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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난민심사 기본을 만들기 위한 10년의 노력, 난민면접 영상 녹화 의무화 과정을 어떻게 만들어갔을까요?

[인권] 난민심사 기본을 만들기 위한 10년의 노력, 난민면접 영상 녹화 의무화 과정을 어떻게 만들어갔을까요?

admin | 목, 2020/10/08- 06:30

난민심사 과정에서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영상 녹화를 의무화해야 합니다!#[난민면접 영상 녹화 의무화를 위한 운동]의 시작■ 난민의 운명을 가르는 면접심사  2005년 10월, 미얀마 출신 한 남성이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한다. 그는 고국에서 군인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고 있었다. 군부독재 정권에게 저항하는 조직에 우리 돈 약 1,700만 원의 지원금을 주었다는 이유였다. 그가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출입국과 1심 법원은 그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아 신빙성이 의심된다며 난인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정말 거짓말을 했거나 무언가를 숨긴 것일까?  이후 소송 과정에서 이 문제는 면접관의 질.......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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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내 내에서 병사들에게 핸드폰 사용이 가능할 수 있었던 계기! 병사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군 인권센터 병영 혁신 프로젝트]의 시작왜 병사들만 핸드폰을 못 쓰지?군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려 보았을 법 한 질문입니다. 입대하고 보니 장교도, 부사관도, 군부대에 출입하며 일하는 사람도 모두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는데 유독 병사만 핸드폰을 쓸 수 없게 하니까요. 하지만 대부분 ‘군대란 곳은 원래 그런가 보다’하고 이내 수긍합니다. 행여나 핸드폰을 쓰면 안 되냐고 물었다가 찍히면 번거롭기만 할 테니까요.  ‘군 인권센터’는 이 물음에 천착해보기로 했습니다. 이상하잖아요? 똑같은 부.......

목, 2020/10/0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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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은 혐오나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입니다!#[난민법 제정]의 시작 ‘난민법’이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른 적이 있다. 2018년 6월 ‘난민법’을 폐지해달라는 국민청원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 해 동안 예멘 국적의 난민들이 제주도에 대거 입국하면서 난민 혐오가 확산되었다. 청원 동의자가 70만 명을 넘겼고, 서울과 제주에서 ‘반(反) 난민 집회’가 열렸다. 난민은 갑작스레 한국 사회의 뜨거운 논의 주제로 떠올랐다.  ‘난민법’ 폐지를 주장한 청원은 ‘난민협약’ 탈퇴도 요청했다. 아마도 그때까지 한국의 ‘난민법’과 국제사회의 ‘난민협약’에 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청원에 대한 청와.......

수, 2020/10/0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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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한 이들을 대상으로 자행된 끔찍한 인권유린 재발 방지를 위한 우리의 움직임#[염전노예장애인 노동 착취 사건 공동 대응활동]의 시작철저히 속아서 섬에 팔려 왔습니다.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 편지를 들고 경찰서로 찾아온 어머니  2014년 1월 중순, 한 여성이 서울 구로 경찰서를 찾아왔다. 떨리는 손으로 내민 봉투 안에는 두 장짜리 편지가 들어있었다. 발신지는 전라남도의 외딴섬, 발신자는 아들이었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글자들은 긴급 구조를 요청하고 있었다. 간절한 편지의 주인공은 마흔 살의 저시력 시각장애인 김 모 씨였다. 김 씨는 큰 빚을 지게 되어 2000년부터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2012년 여름, 무료급식.......

수, 2020/10/0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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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을 위한 투쟁은 모두에게 더 나은 오늘을 선물한다! #[장애인 이동권 운동]의 시작 ■ “버스를 타자!”  2001년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노부부가 수직형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다 철심이 끊어져 추락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전에도 장애인 리프트 관련 고장 추락 사고가 연이어 있었고, 오이도역은 개통된 지 채 6개월이 안 된 역사였다. 이 사건은 그동안 억눌러왔던 장애인들의 분노를 폭발시켜 극렬한 투쟁의 계기가 되었다. ‘노들장애인 야학’을 중심으로 대책 위원회가 꾸려지고 전국 65개 단체가 모여 장애인 이동권연대를 결성해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외쳤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건설교통부, 서울시 등 어.......

수, 2020/10/0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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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퀴어 문화 축제]의 시작 퀴어 문화축제는 2000년에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이 행사의 개최 계기는 문화콘텐츠와 그 접근성에 있었다. 90년대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인식이 점차 높아져 갔고, 표현의 자유와 문화콘텐츠 소재의 제한 역시 전에 비해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당시 존재하던 (그리고 아직도 존재하는) 문화콘텐츠에 대한 검열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부분은 여전히 벽에 부딪히고 있었다. 1997년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동성애’를 소재로 삼고 있다는 이유로 국내 개봉을 위한 심의가 반려되는 일이 발생하였고, 같은 해에 개최될 예정이었던.......

화, 2020/10/0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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