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영화 여파(Aftermath) – 김진혁 교수의 반민특위 이야기
[인터뷰]
다큐영화 여파(Aftermath)
– 김진혁 교수의 반민특위 이야기
인터뷰 : 방학진 기획실장
정리 : 임무성 상임교육위원
성큼 들어선 봄날, 4월 9일(금) 오후에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교수를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만났다. 김진혁 교수는 EBS PD로 재직 중이던 2013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1년 넘게 제작하다 회사로부터 갑작스레 제작 중단 명령을 받고, 결국 그해 EBS를 퇴직하였다. 8년의 세월이 흐른 올해 과거취재했던 반민특위 관련자들을 다시 만나며 재구성한 다큐영화 ‘여파(Aftermath)’를 4월말에 열리는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하였다. 김진혁 교수를 만나 반민특위 다큐 제작 중단에서 ‘여파’ 출품까지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EBS 재직 당시 반민특위를 다루기 시작한 것이 언제이지요?
● 2012년부터 시작해서 2013년 초까지요.
● 아이템 선정은 본인이 했나요? 그 이유는요?
● 제가 했습니다. 해방공간에서의 일들이 궁금했어요. 1945~50년까지. 뒤지다보니 반민특위가 있더라구요. 미군정도 그렇고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반민특위가 눈에 딱 들어오잖아요. 그래서 한 번 연출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고, 연출적으로는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유대인 감독이 만든, 자신들을 반성하는 애니메이션 다큐에 몰입된 거죠. 두 가지를 섞으면 반민특위에 있었던 일을 비용걱정 안하면서도 눈에 띄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용도 좋고 연출가로서 욕심도 생기고 했어요.
●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도 좋겠습니다. 나중에 저희와 함께 다시 한번 작업해보시죠.
● 그러면 애니메이션 감독을 따로 영입해서 해야 되는데요. 제가 총연출하고요.
● 2012년도에는 어떤 다큐들을 만드셨어요?
● 2012년에는 이거(반민특위) 하나 만들었다고 봐야 해요. 그 밖에도 지식채널, 과학다큐 만들었는데 지식채널 빼고는 그다지 유명하진 않아요. 지식채널을 만들 때 <잊혀진 대한민국>이라는 시리즈를 만들어서 근현대사를 좀 다뤘죠.
● 학창 시절엔 역사에 관심이 있었습니까?
● 대학 다닐 땐 역사에 대해서는 보통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 반민특위에 대해 못 들어 보셨어요?
● 알고는 있었죠. 옛날에 친일청산에 실패했어. 반민특위가 제게는 이 정도였죠. 대학교 때는 깊이 있
게 역사를 알지 못했어요. 저는 오히려 근본적으로 부르주아적이에요. 지금도 사실 근본적으로는 다르진 않다고 생각해요.
● EBS에서 사표를 쓰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결정적인 계기는 사실 두 번째여서. 2008년에 광우병 파동에 관해 만들었다가, 그것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6개월에서 1년 동안 굉장히 힘들었어요. 회사 가기가 싫더라고요. 사람을 보기가 싫고, 대인기피증 유사한 감정 상태였죠. 한번 더 이러니까 회사라는 공간에 더 있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EBS에 출근하면 뭔가 공황상태가 되었던 거죠.
● 2008년에는 어떤 압력이 있었나요?
● 방송을 내렸잖아요. 2008년에는 방송을 했는데 내린 거고, 2012년은 방송이 나가기 전에 끊은 거고요.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참여정부 때 임명했던 사장이었고, 나중에 개인적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해서 제 내적으로는 상처를 스스로 봉합할 명분을 얻었었죠.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요. 또 하나 이명박 정부가 끝날 때 쯤 그랬다면 제가 참았을텐데, 박근혜 정부가 시작할 때 그러니까 견적이 안 나오는 거예요. 몇 년을 버텨야 하나.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대선 직후라 다 비슷한 기분이었을 거예요. 내가 저 사장하고 또 5년을 지낼 걸 생각하니.
● 그럼 한예종에 가시게 된 경위는요?
● 사표를 쓰느니 마느니 고민하고 있었는데, 지금 있는 곳에 결원이 생겨 교수 공채를 한다는 한예종 측의 얘기를 들었죠. 간헐적으로 특강은 했었지만 선생님이 된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는데 그땐 회사를 떠나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했어요. 회사에 그만큼 있기 싫었거든요. 하지만 말 그대로 공채라 채용이 보장된 것은 당연히 아니었기 때문에 최종 합격하기까지 회사 동료들에겐 말하지 않았어요. 또 당시 EBS 피디협회에서 제 문제로 피켓시위를 하는 등 힘을 써 줬던 상황이라 제가 이직
을 결정한 것이, 사고는 제가 치고 저 혼자 도망간 모양새가 되었죠. 제 나름대로는 제가 나 가는 것이 저 자신만이 아니라 EBS의 부담을 덜어주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쨌거나 동료들에겐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실제로 저로 인해 당시 제 편을 들었던 다수의 피디들이 회사로부터 근태 문제나 외부 강의 등에 대해 집단적으로 강하게 압박을 받았어요. 일종의 의도적인 표적 감사였죠. 그런 짓을 한 당시 EBS 임직원들이 가장 문제이지만 분명 제게도 큰 책임이 있죠.
● 한예종 근무는 어떴습니까?
● 처음에는 만만하게 생각했어요. 수업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시간이다. 한예종은 방송국에 있는 것처럼 저를 간섭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죠. 그게 가장 매력적이었죠. 학생들하고 관계 맺는 게 힘들어요. 한 학년당 20여 명인데, 개성이 강한 친구들이어서 더 힘들어요. 일반종합대학 신방과에 갔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재미는 있습니다. 배우는 것도 많고 자극도 많은데. 제 에너지의 한계가 있는데 나는 이 정도만 쓸 거라 생각했는데, 더 많이 신경이 써지더라고요.
● 다큐멘터리 제목을 여파로 지은 이유는?
● 원래는 역사적인 개인사로 시작했는데, 내용이 좀 매력적이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제가 들어가기가 싫더라고요. 그래서 안 들어갔다가 설명이 잘 안 되어서 조금 넣었다가 그래도 뭐가 좀 안 되는 거 같아서. 뭐가 비어 있는 듯이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여파’라는 말이 실처럼 쫙 끼워주는 느낌이 나야 하는 거 같아요. 이게 반민특위 후손들분이 특위의 와해로 어떤 여파로 자신의 삶이 영향을 받고, 그걸 뭔가 만들겠다는 저는 그것 때문에 다시 여파를 받고 그리고 개인들만의 여파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여파인거죠. 그걸 기억하던 기억하지 못하던 상관없이. 일단 두 글자라는 점이 맘에 들었어요. 예전에 긴 제목을 써봤는데 반응이 안 좋더라고요. 해직언론 다큐의 제목이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이었는데, 다들 7년~OO 이러기만 하더라고요.
여파는 사실 처음부터 생각했던 게 아니라 음악을 선곡하다 어떤 음악이 귀에 들어와 확인했더니, 애프터매스(Aftermath)이더라구요. 에프터매스가 계산 이후잖아요. 그게 영어로 여파죠. 재밌죠. 이승만 입장에서는 계산 끝난 이후죠. 이게 저는 양가적인 의미를 담으려 노력했는데, 너무 몰아가거나, 민족적인 이런 것도 좋지만 입체감이 안 들고 현실감이 안 나서 담는게 좋은데, 여파라는 말이 이승만의 계산 끝난 이후라는 뜻이니, 세속적으로 생각할 수 있겠구나, 그래서 좋다고 생각했어요.
● 여파의 첫 시작은 언제부터인가요?
● 시작은 제가 한예종에 가서 조그만 카메라를 하나 샀어요. 그때 김정륙 선생님하고 노시선선생님을 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서 잠깐 뵈었어요. 인터뷰하려고. 그때 첫 촬영을 하고 안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돈이 없으니까. 제가 기존에 만들던 거는 애니메이션 다큐라서, 이분들의 증언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부분에 앞서 도입부에 나오고 인터뷰 내용은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로 만들생각이었어요.
● EBS를 그만두고 한예종을 갔지만 이 다큐는 교수님 이름으로 완성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는 거죠?
● 또 마침 여기저기서 상업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반응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예전 원고도 주고 했지만 설왕설래하다 제대로 되진 못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언론노조에서 해직언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데 연출해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그 요청에 저도 감정이입이 많이 되더라고요. 반민특위 아이템보다 먼저 해직언론 다큐를 만드느라 시간이 가고 2017년에 발표하고, 2018년에 노시선 선생님과 전화연락이 되었어요. 이분들에겐 항상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조차도 이분들의 인터뷰를 담아서 작품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근데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심장이 벌렁벌렁했어요. 빚쟁이 느낌이랄까, 미안함 때문에. 그 전에 김정륙 선생님 아드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직접 연락 못 받고 신문기사를 보고 깜짝 놀라 새벽에 가서 조문했지요. 계속 저는 빚이 있는데, 인터뷰만으로는 도저히 작품을 만들수가 없다. 만들어도 누가 보겠느냐는 생각이었죠. 지금 결국 “이걸 누가 봐” 하는 버전으로 만든 겁니다. 근데 이제 노선생님 쓰러지시는 걸 보고 무조건 찍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진행했습니다.

● 여파 출품의 계기는요?
● 만들기 시작했으니, 마무리지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죠. 이분들한테 제가 생각해서 만들고자 하는 버전은 아니지만(제가 EBS를 나와서는 만들 수 없는 버전이라는 것을 이해해주셨으면 하고요), 노선생님의 반응을 보면서 이분들은 “인터뷰를 했으면, 뭘 내놔야지” 하는 생각이어서, 복잡한 게 하나도 없고 일단 찍어갔으니 뭘 하나라도 내놔라 뭐 이런 거죠. 알겠습니다, 내놓겠습니다. 했던 거죠.
● 마지막 날에 영화제 출품을 하셨다면서요?
● 저에게 뭔가 계기가 있어야 했죠. 인터뷰 말고 이렇게 긴 시간을 찍은 걸 유튜브에 턱 올리면 아무도 안 볼 것 같았습니다. 이런 작품은 권위를 얻어야 해요. 그래서 영화제만 계속 확인하고 있었어요. 작년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하고 부산영화제에 출품했어요. 안됐어요. 훨씬 더 짧고 효과를 많이 삽입하고, 덜 지루하고 자극적으로 화면 배치도 바꿔가며 만 들었지만 안 되더라고요. 제가 느끼기엔 방송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영화 씬에서는 차분하게 만들어서 뭔가 묵직한 진정성에 소구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영화제 출품 작품은) 그래서 전략을 수정해서 냈지요. 그래도 기대는 안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략을 수정하길 잘했구나. 근데 문제는 이렇게 되면 영화제에서 인정받을 수 있
는 확률은 높아지지만, 일반인이 볼 확률은 더 낮아집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든 <백년전쟁>이 딱 좋거든요. 사실 그걸 영화제에 출품하면 절대 안 뽑아줘요. <백년전쟁>처럼 만들려고 어떻게 해보다가 포기하고 영화제 버전으로 했는데, 감사하게도 출품하게 되어 후손분들에게 면목이 좀 섭니다.
● 수상 여부는 언제 알 수 있나요?
● 제가 정확하게 영화제에서 무슨 상을 주는지는 잘 모르고요. 경쟁은 아니고 초청 파트로 들어갔어요. 어느 섹션이든 상관없이 주는 상, 섹션별로 주는 상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상을 주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잖아요. 화제성, 명분, 시의성이 있을텐데, 아마 명분쪽일 것 같아요. 5월 8일에 영화제가 끝나요. 사실, 여기 초청받은 것 자체가 상이죠.
● 다큐에 담진 못했지만 남기고 싶은 얘기가 있지 않을까요?
● 다큐에 담은 분들의 내용은 거의 빠뜨리진 않은 것 같아요. 한 분을 빼놓고 했던 게 가끔 뵐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고요. 반민특위 후손분들 중에서 어떻게 보면 못 나오는 분들의 이야기가 더 있을 수 있는데, 제가 적극적으로 취재하듯이 접근하진 않았거든요. 이분들의 삶에 개입하는 걸 최소화했어요. 저는 기자가 아니고 다큐멘터리 만든 사람이라. 물론 다큐멘터리는 어쩔 수 없이 삶의 영향을 주고받기는 하지만, 이걸로 이슈파이팅을 하려는 목적은 아니어서요.
● 연구자이자 교육자이자,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 당분간 쉬고 싶어요. 한편으로 뭘 만든다면, 러닝타임도 짧고 미시적인 걸로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 저희들에게는 반민특위 영상이 귀중한 영상이어서 나중에 공유하실 수 있는 거죠?
● 그럼요, 당연하죠. 얼마든지요.
● 저희들이 바라는 것은 반민특위의 복권이지요. 정철용 선생님이 오셔서 유언처럼 남긴 말씀이 독립
운동은 안했지만 반민특위는 했으니 그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반민특위 활동으로 훈장이나 표창을 받을 수 있겠나? 하셨어요. 언젠가는 반민특위 자체가 복권되는 그날을 기대합니다.
● 원래는 2012년 만들 때 반민특위를 극화했었어요. 역사 애니메이션이죠. 노일환 의원 연설하는 장면,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 잡으러 가는 장면 등이 나오죠. 앞부분에 김정륙, 노시선 선생님 인터뷰 나오고요. 오히려 반민특위는 상업영화 쪽으로 개봉을 염두해두고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아요. 로토스코핑(애니메이션 표현을 최대한 현실과 유사하게 끌어올리고자 애니메이션과 실사 이미지를 합성시키는) 기법에 의한 역사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반민특위’가만들어지는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 끝으로 민족문제연구소 구성원과 회원들에게 해주실 말씀은?
● 민족문제연구소는 뿌리 깊은 나무 같아요. 오디오파일이나 필요한 연구자료 등이 아쉬워 연락하면 바로 해결되잖아요. 연구소 회원으로 계시는 것은 항상 지켜주시는 거니까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작업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 캠페인은 노란리본기금의 후원으로 진행됩니다.


ⓒ환경운동연합[/caption]
10월 2일부터 10일까지 총 9일간 진행되는 환경운동연합 무동력 항해 캠페인의 1일 차가 지났다. 우리 환경운동연합은 해양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불법어업을 금지하고 해양쓰레기를 근절하기 위해 무동력 항해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리고 해양생태계를 살릴 해양보호구역 확대의 메시지도 함께 담았다. 오늘 그 1일 차 일정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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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caption]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과 함께한 오늘 일정은 통영시청 제2청사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해양캠페인의 첫 시작을 알렸다.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에서 해양환경이 파괴되어가는 다양한 상황을 알려줬다.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의 신종호 운영위원은 “어업 면허를 받으려면 5년마다 한 번씩 침적폐기물을 청소하고 행정기관이 확인해야 재갱신이 가능한 어업권이 있지만, 행정기관에 정보공개 청구하고 자료를 받아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동호 운영위원은 세목망으로 남획되는 어린 물고기와 생사료로 갈려버리는 물고기로 인해 앞으로 올라오지 못할 생선에 관해 얘기했다. 지욱철 의장은 해양쓰레기의 심각성과 어업강도가 높아진 어업구조에 대해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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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수중탐사를 진행하는 환경운동연합과 무동력 항해 요트 ⓒ환경운동연합[/caption]
오후는 무동력 항해팀과 합류하여 해상퍼포먼스를 펼치고 수중조사를 시작했다. 항공촬영 장비를 이용해 하늘 위에서 바라본 바다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아름다움은 수중조사와 함께 시작된 폐어구 제거 활동을 시작으로 끝이 났다. 얽히고 뭉친 폐어구들이 무더기로 올라왔다. 소형 크레인으로 폐어구들을 끌어 올리는 도중에 밧줄이 끊어져 주변에 있던 활동가가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버려진 그물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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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으로만 비춰진 바다 그 안에서 건진 폐어구 ⓒ환경운동연합[/caption]
해외에서는 방치된 어구를 Ghost Fishing이라고 부른다. 버려진 어구들에 의해 목적 없이 잡힌 물고기가 방치되어 죽는 형태다. 세계에서도 문제가 되는 해양생태계 파괴의 현장을 우리나라 통영 앞바다에서도 마주했다.
해양의 면적이 육지의 약 네 배인데 관심도는 적도 해양은 점점 파괴되어가고 있다. 인류에게 해양은 끊임없는 자원이자 대형 폐기물 집하장으로만 인식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는 2016년 1월 1일 돼서야 우리가 93년, 06년 가입한 육상폐기물의 해양배출 금지 등 해양환경보전을 위한 국제협약인 런던협약, 런던의정서를 시행했다. 오늘 올라온 어구는 불과 몇 년 안 된 어구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해양활동을 마치고 중앙사무처 최예지 활동가의 지구인생을 인터뷰했다. 통연거제환경운동연합 의장님과 지구인생 인터뷰를 마침과 함께 활동에 관심 가져주시는 기자분들의 요청을 마무리한 후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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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caption]
쉽지않았던 오늘 하루, 현장의 심각성을 되새겨 본다. 공중에서 촬영한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는 겉과 다르게 방치된 어구와 쓰레기로 뒤덮여있다. 우리 해양에 대해 아무도 관심 두지 않으면 미래엔 아무도 얹을 수 없다. 모두가 아는 상식이지만 지금 실천하지 않으면 미래는 어떻게 될까?
우리 모두 답은 알고 있다.
양식장 스티로폼 부표 ⓒ환경운동연합[/caption]
태풍으로 인해 일정 변경이 많아졌다. 물건항에서 진행되는 요트캠페인과 환경운동연합 부스 홍보가 취소됐다. 사량도에서 무동력 요트로 삼천포로 가려던 일정도 태풍으로 요트는 바로 통영으로 피항 가고 최양일 변호사, Lawrence Smith, 백종국 기자 그리고 나는 페리를 이용해 삼천포항으로 넘어와야 했다.
페리를 기다리는 중 거대한 스티로폼 부표 더미를 봤고 사진을 찍는 나에게 어민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조사하러 나오셨어요?”라고 말을 거는 그에게 해양생태계 조사를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질문을 이어갔다. 어민은 불법어업, 해양생태계 파괴, 해양쓰레기에 대해 우리와 같은 인식을 하고 있었다.
어민은 자망으로 인해 발생하는 혼획으로 인한 생태파괴 문제를 지적했다. 자망은 테니스 코트에 있는 네트처럼 네모난 그물을 물고기의 이동통로에 놓고 지나가는 물고기를 잡는 어업방식이다. 어민은 통발어업 경우 잡지 말아야 할 물고기를 놓아줄 수 있지만 자망의 경우는 물고기를 걸러내지 않고 다시 놓아준다 해도 물고기가 상처를 입었기에 오래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물을 치고 큰 소리로 물고기를 놀라게 해 쉬고 있는 물고기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잡히는 속칭 “뻥치기” 역시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문제가 되는 어업들은 위판장에 가져오는 물고기양을 보면 어업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잡는 것인지 추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민 역시 불법어업에 대해 알고 있지만, 워낙 치밀하고 밤에 어업을 진행하기에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물고기가 줄어드는 생태계 문제로 주제를 넘겼다. 지금 어민들이 어획량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다. 예측하는 답변일 것이지만 다시 확인하고 싶어 물고기는 많이 잡히는지 질문했다. “물고기 잘 안 잡혀요. 안 잡히니 이것저것 다 잡아 양을 채우는 거예요”라는 솔직한 대답을 들었다. 나는 양으로 잡다 보면 결국 나중에는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어지는 것 아시지 않냐고 되물었다.
어민은 우리나라에 어선이 너무 많다고 주장했다. 내가 “해양수산부에서 폐어선 지원금 받아서 더 좋은 새 어선으로 사고 있잖아요”라고 얘기하고 나니 나도 어민도 그냥 허탈하게 웃게 됐다. 장군 멍군처럼 해양생태계를 되살리는 방법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폐어선 지원급으로 새 어선을 구매하는 어민들이 있다는 것은 해양수산부에서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어선을 줄이는 일뿐만 아니라 과도하게 많은 어업면허의 수 역시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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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손된 부표를 교환하기 위해 준비한 스티로폼 부표 ⓒ환경운동연합[/caption]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의 정책은 해양쓰레기 문제에도 나타났다. 나는 조심스러우면서도 직설적으로 뒤에 가득 쌓여있는 양식장 부표를 어민에게 언급했다. “스티로폼 부표처럼 깨지는 것 말고 플라스틱으로 된 부표가 있지 않나요? 요즘 해양쓰레기 문제가 심각한데요”라고 물으니 놀라운 답변을 듣게 됐다. 쌓여있는 스티로폼 부표는 정부가 지원하는 개량형 부표에 문제가 생겨 교체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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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한지 몇 달 되지않은 친환경부표 ⓒ환경운동연합[/caption]
정부가 양식장 어민들에게 권장하는 부표는 두께가 약 5mm의 딱딱한 부표로 내부는 비어 물 위에 뜨게 돼 있다. 어민은 딱딱한 재질로 인해 지나가는 어선 등 외부 충격으로 쉽게 깨지는 문제점을 설명했다. 양식장은 부표와 부표가 줄로 연결되어 있기에 물에 가라앉는 하나의 부표로 인해 연쇄적으로 다른 부표를 물속으로 끌어들여 양식장을 망친다는 설명이다. 어민은 자신의 어선에 부서진 부표들이 있으니 나에게 가져가도 좋다고 했다. 해양쓰레기 상황도 알고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도 아는 어민은 스티로폼 부표보다 4배나 비싼 개량형 부표를 썼는데 양식장을 망쳐 억울하다고 제대로 된 대안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표면에 약간의 패류가 붙어있지만, 바다로 넣은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새 부표였다. 해양수산부가 고밀도 부표의 파손문제로 2016년에 보급을 중지했고 친환경부표는 2015년부터 보급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2016년 31억, 2017년 40억, 2018년 35억의 친환경부표 예산을 받았다. 정부는 목표는 앞으로 2,300만 개의 스티로폼 부표를 친환경부표로 교체하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구매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파손되고 다른 부표들을 끌고 들어가 수압으로 함께 파손하는 부표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어민들도 불법어업이 심각하고 해양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알고 있다. 해양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표를 바꾸는 노력을 한다. 의식 있는 어민들이 존재함에도 정부가 적절한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함께하는 어민은 지치고 바다는 망가지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없이 삼천포로 향하는 페리에 올라타면서 어민이 준 파손된 부표를 잊고 와 아쉬움이 크다. 새것과 같은 부표가 머릿속에 빙빙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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