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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 심판관,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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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 심판관,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익명 (미확인) | 화, 2016/12/06- 18:26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 헌법재판소에 사건이 접수된다. 다시금 헌재에 눈과 귀가 쏠린다.

헌재가 우리 사회의 주요 분기점에서 판을 흔들어 온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러나 2013년 박한철 헌재소장(63) 취임으로 출범한 ‘5기 재판부’는 좀 더 특별하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때, 법사위원장으로 탄핵소추를 맡았던 김기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생에 이런 일은 다시 없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 일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D-day는 오는 9일이다. 공이 헌재로 넘어가면, 박한철 헌재소장의 결정에 이목이 집중될 것이다.

만약 이번에 헌재가 탄핵 심판까지 결정을 내리게 되면 위헌법률, 탄핵, 정당해산, 권한쟁의, 헌법소원 등 헌재가 내릴 수 있는 모든 심판에 대해 결정을 내리게 되는 헌재 사상 첫 재판부가 된다.

역사상 두 번째 탄핵의 중심인물

박한철 소장은 그 중심에 있다. 내년 1월31일로 끝나는 박 소장의 임기 자체가 탄핵안 처리의 주요 변수이기도 하다. 탄핵안 처리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과 6명 이상의 찬성을 요구한다. 박 소장이 임기가 끝나고 이어 이정미 재판관도 3월 중순에 임기가 끝나면 재판관은 7명만 남는다. 단 2명만 반대해도 탄핵심판 청구가 기각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 셈이다.

애초에 헌법재판 가운데서도 가장 예민한 사안으로 불리는 탄핵심판이 9명 재판관 전원이 아닌 밑 빠진 상태에서 결론 나는 일은 국민들도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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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9인 재판관들. 내년 3월초까지 박한철 소장, 이정미 재판관이 임기 종료로 물러나면 7명이 남는다. 이중 6명의 탄핵인용을 이끌어내야 한다. 변수가 너무 많아 어느 쪽으로도 속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idailynews.co.kr/)

그렇다 해도 박 소장 퇴임 전 심리를 마치는 것이 쉽지는 않다. 12월 초에 순조롭게 탄핵안이 의결된다 해도 심리할 시간이 50여일 남짓밖에 없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사상 초유의 일이란 것을 감안해도 64일이 걸렸다. 게다가 당시에는 노 전 대통령이 탄핵 사유로 지목된 사실들을 모두 인정했지만 박 대통령은 그렇지도 않다. 헌재가 검찰 수사결과를 준용할 수도 있지만 직접 사실 확인에 들어갈 경우 늘어질 가능성도 있다.

헌법재판소법은 사건을 접수한 날부터 180일 내에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강제성은 없다. 벌써부터 박 대통령 임기 내에 불가능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통진당 해산…김기춘과 교감 의혹

박 소장은 민감한 시기, 어수선한 시국 속에 의혹에도 휘말렸다. 최근 공개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발단이다.

김 전 수석은 비망록에 2014년 10월4일 수석비서관회의 중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을 이렇게 메모했다. ‘통진당 해산 판결-연내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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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비서실장. 한국 현대사에서 그처럼 많은 반민주적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또 있을까. 유신헌법 기초, 유서대필 조작 사건, 초원복집 사건, 노무현 탄핵소추, 그리고 박근혜정부 탄생의 주역…여기에 통진당 해산 결정 이전에 박한철 헌재소장과 내통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그를 ‘현대사의 살이있는 악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열흘쯤 지난 10월17일, 국정감사 오찬장에서 박한철 소장은 국회의원들에게 올해 안에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 선고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당시 대다수가 대법원에서 이석기 통진당 의원 사건이 결론난 뒤에나 헌재의 결정이 가능하리라고 관측했지만, 헌재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인 그해 12월19일에 해산 결정을 내린다. 석연치 않다. 대법원이 결국 헌재가 정당해산의 주요 이유로 꼽았던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를 무죄로 판결했으니 더욱 그렇다.

만약 김기춘 전 실장이 헌재 결정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 폭발력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보수정권 시국사건 주도한 공안통

박한철 소장은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2살에 인천으로 이사한 뒤 인천중학교와 제물포고를 나왔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1년 사법시험(23회·연수원 13기)에 합격했다.

1983년 부산지검 검사로 법조계에 첫발을 내딛은 이래 27년 동안 검사로 재직하면서 특수와 공안, 기획 분야 요직을 두루 거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독일 유학과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근무 경험도 있다.

박 소장은 2005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 재직 당시 법조브로커 윤상림씨 사건 수사를 지휘하면서 보여준 ‘강골’ 면모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59건의 범죄 혐의를 밝혀내 10차례나 윤씨를 기소했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 비자금 및 ‘떡값’ 수수 검사 명단을 폭로했을 때는 삼성 비자금 사건 특별수사·감찰본부장을 맡았다.

2008년 대검 공안부장 시절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미네르바 사건 등 각종 시국사건 수사를 지휘하기도 했다. 2010년 7월 서울동부지검장을 끝으로 검찰 조직을 떠나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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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철 헌재소장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당시, 대검 공안부장으로 있으면서 이명박정부의 공안통치를 도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 출처: http://photoismylife.tistory.com/)

2011년 이명박 대통령 지명으로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오르면서 검사·변호사 시절 전력이 도마에 올랐다. 참여연대는 박 소장이 2008년 촛불집회 당시 대검 공안부장으로서 검·경·노동부 관계자가 참석한 ‘공안대책협의회’를 주재하면서 촛불집회를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강경대응 입장을 결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비판했다.

민주화 이후 축소·폐지 흐름을 밟아왔던 공안부에 다시 공안3과를 부활시키며 이명박 정부의 ‘공안통치’ 흐름에 주도적 역할을 한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표현의 자유 억압 논란을 빚었던 ‘미네르바 사건’의 무리한 기소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4개월여 간 김앤장에 근무하면서 2억4500만원의 급여와 고급 승용차를 제공받아 ‘전관예우’ 논란도 벌어졌다. 사건 수임은 단 한 건도 없었고 10건의 자문만으로 받은 액수다.

특히 2007년 삼성비자금 특별수사·감찰본부장으로 수사를 지휘했던 박 소장이 퇴직 후 삼성 관련 사건들의 변호를 맡은 김앤장에 취업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는 “30년 가까운 법조 경력을 감안한 것인데 금융·경제 등의 부문과 비교하면 액수가 과도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항변했지만 뒤늦게 김앤장 근무가 “조금 후회스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박근혜가 임명…헌재의 활력 현저히 떨어져

박 소장은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고 나서도 각종 사건에서 보수적 입장을 강하게 드러내 왔다. 검찰의 ‘공안통’으로 분류되는 그가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될 때부터 나온 우려가 현실화된 셈이다.

대표적으로 그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울광장 추모 행사 당시 광장 전체를 전경버스로 에워싸 시민 통행을 원천봉쇄한 조치에 대해 합헌 의견을 냈다.

선거 기간 동안 인터넷과 SNS를 이용한 의사표현 금지, 공직자의 주식백지신탁, ‘건전성’을 이유로 한 방송통신심의위의 표현 규제, 삼성X파일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의 처벌 등에 대해서도 모두 합헌이라는 의견을 냈다.

박 소장의 보수성도 문제지만 그가 소장으로 취임한 뒤 출범한 5기 재판부가 눈에 띄게 활력이 떨어졌고 심지어 헌재가 ‘침체’됐다는 평가도 있다.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가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합헌 결정 직후 국회에서 해당 법을 폐지하는 촌극을 겪기도 했다. 민주당이 추천한 김이수 재판관과 그 외 8명이 대립하는 1대 8 구도가 굳어졌고, 토론이 사라졌으며, 권력의 눈치를 지나치게 본다는 비판도 나왔다.

헌재는 박 소장 취임 이후 2년간 장기미제 사건이 줄었고 간통죄 처벌 조항에 위헌을 선고한 것 등을 업적으로 꼽았지만 ‘정치적 사법기관’이라는 헌재의 위상을 생각하면 뭔가 지나치게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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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위헌결정은 박한철 헌재소장 내려진 가장 유의미한 결정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사진은 간통죄 위헌판결 직후 헌재 결정을 비판하는 1인 시위를 벌이는 모습.

박 소장이 헌재 역사상 처음으로 검찰 출신 소장이라든가, 박 소장을 비롯해 공안통 검사 출신이 2명이나 재판관에 포진해 있다는 것만으로 이런 변화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 중심에는 박 소장이 취임하면서 비롯된 헌재 소장의 임기 문제가 있다.

박 소장은 2013년 현직 재판관으로 재직 도중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소장 지명을 받는다.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 낙마하자 벌어진 일이다.

헌법 재판관의 임기는 본래 6년이고, 지금까지 헌재 소장들은 재판관 겸 소장으로 임명됐기 때문에 임기 6년을 꼬박 채웠다.

하지만 박 소장의 경우에는 재판관 임기 2년을 이미 소화한 뒤 소장에 취임했기 때문에 4년 뒤인 2017년에는 퇴임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임기 내에 한 번 더 소장 지명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현직 재판관들이 추후 ‘소장 지명’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 수밖에 없고, 이런 분위기가 헌재를 더욱 권력에 눈치 보는 집단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탄핵, 어떤 결정 내릴까

재판부가 보수화됐다고 해서 탄핵안에 대한 결론을 섣불리 예측하긴 아직 어렵다. 검찰 출신이 보수적이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검찰 수사에 대한 신뢰가 있어 인용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관측도 있다.

상황도 다소 바뀌었다.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 임명 동의가 필요한데, 지난 4월 총선으로 여소야대 정국이 됐다. 무엇보다 촛불 민심도 변수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는 어느 재판관이 어떤 의견을 냈는지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헌재법 개정으로 누가 탄핵 인용 의견을 냈는지, 기각 의견을 냈는지 밝혀야 한다. 대통령 지지율 4%에 200만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온 상황에서 쉽게 결론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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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철 헌재소장은 자신을 지금의 자리에 임명해준 박근혜 대통령과 그녀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민심 사이에 끼어있다.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에 따라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가 달라질 것이다.

이 시점에서 박 소장의 일화 하나가 눈에 띈다. 그는 2008년 대검 공안부장 시절 정확한 상황 판단을 위해 촛불집회 현장을 27차례나 찾았다. 그런 뒤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봐야 한다’며 강경 대응에 반대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강경대응을 주도했다’는 일각의 시각과는 다소 다르다. 집회 현장의 ‘유모차 부대’를 목격하고는 경찰력 투입을 늦추자고 주장해 ‘조기 진압’을 요구한 정권 핵심부의 눈 밖에 났다는 얘기도 돌았다. 실제 박 소장은 검찰 시절 고검장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서울동부지검장을 끝으로 옷을 벗었다.

이런 예를 보면 박 소장이 보수적인 성향에, 공안통이라 불려오긴 했지만 “‘수구꼴통’이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는 헌법재판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촛불집회 당시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정당하게 처리했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기본권과 기본권의 충돌을 보며 무엇이 나라를 위해 바람직한지 고민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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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홈페이지에 실린 박한철 헌재소장의 인삿말. 헌재가 87년 헌법의 산물이라는 점을 밝힌 문구가 인상적이다.

헌재 홈페이지(www.ccourt.go.kr/)의 프로필을 보면 그는 자신이 처리한 2000여 건의 사건 중 일본군 위안부 및 원폭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외교적 의무를 다하지 않은 국가의 부작위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던 것을 주요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헌법 전문이 규정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관을 헌법현실에서 바로 세우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자평한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부정하고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정권 핵심 세력들과는 다른 시각인 셈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개인적으로 박 소장은 대체로 합리적이고 소탈한 편이며, 법리에 밝은 ‘학구파’로 겸손하고 온유한 성품으로 후배 법조인들에게 신망이 두텁다고 알려져 있다. 평소 시서화와 고전에 정통해 2009년 대구지검장 시절 전출·입 직원들에게 편지와 함께 시를 e메일이나 메신저로 선물하고 회의 때마다 애창·자작시를 낭송하는 등 문학적인 면모도 보여줬다.

박 소장은 독특한 선행 이력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2010년 서울동부지검장 시절 한 불교재단의 노인요양시설 건립에 보탠다며 자신이 살고 있는 9억 원대 서초동 아파트를 기부했다. 소유권을 넘겨주고 자신은 같은 집에서 다시 세들어 살고 있다.

2016년 공직자 재산공개 내역을 다시 확인해 봐도 단출하다. 아파트 전세금 2억2000만원, 1999년식 EF소나타(168만원), 본인과 배우자의 예금 13억 원을 합쳐 15억 정도다. 부동산은 없다. 전국 각지의 땅과 건물, 주식과 골프장 회원권, 귀금속과 고가의 그림 등으로 가득한 여느 고위공직자들의 재산 사항과 달리 단 4줄이 내역의 전부다. 박 소장은 자녀가 없고, 1976년 입대해 육군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박 소장은 한 인터뷰에서 왜 기부를 했는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부와 명예, 지위는 잠시 맡았다가 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가진 것의 한 부분을 필요한 곳에 돌려 드린 겁니다. 소장 이후에는 로펌에 가지 않겠다고 청문회 때 약속했고, 퇴임 이후 최고 공직 경험자로서 사회봉사하는 방법을 찾아볼 겁니다.”

그가 소장직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하고 ‘사회’로 돌아갈지 주목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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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1차 청문회에 전원 불참한 여당 추천 위원들 가운데 일부가 청문회 기간 중 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활동하는 모습이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목격됐다. 또 이들에 의해 지난 1년 내내 지속된 특조위 방해 활동이 정부와 여당의 개입 아래 진행됐음을 증명하는 문건의 출처가 해수부였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최근 세월호 특조위를 사실상 해체하는 법안을 발의해 세월호 진상 규명을 철저히 가로막겠다는 속내를 노골화하고 있다.

 

청문회 빠지고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러려고 특조위원 했나”

지난 14일 세월호 특조위의 1차 청문회가 열린 서울 명동 중구 YWCA 회관 대강당. 청문위원석은 17자리가 마련돼 있었지만 5자리는 비어 있었다. 이헌, 고영주, 차기환, 황전원, 석동현 위원등 여당 추천 위원 5명 전원이 청문회에 불참한 것이다.

이들 가운데 이헌 부위원장을 뺀 4명은 지난달 23일 특조위 전원위원회에서 사퇴 의사를 밝혔다. 특조위가 참사 당시 청와대의 대응을 조사하기로 결정하자 ‘대통령의 사생활’을 조사한다는 것이냐고 반발하며 즉각 퇴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특조위원 신분이다. 세월호 특별법에는 위원 결원 시 추천기관은 3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출하게 되어 있어 그 이전까지는 전임 위원의 자격이 유지된다. 실제로 지난 7월 27일 사퇴 의사를 밝힌 조대환 전 부위원장은 8월 24일 이헌 부위원장이 선출되기 전까지 결근 상태에서도 특조위 내부 문건을 결재하며 업무를 진행했다.

그렇다면 여전히 특조위원 신분인 이들 4명은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세월호 청문회 이틀째인 지난 15일 오전. 취재진은 경남 김해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걸어나오는 황전원 세월호 특조위 비상임위원을 만났다. 황 위원은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나온 거냐”고 묻는 취재진을 황급히 피해 승용차를 타고 멀어졌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내 차를 돌려 취재진에게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말했다.

황전원 위원은 “애초부터 선거에 뛰어들 생각이었다면 활동기간이 1년 반이나 되는 특조위원 직을 고사했어야 하는게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선거에 나설 생각이 애초에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새누리당 현역 의원이 재출마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특조위원 활동을 했다. 그런데 그 의원이 출마하지 않게 되면서 변수가 생겼고 그에 따라 결심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솔직히 말하면 세월호 특조위원이라는 명함이 이곳 김해지역에서는 표를 얻는데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사실이다. 만약 그 생각을 했다면 더 일찍 사퇴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특조위 활동 기간 동안엔 누구보다 열심히 뛴 것이라는 점만은 믿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12월 15일 오전, 김해시 선관위에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걸어나오는 황전원 위원

▲ 12월 15일 오전, 김해시 선관위에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걸어나오는 황전원 위원

 

같은 날 오후 부산 사하구청 앞. 구청이 주관한 한 행사장에서는 석동현 위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역시 이날 오전 지역 선관위에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각종 지역 행사에 얼굴을 내밀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것이었다. 취재진은 석 위원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애초부터 출마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세월호 특조위가 올해 상반기 정도면 중요한 일들은 다 처리할 것이라고 생각해 활동하기로 했던 것인데 생각보다 진행이 더뎠다. 솔직히 특조위의 다수를 차지하는 주류 인사들은 이 문제를 최대한 길게 끌고 가려는 생각이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나와 여당 위원들은 이 부분에 심정적으로 동의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 12월 15일 오전,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뒤 부산 사하구청 행사에 참석한 석동현 위원

▲ 12월 15일 오전,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뒤 부산 사하구청 행사에 참석한 석동현 위원

 

고영주 위원은 청문회 기간 내내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실에 출근해 업무를 봤다. 그는 취재진에게 “나 같은 비상임위원은 고정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니 사직서를 제출하고 말고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안 나가면 사직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대통령 7시간에 대해 조사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다시 특조위원 활동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니 청문회에도 나설 수가 없다”고 말했다.

차기환 위원도 청문회 기간 동안 자신이 수임한 재판에서 변론하고 KBS 이사회에 참석하는 등의 일정을 보냈다. 그 역시 “전체회의 석상에서 사퇴 의사를 밝혔으면 그걸로 끝이 아니냐”는 말로 청문회 불참 이유를 대신했다.

여당 추천 위원들 가운데 유일하게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았던 이헌 부위원장도 청문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 부위원장은 청문회 기간 동안 주로 특조위 사무실에서 생중계를 보다가 간혹 청문회장에 나타나 기웃거리는 모습을 반복했다. 그러다 청문회 마지막 날인 16일에는 청문회를 취재 중이던 일부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인근 한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모습이 취재진에게 포착됐다. 참석한 기자는 6명이었다. 이 부위원장은 식당 앞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에게 “평소 친분 있는 기자들 몇 명과 친목 도모하는 자리였다. 청문회 취재한다고 고생하니까 밥 한 끼 산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동석했던 한 특조위 인사는 이 부위원장이 기자들에게 ‘이번 청문회의 증인이 지나치게 고위급으로 선정됐고 특조위원들의 심문 태도가 너무 고압적’이라는 등 청문회 전반을 비판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고 말했다.

 

▲ 12월 16일 오후, 청문회 취재 기자 일부와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이헌 부위원장

▲ 12월 16일 오후, 청문회 취재 기자 일부와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이헌 부위원장

 

여당 추천 위원들, 1년 내내 ‘특조위 방해’ 골몰

여당 측 추천위원들의 ‘전원 불참’은 이번 세월호 청문회를 ‘반쪽 청문회’로 규정하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나아가 세월호 특조위의 운영 전반이 편향적이라는 인상을 주어 궁극적으로 특조위 무용론을 확산시키겠다는 뜻도 읽힌다. 이는 이들 여당 추천 위원들의 지난 1년 간의 행적을 종합적으로 볼 때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특조위 준비단 시절이던 올해 1월 중순, 새누리당 추천인 조대환 전 부위원장은 특조위의 인력과 예산을 구상하는 수준인 내부 문건을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에게 몰래 전달했고, 김 의원은 이를 근거로 이른바 ‘세금도둑론’을 확산시켰다. 이후 조 전 부위원장은 특조위 준비단에 파견돼 있던 정부 공무원들을 독단적으로 철수시키기도 했다.

지난 2월 13일 열린 특조위 준비단 전원위원회에서는 특조위 예산안을 최대한 축소하려다 실패하자 여당 추천 위원 5명이 전원 퇴장해 버렸다. 이들은 바로 다음날, 전원위원회에서 공식 의결된 특조위 시행령안을 무시하고 정부 파견 공무원 숫자를 최대화시킨 별도의 시행령안을 만들어 해수부에 제출했고 결국 해수부는 이 안을 토대로 시행령을 확정했다.

‘특조위의 BH 조사 적극 대응’ 문건 파문…’출처는 해수부’ 확인

이같은 여당 추천 위원들의 무수한 특조위 방해 행위의 배후가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지난달 한 언론에 의해 보도된 ‘세월호 특조위 관련 대응 방안’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특조위의 청와대 조사를 막기 위해 특조위 내부에서는 여당 추천 위원들이 강력한 문제제기와 함께 사퇴까지 불사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여당 농해수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특조위의 편향성을 지적하는 성명서를 발표한다는 행동 계획이 들어 있다. 실제로 11월 19일 이헌 부위원장을 비롯한 특조위 여당 추천 위원들과 안효대 의원을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세월호 특조위 관련 현안 대응' 문건 (자료제공: 머니투데이 the300)

▲ ‘‘세월호 특조위 관련 현안 대응’ 문건 (자료제공: 머니투데이 the300)

 

이 문건의 세월호 예산 관련 대응 내용 중에는 ‘우리 부가 기재부와 협의’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는 누가 봐도 문건의 작성 주체가 해양수산부였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따라 세월호 특조위와 세월호 가족협의회, 그리고 야당 등이 해수부를 향해 문건의 작성 주체와 전파 경위를 밝힐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그러나 해수부는 문제의 문건이 보도된 지 1달이 다 되어가는 현 시점까지도 “해수부가 작성한 문건이 아니다”라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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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뉴스타파 취재 결과, 해당 문건은 연영진 해수부 해양정책실장이 새누리당 보고용으로 소지하고 있었던 것임이 확인됐다. 취재진과 만난 국회 농해수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보도된 문건은 연영진 실장이 갖고 있던 것이며 연 실장 직속의 해수부 과장이 우리 의원실에 와서 경위를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건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청와대가 해수부에 ‘함구령’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도 말했다. 그는 “청와대가 해수부에, 이 문건의 출처를 절대로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앞으로는 이와 유사한 문건을 생산하지도, 들고 다니지도, 심지어 여당에 보고조차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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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정부-여당의 특조위 개입 드러났지만 되레 ‘특조위 해체’ 수순

이처럼 ‘문건’을 통해 청와대와 해수부, 새누리당이 여당 추천 위원들을 통해 특조위 무력화를 시도해 왔음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새누리당은 특조위가 ‘대통령을 공격하려 한다’는 점을 내세우며 사실상 현행 특조위를 해체하려는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지난 11월 23일 특조위가 ‘참사 당일 청와대의 대응’에 대한 조사 개시를 결정하자 안효대 새누리당 농해수위 간사는 즉각 이석태 위원을 포함한 특조위원 전원이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특조위 예산을 줄일 것이고 특조위 해체까지도 검토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런 발언은 하나하나 현실이 되고 있다. 이후 특조위의 내년도 예산은 61억 7천만 원으로 확정됐다. 세월호 특조위가 신청한 198억 7천만 원의 3분의 1도 안 되는 규모다. 내년 6월까지의 직원들 인건비를 제외하면 10억 원 정도를 갖고 모든 사업을 해야 해,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조사 업무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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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은 사퇴 의사를 밝힌 위원 4명에 대한 후속 인선도 진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어차피 현행 특조위원 구성 체제를 재편할 것이어서 굳이 현행 체제에 근거한 인사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 7일 안효대 의원 등 새누리당 의원 10명은 세월호특별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은 현행 17명인 특조위원을 12명으로 줄이고 그 가운데 4명을 대통령이, 2명이 여당의 추천으로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기존에 3명을 추천할 수 있었던 유가족 몫은 아예 없앴다. 사실상 현행 특조위를 해체하는 내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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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여당의 움직임에 대해 박주민 416가족협의회 변호사는 “새누리당의 세월호특별법 개정안은 한 마디로 600만 명 이상의 국민이 서명하고 여야가 합의한 특별법의 취지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라며 “오로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막겠다는 목적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목, 2015/12/1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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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민중 총궐기 ‘소요문화제’ 전국 주요도시 동시다발 열려
– 소요죄 적용에 대한 풍자 ‘소요’ 문화제
– 보수단체 알바기로 사전 집회장소 점유
– 노동개악 철폐, 공안탄압 중단, 농민 백남기씨 회복기원, 국정화 반대, 세월호 진실규명, 박근혜 퇴진 외쳐

19일 광화문광장에서 3차 민중 총궐기가 열렸다. 이번 총궐기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과 노조원들 및 시민단체에 적용된 ‘소요죄’를 비난하는 ‘소란스럽게 요란스럽게’라는 ‘소요문화제’로 진행되었다.

소요죄는 30년 전에 사멸된 내란선동에 준하는 범죄다. 소요죄를 적용한 이유는 집회에 참여하는 시위자들에게 겁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공안탄압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

이번 3차 집회는 전국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서울에서는 광화문 집회 후 대학로 행진이 있었다. 주최측은 예초에 서울역 광장과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를 했지만 경찰측에서는 보수단체의 다른 집회와 시간, 장소가 겹친다는 이유로 금지통고를 내린 바가 있다.

이후 주최측은 서울시의 허가를 받아 ‘소요문화제’를 열게 되었다. 보수단체의 시간과 장소 사전 점유는 결국 알바기로 판명되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문화제가 끝난 이후 광화문광장 옆 서울 파이낸스 빌딩부터 대학로 마로니에공원까지 노동개악 철폐, 공안탄압 중단, 농민 백남기씨 회복기원, 국정화 반대, 세월호 진실규명, 박근혜 퇴진 등 각종 구원을 외치면서 3.6km의 거리를 행진했다.

경찰측은 사회자의 선동에 따라 구호를 제청하고, 정치성 구호가 적힌 플랜카드와 피켓을 사용하는 등의 순수한 문화제가 아니라 집회,시위로 변질됐다고 판단하여 주최 측 집행부에 대한 처벌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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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뉴스프로, 기사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일, 2015/12/20-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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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과 허태열·김기춘 전 청와대비서실장,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조인근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 이상 7명을 '대통령기록물 유출'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했습니다.

 

지난 10월 24일 언론보도를 통해 대표적인 대통령기록물인 대통령 연설문이 사전적으로 '일반 개인'인 최순실에게 유출된 사실이 모든 국민들에게 명백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이튿날인 10월 25일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스스로 대통령기록물 유출 혐의를 인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최순실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중 -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국정운영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것을 제정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담보하기 위해 대통령 직무수행과 관련한 대통령기록물의 관리에 대한 막중한 책임과 의무들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 중 특히 대통령기록물을 무단으로 '유출'한 사람에게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등 엄중한 처벌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대통력기록물 유출에 대한 처벌이 이렇게 무거운 까닭은 대통령의 직무수행기관과 공직자들이 이 법에서 부과하고 있는 책임과 의무들을 등한시 하거나 가벼이 여길 때, 곧 대통령의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 또한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과 국민의 대표자인 대통령, 그리고 그런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하는 공직자들이 이 무거운 책임을 등한시 할 때 필연적으로 국가 기강이 흔들리게 되며 행정 체계 전반은 혼란을 겪을 수 밖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피해는 오로지 무고한 국민들이 짊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통령기록물 유출 사건을 목도하고 있는 국민들은 현재 참담함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제 국민들은 하야와 탄핵까지 어떤 주저함과 망설임도 없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노한 민심이 바로 정보공개센터가 실제로는 기소가 불가능한 현직 대통령을 고발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사퇴를 하든, 탄핵을 당하든 임기가 종료되는 즉시 법의 심판대에 서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범죄가 확인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고발장(정보공개센터_대통령외6인).pdf

 

 

 

 

 

저작자 표시 비영리
수, 2016/10/26-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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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른백년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단비뉴스팀과 함께 ‘사랑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6편에 걸쳐 우리 주변의 삶을 들여다본다. 장시간 노동자, 청년 실업자, 경쟁에 시달리는 직장인, 노인, 청소년들이 그들이다.  

노인은 말동무를 찾아 매일같이 탑골공원에 간다. 취업 못한 청년은 안전한 직장을 가질 때까지 스스로 고립된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직장인은 연인을 만날 시간조차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사랑은 사치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다. 

당신은 사랑하고 계십니까. 

<프롤로그> 1. “들어줘서 고마워”      2. 한국인의 밥상

<청년 실업자> 1. “사랑도 유예가 되나요?”  2. “연애도 사치일 뿐”   

<자영업자> 1. “주말도, 휴일도 없는 30시간 편의점이예요”  2. 쉽게 문 열고, 쉽게 망한다.

(이 글은  전남 광주에서 24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혜숙씨(가명)의 육성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런 형식을 ‘사람책’이라고 한다. 

또 이 글은 경향신문( “365일 하루 30시간 부부 맞교대…군대 간 아들 면회도 못 갔어요)에 전재됐다)

남편이랑 저랑 둘이서 13년째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어요. 아르바이트는 안 써요. 하루 24시간을 둘로 쪼개서 반반씩 근무하는 셈이죠. 저는 보통 새벽 3시쯤 일어나요. 식사를 준비해 놓고 도시락을 싸서 부지런히 집을 나서면 4시 반에서 5시 사이에 남편이 있는 가게에 도착해요.

아무래도 남편이 야간에 고생을 하니까 10분이라도 더 빨리 가려고 애를 쓰죠. 이때가 하루 중 남편과 제가 만나는 유일한 시간이에요. 교대시간 전후로 한 두 시간 남짓이요. 그 시간 동안은 둘이 목이 터져라 얘기를 하죠. 진상손님 흉도 보고, 못했던 잔소리도 하고. 그때는 손님도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손님이 오면 대화를 못하잖아요.

하루 2시간, 한 달에 이틀 반나절을 함께하는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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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쯤 남편이 집으로 가고 나면, 그날 팔 빵을 구워요. 우리 편의점은 빵이랑 쿠키를 직접 구워서 팔아요. 그리고 8시부터는 상온제품, 유제품 등 연달아 들어오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재고가 없는 건 추가 발주를 넣어요.

틈틈이 빵을 굽고 포장하면서 손님을 받다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요. 보통 오전 11시 전에 가게에서 첫 끼를 먹죠.

정오가 되면 근처 대학에서 학생들이 점심을 해결하러 몰려들거든요. 그 전에 해치워야 해요. 밥은 카운터 안쪽에 간이식탁을 펴놓고, 집에서 싸온 몇 가지 반찬이랑 먹어요.

어떤 날은 손님이 몰려서 한 끼 먹는 데 두 시간씩 걸리기도 해요. 오후 3시 반쯤 남편이 다시 오면 저는 집으로 돌아가요. 정말 하루가 금방 가죠.

편의점 일이 편하다는 말은 다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예요. 정말 혼자서는 손발이 모자라죠. 쉽게 생각하고 덜컥 편의점을 시작했다가 한 달 만에 두 손 들고 나가는 경우도 여럿 봤어요.

저희끼리는 24시간이 아니라 ‘30시간 편의점’으로 이름을 고쳐야 한다고 말해요. 혼자서는 도저히 창고정리나 청소를 하기 힘들어서, 교대시간 전후로 둘이 같이 근무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사실상 남편은 하루에 15시간 이상 가게 일을 하고 있어요. 자영업이 다 그렇긴 하지만요.

주말도 휴일도 없는 연중무휴의 도돌이표 하루

편의점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가정주부였고, 남편은 은행에 다녔어요. 은행 지점장을 7~8년 정도 했어요. 2000년도였을 거예요. 외환위기 칼바람을 간신히 피했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마지막 해고바람이 불었어요. 그때 명예퇴직을 당했죠.

남편이 40대 후반이었고 첫째는 고3, 둘째는 겨우 중2였어요. 돈 들어갈 일이 너무 많은 시기였죠. 남편이 작은 개인회사에 재취업을 했었어요. 그런데 자금을 끌어오고 영업을 해야 하는 일이라 남편이 많이 힘들어했어요. 그만뒀죠.

당시에 은행에서 받은 퇴직금도 있고 집에 목돈이 꽤 있었는데, 사기꾼이 붙더라고요. 사기도 여러 번 당했어요. 남편이 돈을 벌어보겠다며 주식도 하고 사업투자도 했지만 다 여의치 않았어요.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그때 지인이 편의점을 하고 있었어요. 물어보니, 편의점은 장사경험이나 별다른 수완이 없어도 해볼 만하겠더라고요.

그때는 편의점 매출이 많지 않아도 본사에서 점주들한테 최저수입을 보장해주기도 했고. 그렇게 알음알음 시작하게 됐어요. 본사에서 주는 최저보장금이라도 다 챙겨보자고 생각했죠.

매장을 세 번 옮기면서 편의점을 하는 12년 동안, 제가 몸이 아팠을 때 잠깐 빼고는 아르바이트를 쓴 적이 없어요. 저희는 편의점을 처음 할 때 누군가에게 뭘 팔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컸어요. 지금도 서로 “장사는 정말 나랑 안 맞아”라고 말하죠.

영업을 잘해서 떼돈을 벌 자신도, 능력도 없었어요. 인건비를 줄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몰랐죠. 그래서 초기에는 둘이서 하루에 열대여섯 시간씩 근무하며 일을 배웠어요. 편의점이라는 게 쉬는 날이 없잖아요. 가게를 시작한 뒤부터 12년째 저희 부부는 주말도 휴가도 없이 집과 가게만 오가며 지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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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부부는 끼니 때가 되면 편의점 한 구석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을 허겁지겁 먹는다. 사진은 김씨가 싸온 도시락 모습.

요즘에는 제가 몸 관리를 하느라 일주일에 세 번, 퇴근 후에 운동을 다니긴 하지만 집에 가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자려고 하죠. 몸이 너무 힘드니까. 하루 대여섯 시간 정도 자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는 아들 방학 때만 기다려요. 기댈 곳은 우리 아들밖에 없으니까. 둘째 아들이 다른 지역에서 대학원을 다니는데 방학이면 집에 와서 가게 일을 도와주거든요. 아들 덕에 일주일에 하루 이틀만 가게를 쉬어도 감지덕지죠.

편의점과 집 밖에서는 잠수인생

저희는 아들 둘 다 군대 면회를 한번도 못 갔어요. 첫째는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입소할 때 데려다준 게 끝이었고, 둘째는 면회는커녕 군대 갈 때 데려다주지도 못했어요. 편의점을 하니까 하는 수 없었어요.

그러다 잠깐 편의점을 쉬었던 5개월 동안 집에 있으면서 애들 밥해주고 집안일하면서 보냈는데, 작은아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엄마가 집에서 밥을 해준다고. “엄마, 너무 좋아. 너무 좋아” 그러더라고요. 미안했어요. 둘째가 중2 때부터 제가 편의점을 한다고 집에 없었으니까요.

저희가 친정이나 시댁 식구가 참 많은데, 결혼식 등 경조사에 참석 못한 지도 10년이 넘은 것 같아요. 못 갔어요, 한번도. 가려면 또 대충 하고 갈 수는 없잖아요.

남편도 저도 365일 24시간을 편의점과 집만 왔다 갔다 하니까 입고 갈 옷이 없는 거예요. 애들 아빠도 회사 다닐 때 입던 낡은 양복 밖에 없고. 그런 상황이 돼 있었어요. 옷을 사고 구두를 사고 또 준비를 하고, 그러기가 싫었어요. 여유도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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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남편은 은행지점장으로 일했지만 2000년 갑자기 정리해고를 당했다. 사진은 1998 외환위기때 대량해고를 당한 한 은행원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모습 (사진 출처: http://www.gokorea.kr)

친구들이 자식 결혼한다고 연락이 오면, 저는 몸이 아파서 못 간다고 하고 애들 아빠는 일 때문에 못 간다고 말해요. 그래서 저희 부부는 우리 아이들 결혼할 때 아무도 안 오겠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친정어머니가 치매예요. 처음에 남매들끼리 돌아가면서 돌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편의점 일을 하면서는 제가 어머니를 모실 수 없잖아요. 그때가 두 번째로 했던 편의점 매장 계약이 종료되고 잠깐 쉴 때였는데, 새로 편의점을 열기 전까지 한 20일 정도 저희 집에서 친정어머니를 모셨어요. 이게 마지막이다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어느 날은 오빠가 전화를 해서 “이제 네 차례니까 네가 좀 모시라”고 하는 거예요. 전 “다들 사는 거 바쁘고 힘들어서 집에서 어머니 모시기 힘드니까 요양원에 가시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독하게 말해버렸어요.

남편이 은행에 다니고 제가 집안 일만 할 때는 사교모임이 많았어요. 취미생활도 하고. 그런데 편의점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친구들 모임에도 제가 먼저 잠수를 타게 되더라고요. 계속 모임에 나가지 않다보니 연락이 점점 줄고 자연스럽게 아무도 안 만나게 됐어요.

지금은 같이 편의점 하면서 알게 된 친구 말고는 연락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종일 편의점에 있다 보면 전화 통화를 하다가도 손님이 오면 끊어야 하고, 시간 내서 누굴 만나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동네 주민 모임은 회비만 내고 있어요.

자주 오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편의점은 단골 개념이 적기도 하고, 손님들과는 절대 친하게 안 지내요. 되도록 말 섞지 않으려고 하죠. 외상을 달라고 하거나,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거절하기 어려워지거든요. 또 까딱 잘못하면 사기당하니까. 몇 걸음만 가면 근처 편의점이 두 곳이나 있는데 거긴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주인 얼굴도 몰라요.

저희 부부는 편의점이나 집이 아닌 곳에서는 일종의 잠수를 타고 있는 거예요. 사회생활, 사적인 생활 모두에서요. 라디오에서 저와 비슷한 사연만 나와도 꺼버리고 독하게 일만 했어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이런저런 관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마음 아파하지 않기로 했어요. 살다보니, 외롭고 슬프고 그런 감상에 젖어서는 내가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감정이 늙어버린 것 같아요.

“자식들 때문이 아니면 이걸 왜 하겠어요?”

두 번째 편의점 계약이 만료되던 때가 저희가 편의점을 시작한 지 딱 10년째 될 즈음이었어요. 처음 가게는 유흥가에서 했고, 그 다음 가게는 중학교 앞에서 했는데 술꾼들, 사고치는 중학생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사람들한테 굉장히 치였죠.

정말 편의점 하면서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다고 느꼈을 정도예요. 오는 손님들도 다 미워 보이고. 그래서 계약이 만료되면 다시는 편의점을 안 하려고 마음먹었었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행이나 다니면서 푹 쉬려고 했어요. 그런데 쉬면서 수입이 딱 끊기고, 있는 돈만 쓰니까 금방 불안해지더라고요.

연금 조금 나오는 것 가지고는 생활하기 힘들어요. 우리가 앞으로 10년만 살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살지도 모르는데 한 푼이라도 더 벌어놔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다른 일을 해보려고 집에서 가까운 직업훈련소에 몇 달 다녔어요. 저는 제봉을 배우고 남편은 양재를 했어요. 편의점을 그만두고 앞으로는 무조건 둘이서 붙어 다니자고 합의를 했거든요. 계속 서로 못 보고 살았으니까.

2개월 넘게 다녔는데 전망이 너무 없어서 그만뒀어요. 직업훈련소는 별로 쓸모가 없어요. 정부는 왜 그런 데 돈을 쓰나 몰라요. 그러고는 5개월 만에 다시 편의점을 열었어요. 남편이랑 편의점 쪽은 쳐다보지도 말자고 했었는데, 다시 24시 편의점을 하게 된 거예요. 이 나이에 저희가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편의점을 다시 하게 된 건 아이들 때문이라고 볼 수 있죠. 자식들이 다 독립했으면 저희가 왜 이걸 하고 있겠어요?

첫째는 아직 경제적으로 자리를 못 잡았고, 둘째는 취직 대신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했으니까요. 우리 애들 나이가 서른넷, 서른하나예요. 예전 같았으면 벌써 독립해서 장가갈 나이인데 아직 그러지 못해서 저희 부부가 이러고 있죠.

저희 또래들이 요즘에는 다 자식 때문에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는 것 같아요. 세상이 그렇게 변해서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참 힘든 건 사실이에요. 힘들어요.

가게를 그만두면 남편과 여행을 가고 싶어요.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한번도 못 갔어요. 그런데 자식들 결혼도 안 시켰고 아직 할 일이 많아요. 사회적으로 복지가 최저생활이라도 가능한 정도만 지원되면, 저희가 편의점을 그만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월, 2017/02/2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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