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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늘 '현장'을 누비던 오렌지의 '휴가'를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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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늘 '현장'을 누비던 오렌지의 '휴가'를 기억하겠습니다

익명 (미확인) | 수, 2015/06/17- 17:49

5월 26일 ‘오렌지가 좋아’(이하 오렌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랫동안 신장병으로 투석을 받았던 그였기에, 때로는 일을 부탁하러, 때로는 그의 안부를 물으러 그에게 전화를 했더랬다. 그 날도 현장에 인터뷰를 가자는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했던 참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낯선 목소리는 오렌지가 쓰러졌고, 아주대학교 중환자실에 누워있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낯선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이야기들. 어쩌면 오래전부터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왔지만 막상 닥친 그 시간은 너무도 낯설었다.



▲ '오렌지가 좋아' 활동가의 모습(사진=다산인권센터)

          

2주 동안 오렌지는 병실에 누워있었다. 아주대병원에 지인을 만나러 와서 급작스레 심정지가 왔다고 했다. 만약 아주대병원으로 오는 버스 안이었으면, 집이었다면, 아마도 며칠 지나서야 그의 소식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병원에서 쓰러져 응급조치를 할 수 있었다. 늘 친절했고, 배려심이 많은 그였기에 주변 사람들이 마음을 준비할 시간을 주려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평생 여기저기 누비고 다녔을 고단한 자신에게 주는 마지막 휴가였을지도 모른다. 늘 곁에 있어왔지만 오렌지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다. 그가 오래도록 신장병을 앓아왔다는 것, 혼자 살고 있다는 것, 기초생활수급자라는 것,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생활해 왔는지, 8년의 시간동안 친구로 지내왔지만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오렌지가 누워있는 2주 동안 가족을 만났고, 오렌지가 다녔던 샘터 야학 사람들을 만났고, 신장병 환우회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분주히 돌아다니며 마음을 내어주고, 셔터를 눌러 기억해주던 사람들을 만났다. 어쩌면 오렌지가 누워있는 2주는 자신 주변에 떨어져 있던 모든 이들을 연결해주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함께 기억해달라고, 함께 아파해달라고 그리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봐달라고 말이다.



▲ '오렌지가 좋아' 활동가의 모습(사진=다산인권센터)

          

사람들을 만나면서 오렌지가 살아온 삶의 퍼즐 조각을 맞춰갔다. 초등학교 4학년 신장병이 시작되었고, 투병으로 인해 학교를 다닐 수 없어 야학에서 어렵사리 공부를 이어갔다는 샘터 야학의 기억. 기초생활 수급자로 당사자 운동을 해왔던 빈곤 활동가들의 기억. 2008년 한미FTA, 광우병 촛불에 나오며 현장 사진가로 살아왔던 다산인권센터의 기억,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의 사진을 찍고 같이 아파했던 반올림의 기억. 신장병 환우회 카페에서 조언을 해주고, 의료민영화에 맞서 싸웠던 기억. 골목잡지 사이다에서 객원기자로 일하며 수원을 누볐던 기억. 그리고 오렌지가 뛰어다녔던 수많은 현장의 기억들이 하나로 모아졌다. 2주 동안 35년을 살다간 오렌지의 퍼즐 조각들을 맞추고 나서야, 진짜 오렌지가 보였다. 그리고 퍼즐조각이 다 맞춰질 즈음, 6월 10일 오후 2시 40분 오렌지가 떠났다.

오렌지의 가방은 늘 무거웠다. 카메라, 노트북, 외장하드 등 늘 한 짐 가득 가방에 짊어지고 다녔다. ‘제발 좀 가볍게 하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해도 그 때 뿐이었다. 현장을 담아야했고, 편집을 하고, 기록해야겠기에, 오렌지의 가방은 늘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렌지는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 현장으로 향했었다. 쌍용차, 밀양, 용산, 세월호 등 시시각각 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내동댕이쳐진 이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가끔은 경찰들에게 연행 될 뻔하기도, 몸싸움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현장을 기록하느라 카메라를 놓지 못했다. 다른 이들의 눈물과 아픔, 삶을 기록하려 수천/수만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정작 자신은 영정사진을 할 만한 변변한 사진 한 장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포즈를 요구해야 할 오렌지가 하얀 꽃에 둘러싸인 영정사진 속에 있다는 게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처럼 어색하기만 했다.



▲ '오렌지가 좋아' 활동가의 모습(사진=다산인권센터)

          

늘 카메라를 들이대는 오렌지였다. 가끔은 그만 좀 들이대라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오렌지가 다산인권센터 자원 활동가를 시작한 이후 몇 년간 나의 기록 역시도 오렌지의 렌즈에서 나왔다. 다산인권센터의 활동과 오렌지가 관계 맺었던 수원지역 많은 단체의 활동을 기록해주고, 기억해주는 것, 오렌지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었다. 이제는 남은 이들이 오렌지를 기억해주고, 기록해줄 차례였다. 쓰러진 이후 카페에 있는 오렌지 사진을 긁어모으고, 개인 SNS에 있는 사진과 기록을 모았다. 그리고 오렌지가 지나쳐간 발자국들을 따라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통해 오렌지와 관계 맺고 있었다. 그리고 오렌지의 기록에 고스란히 우리가 남겨져 있었다. 그렇게 분주하게 기록하느라, 함께 하느라 아픈 몸 돌보지 못했구나. 미안함이 밀려왔다.

오렌지가 떠나는 마지막 날 많은 이들이 함께했다. 함께 울고, 함께 웃었다. 오렌지가 생전에 다니고, 만났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억하고, 추모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였다는 것, 이렇게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아파했다는 것을 오렌지는 알고 있을까? 오렌지가 늘 모두와 함께 했듯 마지막 떠나는 여행길 외롭지 않게 많은 이들이 동행이 되어주었다. 오렌지가 늘 지나던 행궁길 골목, 다산인권센터 사무실, 저 멀리 보이는 서장대. 잊지 말라고, 그리고 하늘에서도 길 잃어버리지 말고 찾아오라고 영정 사진 가득 담아주어 보냈다.

사람이 한 줌의 재가 되는 시간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한 많은 세상을 살아온 이들이 떠나는 시간은 살아온 시간이 길던, 짧던 그 시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 평생 온전히 살아온 육신이 재가 되는 순간은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러닝 타임과 비슷하다. 그래서 사람들의 삶을 영화 같다 하는지도 모르겠다. 6월 10일, 35년을 살아 온 오렌지의 영화가 끝났다. 오렌지가 떠나는 마지막 많은 사람이 울었다.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모르겠다. 그저 열린 결말쯤, 평생 잊히지 않을 영화라고 해두자. 오렌지가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오렌지를 기억하고 함께하니 말이다.


▲ '오렌지가 좋아' 활동가의 화장 전 활동했던 다산인권센터를 찾은 모습(사진=박김형준)


2015. 6. 16 미디어스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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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현장'을 누비던 오렌지의 '휴가'를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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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한국 선수 없는 경기를 보면서도 물었다. “우리 편이 이기나, 지나?” 미국 선수가 이기는지, 지는지 묻는 말씀이셨다. 따지지 않고, 미국 편은 우리 편. 우리 편은 좋은 편. 단순 공식의 지배를 받던 시절이었다. 할머니 시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드 우리 집 앞에 배치해라.” 주장하는 분들 이야기도 아니다. 네 편, 내 편, 우리 편, 아닌 편… 이른바 진영이라 한다. 한국 사회는 보수와 진보로 쪼개진 지 오래다.


밀양 할매의 필리버스터는?


선거 끝나면 보시라. 빨강과 파랑이 동과 서로 선명하게 갈라진다. 그뿐인가, 서울 아닌 지역과 서울. 강남과 강북… 자꾸 쪼개지지, 통합되지 않는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나라는 이리저리 분열 중이다. 그래서 그럴까, 아이러니하게도 합치려는 욕망은 도드라진다. 통합의 욕망은 갈등을 증폭시키는, 편 나누기로 창궐한다. 정치의 계절이 되니 더 그렇다.


지난번 총선 때 야당, 여당 국회의원 낙선운동을 공평히 했다. 욕은 야당 지지자들에게 먹었다. 야당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관리위원회 고발로 전과도 얻었다. 야당 출신 수원시장 정책에 반대할 때도 비슷한 반응이다. 어머낫! 새누리당 이중대라는 소리도 들었다. 우리 편끼리 왜 그러냐는 질문도 받는다. 질문받을 때마다 나는 누구 편이던가, 아리송해진다. 은수미가 있다 한들, 김현종이 있는 더민주(더불어민주당)와 같은 편이라 생각해본 적 없다. 박근혜가 미우면, 모두 같은 편인가? 같은 편이란 건, 있어야 하나?


내 SNS 타임라인 다수 정당은 녹색당, 노동당, 정의당, 최근 발족한 민중정치연합, 더민주 정도 된다. 새누리당은 아예 없는 당이다. 작은 세계에서 사람들은 이편저편 가리며 싸운다. 문재인을 욕하면 ‘안빠’가 되고, 안철수를 욕하면 ‘문빠’가 된다. 논쟁은 사라지고, 누구 편인지 단정만 남는다. 숙명적으로 인간은 모두 다르다. 단 한 명도 같지 않은 완벽한 타인들이 어울려 산다. 한 카테고리로 분류될 리 만무하다. 공통점을 찾아야 하겠지만,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독재가 된다. 공통의 입장만을 강변하면, 민주주의는 사라진다.

테러방지법 저지 해시태그가 온라인을 강타한 한 주였다. 필리버스터가 순위에 올랐다. 그런 닮음을 확인하는 것은 좋다. 다음은 차이 있는 이야기가 쏟아져야 한다. 몇 명 영웅 되는 것이 결론일 수 없다.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이유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다. 쟁점이 민주주의였으면 좋겠다.


왜 국회에서만 필리버스터가 가능한가, 밀양에서 할매들이 송전탑 막자며 밤새 노래하던 목소리는 국회 담장 안 10시간보다 짧았을까? 테러방지법 저지에 앞장선 의원들은 모두 비례대표라던데, 더민주는 왜 비례대표 축소에 합의해줬을까? 정치제도는 어떻게 개편돼야 하나? 테러방지법 독소조항 어쩌고 하며 야당이 합의 국면에 들어가고 나서, 그럴 줄 알았네, 어쩔 수 없네, 그래서 너는 누구 편인가 묻는 질문보다 훨씬 더 필요하다. 논의하자면 분열이라 치부하고 ‘통 크게 단결하자’ 하시는데 그런 분들치고, 자기 패 양보하는 사람 못 봤다.


단절로 열리는 세상


우리 편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깨달은 손녀는 반미 투사가 되어 할머니와 단절했다. 대가는 혹독했으나 그렇게 만난 세상이 참 좋았다. 좁은 우물 밖은 위험하지만 넓었다. 편먹기 국내용 문학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물론 아주아주 재미도 없다.


2016.3.5  한겨레 21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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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먹기의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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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6/03/1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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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고통의 기억이 잊혀지면 좋겠다. 밑바닥 어딘가에서 올라와 웃통을 훌렁 까고 찬물을 끼얹어도 식지 않는 것일수록, 죽도록 지우고 싶은 것일수록, 못된 상처는 종래 떠나주지 않는다. 그 앞에 타인이 하는 ‘괜찮아질 거야’라는 따위의 말은 얼마나 가당치 않은가. 서툰 위로라도 그렇다. 의도가 있는 강요라면 어떨까. 원래 상처보다 치명적이다. 그때, 나는 바닥없이 추락한다. 아… 하… 이제 치유조차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우리가 겪어본, 말할 수 없도록 독한 상흔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해 12월28일 한·일 정부가 했다는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합의’라 불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16살 밀양 소녀 김상희는 친구와 함께 사진관에 다녀오다 강제로 트럭에 실렸다. 중국 가는 수송선에 태워졌다. 상하이, 쑤저우, 난징, 싱가포르 등지로 끌려다녔다. 10년이었다. 후유증으로 심장병, 신장병, 고혈압을 얻었다. 광복 60주년이던 지난해 1월 둘쨋날 돌아가셨다. 13살에 평양에서 끌려간 길원옥 할머니는 “가자마자 성병에 걸렸어요. 그런데도 계속 약 먹으며 일본군들을 받아야 했지요. 한 번도 바깥 구경을 못했어요. 가만히나 있나요. 술 취하면 칼로 여기저기 찌르고 후벼 파고….” 어려도 너무 어려, 초경조차 시작하지 않았던 몸에 강간과 폭행이 끊이지 않았다. 15살에 연행되어 이 나라 저 나라 끌려다니다, 해방 후 미군 포로가 된 김복동 할머니. 전쟁 끝 무렵 일본군 간호사가 되어야 했다. 다친 일본군에게 피가 모자라면 할머니 몸에서 피를 뽑아 댔다.


스가모형무소에 수감됐던 1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는 다른 전범들이 교수형 당했으나 예외였다. 심지어 일본 총리를 지냈다. 지금은 야스쿠니신사에 있다. 현 총리가 정치적 아버지라 부르는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다. 이번 ‘합의’라는 것은 펜타곤(미국 국방부)의 말대로 ‘자위대의 해외 파병이 가져올 미국 방위산업체에 굉장히 좋은 뉴스’의 전제로 보인다. 한·미·일 정부가 놓고 벌이는 ‘역사적’ 주판 위다. 계산서에 전쟁범죄 사죄, 할머니들의 눈물, 일본 군사 재무장이라는 위험은 빠졌다. 해제된 미국 정부 문서와 침묵을 깬 피해자들의 증언이 있기 전까지 존재하지도 않았던, 일본군 ‘위안부’들. 지금도 어떻게 사라졌는지 증명조차 되지 못한 수십만 여성들. 그들의 원혼은 사라졌을까. 그들 앞에, 지난 70년 동안 단 하나 노력도 하지 않은 한국 정부의 자격은 무엇일까. 무슨 자격증을 발부받았기에 피해자들이 전세계를 다니며 써 내려온, 수치심을 불사했던 증언들을 뒤집으려 하는가.


얼마 전 ‘합의’라는 것의 폐기를 촉구하는 어느 집회에 참여했다. 참석자들이 ‘욱일승천기’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의아했다. 일본 국가만의 문제인가, 아베만의 문제인가. 피해자는 할머니들뿐 아니라, 모든 것을 지켜본 역사 속의 너와 나, 모두다. 가해자는 한국 정부가 포.함.된. ‘국가들의 연합’이다. ‘박근혜는 아버지 대를 이어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고 있다. 대를 이은 불가역적 배신이다. 돌아가신 김상희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은, 돌아온 나에게 한국 사람들이 던지는 말이었어….” 칠흑같이 어두운 곳에서 군인들이 입을 막고 고함도 못 지르게 했던, 사지 떨리는 기억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 그것은 꿈에도 그리워 울며 지새웠던, 고향 땅, 그곳에 돌아와 맞은 돌팔매였다.


*이 글은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의 강연과 <주간경향> 기사의 내용을 발췌, 재구성했습니다.


2016.2.2 한겨게 21(노땡큐)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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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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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6/02/0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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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현씨는 스물 초반 뇌출혈로 말을 못하고 오른팔과 다리를 쓰지 못하는 뇌병변 장애인이 되었다. 살아갈 방법이 없어 이듬해 시설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27년을 살았다. 마음껏 다니고 싶고 일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었으나 불가능했다. 국현씨는 자립생활을 꿈꾸었고 선택했다. 자립생활은 쉽지 않았다. 혼자 밥조차 먹을 수 없었다. 활동보조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활동보조 서비스 대상 등급이 아니었다. 이의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현씨 집에 불이 났다. 가까운 곳에 사람이 있었으나 소리 지를 수 없었다. 화마는 온몸을 덮었고, 심각한 화상으로 고통당한 일주일 뒤 세상을 떠났다.


일러스트레이션/이강훈



2년마다 재심사, 등급은 더 아래로


광화문 지하 광장 한켠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이 들어선 지 3년이 넘었다. 2012년 경찰과 몸싸움 끝에 농성장 차리며 이렇게 시간이 지날 줄 몰랐다. 물론 언제 끝날지 모른다. 1천 일 넘는 사이 없던 것이 생겼다. 12개의 영정사진이다. 국현씨처럼 화재를 피하지 못해 죽어간 주영씨부터 등급을 부여받지 못해 사라진 얼굴들이다. 가난과 고통을 증명하지 못한 이들이다.


장애 등급은 1급부터 6급까지 다른 복지 혜택을 부여한다. 등급이 내려가면 혜택이 줄고, 수급권조차 박탈당한다. 영정사진 속 진영씨는 ‘등급외’ 판정을 받았다. 수급이 중단될 것을 예상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년마다 재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등급은 내려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때마다 혜택은 일방적으로 줄어든다. 비장애인에게 야박한 일자리, 장애인에게는 아예 기회조차 없다. 기업들은 법으로 정한 알량한 장애인 의무고용을 벌금으로 때운다. 장애인들에게 수급과 혜택은 생존과 직결된다.


그나마 수급권자가 되어도 부양 능력 있는 가족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제외다. 얼굴 본 지 수십 년 된 가족이라도 마찬가지다. 성년 된 자식이 알바비를 받아도 예외 없다. 수급권을 얻기 위해 가족과 인연을 끊기도 한다. 얼마 전 심장이 멈춰 곁을 떠난 친구, ‘오렌지가 좋아’ 명환이도 신장병을 치료하기 위해 13살에 가족과 헤어졌다. 어린 나이에 식당 한켠에서 쪽잠을 자며 병과 싸웠다.


한국 사회 복지는 가족이 첫 번째 책임자다. 국가는 등급 매길 수밖에 없는 이유로 예산 타령이다. 멀쩡한 강을 파헤친 돈 22조원.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을 위한 경찰 주둔 비용 100억원. 세월호 집회에 유족들에게 쏟아부은 물대포 73t. 돈 없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국민 위해 돈 쓰기 싫은 것이다. 여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 김무성씨는 “복지 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고 말했다. 속내는 그럴 것이다. 재벌들이 쌓아놓은 사내 유보금이 710조원이다. 한국 사회가 가난한 것도 아니다. 가난하고 힘없으면 끝없이 추락할 뿐이다.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증명해야 하는


광화문 지날 때 12개 영정이 놓인 그곳에 잠시 걸음 멈춰주시길. 서명을 해도 좋겠고, 농성장 지키는 이에게 커피 한잔 건네며 격려해주셔도 좋다.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위치에 있는지 증명해야만 하는’ 사회의 야만을 온몸으로 막는 이들이 거기 있다.

"우리들은 현대 사회에 있어 ‘본래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인식되는… 비장애인 문명이 만들어온 현대 문명이 우리 뇌성마비인을 배척하는 형태로 성립되어왔다.” 일본 뇌성마비협회 푸른잔디회의 행동강령이다. 비장애인 문명은 고통에 등급을 매기는 중이다. 함께 살기 위해서 국현씨들의 시선으로 구성된 장애인 문명의 시대를 시작해야 한다. 마침내 ‘모두 행복해질 것이다’.


2015.09.09 한겨레 21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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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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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5/09/1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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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굳어가는 고통, 돈으로 환살할 수 있나요

[강남일기 3] 삼성 직업병 피해자가 원하는 것,진심으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지난 7일부터 강남역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삼성반도체 직업병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매일 24시간 이어 말하기(노숙농성)'를 하고 있습니다. 

삼성 반도체·LCD 직업병 피해자들과 함께 반올림은 ▲ 삼성은 교섭을 파기하고 일방적 보상절차를 강행한 것에 대해 사과하라 ▲ 삼성은 조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대화에 성실히 임하라 ▲ 삼성은 무성의·무책임·무능력한 태도로 일관하는 교섭단을 즉각 교체하라 ▲ 삼성은 배제 없는 보상·내용 있는 사과·실효있는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 등. 네 가지 구체적 요구를 하고 노숙농성을 진행 중입니다. 하루하루 반올림 농성의 모습을 <강남일기>로 연재합니다.


▲  강남역 8번 출구 농성장에 상주하는 반올림. 매일 오전·오후 농성장 바로 옆 삼성전자 빌딩을 돌며 직업병 피해자들과 함께 피켓 시위를 한다.
ⓒ 반올림


농성장에 두툼한 침낭을 깔고, 하늘을 이불 삼아 눕는다. 한밤 강남 한복판의 소음에 온 귀를 집중시킨다. 막차를 향해 달리는 하이힐의 또각 거리는 소리, 일주일의 고단함을 적셔 준 술에 취해 흔들거리는 삶의 소리, 한밤의 나들이에 신난 운동화의 경쾌한 소리.

갈 길이 바빠 경적을 울려대는 자동차와 깜빡이는 불빛들. 한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싸고, 가장 분주해 보이는 강남 한복판의 밤이 깊어간다. 하루를 바삐 살아온 이들의 정겨운 소음 속에서 슬며시 잠을 청한다. 우리의 발걸음이 강남역 8번 출구에서 멈춰진 지 13일. 이제 한밤의 소음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고단한 노래처럼 들린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의 눈물로 만든 농성장

8년이다. 삼성 반도체에서 일했던 딸의 죽음이 직업병이라는 의혹을 품은 한 아버지 황상기씨의 고단히 싸운 세월이. 8년의 시간 동안 삼성은 모질게도 직업병 연관성을 부인해왔다.

개인의 질병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한 지 몇 년, 진실을 은폐하고 돈으로 회유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황상기씨의 싸움에 세상이 눈을 돌려 영화로, 책으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삼성은 그때야 사과를 했다.

진정성 있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속초의 택시기사가 거대한 기업 삼성을 이겼다는 환호성도 잠시. 삼성은 온갖 꼼수를 동원해 사과를 무효로, 직업병 문제의 해결을 원점으로 돌렸다. 그리고 (피해자와 유가족이) 결국 거리의 삶을 선택하게 하였다.

삼성은 사회적 합의기구인 조정위의 권고안을 무시한 채 보상위원회를 꾸렸고, 직업병 문제를 개인적 보상으로만 해결하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보상·사과·재발 방지 대책을 함께 논의하자는 외침을 외면한 채, 8년 전으로 모든 상황을 되돌리려 하고 있다. 아버지에 이어 (기업의) 새로운 경영자로 군림하는 이재용 역시, 직업병 문제를 등지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  삼성 LCD 공장에서 일하다 '다발성 경화증'에 걸려 투병 중인 김미선씨. 이 병 때문에 시력을 잃어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짚고 반올림 농성장에 찾아오신다.
ⓒ 반올림


강남역 8번 출구 앞에 차려진 농성장은 피해자들의 눈물이다. 그 눈물은 8년을 싸워온 황상기 아버지의 딸을 향한 애끓는 사랑, 제대로 가눌 수 없는 몸을 이끌고 농성장으로 출근하는 뇌종양 피해자 혜경씨와 어머니의 아픈 세월, 평생 시각장애 1급으로 살아가야 할 다발성경화증 미선씨의 잃어버린 세상, 아버지를 잃은 아들 손성배씨의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다. 합당한 보상, 재발 방지 대책,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요구가 모이는 곳이다. 몸이 아파 함께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은 영상으로 찍어서 자신들의 아픔을 알리고 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이다.

전신 경화증을 앓는 혜정씨의 아픔

얼마 전 전신 경화증에 걸린 피해자 혜정씨가 이야기를 보내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삼성에서 일했다는 혜정씨는 현재 전신 경화증으로 온몸이 굳어가고 있다. 손을 오므렸다 펼 수도, 뛸 수도 없다. 전신이 서서히 굳어가는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온몸에 괴사가 오고, 손이 가는 아이들에게 밥 한 번 제대로 해줄 수 없는 상황이다. 뻣뻣해지는 몸을 보면서, '아이들을 위해 좀 더 버텨야 하는데' 하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생존 기한이 5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과의 미래를 꿈꿀 수 없는 현실이 고통스럽다고 혜정씨는 말한다.

굳어가는 몸. 살아온 시간을 이제 멈추라는 선고 속에 혜정씨와 그녀 아이들의 아픔을 어떻게 해야 할까? 위로금이란 이름의 보상이면 된다는 삼성에 혜정씨의 고통과 아픔은 '얼마'일까? 아이들을 안아줘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하루하루 흐르는 시간이 원망스러운 혜정씨의 오늘이 삼성에는 얼마일까? 혜정씨의 삶은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것인가? 혜정씨는 이야기했다.


▲  전신 경화증에 걸려 투병중인 혜정씨. 고등학교 졸업 후 삼성 반도체에 입사, 故 황유미씨와 비슷한 공정의 업무를 했다. 전신 경화증으로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직접 서울 농성장으로 찾아오기 어려워 영상 메시지를 보내왔다.
ⓒ 반올림


"미안하다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아니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제발 나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모르쇠로 일관하고, 어렵사리 열린 교섭과 조정을 뒷전으로 팽개친 채 위로금이란 이름으로 개별 보상으로만 하겠다고 삼성은 말한다. 실상 '자기네 책임은 없다'며 위로금이 전부라는 것 아닌가? 제발 다시는 이런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혜정씨의 울부짖음에 돈을 내세우는 태도는 너무도 초라하다.

돈으로 환산 불가능한 노동자들의 '삶'

삼성에게 묻고 싶다. 하루하루 굳어가는 몸을 보며 마음마저 굳어가는 혜정씨의 삶은 얼마냐고. 시각장애 1급으로 평생 생생한 세상을 볼 수 없는 미선씨의 삶은 얼마냐고. 딸을 잃은 채 8년을 살아온 황상기씨의 삶은 얼마냐고. 평생 누군가에게 의지한 채 살아야 하는 혜정씨의 삶은 얼마냐고. 투병의 고통으로 자살한 노동자의 삶은 얼마냐고. 직업병으로 제보해온 221명의 삶, 이미 세상을 떠난 74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 할 수 있느냐고.




▲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과 함께 만든 피켓. '삼성은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진정성 있는 사과, 배제없는 보상, 투명한 예방 어떻게 할 것인지 응답하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 반올림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버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삶들의 가치를 삼성에게 일깨우기 위해서. '0'이 몇 개인지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는 돈으로 모든 걸 사려는 삼성이 제발 정신 차리라고 이 자리에 있다.

(반올림과 유가족은) 투명한 재발 방지 대책과 배제없는 보상, 진심어린 사과라는 최소한의 요구를 위해 싸우고 있다. 더 좋은 기업으로 거듭나고, 더 이상 노동자의 삶을 고통으로 내몰지 말라고 오늘도 아스팔트 바닥에서 하루를 보낸다.

14일째 농성이 시작된다. 농성에 함께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은 함께 나누라며 과일을 보내오고, 따뜻한 도시락을 보내온다. 지나가는 시민은 힘내라며 꼬깃꼬깃 돈을 쥐어주고 가신다. 이런 고통에 공명하지 못하는 것은 삼성 뿐이다. 제발 삼성이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피해자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2015.10.22 오마이뉴스 
랄라(다산인권센터 활동가)

원문보기 

몸이 굳어가는 고통, 돈으로 환산할 수 있나요
[강남일기3] 삼성 직업병 피해자가 원하는 것,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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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5/10/2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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