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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이 그들의 배를 불리는 방식 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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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이 그들의 배를 불리는 방식 Ⅸ

admin | 토, 2020/04/11- 21:36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3월 23일 현재 16개 주, 9개 현(county), 3개 도시의 1억 5천 8백만 명의 미국인이 이른바 자택격리 명령(shelter-in-place order)이 내려졌다. 이것은 긴급한 상황 이외의 모든 출입을 금지하며 집에만 머물러 있으라는 일종의 이동제한 명령(stay-at-home order)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대번에 다음 질문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집이 없는 사람들은 어찌하나? 이번 회에선 신종코로나 발 세계 경제의 대침체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미국에서 이들 취약계층이 어떠한 곤경 속에 처해있는지를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아울러 이런 서민들의 고통과는 아랑곳없이, 악재조차 호재로 혹은 호기로 삼아 승승장구하는 제국들에 대해 짚어보기로 한다.

 

억만장자들에게 신종코로나는 남의 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온 버니 샌더스는 “억만장자들에게 코로나 창궐, 이런 것은 그저 남의 일이다. 결국 코로나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서민들이다”라고 조 바이든과의 경선 토론장에서 이야기했다.(“Bernie Sanders: ‘If you’re a multimillionaire … you’re going to get through’ the coronavirus pandemic,” CNBC, March 16, 2020). 가장 비싼 의료보험 있고,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진 대부호들이야 설사 신종코로나가 걸린다 한들 그게 문제나 되겠느냐면서. 문제는 국민 중 겨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이 태반인데 이런 이들에게 코로나는 정말로 재앙이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샌더스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의 극심한 불평등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의 코로나의 창궐이 곧 서민들 삶 자체의 궤멸을 의미함을 지적하고 있다.

이동제한 명령이 내려진 캘리포니아 지역 사정을 알리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 1면 가판대 사진 <출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자택격리 명령의 허구 : 그럼 집 없는 사람은?

코로나 창궐에 대비하기 위해 가장 취약한 계층인 노숙자에게 내려진 명령은 “텐트서 꼼작 마!”이다. 여태껏 쏟아져 나오는 노숙자 퇴치를 위해 보통 낮에는 경찰과 노숙자들이 쫓고 쫓는 상황이 연출됐었다. 그러나 코로나 창궐이 염려되자 대부분의 지역에서 내려진 조치는 “노숙자는 텐트에서 머물라”이다.(“To combat virus, L.A. will let homeless encampments stay up throughout the day,” Los Angeles Times, March 17, 2020). 얼마나 웃기는가? 텐트가 자택인가? 언제는 텐트는 집이 아니라며 죽어라 쫓아내려 하더니만 이제는 텐트가 집이니 그냥 가만히 죽치고 거기만 있으란다. 이게 무슨 대책인가? 가뜩이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존해야 하는 노숙자들이 코로나로부터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할 대상임을 인식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들이 감염원의 인자로 간주해 텐트서 처박혀 나오지 말라 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방기(放棄)를 넘어 인권침해다. 게다가 자택격리 명령으로 주요 다중시설 이를테면 공공도서관, 빌딩 등이 폐쇄되었다. 그나마 그곳은 노숙자들이 손과 얼굴을 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그런 곳들마저 폐쇄된 마당에 이들이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이것뿐이리라. “(코로나?) 걸리면 죽는 거지 뭐.(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If I get it, I die’: homeless residents say inhumane shelter conditions will spread coronavirus,” The Guardian, March 19, 2020. ; “For the homeless, coronavirus is a new menace in a perilous life,” Washington Post, March 21, 2020). 현재 미국엔 약 50만 명의 노숙자들이 있으며, 그들 중 약 65%가 노숙자 대피소에서 밤이슬을 피하고 있으나 약 20만 명의 나머지 노숙자들은 길거리에서 비유가 아닌 문자 그대로 풍찬노숙을 하고 있다.(“‘Wash your hands’ is tough advice for Americans without soap or water,” The Guardian, March 23, 2020).

샌프란시스코 노숙자에게 꽃을 건네는 시민 <출처: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종코로나 염려는 차라리 호사

그렇다. 이런 그들에겐 건강염려는 호사(豪奢)일 런지도 모른다. 정녕 그들에겐 그것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놓여 있으니 말이다. 당장 먹고 살 문제. 그것에 비하면 잠복기가 2주나 걸리는 코로나 같은 것은 그들에겐 문제 축에도 들지 않으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인 까닭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노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서민들도 지금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왜냐면 코로나로 일들이 끊겨서.

현재 미국의 학교도 우리처럼 폐쇄했다. 그러나 학교가 아니면 삶을 이어나가기 힘든 이들이 있어 점심시간에만 잠시 여는 학교가 미국에 많다. 아이들의 돌봄이 필요해서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뉴욕타임스는 텍사스주 브렌햄(Brenham)의 6명의 자녀를 둔 부부 이야기를 소개했다. 엄마는 33세의 상이용사, 남편은 목수. 그러나 코로나 창궐로 남편의 일거리는 없어지고 6명의 자녀를 도저히 먹일 방법이 없어 한 끼의 식사는 무료급식으로 때운다. 학교는 코로나로 폐쇄됐으나 무료급식이 필요한 아동들이 많아 점심 무료급식을 학교 운동장에서 드라이브스루(차에서 내리지 않게 하고 음식을 주는 방법)로 제공하고 있다. 그나마 엄마는 아이들 먹이느라 식사는 굶기 일쑤. 만일 학교의 무료급식이 없었다면 “스트레스로 멘탈이 완전히 붕괴했을 것”이라며 자신의 굶주림은 외려 문제가 아니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딱한 사정은 단지 이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폐쇄 중에도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학교는 텍사스를 비롯해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오리곤 등 여러 주에서 시행 중이다. 또 점심 한 끼뿐만 아니라 다음 날 아침 두 끼까지 가져가는 아동들이 계속 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의 학군에서는 거의 1만 1천 명의 학생들이 두 끼의 식사를 무료로 가져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하루 동안 아이들이 먹는 식사의 전부다. 미시간대학의 사회사업학과 쉐퍼(H. Luke Saefer)교수는 “[코로나사태처럼] 일이 잘못됐을 때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이들이 바로 서민들이며 또한 회복되는 데에도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층이 바로 그들이다.”라고 말했다.(“Coronavirus and Poverty: A Mother Skips Meals So Her Children Can Eat,” New York Times, March 20, 2020).

 

서민들의 가장 큰 걱정은 다음 달 임대료

그런데 먹을거리 걱정이 저런 식으로라도 해결이 된다면 서민들에게 그다음 가장 큰 걱정거리가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임대료다. 위에서 소개한 6명의 자녀를 둔 여성도 가장 큰 걱정거리가 매달 어김없이 돌아오는 1,000달러(약 120만 원)의 임대료라 말했다. 당장 수입이 없으니 그렇다. 워싱턴포스트는 현재 시점(2020년 3월)에서 대다수 미국인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임박한 다음 달(4월) 임대료라고 보도했다.(“Many Americans’s Biggest Worry Right Now is April 1 Rent and Mortgage Payments,” Washington Post, March 22, 2020). 물론 임차인이 아니고 집을 소유한 서민들이라 해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대부분의 집값을 은행에서 대여해서 집을 소유한 것이라 매달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하는데 지금 일거리가 갑자기 뚝 끊겨 소득이 없으니 그렇다. 소득이 끊겨도 단 한 달 만이라도 버틸 여유 자금이 미국인들 대다수가 없다.

3월 현재 많은 미국인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다음 달(4월) 임대료와 주택할부금이라는 워싱턴포스트의 기사 제목. 정부가 주는 1200달러짜리 수표가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많은 이들은 그것은 임대료를 충당하지도 않을 것이고 또 설사 그렇다 해도 그들이 돈을 지불하기 전에는 도착하지 않을 것이라 우려를 표하고 있다는 부연설명이 달려있다. <출처: 워싱턴포스트>

 

미국 경제는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그 와중 빠르게 급증하는 실업률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경제가 지금 전인미답의 영역(uncharted waters)로 접어들었다고 선언했다.(“Coronavirus Recession Looms, Its Course ‘Unrecognizable’,” New York Time s, March 21, 2020). 즉 과거 전례가 없던 대혼란 속으로 진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가 올 2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30.1%가 될 것으로, 그리고 불라드(James Bullard) 연준 세인트 루이스 은행장은 50% 하강할 것으로 내다봤다고 보도했다.(“Morgan Stanley, Goldman See Virus Causing Greater Economic Pain,” Bloomberg, March 23, 2020). 옥스퍼드 경제연구소(Oxford Economics)의 미국경제팀장인 다코(Greg Daco)는 “이것이 단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을 겪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왜냐면 이런 급작스러운 경기 하강은 선진국에선 유례가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심지어 10년 전의 금융위기와 1920년대 대공황 때조차도 사람들에게 집 밖으로 나가지 마라거나 여러 사람과 모이지 말라 했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는 결국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고 그것은 사람들이 만나 교류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뉴욕타임스는 이를 ‘전시적 곤경’(wartime privation)이라 말한다.(New York Times, March 21, 2020).

이번이 ‘전시적 곤경’이라 불리는 이유는 바로 그 직접적 타격을 서민들이 최초로 입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2008년 금융위기가 월가에서 시작되어 서민들에게 미치기까지는 그래도 시간이 조금 걸렸다. 직장에서의 해고는 월가의 은행들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나머지 직종의 해고와 실물경제 하강은 그것과는 시차가 조금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신종코로나는 그 경우가 완전히 딴 판이다. 사람들의 이동이 멈추니 영세자영업자들이 먼저 그 타격을 고스란히 맞는다. 식당, 이발소, 선술집 등의 업종이 줄줄이 타격이다. 이를 두고 매씨(Gabriel Mathy) 아메리칸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침체는 아마도 서비스 부분에서 시작된 세계에서 유례없는 최초의 경기침체다”라고 지적한다. 소상공인들과 영세자영업자들은 현금보유도 얼마 없고 신용도 제한적이다. 다른 큰 회사들처럼 채권을 발행할 수도 없다. 따라서 손님이 끊기면 바로 존폐의 기로에 놓이며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폐업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거기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벌써 이들의 대량 해고가 시작되었다.(New York Times, March 21, 2020).

3월 19일 미 노동부는 실업수당 신청자가 28만 1천 명으로 전주와 비교해 33%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201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다.(“Unemployment Spikes 33% Amid Coronavirus Pandemic,” US News and World Report, March 19, 2020). 그러나 이 수치는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가 전망한 그다음 주 수치 225만 명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러나 한 주가 지나 이런 전망은 완전히 빗나간 것으로 판명됐다.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3월 셋째 주 주간 신규 실업수당 신청자는 328만 3천 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한 주 만에 신규 실업자 수가 300만 명이 늘었다.(“Coronavirus Live Updates: U.S. Jobless Claims Are Highest Ever; House to Take Up $2 Trillion Stimulus,” New York Times, March 26, 2020).

옥스퍼드 경제연구소의 다코는 4월 미국의 실업률을 10%로, 재무부 장관 스티븐 무누신(Steven Mnuchin)은 효과적인 개입이 없다면 실업률이 20%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심지어 연준의 불라드(James Bullard)는 30%까지 나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New York Times, March 21, 2020; Bloomberg, March 23, 2020; “As layoffs skyrocket, the holes in America’s safety net are becoming apparent,” Washington Post, March 19, 2020).

 

2008년 금융위기 회복은 허상: 실업률 폭증이 그 증거

볼 스테이트 대학 경제학과 힉스(Michael Hicks)교수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3월이 미국 역사상 가장 최악의 해고 수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Washington Post, March 19, 2020).

이렇다면 이러한 대량 해고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이들은 이런 실업대란 사태가 단순히 코로나로 발생했다며 코로나 탓을 돌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코로나 사태가 어떤 촉발요인은 되었지만, 이러한 급작스러운 실업대란은 미국이 그동안 말해주지 않는 미국 경제의 실체 때문이라고 본다. 코로나 사태는 단지 그것을 들춰내 미국 경제의 민낯을 보여주는 역할만 했을 뿐이다. 이 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번 실업대란은 바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미국의 경제가 회복되었다고 선언하며 우쭐댔던 것이 모두 허상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동안 미국은 경제 회복의 증거로 고용률의 증가, 즉 실업률(2019년 10월 현재, 3.6%)의 저하를 내세웠다. 그런데 그것은 허드레 일자리의 증가로 뚝딱뚝딱 만든 숫자 놀음에 불과했다는 것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 여실히 드러났다. 즉, 그것은 튼실한 일자리가 아니었다. “눈 가리고 아웅”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정부가 나서서 실업률이 최저치로 낮아졌다며 “이것 봐라. 실업률이 얼마나 낮은가. 그래서 미국인은 행복하다!”라며 미국의 경제 회복을 아무리 발표를 해도 공허하기만 했던 것이다. 왜냐면 서민들의 삶은 금융위기 이후에도 전혀 개선된 것이 없었으니까.

만약 미국 정부의 발표대로 국가 경제가 그리고 서민들의 삶이 나아진 것이 사실이었다면 이런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서민들이 이처럼 추풍낙엽처럼 일시에 대량 해고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아무리 해고가 밥 먹듯이 쉬운 미국이라 해도 그래도 좋은 직장이라면 그렇게 쉽게 근로자를 내보내지 않을 테니까. 어느 정도는 뜸을 들일 테니까. 그래도 큰 기업은 이런 상황에서 어느 정도(단 한 두 달이라도)는 버틸 능력이 있으니까. 다시 말해 진정한 경제 회복은 뭐니 뭐니 해도 서민들의 직업 안정성의 보장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정반대다. 그래서 신종코로나 사태로 사람들을 일터에서 대거 몰아내고 있으니 실업률이 갑자기 높아진 것이다. 애초에 서민들이 취업했다는 직장이 번듯한 직장이 아니었다. 파트타임, 기간제,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등의 일자리 채운 것으로 정부가 고용률의 증가와 실업률의 하락이라고 얼버무렸다. 그런데 어찌 되었든 그런 허드레 일자리에서조차 밀려나 이렇게 실업률이 높아지면 그것은 곧 금융위기 이전으로 곧장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미국 경제가 아무것도 금융위기 이후 달라진 것도 나아진 것도 없다는 것을 이번 대량 해고 사태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탕발림한 실업률과 고용률 지표에서 사탕을 싹 제거하자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즉 지표들은 그저 숫자 장난이었고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그 와중 서민들은 두서너 개의 아르바이트로 연명하고 있었을 뿐이다. 코로나 사태로 하루아침에 이런 짓거리가 들통 난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다가오는 침체의 폭풍이 밀려오고 있다는 기사 제목에 달린 뉴욕타임스의 일러스트레이션 <출처: 뉴욕타임스/아담 심슨(Adam Simpson)

 

모래로 쌓은 성

그렇다면 금융위기 이후에 전 세계가 그 깊은 신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에도 미국 홀로 시쳇말로 “잘 나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미국 홀로 경기가 좋았다는 것은 누구를 위한 축제의 판이었던 것일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속도가 더디더라도 잘못된 것들을 시정 해 기초 체력을 다져서 튼실한 경제를 재건하기보다는 임시방편으로 구멍 난 곳을 돈을 찍어 처발라 메우고 그 열매는 모두 극소수의 가진 자들, 즉 제국이 취했다. 그리고 그 돈들은 죄다 돈 놓고 돈 먹는 놀이인 금융자본으로 치환되어 금융화(financialization: 산업에서 금융 부분이 비대해지는 것: 필자의 『부자는 어떻게 가난을 만드는가?』참조)는 더욱더 박차를 가하였다. 그 결과는 주식시장의 활황과 부동산의 폭등, 즉 이들 시장에 잔뜩 낀 거품이었다. 그리고 그 주역은 대형금융회사가 아닌 사모펀드였다. 그러나 이들은 초록이 동색. 사모펀드조차 월가에 속한 것이니까. 우리의 비례 정당만이 ‘위성’이 아니다. 미국의 사모펀드 또한 월가의 위성 투자사이다. 겉으로만 보면 얼마나 그럴듯한가? 한없이 오르는 주식과 부동산. 특히 미국 외부에서 보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금융위기 이후에 쏟아부은 돈 때문인 것은 쉽게 간과했다.

 

2년 전부터 예견되었던 거품 붕괴와 침체: 터트리기 위해 만들어진 거품

그러나 그러한 눈부신 금융화의 진전이 모래로 쌓은 성이었다는 것이 이번 신종코로나 사태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렇게 부풀려진 자산시장의 거품이 완전히 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기 전에 미국의 거품 붕괴의 위험성은 이미 2년 전부터 예견되었다. 이런 예견은 단지 전문가들만 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왜냐면 거품은 언젠가는 반드시 꺼지게 마련이니까. 필자도 강연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이것을 줄곧 알렸었다. 물론 귀담아듣는 이가 별로 없어 문제지만.(“Economists Think the Next U.S. Recession Could Begin in 2020,” Wall Street Journal, May 10, 2018.; “U.S. Economy Flashes Signs It’s Downhill From Here,” Wall Street Journal, Oct. 29, 2018.; “The Economy Faces Big Risks in 2019. Markets Are Only Now Facing Up to Them.”, New York Times, Dec. 7, 2018). 비유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의 거대한 몸 때문에 바로 서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거인이 돌부리에 발이 걸려 완전히 넘어가듯, 바로 이번 신종코로나 사태가 그런 돌부리 역할을 한 것일 뿐이다. 코로나는 방아쇠 역할은 했지만 이미 거인은 쓰러지고있는 중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Coronavirus Could Spark a Global Recession,” U.S. News &World Report, March 16, 2020).

 

코로나: 월가가 바라마지 않던 책임 전가의 호재

어쩌면 월가를 주축으로 한 제국들은 오히려 코로나가 무척 반가울 수도 있겠다. 왜냐면 거품은 반드시 꺼질 텐데 그 책임을 다른 데(코로나)로 돌릴 수 있을 테니까. 2008년엔 금융위기 주범으로 몰려 얼마나 호된 뭇매를 맞았었는가? 그렇게 보면 코로나 사태 같은 악재는 제국들엔 확실히 호재! 마치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과 같다(쓰러지는 제국들의 기업은 어찌하고 이런 소리를 하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은 조금만 기다려 주기를 바란다. 곧 뒤에서 그 답이 나온다). 이것저것 떠나 제국들은 악재든 호재든 모두 자신들의 호재로 만드는 데 귀재다. 보라. 어떤 제국은 경기하강에 내기를 해서 떼돈을 벌고 있지 않은가? 2천 7백만 달러(약 329억 원) 가지고 단숨에 100배를 번 펀드 회장도 있다.(“Bill Ackman claims firm made $2.6bn betting on coronavirus outbreak,” The Guardian, March 25, 2020). 거품이 이는 동안 재미를 톡톡히 본 제국 중 그것이 꺼질 것을 감지한 이들은 이미 정리할 것들은 다 팔아 곳간을 두둑이 채워두었다. 그리곤 악재에 베팅까지 해 또 한 번 재미를 보는 것이다. 제국에게는 어려운 장사란 없다. 그들에겐 모든 장사가 다 누워 떡 먹는, 그렇게 쉬운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일까?

 

가재는 게 편: 트럼프는 대기업이 우선!’

전례가 없는 코로나 사태 폭탄으로 미국 경제가 위기에 몰렸다며 트럼프 발 경기부양 패키지 법안이 상원에서 통과되었다. 미국의 한 해 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물경 2조 2천억 원(약 2천 7백조 원)의 현금이 시중에 쏟아진다. 그러나 그중 성인 한 명당 1,200달러(약 146만 원) 지원되는 2,500억 달러(약 304조 원)와 실업급여 등에 사용될 2,500억 달러를 빼면 나머지는 모두 기업을 위한 돈 들이다. 이것이 바로 코로나 재난으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 서민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기업을 우선하는 정책을 편다고 트럼프가 비난받는 이유이다. 확실히 가재는 게 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앞서 “왜 쓰러지는 제국의 기업이 있는데 코로나 같은 악재가 호재가 될 수 있느냐”는 의문에 대한 답이다. 제국의 기업은 악재에 아무리 손해를 보아도 그것을 벌충해줄 든든한 뒷배가 있다. 곧 친기업 정책을 펴는 제국의 친구, 아니 그들의 하수인인 든든한 정치인과 지도자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제국의 친구들이라고 해도 정치인들이 맨입으로 제국을 위해 돈을 풀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가재가 게 편을 그냥 들어주지는 않는다. 제국은 그의 하수인들이 움직일 만큼 기름칠을 한다. 나랏돈을 받아내기 위해서 사활을 건 대 정치권 로비전을 벌이면서. 가디언지는 워싱턴의 로비스트들이 수십억 달러의 코로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광란의 전쟁에 너도나도 앞다퉈 뛰어들었다고 보도했다.(“Washington lobbyists in frenzied battle to secure billion-dollar coronavirus bailouts,” The Guardian, March 20, 2020). 이 때문에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 나왔던 엘리자베스 워런이 일찌감치 코로나 사태 구제금융은 기업이 아닌 노동자들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Any Coronavirus bailout must put workers first: Sen. Elizabeth Warren,” USA Today, March 20, 2020). 그런데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은 다 ‘아웃’이다. 미국 정치계 물 사정이 다 그렇다.

 

노동자 우선인 구제금융주장하는 샌더스

물론 기업이 도산하면 거기의 근로자들이 대량 해고되니 기업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조건을 달아야 한다. 근로자의 해고 금지라든지 급여의 삭감 금지 등의 전제조건 말이다. 그런데 그런 단서 조항 없이 기업에 무작정 돈을 살포하면 그다음은 어찌 될지 뻔하다. 결국 그 모든 돈은 최고위 임원진들의 보너스와 주식을 보유한 부자들의 호주머니 속으로만 홀랑 흘러가게 된다. 근로자들은 나 몰라라 내칠 것이 분명하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구조조정이 필수라면서. 이런 모든 일은 이미 2008년 금융위기 때 겪었던 터라 예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선수도, 게임의 룰도 그때와 바뀌지 않았고 유사한 게임은 계속되고 있다. 한 번 승자는 모든 것을 독식하는 게임, 게다가 계속해서 승자가 되는 이상한 게임. 그렇다면 이런 게임에서 감히 제국을 상대하는 서민들의 운명은? 그들의 승률은 백전백패.(Callahan, The Cheating Culture; Giridharads, Winners Take Al; Milanovic, Global Inequality 참조).

그래서 샌더스가 경기 부양 구제금융이 대기업이 아닌 노동자에게 먼저 제공되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부득이하게 대기업에 제공될 경우 근로자를 위한 전제조건을 달아 지급되어야 한다면서. 그러나 거의 모든 주요 언론이 왜 샌더스는 실질적으로 결판이 난 것과 진배없는데 경선을 포기하지 않고 저런 딴죽을 거냐면서 비아냥거린다. 소위 진보언론이라는 뉴욕타임스조차. 심지어 워싱턴 포스트는 코로나로 많은 미국인이 피해를 보고 있는 이때 단 한 사람 유일하게 샌더스만 수혜를 입고 있다고 빈정댄다. 소위 진보언론이라는 것들이 코로나의 유일한 승자가 될 제국들은 놔두고 외려 이것을 지적하는 샌더스를 공격하다니!(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밝히기로 한다).(“As Coronavirus Crisis Unfolds, Sanders Sees a Moment That Matches His Ideas,” New York Times, March 26, 2020. ;The coronavirus is hurting millions of people. But there’s one person who could benefit. Washington Post, March 26, 2020).

샌더스의 말대로 구제금융이 서민에게 먼저 맞추어져야 하는 이유는 거품 붕괴의 모든 덤터기를 결국 중산층 이하 서민들이 온전히 뒤집어쓰게 되니 그렇다.(“The Middle Class Faces Its Greatest Threat Since the 1930s,” Brookings, March 20, 2020). 이렇게 악재가 왔을 때 제국들은 유유히 손 털고 장을 떠나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 경기 하강의 직접적인 타격은 아무 죄 없는 서민들에게 가해진다. 따져 보라. 그들이 거품을 끼게 했는가? 그들이 금융화를 가져왔는가? 그들이 사모펀드를 했는가? 그들이 집을 마구 사들였는가? 그들이 주식을 했는가? 그들이 한 일이라곤 어려움 속에서도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이일 저일, 두 서너 개의 허드렛일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한 죄밖에 없다.

“보통사람은 못 받는 코로나 테스트를 어떻게 부자들과 명망가들은 받는가?”란 제목의 영국 매체 가디언 기사 캡처

 

코로나 위험 속 퇴거 위험에 놓인 임차인들

그리고 일이 끊기고 실업자가 되고, 그래서 수입이 없으면 사는 곳에서 나가야 하는 압박과 처지로 내몰리게 되는 게 서민들이다. 지금쯤 그들은 다음 달 임대료 지급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아마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이 어떤 때인가. 코로나 사태로 밖에 나가면 걸린다고 집에 머무르라 하지 않는가. 이른바 ‘쉘터 인 플레이스’ 명령! 그런데 방세를 못 내면 당장 방을 빼란다. 임대차 보호법은 거의 사문화 되었다. 특히 사모펀드가 집주인으로 등극한 이후에는 더더욱. 악덕 집주인들에겐 피도 눈물도 없다.(“’No heart. No understanding’: During coronavirus, renters face eviction uncertainty,” MSNBCNews, March 20, 2020).

워싱턴포스트는 코로나 사태로 뒤숭숭한 이 시점에 집주인에게서 가차 없이 방을 빼라는 퇴거통지를 받은 위스콘신주 밀워키(Milwaukee)에 사는 66세의 할머니를 소개하고 있다. 만성기관지염과 만성폐쇄성 폐질환을 가지고 있는 이 할머니는 밖에 나가면 자기 같은 기저 질환자의 경우 특히나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지금 공포에 떨고 있다.(“Facing eviction as millions shelter in place,” Washington Post, March 22, 2020).

트럼프는 3월 17일 “미국주택도시개발부(HUD)가 주택소유자와 임차인이 주택 압류와 퇴거하는 것을 4월 말까지 유예하는 즉각적인 조치를 곧 취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것은 허언이었다. 적어도 임차인들에게는. 전국적으로 3,000만 명에 이르는 주택소유자들은 돈을 못 내 쫓겨나는 것에서 60일간의 유예기간을 주었지만, 임차인들은 아니었다. 이렇게 지금 코로나 사태 속에서 퇴거명령 처지에 처한 임차인들은 전국적으로 4,000만 명. 그러나 이들을 위한 보호책은 아무것도 없다.(Washington Post, March 22, 2020; “Most renters won’t receive eviction protections amid coronavirus pandemic under Trump proposal,” Fortune, March 20, 2020).

이제 임차인들에게 고작 남은 유일한 희망은 정부가 경기부양 패키지로 쏜다는 현금 1200 달러. 그러나 이전 회에서 이야기했듯이 대도시의 임대료는 사모펀드의 장난질로 엄청나게 올랐다. 그 돈 가지고는 턱도 없다. 설사 준다 해도 임대료 지급 날짜를 맞출지도 의문이다.(Washington Post, March 22, 2020). 그래서 트럼프가 쏜다는 현금은 기껏해야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그리고 소상공인들에게 대출해 준다는 돈들도 그림의 떡이다. 그것도 대출인데 이 사태가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닌데 또 빚을 져서 어떻게 갚는단 말인가. 그들이 이 시점에서 원하는 것은 대출 그 이상의 생명줄이다.(“Small Businesses Seek a Crisis Lifeline Beyond Loans,” New York Times, March 23, 2020; “Checks to Americans will ease the coronavirus slump, but they may not be much of an economic stimulus,” Los Angeles Times, March 18, 2020). 그러나 그것은 철저히 외면되고 오로지 구제금융의 혜택은 또다시 제국으로만 향하고 있다.

도표: 미국인 평균 수명은 소득 상위 1%의 남성이 하위 1%의 속한 남성보다 15년 더 오래 살며, 여성의 경우 기대수명이 10년 차이가 난다 <출처: 가디언>

 

코로나는 누구나 걸릴 수 있으니 공평하다?

코로나는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걸릴 수 있어 공평하다는 말이 나온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존슨 총리도 걸렸으며, 배우 톰 행크스와 그의 부인도 걸렸으니 말이다. 그런 거 보면 코로나가 신분을 안 가리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하긴 코로나바이러스에 눈이라도 달렸겠는가.

하지만 그 공평하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왜냐면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는 자는 지체 높은 고관대작들이었으니까. 제국들이었으니까. 그들은 테스트를 받아 확진 판정을 받는 것조차 대서특필된다. 어떤 이들은 그런 테스트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데 말이다. 이들은 조명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제국은 이들에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서민들이야 죽든 말든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직 자신들만 오케이면 된다. 자기들만 조명받으면 된다. 자기들만 병원 가서 테스트받고, 걸리더라도 병원 치료하고, 이제 다 나았네 하며 언론의 플래시를 받으면 된다. 자신들만 이 난국은 잠시 피하면 된다. 아니다. 제국은 이 난국을 또다시 자신들의 배를 불릴 절호의 기회로 삼을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벌써 그런 시도는 시동을 걸었다.

그래도 사태가 사태인지라 뒤통수가 몹시 따가웠는지 미국의 제국들이 서민들을 위해 고작 만들었다는 것이 테스트는 무료로 검사해주겠다는 조치였다. 그러나 걸렸으면 치료는 돈 내고 하란다.(“Coronavirus Tests Are Now Free, but Treatment Could Still Cost You,” New York Times, March 19, 2020). 몇천만 원이 나올지 모르는 병원비를 어찌하라고. 누가 감히 그렇게 하겠는가? 그것은 오히려 서민들을 두 번 울리고 완전히 절망에 빠트리는 것과 같다.(“Why are the rich and famous getting coronavirus tests while we aren’t?,” The Guardian, March 21, 2020). 그리고 그렇게 사태는 늘 과거처럼 변함없이 흘러가면서 미국인의 경제적 불평등은 수명의 불평등으로 고대로 이어진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부자와 빈자의 평균 수명은 10년 이상(남자는 15년, 여자는 10년) 차이가 난다.(“If Americans are better off than a decade ago, why doesn’t it feel that way?,” The Guardian, Nov. 5, 2019). 이것은 어김없이 이번 코로나 사태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슬프게도 돈 앞에서는 수명조차 불공평하다.

 

참고자료

김광기, 『부자는 어떻게 가난을 만드는가?』(파주: 21세기북스), 2016.

Callahan, David, The Cheating Culture: Why More Americans Are Doing Wrong to Get Ahead (New York: NY: Havest Book, 2004).

Giridharads, Anand, Winners Take All: The Elite Charade of Changing the World (New York, NY: Alfred A. Knopf, 2018).

Milanovic, Branko, Global Inequality: A New Approach for the Age of Globalizatio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16).

“The coronavirus is hurting millions of people. But there’s one person who could benefit,”Washington Post, March 26, 2020.

“As Coronavirus Crisis Unfolds, Sanders Sees a Moment That Matches His Ideas,” New York Times, March 26, 2020.

“’The universe is collapsing’: Bernie Sanders mocks Republicans over coronavirus aid – video,” The Guardian, March 26, 2020.

“Bill Ackman claims firm made $2.6bn betting on coronavirus outbreak,” The Guardian, March 25, 2020.

“Coronavirus Live Updates: U.S. Jobless Claims Are Highest Ever; House to Take Up $2 Trillion Stimulus,” New York Times, March 26, 2020.

“Coronavirus Could Spark a Global Recession,” U.S. News &World Report, March 16, 2020.

“Bernie Sanders: ‘If you’re a multimillionaire … you’re going to get through’ the coronavirus pandemic,” CNBC, March 16, 2020.

“To combat virus, L.A. will let homeless encampments stay up throughout the day,” Los Angeles Times, March 17, 2020.

“‘If I get it, I die’: homeless residents say inhumane shelter conditions will spread coronavirus,” The Guardian, March 19, 2020.

“‘Wash your hands’ is tough advice for Americans without soap or water,” The Guardian, March 23, 2020.

“Coronavirus and Poverty: A Mother Skips Meals So Her Children Can Eat,” New York Times, March 20, 2020.

“For the homeless, coronavirus is a new menace in a perilous life,” Washington Post, March 21, 2020.

“Many Americans’s Biggest Worry Right Now is April 1 Rent and Mortgage Payments,” Washington Post, March 22, 2020.

“Coronavirus Recession Looms, Its Course ‘Unrecognizable’,” New York Times, March 21, 2020.

“Morgan Stanley, Goldman See Virus Causing Greater Economic Pain,” Bloomberg, March 23, 2020.

“As layoffs skyrocket, the holes in America’s safety net are becoming apparent,” Washington Post, March 19, 2020.

“Economists Think the Next U.S. Recession Could Begin in 2020,” Wall Street Journal, May 10, 2018.

“U.S. Economy Flashes Signs It’s Downhill From Here,” Wall Street Journal, Oct. 29, 2018.

“The Economy Faces Big Risks in 2019. Markets Are Only Now Facing Up to Them.”, New York Times, Dec. 7, 2018.

“Any Coronavirus bailout must put workers first: Sen. Elizabeth Warren,” USA Today, March 20, 2020.

“Washington lobbyists in frenzied battle to secure billion-dollar coronavirus bailouts,” The Guardian, March 20, 2020.

“Most renters won’t receive eviction protections amid coronavirus pandemic under Trump proposal,” Fortune, March 20, 2020.

“’No heart. No understanding’: During coronavirus, renters face eviction uncertainty,” MSNBCNews, March 20, 2020.

“Small Businesses Seek a Crisis Lifeline Beyond Loans,” New York Times, March 23, 2020.

“Checks to Americans will ease the coronavirus slump, but they may not be much of an economic stimulus,” Los Angeles Times, March 18, 2020.

“Unemployment Spikes 33% Amid Coronavirus Pandemic,” US News and World Report, March 19, 2020.

“Why are the rich and famous getting coronavirus tests while we aren’t?,” The Guardian, March 21, 2020.

“Coronavirus Tests Are Now Free, but Treatment Could Still Cost You,” New York Times, March 19, 2020.

“If Americans are better off than a decade ago, why doesn’t it feel that way?,” The Guardian, Nov. 5, 2019.

“The Middle Class Faces Its Greatest Threat Since the 1930s,” Brookings, March 20, 2020.

“As Coronavirus Crisis Unfolds, Sanders Sees a Moment That Matches His Ideas,” New York Times, March 26, 2020.

“Coronavirus Tests Are Now Free, but Treatment Could Still Cost You,” New York Times, March 19, 2020.

“Facing eviction as millions shelter in place,” Washington Post, March 22, 2020.

 

김광기 경북대 교수의 연재 ‘인사이드 아메리카’는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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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생과 자각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연신 끄덕거리다 말미에 갸우뚱 물음표가 돋았습니다. 저 또한 메이지유신 150주년(2018)을 기해 일본에서 나온 서적들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문명개화’, 그간의 개화사 150년과는 다른 결의 서사가 가능할지, 그 가능성을 탐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동북지방의 안도 쇼에키까지 거슬러 올라 개벽의 단서를 찾는 것은 쉬이 수긍하기 힘듭니다.

‘당시의 사무라이 지배층을 “성인의 이름을 빌려 무위도식하는 도둑놈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하셨죠. ‘성인 중심의 지배질서를 정면으로 비판한 동아시아 최초의 사상가’라고 추키셨습니다. 글쎄요. 저로서는 문장의 들머리 ‘당시의 사무라이 지배층’이 더 도드라집니다. 18세기에도 여전히 일본은 무인이 다스리는 나라였던 것입니다. 유학적 소양으로 단련된 사대부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중국, 조선, 월남이 구현했던 문치주의 유교국가와는 일선을 긋는 동아시아 문명의 주변부였죠. 최근에는 메이지유신이야말로 그 기저에 유교화=중국화=근대화의 동력이 작동했다는 독법마저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무라이에서 사대부로, 무사에서 문인관료로 지배층의 세련화(=文化)가 천년이나 가로 늦게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왕후장상의 씨를 따지지 않는 전통은 동아시아에서 제법 오랩니다. 씨갈이, 역성혁명이 거듭되어 천자를 갈아치웠습니다. 그럼에도 만세일계 천황이 존재한다는 점이야말로 일본의 예외성입니다. 즉슨 성인 중심의 유교문명을 비판했다 하여 ‘개벽파’로 자리매김할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유학국가를 온전히 구현해본 적이 없는 일본서는 자칫 허수아비를 때리는 꼴입니다. 물론 중국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거리에 가득한 사람 모두가 성인이다.’ 하였던 15세기의 왕양명을 개벽파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병한 사진2 수운 최제우(위키)
수운 최제우

개화파와 척사파의 갈림길, 그리고 개벽파의 새길 내기는 적어도 동아시아의 맥락에서는 19세기 이후의 사태입니다. 이른바 ‘서구의 충격’, 자본주의 세계체제와의 조우라는 역사적 맥락을 소거하면 개벽파의 독창성과 독보성을 도리어 제거해버리고 맙니다. 자칫 여기저기서 시시때때로 개벽파가 출몰할 수도 있습니다. 영성이 충만했던 서구의 중세가 개벽기도 아니며, 토테미즘과 애니미즘의 범신론적 사유를 개벽과 직접 결부시킬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동학혁명이 그 이전의 숱한 민란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 또한 지배층에 대한 민중 반란이라는 흔하고 빤한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서구의 충격’이 촉발한 전대미문의 천하대란에 임하여 문명적 각성을 예리하게 품어내었던 것입니다. 개벽을 개벽답게 만드는 티핑포인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개벽파의 역사성에 대한 적확한 인식은 엄밀한 용어 사용과도 직결됩니다. ‘토착적 근대’라는 말이 저는 여전히 말끔하지 않습니다. 내재적, 내발적, 자생적 이라는 수사 또한 깔끔치가 않습니다. 죄다 자족적인 개념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타를 나누고, 내/외를 가르는 발상입니다. 세계사 다시 쓰기, 소위 글로벌 히스토리는 서구적 근대조차 내발적이고 자생적이고 토착적이지 않았음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과 계몽주의에도 아랍과의 교류, 아시아와의 교섭, 아프리카-아메리카와의 교역이 중요했음이 나날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서구의 계몽주의에 ‘몽골의 충격’과 한문으로 쓰인 동방경전의 알파벳 번역이 있다하여 그 가치를 폄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동학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토착적이고 내재적이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세계적이어서 소중한 것입니다. 내발론의 강박이 18세기 조선에서 서구적 근대의 맹아를 억지로 추출해내는 실학 담론의 패착을 낳았음을 통렬하게 비판한 점이 <한국 근대의 탄생>의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자폐적인 내발론과 자멸적인 외발론을 동시에 극복합시다. 선후(先後)를 따지기보다는 박후(薄厚)를 살펴봅시다.

13세기 몽골이 유라시아의 대일통을 이루었던 것처럼, 19세기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지구를 석권했습니다. 다만 그 편입과정에서 문명마다 나라마다 여러 갈래의 대응이 등장합니다. 한사코 거부했던 세력이 척사파입니다. 척사파의 양태는 중국에도, 인도에도, 심지어 서유럽에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편적인 개념입니다. 반대편에서 무조건 수용코자 했던 세력이 개화파입니다. 이 또한 여러 나라 여러 문명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옛 것을 고수한 척사파와 새 것을 추수한 개화파의 충돌이 보/혁 갈등으로 치달았습니다.

‘제3의 길’도 있었습니다. 낯익은 전통을 타파하면서도 낯선 현실의 혁파 또한 겸장했던 개벽파입니다. 자기 고집도 자기 상실도 아닌 자기 혁신을 도모했습니다. 척사파가 무책임하고 개화파가 무절제했다면, 개벽파는 응시하고 응수하고 응전했습니다. 척사파가 시대의 물결에 조응하지 못하고 조선의 적자에서 적폐로 떠밀려갔다면, 개화파는 서세동점의 파고에 휘말리고 휩쓸려서 조선을 배반하고 매국의 독배를 들이키고 말았습니다. 척사파가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면, 개화파는 깜빡 눈이 멀어버린 것입니다. 반면 개벽파는 반짝반짝 눈을 부릅떴습니다. 서늘한 눈으로 천하대세를 직시하고 빛나는 눈으로 나라다운 새 나라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각적 근대’라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즉 근대 세계체제는 단일합니다. 다만 그 근대세계에 임하는 태도와 자세의 차이로부터 학파와 정파가 분기합니다. ‘서구적 근대’라 해서 개화파 일색이 아닙니다. 그렇게 쓰인 서구사=개화사조차도 다시 쓰이고 있습니다. 서구에도 척사파와 개화파와 개벽파가 길항하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 이치로 ‘비서구적 근대’라고 하여 개벽파가 돌출했던 것도 아닙니다. 작위적인 지리적 구획을 복제하기보다는 사상적 지향에 방점을 두는 편이 이롭습니다. 제가 동학을 높이 치는 이유 또한 묵은 유학을 맹신하지도, 설은 서학을 맹목하지도 않은 탁월한 균형 감각 때문입니다. 구학을 답습하지도, 신학에 매몰되지도 않았습니다. 서구의 충격에 대한 가장 창발적이고 주체적인 응답(Response+Ability)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로 동학은 ‘자각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 개벽은 ‘자각의 탄성’이었습니다. 깨어나고 깨우치고 깨달아서 19세기의 유레카, ‘다시 개벽’을 외친 것입니다.

그래서 ‘개벽을 모르고서 한국의 근대를 논하는 것은 넌센스.’라는 말에 십분 공감합니다. ‘개벽을 누락한 한국의 근대에 관한 모든 논의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통쾌하기까지 합니다. 넌센스, 비상식과 몰상식이 판을 쳤습니다. 무식하고 무지했습니다. 그리고 근저에서 무심했습니다. 그 무심과 무지와 무식의 소산으로 쌓아올린 탑이 ‘실학’ 연구였습니다. 실학에서 동학으로의 회향, 개화에서 개벽으로의 회심을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헌판을 갈고 엎어 새판을 짭시다.

이병한 사진2 _인류세_ 전시 작품
인류세 전시작품(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카라라의 대리석 채석장)

 

2. 서세동점에서 인류세로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애써 이틀을 썼던 문장을 싹둑 지워버렸습니다. “실학과 동학”으로 써내려갔던 내용을 통째로 덜어냈습니다. 지금 이곳은 수운회관 15층입니다. 1월 15일 오전 9시 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어제부터 부쩍 창밖이 뿌옇습니다. 희뿌연 미세먼지가 시야를 온통 가립니다. 인왕산은 희미하고 청와대는 흐릿합니다. 왜 한국의 근대를 실학이 아니라 동학에서 구해야 하는지를 논하는 글이 어쩐지 한가해 보입니다. 갓 50일이 된 아들래미 얼굴이 떠올라 더더욱 답답해집니다. 개벽사 쓰기 또한 자칫 먹물의 고질병, 책상물림의 직업병일지 모른다는 노파심이 입니다. 현장감이 덜한 것입니다. 이번만큼은 에둘러 가지 않기로 합니다. 고준담론은 잠시 미루어두고 왜 또 다시 개벽인가, 돌직구를 던지기로 했습니다. 절박하고 절실하고 절절한 제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봅니다.

거듭 강조컨대 더 이상 서구와 비서구를 나누기 힘듭니다. 20세기형 인문학의 낡은 관습일 뿐입니다. 북반구(선진국)과 남반구(후진국)를 쪼개기도 여의치 않습니다. 20세기형 사회과학의 후진 습관일 따름입니다. 저는 이제 20세기 후반을 풍미했던 제3세계론이나 세계체제론에서도 별다른 자극과 영감을 받지 못합니다. 동도와 서도를 견주고 서세에 동세를 맞세우는 것 또한 철지난 발상이라고 여깁니다. 목하 한치 앞도 가리어버린 저 기후변화는 동/서와 남/북을 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의 지구가 있을 뿐입니다. 그 둥근 지구, 하나의 하늘 아래 동서남북은 갈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온누리와 온생명과 한살림이 있을 뿐입니다. 동도(東道)와 서도(西道)의 소모적인 논쟁을 뒤로하고 천도(天道)와 대도(大道)와 일도(一道)를 탐구합니다. 세계체제론(World System)의 국가간 경쟁을 훌쩍 뛰어넘는 인류와 지구의 공진화, 지구체제론(Earth System)을 모색합니다.

한살림 선언(1989)과 <녹색평론>(1991)도 이제는 어쩐지 미진한 감이 듭니다. 언젠가부터 동어반복의 식상함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생태학은 여전히 지상(地上)과 천하(天下) 사이에 주력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 사람의 길, 천지인의 근대화, 천인합일의 현대화를 천착합니다. 지하(지질학)와 천상(천문학)까지는 아우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활동이 지구의 물질대사는 물론이요 우주의 물질대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인류세’(Anthropocene)에 당도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 이미 오래인데도 혁신과 갱신에 게으릅니다. 인류사와 지구사가 합류하여 도달한 인류세(人類世)에 부합하는 새로운 사상, ‘다시 개벽 2.0’을 갈구합니다.

생태적 사유는 한사코 인간의 능력을 축소시키려 듭니다. 포스트휴먼, 만물 가운데 하나로 강등시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지구 위에 등장한 그 어떠한 생명도 지구와 우주의 행방에 영향을 미칠 만큼 능력을 확보하지는 못했습니다. 실로 획기적인 사태입니다. 가히 유례없는 사건입니다. 선천개벽 창세기(홀로세, Holocene)와 후천개벽 인류세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신의 뜻이나 자연의 법칙에 버금갈 만큼 인간의 역량이 증대된 것입니다. 45억년 지구사에서 처음으로 인류의 의지가 깃든 행동이 지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의지는 자연의 힘(force)과는 달리 억제되고 절제될 수도 있는 힘(power)이라는 점에서 절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즉 서구의 휴머니즘은 인간중심주의여서 문제인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인간 중심적이지 않아서 문제인 것입니다.

지구는 갈수록 인류의 이 집합적 의지에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이 엄청난 힘의 행사 여부를 선택하는 인간의 마음가짐(=정신개벽)이야말로 인류를 고유한 생명체로 우뚝 서게 합니다. 지구를 변화시키는 인간의 고유한 힘이 절정에 치달은 바로 이 순간에 인류의 고유한 특성을 외면하는 생태론이 갑갑하고 어색한 까닭입니다. 포스트휴먼을 궁리할 것이 아니라 네오휴먼을 연마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신인간(新人間)=신인간(神人間)이 도래하는 것입니다. 경쾌한 유발 하라리를 따라 라틴어로는 호모 데우스(Homo Deus)라 하겠습니다. 묵직한 의암 손병희에 기대어 한자로 풀면 인내천(人乃天)이 가장 적절합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며, 사람이 즉 한울인 것입니다.

160년 전 노이무공(勞而無功), 아무리 노력해도 헛되었노라, 하늘의 탄식을 들은 이가 최제우입니다. 유학의 천인합일에서 동학의 천인합작으로 도약하는 비상한 순간이었습니다. 하늘과 인간이 합작하는 인류세의 비전을 이미 내장하고 있던 것입니다. 제가 1848년 <공산당선언>이 20세기를 추동했다면, 1860년 <동경대전>은 21세기를 격동시킬 것이라고 호언하고 다니는 연유입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턱없이 모자란 발상입니다. 만인과 만물이 얽히고 섥히는 21세기, 경천(敬天)과 경물(敬物)과 경인(敬人)의 삼경사상야말로 자유-평등-형제애를 능가하는 시대정신을 담지하고 있습니다. 고작 ‘자유-평등-형제애’라고 해보았자 ‘경인’ 단 두 글자로 족합니다.

이병한 사진2 토론토 세계종교의회
토론토 세계종교의회

그러함에도 동학과 개벽은 여태 수줍습니다. 지난해 11월 토론토에 다녀왔습니다. 세계종교의회의 말석을 지켰습니다. 겨우 한국과 한반도 평화를 논의하는 자리에서만 동학과 개벽 얘기가 나지막이 오고갔습니다. 한국 연구자와 한국의 종교인들만 단출하게 모여 있었습니다. 크게 안타까웠습니다. 깊이 아쉬웠습니다. 딱하다는 생각마저 일어났습니다. 애가 탔습니다. 속이 쓰렸습니다. 입맛이 쓰디썼습니다. 세계종교의회 행사를 맞춤하여 토론토 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던 전시회 주제가 바로 ‘인류세’였기 때문입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다인종, 다종교, 다국적 인류를 지그시 바라보며 “신동학이 인류세의 학문이요, 또 다시 개벽이 인류세의 시대정신이라”, 전도하고 싶었습니다.

온타리오 호수를 산책하다 곰곰 궁리하노라니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 또한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퍼뜩 일어났습니다. 서세동점, 20세기의 수세적 입장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인류세에 맞춤하여 문장의 앞뒤 순서를 바꾸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신을 개벽하야 물질을 개벽하자’고 말입니다. 자각하여 구세하자고도 고쳐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를 갈고 닦아 인물부터 사물까지 만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 편이 인류세에 임하는 인류의 태도에 한층 더 부합하지 싶습니다. ‘다시 개벽’이 19세기의 자각이었다면, 21세기는 ‘또 다시 개벽’의 유레카를 외칠 만 한 것입니다. 고로 개벽파는 코즈모폴리턴, 세련된 세계시민마저 돌파합니다. 국경을 가로지르는 글로벌 엘리트들의 허위의식을 넘어섭니다. 개벽인이야말로 진정한 지구인이며, 하늘과 더불어 지구의 운명을 개척하는 개벽꾼이야말로 참말로 하늘사람입니다. 국민(國民)에서 천민(天民)으로, 국가에서 천국으로. 그런 기상과 기개가 있어야 기미년 100주년을 맞이하는 기해년의 ‘선언’(Manifesto)에 값할 것입니다.

이병한 사진2 온타리오 호수에서 본 토론토 시내
온타리오 호수에서 본 토론토 시내

 

그래야 개벽파를 한낱 학술 유행의 신종 아이템으로 회수하려는 각종 유혹과 회유를 떨쳐낼 수도 있습니다. 부디 동학을 연구하기보다는 신동학을 합시다. 신동학을 살기로 합시다. 앎의 전환에 그치는 탁상공론이 아니라 삶의 전환을 수반하는 수련과 수행을 수반합시다. 그래야만 민심의 감화를 이루고 천심의 감동을 일으켜 포교와 포덕 또한 가능해질 것입니다. 일파만파 지구에 파동을 일으키고 우주까지 파장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야 이 탁한 세상에 맑은 하늘을 되돌려줄 수 있습니다. 21세기에 태어난 후세들에게도 푸른 하늘 은하수를 되물려줄 수 있습니다. 꼬장꼬장, 깨작깨작, 자꾸 논문과 비슷해지려던 문장을 몽땅 지워버린 까닭입니다. 후련해졌습니다. 속이 다 시원합니다.

금, 2019/01/1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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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천하

이병한 선생님, 새해 벽두에 보내주신 개벽소식 잘 받아보았습니다. 마침 새해 첫 출근길이었습니다. 천지가 잠자고 있을 때 서울에서 보낸 편지를 천지가 깨어날 무렵에 열차 안에서 읽을 수 있다니, 새삼 물질개벽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첫날 일과를 마치고 대학 근처의 심야카페에 와서 답장을 쓰고 있습니다. 곧 자정이 되려 합니다.

편지를 일독하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논어』에 나오는 “후생가외”라는 말의 의미였습니다. 대개는 후학의 <실력>의 출중함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인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실력>보다도 <힘>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세대의 기상이 넘쳐 기성세대가 두려움을 느낄 정도라는 것이죠.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프레시안》에 쓰신 글의 부제가 “유학국가에서 동학국가로”여서 깜짝 놀랐는데, 이번에는 “개벽국가의 탄생”이라는 표현에 거듭 놀랐습니다.

제가 아무리 개벽파를 자칭한다고 해도 “동학국가”나 “개벽국가”와 같은 대담한 표현은 감히 쓰지 못합니다. 지식이나 지혜는 배울 수 있을지 몰라도 기개나 기운은 압도당하는 것이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정보가 공유되는 세상에서는 “역발산(力拔山) 기개세(氣蓋世)”와 같은 패기가 정말 중요하겠다 싶습니다. 지난 겨울에 소개해주신 하자센터의 ‘공공하는 청년들’에게서도 같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한반도의 대통령인양 나대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거리로 뛰쳐나와 남북평화를 노래하기 시작했더니 거짓말처럼 남북대화가 시작됐다는 그 용감한 십대들 말입니다. 평화의 뒤에는 용기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런 패기는 젊은 세대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있었던 원광대학교 시무식에서도 박맹수 신임총장께서 “개벽대학”이라는 표현을 쓰시더군요. 신임 이사장님도 신년사에서 같은 표현을 쓰셨고요. “원광대학이 다시 개벽하여 개벽대학으로 만들자”는 취지였습니다. 이 기세에도 제가 압도당했습니다. 두 분 다 저보다는 한 세대 위의 분들입니다. 이번에는 “선생가외”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 이념으로 “개벽의 일꾼”을 길러내자고 개교한 원광대학교가 왜 그동안 “개벽대학”이라는 슬로건을 내놓지 못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혹시 뭔가에 억눌려 주저주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개화(서학)나 척사(유학)에 억눌려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원광대학교의 모습이 그동안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첫 번째 화두로 제기하신 중국의 ‘다시 천하’ 이야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중국의 근황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득 “천하위공(天下爲公)”을 “천하이공(天下二公)”으로 바꿔야 하는 시점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이 스스로를 ‘공’(보편)이라고 자처하던 시대에서 미국이라는 새로운 ‘공’이 등장하게 되었으니까요. 고공(古公)과 신공(新公)의 상박(相搏)이라고나 할까요? 아마도 이 이공(二公) 사이에서, ‘척사’와 ‘개화’ 사이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서, 김태창선생님 식으로 말하면 ‘공공’을 열기 위해서, ‘개벽’을 들고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식의 근대의 시작이었고, 그래서 “한국 근대의 탄생”은 “한국 개벽의 탄생”으로 바꿔 말할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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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시 근대

사실 제가 ‘한국의 근대’라는 진부한 주제를 다시 꺼낼 수 있기까지에는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의 ‘인도-아프리카 연구’와 선생님의 『유라시아 견문』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학에서 원불교에 이르는 개벽종교만으로는 “개벽이 근대”이고, 그 근대는 “영성적 근대”였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프리카가 그랬고, 인도가 그랬고, 이란이 그랬고, 러시아가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성속합작”을 하고 있다는 전문가와 견문가의 ‘증언’을 듣고 나서야 확신이 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선생님께서 작년 5월 1일에 원광대학교에서 발표하신 <나와 동북아시아/유라시아 연구>의 충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치 『장자』에 나오는 우물 안 개구리가 동해의 자라에게 바다이야기를 처음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동안 동아시아 전통과 서구 근대에 갇혀 있던 자신의 좁은 시야를 뼈저리게 반성하게 해준 자리였습니다. 30여 년 전에 서울에서 김용옥 선생님의 동양학 저서를 처음 접했을 때, 그리고 15년 전에 일본에서 Brook Ziporyn 교수의 노장 해석을 처음 접했을 때 이후로 받은 세 번째 지적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작년에 꼽은 최고의 글은 당연히 선생님의 견문록입니다. 특히 《프레시안》에 실린 두아라 교수와의 인터뷰, 1979년의 이슬람혁명 이야기, 그리고 《한울안신문》에 실린 인터뷰가 압권이었습니다. 세상이 ‘다시 개벽’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칭 ‘개벽파’라면서 원광대에 나타나셨을 때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우리의 치우친 근대사를 다시 쓸 수 있는 고수가 나타났구나 하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도 한국의 젊은이들 중에는 과거의 제가 그랬던처럼, 개화와 척사 사이에서, 서학과 유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적어도 다음 세대에게만큼은 제가 걸었던 것과 같은 정신적 방황의 길을 반복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앞 세대를 원망하면서 살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디 잊혀진 ‘개벽사’를 복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3. 부채와 치유

몇 년 전에 우연히 서울의 홍은동에 있는 대종교 총본사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총본사라고는 하지만 굽이굽이 비탈길을 올라가서 산꼭대기에 허름한 건물이 두어 채 있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 놀란 것은 창고에 방치된 채 쌓여 있는 방대한 대종교 경전과 문헌들이었습니다. 그 귀중한 문서들이 전혀 관리되지 않은 채, 방 한 곳에 랩으로 쌓여 있었습니다. 도서목록도 없었고 자료정리도 전혀 안 되어 있었습니다. 자료실이나 박물관 같은 것은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럴 인력이나 재정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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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중추였음에도 방치되어 있는 대종교 문헌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이나 안동에 있는 국학진흥원에 비교하면 너무나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유학 연구에는 나라에서 방대한 재정을 쏟아 부으면서 정작 항일독립투쟁을 가장 치열하게 전개했다고 하는 대종교에 대해서는 왜 저렇게 냉정하고 무심하나 싶었습니다. 신종교라는 편견이 있어서일까요? 이렇다 할 가문이 없어서일까요?

저는 비록 종교는 없지만 그냥 한국의 소중한 사상자원으로 느껴졌습니다. 가문을 떠나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주벌판의 혹한의 전장에서, 혹독한 감옥에서, 수련을 해가면서 써내려간 경전과 문헌들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대 규장각, 고전번역원, 안동의 국학진흥원… 온통 조선시대 유학을 연구하는 기관들뿐입니다. 이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한국학의 편중과 독식을 뼈저리게 절감하게 해준 사건이었습니다. 유학이 싫어서가 아니라 불균형은 불건강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오구라 기조 교수가 한국인들은 ‘우리’ 아니면 ‘남’이라고 했는데, 유학은 ‘우리’지만 대종교는 ‘남’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대종교는 비록 ‘개벽’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을지 몰라도 ‘개천(開天)’을 말했습니다. “새로운 하늘을 연다”는 개천은 “새로운 세상을 열자”는 개벽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종교도 큰 틀에서는 개벽종교이자 개벽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개벽이 ‘부채’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공에 상관없이 이 땅에서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과의례처럼 연구해야 할 숙제 같은 느낌입니다.

개벽을 모르고서 한국의 근대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최근에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온 『문명의 대전환을 공부하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근대성에 관해 토론한 책이었는데, 어느 선생님께서 “개벽파는 척사파의 일종이 아닌가요?”라는 발언을 하시더군요. 불과 몇 년 전의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개벽사상을 모르고서 한국의 근대를 논한다는 것은 계몽주의를 모르고서 서구의 근대를 논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한국의 근대에 관한 모든 논의는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모래성을 쌓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개벽의 역사는 어두운 과거, 패배한 역사라서 보기가 싫다고도 하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피해가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면서 개벽사를 읽어내려 가다 보면 거기에도 밝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부채’이자 동시에 ‘치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적하신대로 중국의 지식인들이 천하를 고수하고, 일본의 위정자들이 개화에 기댈 때, 한국의 민중들은 개벽을 창안했기 때문입니다.

 

4. 개벽의 힘

지난 연말에 일본의 동북대학에서 ‘토착적 근대’를 주제로 한일공동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발표자로 참석하신 동경대학교의 이타가키 유조 명예교수께서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동학의 보편성을 설명하는 일이다”는 총평을 하셨습니다. 주최측인 동북대학의 가타오카 류 교수는 학술대회 후기에서 “한국의 동학이나 촛불혁명과 비견할만한 일본사상의 지하수맥을 발견하는 작업을 한국과의 공동연구의 형태로 지속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근대성을 주제로 몇 년 동안 지속적인 학술교류를 한 끝에 마침내 양국 연구자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졌음을 느꼈습니다. 비록 소수의 인원이었지만 해원상생의 가능성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이 “개벽의 힘”입니다.

일본 동북대학에서 열린 학술대회

학술대회가 끝나고 우리는 일본적 개벽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하치노헤에 있는 안도 쇼에키 자료관을 방문했습니다. 18세기에 동북지방에서 활약한 안도 쇼에키는 극심한 기근에 3천여명의 농민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당시의 사무라이 지배층을 “성인의 이름을 빌려 무위도식하는 도둑놈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성인 중심의 지배질서를 정면으로 비판한 동아시아 최초의 사상가였습니다. 동학식으로 말하면 향벽설위에서 향아설위로의 전환을 시도했다고나 할 까요? 비록 동학처럼 세력화가 되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메이지시대에 농민들과 함께 공해반대 운동을 벌인 다나카 쇼조의 유적지를 찾아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지적하신대로 개벽의 가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서구 근대의 중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최근에 일본에서 활동하는 어느 중국인 연구자가 한국에 와서 “전 세계에서 서구 근대의 독을 가장 많이 먹은 나라는 한중일 삼국이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곡을 찌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정작 중독이 된 당사자들은 이 말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아프리카 케냐의 작가 구기와 지 옹오는 “정신의 탈식민지화”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디톡스 작업이야말로 개벽학에서 말하는 정신개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아직도 개벽이 여전히 진행중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으로 첫 번째 답신을 마치고자 합니다. 좋은 대화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금, 2019/01/1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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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 천하?

새해 첫날입니다. 동트기 전, 고요한 새벽입니다. 2019년을 선생님과의 서신으로 출발합니다. 두근두근, 한 해를 여는 신고식입니다. 심호흡을 깊이 하고 반듯하게 자리에 앉았습니다. 처음처럼, 새 마음을 새깁니다. 지금 이 순간의 초심을 6개월 내내 지속하고 싶습니다.

지난 연말을 돌아봅니다. 학술행사 참여 차 베이징에 다녀왔습니다. 마침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춤한 때였습니다. 천안문 광장의 국가박물관에서는 ‘위대한 변혁’을 주제로 한 전시가 한창이었습니다. 한참을 줄을 서고 기다린 끝에야 겨우 관람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실망스러웠습니다. 고속철도, 고속도로, 고속인터넷, 세계 최장의 교각과 달 탐사 등 시종 물질개벽의 성취를 일방으로 선전합니다. 경제강국, 기술강국, 우주강국, 군사강국만 도드라지게 꾸며두었습니다.

물론 지난 40년 중국이 이룩한 상전벽해는 괄목할 것입니다. 그 성취를 더욱 실감나게 해준 것은 공교롭게도 기내에서 시청한 영화 한 편이었습니다. 제목이 유별납니다. <Crazy Rich Asians>. 아시아인이라고 했지만 실은 중국인 이야기입니다. 더 정확히는 ‘글로벌 중국인’이라 해야겠군요. 도입부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주인공 커플이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나눈 대화가 지인의 SNS를 통해 싱가포르에 계시는 부모님에게도 곧장 알려집니다. 뉴욕, 상하이, 홍콩, 타이베이, 싱가포르, 런던 등 글로벌 도시들을 가로지르며 실시간 이어지는 연결망이 대단합니다. 200년 오래된 화교 네트워크와 20년 새로운 온라인 네트워크가 결합된 21세기의 디지털-화교망을 실감나게 연출합니다. 누천년의 아날로그 공동체와 새천년의 디지털 커뮤니티가 합류한 모양새입니다. 신대륙과 구대륙을 아우르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횡단하는 글로벌 차이나의 현재입니다.

‘Crazy Rich’, 영화 제목이 상기하는 것처럼 중국은 이미 물질개벽의 수준에서 미국과 유럽에 육박했습니다. 구미를 능가하는 것 또한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격차는 더더욱 벌어질 것입니다. 2049년, 중화인민공화국 일백주년에는 명실상부 G1이 될 공산이 큽니다. 새로운 현상만도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오래된 지위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세계사는 아편전쟁 이전으로 반전하고 있습니다. 저 나라의 지도층이 부쩍 ‘책임대국’을 강조하는 것 또한 ‘익숙한 미래’를 예비하고 대비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 준비의 일환으로 사상계에서는 ‘천하’나 ‘대동’이라는 말도 자주 쓰고 있습니다. 이번 베이징대학의 한 연구소 개소식 또한 ‘천하’를 핵심 키워드로 삼고 있었습니다. 천하질서가 무너졌다고 호들갑이었던 것이 불과 120년 전입니다. 동아시아인의 장구한 역사 감각으로 미루어 보면 백년의 대란은 잠시, 일시에 그칩니다. 일치일란(一治一亂)의 한 주기, 변주일 뿐입니다. 천하는 붕괴되기는커녕 더욱 확장되고 심화된 형태로 다시 굴기하고 있습니다. 이번 세기에는 동아시아로만 한정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따라 아랍으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아메리카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천하위공”(天下爲公)이라는 오래된 사자성어가 “Global First”라는 신조어로 번안되고 있음을 곳곳에서 목도합니다. 보호주의로 퇴각하고 국가주의로 퇴행하고 있는 구미에 맞선 대안적 지구사상으로 매력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신천하, ‘다시 천하’의 기세가 하늘을 찌릅니다.

동아시아인으로서 천하의 귀환을 마다할 것 없다 여깁니다. 40년 항산을 갖추었으니, 다음 40년은 항심을 다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천하론을 추수하는 것만으로는 썩 석연치 않습니다. 지난 백년을 지나 ‘다시 천년’으로 복귀하는 것 또한 영 마뜩치 않습니다. 다행히도 천하대란의 벽두, 우리들의 선조들이 자생적으로 토해낸 모던한 개념이 솟구쳤습니다. 바로 ‘개벽’입니다. 저들에게 ‘천하’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개벽’이 있습니다. 저들이 끝내 ‘천하’를 고수하고 사수할 때, 우리는 ‘개벽’을 창안하고 창조했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선생님의 책 <한국 근대의 탄생>을 다시 펼쳐 든 까닭입니다. 저에게는 단연 2018년 ‘올해의 책’으로 꼽는 수작입니다. 완미해서가 아닙니다. ‘다시 개벽’의 물꼬를 틔우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21세기 다른 백년, 다른 나라, 다른 문명의 단서가 숱하게 묻혀있는 보물창고 같은 저서입니다. 부디 더욱 널리 읽혀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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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시 개벽!

아시다시피 저는 유라시아를 천일 간 유랑했습니다. 근대의 고약한 시공간 개념을 철폐하고 싶었습니다. 공간적으로 서구와 비서구를 무 자르듯 나누고, 시간적으로 전통과 근대에 만리장성을 쌓아둔 딱딱하고 단단한 고정관념을 부셔버리고 싶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가 다시 합류하고 고전과 미래가 소통하는 21세기의 포스트모던한 진풍경을 두 눈에 담고 두 발로 누비고 싶었습니다. 귀로에 접어들며 뜻밖의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서구적 근대가 산출한 겹겹의 분단체제의 심층에 성(聖)과 속(俗)의 분단체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상과 지상의 분단체제라고도 하겠습니다. 자연과 자유의 분화라고도 하겠습니다. 속이 성을 압도했습니다. 지상의 논리가 천상의 도리를 압살했습니다. 자유가 자연에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그 근대화=세속화의 교조주의가 곳곳에서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성과 속이 다시 합류하고 있는 모습을 도처에서 목격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성속합작’이라고 말을 즐겨 쓰게 된 연유입니다. 탈서구적 세계화, 지구적 근대의 정수였습니다. 허나 탈세속화의 끝이 비단 종교의 귀환이 아니었음이 백미입니다. 기성종교가 축적한 문명적 자산이 대안적인 ‘라이프 스타일’로 업데이트되고 업그레이드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영성화’라고 표현합니다. 특정계급만 향유하던 일상을 한층 성스럽게 영위하는 삶의 기술이 대중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삶의 양식의 추구가 ‘새 정치’도 추동하고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2.0’, 권리(權利)의 민주화에서 천리(天理)의 민주화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전혀 낯선 모습만은 아니었습니다. 거듭 거푸 동학운동을 떠올렸습니다. 사람을 하늘로 모시고 만물을 한울로 섬기는 동학이 목하 지구사의 대세, 메가트렌드와 합치한다고 여겼습니다. 귀국하면 신동학 운동에 투신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 자신을 ‘개벽파’로 자임하게 된 것입니다. 동무와 동지가 있을까, 동덕(同德)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눈을 찔러온 것이 선생님이 쓰신 일련의 논문들입니다. 이틀을 몰아서 ‘조성환 읽기’에 몰두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찾아뵈어야 할 분으로 첫 손에 꼽았습니다. 처음 뵌 것이 작년 봄, 4월입니다. 익산의 원광대학교 앞, 아담한 카페였습니다. 그 후로 학교 안과 밖에서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넌지시 서신 형태의 연재를 제안한 것이 늦가을 무렵이었습니다. 기꺼이, 망설임 없이 수락해 주셨죠. 신이 났습니다. 흥에 겨웠습니다. 덕분에 신년 맞이가 더욱 신명이 납니다.

<개벽파 선언!>. 철학자와 사학자가 나누는 이 대화에 임하는 저의 기대부터 밝혀두려 합니다. 사학과 철학의 앙상블, 사상사의 졸가리를 새로이 세우고 싶습니다. 제 선생님과 선배님들이 서술한 한국근현대사는 한마디로 ‘개화사’입니다. 문명개화, 서구적 근대로 향해 진보하는 150년사를 뼈대로 삼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에 기초하여 1,500년 과거사도 기술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좌/우와 진보/보수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쪽은 식민지 근대화와 개발독재의 성취를 높이 치고, 다른 쪽은 항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높게 삽니다. 그러나 심급에서 ‘탈아입구’의 대서사는 공유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지구사의 대반전을 맞춤하여 ‘개벽사’(開闢史)를 새로이 쓰고 싶습니다. 1860년 동학 창도 이래 150년사를 통으로 갈아엎고 싶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턱없이 벅찹니다. 공부도 아직 미진합니다. 밑천이 모자란 정도가 아닙니다.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그래서 먼저 개벽사를 정리하고 계신 선생님의 도움을 긴히 빌고자 합니다.

개벽사의 서술은 개벽학의 수립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현재의 대학은 개화학교입니다. 학과체제부터 커리큘럼까지 온통 개화독재입니다. 절절하게, 열렬하게 개벽대학을 염원합니다. 그리고 새 학파의 등장은 새 정파 탄생의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개벽파를 규합하고 개벽당의 출범까지 내다봅니다. 물론 서두를 이유는 조금도 없습니다. 철학이 부재한 새 정당과 새 정치의 좌초를 이미 숱하게 목도한 터입니다. 정당보다 시급한 것이 학당입니다. 공교육 학교와 사교육 학원 사이, 학당의 새 길을 모색합니다. 공/사로 나뉘되 학교와 학원 또한 일백년 개화의 관성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응당 개벽학당의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할 것입니다. 개벽사의 서술, 개벽학의 수립, 개벽파의 규합, 개벽당의 출범, 그리하여 끝내 개벽국가의 탄생을 목도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먼저 마당을 깔고 피리를 불면 재야의 인재와 강호의 고수들이 속속 모여들기를 희구합니다. 무엇보다 다른 백년의 주인공, 새 천년에 태어난 1020세대의 호응을 깊이 갈망합니다.

 

3. 디톡스

바야흐로 2019년입니다. 3.1운동 100주년입니다. 3.1운동부터가 ‘다시 개벽’운동이었습니다. 19세말 천하대란 속에 좌절한 동학혁명이 3.1운동의 기개로 20세기를 열어젖혔던 것입니다. 1919년에서 다시 백 년 째, ‘또 다시 개벽’, 개벽 2.0을 궁리합니다.

옥스퍼드 사전이 2018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것이 ‘Toxic’이었습니다. 깊이 공감합니다. 과연 유럽과 아시아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극서와 극동이 하나의 지구를 공유합니다. 폭염과 폭한이 유난스럽습니다. 미세먼지는 나날이 극성입니다. 지난 백년, 개화득세의 후과입니다. 적폐 중의 적폐, 19세기말 문명개화 이래 누적된 ‘개화 중독증’을 서둘러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개벽파 선언>이 그 해독제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의 디톡스 운동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중독에서 해독으로, 포스트모던, 포스트 웨스트, 포스트 트루스 시대정신과도 부합합니다.

미리 오해는 피하고 싶습니다. 개벽이 개화를 능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개화와 개벽의 대합장/대합창을 도모합니다. 서방학과 동방학을 회통한 신동학을 추구합니다. 천주와 천하와 천도가 융합하는 다시 개벽을 소망합니다. 해원상생(解寃相生), 일방의 승리가 아니라 쌍방의 조화를 탐색합니다. 지난 연말, 한해를 마감하는 술자리에서 애용했던 건배사가 하나 있습니다.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 남긴 방명록 문구입니다. <한국 근대의 탄생>의 부제 ‘개화에서 개벽으로’야말로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에 딱 어울리는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맹목적 척사로 치달았던 북조선과 맹종적 개화로 내달렸던 남한이 다시 어울어지는 최선의 방편 또한 양쪽에서 공히 잊혀졌던 개벽파를 더불어 재건해가는 데 있다고 여깁니다. 2019년을 개벽파 재건의 원년으로 삼읍시다.

첫 글은 이쯤에서 닫습니다. 책에서 제기한 도전적인 내용들은 차근차근 여쭙겠습니다. 화면에서 눈을 거두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새 해가 떠오릅니다. 개벽의 새벽이 밝아옵니다.

목, 2019/01/0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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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R&D자금 6.7조원을 비롯하여 총 14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집행하고, 수많은 국책연구소와 과학관 등을 지휘하는, 대한민국의 기술과 과학 관련 최고 사령탑이다. 구체적으로는 과학기술정책의 수립·총괄·조정·평가, 과학기술의 연구개발·협력·진흥, 과학기술인력 양성, 원자력 연구·개발·생산·이용, 국가정보화 기획·정보보호·정보문화, 방송·통신의 융합·진흥 및 전파관리, 정보통신산업, 우편·우편환 및 우편대체에 관한 사무 등이다. 다시 말해 기술과 과학의 진흥을 통해 산업의 기반과 동력을 제공하고,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중차대한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고 담당하는 부처가 ‘눈먼돈’의 산실로,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하기보다는 일부 학피아와 봉건적 도제를 강요하며 세금을 탕진하는 자들의 보호자가 되고 있다는 과학기술 종사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 원성의 근원을 살펴 과기부가 제대로 설 수 있는 방안을 나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칼럼_181226

 

우리나라의 현재 – 산업혁명의 막바지, 구조조정이 필요한 때

우선 문제의 근원을 살피려면 우리나라의 현재 경제와 그와 관련된 과학기술적 상황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30~40년 간 산업혁명을 진행해 왔으며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여기서 산업혁명이란 영국이 1750년대 이래, 미국과 프랑스가 1830년 즈음, 독일, 일본이 1880년 즈음에 치렀던 전 사회적 차원의 변화로서 봉건사회체제로부터 자본주의화, 선진산업국가로의 전화를 말하는 것이다. 인구 5천만이상으로는 지금까지 6개 나라만이 (사회주의러시아를 포함하면 7개) 이 과정을 겪었고 이제 우리나라가 7번째가 되는 것이다. 그 전과 비교하여 경제 전반과 정치/사회/문화 모든 사회적 기반이 총체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예로서 스페인 같은 나라는 산업혁명을 아직 거치지 못한 나라로서 금융, 산업 전반에서 유로 다른 나라에 비해 후진적이며 자족적이기 보다는 대외의존 상태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1980년대까지 G5모임이 되어 오던 것이 이태리와 캐나다(인구 3천5백만)를 포함하여 G7이 된 것이다.

산업혁명의 중간에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중소기업들이 아직도 ‘테일러리즘(Taylorism)’ 혹은 ‘포디즘(Fordism)’ 수준에도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산업혁명이 완결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현재 1인당 GDP 3만불 언저리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성장이 멈추었다는 소리를 하는데, 이는 GDP가 실제 경제성장을 표현한다고 생각하는 주류경제학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환률조정 혹은 산업구조조정에 따라 국민소득이 변화하는 극적인 예를 말하기 위해, 1985년 뉴욕에서 있었던 플라자합의를 살펴보다. G5(미국제외)가 미국의 요구(레이건)에 따라 이미 5년간 50%의 평가절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를 해소한다는 명목아래 달러가치 절하, 마르크, 엔화의 절상을 결의했습니다. 그 결과 1년 뒤에는 달러 당 250엔에서 120엔대로 되었습니다. 이때 일본과 독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경제성장률은 3% 정도였는데 달러로 환산한 소득은 1년 만에 2배가 되었습니다. 1985년 플라자 경우는 극단적인 환률>>소득증가의 케이스이지만, 미국의 적자가 계속되는 오늘날도 유럽이나 한국이나 중국 등은 환률의 변동요인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 수준의 산업국가에서조차 경제성장은 1년에 3% 넘기기 쉽지 않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떻게 4만불, 5만불 소득의 국가가 될 수 있을까? 답은 산업 구조조정, 산업 체질개선에 있다. 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면 자연히 환률은 (인위적으로 저작하지 않는다면) 조정되게 되어 있다. 일본이 그토록 격심한 환률 조정 상황에서 살아남은 것도 산업에서의 경쟁력이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에서의 경쟁력이 독일과 함께 세계 1~2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산업구조조정의 과정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제 실질적인 산업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중소기업의 세계화, IT화, 글로벌 수준의 기술 보유, 노동생산성 향상, 설비 고도화를 통한 구조조정을 통해서 국가의 미래를 찾아야 한다고 하겠다. (현재 우리나라 6만7천개의 중소제조업 회사들에서 대부분은 100억 미만 매출이 차지하고 있고 이들은 1인당 매출액이 1억이 채 되지 못하는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정책의 근거에는 1인당 매출이 3억 정도이고 업체수도 1/2정도로 통합되는 큰 그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국가, 사회적 차원에서의 재정, 기술지원과 노동정책이 준비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과기부가 제대로 해야 할 일 – 지원사업에서 직접성, 투명성 제고

과기부 정책의 기조는 기초과학기술과 교육을 담당하는 부분과 산업기술과 이를 뒷밭침할 과학기반을 조성하는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기초분야는 순수과학, 수학과 통계학, 전산의 토대과학을 지원하는 것으로 꾸준하고 일관성있는 사업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기초분야가 아닌 응용분야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는 R&D 자금은 용처는 물론 실제 현장과의 연관성과 파급효과를 따져서 지원되어야 한다. 즉 이 분야는 철저히 산업지원과 괘를 같이 해야만 하는 것이다. (많은 공과대학 교수들의 일탈, 연구비 유용 건들을 보면, 이 분야의 정부지원금을 ‘눈먼돈’, ‘먼저먹는놈이임자인돈’ 등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기부의 정책이 제대로 된 길을 가려면 위에서 말한대로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중소기업 산업지원분야는 철저히 중소제조기업을 위한 산학협력과 육성지원 사업으로 되어야 한다. R&D자금을 대기업에서 유용하지 못하도록 함은 물론이고 중소기업의 체질개선을 위해 집중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 예로써 생산기술연구원은 박사급 연구원들이 자신의 연구과제에 맞는 기업들을 찾아서 협업하는 절차를 선호한다. 이는 거꾸로 기술지원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이 먼저 생기원을 찾아와서 자신의 기업에 맞는 기술지원 가능 연구원을 만나는 과정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 과정이 지방대학의 산학협력에서도 마찬가지로 변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핵심과제 중의 하나인 일자리창출은 1만원 최저임금과도 닿아 있다. 질좋은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도 중소기업에서는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외국인 노동자조차 구하기 힘들어 하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결국 일자리 창출의 기조는 Job sharing/노동시간 단축과 중소제조기업 생산기술, 경영, 금융 능력 향상이라는 2가지를 동시에 진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과기부는 중소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의 R&D 예산을 집행하는 곳이다. 최저임금 1만원, 1만5천원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산업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일은 과기부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할 사업이다.

문재인 정부 핵심과제 중의 하나인 4차 산업 (Industry 4.0)의 진행은 당연히 과기부가 주도할 것이다. 스마트공장 추진, 기술혁신,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는 중소제조기업 구조조정을 통해서 이 과제가 제대로 수행될 수 있다. 대기업은 일자리 창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고 정부의 이들에 대한 지원은 이미 의미가 없다. 도리어 대기업은 곳간에 쌓아 둔 유보자금을 풀어서 협력업체 경쟁력 강화에 투자하는 것이 자신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기계설계(CAD/CAM), 금형제작, 로봇(CPS), 자동차전장, 센서제작, 해킹/보안, AI와 데이터베이스 등과 관련하여 집중지원과 체질개선이 요구된다.

성공하는 창업은 8~90% 정도가 현업에서 경험을 가진 인력들이 시작하는 경우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에게 창업, 그것도 서비스업종에서 창업을 하라면서 정부가 나서서 지원하는 것은 한마디로 산소통도 없이 심해로 뛰어들도록 하는 미친 짓이다.(지방의 많은 대학들은 교수들에게 창업창직을 유도하도록 하고, 그에 대한 정부지원금을 주고 있다) 실제로 창업지원은 이들을 위한 (금융지원)기반과 규제해소 등에만 집중한다면 성과를 볼 수 있다. 기존 중소기업 업종과 창업업종에 특별히 차별을 둘 필요가 없으며 도리어 산학협력을 강화하고 제대로 정착시켜 이와 연계하여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

과기부의 또 다른 축이 될 기초과학과 기술 진흥과 관련하여 보자면, 올바른 연구환경 조성과 프로젝트의 통합이 필요하다. 우선 먼저 혼란스러운 정부출연과 프로젝트들을 과감하게 통합하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지나치게 세분되어 있는 연구지원체계를 조정하여 중심적인 Post를 정한 후 책임을 나누는 분권화 정책도 필요하다. 자연과학과 수학, 전산 각 세부 분야 당 나뉘어진 연구중심을 적절히 통합하고 일상적 지원은 분권화된 연구중심이 담당하고 시의적 지원은 중앙에서 지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감사기능의 강화는 시급하다. 감사기능의 강화를 통해서 연구환경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연구자들의 열악한 처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국민세금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주체들로 내외부 감시와 고발을 활성화해야 한다. 도제식 전근대적인 연구환경이 일상적인 국내실정에 대하여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여 이를 뒷받침하는 형태가 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루빨리 연구환경의 정상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학교, 연구소, 정부와 기업출연 연구중심들을 표준적인 연구환경과 투명한 비용관리를 감당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첨언) 문재인 정부의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당장 해체되어야 한다.

1) 우선 위원회의 면면이 산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며 설사 있다해도 2000년대 초의 IT붐 때처럼 IT로 한몫 잡자는 분위기를 옹호하는 것, 즉 앞서말한 온갖 허황된 미사여구로 눈먼돈에 빨대를 꽂으려는 행위에 대해 용인하는, 혹은 부추기는 사람들이다.

2) 더욱이 우리나라는 1차 아니면 2차 산업전환(혁명?), 아무려면 산업화의 중도에 있는데 즉 산업혁명을 한번도 제대로 완수하지도 못했는데 어찌 4차산업혁명을 말하고 있는가?

3) 또한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에서 그 단계 구분에서 ‘Industry 4.0’를 그대로 표절한 것이고, 더욱이 핵심적으로는 역사적 결절점이자 사회 전변을 의미하는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함부로 갖다 붙임으로써 인문학적 소양이라고는 개뿔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용어인 것이다. 실상은 이 말의 창시자라는 쉬밥은 기본적으로 장사꾼이고 이 사람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겠지만 문제는 우리나라가 그에 동조하는 업자와 매스컴의 말에 미혹되어 국가위원회를 만들고…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것 아니겠는가?

수, 2018/12/26-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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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로티 한 장을 위해서 생산지인 인도네시아에는 2불을 지불하는데, 이를 미국 소비자는 왜 70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가?

* 사람들은 이같은 가격체계에 대해 당연히 경제학이 설명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지금의 경제학 어디에도, 경제학자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실은 많은 사람들이 노벨상 경제학자가 주식해서 망했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현실의 경제현상에 대해 경제학이 설명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담 스미스가 1776년 국부론을 발표하였고, 맑스는 1867년 자본론 1권을 출간하였다.

국부론에서 말하는 생산시스템은 사실 자본주의 생산시스템이 아니다. 그가 제창한 균형이론, 즉 보이지 않는 손의 신화는 그를 경제학의 아버지,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으로 숭상하게 하고 있지만 정작 국부론에서 다루는 생산시스템은 본격적인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공장제 수공업 시대를 배경이라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그리고 당연히 스미스는 1820년대 처음으로 발생한 경제공황에 대해서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을 터, 즉 보이지 않는 손, 균형이 깨어지는 상황이 거의 7~8년간이나 지속되고 이후 매 10년마다 반복되는 비정상(?)상황을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칼 맑스는 영국이 한창 자본주의 금자탑을 쌓고 있던 1860년대에 자본론을 썼다. 그가 목도한 경제공황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폭발시키는 과정이었고, 그가 생각해낸 이윤율 경향저하의 논리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몰락의 길로 갈 것이라고 많은 이들로 하여금 믿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150년, 맑스시대 영국이 경험한 자본주의 역사, 100년 보다 1.5배는 긴 기간을 지내 오는 동안, 자본주의는 이윤율 경향적 저하론과 무관하게 비교적 자~알 지내고 있으며, 도리어 그 경쟁 상대였던 현실사회주의를 경쟁에서 패퇴시켜 인류유일의 경제시스템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 우리는 자본주의와 경제학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담 스미스의 살아 생전에는 본격적인 자본주의가 채 시작되지도 않았었는데 그 시점에서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기본원리로서 고전경제학이 시작되었고, 그 숭고한 잣구의 한 점 오류도 없이, 경제학은 해마다 노벨상을 받고 있다.

맑스 사후 150년 간 자본주의는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여 전 세계 80억 인류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생산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자본주의는 세계 유일의 경제시스템이며 어디에나 그의 제조공장을 만들 수 있고, 증권화를 통해 산업과 분리되어 있으며, 사람의 오감을 대신하는 기계적 장치로 인하여 자율 생산까지 가능한 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매 10년마다 불황, 혹은 장기적 만성불황이 일어나고 있고, 전혀 망할 기색 없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권력은 250년간 자본의 철옹성이지만 시민사회와 노동자들이 정치와 경제의 실제적인 소비자로 등장한 만큼, 그만큼의 지분이 존재하는 사회가 되었다.

* 잠깐 다시 처음의 폴로티의 가격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를 이야기해 보자. 여러분이 짐작하듯이 학생 때 잠시 안면이 있었던 노동가치설만 가지고는 인도네시아에서 미국까지의 그 험난한 과정을 설명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생산하는 곳과 소비하는 곳 사이의 엄청난 가치의 차이, 우리 주변에서 넘쳐나는 음식물과 생산이 많아 밭에서 썩히고 있는 농산물과 비교되는 수많은 아프리카 아동들의 굶주림, 이들에게 하루 1불이면 2~3명이 풍족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자본주의 경제학은 소비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왜냐하면 생산된 상품은 당연히 소비될 것이므로! 이는 맑스 경제학도 마찬가지이다. 즉 상품의 개념, 그 자체가 다른 상품에 의해 교환되어야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경제학의 출발점을 그대로 채용하고 있어서이다.

오늘날 인터넷 쇼핑이 오프라인 쇼핑을 압도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자본주의 초반에는 모든 생산이 상업자본의 의한 주문생산이 이루어졌다. 즉 1700년대 말에서야 근대적인 소매점이 생겼고, 귀족이 아닌 일반 자본가에게조차 상시적 소비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이때부터 산업자본이 상업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가능성이 생겼다. 그리고 그로부터 150년여가 지난 1900년대 초중반이후 노동자에게도 전면적인 소비의 기회가 주어진 대량소비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이제 인터넷쇼핑 시대, 유통의 힘이 생산을 압도하고 나아가서 소비가 생산을 압도할 준비가 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 2019년, 우리는 150년 전의 맑스는 상상하지 못했던 자본주의 세상, 생산과 분리된 자본의 시대, 국제금융의 시대, 새로운 노동에 의한 생산이 예고된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250년 역사를 통해서 발전해온 가치와 가격에 대한 사고를 보다 발전시켜야 할 때이다.

* 가치와 가격에 기본사고로부터 출발하여 현실자본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탐험이 필요하다. 모든 사변이 과학적이려면 그 사변의 근거가 되는 환경을 반드시 고려하여 생각해야 한다. 선언이 말하는 1800년대 노동자들은 지금의 노동자와 많이 다르다. 근대교육이 없던 시절의 노동자들은 신문물과 과학에 대해서 가장 감수성이 높은 계층이었다. 현실세상이 변하는 만큼을 사변, 학문, 특히 사회과학은 따라 가지 못한다. 우리는 현재의 우리 주변의 것이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를 이해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더욱이 학문이라는 것도, 역사적 사실들도 지배적 계층입장에서 보고 싶은 것들만 보니, 지금 우리 주변의 현상들이 아무리 자연스러워도, 그의 기원을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현대 종교도 생겨날 시점에서는 최고의 과학이며 인간 사고의 최고봉이었다. 하지만 200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2000년 전의 사고체계를 우러러 숭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고 생각해 보지는 않는가? 특히 산업혁명 이후 우리 인류는 새로운 종으로 거듭 났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인류는 자신만이 가진 것, ‘과학적 사고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참으로 게으른 종족이다.

* 일생의 노력으로 새로운 경제학적 사고를 시작해 보자. 자본주의 원리인 가격과 가치에 대해서, 맑스 사후 150년 지나고도 이윤율저하는 계속되고 있는지, 그리고 현실사회주의는 어째서 붕괴했는지,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는 현재 어떤 단계이고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현대 자본주의 내부에 위치한 화산들은 어느 지점에 있고 어떻게 분출될 것인지 등을 힘 닿는대로 밝혀 보고 싶다. (‘힘되는만큼’에 방점!!! ㅎㅎㅎ)

 

월, 2019/03/0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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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원칙의 준수

이번 호에도 계속해서 일대일로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논하도록 한다. 지난 호에서 언급한 대로 사회주의국가 하에서의 ‘국가자본주의 정책’이 해외 인프라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유리하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만약 그것이 사업의 효율성이나 투자된 자본의 안정성 등을 보장할 수 없다면 오래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막대한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큰 경제규모를 가진 국가라 할지라도 필경 한 나라의 경제력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과거 소련의 제3세계권에 대한 대외원조가 실패한 것은 그 좋은 예이다. 그것은 무상원조 중심의 정책지원금의 성격이 강하였는데, ‘효율성’ 혹은 시장원리를 무시하였기 때문에 갈수록 소련 경제에 큰 부담이 되어 오래 지속될 수가 없었다.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 역시 제3세계권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이 같은 방식의 지원을 적지 않게 수행하였다. 이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중국 경제에 더욱 짐이 되었던 아픈 경험이 있다.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중국정부는 ‘시장원리의 중시를 일대일로의 사업추진에 있어 중요한 원칙으로 내세운다. 이는 일대일로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주는 세 번째 이유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와 관련한 강령적 문건이라 할 수 있는 <비전과 전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시장의 작동을 견지한다. 시장의 법칙과 국제적으로 통상적인 규칙을 따르고, 자원 배치에 있어서의 시장의 결정적인 역할과 다양한 기업의 주체적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면서, 동시에 정부의 역할을 잘 발휘토록 한다.”

또한 바이두(Baidu)의 인터넷 사전 (百度百科)에서는 이하의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곁들어져 있다.

“2017년 5월 <‘일대일로’ 국제협력고위급포럼 원탁정상회의 공동발표문>에서 ‘일대일로’ 건설의 기본원칙을 강조하였는데, 그중 시장원칙을 포함하고 있다. 즉 시장의 역할과 기업주체의 지위를 충분히 인식하고, 정부가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며, 정부 구매절차가 개방, 투명, 비차별적이도록 한다. 일대일로 건설의 핵심 주체와 지탱 역량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다. 기본적 방법은 시장원리에 따르고, 시장화 작동방식을 통해 참여 각국의 이익 추구를 실현하는 것이다. 정부는 그 안에서 플랫폼의 구축, 시스템 창설, 정책적 인도 등과 같은 방향성과 서비스 기능을 수행한다.”

생산력발전을 자신의 중요 사명으로 삼는 사회주의로서는 결코 ‘등가교환’ 법칙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시장원리’를 무시할 수가 없다. 아무리 취지가 훌륭하더라도 스스로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러한 사업은 지속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등가교환’ 법칙이 현 생산력 수준에선 인류사회 발전에 유리하며 사회주의 생산력 발전에도 유리하다는 점은 이미 그간의 경험을 통하여 충분히 밝혀진 바이다. 또한 당대의 국제질서가 ‘시장경제’의 기초위에 서 있다는 현실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 따라서 ‘효율’이 일대일로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로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사업선정을 잘하여 충분히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그 수익성 역시도 잘 따져 보아야만 한다.

시장원칙의 적용과 관련하여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 비교우위론인데, 일대일로는 이에 입각한 상호교류를 강조한다. 예컨대,

“일대일로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보유하고 있는 생산요소가 천부적으로 다르고, 비교우위 차이가 뚜렷하며, 상호보완성이 강하다. 어떤 나라는 에너지 자원은 풍부하지만 개발력은 부족하고, 노동력은 넉넉하지만 일자리가 부족한 나라도 있다. 또 시장 공간이 넓지만 산업기반이 빈약한 나라도 있고, 인프라 건설 수요는 왕성하지만 자금이 부족한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가 세계 2위이고, 외환보유액이 세계 1위이며, 인프라 건설 경험이 많고, 장비제조 능력이 뛰어나고, 품질과 가성비가 좋아서 자금·기술·인재·관리 등에서 종합적인 이점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중국과 다른 일대일로 참여 측이 산업상의 연계와 우위를 서로 보완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필요성과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바이두)

사실 세계 각국이 보유하고 있는 발전 잠재력을 비교우위론에 입각하여 충분히 발휘할 수만 있다면, 지금의 세계경제가 부딪치고 있는 불균형과 경제위기는 그리 어렵지 않게 극복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간 무엇이 이 같은 비교우위론의 실현을 막아왔던 것일까? 그것은 국제독점자본에 의한 패권적인 국제질서이며, 자본주의 하에서 필연적인 ‘독점’ 논리 때문이다. 패권과 독점은 상호호혜 보다는 일방적 지배를 추구한다. 이제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과 같은 국제협력의 이니셔티브를 쥐게 됨으로써 비교우위론이 좀 더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중국 스스로가 패권질서에 대해 공개적으로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고, 미국 등 패권질서를 추구하는 세력으로부터 받는 포위망 때문에 평화적 공존공영을 실현할 국제질서를 절실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은 또한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 역시 보유하고 있다. 예컨대, 전 세계 1/5의 인구, 경제력과 기술 및 자금, 그리고 자체 성공적인 경제개발 경험, 개발도상국 인프라 구축에의 장기 투자를 감당 할 ‘국가자본주의 정책’의 활성화 등이 그것이며, 이는 또한 비교우위론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 측의 강점이기도 하다.

일대일로는 그 추진 전략의 세부 측면에서도 ‘합리성’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일대일로가 그간의 국제협력의 역사적 경험과 함께, 관련된 분야의 이론적 성과를 자신의 전략수립에 있어 충분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대일로 전략을 위한 이론적 기초와 기본원칙은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원리 중에서 특히 세계역사에 관한 이론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고 보여 진다(이하 관련 내용은 “ ‘일대일로’ 전략이 제출된 배후의 비밀”(“ ‘一带一路’战略提出的背后秘密”),九派新闻, 2016년02월28일에서 인용). 예컨대 일대일로 전략은 先 경제 後 정치의 협력단계 원칙, 先 중앙아시아·러시아 後 남아시아·동남아시아, 중동·아프리카, 마지막 유럽의 지정학적 추진 원칙을 적용한다. 경제적 측면에선 先 경쟁적 분야 後 자연독점적 분야, 마지막으로 공공재 분야로의 산업체진 원칙(产业递进原则)을 적용한다.

이들 각각의 원칙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먼저 ‘선 경제, 후 정치’의 협력원칙을 보자면, 이는 앞서의 마샬플랜과 비교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마샬플랜은 국제협력에 있어 정치를 앞세움으로써 편 가르기와 이념대결, 불공정과 불공평을 가져왔다. 정치는 아무래도 이데올로기적 색체가 강하고 현실 역량을 중시하며, 어떠한 생산적 활동을 동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를 꺾어야 내가 이기는 식의 ‘제로섬’ 게임이기 쉽다. 경제는 이에 반해 ‘중립적’이고 새로운 잉여를 창출할 수 있는 ‘생산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제로섬 게임이 아닌 ‘상호호혜’와 ‘상호공영’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경제와 정치는 긴밀한 연관을 갖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선후 관계는 현실에서는 매우 중요한 차이를 낳는다. 일대일로는 경제를 바탕으로 정치 관계의 진전을 추구하기 때문에 충분히 그 부정적 측면을 최소화 시킬 수 있게 된다.

지역별로의 선후관계는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먼저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5개국처럼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또 전통적으로 친밀하며 이해가 일치하는, 그리고 다른 한편에선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지역과 국가를 우선시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차츰 지리적으로도 멀고, 이념적으로나 발전수준에 있어 중국과는 일정 거리가 있는 나라로 확대해 나간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서유럽 국가들은 자연스럽게 맨 마지막 대상이 된다. 하지만 서유럽 국가들도 단일 패권질서를 추구하는 미국과는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에 이 역시 일대일로 사업에서 배제하지는 않는다. 이 부분은 일대일로가 서두르지 않고, 단계적이며 실용적이고 안정성을 갖춘 전략이라는 점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경제 분야에 있어 ‘선 경쟁분야, 후 독점분야’ 원칙은 일대일로가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수립되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시장경제는 공정한 경쟁과 효율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이 같은 정상적인 시장논리의 작동에 기초한 경제협력만이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 자연독점적 분야나 공공재로 갈수록 시장논리 보다는 공공이익과 같은 비시장적 논리, 등가교환 보다는 무상원조와 같은 일방적 관계가 강조된다. 때문에 비록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과거 소련의 원조가 실패한데서 알 수 있듯이 오래갈 수가 없다. 따라서 먼저 정상적인 경제관계의 기초를 마련한 위에서 차츰 공공재와 같은 ‘특수영역’으로 진출한다면, 이는 지속성을 담보할 뿐만 아니라 한 단계 높은 협력을 보장할 수 있다.

물론 이렇듯 시장원칙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것이 냉혹한 신자유주의와 똑 같다는 얘기는 아니다. 양자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가 존재하는데, 예컨대 신자유주의가 시장지상주의를 강조함에 비해 일대일로는 ‘호혜, 공영’을 표방한다. 실제 위 <비전과 전망>에서 보듯 ‘국가’의 적절한 역할에 대한 강조는 확실히 시장원리에 대한 보완이라 할 수 있으며, 일대일로가 무정부적인 시장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끝으로 서구와 국내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채무함정’ 문제와 관련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최근 스리랑카, 미얀마(버마), 파키스탄, 몰디부 등 일대일로 선상의 일부 국가들에 있어 연이어 부채문제가 발생하였다. 이에 대해 이들 언론들은 중국이 일대일로를 추진하면서 관련 개발도상국에 무리한 대출을 해주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일부러 빚더미에 앉혀 그걸 빌미로 이들 국가의 항구나 도로 등에 대한 중국의 半 영구적 통제권을 획득할 목적에서 그러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이는 사실상 과거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정책을 쓸 때 즐겨 쓰던 ‘조차지’와 비슷하다는 것인데, 실상은 과연 어떠한가?

우선 논리상 다음 두 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 일부 프로젝트의 특허경영권과 한 나라 전체의 채무위험을 결부시키고 있다. 어떤 개별 프로젝트나 기업이 직면하는 리스크와 국가채무 위험은 서로 별개의 것이다. 둘째, 개별 국가에서 출현한 문제를 일대일로 선상의 모든 국가를 포함하는 것으로 상승시키며, 또 이들 국가들 스스로 오랫동안 누적된 복잡한 채무문제를 간단하게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 탓으로 돌린다는 점이다(“ ‘일대일로’가 직면한 것은 ‘채무함정’ 인가 ‘여론함정’ 인가?”, (“一带一路面对的是‘债务陷阱’还是‘舆论陷阱’?”),《财经》杂志, 2018年12月10日).

먼저 아프리카의 예를 들어 보자. 세계은행의 통계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대중국 채무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으며, 특히 그들이 떠안고 있는 전체 외채에 대비할 때 더욱 그러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2015년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의 대중국 채무는 전체 외채의 단지 10%만을 차지하였다. 비록 케냐·앙골라·지부티의 대중국 채무가 다소 높긴 하지만, 이들 채무는 재조정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미국 싱크탱크인 ‘글로벌발전연구센터’의 <정책적 각도에서 바라본 ‘일대일로’ 창의의 채무영향> 보고에 따르면, 중국은 일찍이 많은 일대일로 선상 국가들의 채무에 대해 일정정도 채무를 경감하거나 재조정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위 《财经》杂志에서 소개된 내용임). 그리고 이들 아프리카 국가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의 부채가 많은 것은 역사적 원인이 있다. 세계은행 통계로는 197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20년간의 짧은 기간에 개도국 채무가 3000억 달러에서 1조5천억 달러로 5배 증가하였다.

각국별로 보자면, 화제가 되고 있는 파키스탄 채무위기의 경우, 미국 ‘글로벌발전연구센터’의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파키스탄의 외채총액은 약 580억 달러이다. 그중에서 중-파 쌍방 간의 채무는 약 10%이며, 나머지는 국제금융기구와의 다자간 채무이다. 중국 외교부장 왕이에 따르면, 중-파 간 일대일로 협력사업(CPEC) 틀 내 22개 프로젝트 중 18개는 중국 측의 직접투자이거나 원조를 제공하는 것이며, 단지 4개만이 중국의 우대 대출을 사용하는 것이기에 파키스탄의 채무부담을 가중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고로 파키스탄은 1947년 독립 후로 여러 차례 IMF의 원조를 받았다. 이 나라의 주요 채무는 대부분 2008년 전 세계 금융위기 후에 형성된 것으로 일대일로 때문에 급증한 것은 아니다. 파키스탄은 매년 이들 채무를 상환해야 하는데, IMF가 2016년 파키스탄에 대한 원조를 종결 짓고 거기에다 트럼프가 원조를 취소하는 바람에 파키스탄의 국제 지불능력 부족이 가중된 것으로 보인다. 2018년 10월 파키스탄 정부는 IMF에 120억 불 지원을 요청하였는데, 이는 지난 1980년대 말 이래 파키스탄의 13번 째 IMF에 대한 지원 요청에 속한다.

스리랑카의 경우를 보면, 10년 전 항구를 짓기 시작할 때와 금융위기 이후의 시장상황의 변화가 달라진 점을 고려하여야 한다. 문제가 된 한반토타항은 인도양의 주항로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요지에 위치하며 2007년에 짓기 시작하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해상운송 경기가 매우 좋았기에 인도양 해운량이 부단히 상승하는 상황이었다. 중국으로서도 인도양에 중간 기착항이 필요하였는데 이에 따라 양국은 항구 건설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 세계적으로 소비와 원자재 수요의 급격한 하락 때문에 국제 해운업의 대 침체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한반토타항 프로젝트는 경영난에 빠지게 되었으며, 중국은 자국 내 부실기업의 구조조정 경험을 살려서 이 항구의 부도처리를 피하기 위한 조치로 ‘채무의 주식 전환’(债转股) 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는 순전히 합리적인 시장처리 방식이라 볼 수 있으며, 이것을 가지고 소위 ‘채무외교’라고 지칭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보여 진다(이상은 위 《财经》의 북경대교수 왕쉬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 것이다. 더불어 이 잡지에서 언급한 몰디부의 부채문제를 소개하자면, 중국의 몰디부에서의 주요 인프라 프로젝트는 중-몰 친선대교인데 현재 이미 개통된 상태이다. 이 대교는 관광업을 경제적 지주로 삼는 몰디부에 있어선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주요 섬 간의 교통왕래를 가능케 할뿐만 아니라, 수도인 말리의 경제생활권의 발전을 추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채문제와 관련하여 보면, 대교의 건설비용이 몰디부에 대해 그리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12.6억 위엔의 총 투자액 중 91.8%가 중국 측이 부담한 것이며, 그중에는 45.6%의 중국정부 무상원조와 46.2%의 우대 대출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몰디부의 자체 자금은 겨우 총투자의 8.2%만을 차지한다. 살레 대통령이 말한 “몰디부 국고를 다 비웠다”고 하는 것은 몰디부의 채무 증가액을 분명 과장한 측면이 있다고 보여 진다).

다른 케이스도 내용은 비슷하다. 소위 ‘채무함정’과 관련된 보도는 대부분 일대일로의 의미를 축소하고 폄훼하려는 미국과 서구 언론의 의도가 많이 작용한다. 거기에 더해 피투자국인 개도국 내의 복잡한 정치상황이나 기회주의적 태도도 한 몫 거드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이 같은 국제여론을 빌려 대중국 채무를 단기에서 장기로, 장기에서 무상으로 자국에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려는 의도를 갖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시장원칙’에 관하여 살펴보았듯이 일대일로는 ‘효율성’을 중시한다. 관련된 프로젝트는 인프라 간의 상호 연결이든 산업·에너지 프로젝트이든지 모두 과학적인 타당성 연구를 거치고 엄격한 대출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이러한 프로젝트에 대한 심사와 연구는 모두 자본금 비율에 대한 요구, 자산부채비율에 대한 구속, 자본보상(투자수익)과 관련한 것들이다. 이런 기준에 미달할 경우 그 프로젝트는 통과되지 못하며, 이리하여 최종 선정된 프로젝트들은 대체로 경제성장과 민생의 개선을 촉진시킬 수 있는 ‘유효투자자산’으로서의 가치를 갖게 된다. 이 때문에 이들 개도국들은 비록 부채가 증가하더라도 자산 증가는 상대적으로 더욱 크게 되어 채무위기가 쉽게 현실화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 일대일로 사업으로 인해 부채위기가 실제로 발생한 사례는 거의 없다. 설령 그런 조짐이 보인다 할지라도, 그간의 선례에 비추어 중국정부가 적극적인 부채조정에 나섬으로써 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화, 2019/09/2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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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북미정상회담의 합의문 발표가 갑작스럽게 취소된 것은 필자가 기억하는 역사적인 사건들 중 가장 복잡하고 모순된 사건들 중 하나였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와 마이크 폼페이오가 결렬 직후 진행한 즉흥적인 기자회견은 전혀 복잡하지 않았다. 기자회견은 미디어를 의식하여 짜낸 진부한 쇼였고, 변명 이상의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으려는 꼼수였다.

트럼프는 김정은, 신조 아베, 시진핑 그리고 문제인과 맺고 있는 “깊은 관계”에 대해 이야기 했고, 그런 모습은 갑작스런 방송사고 프로그램의 공백을 채우려 애쓰는 심야 프로그램 코미디언 같아 보였다. 하지만 트럼프가 던진 긍정적인 언어들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앙들로부터 사람들의 눈을 돌리지 못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가졌던 “생산적인 시간”들에 대한 달콤한 말들이, 세계 곳곳에서 수직 상승중인 전쟁의 위험성을 가려주지 못 한 것이다.

솔직히 이야기 해 보자. 세계평화의 차원에서 봤을 때 북한은 특출난 위협이라기보단,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담으로 구축된 세계 질서가 붕괴되며 뒤따라 벌어진) 비교적 안정적인 섬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압제적이고 폐쇄적인 국가라는 사실은 특별히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미국은 어떤가? 현재 미국 정부는 정부로서의 전문성을 모두 잃었고, 이슈와 정책에 대한 분석은 급격히 사유화되었으며, 부가 극도로 집중되며 문화 또한 변질되어 가고 있다. 미국은 이제 고립주의와 군사주의로 빠져들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을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 제재완화에 대한 연방 의회의 강한 반발, 혹은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헨의 저속한 증언들로 인해, 하노이에서의 쇼는 어떤 결과도 얻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은 트럼프를 기다려주지 않고 있다. 핵 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전쟁의 기로에 서 있으며, 이 두 나라가 대립하는 이유 중 작지 않은 부분은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정치게임에서 나오고 있다. 미군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중앙 아시아,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에 개입하고 있으며, 새로 선출된 연방의회는 거기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것 같아 보인다.
남미에는 정치적 문제 해결에 강제력을 동원하겠다는 협박을 일삼을 뿐만 아니라 이득을 위해서 분별없는 반지성주의 풍조를 부채질하고 아마존의 우림을 파괴하려 하는, 나아가 인류의 멸망을 앞당기려 하는 브라질의 볼소나로 덕분에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동시에 네오콘의 사상적 쌍둥이라고 할 수 있는 엘리엇 에이브람스와 존 볼턴은 베네수엘라의 정권 교체를 위해 불철주야 일하고 있다.

그들은 마두로 정권을 무너뜨리고 다국적 기업들을 위해 석유생산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역겨운 행동 중 하나는 우익 상원의원 중 하나인 마르코 루비오가 본인의 트위터 계정에 리비아의 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사진을 올린 일이다. 이는 마두로가 계속 미국에 저항한다면 무아마르 카다피와 비슷하게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암시였다.

자원장악을 목적으로 하는 이러한 음모는 석유와 석탄 재벌인 찰스 코흐와 앤디 코흐 형제가 이끌고 있다. 이들이 또한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 듯한 북한의 금, 석탄 그리고 다른 지하자원들을 노리고 있다는 혐의의 기조에 큰 힘을 싣고 있다. 이는 김정은과의 회담에 있어서 트럼프가 이야기하는 경제적 기적이 북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제 투자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북한과의 접촉은 이란과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적대적인 행동들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하지만 이는 반쪽짜리 이야기일 뿐이다. 미국이 INF(중거리 핵전력 협정) 협정에서 탈퇴하게 하려는 존 볼턴의 행동들은 발전한 기술 덕에 1950년대에 있었던 군비경쟁보다 훨씬 위험한 군비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이란핵협상의 일방적인 파기와 더불어서, 이런 광기가 독일, 러시아, 중국, 미국, 터키, 일본, 인도 그리고 이란 사이의 군비 경쟁을 부추기고 있으며, 이는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앞서 말한 모든 나라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핵전력을 갖출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과 그의 참모들은 현재의 혼란한 정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찬에서 김정은이 지어 보였던 미소 뒤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하노이 2차 회담은 양측이 모두 극심한 자기기만을 받아들이고자 했기에 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시진핑에게 했던 친절한 말들은 미 국방성이 중국과의 전쟁을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지 못한다. 트럼프와 주변인들이 제재를 무역 정책의 일환으로 전쟁 위협을 협상 전략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어떠한 문민통제도 없이 미군의 힘을 사이코패스들의 영향아래 둔다면 이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미국 민주당의 반응 그리고 남한과 일본 보수층의 반응은 트럼프가 국제법을 무시하며 군사주의를 받아들이고 그의 파시스트적 기반에 영합하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비판들이었다. 미국이 모든 나라들이 핵 확산 금지 조약을 지키도록 하는데 실패하고 이란과의 핵협상도 파기되면서, 국방성은 1조 달러를 들여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기로 했다. 명백한 조약 위반이지만 이에 대한 업급이 금기시되는 주제이다.

 

반지성주의의 대두와 미디어의 부패
북미 정상화담의 뒤에 숨은 정치학적 의미는 간단하지 않았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지정학적 변화가 거대하다는 것이다. 각국의 정부들이 기득권과 타협하고 사익에 스스로를 팔아 넘기면서 정치인들은 재벌들에게 잘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우리의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침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는 다국적 기업이나 투자은행들을 답습하여 이 세상을 소개하고 있다. 미디어 또한 또 하나의 사업이 되었고, 기업체들의 홍보부 역할을 맡고 있다. 세상의 현 상태에 대한 지성적인 탐구는 없고, 뉴스를 만드는 데 있어서 도덕적 문제는 고려대상이 아니다.많은 기사들은 혼란과 오해를 부추기기만 하고 있다.
회담에 대해 미디어가 제공한 자세한 사항이라고는 김정은이 하노이까지 어떻게 기차를 타고 왔는지, 호텔과 외교적 관례에 주요한 지점 주위의 통행이 어떻게 차단되었는지 밖에 없었다.

미디어는 죽었고 반지성주의의 커다란 파도가 미국을 휩쓸었으며, 많은 나라들은 더 이상 비판적 분석이 불가능한 지경이 이르렀다. 우리 세상에 어떤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생각할 능력이 없는 것은 트럼프뿐만이 아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온라임 게임, 포르노 혹은 소셜 미디어에 중독되어 옹알거리는 바보가 되어가고 있고, 더 이상 복잡한 문제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퇴화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회담의 끝에 던져졌어야 할 중요한 질문은 “다음 회담이 언제 열릴까?” 가 아닌, “많은 단체나 기관들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문제를 토론하는 소통의 문화가 자리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누군가는 물어야 한다. 하노이 회담에서 어떤 주제들이 다뤄지지 않았는가?
어떤 것들이 우리 시대의 진정 중요한 주제인가?

세상의 부가 몇몇 사람들의 손에 급격히 집중되는 현실은 분명 트럼프나 김정은 누구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한반도를 사막화 시킬 수도 있는 기후 변화와 규제 없는 오염과 석탄 사용 증가로 인해 나빠지는 공기질 또한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북아에서 고조되고 있는 핵전쟁의 위험과 점점 가속화되는 군비 경쟁 또한 (이 문제가 북한이 가진 불안정성의 중심적인 이유였음에도)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그리고 남한의 군수업체들이 벌어들이는 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꼭 1차 세계대전 직전처럼 무기와 전쟁 위협은 주요한 수입원이 되고 있다.
정상회담에 대한 초점은 북한이 핵무기를 어떻게 포기할 것인지에 맞춰져 있었다. 이는 핵무기의 선제적 사용금지조차 천명하지 않은 채 전쟁위협을 거듭하고 있는 미국이 가진 수천 개의 핵무기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은 문제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또 한 차례의 정상회담이 자리한다고 해서 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시민들의 진정한 우려가 반영된 대화가 자리잡을 때 해결될 것이며, 국제 관계에서의 진정한 위협이 무엇인가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담은 담론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정책이나 행정부의 변화가 아닌 문화 자체의 변화를 필요로 할 터다.

목, 2019/03/0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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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의 K방역 사회공공정책의 전환을 말한다

 

취지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발생한지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백신이 감염병 상황을 종식시켜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확진자 수는 점차 증가하고 있고 변이바이러스 전파력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미 집단면역은 불가능하고 백신 접종률이 높아져도 감염병 재유행은 반복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사회는 감염병의 다른 국면을 맞이했고, 이에 따른 사회적 대응 전략도 달라져야 합니다. 종식을 기대하며 정부의 방역정책을 따르던 시민들의 삶은 지쳐가고 있습니다. 감염병이 우리삶 속에 존재하는 이상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담보되어야 하고, 의료와 돌봄 등 사회정책의 국가 책임은 더욱 강조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K-방역이 기로에 서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방역 정책을 다시 재설정해야 합니다. 이에 시민사회는 현재 우리가 당면한 감염병 상황을 진단하고, 우리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논의해 보고자 합니다. 

 

프로그램 

  • 일시 : 9/2(목) 오전 10시

  • 장소 : 온라인 /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참석자들은 오프라인)

  • 주최 : 참여연대,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보건의료단체연합, 공공운수노조

  • 프로그램

사회

변혜진(건강과 대안 상임연구위원)

발제 

코로나19와 방역&건강권_우석균(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코로나19와 사회정책_김진석(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토론

양난주(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공성식(공공운수노조 정책실장)

김현철(홍콩과학기술대학교 경제학 및 공공정책학 교수)

 

 

금, 2021/09/03-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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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작년 북한농업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강연에 중국인민농업대학의 원로인 원톄쥔 교수를 초빙하게된 배경에는 이병한 다른백년 이사와 김유익선생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습니다. 김유익 선생은 농업과 농촌의 미래적 가능성을 바라보며 원교수가 추진하는 중국의 신향촌 건설 사업에 참여하여 몸소 체험하고 있는 이 시대의 참으로 귀한 분입니다. 중국의 소위 삼농 사업은 실히 인류의 문명사적 대실험입니다. 생태문명의 실현이라는 대명제와 더불어 농민공을 합쳐 농촌에 적을 두고 있는 인구가 9억에 육박하는 가운데, 과학기술과 ICT 산업의 눈부신 발전으로 기존의 산업에서 일자리가 새로이만들어 지지 않는 상황을 맞이하며 중국 지도부는 젊은 세대들이 농촌에서 미래를 찾도록 정책적 지원과 조언을 진행하고 있으며, 다른 측면에서 미패권주의의 말기적 패악에 대응한 근거지로 중국 농촌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以農村包衛覇權 이랄까요. 오늘부터 시작되는 김유익 선생의 칼럼 ‘신향촌건설’에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베이징에서는 3월초부터 2주간에 걸쳐, 흔히 양회兩會로 불리는 인민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어김없이 중국 언론 지면은 그 소식으로 도배된다. 올해도 2월18일에 나온 (2019년)중앙 1호 문건으로 시작되는 중국의 대외 정치 메시지 발표 일정은 그렇게 이어진다. 그 메시지에 공통적으로 작년과 올해, 제일 먼저 언급된 정책이 무엇일까 ? 중미무역협상, AI와 전기자동차, 5G같은 첨단기술개발, 아니면 홍콩, 마카우, 광둥 지역의 11개도시를 선봉으로 삼는 粤澳港大湾区 개발?

정답은, 한국말로 읽으면 다소 촌스럽게 들릴 수도 있는, ‘향촌진흥鄉村振興정책’이다. 이게 중국의 새마을 운동 같은 건가 ? 사실 아닌 게 아니라 중국은 10년도 전에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열심히 벤치마킹했다. 그래서, 2005년부터 ‘신농촌건설운동’ 정책을 추진했었고, ‘화끈한’ 재정투입을 통한 그 성과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순탄하게 넘기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원톄쥔, “토지개혁으로 위기를 극복해온 중국” 녹색평론 2018년 1-2월호). 향촌진흥정책은, 어찌보면 중국 농촌 구석구석까지 도로, 전기, 수도, 전화, 인터넷 등의 ‘5통通’인프라를 완성한 ‘하드웨어판’ 신농촌건설 정책의 ‘소프트웨어판’ 후속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중국정부의 양회 공식 선전 웹사이트, 정책 심화 이해를 돕기 위한 문답식 설명 – 1번으로 향촌진흥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향촌진흥정책은 2017년 연말 세간의 화제가 됐던 19대 공산당 전당대회의 가장 중요한 의제중 하나였는데, 한국을 포함한 해외언론은 주로 시진핑 장기집권 레짐을 위한 헌법개정논란에 치중하다보니, 소홀히 다루어진 감이 없지 않다.

중국을 논하다 보면, 최근의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문제, 아니면 경제나 외교정치영역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는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중국 정부가 ‘삼농문제’(三農- 농민, 농업, 농촌)를 重中之重 – 가장 중요한 정책 현안으로 다룬 것이 이미 16년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 흐름의 형성과 실천에는, 흔히 상상하기 쉬운, 대약진 운동이나 문화혁명과 같은 관제 프로파간다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신향촌건설운동’이라는 민간 사회운동의 개입이 존재한다.

신(新)향촌건설운동이라 했으니, 앞서 향촌건설운동이 있을법한데, 그렇다면 역사공부부터 해보자. 올해가 삼일운동 백주년이라 새로운 다음 백년에 대한 다짐이 꼭 필요한 곳이 이 지면인데, 바로 그 당시, 굴곡많은 동아시아 근대화 여정의 초입에 벌어졌던 이웃나라의 이야기이니 우리의 역사 회감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에도 100여년전에 근대화를 고민하던 기라성같은 선각자들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마지막 유학자’로 불린 량슈밍(梁漱溟 1893~1988) 선생이 있다. 그는 약관의 20대에 명문 북경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됐는데 그 좋은 자리를 박차고 농촌으로 갔다. 그 핵심문화가 농업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농민의 나라 중국에서, 자주적 근대는 농민의 자각과 농촌의 변화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불교철학과 신유학의 대가로서, 제(諸)문명의 사상을 깊이 연구하여, 서구사상, 인도철학, 중국의 사유를 비교한 역저 ‘동서문화와 철학’을 남긴 국학대사(國學大師)답게, 동양 고유의 정신과 문화, 제도와 사회구조를 기반으로 어떻게 중국의 근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상아탑안에만 안주할 수 없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그는, 직접 농촌으로 들어가, 향촌의 문화와 자원을 기반으로 한 근대화 개혁 실험을 진행했다. 량슈밍을 비롯한 중국의 지식인과 계몽청년들이, 향촌을 기반으로 저마다 중국의 전역에서 벌였던 실험이 시작된 계기가 된 것은, 동아시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 특히 한국과 중국에게는 감격과 통한이 교차하는 사건이었던 1894년 갑오동학농민운동과 바로 이어진 청일전쟁이다. 굴욕적인 패전과 전쟁부채 배상 등으로 인한 막대한 손실이, 중국인들을 움직인 것이다. 이 당시에도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부국강병’의 꿈을 이루기 위해, 위로부터의 계몽을 통한 서구적 민주, 과학의 근대 혁명을 역설하고 있을 때, 또다른 일군의 지식인들은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꾀하며, 향촌으로 뛰어들었다.

특히, 허베이河北성 딩定縣현 쟈이청翟城村마을은 1904년에 지역엘리트였던 미춘밍米春明, 미디강米迪刚 부자의 마을자치 실험이 시작된 곳으로, 중국 역사상 최초의 향촌건설운동 실험지로 알려져 있으며, 1926년, 대표적인 향촌건설운동 지식인/활동가 중 하나인 옌양추晏陽初가 이를 이어받아 딩현에서 평민교육 운동을 펼쳐나가기도 했다. 또, 아들 미디강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의 농촌자치 실험을 공부하고 돌아왔다하니, 동아시아 삼국의 향촌건설과 농촌공동체 운동은 그 역사적 연원이 서로 몸을 섞고 있음에 틀림없다.

20년~30년대에 황금기를 맞았던 향촌건설운동은 중국 전역의 600여개 단체 1,000여개가 넘는 실험마을을 헤아릴 정도로 활성화됐다고 한다(中國鄉村建設 百年圖錄, 西南師範大學出版社,2018).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과 함께, 대부분 중단되었고, 일본의 침공을 피해 국민당 임시정부가 위치했던 충칭重慶에서 명맥이 유지되는 정도였다. 이곳 지역의 기업가인 루쭈어푸魯作孚의,항일활동과 병행된 향촌건설사업은 마침 이곳으로 피난왔던 량슈밍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일제의 패망, 국공내전을 거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됐을 때, 량슈밍과 같은 일부 향촌건설운동 활동가들도, 자연스럽게 새로운 국가의 건설에 참여하고 있었다. 중국 공산당의 승리는 마르크스/레닌이 서유럽의 상황에서 이론적으로 설파한 것과 같은, 도시 노동자가 주축이 된 것이 아니라, 농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량슈밍선생 (사진: 바이뚜백과사전)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중국 공산당의 향촌혁명파와 향촌건설파는 마오쩌뚱과 량슈밍의 관계가 협력과 긴장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것과 같이, 실천방법과 핵심주제차원에서 다른 방향을 취하고 있었다. 전자가 주로 무력투쟁에 의한 토지혁명과 그 운용을 지속적으로 고민했다면, 후자는 문화와 교육을 통한, 주민들의 자치역량 강화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하여, 기실 상당수의 향촌건설운동 참가자들은 대륙을 떠나 대만 등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1938년 량슈밍과 옌안延安의 토굴에서 밤새워 토론하는 마오쩌뚱 (중국 인민대학교 ZHOU Li교수)

이제 현재형 향촌건설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필자는 2015년부터 매년, 중국CSA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공동체지원농업)대회를 참관할 기회를 얻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국여성농민연합회, 한살림협동조합, 홍성의 풀무학교 공동체와 같은 단체들이 이 대회에 초청을 받아 연사로 참여하는 데, 다리 놓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작년 연말에도, 중국 각지에서 1,000여명 이상의 국내외 농민과 활동가, 학자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다. 이번 행사가 10회차였고, 중국 최초의 CSA 농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베이징 교외의 작은당나귀 농장도 마침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국내에는 ‘채소 꾸러미’로 더 잘 알려진 CSA 개념을 실천하는 농장들이 이미 중국 전역에 2,000개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면, 어떤 이들이 이런 농장을 운영하고 있을까? 이들 대부분이 바로 중국에서는 반향청년(返乡青年)이라 불리는 귀농청년들이다. 또 이들중 대다수는 소농이자 가족농장, 혹은 우리로 치면, 영농조합법인 정도의 중소농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가 얼굴을 아는 생산자를 만나는 것이 CSA의 핵심요건중 하나임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이다. 또 필연적으로, 친구나 가족같은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꼭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해야 하고, 그래서 생태농업, 즉. 유기농 혹은 자연농을 경작방법으로 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향촌건설운동’의 성과인 것이다. 그럼, 대체 누가, 왜 ‘신향촌건설운동’을 제창하고 참여해왔을까? 그것은 민간 조직의 NGO 활동가들과 함께하는, ‘깨인’ 생산자와 소비자들이다. 그리고, 100년전 향촌건설운동에 량슈밍이 있었다면, 신향촌건설운동에는 중국 삼농문제의 최고 권위자중 한명이며 스스로를 역시 이 운동의 견결한 자원활동가로 칭하는 인민대학의 원톄쥔(溫鐵軍)선생이 있다.

중국인민대학교 원톄쥔(Wen Tiejun) 교수

원톄쥔은 중국을 연구하는 전세계의 학자들에게, 중국 근대화에 대한 독창적 분석으로 널리 알려진, 중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중 한명이다. 그런데, 량슈밍이 그러했듯, 단순히 뛰어난 학자가 아니라, 사회운동가로서의 활약이 적지 않다. 국내에도 그의 대표적 저작인 ‘100년의 급진’ 등이 소개되어 있는데, 시진핑 시대에, 관변화되어 가거나, 독립적인 목소리를 잃어가는 중국의 ‘지식인’들에 대한 실망이 적지 않음에도, 정부와의 마찰은 피하면서, 계속 중국 사회의 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그에게 여전히 기대를 거는 이들이 많다.

대학에서 출발한 학자가 아니라, 연구관료 출신이었던 그는 80년대부터 현장을 발로 뛰면서 농촌문제를 연구하다가, 2001년부터 ‘신향촌건설운동’의 기치를 내걸게 된다. 정책제안을 통한 위로부터의 개혁만으로는 목표하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대학생들과 함께, 농촌으로 들어가서 농민과 연대하기 시작한다. 청소년 시절 문화대혁명기의 상산하방 경험을 통해, 11년간 기층 농민의 생활을 체험했던 그였지만, 이를 개인적 트라우마로 남기지 않고, 자기수행과 사회변혁의 재료와 동기로 삼아, 향촌과 중국의 변화에 헌신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중국 전역의 대학에서 이루어진 방학중 농활과 정기적인 교내 독서모임 등으로 유지되던 산발적인 참여활동은, 향촌건설운동의 효시가 됐던 허베이성 딩현에 2003년 만들어진 ‘옌양추농민학교’와 2004년 베이징에 만들어진 ‘량슈밍향촌건설센터’의 설립과 함께 본격적인 사회운동으로 진화하게 된다. 옌양추농민학교에서는 의식이 있는 전국의 농민을 모아서, 협동조합, 생태농업, 생태건축 등을 무상으로 교육하였다. 량슈밍센터에서는 매년 10~20여명의 젊은이를 선발, 농민학교에서 수학한 농민들이 협동조합과 마을만들기 등을 진행하는 실험지로 1년 이상 파견하여 생활과 학습, 향촌건설 사업을 병행하게 하였다.

엔양추 농민학교는 지역 정부의 간섭으로 결국 2006년에 문을 닫게 됐다. 다른 한편으로 활동가들은, 농촌의 변화를 위해서는 도시 소비자들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다. 그래서, 농민학교 운영에 참여했던 이들 중 일부가 베이징으로 집단 이주하여, 유기농재배쌀과 같은 생태농업 생산물 판로를 개척하기 위한, 소비자 협동조합 실험을 시작하는 동시에, 2008년 작은 당나귀 시민농원을 설립하게 된다.

당시의 ‘빠링호우’(80년대 출생) 대학생들과 이에 영향을 받은 젊은 농민들이 지금은 중국 각지의 농촌으로 들어가, 유기농 농장운영과 마을자치 실험을 하고, 도시에서 학계, NGO, 사회적 기업 활동을 통해 소비자와 생산자를 잇는 역할을 하며 신향촌건설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30대의 핵심일꾼들이다.

중국의 귀농청년들

이들이 사명감으로 이 운동에 임하게 된 것은 중국 농촌이 90년대에 겪은 파괴적 변화를 당사자로서 경험한 때문이다. 78년에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의 시발점은 사실 우리가 상상하는 북경이나 상해가 아니라, 농가책임경영제(大包干)를 처음 실시한 안휘성 봉양(鳳陽)의 한 시골마을이었다. 국가가 더 이상 개별 농가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는 대신, 개인 노력의 성과를 인정해주겠다는 계약에, 18명의 농민이 수결로써 합의한 것이다. 이렇게 생산성이 향상된 농업은 당시 농촌 지역 공동체에 기반한 중소규모 마을기업인 ‘향진(鄕鎭)기업’ 육성과 함께, 농촌과 도시의 소득 격차를 줄이는데 기여하여 80년대 중국 농촌의 르네상스를 가져온다. 하지만, 88~89년의 인플레이션에 동반한 거래수단의 화폐화, 연안지역을 중심으로 한 도시화, 수출 제조업 중심의 공업화, WTO가입을 계기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적극적으로 편입하기 위한 금융화 흐름이 강화된다. 이에, 농촌은 환경파괴와 더불어, 인력과 자본의 심각한 유출로, 공동체가 해체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국가 현대화의 비용을 농업, 농촌, 농민에게 전가하는 ‘삼농문제’가 최악의 상태로 치달은 것이다. 결국 앞서 언급한 젊은이들은, 유년기에 가난하지만 먹고는 살만하고 아름다웠던 농촌을 기억하는 동시에, 그 쇠락의 과정을 생생히 지켜 본 마지막 세대였던 것이다.

공동화되어가는 중국 농촌

중국이 농민들의 지지속에 성공한 공산혁명후에도 농민과 농촌의 희생을 요구했던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49년 신중국 건국직후 발생한 한국전쟁의 참화속에 적대국인 미국과, 공산권의 라이벌 맹주인 소련에 맞서기 위한 전쟁무기 생산기술과 자본이 긴요했던 마오쩌뚱은 농민 노동력을 시초자본 축적의 도구로 삼았다. 량슈밍이 이때 공식 회의석상에서, 농민을 배신하지 말라며 마오쩌뚱에게 항의하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그래서, 원톄쥔 등은 21세기에, 현대화를 추구하는 발전주의가 농민들의 삶과 농촌을 피폐하게 만든 것에 대해서, 다시 문제를 제기한다. 2000년 농촌지역 당간부였던 리창핑李昌平이라는 이가 당시 주룽지 총리에게 공개서신을 보내, “농민의 삶은 진정 고통스럽고, 농촌은 심각한 빈곤에 찌들어 있으며, 농업은 매우 위험합니다(农民真苦、农村真穷、农业真危险)라고 표현한 것이 ‘삼농’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 문제의식을 상당부분 수용한 중국 공산당 정부는 신농촌건설을 시작했고, 2012년부터 생태문명 건설이라는 목표를 헌법에 명시했으며, 2018년부터 앞서 언급한 ‘향촌진흥’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이 안에는, 생태농업과 6차산업(6차산업은 1차 (농업생산), 2차 (가공), 3차 (서비스 산업)이 결합된 농촌의 융복합 산업을 지칭한다) 육성등을 통한, 농촌의 환경과 경제적 삶의 질 개선정책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인프라의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되고 절대빈곤을 벗어난 지금 시점부터 농촌과 도시의 문화적 생활수준 격차와 실질적 경제능력 격차를 줄이려는 목표를 설정하게 된 것이다.

중국 정부가 삼농문제를 중시하게 된 것은, 농민혁명정부라는 대의명분에 충실하기 위함이 아니라. 환경오염문제, 먹거리 주권과 안전문제, 도시화의 문제가 체제의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2007년에 중국의 제1환경 오염원은 도시나 공업이 아니라 농업임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바 있다. 항생제와 촉진제, 그리고 첨가물 범벅인 중국의 농축수산물 문제는 더 이상 스캔들 축에도 들지 못한다. 이미 60%이상 진행된 도시화를 감당하기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미 실제 생산에 참여하는 농민은 2~3억도 안될지 모른다고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데, 농기계, 화학비료, 농약 등 과도한 에너지 사용과 환경파괴를 불가피하게 초래하는 관행농이 아니면, 소수의 농민이 그 많은 인구를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 ? 이전 세기 서구열강처럼 해외 식민지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 한국같이 농민인구가 5% 미만으로 줄어들거나, 식량 자급률이 20%대로 떨어지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강대국’은 역사속에 존재한 적이 없다.

신향촌건설운동에는 원톄쥔교수뿐 아니라 많은 대학과 연구소에 재직하는 상당수의 지식인들도 참여하고 있다. 긴밀하게 조직화된 형태는 아니지만, 그들은 소위 ‘대향촌건설운동’이라는 기치하에, 다양한 학술포럼이나 활동가, 농민들, 소비자들도 참여하는 행사에서도 지속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이들은 현장에 기반한 정책 연구와 제안, 향촌건설운동의 역사와 이념 정립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동시에 대중들과의 소통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원톄쥔 교수의 활동과 연구가 중앙과 각급 지역정부와의 일정한 긴장관계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정책에 반영됐듯이, 이들 그룹의 연구 성과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중국 정부의 정책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향촌진흥정책의 얼개와 세부 내용을 살펴 보면, 소농/가족농 중심의 생태농업, 도농교류, 시민하향, 전통문화와 생태자원에 기반한 향촌의 6차산업 발전 등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신향촌건설운동의 15년에 걸친 실험 성과나 목표와 정확히 일치한다. 다만, 권위주의 정부의 성격상, 여전히 자본투하와 상명하달 지시를 통한 대중 동원이 정책의 주요한 실행수단인 반면, 신향촌건설 진영의 학자들은, 농민들의 재조직화를 통한 자발성과 주체의식 배양이 최우선 과제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어 방법상의 이견이 존재한다.

또, 이런 정책 흐름에 발맞춰 시민하향과 동시에 진행되는 자본하향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자아내게 하는 지점이다. 제한된 정부자원과 중앙, 지방정부의 급격한 채무 증가를 신경써야할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민간자본의 참여가 요구된다. 또, 도시의 부동산 개발에 의한 초과 이윤이 더 이상 녹녹치 않은 상황에서, 민간자본도, 투자처를 물색하며, 향촌진흥정책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한편으로 물적 자본뿐 아니라, 문화자본을 갖춘 도시 중산층과 고학력자, 전문가 그룹의 참여가 향촌진흥 성패의 관건중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미, 도시 생활의 경쟁적 환경에 지친, 젊은 중국인들이 귀농귀촌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하거나, 향촌생활경험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혹은 소비트렌드로 받아들이는 것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중국의 국내농촌관광 매출액이 이미 2018년 연말 기준으로 8천억 위안, 즉 한화 135조원에 상당하는 금액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중국인민망 기사).

이때, 정부와 자본, 다양한 유관활동에 참여하거나 귀농귀촌한 중산층 시민 그리고, 현지 농민들이 협치를 이루고, 공정하게 과실을 나눌 수 있는,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신향촌건설 연구자들은 그러한 문제의식 속에 다양한 정책 등을 연구하고 있는데, 필자는 매달 한편씩 이들의 연구 성과를 번역 소개하려고 한다. 이 글들이, 국내 독자들의 중국 사회에 대한 이해범위 편향 문제를 다소나마 해소하고, 더불어, 양국 연구자와 활동가, 그리고 인민들의 보다 폭넓은 연대 및 교류의 출발점으로 작동하기를 기대해 본다.

[대산농촌문화] 통권 101호(2019신년호)에 게재된 글입니다(기고한 글을 일부 수정하고 대산농촌재단의 허락을 득하여 본지에 실린 것임).

목, 2019/03/2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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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학에서 개벽학으로

2019년 3월 6일 수요일 아침. 서울 부암동의 산꼭대기에 위치한 여시재 대화당(大化堂)에서 개벽학당 출범식이 있었습니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하자센터 출신을 비롯한 여러 벽청(개벽하는 청년)들과 그들을 이끄는 이병한 선장. 사공들의 춤과 노래, 그리고 선장의 출항사를 지켜보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제가 보고 들은 올해의 3.1운동 행사 중에서 가장 빛나는 축제였습니다. 가슴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삼일독립선언서」의 마지막 문장을 빌리면, “아아! 신천지가 안전(眼前)에 전개되도다. 개화의 시대가 거(去)하고 개벽의 시대가 래(來)하도다.”에 다름 아닙니다.

개벽학당 개강식

이날 행사에 초대받은 모시는사람들의 박길수 대표님은 “큰일을 하셨다”고 이병한 선생님을 격려하였습니다. 저 역시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5년 전을 돌아보았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생활을 막 시작한 1994년, 지금의 개벽학당 청년들과 같은 나이였을 때입니다. 저는 대학로에서 막 개원한 도올서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그때의 그 모습이 재현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자리만 뒤바뀌었을 뿐입니다. 도올서원 학생에서 개벽학당 선생으로-.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문제의식은 변함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서원과 학당을 오가고 있을 것입니다.

도올서원은 굳이 말하자면 동양학, 중국학의 범주였습니다. ‘서원’이라는 말에서부터 유학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이에 반해 개벽학당은 한국학(K-Studies), 개벽학의 산실입니다. 동양학에서 한국학으로, 중국학에서 개벽학으로의 전환. 지난 25년 동안의 변화이자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벽학당 당장 로샤(이병한)

 

개벽은 나이순이 아니다

제가 개벽학당의 출항을 3.1운동 100주년의 가장 빛나는 사건이라고 선정한 것은 ‘기념행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재양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지적하신 대로 기념행사에는 청년들이 없지만 개벽학당에는 청년들이 주인공이었습니다. 행사는 일회성으로 끝나지만 양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출범식에서 보여준 학동들의 몸짓은 젊고 발랄했습니다. 신명이 넘쳐났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을 사는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의 한국사회는 이들을 받아줄 마당이 없습니다. 어른들의 나라이자 기성세대의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낼 젊은이들을 길러낼 ‘뜻’이 없습니다. 그냥 자기네들이 다 ‘해 쳐먹고’ 있는 느낌입니다. 개벽은커녕 개혁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정신세계가 20세기의 틀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절망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남북관계보다 훨씬 비관적입니다. 남북관계는 기대라도 하게 만들지만, 한국사회는,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인문학계는 활로가 보이지 않습니다. 전통유학과 개화우파와 개화좌파의 삼각구도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한국철학사 서술에서는 여전히 100년 전의 실학담론과 주리주기론의 틀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100년 전의 「삼일독립선언서」에 두 차례나 나오는 ‘독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개벽정신이 만개한 한국근대사상은 주류 학계에서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고, 최근에는 ‘개벽’이라는 말을 쓰면 특정 종교를 옹호한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한심한 수준입니다. 총체적인 문제로는 한국사상 연구가 분야별로, 인물별로, 종교별로, 학문별로 쪼개져 있어서 ‘한국학’이라는 큰 틀을 고민하는 학자가 없습니다. 산적한 문제가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정도입니다.

개벽학당 모시는선생님 새별(조성환)

 

동아시아담론의 허구

동양포럼에서 어느 중국인 학자가 지적했듯이, 전 세계에서 개화의 독을 가장 심하게 먹은 나라가 한중일 삼국이라면, 그중에서도 가장 중독이 심한 나라는 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문학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중국이나 일본의 상황이 우리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중국이나 일본은 우리처럼 식민지를 당한 경험도 없고 분단의 현실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개화학에 더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런 역사적 경험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동아시아론에서 벗어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적어도 1860년 동학 창시 이후부터는 한중일 삼국은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1919년 3월 1일의 ‘독립’ 선언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차이’를 직시하지 않은 채 막연하게 ‘유교’나 ‘동아시아’라는 범주로 한중일의 근대를 논하거나 동아시아의 미래를 모색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19세기 후반부터는 일본이나 중국과 같은 길을 간 것이 아니라, 인도나 아프리카와 같은 이른바 ‘제3세계’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존의 동아시아담론은 유학 아니면 개화학 중심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는 개벽학이 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도 이성적 근대가 아닌 영성적 근대였습니다. 동학에서 ‘하늘’을 불러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삼일운동에서 기독교가 참여한 것도 “새 하늘 새 땅”을 건설하고자 하는 개벽정신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면 ‘동서합작’인 셈입니다. 과연 동시대의 중국이나 일본에 이런 합작품이 또 있을까 의심스럽습니다. 이것이 개벽의 길이자 개벽 정신입니다.

개벽학당 운영위원장 아띠(황지은)

 

청년들의 눈물, 어른들의 나라

개벽학당 첫날, 오후에 있었던 세미나 시간에서 몇몇 벽청들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북받쳐서 말문을 잇지 못했습니다. 대안학교 출신으로, ‘자발적 고졸’로 살아가는 서러움 때문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당연히 대학생인 줄 아는 한국사회에서 낄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늘 대학에서 생활하는 저로서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대학총장에서 시작해서 대학교수, 대학박사, 대학원생, 대학생 등등, 온통 ‘대학인’들만 접해 온 저로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 상황입니다. 그래서 나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이런 사회가 되었을까?” “유교경전에 대학이 있어서 ‘대학’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가 되었나.”

그리고 이틀 뒤에 참석한 협동조합연찬 모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50대 이상이었는데, 유일하게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울음을 터트린 것입니다. 자기랑 같이 활동하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동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서 쏟아낸 눈물이었습니다. 그나마 자기는 이런 자리에 올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기성세대로서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또 하나의 과제가 생긴 셈입니다. 이전부터 예감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인 줄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한국사회는 기성세대의 독재가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삼일독립선언서」에서 자부한 “신예(新銳)와 독창(獨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신동엽의 _금강_을 읽고 있는 벽청 하야티(김지현)

 

동학혁명에서 삼일혁명으로

최근에 있었던 3.1절 100주년 기념행사를 멋지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과연 창비와 세교연구소에서 다년간 쌓아온 내공이구나 싶었습니다. 저 역시 만북울림행사와 선언문에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종교’라는 이름을 내걸지 않은 행사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선언문의 내용도 지적하신 대로 ‘개벽선언문’에 다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개벽’이라는 말이 모두 9차례나 사용되고 있을 정도니까요. 만약에 종교단체의 선언문이었다고 한다면 ‘개벽’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특정 종교를 옹호한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대통령의 연설문에서 ‘개벽’이나 ‘손병희’가 빠진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북으로 열어가는 새로운 100년>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동학혁명과 삼일혁명을 나란히 병기하고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삼일독립운동을 동학농민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는 역사관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런 역사관이 사회 전반에 퍼졌을 때, 대통령의 연설문에도 개벽이나 손병희의 이름이 들어가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도삼장>의 첫머리에서 “새로운 시대의 철학을 확립한다”고 선언하고 있는 점도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을 수 있는 개벽학이 요청되고 있다는 신호에 다름 아니니까요.

수양하자 시간, 하와이의 영성 댄스인 훌라 수업

 

동학을 품은 서학

종교단체가 기획한 3.1운동 100주년 행사 중에서 제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강원도 원주에서 발행하는 농촌과 목회의 <3.1운동 특집기획>이었습니다. 올 봄에 나온 최신호에서 <3.1운동, 동학,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기독교를 비롯해서 동학, 천도교, 장일순에 관한 총 6편의 글을 싣고 있습니다. 3.1운동을 둘러싸고 자기 교단의 활동을 강조하기 쉬운데, 오히려 다른 교단인 천도교와 그것의 모태인 동학에 주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런 태도가 개벽이라고 생각합니다.

첫머리에 나오는 한경호 편집위원장님(횡성영락교회 목사)의 권두언 <농(農), 동학사상, 주체사상>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저도 일부만 떼어 오기가 아까워서 통으로 가져와 봅니다.

나는 동학(천도교)에 대하여 잘 모르면서 자랐다. 춘천에서의 어린 시절 사창고개 넘어가는 곳 어디에 천도교 교당(모임장소)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그 이상은 알 수가 없었다. 주위에 천도교 관련자가 아무도 없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를 통해 겨우 몇 가지 역사적인 사실만을 알 수 있었다. 조선후기 농민들의 피폐상, 조선왕조의 몰락, 크고 작은 농민들의 봉기들, 마지막으로 가장 크게 얼어난 동학혁명, 이후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개칭됐다는 사실 정도가 아는 것의 전부였다.

청년시절에는 동학혁명이 농민혁명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보게 되었다. 동학보다는 농민전쟁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수운과 해월의 말씀과 행적도 농민봉기의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학은 이제는 시대적 사명을 다한 사상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12월초, 첫 목회지로 원주 호저면의 호저교회에 부임하였다. 부인한 지 얼마 안 된 1989년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날은 흐리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교회 앞 찻길로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고산리에서 무슨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장일순 선생이 중심이 되어 원주의 고미술동호회 회원들이 해월 최시형 선생이 잡혀가신 호저면 고산리에 그를 기리는 비(碑)를 세웠다는 것이었다.

이후 생명운동을 하면서 장일순이 해월 사상에 대하여 설명한 내용들을 보게 되었다. 장일순은 한국 생명운동을 처음으로 주창하고 한살림운동을 촉발시킨 생명사상가인데 해월의 사상을 많이 언급하고 있었다. 해월 선생의 사상을 장일순을 통해 새롭게 접하게 되었고 크게 공감하였다. 그러고 보니 장일순은 해월을 현대 한국사회 생명운동의 사상적 원조로 불러내어 부활시킨 분이다. 부임한 호저면이 해월 선생이 은거하며 포교하다가 잡혀간 곳이고, 원주가 장일순 선생이 살고 계신 곳이라는 사실은 부임하고서야 알았다. 생명운동을 중심적인 선교과제로 삼고 실천하고 있는 나아게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요, 참으로 뜻깊은 일이었다.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는 것은 3.1운동 100주년과 동학, 그리고 기독교의 관계가 생각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동학은 그 세가 왜소해졌고, 반면 기독교는 강성해졌지만 민족 자주적인 관점에서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민족적인 어려움이 닥치면 그 해결을 내생적, 자주적으로 풀지 못하고 외생적, 비자주적으로 해결해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불교문화가 쇄락하자 유교문화를 수용‧대체하였고, 유교문화가 쇠퇴하자 서양 기독교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왔다. 반면, 동학은 유‧불‧선 3교와 기독교까지 아우르는 독자적인 사상을 제시하면서 구한말 당시의 도탄에 빠진 민중들의 삶에 희망과 비전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이후 천도교가 대중종교로 발전해가지 못한 점은 원인이야 어디에 있든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앞으로 우리 민족이 평화통일의 새로운 길을 열어 가는데 있어서 기독교권이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하나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수용하고 소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민족의 전통사상 특히 동학을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고난의 한국근대사 속에서 민족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몸부림친 내생적 사상운동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특히 전 지구가 생명의 시대를 살고 있기에 동학의 생명사상은 더욱 새롭게 조명되어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인다면 생명을 농본주의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일이다.

3.1운동에 기독교가 기여한 것도 많지만, 천도교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당시 상황에서는 천도교의 교세가 기독교보다 훨씬 강했고, 재정적인 능력도 컸으며, 보다 주체적이고 계획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이다. 최근 기독교의 장로 몇 분이 동학(천도교)으로 옮겨가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의 핵심은 자주적 영성, 영혼의 탈식민지화이다.

우리는 그동안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신학적 작업에 소홀하였다. 자신의 세계 속에 갇혀서 상대방과의 대화에 소홀하였고, 그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지 못했다. 유명한 신학자인 폴 니터는 “붓다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일 수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너’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나’를 더 정확하고 깊이 있게 발견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기독교신학이 되기 위해서는 농(農)의 시각으로 성경을 새롭게 보고, 동학사상과 주체사상을 아우르는 신학적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금 다시 읽어 보아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글입니다. <선언문>이라기보다는 <고백록>에 가깝습니다. 젊었을 시절, 개벽학으로서의 동학보다는 개화좌파로서의 농민운동에 더 관심이 많았다는 고백, 아니 개벽학 자체를 몰랐다는 고백이 우리 모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기독교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전망한 글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기독교와 천도교의 관계를 “붓다 없이 그리스도인일 수 없었다”는 폴 니터의 고백으로 대신하고 있고, 남한학과 북한학을 아우르는 한국 신학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00년 전의 동학이 서학을 품었다면 지금의 서학은 동학을 품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이라면 <개벽포럼>에도 한 번 모셔다가 말씀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1세기의 삼전(三戰)

마지막으로 손병희 선생의 「삼전론」과 선생님의 「서신」에 힘입어서 이 시대에 필요한 삼전(三戰)을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역시 도전(道戰)입니다. <만북으로 열어가는 새로운 100년>의 선언문에서도 “새로운 시대의 철학을 확립한다”고 설파했듯이, 지금 우리에게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철학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것을, 강성원 교무님의 언어를 빌려서, ‘개벽학’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인전(人戰)입니다. 개벽시대를 개척할 젊은 인재들을 길러내는 작업이 시급합니다. 개벽학당과 같은 운동이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은 심전(心戰)입니다. 한경호 목사님도 언급하신 영혼의 탈식민지화입니다. 중화(中華)와 개화(開化)의 포로와 노예에서 벗어나고, 공자(孔子)의 술이부작(述而不作)을 술이창작(述而創作)의 마인드로 전환시켜서, 「삼일독립선언서」에서 표방한 ‘독창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 삼전의 내공이 쌓이면 한반도에 새로운 하늘이 열리리라 확신합니다. 제가 개벽학당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큰 걸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금, 2019/03/2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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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정은 방러 임박?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뒤 북한과 러시아간 움직임이 분주하고 심상치 않다. 양측 고위 인사들의 접촉이 빈번해졌다. 하노이 회담 일주일 만인 3월 6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는 북한과 러시아가 정부 차원에서 경제협력 문제를 논의하는 <북-러 통상경제·과학기술 협력 정부 간 위원회(북-러 경제협력위원회)> 제9차 회의가 열렸다. 14일에는 임천일 북한 외무성 부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부 아태담당 차관과 회담했다. 16일에는 러시아 상원 대표단이 평양을 찾았다. 여기까지는 통상적이고 예정된 상호 방문으로 이해된다. 3월 17일이 ‘북러 경제.문화 협력 협정’을 체결한지 70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일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김창선 부장은 모스크바에 나흘 머무는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23일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나타나면서 언론에 포착됐다.

김창선 부장은 김정일.김정은 일가의 집사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요 정무를 보다가 막히는 일이 생길때면 김창선 부장을 불러 아버지 김정일때는 어떻게 일처리를 했는지 물어본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서실장이자 대외방문 의전 책임자로 알려진 김창선 부장이 모스크바에 나타났으니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으로 읽혀질만하다.

3월 23일 모스크바 세레메쩨보 공항에 나타난 김창선 부장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이 국제무대에 전격 등장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하자 러시아도 김 위원장의 방러를 적극 추진했다. 지난해 5월 평양을 방문한 라프로프 외무장관은 김 위원장을 만나 9월 동방경제포럼도 좋고 편리한 시간에 러시아를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6월 러시아 월드컵 개막식에 참석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크렘린에 따로 부른 푸틴 대통령은 재차 김 위원장의 방러를 요청했고, 9월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인 99절에 평양을 찾은 마트비옌코 상원의장도 김정은 위원장과 환담한 바 있다. 필자는 지난해 10월 서울을 방문한 마트비옌코 상원의장을 단독 인터뷰했는데, 김 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에 대해 마트비옌코 의장은 ”양국 지도자들이 만날 장소와 시간을 놓고 북러간에 긴밀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가까운 장래, 아마도 연말 전에 이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후 김 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에 대해 많은 추측들이 난무했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하노이 북미회담이 결렬된 뒤 갑자기 김창선 부장이 모스크바에 나타나고 김 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왜?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서? 언론에선 북한이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전통적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와의 유대관계를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무역협상을 앞둔 시점이라 중국은 운신의 폭이 좁은 만큼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자유로운 러시아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으로 분석한다. 이와관련해 정부 당국자는 대북 제재가 해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가 북한에 줄 선물이 마땅치 않더라도 미국을 긴장시키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귀뜸했다. 김창선 부장이 이번 모스크바 방문길에 김 위원장의 방러 문제를 논의했는지, 논의했다면 구체적 방문 장소와 시기를 결정했는지, 결정했다면 이를 어느 시점에 공개할는지 등이 관심사로 주목된다.

 

(2) 북러 경제협력위원회

지난 6일 9차 ‘북-러 경제협력위원회’에 북한에선 김영재 대외경제상을 단장으로 수산성, 보건성, 철도성 등 여러 정부 부처. 기관 대표들이 정부 대표단으로 참가했고 러시아에선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극동개발부 장관이 이끄는 정부 대표단이 참석해 양국간 교역 확대 방안 등을 논의했다. 북러 양국은 해마다 상대국을 오가며 경제협력위원회를 열고 있으며, 제8차 회의는 지난해 3월 평양에서 열렸다. 이번 회담에서는 ▶북러 교역 확대 방안과 루블화 결제 도입 방안 ▶두만강에 자동차 통행용 교량 건설 문제 ▶러시아내 북한 노동자 체류 문제 ▶나진~하산 복합물류 사업 추진 문제 ▶러시아에 대북 무역 전담 회사 설립 문제 등이 논의됐다고, 코즐로프 장관이 회담이 끝난뒤 언론 브리핑에서 밝혔다. 북한은 이 중에서도 두만강 자동차 교량 건설과 북한 노동자 체류 문제에 관심을 많이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두만강 철교

북한과 러시아는 지난 2015년부터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자동차 통행용 교량 건설 협상을 벌여오고 있다. 북러 국경의 두만강 위에는 현재 북한 두만강 역과 러시아 하산역을 연결하는 기차가 지나가도록 철교가 놓여 있지만 자동차 도로용 다리는 없다. 코즐로프 장관은 “자동차 도로용 교량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사전 타당성 조사를 주문한 상태이며 그 결과에 따라 (북측과) 사업 견적 문제와 건설 조건 등에 대해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동차 교량은 길이 915m, 너비 14m, 2차선 도로에 하루 차량통행량은 500대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교량 건설에는 4천만 달러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북측이 적극적인 반면 러시아측은 소극적인 편이다. 이미 벌려놓은 나진~하산 프로젝트도 유엔 제재 등으로 소강상태인지라 러시아 입장에선 북러 국경에 또다른 건설 인프라를 추진해야할 필요성을 덜 느끼는 듯하다. 시베리아 석탄을 북한 나진항을 통해 한국에 보내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위해 러시아는 나진역과 하산역 54km를 개보수하는 사업에 7천만 달러를 투입해 2013년 9월 완공한 바 있다. 당초 나진~하산 프로젝트에는 한국 기업 컨소시움도 참여하기로 했었으나, 2016년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한국 정부의 대북 제재가 시행되면서 무기한 연기됐다.

러시아 건설현장의 북한 노동자들

코즐로프 장관은 또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 문제도 논의했고, 특히 안보리 결의의 틀 내에서 북한 노동력을 계속해 이용하는 문제가 검토됐다고 밝혔다. 한때 3만 8천여명에 달했던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은 현재 9,800명 수준으로 줄었다고 하는데 (실제론 만 2천명 정도로 예상됨) 유엔 대북 제재에 따르면 올 12월까지 순차적으로 북한에 돌려보내야 한다.

2017년 9월 3일 실시한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응해 유엔 안보리가 9월 11일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 2375호’는 다른 국가에서 북한 노동자 신규 채용, 고용을 금지했다. 또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장거리 미사일 ‘화성-15형’ 발사에 대한 응징으로 2017년 12월 22일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 2397호’는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을 24개월 이내에 모두 송환시키도록 규정했다. 북한 정부로선 사활이 걸린 문제이고 러시아 정부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이번 회의에선 어학연수생으로 북한 노동자를 받아 들인다거나 사할린에 기술자로 파견하는 방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모스크바 회의에선 이밖에도 러시아에 북한과의 무역을 전담하는 회사를 건립하고 러시아 내에 북한 상품관을 개설하는 방안이 논의됐다고 한다.

 

(3)북한의 전략적 도발

필자가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재직할 당시 북한은 전략적 무력 도발을 강도 높게 자행했다. 특히 2016년과 2017년 2년 동안에 집중됐는데, 3차례의 핵실험과 35차례의 미사일 시험발사가 진행됐다. 다음은 2016~2017년 동안의 주요 무력 도발 일지다.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 북 “첫 수소탄 실험 성공”

3월 3일: 동해상으로 300㎜ 방사포 6발 발사

3월 10일: 동해상으로 스커드 계열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 발사

3월 18일: 동해상으로 노동계열 미사일 2발 발사

3월 21일: 동해상으로 300㎜ 방사포 5발 발사

3월 29일: 300㎜ 방사포 추정 발사체 1발 발사

4월 1일: 동해상으로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1발 발사

4월 15일: 무수단 계열 미사일 1발 발사

4월 23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1발 시험발사

4월 28일: 무수단 계열 미사일 2발 발사

5월 31일: 무수단 계열 미사일 1발 발사

6월 22일: 무수단 계열 미사일 2발 발사

7월 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1발 시험발사

7월 19일: 동해상으로 노동 2발, 스커드 계열 1발 발사

8월 3일: 동해상으로 노동미사일 2발 발사

8월 24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1발 시험발사

9월 5일: 동해상으로 스커드 계열 추정 미사일 3발 발사

9월 9일: 5차 핵실험, 북 새로 연구 제작한 핵탄두 위력 판정 시험 주장

10월 15일: 평북 구성시 방현비행장 인근에서 무수단 미사일 1기 발사

10월 20일: 평북 구성시 방현비행장 인근에서 무수단 미사일 1기 발사

-2017년  2월 12일: 평북 구성시 방현비행장 인근서 동해상으로 북극성-2 미사일 1기 발사

3월 6일: 평북 동창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스커드 개량형 추정 미사일 4기 발사

3월 22일: 강원도 원산비행장 일대에서 미사일 1기 발사했으나 실패 추정

4월 5일: 함경남도 신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불상 발사체 발사

4월 16일: 함경남도 신포 일대에서 불상 미사일 발사를 시도했으나 실패 추정

4월 29일: 평안남도 북창 일대서 북동방향으로 미사일 1기 발사했으나 실패 추정

5월 14일: 평안북도 구성 일대서 미사일 1기 발사

5월 21일: 평안남도 북창 일대서 미사일 1기 발사

5월 27일: 장소 미상(북한 동쪽지역 추정) 지대공 미사일 발사

5월 29일: 강원도 원산 일대서 동쪽으로 지대지·지대함 복합 미사일 발사

6월 8일: 강원도 원산일대서 동해방향 지대함 미사일 수발 발사

7월 4일: 평안북도 방현 일대서 동해방향 미사일 발사 (화성 14형)

7월 28일: 자강도 무평리 일대서 동해방향 미사일 1기 발사 (화성 14형)

8월 26일: 강원도 깃대령일대서 동해방향 단거리 미사일 3발 발사. 이 중 2발 성공

8월 29일: 평양 순안 일대서 북태평양 해상으로 탄도미사일 1기 발사 (화성 12형)

9월 3일: 풍계리 일대서 6차 핵실험

9월 15일: 평양 순안 일대서 북태평양 해상으로 탄도미사일 1기 발사 (화성 12형)

11월 29일: 평안남도 평성 일대서 동해상으로 장거리탄도미사일 1기 발사

   김정은, ”신형 ICBM 화성-15형 발사 성공, 핵무력 완성 선언

2017년 11월 29일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불과 석달 뒤 2018년 3월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특사에게 비핵화 의지를 전격적으로 밝혔다. 2016~2017년 동안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로 끌어올린 것은 결국 핵협상에서 자신들의 몸값을 최대치로 높이기위한 계산된 전략적 도발이자 몸부림이었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4) 러시아의 대응

1) 대북 금융거래 전면 금지

북한의 강도 높은 전략적 도발에 국제사회의 대응은 단호했다. 유엔은 2016년부터 2년 동안 모두 6개의 사상 유례없는 대북 제재안을 의결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도 이같은 국제사회의 흐름에 적극 동참했다. 러시아가 취한 대응은 대북 금융거래 전면 금지와 러시아내 북한 노동자 송환으로 압축된다.

2016년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단행한지 57일 만인 3월 3일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 결의 2270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결의 2270호는 ▷소형무기(small arms) 수입 금지 ▷북한을 들고나는 모든 화물에 대한 전수조사 의무화 ▷북한산 석탄, 철, 철광 수입 금지 ▷항공유 수출 금지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 대폭 강화 등이 주요 골자인데, 70년 유엔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군사적 조치로는 가장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 결의로 평가됐다. 두달 뒤 5월 19일 러시아 중앙은행은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사실상 중단할 것을 지시하는 통지문을 산하 은행과 금융기관들에게 발송했다. 통지문의 내용은 ▷유엔 제재 대상인 북한의 개인.법인 소유 자산즉시 동결 ▷북한 은행들과의 송금 거래 금지, 북한에 새 계좌 개설도 금지 ▷북한 핵.미사일 개발 관련 러시아내 금융계좌 폐쇄 등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의 북한 노동자들

 

2) 러시아의 북한 노동자

북한 노동자가 소련에 첫 발을 디딘 것은 1946년 노동계약에 따라 사할린에 도착했을 때이다. 그후 연해주 일대 벌목 현장이나 건설 현장, 시베리아 석유개발 현장, 극동지역의 수산물 가공공장, 농장 등에서 일하고 있다. 그 수는 한때 4만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노동자들은 훈련돼 있고 규율을 잘 지키며 부지런하고 험한 작업현장에서도 일할 준비가 돼 있는 노동력이다. 러시아 특히 극동지역의 입장에서는 북한 노동자들을 채용하는 것이 경제적 관점에서 매우 유리하다. 극동 연해주 일대에서 일하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등 다양한 국적의 노동자들 가운데 북한 노동자들이 단연 제일 우수하다는 말을 필자는 여러 러시아 지인들로부터 들은 바 있다. 북한 입장에서도 해외 노동자들이 보내온 외화 수입이 연간 2~3억 달러에 달하니 괜찮은 소득원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이 받는 월 평균 급여는 500~600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중에서 충성자금 명목으로 본국에 송금하는 돈을 제외하면 노동자 본인이 월 100달러 정도 벌어들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누이 좋고 매부 좋던 분위기에 제동이 걸린 것은 2017년 9월 이후부터다.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응해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 2375호’는 다른 국가에서 북한 노동자 신규 채용, 고용을 금지했고 기존 노동자는 계약이 끝나면 연장을 못하도록 했다. 이를 의식한 러시아 정부는 2017년 11월 ‘북한 노동자 쿼터’를 25,000명으로 결정해 버렸다. 4만 수준이던 노동자가 40% 가까이 급감하는 것이어서 주러 북한 대사관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당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 대외경제성 차관이 모스크바에 40일 이상 머물면서, “요즘 중국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물밀 듯이 북한으로 돌아와서 북한에 일자리가 부족하고 외화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도와달라”고 읍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여기에 12월에는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을 24개월 이내에 모두 송환시키도록 규정한 ‘대북제재 결의안 2397호’가 채택되면서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가 계속 줄어들어 2019년 현재 9,800여 명이 된 것이다.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올 12월까지 북한 노동자들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최근 들어 북중 접경 지역의 북한 노동자들도 잇따라 귀국길에 오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북한 당국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화, 2019/03/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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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벽학과 고려학

작년에는 개벽파를 자처했습니다. 올해부터는 개벽학자를 자임합니다. 하노라면 나는 한국학자인가, 자문해 보았습니다. 냉큼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개벽학이 곧 한국학이라고 등치시키는 것에는 못내 주저케 됩니다. 본디 개화좌파였습니다. 20대 구미의 사회이론을 줄줄 외다시피 다녔습니다. 꼴에 반골과 몽니 기질은 다분해서 미국보다는 유럽을 선호했습니다. 독일어와 프랑스어 회화 테이프를 귀에 꽂고 캠퍼스를 누볐습니다. 농반진반으로 ‘모던 보이’시절이었다고 회고합니다. 하얗게 탈색된 머리칼을 휘날리며 유럽 배낭여행을 쏘다니던 때입니다. 퍼뜩 자각하고 자성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서방의 사상에 해밝아도 한국 사회를 온전히 해명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커녕 구미의 이론으로 한국의 현실과 현재와 현장을 난도질하며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변태적이고 병리적인 심리가 없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격정을 토해 비판하시는 것처럼 딱 개화에 중독된 ‘식민화된 영혼’이었던 셈입니다. 저 자신을 치유해야 했습니다. 제가 터하고 있는 땅과 해원하고 상생해야 했습니다. 제대 직후에 사회학에서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던 까닭입니다. (심지어 군대마저 카투사를 다녀왔습니다)

_개벽_ 창간호 표지

애초에는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코자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근현대의 기점을 ‘개항’으로 잡든 ‘개벽’으로 삼든, 지난 150년사는 주변 국가들의 역사를 모르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자각에 이르렀습니다. 영어는 물론이요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를 연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사보다는 동아시아사 연구로 들어선 연유입니다. 공부를 좀 하다 보니 근현대사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도 동아시아의 고전에 달통해야 한다는 자각에 이르렀습니다. 사서삼경부터 캉유웨이와 후쿠자와 유키치까지, 한문과 중어와 일어로 축적된 한자문명권의 유산을 한껏 흡입했습니다. 그러다 중화문명권의 또 다른 일각, 베트남을 경험하고 나서 유라시아 문명사학자로 회심한 것입니다. 기왕의 동아시아 감각으로는 동남아의 최북단에 자리한 베트남조차 온전히 해명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번 눈이 트이자 도저히 ‘중국사학자’로 30년을 보낼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3년 유라시아 견문을 감행한 까닭입니다. 1000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개벽파’이자 ‘고려인’으로 살겠노라 말합니다. 개벽파는 더 보탤 것도 없겠습니다. ‘고려인’이라 함은 한반도와 유라시아의 연결망이 가장 활발하게 작동했던 고려시대 사람들의 공간적 감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뜻입니다.

기실 ‘한국학’이라는 말부터가 고약합니다. ‘남한학과 북한학’이라고도 하셨죠. ‘남한학과 북조선학’이라고 해야 더 적절할 것입니다. 또는 ‘한국학과 조선학’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휴전선 이북에 자리한 저 나라는 1945년 이후 단 한번도 ‘한국’을 표방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학과 조선학의 창조적 대화로 정립하게 될 미래학을 ‘고려학’이라고 불러주고 싶습니다. 현재의 K-POP은 어제의 한류(Korean Wave)가 진화한 것입니다. 글로벌 문화산업과 토착의 풍류가 결합되어 창조적인 지구문화(Global Culture)를 발신하게 된 것입니다. 개벽학(K-Studies) 또한 기왕의 한국학(Korean Studies)을 돌파해 내야 합니다. 고려학으로 진화해야만이 지구학(Global Studies)에 값하는 신예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탐문해 봅니다.

그 개벽학과 고려학으로의 진화에 ‘중화’(中華)와 ‘개화’(開化)는 부채가 아니라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중화문명에 속해 있던 무렵 중화는 세계문명의 최정점이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미국의 속국으로 보낸 20세기에도 일본과 미국은 개화문명의 최첨단이었습니다. 불교 천년, 유교 오백년, 기독교 일백년의 역사 또한 비옥한 토양입니다. 동서를 망라한 유구한 문명의 유산이 이 땅에 축적되어 있는 것입니다. 중화를 섬기고 개화를 떠받드는 몰주체적 태도가 문제이지, 제국에 젖줄을 대고 맹렬하게 빨아들인 중화문명과 개화문명은 더없이 소중한 영양소라 하겠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그토록 두터운 문명적 유산이 켜켜이 쌓여 있는 장소가 그리 흔치 않습니다. 독창이란 외골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무릇 중도(中道)와 정도(正道)라 함은 사방팔방 사통팔달 활짝 열린 길일 것입니다. 중화와 개화를 포용하고 회통하는 문명횡단적 실험 속에서 비로소 개벽학은 만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화도 개화도 사절하는 북조선식 주체사상의 착종을 복제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유학도 버리고 서학도 방기한 주체사상은 옹졸맞고 앙상했습니다. 개벽학은 필히 개방적이고 반드시 개혁적이며 기필코 계승적이어야 합니다.

동아시아론이 허구라는 비판도 통렬한 맛은 있으나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힘든 주장입니다. 과연 1860년 이후 한중일은 각자의 길을 걸었던가요? 1860년 이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한중일은 전면적인 교류가 시작되었던 것이 아닌지요? 그 이전에는 소수의 지식인들만 상호 방문하고 교류하며 한자로 작동되는 ‘문예공화국’의 혜택을 누렸을 뿐입니다. 기층 민중들까지도 시장에서 일상에서 교류하게 된 것은 동아시아 내부의 상호 개항 이후라고 보아야 합니다. 즉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의 공간적 경험이 동아시아로 일대 비약한 것 또한 19세기 말부터입니다. 아니 ‘동아’(東亞)라는 개념 자체가 창출된 것이 그 무렵이라 하겠습니다. 물질적 실체가 분명히 작동했던 것입니다. 조선인들도 반도를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열도로, 만주와 연해주로, 또 중원의 대륙으로, 동아시아 감각이 폭발적으로 확장되었습니다.

1919년 한성에서만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열도에서도 북방에서도 중원에서도 다양한 독립선언서가 작성되었습니다. 그 역사성을 동아시아가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포착할 수 있을지요? 도쿄에서 최신 사상을 공부하고 상하이에서 독립 운동에 투신한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작품을 쓰고 베이징에서 혁명을 논한 경우 또한 숱합니다. 20세기 전반기를 수놓은 주요 정치인과 지식인과 예술인들의 거개가 ‘동아시아인’이었던 것입니다. 우파인 백범 김구도, 좌파인 몽양 여운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물며 물질개벽과 물자교류를 선도하는 상공인은 두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제3세계? 인도와 아프리카? 너무 나아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힌디어와 아랍어로 작동하는 인도양세계와 한국의 역사적 경험이 쉬이 접속될까요? 아프리카는 어마무진장 큰 대륙입니다. 사하라 이북과 이남은 딴 세계입니다. ‘영성적 근대’로 눙칠 수 있는 범위와 사례가 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침소봉대하면 곡학아세로 빠지게 됩니다. 20세기 후반의 한 시절을 풍미했던 제3세계주의에도 ‘자생적 오리엔탈리즘’의 혐의가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시나브로 수그러든 것입니다.

무릇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한 법입니다. 모든 인류애의 출발은 이웃애라고 생각합니다. 원수 같은 네 이웃부터 사랑하는 것이 지상천국 건설의 첫걸음입니다. 동아시아를 괄호에 치고 제3세계로 비약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생산적일지 저는 몹시 회의적입니다. 현실감을 결여한 관념론이기 십상입니다. 그보다는 한중일의 20세기를 대동소이(大同小異)로 접근하는 편이 더 생산적입니다. 개화파가 주류가 되어 ‘백년의 급진’을 질주했다는 점에서 오십보백보입니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틀로 보면 중국과 일본, 북조선과 남한의 사이에는 아득한 만리장성이 쌓인 것 같지만, 고금(古今)의 분단과 성속(聖俗)의 분화라는 개벽파의 눈으로 보자면 어금버금했던 것입니다. 동아시아를 버리고 제3세계로 비약할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를 딛고 동유라시아로 전 지구로, 온 우주로 도약해야 합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이소성대(以小成大)의 자세를 견지합시다.

물론 기성의 동아시아론에도 한계가 없지 않습니다. 아니, 적지 않습니다. 다만 허구이고 허상이서가 아니라 편향되고 편중되어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쪽은 유학 중심의 전통에 치우쳤습니다. <전통과 현대>, <상상>이 대표적이죠. 전자는 유교와 자본주의를 접속시키려 들었고, 후자는 도교와 문화산업을 접맥시키려 했습니다. 은근슬쩍 개화우파에 합세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습니다. 다른 한쪽은 개화좌파에 기울었습니다. 동아시아의 ‘진보적 지성’만의 결집을 꾀한 것입니다. <창작과비평>, <황해문화> 등이 선도했습니다. 돌아보면 ‘중화와 개화의 분단체제’가 여전했던 것입니다. 좌와 우, 보수와 진보의 분단체제도 역력했습니다. 그래서는 신문명의 신천지, 개벽천하가 도래하기 힘들 것입니다. 서학과 유학과 동학의 합작을 이끌어야 개벽학이 살아납니다. 유라시아(구대륙)와 아메리카(신대륙)를 잇는 허브로 자리매김해야 한반도를 지구촌의 접(接=hub)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한국학(Korean Studies)보다는 고려학(K-studies)을 제안합니다. 마침 올해 8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리는 국제고려학회에 참여합니다. 김일성 종합대 교수를 비롯한 북조선의 주요 학자들도 참가한다고 합니다. ‘지구적 고려학’(Global K-studies)의 산실이 될 수 있을지 눈여겨 지켜보려 합니다.

인류세와 다시 개벽 세미나

 

2. 물질개벽의 최전선

한국 인문학계의 활로는 ‘인문학’의 틀을 깨야 비로소 열릴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인문’(人文)의 근간이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지성지 <현대사상>의 올해 첫 특집도 ‘포스트-인문학’이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사람(人)만이 주체가 아닙니다. 식물도 동물도 사물도 만물이 주체의 지위로 등극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인간과 더불어 국가를 구성하고 역사를 추동입니다. 포스트휴먼, 트랜스휴먼, 네오휴먼 등 백가쟁명이 한창입니다. 이른바 ANT,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ctor Network Theory)은 현재 가장 세련된 사회이론인바, 인문학의 틀을 넘어섰기에 브루노 라투르의 독창과 독보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글(文)의 처소 또한 급변하고 있습니다. 종이 위의 텍스트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글은 이미 텍스트에서 데이터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텍스트를 꼼꼼히 읽어도 빅데이터가 제공하는 실상과 통찰을 넘어서기 힘든 경우가 번다합니다. 즉 기왕의 인문에 안주해서는 인문학의 출로가 생길 리 만무합니다. 다시금 천지인의 옛 지혜를 빌려야 하겠습니다. 천문(天文)과 지문(地文)과 인문의 삼문(三文)을 회통해야 하겠습니다. 천문은 하늘의 무늬를 천착하는 학문입니다. 지구와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입니다. 지문은 땅의 무늬, 세계지리와 세계역사를 탐구하는 문명학입니다. 하늘 천(天) 따 지(地), 집 우(宇) 집 주(宙), 천지와 우주부터 학습해야 지구 진화의 말단에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학문, 인문학도 살아날 것입니다.

선생님을 비롯한 일군의 학자들이 꾸린 하늘학회에 저도 종종 참석하지요. 천주교도도 있고 천도교도도 계십니다. 기독교 목사님이 원불교 경전도 공부하십니다. 서도와 동도를 가리지 않고 통섭하는 현장이 미덥습니다. 동학과 서학을 가르지 않고 융합하는 현실이 듬직합니다. 동/서를 나누지 않고 대도(大道)를 탐구하는 대학(大學)의 전범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함에도 아쉬움은 짙게 남습니다. 여전히 인문학자들만 모여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개벽학은 반드시 인문학 외통수를 경계해야 합니다. 동학을 품은 서학만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과학을 품은 도학이 요청됩니다. 도학을 담은 과학도 필수입니다. 필히 과학 공부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목하 미래의 추동력은 압도적으로 과학혁명으로부터 비롯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학부 시절 수학을 공부한 점 또한 현재의 철학 연구에 알음알음 생산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수학과 철학, 서학과 동학의 회통이 개벽학의 저변에 흐르고 있을 것입니다.

(왼쪽)SKEPTIC, (오른쪽)김기석 성공회대 총장의 _신학자의 과학 산책_

제가 개벽학당 세미나에서 한국 개벽사상의 주요 텍스트를 읽기 전에 인류세를 비롯한 최신의 과학담론부터 먼저 토론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개벽학당 강의에도 과학자를 자주 모시려고 합니다. <물질개벽의 최전선>이라는 강의명도 궁리 중입니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사물인터넷과 블록체인, 진화심리학과 후성유전학 등. 지지부진한 인문학에 견주어 과학의 질주는 눈이 부십니다. 맹목하지도 외면하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직시하고 직핍해야 합니다. 어떤 분이 좋을까, 요즘 삼청동의 과학책방 <갈다>에도 발걸음을 자주합니다. 과학 잡지 <SKEPTIC>은 정기구독을 시작했습니다. 널리 배우고 제때 익혀야 물질개벽과 정신개벽을 아우르는 독창적인 개벽학도 일구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성과 영성이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극한 이성과 극진한 영성은 궁극에서 아름답게 만날 것입니다. 작년 성공회대 총장으로 취임하신 김기석 선생님의 <신학자의 과학 산책> 또한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이분이야말로 ‘개벽학자’라고 하겠습니다. 김에 성공회대와 원광대학 사이의 공동학술연구를 제안합니다. 개화대학과 개벽대학 간의 대합창과 대합장을 권장합니다.

아울러 머리 공부로만 그쳐서도 아니 되겠지요. 21세기의 벽청은 20세기의 문청과 다르기를 바랍니다. 이성과 지성만 비대하게 성장하는 심신(心身) 불균형의 문학청년은 사절입니다. ‘입진보’의 비아냥 또한 과학 공부가 부족하고 몸 공부가 미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념 논쟁보다는 가설과 실험과 입증으로 실질적이고 실리적이며 실무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입놀림보다는 손발을 놀리고 몸을 써야 합니다. 체감하고 체득하여 육화된 언어, 육성으로 발화해야 합니다. 개벽학당에서 수련과 수양과 수행을 강조하는 연유입니다. 그래야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건강한 인재가 양성됩니다. 건강은 부강을 능가하는 최상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이야말로 삶의 기술(테크네)이자 살림의 예술(아트)입니다. 벽청들이 건강해서 저는 참 뿌듯합니다. 부암동의 그 아름다운 산세와 근사한 한옥도 모자라 텃밭 가꾸기까지 자청하는 모습이 더없이 예쁩니다. 신토불이(身土不二), 사람의 피부(身)와 지구의 피부(土)를 접촉하면 할수록 천인합일의 애틋한 사랑이 피어오르고, 천인합작의 우주적 영성도 깨어날 것입니다. 개화우파 국민과 개화좌파 시민을 넘어서 하늘을 쏙 빼다 닮은 개벽파 하늘사람을 지극하게 모시고 극진하게 섬깁시다.

 

벽청들이 가꾸어 갈 텃밭

 

3. 해방공간의 재재인식

천도교 청우당 로고

곧 꽃피는 4월로 진입합니다. 우리의 서신도 ‘포스트 3.1’로 이행하면 좋겠습니다. 동학혁명(1894)에 이어 삼일혁명(1919)도 끝내 좌초합니다. 한성을 지운 경성은 식민지 근대성으로 휘황한 개화도시의 아성으로 변모합니다. 모던걸이 득실거리고 모던보이가 우글거리는 소굴이 되었습니다. 기어코 삼세판의 기회가 열린 것이 1945년입니다. 도둑처럼 해방이 왔습니다. 광복(光復), 빛을 되찾아야 했습니다. 서둘러 조직을 재건한 것이 청우당(1946)입니다. 천도교의 이상세계를 세속에서 구현하는 전위정당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동학이 표방한 개벽국가 건설의 적기가 열리는 듯 보였습니다. 과연 청우당은 해방공간 남(접)과 북(접)을 잇고 엮는 범한반도적 연합정당으로서 매우 인상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20세기 후반에 제출된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개화좌파에 기울었습니다. 21세기 초엽에 등장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뉴라이트, 개화우파에 치우쳤습니다. <해방공간의 재재인식>을 위해서라도 남/북과 좌/우와는 별개의 접근이 긴요합니다. 정치와 종교를 아우르고자 했던 성-속 합작의 청우당 연구가 유력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북과 남에 모두 걸쳐있으면서도 남한과 북조선으로 흡수되지 않는 독자적인 국가건설 구상을 제출했기 때문입니다.

(왼쪽)해방 직후 재건된 청우당의 당원명부(함경도) 표지, (오른쪽)입당원서의 본문

특히 북접 2.0, 북조선 청우당이 이채롭습니다. 2월 8일에 창당합니다. 자부심이 남달랐습니다. 항일운동의 원조이자 적통을 자처했습니다. 1946년 창당의 뿌리 또한 1860년 동학 창건에 두고 있습니다. 유학국가에서 동학국가로, 자그마치 86년간 축적된 경험에 바탕하여 새 나라 만들기에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해방공간에서 우후죽순 등장한 신생정당들과는 족보가 달랐습니다. 과연 삽시간에 30만에 육박하는 당원을 확보합니다. 소련을 등에 업은 북조선 노동당에 못지않았습니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사회주의에도 어깃장을 놓았습니다. 유물적 경제만으로는 이상세계를 건설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필히 정신개벽이 수반되어야 하노라 역설했습니다. 고로 북조선에서 노동당과 청우당은 협력하면서도 경쟁하는 미묘한 관계였습니다. 미국식 자본독재를 비난함은 물론이요 소련식 무산독재도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적 신민주주의’ 국가를 선창했습니다. 서구형 민주와 동구형 민주가 아닌 동방형 민주, 개벽민주의 깃발을 휘날린 것입니다. 아슬아슬한 살얼음판의 곡예가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김일성이 아무리 항일무장투쟁에 열성이었다 한들 동학의 후예를 자임하는 청우당에 비하면 역사와 연륜이 모자랐습니다. 게다가 ‘왜놈’을 대신한 또 다른 외세 ‘로씨야’의 뒷배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었습니다. 친일파 개화우파를 이어 친소파 개화좌파로 이행한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청우당이 주창한 ‘조선적 신민주주의’는 좌우합작에 그치지도 않았습니다. 개화의 지존인 미국과 북방의 신중화로 등극한 소련이 융합하는 창조적 공간으로 한반도를 환골탈태시키는 지정학적, 지리문명적 구상력을 내장했던 것입니다. 북접 2.0(북조선 청우당)과 남접2.0(한국 청우당)을 아울러서 한반도를 아메리카와 유라시아의 허브로 전변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기획한 것이 ‘3.1재현운동’이었습니다. 미소공동위원회가 틀어지고 남북 분단이 굳어져 가던 1948년의 3.1절에 1919년의 3.1혁명을 재연시키고자 했습니다. 북과 남의 청우당이 합작하고 남과 북의 민중들이 연합하여 다시 3.1운동, 또 다시 개벽운동을 일으킬 것을 도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전선이 복잡하고 다기했습니다. 1919년처럼 다종교연합으로 대연정을 연출할 수 있을 만큼의 통일전선이 갖추어지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소련에 아부하고 미국에 굴종하는 내부의 기생 세력들이 세를 키워 갔습니다. 1948년 꾀했던 ‘다시 3.1운동’의 실패는 청우당의 쇠락에도 결정적인 사태였습니다. 노동당의 수장 김일성이 직접 청우당의 ‘우파’들에 대한 숙청과 축출에 개입하기 시작합니다. 레닌보다 수운 최제우를 높이 치는 청우당은 눈엣가시였습니다. 모스크바와 스탈린의 역린을 건드릴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청우당은 북조선 내 통일전선의 파트너(友黨)에서 노동당의 어용, 관제야당으로 강등됩니다. ‘조선적 신민주주의’가 만개하지 못함으로써 소련의 아류, 일당독재국가로 귀착된 것입니다.

분단체제는 거울상으로 작동합니다. 남쪽의 청우당 또한 쪼그라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직의 성격 자체가 변질됩니다. 수양과 경세를 겸장했던 교정쌍전(敎政雙全)은 온간 데 없이 사라집니다. 남북분단, 좌우분열의 난세 속에서 종교적 수행 운동으로 퇴각해 버린 것입니다. 대승을 버리고 소승에 귀의했습니다. 동학과 천도교의 특장을 스스로 기각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청우당이 정치 일선에서 자취를 감춤으로써 천도교의 정치운동은 사실상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미국을 등에 업은 개화우파의 적자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면서 개벽파는 역사의 최전선에서 퇴각해 버립니다. 1960년, 동학 창도 100년을 맞춤한 4월 혁명 4.19에서도 천도교의 공헌은 미미했습니다. 도리어 <군자들의 행진>에서 추적하는 것처럼 유림들의 활약이 적지 않았습니다.

강습교재중 천도교청우당론 표지

최후의 일격은 역시 한국전쟁입니다. 해방이 개벽파의 기사회생이 아니라 치명타를 가하고 치명상을 남기게 된 것도 한국전쟁 탓입니다. 북에서는 개화좌파가 득세하고 남에서는 개화우파가 득의양양하게 됩니다. 고로 분단체제의 심급 또한 단순히 남북분단과 좌우분열에 그치지 않습니다. 동학으로 싹틔운 자생적이고 자각적인 근대에 결정적인 사망 선고를 내린 격입니다. 남북을 막론하고 좌우를 망라하여 세속화 일방으로 일주했습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각기 서구형과 동구형의 ‘조국 근대화’로 내달렸던 것입니다. 그 조국은 1894년과 1919년에 염원했던 ‘나의 소원’, 동학국가와 개벽국가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내발적 이상향과 실제로 구현된 (분단)국가의 실상 간에 아득한 간극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분단체제의 알파이요 오메가입니다. 그러하다면 2019년 <개벽파 선언> 연재가 시작되었다 함은, 비로소 분단체제가 최종적 해체 국면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상징적 징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쓰라린 마음으로 청우당의 ‘가지 못한 길’을 쓸어 담고 있습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심정으로 그 실패와 좌절의 처절한 상처들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너무 혁신적이었습니다. 시대를 앞서갔습니다. 20세기에서 21세기를 먼저 살았습니다. 때가 맞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때가 무르익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련은 진즉에 제풀에 무너졌습니다. 미국도 돌이킬 수 없는 하강세에 접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세속주의 일방의 근대화가 한계점에 다다랐습니다. 탈세속화와 재영성화의 메가트렌드가 유라시아 도처에서 도저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정치적 영성’으로 성성했던, ‘성속합작’의 원조였던 청우당을 꼼꼼하게 복기하려는 까닭입니다.

1946년 8월 1일부터 <개벽신보>(開闢新報)라는 당 기관지를 주간으로 발행했다고 합니다. 1948년 4월 1일부터는 일간지로 발행했다고도 합니다. 1919년 3.1혁명이 <개벽>(1920)을 낳았고, 1945년 해방이 <개벽신보>(1946)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내년 창간을 준비하고 있는 가칭 <개벽+>는 촛불혁명의 결실일 것입니다. 참조해 보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허나 천도교중앙도서관과 독립운동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등에 자문을 구해도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하다고 합니다. 감질이 납니다. 당장 읽고 싶어 안달이 납니다. 해방공간의 ‘가지 못한 길’, ‘개벽하러 가는 길’을 복원해 내고 싶습니다. 올 여름방학은 모스크바에서 지내기로 결정지었습니다. 소련군이 수합했던 북조선 문서고를 샅샅이 뒤져보아야 하겠습니다. 21세기에는 가볼 만한 길일 것입니다. 아니, 가야 할 길일 텝니다. 개벽로(開闢路)야말로 지난 백년과는 다른 새로운 백년의 신작로일 것입니다.

벽란도의 유라시아 네트워크

<개벽신보>를 함께 읽고 논하는 세미나도 해보고 싶습니다. 당장은 개벽학당이 가장 어울리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충분치 못합니다. 한국의 벽청만으로는 미진합니다. 북조선에서도 벽청을 키워 가야 하겠습니다. 남과 북의 벽청들이 어울려 <개벽신보>를 함께 읽어가는 근미래를 내다봅니다. 장소 또한 평양이나 서울은 적절치 않습니다. 개성이 최적입니다. 개성은 본디 개경(開京), 열린 도시, 오픈 시티였습니다. 개경으로 이어지는 예성강의 끝자락 벽란도는 유라시아의 만인과 만물이 오고가는 허브(接)였습니다. 또한 개경은 최초의 대학, 국자감이 자리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21세기의 문명대학, 개벽대학을 세움직합니다. 개성공단은 재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 확대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대학을 세우면 청년과 지식인과 예술인들이 모여듭니다. 개성을 20세기형 산업단지, 공업도시로 만들어서야 쓰겠습니까. 21세기형 문명도시로 거듭나게 해야 합니다. 14-15세기의 베니스, 17-18세기의 암스테르담, 20세기의 뉴욕을 참조해 볼만 합니다. 응당 북과 남으로는 성에 차지 않습니다. 기왕이면 동북아연합의 국제개벽대학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개성에 개벽대학을 세웁시다. 그리고 ‘고려청우당’도 재건합시다. 그래서 그 개벽인과 미래인들이 주역이 되어 만들어가는 통일된 동학국가의 대망과 대업도 완수합시다.

개성의 국자감

‘해방공간의 재재인식’의 물꼬를 청우당으로 틔웠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의 개벽파가 어디 천도교뿐이었겠습니까. 그 푸르른 벗(靑友)들 가운데는 원불교도 있고 개신유교도 있으며 토착화된 기독교와 천주교 및 혁신불교도 없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소망과 소원들을 하나 둘 밝혀주고 새 숨을 불어넣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죽은 불씨를 되살려야 하겠습니다. 선생님이 해 주실 만한 이야기보따리가 적지 않으리라 기대됩니다. 맞장구와 추임새를 기대합니다. 만시지탄과 지청구도 없지 않을 테지만요.

금, 2019/03/2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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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명은 크게 아리안족 문명과 셈족 문명 그리고 한족 문명으로 니누어 볼 수있습니다. 무엇보다 기원적 2천년전 코카써스 산맥 북쪽에서 농경생활을 하던 아리안족Arya이 이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인류문명은 대융합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당시 서쪽으로 이주한 아리안족은 에게해의 크레타 문명을 몰락시킨 후 그리스와 터키로 연결된 지중해 연안의 도시에서 해상국가로 거듭납니다. 한편 남하한 아리안족은 이란을 거쳐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에 이르러 기존의 드라비다족을 내쫓은 후 인더스문명의 뿌리를 내리게됩니다. 이후 이란을 거쳐 아라비아 반도로 내려온 아리안족은 수메르와 아카드문명에 뒤이은 셈족의 바빌로니아 문명을 패퇴시킨 후 독자적인 페르샤문명을 구축하게 됩니다. 결국 아리안족은 인류문명, 특히 서구문명의 주축을 이루는 그리스로마 문명과 페르샤문명 그리고 인더스 문명을 구축한 주인공으로 거듭나게됩니다.

사진: 서울신문

따라서 아리안 문명의 특징을 알아봅시다. 무엇보다 여러 측면에서 발현되는 다양성을 들수 있습니다. 이는 신관에서도 나타나는데 최고신을 Deva, Jeus, Deus, Dei라고 부르는 다신론으로 표현되었으며 또한 다양한 삶을 살 수있다는 믿을을 전제로한 윤회사상을 믿어 왔습니다. 또 다른 특징을 살펴보면 특히 그리스로 이주한 아리안들은 주로 지중해 해안가 도시들에 살면서 바다를 상대로 교역을 해왔기때문에 항해시에 반드시 필요한 시각중심의 문명으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이에따라 그들은 눈에 보여진 것(파도, 현상)과 보여지게 만드는 것(바다, 본체)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본체를 인식하는 능력인 이성을 중시하게 되는 로고스logos형이상학을 발달시키게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뒤에서 보듯이 본체 중심의 사고는 파르메니데스를 거쳐 플라톤에 이르러 절대적 실체론으로 전개하게 됩니다.

한편 아라비아 반도에서 미리 정착했던 셈족 문명의 특징을 알아봅시다. 무엇보다 사막이라는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야했던 그들은 원초적으로 초능력자와 초월자를 요청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기에 초월성과 유일성 및 절대성을 문명의 본질로 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여 그들이 믿는 신은 아리안문명의 다양한 인격신을 배격하고 오로지 최고의 단일신, 예를들어 수메르의 엘, 바빌론의 마르두크, 가나안의 바알, 유대교의 야훼나 이슬람의 알라를 숭배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거의 유사하다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실았던 바빌론의 우르지역에서 믿었던 최고의 신은 마르두크였기 때문에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된 유대인의 유대교 야훼는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내용의 유일신이라할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사막에서 살았기때문에 모래바람들이 내는 소리를 중시하는 청각중심의 문명입니다. 하여 야훼의 말씀이 창조를 이루고 율법(십계명)이 된 유일한 소리의 문명으로 남게된 것입니다. 따라서 시각을 배격하고 청각,즉 소리만을 유일신의 증거로 보았기에 신을 시공간속에 형상화하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한편, 중국을 살펴봅시다. 중국인들은 인격신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독특하게 하늘을 신으로 상정하여 왔습니다. 즉 신에대한 설문해자를 보면 신은 하늘의 번개 모습을 띄는데 이는 하늘이 위력과 영묘함 그리고 길흉화복의 예측능력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신은 인간의 삶의 주재자가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신은 창조자나 구원자가 아니라 인간사를 좌지우지하는 주재자이기에 그의 명령을 잘 따르는 자가 인간사회의 주재자, 즉 (황)제가 된다고 보는 천명론으로 확장되어 갑니다. 즉 하늘의 천명을 받는 자는 덕을 갖춘 자이어야하기 때문에 천명론은 인성의 수양론으로 연결되어 집니다. 따라서 중국사상은 심(인간 마음)과 성(우주의 본성, 즉 하늘, 천명)은 출발부터 일치를 지향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즉성 사상은 이후 인도로부터 들어온 불성사상(불성은 가능태로서 보통 실체인 여래장과 혼동되고 있습니다)을 심즉시불(마음이 곧 부처! 즉 불성은 현실태로서 본래성을 의미한다할 것입니다)의 사상으로 격의하여 점수가 아닌 돈오 중심의 6조 혜능의 돈오돈수 사상이 선불교의 정통으로 자리잡게 되어 오늘날 한국의 선불교의 모태가 됩니다.

그리면 이제부터 아리안문명이 서쪽과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기존에 터잡은 셈족 문명과 한족 문명에 끼친 영향을 알아봅시다. 먼저 아리안족이 남쪽으로 이동하여 만나게된 셈족 문명,특히 기독교와의 만남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이 만남에서 촉매역할을 한 사람이 로마 시민권자이자 유대인인 사도 바울이라할 것입니다. 그는 아리안 문명에 속한 로마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말씀을 진리로 믿고 회심한 후에 셈족의 유대교를 벗어나서 예수의 가르침을 기독교로 보편 종교화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신의 말씀인 율법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유대인만의 종교틀을 벗어나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있기에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을 수있다는 보편종교로서 기독교 사상을 구축하였는데 이를 이신득의,이신칭의라고 부릅니다. 이신칭의는 그 자신이 디아스포라였기 때문에 기독교를 본토 유대인만의 민족종교가 아니라 그 밖의 유대인 나아가 인종을 초월한 보편종교를 만들기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이를 뒷받침한 사상이 로마의 만민법사상과 스토아의 사해동포주의라할 것입니다. 하여 바울이 기독교 구축에 기여한 공로는 지대하다할 것이나 근원적으로 당대의 그리스,로마의 존재론은 파르메니데스와 플라톤의 실체론이었기 때문에 결국 기독교는 바울을 만나 철학적 토대를 구축하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이데아와 현상으로 세계를 이분법적이고 수직적인 질서로 보는 실체론의 한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실체론은 실체를 독립적이고 고정불변한 존재로 보기에 단일하고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있으므로 후행존재의 원인이 되는 선행존재는 존재근거인 실체가 되어 상대방의 본질을 파악하여 그를 도구로 지배하고 이용하게됩니다.

(그러나 실체는 인간이 대상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설명하기위한 언어적 허구개념이라는 점은 수차례 지적하였습니다만 이런 실체 개념으로 2천년동안 지구를 지배해왔으나 이런 허구적 개념으로는 현대의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없기에 새로운 존재론, 즉 생성론을 구축하여야할 것입니다)

따라서 신을 제1원인의 실체, 즉 플라톤의 이데아로 간주하는 기독교는 피조물인 인간에 대해 초월적인 지위에서 일방적으로 지배할 권한을 갖게되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수직적 계서질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런 질서는 근대에 이르러 인간이 인간과 자연을 무자비하게 지배하게되는 제국주의 또는 인간중심주의의 근거를 제공합니다. 또한 선과 악 또한 실체로 간주하기때문에, 즉 악은 박멸해야할 실체이기때문에 중세의 대표적인 악인 마녀를 불에 태워죽이는 끔찍한 행위를 도리어 정의로 간주하는 비정상의 행태를 보입니다. 따라서 만일 바울이 그리스,로마가 아니라 인도의 불교문화를 찾아 동쪽으로 나아갔다면 상호의존의 연기법과 얽힘의세계로 이루어졌다는 화엄사상, 즉 상입상즉의 사상을 예수의 해방과 구원의 사상에 결합시켰더라면 오늘날 예수의 가르침은 어떻게 구체화되었을까요?

이에대해 BuddistChristian이 하나의 해답을 제시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아리안족이 동진하여 인더스강에 독자적인 인더스문명을 개척하여 다신교인 힌두교를 낳았으며 이후 부처라는 걸출한 각자를 만나 힌두교의 존재론과는 전혀 다른 종교인 불교를 성립하게 됩니다. 힌두교와 불교의 큰 차이는 힌두교는 실체론에 근거한 사상이고 불교는 비실체론,즉 생성론,사건론,과정론 에 근거한 자연철학이라할 것입니다. 하여 힌두교는 범(Brahman)아(Atman)일여에서 보듯이 불교와 유사하게 보입니다만 힌두교는 브라흐만과 아트만을 고정불변의 실체로 보고 불교는 존재를 실체가 아니라 사건들의 연기적 과정이라고 보고 있으므로 모든 존재는 연기법에의해 내재적으로 서로 생성과정에 참여하기에 우주의 뭇 존재는 연기로 촘촘히 얽혀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존재는 상호 내재하므로,즉 상입하기에 서로 남남이 아닙니다(즉 자기언급self reference). 또한 같이 참여하기에 서로 등가적 존재로서 평등하므로, 즉 상즉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세계관에서는 지배복종의 계서적 구조는 사라지고 오직 수평적 상호관계만 존재하므로 강자에 의한 약자를 배제하는 변증법이 아닌 강자와 약자가 중첩하여 제3의 대안을 제시하는 창발적 중도법을 따르게 됩니다. 하여 비록 아리안문명이 인도에 다신론과 실체론에 기반한 힌두교를 낳았으나 그럼에도 석가모니라는 위대한 각자를 만나 불교라는 비실체적 존재론을 통해 아리안의 실체는 허상에 불과하고 연기론이 실상의 법칙임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이제 인도불교가 중국에 미친 영향을 알아 보도록하겠습니다. 인도의 대승불교가 중국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연기사상외에 유가행 중관학의 공사상과 세친의 유식사상 그리고 화엄사상이 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인도 고승인 달마대사가 중국 남부 양나라에 들어갔을 당시 중국불교는 호국불교 또는 기복불교로 전락되어 부처 본연의 가르침이 쇠락되어 버렸으며 이를 알고난 달마태사는 부처 가르침을 신도들이 직접 깨닫게 하기위해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수행을 하게됩니다. 하여 달마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중국은 자신의 고유사상과 융합 convergence 또는 자신의 고유사상으로 격의 transformation한 중국만의 독자적인 선불교를 만들게 됩니다. 다시말하면 중국의 고대 유교의 심성론은 심과 성 (본성,자성)은 일치한다고 (심즉성) 보았으며 또한 본성은 하늘로 부터 부여받았기때문에 부지런히 수행을 하여 마음의 덕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한편 인도에서는 불성은 부처가 될 가능성을 의미하기에 자신이 불성의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고 이후 수행을 통해 불성을 깨우쳐 우주의 실상을 깨닫는다는 것을 골격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여 중국의 심즉성 사상과 인도의 심즉시불 사상(이는 이(불)사(심)무애사상에도 나타납니다)은 서로 유사성을 띄기에 인도의 점수돈오 사상이 중국에서 선불교로 정착하게되는 계기가 됩니다. 결국 인도의 점수돈오 사상이 중국의 심즉성 사상에 힘입어 선불교로 격의하게되었다할 것입니다. 다만 차이점은 인도 불교는 불성을 여래장처럼 ‘가능태’로 보았기에 요가처럼 점수의 수행이 필요하였다고 본 반면 중국은 본성,즉 자성을 ‘현실태’로 보았기 때문에 찰나심에의해 돈오할 수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중국인들은 불성이 현실태이기에 즉시 알아차리기만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중국 선불교는 남종선과 북종선으로 나뉘게 되는데 남종선의 좌장인 신수대사는 인도불교처럼 수행을 통해 본성을 깨달아야한다고 본 반면 6조 혜능은 본성 또한 본래무일물이므로 수행한다고 반드시 알아차릴 수있는 것만은 아니기에 수행이 의미없고 오직 찰라의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이는 위에서 본 중국 전통의 심즉성 관점을 온전히 따르고 있는 입장이라할 것입니다. 즉 신수는 점수돈오이고 혜능은 돈수돈오라할 것인바, 이런 관점은 기존의 돈오점수와 돈오돈수 논쟁과는 내용이 다른 문제이니 오해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한편 달마의 영향으로 중국인은 종래의 심성론을 불교적인 심즉시불 사상으로 다시 격의하게 되었는데 이를 달리 말하면 심즉성과 심즉시불은 같은 의미라고 보았으며 결국 마음과 우주 본성은 일치한다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금나라로부터 송나라가 남송으로 쫒겨나가게 되자 주희는 중화의 부흥과 사회기강의 확립을 부르짖게 되는데 이의 근본원인을 불교의 반사회성에 있다고 보았기에 불교를 척결하고 새로운 유교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았는데 이 것이 신유학, 즉 주자학, 성리학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도는 불성을, 중국은 자성을 본성으로 보고 주객미분 이전의 본래면목이라하여 심즉성과 심즉시불 사상에 의해 본성과 마음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희는 우주의 본래면목(본성)을 주객을 번별하는 인간의 도덕성으로 격하시킨 후 성과 심은 일치하지가 않다며 이를 이원적으로 분리시킨후 성이 심을 수양하는 존재, 즉 (도덕)성 의 함양을 위해 성이 심을 양성해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성이 아닌 심의 덕을 쌓기위해,즉 천명을 받기위해 심을 수양해야한다는 유학의 정신과도 배치된다할 것으로 주희의 신유학은 마음과 분리된 성중심의 실체론적 계몽주의라할 것으로 뒤에서 보듯이 실체론이 갖는 문제점을 모두 노정하고 있다할 것입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그는 성을 도덕성으로 축소시킨 다음 이를 ‘성’이 아닌 ‘리’라고 칭하였으며 성으로부터 분리된 ‘심’, 즉 마음을 지닌 존재를 ‘기’라고 격하시켰습니다. 이는 불교의 ‘이’와 ‘사’의 사상의 본 뜻(자연과 인간의 일치!)을 완전히 배격해버리고 단지 형식적 이원적 구조만을 흉내낸 것에 불과합니다. 즉 그는 불교의 우주 원리를 인간의 윤리로 도용한 것이라할 것입니다. 하여 그가 불교의 우주원리인 이사무애를 형식상 차용하였지만 실상은 이를 이용하여 인간사회의 윤리기강을 잡으려하였기에 실제로는 그는 이사무애,즉 이기무애가 아닌 이선기후를 추구한 것이라할 것입니다. 즉 중화를 중심으로 그틀의 가치나 제도를 보존하기위해 타 민족을 도덕적으로 계몽하고 훈육하고자한 것에 불과하다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불교의 존재원리를 인간의 규범(도덕)원리로 격하시킨 후 선험적인 ‘리’에 경험적인 존재인 ‘기’가 복종해야 사회질서가 살아난다는 지극히 인간중심주의, 중화중심주의의 폐쇄적인 사상으로 유교를 전락시켰는데 이는 서구의 실체론 못지않게 리를 실체화시켜 못 존재를 그에 복종시키는 계서적 구조(3강5륜), 경직성(예론), 폐쇄성(중화사상), 인종차별(호론과 낙론) 등을 벗어나지 못하였기에 중국은 근대의 과학화, 민주화, 산업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퇴행하게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세계 문명은 항상 상호 작용에의해 생성된다는 것을 알 수있으며 나아가 실체론적 존재론(유일신사상과 신유학등)으로 무장한 문명은 개방성, 역동성, 창발성이 부족하기에 새로운 문명의 대안을 찾는 중도적 자세가 결여되어 반자연, 반인간, 반문명으로 흐른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있다할 것입니다.

ㅡ하여 바울이 서쪽으로 가지않고 동쪽으로 갔거나, 달마가 동쪽으로 가지않고 서쪽으로 갔으면 인류문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수, 2019/04/0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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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벽의 바람

이병한 선생님, 두 번째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먼저 편지를 쓰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는 말을 듣고서 저도 덩달아 기뻤습니다. 뭔가 답답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요. 마침 엊그제 원불교대학원대학교의 김경일 총장님도 페이스북에서 비슷한 표현을 쓰셨더군요. “서구 근대문명이 들어올 때 위정척사나 개화파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동학류의 개벽에 대한 자리매김이 늘 고민이었는데 (『한국 근대의 탄생』을 읽으니) 이것을 풀어낼 단서를 찾아주신 것 같아 저도 가슴이 후련했습니다.” 아마도 전통(척사파)과 현대(개화파)라는 양분법으로 단절된 한국사상사에서 ‘근대’(개벽파)라는 연결고리를 찾으셔서 이런 표현을 쓰신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뭔가 막혀있는 지금의 상황을 뚫을 수 있는 사상적 실마리는 역시 ‘개벽’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성환 사진2 유상용선생님과
유상용 선생님과~

실제로 요즘 제 주위를 보면 여기저기에서 개벽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한국 근대의 탄생』을 읽으셨다는 유상용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30년 동안 국내외에서 공동체운동을 하다가 개벽으로 돌아오신 분인데, 그 귀환의 심정을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고 계십니다: “나는 92년 이래로 정신과 물질이 고루 발달한 풍요로운 이상사회를 지향하는 ‘야마기시즘’을 현실사회에 실현하기 위한 실천과 활동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된 나의 ‘뿌리찾기’의 과정에서 시작된 탐구와 실천의 한 과정일 뿐이지 전부는 아니다. 뿌리찾기 과정에서 도착한 곳은 조선 정신의 용출인 개벽사상이었고, 그것을 사회화하기 위해 시도했던 것이 원불교사상을 기반한 새로운 사회 만들기였다. … 작년 말에 나는 다시 돌아왔다, <개벽>으로 -. 한국의 상황에서, 지금 여기로, 뿌리에서 올라오는 울림으로, 나의 느낌으로…”

이렇게 ‘다시 한국’으로 귀환하신 분과 원광대학교에서 6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30년 동안의 체험과 실천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으로부터 개벽학과 관련해서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가령 동학은 일종의 한국인의 사상적 뿌리찾기로 해석할 수 있고,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개벽적 주체의 정립이며, 한살림은 생산성 중심의 과학농업에서 철학에 기반한 인문농업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운동이다 등등… 유상용 선생님도 며칠 뒤에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리셨더군요.

“요즘 동학‧증산‧원불교 관련 글들을 읽으며 그 때 선조들의 바람은 무엇이었는지, 시대적 과제와 자각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많이 읽고 떠올려 보았다. 특히 최제우 선생은 조선과 동양의 몰락을 감지하고, 유학이 당면한 과제를 알고, 기독교-서학의 내용이 의미있다는 것을 이해한 후에, 유학이 현상의 관찰에 머물러 초월을 몰랐고, 서학이 초월을 인간 밖에 두어 외화되었다고 판단하고서, 스스로 기도를 통한 초월적 체험을 시도하여 새로운 길을 열고, 양쪽의 모순을 극복한 ‘내안의 하느님을 모시는’ 시천주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전에도 비슷하게 생각했었지만, 조선 문명의 절실한 과제의 해결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이해하니 더욱 선생과 선조들의 마음이 가깝게 느껴진다.”

탁월한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초월의 문제와 관련해서 동학의 입장에서 유학과 서학의 한계를 지적한 부분은 왜 개벽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사상사적으로 정확히 짚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분들의 도움을 받으면 이 시대에 필요한 개벽학을 정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날 유상용 선생님의 소개로 마침 익산에 오신 이남곡 선생님도 함께 만나뵐 수 있었습니다. 30년 전에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감옥에서 나온 뒤에 어느 사찰에 들어가서 「혁명에서 개벽으로」라는 글을 쓰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벽’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냐고 여쭤봤더니 “밝음을 창출하는 에너지”라는 한마디로 명료하게 정의해 주셨습니다. 어둠과의 싸움이나 정치적 투쟁이 아니라 “자기 안의 밝음을 신장시키려는 노력”이라는 것입니다.

순간 저는 한국의 전통적인 ‘신명사상’과 장일순 선생의 ‘보듬는 혁명론’이 떠올랐습니다. ‘신명’이 바로 ‘밝음의 에너지’이고, ‘신명난다’는 말은 “밝은 기운이 나온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투쟁이나 저항의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전환시키는 길은 밝음의 에너지로 상대를 보듬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남곡 선생님이 작년에 『논어: 삶에서 실천하는 고전의 지혜』의 개정판을 내셨다고 하는데, 이런 마인드로 『논어』를 독해하셨다면 저로서는 일종의 『개벽논어』와 같은 느낌이 듭니다.

 

2. 창조성과 도덕성

선생님의 편지에서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정신을 개벽하여 물질을 개벽하자!”는 역발상입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정신개벽은 ‘서구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최제우가 ‘중국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를 ‘다시 개벽’이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종래의 성학(聖學)을 술(述)하지 않고 동학(東學)을 작(作)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한국 근대의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적어도 사상사적으로는 이렇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국중심주의나 민족주의로 나가자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사실 모든 ‘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가 정신개벽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지요. 천도교나 원불교 경전에서 마음/정신의 최고 상태를 ‘자유심’이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로운 마음/정신 상태가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새로운 생각, 새로운 학문, 새로운 동학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다고 봅니다. 뭔가에 얽매여 있는 상태에서는 새로움을 창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새로움’이 바로 이남곡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밝음’이나 한국사상에서 말하는 ‘신명’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유레카’와도 상통하고요. 아울러 이렇게 정신이 개벽되면, 즉 정신이 자유로워지만 창조적인 주체가 될 수 있고, 이렇게 창조성이 발현될 수 있을 때 새로운 물질개벽의 차원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것이 ‘창조경제’이고, 인문디자인의 관점에서 본 정신개벽과 물질개벽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해석입니다.

조성환 사진2 새교포럼 박맹수 강연1
세교포럼 박맹수 강연(왼)

물론 정신개벽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자각하여 구세하자”는 자각정신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지난주에 창비빌딩에서 있었던 세교포럼에서 원광대학교 박맹수 총장님이 “문명전환기에 다시 보는 한국근현대사상”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셨는데, 이에 대해 세교연구소 고문이신 백낙청 교수님께서 이중과제론적 입장에서 코멘트를 하셨습니다. 원불교에서 말하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슬로건의 의의는 이 시대를 물질개벽, 즉 자본주의의 시대로 설정하고 그것에 대한 정신적 대응으로써 정신개벽을 주장했다는 데에 있고, 그래서 원불교에는 근대적응(물질개벽)과 근대극복(정신개벽)이라는 이중과제가 다 들어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이 한마디에 그동안 말로만 듣던 백낙청교수님의 이중과제론의 내용이 명료하게 들어왔습니다. 아울러 원불교의 개벽론이 지니는 현대적인 의미도요. 물론 개인적으로는 “물질개벽=자본주의”보다는 “물질개벽=과학혁명”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과학혁명과 자본주의가 현실적으로 맞물려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강같습니다.

저는 이런 의미의 정신개벽을 나타내는 말이 개벽파가 주장한 ‘도덕’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월 최시형이 말하는 ‘도덕문명’(『해월신사법설』「기타」)이나, 소태산 박중빈이 말하는 물질문명과 대비되는 ‘도덕문명’(『대종경』 「교의품」 32장)이 그러한 예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정신개벽이라는 말에서 도덕성과 창조성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읽어내고 싶습니다. 도덕성이 원 문맥에 충실한 개념이고, 선생님이나 백낙청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자본주의라는 근대를 극복하는 정신적 태도나 삶의 자세라고 한다면, 창조성은 정신개벽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신을 개벽해서 물질을 개벽하자”는 선생님의 역발상에서의 정신개벽은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성환 사진2 새교포럼 박맹수 강연2

 

3. 한국학과 신동학

마지막 부분에서 “동학을 연구하기보다는 신동학을 하자!”는 선생님의 제언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다만 제가 ‘개벽사’라는 사상사 서술에 집착하는 이유는 역사에 대한 인식이 우리의 실천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실천이나 현장을 우선시하는 분들과 저 같은 연구자와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학의 틀을 바꾸고 싶습니다. 척사와 개화, 유학과 서학에 치우친 한국학에서 ‘척사-개화-개벽’이 천지인(天地人) 삼재처럼 균형이 잡힌, ‘유학-서학-동학’이 삼발이처럼 정립된, 그런 한국학을 그리고 싶습니다. 유학이 동아시아라는 전통적 배경이고, 서학이 세계라는 현대적 환경이라고 한다면, 동학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재적 풍토입니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 소외되고 무시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현재적 풍토는 잊혀지고 무시된 감이 있습니다. 그것이 개벽이라는 근대였습니다. 이 폄하되고 경시된 한국적 근대에 대한 기억을 복원시키는 일이야말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균형잡힌 한국학이 정립되지 않으면 실천도 방향을 상실하리라 생각합니다. 개벽의 근대를 제외한 유학 중심의 ‘전통과 현대’라는 틀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제 입장에서는 “동학을 연구하는” 것도 일종의 “동학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한국 근대의 탄생』의 출간을 인연으로, 한평생 실천현장에 몸담고 계셨던 실천가들을 만나 뵙고, 아울러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자극을 받고서, 저도 비로소 실천에 대한 필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도 새로운 ‘자각’이 생겨난 셈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25년이 문헌연구-사상연구에 치중했다고 한다면, 앞으로의 25년은 실천현장에 계셨던 분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새로운 ‘학’의 정립과 실천에도 힘을 기울이고 싶습니다.

 

4. 언어의 한계

마지막으로 맨 처음에 제기해 주신 ‘일본의 개벽’이니 ‘토착적 근대’에 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으로 이번 답장을 마치고자 합니다. 당연히 지적하신대로 일본의 개벽파를 상정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에는 개벽파라고 할만한 운동은 희미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도 동의하시는 바입니다. 다만 우리와 같은 개벽의 흔적이 있는지를 찾고 싶었고, 그것이 안도 쇼에키와 같은 사상가가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결코 한국 개벽의 원형이나 시작이 일본에 있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동학=개벽’의 가장 큰 사상사적 의의는 중국적 성인질서로부터의 탈피인데, 이런 주장을 안도 쇼에키가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안도 쇼에키는 사회운동의 차원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였다고 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관점이 제가 ‘근대=자본주의’와 등치시킬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세계’의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한국’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입니다(물론 한국은 세계 안에 있지만요-.). 그래서 근대의 기준이나 내용을 규정할 때에도 저로서는 중국(유학)과의 관계가 중요해지고요. 마치 서양 근대가 중세(신학)와의 관계 속에서 나왔듯이 말입니다. 단지 관점이 달라서 표현이 달라질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개벽’이라는 표현은 ‘한국의 근대’라는 표현과 유사하게 생각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즉 modern의 번역어로서의 ‘근대’라는 말을 한국의 ‘개벽’을 설명하기 위해서 차용해서, 그 상대적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서 ‘영성적 근대’니 ‘자생적 근대’라는 말을 썼듯이, 이번에는 반대로 한국의 ‘개벽’과 유사한 현상을, 즉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이라는 현상을 일본사상사에서 찾아서 적용해 본 용어입니다. 그래서 서양의 근대와 한국의 근대의 내용이 완전히 일치할 수 없듯이, 한국의 개벽과 일본의 개벽도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토착적 근대’니 ‘비서구적 근대’니 하는 용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시기에 굳이 ‘토착’이니 ‘비서구’니 하는 용어를 쓸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제기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적인 용어에 불과합니다. 서구중심주의를 상대화시키기 위해서요. 가령 김치가 한국의 토착음식이라고 할 때, 김치의 재료나 요소가 한국에만 국한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해외에도 김치가 보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치가 한국만의 음식이라는 뜻도 아니고요. 다만 김치라는 음식이 나온 고장이 한국이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존재론적으로는 모든 게 연결되어 있지만요. 토착적 근대니 비서구적 근대라는 말도 이 정도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우려하는 것은 보편이니 지구화니 글로벌이라는 말에 의해서 놓칠 수 있는 한국이라는 로컬이나 지역이나 특수성이었습니다. 이것은 제 전공이 한국사상사이기 때문에 강조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오랜만에 개벽에 대해 쓰고 나니 가슴이 후련해졌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개벽에 대해 호응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힘이 납니다. 선생님을 비롯하여 여러분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금, 2019/01/2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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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모두가 부러워하는 예일과 하버드라는 최고의 명문대학에서 동양문화사와 언어학 박사를 취득하고도 보장된 장래를 포기하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싫어서 한국으로 망명을 떠나온 미국출신 한국인 페스트라이쉬(한국명 이만열)교수의 미국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통렬한 문명비판 칼럼이다. 동시에 이 글은 한국의 미래에 대한 예언적인 엄중한 경고를 담고 있다.


미국 보스톤 정신분석 연구소(Boston Psychoanalytic Society)의 랜스 도즈 (Lance Dodes) 박사는 MSNBC에 출연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는 스스로도 통제가 안 된다. 이런 사람을 두고 우리는 정신이 이상해지고 있다 내지는 간단히 정신병환자라고 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트럼프는 하루는 북한과 중국을 전쟁으로 위협하다가 갑자기 다음날 그 지도자들에게 애정을 퍼붓는 중이다. 그는 기후변화로 인류의 생존이 경각에 달렸다는 과학적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기후변화 연구를 중단시켰다. 측근들과 함께 미국이 모든 군축 협정을 탈퇴하도록 종용했고, (사전 논의도 없이) 우주 군사화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발족시킴으로써 재앙을 우리 턱 밑까지, 1950년대보다도 가까이, 어쩌면 세계사상 가장 가까이 불러왔다.

지난 2월 5일 연두교서에서는 지금의 “경제번영”은 전임 대통령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것이라며 자화자찬하기 바빴다. 그런데 지금의 이 호황은 고삐 풀린 투자은행들을 등에 업은 기업들이 주식을 환매하며 탄생했을 뿐, 진짜는 아니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파산 직전 인구, 홈리스, 재소자 등은 못 본 채 했다. 정색하고 누구에게든 아무 말이나 하는 탁월한 능력을 다시금 선보인 것이다. 다시 말해 트럼프는 교과서 상 사이코패스의 모든 특징을 몸소 보여줬다.

아무리 트럼프라도 조력자가 없었다면 여기까지는 오지 못했을 것이다. 최악질 사이코패스 존 볼턴(John Bolton)의 도움이 있었다. 볼턴은 이 세상에 핵전쟁을 불러올 생각만으로 신이 나는 사람으로 그동안 시리아, 우크라이나, 베네수엘라, 중국, 러시아와의 전쟁을 동시에 지지해왔다. 미래의 전망이 어두워질수록, 그의 열정은 뜨거워진다.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는 “재림 (The Second Coming)”을 쓰며 볼턴같은 사람을 생각했던 게 틀림없다. 볼턴은 “피로 어두워진 파도(blood-dimmed tide)”의 “빗장을 열어(loosed)”, “선한 자는 모든 신념을 잃고 악한 자는 격정으로 가득한 (the best lack all conviction, while the worst are full of passionate intensity)” 대혼란을 가져왔다. 여전히 양심이 남은 또는 전두엽 피질 기능이라도 가능한 자들이 마치 난파선을 탈출하는 쥐떼처럼 미 국무부와 국방부를 떠나자, 볼턴은 정책과정의 공백을 독차지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워싱턴 정가의 모습은 어떠한가?

요즘의 “민주당”을 한번 살펴보자.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민주당, 캘리포니아) 하원의장은 트럼프가 “파병부대 격려”를 위한 그녀의 아프가니스탄 방문계획을 공개하자, 자신의 안전을 위협할 것으로 추정, 이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그렇게 진보적인 펠로시도 애초에 미국이 왜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왜 아직도 아프간에 머무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론, 아프가니스탄에서 희생된 (아프간 시민은 차치하고) 미국 노동자의 수치에 대해서는, 왜 미디어에서 더 이상 미국 군대 이야기를 보도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대신 중국이 위구르의 수백만 무슬림을 탄압한 소식을 알리기 바빴다. 구체적인 증거를 찾으려는 노력은 없었다. 지난 20여 년간 미국 군대에 희생된 수백만 무슬림에 대해서는 역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정작 군국주의에 대한 논의는 무시하면서 정의로운 세상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펠로시는 열성(劣性)사이코패스이다.

버락 오마바(Barack Obama)는 어떤가? 오바마 이름만 들어도 눈가가 촉촉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혹시 오바마 특유의 그 유쾌한 태도 때문에 그가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보통 사람들을 이용한 사실을 간과한 것은 아닌가? 진정한 개혁가에게 명예훈장처럼 따라붙는 개인적 공격을 피하기 위해 오바마가 어떻게 Goldman Sachs와 JP Morgan에 영혼을 팔았는지 잊은 것은 아닌가? 거저 얻은 존경은 훨씬 더 달콤한 법이다.

그의 아내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는 최근 “비커밍 (Becoming)”이라는 책을 냈다. 정식 출간 전부터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오늘날의 정치적 디스토피아를 상징한다. 그녀는 베일에 가려졌던 개인사를 능수능란하게 풀어내며 미국 내 거버넌스의 몰락과 문명사회의 야만적인 타락은 완전히 가려버렸다.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처럼 미셸도 자신이 권력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그녀는 책에서 작금의 이 악몽이 시작된 첫 8년을 이끈 조지 W. 부시(George W. Bush)를 자신의 “공범”이라고 칭했는데, 이는 단순 말실수가 아니다. 정신병 말기에 접어든 진보진영의 몰락을 보여주고 있다.

오바마 부부는 애초에 진정한 “반전” 진보주의자는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사회주의” 진보주의자, 버니 샌더스 (Bernie Sanders) 뿐이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트럼프의 연두교서에 그답게 대응했다.

공화당, 민주당 할 것 없이 트럼프의 연설에 담긴 무의미한 제스처와 거짓 주장에 박수를 친 것만으로도 최악인데, 샌더스의 근시안적 시각도 비판받아야 한다. 그는 노동자의 임금과 사회 전반의 “불공정”에만 주목하느라 군비의 엄청난 증가나 러시아 및 중국과의 전쟁 위협, 심각한 부의 집중 등 그의 친구 오바마 정권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는 무시했다. 투표자 억압이 있었다는 점이 유감스럽다고 했을 뿐, 그러한 행위가 흉악범죄라는 점은 “대체 무엇 때문인지” 언급을 잊었다.

어쩔 수 없이 샌더스를 지지했더라도 그가 지난 선거에서 한 일을 꼭 기억하자. 그는 유세에 운집한 수만 명 노동자의 고통어린 삶에 대한 연설을 했다. 이 절절한 연설에서 “혁명”을 이야기하며, 한 달 집세도 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신이 “부자들”과 싸울 수 있도록 현금을 보내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지지자들은 그의 요청에 응답했다. 그들은 목표를 위해 단결했고, 샌더스를 승리의 길로 이끌었다.

그런데 경선 표를 조작했든, 샌더스에 대해 가짜뉴스를 퍼뜨렸든, 클린턴이 앞서나가자 샌더스는 침묵했다. 그는 마치 자신을 지지한 보통 사람들의 표가 무너지는 것이 그들 모두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개인적 문제인 듯 굴었다.

샌더스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너무나 빠르게 클린턴에 굴복했고, 그의 선거운동을 위해 희생한 모든 이들은 빈손으로 그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연설에서 공정한 사회를 역설하고, 노동자의 돈으로 선거운동을 하다가 권력에서 발을 빼지 않으려 그 지지자들을 배신하는 것 역시 숨길 수 없는 사이코패스의 신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가 있지 않은가.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혼란에 빠진 미국 청년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그녀다. 그런데 그녀의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질지 몰라도, NATO와 러시아 제재를 찬성하는 점, 민주당에 묶여있다는 점 등을 보면 딱히 낙관적이지 않다.

지난 마틴 루터 킹의 날, 오카시오-코르테즈가 “소수의 부자들을 존재하게 하는 제도는 부도덕하다”라고 한 발언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을 것이다. 다만, 의회에서의 발언은 로비스트의 마음을 사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그 때문에 그녀는 부자들이 전쟁도발, 시세조작, 전 세계를 좀먹는 화석연료 등을 통해 부정으로 축적된 재산의 몰수는커녕, 해외 조세피난처의 폐쇄를 위한 법안도 제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보주의” 카말라 해리스(Kamala Harris)도 있다. 해리스는 자녀가 초등학교에 무단결석하는 경우, 그 부모에게 징역을 포함한 형사 처분을 적용하는 법안을 지지했고, 피고에게 증인의 신뢰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도록 했으며, 경찰관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말하자면 그녀는 자해방지용 정신병동에 머무르는 진보주의자다.

 

미국 사이코 민주주의의 기원

이런 정치판 사이코패스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우주선을 타고 떨어진 것은 아니다. 행동은 외계인만큼 이상하지만, 이들은 어느 미친 나라의 산물, 100% 미제다. 여전히 금문교와 헐리우드, 자유의 여신상, 그랜드캐년은 건재하지만, 그 이면의 미국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가족, 이웃, 동포 사이의 사회적 유대는 상업과 소비 열풍 속에 닳아 없어졌다. 정치와 시민사회가 있던 곳에 이제 황량한 사막만이 남았다.

오늘의 이 악몽을 모두 사회 최고위층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동안 이들의 병적인 자기중심주의를 독려하고, 심지어 보상까지 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 지경까지는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보상을 제공한 것은 부자들 뿐 아니라, 대부분 상위 중산층이었다. 한 때는 중산층이었다가 몰락한 주변의 홈리스를 돌보기보다는 제2의 스티브 잡스, 제2의 빌 게이츠가 되는 것에 집중하는 이들이었다.

이런 사이코적 행태는 사회 모든 계층으로 퍼져나갔다. 변호사, 의사, 교수, 언론인, 기업인, 정부기관장, 그리고 물론 노동조합의 “노조간부”도 예외는 아니다. 기득권을 누리는 자에게 이 무자비한 정부와 기업정책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러한 정책과 그들의 부와의 관계가 무엇인지 물어봐야 소용없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Exxon의 주주가 되는 것과 기후변화 또는 민영교도소의 부상과 투자은행의 수익 간의 관계 등은 총명하고 젊은 하버드 대학생조차 떠올릴 수 없는 금기 주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사고방식 덕분에 부자 동네에서 “진보주의적” 삶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스타벅스에서 창의적인 생각을 하고, 대형마트에서 채식 쇼핑을 하면서, 핵전쟁의 위협과 생태계의 붕괴에는 무뎌지는 것이다. 대형마트에서는 어떤 제품을 미국 포로(노예) 또는 전 세계 공장에 갇혀 반 노예 생활을 하는 노동자가 만들었을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저렴한 물건을 구입하기 쉽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좌파처럼 생각하고 우파처럼 사는” 태도다.

좋은 교육을 받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이들은 그 생각을 타인들과 나눌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 이들은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척, 가족들과의 휴가, 멋진 레스토랑에서 먹은 맛있는 음식 같은 지루한 대화만 계속할 뿐이다.

이들 상위 중산층이 트럼프 지지자들을 “멍청하다”고 치부하는 모습은 더더욱 이상하다. 이들은 인상파 작품과 아방가르드 무용의 가치는 알지만, 제대로 된 교육이 불가능한 학교 밖에 없는 동네에 사는 건 어떨지, 그런 동네에 살면 온통 가짜뉴스만 쏟아내는 미디어 밖에는 볼 수 없고, 인생의 의미를 찾는 절박함에 응답해주는 것은 오직 우파 대형교회 뿐이라는 사실은 상상조차 못한다.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정부가 정권을 잡은 이후, 다수의 “선량한 미국인들”은 이 가련한 부정의 문화에 빠졌고 사이코 민주주의로 가는 첫걸음을 떼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트럼프가 보여주는 천박함이 자신에게는 무해할 것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 토마스 만(Thomas Mann)이 독일 정치가 잔혹한 광란으로 타락한 1930년대를 묘사한 것처럼 “지루함은 무해함의 동의어가 아니다.”

 

병리학적 특성

정확히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우리는 이제 민주당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있다. 정책논의에서 제3자는 배제하고, 반대해야 마땅한 여당과 시시덕거리면서, 뒤로는 퇴직수당을 모으는 게 바로 민주당의 리더들이다. 이들은 단 한 발자국도 트럼프의 범죄에 맞설 수 없다.

혹자는 부자 몇 명의 배를 불리느라 지난 2년간 경제 파탄을 겪었으니, 교육을 받은 미국인이라면 하나 둘 모여, 부자들과 군국주의, 백인 민족주의가 만드는 작금의 도당을 뒤집을 강력한 시민운동을 조성할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틀렸다.

이 나라의 제도가 아무리 망가져도 고등교육을 받은 미국인들의 “진보” 민주당 그리고 “보수” 공화당에 대한 환상을 깨지 못할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정당이 모두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간단히 말하면, “결국 미국에 정당은 하나”라는 사실이다.

 

침묵의 봄, 여름, 가을, 겨울

1960년대 수백만 시민이 거리로 나와 반체제 시위에 나서게 한 경고신호는 지나친 지 오래다. 현재의 상황은 당시보다 심각하다. 인류 멸망도 가능한 핵전쟁과 기후변화, 불합리한 부의 축적 등이 산재해있다. 자리를 박차고 행동에 나서지는 못할망정, 이런 문제를 주변 친구나 이웃과 논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어쩌면 우리는 로마제국 말년과 같은 데카당스 시대를 지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네로 황제의 리얼리티 쇼 버전 내지는 칼리굴라 황제의 모조품 정도 되지 않을까? 트럼프가 세계은행 차기 총재 후보로 자신의 딸 이방카(Invanka)를 거론하는 것을 보면, 로마제국 후기와 확실히 잘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네덜란드 디자이너 빅터 호스팅 (Viktor Horsting) 그리고 롤프 스노에론(Rolf Snoeren)이 만든 패션회사 빅터앤롤프(Viktor and Rolf)는 참신한 오트쿠띄르를 위해 자극적인 이미지를 찾고자 했고, 실제 그들의 패션쇼 포스터 중 하나는 특히 크게 눈길을 끌어 이들의 회고전에 선택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포스터는 보는 입장에서는 참 혼란스럽다. 화려한 붉은색 담요를 몸에 두르고 침대에 누운 부유해 보이는 백인여성이 등장하는데,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구겨진 베개 위에 흩어져있다. 그녀는 수평의 풍경과 달리 수직으로 그려졌고, 르네상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처럼 오른 팔에 금발의 아이를 살포시 안고 있다.

그런데 부를 상징하는 이 이미지는 배경의 불편한 상황과 배치된다. 엄마와 아이는 폐허가 된 집, 아마도 허리케인 카트리나 또는 허리케인 마이클의 잔해 앞에 서있다.

인프라의 붕괴, 기후변화, 긴축재정 등으로 고생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 이 여성이 대조되면서 그녀의 부와 특권이 더욱 매력적으로, 흥미롭게 그려지는 것이다. 이 이미지가 더욱 재미있는 점은 부자들 그리고 이들을 부러워하는 자들이 보통 사람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베르사유 궁전 뜰에 작은 농장을 지어 평범한 소작농의 삶을 즐겁게 경험한 것과 비슷하다.

이 이미지에서 미적 쾌감을 느낀다면 사이코패스 같은 행동일 것이다. 결국 부자들은 분기별로 수익을 내려면 채굴산업과 화석연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이윤추구는 재앙을 부르는 기후변화를 야기했고, 시민들이 스스로 힘을 키울 수 없게 만들었다.

이들은 거대한 벙커와 땅을 사서 기후변화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자신도 속이고 있다. New Yorker에 실린 에반 오스노스(Evan Osnos)의 기사, “슈퍼리치가 최후의 심판을 준비하는 방법 (Doomsday Prep for the Superrich)”에 이와 같은 부자들의 움직임이 생생히 묘사되었다.

이러한 병든 문화가 우리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청년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유한 아이들이 자기도취에 빠져 노닥거리는 광고를 봐야만 한다. 광고계는 아이들에게 이런 이미지를 롤 모델로 제시하며, 사회적 불평등을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많이 가진 자를 찬양하는 것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어떻게 미국의 정신을 멈췄나

이 사이코 민주주의는 주기적인 데카당스 시대의 산물일 뿐일까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일까? 고등교육을 받은 자들이 기후변화와 핵전쟁 위험을 가볍게 무시하는 극단적인 인지부조화를 보면 분명 다른 요인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빠른 기술발전으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파악하는 능력이 크게 저하되면서, 우리는 게임과 소셜 미디어, 포르노, 위기대응능력을 망가뜨리는 그 밖의 오락 활동의 수동적 소비자로 전락한 것이 아닐까.

스마트 폰이 우리의 두뇌 속 프로그램을 재구성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생을 마감할 즈음에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어렴풋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카툰 작가 스티브 커츠(Steve Cutts)는 “아 유 로스트 인 더 월드 라이크 미? (Are you lost in the world like me”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 악몽과도 같은 세상을 그려냈다. 이렇게 체득된 수동성은 사회계층과 시대를 아울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친다.

작가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What the Internet is Doing to Our Brains: The Shallows)”라는 책에서 어떻게 인터넷이 즉각적인 자극에 반응하여 복잡한 사고를 하는 두뇌의 능력을 마비시키다시피 하는지 광범위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은 우리가 글로벌하게 서로 소통하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바로 그 기술에 의해 교묘하고 모순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정보의 망망대해 위에서, 스스로 생각할 물 한 방울이 없어 갈증을 느끼는 것이다.

니콜라스 카는 인간 두뇌의 신경가소성이 오히려 경직된 행동을 독려하는 등, 부정적인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뉴런은 인터넷 서핑을 통해 생성한 회로가 매혹적인 자극을 주기 때문에 계속 이 회로를 사용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구글 검색이나 페이스북 포스팅이 주는 빠른 응답은 뉴런을 자극하고, 쾌락의 흥분제를 분비한다.

오래 전 복잡하고 입체적인 사고, 즉 개인의 오랜 경험이나 사회, 문화적 변화의 경험 등을 위해 사용되었으나,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신경 회로는 보이지 않는 신경의 자연도태에 의해 가차 없이 제거된다.

신경학자 노만 도이지(Norman Doidge)는 다음과 같이 썼다. “만약 우리가 정신적 능력의 활용을 멈춘다면, 그 능력을 그냥 망각하는 게 아니다. 두뇌 안에 그러한 능력을 위해 배정된 공간이 다른 기능에 넘어가는 것이다.” 니콜라스 카는 이를 더 명료하게 표현했다. “우리의 뉴런과 시냅스는 생각의 질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두뇌에 내재된 유연성 때문에 지적인 쇠퇴가 가능하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몇 시간씩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며 SNS나 메신저를 하느라 기후변화로 인한 리스크 또는 트럼프 행정부가 2월 7일, 중거리핵전력 (INF) 조약 탈퇴를 결정한 후 따르는 군비경쟁의 리스크를 판단할 능력을 잃은 것이다. 이런 재앙을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문데다가 종말을 불러올 이런 문제들을 친구나 가족과 이야기하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니콜라스 카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러 심리학, 신경생리학, 교육학, 그리고 웹 디자인 연구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온라인에서 우리는 글을 훑어 읽고, 서둘러 여러 생각을 하며, 피상적인 학습을 장려하는 환경에 노출된다. 책을 읽으면서 가볍게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인터넷을 하면서도 깊은 생각을 할 수는 있다. 다만 이를 기술이 독려하거나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뉴런의 빠른 자극을 위한 정보 프로세싱 때문에 인류 전체가 “피상적” 사고에 사로잡히는 경우,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거나 옹호하기는커녕, 그 위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사이코패스 뒤의 사이코패스

아직 퍼즐 한 조각이 남았다. 현재의 상황이 모두 인류애 따위는 없는 탐욕스러운 부자 몇 명의 책임이라고 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이들의 가면을 벗기고, 장막 뒤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술이 모든 제도를 대체하였음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우리를 파멸로 몰고 온 이 부자들을 위해 판을 깔아준 궁극의 사이코패스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된 전 세계의 슈퍼컴퓨터 수만 대다. 매일, 매 분, 매 초마다 이들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소수점 아래 열 번째 자리까지 계산해내며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바로 이 슈퍼컴퓨터가 JPMorgan Chase, Goldman Sachs, Barclays, Bank of America의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들 컴퓨터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 즉 윤리적 거리낌 없이 지구 전체의 금전적 가치를 평가하고 철저히 알고리즘에 기초하여 이윤을 추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의 뒤를 버티고 있는 이 슈퍼컴퓨터들에게 빌 게이츠(Bill Gates)와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즉각적인 궁극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떠나는 길에서 만나는 재미없는 부록 같은 것이다.

슈퍼컴퓨터가 마침내 인간 문명을 제어할 수 없는 수준이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당장 컴퓨터에 생태계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니면 인간성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이윤만을 근거로 사회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면 그만이다. 눈, 비디오, 게임 등이 인간 두뇌의 신경 네트워크를 재구성해서 도파민에 의한 단기적 사고만을 장려하더라도 컴퓨터가 인간을 대신하면 그만이다. 슈퍼컴퓨터가 스스로 의식을 갖기 한참 전에 인간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우리 인간은 아직 완전히 정신을 놓지는 않았다. 다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불편한 일들을 많이도 슈퍼컴퓨터에게 맡기고 있다. 다중병렬 슈퍼컴퓨터라는 눈먼 자들이 인류라는 애꾸눈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월, 2019/04/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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