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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무하는 테러, 붕괴한 정부 – 위태로운 터키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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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무하는 테러, 붕괴한 정부 – 위태로운 터키 사회

익명 (미확인) | 월, 2017/01/16- 16:36
© ILYAS AKENGIN/AFP/Getty Images)

© ILYAS AKENGIN/AFP/Getty Images)

※ 이 글은 Newsweek에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앤드류 가드너(Andrew Gardner), 이스탄불에서 활동하는 국제앰네스티 터키 조사관

이스탄불에서는 아직 동이 트기도 전이지만 아일린(가명)*은 일찌감치 잠에서 깼다. 아일린은 집을 정리하고, 친구들에게 몇 통의 메시지를 보낸 후 작은 가방에 짐을 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나 혹은 아파트 계단을 뛰어올라오는 군화 소리가 들릴 때면 그는 커피를 한 잔 내리고 어두운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가만히 앉아 기다릴 뿐이다.

아일린은 터키 정부에도 잘 알려진 인권활동가로, 2016년 7월 15일 쿠데타 실패로 대대적인 정부 비판자에 대한 탄압이 시작된 이후 매일같이 이러한 의식을 치르고 있다.

그는 최근 몇 달 동안 붙잡혀 간 그의 수많은 친구와 동료들처럼, 새벽에 급습한 경찰 때문에 잠을 깨게 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아일린은 그저 망상에 시달리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쿠데타 실패 이후 지금까지 터키에서 수만 명이 체포되었고, 약 400개곳에 달하는 비정부단체가 영구 폐쇄되었다. 현재 전세계 기자 3명 중 1명이 터키에 수감되어 있는 셈이다. 수감자들로 넘쳐나는 터키의 교도소에 갇혀 있던 사람 중 다수는 그 사유가 구차하기 짝이 없었다. 반정부 성향의 쿰후리옛 신문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세놀 부란은 에르도안 대통령에게는 차를 내주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9일 동안 구금되기도 했다.

이처럼 누구든 말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 최근 터키의 현실이다. 아무리 사소한 모욕이라도 엄중하게 처벌이 가해진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라면 어떤 형태든 짓밟아 버리겠다는 의도다.

아일린이 미리 준비를 하는 것도 그래서다. 체포된다면 얼마나 오래 집을 비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12월 31일, 이스탄불에서 소설가인 아슬리 에르도안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에르도안은 미결 상태로 132일간 구금되어 있던 끝에 12월 29일 풀려났다. 에르도안의 “죄”는 쿠르드계 일간지인 ‘외즈귈 귄뎀’에 글을 게재했다는 것이었다. 외즈귈 귄뎀은 쿠데타 실패 이후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폐쇄된 신문사였다. 에르도안은 아일린이 악몽처럼 두려워하는 일을 그대로 겪었다.

새벽부터 아파트를 습격한 경찰에게 붙잡혀, 이후 4개월이 넘도록 집에 돌아올 수 없었다. 에르도안의 미결 구금은 임의적인 조치였으며, 공개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려는 사람들에게 본보기를 보이려는 의도를 지닌 처벌이었다.

에르도안이 풀려나면서 터키의 최근 암울하기만 했던 상황에 작은 희망의 창이 열린 것처럼 보였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새해를 이틀 앞둔 12월 31일, 이스탄불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총기를 든 괴한의 끔찍한 공격으로 39명이 죽고 65명이 다쳤다. 새해의 끔찍한 시작이었다. 1월 4일 터키 국회는 국가비상사태를 3개월 더 연장하는 데 찬성표를 던졌다. 2017년에는 터키가 더 안전하고 자유로워지리란 희망이 새해를 맞이하기도 전부터 사라져버린 것이다.

국가비상사태는 지난 7월 처음 선포된 이후 거듭되는 인권침해의 배경막 역할을 하고 있다. 공정재판에 관련된 주요 조항은 물론 고문과 부당대우를 막는 핵심 안전장치도 삭제되었다. 정부는 이처럼 터무니없이 적용범위가 넓은 긴급조치를 이용해, 비판할 권리를 행사하려는 사람들의 입을 막고 위협하고 있다.

일례로, 기자인 에롤 왼데로글루와 아멧 네신, 인권옹호자인 세브넴 코룰 핀칸시는 신문사 외즈귈 귄뎀과 연대하는 캠페인에 참여했다가 “테러 선동” 혐의로 기소될 처지에 놓였다. 아슬리 에르도안이 석방된 다음 날, 터키 정부는 유명 고발언론인인 아멧 시크를 “테러조직 선전” 혐의로 기소했다. 이념이 전혀 다른 세 개의 단체에 연관되어 있고, 특히 정부가 쿠데타 시도의 배후로 지목하는 ‘귈렌 운동’에도 참여했다는 이유였다. 시크가 수 년간 귈렌 운동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해 왔다는 사실은 완전히 무시됐다.

현재 터키가 극심한 안보 위기에 직면했고, 자국 관할권 내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쿠데타 시도 외에도, 2016년에는 자칭 이슬람국가(IS)와 쿠르드노동당(PKK)의 분파인 쿠르드 자유의 매(TAK) 등의 무장단체가 민간인을 잔혹하게 공격하는 일이 거듭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처럼 불어나는 위협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다양한 목소리가 참여해 공개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사안이다.

그 대신 터키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짓밟고, 다른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누구든 잡아 가두며 국민의 공포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 Ozan Kose/AFP/Getty Images

© Ozan Kose/AFP/Getty Images

2016년은 터키에게 아주 깊은 상처를 남긴 한 해였다. 어디서나 두려움이 뚜렷이 맴돌고 있다. 이스탄불 시민들은 공공 장소에서는 누구나 경계하는 표정을 하고 매우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집에서는 “공개토론”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같은 의견을 말하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소셜미디어 사이트는 차단되고, 접할 수 있는 언론매체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거듭 좌절한다. 삶이 무채색으로 변해 버린 기분이다.

이러한 탄압은 터키 사회의 구조 자체를 파괴할 위험이 있다. 최근 영구 폐쇄된 시민사회단체 중에는 고문과 가정폭력 생존자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 난민과 국내실향민에게 구호를 제공하는 지역기반 인도주의 단체, 터키의 대표적인 어린이 인권단체인 귄뎀 초주크(Gündem Çocuk)도 있다. 이처럼 활발한 시민사회가 불모지로 전락해가고 있고, 이렇게 파괴된 시민사회가 미칠 영향은 어떤 표현을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혼란스럽고 두려운 시기일수록, 언론인과 활동가, 인권옹호자의 용기 있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가장 필요함에도 이들은 교도소의 시커먼 감방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

터키에서의 새해는 가장 최악의 형태로 시작됐다. 이미 공격당할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의견을 표현하는 것까지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미 지난해 수백 명의 생명을 잃은 것을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유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

부엌에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하면, 아일린은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또 하루를 무사히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내일 아일린에게, 터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 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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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나라가 자유를 잃다’

독일을 대표하는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지난 13일 이례적으로 특별호를 발간해 터키 정권을 강력 비판했다. 화살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정조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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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의 총리와 1번의 대통령. 2014년에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헌법까지 바꿨다. 그리고 이제 21세기의 술탄을 꿈꾸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사진 출처: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581769)

슈피겔은 에르도안 대통령을 ‘독재자’로 규정하며, “개혁가에서 폭군으로 변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일한 이슬람 회원국으로 서로를 우방국이라고 치켜세우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어졌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터키의 대표적 지성 오르한 파묵도 앞선 11일 이탈리아 일간 라레푸블리카 1면 기고문을 통해 “터키가 법치국가로부터 멀어져 가장 빠른 속도로 공포정치 체제로 가고 있다”며 에르도안 대통령을 성토했다. 터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터키의 ‘이명박’에서 ‘박정희’로

물론 에르도안 대통령은 1922년 술탄(오스만 제국 황제)를 없애고 터키 공화국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케말 파샤)에 이어 제2의 국부로 국민적 추앙을 받는다. 지난 7월 군부의 쿠데타 시도를 ‘국민의 힘’으로 물리쳤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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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발생한 쿠데타는 터키 국민들이 직접 쿠데타 군에 맞서고, 군부 퇴출을 요구하는 야간 시위를 벌이는 등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 이를 계기로 에르도안은 정국 장악력을 높여갔다. 그래서 이번 쿠데타가 에르도안에 의한 자작극이라는 추측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사진 출처: http://www.stevenh.co.kr/1174)

총리 3선에 마친 뒤 연임 제한에 걸리자 헌법을 바꿔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서 ‘터키의 푸틴’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지만, 국민들은 선출된 권력인 에르도안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살인적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을 잡고, 장기 경제 호황을 이끈 공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복귀 일성으로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권력보다 더 높은 권력은 없다”고 호응했다.

하지만 위기를 넘기자 국민은 잊혀지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즉각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장기 집권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의회를 거치지 않고 즉각 발효되는 칙령 제정권도 손에 쥐었다.

박정희 유신 정권의 ‘긴급조치’를 떠올리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에르도안 정권에 주어지면서 정적 숙청과 민주주의 탄압이 터키의 일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치사에 빗대 에르도안 대통령이 ‘터키의 MB(이명박)’에서 ‘터키의 박정희’가 돼 가고 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꾀하며 터키만 자유를 잃은 게 아니다. ‘신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되려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민주주의 탄압에 따른 외교적 고립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와 거리를 급격히 좁히면서 유럽에 제2의 냉전 전선이 그어지는 모양새다.

자수성가한 이슬람 근본주의자

에르도안 대통령은 서민적 친화력에 자수성가 스토리까지 여러모로 우리나라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비견된다.

그는 1954년 터키 북동부 흑해 연안의 항구도시 리제의 엄격한 수니파 무슬림 집안에서 태어났다. 해안경비대원이었던 그의 부친은 자녀들이 더 나은 교육환경에서 자라길 바라며 에르도안 대통령이 13세가 되던 해에 이스탄불로 이주했다.

이스탄불 변두리 거리에서 레몬에이드와 참깨번즈(빵)를 팔아 용돈을 마련해야 했던 도시 빈민가 소년 에르도안은 이슬람 학교를 다니며 꿈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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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은 이스탄불 근처의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13세때 이스탄불로 이주했다. 그의 어린시절 모습(왼쪽 사진). 또 그는 Marmara대학 경영학과 재학 당시, 세미프로 축구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슬람주의가 자양분이 됐다. 세미 프로 축구선수로 뛰며 대학에 다니던 그가 정치에 눈을 뜬 것도, 훗날 이슬람주의자 최초로 터키 총리에 오르는 이슬람 운동가 네흐메틴 에르바칸을 만나면서다.

그는 에르바칸을 정신적 스승으로 삼은 뒤 뼛속까지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된다. 이스탄불 교통국 관리로 일하던 1980년 전역 군인 출신의 국장이 콧수염을 밀라는 지시를 하자 이를 거부하고 사표를 쓴 일화로 유명하다.

에르바칸이 이끄는 복지당에 몸담아 1991년 처음으로 의원에 당선될 당시 지역구가 터키 이슬람 원리주의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중부 아나톨리아 지역의 카이세리였다.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의 시장으로 전국적 인지도 얻은 뒤 대권을 쥐었다는 점도 이 전 대통령과 닮은 꼴이다. 1994년 40세 나이에 인구 1,000만명이 넘는 이스탄불의 시장이 된 그는 물 부족ㆍ대기 오염ㆍ교통 체증 문제 등 시의 3대 난제를 해결하면서 정계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군부가 1997년 ‘세속주의를 위협한다’는 명분으로 당시 총리였던 에르바칸을 실각시키자, 에르도안 대통령은 명실상부 터키 이슬람주의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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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의 정치적 스승인 에르바칸(왼쪽 사진). 그는 케말 파샤의 군부 5대 정책중 세속주의 정책에 반하는 이슬람정당을 창당했다. 1970년대는 연합내각을 구성해 2차례 부수상을 역임했다. 그러나 이슬람정당 활동으로 군부에 의해 구금 되는 등 정치활동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오른쪽 사진은 에르도안이 1983년 창당한 복지당에서 연설하는 모습.

군부는 헌법재판소 판결을 통해 복지당도 해산시킨다. 이른바 ‘무혈 쿠데타’ 당시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탄불 시장 신분으로 “이슬람 사원은 우리의 병영이며, 신도는 우리의 병사”라는 내용의 시를 공개 석상에서 낭송했다 체포 된다.

그는 국민을 선동했다는 혐의를 적용 받아 4개월간 복역해야 했지만, 대중에게 그는 언론의 자유 수호자로 각인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1년 이슬람계 정당인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한 이후 승승장구 했다. 이듬해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하며 단독 정부를 구성했고, 2003년 처음으로 총리에 취임한 이후 2007년과 2011년 총선에서 잇따라 승리해 총리 3연임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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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은 2001년 동료들과 함께 정의개발당(AKP)를 창당했다. 이후 에르도안은 선거에서 연승하며 3차례나 총리를 연임한다.

2009년과 2014년 치러진 지방선거까지 모두 승리로 이끌면서 ‘선거의 술탄’으로서의 면모도 과시했다.

경제 성과로 선거 연승… 정적 귤렌 숙청으로 장기집권 틀

에르도안 대통령은 경제 해결사를 자처하며 선거에서 연전연승 한다. 지난 2004년 ‘0’을 여섯 자리 없애는 화폐단위변경(리디노미네이션)을 전격 실시하는 등 총리 취임 초기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부터 잡았다. 커피 한 잔에 100만 리라(터키 화폐 단위)에 달하는 ‘세계 최고액권’ 리라는 터키 경제의 실패의 상징과도 같았다.

국제금융기구(IMF) 구제금융 프로그램도 착실히 이행하며 총리 재임 10년 동안 터키의 국내총생산(GDP)를 3,030억달러에서 8,172억달러로 3배 가까이 키웠다. 20%대였던 실업률은 10% 선으로 떨어뜨렸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경제 노선에는 이슬람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책이 바탕에 깔렸다.

주류세를 인상하고, 터키 국민의 95%를 차지하는 무슬림에 대한 각종 경제혜택을 제공했다. 식료품 등 생필품의 가격을 최대한 낮추는 대신 자동차 및 사치품에 대한 과세를 강화했다. 저소득ㆍ저학력의 이슬람 유권자들로부터 절대적 지지가 뒤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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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을 상징하는 보스포러스 다리. 이 다리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한다. 에르도안은 재임 중 거둔 경제 성과를 바탕으로 장기 집권에 성공했다. (사진 출처: BBC)

힘을 얻은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슬람 노선 강화에 번번히 제동을 걸어온 군부 힘 빼기에 나선다.

에르도안 정권은 2010년 쿠데타 음모를 사전에 적발했다며 군부 숙청을 시작했다. 이른바 ‘철퇴 사건’으로 관련자 300명이 수감되고, 군 장성의 20%가 옷을 벗었지만, 사법부의 판결이 엇갈리면서 실제 쿠데타 음모가 있었는지는 지금까지 확정되지 않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대신 경찰력을 강화해 자신의 우군으로 삼았다. 지난 7월 군부 쿠데타를 제압한 핵심 세력이 경찰이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집권 세력 내부 권력 투쟁에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가장 큰 힘이 된 동지이자 잠재적 경쟁자였던 온건 이슬람 사상가 페툴라 귤렌이 타깃이 됐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지난 2008년 진행한 세계 최고 100대 지성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세계적 석학이기도 한 귤렌은 터키 사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군부 숙청에 결정적 역할을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귤렌을 권력의 바깥으로 내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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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렌(왼쪽 사진)은 이슬람 교육과 사회 운동을 이끄는 저명한 학자이다. 그의 추종세력이 언론, 정치, 군과 검경에 퍼져 있어 그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귤렌과 에르도안(우)은 세속주의에 대항한 정치적 동지였다. 귤렌은 에르도안이 군부를 숙청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사진 출처: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581820&plink=TEXT&co…)

두 사람의 관계는 2013년 에르도안 대통령과 그의 아들로 추정되는 인물이 10억달러(1조여억원) 규모의 비자금을 어떻게 숨길지 논의하는 전화 통화 감청파일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파국을 맞는다. 앞서 터키 검찰은 비리 혐의로 에르도안의 3남을 포함한 정권 주요 인사 52명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고, 에르도안 당시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가 터키 전역에서 벌어졌다.

최악의 위기에 직면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더욱 노골적으로 권력에 대한 집착을 드러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비리 스캔들을 정부 내 범죄집단이 외부세력과 결탁해 체제 전복을 노린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하며 그 배후로 귤렌을 지목하고 1급 지명수배 테러리스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비리 혐의를 수사하던 검찰과 경찰을 국가전복 및 불법도청 협의로 파면하거나 좌천시켰다. 비리 스캔들을 취재한 기자들을 체포하고, 이를 보도한 일간지 ‘자만’을 강제 법정관리에 처했다. 비리 스캔들이 퍼져나가지 못하도록 트위터도 차단한다.

경쟁자가 사라지자 에르도안 대통령의 독주가 시작된다. 헌법을 바꿔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한 후 대선에 나가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총리에서 대통령으로 자리를 바꾸면서 내각제를 대통령 중심제로 전환하려는 시도에도 나섰다. 비판 세력에는 무차별적 철퇴를 가하고 있다.

전가의 보도 된 ‘반테러법’… 국제사회 고립 자초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인권침해와 언론탄압 비판에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배경에는 ‘반테러법’이 자리하고 있다.

반테러법에 저촉돼 유죄 판결을 받은 인원은 지난해 8,000명에 달한다. 대통령 모욕죄도 비판 목소리 내는 이들을 옥죄는 수단으로 주로 활용된다. 최근 1년 반 사이 대통령 모욕죄로 기소된 사람만 오르한 파묵을 비롯해 2,000명에 육박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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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헌법은 대통령 모욕죄를 명문화하고 있다. 에르도안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2000명이 넘는 사람이 이 죄에 걸려 고욕을 치뤘다. 여기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왼쪽 사진)과 미스 터키 출신도 포함된다.

한때 이슬람 민주주의의 성공한 모델로 꼽혔던 터키는 이제 유럽의 골칫거리가 돼 가는 모양새다.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철퇴와 시리나 난민 문제 해결이 시급한 유럽연합(EU)로서는 터키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하지만 에르도안 정권이 정적 제거에 테러법을 활용하며 언론탄압과 인권침해를 자행하는 상황을 묵인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터키로서는 경제 침체의 돌파구로 여겨왔던 EU 가입이 당분간 힘들어지면서 곤혹스런 상황이 됐지만, EU의 반테러법 수정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터키는 대신 러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8월 쿠데타 시도 이후 첫 해외순방지도 러시아를 방문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지난해 터키 전투기의 러시아 전폭기 격추 사건으로 훼손됐던 양국 관계를 전면 복원하기로 합의했다.

러시아와 서방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시리아 문제 등으로 제2의 냉전을 방불케 하는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나토의 유일한 이슬람 회원국 터키마저 EU와 마찰을 빚으며 러시아와 거리를 좁히면서 유럽 정세의 불확실성이 갈수록 증폭되는 모양새다.

목, 2016/09/2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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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얻기 위해서는 사우디, 터키 정부의 협조 필요

 

터키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유명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가 비사법적 처형을 당했을 가능성에 대해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유엔 조사를 시급히 요구해야 한다고, 언론인보호위원회(CPJ)와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국제앰네스티, 국경없는기자회가 공동으로 밝혔다.

사실을 은폐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사우디 정부와의 수익성 좋은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 사건을 비밀에 부치려는 국가들에 맞서려면 유엔이 개입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로버트 마허니(Robert Mahoney) 언론인보호위원회 사무차장


유엔은 조사를 통해 카슈끄지가 강제실종되고 피살까지 당했을 가능성이 있는 이번 사건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밝혀내야 한다. 사건과 관련된 지시, 음모, 작전 수행 등에 책임이 있는 사람을 모두 찾아내 확인하는 것이 조사 목표가 되어야 한다.
로버트 마허니(Robert Mahoney) 언론인보호위원회 사무차장은 “터키는 시기적절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투명한 조사에 착수할 것을 유엔에 요청해야 한다”며 “사실을 은폐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사우디 정부와의 수익성 좋은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 사건을 비밀에 부치려는 국가들에 맞서려면 유엔이 개입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밝혔다.
유엔 조사팀이 수집한 증거는 이후 책임자를 기소하는 데 사용될 수 있도록 보존되어야 한다. 조사팀은 필요한 경우 어디든 이동할 수 있고, 잠재적 증인 또는 용의자와 아무런 개입 없이 면담할 수 있도록 완전한 접근권을 부여받아야 한다. 또한 조사팀은 사건에 관련되어 있다는 신뢰할 수 있고 법정에서 인정될 만한 증거가 발견된 사람이면 누구든 재판에 회부할 수 있는 방안을 권고해야 한다.
카슈끄지는 2018년 10월 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카슈끄지가 영사관에 도착한 직후 잠깐 머물다 바로 떠났다고 주장하며 카슈끄지의 실종에 관여한 바 없다고 부인했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2017년 6월 모하마드 빈 살만이 왕세자가 된 이후로 국내의 비판적인 의견을 더욱 강도 높게 탄압하기 시작했고, 인권 증진 및 보호를 위한 평화적 표현까지도 포함해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은 조직적으로 억압해왔다. 종교 사제, 기자, 학자 등 사실상 모든 인권옹호자 및 비판적 인사가 체포의 대상이 됐다.
카슈끄지가 실종되기 1년여 전부터 부정부패와 여성인권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해 보도했던 기자들은 표적이 되어 체포를 당했다. 언론인보호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그 중 여러 명은 기소도 되지 않은 채 알 수 없는 장소에 구금되어 있다.
주요 여성인권옹호자인 루자인 알 하스룰, 이만 알 나피안, 아지자 알 유세프 등 많은 사람이 혐의도 없이 자의적으로 체포되어 수 개월 동안 구금되어 있다. 이 여성활동가들은 표현과 결사 및 집회의 자유를 평화적으로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반테러 특별법원에서 심각한 불공정재판을 거쳐 장기간의 징역형이나 사형까지도 선고받을 수 있다.

만약 언론인에 대한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에 유엔이 진정으로 맞서 행동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이번 일처럼 수 년 만에 벌어진 가장 충격적이고 극단적인 사건을 조사하는 데 전념해야 할 것이다.

크리스토프 들루아르(Christophe Deloire) 국경없는기자회 사무총장

터키 정부는 카슈끄지가 실종된 10월 2일 범죄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10월 15일에는 수사의 일환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서 법의학적 조사를 수행하기도 했다. 수사에 관련된 정보는 여러 차례 유출되며 언론에 공유됐는데, 이 정보에는 카슈끄지가 영사관 내에서 살해당했음을 입증하는 음성 및 영상 기록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10월 15일,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검찰에 카슈끄지 실종 사건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카슈끄지의 강제실종 및 잠재적 피살 사건에 사우디 정부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고, 사우디 형사사법제도가 독립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사우디 정부가 어떠한 조사를 한다 해도 그 공정성에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카슈끄지의 약혼자인 터키 국적의 하티스 셍기즈는 언론매체를 통해, 10월 2일 카슈끄지가 두 사람의 혼인신고를 위해 사우디 영사관을 방문했을 당시 그녀에게 휴대폰을 맡기고 자신이 2시간 이내에 돌아오지 않을 경우 터키 정부에 알리라 지시했다고 밝혔다. 셍기즈가 그의 모습을 본 것은 그 때가 마지막이었다. 터키 정부는 카슈끄지가 영사관 내부에서 사우디 요원들에게 피살된 후 시신이 훼손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크리스토프 들루아르(Christophe Deloire) 국경없는기자회 사무총장은 “이는 자말 카슈끄지 사건에 관해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독립적인 수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더욱 자명히 보여주는 부분”이라며 “만약 언론인에 대한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에 유엔이 진정으로 맞서 행동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이번 일처럼 수 년 만에 벌어진 가장 충격적이고 극단적인 사건을 조사하는 데 전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이 이러한 조사를 수행했던 전례도 있다. 2008년, 파키스탄은 당시 반기문 전 사무총장에게 베나지르 부토 전 수상의 피살 사건에 대해 조사에 착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진행된 조사는 이후 수사관들의 폭로에 따라, 파키스탄 정부가 부토 전 수상의 피살과 관련된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였음이 드러났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자말 카슈끄지의 행방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당시 사건에 대해 유엔의 공정한 조사가 이루어질 경우 가장 이득을 볼 것이다.

셰린 타드로스(Sherine Tadros) 국제앰네스티 뉴욕사무소 소장

카슈끄지의 강제실종 및 잠재적 피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지체 없이 바로 착수해야 하며, 이 조사는 철저하고 공정하면서도 독립적이어야 한다. 구테레스 유엔 사무총장은 국제적 조사에 폭넓은 경험이 있는 고위급 수사관을 팀의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 조사가 끝나면 사무총장은 전반적인 조사 결과를 사후 대책에 관한 권고와 함께 공개보고서로 발표해야 한다.
루이스 카보누(Louis Charbonneu) 휴먼라이츠워치 유엔국장은 “자말 카슈끄지의 가족들과 전 세계 사람들은 카슈끄지에게 일어난 일에 관한 모든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며, “사건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불완전한 해명과 편파적인 조사로는 충분하지 않다. 카슈끄지의 강제실종의 배후를 밝히고 처벌할 수 있는 신뢰도와 독립성을 보유한 곳은 유엔뿐”이라고 밝혔다.
터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모든 유엔 회원국은 유엔이 카슈끄지에게 벌어진 일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필요한 모든 권한과 지원을 얻을 수 있도록 전면 협조해야 한다. 수월한 조사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는 모든 관련 부지 및 관계자의 불가침권 또는 면책권과 같이 1963년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등의 국제조약에 따라 부여받은 외교적 보호조치를 즉시 포기해야 한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은 해당 사건과 관련된 이러한 외교적 조치를 모두 포기할 것을 요청했다.

자말 카슈끄지의 가족들과 전 세계 사람들은 카슈끄지에게 일어난 일에 관한 모든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루이스 카보누(Louis Charbonneu) 휴먼라이츠워치 유엔국장

터키는 모든 증거를 제출해야 하며, 관계자들이 사우디 영사관에서 카슈끄지가 살해됐음이 드러났다고 언론을 통해 거듭 주장했던 음성 및 영상 기록도 함께 제출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카슈끄지의 강제실종에 관여한 바가 없다고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살인 사건 조사를 위해 터키와 사우디가 새롭게 공동 구성한 실무그룹이 성과를 내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셰린 타드로스(Sherine Tadros) 국제앰네스티 뉴욕사무소 소장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자말 카슈끄지의 행방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당시 사건에 대해 유엔의 공정한 조사가 이루어질 경우 가장 이득을 볼 것”이라며 “신뢰할 수 있는 유엔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카슈끄지 실종에 대해 어떻게 해명하든 사우디에 대한 의혹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유명 기자다. 오카즈(Okaz)와 사우디 가제트(Saudi Gazette) 등 다수의 아랍어 및 영어 일간지에 기고했으며, 사우디 일간지 알 와탄(al-Watan)의 편집장을 연임했다. 2016년 12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카슈끄지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를 비판하자 사우디 정부는 공개적으로 카슈끄지를 맹렬히 비난했다. 카슈끄지는 2017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한 후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지의 정기 기고가로 활동했다.
일, 2018/10/2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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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19 (Seoul ADEX 2019 : Aerospace&Defense Exhibition 2019, 이하 아덱스)는 2년마다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방위산업 전시회입니다. 각국의 유수한 군수업체와 각국 정부의 방위산업 담당자가 참여하며, 실제 수많은 무기거래가 이뤄집니다. 전시회에 참가하는 군수업체들은 자사의 무기가 얼마나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목표물을 제거할 수 있는지 홍보하며,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될수록 더 많은 무기가 거래됩니다.

 

이에 아덱스 저항행동은 전 세계 무기 산업이 초래하는 비윤리성과 인명 살상, 군비경쟁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정부의 방위 산업 육성 정책을 비판하는 칼럼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아덱스가 진행되는 10월 14일부터 20일까지 무기 박람회와 무기 거래의 본질을 폭로하는 글을 연재할 계획입니다. 아덱스 저항행동은 무기 박람회를 반대하는 활동을 하기 위해 모인 평화활동가들, 평화운동단체들의 네트워크입니다.  - 기자 말

 

☞ 이전기사 : 한국의 무기가 예멘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http://omn.kr/1lb8a" rel="nofollow">http://omn.kr/1lb8a


터키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참극, 한국에서 시작된다?

[전쟁없는 세상을 위하여 ①] 세계 평화 위해 한국에서 시작된 전쟁을 막아야 한다

 

신미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

 

 

시리아와 한국은 평행우주인가

 

여기 완전히 다른 두 세상이 있다. 지난 9일, 터키군이 시리아 북부 쿠르드 지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터키가 시리아 쿠르드족을 몰아내기 위해 쿠르드 마을을 공습하면 이에 맞선 쿠르드 민병대가 반격하는 형태로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터키는 이번 군사작전에 '평화의 샘(Peace Spring)'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민간인 사상자와 난민이 속출하고 있는 이 무자비한 공격 어디에도 '평화'는 없다. 

 

당연한 수순처럼 양측 모두에서 어린이 등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집계가 어려운 실정이지만 시리아인권관측소에 따르면 10월 12일 기준 적어도 2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피해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쿠르드 적신월사(적십자에 해당하는 이슬람권 기구) 소속 하산 박사는 최근 트위터를 통해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해 27명이 사망했으며 30∼35명의 아이가 다쳤다"고 밝혔다. 유엔은 19만 명 이상의 피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곳에서 굉음을 내며 나는 최신형 전투기와 무장 헬기, 장갑차는 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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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서울 아덱스의 전투기 곡예비행 모습 (사진 = 아덱스저항행동)

 

 

시리아에서 비행기로 겨우 10시간 떨어진 한국의 성남 서울 공항. 2년마다 열리는 아덱스가 15일인 오늘부터 시작됐다. 전 세계 34개국 430개 업체가 참가하는 등 올해도 역대 최대 규모다. 행사 기간 실내에서는 우주기기, 지상 장비 실물과 모형, 무기체계 관련 장비가, 실외에서는 전투기, 헬기 등 항공기 45종 61대와 K2전차, 패트리어트, 타이곤 등 지상 장비 31종 31대가 전시된다. 매일 시범비행과 축하비행, 곡예비행이 이어질 예정이다. 

 

화창한 가을 하늘을 가르는 최첨단 전투기에 이곳 사람들은 넋을 잃을 것이다. 주말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은 최신식 무기를 보고 만지고 타고 즐길 것이다. 2017년부터 시작한 '학생의 날'에 참가한 학생들은 항공 및 방위산업에 대한 특강이나 체험을 통해 당장이라도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이것은 마치 평행우주처럼 보인다. 같은 시간, 같은 세계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정반대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 평행우주란 없다.

 

 

쿠르드 공격에 쓰인 한국산 무기 

 

'첨단 기술'의 허울을 쓴 아덱스의 실상은 '살인 무기'의 전시회다.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무인기와 축구장 서너 개쯤은 순식간에 날려버릴 수 있는 확산탄, 음속으로 하늘을 가르는 최신예 전투기 등 이 무기들의 능력은 더 정밀한 타격, 더 많은 살상으로 평가된다. 축제 분위기 속에서 거래되는 이 무기들이 결국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는 것이다. 전쟁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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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의 "평화의 샘" 군사작전에 동원된 T-155 전차. 한국의 K9 자주포 기술이 수출되어 만들어졌다. ⓒ 터키 국방부 홈페이지

 

 

지난 10일(현지시간) 터키 국방부는 홈페이지에 '평화의 샘 작전 개시'라는 설명과 함께 T-155 포격 장면을 촬영한 사진을 게재했다. T-155는 한국이 터키에 기술과 부품을 수출에 현지에서 생산한 K9 자주포의 파생형으로, 지난 2016년 8월 터키가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도시를 점령할 때 투입됐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이하 SIPRI) 자료에 따르면 2000~2017년 세계 자주포 수출 시장 점유율에서 K9 자주포가 48%, 572대로 1위를 차지했다. 지난 5월 서주석 전 국방부 차관은 '2019 터키 국제방산전시회' 참석차 터키를 방문해 한국 기업의 방산 수출을 홍보하고 터키 국방부 주요 인사들을 만나 양국의 국방 방산 분야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핀란드,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웨덴, 독일, 프랑스 등이 터키로의 무기 수출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나 한국산 무기가 쿠르드 공격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전 세계에 알려진 상황에도 한국 정부는 터키 무기 수출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즉 한국이 수출한 무기가 쿠르드 여성과 아이들을 공격하고 있음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과거에도 터키에 최루탄을 수출해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한국은 2011년부터 2016년 사이 387만 발의 최루탄을 터키에 수출했다. 2014년 14살 소녀가 한국산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자 터키 시민단체는 <뉴욕타임스>에 반대 광고를 내고 한국을 비난했다. 한국과 터키 시민단체들의 저지 활동을 통해 최루탄 수출은 막았지만, 결과는 국내 한 기업이 터키에 생산라인을 세우는 것으로 귀결됐다. 분쟁과 살상, 파괴를 토양 삼아 성장하는 무기 산업의 진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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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의 반정부 시위에 진압용으로 사용된 한국산 최루탄 ⓒ 민주노총

 

 

칼을 쟁기로 바꾸자며 칼을 판매하는 정부 

 

지난해 남북 정상들은 모든 군사적 적대행위를 멈추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로 나아갈 것을 천명했다. 또한 군사적 신뢰 구축에 따른 단계적 군축을 합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이 발전한 만큼 책임 의식을 갖고 동아시아와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며 '칼이 쟁기로 바뀌는 기적'이 한반도에서 일어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내년도 국방 예산을 올해보다 7.4% 증가한 50조1527억 원으로 편성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40조3347억 원에서 2년 반 만에 약 10조 원이나 늘었다. 그중 방위력개선비는 2009년~2017년 평균증가율의 2배로 늘었고, 이는 첨단무기체계 확보에 집중되었다. 더불어 F-35A 추가 도입, F-35B 도입을 염두에 둔 대형수송함 건조, SM-3 미사일 도입, 핵잠수함 검토까지 공격적인 무기 도입 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대통령의 말과는 반대로 쟁기를 칼로 바꾸고 있는 형국이다.  

 

무기 수출은 또 어떤가? SIPRI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무기 수출 11위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ADEX 개막식 축사에서 "우리 방위산업도 첨단무기 국산화 차원을 넘어 수출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며 방위 산업 육성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또한 정부가 사람, 평화, 상생번영의 가치를 내세우며 추진하고 있는 신남방정책의 한 축에는 무기 수출이 있다.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공허하게 느껴진다. 

 

 

STOP ADEX, MAKE PEACE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판과 미국의 경제제재 발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누가 어떻게 말하든 우리는 절대 멈추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이 참극을 멈추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비록 터키의 공격을 직접 막을 수 없지만, 정반대 세상에서 축제처럼 열리고 있는 무기 전시회를 멈출 수는 있다. 그동안 전 세계의 평화활동가들은 방산 산업의 여러 가지 문제점과 무기거래의 비인도적인 측면을 알리고 여러 나라에서 열리고 있는 무기 전시회를 막기 위해 행동해왔다. 한국의 평화단체들도 2011년부터 방위산업 전시회를 막기 위한 다양한 저항 행동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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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서울 아덱스 반대 캠페인의 모습 ⓒ 박승호

 

 

올해도 한국의 평화단체들은 '아덱스 저항 행동'을 꾸리고 무기 전시회의 실상과 무기 수출을 통한 방산 산업의 문제점을 알릴 계획이다. 또한 전시회가 시민들에게 공개되는 퍼블릭데이(10.19~10.20)에 맞춰 전시장 앞에서 무기 전시회와 무기 거래를 반대하는 직접행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2017년부터 초⋅중⋅고⋅대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학생의 날' 프로그램을 폐지하기 위해 공군본부 등에 공개질의서를 보내고, 15세 미만의 아동 청소년들에게 적대 행위에 직접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명시하고 있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위반하면서까지 '학생의 날'을 진행하는 이유와 폐지 여부를 물을 예정이다. 

 

무기 산업은 필연적으로 안보 불안과 분쟁을 먹고 자란다. 무기를 만들어 파는 이들에게 평화와 안정은 '사업의 위기'이다. 시리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곳에서 시작되는 전쟁을 막는 것이다.

 

오마이뉴스에서 보기 >> http://omn.kr/1lbhs" target="_blank" rel="nofollow">http://omn.kr/1lbhs

수, 2019/10/16-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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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쿠르드 침공 규탄 한국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터키는 반인도적 군사행동 중단하고 군대를 철수하라

한국 정부는 터키로의 무기 수출 즉각 중단하라 

일시·장소 : 10. 21. (월) 오전 11:00, 광화문 남측 광장

 

취지와 목적

지난 9일, 터키군이 시리아 북부 쿠르드 지역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터키 정부는 이번 군사작전을 개시하며 ‘평화의 샘(Operation Peace Spring)’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쿠르드인을 몰아내기 위해 쿠르드 마을을 무차별적으로 공습했습니다. 그 가운데 어제(17일), 터키는 미국과의 회담 이후 쿠르드 민병대(YPG)가 안전지대 밖으로 철수할 수 있도록 120시간 동안 군사작전을 중단하고, 터키군이 안전지대의 관리를 맡겠다고 밝혔습니다. 반인도적인 군사작전을 일시적이나마 중단한 것은 다행이지만, 터키군이 떠나지 않는 이상 명분 없는 침공이 어떻게 종료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터키가 군사작전을 시작한 이후 약 25만 명이 고향을 떠났다고 합니다. SOHR은 홈페이지를 통해 "개전 144시간(6일) 동안 약 25만 명이 터전을 잃었고 시리아민주군(SDF), 터키군 양쪽에서 295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나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터키가 침공을 시작한 이후 연일 민간인 피해를 비롯한 참혹한 소식들이 전달되었습니다. 

 

한편, 터키 국방부는 ‘평화의 샘’ 작전 개시를 알리며 T-155 포격 장면을 촬영한 사진을 웹사이트에 게재하였습니다. 이는 한국이 터키에 기술과 부품을 수출하여 현지에서 생산한 K9 자주포의 자매품입니다. 한국은 지난 10년 간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터키에 무기를 많이 수출한 국가입니다. 핀란드,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웨덴, 독일, 프랑스 등 국제사회는 터키로의 무기 수출 중단을 선언한 상황이지만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이에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은 다가오는 10월 21일(월) 오전 11시, 광화문 남측 광장에서 터키의 쿠르드 침공 규탄 한국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터키는 반인도적 군사행동 중단하고 군대를 철수하라, 한국 정부는 터키로의 무기 수출 즉각 중단하라>를 개최합니다. 기자회견에는 경계를넘어, 국제민주연대, 나눔문화,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피스모모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기자회견 직후 참석자들은 한국 시민사회단체의 서한을 주한 터키대사관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개요

제목 : 터키의 쿠르드 침공 규탄 한국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터키는 반인도적 군사행동 중단하고 군대를 철수하라, 한국 정부는 터키로의 무기 수출 즉각 중단하라>

 

일시·장소  : 2019. 10. 21.(월) 오전 11:00, 광화문 남측 광장 (세월호 기억저장소 앞)

 

주최 : 터키의 쿠르드 침공을 규탄하는 한국시민사회단체

 

프로그램 

- 각계발언

- 기자회견문 낭독

 

문의 :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담당: 전은경 간사 02-723-4250, [email protected]

 


귀 언론사의 취재와 보도를 요청합니다.  

 

보도협조https://docs.google.com/document/d/1NgzJA8jZZyHKsAVeKw9TCyXXmines-54qwB1... target="_blank" rel="nofollow">[원문보기/다운로드] 

일, 2019/10/20-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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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102명 중 34명 신원 1차로 확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와 집필거부를 선언하는 교수들의 성명이 봇물을 이루는 가운데 최근 국정화를 지지하는 교수들이 등장해 주목을 끌었으나 뉴스타파 확인 결과 이 중 상당수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 몸담았거나 새누리당 출신 인물로 확인됐다. 특히 이들은 기자회견 참석자 3명 이외엔 소속 대학과 전공을 밝히지 않은 채 이름만 공개하는 상식 밖의 행태로 동명이인이 지지 성명 참가 교수로 오인되게 하는 등 큰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이에 따라 성명에 참가한 명단을 전수 조사해 현재까지(10월 21일 자정) 신원이 확인된 이름을 소속 학교와 전공, 그리고 경력까지 함께 공개한다.

나승일 서울대 교수(전 교육부 차관),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 김희규 신라대 교수 등 3명은 지난 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른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부가 책임지고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성명서에는 모두 102명의 교수가 참여한 것으로 돼 있지만 이름만 있고 통상 교수들의 공동 성명이나 입장 표명 때 함께 기재되는 소속 학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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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정치권과 일부 매체에서 지지 성명에 참가한 교수라며 소속 대학과 함께 명단을 공개했는데 전혀 관계가 없는 동명이인이 일부 포함됐다며 항의하는 일이 빚어졌고, 본인의 동의 없이 이름이 올라간 정황도 발견됐다. 뉴스타파는 이 성명에 참여한 것으로 나온 교수 102명을 일일이 접촉을 시도해 1차로 실제 성명에 참여한 교수 34명을 확인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박근혜 대선 캠프나 새누리당 출신이었고, 뉴라이트단체에서 활동하는 인물도 있었다.

상당수가 박근혜 캠프·새누리당·뉴라이트 출신…교학사 교과서 지지 전력도

34명 가운데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출신으로 곽병선, 김용직, 김희규, 나승일, 양정호 교수 등 5명이 확인됐다. 지난 2013년 일제 식민지배 미화 논란으로 이른바 ‘교학사 교과서 파동’을 초래한 교학사 교과서를 지지했던 김용직, 어명하, 이주천, 최진덕, 황홍섭 교수 등 5명도 이번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곽창신, 김성조, 신용수 교수 등 3명은 새누리당 출신이고, 이주천, 김용직 교수 등 2명은 뉴라이트 단체 소속으로 확인됐다. 김용직 교수의 경우 박근혜 캠프, 교학사 교과서 지지, 뉴라이트 단체, 그리고 이번 국정교과서 지지 명단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다음은 현재까지 뉴스타파가 신원을 확인한 교수 명단이다.

국정화 지지 교수 확인 명단

[표-1] 실명 확인 교수 명단(10월 21일 자정 현재)

이름 주요경력 소속 및 직책 전공 이력
곽병선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18대 대통령직 인수위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교육학 ·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행복교육추진단 단장
·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교육과학분과 간사
·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 마퀘트대학교 박사
·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곽창신 한나라당 수석전문위원 세종대학교 교육대학원장 겸 대외부총장 교육행정 및 정책, 직업윤리 · 한나라당 수석전문위원
· 교육과학기술부 학술연구정책실장
·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위원장
· 민주평통 자문회의 자문위원
권한용   동아대학교 대외협력처장 국제경제법  
김광래   가톨릭관동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마케팅 · 대통령자문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 사회통합전문위원
·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사무총장
· 2014년 강원도 교육감 출마
김남현   가톨릭관동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미국사 미국사학회 회장
김도기   창원대학교 음악과 교수 클라리넷, 지휘 · 창원예총 회장
· 한국 지휘연구회 회장
· 경남음악협회 회장
김성조 한나라당의원 한국체육대학교 총장 행정학 · 제16대~18대 국회의원
· 전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김용직 새누리당 100% 대한민국 대통합 위원회
교학사 교과서 지지선언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치외교학 · 새누리당 100% 대한민국 대통합 위원회 위원
· 교학사 교과서 지지 지식인 모임 참여
· 싱크넷(뉴라이트) 상임집행위원
김장수   가톨릭관동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서양근대사  
김종호   서울과기대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
프레스 금형설계,
소성가공개발
· 서울산업대학교 제품설계금형공학과 교수
· 한국과학기술원(KAIST)조교
김태완   전 계명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철학 · 前한국교육개발원(KEDI) 15대 원장
· 前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회 전문위원
· 교육과학강국실천연합 상임대표
· 前대학선진화위원회 위원장
· 사단법인 한국미래교육연구원장
· 교육부 지방교육재정 혁신추진단장 (2015)
김형곤   건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서양사(미국)  
김희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신라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교육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행복교육추진단 추진위원
나승일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18대 대통령직 인수위
서울대학교 산업인력개발학과 교수 산업교육학 ·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과학분과 전문위원
·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행복교육추진단 추진위원
· 전 교육부 차관(2013)
류여해   수원대학교 법학과 겸임교수 법학 · 한국사법교육원 교수
· 국회사무처 법제실 법제관
· 대법원 재판연구관
류호섭   동의대 건축학과 건축학 · 부산광역시청 건설기술심위위원
· 한국교육시설학회 학회 감사
· 대한건축학회 이사
모영기   동원대학교 총장 교육행정학 · 국립교육평가원 원장
· 교육과학기술부 대학정책실 실장
· 문화체육관광부 교직국 국장
박명수   서울신학대학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기독교역사  
박성수   한국학 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사학 ·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
·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
신용수 새누리당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경제학 ·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안보전문위원
· 다물평생교육원 이사
· 새누리당원
신형식   이화여대 사학과 명예교수 사학 ·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
· 제13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 한국고대학회 회장
· 역사교육연구회 회장
양정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교육사회학 새누리당 국민행복 추진위원회 위원
어명하 교학사 교과서 지지선언 전 통일교육원 교수 교육학 교학사 교과서 지지 지식인 모임 참여
이기숙   이화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유아교육과정 · 이화어린이연구원 원장
· 한국 유아교육학회 회장
· 세계 유아교육기구 한국위원회 회장
이주천 교학사 교과서 지지선언
뉴라이트 전국연합 대표
전 원광대학교 사학과 교수 사학(서양사) · 뉴라이트 전국연합 대표
· 교학사 교과서 지지 지식인 모임 참여
이춘수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정치학, 정치교육 · 국립대 발전 추진위원
· 대통령실 정책자문위원 역임
· 교육과학기술부 규제완화위원회위원
이택휘   전 서울교육대학교 총장 윤리교육 · 전 서울교육대학교 총장
· 한영외국어고등학교 교장
· 국학원 원장
· 국가보훈처 정책자문위원
·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이화룡   공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계획 및 설계 한국교육시설학회 회장
정완호   전 한국교원대학교 총장 과학교육 교육학 · 한국생물교육학회 회장
· 한국과학교육학회 회장
조연순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초등교육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초등교육과 명예교수
최진덕 교학사 교과서 지지선언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철학 교학사 교과서 지지 지식인 모임 참여
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고전문학사상 · 세종시 교육감 출마(전국 보수단체중앙회 추대)
· 한국어 교육학회 이사
· 대통령 자문위원
허숙   경인교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교육 · 경인교대 전 총장
· 교육과학기술부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황홍섭 교학사 교과서 지지선언 부산교육대학교 사회교육학과 교수 문학박사 지리학 · 한국사회과교육연구학회 부회장
· 부산좋은학교운동연합 공동 대표
· 교학사 교과서 지지 지식인 모임 참여

소속 대학 밝히지 않아 동명이인 교수 피해 속출

뉴스타파 확인 결과 지지 성명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동명이인인 관계로 성명에 참여한 것으로 오인된 피해자도 11명이나 됐다. 지지 성명 발표 이벤트 주최 측이 참여 교수들의 소속 기관과 직책 등을 기재하지 않고 이름만 발표한데다 정치권이나 언론이 본인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동명이인을 지지 교수라고 공개했기 때문이다.

[표-2] 동명이인-이름이 같아 언론에 지지 교수로 알려졌으나 성명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교수들

이름 소속 및 직책
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장, 숙명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박순우   대구가톨릭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서민규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
신동선   이화여대 수학과 교수
안성수   동신대 사회개발대학원 리더십학과 교수
안성진   성균관대 사범대 컴퓨터교육과 교수
이상정   경상대 건축학과 교수
이원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이정숙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 총장
이재승   서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정동준   대진대 역사문화콘텐츠학부 교수

또 뉴스타파 취재진이 본인 여부를 문의하는 과정에서 일부 교수들은 국정교과서 정책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주최 측이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자신의 이름을 명단에 포함시켰다고 털어놓았다. 명단 자체가 급조됐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표-3]국정교과서는 지지하지만 사전 동의 없이 명단에 포함됐다고 말한 교수들

이름 소속 및 직책
김광래   가톨릭관동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신용수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신형식   이화여대 사학과 명예교수

소속 대학 비공개가 초래한 ‘블랙코미디’

이른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의 기자회견 사흘 뒤인 19일, 한 야당 의원이 지지 성명에 이름을 올린 교수 명단을 전수 조사한 결과 102명 중 역사학 전공자는 6명 뿐이라고 밝혔다. 그 무렵부터 일부 언론에서도 102명의 소속과 경력 등을 분석한 기사가 보도되기 시작했고 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뉴스타파도 자체적으로 지지 성명 교수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웃지 못할 일을 수시로 겪어야 했다.

성명에 참여한 것으로 보도된 박순우 대구카톨릭대 의과대학 교수는 “나는 의사다. 역사 문제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일에 참여했겠나. 동명이인일 것이다”라고 밝혔다. 뉴스타파는 이에 따라 ‘한국연구자정보(KRI)’ 사이트에 등록된 박순우라는 이름의 다른 교수가 있는지 확인했다. 공주대에도 박순우 교수가 있었지만, 확인 결과 지난 7월부터 미국으로 연구년 휴가를 떠난 상태였다. 더구나 공주대 박순우 교수는 지난해 4월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시국선언에 참여한 적이 있는 학자였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현대경제연구원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성명에 참여한 것으로 보도된 강 교수는 “거기에 내 이름이 왜 들어 있는지 모르겠다”며 지지 성명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동명이인인 강인수 수원대 교수에게도 연락해 봤지만 역시 참여한 바 없다고 밝혔다. KRI 사이트에서 검색되는 ‘마지막’ 강인수 교수(부경대·퇴임)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런 경우가 최소 11건에 달한다. 결국 한 야당 의원실의 부실한 조사와 이를 별다른 검증 없이 받아 쓴 일부 언론의 부주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근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지지 성명 기자회견을 연 주최 측이다. 지지 성명 명단에는 ‘김현숙’이라는 이름이 있다. 이 이름으로 KRI 사이트를 검색하면 무려 80여 명이 나온다. 소위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이 소속 대학을 감추는 바람에 전국에 있는 ‘김현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교수나 학자가 잠재적으로 지지 성명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대학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고,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인정받는 중 전문직 중 하나다. 그런 집단이 매우 민감한 이슈에 대해 입장을 내놓으면서 소속 대학조차 밝히지 못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뉴스타파는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직접 참석했던 나승일, 양정호, 김희규 교수에게 102명의 소속 대학이 기재된 명단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특히 이번 성명과 관련해 언론 대응을 담당하고 있다는 양정호 교수는 취재진이 여러 차례 전화와 문자 연락을 취하고, 연구실까지 찾아갔지만 자신이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답 문자만 남긴 채 연락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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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화 반대 불길 맞불 놓으려 ‘지지모임’ 급조 정황 곳곳에 드러나

그렇다면 이처럼 비상식적인 형식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지지 성명은 어떤 과정을 통해 발표되게 된 것일까. 성명의 취지에 공감하고 직접 참여 의사를 밝혔다는 조연순 이화여대 교수는 “명단이 102명이나 되는 줄은 몰랐다. 저는 곽병선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김성조 한국체육대학 총장, 정완호 한국교육단체 총연합회장 등 몇 분이 주도해서 15~20명 정도가 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성명을 주도한 사람은 기자회견장에 직접 참석한 3명의 교수와 조연순 교수가 언급한 3명 등 6명 정도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주축은 곽병선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곽 이사장은 취재진에게 “몇몇 교수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얘기를 나누는 중에 의기투합해서 같은 의견이 나온 거지 딱히 내가 앞장섰다고 얘기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원로 교수는 “지난 주부터 곽병선 교수를 주축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성명서에 이름을 올려달라며 교육학계 교수들에게 연락이 돌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100명이 넘는 교수 명단이 확보되는 과정에서 보수우익단체의 역할이 있었던 정황도 드러났다. 이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어떤 절차를 거쳐 성명에 참여하게 됐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대라는 단체의 대표가 연락을 해와서 부탁한다고 하길래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 단체에서 성명이 나가는 것인 줄로 알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또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도 “성명서에 내 이름을 올리겠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없다. 그러나 내가 보수단체인 애국시민연대에서 활동을 많이 해왔는데, 아마도 그쪽을 통해 이름이 올라간 것 같다”고 밝혔다.

이런 식으로 명단이 작성되다보니 본인의 동의 과정이 생략된 사실상의 ‘명의 도용’이 의심되는 사례도 적지 않게 드러났다. 102인 명단에 기재된 서민규라는 이름을 SRI에서 검색해보면 건양대 기초교양교육대학 소속 교수가 유일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해당 교수는 이번 성명에 참여한 사실도, 어떤 식으로든 관련 연락을 받은 적도 없다고 밝혔다. 또한 성명에 기재된 신동선 교수의 경우도 KRI에서 단 2명이 검색되는데, 1명은 이화여대 수학과 교수로 지난 2009년에 별세한 것으로 확인됐고 다른 1명은 호서예술전문대 교수로 이번 성명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응답했다.

결국 102명의 국정화 지지 교수 명단이 어떤 동의 절차에 따라 작성된 것인지, 명단에 들어있는 전체 이름의 실체는 해당 ‘모임’ 측에서 소속 대학이 기재된 명단을 공개해야만 정확하게 확인될 수 있다. 뉴스타파는 지지 성명 참여 교수들의 신원이 추가로 확인되는 대로 명단을 계속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국정화 찬성 교수들의 지지 이유 들어보니… “일본도 치부 가리고 역사 교육하는데 우리도…”

이번 성명에 참여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이름을 올렸다는 교수들은 현재 34명이 확인된 상태다. 취재진은 이들에게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찬성하는 이유를 물었다. 이들의 대답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

곽창신 세종대 교육대학원장

(현대사 파트는 아예 없어야 된다는 건가요?)
“없어도 돼요. 아직 정리가 안 돼 있잖아요. 5.16 이런 거 가지고 매일 싸우게 만드는 거 아니에요. 5.16이 혁명인지 쿠데타인지는 아직 모르는 거 아니냐, 평가를 더 받아봐야 되지… 뭐가 되든지 중고등학교 역사는 하나가 됐으면 좋겠어요.”

(역사학 전공은 아니시죠?)
“교육행정학 박사에요.역사는 우리가 어릴 때 다 겪어본 거잖아요. 전공이 중요한 게 아니고, 고대사나 중세사는 다르지만 현대사는 우리가 더 잘 알 수 있어요. 우리 때는 고시공부를 했기 때문에…”

(교수님 지론이 교과서는 하나로 해야 된다?)
“그렇죠. 교과서는 하나로, 중고등학교는 하나로 가야죠. 별 오만 걸 삐딱하게 가르쳐 가지고 되겠어요? 일본도 그렇게 자기 치부를 가리고 가르치려고 그러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도 자랑스러운 역사책을 써야 한다는 말이에요.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나쁜 점은 크게 부각시키지 말고. 그런 건 얘들한테는 안 된다… 내가 교육학 선생이에요. 국론이 분열되고 이렇게 전교조 땜에 시끄럽고 그러잖아요. 그런 나라가 어디 있어요. 나는 국수주의자에요, 국수주의자. 멘탈리티가 그렇다고. 나는 6.25 사변 부상자 참전 용사자를 아버지로 두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난 좌익은 절대 용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니까.”

곽병선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지금 역사학계가 해석하고 중요시하는 역사 인식하고 보통 국민의 일반 정서하고 괴리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괴리를 반영하고 있는 게 현재의 집권 세력인 거에요. 집권세력이라는 것은 아시는 것처럼 적어도 대선을 통해서 국민의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어서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가진 세력 아닙니까? 그 사람들이 동의를 못 해주는 역사교육을 한다, 그것은 있을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국론이 분열되는 거예요. 국론 분열시키는 게 역사 교육이 아니에요.”

(그럼 대선에서 국민들이 박근혜 후보를 선택한 것 자체가, 역사에 대한 우파적인 인식을 국민들이 허용하고 용인하고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게 직설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겠죠. 왜냐면 대선 때는 그런 이슈가 있지 않았으니까.”

조연순 이화여대 교수

지금 현재는 역사학자들이 너무나 나름대로의 사관을 심어주려고 노력을 하니까, 그게 학생들에게 오히려 편향된 영향을 준다. 옛날에 우리 시대에는 국가에 대해서 자긍심을 갖게 해줬는데 요새는 너무나 국가를 비판적으로만 보는 사관을 주니까 이건 정말 미래 세대를 위해서 바른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친일 문제나 민주화 문제, 전체적으로 다 그런데, 친일파 문제의 경우 사실은 너무 편파적으로, 그 당시 어쨌든 일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 가서 교육을 받는다든가 이런 일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 친일파라고 볼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일본하고 관계만 있으면 다 친일파라고 보고. 또 미국에 갖다 왔다고 다 친미파, 이렇게 몰아붙일 수는 없는 거잖아요.

신용수 단국대 교수

“우리가 지구촌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데, 지금 현재 저 전교조 애들이나 진보진영에서 주장하는 내용대로 역사 교육을 하게 되면 곧 상대인 적을 이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면 나라가 가게 될 곳이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해야 한다는 이념에는 제가 백 번 박수를 치는 것이고요.”

 

목, 2015/10/22-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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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한국 역사교육은 ‘수동 운전 중’– 국정 역사교과서 계획안에 대한 분노 일파만파로 확산– 40년전 박 정희 전 독재자가 강행한 국정교과서, 이번엔 딸인 박 근혜 대통령이 강행– 교육부, 학생들은 “지적으로 미성숙”해 국정 교과서 필요이코노미스트는 24일 “한국의 역사교육은 ‘수동 운전 중’, 학교의 역사 교육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시도가 분노를 자아내다”라는 제목의 옵 에드 기사에서 정부의 국정 역사교과서 계획안에 ...
토, 2015/10/24-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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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리서치, 국가보안법 폐지 및 표현의 자유 실현을 위한 국제 선언 청원문 게재 – 표현의 자유 및 시민 자유권 구현 위해 국가보안법 폐지해야 – 한국, 박근혜 정부 들어 인권탄압 심각해져 – 구속 수감 중인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 및 당원들 석방 요구 – 국제 인권협약의 모든 조항을 존중하고 준수 요구 캐나가 퀘벡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리서치에 ...
금, 2015/11/27-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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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우리는 크게 두 차례의 민중 혁명을 경험했다. 이승만의 독재에 항거한 1960년 4.19 혁명과 ‘호헌 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 1987년 6.10 항쟁이 그것이다.

6월 항쟁 29년 뒤인 2016년 10월 말,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의 무능과 오만, 국정농단과 범죄 행위에 분노한 시민들이 다시 광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청와대 앞 광화문 광장에는 그런 열망을 가진 촛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고, 이내 촛불의 바다를 이뤄 청와대를 포위하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다. 2016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도 100만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박근혜 구속’을 외쳤다. 이날까지 전국의 촛불 인파는 연인원 천만 명을 넘어섰다.

시민들을 광장으로 이끌었던 분노는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열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려도 적지 않다. 과거 4.19 혁명 후 박정희 쿠데타 세력의 등장으로 민주화 대신 18년의 군부독재를 겪어야 했던 경험과, 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의 성과를 군부독재와 기득권 세력에게 빼앗긴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른바 ‘죽 쒀서 개 주는 상황’을 이번에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게 천만 촛불이 직면한 최우선 과제이기도 하다.

뉴스타파는 2017년을 맞아 신년특집으로 과거 민중혁명 과정에서 기성 정치권과 지배 권력이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어떻게 묵살하고 교묘한 공작과 반격으로 자신들의 지배구조를 다시 공고히 다져왔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60년 전과 30년 전의 뼈아픈 과거를 직시해 다시는 그와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또 다시 ‘죽 쒀서 개 주는’ 상황을 그냥 지켜볼 수는 없지 않은가?


연출 : 박정남 송원근
글 : 정재홍
취재작가 : 박은현
내레이션 : 박혜진
촬영 : 영상취재팀
편집 : 윤석민

목, 2017/01/0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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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마지막 주에 두 명의 미국인이 세상을 떠났다. 한 명은 한국계 미국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미국 남부 출신이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캘리포니아에 살았던 한국계 미국인 전순태,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베츠 헌틀리는 나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1980년 광주항쟁은 우리를 잇는 끈이었고, 우리는 한국의 평화와 정의를 함께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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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태

나는 1980년부터 1982년 사이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살면서 처음 전순태를 알게 됐다. 당시 그는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가방 가게를 운영했는데, 광주항쟁 이후 현지 한인 사회에서 매우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각성의 일환으로 북한에 있는 친척들을 방문하기로 결심했고, 북한의 고향땅을 찾은 한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 중 한 명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전 씨는 한때 방문이 금지됐던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많은 한국인들을 도왔다. 이후 그는 한국계 미국인 영화제작자 디앤 보르셰이 림과 램지 림의 한국전쟁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 잊혀진 전쟁의 기억에 출연하면서 약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영화 웹사이트 중 전 씨에 대한 소개페이지 참조). 영화제작자 림 씨는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전 씨를 추모하는 글을 남겼다.

전순태는 우리 영화의 핵심 출연자로서, 그의 인생 이야기는 한국전쟁의 참담한 실상과 끔찍하게 지속되는 한국의 분단,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염원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한국의 해방과 평화 통일을 위해 싸운 위대한 투사였다.

전 씨의 고향 개성은 38선 이남이지만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지배를 받게 됐다. 영화에서 전 씨는 1950년 6월 개성의 한 저수지에서 자신의 친구들과 했던 수영 시합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음날 저수지에 총탄이 떨어지고 기관총과 박격포 쏘는 소리에 잠이 깬 그는 북한군이 개성을 점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휴전 회담으로 개성이 봉쇄 되는 바람에 전 씨는 개성 밖에, 전 씨의 아버지는 개성 안에 발이 묶였고, 그는 다시는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전 씨는 남자형제 둘과 여자형제 하나와도 생이별을 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1964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거의 20년 후, 그가 첫 북한 방문을 한 뒤에 나는 그를 인터뷰했다. 놀랍게도, 나는 그가 이승만의 독재에 항거한 4.19 혁명 시기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그 시대는 정치, 사회적 혼란기이자 국가의 분단상황을 타개하려는 열망이 큰 시기였다.

그는 “나는 행렬의 맨 앞에 있었다”고 말했다.

살아남은 게 행운이었죠. 그러나 4.19 이후 내가 기억하는 것은 밤이건 낮이건 모든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는 당시 통일에 관한 메시지가 남북 학생들 사이에 오갔으며, 판문점에서 양측 회담을 열기 위한 계획이 준비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모든 논의는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소장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북한과의 모든 접촉을 금지시키면서 돌연 중단됐다. 전 씨는 “박정희가 역사의 흐름을 막았다”고 슬프게 말했다. 1980년, 전두환이 유사한 방식으로 정권을 잡으면서 박정희의 쿠데타를 떠올리게 했고, 전순태 씨는 다시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활동에 뛰어들었다.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자주 방문했던 시기 외에 그는 남은 일생을 캘리포니아에서 보냈다. 지난 6월 마지막 주에 그는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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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베츠 헌틀리 목사

6월 26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숨을 거둔 베츠 헌틀리 목사는 아내 마사와 함께 광주에서 장로교 목사로 여러 해 일을 했다. 1980년 5월, 광주기독병원에서 의사 겸 원목실장으로 일하던 당시 그는 전두환의 특수부대가 자행한 학살과 그 이후 계엄군으로부터 광주시를 해방하기 위해 일어난 광주항쟁을 목격했다.

당시 광주에 머물고 있었던 많은 외국인들과 달리, 헌틀리 목사와 그의 아내는 광주를 떠나 피신하라는 미국 정부의 권고를 거부했다. 그들은 오히려 계엄군의 공격을 피해 찾아온 사람들을 피신시켜 주었다. 지난 7월 7일, 광주 MBC는 헌틀리 목사의 공헌을 기리는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헌틀리 목사 부부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광주 항쟁의 직접적인 목격자들이었다. 1981년 2월, 나는 2달 간의 방한 일정 말미에 광주를 방문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부모님의 선교사 친구들을 통해 헌틀리 부부 이야기를 들었다. 헌틀리 부부는 나를 자신들의 집에 따뜻하게 맞이했다. 당시 헌틀리 목사의 집에서 나는 며칠을 지내며 광주항쟁의 희생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과, 광주 시민들이 총알, 곤봉, 군화, 총검에 당한 끔찍한 부상을 직접 들었다.

헌틀리 부부가 준 정보를 바탕으로 나는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전두환의 광주 항쟁 진압에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탐사를 시작했다. 헌틀리 부부를 방문한 지 15년 후, 나는 마침내 광주항쟁에서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미국 정부의 기밀해제 문서 더미(‘체로키 파일’을 말함-역주)을 입수했다.

내가 입수한 문서 중 하나는 ‘광주 폭동에 대한 내부자의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미 국무부로 보낸 외교전문이었다. 광주 항쟁에 대해 미국 정부가 선호하는 ‘폭동’이라는 거짓 단어를 쓴 것이었다. 해당 문서에 나오는 내부자는 익명으로 처리되었지만, 나는 그것이 헌틀리 목사의 증언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문서는 광주 항쟁에 대해 미국 정부가 단 한 번도 취하지 않은 인간적인 시선을 담고 있었다.

헌틀리 목사는 이런 인상적인 구절을 남겼다.

우리가 광주에서 본 것은 자유로운 사람들의 집회를 지나치게 탄압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 1773년 영국 본국의 지나친 세금 징수에 반발한 북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이 보스턴 항에서 동인도회사의 배에 실려 있던 홍차 상자들을 바다에 버린 사건. 이는 이후 미국독립혁명의 발단이 됐다 -역주)과 유사하다고 봅니다.

그는 또 “5.18은 공산주의자의 선동이나 침투, 또는 영향을 받아 일어난 게 아니었습니다.”고 덧붙였다. 그는 광주항쟁이 시민들의 정의와 민주주의 요구에 기반한 항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광주항쟁 당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본국에 보낸 외교전문. “광주 폭동에 대한 내부자의 증언”이라는 제목이 눈에 띈다.

안타깝게도 미국 정부는 헌틀리 목사의 증언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1981년 헌틀리 목사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나 또한 미국 정부의 기밀 문서들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나와 광주 시민들은 모두 그에게 큰 빚을 졌다.

전순태 씨와 베츠 헌틀리 목사 모두 특별한 사건에 휘말린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부디 두 분 다 영면하시길.

※ 기사 원문(영어) 보기 | See original version(EN)


취재: 팀 셔록
번역: 임보영

화, 2017/08/0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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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마지막 주에 두 명의 미국인이 세상을 떠났다. 한 명은 한국계 미국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미국 남부 출신이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캘리포니아에 살았던 한국계 미국인 전순태,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베츠 헌틀리는 나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1980년 광주항쟁은 우리를 잇는 끈이었고, 우리는 한국의 평화와 정의를 함께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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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태

나는 1980년부터 1982년 사이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살면서 처음 전순태를 알게 됐다. 당시 그는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가방 가게를 운영했는데, 광주항쟁 이후 현지 한인 사회에서 매우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각성의 일환으로 북한에 있는 친척들을 방문하기로 결심했고, 북한의 고향땅을 찾은 한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 중 한 명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전 씨는 한때 방문이 금지됐던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많은 한국인들을 도왔다. 이후 그는 한국계 미국인 영화제작자 디앤 보르셰이 림과 램지 림의 한국전쟁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 잊혀진 전쟁의 기억에 출연하면서 약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영화 웹사이트 중 전 씨에 대한 소개페이지 참조). 영화제작자 림 씨는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전 씨를 추모하는 글을 남겼다.

전순태는 우리 영화의 핵심 출연자로서, 그의 인생 이야기는 한국전쟁의 참담한 실상과 끔찍하게 지속되는 한국의 분단,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염원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한국의 해방과 평화 통일을 위해 싸운 위대한 투사였다.

전 씨의 고향 개성은 38선 이남이지만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지배를 받게 됐다. 영화에서 전 씨는 1950년 6월 개성의 한 저수지에서 자신의 친구들과 했던 수영 시합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음날 저수지에 총탄이 떨어지고 기관총과 박격포 쏘는 소리에 잠이 깬 그는 북한군이 개성을 점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휴전 회담으로 개성이 봉쇄 되는 바람에 전 씨는 개성 밖에, 전 씨의 아버지는 개성 안에 발이 묶였고, 그는 다시는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전 씨는 남자형제 둘과 여자형제 하나와도 생이별을 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1964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거의 20년 후, 그가 첫 북한 방문을 한 뒤에 나는 그를 인터뷰했다. 놀랍게도, 나는 그가 이승만의 독재에 항거한 4.19 혁명 시기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그 시대는 정치, 사회적 혼란기이자 국가의 분단상황을 타개하려는 열망이 큰 시기였다.

그는 “나는 행렬의 맨 앞에 있었다”고 말했다.

살아남은 게 행운이었죠. 그러나 4.19 이후 내가 기억하는 것은 밤이건 낮이건 모든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는 당시 통일에 관한 메시지가 남북 학생들 사이에 오갔으며, 판문점에서 양측 회담을 열기 위한 계획이 준비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모든 논의는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소장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북한과의 모든 접촉을 금지시키면서 돌연 중단됐다. 전 씨는 “박정희가 역사의 흐름을 막았다”고 슬프게 말했다. 1980년, 전두환이 유사한 방식으로 정권을 잡으면서 박정희의 쿠데타를 떠올리게 했고, 전순태 씨는 다시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활동에 뛰어들었다.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자주 방문했던 시기 외에 그는 남은 일생을 캘리포니아에서 보냈다. 지난 6월 마지막 주에 그는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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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베츠 헌틀리 목사

6월 26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숨을 거둔 베츠 헌틀리 목사는 아내 마사와 함께 광주에서 장로교 목사로 여러 해 일을 했다. 1980년 5월, 광주기독병원에서 의사 겸 원목실장으로 일하던 당시 그는 전두환의 특수부대가 자행한 학살과 그 이후 계엄군으로부터 광주시를 해방하기 위해 일어난 광주항쟁을 목격했다.

당시 광주에 머물고 있었던 많은 외국인들과 달리, 헌틀리 목사와 그의 아내는 광주를 떠나 피신하라는 미국 정부의 권고를 거부했다. 그들은 오히려 계엄군의 공격을 피해 찾아온 사람들을 피신시켜 주었다. 지난 7월 7일, 광주 MBC는 헌틀리 목사의 공헌을 기리는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헌틀리 목사 부부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광주 항쟁의 직접적인 목격자들이었다. 1981년 2월, 나는 2달 간의 방한 일정 말미에 광주를 방문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부모님의 선교사 친구들을 통해 헌틀리 부부 이야기를 들었다. 헌틀리 부부는 나를 자신들의 집에 따뜻하게 맞이했다. 당시 헌틀리 목사의 집에서 나는 며칠을 지내며 광주항쟁의 희생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과, 광주 시민들이 총알, 곤봉, 군화, 총검에 당한 끔찍한 부상을 직접 들었다.

헌틀리 부부가 준 정보를 바탕으로 나는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전두환의 광주 항쟁 진압에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탐사를 시작했다. 헌틀리 부부를 방문한 지 15년 후, 나는 마침내 광주항쟁에서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미국 정부의 기밀해제 문서 더미(‘체로키 파일’을 말함-역주)을 입수했다.

내가 입수한 문서 중 하나는 ‘광주 폭동에 대한 내부자의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미 국무부로 보낸 외교전문이었다. 광주 항쟁에 대해 미국 정부가 선호하는 ‘폭동’이라는 거짓 단어를 쓴 것이었다. 해당 문서에 나오는 내부자는 익명으로 처리되었지만, 나는 그것이 헌틀리 목사의 증언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문서는 광주 항쟁에 대해 미국 정부가 단 한 번도 취하지 않은 인간적인 시선을 담고 있었다.

헌틀리 목사는 이런 인상적인 구절을 남겼다.

우리가 광주에서 본 것은 자유로운 사람들의 집회를 지나치게 탄압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 1773년 영국 본국의 지나친 세금 징수에 반발한 북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이 보스턴 항에서 동인도회사의 배에 실려 있던 홍차 상자들을 바다에 버린 사건. 이는 이후 미국독립혁명의 발단이 됐다 -역주)과 유사하다고 봅니다.

그는 또 “5.18은 공산주의자의 선동이나 침투, 또는 영향을 받아 일어난 게 아니었습니다.”고 덧붙였다. 그는 광주항쟁이 시민들의 정의와 민주주의 요구에 기반한 항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광주항쟁 당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본국에 보낸 외교전문. “광주 폭동에 대한 내부자의 증언”이라는 제목이 눈에 띈다.

안타깝게도 미국 정부는 헌틀리 목사의 증언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1981년 헌틀리 목사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나 또한 미국 정부의 기밀 문서들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나와 광주 시민들은 모두 그에게 큰 빚을 졌다.

전순태 씨와 베츠 헌틀리 목사 모두 특별한 사건에 휘말린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부디 두 분 다 영면하시길.

※ 기사 원문(영어) 보기 | See original version(EN)


취재: 팀 셔록
번역: 임보영

화, 2017/08/0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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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 계엄령 문건이 공개되면서 전 국민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고, 민주주의를 암살하려던 계획이 군의 이름으로 자행될 뻔 했다는 사실을 그냥 넘겨서는 안되겠습니다. 


정보공개센터는 군인권센터와 세계일보가 공개한 기무사 계엄시행 대비계획 세부자료 전문(67페이지)을 자료 보존 차원에서 이미지 파일로 변환하여 업로드합니다. 기밀해제 문건이니 자유로운 열람과 배포가 가능합니다.






수, 2018/07/2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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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유스 캠페이너

반짝반짝! 톡톡! 어른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무한 가능성을 지닌 대한민국 청소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청소년의 톡톡 튀는 창의력과 가능성을 지지해주고자 합니다. 책상에 앉아 글로 배우는 인권 개념을 넘어, 교과서 밖 진짜 인권을 몸소 경험하고 행동하게 하는 작은 프로젝트.

국제앰네스티 호주지부에는 청소년 활동가가 스스로 인권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활동내용을 제시하는 스쿨 액션 팩(School Action Pack)을 배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모티브 삼아 한국지부에서도 청소년들이 사례를 가지고 다양한 캠페인을 기획하여 재미있고 창의적인 인권활동을 실천할 수 있도록 액션패키지를 배포하고, 이를 통해 유스 캠페이너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앰네스티와 함께 교과서 밖, 진짜 인권을 경험하고 싶은 청소년들의 많은 참여 기다립니다!

■  모집대상: 만 16~18세 대한민국 거주 청소년으로 구성된 20팀(1팀당 2~5명으로 인원제한)
  *개인 신청은 받지 않습니다.
  *필수조건: 4월 2일(토)에 진행되는 사전교육 참석이 가능한 자
■  모집기간: 2016년 3월 2일(수) ~ 3월 23일(수)
■  신청방법: 신청서 다운로드(클릭)  > 신청서 작성 > 이메일([email protected])로 제출
■  명단발표: 2016년 3월 25일(금)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홈페이지 및 개별 이메일 공지
■  활동기간: 2016년 4월 4일(월) ~ 6월 30일(목) 내에서 자유롭게 활동 가능
■  ‘2016년 유스 캠페이너’ 참여자를 대상으로 활동증명서 발급예정(자원봉사확인증 별도)

※ 문의: 모금/회원커뮤니케이션팀 (070-8672-3386 / [email protected])

▼ 카카오 같이가치 모금함에서도 유스 캠페이너를 응원해주세요! ▼

수, 2016/03/0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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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앉아 글로 배우는 인권, 너무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지 않나요? :(
다른 나라 이야기만 같은 ‘인권’이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데 말이죠.
손에 잡히지 않는 인권을 먼저 ‘나’의 피부로 느껴보고, 가까운 나의 가족, 친구들에게도 “쉽고, 재미있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이야기해줄 순 없을까요?

앰네스티와 함께 교과서 밖, 진짜 인권을 경험하고 싶은 청소년을 기다립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청소년이 그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창의적인 인권활동을 직접 실천해볼 수 있도록 *액션패키지를 제공하고 활동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액션패키지 : 유스 캠페이너 액션패키지는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인권을 배우고, 보다 재미있고 영향력 있는 캠페인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돕는 툴킷

“유스 캠페이너는 어떤 활동을 하게 되나요?”

유스 캠페이너 사전교육 참여 ▶ 각 팀별 캠페인 기획 및 활동 ▶ 활동보고서 제출

 

■ 모집대상 : 만 16~18세 대한민국 거주 청소년으로 구성된 20팀
*1팀당 2~5명으로 인원제한, 활동기간 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멘토(성인) 1명 필요
*개인 신청은 받지 않습니다.

■ 모집기간 : 2016년 6월 20일(월) ~ 7월 24일(일)

■ 신청방법 : 신청서 다운로드 > 신청서 작성 > 이메일([email protected])로 제출
*신청서 작성 전 청소년을 위한 사회참여 안내서 ‘아름다운 참여(천희완 외/돌베개/2004)’ 1독 권장

■ 최종 참가자 발표 : 2016년 7월 28일(목)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홈페이지 공지 / 최종 참가팀 리더에게 이메일 발송(사전교육 안내 포함)

■ 활동기간 : 2016년 8월 15일(월) ~ 10월 31일(월)
*활동기간 내 캠페인 횟수/기간 제한없이 자유롭게 활동 가능

■ 증명서 발급 : 활동보고서 제출한 팀 대상 ‘2016 유스 캠페이너 활동증명서(수료증)‘ 개별 발급,
활동보고서를 제출한 팀 중 사전교육 참가자 대상 ‘봉사활동확인서(봉사활동 6시간) 개별 발급
*1회 발급, 향후 재발급 불가능

★ 사전교육 안내 ★

– 일시 : 2016년 8월 6일(토)
– 장소 : 추후 공지
– 내용 : 기초인권교육, 국제앰네스티 활동 설명, 액션패키지 배포 및 사용안내, 팀별 활동계획 논의 등
*자세한 내용은 최종 참가자 발표 후 각 팀 리더에게 이메일로 발송될 예정입니다.


★ 자주 묻는 질문

Q. 저는 만 16세가 안 되지만 유스 캠페이너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A.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연령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양해 부탁 드립니다.

Q. 어떤 분을 멘토로 적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A. 캠페인 기획부터 활동 종료 시점까지 지속적으로 가이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분이라면 누구라도 가능합니다. 다만 앰네스티와의 소통이 필요한 경우 각 팀의 멘토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므로 팀과 앰네스티 사이에서 소통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주실 수 있어야 합니다.

Q. 사전교육은 반드시 참석해야 하나요?
A. 신청서에 기제된 유스 캠페이너 및 멘토는 전원 필수참석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청소년이 직접 인권 이슈를 공부하고 캠페인을 기획해야 하기에 사전 교육이 매우 중요합니다. 멘토 역시 팀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가이드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에 멘토는 사전교육을 필히 참석해야 합니다.

Q. 활동기간 내에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가야 하나요?
A. 아닙니다. 활동기간 내에 어떠한 제한 없이 자유롭게 활동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팀이 9월에 하루 3시간씩 이틀에 걸친 캠페인 활동을 계획했다면 계획한 활동을 마친 후 활동보고서를 제출하고 증명서를 수령하면 해당 팀의 캠페이너 활동은 공식적으로 종료됩니다.


※ 문의 : 모금회원커뮤니케이션팀 [email protected]

월, 2016/06/20-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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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네이스탯(Anna Neistat), 국제앰네스티 선임 조사국장

<왕좌의 게임>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Winter is coming.” 불길한 미래를 예언하는 이 유명한 한마디는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이 말은 기나긴 여름이 지나면 혹독한 겨울이 찾아온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겨울이 되면 세계에 대재앙이 도래할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바로 ‘죽은 자들의 군대’ 다. 이렇게 엄청난 위협에 비하면 그동안의 암투와 배신, 불화는 사소하고 무의미해 보인다.

인권옹호자로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정치적으로 우위를 점하려 책임을 전가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우리에게도 겨울이 찾아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인권 보호가 더 이상 의미 없는 행위로 전락하게 된, 암울한 미래가 말이다.

우리의 ‘여름’은 길고 풍요로웠다. 70년 전인 1948년, 세계 각국은 한자리에 모여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했다.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인권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처음으로 명시한 선언이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헌신하겠다는 선언문을 마련한 것은 오랫동안 인류의 참혹하고도 암울했던 ‘긴 밤’을 견뎌낸 생존자들이었다. 이들은 가스실, 인종청소처럼 민간인들이 대규모로 고통받는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려고 뜻을 모았다.

그 이후, 세계인들은 각지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룩해냈다. 여성과 LGBT의 인권을 보장했고, 권력을 남용하는 정부에 맞서 일어섰고,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 같았던 전체주의 정권을 무너뜨렸으며, 국가 원수들이 마땅한 처벌을 받게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어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기를 거치고, 다시는 같은 참상을 반복하지 말자고 선언했던 사람들이 지금의 사회를 본다면 몰라볼 정도의 변화를 이룩한 것이다.

우리가 막아낼 공격은 더 이상 개인이나 공동체의 권리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인권보호제도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위협에 맞서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과거로 퇴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70년이 장밋빛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장벽을 지키는 ‘나이트워치’처럼, 우리 인권옹호자들은 조금 더 가까이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위협을 경계하고 알리는 것은 물론, 심각한 인권침해를 막아내는 역할까지 했다.

혹독한 겨울바람을 막아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은, 모든 정부가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원칙이 최근 들어 역사상 가장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 속 웨스테로스 사람들은 여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우리도 똑같이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가 막아낼 공격은 더 이상 개인이나 공동체의 권리에 대한 것이 아니다. 서로 동맹을 맺고 일부의 불량 국가를 처단하는 수준도 아니다. 이제는 인권보호제도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위협에 맞서야 한다. 존 스노우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실제적인 전투를 앞두고 하나로 단결해야 한다.

이처럼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위협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불과 지난 몇 년 동안, 정치인들은 외국인 혐오, 여성 혐오, ‘타인’들에 대한 비인간화를 내세우면서 유권자들의 불안과 박탈감을 노골적으로 이용해 승리를 취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선전 문구는 점점 선동적인 목소리로 변해서, 이로 인해 차별과 증오범죄, 폭력이 발생하고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얼마 전 샬러츠빌에서 벌어진 백인우월주의 폭동도 그 예다.

국가 정부들은 ‘안보 우려’라고 모호하게 정의된 개념을 이용해, 고문이나 즉결 처형을 금지하는 등의 인권적 제약을 무시하고, 그러한 행위를 정당화했다. 이러한 수법을 이용한 국가는 미국, 러시아, 이집트, 나이지리아, 터키, 필리핀 등으로 아주 다양했다.

러시아, 중국과 같이 보편적인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끊임없이 위협했던 국가들은 이제 더욱 대담해졌으며, 국제적 수준의 논의에서 더욱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거나, 논의 자체를 지연시키는 경우도 잦아지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인권의 수호자였던 국가들조차도 급격하게 태세를 전환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마치 세르세이 라니스터처럼, 염치없게도 자국만의 편협한 이익을 추구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국익을 위해 인권을 희생해야 한다는 비열한 주장을 늘어놓는다.

미국과 영국이 이러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민주주의와 인권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다른 국가 역시 너무나도 쉽게 그렇게 행동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의사전달 수단을 동원해 나의 권리와 타인의 권리를 위협하는 자에게 맞서 큰 소리로, 끈질기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인류 근대사의 가장 암울한 시기를 거쳐 마련된 지금의 인권보호제도가, 이제 또다시 황혼 속으로 잠겨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여지가 없다. <왕좌의 게임>에서 언급되는 또 하나의 흉흉한 말을 인용하자면, 밤이 찾아오면 “사방이 어둠과 공포로 둘러싸일 것”이다. 이 전투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로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지난 “겨울”의 혹독함을 지나치게 빨리 잊어버린 사람일 것이다.

이처럼 강력한 힘에 맞서 인류의 공동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하나 되어 행동에 나서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온갖 기준을 내세워 분열시키려는 시도에 저항하고, 자국 정부라도 마땅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할 것이다. 확성기를 들든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든, 모든 의사전달 수단을 동원해 나의 권리와 타인의 권리를 위협하는 자에게 맞서서 큰 소리로, 끈질기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 이들을 받아들이고, 불의와 위협에 맞닥뜨린 사람들 및 공동체에 지지와 연대를 보여야 한다.

<왕좌의 게임> 세계에서는 길고 혹독한 겨울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인권은 꼭 그런 결말을 맞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모두 함께 인권을 위한 촛불을 밝게 켜 둔다면, 어둠은 곧 사라질 것이다.

목, 2017/09/0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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