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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도피처로 간 한국인들의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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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도피처로 간 한국인들의 자살?

익명 (미확인) | 수, 2017/03/29- 07:51

뉴스타파는 지난 1월 초 한 30대 남자로부터 친형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어달라는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는 형이 죽기 몇 시간 전 한국으로 보냈다는 노트북과 외장하드, 그리고 수십여 장의 송금 영수증 등을 갖고 왔다. 제보자는 “이 자료들은 형이 진실을 파헤쳐 달라며 죽기 몇 시간 전 인편으로 한국에 부친 것”이라고 말했다.

형이 동생에게 남긴 자료는 방대했다. 모두 620기가바이트 분량. 각종 전화통화 녹음과 동영상, 회사 대외비 자료가 담겨 있었다.

제보자의 형이 일했던 회사는 오픈 블루. 공교롭게도 지난해 뉴스타파가 보도한 ‘조세도피처의 한국인들’에서 등장했던 회사 가운데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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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 ‘오픈블루’를 만든 설렁탕집 류순열 사장. 류 사장은 당시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안 난다. 그냥 동생들과 놀러 가서 어떤 서류에 사인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죽은 허재원 씨가 남긴 자료에는 설렁탕집 사장이 왜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웠고, 이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어떤 사업을 벌였는지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오픈블루라는 페이퍼 컴퍼니는 허 씨의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 비밀을 풀기 위해 취재진은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수도 자카르타의 한 고층 아파트. 이 아파트 29층에 살던 허 씨는 지난해 11월 아파트 옆 공사장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시신은 다리와 골반이 비틀어진 채 엎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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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씨의 사망진단서를 발급한 의사는 사망 원인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 사고 현장을 조사한 현지 경찰은 허 씨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단정했다.

경찰은 허 씨의 유서가 발견됐고, 이전에도 허 씨가 자살소동을 벌인 적이 있다며 타살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허 씨는 죽기 수개월 전부터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고, 사기 혐의로 현지 경찰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이처럼 극도의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게 현지 경찰의 분석이다.

그러나 허 씨의 동생은 느닷없는 형의 죽음에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사실 저는 형님을 알아볼 수 없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형님의 시신이 깨끗했고, 형님이 난간에서 떨어졌으면 지문검식을 해야 되는데, 지문검식도 이루어지지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형이 사망한 당시 CCTV가 작동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허 씨 동생의 말이다.

제가 현장에 도착을 했을 때가 형님 사건이 나시고 이틀 뒤였는데 현장에 갔을 때에는 CCTV가 작동하고 있었어요. 아파트 19층, 29층에서부터 거기까지 다 작동을 하고 있었는데 유독 저희 형님이 사건 당하시기 하루 전부터 사고를 당하신 그다음날까지 CCTV가 작동을 하지 않았단 말이지요.

취재진은 허 씨가 생전에 살던 아파트를 찾았다. 하지만 사건 현장에는 접근할 수 없었다. 계단의 철문은 굳게 닫혀 있고, 건물 관리 책임자는 경찰의 허가 없이 촬영을 허용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뿐 아니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취재진이 이동하는 곳마다 따라붙으며 촬영을 방해했다.

그때 취재진의 카메라에 이상한 점이 포착됐다.

아파트 3층에 검은색 대리석으로 마감한 테라스. 이 테라스 아래는 지하 주차장으로 연결된 통로가 있다. 이를 감안하면 테라스의 폭은 최소 3미터. 그런데 허 씨의 시신은 이 테라스외벽으로부터 다시 3, 4미터 정도 떨어진 공사장 바닥에서 발견됐다. 즉 허씨가 낙하하면서 도합 6, 7미터 정도를 수평 이동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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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서울대 의대 법의학 교수는 “추락사의 경우 대개 벽에서 2~3미터 내외에 시신이 위치한다”며 “일반인이 달려가는 반동을 이용해 뛰어 내려도 6미터를 이동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허씨가 떨어질 때 아파트 3층 테라스 벽에 부딪혀 튕겨 나갔을 경우라면 6미터 정도 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사건을 조사했던 인도네시아 경찰은 테라스 외벽에 시신이 부딪힌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1970년대 초 미국에서는 유명한 법의학 실험이 있었다. 고층 아파트 발코니에서 추락한 여인이 스스로 떨어졌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 의해 떠밀려 추락했는지를 규명하는 실험이었다. 법의학자들은 여인의 몸무게와 똑같은 인형을 제작해 반복 실험했다. 발을 헛디뎠을 때와 스스로 몸을 던졌을 때, 떠밀려 추락했을 때,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눠 실험했다. 발을 헛디뎠을 때 인형은 3.2미터, 뛰어내렸을 때는 4.3미터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시신이 위치했던 5미터에는 크게 못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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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경찰은 남편이 10만 달러의 보험금을 타기 위해 아내를 난간 밖으로 밀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아이리스 시거 사건이다.

아이리스 시거 사건의 실험결과에 비춰보면 허 씨의 죽음은 자살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허 씨의 시신은 아파트에서 6,7미터나 떨어져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허 씨의 죽음만큼이나 이상한 의문의 추락 사망 사고는 또 있었다.

허재원 씨가 죽은 5일 뒤 자카르타에 있는 글로라 붕까르노 경기장에서 또 한 명의 한국인이 죽은 채 발견됐다. 이 남자는 바로 죽은 허재원 씨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동료였다. 경찰은 4층 높이의 경기장 옥상에서 한국인 김 모 씨가 투신자살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부검은 하지 않았다. 영안실에서 김 씨의 시신을 목격했다는 한 교민은 김 씨의 온몸에 멍자국이 있었다고 말했다.

붕까르노 경기장은 내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해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고, 밤에는 아예 출입이 차단된다. 그런데 경찰은 김 씨가 혼자 몰래 경기장에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단순 자살 사건으로 결론 내렸다.

이상하게도 김 씨의 유가족 역시 진실 규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사인 조사를 위해 부검을 맡기기는커녕 김 씨의 시신을 서둘러 화장했다. 뉴스타파의 취재도 거부했다.

취재진이 김 씨의 사망 당시의 사진을 입수해 확인해보니 김 씨의 턱 밑에 멍 자국이 보였다. 법의학 전문가는 턱 밑의 상처는 추락으로 인해 발생한 게 아니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김씨의 죽은 모습이다. 사진 속 김씨의 양 손은 가슴에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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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교수는 “추락사일 경우 대부분 즉사를 하는데 이 경우 온몸에 힘이 풀린다”며 “죽기 전 힘을 줘 손을 모은 자세는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한 장의 사진만으로는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인도네시아 경찰처럼 쉽게 자살로 단정하기도 힘들다. 분명한 것은 김 씨가 죽기 전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는 점이다. 김씨는 허씨가 죽은 뒤 한국에 있는 허 씨의 동생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녹음을 부탁했다.

그가 남긴 녹음은 자신이 곧 어딘가로 옮겨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부검을 통해 허 씨가 자살했는지 아니면 타살됐는지 확인하고자 했으나 그럴 상황이 안됐고,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를 보면 자신이 허 씨를 죽였다는 것으로 결론 나고 있어 억울하다고 했다.

김 씨가 숨지기 전, 김 씨를 직접 만났던 허 씨의 동생은 실제로 김 씨가 인도네시아 현지인들로부터 반 감금상태에서 감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허 씨의 동생은 눈시울이 벌개진 김 씨로부터 “나는 어디론가 옮겨질 것 같다. 그리고 죽음을 당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같은 유령회사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2명이 불과 5일 간격으로 사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도네시아 경찰의 말대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까?

취재진은 허씨가 남긴 녹음에서 한 가지 단서를 찾았다.

허 씨는 죽기 하루 전 PT CKA의 실질적 오너는 자신이며, 모든 권한은 김 모 씨에게 넘긴다고 했다. 허재원 씨가 죽기 하루 전 육성 녹음을 통해 자신의 소유라고 밝힌 PT CKA의 광산은 자카르타 서쪽의 한 석회광산이다. PT CKA는 이 광산의 지분 51%를 소유한 페이퍼 컴퍼니다.

PT CKA가 소유한 석회광산의 추정 매장량은 무려 1억7천만 톤. 국내 한 회계법인은 2020년 이후 이 광산에서 매년 300억 원이 넘는 영업이익이 날 것으로 평가했다. 한마디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말이다.

허 씨는 육성 녹음을 통해 광산의 명목상 주주를 현지인으로 만들어놨지만, 실소유주는 자신이고, 그 소유권을 김 씨에게 넘긴다고 말했다. 실제로 페이퍼 컴퍼니 PT CKA의 주주 명부를 살펴보니 허 씨의 생전 증언대로 주주 4명 중 3명이 허 씨 회사의 현지 직원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외국인들의 광산 소유를 제한하는 인도네시아 법망을 피하기 위해 직원들의 이름을 빌려 투자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허 씨로부터 소유권을 이전받은 김 씨도 허 씨가 사망한 지 5일 만에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매장량 1억7천만 톤의 석회광산은 대체 누구에게 넘어간 걸까?

취재진은 인도네시아에서 자신이 석회광산의 소유권을 넘겨받았다고 주장하는 한국인을 만날 수 있었다. 리마스 퉁갈이라는 회사의 사업 파트너다. 그는 자신이 소속된 리마스 퉁갈이 파드마 등 허 씨 회사 직원 3명이 갖고 있던 지분을 통째로 넘겨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진술은 허 씨가 죽기 하루 전 남겨둔 육성녹음과는 상반된다. 죽은 허 씨가 실제 소유주는 자신이라며 받아놓은 사실 확인서의 내용과도 배치된다. 그러나 광산의 실소유주로 보이는 허 씨와 김 씨가 모두 죽은 뒤여서 이 광산이 넘어가는 걸 법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

허 씨와 김 씨의 죽음으로부터 누가 부당한 수혜를 봤는지 확정할 증거는 아직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조단위의 가치를 지녔다는 석회광산을, 유령회사를 통해 소유하면서 일확천금을 노렸던 사람들은 허망하게 죽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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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7시간의 행적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소명하라는 헌법재판소의 요구(12월 22일 1차 준비기일)에 대해 대통령 측 법률대리인 이중환 변호사는 “대통령이 (그날 일을)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놓았다.

12월 30일 헌재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 3차 준비기일에 대통령 측 대리인으로 참석한 이중환 변호사는 “당시 여러가지 사건에 대한 결재를 많이 했고 바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기억을 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최대한 기억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통령이 정확하게 기억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답변은 헌재가 대통령에게 직접 해명을 요구한 지 일주일만에 나온 것으로 큰 논란이 예상 된다.

이중환 변호사는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자료 제출을 언제까지 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2017년 1월 5일 2차 변론기일 이전에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뉴스타파는 이중환 변호사에게 청와대 홈페이지 ‘오보 바로잡기’에 기재된 대통령의 행적 가운데, 새로 추가되거나 수정되는 것이 있느냐고 질문했지만 그는 “재판 과정에서 주장하고 입증하겠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12월 22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 1차 준비기일에서 헌재는 “세월호 참사가 2년이 지났지만 워낙 특별한 날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날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할 수 있다. 피청구인(박근혜 대통령)도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본다”며 “문제의 7시간 동안 피청구인이 청와대 어느 곳에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보았는지, 공적인 부분과 사적인 부분들을 시각 별로 밝혀 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 측 대리인단 9명은 12월 29일 오전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1시간 30분 가량 첫 만나 세월호 7시간 당시 행적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 재판부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 당사자에 대한 신문을 요청한 국회 측 요구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출석하지 않게 됐다. 헌재는 그 이유로 당사자 신문은 민사소송 절차에 따르는 것으로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는 탄핵심판에는 절차상 맞지 않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 증인 채택이 확정된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의 출석을 2017년 1월 5일이 아닌 10일 3차 변론기일로 미뤘다. 법원의 재판이 미리 예정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2차 변론 기일인 2017년 1월 5일에는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과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윤전추 행정관과 이영선 행정관이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의 5가지 쟁점 중 비선조직에 따른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에 관련된 쟁점이 우선 다뤄질 전망이다.

헌재는 이와 함께 2차 준비기일에서 대통령 측 대리인이 요청한 21개 기관에 대한 사실조회 가운데 7개 기관에 대한 사실조회만 받아들였다.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문화체육관광부, 미래창조과학부, 법무부, 관세청, 세계일보 등이다. 재판부는 나머지 14개 기관에 대한 사실조회 요청은 사실 요청이 아닌 의견을 묻는 것으로 판단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취재 최윤원, 연다혜
촬영 김남범, 신영철

금, 2016/12/3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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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됨으로써 이제 공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에게로 넘어갔다. 헌재 안팎에서는 탄핵은 인용될 것이며,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퇴임하는 내년 3월 13일 이전에 결정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만난 법률전문가와 전 헌법재판관들은 모두 헌재가 탄핵안을 인용, 즉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박근혜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반이 중대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뇌물수수가 인정되면 탄핵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이번에는 탄핵 찬반에 대한 재판관들 개개인의 의견을 공개해야 하는 것도 탄핵 결정을 점치게 하는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

재판관들은 소추의결서에 적시된 내용 하나하나를 검토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 판단해야 하는데 관건은 검찰과 특검, 법원의 수사와 재판 기록이 얼마나 빨리 헌재에 도착하느냐 달려 있다. 노무현 탄핵 심판은 결정까지 63일이 걸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사실 관계를 모두 인정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과 관련된 의혹들을 모두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구두변론에서 치열한 다툼이 예상되며, 대통령의 변론권을 어디까지 보장할 지도 재판에 걸리는 시간에서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헌재 관계자들은 내년 1월 31일 퇴임하는 박한철 소장 임기 내에 재판이 끝나는 것은 물리적으로 힘들다고 보고 있다. 대신 이후 소장을 대행하게 되는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 13일 이전에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정미 재판관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명해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 조기 퇴진하기 보다는 탄핵 절차를 택했다. 때문에 심리과정의 법리 다툼이나
현 헌법재판관 구성 측면에서 뭔가 기대하는 게 있지 않느냐는 추즉도 나오고 있다. 노무현 탄핵 심판 당시 9명 재판관 중에 탄핵에 찬성한 재판관은 3명이었으며 이 중 두명은 탄핵을 추진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추천한 재판관이었다. 현재 9명의 헌법재판관 중에 안창호 재판관은 새누리당이,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추천하거나 지명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탄핵심판에서 이들 3명의 입장에 관심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금, 2016/12/0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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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 실소유 의심을 받고 있는 차량용 시트 제조회사 다스. 이 회사가 2011년 BBK 전 대표 김경준 씨로부터 140억 원을 받아간 사건이 논란거리다. 검찰도 수사에 나섰다. 핵심 의혹은 다스 140억 원을 받아간 것이 정당한 것이었는지, 당시 이명박 정부가 이 과정에 부당한 개입을 했는지 여부다. ‘다스 140억 원 송금’ 문제로만 알려진 이 사건의 배후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일단 한국과 미국, 그리고 스위스로 이어진 14년 동안의 ‘소송 전쟁’ 이 이면에 있다. 각종 의혹까지 더하면 거의 미로 수준이다. 최대한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한국-미국-스위스로 이어진 14년 소송

2001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 BBK, LKe뱅크 같은 회사들을 공동운영했던 김경준은 옵셔널벤처스(이하 옵셔널)라는 회사를 이용해 370억 원이 넘는 돈을 횡령해 미국을 거쳐 스위스로 보냈다. 그리고 그해 12월 김경준은 가족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도피했다. 그러자 BBK에 190억 원을 투자했던 다스가 투자금 중 140억 원을 돌려달라며 김경준 남매 등을 상대로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다. 김경준의 옵셔널 횡령금이 원래 자기들 돈이라는 주장이었다. 이후 시간을 두고 횡령을 당한 옵셔널도 미국에서 소송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진행된 소송은 두 갈래로 진행됐다. 하나는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 김경준 남매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 미국 연방정부가 나선 몰수청구 사건이고, 또 하나는 다스와 옵셔널이 개별적으로 김경준 남매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횡령금 반환소송)이었다. 그러나 2007년 미국 정부가 김 씨 남매를 상대로 몰수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뒤, 피해를 주장하던 다스와 옵셔널은 각자 길을 달리했다. 다스는 사실상 미국 소송을 포기하고 돈이 숨겨진 스위스로 달려갔다. 반면 옵셔널은 미국에서 진행되던 민사소송에 집중했다.

다스 140억 원 송금 사건은 미국과 스위스에서 이런 소송들이 진행되던 중에 벌어진 느닷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다스가 140억 원을 받아가기 직전 옵셔널이 미국 소송에서 승리, 김경준으로부터 371억 원을 반환받을 권리를 획득했다는 점이다. 반면 다스는 스위스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민·형사고소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소송에서 승소한 옵셔널이 가져가야 할 돈을 패소한 다스가 받아 갔다는 말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다.

뉴스타파는 지난 두 달여 동안 한국과 미국을 넘나드는 취재를 통해, 위에서 설명한 각종 소송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소송 자료와 판결문들을 입수했다. 또 사건의 당사자인 김경준 씨, 지난 14년간 다스와 김경준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 온 옵셔널 측 메리리 변호사를 미국 LA에서 만나 장시간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취재진은 다스 140억 원 송금 의혹을 풀어줄 결정적 장면 3개를 확인했다.

결정적 장면 1. 스위스로 간 다스… 그리고 거짓말

다스가 김경준을 상대로 140억 원을 받아내기 위해 스위스로 간 것은 2007년 3월이다. 같은 달 미국 연방정부가 김씨 일가를 상대로 한 재산몰수 청구소송에서 패소하자, 곧장 김경준의 돈이 있는 스위스로 달려갔다. 그러나 다스의 스위스 소송은 쉽지 않았다. 스위스 연방 검찰은 다스가 낸 첫 형사고소(김경준 남매 재산동결 요청이 포함됨)를 기각했다. 그러나 다스는 포기하지 않았고, 스위스 제네바 주 검찰에 같은 고소를 다시 제기했다. 제네바 주 검찰은 다스의 고소를 받아들여 김경준 남매의 자산을 동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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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2007년 당시 다스가 스위스에 낸 고소장 2개를 확보해 분석했다. 먼저 두 문서에서 모두 다스는 자신이 김경준 남매 횡령 사건의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 확인됐다. 그러나 미국에서 피해자로 공동소송 계약까지 맺었던 옵셔널에 대한 언급은 고소장 어디에도 없었다. 문서만으로 보면, 다스는 김경준 횡령 사건의 유일한 피해자이자 채권자처럼 보였다. 다스의 첫 거짓말이었다. 옵셔널 측 메리리 변호사는 이 부분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다스가 스위스 검찰을 속였다는 것이다.

다스는 한 번도 김경준 측을 상대로 피해 사실을 인정받은 적이 없어요. 그럼에도 옵셔널의 입장을 마치 자기들 것처럼 만들어 스위스 검찰을 움직였어요. 그리고 결국은 비밀합의를 맺고 김경준 재산을 가져갔죠. 다스는 옵셔널의 가면을 쓰고 스위스에서 김경준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한 겁니다.

메리 리 변호사 / 옵셔널벤처스 측 변호사

앞서 설명대로, 다스가 제네바에서 김경준 측을 고소한 것은 2007년 3월이다. 그리고 다스가 김경준 씨에게서 140억 원을 받아간 것은 2011년 2월이었다. 그럼 이들은 언제, 어떻게 합의를 한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2012년 5월 김경준의 누나이자 옵셔널 횡령사건에 관여한(미국 연방법원에서 김경준과 에리카 김 등은 횡령죄가 최종 확정됨) 에리카 김이 미국 법원에 낸 진술서에 있다. 3장짜리 진술서에는 다스와 김경준이 “2011년 1~2월경 합의를 했다”고 적혀 있다. 3년 가까이 싸우다 갑자기 합의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대체 이들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취재진은 14년 동안의 소송기록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판결문 두 개를 찾아냈다. 다스와 김경준 간 비밀합의가 있기 직전, 미국 연방 항소법원에서 나온 판결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판결 모두 다스와 김경준에게는 절대 불리하고, 옵셔널에는 유리한 것이었다.

절박해진 다스-김경준이 택한 길은 비밀합의

2010년 12월 15일, 미국 연방 항소법원은 미국과 스위스에 있는 김경준 남매의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다스와 옵셔널, 그리고 김경준이 소송을 통해 가리라고 판결한다. 2006년 김경준 남매가 승소했던 1심 판결이 뒤집힌 것이다. 2011년 1월 4일에는 역시 미국 연방 항소법원이 김경준 남매 등에 대한 횡령죄를 최종 확정하면서, 옵셔널에 횡령금 371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 역시 2008년 김경준이 승소한 1심 판결을 뒤집는 결과였다.

다스와 김경준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두 판결이 집행된다면 미국과 스위스에 있던 김경준 재산은 모두 옵셔널 손에 들어갈 상황이었다. 다스와 김경준의 비밀합의 이면에는 이런 절박한 처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옵셔널 측 메리리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 에리카 김 미국 연방법원 진술서

▲ 에리카 김 미국 연방법원 진술서

다스-김경준 입장에서는 최악의 판결이었을 거에요. 몰수청구 사건에서 연방법원이 3자간에 소유권을 다투라고 했지만, 이미 371억 원의 판결채권을 받아놓은 옵셔널을 상대로 다스와 김경준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죠. 결국 절박한 상황이 된 양측이 옵셔널을 배제한 채 비밀합의를 맺고 이 문제를 끝냈다고 생각해요.

메리 리 / 옵셔널벤처스 측 변호사

다스 140억 원 송금이 있기 전, 이미 김경준 남매의 스위스 재산에 대해 미국 법원은 동결을 명령한 상태였다. 따라서 누구도 법원의 허락이 없이는 함부로 계좌에서 돈을 빼거나 넣지 못하는 그런 상태였다. 그리고 계좌동결 조치에 대해선 관련 당사자들도 아무 이견이 없었다. 느닷없는 비밀합의로 돈을 주고받은 다스와 김경준도 마찬가지였다. 140억 원 송금이 있기 네 달 전인 2010년 10월까지도 다스 측 변호사는 미국 연방법원에서 판사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스위스 돈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나요?) 돈이 있죠. 몰수대상이 됐던 (김경준 측의) 자산은 여전히 미국 연방법원의 관할권 내에 남아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회복(횡령금 회수)하려면 그것(연방법원의 판단)밖에는 길이 없죠.

다스 측 변호사 / 2010년 미국 연방법원 속기록

“누나 처넣겠다고 협박, 가족 취업도 방해”

그러나 위 진술이 있고 정확히 넉 달 뒤, 다스는 김경준과 합의해 돈을 빼 간 것이다. 뉴스타파는 지난 1월 3일 미국 LA에서 진행된 김경준 씨와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된 질문을 여러 개 던졌다. 그러나 그는 “다스 140억 원 송금과 옵셔널 승소 판결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스와의 협상은 수년 전부터 진행됐고, 공교롭게도 옵셔널벤처스의 승소 판결 즈음에 합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 왜 승소한 옵셔널이 아닌 패소한 다스와 협상을 했나요?

사실이 아닙니다.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 어떤 부분이 잘못됐나요?

다스와의 협상은 옵셔널과 관련이 없습니다. 다스와는 수년 전부터 협상을 해 왔습니다.

– 옵셔널과는 합의를 시도하지 않았습니까?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1심에서 이겼기 때문에, 그리고 옵셔널의 요구금액이 너무 컸습니다.

-다스에게도 이기지 않았습니까. 다스와 옵셔널 같은 조건이었는데. 혹시 옵셔널은 만만한 상대라서 협상 가치를 못 느낀 게 아닌가요?

난 협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협상을 해요. 다스와 협상을 한 이유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 측으로부터의 지속적인 협박, 천문학적인 소송비용 때문입니다. 이명박 측은 누나(에리카 김)를 쳐 넣겠다고 했고, 실제로 가족의 취업을 방해했어요. 협박한 사람은 다스 변호사였어요.

김경준 / 전 BBK 대표, 2018년 1월 3일 미국 LA에서 인터뷰

결정적 장면 2. 발뺌, 거짓말…미국 법정서 벌어진 ‘막장 청문회’

2011년 5월 2일 미국 LA에 있는 미국 연방법원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이 벌어졌다. 옵셔널 횡령 사건을 2004년부터 꾸준히 맡아온 콜린스 판사가 이 사건 관련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청문회였다. 김경준, 다스 그리고 옵셔널 측 변호사 외에도 연방 검사까지 불려나왔다. 콜린스 판사는 다스가 김경준 측과 비밀합의를 맺고 소송을 취하하는 대신 스위스에 있던 김경준 자금 140억 원을 가져간 사실에 분노했다. 다스와 김경준 측 변호사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발뺌하기 바빴고, 연방 검사는 어찌할 줄 몰라 허둥댔다. 청문회를 지켜봤던 옵셔널 측 메리리 변호사는 이렇게 회상했다.

‘너희들(관련 변호사들) 다 와’, ‘지금부터 너희들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내가 물어볼게’,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숨기면 형사 기소를 각오해’, 이런 말을 판사가 계속했어요, 호통을 치면서. 그 자리에는 연방검사까지 불러 나왔어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놀라서 달려왔죠. 콜린스 판사는 책상을 뒤집어엎을 정도로 화가 나 있었어요. 판사라는 직책 때문에 참으면서, 정말 끙끙거리면서, 감정을 절제하면서 말을 하는 상황이었죠.

메리 리 / 옵셔널 측 변호사

앞서 설명한 대로, 다스와 김경준 간의 돈거래가 있기 전인 2007년 초 미국 연방법원은 김경준 남매의 미국과 스위스 재산을 동결한 상태였다. 판사 입장에서는 자신이 내린 결정을 소송 당사자들이 아무런 상의 없이 무시한 셈이니 화가 날 만도 했다. 뉴스타파는 메리리 변호사가 말한 당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청문회 속기록을 찾아봤다. 다음은 속기록 내용 중 일부다.

▲ 스위스 제네바 주 검찰의 결정문

▲ 스위스 제네바 주 검찰의 결정문

판사 : 오늘은 판결을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께 질문할 것이 너무 많네요. 김경준이 다스에 140억 원을 송금한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먼저 다스 변호인에게 묻겠습니다. 김경준과 다스 간에 합의가 있었던 것 같은데 맞나요?
다스 변호인 A :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내용을 잘 모릅니다. 저보다는 김경준 씨 변호인이 답변하는 게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판사 : 왜 그렇죠? 당신도 이 합의에 참여했나요?
다스 변호사 A : 저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판사 : 그럼 합의에 참여한 다스 측 변호사는 누굽니까. 앞으로 나와 보세요. 왜 140억 원 송금 사실을 나에게 알리지 않았나요?
다스 변호사 B : 그래야 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판사: 그래요? 그럼 김경준 측 변호사 앞으로 나오세요. 당신은 이 합의에서 김경준을 대리했나요?
김경준 변호사 : 아닙니다.
판사 : 다스 측 변호사는 당신에게 물어보라고 하는데요?
김경준 변호인 : 저는 합의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만 참여했습니다.

2011년 5월 2일 미국연방법원 청문회

화가 난 판사가 “다스가 가져간 140억 원을 다시 미국 법원에 가져다 놓으라”고 요구하지만, 다스 측 변호사는 이를 거부했다. 참다못한 판사는 연방 검사를 불러 해결책을 찾으라고 종용했다.

판사 : 다스 측 변호사에게 요점만 묻겠습니다. 우리 법원은 스위스 계좌가 동결된 채 유지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니 소유권을 다투는 소송이 모두 끝날 때까지 140억 원을 다시 법원에 맡기는 게 어떤 지 다스 측에 물어보세요.
다스 변호사 : 다스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다스는 스위스 법정에서 성공적으로 승소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그 제안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판사 : 검사 나와 보세요. 당신 생각에는 이 시점에서 미국 연방법원이 자금을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나요?
연방검사 : 글쎄요. 만약 법원이 정부로 하여금 이 건을 조사하도록 명령한다면, 정부는 연방판사가 발부한 다른 모든 명령과 마찬가지로 사건조사에 착수할 겁니다.
판사 : 옵셔널벤처스 측은 혹시 법원에 요청할 것이 있나요?
옵셔널 변호사 : 법원이 자금을 반환하도록 명령해야 한다고 봅니다. 알렉산드리아 계좌에 있는 자금이 현재 어떻게 되었는지, 어떤 수익을 냈는지에 대한 내역서를 받아내야 합니다.

2011년 5월 2일 미국연방법원 청문회

이 청문회 모습은 당시 다스와 김경준 간의 돈거래가 미국 연방법원 입장에서는 사실상 범죄행위나 다름없음을 보여준다. 2007년 미국 연방법원이 김경준 일가의 재산을 동결하고 이후 김경준과 다스 측이 단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다스와 김경준 측이 모두 미국 연방법원의 관할권을 침해, 혹은 기만한 행위로밖에 볼 수 없는 행동이었다.

결정적 장면 3. 스위스 검찰은 왜 140억 송금을 지시했나

– 2011년 2월 다스에 보낸 140억 원은 줘야 할 돈이었나요? 아니면 안 줘도 되는 돈이었나요?

엄밀하게 따지면 안 줘도 되는 돈을 준 겁니다. 같이 사업을 하다가 망했는데, 그 책임을 내가 다 져야 한다는 겁니다.

김경준 / 전 BBK 대표, 2018년 1월 3일 미국 LA에서 인터뷰

다스가 김경준으로부터 140억 원을 받아가도록 만든 스위스 제네바 주 검찰의 결정문. 취재진은 다스가 미국 법원에 낸 각종 서면자료 더미에서 결정문을 찾아냈다. 스위스 제네바 주 검찰과 다스, 그리고 김경준 측 변호인이 서명한 문서였다. 문서에는 “다스가 김경준 측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취하해 계좌동결을 해제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심지어 제네바 검찰은 김경준 소유기업인 알렉산드리아 인베스트먼트 계좌가 있던 크레딧 스위스 은행에 “140억 원 송금을 다스 계좌로 송금하라”고 명령하는 내용도 확인됐다. 이례적인 조치였다. 옵셔널 측 메리리 변호사는 검찰이 은행에 직접 송금을 지시하는 조치를 내린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결정문을 보면, 스위스 검찰은 구체적 명령을 해줘요. 압류됐던 계좌를 즉시 풀고 다스로 돈을 내주라고, 크레딧 스위스한테 명령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검사가 은행에 이런 명령을 할 수가 있냐는 거죠. 계좌동결을 해제하는 명령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어떻게 은행에 구체적인 송금 명령까지 검사가 해요. 문제가 있는 거죠.

메리 리 / 옵셔널벤처스 측 변호사

2011년 다스가 김경준 측으로부터 비밀합의를 통해 140억 원을 가져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유독 다스만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돈을 받아낸 건 맞는데 이면합의 같은 건 없었다는 주장이다. 확인이 가능한 다스의 가장 최근 입장은 이렇다.

다스의 140억 원 환수는 미국소송과 별개로 스위스 검찰의 결정에 의거 강제 이체된 것이며,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김경준과의 거래설은 허위사실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 2017년 9월

그러나 합의의 또 다른 당사자인 김경준 씨는 이미 여러 차례 다스와의 이면합의를 인정한 상태다. 지난 1월 3일 미국 LA에서 가진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도 김경준 씨는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다만 거래의 조건, 즉 다스와 맺은 이면합의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결정문을 설명하고 있는 메리 리 옵셔널벤처스 측 변호사

▲ 결정문을 설명하고 있는 메리 리 옵셔널벤처스 측 변호사

그럼 다스는 대체 왜 이런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합의했다는 사실조차 숨겨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다스가 140억 원을 받아갈 당시는 이명박 정권 기간이었다. 그리고 이미 다스 140억 원 송금사건에 당시 이명박 정부 인사가 관련된 사실이 확인된 상태다.

다스의 변호사였으며 LA 총영사를 지낸 김재수 씨가 총영사 재직시절 사건에 개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명박 정권이 정치 권력을 이용해 이런 불법적인 돈거래를 사실상 성사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뉴스타파는 이 의문투성이 송금과 관련된 입장을 듣기 위해 다스 본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

마지막 의문, 김경준의 스위스 계좌 잔고

다스 140억 원 송금사건과 관련해 마지막 남은 궁금증은 과연 김경준 남매의 스위스 계좌 2개(알렉산드리아 인베스트먼트, 에리카 김)에 얼마나 많은 돈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의문은 ‘스위스 계좌에 140억 원 이상이 있었고 김경준 측과 다스가 옵셔널 몰래 이 돈을 나눠 가졌다’는 의혹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스가 2007년 3월 스위스 연방 검찰에 낸 첫 고소장에는 이 의문을 풀어줄 단서가 남아 있었다. 고소장에는 김경준 측이 스위스로 빼돌린 자금의 규모가 1530만 달러가 넘는다고 적혀 있다. 또 에리카 김이 90만 달러를 스위스로 보내려고 시도했다는 대목도 들어 있다. FBI의 수사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 다스의 주장이다. 그러나 김경준 씨는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스위스에 있던 돈은 140억 원이 전부라는 것이다.

-(스위스)알렉산드리아 계좌에는 돈이 얼마나 있었나요?

그 정도(140억 원) 밖에 없었어요.

– 계좌가 두 개인데. 에리카 김 명의 계좌에는 얼마나 있었나요.

아무 것도 없었어요.

김경준 / 전 BBK 대표, 2018년 1월 3일 미국 LA에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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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확인 결과, 다스 140억 원 송금은 거짓말과 왜곡, 그리고 갈취로 이뤄졌다. 돈과 권력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 반복적으로 벌어졌고, 그 결과 횡령한 돈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다. 다스 140억 원 송금은 현재 검찰 수사대상에 올라 있다. 국민들은 다스가 왜, 무슨 자격으로 140억 원을 가져갔는지, 그리고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에 대한 철저한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진실 규명 기회를 놓친 검찰이 이번엔 의혹을 풀어줄 수 있을지, 국민들은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취재 최문호 한상진 송원근 강민수 임보영 김지윤
촬영 최형석
편집 윤석민
CG 정동우

목, 2018/01/1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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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대통령의 자진 사임이 불가능해진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조대현 전 헌법재판관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현행 국회법상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 임명권자는 피소추자의 사직원을 접수하거나 해임할 수 없다(국회법 134조)고 규정돼 있어 대통령의 자진 퇴진은 불가능해지며 오직 헌법재판소의 결정만 남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의 시기와 방법을 국회에 떠넘긴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국회의 결정이 효력도 없는 만큼 국가의 안정을 위해서는 대통령 스스로 국민 앞에서 조속히 퇴진의사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서는 헌재가 탄핵소추안을 인용할 것으로 내다 봤다. 탄핵은 피소추자 행위의 위헌이나 위법 여부와 탄핵의 필요성이 조건인데 박근혜 대통령의 직권남용이나 뇌물 등은 탄핵 사유에 해당될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탄핵을 찬성하는 만큼 재판관들도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다만 국회가 탄핵소추안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면 헌재의 증거조사에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되는 만큼 탄핵소추안에는 탄핵 사유로 확실한 내용들을 선별해서 포함시켜야 헌재의 결정이 빨리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목, 2016/12/0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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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박근혜 정권 10년 동안 국가정보원을 거쳐간 원장 5명 가운데 김성호 전 원장을 제외한 원세훈,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등 4명의 전 원장이 사법적 단죄를 받게 됐다. 1961년 창설된 중앙정보부에 뿌리를 둔 국정원의 56년 역사상 가장 치욕스런 10년으로 기록될 만 하다. 이는 한 국가의 정보기관을 국가가 아닌 권력자의 사유물로 만든 이명박, 박근혜 두 대통령의 책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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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의 시작…이명박

5백만표 차이라는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민이 기대한 것은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마인드, 그리고 경제를 되살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 인수위를 꾸린 뒤 발표된 각종 내각 인선 작업은 국민을 실망하게 만들었다. 발표하는 국무위원 인사마다 땅을 사랑해서 땅을 샀다는 사람을 비롯한 강부자(강남부자)와 고려대와 소망교회, 영남인사를 뜻하는 고소영 인사로 일관했다.

이명박 정부의 인사는 MB의 형 이상득 씨와 박영준 씨가 좌지우지했다. 같은 여당 내에서부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2008년 3월23일 이상득 전 의원의 총선 불출마와 국정관여 금지를 요구하는 한나라당 의원 55명의 기자회견이었다.

그러자 박영준 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과 국정원 파견 직원 이창화 전 행정관을 중심으로 한 사찰이 시작됐다. 사찰 대상은 정두언, 정태근 의원 등 이상득 의원 반대세력과 박근혜 의원과 김성호 국정원장 등 견제해야할 세력들이었다.

2008년 5월부터 시작돼 6월에 최고조에 달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로 MB에 대한 실망이 전 국민적으로 터져 나오게 됐다. MB의 미국 방문을 하루 앞두고 나온 졸속적인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 소식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계기가 됐다.

이에 대한 MB의 대응은 민간인 사찰이었다.

촛불집회가 마무리될 즈음인 2008년 7월 총리실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익히 아는 민간인 사찰 사건을 주도한 곳이다. 이제 사찰대상은 일부 정치인이 아니라 일반시민에까지 확대된다. KB한마음 대표 김종익 씨를 비롯해 각 언론사와 노조, 시민단체가 무차별적으로 사찰을 당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원세훈 행정자치부 장관이 국정원장에 취임하면서 국정원의 업무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국정원의 주요 관심사가 보수세력 옹호, 종북좌파 척결이 된 것이다.

유인태 전 민주당 의원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문제가 그렇게 큰 문제도 아닌데 촛불집회에 저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을 보면 뭔가 배후가 있을 것이다. 그 배후를 친노와 진보좌파로 인식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은 “MB는 생각의 준거 틀이 80년대에 가 있는 사람이다. 권위적이고 통제하려고 하고. 일을 잘 하려는 생각을 안 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누르려는 생각을 하니 문제였다”고 말한다.

촛불집회 후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설치돼 민간인 사찰이 확대됐고, 공직윤리지원관실 활동이 멈춘 뒤에는 국정원의 심리전 활동이 강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촛불집회 후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설치돼 민간인 사찰이 확대됐고, 공직윤리지원관실 활동이 멈춘 뒤에는 국정원의 심리전 활동이 강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계승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사건은 2010년 7월 초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수사가 본격화된다. 그 역할의 적임자는 원세훈이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와해됐을 바로 그 시점(2008년 7월 9일), 원세훈 국정원장은 ‘심리전단 현안 대응역량 확충 방안’이란 문건에서 “VIP(대통령) 집권 후반기 안정적 국정운영의 원활한 지원 등을 위해서는 심리전 조직역량 확충이 시급하다”며 국정원에 대응을 지시한다.

반대세력을 축출하기 위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이 국정원의 전방위적인 대응으로 변모한 것이다.

극우매체를 지원하고 MB 반대 세력에 대한 관제 데모를 공작하던 국정원 활동은 2012년 대선에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MB 정권은 국방부 사이버사령부를 통해서도 대선 여론 개입활동을 펼치게 된다.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한 박근혜 정권은 MB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수사를 제대로 파헤치기보다는 은폐 축소하고 덮는데 주력했다. 검찰총장을 찍어내고 검찰의 특별수사팀을 와해시켰다.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도 국방부의 셀프수사를 통해 무마했다. 이로써 MB 정권의 적폐는 그대로 박근혜 정부에서도 임기내내 이어지게 된다.

편을 갈라 반대세력은 철저히 응징하는 방식은 MB 정권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종북이란 색깔을 씌워 격리했다. 각 분야에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고 국정원이 이를 총괄했다.

처벌도 중요하지만 재발방지가 더 중요

민주주의를 훼손한 사람에 대해서는 처벌이 뒤따라야한다. 대통령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그러나 대통령을 처벌했다고 해서 지난 10년의 적폐가 다시는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국민이 기대하는 선의를 가지지 않은 권력자가 또다시 등장한다 하더라도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을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왜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그 어느 한곳에서도 국정원을 제대로 감시 감독하지 못했던 것일까?

핵심은 국정원 내부의 일을 그 어느 곳에서도 알 수 없을 것이란 지나친 비밀주의에 있다. 이미 70년대 미국에서도 한국과 같은 정보기관의 국기문란 사건을 겪으면서 이에 대한 근본 원인을 정보기관의 지나친 비밀주의로 진단하고, 해법으로 의회의 감시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미 상원에서 구성된 처치위원회의 15개월에 걸친 조사를 통해 의회가 요구하는 어떤 문서나 자료도 정보기관이 즉각 제공해야한다고 법제화한 것이다.

▲ 미국 정보수사기관에 대한 의회의 획기적인 통제방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던 미 상원 처치 위원회의 공개청문회 모습

▲ 미국 정보수사기관에 대한 의회의 획기적인 통제방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던 미 상원 처치 위원회의 공개청문회 모습

국회의 감시 권한을 강화하는 것과 아울러 불법적인 지시가 내려졌을 때 이를 거부하고 외부로 알릴 수 있도록 내부고발자의 권익을 보장하는 방안도 강화돼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댓글활동에 참여했던 전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은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현재와 같은 시스템 하에서 회사의 명령을 거부한 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며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회사를 나온다는 용기를 가지고 외부에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초대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의 지적처럼 국정원이 가지고 있는 수사권도 검찰이나 경찰 같은 형사기관으로 환원할 필요가 있다. 김종필 씨는 중앙일보 기고문에서 “중앙정보부의 수사권은 반혁명세력에 겁을 주기 위해 일시적으로 부여했던 것”이라면서 “수사권을 법무부 검찰국으로 환원하지 못한 것에 책임을 느낀다고”말하고 있다.

▲ 초대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의 중앙일보 증언록(2015.4.3)

▲ 초대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의 중앙일보 증언록(2015.4.3)

‘시크릿파일 국정원’의 저자 김당 씨는 “국정원 대공수사요원 7백명이 1년에 잡는 간첩수가 3명 남짓인데 이는 너무나 비효율적인 것으로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직파 간첩도 거의 없어졌을 뿐 아니라 탈북자로 위장해 들어오는 간첩도 경찰의 감시 등 제한 요소가 많기 때문에 과거의 간첩들처럼 국가안보에 큰 타격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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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 청산에 대해 언제까지 과거에만 매달릴 거냐는 반론도 솔솔 새어나오고 있다.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개혁 관련 토론회에서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지난 2013년 댓글 논란 때 문제를 제기할 때 너무나 많이 들었던 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과거의 일이다, 대선 불복이냐, 미래로 가야 되지 않겠냐, 이런 말씀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이명박 정권 때 박근혜 정권은 미래였습니다. 그 당시 이명박 정권의 국정원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했다면 박근혜 정권의 또다른 국정원의 범죄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았겠죠.

지난해 겨울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또 전국 각지에서 촛불을 들어 무너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되살려냈던 수많은 시민들 가운데, 지난 10년의 적폐가 미래에 되풀이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바꿔야 할 시간이다.


취재:최기훈
촬영:정형민 최형석 김기철 신영철 오준식
편집:박서영
CG:정동우

수, 2017/11/2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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