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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칼럼] 박근혜 탄핵가결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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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칼럼] 박근혜 탄핵가결 이후

익명 (미확인) | 일, 2017/01/01- 17:11

박근혜 탄핵가결 이후

 

이태호 |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공동상황실장

 

 

지난 12월 7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재적인원 300명 중 234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그동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두고 우왕좌왕하던 국회가 촛불민심에 의해 견인된 결과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즉각퇴진을 외쳐온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탄핵된 상태였다. 그런데, 광장의 외침은 박근혜 개인을 향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 사태를 통해 드러난 국민 없는 국가, 그 민낯에 대한 주권자인 국민들의 분노와 항의가 촛불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 항의는 이미 대학가에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나붙었을 때, 그리고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국가는 없었다”라고 국민 모두가 개탄했을 때 이미 격화되고 있었다.

 

 

무너지는 낡은 체제와 위태로운 시민

 

문제는 박근혜 개인이 아니라 그 체제다. 다행히 박근혜-최순실의 국정파괴 행위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박정희 시대에 대한 환상도 함께 무너지고 있다. 어떤 동상도 국정교과서도 이보다 더 큰 교육적 효과를 가질 순 없다. 실제로 모든 지표는 고도성장과 낙수효과에 대한 환상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며, 국가이익과 국가안보 같은 동굴 속의 그림자로 개인의 희생과 순종을 강요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극단적인 양극화, 출산율의 저하와 인구절벽,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의 극단적 증가, 남-녀간 정규직-비정규직간 최악의 임금격차, 한계치에 다다른 가계 부채, 최악의 자살률 등 모든 조건들이 불평등과 특권에 분노하는 거리의 촛불에 휘발유 역할을 하고 있다.

 

 

대의제의 위기와 자유로운 시민


스스로를 합리적으로 개선할 수 없었던 한국의 보수정치는 파산했다. 그들은 국민에게 가져다 준 것은 ‘국민 없는 국가’였다. 현 상황을 보수의 민주적 개과천선의 결과로 해석하려는 조선일보류의 아전인수가 가당찮은 것과 마찬가지로, 탄핵안 가결을 야당의 정치적 승리로 보는 것도 큰 착각일 수 있다. 광장에 나온 시민은 기존의 정당체제나 조합 등의 사회조직으로부터 자유로운 시민들이며, 복지시스템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사회적 돌봄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즉 위태로운 분노한 시민들이다. 이들을 위태롭게 만드는데 야당도 한 몫 했다. 이 점에서 정치권 전체는 살림, 돌봄, 생명과 안전, 주권자의 권리행사를 중심에 두는 새로운 대한민국, 새로운 참여 민주주의의 비전을 마련하기 위해 겸허히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특권층의 실상과 또 하나의 게이트

 

청문회나 검찰 수사, 그리고 각종 언론이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제보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낡은 체제의 수혜자인 특권층은 상상한 것 이하로 저열하고 시대착오적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현대 같은 재벌기업들, 관료집단과 공안세력들, 독재자의 방패막이로 전락한 집권여당 등 지난 30년간 별다른 개혁 없이 이 체제를 재생산해온 온갖 특권집단들의 민낯은 영화나 드라마의 그것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어쩌면 더욱 심각하고 구조적인, 또 다른 국정농단 게이트가 있다. 김기춘, 우병우, 그리고 황교안 총리 등이 간여했던 정치검찰출신들의 공작정치, 국정농단 게이트가 그것이다. 김영환 비망록 등으로 그 일부가 드러났지만, 제대로 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청와대와 국정원, 검경이 모두 간여되어 있다. 부패한 분단안보국가의 적폐가 아직 규명되거나 처벌되지 않은 채 황교안 체제라는 이름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셈이다. 이 구악을 파헤쳐 개혁하지 않으면 박근혜 정권은 계속된다.

 

 

탄핵 이후의 과제들

 

박근혜는 즉각 사퇴하여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직무정지 상태의 대통령직을 장기간 유지하는 것은 박씨 개인에게도 명예롭지 못한 일이고 나라 전체에는 ‘국정공백과 혼란’을 가중시키는 일이다. 박근혜 직무정지 이후의 대행체제는 박근혜 2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정권의 적폐와 국정농단의 폐해를 회복하는데 최대한 기여하고, 국민통합과 현상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국정관리에 한정하는 중립적인 체제여야 한다. 대행체제는 또한 박근혜의 즉각 퇴진과 조기대선이 이루어지기까지 그 기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대행체제는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모두 공작정치를 중단하고, 국정원과 검·경·군의 엄정중립을 보장하며, 국민의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온전히 보장해야 한다. 과거 국정농단과 적폐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특검과 국정조사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특히 세월호 7시간 등 국정농단과 적폐와 관련된 정보와 자료를 은폐하지 말고 즉각 공개해야 한다. 국정교과서와 노동개악 같은 국민합의 없는 갈등유발 정책 강행을 중단하고, 주변국과 큰 외교적 긴장과 갈등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 큰 논란거리가 되는 사드배치, 한일정보보호협정 같은 민감한 외교안보사안들은 유보해야 한다.

 

 

황교안 체제는 제2의 박근혜 체제

 

이런 일을 하기에 황교안 총리는 적임자가 아니다. 즉각 사퇴해야 한다. 그는 대행체제를 맡은 자격이 없다. 우선 그에게 중립적인 국정관리를 기대할 수 없다. 황교안은 민주인사들을 억압했던 대표적인 공안검사이자 친재벌 부패 법조인으로서, 박근혜 정권 초기부터 법무부 장관 재직하면서 국정원 대선개입과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은폐하기 위해 수사검찰에 부당한 압력을 가하고 공안사건을 조작하는 등 공작정치에 앞장섰고, 김기춘, 우병우 등 정치검찰 출신들의 공작정치를 일관되게 비호하여 현 사태에 원인을 제공한 대표적인 부역인사다. 일각에서는 총리마저 사퇴하면 국정에 큰 혼란이 초래될 것처럼 주장하지만, 황교안의 존재가 안정적인 국정관리나 국민통합에 큰 장애가 된다. 그가 사퇴하고 부총리가 대행체제를 맡는 것이 더 낫다.

 

 

정치개혁과 참여민주주의

 

촛불집회를 이끈 주체는 ‘자유롭고 위태로운’ 행동하는 주권자들이었다. 촛불은 국민 없는 국가, 주권자 없는 정치에 대한 항의였고, 자구적이고 합헌적인 저항행동이었다. 이 항의에 내재하는 무수한 사회적 난제들은 궁극적으로 정치의 개혁, 참여민주주의의 구현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특히 정치의 과두제와 진입장벽은 정치개혁에 가장 큰 장애물이다. 자치와 분권의 확대와 주권자의 발의권-감사권-소환권-심판권의 강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각종 소수정당 진입장벽의 철폐, 모든 면에서의 국회의 개방과 특권의 축소 등 국회와 과두정당 자신의 개혁대안을 먼저 내놓고, 다른 개혁조치를 말해야 한다. 또한 헌법 개정 문제를 국회의원끼리 밀실에서 처리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퇴진이 완수되기까지 헌법 개정 논의는 중단해야 한다. 또한 그 이후에도 개헌이 과연 필요한 지 국민의 의사부터 확인해야 한다. 개헌을 원하는 정치인들이 있다면 무엇보다 먼저 국민이 이 논의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 ‘헌법개정 절차법’부터 만들어야 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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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김아래미 복지동향 편집위원,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 8월 26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특별기여자’ 378명이 한국에 입국하였다. 선진국에 걸맞은 책임 있는 대응이라며, 대체적으로 환영하고 있고 감격해 하는 분위기까지 있다. 그러나 바로 며칠 전의 국내 미군기지에 ‘난민’ 수용 가능성 기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우려와 반대를 나타냈다. 혐오표현과 차별언어가 난무했다. 같은 아프가니스탄인인데도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이주민에게는 성과주의적 관점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기여도나 생산성이 기대되는 이주민에게는 너그러워지는 편이나, 인도주의적 조치에 대해서는 매우 냉정하고 불관용적인 모습을 많이 보인다. 이주민을 대상으로 역설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례는 이 외에도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5년 아일란이라는 시리아 난민아동이 해변에서 사망한 사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지만,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시각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이러한 인간의 패러독스는 이주민의 사회권 보장 이슈에서도 드러난다. 사회보장협정을 통해 내가 외국에서 사회보험을 이용하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이주민이 우리나라에서 사회보험을 이용하는 것은 껄끄러워 한다. 한국 국적자와 이주민 모두 코로나19를 겪고 있고, 차별과 배제 위험으로 이주민의 재난피해 가능성이 더 높지만, 이주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는 것에는 인색하다. 1~4차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재난지원금 대상을 국민으로 경계 짓는 것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음에도 5차 재난지원금의 대상에서 200만 외국인 중 170만 명은 여전히 배제되었다. 재외국민이 외국에서 이러한 대우를 받는다면, 재난에 국적이 어디 있냐며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공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한국 사회는 이주민이 약 4~5%로 소위 ‘단일민족사회’에서 벗어난 지 꽤 되었고, 앞으로도 초연결사회구조에서 이주민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권은 인간의 패러독스와 경계 짓기 속에서 ‘국민’이라는 경계 내에서 논의되어 온 편이다. 그러나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는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 복지체제에서 사회권은 국민이라는 경계를 넘어서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이주민 권리에 대한 논의가 주로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 이주아동, 북한이탈주민 등 이주민의 세부집단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번 호에서는 이주민의 사회권을 복지국가 및 사회보장체계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먼저, 김규찬 교수는 복지국가에서 이주민의 사회권이 보장되기 위해 필요한 논리와 구조를 살펴보고, 포용적 복지국가를 위한 사회권의 발전 과제를 원론적 차원에서 논의하였다. 다음으로는 김기태 박사와 곽윤경 박사가 노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사회보험이 이주민의 사회권을 어떻게 보장하고 있고, 사회보험의 차별적ㆍ배제적 요소와 정책과제는 무엇인지를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김옥녀 교수는 이주민의 사회서비스 이용권 현황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이주민의 세부집단에 편중된 사회서비스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해결과제를 제안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인권을 강조하는 사회복지계에서 관련 논의에 이주민을 배제해 왔다는 점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앞으로는 복지국가 및 사회권 논의와 사회보장정책 및 서비스 대상에 이주민을 당연히 포함시켜야 한다. 이주민이 시민으로서 생산, 소비, 납세 등을 이행하고 있는데 사회권 보장체계에서 배제되어 있는 현실의 부당함을 직시하고 해결해야 한다. 또한, 이주민도 한국사회구조가 야기하는 사회적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주민도 증명할 필요 없는 사회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패러독스와 경계 짓기를 멈추고 이들에게도 사회권을 동등하게 보장해야 한다. 더 미뤄서는 안 된다.

목, 2021/09/02-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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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서울중앙지법(형사합의31부)은 세월호 특조위 조사 방해와 관련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9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사건번호 2020고합412). 박근혜 정부의 조직적인 특조위 조사 방해행위는 사참위 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명백히 드러났다. 이 혐의에 대해 면죄부를 준 재판부의 판단을 납득할 수 없다.

2019년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총 5만 4,416명의 국민고소고발인을 모아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은폐한 국가범죄의 주요 책임자들을 고소 고발하였고, 이에 검찰 특별수사단은 2020년 5월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함께 현정택 전 정책조정수석, 현기환 전 정무수석, 안종범 전 경제수석, 김영석 전 해양수산부 장관, 윤학배 전 해양수산부 차관, 정진철 전 인사수석,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조대환 전 특조위 부위원장 등 9명을 불구속 기소 한 바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1) 2015.1.19 새누리당과 장·차관, 청와대 수석이 플라자호텔에 모여 조직 축소와 해체를 논의하는 회의를 가진 것, 2) 2015.11.23 청와대 수석들과 해수부가 함께 여당 추천위원 전원 사퇴 등을 논의한 내용의 문건, 3) 진상규명 국장 임용 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었으나 보류시킨 행위 등이 사실’임은 인정하면서도, “남용된 직권의 보유자로 적시된 이 전 실장 등이 이에 관여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볼 수 밖에 없고, “특조위 위원장의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조사 등 업무에 관한 권리’ 등이 직권남용죄 보호 대상인 구체적 권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이병기 전 비서실장을 비롯한 피고 전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특조위 조사방해 행위에 조기 종료로 세월호참사 피해자의 진실에 관한 권리와 국민의 알 권리는 직접적이고 중대한 침해를 입었다. 피해자들과 국민들이 이로 인해 감내해야 했던 상실감과 상처는 심대하다. 특조위에 대한 조사방해로 적기에 진실에 접근할 기회가 차단되었고 증거인멸은 용이해졌다. 그 후 새롭게 독립적인 조사기구인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설립과 활동까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했고 수많은 인력, 시간, 예산이 소요되었다. 피해자들은 이로 인해 특조위 조사를 방해한 바로 그 권력으로부터 ‘세금도둑’이라는 적반하장의 공작적 혐오발언을 들으며 2차 3차 피해를 감내해야 했다. 그런데 아무도 처벌되지 않고, 직권남용죄 보호대상인 구체적 권리를 특정할 수도 없다니 억울하고 원통하다.

검찰의 부실 수사와 법원의 소극적 법 해석으로 피해자 권리는 또 한 번 침해당했다. 검찰은 즉시 수사를 보강하여 항소해야 한다.

2023년 2월 2일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The post ‘세월호 특조위 조사 방해’ 박근혜 정부 인사들에 면죄부 준 재판부를 규탄한다 appeared first on 참여연대.

목, 2023/02/02-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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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탄청 죄핵와 석무복 방효귀
박근혜 눈물 닦아 줍시다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다

이 글은 AI 가 수집 요약한 글 입니다..
토, 2026/06/13-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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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의 책임을 희생자에게, 그 죄책감을 생존자에게 돌리는 이 정부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232406" align="aligncenter" width="640"] ⓒ10.29참사 시민대책회의(2023)[/caption]  

탄핵심판 유가족 대표 진술서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대표 직무대행)

 

지난 6월 27일. 헌법재판소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장관에 대한 심리를 진행했습니다. 탄핵 사건의 마지막 변론기일을 맞아 유가족들도 이상민 장관 파면에 대한 의견을 진술했습니다. 이정민 대표의 진술서 전문을 싣습니다.

제 딸은 결혼 준비 중이었고 29일 당일은 딸이 웨딩플래너를 만나는 날이었습니다. 딸이 오후에 나가는 것을 보고 저는 아내와 저녁 먹고 tv를 보고 있었는데 딸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딸 남자친구가 울면서 이태원역으로 와달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당시 12시 30분쯤 이태원역 쪽으로 갔을 때,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고 경찰들도 있었지만 현장 통제가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폴리스라인을 무시하고 지나다녔고, 도로에서도 교통경찰들이 호루라기를 부르며 통제하고 있었지만 사람과 차가 워낙 많아서 차들이 겨우 겨우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태원역 주변 가게들은 그때까지도 음악을 크게 틀고 있었고 사람들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것처럼 웃고 떠들며 지나다니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엄청 밀집해 있었고, 경찰과 시민들이 다투는 소리, 음악 소리 때문에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참사 발생 2시간이 지나도록 그런 아수라장일 수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인파를 뚫고 딸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하면서 겨우 겨우 1번 출구 옆쪽에 해밀턴 호텔 골목길 그 바로 옆에 상가로 갔습니다. 상가로 들어가려는데 경찰이 못 가게 막아서 상가 통유리로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거기에 아이들이 많이 누워 있었는데, 딸 남자친구가 계속 CPR을 하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그 친구는 나중에 쫓겨 나오더니 계속 죄송하다고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경찰이랑 소방이 모이더니 아이들을 하나씩 원효로 체육관으로 이송하였고 가족들에게 왜 이송하는지 등 설명은 없었습니다. 아마 그때까지 다목적체육관에 도착하지 못한 유가족들도 많았을텐데, 나중에 다른 유가족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같이 갔던 친구들이 아이들 곁에 있다가 희생자를 옮긴다고 하니 신원확인을 위해서 같이 가겠다, 가족들에게 어디로 이송됐는지 알려줘야 한다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이나 소방은 신원확인도 안 하고, 이송되는 곳도 알려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제가 다목적 체육관에 갔을 때에도 상황을 설명하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기자들이 희생자가 이송되는 병원 등에 대해서 정보를 주고 있었습니다. 가족이 이미 와 있고 희생자가 안에 있는 것을 확인을 했는데도 공무원들은 우선 한남동 주민센터에서 실종자 신고를 하라고 했고, 저희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실종신고를 하고 6-7시쯤에 체육관을 떠나서 집에서 기다렸습니다. 그후 거의 낮 12시가 넘어서야 의정부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왜 연고도 없는 의정부로 갔는지도 정말 납득이 안 갔지만 우선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에 갔을 때에도 검시에 관해서는 어떠한 설명도 없었습니다. 다른 가족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때 희생자의 옷이 전부 탈의되어 있어서 가족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체 유가족에게 부검 여부를 물었고, 일부 유가족에게는 마약의심이 되니 부검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가족들은 경찰과 검찰이 마약의심을 운운하는 것에 대해서 엄청난 모욕감을 느끼며 부검을 거부했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제가 신원확인을 마친 후에 지역 병원으로 옮기겠다고 했더니 경찰은 그러려면 조서를 써야 한다고 해서 아들이 경찰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딸 주영이를 남양주병원으로 옮긴 후에도 경찰에서 연락이 와서, 현장상황을 파악해야 하니 다시 경찰조사를 받으라고 했씁니다. 아들과 생존자인 딸 남자친구도 함께 가서 조사를 받았는데, 생존자 앞에서 아들한테 ‘남자친구인 애는 살아 돌아왔는데, 주영이는 왜 죽은 것 같냐’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유가족과 생존자를 참사직후 경찰조사하고 그런 질문들을 할 수가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딸 남자친구는 딸과 함께 골목에 있다가 딸이 선 채로 의식을 잃은 것을 목격하고 서서 계속 인공호흡을 했다고 합니다. 의식을 잃은 상태로 40-50분을 있었고, 그후 소방이 왔는데도 15분 이후에야 뒤쪽 구조가 시작되었고, 구조가 시작되고도 20분 가량이 지나서야 저희 딸 주영이가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딸을 108힙합클럽으로 옮겼는데 클럽에만 구조된 사람이 20-30명가까이 됨에도 구조인력은 6-7명밖에 되지 않아서 시민들이 CPR을 하고 딸에게도 그 친구가 계속 CPR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소방은 당시 현장에서 기계로 측정한 후에 소생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구급처치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친구는 상가 건물까지 가서 CPR을 했습니다. 그 친구도 서 있으면서 압박감에 한 번 의식을 잃었고, 참사의 모든 순간을 목격했음에도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엄청난 상태였습니다. 참사의 목격자인 그 친구의 얘기를 들으니 참사의 책임을 희생자에게 돌리고, 그 죄책감을 생존자에게 돌리는 이 정부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참사의 책임자인 이상민 장관은 무고한 생존자와 시민들이 희생자를 살리려고 온힘을 다할 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습니까. 이상민 장관은 자신의 집에서 일산에서 오는 운전기사를 기다리느라 참사를 인지하고도 1시간 40분이 걸려서야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미 골든타임을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서 놀고 있었겠습니까? 여기저기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라는 발언으로 유가족과 국민을 우롱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몇 통의 전화를 받고, 비서실장에게 상황을 확인하라는 전화를 했을 뿐이라는 게 국정조사에서 확인되었습니다. 1시간 40분 기다리는 그 시간에 중대본을 가동해 현장을 통제하고 경찰과 소방인력을 보내 줄 수는 없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정부는 부재했고, 정부가 없는 현장에서 우리 아이들은 사경을 헤매거나 하늘로 떠났습니다. 어떤 유가족은 희생자의 애플워치에 심박수가 23시 35분까지 67을 유지하다가 줄이 풀어져서 측정이 끊긴 것을 확인했습니다. 골든타임이 지났다구요? 참사에 대한 조사도 하지 않은 행안부가 그걸 어떻게 확신합니까.   [caption id="attachment_232407" align="aligncenter" width="640"] ⓒ10.29참사 시민대책회의(2023)[/caption]   이상민 장관은 참사 직후뿐만 아니라 그 이후 유가족에 대한 대응에서도 장관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았습니다. 딸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장례식장에서 공무원들이 왔지만, 장례를 빨리 치르도록 하려는 것 외에 어떠한 지원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감시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어떤 가족은 1층에서 장례를 치르다가 2층에 다른 유가족이 있다는 것을 듣고 올라가려고 했더니 경찰이 만날 수 없다면서 막았다고 합니다. 합동분향소가 설치될 때에도 행안부는 가족들의 동의 없이 영정과 위패가 없는 분향소를 설치했고, 분향소 설치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저도 나중에 기사를 보고서야 알았기 때문에 당시 분향소에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또한, 참사 이후, 기사에 나온 이상민 장관의 발언들은 유가족에 대한 2차 가해였습니다. 그의 어떠한 발언에도 유가족에 대한 예의와 배려, 존중이 없습니다. 이상민 장관은 “경찰과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문제는 아니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행안부장관이라는 자신의 직무를 부정하고 개인 이상민의 안위에만 천착한, 철저한 책임회피의 발언입니다. 그리고 신자유연대의 수많은 2차 가해, 창원시의원 김미나의 망언 등에 대한 어떠한 의견도 내지 않음으로써 2차 가해를 묵인했습니다. 행안부 장관의 2차 가해에 대한 묵인은 희생자들에게 놀러갔다 죽었다는 오명과, 유가족이 시체팔이한다는 오명을 씌우는데 일조했습니다. 지역시의원의 입에서 “시체팔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런 2차 가해가 쏟아질 때 행안부 장관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요. 관전하고 묵인하는 것이 행안부 장관의 역할이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10만 인파가 모인다는 수많은 기사가 보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민 장관은 이태원 인파밀집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라고 명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관심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는 집회와 대통령 경비에만 온통 관심이 집중해 있었고, 이는 10.29 이태원 참사라는 결과를 일으켰습니다. 그는 참사 당일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행안부 장관이 아니라 대통령 개인을 수호하고 지키는 대통령을 위한 행안부 장관으로서의 역할만 수행한 것입니다.

존경하는 유남석 헌법 재판소장님

주심을 맡고 계신 이종석 재판관님, 그리고 김기영, 김형두, 문형배, 이미선, 이영진, 이은애, 정정미 재판관님

이상민 장관의 파면은 국민의 생명권을 지켜주지 못한 국가의 최소한의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 고통의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유가족은 우리가 마지막이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재난은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우리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참사의 관리 책임자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그 직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참사에서 교훈을 얻고 참사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사회적 재난과 단절하고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우리 후손들과 역사 앞에, 이태원 참사가 우리 사회, 대한민국의 마지막 참사로 기록될 수 있는 우리 세대의 다짐과 선언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수, 2023/06/28-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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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진료와 지역의료의 실험

- 집을 찾아가는 의료가 만드는 다른 가능성

 

홍종원 방문의료클리닉 건강의집의원 대표원장

 

바람의 빛깔


"자기와 다른 모습을 가졌다고 무시하려고 하지 말아요. 그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바람의 빛깔, 포카혼타스OST


 

가을이 되니 자연스럽게 올 한해 지나온 일들이 머릿속에 스친다. 존재감 없이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삶의 신조인데 겁도 없이 방문진료 전문 의원을 개원해서 여러 사람들의 집을 찾아다니고 있다. 헤매고 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집만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배드민턴 치시는 분을 따라가고 하모니카 부는 모임에 간다. 방문을 하는 분들이 중증 장애인이기에 휠체어를 타고 배드민턴을 쳤고, 2층에서 1층으로 까지 하모니카 부는 분의 휠체어를 옮기는 것을 도와드렸다. 운 좋게 인연이 닿아 집을 찾고 있는 종국씨는 척수장애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생활하시는 분이다. 말씀이 많은 분이 아니라 항상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할 지 막막함을 느끼는 분 중 한 분이다. 그래도 차근차근 건강상태를 점검하였고 혈액검사를 통해 당뇨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성질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려드리고 생활 습관에 대해서 질문하고 또 조언하였다. 집에서 진료 하다보면 의학 상담만하는 것이 아니라 식습관, 음주, 취미 생활, 사회적 관계망 혹은 신변잡기 이야기까지 한다. 그렇게 대화하던 중에 대학로에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힘들다고 하셔서 몇 번 가다 안 가시려고 하시나 걱정했다. 노래가 어떤 약보다도 좋은 치료라는 생각에 나름대로 지속하시도록 격려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종국씨 집을 드나들었다. 다행스럽게 혈액검사 소견이 호전 되어 서로 기분 좋은 관계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공연 소식을 알려주셨다. 노래 연습이 힘들다고 하셔서 그만두시는 것은 아닐지 조마조마 했는데 공연 소식을 전해주시니 정말 반가웠다. 조심스레 언제, 어디서 하는지 여쭤보았다. 간다고 하면 부담스럽게 느끼실까봐 대단하시다고 잘하실 거라고 격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공연 날이 되었다. 이 집, 저 집 다니느라 정신없이 살고 있지만 장소와 시간을 수차례 확인하여 공연을 보러 갈 여유를 만들었다. 대학로 이음센터 5층 공연장에 승강기를 타고 딱 내렸는데 마침 종국씨가 있었다. 반갑게 인사드렸다. 종국씨는 깜짝 놀라며 "어떻게 오셨어요." 하신다. "인터넷으로 찾아봤어요. 유명하시던데요." 종국씨가 속한 중창단은 한 장애인자립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문화 프로그램 일환으로 탄생한 팀이었다. 스치듯이 말해준 이야기를 듣고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공연관련 정보를 확인한 터였다. 겸손히 말하였지만 이 팀은 버스킹도 하고 가요제에서 상도 탄 실력파 팀이었다. 종국씨는 뒤 늦게 합류한 팀원이었다. 공연장에 온 아내분과 자녀분도 만나 인사 나누고 조용히 뒷자리에 앉았다.

 

멤버이자, 장애당사자인 장애인자립지원센터 센터장이 사회를 보며 공연을 시작하였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순수 아마추어라고 소개를 하고 노래 중간 중간 "들을만하시죠."하고 겸손하게 말하였다. 실상은 꽤 실력 있는 중창단이었다. 노래를 듣는데 지난 시간이 떠오르며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그들이 장애인이서 특별히 감동을 받은 것이었을까? 우리 사회는 정상과 비정상을 철저하게 갈라 인간 사회에 층위를 만들고 자기와 다른 모습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이 일상이다.1) 나 역시 인지하든 못하든 차별의 시선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실 의사란 직업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나누고 비정상을 정상화 하는 역할을 한다. 중증 장애인들의 집을 찾으며 스스로는 다른 의사가 되고자 했다. “의사가 뭐 이래? 약도 안주고” 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집을 찾아가는 의료는 다른 의료여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8개월 동안 장애인 대상자를 만나며 장애란 단어 자체를 쓰지 않으려 했다. 내가 다시 그들을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으로 호명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치료 대상으로 그분들을 대하지 않고 그저 이웃이자 친구가 되고 싶었다. 치료가 시급한 문제가 있다면 해결하고자 노력하였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상(normal)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다른 점(비정상성) 덕분에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 덕분에 아픈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공연 사회자는 종국씨의 솔로 공연을 앞두고 소개하며, “이 분이 경추장애에요. 배에 힘을 못줘요. 그런데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합니다.”고 소개하였다. 그랬다. 노래를 정말 잘하였다. 사회자는 노래가 끝나고 “노래 잘 하죠? 배에 힘을 못줘도 이렇게 잘 합니다. 여러 분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노래를 못하는 비장애인인 나에게 희망을 전해주었다.

 


"얼마나 크게 될지 나무를 베면 알 수가 없죠. 서로 다른 피부색을 지녔다 해도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죠. 바람이 보여주는 빛을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눈이 필요 한 거죠. 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
바람의 빛깔, 포카혼타스OST


 

집을 찾아가는 의사가 된다면

운 좋게 의사가 되었지만 병원이 내가 일해야 하는 공간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의사인 나에게도 병원이라는 공간은 답답하고 지루하며, 삭막하다고 느껴졌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든 효율적인 공간 배치 속에 의사와 환자 모두 아늑한 돌봄의 기운을 받기 보다는 차가운 대상화의 시선을 느낀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검사나 기술에 의존하게 되었고 본질적인 만남은 사라졌다. 섬세한 진찰과 손길은 이미 낡은 것이 된 병원은 가지 않을 수 있다면 가지 않는 것이 이득인 곳이 되었다. 의사가 된 후 대형병원에 발을 들이진 않았지만 환자들을 만나고 싶었기에, 또 먹고는 살아야했기에 틈틈이 동네 의원에서 진료해왔다. 큰 열정 없이 반복적으로 진료를 해오며 차라리 나름의 철학으로 병원을 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다. 원체 끈기가 없고 오래 일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사람이라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데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새로운 환경이 다가오고 있었고 이 흐름 속에서 새롭게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의 기술이 발달하여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통한 건강 관리기술이 유행하고, 유전자 치료를 통해 희귀질환을 정복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완벽히 무르익지 않았는지 연구 자료를 조작해서 국민 건강에 피해를 끼치는 사례도 나타났다.2) 그럼에도 정부는 나서서 원격의료 및 바이오 헬스 산업을 도입하려고 서둘렀다. 오래된 시도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구체적인 모습을 갖췄고 기업과 정부는 한 편이 되어 장밋빛 전망을 전하고 있다.

 

한편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체계에 대해서 관심이 커졌다. 과거와 다르게 질병의 양상이 만성질환 위주로 변하여 치료(cure)보다는 돌봄(care)의 중요성이 커졌다. 2018년 정부는 커뮤니티케어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지역사회중심의 일차의료와 돌봄 서비스 체계를 만들겠다고 하였다. 방문의료, 재택의료 혹은 왕진 등의 이름으로 의사가 환자의 집으로 찾아가는 진료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그 동안 한국에서는 의사가 환자의 집을 찾는 진료는 활성화 되지 않았다. 오히려 불법으로 인식되었다. 의사의 선의가 환자들을 자신의 병원으로 유인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될 여지가 컸다. 의료행위를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진행하는 것이기에 안전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방문 진료는 사회에 필요한 진료 방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의 경우 왕진은 국가 의료 제도 속에 적절한 지불 체계가 자리 잡았다. 영화, 드라마 등을 봐도 의사가 집으로 찾아가는 것이 문화적으로 익숙한 듯 했다. 왕진을 통해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줄일 수 있고 적절히 처치를 제때 못 받고 응급실을 이용하여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령사회에 대비해 주기적으로 건강을 확인하여 질병을 예방 할 수 있다. 미국, 싱가포르 등의 국가도 다양한 방식으로 방문 진료를 시행하고 있다. 물론 한국 역시 보건소에서 시행하는 방문진료 및 방문간호 사업이 있고 노인장기요양제도 안에 방문간호 제도가 있다. 그런데 일반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방문 진료를 전문하는 경우는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방문해서 진료를 하는데 대한 수가가 책정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환자가 병원에 와서 진료 받는 경우와 찾아가서 진료하는 경우 받는 비용이 똑같다. 교통비 등을 환자에게 실비로 청구할 수 있다고는 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병원 내 진료가 의사, 환자 모두에게 익숙하기에 집에서 하는 진료는 서로에게 어색하다. 무슨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 모르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가 시작되었다.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는 중증 장애인도 건강할 권리가 있다는 취지로 거동이 불편한 중증 장애인에게 의사가 찾아가서 건강관리를 돕는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제도화된 왕진이다. 이 제도를 통해서 중증 장애 환자에게 의사가 방문해서 진료하고 적절한 처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치료만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상담을 통해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만성질환을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게 2019년 3월 중증 장애인 및 거동 불편자들의 집을 찾고자 건강의집 의원을 개원하였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외래진료는 하지 않는 방문진료 전문 의원이다. 1회 방문당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충분한 진료시간을 갖는다. 가정 방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돌봄 체계에 참여하고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여러 기관 및 관계자들을 만나는 데 충분한 시간을 쏟았다. 지역사회에서 중증장애인과 칩거 노인들을 위해 헌신하는 가족, 이웃, 요양보호사, 활동지원사, 사회복지사, 동주민센터 행정직원, 보건소 방문간호사 및 치료사들을 만나서 고민을 나누고 도움을 서로 주고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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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진료, 그 너머의 가능성

의사의 역할은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그런데 의사의 일상적인 진료가 사회의 건강을 증진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병원이라는 건강 생산 공장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가? 수명의 증가라는 근대적 목표 설정은 그 어느 나라보다 빨리 달성을 했으나 한국의 국민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살며, 죽고 싶다는 생각을 언제나 곁에 두고 산다. 실제로 죽음을 시도한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의사는 계속 치료를 강제하고 건강하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건강에 환장한 사회인데, 그것이 어떤 건강인지는 질문되지 않는다. 건강은 생산 가능한 가치인가? 치료기반의 의료가 건강한 사회를 담보하는가? 구매하는 건강, 강제된 건강이 우리가 성취해야할 목표인가? 어떻게 건강의 가치를 재구성할 수 있을까? 가령 고급 분양아파트의 주민들이 임대아파트 주민들과는 어떻게든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사회일까? 청년들의 불안이 향 정신 약물을 통해 조절되는 것은 장려되어야 하는가? 현재 의료의 제공 방식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제시하는가?

 

의학 기술은 날로 발전하는 것 같은데 역설적으로 건강을 돌보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어떤 질병도 치료할 준비가 된 사회이지만 여전히 가난한 이들은 죽지 못해 산다. 때론 죄송한 마음으로 사회와 작별한다.4)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이 많을 때 우리는 건강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충분한 경제적 여유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이다. 장시간 일해야 하는 노동자는 돈의 많고 적음과 별개로 건강을 돌볼 여유가 없다. 4차 산업혁명의 유행 아래 그럴싸한 이름의 플랫폼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안전망을 가지지 못한 채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경제적 조건이 다소 부족하다면 꼭 갖춰야 할 조건 중 하나는 곁에서 잔소리를 끊임없이 해줄 존재이다. 도시에서 이웃과 관계를 맺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대부분의 관계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구성된다. 일종의 거래로 경제적 이득이 매개되지 않으면 관계가 생기지 않거나 이어지지 않는다. 친구를 사귈 때도 어떤 이득을 줄 것이 기대될 때 흔쾌히 응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만나는데 드는 비용 때문에 집 밖을 나서지 않는다. 게다가 시간은 더욱 귀하기 때문에 아무나 만나서 낭비할 수는 없다.

 

아픈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돌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아픈 시간을 함께 견뎌내는 것은 외면하고만 싶은 어려운 일이다. 아픔 속에 있는 사람을 곁에서 바라보는 일은 참 버겁다. 의사이기 때문에 뭔가 해야 한다. 아프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약을 처방하든지 주사를 놓든 뭘 하든 말이다. 그런데 나름의 노력을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오는 난감한 문제. 결코 개선되지 않은 통증. 그런 것들이 분명히 있다. 신이 해결해주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은 상황들.

 

모든 아픔이 치료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치료받아야 할 존재인가? 생명이 있는 이상 아픔은 필연이다. 그런데 아픔을 다루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을 때 서럽지만 또 그것을 통해서 자신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극복되지 않은 손상도 물론 있다. 아픔과 손상을 극복하는 것 아니라 자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는 것은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손상과 아픔을 ‘함께’ 겪는 것,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손상과 아픔을 누구와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이냐. 그것이 신체든, 정신이든.

 

건강을 도모하는 일은 대단한 검사와 치료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잠시 기술적 도움 받을 뿐이다. 건강을 홀로 돌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함께 사는 이들이 곁에서 긴 인생을 겪으며 울고 웃으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서로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다. 병원의 진료를 집으로 옮겨 놓는 것이 방문 진료의 전부일까? 그저 움직이지 못하기에 움직일 수 있는 쪽이 움직이는 편의성 제공인가? 방문 진료의 가능성을 더욱 생각해보려고 한다. 집이라서 가능 한 것들, 사는 곳이 알려주는 여러 단서들이 분명 있을 텐데 말이다. 방문 진료 전문 의원을 열기 전 나는 ‘집’을 운영했었다. 의사였지만 의료기관이 아닌 삶의 장소에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서 오래된 동네 상가를 얻어 ‘건강의집’이라고 이름 짓고 딸린 방 한 칸에 몸을 뉘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모였고 모일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편히 지내는 모두의 집이 되었다. 집을 구하기 어려운 청년 활동가들이 함께 살았다. 사적공간의 대명사인 집은 해방의 공간이 되었다. 운영했다기보다 문을 열어두었을 뿐이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으니 여러 사람이 드나들었다. 건강의집 의원을 여는데 계기가 된 이 공간 운영 경험을 통해 집은 관계를 촉진하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같은 집을 여러 번 찾아가면 그 집의 모양과 냄새가 익숙해진다. 그 곳의 삶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이후엔 그 너머의 삶을 함께 그려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방문진료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새로운 건강 생산 체계를 모색해볼 수 있지 않을지 작은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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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원 건강의집 의원 대표원장의 모습(=맨 왼쪽) <사진 = 건강의집의원>

 


1)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장애학의 도전, 김도현, 오월의봄

2) 종양유발세포가 들어간 골관절염치료제가 충분한 검증 없이 환자들에게 투여되었다. https://news.v.daum.net/v/20191115204105469 뉴스타파, 인보사를 ‘기적의 신약’으로 만든 언론.

3) 2019-10-20 제1회 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 학술대회, ‘왜 방문진료인가’, 건강의집의원 김창오 원장 발표자료.

 

4) ○○구 N모녀 사건이 반복되지만 정부는 발굴 혹은 색출에만 혈안일 뿐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접근은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렇게 가난한 이들은 조용히 사라진다. http://beminor.com/detail.php?number=14036&thread=03r01 비마이너, 다가오는 ‘디지털 복지 디스토피아의 그림자.

수, 2019/12/0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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