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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307] 87년 체제, 민주주의 가로막는 반동의 원천 : '제7공화국'을 위한 연대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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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307] 87년 체제, 민주주의 가로막는 반동의 원천 : '제7공화국'을 위한 연대 ①

익명 (미확인) | 목, 2015/05/28- 11:50


[시민정치시평 307]

 

87년 체제, 민주주의 가로막는 반동의 원천

제7공화국'을 위한 연대 ①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작년에 이어 올해의 4.29 재·보선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을 중심으로 한 야권이 참패했다. 여기저기서 숱한 분석과 조언이 넘쳐난다. 야권의 분열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에서부터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정치력에 대한 비판이나 향후 행보에 대한 다양한 훈수까지, 살짝 어지럽기까지 하다. 모두 귀담아들을 구석이 있기는 해 보인다. 그러나 어딘지 식상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특히 재·보선 이후 깊은 내홍에 빠진 새정치연합의 혁신이나 문재인 대표의 변신에 대한 주문은 너무도 적절해 보이지만 어쩐지 비현실적으로만 들린다. 무언가 결정적인 것이 빠져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가 볼 때 이번 선거의 가장 큰 교훈은 새정치연합은 물론 야권 전체가 재편되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데 있다. 정치 자영업자들의 연합체 같은 새정치연합이 대안이 될 수 없음도 명백하지만, 진보와 보수가 대결하는 유럽적 정치 지형을 만들겠다던 국민모임이나 정의당 등의 오래된 '민주노동당 모델 2'도 다시 좌절했다고 보아야 하고, 천정배 의원의 '호남 정치 복원' 구상은 기껏해야 '새정치연합의 호남화 프로젝트' 이상이 되기 힘들 것 같다. 어디 하나 미더운 데가 없다.

 

상황이 무척 엄중해 보인다. 지금과 같은 정치 지형과 조건에서 무능하기 짝이 없는 데다 분열되기까지 한 야권이 계속 한국 정치와 사회의 진보적 미래에 대한 아무런 의미 있는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기만 한다고 해 보라.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압승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나라가 보수가 장기 집권하는 일본을 닮는 상황을 걱정하곤 한다. 내가 볼 땐 대단한 착각이다. 우리나라는 민주화의 일천한 경험 등 여러 면에서 일본보다는 21세기 들어 민주적 절차를 통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권위주의 체제를 확립한 러시아, 헝가리, 터키 같은 나라와 더 가깝다고 해야 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보수파 집권 뒤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는 등의 온갖 악법으로 시민들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심지어 러시아의 푸틴과 터키의 에르도얀은 권좌에서 물러나고도 실권을 행사하다가 권좌에 복귀했거나 복귀할 예정이고, 헝가리의 오르반은 아예 개헌을 통해 자신과 보수파의 영구 집권을 위한 발판을 만들기도 했다. 이미 유사한 경로를 밟고 있는 듯한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더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하루빨리 야권의 올바른 정립과 재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문제는 단순히 문재인 대표를 대신할 새로운 인물을 찾는 따위의 것에 있지 않다. 야권 전체가 어떤 식으로든, 개별 정당 차원에서 또 연합 정치의 수준에서, 뚜렷한 정치적 지향과 미래 전망, 신뢰할 수 있는 정책들, 관용과 포용의 정치 문화, 국가 운용 능력 등을 갖춘 정치적 대안을 형성하여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상투적인 혁신을 넘어, 그야말로 환골탈태를 위한 분골쇄신이 절실하다. 


내 생각에 그 출발점은 우리의 지금과 같은 정치 지형과 야권의 지리멸렬함을 그 근본에서 규정하고 있는 이른바 '87년 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87년 정치 체제는 더 이상 그저 어쩔 수 없는 우리 민주주의의 주어진 조건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적 정의'의 원칙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결손 민주주의' 체제로서, 이제 우리 사회의 진보와 민주주의의 심화를 막는 가장 근본적인 장애의 하나, 아니 심지어 가장 중요한 역사적 반동의 원천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적 진보를 위해서는 반드시 이 체제를 깨트리지 않으면 안 된다. 

 

돌이켜보면 우리 민주주의의 이 87년 체제는 오랜 민주화 운동의 성취를 부당하게 전취한 구민주당 세력과 구체제의 수구 세력이 밀실에서 이룬 어정쩡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그 결과 지금의 제6공화국의 헌정 질서가 만들어질 때 정작 가장 앞장서 군부 독재를 종식시켰던 시민적 주체들은 철저하게 배제되었더랬다. 비록 87년의 민주화가 이룬 역사적 진보의 의미 전부를 폄훼해서는 안 되겠지만, 지금의 우리 민주주의 체제는 시민들의 자기-지배를 위한 평등한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는 정의로운 '시민적 권력'의 체제로서는 처음부터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대의 제도와 통치 구조부터 민주주의적 정의의 원리에 여러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어긋난다. 승자독식의 단순 다수결 소선구제를 핵심으로 하는 현행 선거 제도는 결코 공정한 민주적 대의 제도가 아니다. 이 제도에서는 예컨대 전국적으로 40% 정도의 지지를 받는 새누리당이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할 수 있다. 또 구조적으로 양당제를 강요하고 다양한 정치 이념의 실험을 힘들게 하기도 했다.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는 것을 매우 힘들게 한다.

 

또 이 체제에서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이 민의를 대변하는 의회의 견제를 우회하여 너무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심지어 사법부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 권력의 구조적 비대함은 우리 민주주의를 기본적으로 '위임 민주주의(delegate democracy)'로 만들었고, 최근 들어서는 국민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제약되는 '비자유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로 전락시켰다. 

 

나아가 사법부 문제도 심각하다. 최근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에서 보듯, 87년 체제의 가장 중요한 민주적 장치의 하나로서 시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만든 헌법재판소는 외려 그 기본권 침해의 첨병이 되는 아이러니도 드러났다. 선출되지 않은 헌법재판관들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국회의원의 자격을 간단히 박탈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이와 함께 사법부 전반의 행정 권력 종속성도 자주 나타난다.

 

다른 한 편으로 이 체제는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적 요구를 담아내고 시민적 권력을 제도화 내어야 할 정치적 주체도 제대로 성숙시켜내지 못했다.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와 같은 생활세계의 기초적인 시민적-민주주의적 조직들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는 배경이 있기는 하지만, 이 체제의 근본적인 정치적 틀은 무엇보다도 민주적 시민 사회의 정치적 기구가 될 수 있는 정당을 제대로 성장시키지 못했다. 지금까지 단지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시민적 권력의 현실적 구심점 역할을 했던 새정치연합(구민주당)의 거의 범죄적 수준의 무능함은 일차적으로 87년 체제가 배태한 지역주의적 기득권 안주에서 비롯한다고 해야 한다. 나아가 이는 다른 진보 정당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게 막은 결정적 배경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사정은 구조적 제약 말고도 우리 정치적 주체들의 이념적, 문화적 미성숙에도 상당한 탓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민주 진보 세력은 '역사적 공산주의' 이후 시대의 냉전적 분단 상황에서 유교적-근대적 특징을 갖고 있는 한국 사회에 걸맞은 제대로 된 민주적 진보 이념과 노선을 가공해 내는 데 완전하게 실패했다. 

 

특히 우리 정치적 주체들은 그동안 분단과 그에 따른 이른바 '48년 체제'의 냉전적 틀을 합리적으로 극복할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지나치게 민족주의에 경도되거나(이른바 NL) 반대로 분단 문제 자체를 아예 깡그리 무시해 버리는(이른바 PD) 거울상 오류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덕분에 우리의 87년 체제 민주주의는 기껏해야 '앙상한 민주주의'이기를 벗어날 수 없었다. 민주화 이후 30년 동안 민주 세력은 딱 10년만, 그것도 거의 기적적으로 우연적인 상황에서 집권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짧은 집권 기간 동안에도 늘 정치적 불안정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숱한 차원에서 정치적 무능을 드러냈다. 특히 비정규직이나 영세 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층을 제대로 대변하고 포괄하지 못하는 정당 체제 속에서 시민들 사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기만 했다. 

 

결국 87년 체제는, 정의의 실현과 비-지배의 제도화라는 민주주의가 감당해야 할 본연의 과업을 제대로 수행해 내기는커녕 오히려 우리 사회 수구보수 세력의 과두 특권 독점 체제를 강화시켜주기까지 하고 말았다. 구조의 측면에서나 주체적 조건에서 우리가 이 체제의 틀 안에 머물면서 사회의 민주주의적 진보를 기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내 생각엔 이제 단지 이를 전체로서 극복하기 위한 담대한 정치적 기획을 실천함으로써만 우리 민주 진보 세력과 민주주의에 희망이 있을 것처럼 보인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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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실체없는 선동글 규명 부탁드립니다. 최 근 김춘택 교수의 글이라고 해서 인터넷에 많이 떠돌고 있는 글이 있는데요. 어른을 통해서 카카오톡으로도 해당 글을 받았습니다. 김춘택 교수라는 사람이 실재하는 지 여부 확인 부탁드립니다. (2017. 3. 김OO씨 팩트체크 요청)

 

A. 김춘택 교수라는 사람의 글을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혹은 블로그나 카카오톡 채팅방을 통해 접하신 분들 많을 겁니다. 대부분 ‘펌’이나 ‘전달’의 형식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있습니다.

김춘택 교수라는 사람의 글이 처음으로 확인되는 것은 2016년 10월 28일에 작성한 것으로 돼 있는 ‘추미애가 말하는 부역자, 부역자는 그쪽에 수두룩 하잖나?’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10월 30일에는 ‘최순실이 즉시 왔다. 좌파에게는 날벼락이다’라는 제목의 글이 등장합니다. 지난해 10월 2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후에 대통령을 옹호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춘택 교수’가 자신의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직접 올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인용해 올린 것이기 때문에 원작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후에는 촛불시민들과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를 종북, 빨갱이 내지는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는 글이 3월 중순까지 간헐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우익대통령 몰아내고 빨갱이 세상되면 국민은 어디로 가서 살 건가’, ‘문재인이 국가에 끼친 해악’, ‘문재인 그는 누구인가’, ‘촛불집회를 보는 이문열과 황석영의 눈’, ‘헌법을 유린, 탄핵한 역도들은 지옥도 아까운 역모의 마귀들’ 등 십여 건에 이릅니다.

특히 박사모 등 친박단체 회원들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통해 김춘택 교수의 글을 퍼나르면서 급속히 확산됐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지난 3월 7일 한 70대 스마트폰 사용자의 카톡으로 전달된 ’김춘택 교수’의 글. 최근까지 인터넷과 카카오톡 등을 통해 급속히 유포됐다.

▲ 지난 3월 7일 한 70대 스마트폰 사용자의 카톡으로 전달된 ’김춘택 교수’의 글. 최근까지 인터넷과 카카오톡 등을 통해 급속히 유포됐다.

이 글을 보면 문재인 후보를 ‘공산주의자’라고 지칭하며 각종 허위 사실로 공격을 하고 있는데요. 글 마지막에는 ‘읽은 후 빨리 전파하라’는 메시지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글쓴이가 ‘김춘택 교수’라고만 돼 있고 어느 대학 소속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블로그나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 그리고 트위터 등 SNS를 통해서도 많이 확산됐습니다.

한 네티즌이 블로그에 올린 ‘김춘택 교수’ 명의의 문재인 후보 허위 비방글.

▲ 한 네티즌이 블로그에 올린 ‘김춘택 교수’ 명의의 문재인 후보 허위 비방글.

▲ ‘김춘택 교수’라는 인물은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비판적 글을 작성했다.

▲ ‘김춘택 교수’라는 인물은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비판적 글을 작성했다.

‘김춘택 교수’라는 사람의 글에 등장하는 단어나 말투, 글을 꾸미는 형식을 보면 60~70대 인터넷 사용자와 비슷한 측면이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교수가 맞는지, 맞다면 어느 대학 교수인지, 아니면 누군가 ‘김춘택 교수’라는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 글을 작성한 것인지는 확인하기 쉽지 않습니다.

과연 김춘택 교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실존하는 사람일까요?

먼저 대학교육을 총괄하는 교육부에 문의했습니다. 대학교원 인사정책 업무를 담당하는 교육부 관계자는 “국공립대 전임교원에 대한 임용 보고는 받지만 교원 명단을 따로 관리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습니다. 비전임교원의 경우 따로 보고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국공립대 대학교수들 가운데 ‘김춘택’이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립대 교원 임용에 대한 사항을 보고 받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역시 교수들의 명단을 따로 관리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예산이 필요한 일인데 예산이 따로 배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마지막 방법으로 국회도서관에서 논문 검색을 했습니다. 교수라면 당연히 여러 편의 논문이 검색될 것이기 때문이죠. 검색 결과 ‘김춘택’이라는 이름의 교수가 딱 1명 등장했습니다. 경북대 사회학 박사 출신의 김춘택 현 안동대 외래교수였습니다. 다문화가족과 노인복지 등 사회문제를 주로 연구한 김 교수는 50대 남성으로 현재 안동대 생활환경복지학과에서 외래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김춘택 교수가 쓴 논문 제목은 ‘다문화가족여성의 일상생활에 대한 현상학적 해석에 관한 연구’, ‘FTA가 한우농가의 지역결속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탐색적 연구’, ‘경북 장애인의 지역결속력에 관한 연구’, ‘농촌 외국결혼이주여성의 결혼만족도에 관한 탐색적 연구’ 등으로 다문화가족과 지역 농가, 장애인, 이주여성, 노인 등이 김 교수의 주요 연구 과제임을 알 수 있는데요. 연구 분야가 시국 현안과 특별히 관련이 있어 보이진 않았습니다.

‘실존 인물’ 김춘택 교수에게 직접 연락해 확인해봤습니다. 그 결과 최근 인터넷 블로그와 SNS에 유포되고 있는 문재인 후보 비방글들은 김 교수가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김 교수 본인도 자신의 이름으로 이런 글이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자의 연락을 받고 처음 알게됐다고 밝혔는데요. 물론 동명이인의 김춘택 교수가 있을 수 있지만, 인터넷상에서 검색되는 동명이인은 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뿐이었습니다.

김춘택 안동대 외래교수는 취재진에게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습니다.

대한민국은 누구나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오픈된 사회입니다. 또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안보문제, 통일문제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남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거나 출처를 정확히 밝히지 않는 것은 또다른 행위입니다.

일부 네티즌들은 문재인 후보에 관한 비방글을 올린 사람이 실제 김춘택 안동대 외래교수인 것으로 착각하고 글을 올리고 있기도 한데요. 김 교수는 이런 상황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캠프에서도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강력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권혁기 문재인 예비후보 부대변인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김춘택 교수’ 관련 글을 포함해 여러 건의 허위사실 유포 사례에 대해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수사를 의뢰했다”면서 “최초 작성자 뿐 아니라 대량 유포자도 끝까지 찾아내 강력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물론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김춘택 교수’라는 사람이 문제의 글을 썼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교수가 아닌 강사가 편의상 ‘교수’라는 직함을 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각종 허위비방글을 썼던 ‘김춘택 교수’ 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앞으로는 본인의 소속과 신분을 정확하게 밝히고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안동대의 김춘택 교수와 같은 제3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테니까 말입니다.


취재:조현미

토, 2017/03/2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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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복면시위 가중처벌 양형기준 반대 의견서 제출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 수정안 철회해야
얼굴감춘 것만으로 공무집행방해 계획성 단정할 수 없어


취지와 목적

  • 지난 2016년 9월 5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양형기준 수정안을 확정하였음. 
  • 주요 내용은 공무집행방해범죄 양형 기준 중, 일반가중인자인 “계획적 범행”의 표지의 내용으로 ‘신원확인 회피 목적으로 신체일부를 가리고 범행한 경우(다만, 공무집행방해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경우 제외)’를 추가함.
  • 참여연대는 이번 수정안이 결과적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그 참여자들이 가지는 인격권과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봄.
  • 이에 수정 반대 의견을 제시하며 철회를 요구함.

 

개요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공무집행방해범죄군 양형기준 수정안의 요지

  • 공무집행방해범죄의 일반가중양형인자 중 “계획적 범행”의 정의를 수정하여 “신원확인 회피목적으로 신체일부를 가리고 범행한 경우(다만, 공무집행방해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경우 제외)”라는 요소를 신설 삽입함(이하 “수정안”).
  • 양형위원회의 ‘공무집행방해범죄 양형기준 수정안 설명자료’에 따르면, 신원확인을 회피하기 위하여, 행위자의 동일성을 식별하기 어렵게 한 경우에는 계획적인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보겠다는 것으로, 다만, 공무집행방해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경우와 같이 계획적 범행이 아닌 경우에는 제외함

 

수정안의 배경

  • 양형위원회는 수정의 이유나 근거에 대하여 밝히지 않고 있으나, 애초 법무부의 수정안 제안이유에서 추정하여 볼 수 있음
  • 이에 의하면 수정안은 테러, 조직폭력, 집회·시위 과정에서 신원을 숨기거나 가장하여 범행을 은폐하고 처벌을 면하기 위한 목적으로 복면 등을  착용하는 경우가 흔한다는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임.
  • 즉, 집회·시위 등에 참가한 사람들이 복면으로 얻어지는 익명성에 기대어 범행이 과격화하거나 폭력성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사전 억지할 정책적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됨.
  •  또한 외국의 경우에도 신원을 숨기기 위해 복면을 착용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는 사례도 참작한 것으로 보임

 

참여연대는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이번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수정안이 타당성과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어 반대의견을 제시하며 철회를 요청함.
 

  1. 신체일부를 가리는 모든 행위를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성문화하여 양형기준요소의 판단지표로 특정하는 것은 지나친 과잉규제임
  2. 실질적으로 집회·시위 참석자들의 복면착용 등의 행위를 주된 규율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헌법상의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함.
  3. 검찰의 기소 재량 및 법관의 재량까지도 확장하여 양형기준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야기할 우려가 있음.
  4. 집회·시위와 가장 연관성이 크게 발생하는 공무집행방해범죄군에 대해서만 가중인자로 포함하는 것은 다른 범죄와의 형평, 체계정합성에도 어긋남
  5. 법률로 규정되어야 할 기본권 제한 사항을 양형기준으로 대체 규정하는 사실상의 대체입법임.
  6. 익명으로 생활할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하여 인격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조항에 반하는 것임. 

 

▣ 붙임자료
1.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 수정안에 대한 참여연대 의견서 

수, 2016/10/0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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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시위 가중처벌 양형기준 반대 의견서 제출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 수정안 철회해야
얼굴감춘 것만으로 공무집행방해 계획성 단정할 수 없어


취지와 목적

  • 지난 2016년 9월 5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양형기준 수정안을 확정하였음. 
  • 주요 내용은 공무집행방해범죄 양형 기준 중, 일반가중인자인 “계획적 범행”의 표지의 내용으로 ‘신원확인 회피 목적으로 신체일부를 가리고 범행한 경우(다만, 공무집행방해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경우 제외)’를 추가함.
  • 참여연대는 이번 수정안이 결과적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그 참여자들이 가지는 인격권과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봄.
  • 이에 수정 반대 의견을 제시하며 철회를 요구함.

 

개요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공무집행방해범죄군 양형기준 수정안의 요지

  • 공무집행방해범죄의 일반가중양형인자 중 “계획적 범행”의 정의를 수정하여 “신원확인 회피목적으로 신체일부를 가리고 범행한 경우(다만, 공무집행방해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경우 제외)”라는 요소를 신설 삽입함(이하 “수정안”).
  • 양형위원회의 ‘공무집행방해범죄 양형기준 수정안 설명자료’에 따르면, 신원확인을 회피하기 위하여, 행위자의 동일성을 식별하기 어렵게 한 경우에는 계획적인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보겠다는 것으로, 다만, 공무집행방해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경우와 같이 계획적 범행이 아닌 경우에는 제외함

 

수정안의 배경

  • 양형위원회는 수정의 이유나 근거에 대하여 밝히지 않고 있으나, 애초 법무부의 수정안 제안이유에서 추정하여 볼 수 있음
  • 이에 의하면 수정안은 테러, 조직폭력, 집회·시위 과정에서 신원을 숨기거나 가장하여 범행을 은폐하고 처벌을 면하기 위한 목적으로 복면 등을  착용하는 경우가 흔한다는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임.
  • 즉, 집회·시위 등에 참가한 사람들이 복면으로 얻어지는 익명성에 기대어 범행이 과격화하거나 폭력성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사전 억지할 정책적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됨.
  •  또한 외국의 경우에도 신원을 숨기기 위해 복면을 착용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는 사례도 참작한 것으로 보임

 

참여연대는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이번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수정안이 타당성과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어 반대의견을 제시하며 철회를 요청함.
 

  1. 신체일부를 가리는 모든 행위를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성문화하여 양형기준요소의 판단지표로 특정하는 것은 지나친 과잉규제임
  2. 실질적으로 집회·시위 참석자들의 복면착용 등의 행위를 주된 규율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헌법상의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함.
  3. 검찰의 기소 재량 및 법관의 재량까지도 확장하여 양형기준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야기할 우려가 있음.
  4. 집회·시위와 가장 연관성이 크게 발생하는 공무집행방해범죄군에 대해서만 가중인자로 포함하는 것은 다른 범죄와의 형평, 체계정합성에도 어긋남
  5. 법률로 규정되어야 할 기본권 제한 사항을 양형기준으로 대체 규정하는 사실상의 대체입법임.
  6. 익명으로 생활할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하여 인격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조항에 반하는 것임. 

 

▣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 수정안에 대한 참여연대 의견서 

 

 

수, 2016/10/0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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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계산기 두드리지 마라

'이익의 정치'가 아니라 '가치의 정치'를!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시민 혁명이 시작되다

 

시민 혁명의 불길이 치솟았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파국적인 국면으로 전개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 상황이었다. 문제는 기껏해야 버려진 태블릿 PC에 담긴 '의혹들'뿐일 수도 있었다. 거의 모든 정권들에서 으레 일어났던 권력형 비리의 일단이 드러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의 숱한 정치적 악행들에 고통받고 신음하던 민초들은 그 배후에 어처구니없는 권력 사유화가 있었다는 진실 앞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모욕감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거리로 나섰다. 단 하루도 박근혜 치하에서는 살 수 없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당장 박근혜를 감옥으로 보내라고도 소리쳤다. 수천수만 정도가 아니다. 수십만, 아니 백만, 이백만이 촛불을 들었고 또 들 것이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한 달을 계속해서 이어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타오를 것이다.

 

신화는 무너졌고 거짓의 장막은 벗겨졌다. 시민들은 우리 사회의 한 축을 그토록 오래 떠받들고 있던 박정희 신화가 어떤 참담한 폐허를 만들어냈는지를 절절하게 깨닫기 시작했다. 더불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정경 유착이라는 거대한 부패 사슬의 고리들을 너무도 생생하게 확인하고 있다. 시민들은 이제 무엇이 그토록 무겁게 우리네 삶을 짓눌러왔고 왜 자신들이 그토록 처절하게 아파하면서 살아와야 했는지를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그리하여 이제 주권자임을 새삼 자각한 우리 시민들은 '이게 나라냐?'라고 물으면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며 광장으로 뛰쳐나오고 있다. 새로운 민주공화국, 새로운 국가, 새로운 시대를 열자고 외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끝났다. 설사 박 대통령이 끝까지 하야하기를 거부하고 청와대 안에서 장기 농성을 벌인다 해도,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리고 중대한 범죄 피의자가 된 그이가 무언가 의미 있는 통치 행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광장은 계속 분노한 시민들로 넘쳐날 것이고, 특검이다 국정 조사다 탄핵이다 하면서 대통령 범죄 행각을 드러내고 그 권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질 것이다. 퇴진 거부는 국정 마비라는 국가적 불행을 의미할 뿐이며, 따라서 우리 모두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대통령을 끌어내려야 한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광장에서든 국회에서든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일에 몰두해야 한다.

 

회피할 수 없는 질문 : 박근혜 이후는?

 

그러나 이쯤에서 우리는 결코 회피할 수 없는 질문하고도 마주해야 한다. 바로 '박근혜 이후는?'이라는 질문 말이다. 돌이켜 보면 저 멀리 4.19 혁명도 구파와 신파로 갈린 민주당의 분열과 무능이 박정희의 쿠데타를 불러와 좌절해 버렸고, 지금의 6공화국을 낳은 1987년의 6.10 항쟁도 두 야당 지도자의 분열로 군부 독재를 계승한 세력이 정권을 이어가도록 했더랬다. 설사 박근혜 대통령이 사퇴하거나 탄핵당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런 환멸의 시간을 갖지 않아도 좋을 것인가? 지금 저 광장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에 대한 희망은 좌절 없이 그 결실을 제대로 맺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솔직히 우리는 자신할 수 없다. 지금은 새누리당 비박계나 <조선일보> 등 부패 수구 기득권 세력의 핵심 일부가 반(反)박근혜 전선에 동참하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근본적인 이익과 지향이 침해당한다고 여길 때 언제든지 등을 돌릴 것이다. 그들은 지금 더 근본적인 시민 혁명을 막기 위한 모종의 '수동 혁명'이라는 차원에서 함께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박근혜의 퇴진이 현실화되었을 때, 틀림없이 그들은 야권의 분열 상태라는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또 다시 권력을 거머쥐려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역사에서 보아 온 대로 우리의 야당들은 너무도 어리석고 무능해서, 저들의 수동 혁명 전략에 말려들고 말 가능성이 크다. 기우이기만 할까?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벌써부터 야권이 삐걱거리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민주당의 추미애 대표는 양자 영수 회담 제의 같은 말도 안 되는 헛발질을 했는데, 아마도 '자기 정치'를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당의 우상호 원내대표는 광장의 방식과 국회의 방식이 달라서 박근혜 퇴진 운동이라는 민심의 흐름에 동참할 수 없다고도 했는데, 틀림없이 얼토당토않은 표 계산한다고 그랬을 것이다. 최근에는 '정치 9단'이라는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조차 박근혜 대통령이 진짜로 덜컥 하야해 버릴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야권이 제대로 박근혜 이후를 헤쳐 갈 준비가 안 되었다고 여기는 탓이리라.

 

다행스럽게도 야권은 대선 주자들이 공동의 로드맵에 합의해내는 등 아직까지는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 야당들이 새로운 국가와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을 끝까지 따르면서 시민 혁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해낼 수 있을지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해서, 야권, 특히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치인들에게 당부 삼아 몇 마디 해두려 한다.

 

'이익의 정치'가 아니라 '가치의 정치'를

 

맞다. 광장의 방식과 국회의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확실히 광장의 시민적 도덕의 문법은 국회에서 작동하는 법과 정치의 문법과는 같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다름의 성격을 오해하면 안 된다. 광장이 하야를 외치면, 국회는 그 외침을 받아 탄핵 절차를 밟는 것, 바로 이런 것이 차이다.

 

어쩌면 사실은 바로 그 다름이야말로 당신들의 존재 이유다. 광장의 목소리를 법과 정치의 언어로 제대로 번역해서 부패 수구 기득권 세력의 '사회적 권력'을 제어하고 주권자들의 자유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일 말이다. 당신들은 그런 사회적 권력에 기대고 스스로 그 권력의 일부가 된 새누리당 정치인들과는 그 존재 기반을 다르게 갖고 있다. 당신들은 시민의 광장에서 민주주의와 시민적 연대의 확장을 지향하는 '시민적 권력'을 위임받은 대리인들일뿐이다. 당신들은 바로 그 위임의 대가로 국회의원 배지나 지도자라는 명예와 정치적 자원을 가지게 된 것이다. 당신들에겐 결코 그 시민적 권력의 지상 명령을 무시해도 좋을 권리가 없다.

 

설마 당신들의 유일한 정치적 목적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는 것이리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틀림없이 당신들에게도 절실하게 추구하는 정치적 '도(道)'가 있고 지향하는 가치가 있으리라 믿는다. 그 정치적 도나 가치의 이름으로 이 불의하고 병든 사회를 바로 잡는데 얼마간 기여해 보겠다는 나름의 포부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당신들이 내세우는 이념이나 정치적 명분이 그저 당신들의 알량한 권력을 위한 장식품일 뿐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당신들은 그 진정성을 증명해 보일 때가 되었다.

솔직히 우리 시민들은 당신들이 왜 따로 당을 만들어 갈라져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사실은 당신들이 말하는 혁신이니 영남 패권주의 거부니 하는 따위의 명분 이면에 숨어 있는 당신들의 날선 욕망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시민들은 그저 더 현저한 불의에 맞서라고 그것들에 눈감아 왔을 뿐이다. 당신들이 그 욕망을 숨기지 못하고 엉뚱한 방식으로 드러낼 때, 우리 시민들은 처절하게 당신들을 응징할 것이고 그 때 당신들은 역사의 범죄자가 되고 말 것이다.

 

잊지 마시라. 지금은 혁명적 상황이다. 시민들은 단순히 박근혜와는 다른 또 한 명의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나라, 새로운 정치를 원한다. 정말 민주공화국다운 민주공화국을 원한다. 지금의 앙시앵레짐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익을 누리기를 바라면서 사회적 권력의 눈치를 보고 스스로 그 권력의 일부가 되겠다고 이리저리 계산기를 두드리려 하지 마시라. 그 따위는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그 방향에는 당신들의 무덤이 있을 뿐이다.

 

'이익의 정치'가 아니라 '가치의 정치'를 하시라. 그리하여 새판을 짜겠다고 나서시라.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보겠다고 나서시라. 부패 수구 기득권 세력을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퇴장시키고, 새로운 나라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을 받아 민주적 정의와 시민적 연대의 토대 위에서 진짜 사람 사는 세상을 열 새로운 희망의 장을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를 가지시라.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시라.

 

지난 총선 때처럼 야권이 분열해도 이길 수 있다는 식의 억지는 부리지 마시라. 이 중차대한 역사적 국면에서 우리가 그런 무모한 도박을 감행할 여유는 없다. 승자독식이 아니라 모두가 이기고 모두가 나눠 가질 수 있는 길을 찾으시라. 가령 앞으로는 분열을 얼마든지 해도 되게끔 이른바 정당 명부식 비례 대표제로 선거법을 개정하겠다고 일치단결하시라. 필요하면 개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개헌은 시간도 걸리고 그 자체가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개헌 방침만 확인하고, 차기 대통령이 합의된 절차에 따라 그 작업을 완수하는 사명을 가지고 거기에만 집중해서 임기를 단축하는 그런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이런저런 정치 공학적 설계는 아니다. 지난 1987년에도 2012년에도 단지 결선 투표제 같은 것이 없어서 정권을 부패 수구 기득권 세력에게 내 준 것이 아니다. 문제는 언제나 당신들 정치인들의 비루한 욕망과 당신들이 지녔거나 앞으로 누리고 싶어하는 권력의 본성에 대한 자기 오해였다. 그리고 문제는 언제나, 마키아벨리의 용어를 빌리자면, 당신들 정치인들의 부족한 '비르투(virtue)'였다. 이것은 지도자가 갖춰야 할 탁월함이기도 하고 덕성이기도 하며 능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사자의 용맹'도 '여우의 교활함'도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시민적 권력에 대한 충성, 시민의 힘에 대한 믿음, 시민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리더십에서 성립한다. 언제나 시민의 편에 서고, 시민을 믿고, 시민과 함께하시라. 명심하시라. 지금은 시민 혁명의 시간임을.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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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수, 2016/11/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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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란 무엇일까요? 더 나은 민주주의란 무엇일까요? 희망제작소는, 토의민주주의 확산을 통해 더 나은 민주주의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시민과 함께 좋은 정치를 상상하고 이야기하는 자리인 ‘정치잇수다’를 진행했습니다. 9월 29일 열린 토론회와 10월 15일 진행된 워크숍 후기를 전합니다.

 

첫 번째 정치잇수다는 ‘2016년 지금 여기의 시민+정치’라는 주제의 토론회로 9월 29일 스페이스노아 커넥트홀에서 진행됐다. 이번 행사는 ‘시민이 바라는 좋은 정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에 앞서, 시민정치 관점에서 한국 정치의 문제를 진단하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시민의 정치참여를 가로막고 있는 현실의 구조적 제약을 살펴보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적 시도를 살펴보았다.

여론조사는 민의를 파악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

‘2016년 지금, 한국 시민정치 진단’에서 서복경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부소장은, 현행 공직선거법의 선거운동 기간, 방식, 인적 등을 제한하는 조항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법, 특히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특히 일상에서 시민이 자유롭게 정치에 대해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크게 제약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여론조사분석 전문가인 정한울 박사는, 여론조사는 민의를 파악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며 그 결과를 유권자의 결정과 같은 가치에 둘 수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선거 때마다 여론조사 결과의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는 것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의 의도적인 오용에 본질적인 책임이 있는 만큼 여론조사의 전문성 제고, 공직선거법 등 관련 제도의 개선은 물론 정치의 대표성과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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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더 나은 민주주의와 좋은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실험’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의 발표가 진행됐다. 정치벤처 ‘와글(WAGL, We-All-Govern Lab)’은 온라인 기반의 풀뿌리 시민정치 연구,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한 수평적 의사결정 모델 등 정치혁신을 촉진할 기술을 개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와글의 김정현 매니저는 “많은 사람이 정치 관련 대화를 나눌 때, ‘어떤 정치인이 문제고, 누구를 뽑아야 한다’ 등 선거 이야기를 주로 한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내가 말하는 것, 내 생각이 정치에 반영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많은 시민이 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것이다. 와글은 그런 방법, 기술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유쾌한 민주주의 플랫폼 개발자 조합 ‘빠흐띠’의 권오현 대표는 온라인 정치토론 플랫폼인 ‘빠띠(parti.xyz)’의 사례를 소개했다. 빠띠는 독립적인 온라인 공론장으로, 이슈별로 관심 있는 시민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변화의 방향을 논의하는 공간이다. 권 대표는 “한국에서 집회 정도는 나가야 정치에 참여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언론을 통해 정보를 인지하고 좋고 싫음을 표현하는 것도 일종의 정치 행위일 수 있다”며, 빠띠를 통해 시민들이 자유롭고 일상적으로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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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효율적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민주적인가 고민해야

희망제작소는, 풀뿌리민주주의 확산 등 최근의 사회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신과 불통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대의민주주의를 개선하려는 방법으로, 시민이 직접 나서 좋은 정치를 이야기하는 토의민주주의의 확산을 제시했다. 발표를 맡은 황현숙 연구원은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것이 아니다. 시민들이 모여 좋은 정치가 무엇인지 토론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라고 말하며 정치잇수다 기획의도를 밝혔다.

마지막은 토론의 시간으로 지정토론자의 발언과 참가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정치철학자 김만권 박사는 “선거, 투표의 결과는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승자와 패자만 있다. 그렇지만 투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반대하는지 정확하게 보여준다. 다른 방향을 보는 사람들이 같이 살고 있다는 것, 설득이 필요한 과정이다. 하나하나의 목소리를 소중히 하는 민주주의라면, 얼마나 효율적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민주적이냐를 고민해야 한다”며 새로운 시민 정치 참여의 평가 기준이 민주성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온라인선거운동 연구자 조희정 박사는 빠띠와 와글 등 새로운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좋은 의도를 가지고 활동하는 많은 사람, 단체가 있다. 다른 대안 정치 세력과의 연결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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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참가자는 민주주의와 참여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첫 번째 수다에서는 정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민’이라는 공감이 있었다. 여론조사 결과가 아니라 진짜 시민들의 생각과 참여에 주목해야 하며, 일상에서 자유롭게 정치를 이야기하고 참여할 수 있는 대화와 경험의 장,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 최고의 순간, 최악의 순간

10월 15일 희망제작소 희망모울에서 열린 두 번째 수다는 ‘여론조사로는 알 수 없는 우리들의 진짜 정치 이야기’라는 주제의 워크숍이었다. 시민들이 원하는 좋은 정치에 대한 생각을 직접 꺼내놓고 이야기하는 본격 정치 수다의 장으로 꾸며졌다.

첫 번째 세션의 주제는 ‘한국 정치 최고의 순간, 최악의 순간’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주요 정치적 사건을 담은 영상을 함께 시청하고,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을 살펴봄으로써 참가자들의 좋은 정치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는 순서였다. 최고의 순간으로는 시민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거나 선거 결과로 확인할 수 있었던 때가 꼽혔다. 참가자들은, 최근 치러진 20대 총선이 언론이나 여론조사 기관이 예측한 것과 전혀 다른 결과로 나온 것을 보고 민심의 무서움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악의 순간으로는 세월호 사건, IMF위기 등 국가나 정치 지도자들의 무책임함 또는 무능력이 드러난 사건 등이 꼽혔다.

정치에 관해 마음껏 ‘수다’ 떨기

두 번째 세션은 ‘시민이 이야기하는 새로운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이관후 희망제작소 연구자문위원의 강연이 진행됐다. 이관후 위원은 민주주의 그 자체가 좋은 정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며 민주주의 개념의 역사적 유래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인류 역사에서 인민이 다스리는 정치 체제, 민주주의를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 건 100년도 채 안 된다. 한국 역시 1987년 민주화 이후 아직 서른 살이 안 되었다. 아직 자리가 잘 잡히지 않은 것이다. 민주주의를 잘 한다고 좋은 정치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많은 이들이 나쁜 것에 합의하면 나쁜 정치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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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좋은 정치 실현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유로운 정치 수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각자 자신의 생업이 있는데 모두가 정치를 항상 고민하고 참여할 수는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된다. 숙의민주주의, 심의민주주의라고 번역되는 ‘deliberative democracy’는 사실 ‘수다민주주의’라고 해야 한다. deliberation은 어렵고 딱딱한 숙의, 토론이 아니라 수다를 의미한다. 제도를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과 습관을 바꾸는 거다. 정치에 관해 수다를 떠는 것이 일상이 되어야 한다.”

세 번째 세션은 우리들의 진짜 정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시민을 포함한 우리 사회 여러 정치 주체들 간의 연결 지도를 그리고, 좋은 정치를 위한 새로운 연결고리를 찾아보는 ‘선거와 선거 사이, 투표 빼고 정치 이야기하기’와 ‘모두의 정치를 위한 액션플랜 짜기’를 주제로 모둠 토론이 진행됐다.

‘선거와 선거 사이, 투표 빼고 정치 이야기하기’는, 선거 이후 시민들이 일상에서 정치에 어떻게 참여하는지 혹은 어떻게 참여하지 못하는지 지금 현재의 정치적 연결고리를 그려 본 후 우리가 원하는 정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시민, 국회, 대통령, 사법부, 정당, 시민사회단체, 언론, 이익단체 등 우리 사회의 공식적·비공식적 정치 주체 간 연결 고리를 그려가면서 토론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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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참가자가 언론과 시민단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언론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주고, 시민단체가 시민들의 의견을 알려야 하는데 그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시민단체가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기보다 그들만의 활동을 하는 것 같아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의견도 많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민’

다음으로, 앞서 나눈 이야기를 모으기 위해 모둠별로 주제를 정해 구체적인 참여 방법을 찾아보는 ‘모두의 정치를 위한 액션플랜 짜기’를 진행했다. 1조는 ‘지역의 도시계획 변경, 사업시설 예정 시 주민의 참여 보장 방법’, 3조는 ‘신혼부부에게 3천만 원 지원’이라는 주제로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이 참여할 방법을 토론했다. 2조는 ‘잘 먹고 잘살자’, 4조는 ‘숨어있는 90% 시민을 발견하고 함께하기’라는 주제로 좋은 정치를 위한 시민의 참여 방법을 토론했다. 1조와 3조의 발표에서는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들의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을 때 우리가 시도해볼 수 있는 SNS 캠페인, 지역 언론 기고, 사례집 작성, 집회, 시위 등 실질적인 활동 사례들이 제시되었다. 한 발표자가 지난 선거에서 낙선한 정치인들과 손잡고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에게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을 소개했을 때는 참가자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 정치 구조의 변화에 관심을 가진 2조와 4조에서는 시민들이 자기 주변의 공동체, 관련 단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우리 일상의 문제를 고민하고 함께 말할 수 있는 단체에 참여하고 다른 시민 동료들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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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은 토론을 시작할 때 투표 이외의 정치 참여 방법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로의 크고 작은 참여 경험을 공유하면서 시민이 바라는 좋은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유롭고 즐겁게 정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즐겁고 유익했다고 말했다. 또한 토론회와 워크숍 두 번의 모임을 통해 정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민’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시민의 목소리는 다양하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합리적으로 소통하고, 이를 통해 합의의 폭을 넓혀나가면 더 나은 민주주의, 좋은 정치가 가능해질 것이다.

글 : 황현숙 사회의제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사진 : 이우기 사진작가(첫 번째 수다), 오세인 사진작가(두 번째 수다)

화, 2016/11/08-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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