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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국민 1/5의 신원을 영장 없이 ‘터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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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국민 1/5의 신원을 영장 없이 ‘터는’ 나라

익명 (미확인) | 수, 2016/06/15- 10:28

매년 국민 1/5의 신원을 영장 없이 ‘터는’ 나라

글 | 박경신(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픈넷 이사)

 

목욕탕에 불이 났다.

목욕탕에서 뛰어나오는 사람들은 온몸이 다 드러나더라도 얼굴을 가리고 나온다. 왜 그럴까. 알몸이 드러나더라도 신원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자 얼굴 소녀 금지 반대 그만

 

경찰, 영장 없이 매년 국민 1/5 신원 확인 

‘그냥 얼굴일 뿐이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서, 목욕탕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얼굴만 가린 사람의 손을 경찰이 강제로 치운다면? 이런 일을 어떤 절차도 요건도 갖추지 않고 벌어진다면? 하지만 이렇게 상식에 반하는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1천만 번 이상 일어난다.

수사기관은 피의자가 누구와 통화했는지 알아야 할 때가 있다. 피의자의 통신내역에 떠 있는 전화번호 소유주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일은 수사상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이때 통신자 신원확인(통신자료제공)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통신자 신원확인이 절차도 없고 요건도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매년 전체 국민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인원의 신원을 경찰은 아무렇지 않게 확인하고 있다.

경찰 마스코트 '포돌이' 패러디

경찰 마스코트 ‘포돌이’ 패러디

 

이제 ‘전화번호’은 중요한 프라이버시 대상   

통신자 신원확인 제도는 1983년에 만들어졌다. 이때엔 우리 동네에 전화가 몇 대 없었다. 우리가 서울에 전화하고 싶으면 이웃집에 뛰어가서 전화했고, 누군가 나에게 전화하겠다고 하면 이웃집 전화번호를 그 사람에게 알려줬어야 했다. 이웃집 전화번호는 우리 동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우리 이웃집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집의 전화번호는 이미 전화번호부 등을 통해 대부분 공개된 정보였다. 그래서 당연히 아무런 절차나 요건없이 통신자 신원확인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자신의 전화번호 특히 휴대폰 전화번호는 매우 중요한 프라이버시 보호 대상이다. 휴대폰은 자신의 일부분처럼 소유자를 따라다닌다. 휴대폰 번호는 소유자와의 즉각적인 통화를 가능케 하는 키 데이터(key data)가 되었다. 물론 전화가 오면 안 받을 수도 있지만, 수화음을 듣고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는 등 주의를 기울인다.

2014년 7월 기준 이동전화 가입자 수

2014년 7월 기준 이동전화 가입자 수

오늘날, 휴대폰 번호는 주민등록번호만큼 아무에게나 가르쳐주지 않는 민감한 정보가 됐다. 오죽하면 지누션이 ‘전화번호’라는 노래를 히트시켰겠는가.

“그대의 이름도 성도 난 필요 없소. 하지만 정말 나 원하는 게 하나 있소. 네 전화번호 (내가 원하는 건) 네 전화번호.”

 

통신자 신원조회, 이제 바꿔야 할 때 

이제는 정말 새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한번 논리적으로 따져보자.

 

(1) 통신내역 확인(통신사실 확인자료) = 법원 영장 필요 

수사기관이 특정인을 수사대상으로 정한 후에 그 사람의 통신 내역(통신사실 확인자료)을 얻으려면 법원의 허가를 필요로 한다(통신비밀보호법). 그만큼 통신 내역은 프라이버시로 보호가 된다.

영장 없는 통신 검열

(2) 통신자 신원확인(통신자료 제공)  = 경찰 맘대로? 

그런데 거꾸로, 수사기관이 익명의 통신 내역은 아는데 그 통신을 한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고 싶은 경우에는? 앞서 말했듯 어떤 절차도 요건도 필요하지 않다. 그냥 통신사에 신청해서 알아내면 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특정인의 통신 내역을 알아내려면 법원의 허가가 필요한데, (거꾸로) 어떤 통신 내역의 당사자를 알려면 법원의 허가가 필요 없다. 그게 현재의 제도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로 ‘A와 B가 언제 통화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쪽 모두 절차적 통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어떤 절차, 요건도 없이 경찰 맘대로?

어떤 절차, 요건도 없이 경찰 맘대로? (이미지 제공: 진보넷)

 

통신자 신원조회 = 통신 ‘불심검문’ 

익명 인물의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 중 하나가 불심검문이다. 불심검문도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불심검문 대상자가 범죄에 연루되어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있을 때만 할 수 있다(경찰관직무집행법).

불심검문이 오프라인상의 신원확인이라면 통신자료 제공은 온라인상의 신원확인이다. 그런데 현재의 통신자료 제공(통신자 신원확인)은 어떤가. 아무런 요건이 없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온라인 통신 당사자에 대해 불심검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통신의 비밀이 통신 내용에 대한 프라이버시라면 익명권은 신원에 대한 프라이버시이며, 두 가지 프라이버시 침해 모두 비슷한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옳다.

무..무섭잖아!

무…무섭잖아!

 

피의자의 프라이버시 보호 위해? 

수사기관은 영장 등 절차를 거쳐 신원확인을 하면 신원이 확인된 사람에게 왜 신원을 확인했는지 알려줘야 하고, 그 과정에서 피의자 신원과 피의사실을 알려줄 수밖에 없어 결국, 피의자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 네이버와 카카오 등이 영장 없는 통신자 신원확인을 거부하여 이들 서비스 이용자들의 신원확인은 영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어차피 이용자에게 통지되고 있지 않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사업자에게만 영장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의 주장에 진정성이 있으려면 우선 신원확인을 받는 사람에게라도 우선 통지해주어야 한다.

그뿐 아니다. 수사과정에서 제3자나 증인에게 피의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일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당장 이메일 압수수색을 하더라도 피의사실과 피의자 아이디가 기재된 영장이 이메일 서비스 제공자에게 제시된다. 이메일 서비스제공자는 자신의 고객 중에 누가 무슨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지 알 수밖에 없다.

수사기관은 이렇게 묻는다.

‘박경신 교수가 피의자라면, 박 교수가 특정한 범죄로 수사받는 사실이 친구들에게 알려지면 좋겠냐?’

나는 수사기관에 반문하고 싶다. 도대체 나와 통화한 사람 모두의 신원을 어떤 절차와 요건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문제가 아니냐고 말이다.

전화 스마트폰

 

한국의 무차별 신원확인, 미국의 50배

한국의 통신자료 제공 건수(=통신자 신원확인)는 2013년 957만4천 계정에 달한다(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발표 자료). 같은 해 미국의 통신자 신원확인은 최대로 추정해 보아도 1백만 계정이 되지 않는다. 인구대비 미국의 약 50배이다.

내가 만약 피싱범이고, 수사에 꼭 필요한 사람만 신원확인을 했다면, 그 과정에서 내 수사사실이 그들에게 알려진다고 해도 나는 전혀 피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령, 내가 피싱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대의 통화상대방들에 신원확인이 한정된다면 말이다. 그런데 내가 단순히 누군가와 통화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상대방에게 내 수사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수사기관이 진정으로 ‘피의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싶다면, 피의자와 통화한 통신자 신원확인을 어떻게 줄일 지 고민해야 한다.

익명으로 통신할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통신은 위험한 일이 아니다. 통신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영장 없이 손쉽게 신원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접근방식은 국민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야 할 국기기관이 이를 오히려 침해할 가능성을 높인다.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이다.

매년 대한민국 국민의 1/5을 ‘터는’ 통신자 신원확인, 20대 국회에서는 꼭 바꿔보자!

체인지 변화 미래

영장 없는 무차별 통신자 신원확인, 이제는 바꿀 때다.

 

[미국 통신자 신원확인 규모 산출 방법]

(1) 미국 이통사 버라이즌의 2013년 투명성 보고서 

행정명령(subpoena)에 의한 신원확인 164,184건. 투명성보고서 설명에 따르면 행정명령 1건은 보통 1 계정의 소유자 신원정보임. 버라이즌의 이동통신사 시장점유율이 대략 30%인 것을 감안하면 전체 이통사들의 통신자 신원확인은 약 50만 건으로 추산됨.

버라이즌의 2013년 투명성 보고서는 유선전화에 대한 신원정보확인건도 모두 포함하고 있음. 버라이즌의 유선전화시장 점유율 역시 30%인 것음 감안하면 유선전화에 대해서는 별도 추계를 하지 않기로 함.(25쪽)

(2) 인터넷 플랫폼 업체들

그 형태가 다양하나 이용자 신원확인이 가장 필요한 곳은 각각 이메일과 SNS일 것으로 보임.

구글의 2013년 투명성 보고서에 따르면 27,000건의 행정명령이 있었음. 구글이 이메일 시장에서 약 20%의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전체 이메일서비스업자들의 이용자 신원확인은 연간 약 10만 건으로 추산됨. (구글의 시장점유율은 Remy Bergsma, 「2013 Email client market share infographic posted by Litmus」참조)

페이스북의 2013년 투명성 보고서에 따르면 최대 24,000건의 이용자 정보 요청이 있었음. 여기에는 여러 다른 정보도 있겠지만, 모두 이용자 신원확인으로 간주하면 24,000건. 페이스북이 SNS시장에서 가진 점유율에 비추어보면 전체 SNS 시장에서의 이용자 신원확인은 최대 약 5만 건으로 추산됨.

(3) 브로드밴드업자들케이블인터넷업자들

이들도 이용자 신원확인을 하고 있음. 유선인터넷 업계 전체에서 50%를 점유하고 있는 컴캐스트의 투명성 보고서를 보면 2013년에 1년에 2만 건 정도의 행정명령이 있었음. 이 행정명령 전체를 이용자 신원정보로 간주할 때 그 최대치를 5만 건으로 잡을 수 있음(컴캐스트의 시장점유율은 링크 1. 링크 2. 를 참조).

(4) 결론

2013년 미국 전체에 대한 이용자 신원확인 계정 수는 60만 건. 여기에 분야별 하위업체들에 대한 이용자 신원확인 건수가 예상보다 많을 가능성을 대비하여 최대 1백만 건으로 추산. 이는 미국 내에서 투명성 보고서를 발간하는 회사들의 정보제공 요청 건수를 모두 합하여 보여주는 ‘transparency reports’가 제시하는 전체 숫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2013년 약 70만 건).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 게재하였습니다. (201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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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9/02-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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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

법무부가 상인의 고의·중과실로 인한 위법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본 상법 개정안이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을 통해 기업의 영리 추구 과정에서의 반사회적 위법행위를 억제할 필요는 있으며 이러한 기본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런데 법무부가 해당 법안 설명자료에서 ‘가짜뉴스, 허위정보’를 명시하면서 언론을 주요 규제 대상으로 타깃팅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국회에서도 허위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규정한 여러 법안이 발의되는 등,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피해자의 손해액만큼의 보상, 즉, ‘전보배상의 원칙’을 기본으로 하는 민사 손해배상 체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은 예외적인 제도다. 즉, 개인의 피해에 대한 보상을 넘어, 사회 공익적 고려에서 다시 재발되어서는 안 되는 반사회적 행위를 징벌을 통해 억지하는 데에 초점이 있는 것이다. 물론 무책임한 보도로 개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언론 활동이 억지되어야 함은 당연하지만, 이것이 예외적 징벌이 필요할 정도로 해악이 중대한 반사회적 행위인가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업의 안전기준 위반으로 인한 노동자의 사망,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같이 다수의 인명과 신체 안전에 위해를 가져오는 행위와 비교할 때, 표현행위는 그로 인한 해악의 결과나 인과관계 자체가 명백하지 않다.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보통 형사제재가 미비하거나 부족한 사건에서 추가적인 사적 벌금을 부과하여 재발방지 효과를 노리는 제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미 표현에 대해 과도할 정도로 많은 형사처벌 규정이 존재하고, 징역형까지 규정되어 있으며, 명예훼손죄 고소·고발 건수도 굉장히 많다. 이런 형사 규제로도 억지되지 않던 부분들이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경제적 타격’을 준다고 하여 억지될 수 있을까?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있는 미국에서 지난 대선 때 가짜뉴스라는 용어가 생겼을 정도로 가짜뉴스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 효과는 의문스럽다. 가짜뉴스는 보통 영리적 목적보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생산, 이용, 소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징벌적 손해배상의 위협을 통해 비판적 여론을 차단하려는 공인이나 기업의 소송 남발로 언론 활동은 크게 위축될 것이다. ‘악의적’ ‘허위’ 보도라는 것이 각자의 정의 관념에서는 판단이 명확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 명제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내는 것부터가 매우 어렵고, 어떠한 사실이 ‘허위’인지 ‘진실’인지에 대한 판단 역시 해석에 따라 달라지거나 사실의 존재를 명백하게 증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명제가 가짜뉴스로 프레임 씌워질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특혜’, ‘성폭력’, ‘공산주의자’, ‘친일파’ 등의 단어 사용도 명확한 법적·학술적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 맥락까지 고려한 용례에 의할 것인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이러한 단어를 사용한 명제가 ‘허위’인지, ‘진실’인지에 대한 판단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명박의 BBK 실소유주설을 주장한 정봉주 전 의원, 최태민-최순실 부녀와 박근혜의 유착관계에 의혹을 제기했던 김해호 목사 모두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위반 판결을 받고 처벌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점차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보아도, ‘허위성’을 이유로 함부로 표현, 표현자를 단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사례들도 발화자의 ‘고의’가 인정되었기 때문에 유죄가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악의’, ‘중과실’과 같이 주관적인 기준은 안전장치가 되기엔 부족하다고 할 것이다. 즉, 허위임을 명백히 인지하거나 조작한 수준이 아니라, 취재원 일방의 주장만을 듣고 당사자의 주장을 듣지 않았다거나, 추가 취재없이 받아쓰기만 했다거나, 확실한 증거가 없이 공표했다는 이유만으로 ‘악의’나 ‘중과실’이 인정될 수도 있다.

기존의 언론 판결에서 손해배상액이 적었다는 것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법원이 정신적 손해배상액(위자료) 산정에서 인색했다는 문제는 앞으로 법원이 자유재량 영역인 위자료 인정을 현실화·합리화하여 해결하면 될 일이다. 언론중재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9~2018년까지 10년간 손해배상 사건 청구액 평균은 약 2억원, 인용액 평균은 약 2000만원으로 청구액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고 하는데, 법원이 청구액을 상당한 수준으로 반영하여 인용하였어도 이같은 문제가 지적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넘어 언론 활동 자체를 중대한 위험을 가진 ‘징벌’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과 이에 기초한 과도한 규제는 언론인들을 위협하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심대한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기자들 중 약 30%가 취재나 보도로 인해 소송을 당한 경험이 있고, ‘공인에 대해 취재할 때는 소송에 대한 부담감으로 보도가 꺼려진다’고 답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징벌적 손배제가 도입되면 사실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보도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액을 부담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기자들로서는 명백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사안에 대한 보도를 자제하게 될 것이고, 공인이나 기업에 대한 자유롭고 신속한 의혹 제기의 환경은 크게 위축될 것이 자명하다.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이 글은 한국기자협회보 [‘언론보도 징벌적 손배제를 말한다’ 전문가 릴레이 기고]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0.11.04.)

목, 2020/11/0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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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지원(오픈넷 변호사)

지난 2월 25일 헌법재판소는 사실을 공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하는 형법 제307조 제1항이 위헌이라며 A씨가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재판관 5(합헌) 대 4(일부 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실을 말했을 뿐임에도 민사상 손해배상이 아닌 국가에 의해 ‘형사처벌’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했을 때 훼손될 수 있는 ‘명예’라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공공의 이익에 관할 때만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문에서 ‘공공의 이익’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등의 쟁점을 중심으로 손지원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

판결문 보기 / 다운로드

지난 2월 25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5:4의 의견으로, 진실한 사실일지라도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만한 사실을 말한 경우에는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일명 ‘사실적시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제1항)가 헌법에 위반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헌법재판소 2021. 2. 25. 결정, 2017헌마1113).  

헌재의 이번 결정은 미투 운동이나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명단을 공개하는 ‘배드파더스’ 사이트 같이, 다른 사람의 잘못된 행위를 알리는 활동들마저 잘못을 저지른 이들의 명예 보호를 위해 ‘형사처벌’로 억제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나온 것이라 그 의미가 더욱 주목되었다. 

이에 대해 헌재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명예’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진실한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형벌로써 예방, 위하, 억지할 필요가 있는 행위이고, 공익적 목적이 있을 때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형법 제310조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최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합헌이라고 판시했다. 

나쁜 놈이라도 명예는 지켜줘야 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위헌인지를 판단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논점은 ‘진실을 말할 표현의 자유’와 그 진실이 밝혀짐으로 인해 침해되는 개인의 ‘명예’ 중 무엇이 더 보호가치가 있느냐일 것이다. 

이에 대해 헌재는 ‘명예는 사회에서 개인의 인격을 발현하기 위한 기본조건’이라며, ‘명예의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오히려 그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도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개인의 외적 명예는 일단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한데, 더욱이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명예훼손적 표현행위로 피해를 입은 개인이 자살과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도 발생하는 등 그 사회적 피해가 매우 심각’하고, ‘사회적으로 명예가 중시되나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는 더 커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명예’를 보호가치가 매우 높은 중요한 법익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 법이 규율하는 행위는 타인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행위이므로, 과연 진실이 밝혀짐으로써 침해되는 ‘명예’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보아야 한다. 명예란 곧 한 사람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의미한다. 한 개인에게 있어 자신의 명예란 당연히 절실히 중요한 것이겠지만, 사회구성원들이 각자에 대한 평가를 교환하는 공론의 과정을 통해 발전하는 민주주의 사회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는 한 사람의 명예보다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자유롭게 교환될 수 있도록 하는 표현의 자유 보장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개인에 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함으로써 그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부당하게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진실이 밝혀짐으로써 형성되는 사회적 평가가 과연 그 사람에게 부당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 진실이 밝혀짐으로써 훼손되는 명예라 한다면, 이는 처음부터 그 사람이 가질 자격이 없었던 ‘허명’, 즉, 진실이 은폐됨으로 인해 형성되어 있던 허위의, 과장된 사회적 평가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헌재는 이러한 허명마저도 함부로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거의 절대적인 법익으로 본 것과 다름없는데, 이같은 판단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알리며 비판하는 행위를 모두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행위로 규정짓게 되고, 결국 표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켜 구성원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와 평가가 부재하는 사회를 만들 위험이 높다. 

나쁜 놈을 망신주는 게 더 나쁜 행위다?

만일 허명도 어느 정도의 보호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이것이 진실을 말한 사람을 ‘형사처벌’로 다스려야 할만큼 소중한 법익인가, 진실을 말해서 허명을 훼손하는 행위는 ‘형사처벌’로 엄히 다스려야 할만큼 나쁜 행위인가에 대해서도, 헌재는 그렇다고 답했다. 즉, 위와 같이 명예 보호의 필요성은 매우 절실하므로,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 아니며, 민사적 구제 등으로는 형사처벌만큼 국민에 대한 명예훼손 행위의 예방, 위하 효과를 확보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형벌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이미 논한 바와 같이, 어떤 이에 대한 진실이 알려짐으로써 비로소 그 사람이 받게 되는 사회적 평가가 그 사람이 억울하게 받는 부당한 결과라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사회로서는 그 사람에 대한 진정한, 올바른 평가를 형성하게 하는 기능을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행위를 원칙적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과도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헌재의 소수 위헌의견에서도, 진실한 사실은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형성하는데 기초가 되는 사실이므로 그 적시로 인해 외적 명예가 저해되는 것을 부당한 결과로 보기 어려우며, 진실한 사실이 가려진 채 형성된 허위·과장된 명예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를 야기하면서까지 보호해야 할 법익이라고 보기 어렵고, 형사처벌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행위’와 ‘결과’가 법질서적 가치에 반하는 정도가 커야 하는데,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법질서에 의해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행위로 보기 어렵고, 진실한 사실의 적시로 손상되는 것은 잘못되거나 과장된 사실에 기초한 허명에 불과하다고 하여 이 점을 명확히 지적했다.

공적 인물이나 국가기관 아닌 사인(使人)에 대한 비판은 표현의 자유로 보호될 수 없다? 

대상이 누구든, 진실에 기반하여 타인을 비판할 표현의 자유는 모두 공익적이다

헌재는 또 형법 제310조가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처벌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공적 인물과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하여 표현의 자유 제한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점을 유력한 합헌 근거로 제시했다. 

그런데 ‘공익적 목적’이 인정되는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형법 제310조는 근본적으로 ‘공익성’이란 개념이 판단자의 주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개념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보호하는 기능을 하지 못한다. 실제로 과거 미투 운동과 유사한 사례 등에서 같은 사안이라도 심급에 따라 공익 목적의 인정 여부가 달라지는 경우는 부지기수로 발견된다. 무엇보다 헌재의 소수 위헌의견에서도 지적된 것처럼, 최종적으로 공익 목적이 인정되어 무죄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이러한 공익성 입증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표현행위에 대한 위축효과는 줄어들 수 없다. 

또 나아가 헌재는 ‘타인으로부터 어떤 부당한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해배상청구 또는 형사고소와 같은 민·형사상 절차에 따라 이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러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가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것은 가해자가 져야 할 책임에 부합하지 아니하는 사적 제재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으므로, 심판대상조항을 통해 그러한 악용 가능성을 규제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며, ‘공익성이 인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타인의 명예가 허명임을 드러내기 위해 개인의 약점과 허물을 공연히 적시하는 것은 자유로운 논쟁과 의견의 경합을 통해 민주적 의사형성에 기여한다는 표현의 자유의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설시도 덧붙였다. 

이같은 헌재의 법정의견을 전체적으로 분석하면, 공적 인물이나 국기기관을 비판하는 원대한 정치적 표현물은 공익적 목적이 인정되는 표현물로써 보호될 것이고, 사인(使人)의 비위를 알리며 비판하는 것은 ‘사적 제재’ 혹은 ‘허물 들추기’에 불과하여 표현의 자유로 보호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국가기관이나 공적 인물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사인을 향한 비판 역시 사회에서는 일정한 공익적 기능을 한다. 우선 사람이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법적’ 처단을 받는 것과 ‘사회적’ 평가를 받는 것은 별개의 책임 영역일뿐더러, 성희롱 등 법적 처단의 대상이 아닌 부조리한 행위도 많고, 복잡한 사법 시스템을 활용할 여력이 없는 서민 피해자들도 많기 때문에 사법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피해사실을 알리는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는 설시는 불합리하다.  

무엇보다 타인의 잘못된 행위를 알리는 표현 활동은 행위자가 이로 인한 사회적 비난이 두려워 자신의 행위를 시정하도록 하여 피해를 구제하거나 제3의 피해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행위 역시 사회적 감시와 공개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주어 사회구성원들이 공론장에서 좋은 사회적 평가를 유지하기 위해 각자의 행동을 반성하고 교정하도록 만든다.

최근 미투 운동이나 양육비 미지급 부모 명단공개, 학교폭력 피해사실 고발과 같이 사인의 비위를 고발하는 행위들도 각자 동기가 되어 축적이 되면 하나의 운동이 될 수 있고,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와 시스템의 변화를 이끄는 공익적 효과를 발휘한다.

민주주의 사회는 이렇듯 사회구성원들이 각자에 대한 평가를 교환하는 공론의 과정을 통해 발전하고 이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목적이다. 즉, 잘못된 행태와 이를 저지른 이에 대한 비판을 통해 그들의 사회적 입지와 그러한 잘못된 행태를 사회에서 위축시키는 것이 표현의 자유의 목적이자 공익적 기능인데, 헌재는 오히려 이러한 결과를 우려하며 진실을 말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논지를 펴고 있는 것이다. 

사생활의 비밀 침해 행위 잡기 위해 모든 진실유포가 금지되어야 한다?   

헌재의 법정의견과 소수의견은 공통적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전부위헌으로 결정하면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성적 지향·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은 비록 그것이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공개되어서는 안 되고, 이는 ‘명예’를 넘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라는 또 다른 기본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이를 공개하는 행위는 비난의 정도가 높아 제재할 필요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이를 넘어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모든 사실을 말한 경우라면 모두 적용되고, 실제로도 임금 체불, 갑질 고발 등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무관한 사실을 고발한 경우에도 적용되고 있다. 즉, 타인의 사생활의 비밀을 공표하는 행위를 규제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위해 그 필요한 범위를 현저히 넘어 모든 일반적인 표현의 자유를 과잉하게 제한하고 있는 본 조항은 헌법상 비례의 원칙, 그 중에서도 필요한 범위내에서 기본권의 제한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침해의 최소성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남은 헌법소원 사건에서의 위헌 결정을 기대하며 

진실한 사실을 토대로 토론과 숙의를 통해 공동체가 자유롭게 의사와 여론을 형성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진실을 말한 경우에도 형사처벌될 수 있도록 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각종 사회 부조리 고발 활동을 위축시켜 사회 진보의 기회를 박탈하는 병폐를 낳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당한 불합리한 일을 알리거나 타인을 비판하는 일상적인 행위마저 형사처벌 대상으로 규정함으로써 ‘전 국민을 범죄자로 만들 수도 있는 과잉한 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현실을 도외시한 이번 헌재의 결정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적지 않은 수인 재판관 4인의 잘 정리된 위헌의견을 바탕으로, 아직 심사가 진행 중인 남은 헌법소원 사건에서의 위헌 결정, 혹은 그 전에 국회에서의 법 개정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이 글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발간하는 ‘판결비평’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1.04.26.)

화, 2021/04/27-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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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상의 표현의 자유는 제한될 수 있다. 그러나 표현물에 대한 법적 판단이 이루어지기 전에 행정기관의 결정에 의해 표현물을 차단 및 삭제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우선 물리적 행위와 달리 표현은 위축효과에 취약하다. 행정기관의 잠정적인 판단을 반박하여 표현물의 합법성을 입증하려는 수고를 포기하기 쉽다. 또 행정기관은 집권여당의 입김 때문에 중립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다. 특히 표현물이 불법이라서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행정기관의 명령을 어긴 것에 대해 별도의 책임이 부과되는 경우 합법적인 표현물의 위축효과는 더욱 증폭된다. 행정기관은 산업진흥 등의 다른 정책도 수행하기 때문에 쉽게 보복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위축효과를 증폭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기관에 의한 온라인표현의 자유 제한 즉 행정심의는 전세계적으로 거의 없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테러단체나 테러리스트들이 인터넷을 통해 인력을 확보하는 등의 현상이 나타나자 독일, 프랑스 등에서도 행정심의를 시작하였다. (NetzDG법, Avia법 및 이전부터 있었던 터키법)

하지만 다른 나라들의 행정심의는 보통 보편타당한 해악성을 지닌 표현물에 한정하여 이루어진다. 테러나 기타 폭력을 선동하거나 명예훼손 저작권처럼 표현물 자체가 해악을 발생시키는 경우에 한정된다. 우리나라는 정보통신망법 44조의7 1항 9호의 ‘범죄를 교사 및 방조하는 정보’도 불법정보로 정의하면서 범죄의 경중에 관계없이 또같이 취급된다. 이와 같은 조항은 터키법에도 없다. 폭력 등의 명백한 해악에 이르지 않는 행정규제 위반 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표현물 자체를 삭제 차단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잉한 제한이 된다. 예를 들어, 휴대폰실명제를 집행하는 국가라고 해서 비실명휴대폰을 소개하는 게시물까지 삭제차단하는 경우는 없다. 비실명휴대폰을 소개하는 웹사이트를 통해 비실명휴대폰의 이용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더라도 이 웹사이트를 통해 국민들이 유용한 정보(예를 들자며 휴대폰실명제의 정책적 타당성에 대한 정보)에 접할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특히 행정기관의 게시물이 해외서버에 있는 경우, 행정기관은 삭제를 요구하지 않고 망사업자에 의한 웹사이트차단을 요구하는데, 이렇게 되면 웹사이트 상에 존재하는 정보는 그대로 두고 그 정보의 국내유입만을 막는다. 국내인들에게 매우 유용한 정보가 있는 해외웹사이트를 국내인들만 접근하지 못하게 된다. 이때 보편타당한 해악성이 없는 정보에 대해서 웹사이트차단을 하게 되면, 국내인들이 해외에 나가서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정보를 국내인만 못보게 되는 형국이 된다. 예를 들어, 몇 년전까지만 해도 여타 이유로 탐정서비스의 제공은 국내에서 불법이었고 이에 따라 탐정서비스를 광고하는 웹사이트들의 국내유입이 차단되었다. 하지만 해외에 나가서 탐정을 채용한다고 해서 불법이 되는 것이 아닌데 국내인들이 탐정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온라인으로 습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국내인들의 알권리에 대한 제한이 된다. 

물론 규제의 목적은 국내소비자들의 알권리 제약이 아니라 해외사이트 운영자가 원격으로 국내에서 불법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기 위한 목적(즉 탐정서비스사이트 운영자가 국내에서 탐정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나 국내소비자들의 불법행위를 막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해외도박사이트를 차단하는 것은 해외사이트운영자가 도박장개설이라는 위법행위를 정보통신기술을 통해 원격으로 국내에서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 국내인들이 이 도박사이트에 접속해서 위법을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도박과 같이 보편타당한 해악을 규제하는 행위를 매개하는 정보가 아니라 문화적인 그리고 연혁적인 이유로 국내에서만 특이하게 금지되는 행위(예를 들어 탐정서비스)를 매개하는 정보를 차단하는 것은 국내인의 알권리를 제한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때 보편타당성이 없는 해악이 없는 상황에서 해외정보제공자의 위법행위만을 막기 위해 – 즉 국내인의 정보이용은 불법이 아닐 때 – 사이트까지 차단하는 것은 과잉하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산 마누카꿀이 소화에 좋다고 블로그에 써놓고 돈을 보내주면 1병씩 보내주는 해외블로거를 생각해보자. 실제로 우리나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소화에 좋다”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어서 건강기능식품 광고이고 관련법에 따라 사전허가받지 않고 판매하고 있으니 불법판매를 방조할 수 있다고 차단하려 했다. 하지만 저런 상식 수준의 표현까지 사전허가를 받도록 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즉 보편타당한 해악이 아니다. 이때의 블로그차단은, 국내적으로는 무허가광고를 기반으로 건강기능식품을 국내에서 판매하는 외국블로거를 막는다는 명분을 가지만, 세계적인 시각에서 보면 마누카꿀의 효능, 가격, 구입방법 등에 대한 정보에 국내인들만 접근못하도록 하는 내국민 우민화가 된다. 특히 판매만 금지되고 구매나 이용은 처벌되지 않기 때문에 해당 정보를 통해 구매가 이루어지더라도 배송지가 국내가 아니라면 국내에서 판매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므로 아무런 불법이 없다. 결국 정보의 원천적인 차단은 불법적인 판매의 가능성 차단을 위해 합법적인 거래까지 차단하는 과잉한 것이 된다.    

위민온웹은 손쉽게 낙태를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웹사이트이다. 국내에서 낙태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낙태죄 방조죄가 될 것이며 이 행위가 원격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해외웹사이트를 차단한다고 하자. 하지만 국경만 넘으면 낙태가 가능한 상황 즉 낙태가 보편타당하게 악행이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한민국 여성들만 낙태에 대한 유용한 정보로부터 격리되니 대한민국 여성들에 대한 차별이자 불이익이 된다. 게다가 이제 낙태죄 마저 위헌결정으로 실효된 마당에서 이제 위민온웹을 차단해서 얻는 것은 약사법 위반의 예방 뿐이니 더욱 낙태에 대한 정보 차단은 과잉하다. 특히 약사법 상 약사가 아닌 자로부터 약을 구매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결국 위민온웹을 차단하면 배송지가 국내가 아닌 합법적인 구매까지 차단하는 과잉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민온웹의 차단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위민온웹은 자발적인 기부금을 받을 뿐 판매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44조(의약품 판매) ①약국 개설자(해당 약국에 근무하는 약사 또는 한약사를 포함한다. 제47조제48조 및 제50조에서도 같다)가 아니면 의약품을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취득할 수 없다.

터키법: 9가지 차단 사유로 한정되어 있음. 약물 관해서는 마약이용 방조 및 아동음주 및 투약방조로 한정됨.

프랑스 Avia법: 10가지 차단사유로 한정되어 있음.

Contents that glorifies or encourages acts of terrorism, or child sexual abuse imagery 

Contents apologising for the commission of the following crimes: 
– Encouraging discrimination, hatred or violence against a person or group of people on grounds of ethnicity, nationality, race or religion, sex, sexual orientation, gender identity or disability, or of causing discrimination against them; 
– Denying a crime against humanity; 
– Outrageously minimising, degrading or trivialising the existence of a crime of genocide or crime against humanity, a crime of slavery or a war crime; 
– Insults against a person or group of persons due to their sex, sexual orientation, gender identity or disability; 
– Sexual harassment;
– Images or representations of a minor which are pornographic;
– Direct encouragement or support for acts of terrorism; 
– and Dissemination of a pornographic message likely to be seen by a minor. 

독일법:  아래 13가지 사유로 한정됨. “범죄를 선동하는 내용”도 우리 법처럼 확장가능성이 있으나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정보”처럼 폭넓은 확장성은 없음. 

월, 2021/05/0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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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픈넷 이사장)

일제강점기 일본 조선총독부는 시국 불안정 등을 이유로 조선에 댄스홀을 허가하지 않았다. 1937년 잡지 삼천리에 실린 한 레코드 회사 소속 여성들의 ‘경성에 딴스홀을 허(許)하라’라는 제목의 기고는 조선총독부에 대한 탄원서 형식의 글이지만, 조선의 제도적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도시에는 있는 댄스홀을 유독 조선에만 허가하지 않는 것을 통탄하며 댄스홀에서 춤을 추게 해달라고 청원하는 것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상품 등의 정보제공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한 바 있다. 개정안의 주된 내용은 확률형 상품 판매 시 사업자가 공급 가능한 재화 등의 종류와 종류별 공급 확률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도록 하는 의무를 사업자에게 부과하는 것이다. 여기의 확률형 상품에는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도 포함된다는 것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기본입장이자 입법의도이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의 개정안은 매우 잘못된 정부규제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첫째,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개정안보다 매우 높은 수준의 확률정보 공개 자율규제가 이미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2015년 한국게임산업협회 주도 확률형 아이템 확률정보 공개 시작부터, 2018년 확률정보 공개대상 범위 확대 및 개별 아이템 확률정보 공개로의 일원화, 2018년 게임자율규제기구인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의 출범을 거치면서 발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게임 분야에서의 자율규제를 정부규제로 전환하는 것은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제공되는 게임서비스에서 정부규제는 결코 만능이 아니고, 과거처럼 정부규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둘째, 공정거래위원회의 개정안이 시행되는 순간부터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규제수준은 떨어져서,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유도한다는 명분에 반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 높은 수준의 자율규제와 낮은 수준의 정부규제가 동시에 공존하는 경우, 전체적인 규제수준은 당연히 떨어진다. 수범자인 사업자 입장에서는 공권력에 의한 제재가 적용되는 정부규제만 준수하면 되지, 비용도 많이 드는 높은 수준의 자율규제까지 준수할 필요성이나 유인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율규제가 적용되고 있는 영역에는 정부규제가 끼어들면 안된다. 사회적 요구에 비해 자율규제 수준이 낮은 경우에만 정부규제의 명분과 실효성이 생긴다.

셋째, 공정거래위원회의 개정안으로는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규제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에 대해서는 독립적인 게임자율규제기구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서 그 준수 여부를 감시하고 있다. 일정한 규제가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규제의 준수 여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위반자를 적발해서 제재를 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니터링기구, 위반 여부 심의를 위한 인적ㆍ물적 자원이 상당히 소요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정안의 준수 여부를 어떻게 모니터링하고 어떠한 세부기준을 갖고 위반 여부를 심의할지 등에 대한 계획을 들어본 바가 없다.

넷째, 자율규제도 ‘규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부규제의 정당성 및 실효성 문제를 해소해 줄 수 있는 대체재 혹은 보완재 역할을 한다. 이러한 자율규제의 의미와 필요성을 정부가 먼저 나서서 부정하고, 이미 작동하고 있는 자율규제의 싹을 뿌리째 없애는 것은 오늘날의 스마트 시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구태의연한 모습이다. 아니면 최소한 자율규제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국내 서버를 두지 않은 해외 사업자들의 경우에는, 정부규제도 속수무책이다. 오히려 의도치 않게 국내 사업자에 대한 역차별 문제만 발생시킨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부터 게임 규제는 산업계의 자율규제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지 않았는가.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서도 게임 자율규제의 확대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산업계는 갈수록 스마트해지는데, 정부는 산업계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 가지 못하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개정안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 “게임 자율규제를 허(許)하라!

이 글은 아시아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0.06.15.)

화, 2020/06/1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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