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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죽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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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죽어야 산다

익명 (미확인) | 수, 2016/08/17- 18:11

최근 한국경제성장률의 저하를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내용인즉 IMF 위기이전에는 7 % 이상의 고도성장을 유지하던 성장률이 국민의정부 시절에는 5.0%, 노무현정부에선 4.2%, 이명박때에는 3.0%선, 그리고 박근혜정권인 현재 2.0%대 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저출산율과 수출격감이 겹치면서 조만간 제로성장 내지는 급기야 마이너스 성장까지 예측하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성장률추이
개발연대 시대 고도성장을 했던 한국경제의 신화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그럼에도 최근 낮아진 경제성장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라면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이미지 출처: 한국경제)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의 성장률이 저하되고 있지마는 이는 세계경제환경의 일반적 추세로 오히려 주변 경제국인 대만, 홍콩 그리고 싱가포르와 대비하여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선방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주로 경제관료들과 관변학자들의 강변이나, 이들의 의견을 입증하려는 듯이 최근에 국제신용기관들이 한국의 등급을 역대 최상급인 AA를 부여했다. 경제지표와 재정 및 정책의 여력이 경쟁 국가들보다 양호하다는 설명으로 역시 돈장사를 위해 존재하는 국제기구다운 평가이다.

한국경제…위기의 징후들

위의 견해들은 부분적 사실만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기준으로 보면 주변 경쟁국들보다 한국의 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국가들은 여러 해 전부터 저성장국면으로 진입하여 장기간적 안정선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지난 10여 년간의 성장률곡선이 급격하게 기울어져 저하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경제가 조만간 심각한 위기상황을 맞이할 징후가 뚜렷해 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과도한 수출의존형 경제구조를 지닌 한국이 세계경제의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08년 금융위기이후 주요 선진국들의 경제성장률이 1.0% 미만의 저성장으로 내려앉았고, 난민과 테러 등 다양한 불안 요인들이 지속되면서 추가적인 인하 전망이 우세하다.

여전히 일부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를 Black Swan 또는 Fat Tail 등 예외적 상황으로 돌리면서 조만간에 정상적인 성장세를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반대편에 서있는 신케인즈안들은 저성장현상을 정책적 실패로 규정하면서 적정한 정책도입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경제의 위기상황이 지속되면서 양측 주장 모두 설득력이 매우 약하다.

자원과 지구온난화의 명백한 환경적 제약, 국제적 금융시스템의 속성적 결함과 도덕적 해이, 부익부의 수탈시스템 강화, 과학기술의 단절적 격변과 더불어 디지털 경제로 통칭할 수 새로운 경향들은 이제 우리에게 일방적인 성장률 신화에서 벗어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주요 경제국가들에게 저성장 또는 탈성장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동시에 지난 수십년간 우리를 지배해왔던 GDP 지수의 유용성에 한계가 왔음을 의미한다. 이제는 경제운용지표에 있어서도 사회윤리적 기준을 적용하여 삶에 대한 성찰과 질적인 가치을 중심주제로 삼아야 하는 시대로 접어 들었다.

성장률 패러다임 벗어나야…근본적 개혁 절실

한국경제에 경제성장률 저하보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핵심과제는 불안정성의 극복이다. 더구나 불안정성의 주요 요인들이 국제적인 외적 환경보다 한국 내부구조와 조건속에 깊이 고착되여 있다는 점이 심각함을 더해 주고 있다.

최근 회자되는 산업구조조정과 관련하여 들여다 보면, 지난 수년간 상장된 업체수의 30 % 수준에 달하는 기업들이 경상이익으로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형편이고, 이중 다시 30% 수준, 즉 상장기업수의 약 10%가 3년 이상 결손이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정도의 결손지속상황은 과거처럼 고성장이 가능했던 시절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앞에 언급했듯이 세계경제에 저성장과 탈성장이 안착된 현 시점에서는 매우 어려운 난제가 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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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국경제는 높은 경제성장이 고용을 낳고, 고용이 소득증대를 낳아서 다시 고도성장을 하는 선순환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고성장 패러다임은 시효를 다했다. 당면한 저성장시대에 맞는 경제체질, 경제운용원칙 등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http://magazine.hankyung.com/apps/news?popup=0&nid=01&c1=1001&nkey=2014…)

물론 단기적으로는 긴급한 산업구조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그동안 한국경제를 지탱하여 온 주요 기둥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의미하며, 이를 억지로 붙들고 버틴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그동안 관성적으로 당연시해왔던 경제운영 패러다임과 산업구조 프레임에 대한 대담한 질적 변화와 차원을 달리하는 대책, 그리고 사회철학적 대전환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섣불리 대책과 제안을 내놓 수 없는 어렵고 위험하고 힘든 주제이다. 그럼에도 문제제기와 격론을 통한 대안 마련의 노력을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마추어 수준임에도 필자는 나라걱정이라는 핑계를 방패삼아 한국경제에 불안정성을 가져오게 된 주요한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초보적 수준에서 언급하고자 한다.

유연한 연성형 경제구조로의 전환

우선 현재의 근육질 산업구조를 유연한 연성적 구조로 점차 전환해야 한다.

수출주도형 경제로 구축된 그간의 한국경제는 가용가능한 자원을 소수의 재벌기업에 집중시켜 세계적 규모의 제조기반을 형성하고 이를 기초로 성장의 기반을 삼아 왔다. 노동과 자본의 양적 투입으로 가능한 가공과 조립 중심의 대규모 제조기반, 약탈적 노동조건으로 경쟁우위가 손쉬운 건설과 조선등 수주산업 등을 필자는 두뇌가 없는 근육질 산업이라고 칭하고 싶다.

미국 등 거대한 시장이 제공하는 상대적 안정기를 즐긴 지난 50년간 이러한 근육질 제조산업중심의 수출전략이 한국을 구매력기준 3만불대 선진국초입의 경제로 성장가능하게 했음은 분명히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예측이 어려울 만큼 격변하는 새로운 환경속에서 기존 산업구조의 연장과 경제운용방식으로는 나은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향후 엄청난 부담과 위험을 가져 올 수 있다.

현재 한국 산업구조는 이미 급변하는 외부적 조건과 충격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고 고정자산에 투입된 과다한 관리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등 많은 취약점을 노출하고 있다.

벌써 조선산업 등에서 고통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고 조만간에 석유화학, 제철제강, 해외건설 등 주요산업영역에도 어려움이 들이닥칠 것을 예상한다. 이러한 충격과 부하를 완화시킬 완화장치로서 새로운 연성적 경제활동과 산업영역을 확대해 나가야만 한다.

제4차산업의 도래를 예견하는 오늘, 규모이익에 기반한 단순가공과 조립제조 및 노동수탈을 기반한 수주산업만으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서울공대 교수들이 ‘축적의 시간’이라는 책에서 적절하게 지적하였듯이 앞으로는 기본설계능력, 핵심기술, 새로운 아이디어와 가치를 촉발하는 혁신적 기반에 기초하여 급변하는 상황에 응동할 수 있는 유연한 연성산업을 지원하여 기존 산업구조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규모와 특혜에 기초한 기업이 아니라, 시장과 수요변화에 따라 역동적 과제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업환경과 산업구조로 재편되어야 한다.

재벌구조 혁파…네크워크 경제구조로의 이행

가용가능한 물적 기술적 기반과 조건을 공유하고 협업하는 클러스터 형태의 개방적 혁신생태환경을 형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자연스레 기본 단위가 중소규모로 분산된 네트워크 경제가 훨씬 유리해진다. 그동안 경제정책에서 무시되었던 자영업, 소기업, 마을기업,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등의 잠재력을 재확인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정책과 금융시스템이 요구된다.

협력, 공유, 네트워크, 상생적 금융이 핵심적 주제어가 되어야 하며 결과적으로 국제적 규모의 대기업과 전문적 중기업 그리고 많은 혁신적 소기업이 서로 보완하며 건강한 산업생태적 숲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공정하고 왕성한 시장 매카니즘이 제대로 작동해야 혁신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신생기업의 시장에 대한 진출입이 자유로와야 하며 특히 실패한 기업의 퇴출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국민경제가 살아난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기능을 마비시키는 (특히 gate keeper로서) 봉건영주제적 재벌구조와 특혜적 관료경제는 반드시 혁파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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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도성장은 국가-금융-재벌의 삼위일체로 가능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성장모델이 21세기에는 한국 경제의 질곡이 되고 있다.

재벌문제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주제로 추가내용을 기술하기 보다는 강력한 정치적 정책적 실천의 영역이다. 일정기간의 유예를 통한 엄격한 금산분리 정책, 순환출자의 금지와 지주회사제 확립을 통한 자회사 출자규정의 확립과 제한, 계열사를 통한 이익편법누출에 대한 징벌적 처벌, 대기업군의 참여 업종의 제한 등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내용들을 법적 제도적으로 확립하고 이를 정한대로 처리하면 될 일이다.

미국이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에는 강력한 반독점규제법이 제도적으로 확립되여 제대로 작동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의 예에서 보듯이 대주주가 잘못하면 회사를 폐쇄하거나 냉정하게 시장에 매각하는 메카니즘이 예외없이 작동해야 한다. 주주중심주의에서 이해관계자 또는 사회기여중심으로 기업이 운영될 때, 지속가능성이 확장된다.

경제의 활력을 위해서 죄지은 재벌총수를 사면하다는 뻔뻔스런 거짓말이 최고 통치자 입에서 나와서는 아니 된다.

대중영화속 단골주제로 이미 국민들에게 익숙해진 재벌기업총수들의 사면이야말로 정경유착의 극치이다. 오히려 국민경제속 책임이 막중한 재벌총수의 불법편법행위에 대해서는 가중처벌제도를 확립해서 일벌백계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재벌의 족벌경영은 혁파되어야 할 대상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원칙은 잘못해도 大馬不死가 아니라 잘못하면 당연하게 大馬必死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효 다한 관치 경제

대우조선의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산업은행 행태와 청와대 서별관회의 사건에서 보듯이 관료들의 부패와 무책임이 무소불위라는 재벌의 폐해를 능가하고 있다. 산업은행을 조속히 민영화 시키고 일체의 관치금융과 줄세우기 정책은 폐지되어야 한다.

개별적 특혜와 사안별 지원정책이 모두 폐기되어야만 관료적 폐해와 부패가 사라진다. 정부의 정책은 개별적 기업지원과 사안별 접근이 아니라 일반적 보편적 조건위에서 누구나 기업하기 좋은 환경조성을 위해 투명한 제도로서 시행되어야 한다.

오늘까지 시행된 개별적 각종 산업지원정책은 퇴출되어야 할 기업을 특혜로 살려주면서 해당 산업내 양질의 기업경쟁력을 소진시키는 반면에, 뒷줄의 배경이 된 정치권력의 사익을 조장하고 빨대경제의 정점에 있는 재벌만 살찌웠다. 관료들의 책임문제는 잘못하면 패가망신을 한다는 수준의 강력한 처벌규정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경제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한국만의 일국적 상황이 아니라, 영국의 대처수상과 미국의 레이건 정권이후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진 일반적 현상이다. 다만 한국에서는 위에 언급한 봉건영주적 재벌의 위치과 관료들의 부패와 기회주의적 무능에 민주개혁정부의 실패와 재벌 및 공공노조들의 이기적 조합주의 등이 겹치면서 세계최악의 양극화현상을 불러왔다.

새로운 경제철학 갖춘 정치세력 등장해야

이를 해소하는 것은 재벌문제에 못지않은 실천적 정치적 이슈로 차기 정권의 방향과 성격에 맞불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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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구조의 혁신은 결국 그런 철학과 의지를 가진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요구한다. 경제의 문제가 단순히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와 직결되는 이유이다. 경제영역의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먼저 정치영역에서 민주주의를 이뤄내야 한다. 내년에는 그런 정치세력을 선택하는 정치적 기회의 장이 열린다.

시간당 만원이상의 최저임금제, 적정 생활임금, 동종산업 및 동일사업체내 동일노동 동일임금, 시민연대임금제 도입(광주, 서을 등 실험적 논의중)과 더불어 기본 사회안전망의 촘촘한 구성, 미래사회가 생산과 고용중심에서 소비중심사회로 전환될 것을 예측하면서 국민경제부가가치의 20% 수준이상을 투입하는 기본소득제 도입 등, 수많은 과제들이 미래로 가야하는 우리앞에 놓여있다.

한국경제는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의 사적소유경제에서 벗어나 이웃과 함께하고 서로가 상생하는 개인소유경제에 기초하여, 양적인 성과와 오로지 효율만을 추구하는 GDP성장률 중심의 경제운용에서 벗어나, 개인과 사회의 자유를 고양시키는 가치(development for freedom)를 추구하는 새로운 경제패러다임과 일상적 혁신의 기초가 되는 자발적 참여가 가능한 기업민주화와 산업운용패턴으로 전환해야 한다. 절실한 시점이다.

(※ 위 내용은 최배근 건국대 교수, 박상인 서울대 교수, 김호균 명지대 교수, 김교성 중앙대 교수 등의 연구내용을 토대로 작성된 것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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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6일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출범을 앞두고 김동춘 다른백년연구원 원장이 한겨레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한겨레신문(6월 9일)에 실린 김 원장의 인터뷰를 전재한다)

“지난 100년의 뒤틀린 근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백년을 모색해야 한다.”

‘시민사회’를 지향하는 각계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계에 봉착한 우리 사회의 근본문제를 진단하고 실천적 대안 담론을 기획하고 제시하려는 사단법인 ‘다른 백년’이 오는 16일 창립 보고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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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승동 선임기자

‘다른 백년’의 세 축인 연구와 논평, 포럼에서 연구분야 조직인 ‘다른백년연구원’의 원장(비상근)을 맡은 김동춘(사진) 성공회대 교수는 6일 “지난 60여년간의 근대화와 재벌주도 경제성장의 결과, 한국 사회가 양극화와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고, 남북 기득권 세력 권력 강화에 정치적으로 이용돼온 70년 분단체제가 더는 지탱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다른 백년을 시작하는 이유를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에게 지난 100년은 강요된 식민지적 근대화, 서구 따라잡기, 국가주의, 물질만능과 인간 존엄성 경시의 시대였다. 우리는 반쪽국가의 반쪽 주권, 남북 대결, 개발독재형 신자유주의를 재검토·청산하고 새로운 사회, 새로운 정치와 국가건설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니까 다른 백년이라는 이름에는 김 교수가 “반쯤은 성공이고 반쯤은 실패”라고 보는 지난 100년간의 한국 근현대사에서 그 ‘실패’를 앞으로 백년간 또다시 되풀이하게 해선 안 된다는 결의와 미래 비전이 담겨 있다. “지난 백년 우리의 근대는 처참했지만, 완전히 실패했다고 보진 않는다. 성장의 토대를 확립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도 사실이다.”

김 교수 등이 생각하는 ‘백년’의 기점은 한반도 근대의 출발점이자 전혀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펼쳐보였던 1894년 동학혁명이다. 그가 말한 “강요된 식민지적 근대화, 서구 따라잡기(추종), 국가주의, 물질만능과 인간 존엄성 경시”의 “뒤틀린” 지난 100년은 동학혁명이 일제 등 외세 개입과 내부 역량 부족으로 실패하지 않았다면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근대화와 인간 존엄성을 중시하는, 그와는 전혀 다른 100년이 될 수 있었다.

“이 모임이 시작된 2014년이 바로 동학혁명이 일어난 1894년 갑오년이 60년마다 돌아오는 갑오세의 두 번째에 해당하는 해, 곧 120년이 되는 해였다.” 2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출범하는 다른 백년은, 동학혁명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고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새로운 세상,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의 인권과 평등의 다른 100년을 세우자는 이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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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 기록화

다른 백년은 진보적 가치와 담론을 생산하고 확산하는 민간 싱크탱크인 ‘다른백년연구원’, 연구원에서 생산된 담론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매월 여는 토론회 중심의 ‘백년포럼’, 사회 현안들을 진단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논평 활동을 벌일 포럼 ‘백년을 위한 합의’를 축으로 민주주의 시민교육을 위한 부정기 프로그램 ‘백년학당’ 등으로 짜여 있다. 사무실은 서울 마포 도화동(독막로)에 “상근자 몇명을 두고 회의 등 간단한 행사를 치를 수 있는 정도의 공간”으로 마련했다.

김 교수는 다른 백년의 집행기관이요 중심인 위원회 형식의 ‘5인 이사회’와 10인 확대운영이사회의 핵심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원장을 맡고 있는 연구원은 “40~50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주주의·사회적 경제·자영업연구·평화통일 등 4개 분과팀이 있고, 이와는 별도 조직으로 설문조사 등을 벌이고 분석하는 리서치팀과 30~40대의 박사급 소장 연구자팀(일부 중복)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는 구미 시민사회를 떠받치는 버팀목의 하나인 민간 싱크탱크의 부재가 한국 사회의 중대한 취약점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이익을 대변하거나 실천담론이 부재한 아카데믹 위주의 대학 연구소, 선거용 단기 분석과 계파 나눠먹기 위주의 정당 연구소 등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엔지오(NGO)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시민단체인 일촌공동체를 만들고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 참여해온 이래경 이사장을 중심으로 김 교수,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 최상명 우석대 교수,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이 이사회에 참석한다.

그는 “1980년대 이후 그 줄기찬 민주화운동에 힘입어 국제사회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이자 가장 역동적인 나라로 칭송받던 한국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8년을 거치는 동안 일거에 후진국 수준으로 후퇴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며 “그만큼 우리 사회 민주화의 토대가 취약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백년은 바로 그 취약한 한국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시 탄탄히 쌓는 작업에 앞장서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 지지나 반대 등의 현실정치 개입은 하지 않을 것이다. 제도정치 바깥의 정치, 정당이 아닌 정치를 하려 한다.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 건설이다. 30년 민주화 운동의 에너지가 고갈된 만큼 미래의 정치가, 사회운동가들을 키울 것이다. 책임있고 행동하는 지식인을 키우고 실천적 지식 생산과 유통의 거점이 되는 대학 바깥의 대학이 되겠다. 대중과 소통하는 대안 언론의 구실도 하려 한다.”

그는 “국가, 시장, 사회의 실패와 지난 100년의 뒤틀린 근대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시민정치를 복원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전략으로 수출주도 성장주의 발전전략과 신자유주의 시장만능주의 발전경로를 수정해 생태와 사회의 조화를 고려한 성장과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지식정보기술 중심의 한국형 사회적 시장경제를 건설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사회력’(사회적인 힘)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사회력이란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문제를 집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힘, 보통사람들이 연대를 통해 강자에게 맞설 수 있는 힘, 그리고 자신의 대표를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킬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사회력이 고갈되면 경제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오는 16일 저녁 7시30분부터 종각역 앞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창립보고대회에서는 김 교수의 기조강연과 5인 이사 토크쇼, 팝페라 가수 율리아 신의 노래, 프롬코리아(FK)의 드럼 연주 등이 펼쳐진다.

한승동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목, 2016/06/0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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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경향신문(2016. 6. 1)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관련한 책을 검색해봤다. <세계의 대통령 반기문> <세계 위인전 WHO?- 반기문>과 같은 어린이용 책 목록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영어 연설문도 많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밑줄 그으며 학습해야 할 텍스트가 된 것이다. 간혹 성인용도 눈에 띈다. 그중 하나를 읽어보다 그만두었다. 독자를 초등학생 취급하는 영웅담이었다. 적어도 한국에서 그에 관해 책을 쓰는 방식은 오직 한 가지 같다. 그렇지 않다면 그를 초인으로만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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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그가 역대 사무총장 가운데 최악으로 평가받는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위인전의 주인공으로 계속 남을 수도 있던 그가 대권을 향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자신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은 결과다. ‘포린폴리시’는 사무총장 후보 시절 미국 외교협회에서 문답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2010년 이렇게 썼다. “단조롭고 어색한 영어, 공허한 답변들은 나를 깊이 잠들게 했다. 후보 때의 낮은 기대를 감안하더라도 임기 3분의 2를 마친 지금 반은 최악이다.”

‘가디언’은 사무총장 되고 처음 워싱턴을 방문, CSIS에서 연설했던 때를 회상하는 기사를 2010년에 썼다. “세계적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기 위해 수백명이 참석했다. 즉각 따분함과 실망감이 찾아왔다. 무미건조한 연설, 진부한 이야기들이 끝없이 되풀이되자 청중은 휴대전화와 블랙베리를 들여다보거나 허리를 굽힌 채 졸기 시작했다. 임기 4년째가 되어도 그는 개선되지 않았다.”

그를 비판할 때 등장하는 용어는 항상 같다. 단조로움, 우유부단, 진부함, 소심함. 여기에 ‘어디에도 없는 사람’ ‘소재불명’ ‘무기력한 관찰자’라는 딱지가 붙는다. 분쟁, 인도주의적 위기에 적시 대처하지 못해 재앙적 사태를 초래했다는 게 이유다. 반 총장 측은 ‘조용한 외교’를 오해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막후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그래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만 하면 곤란하다. 사무총장은 군사력도, 경제력도, 정치권력도 없다. 그런 건 강대국 차지다. 사무총장은 국제 규범, 정의를 대변하는 자로서 도덕적 권위를 활용, 세계의 양심을 일깨우고, 국제여론을 조성해야 한다. 조용한 외교만 했다면 직무유기에 가깝다. 사무총장이 가진 유일한 자원을 내다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사무총장은 결코 조용해서는 안 되는 자리다.

반 총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건 그만하자 사무총장은 본래 잘하기 어려운 자리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진짜 문제는 그의 능력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한국인은 그가 국제문제를 어떻게 다뤘는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 관심이 없다. 그저 ‘세계적 유명 인사가 된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주는 민족주의적 자부심에 만족했고, 그 만족 때문에 그를 대선 주자로 지지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가 국가를 이끌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해선 또 별 관심이 없다.

이런 식이면 내년 1월1일 그의 결심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세계 최대 기구의 최고 책임자 자리를 10년간 지내자마자 한 국가의 최고 권력 5년짜리를 향해 다시 욕망을 불태울지 말지는 그의 자유에 속하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면 된다. 최고 지도자 자격을 부여할지는 우리 시민의 주권에 속하는 일이다.

국제사회가 평가한 그와 국내에서 알려진 그는 대체로 일치한다. 그는 겸손하나 소심하고, 성실하나 결단력 없는 사람이다. 그를 관료 출신이라고 할 때 단순히 경력사항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업무 태도를 뜻하는 것이다. 관료란 주어진 목표를 잘 알려진 절차와 방법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다.

정치 지도자란 자기 비전에 따라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공동체의 운명을 헤쳐 나가는 사람이다. 그는 이런 덕목을 보여준 적이 없다. 노르웨이 유엔 부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대로 그에겐 비전과 리더십이 없다. 내년 대선까지 그걸 갖추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단기 학습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은 당원, 지지자, 정당 지도자들과 갈등하고 경쟁하며 협력하는 과정을 통해 단련되고 검증된 지도력, 이념·정책 없이 국가를 이끌어도 되는지 판단하면 된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범위를 파악하지 않은 채 국정을 맡겨도 되는지 결심하면 된다. 정치 밖 인기로 정치를 하고, 정당을 사적 욕망의 수단으로 써먹어도 되는지 고민하면 된다. 단기 대권 프로젝트라는 대선 지름길을 찾아내 정당 정치를 우회하고 그로 인해 정치적 퇴행을 무시할지 선택하면 된다. 정치가 좋아지지 않아도 삶이 나아질 수 있는지 생각하면 된다.

반기문 문제는 반기문의 문제이기 전에 시민의 문제다. 공동체를 누가 대표하고 이끌지 시민이 숙의하는가의 문제이다.

수, 2016/06/0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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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은 임명된 날 하루만 즐겁고, 남은 임기는 내내 더없이 괴롭다고들 한다. 그래서 그 하루의 즐거움이 6년의 고달픔을 이겨내게 해 주는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렇게들 대법관을 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고 농담을 나누기도 한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재임 시절 선고한 판결을 되돌아본 책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법원은 수도원이나 절간에 비유되기도 한다. 6년 동안 대법원에 감금되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도 있다. 대법관은 하루 종일 자료에 치이면서 끊임없이 사건기록을 읽고 동료 법관들과 토론하고 판결문을 써야 한다. 해마다 안경의 도수를 높이는 것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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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형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이인복 대법관이 물러나는 것에 맞춰 신임 대법관 후보자로 임명제청됐다.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오는 8월 중순 열릴 예정이다. (사진 출처: http://www.urimal.org/775)

민법 이론과 실무 겸비

그 고달픔 혹은 영광의 대열에 곧 합류할 신임 대법관 후보자가 최근 발표됐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오는 9월1일에 퇴임하는 이인복 대법관의 후임으로 김재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51)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대법원은 임명 제청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법 권위자이면서 학자로서는 흔치 않게 실무경력도 갖춘 법조인이다. 수많은 연구 논문 등을 발표해 한국 법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동의안이 가결되면 오는 9월2일 대법관으로 6년의 임기를 시작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장 이름까지는 알아도 대법원장 이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하물며 대법관은 일반 시민들에게 낯설다. 법조 출입기자나 일선의 판사들조차 대법원장, 법원행정처장을 포함한 대법관 14명 전부의 이름을 대 보라고 하면 얼마나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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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가운데) 등 대법관 14명 전원이 참석한 기념사진. 2013년 당시의 구성. 사법부는 입법부나 행정부에 비해 소극적인 권력기관이지만, 사법부의 결정에 따라 정책의 큰 물줄기가 바뀌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이 다른 두 기관에 못지 않다. (사진 출처: http://blog.ohmynews.com/jeongwh59/tag/%EC%A1%B0%EB%AC%B4%EC%A0%9C%20%E…)

대법원이 대통령이나 국회에 비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적은 것도 아니다. 변호사가 형사사건에서 성공보수를 받지 못하게 하거나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설립을 할 수 있게 한 것도 대법원이다.

원세훈 국정원장이 지난 대선에 개입했다는 결정적 증거자료를 ‘증거능력이 없다’며 항소심의 ‘유죄’ 판단을 뒤집으면서 많은 이들의 속을 뒤집어놓은 것도 대법원이다.

어떤 때는 진보적인 한 걸음을 내딛다가도 어떤 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뛰어간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대법원은 검찰과 달리 대법원장을 필두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라고 보긴 어렵다. “대법원은 단일체가 아니다. 12명의 대법관(일상적 판결에 참여하지 않는 대법원장과 행정을 맡는 법원행정처장 제외)들이 투쟁하는 사상과 이론의 전쟁터다.”

두 번째 교수 출신 대법관 후보…”부인과 법 토론할 때 가장 행복”

대법원 판결의 99.9%를 차지하는 소부(대법관 4명) 판결은 4명의 전원합의가 이뤄져야 가능하다.

소부에서 합의가 되지 않거나 사회적 의미가 있는 판결은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의 전원합의체로 가져가는데 여기서도 다수 의견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대법관의 의견을 듣고 내 의견을 고치고 또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법관 한 명 한 명의 이력과 성향을 좀 더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김재형 후보자는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명지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6년 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18기)을 거쳐 공군법무관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1992년 서울지법 서부지원, 1994년 서울민사지법 등에서 판사로 재직하다 3년 만에 법복을 벗었다.

짧은 법관 이력 중에 ‘칵테일사랑’이란 노래의 코러스 편곡자에게 2차 저작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당시 이 코러스 편곡자의 변호인이 현 서울시장인 박원순 변호사였다. 1995년부터는 모교인 서울대 법대로 돌아가 지금까지 학자의 길을 걸으며 법학도들을 양성해 왔다. 김 후보자의 부인은 지난 2월 사직한 전현정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49)이기도 하다.

김 후보자가 취임하면 양창수 전 대법관에 이어 교수 출신으로서는 두 번째 대법관이 된다. 2014년 양 전 대법관이 퇴임한 이후 교수 출신 대법관은 2년째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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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퇴임한 양창수 전 대법관. 서울대 법대 교수 시절, 대법관으로 임명됨으로써 최초의 학자 출신 대법관이 됐다. 학계와 실무에서 ‘민법의 대가’로 꼽혔다. 현재 한양대 로스쿨 교수로 있다.

이전부터 김 후보자는 한국 민사법 분야의 권위자로 꼽혀 왔다. 민법론, 민법총칙 등 다양한 민사법 전공서적을 저술했다. 학계 출신 대법관이 다시 한 번 나온다면 ‘0순위’로 꼽힐 정도로 꾸준히 대법관 후보로도 거명돼왔다. 2011년에는 법률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홍조근정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법원의 평가는 이렇다. “민법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도산법·비교법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 활동과 실무계에서의 활발한 참여와 활동을 통해 학계와 실무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김 후보자의 학구적 면모는 주변의 일화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평소 제자들에게 하루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 밤에 잠들기 전에 부인과 법 토론을 할 때라고 밝혀왔다고 한다. 술자리에서도 강의를 계속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울대 로스쿨 학생들의 강의평가도 좋은 편이다. 수업 스터디 모임이 팬클럽처럼 발전되기도 할 정도라고 한다. 김 후보자의 대법관 임명제청 소식에 감격해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도 있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언론보도를 검색해보면 김 후보자는 외부활동이나 방송출연, 언론인터뷰는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것도 극히 일부다.

김 후보자는 2013년 서울대 법인화 이후 1년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룬 EBS 뉴스 인터뷰에서 법인 이사회의 과도한 권한을 경계하는 취지로 “평의원회의 기능이라든지, 권한을 강화해서 이사회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고 밝혔다.

또 지난 5월 KBS 인터뷰에서 한자표기를 줄이고 알기 쉽게 풀어 쓴 민법 개정안이 19대 국회 임기 종료로 폐기될 위기에 놓인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기도 했다. “(민법은) 기본적인 생활관계를 규율하는 법입니다. 국민들이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수일지, 진보일지….평가 엇갈려

어떻게 보면 다소 ‘진보 성향’으로 비칠 수 있는 모습들이다. 김 후보자는 과거 대체복무제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는 2002년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에서 출간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책에 실린 논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병역강제는 양심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도록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여야 한다. 국민의 평등한 공적 부담의 원칙은 병역거부자에게 그 부담 정도가 병역의무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대체복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병역법을 헌법불합치 결정해야 한다.”

이 논문 중에서 김 교수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대해 “1970년대 유신독재체제와 1980년대의 정치상황은 양심범, 정치범을 양산했다”고 평가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1980년 후반에는 국가보안법 등 반민주, 반통일 악법에 대한 개정 또는 폐지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매우 고무적 현상”이라며 부정적 시각을 피력했다.

그러나 김 후보자가 처음 임명제청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대법원이 너무 보수화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많았다.

더 다양한 배경과 출신의 대법관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결국 새로 임명제청된 대법관 역시 ‘50대, 남성, 서울대’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임 이인복 대법관이 상대적으로 소수 의견을 많이 내 온 ‘진보성향’으로 분류됐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을 표시하는 이들이 많았다.

김 후보자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을 반대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려는 더 커졌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같은 파렴치한 기업 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이 논의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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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형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지난 6월 2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옥시 재발방지 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20077282).

그는 2012년 펴낸 <언론과 인격권>에 수록된 논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손해배상은 손해를 배상하는 것이다. 피해자는 손해보다 더 많은 배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 과도한 손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것은 정의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불법행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는 불법행위를 처벌하려고 민사책임을 이용하는 것은 법의 발전이 아니라 퇴보라고 본다고도 밝혔다. 형사처벌은 법률에 따라 이뤄지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법관의 ‘재량’에 따라 행사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논란이 일자 김 후보자는 “논문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해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침해하는 중대한 불법행위에 대한 부분은 신중히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후보자의 ‘보수 성향’에 대한 우려가 기우라는 시각도 있다. 동료인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김 후보자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문을 언급하며 이렇게 밝혔다.

“김 교수가 보수적이라고 세평이 나오는데, 그렇지 않다. 사고의 폭도 넓고 개방적이다. 꼴통보수적인 의견을 그에게서 들은 적이 없다. 민법을 기초로 한 토대 위에서 개방적 판례를 기대한다.”

이번에도 “50대 남자, 서울대, 판사 출신”…다양성 아쉬워

출신이나 배경을 가지고 대법관의 판결 성향을 가늠하는 것은 성급한 일일 수 있다.

헌정사상 세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된 박보영 대법관은 호남 출신, 한양대 졸업, 이혼 경력, 현직 판사가 아닌 변호사 등의 이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많은 언론은 박 대법관이 ‘소수자’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진보적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치마 대신 바지를 입은 것이 화제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쌍용차 해고무효 사건에서 복직을 결정한 항소심을 뒤집었다. 재일동포 3세 정영환씨가 제기한 입국 거부 취소 소송도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박 대법관뿐만 아니다. 소아마비 장애인이자 서울이 아닌 지방법원 경력만 있던 김신 대법관 역시 기대를 받았지만 대부분 다수의견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돼 이른바 진보대법관으로 불렸던 ‘독수리 5형제’는 오히려 한국사회에서 주류 중의 주류 출신이었다. 경기(여)고를 졸업한 사람이 4명, 서울대 법대 출신이 4명, 법관 경력뿐인 사람이 4명, 재판연구관 출신이 4명이다. 이런 조합은 “법원에서도 쉽게 찾기 힘든 최고급 엘리트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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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대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50대 남자, 서울대, 판사 출신”. 대법관 구성이 사회의 다양한 이해와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좀 더 다양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기대한다면 진짜 문제는 선출 방식에 있는지도 모른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원장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후보를 선정한다. 후보추천위는 모두 10명인데 사실상 과반수가 대법원장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추천위에 참석하는 법원행정처장을 통해 대법원장의 의사가, 법무부 장관을 통해 대통령의 의사가 반영된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대법원장이 연수원 몇 기 이상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구체적 의견을 내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검토 대상에 오른 이번 대법관 후보 역시 34명 중 33명이 남자, 1명이 여자였으며 대다수가 서울대 출신의 50대 후반 법원장급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현행 법원조직법 자체가 대법관의 자격을 만 45세 이상에, 20년 이상을 판사·검사·변호사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정하고 있다. 교수나 공공기관 종사자를 임명할 수 있지만 변호사 자격은 필수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대법관 자리는 ‘서울대 법대를 나온 판사 출신 남성’이 독점해 왔다.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1980년 이후 대법관 85명 중 95%가 남성, 75%가 서울대 법대 출신, 89%가 판사 출신이었다.

“양심을 따랐다면, 기존 판례 존중해야”

“헌법의 미학은 발전하고 진화한다는 것이다.” 김영란 대법관은 앞서 책에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이 지난해 방한 강연회에서 한 말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다수결의 원리를 토대로 한 기관인 국회나 행정부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할 의무가 사법부에 부여되어 있다는 자각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발전하고 진화하는 헌법의 미학은 존재할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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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 9인 전원 사진. 미국에서는 이들을 ‘지혜의 아홉 기둥’이라고 부른다. 얼마 전, 스칼리에 대법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후임 대법관을 임명하는 문제를 놓고,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당 우위 의회 간의 갈등이 불거졌다. 미국 대법관은 종신직이기 때문에 어떤 인물을 대법관으로 뽑는지가 커다란 정치적 쟁점이 되곤 한다. (사진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6021473981)

사법부는 법을 해석하는 기관이지만, 입법부의 입법 취지와 달리 해석해야 할 때도 있고 입법부의 부족하고 모자란 지점을 법 해석으로 메꿔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동성동본 금혼 규정은 오랫동안 당사자들을 고통 받게 했지만 워낙 소수인 나머지 그들을 대변해 입법안을 제출해 줄 국회의원이 없었다. 정작 동성동본 금혼 규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1997년 헌법재판소였다. 그러고도 법이 개정된 것은 8년이나 지난 2005년이었다.

그런 점에서 김 후보자의 10년 전 발언은 곱씹어 볼만하다. 그는 이번에 자신을 대법관 후보로 지명한 양승태 대법원장이 2005년 대법관으로 지명될 당시 열렸던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양승태 후보자가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판결이 너무 소수라는 게 단점이 아닌가”라는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기존 판례를 따르는 태도는 존중돼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교수’ 출신이었던 양창수 전 대법관은 민감한 사건에 대해 신중함을 넘어서 정치적으로 보일 만큼 사건 판단을 너무 미룬 탓에 사건 당사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김재형 대법관’에게 바라는 것도 ‘보수적’ 혹은 ‘진보적’이라는 협애한 시각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 터다. 그저 지금, 2016년 대한민국에서 ‘상식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판단을 내려주기만 바랄 뿐이다.

금, 2016/08/0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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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영화제’는 없는데 ‘여성영화제’는 있는 이유에 대해 굳이 말해야 할까. 여성은 남성과 대비되는 생물학적 구분이 아니라, 남성이 대변하지 않는 새로운 가치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학적 여성이 새로운 가치를 구현하는 건 아니지만(지금 한국의 대통령을 보라), 많은 여성은 새로운 가치를 구현한다.

최근 부쩍 잦아진 여성혐오 논쟁에서 드러나듯,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그만큼 험난한 상황을 견뎌내 왔다는 뜻이다. 여성의 권익이 신장되는 과정에서 어떤 남성들이 불이익을 받았을 수 있으나, 수천년간 여성보다 더 많은 권력을 누려온 남성들이 ‘역차별’ 운운하는 건 넌센스다.

영화는 오랜 시간 남성의 영역이었다. 여배우를 ‘영화의 꽃’ 운운하며 받드는 척 하지만, 제작자, 연출, 기술 스태프 등의 대다수가 남성이었다.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간혹 제작자 심재명, 오정완, 이유진, 감독 임순례, 변영주 등 ‘유리 천장’을 뚫은 이들이 있었으나 다수는 아니었다. 심지어 카메라 같은 기계에 대해선 여성의 접근을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오랜 시간 남아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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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칸 영화제에서 수잔 서랜든(왼쪽)은 남자의 턱시도를 영상시키는 의상을 입었고, 줄리아 로버치는 맨발로 레드카펫을 밟았다. 여성은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는 드레스코드에 대한 상징적 비판이었다.

하지만 이제 영화현장에서도 다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5월 열린 제 69회 칸국제영화제에서는 상징적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세계 최고의 영화제인 칸영화제는 지난해 구설을 겪었다. 칸영화제의 프리미어 상영은 엄격한 드레스 코드로 유명한데, 지난해 상영 당시 몇몇 여성 관객들이 하이힐을 신지 않았다가 입장을 제지당한 것이다. 칸영화제 측은 “신발 높이에 대한 규정은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거센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올해 몇몇 여배우들은 지난해의 소동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배우 수전 서랜든은 남성 정장을 연상케하는 의상에 단화를 신었고, 줄리아 로버츠는 아예 맨발로 레드 카펫을 걸었다.

경쟁 부문에 초청된 여성 감독들의 영화도 예년에 비해 늘었다. 21편의 경쟁작 중 3편이 여성 감독의 영화였는데, 특히 독일 감독 마렌 아데의 <토니 에르트만>과 영국 감독 안드레아 아널드의 <아메리칸 허니>가 호평받았다. 영화제에 참석한 여성 감독, 배우들은 작심한 듯 영화계의 여성이 처한 현실에 대해 말했다.

<머니 몬스터>를 연출한 배우 조디 포스터는 “대형 영화에 많은 돈이 흘러들면서 스튜디오 수뇌부는 위험 요소가 있는 인물을 고용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에게 여성은 위험 요소다”라고 비판했다.

한국에서도 여성이 이끄는 새로운 움직임이 목격되고 있다. 이같은 흐름이 반가운 이유는 두 명의 남성 주인공이 쫓고 쫓기는 스릴러 영화들이 최근 한국영화에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특정 분위기의 영화가 관객의 이목을 끈다 싶으면 너도 나도 비슷한 영화들을 양산하는 것이 영화계의 속성이고, 영화의 장르가 그렇게 탄생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2000년대의 한국영화는 그 정도가 심했다. 30~40대 남우 2명이 나와 얽히고 설키는 영화들이 대다수였다.

그 사이 많은 재능있는 여배우들을 만날 일도 드물었따. 이는 한국영화가 여배우만이 체현할 수 있는 다양한 정서, 가치를 활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며, 그래서 다양성을 핵심으로 하는 영화의 활력을 스스로 놓아버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는 다양한 여성 감독들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조짐은 독립영화계에서 먼저 보였다. 독립영화계 최대 축제인 서울독립영화제에는 지난해 51편의 본선경쟁작이 선정됐는데, 그중 26편이 여성 감독의 작품이었다. 여성 감독의 수가 남성 감독을 넘어선 건 처음이었다. 여성 감독의 작품이 늘어나면서 영화의 소재와 주제도 이전에 비해 다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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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상단 왼쪽),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상단 오른쪽)는 여성감독만이 보여줄 수 있는 관점을 보여준다. 최근 개봉한 ‘굿바이 싱글'(하단)은 여성감독의 영화는 아니지만, 여성들 간의 연대를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주류 영화에서도 주목할만한 여성 감독들이 나오고 있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은 초등 4학년 소녀들의 우주를 그려낸 수작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소녀 선과 갓 전학와서 친구가 없는 소녀 지아는 금세 서로 친해진다. 학급에서 인기 많고 성적도 좋은 보라가 지아를 끌어들이면서 선과 지아의 관계엔 금이 간다. 중산층 이하로 보이는 선과 영국에서 살다온 상류층인 지아의 계급은 한눈에도 비교가 된다.

하지만 <우리들>의 장점은 둘의 갈등을 쉬운 계급갈등으로 치환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계급 갈등, 파국적 사건이 없이도 맺어지고 또 깨질 수 있는 관계와 감정의 미묘함을 그린다는 점에서, <우리들>은 현실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극적인 사건 없이는 이야기를 진행하지 못하는 한국 영화계에 대안적인 서사의 빛을 던진다.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는 다수의 비판, 소수의 호평을 들으며 상영된 영화였다. 연홍은 정치 신인의 아내이자 중학생 딸의 엄마다. 남편의 국회의원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첫날, 딸이 실종된다. 남편과 그의 캠프 사람들은 선거전에 악영향을 줄까봐 실종 사건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고, 연홍은 홀로 딸의 행방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딸의 비밀이 차츰 드러난다.

전형적인 스릴러물의 구조를 갖고 있지만, <비밀은 없다>는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기대되는 전형들을 모조리 거부한다. 편집은 혼란스러우며, 음악은 익숙하지 않은 관객의 귀를 괴롭게 하는 아방가르드 펑크 음악이다. 마치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로 작정한 듯한 이같은 태도는 <비밀은 없다>가 폭로하는 기성 체제의 음험함에 이빨을 드러낸다.

더 많은 여성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여성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하더라도, 여성의 삶과 감정을 다루는 영화가 나와야 한다.

세상의 이목, 판단에 신경쓰지 않는 ‘이상한’ 여배우가 등장하는 <굿바이 싱글>은 그 사례다. 극중 톱스타인 고주연은 자신과 전혀 다른 처지에 있던 여중생 단지와 여성의 연대를 맺는다. 얼핏 억지스러울 수도 있는 설정이지만 <굿바이 싱글>은 대중영화의 틀에서 이 연대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놓는다.

관객이 남성들만의 영화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명민한 영화인들은 한 발 먼저 감지했다.

월, 2016/07/04-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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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에 제가 여기에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캠페인을 이끌고 싶다고 했을 때 여러분 모두는 저를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웃음이 안 나오시죠?”

유럽의회 의원이기도 한 영국독립당(UKIP) 당수 나이젤 파라지(Nigel Farage)는 의회에서 조롱 섞인 연설을 내뱉었다.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EU 탈퇴로 결론이 난 후였다.

‘인종차별주의자에 가까운 괴짜들’(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정도로 치부됐던 영국독립당과 파라지는 브렉시트 이후 가장 많이 언급되는 정치세력 중 하나다.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파라지를 유럽의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위로 선정하면서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그의 가장 큰 성공, 혹은 실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성공’의 문턱에 다다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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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은 브렉시트 국민투표에 1000파운드를 건다고 했고, 그의 도박은 성공을 거뒀다. (사진 출처: http://www.express.co.uk/news/politics/649750/Nigel-Farage-bet-1-000-Br…)

대학 포기하고 금융분야에서 사회 첫 발

파라지는 지난 20여 년 전부터 ‘EU 탈퇴’를 주장해 왔다. 그리스와 독일처럼 구조적으로 ‘다른’ 경제체제를 지닌 나라들에 획일적인 금리가 적용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본래 보수당에서 활동했던 그는 1992년 존 메이저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EU 출범의 기틀을 마련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서명하자 당에서 뛰쳐나와 영국독립당 창당 멤버로 합류했다. 예전에는 EU 확대를 부르짖다가 일종의 ‘정치적 승부수’로 브렉시트를 택한 몇몇 정치인들과는 결이 다르다. 적어도 진짜 그게 옳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이젠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된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그는 정말로 활짝 웃으며 ‘환호작약’했다.

물론 일관성이 언제나 미덕은 아니다. 파라지의 언행에선 일관성을 넘어선 아집과 독선이 내비친다. 자신의 연설에 대해 동료 의원들의 야유가 이어지자 그는 맞받아친다. “여기에 계신 누구도 평생 동안 일을 제대로 끝내거나 비즈니스를 해보거나 무역을 해보거나 일자리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을 그냥 들으세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내가 해 봤는데’ 스타일이다.

파라지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 런던금속거래소에서 상품중개인으로 일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런던의 금융가인 ‘더 시티’로 바로 들어갔다. 그는 이런 진로를 선택하는데 크리켓 선수 출신의 교사 존 드웨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선생님은 내가 꽤 대담하고, 연단에 서는데 능숙하며, 세상의 이목을 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끌벅적하며, 뭘 팔아먹는데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있었다.”

파라지가 ‘정치’를 비전을 갖고 사람들을 조직하고 설득해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잘 먹힐 만한 ‘물건들’을 제시해 인기를 끌고 당선되는 잔기술로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는 드웨스 선생님이 이미 잘 파악하고 있었듯, 잘 팔릴만한 물건들은 잘 안다.

런던과 일부 대도시에는 돈과 기회가 넘치지만 그 외 지역은 날로 쇠퇴하고 있다. 실업은 만연해 있고, 공공서비스는 줄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무척 복잡한 문제지만 쉬운 표적이 하나 있다. 모든 것이 최근 어디서든 손쉽게 볼 수 있게 된 ‘이민자’ 때문이고, 결국 EU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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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 표지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의 상황을 ‘걸레가 된 유니온잭’으로 묘사했다. (사진출처: 이코노미스트)

파라지는 이런 정서에 편승해 “지하철을 탔더니 영어를 들을 수 없었다”며 사람들을 자극한다. 대놓고 이민자들과 살기 싫다고도 말한다. 그에게 무슬림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제5열’(간첩)일뿐이다. 브렉시트 홍보를 위해 그가 들고 나온 것도 난민들이 떼 지어 유럽으로 들어오는 포스터였다. 난민이라고 주장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경제적 이민이며 일부는 이슬람국가(IS)의 지원군이 될 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영국민족 강조하지만 다문화가정 출신

‘영국 사람’임을 강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파라지’라는 성은 먼 위그노 교도(16~17세기 프랑스 칼뱅파 신교도) 조상에게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19세기에 런던으로 이주한 독일계 출신이다. 이민자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 온 그이지만, 뿌리에는 프랑스와 독일계의 피가 스며있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파라지는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독일 국적 여성과 재혼해 두 아이를 낳았다. 그가 라디오 인터뷰 중 옆집에 루마니아 사람들이 이사 와서 신경 쓰인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있다. 그때 사회자는 파라지의 가족에 빗대 “독일 아내와 아이들이 옆집에 있는 것과 차이는 뭔가”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는 “당신은 그 차이를 알지 않느냐”고 눙쳤다.

이런 태도에서 짐작가지만, 파라지는 종종 인종주의자라고 비판받는다. 독립당 소속 유일한 여성 유럽의회 의원이 파라지를 “반여성적인 스탈린주의자 독재자”라고 비판하며 보수당으로 옮기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1차 대전 참전용사여서인지는 모르겠으나, 1차 대전의 격전지를 돌아보는데 큰 열정을 쏟는 그의 모습에서 ‘그레이트’ 브리튼을 열망하는 국가주의적 냄새가 나기도 한다. 물론 술을 엄청 마셔대기 위한 핑계거리라는 얘기도 있다.

한때 EU회의론자로서 그와 가까운 동지였다가 결별한 뒤 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리처드 노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만약 인종주의자라면, 그는 유능한 배우다. 그걸 잘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인종주의자라고 보지 않는다. 그저 구시대적인 대외강경론을 펼치는 애국주의자라고 본다.”

그러나 브렉시트 때문에 영국은 그가 바란 대로 ‘그레이트 브리튼’이 되기보다 ‘브리튼 소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벌써 스코틀랜드가 다시 독립을 꾀하고 있고 나라는 계층별, 지역별, 연령별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유럽의회 의원으로 정계 입문….영국 선거에서는 7전 전패

파라지는 전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잇따른 망언과 구설로 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인기는 꺾이지 않고 있다. BBC 기자는 ‘(비판이) 들러붙지 않는 나이젤’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유명인사’에 가깝게 자리매김한 것에는 그의 독특한 인생역정도 한몫 했다.

파라지는 1964년 영국 켄트주 판버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도 ‘더 시티’에서 일하는 주식중개인이었는데, 5살 때 이혼한 알콜중독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20대 초반이던 1985년 그는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다. 머리와 왼쪽 다리를 다쳤는데 거의 절단해야 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다. 회복에는 1년 가까이 걸렸다. 그때 자신을 간호해주던 간호사가 첫 번째 부인이 됐다.

이듬해에는 고환암에 걸려 왼쪽 고환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2010년 총선 때는 지지 호소 현수막을 단 경비행기를 타고 비행하다 추락하기도 했다. 사고 직후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리 회복해 지팡이를 짚은 채로 동료의 장례식장에 나타났다는 후문이 있다.

파라지는 1999년 남동잉글랜드 지역구에서 유럽의회 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정치인으로서 본격적 첫발을 내딛는다. 그렇게도 혐오하던 EU에 의원으로 입성한 이유를 묻자 그는 “밖에 있기보다 안에 들어가서 그곳을 바꾸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것이지, 유럽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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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 파라지(왼쪽 두번째)가 2014년 5월 26일, 영국의 유럽의회 선거에서 영국독립당(UKIP)이 108년 만에 보수당과 노동당의 양당체제를 무너뜨리고 1위로 도약하자 당원들과 환호하고 있다.

그는 2014년까지 연거푸 4선을 이뤄냈다. 특히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영국 양대 정당인 보수당과 노동당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양대 정당 체제가 무너진 것은 108년 만이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2013년 그를 100대 영향력 있는 우익 인사 중 캐머런 총리에 이어 2위로 선정했고, 2014년 <더 타임스>는 그를 올해의 영국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는 강경파 유럽통합회의론자들이 모여 있는 유럽의회 내 ‘자유와 직접민주주의’ 그룹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이 그룹에는 ‘독일을 위한 대안’ 같은 극우정당도 함께 속해 있다. 그는 의회 내에서 논쟁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EU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주목받았다. 2004년 그는 프랑스 출신의 자크 바로 교통 담당 EU 집행위원의 비리 은폐 시비를 폭로했고, 이듬해에는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의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그의 현란한 ‘개인플레이’에 비해 영국독립당 자체는 아직 기대에 못 비치는 성과를 내고 있다.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강한 면모를 보였지만, 아직 영국 의회 내에서는 단 한 석밖에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파라지 본인도 총선에 모두 7번이나 출마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파라지는 현재 최다 득표자 당선 방식인 영국의 소선거제도가 영국독립당에게는 ‘악몽’이라고 말한다. 2011년 선거제도를 ‘선호투표제’로 전환할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이를 지지하기도 했다.

열심히 마시고, 열심히 담배를 피우는 사람….그러나 ‘전략적 머리’ 없어

파라지를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그가 재미있고, 달변에다, 사리판단이 빠르고 똑똑하다고 말한다. 파라지는 성공회교도이자 크리켓의 광팬이며, 켄트 해안에서 혼자 평온히 낚시하는 걸 즐긴다.

상품중개인 시절 파라지의 고객이었던 친구 스티븐 스펜서는 이렇게 말했다. “특이하고, 행복하고, 쾌활하고, 솔직하고, 유머러스하다는 첫인상을 받았다. 그를 만나러 가면 늘 주변에는 죽이 잘 맞는 중개인들이 뭉쳐 있었는데, 피워대는 담배연기가 4피트나 치솟을 정도였다.”

그러나 리처드 노스는 이렇게 혹평하기도 한다. “골초인데다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신다. 라이프스타일은 형편없다. 그는 매우 친근하고, 과장되게 개방적인 사람처럼 다가오지만 그 이면은 매우 불안정하다. 그는 사람들과 디테일하게 오랜 기간 동안 관계를 맺지 못한다. 사실 그는 사람들을 이용하고 소비해버린다. 사람들은 그의 주변에 모여들고 그에게서 힘을 얻지만, 파라지의 내면을 보곤 환멸을 느끼게 된다. 나 같은 사람이 아마 수백은 될 거다.”

각종 ‘독설’과 ‘망언’에서 파라지의 그 불안한 면모가 읽힌다. 그는 2010년 헤르만 반롬푀이 EU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저급한 은행원 외모에 젖은 걸레 같은 카리스마를 가졌다”고 막말을 했다.

지난 3월에는 “국제사회의 현존 지도자 중 푸틴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미 대선에 대해서도 “트럼프의 인물됨이나 시각에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는 걸 막기 위해 나라면 그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해가지 못할 행동들도 보인다. 1999년 파라지는 BBC가 자신의 유럽의회 선거 캠페인을 넉 달 간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불법복제 해 판매했다가 공정거래 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프랑스 됭케르크에서 타고 있던 자동차 바퀴의 너트가 느슨하게 풀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자신에 대한 암살 음모가 아니었냐는 것이다.

그는 석탄발전소 폐쇄를 비판하면서 풍력발전에 반대한다. 영국이 못생기고 역겨운 풍차로 뒤덮일 거라는 것이다. 기후변화도 거짓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2008년 찰스 왕세자가 유럽의회에서 “기후변화에 대처하는데 EU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연설해서 기립박수를 받을 때 파라지는 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왕세자의 발언이 “최고로 순진하고 어리석다”고 했다가 왕실모독죄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파라지는 또 비만이 흡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해서 감자튀김(칩)과 도넛 가게를 없애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총기소유와 범죄는 상관이 없다”며 총기소유도 합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리처드 노스의 이런 걱정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열심히 살고, 열심히 마시고, 열심히 담배를 피우고 그게 파라지가 가진 매력이다. 그걸로 지지자들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당신이 진지하고 전략적 두뇌를 지닌, 당을 이끌고 발전시키고 확장해나갈 수 있는 정치가를 찾는다면, 그는 그 같은 인물은 아니다. 영국독립당의 비극은 아마도 이렇게 대단히 효과적인 얼굴을 지녔지만 그 인물이 전략적 두뇌가 없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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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 파라지는 지난 7월 4일, “할 일을 다했다”며 돌연 영국독립당 당수직을 사임했다. (사진 출처: http://www.itv.com/news/story/2016-07-04/live-updates-nigel-farage-resi…)

파라지는 4일(현지시각) 결국 영국독립당 당수직을 던지는 ‘극적인’ 결말을 스스로 선택했다. 이유는 “내 삶으로 돌아가길 바란다”는 것. 본래 직업적 정치인을 할 생각도 없었고, 자신의 정치적 목표인 EU 탈퇴가 달성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럽의회 의원직은 유지하고 브렉시트 협상 과정에서 ‘무언가’는 할 수 있겠지만 다시는 총선 출마도 하지 않고 당수직에 복귀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가디언>은 이렇게 표현했다. “심각하지 않은 사람, 하지만 심각한 정당”

화, 2016/07/0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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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을 읽다 보면 없던 두통이 느껴진다. 지난 세월도 늘 그러했지만 박근혜정권의 말기적 현상이 심해지면서 아픈 정도가 점점 더 강해진다. 때마침 평소 존경하는 채현국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를 해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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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채현국을 가리켜 “거리의 철학자, 당대의 기인, 살아있는 천상병”이라고 평했다.

채현국 선생님의 전화

채 선배님은 젊은 시절 광산업을 중심으로 20여개의 계열사로 구성된 대기업 수준의 그룹을 소유하시고 직접 경영하셨던 분이다. 그러던 중 동학을 알게 되면서 유무상자(有無相資)정신을 몸소 실천하시고자 재산을 전부 처분하여 대부분을 종업원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남는 재산으로 효암재단이라는 중등교육기관을 설립하는 등, 남은 여생을 봉사와 육영사업에 전념하고 계신 분이다.

동학의 참뜻을 알리는 자리에는 팔십을 넘긴 노구에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돈과 출세에 오염된 시대를 꾸짖으시며 참된 삶이 무엇인지를 일깨우며 살아 가신다. 참으로 귀한 우리시대의 의인이시고 스승이신 분이다.

그런 분이 뒤늦게 전해들은 아래의 이야기에 그만 화가 나셔서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시면서 불호령을 내리시는 모양이다.

내용인즉 국무총리 산하연구기관인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책임자가 공식적인 모임자리에서 ‘나는 친일파다’라고 커밍아웃하면서 “천황만세“를 세 번이나 외쳤다는데 이런 자를 처벌하지는 않고 없던 일로 무마해버리는 박근혜 정권에 대해 왜 항의하지 않느냐고 다짜고짜 저에게 마구 호통치신다 ([Why뉴스] ‘천황폐하 만세’ 외친 이정호 왜 징계조차 안하나? 참조) 

이 글은 채 선배님의 호통에 답하는 글이다.

아직도 ‘일왕의 나라’에 사는 듯한 착각

우선 퍼뜻 떠오르는 장면이 박정희가 대통령시절에도 일본의 지인들을 만나면 일본군가를 즐겨 불렀다는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이였다.

일제시절 만주군관학교의 모범생으로 일왕이 내린 표창까지 받았으니, 그 시절 부르던 일본군가야 머릿속에 자동으로 입력됐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해방되고 독립된 국가의 현직 원수가 치욕의 역사였던 식민지제국 점령당사자인 일본국 군가를, 비록 일본 지인들과의 사석에서 불렀다면, 이는 반국가행위에 해당되는 되지 않을까 ?

행여나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가 부르는 일본노래를 듣고 자라면서 일본제국에 향수를 느끼지는 않았을까 ? 사실이 아니라면 공시적인 자리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세 번이나 외친 자를 정부산하 연구기관에 그냥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위안부라는 사건을 알리고 교육하는 주제는 단순히 한일 정부간의 외교적 현안을 떠나서 아우츠비츠 수용소내 대량학살 등의 홀로코스트 사건과 동일한 선상에서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진 용서할 수 없는 반인류적 패륜범죄에 대한 고발이자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의 과정이다. 이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지속되어야 마땅한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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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국·일본·네덜란드 등 8개 나라의 14개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결성된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한 국제연대위원회’는 지난 6월 1일, 서울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 위안부 관련 자료 2744건을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본부에 등재 신청했다고 밝혔다. (사진 출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6/01/0200000000AKR2016060103…)

그런데 최근 일간지 기사를 보면, 미국과 유럽 등에서 뜻있는 해외 동포들이 스스로 연대해  위안부 문제를 후대의 교훈으로 삼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를 매우 못 마땅하게 생각하면서 간섭과 방해를 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위안부 당사자 할머니들을 거추장스러워하며 해외에서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교포들의 한국 입국을 불허한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말, 일본 정부의 립서비스 수준의 사과와 재단 설립을 위한 소액기부를 받아들임으으로써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고 선언했다. 그 이후로 이제 위안부 문제를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것조차 포기한 듯하다.

용서할 수 없는 역사의 사실, 영원히 기억하고 반성해야 할 반인류적 사건을 단지 10억엔으로 불가역적으로 청산했다고 선언한 한일 정부의 황당무계한 역사적 코메디를 직접 외무장관과 대통령이 나서 국민들에게 알렸던 배경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너무나 상식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박근혜 정권은 무엇을 위한, 누구의 정권인가 ?

조폭만도 못한 ‘오야붕의 나라’

최근 숨겨졌던 또 하나의 사건이 시민사회에 알려졌다. 누구나가 부러워할 서울대를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잘나가는 서울남부지청에 근무하던 김홍경이라는 젊은 검사가 자살한 사건이다. 

시시비비를 더 밝혀야 하겠지만, 김 검사의 자살원인으로는 직속 상관인 부장검사가 행한 참을 수 없는 패악과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 과중 등이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가가 내 아들을 죽였다”고 김 검사의 어머니가 울부짖는 가운데 사법연수 동기생들을 포함하여 700여 법조인 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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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경 검사의 사법연수원 동기들이 지난 6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내가 이 사건에 특별히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검찰, 군대 그리고 공무원 내부에 만연한 잘못된 조직문화이다. 소위 일본말로 ‘오야붕’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패거리 조직문화는 그 뿌리를 일본제국주의의 역사, 그중에도 ‘천황 폐하’주의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조폭 문화라는 것이 있다, 그럼에도 내가 아는 한, 한국 조폭의 양아치 문화에는 나름대로 축적된 의리와 폼생폼사라는 얄랑한 규칙이 존재한다. 양아치 규율을 분명히 하되 서로를 감싸주고 재물과 이권이 생기면 함께 나누고 서로를 살필 줄 아는 문화이다.

그런데 김홍경 검사가 겪은 한국 검찰의 조직문화는 한국식 조폭의 양아치 문화만도 못한 일본식 오야봉 문화였던 것이다.

오야봉 조직문화의 특징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까라면 까야하는’ 식으로 무조건 상사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뿌리는 서구 제국주의의 아류로, 더욱 저급하고 악랄해야만 서구를 따라잡을 수 있었던 일본 제국주의의 탄생과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일제의 근성이 아직도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조직문화는 해당 조직이 존재해야 하는 역할과 근거와 당위에 기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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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위계와 철저한 상명하복을 특징으로 하는 일본의 오야붕 문화는 야쿠자는 물론, 일본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런 오야붕 문화는 국가 단위의 오야붕인 일왕을 전후에 존속케 하는 문화적 토양이 됐다. (사진 출처: http://hambara.tistory.com/80)

지난 30여 년간을 기업활동에 종사해온 필자는 여러 번 일본 중공업계를 대표하는 기업들과 거래한 적이 있었다. 꽤나 큰 거래여서 일본측에서 십 여명씩 내한해 계약이 끝난 뒤 회식자리를 갖곤 했다. 내가 대표이사로 있던 한국기업의 분위기는 술이 몇잔 들어가면 ‘야자타임’으로 넘어간다. 이쯤되면 상사와 부하 관계를 넘어서 형, 동생으로 변하고 평소 가슴에 담아온 이야기를 뱉어낸다. 보는 관점에 따라 틀리겠지만, 이는 한국에서의 매우 중요한 소통방식이고, 활력 요소인 셈이다.

그런데 일본의 기업문화는 전혀 달랐다. 모두의 시선이 오야봉에게 쏠렸다.  오야봉이 술잔을 들어야 잔을 들고, 젖가락을 사용해야 식사를 시작하는 식이다. 대한민국 남자가 겪은 군대문화 그대로였다.  

대동아 전쟁의 전범이었던 일왕이 전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는 일본 사회 전반에 퍼진 오야붕 문화가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오야붕 문화가 한국의 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공식모임에서 ‘이정호’라는 몹쓸 인간에 의해 재현되고, 친박 인사들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을 보면, 몹시 쓸쓸하다. 

 

다시 한번 박근혜 정부에게 묻는다. “대한민국은 누구의 정부인가”

행여나 일본 제국주의와 유신의 추억 속에서 엉뚱한 대답이 나오지 않기를 ! 이 땅위에서 또다시 ‘덴노 만자이’가 나오지 않기를 !

목, 2016/07/0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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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스티븐 J. 맥나미 (Stephen J. McNamee) 와 로버트 K. 밀러 주니어 (Robert K. Miller Jr.)의 『능력주의 신화 Tne Meritocracy Myth(3rd.)』(2013)를 완역한 것이다. 두 사람은 모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윌밍턴 캠퍼스의 사회학과 교수와 명예교수로서, 미국사회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탐구해 왔다. 이 저서 이전에도 두 사람은 『미국의 상속과 부Inheritance and Wealth in America』를 공동 편집하기도 했다.8993178615_1

공교육과 학교에 대한 논의와 비판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이미 이반 일리히(Ivan Illich)의 『학교 없는 사회(한국어판), Deschooling Society』(1970), 마이클 애플(Michael Apple)의 『교육과 이데올로기(한국어판) Ideology and Curriculum』(1979),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재생산 (La) Reproduction』 (1970) 등에서는 학교와 자본주의 체제 간의 구조적 근친성, 학교의 계급 재생산 기능, 학교내 지배적 문화자본 등이 논의되어 왔다.

최근에는 『대학의 몰락』(서보명, 2011), 『최후의 교수들』(Frank Donoghue, 2008) 등에서 학력 인플레이션과 대학 졸업장의 유명무실화, 대학교육의 직업교육화에 관한 일련의 논의들이 이어져 왔다.

이 책은 이러한 공교육과 학교 및 고등교육 비판의 연장선상에 있는 논의로서, 학교의 근본적 신화이자 가정인 능력주의를 질문한다. 근대사회의 신자유의주의적 개편 및 이에 따른 일자리 감소로 인해 졸업장은 더 이상 사회경제적 보상으로 이어질 수 없게 되었으며, 따라서 이제는 바야흐로 능력주의 자체를 회의하는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시대의 변화와 그에 따른 공교육의 몰락을 감지케 하는 바, 도대체 그간 학교 그리고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능력주의(meritocracy)는 허구다!

능력주의는 마이클 영(Michael Young)의 풍자 소설 『능력주의의 출현 The Rise of Meritocracy』(1958)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이다. 이 소설에서 미래 사회는 지능지수와 시험 결과 등 개인의 능력을 토대로 이른 바 인재를 선발하는 바, 그 결과는 엘리티즘(elitism)이 지배하는 또 다른 디스토피아(distopia)이다. 즉 능력이 많다고 간주되는 자들이 능력이 없다고 낙인 찍히니 자들을 탄압하고 착취하는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낯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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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라는 용어는 마이클 영(Michael Young)의 풍자 소설 『능력주의의 출현 The Rise of Meritocracy』(1958)에서 처음 등장했다.

전통적으로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과 사회적 보상 사이에 비례적 관계가 있다고 가정한다. 즉 능력이 많을수록 혹은 높을수록 그에 걸맞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보수를 확보할 수 있으며 또 그래 마땅하다는 것이다. 즉 능력주의에서는 개인의 능력이 성공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가정하며, 학교는 이러한 소질이나 재능의 차이가 객관적으로 드러나고 발현되는 기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러한 능력주의의 가정과 이에 기초한 학교 및 사회의 기능과 작동 방식에 의문을 던진다.

개인의 성공과 성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단순히 능력적 요인만이 아니라 비능력적 요인도 있으며, 오히려 전자보다 후자가 더 결정적이고 장기적이며 지속적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다른 출발선을 제공하거니와, 출발선에서 벌어진 차이로 인해 가난한 집 아이들은 결코 부잣집 아이들을 따라잡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아이나 여성, 소수자들은 항상적으로 사회적 차별에 노출되며,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끊임없이 성취동기를 억압하고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형성하는 사회적 차별 앞에서 능력만큼의 사회적 성취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나아가 직업을 얻거나 괜찮은 경력을 쌓을 보일 수 있는 것은 거시적인 경제 상황이나 사회구조적 변화, 출생률, 출생시기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호황기에 태어나지 못했거나 운이 나쁘면 타고난 능력치의 발휘는 지난하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전사회에 만연된 능력주의적 환상은 여전히 사회적 성취에서 개인의 능력적 요인을 과대평가한다. 동시에 대표적인 비능력적 요인들, 즉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사회자본과 문화자본, 사회적 차별, 태어난 시기와 개인적 운, 경제상황과 거주지역 등은 본래의 능력적 요인들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한다. 마치 능력적 요인만이 개인의 성공의 결정적 변수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오히려 학교는 이러한 오해를 조장하는 주된 기관이거니와, 학교에서는 중산층 학생들의 선행학습이나 사회문화적 자본, 이들에 대한 부모의 지원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이 모두를 이들의 능력으로 합법화, 정당화한다.

또한 학교는 계급이나 젠더, 종족, 장애, 거시경제 변수와 거주지역 등 소수자들이 처한 사회구조적 조건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들을 수업태도가 적극적이지 못하고 수업준비를 해 오지 않으며 장래에 대한 비젼이나 꿈이 없는 열등생으로 낙인찍는다. 이처럼 학교는 능력주의의 환상을 적극적으로 유포하는 바, 그 결과 실제로 작용하고 있는 비능력적 요인들을 은폐하고 간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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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근대 능력주의를 상징하고, 그것을 제도화한 것이다. 그렇지만 능력주의라는 근대의 믿음은 가정환경, 계급, 사회적 환경 등의 영향력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는 능력주의라는 근대의 신념이 현실의 불평등을 감추는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http://allwork.me/86)

사회학 전공자들답게 저자들의 결론은 좀 더 근본적이고 거시적인 지점을 향한다. 즉 지금이라도 능력주의의 환상을 꿰뚫어보는 안목을 가지고, 기회와 분배가 좀 더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지 않으면 진정한 평등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능력주의의 환상에 사로잡혀, 불평등에 면죄부를 주고 또 그것을 영속화할 것인가, 능력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자면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이는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능력주의, 그 필패의 운명

사실 이 이야기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일찍이 알뛰세를 비롯하여, 부르디외, 애플 등 많은 논자들이 학교가 어떻게 계급을 재생산하고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가를 논해 왔던 터이다. 즉 학교는 자본주의 체제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바, 작동하며 그 결과 계급 재생산 기능을 충실히 대리하고 정당화한다.

사실 학교는 모든 인민에게 평등한 교육이라는 근대 부르주아지들의 이상에서 비롯되었다. 일찍이 오귀스트 꽁트(Auguste Comte)가 프랑스에서 최초로 공교육을 실험하고자 했을 때, 인민과 그의 권리는 평등하며 따라서 인민에게 교육에 다가갈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것이 이른 바 ‘기회의 평등’으로서, 취학 연령에 다다른 모든 시민은 공교육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 이로써 빈부와 성별, 장애, 국적에 구애받지 않는 의무교육의 이상이 인류 최초로 공교육을 통해 실현될 수 있었다.

이처럼 공화주의자들이 공교육을 통해서 의도한 것은 학교를 통한 사회적 평등의 실현이었다. 즉 신분이 아닌 능력에 의해 개인의 사회적 참여와 경제적 보상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했으며, 학교는 능력주의적 가정을 적극 수용하였으며, 개인의 능력을 판가름하고 측정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지표가 될 것이었다.

여기에는 이전 시기 신분으로 사회적 지위와 재화가 분배되는 것에 반대하여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갈망한 상 퀼로트(sans-culotte, 상 퀼로트는 귀족들이 입었는 퀼로트를 입지 않은, 프랑스의 급진 공화주의자들을 말한다)들의 염원이 있었거니와, 이들에게 학교는 능력에 따른 정의로운 분배를 실현할 수 있는 위대한 사회적 평등의 기제였다. 아울러 그렇게 될 때 도래할 사회는 능력에 따른 역할과 기능이 질서 있고 조화롭게 자리잡힌 사회로서, 근대 국가 곧 리바이어던(The Leviathan)을 실현할 것이었다.

그들에게 학교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었으며, 그 보이지 않는 손이 개인을 그의 자유의지대로 자유롭게 한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오오, 꿈은 얼마나 야무졌던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근대 공교육은 능력주의를 차용함으로써 그 태동에서 이미 근본적인 모순을 배태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영의 소설이 그리고 있는 대로, 능력주의를 채택하게 되면 이는 소질과 재능의 위계라는 또 다른 불평등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능력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비롯되는 바, 능력의 차이는 단순한 차이에 그치지 않고 필연적으로 위계가 되고 서열이 될 것이었다.

아무리, 무슨 짓을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사람의 능력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타고난 능력이라는 개념은 있을 수가 없으며, 여기에는 불가피하게 주되게는 부모의 재산, 직업 등 사회경제적 지위(Social Economic Status, S.E.S.)가 개입할 것이다. 그리하여 가령 이른 바 금수저로 태어난 학생들이 학교에서 교사들의 관심을 받고 학업적 성취를 이루기에 유리할 것이며, 소질이나 재능이라는 것은 결국 이들에게 한정된 개념이 되고 말 것이다.

반대로 흙수저로 태어난 학생들은 소질이나 재능을 발견할 기회도 갖기 어려울 것이며, 그리하여 그것은 애초에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것이 되어 버릴 것이다. 즉 학교교육만으로 모든 학생을 ‘결과적 평등’에 이르게 하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바, 즉 잘 사는 집 아이는 잘 살기 때문에 학교에 와서 공부 잘 하는 우등생과 모범생이 되고 못 사는 집 아이는 못 살기 때문에 부진아와 부적응아가 될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학교는 기껏해야 입학이라는 ‘기회의 평등’을 제공할 수 있을 뿐, ‘결과적 평등’은 애시당초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

이에 대해 낙관적인 학교 개혁가들이 소수자들이나 그들이 속한 ‘게토 학교’에 헤드스타트 프로그램(Head-Start Proogram, 1960년대 중반 미국 정부가 사회경제적 소수자 집단의 유아를 대상으로 교육, 보건, 복지 등에서 시도했던 일련의 ‘보상 교육(compensatory education)’)이나 양질의 교육환경과 교수자 등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처한 불리한 조건들을 상쇄하거나 만회하려고 시도해 보았지만(이것이 이른 바 ‘보상적 평등’이나 ‘과정적 평등’의 개념이다), 이 또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었음을 지난 역사들이 예증한다.

결국 학교는 학생이 속한 사회경제적 유리함을 성적이나 소질, 재능이라는 이름으로 치환하여 합법성을 부여하였을 뿐으로, 사회경제적 보상의 차등화된 분배의 기준을 귀족이라는 신분적 변수에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해서 백 여 년만에 위대한 사회적 평등의 기제가 되고자 했던 학교의 이상은 근본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이클 영의 소설에서 그려진 미래 사회가 능력에 기초한 또 다른 위계적, 서열적 사회로 귀결된 것은 다만 우연이 아니거니와, 능력주의에 기초한 근대 사회란 필연적으로 신분에 기초한 중세사회로 회귀할 수 밖에 없다.

비근하게 영화 가타카(Gattaca)는 바로 이러한 우울한 미래를 그리고 있는 바, 능력이라는 변수가 유전인자로 바뀐 미래 사회에서 새로운 신분사회, 계급 사회가 도래한다. 근대의 장밋빛 출발선에서 오래된 미래는 앞서 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셈.

어쩌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인간이 상상한 모든 아름다운 이상은 필연적으로 타락한다는 비관론을 수긍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순정했던 이상이 제도로 실체화하면서 거기에는 그것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유하려는 인간의 이기심이 개입한다. 그 결과 애초의 드물고 귀했던 이상은 부패하고 타락하여 원래의 고왔던 얼굴빛을 잃는다.

이미 우리는 사회주의의 실험에서 이를 목도하였으며, 능력주의의 기치를 걸고 야심차게 내달렸던 공교육의 실험 역시 그 수명이 다하였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을 포함한 오늘날 근대 공교육이 처한 보편적인 우울한 자화상이라는 것을.

사회적 연대의 정신, 아무도 굶어죽지 않을 권리를 위해

그러나 경솔하게 비관론에 빠질 필요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인류를, 사회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한 고민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패한 능력주의 앞에서 우리는 이제 다시 무엇을 질문해야 할 것인가.

아마도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철 지난 능력주의를 붙들고 불가능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삽질”할 것이 아니라, 능력주의를 회의하고 능력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평등과 분배를 고민하는 일일 것이다. 능력주의는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사회구성원 상당수가 중산층으로 상향적 계층 이동이 가능한 산업자본주의 초기에나 적합한 아이디어였다. 당시에는 이른 바 개천 용이 가능했던 사회로서, 학교는, 결혼과 로또를 제외하는, 그러한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매개가 되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에는 이러한 능력주의에 기초한 분배와 계층 상승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할 수가 없다.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괜찮은 사회경제적 보상이 극도로 축소되어 가는 상황에서, 이전처럼 대졸자의 상당수가 무난히 중산층으로 편입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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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사회에서 능력이 없으면 굶어죽어야 하나. 그렇지는 않다. 능력을 절대화하는 환상에서 깨어나 사회적 연대의 정신으로 공동체를 꾸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http://www.earthtimes.org/politics/international-human-solidarity-day-2…)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능력주의에 기초한 계층상승의 가능성이 아니라, 과연 개천에서 용이 나야 하는가, 혹은 능력이 없으면 분배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 능력이 없어도 굶어죽지 않을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일 것이다.

아울러 이것은 우리가 여전히 근대 초 상 퀼로트들의 고민과 궁구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한데, 그도 그럴 것이 평등과 인권의 의제는 인간 사회가 존속하는 한 폐기되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달라진 시대상에 따라 다만 그 고민의 방식과 전략의 수정이 있을 뿐, 더 나은 사회와 공동체를 위한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

공화주의자들은 공교육을 통해 사회적 평등을 도모했으나 오늘날 우리는 공교육을 우회하지 않고 곧장 사회적 평등으로 가는 직선의 길을 상상해야 한다. 소비자본주의의 후기 근대에서도 근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수 밖에 없으며 또 진행형이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인권과 평등, 그리고 사회적 연대의 이름으로.

따라서 향후 한국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일은 계층상승을 하지 않아도 개인의 생존과 존엄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이는 한국사회가 단 한 번도 제도적으로 실현한 적이 없었던 공동체를 이 땅에서 만들어나가는 일이 될 것이며, 계급과 젠더, 장애와 다문화, 연령과 지역을 불문하고 모두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살게 하는 것과 같은 말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급박하고 실천적인 아젠다들, 곧 기본소득과 의료보험, 의무교육 강화 및 공공보육 확대, 최저 임금과 최저 생계비, 남녀고용 평등, 차별 금지법 등을 끊임 없이 문제제기하고 논의해 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지금처럼 학력과 학벌을 통한 지위경쟁은 현저히 완화될 수 있을 것이며, 죽은 능력주의를 붙들고 불가능한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사회적 개방성이라는 측면에서 계층 상승의 합법적 통로를 열어두는 것은 여전히 중요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 한정해서라면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는 여전히 중요한 화두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역자 김현정은 삼성경제연구소(SERI)에서 경제·경영 전문 번역가로 일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이 강연에 기초하여 대중 일반을 대상으로 씌어진 것이기 때문에, 원래의 문장 역시 그다지 복잡하지 않고 덕분에 번역 역시 술술 읽힌다. 사회과학에 관한 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이라도 책장을 넘기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목, 2016/07/0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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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글의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정치가들이 개헌론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민주정치 발전에 유익하기보다는 유해하다.

‘론’으로 끝나지 않고 진짜로 개헌을 하면 어떨까? 지극히 재난적일 것이다. 지금 정당들의 능력이랄까 혹은 조직적 실력으로는 개헌처럼 지극히 위험한 과업을 감당할 수 없다.

반면 현행 헌법을 가지고도 정치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유익한 일은 수천, 수만 가지다. 정치가들은 바로 그 부분에서 최선의 노력과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민주정치는 헌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다.

새 헌법을 만들면 정치가 좋아질까?

필자가 기억하는 한, 민주화 이후 지난 29년 동안 어느 한 해도 개헌론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그 가운데 실제로 개헌을 하고자 했던, 이른바 ‘개헌의 정치’가 있었던 적은 단 한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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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민주화 이후 개헌이 현실적으로 성사될 수 있었던 때는 1990년 내각제 개헌을 명분으로 3당 합당이 이뤄졌을 때였다. 이때를 제외하면 모두 ‘말’ 뿐이었다. (이미지 출처: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5112200…)

1990년, 내각제 개헌을 합의 사항으로 당시 세 정당이 득표율 합 73.4%에 의석수 217석의 거대 정당을 만들었을 때였다. 방법이 비민주적이었지만, 개헌을 위해 구체적인 정치 행동을 했던 것은 이 삼당합당 때가 유일했다. 그 나머지는 일종의 여론정치로서 ‘개헌론의 정치’가 있었을 뿐이다.

올해 주인공은 정세균 신임 국회의장이었다. 김무성과 문재인 등 여야 대표급 정치인들이 그 뒤를 이어받아 각자의 개헌론을 반복했다. 이재오 같은 단골 내각제 개헌론자는 물론이고, 여당 내 중심 세력이라 할 친박, 친이계 인사들도 가세했다.

남경필, 박원순, 안희정 등 광역자치단체장들 역시 분권화를 위한 개헌론을 말하며 ‘수도 이전’을 주장했다. 야당 내 대표적인 개헌론자로 알려진 우윤근 신임 국회 사무총장은 내년 4월 재보선 시기에 국민투표를 하자며 아예 시기까지 못 박고 나섰다.

1987년 헌법이 제정된 지 30주년이 되는 내년이 적기란다. 글쎄, 그들이 말하는 대로 새 헌법을 만들면 정치가 좋아질까? 그나저나 서로가 말하는 개헌안이 다 다른데, 대체 ‘어떤 헌법’이란 걸까? 무조건 새 헌법이면 되는가?

개헌에 대한 당론부터 정하라

개헌은 너무 위험한 사안이다. 그렇기에 헌법 문제를 갖고 함부로 실험할 수는 없다고 본다. 개헌을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먼저 당론으로 개헌안을 정하는 노력부터 해야 할 것이다.

민주정치에서 중대 사안의 출발점은 바로 거기에서부터이다. 하지만 어느 개헌론자도 자신의 정당이 헌법과 헌법 개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을 이끌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론 혹은 언론에 대고 개헌을 이야기하지, 돌아서서 자신의 정당 안에서부터 논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혹자는 “개별 의원들 하나하나가 헌법 기관이나 다름없기에 당론과는 무관하게 국회에서, 오로지 국가의 장래만을 생각하며 논의를 이끌어 결정해 가자.”고 말하는데, 놀라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건 ‘귀족정적인 의회주의’의 원리일 뿐, 민주정과는 거리가 멀다.

민주정은 그를 대표로 뽑아주고 권력을 갖게 한 시민에게 책임을 지는 것을 말한다. 지난 선거에서 자신이 속한 정당과 그 공약에 책임성을 가져야 하는 게 민주주의다.

그런데 국회에서 결정하면 된다는 식은, 정당의 후보로서 선거에서 당선되고 국회의장이 되고 사무총장이 되었으면서도 이제 그런 책임은 끝났고 법제정 권력은 온전히 자신들의 소관으로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당이 책임정치의 기반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의회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치의 무능을 헌법 탓으로 돌려서야

개헌안이 당론으로 확정된 다음에는 정당의 선거 공약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정당의 공약 제시는 주권자인 시민에게 판단을 요청하는 단계의 시작을 가리킨다. ‘정치적 의제의 형성과 이를 중심으로 한 공적 논쟁’의 과정이 없다면, ‘시민이 최종적 결정권자로서 역할을 하는 민주주의’는 의미를 가질 수가 없다.

그런데 이를 곧바로 국민투표로 결정하자? 개헌론자들의 그런 발상은 사실상 ‘중우정치’를 하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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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을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것은 난센스다. 개헌에 대한 높은 지지 여론은 현실 정치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돼야 한다. 정치의 잘못을 헌법의 잘못으로, 대표자의 심의 책임을 여론의 판단으로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지 출처: http://www.redian.org/archive/93358)

국민투표는 여론동원정치를 대표하는 결정방식이지 결코 민주적 결정 방식이 아니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의 경험에서 보았듯, 그들이 즐겨 향유한 것은 국민투표였고 야당을 협박할 때도 늘 “그럼 국민투표로 하자!”였다. 극우 선동 정치에 휘둘리고 만 영국의 ‘브렉시트’ 역시 국민투표의 부정적 효과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도 개헌론자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밀며 개헌에 찬성하는 의견이 많다고 말한다.

글쎄, 필자가 보기에 일반 여론조사에서 개헌에 찬성한다는 대답은, 지금과 같은 정치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낼 뿐이다.

시민들이 개헌을 열망한다? 개헌을 둘러싼 당론도 없고 제대로 된 공적 논쟁도 없는 조건에서, 개헌 찬성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가 신뢰성을 가질 수 있을까?

민주주의에서 정치가란 누구인가? 선출된 시민의 대표들이다. 시민은 모든 일을 직접 할 수도 없고 또 직접 하고자 할 만큼 어리석지도 않기에, 선출된 정치가들에게 민주적 과업을 일정 기간 맡기는 것, 그게 민주주의다.

그런데 그들이 책임 있게 정치를 하지 않아서 화가 난 시민들에게 개헌론자들은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헌법 때문이다!”라고 말한다면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제헌의회 선거를 한 것도 아닐뿐더러, 개헌안 공약도 없이 당선된 그들이 헌법 개정 권력을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았다고는 전혀 인정할 수가 없다.

대통령답지 못하고 여당답지 못하고 야당답지 못하다는 것이 시민 다수의 합당한 불만인데, 그에 대한 정치가의 무책임한 대답이 “그럼 개헌을 논해 봅시다!” 라는 식이라면 솔직히 사양하고 싶다.

그들이야말로 정치의 기능과 역할을 스스로 파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좋은 헌법’은 없다.  지금 필요한 건 ‘좋은 정치’

필자가 만나서 대화를 해본 국회 개헌론자 가운데, 헌법에 대한 자각적 이해나 판단을 가진 의원은 없었다. 지금과 같은 대통령제에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는 정도의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그 가운데 얼마나 ‘헌법 때문’이고 ‘헌법 이외의 문제’는 또 어떤가에 대한 판단을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각제는 문제가 없을까 혹은 이원집정제를 한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에 대한 이해도 없다. 이런 조건에서 개헌이 본격화한다면 어찌될까?

누군가는 대통령 4년 중임제가 답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이원집정부제 하자고 하고, 또 누군가는 내각제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등, 제각각일 것이다. 거기서 끝날까?

누군가는 통일헌법 만들자 하고 재벌들은 헌법 119조의 경제민주화 조항 폐지하자고 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연방제 개헌하자고 하자거나 지방분권화 개헌하자고 할 것이다.

우리사회의 주요 세력과 영향력이 모두 동원되어 자신들을 위한 권력구조를 만들고자 할 것이며, 학계와 언론 역시 편을 나눠 맹목적 주장을 반복할 텐데, 아무리 봐도 지금의 정당들과 개헌론자들에게 그런 무한정의 갈등 확산을 통제할 힘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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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이마르헌법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헌법으로 평가받았지만, 극심한 정치적 혼란 속에서 나치의 집권을 초래하고 말았다. 문제는 헌법이 아니었고, 정치였다. 좋은 헌법이란 없다. 좋은 정치가 있을 뿐이다. (이미지 출처: http://slideplayer.org/slide/2826705/)

좋은 헌법은 없다.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헌법을 갖게 되었다고 해서 프랑스처럼 민주주의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독일식 내각제를 한다고 한국정치가 독일정치처럼 된다? 미국처럼 대통령 중임제가 되면 한국정치의 문제가 해결된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중앙집권은 무조건 나쁘고 지방분권은 다 좋은가? 전혀 아니다. 중앙집권이냐 지방분권이냐가 다가 아니라, 책임성의 원리가 어떤 방법으로 실천되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다.

독일과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강력한 지방분권 체제라 하더라도 책임 정치의 기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너무나 다른 결과를 낳는다. 지방분권도 얼마든지 나쁠 수 있다.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는 장단점을 나눠 갖는다. 그것의 좋은 효과는 제도의 법-형식적 측면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 외적인 조건’, 즉 정치가 그것을 뒷받침할 만큼 사회 속에 잘 뿌리내리고 있는지, 경제를 움직이는 주요 생산자 집단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공동체적인지 등에 의해 영향 받는 바가 더 크다.

20세기 초 독일 바이마르 헌법의 사례가 말해주듯, 최상의 헌법도 헌법 외적인 조건으로부터 뒷받침을 받을 수 없으면 최악의 헌법이 된다.

전후 독일 민주주의의 발전을 ‘본(Bonn) 헌법’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기민당과 사민당이 중심이 된 정당 정치 혹은 공동 결정과 직장 평의회에서 보듯 좋은 노사관계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까?

좋은 헌법을 갖고 싶다는 정치가의 바람이 진짜라면, 그는 무엇보다도 좋은 경제와 좋은 노동시장, 좋은 교육-문화적 조건을 위해 정치가 해야 할 좋은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성과를 낳는 것에 비례해서 우리에게 맞는 헌법의 문제는 – 누가 작위적으로 개헌론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 가장 빠르게 제 길을 찾아가게 될 거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앞선 민주주의 국가들의 역사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민주주의는 법치가 아니나 정치를 잘하는 데 그 매력이 있고, 좋은 헌법은 그것의 덤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금, 2016/07/0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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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의 본질은 원래 성상품화 아닌가요?”

여성 아이돌 그룹에 대한 성적 대상화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종종 이런 반응을 접한다. 평소 ‘여성 혐오’에 발끈하던 이들도 걸그룹에 대해서라면 유독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곤 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기본적으로 아이돌의 이미지를 상품화해 판매하는 구조이며, 남성 팬의 구매로 존속하는 여성 아이돌이 그 산업의 논리 안에서 움직이는 한 성적 대상화는 필연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걸그룹을 아예 없애지 않는 이상 이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무용하지 않느냐고 냉소한다.

지금 <프로듀스 101>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한국의 여성 아이돌 그룹은 성상품과 동의어가 되어버린 듯한 인상이다. 이제는 ‘걸그룹의 성적 대상화, 괜찮은가?’라는 질문보다 차라리 ‘걸그룹의 성적 대상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나?’라는 질문이 더 유효해 보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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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경선방식으로 걸그룹 멤버를 뽑는 ‘프로듀스 101’. 예쁜 외모, 귀여운 행동, 넘치는 끼를 갖춘 걸그룹 멤버들은 남성의 판타지를 충족한다. 그런 남성적 판타지와 쇼비지니스가 만나 탄생한 것이 걸그룹이다. 그러나 남성적 판타지와 남자들의 포르노를 구분하는 경계는 매우 모호하다. (이미지 출처: http://www.good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6908)

최근 1~2년 사이 대중매체가 여성 아이돌을 성적 대상화하는 방식은 과거보다 노골적으로 변화했다. 과거에는 덜했는데 지금은 더 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타성에 젖어 ‘뻔뻔해졌다’는 의미다. 마치 매체가 계속해서 한계치를 높이며, 대중이 여성 아이돌의 성적 대상화를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실험 중인 것처럼 보인다.

여성 아이돌 연예인의 수난은 끝없이 터져나온다. 올초 AOA의 설현은 뒷모습을 촬영한 모 이동통신사의 입간판이 화제가 되면서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뒤태’를 보여달라는 뻔질나는 요구에 응하며 “무보정 몸매”를 인증해야만 했고, 이어 촬영한 바닥에 누운 채 밧줄에 묶여있는 광고가 여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설현은 그로부터 몇 개월 뒤 ‘민족 영웅’인 안중근을 몰라봤다는 이유로 같은 그룹의 지민과 함께 ‘역사 무지’의 뭇매를 맞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해야 했다.

에프엑스의 멤버였던 설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노브라’ 사진과 연인과의 스킨십 사진, 입안 가득 생크림을 머금은 사진 등을 올렸다는 이유로 여성 연예인으로서 부적절한 ‘행실’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 뿐인가. 그간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졌던 징조가 모여 폭발하듯, 상식 이하의 여성관과 인권관을 자랑하는 범죄 수준의 TV 프로그램들이 버젓이 기획되었다.

KBS 설특집 프로그램 <본분 금메달>은 철봉에 오래 매달리기를 하거나 갑자기 바퀴벌레가 튀어나오는 상황에서도 예쁜 얼굴 유지하기, 상냥한 태도 잃지 않기 등 걸그룹의 ‘본분’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테스트를 거치는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가학성’ 논란을 겪었다.

얼마 전 JTBC <잘 먹는 소녀들>은 여성 아이돌을 모아놓고 그들이 먹는 모습을 선정적으로 비추고 중계하는 관음증적 컨셉트로 비난을 받았다.(두 프로그램은 모두 ‘가학적 인권침해’ 논란으로 폐지 결정되었다.) 그 밖의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 아이돌은 빈번히 가수나 연예인으로서 하나의 주체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애교를 전시하거나 재롱을 부리는 등 남성들만으로 이뤄진 스튜디오의 ‘분위기를 살리는 꽃’으로 여겨진다.

말하자면 지금 한국의 여성 아이돌은 다음과 같은 ‘본분’을 갖출 것을 요구받고 있다.

자아가 없는 어리고 순진한 인형이면서 동시에 섹시해야 하고(섹시하게 보이되 스스로 섹스어필을 하는 ‘까진 여자’가 되어선 안 된다), 역사인식도 대중이 요구하는 방향과 수준으로 갖춰야 하며, 불시에 몸무게 검사를 해도 프로필과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날씬함을 유지하고, 그러면서도 복스럽게 잘 먹어야 한다.

바퀴벌레를 보아도 예쁘게 놀라고, 어떤 상황에서도 상냥함과 친절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즉 ‘명령만 하십시오.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가 여성 아이돌에게 주어진 잔인한 본분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한 인간에 대해 인격을 배제한 채 성적 행위의 대상이라는 시각에 입각해서 생각하는 사고 체계’(위키백과)로 정의되는 ‘성적 대상화’에 다름 아니다.

‘걸그룹의 존재 이유는 성상품화에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애초의 질문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대답은 자명하다. 한 인간이 걸그룹이라는 이유로 인격을 삭제당하고 그것을 감내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가혹하지만 이 상황에 조금이나마 균열을 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여성 아이돌 자신의 목소리일 거라고 생각한다.

걸그룹 에프엑스의 엠버는 고정된 여성 이미지 일색인 한국 여성 아이돌계에서 눈에 띄는 ‘톰보이’로 분투해왔다. 고정된 성관념으로 자신을 재단하는 세상의 편견에 맞서 꾸준히 자신의 생각을 발언해온 그녀는 지난해 자신의 ‘중성적 이미지’에 딴지를 걸어오는 안티 팬들을 향해 SNS에 이런 말을 적었다.

“저는 여자와 남자가 하나의 특정한 외모로 제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움은 모든 모양과 크기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모두 달라요. 만약 우리가 모두 같은 멜로디를 부른다면, 어떻게 하모니라는 게 있을 수 있겠어요?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판단하지 말아주세요. 우리가 모두 서로의 차이를 존중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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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에프엑스 멤버인 엠버는 걸그룹의 전형에서 벗어나 자의식을 갖춘 아티스트로 변신한 드문 경우이다. 걸그룹 멤버가 음악적으로 자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바라보는 남성의 관음증적 시선을 자각해야 하고, 그 틀을 깨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기꺼이 더 ‘까진 여자’, ‘나쁜 여자’가 돼야 한다.

지난 3월 발표한 ‘Borders(경계들)’라는 제목의 곡에서는 이렇게 노래했다.

‘엄마는 말했지 한계를 넘어갈 때/ 궁지에 몰려도 절대 무서워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똑바로 서/ 너의 길을 위해 싸워/ 너의 길을 위해 싸워/ 너의 길을 위해 싸워’

‘SNS 악동’으로 불리우다 결국 과감한 노출사진과 ‘노브라’ 사진, 연인 최자와의 스킨십 사진 등으로 구설수에 오른 설리는 어떠한가. 그녀가 ‘관종’(관심종자) 논란에 굴하지 않고 사진을 올릴 때마다,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심한 욕설은 물론 ‘예전의 설리가 그립다’ ‘과거의 청순한 이미지를 유지하라’고 충고하는 댓글들이 줄줄 달렸다.

그녀의 행동은, (본인의 의사야 어떠했든)연애는 금기시 되며 순수한 소녀로만 머무르기를 요구받는 표백된 아이돌 세계에 날리는 속시원한 ‘카운터 펀치’로 보였다.

엠버와 설리가 한 개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더 많이 자신의 인생을 살기를, 대중의 요구에 괘념치 않는 더 나쁜 여성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많은 엠버와 설리들이 나와 주기를 기대한다.

화, 2016/07/1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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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대표적 ‘트러블 메이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이번에는 북한 김일성의 외삼촌 강진석에 대한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취소 문제로 논란에 중심에 섰다.

박 처장은 지난달 2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강진석에 대한 서훈 심사 부실 문제가 제기되자 “서훈에 연좌제가 적용될 수 없다”고 강변했다. 결과적으로 김일성 일가의 훈장 추서를 옹호한 모양새가 되면서 당장 극우 진영이 반발했다.

보훈처가 당장 상훈법을 개정해 서훈 취소를 추진하겠다고 말을 뒤집으면서, 논란은 이동휘 장지락(김산) 권오설 등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 취소 문제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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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춘 보훈처장은 지난달 28일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일성 부모에게도 서훈을 할 수 있냐”고 묻자 “검토해보겠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념보수의 아이콘인 박 처장이 반국가단체 수괴인 김일성의 일족에게 서훈을 부여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김일성 일가인 줄 모르고 훈장을 줬던 보훈처가 현대사의 여러 측면을 내포한 김일성 일가에 대한 서훈 문제를 이렇다 할 공론화 과정 없이 서둘러 결론 내리 것이다. 박 처장이 책임을 면피하는 동안 우리 사회를 다시 한 번 보수ㆍ진보 양 진영으로 찢기고 있다.

언론에 군사기밀 유출로 군복 벗어

지금은 갈등 유발자로 여겨질 정도지만 정치인 박승춘의 시작에는 조직을 위한 자기희생(?)이 있었다. 육사 27기로 1971년 임관한 뒤 줄곧 군인의 길을 걸었던 박 처장은 2004년 7월 ‘서해 북방한계선(NLL) 무선교신 허위보고 파문’ 때 처음 언론의 조명을 받는다.

당시 해군은 무력 충돌에 앞서 남북 함정이 ‘무선 핫라인’을 통해 3차례 교신한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고, 이 같은 사실이 국가정보원과 북측 전화통지문 등을 통해 뒤늦게 확인됐다. 해군작전사령관이 상부에서 사격 중지 명령을 내릴 것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보고를 누락한 사실도 드러나면서 논란이 가중됐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진상조사를 지시하면서 군 수뇌부에 대한 대대적 문책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육군 중장)으로 군 정보병과 최고책임자였던 박 처장은 당시 남북 함정간 교신 내용 등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전달하는 돌출 행동으로 군사기밀 유출 논란을 자처하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박 처장이 사실상 ‘항명’과도 같은 언론플레이에 나서면서 군기문란 사건은 청와대와 군의 대결로 비춰지고, 결국 보고누락 사건은 노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경고’로 일단락된다. 군 기무사령부의 조사를 받게 된 박 처장이 자진전역을 신청해 군복을 벗는 것으로 정치적으로 봉합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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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춘은 2004년 북한이 NLL을 침범했을 때, 남북 함정 간의 교신내용을 언론에 유출한 혐의로 당시 합참 정보본부장직에서 해임되고, 군복을 벗었다. 그리고 곧장 정치권으로 달려갔다. 사진은 1999년 6월 서해 연평도 부근에서 일어난 우리 군함과 북한 군함과의 교전 모습. (사진 출처: http://m.blog.daum.net/spinoza1677/902?categoryId=27)

박 처장이 불명예 전역을 택한 배경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박 처장은 2011년 3월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NLL 교신 기밀유출과 관련해 “정부 어느 조직보다 상명하복하고 계통을 세워야 되는 군인으로서 적절한 행위였다고 생각하느냐”는 당시 박선숙 의원의 질문에 “소신껏 적절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스로는 정보 유출이 불명예가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앞서 2009년 12월 강원 강릉에서 열린 한 안보강연에서 자신이 반기를 든 덕에 “노무현 정권이 ‘군 때리기’에서 ‘군 달래기’로 선회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임기 첫해인 2003년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제병지휘관으로서 국군을 대표해 군 통수권자인 노 전 대통령에 충성을 다짐했던 군인이 1년도 채 안 돼 반기를 든 것을 무훈(武勳)처럼 여겼다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군복 벗자마자 정치권행…극강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박 처장은 군복을 벗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치권을 향해 나갔다.

전역한 지 오래지 않은 2005년 12월 한나라당 국제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발탁된 박 처장은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후보 공모에도 참여하는 등 정치인으로 빠른 속도로 변신해 간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박근혜 후보 캠프에 몸담는 등 박 대통령과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는다.

박 처장은 하지만 끝내 스스로 전장(戰場)을 떠나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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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춘 처장은 군복을 벗자마자 정치권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공직을 얻었고, 공직을 활용해 정권재창출에 기여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윗선의 코드에 맞춰 처신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애국보수를 자처하지만, 결국 출세주의자 아니냐는 의혹이 따라붙는다.

박 처장은 2009년 1월 150여개 보수단체가 참여한 정책협의회에서 “용산철거민 사건은 친북세력과 전장의 전초전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우리사회를 단숨에 이념 대결의 전장으로 치환시켜낸다.

조갑제씨 등 우익단체 거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그의 행보는 18대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거침이 없어진다.

박 처장은 안보강연 등을 통해 “북한은 김일성이 탄생한지 100주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오는 2012년을 결정적 시기조성 완성의 해로 선포했다”며 “북한이 전면대결 태세를 선언한 주 전선은 북한인민군의 도발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있는 친북좌익세력”이고 역설한다.

극단적 색깔론과 이념 몰이로 그는 극우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한다.

이명박 정부이던 2011년 2월 보훈처장으로 임명된 박 처장은 보훈처의 ‘나라사랑교육’ 등을 통해 자신만의 전쟁을 이어간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안보교육을 진행하면서 대선개입 논란을 자처했다. 박 처장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된 직후인 2013년 1월 호국보훈안보단체연합회 신년교례회에서는 “성과가 지대했다. 여러분들 뜻하신 바를 이뤘다”며 대선 개입을 시인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그러면서 “제가 2년 동안 이념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선제보훈 정책을 추진했다”고 스스로를 치하했다고 한다.

대선 앞두고 ‘국정원장 영전설’ 돌아

무관 출신이어서일까 박 처장은 늘 당당하다.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에게 큰 빚을 졌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박 처장이 저렇게 당당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박 처장은 18대 대통령선거 개입 논란에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보전했다. 5ㆍ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곡 지정 문제로 우리 사회를 두 쪽으로 갈라놓고도 지난 대선 당시 국민통합을 전면에 내세웠던,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문책은커녕 질책도 받지 않았다.

박 처장이 지난 2014년 보훈처가 요구한 장진호 전투참여 미군 기념비 예산 3억원이 삭감되자, 국회 정무위원장실(위원장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을 찾아가 탁자를 내리치고 고함을 치는 등 소란을 피운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청와대라는 뒷배가 없고서야 차관급인 보훈처장이 어떻게 여당 중진 의원에게 큰소리 칠 수 있겠냐고 여당 의원들조차 혀를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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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춘 처장은 역대 최장수 보훈처장일 뿐 아니라 국회에서 3번 탄핵되고도 살아남은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윗선의 절대적 신임이 없고서는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장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http://m.leaders.kr/news/articleView.html?idxno=25125)

더불어민주당ㆍ국민의당ㆍ정의당 소속 의원 166명은 지난달 23일 국가보훈처장 해임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해임결의안은 2013년ㆍ2015년에 이어 세 번째다. 보훈처가 올해 한국전쟁 66주년 기념 광주 지역 시가행진에 제11공수특전여단의 참여를 추진한 게 문제가 됐다. 이 부대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에게 총을 쏜 계엄군이다.

하지만 박 처장은 이번에도 건재하리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5년 6개월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박 처장은 보훈처장 역대 최장기 기록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박기석 처장의 5년 7개월 재임 기록 갱신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하지만 19대 대통령 선거가 다가 1년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다시금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처장에게 새 역할이 부여될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기도 하다.

박 처장이 보훈처에서의 소임을 마치고 국정원장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다는 설이다. 박 처장이 군에서 30여년간 대북정보를 담당한 만큼 적임자라는 것이다.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지난 2007년 박근혜 대선캠프 때부터 안보분야 자문역으로 함께 활동했다는 점도 박 처장의 국정원 행을 점치는 근거로 언급된다.

목, 2016/07/1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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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경향신문(2016. 7. 12)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우리는 전례 없는 시대를 맞고 있다. 브렉시트가 드러낸 세계적 갈등 구조는 마르크스가 살던 19세기는 물론 20세기, 그동안 살아온 21세기의 갈등과도 다르다. 흔히 브렉시트를 세계화 대 반세계화의 충돌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세계적 갈등 구도의 복잡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무엇보다 세계화 대 반세계화 구도는 과거의 진영 대결처럼 이편과 저편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다. 세계화 진영에는 우파, 부자, 엘리트만이 아니라 좌파와 유럽연합(EU)도 있다. 반세계화 진영에도 역시 좌파는 물론, 극우, 저소득층이 있다.

세계화 대 반세계화라는 갈등의 축은 이렇게 서로 어울리지 않았던 세력들을 한 범주로 묶고 잘 어울렸던 세력도 갈라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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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세계화는 기존의 좌우파의. 경계선을 흐릿하게 만든다. 그리고 좌파와 좌파 간의 입장 차이를 두드러지게 한다. 지금의 세계화가 더 복잡하고 헷갈리는 이유이다. 사진은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제레미 코빈 영국 노동당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스페인 포데모스 당수, 버니 샌더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시리자 당수.

세계화 이슈에서 좌파는 좌파와 대립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일부였던 기존 진보·좌파는 불평등의 세계화에서 면책될 수 없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세계적 분노가 기존 좌파의 권위와 영향력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약화시킨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그렇다고 ‘분노하라’ ‘점령하라’의 바람을 타고 확산된 반신자유주의 세계화 세력이 기존 좌파를 대체한 것도 아니다. 스페인의 포데모스는 집권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영국 좌파의 희망이었던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벌써 위기에 처했다. 그리스 좌파연합 시리자가 집권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위태위태하다. 노동자·농민의 저항과 분노는 여전하다. 미국의 버니 샌더스는 힐러리 클린턴의 벽을 넘지 못했다.

반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부상한 새 좌파가 무기력해진 이유의 하나는 강력한 경쟁자의 존재이다. 바로 EU 탈퇴파, 도널드 트럼프로 대표되는 극우세력이다.

트럼프는 성차별주의자, 인종주의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는 부자증세, 서민감세, 최저임금 인상, 사회보장 축소 반대, 월가 규제를 공약했다. 포데모스, 시리자, 코빈, 샌더스 등 새 좌파와 입장이 별로 다르지 않으면서 기존 좌파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 

이 세력의 경쟁력은 세계화로 잃은 것이 많은 서민들의 불만과 분노를 잘 대변하는 데 있다. 그런 트럼프가 공화당 주류와 대립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영국 보수당도 마찬가지로 EU 잔류파와 탈퇴파로 갈라져 있다. 이렇게 좌파는 좌파대로, 우파는 우파대로 내적 분열 상태에 있다. 영·미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이끈 쌍두마차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건 주체의 분열이다. 세계는 핵분열 상황이다. 어디에도 갈등의 중심은 없다.

유럽인에게 EU는 천사와 악마의 얼굴을 모두 갖고 있는 존재다. EU는 자본, 노동, 상품의 자유 이동을 추구하는 세계화 세력이자 긴축으로 서민의 삶을 옥죄는 기득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권, 정의, 관용, 통합의 비전을 구현하기 위한 공동체이기도 하다.

부자·엘리트의 특성도 탐욕 하나만으로 규정할 수 없다. 세계화의 수도 뉴욕·런던의 지배 엘리트는 브렉시트와 트럼프를 반대할 것이다. 그들은 관용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공존을 추구한다. 그게 그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건 사회적 덕목과도 합치된다.

반면 저소득층은 이기적이고 배타적이다. 자국,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고 연대를 모른다.

자유무역과 통합의 혜택이 엘리트에게만 돌아갔으면 민주주의 정치는 저소득층을 대신해 그들의 몫을 되찾아줘야 하지만 그렇게 못했다. 이제 저소득층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손에 쥔 것이라도 지키는 것이다. 이주자들이 자신의 몫을 가져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세계적 갈등과 분열의 본질에 다가갔다. 세계의 부는 불평등하게 분배되었고, 다수를 대표한다는 민주주의 체제, 기성 정치는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다. 가난한 자들이 자신의 몫을 가져간 부자들이 아니라 더 가난한 자와 싸워야 했던 이유.

그런데 가난한 자에게 주어진 선택은 무엇이었나? 삶을 개선시킬 대안이 아니었다. 잔류, 혹은 탈퇴. 선택을 강요당한 서민들은 국민투표를 기성 정치에 책임을 물을 기회로 삼았다.

만일 당신이 저격수라고 해보자. 그런데 표적이 누가 누군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과 뒤엉켜 있다. 쏠 것인가, 말 것인가?

지금 서민들 앞에 세계화 대 반세계화, 좌파 대 우파, 좌파 대 좌파, 우파 대 우파, 엘리트 대 서민, 안정 대 불안, 포용 대 차별, 통합 대 고립이 어지럽게 교차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정치가 할 일은 선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특히 가난한 이들을 위한다는 진보, 좌파 정치세력이 할 일이다. 더 나은 대안을 내놓기 전까지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

월, 2016/07/1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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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경향신문(2016. 6. 21)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박정희가 미국의 한국 안보 공약을 신뢰하지 못해 자주국방을 선언했듯이 중국·소련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던 김일성도 ‘국방에서의 자주’를 추구했다. 게다가 김일성은 미국의 핵위협을 받았다. 작은 나라가 외부 도움 없이 강대국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고자 할 때 무엇이 가장 필요했을까. 핵무기다. 박정희가 원했던 것이기도 하다.

간혹 북한의 핵개발 과정을 김일성의 비핵 논리, 김정일의 핵 모호성, 김정은의 핵무장 강화라는, 지도자 개성의 차이에 따른 비연속선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60년은 핵을 위한 행진의 시기였다. 핵능력이 없을 때는 비핵을, 핵개발 초기에는 모호함을 내세울 때가 있었을 뿐이다.

이렇게 60년 3대에 걸친 간난신고 끝에 온갖 대가를 지불하고 확보한 핵무기다. 그런데 이제 와서 포기하란다고 포기할 리 없다. 그것도 과거 핵정책 실패로 ‘핵 강국’ 북한의 등장에 책임있는 당사국의 말을 들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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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면 상응하는 댓가를 주겠다는 남한의 제안은 실현가능성이 낮다. 그동안 김씨 3대가 자위권 확보를 위해 핵에 집착해온 역사를 떠올리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북한을 향해 선 핵포기를 주장하는 것은 그저 국내용 여론조성용이거나, 이데올로기적 구호에 불과하다. 이런 시늉으로는 현실에 아무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북한에 불가역적인 핵포기를 요구하려면 먼저 남한이 불가역적인 평화체제를 보장해주는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북핵을 국내 정치에 이용해온 보수세력들이 그럴 수 있겠는가?

비핵화가 우선이라는 한국의 입장은 도덕적 정당성이 있을지언정, 현실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왕이의 비핵화·평화협정 병행론도 북한을 설득하기 어려운데 ‘선(先) 비핵화’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핵실험 이전의 9·19 공동성명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한·미·중·일의 희망사항도 실현될 가능성이 낮다. 북한이 왜 4차례의 핵실험을 없던 일로 하겠는가.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현실을 인정, 잠정적 핵동결을 당면 과제로 받아 들여야 한다. 완전한 해결을 삼가야 한다. 완전한 해결은 대결 상태의 지속을 의미하고 대결은 북한에 핵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의 기회를 주게 될 것이다.

북한도 완전한 해결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평화협정 문제를 보자. 북한은 한·미의 선 비핵화에 맞서 선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지만 평화가 진정 북한이 원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평화협정을 포함한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는 건 대외관계 정상화로 외부 위협이 사라지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내부의 전체주의적 통치를 완화하고 개혁·개방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 그건 김정은 정권의 미래가 불투명해진다는 뜻이다.

비핵·개방·3000, 그랜드바겐, 드레스덴 구상이 거절당한 주요 이유도 북한 체제를 급격히 바꾸는 위험한 대북 제안이기 때문이다. 핵 강국을 자처하는 지금 북한에 평화협정의 가치도 상당히 떨어졌다.

그렇다면, 원칙과 명분으로부터 눈을 돌려 한·미 연합훈련을 잠정 중단하면 핵실험도 잠정 중단하겠다는 북한의 제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핵 문제가 정말 위험한 때는 핵 위협은 높아지는데도 관계가 단절된 채 적대하고 대결하는 상황이다. 북한의 태도가 나아져서가 아니라 북한이 더 위험해졌기 때문에 간여하고 관계를 가져야 한다. 그게 시민의 생명을 책임진 정부의 책무이다.

미국은 그럴 필요가 없다. 대북 제재에만 집중하는 미국은 태평양 건너에 있다. 미국 흉내를 낼 처지가 아니다. 그런데 한국의 기득권세력, 보수층은 한·미 연합훈련에 민감하다. 협상으로 내줘도 괜찮은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주한미군 철수 및 감축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한·미동맹의 신성성을 훼손한다고 믿는다.

사실 이들도 북한과 마찬가지로 평화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적의 지위를 상실하면 북한 주적론에 기반한 정치·사회 구조가 무너진다. 종북 담론이 사라지고,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하거나 감축되고, 한·미동맹의 성격이 변한다. 군비 축소로 천문학적인 국방비가 복지비로 전환되면 우리 내부의 냉전구조와 보수 헤게모니가 붕괴된다. 분단 이래 보수 기득권의 물적·정신적 토대가 사라지는 것이다.

사실 북한에 불가역적 비핵화를 원하면 남한은 불가역적인 평화를 제공해야 한다. 그게 공정한 거래일 뿐 아니라, 문제 해결의 방법이기도 하다. 한·미 훈련 중단은 북한에 그런 협상을 하겠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남북이 하나하나 주고받으며 풀어가면 평화도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남한 내부는 북한을 적으로 상정한 법제도, 정책, 각종 상징으로 얽혀 있다. 핵과 평화가 교환가능한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보수세력이 내줄 게 별로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내부 평화체제가 구축되지 않는 한 평화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문제를 감추고자 한다면 방법이 있기는 하다. 비핵화의 당위성, 통일의 필요성과 같이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가능한 의제로 시선을 모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비핵화, 통일만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비핵화와 통일은 그렇게 당면한 위험의 해결책이 아니라 하나의 이데올로기 혹은 도그마가 되었다.

월, 2016/07/1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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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한겨레신문(2016. 7. 12)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이사장의 독단 아래 교사와 교수가 학내의 비교육적인 일에 눈을 감는 것을 보고 자라는 학생들이 자존감과 권리의식을 가진 민주시민이 될 수 있을까? 사학을 이사장의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학생들이 복종을 미덕으로 아는 ‘개돼지’처럼 살기를 원하는 것은 아닐까?

“국민 99%가 개돼지”라고 말했던 교육부 관리 나향욱씨는 국회 청문회장에 나와 “죽을죄를 졌다”고 말했다. 취중 진담이라고나 할까. 그의 진짜 죄는 고위 관료, 대법원 등 우리 사회 최상부의 평소 생각과 행동, 즉 ‘공공연한 비밀’을 들추어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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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는 사학비리의 아이콘이자 학교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우리사회 1%, 족벌사학의 삐뚤어진 의식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은 ‘상지대왕’으로 불리는 김문기 상지대 전 이사장 모습. (사진 출처: http://www.hankookilbo.com/v/94f8389c72394b2eb7d8b18162949efe)

여기 증거가 있다. 상지대 사태다. 지난 6월23일 서울고등법원은 2010년의 김문기 일가를 상지대 정이사로 복귀시킨 과거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의 결정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지난 7년 동안 대학을 반교육의 현장으로 몰아넣었던 상지대 사태는 새 국면에 들어서게 되었다. 환영할 만한 결정이나, 그동안의 상처가 너무 크다.

김문기의 상지대는 한국 사학비리의 대명사였다. 그가 관선이사로 내려와 상지대 재단을 소유물로 만든 뒤 1978년부터 93년까지 단 한 차례의 이사회도 열리지 않는 등, 우리 상상력 범위 내의 거의 모든 비리가 이 기간에 일어났다.

결국 93년 김문기가 구속되고 임시이사 체제가 유지되면서 상지대는 대학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런데 사학비리 전과자를 ‘종전 이사’라는 비법률적인 용어로 포장해서 복귀의 길을 터준 2007년 대법원 판결로 악몽은 다시 찾아왔다. 김문기가 ‘소유권’을 되찾자 ‘비소유자’들에게는 ‘노예화’의 길이 열렸다.

2008년 이후 상지대 외의 많은 과거 비리 대학이 교육부와 사분위의 ‘구재단’ 복귀 결정으로 큰 혼란에 빠졌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두 정권하의 교육부와 법원은 그것을 ‘좌파’에게 ‘빼앗긴 재산’을 원소유자에게 돌려주는 일로 생각했다.

그 이후 비리 사학은 여야 일부 정치권 인사들에게 정치자금원이, 일부 교육부 관료들에게는 ‘미래의 직장’이, 일부 사분위 위원 변호사들에게는 자기 로펌의 고객이 되었다. 그것은 사학의 자율·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으나, 교수, 직원, 학생들에게는 ‘전제왕정’의 복귀였다.

미국, 유럽은 물론 일본, 대만 등 아시아 어떤 나라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사학재단의 전횡과 비리가 오직 한국에서만 지난 반세기 이상 반복된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역대 독재정권이 붕괴되면 그 정권과 유착되었던 사학비리가 언제나 전면에 부상했는데, 그것은 사학비리가 단순히 재단 이사장의 권위주의, 이사장에게 과도한 권한을 주는 사립학교법상의 문제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1%의 족벌 세습집단의 이익’과 그것을 지켜주는 여러 권력 집단의 이해가 굳건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개방이사제 도입 등을 내용으로 하는 사학법 개정안을 반대하며 6개월 전설적인 장외 투쟁을 했던 일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이 모든 사건의 분기점이 된 대법원과 교육부의 ‘재산 돌려주기’ 결정은 그 근거도 없고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사립학교법상으로도 사학재단은 출연자의 개인 재산도 아니고, 사립학교의 자율성과 자주성은 이사장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공공성이라는 헌법상의 가치 아래 있다. 상지대도 그렇지만 해방 후 1960년대까지 대표적인 사학재단은 거의 민간인들의 뜻있는 기부로 세운 민립대학이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은 이렇게 만들어진 민립대학을 족벌집단의 소유물로 만들어 주었다. 영남대, 조선대, 인하대, 덕성여대 등 유명 사립대학은 모두 민립대학으로 시작했으나, 정권 자신 혹은 정권과 밀착한 한두명의 이사가 그것을 사유재산으로 만들었고, 그때부터 사학은 ‘교육’의 가치와는 멀어졌다.

여전히 대다수 국민들은 이것이 소수 비리 대학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은 대학의 85%, 고등학교의 45%가 사립인 전형적인 사립 중심의 교육체제다. 이사장의 독단 아래 교사와 교수가 학내의 비교육적인 일을 보고서도 눈을 감는 것을 보고 자라는 학생들이 자존감과 권리의식을 가진 민주시민이 될 수 있을까?

사학을 이사장의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학생들이 복종을 미덕으로 아는 개돼지처럼 살기를 원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사학의 민주화·공영화가 우리 대학 교육은 물론 사회의 정상화의 절대적인 관문임을 또다시 확인한다. 기부자가 건학의 철학과 이념을 정착시킨 다음 아름답게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우리는 언제나 볼 수 있을까?

월, 2016/07/1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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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말 공개된 ‘이정현 녹음파일’은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보도지침을 연상시킨다 (이정현-김시곤 통화내용). ‘신 보도지침’으로 불리는 이유이다.

2014년 세월호참사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로 보도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해경비판 보도에 항의하며 특정보도를 빼달라고 강요하는 목소리가 욕설까지 그대로 생생하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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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으로 온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당시 이정현 홍보수석은 단 한사람의 심기만을 살피고 있었다. “하필 (VIP가) KBS를 보셨다”는 이유로 당시 김시곤 KBS보도본부장에게 보도방향을 바꾸라고 윽박질렀다.

이와 함께 공개된 ‘김시곤 비망록’(업무 일일기록)에는 당시 길환영 KBS 사장의 보도개입 사례도 드러나 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과 국정원 댓글 대선개입 사건을 뒤로 미루라는 ‘지시’이다.

게다가 청와대 앞뜰의 아리랑 공연을 맨 뒤에 보도한 것은 문제라며 대통령 동정은 뉴스시작 20분 전에 편집해달라는 구체적 지시사항까지 기록돼 있다.

사실상의 ‘보도지침’

이에 대해 청와대와 여당은 ‘보도협조를 요청하는’ 홍보수석의 통상업무라고 강변하고 나섰다. 공영방송의 편집 및 편성에까지 시시콜콜하게 간섭하는 것이 통상적 활동이라면, 현재에도 청와대가 언론사에 ‘은밀하게’ 보도지침을 시달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전화를 받은 사람이 압박감을 느꼈다면 지시 이상일 수밖에 없다. 성적 농담에 불쾌감을 느꼈다면 성희롱으로 판단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정부는 보도지침이 ‘보도협조 사항’이며, ‘국내외의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언론관이 군사독재정권과 다를 바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만 보도지침을 어겼을 경우 안기부에 끌려가 구타에 시달리거나 언론사를 폐쇄하겠다는 물리적 폭력과 협박 공갈만 사라졌을 뿐이다. ‘저강도 보도지침’이라고나 할까.

보도지침
보도지침이란 5공 당시, 문화공보부가 신문사와 방송사에 은밀히 지시한 보도 지시사항을 말한다. 당시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가 잡지 ‘말’에 이 사실을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사진 출처: http://dvdprime.donga.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9836807)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이처럼 보도지침이라는 유령이 활개를 치고 있는 이유는 한마디로 불합리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거버넌스) 때문이다.

현재 KBS 이사회는 여당 추천 7명과 야당 추천 4명 등 모두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장은 이사회에서 추천하여 대통령이 임명한다. 실질적으론 여당 추천 이사와 사장 임명은 청와대의 의중이 크게 반영된다.

현 고대영 사장은 청와대에서 낙점했다는 강동순씨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낙하산 사장’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공영방송 지배구조…정권에 종속된 방송 만들어

그러나 현행 방송법에 이사회의 정당별 할당 근거는 없다. 추천기관(방송통신위원회)과 임명권자(대통령)만 명시돼 있을 뿐이다. 이런 상태에서 국회의 관행에 따라 여당과 야당에 이사 추천권을 할당하여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법적 규정도 없는 상태에서 국회가 이사회를 구성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이사의 자격도 ‘각 분야의 대표성’이나 ‘방송에 관한 전문성 및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한다는 추상적 개념으로 규정돼 있을 뿐이다.

이러다 보니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의 지배구조는 국민을 도외시한 채 정치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방송’을 내세우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사장은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이사진의 다수를 추천하는 여당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이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을 추천한 정당을 무시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장 임명 제청이나 수신료 인상안 의결 등 중요사안에 대해서는 여야 추천 이사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야당 추천으로 지난 2013~2015년 이사로 활동한 경험을 보더라도 그렇다. 세월호 참사 당시의 KBS 내부사태로 인한 길환영 사장 해임 제청안과 후임사장 임명 제청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의결사안은 7대4로 귀결됐다. 의결은 과반출석 과반찬성으로 가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7대4 이사회’라는 자조섞인 목소리마저 나왔다. 여당 추천 이사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KBS의 경영은 청와대 의도대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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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이사회는 총 11명 중 여당 추천 인사가 7명을 차지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안이 7대 4로 의결된다. 이런 식으로 정권의 의중에 방송에 그대로 관철되는 것이다. 사진은 KBS이사회 모습. (사진 출처: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56791)

KBS 사장의 권한은 매우 막강하다. 보도본부장 등 집행 임원은 물론, 자회사 사장과 임원들의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다. 보도·제작 책임자들의 임명과 해임도 자유롭게 행사한다. 직원들의 인사이동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장 임명권자가 대통령이다 보니 KBS 전체 임직원은 정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재선을 노리는 사장은 더욱 권력만 쳐다보며 ‘알아서 기는’ 행태에 익숙해질 것이다.

비망록에는 김 국장이 청와대의 부탁을 완곡하게 거절하자 이 수석이 직접 길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후 길 사장은 보도 관련자들을 사장실로 불러 모아 편집회의를 주재하며 해경비판 보도를 자제하라고 지시했다.

보도는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됐다. 명백한 방송법 제4조 2항(편성개입 금지) 위반이다. 징역 2년이하 벌금 3,000만원에 처할 수 있는 엄중한 위법사항인 셈이다. 법원도 길 사장의 해임무효청구 소송에서 사장의 보도개입을 인정했다.

더 나아가 김시곤 국장은 “청와대의 지시로” 길 사장이 자신에게 사표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최근 KBS가 사드관련 해설보도와 관련하여 해설위원을 보복성으로 인사이동하거나, ‘이정현 녹취록’에 침묵했다고 비판한 자사 기자를 제주도로 유배시킨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사장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이사회마저 여당 편향이다. 게다가 이사들은 모두 비상임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정기 이사회에서 적당히 지적하고 넘어갈 따름이다. 지적사항은 지키지 않아도 그뿐이다.

이사회 독립성 확보 위한 법 개정 필요

앞서 살펴본 것처럼 현행 KBS 지배구조로는 일상화한 정권의 보도개입을 차단할 수 없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이사회 구성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명실공히 수신료를 내는 국민의 대표로 이사진을 구성해야 하며, 이사회가 정치적 종속상태에서 벗어나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정치적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사장으로 선임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8년 이후 지속돼온 방송법 개정논의는 아직도 무성하기만 하다. 새누리당은 영향력이 가장 높은 KBS를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논의조차 가로막고 있다. 야당들은 의원수에 밀려 어쩔 수 없다고 발뺌한다.

이제 20대 국회는 야권이 과반이상의 의석을 점하고 있다. 이러한 변명을 설 땅을 잃게 됐다. ‘신 보도지침’ 파문으로 여론의 힘을 얻어 가속도가 붙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야당도 정권을 잡으면 KBS를 장악해야 한다는 속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방송법 개정이 올해 안에 이뤄질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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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국민의 방송’을 자처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믿는 사람은 없다. KBS가 오직 그분을 위한 ‘김비서’ 방송이라고 자조하는 목소리도 많다. KBS를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20대 국회에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이기도 하다.

언론시민단체가 제안해 제1야당인 더불어 민주당이 마련한 방송법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이사 및 사장 선임 방식의 개선이다.

기존 11명인 이사를 13명으로 늘리고 추천방식(여당 7명, 야당 6명)을 변경하자는 내용이다. 사장선임 과정에서도 사장후보추천위원회를 거쳐 이사회 3분의 2이상의 동의를 얻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이밖에 편성위원회의 법제화, 이사회 회의록 공개규정 강화, 이사의 임기보장 및 정치활동 금지 명문화 등이 주요골자이다.

이사추천을 국회로 일원화함으로서 과연 정치적 독립성과 국민의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는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다른 뾰족한 방안을 찾기 어렵다. 따라서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국회에서 추천하도록 간접방식을 활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추천과정과 사유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사회의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2명정도의 상임을 확보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장 임기는 단임으로 하되 1~2년 늘리는 방안도 거론된다. 연임을 위해 정치권력에의 종속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편성위원회와 시청자위원회 등 감시기구의 활성화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편성위원회의 구성을 법제화하고 시청자위원 선임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도 마련돼야 한다. 특히 뉴스보도 및 프로그램 제작의 독단을 방지하기 위해 보도 및 제작 책임자 선임과정에 종사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장치를 도입할 필요도 있다.

(※편집자 주: 언론 및 학계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논의는 다음의 기사 “잘못된 지배구조로 방송의 정권 예속화 극심”  참조)

방송법 개정…20대 국회 첫번째 과제 돼야 

이번 ‘신 보도지침’ 파문은 청와대의 보도개입은 물론, KBS 사장을 통한 톱다운 방식의 보도개입이 일상화해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KBS의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현재까지 언론계 학계 시민단체 정치권에서는 백 여차례 지배구조개선 방안이 논의됐다.

이제는 이를 보완 정리한 방송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했다.

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는 방송통신위원회 및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규제기구의 구성 및 운영에 대한 제도 개선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KBS 이사회와 마찬가지로 방통위는 3대2, 방심위는 6대3으로 여당 추천 위원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폭넓은 의와 사회적 합의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이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 확보는 민주주의의 기본명제이다. 언론이 바로서야 나라도 바로설 수 있기 때문이다.

화, 2016/07/1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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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s 창사 25주년 특집> 위기의 한국경제 해법은 없나? (방송일 : 2015. 6. 11)

 

tbs는 창사 25주년을 맞아 경제계 석학들을 초청해 '위기의 한국경제 해법은 없나'라는 주제로 특집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 성과에 대한 평가와 대기업 위주의 경제 정책을 가계소득을 늘리쪽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이날 토론에는 정관용 교수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의 사회로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윤창현 교수(서울시립대학교 경영학부), 전성인 교수(홍익대 경제학과)가 출연했습니다. 

 

*팟빵으로 듣기 (오디오)

http://www.podbbang.com/ch/8005?e=21756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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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4일부터, 참여연대는 tbs(교통방송)와 함께 '경제성장의 패러다임을 바꿔라' 주제로 매주 1회 뉴스를 공동으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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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08/0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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