하여 청구인들의 위헌 주장에 사실상 동조하는 등 사회적 합의가 모아졌던 상황과도 크게 어긋난다.

 

이번 결정에도 불구하고 익명 표현을 선호할 수 있는 사회적 소수자·약자, 야당 지지자 등에 대한 상대적으로 강한 위축 효과 등 공직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가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정당화되거나 달리 평가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국회는 이를 폐지하는 내용으로 정치개혁특위 공직선거법 심사소위에서 통과시킨 법 개정안의 입법 절차를 흔들림 없이 신속히 완결 처리하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번 결정에서 헌재는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의 기본권을 신속하게 보호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데 가장 앞장서야 할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 기관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여론은 물론 다른 국가기관보다도 뒤처진 기본권에 대한 감수성으로 선거관리의 기술적 편리성에 치우친 퇴행적 판단을 내렸다. 이에 대해 깊은 유감과 우려를 표하며, 헌재가 스스로의 존재 의의와 역할을 보다 심각히 성찰하는 계기로 삼을 것을 촉구한다.

 

2015년 7월 3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한택근

금, 2015/07/3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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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_kim

수, 2014/04/2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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