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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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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개벽

익명 (미확인) | 금, 2019/01/18- 11:40

1. 자생과 자각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연신 끄덕거리다 말미에 갸우뚱 물음표가 돋았습니다. 저 또한 메이지유신 150주년(2018)을 기해 일본에서 나온 서적들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문명개화’, 그간의 개화사 150년과는 다른 결의 서사가 가능할지, 그 가능성을 탐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동북지방의 안도 쇼에키까지 거슬러 올라 개벽의 단서를 찾는 것은 쉬이 수긍하기 힘듭니다.

‘당시의 사무라이 지배층을 “성인의 이름을 빌려 무위도식하는 도둑놈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하셨죠. ‘성인 중심의 지배질서를 정면으로 비판한 동아시아 최초의 사상가’라고 추키셨습니다. 글쎄요. 저로서는 문장의 들머리 ‘당시의 사무라이 지배층’이 더 도드라집니다. 18세기에도 여전히 일본은 무인이 다스리는 나라였던 것입니다. 유학적 소양으로 단련된 사대부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중국, 조선, 월남이 구현했던 문치주의 유교국가와는 일선을 긋는 동아시아 문명의 주변부였죠. 최근에는 메이지유신이야말로 그 기저에 유교화=중국화=근대화의 동력이 작동했다는 독법마저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무라이에서 사대부로, 무사에서 문인관료로 지배층의 세련화(=文化)가 천년이나 가로 늦게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왕후장상의 씨를 따지지 않는 전통은 동아시아에서 제법 오랩니다. 씨갈이, 역성혁명이 거듭되어 천자를 갈아치웠습니다. 그럼에도 만세일계 천황이 존재한다는 점이야말로 일본의 예외성입니다. 즉슨 성인 중심의 유교문명을 비판했다 하여 ‘개벽파’로 자리매김할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유학국가를 온전히 구현해본 적이 없는 일본서는 자칫 허수아비를 때리는 꼴입니다. 물론 중국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거리에 가득한 사람 모두가 성인이다.’ 하였던 15세기의 왕양명을 개벽파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병한 사진2 수운 최제우(위키)
수운 최제우

개화파와 척사파의 갈림길, 그리고 개벽파의 새길 내기는 적어도 동아시아의 맥락에서는 19세기 이후의 사태입니다. 이른바 ‘서구의 충격’, 자본주의 세계체제와의 조우라는 역사적 맥락을 소거하면 개벽파의 독창성과 독보성을 도리어 제거해버리고 맙니다. 자칫 여기저기서 시시때때로 개벽파가 출몰할 수도 있습니다. 영성이 충만했던 서구의 중세가 개벽기도 아니며, 토테미즘과 애니미즘의 범신론적 사유를 개벽과 직접 결부시킬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동학혁명이 그 이전의 숱한 민란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 또한 지배층에 대한 민중 반란이라는 흔하고 빤한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서구의 충격’이 촉발한 전대미문의 천하대란에 임하여 문명적 각성을 예리하게 품어내었던 것입니다. 개벽을 개벽답게 만드는 티핑포인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개벽파의 역사성에 대한 적확한 인식은 엄밀한 용어 사용과도 직결됩니다. ‘토착적 근대’라는 말이 저는 여전히 말끔하지 않습니다. 내재적, 내발적, 자생적 이라는 수사 또한 깔끔치가 않습니다. 죄다 자족적인 개념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타를 나누고, 내/외를 가르는 발상입니다. 세계사 다시 쓰기, 소위 글로벌 히스토리는 서구적 근대조차 내발적이고 자생적이고 토착적이지 않았음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과 계몽주의에도 아랍과의 교류, 아시아와의 교섭, 아프리카-아메리카와의 교역이 중요했음이 나날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서구의 계몽주의에 ‘몽골의 충격’과 한문으로 쓰인 동방경전의 알파벳 번역이 있다하여 그 가치를 폄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동학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토착적이고 내재적이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세계적이어서 소중한 것입니다. 내발론의 강박이 18세기 조선에서 서구적 근대의 맹아를 억지로 추출해내는 실학 담론의 패착을 낳았음을 통렬하게 비판한 점이 <한국 근대의 탄생>의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자폐적인 내발론과 자멸적인 외발론을 동시에 극복합시다. 선후(先後)를 따지기보다는 박후(薄厚)를 살펴봅시다.

13세기 몽골이 유라시아의 대일통을 이루었던 것처럼, 19세기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지구를 석권했습니다. 다만 그 편입과정에서 문명마다 나라마다 여러 갈래의 대응이 등장합니다. 한사코 거부했던 세력이 척사파입니다. 척사파의 양태는 중국에도, 인도에도, 심지어 서유럽에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편적인 개념입니다. 반대편에서 무조건 수용코자 했던 세력이 개화파입니다. 이 또한 여러 나라 여러 문명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옛 것을 고수한 척사파와 새 것을 추수한 개화파의 충돌이 보/혁 갈등으로 치달았습니다.

‘제3의 길’도 있었습니다. 낯익은 전통을 타파하면서도 낯선 현실의 혁파 또한 겸장했던 개벽파입니다. 자기 고집도 자기 상실도 아닌 자기 혁신을 도모했습니다. 척사파가 무책임하고 개화파가 무절제했다면, 개벽파는 응시하고 응수하고 응전했습니다. 척사파가 시대의 물결에 조응하지 못하고 조선의 적자에서 적폐로 떠밀려갔다면, 개화파는 서세동점의 파고에 휘말리고 휩쓸려서 조선을 배반하고 매국의 독배를 들이키고 말았습니다. 척사파가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면, 개화파는 깜빡 눈이 멀어버린 것입니다. 반면 개벽파는 반짝반짝 눈을 부릅떴습니다. 서늘한 눈으로 천하대세를 직시하고 빛나는 눈으로 나라다운 새 나라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각적 근대’라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즉 근대 세계체제는 단일합니다. 다만 그 근대세계에 임하는 태도와 자세의 차이로부터 학파와 정파가 분기합니다. ‘서구적 근대’라 해서 개화파 일색이 아닙니다. 그렇게 쓰인 서구사=개화사조차도 다시 쓰이고 있습니다. 서구에도 척사파와 개화파와 개벽파가 길항하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 이치로 ‘비서구적 근대’라고 하여 개벽파가 돌출했던 것도 아닙니다. 작위적인 지리적 구획을 복제하기보다는 사상적 지향에 방점을 두는 편이 이롭습니다. 제가 동학을 높이 치는 이유 또한 묵은 유학을 맹신하지도, 설은 서학을 맹목하지도 않은 탁월한 균형 감각 때문입니다. 구학을 답습하지도, 신학에 매몰되지도 않았습니다. 서구의 충격에 대한 가장 창발적이고 주체적인 응답(Response+Ability)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로 동학은 ‘자각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 개벽은 ‘자각의 탄성’이었습니다. 깨어나고 깨우치고 깨달아서 19세기의 유레카, ‘다시 개벽’을 외친 것입니다.

그래서 ‘개벽을 모르고서 한국의 근대를 논하는 것은 넌센스.’라는 말에 십분 공감합니다. ‘개벽을 누락한 한국의 근대에 관한 모든 논의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통쾌하기까지 합니다. 넌센스, 비상식과 몰상식이 판을 쳤습니다. 무식하고 무지했습니다. 그리고 근저에서 무심했습니다. 그 무심과 무지와 무식의 소산으로 쌓아올린 탑이 ‘실학’ 연구였습니다. 실학에서 동학으로의 회향, 개화에서 개벽으로의 회심을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헌판을 갈고 엎어 새판을 짭시다.

이병한 사진2 _인류세_ 전시 작품
인류세 전시작품(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카라라의 대리석 채석장)

 

2. 서세동점에서 인류세로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애써 이틀을 썼던 문장을 싹둑 지워버렸습니다. “실학과 동학”으로 써내려갔던 내용을 통째로 덜어냈습니다. 지금 이곳은 수운회관 15층입니다. 1월 15일 오전 9시 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어제부터 부쩍 창밖이 뿌옇습니다. 희뿌연 미세먼지가 시야를 온통 가립니다. 인왕산은 희미하고 청와대는 흐릿합니다. 왜 한국의 근대를 실학이 아니라 동학에서 구해야 하는지를 논하는 글이 어쩐지 한가해 보입니다. 갓 50일이 된 아들래미 얼굴이 떠올라 더더욱 답답해집니다. 개벽사 쓰기 또한 자칫 먹물의 고질병, 책상물림의 직업병일지 모른다는 노파심이 입니다. 현장감이 덜한 것입니다. 이번만큼은 에둘러 가지 않기로 합니다. 고준담론은 잠시 미루어두고 왜 또 다시 개벽인가, 돌직구를 던지기로 했습니다. 절박하고 절실하고 절절한 제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봅니다.

거듭 강조컨대 더 이상 서구와 비서구를 나누기 힘듭니다. 20세기형 인문학의 낡은 관습일 뿐입니다. 북반구(선진국)과 남반구(후진국)를 쪼개기도 여의치 않습니다. 20세기형 사회과학의 후진 습관일 따름입니다. 저는 이제 20세기 후반을 풍미했던 제3세계론이나 세계체제론에서도 별다른 자극과 영감을 받지 못합니다. 동도와 서도를 견주고 서세에 동세를 맞세우는 것 또한 철지난 발상이라고 여깁니다. 목하 한치 앞도 가리어버린 저 기후변화는 동/서와 남/북을 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의 지구가 있을 뿐입니다. 그 둥근 지구, 하나의 하늘 아래 동서남북은 갈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온누리와 온생명과 한살림이 있을 뿐입니다. 동도(東道)와 서도(西道)의 소모적인 논쟁을 뒤로하고 천도(天道)와 대도(大道)와 일도(一道)를 탐구합니다. 세계체제론(World System)의 국가간 경쟁을 훌쩍 뛰어넘는 인류와 지구의 공진화, 지구체제론(Earth System)을 모색합니다.

한살림 선언(1989)과 <녹색평론>(1991)도 이제는 어쩐지 미진한 감이 듭니다. 언젠가부터 동어반복의 식상함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생태학은 여전히 지상(地上)과 천하(天下) 사이에 주력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 사람의 길, 천지인의 근대화, 천인합일의 현대화를 천착합니다. 지하(지질학)와 천상(천문학)까지는 아우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활동이 지구의 물질대사는 물론이요 우주의 물질대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인류세’(Anthropocene)에 당도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 이미 오래인데도 혁신과 갱신에 게으릅니다. 인류사와 지구사가 합류하여 도달한 인류세(人類世)에 부합하는 새로운 사상, ‘다시 개벽 2.0’을 갈구합니다.

생태적 사유는 한사코 인간의 능력을 축소시키려 듭니다. 포스트휴먼, 만물 가운데 하나로 강등시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지구 위에 등장한 그 어떠한 생명도 지구와 우주의 행방에 영향을 미칠 만큼 능력을 확보하지는 못했습니다. 실로 획기적인 사태입니다. 가히 유례없는 사건입니다. 선천개벽 창세기(홀로세, Holocene)와 후천개벽 인류세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신의 뜻이나 자연의 법칙에 버금갈 만큼 인간의 역량이 증대된 것입니다. 45억년 지구사에서 처음으로 인류의 의지가 깃든 행동이 지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의지는 자연의 힘(force)과는 달리 억제되고 절제될 수도 있는 힘(power)이라는 점에서 절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즉 서구의 휴머니즘은 인간중심주의여서 문제인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인간 중심적이지 않아서 문제인 것입니다.

지구는 갈수록 인류의 이 집합적 의지에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이 엄청난 힘의 행사 여부를 선택하는 인간의 마음가짐(=정신개벽)이야말로 인류를 고유한 생명체로 우뚝 서게 합니다. 지구를 변화시키는 인간의 고유한 힘이 절정에 치달은 바로 이 순간에 인류의 고유한 특성을 외면하는 생태론이 갑갑하고 어색한 까닭입니다. 포스트휴먼을 궁리할 것이 아니라 네오휴먼을 연마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신인간(新人間)=신인간(神人間)이 도래하는 것입니다. 경쾌한 유발 하라리를 따라 라틴어로는 호모 데우스(Homo Deus)라 하겠습니다. 묵직한 의암 손병희에 기대어 한자로 풀면 인내천(人乃天)이 가장 적절합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며, 사람이 즉 한울인 것입니다.

160년 전 노이무공(勞而無功), 아무리 노력해도 헛되었노라, 하늘의 탄식을 들은 이가 최제우입니다. 유학의 천인합일에서 동학의 천인합작으로 도약하는 비상한 순간이었습니다. 하늘과 인간이 합작하는 인류세의 비전을 이미 내장하고 있던 것입니다. 제가 1848년 <공산당선언>이 20세기를 추동했다면, 1860년 <동경대전>은 21세기를 격동시킬 것이라고 호언하고 다니는 연유입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턱없이 모자란 발상입니다. 만인과 만물이 얽히고 섥히는 21세기, 경천(敬天)과 경물(敬物)과 경인(敬人)의 삼경사상야말로 자유-평등-형제애를 능가하는 시대정신을 담지하고 있습니다. 고작 ‘자유-평등-형제애’라고 해보았자 ‘경인’ 단 두 글자로 족합니다.

이병한 사진2 토론토 세계종교의회
토론토 세계종교의회

그러함에도 동학과 개벽은 여태 수줍습니다. 지난해 11월 토론토에 다녀왔습니다. 세계종교의회의 말석을 지켰습니다. 겨우 한국과 한반도 평화를 논의하는 자리에서만 동학과 개벽 얘기가 나지막이 오고갔습니다. 한국 연구자와 한국의 종교인들만 단출하게 모여 있었습니다. 크게 안타까웠습니다. 깊이 아쉬웠습니다. 딱하다는 생각마저 일어났습니다. 애가 탔습니다. 속이 쓰렸습니다. 입맛이 쓰디썼습니다. 세계종교의회 행사를 맞춤하여 토론토 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던 전시회 주제가 바로 ‘인류세’였기 때문입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다인종, 다종교, 다국적 인류를 지그시 바라보며 “신동학이 인류세의 학문이요, 또 다시 개벽이 인류세의 시대정신이라”, 전도하고 싶었습니다.

온타리오 호수를 산책하다 곰곰 궁리하노라니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 또한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퍼뜩 일어났습니다. 서세동점, 20세기의 수세적 입장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인류세에 맞춤하여 문장의 앞뒤 순서를 바꾸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신을 개벽하야 물질을 개벽하자’고 말입니다. 자각하여 구세하자고도 고쳐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를 갈고 닦아 인물부터 사물까지 만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 편이 인류세에 임하는 인류의 태도에 한층 더 부합하지 싶습니다. ‘다시 개벽’이 19세기의 자각이었다면, 21세기는 ‘또 다시 개벽’의 유레카를 외칠 만 한 것입니다. 고로 개벽파는 코즈모폴리턴, 세련된 세계시민마저 돌파합니다. 국경을 가로지르는 글로벌 엘리트들의 허위의식을 넘어섭니다. 개벽인이야말로 진정한 지구인이며, 하늘과 더불어 지구의 운명을 개척하는 개벽꾼이야말로 참말로 하늘사람입니다. 국민(國民)에서 천민(天民)으로, 국가에서 천국으로. 그런 기상과 기개가 있어야 기미년 100주년을 맞이하는 기해년의 ‘선언’(Manifesto)에 값할 것입니다.

이병한 사진2 온타리오 호수에서 본 토론토 시내
온타리오 호수에서 본 토론토 시내

 

그래야 개벽파를 한낱 학술 유행의 신종 아이템으로 회수하려는 각종 유혹과 회유를 떨쳐낼 수도 있습니다. 부디 동학을 연구하기보다는 신동학을 합시다. 신동학을 살기로 합시다. 앎의 전환에 그치는 탁상공론이 아니라 삶의 전환을 수반하는 수련과 수행을 수반합시다. 그래야만 민심의 감화를 이루고 천심의 감동을 일으켜 포교와 포덕 또한 가능해질 것입니다. 일파만파 지구에 파동을 일으키고 우주까지 파장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야 이 탁한 세상에 맑은 하늘을 되돌려줄 수 있습니다. 21세기에 태어난 후세들에게도 푸른 하늘 은하수를 되물려줄 수 있습니다. 꼬장꼬장, 깨작깨작, 자꾸 논문과 비슷해지려던 문장을 몽땅 지워버린 까닭입니다. 후련해졌습니다. 속이 다 시원합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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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이토록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 할까?

선거철이 다가오니 여기저기서 출마한다고 떠들썩하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을 해봐야 한다. 왜 우리 사회는 언론에 몇 차례 이름이 나올라치면 얼마 되지 않아 국회의원이 된다고 난리일까?

나는 그 근저에 국회의원이 그 특권은 거대하지만 하는 일은 너무 없고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구조는 바로 법안 검토를 의원이 스스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대리하고 있는 잘못된 현 시스템에서 비롯된다. 사실 다른 나라 의원들은 법안 검토를 핵심으로 하는 의원의 직무가 너무 힘들고 고되기 때문에 스스로 중도에 그만 두는 경우도 적지 않고 배우자의 불만도 커서 이혼율이 높은 실정이다.

만약 우리 국회가 다른 나라 의회처럼 의원 스스로 힘들고 고된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면, 과연 지금처럼 모든 사람들이 마치 불나방처럼 너도나도 앞 다투어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 할 수 있을까?

 

노회찬이 발의한 국가보안법폐지법안을 국회공무원이 검토한다?

2004년 10월 21일 故 노회찬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가보안법폐지법률안」에 대하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2005년 5월 ‘검토보고’를 한다.

언뜻 봐서는 문제가 없는 듯하지만, 사실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 바로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국회 공무원에게 ‘검토’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라는 문제이다.

국회 공무원인 수석전문위원은 과연 국가보안법 존폐를 논할 ‘능력’과 ‘자격’이 있을까? 국회 전문위원은 법률가도 아니고 또 국민이 선출하여 입법 권한을 부여한 대표도 아니다. 단지 국회 사무처 조직에서 오랫동안 순환 근무를 하고 연공서열 순위에 의하여 승진한 국회 공무원일 뿐이다. 이러한 국회공무원에게 국가보안법 존폐에 대한 ‘검토’를 맡기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결국 노회찬 의원이 발의했던 「국가보안법폐지법률안」은 이러한 ‘비정상적’ 과정을 거쳐 결국 임기만료 폐기되었다.

 

양승태 법원행정처주장에 적극 동조한 국회전문위원 검토보고

2014년 함진규 의원 대표발의로 대한변협, 지방변호사회 등 대법원규칙으로 정한 외부기관, 단체의 의견을 들어 평정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법사위에 회부되어 이에 대한 검토보고가 이뤄졌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의 눈을 의심케 하는 사실이 발견된다. 바로 국회 전문위원이 작성한 이 검토보고가 사법농단의 온상이던 법원행정처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검토보고는 “대한변호사협회 등 변호사단체의 의견을 들어 평정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때에는 단체 구성원의 법관평가에 대한 참여도가 낮을 경우 전체 변호사의 총체적 평가가 아니라 소수 변호사의 편향된 평가가 마치 전체의 의사인 것처럼 왜곡될 우려가 있음.”이라면서 “법원행정처의 의견도 이와 같은 취지”라는 설명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붙이고 있다.

부정적인 이 검토보고에 의해 당연히도 이 법안은 입법의 ‘본선’에 오르지 못하고 임기만료 폐기되었다. 이 검토보고는 법원행정처의 의견대로 대한변협 등 비판세력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시킨 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제왕적 1인 체제를 구축을 옹호하는 논리로 이어졌다. 결국 법원행정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을 적극적으로 거든 ‘그릇된’ 검토보고였다.

 

테러방지법안에 무비판적인 검토보고, 이것은 검토가 아니라 아부

한편 ‘테러방지법’은 박근혜 정부 시기에 크게 논란을 빚었던 법이다. 그런데 이 법안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는 “대테러 업무를 감독하기 위하여 국가테러대책위원회 소속으로 대테러 인권보호관 1인을 배치하도록 하고 있어 대테러 업무에 대한 통제방안을 마련하고 있고, 무고·날조의 죄를 「형법」보다 가중하여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 등 제도적 보완장치가 마련되었다”면서 “테러방지를 위한 국가 등의 책무와 필요한 사항을 명확히 규정하여 공공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이 법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테러방지법은 당시 야당의 필사적인 반발에 부딪쳐 의원들의 필리버스터(Filibuster, 의사방해 연설) 발언이 이어졌고,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도 상당히 높았었다.

분명한 점은 이러한 테러방지법에 대한 검토보고가 비판은 완전히 결여되었고 균형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던 ‘검토’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검토보고’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노골적인 ‘아부’의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검토보고’, 보수적 경향이고 외부 로비에 취약

국회 공무원에 의한 검토보고 제도는 입법의 보수적 경향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일반적으로 관료집단은 그 보수적 조직문화와 신분적 조건 등의 요인에 의하여 대부분 보수적 성향을 보이며, 이에 따라 국회 공무원에 의한 검토보고 역시 보수적 경향이 강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52명이 서명하여 제출했던 「한일군사정보협정 효력정지 특별법안」은 이러한 ‘보수적인’ 검토보고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실제로 입법관료들은 다양한 정치적 집단의 의견을 청취하고 그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한 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검토를 시도하기보다는 이미 잘 정리되어 있는 행정부 자료를 주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또 이들의 직무수행을 소속 상임위원장이 지휘하기 때문에 상임위원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채 객관성과 중립성을 유지하기도 매우 어렵다.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며 정당 간 경쟁이 전개되는 입법 과정에서 상임위 스태프를 정당 별로 체계화하지 않고 중립성만을 요구하는 비현실성에서 상임위 보좌 관료들은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익을 조정하기 위하여 정보의 소스를 다양화하기 보다는 믿을 만한 정보원인 행정부의 정보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특히 전문성 결여라는 근본적인 취약점에 더해 인력과 검토시간의 부족이라는 요인은 이러한 정보 소스의 축소를 더욱 부추기게 된다. 이렇게 행정부 관료들이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함으로써 행정부에 대한 감시 기능 또한 저하된다. 결국 입법 지원관료들의 정보 소스의 축소는 행정부에서 제공되는 자료에 의해 작성되는 검토보고와 그 검토보고에 의존하는 상임위원회의 결정으로 연결되어 국회 고유의 권한인 입법이 행정부의 영향 하에 있게 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초래한다.

국회 공무원에 의한 검토보고가 재벌이나 대형 로펌, 각종 협회의 로비나 영향력으로 훼손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일례로, 국회의 한 수석전문위원이 장충기 전 삼성 사장에게 민원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당시 박용진 의원은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가 일부 재벌이나 로비 대상 단체에 의해 편향되고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앞에서 살펴본 테러방지법 검토보고에서 드러났듯, 권력에 대한 맹목적 아부의 경향도 중대한 문제점이다. 그 ‘권력’에는 대통령만이 아니라 상임위원장이나 여당 대표 등 중진 의원이 포함된다. 공무원 사회의 뿌리 깊은 승진 제일주의와 줄대기의 관행과 문화는 그대로 ‘검토보고’에 투영될 수밖에 없다.

한편, ‘전문위원 검토보고’라 하면 흔히 외부에서 선발된 전문가 그룹에 의한 검토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국회 전문위원은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국회 공무원시험으로 선발되고 국회 내에서 순환 보직하는 순수 공무원 출신일 뿐이다. 결국 ‘전문위원’이라는 명칭과 전혀 상반되게 ‘전문성’ 그 자체에서 근본적인 취약성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위원의 임용은 「국회사무처법」에서 정원의 20% 이내에서 개방직을 임용할 수 있는 직위에서도 배제시키도록 규정하여 외부 전문가의 진입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 미국 의회의 상임위원회 스태프는 그 충원 방식에서 전문성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우선 책임 보좌관(staff director)은 장기간 행정부나 의회에서 많은 경험을 축적한 인물이며, 직접 조사를 담당하는 전문 보좌관(professional staff)들은 변호사나 경제전문가, 조사관, 행정전문가 등 각계각층의 전문 경력자들로 충원된다. 또한 변호사 출신들로 상담역 보좌관(counsel)을 충원하여 법제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컨설턴트로서 상임위원회를 보좌한다.

 

다른 나라 법안검토담당 의원검토를 위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국감 때마다 적지 않은 의원들은 마치 연예인인양 한복을 입는다거나 고양이를 ‘특별증인’으로 신청하는 등 ‘연기(演技) 정치’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곤 한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연예인이 아니다. 또한 매일 같이 정쟁과 반대만으로 지새는 국회의 모습이야말로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고 없어져야 할 폐습으로 생각하는 장면이다.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의회처럼 본업인 입법 활동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물리적으로’ 시간이 모자라서도 절대 이렇게 변질될 수 없다.

우리 국회를 제외하고 세계의 어느 나라 의회든 법안에 대한 검토는 반드시 의원의 기본 임무이다.

상임위에 상정된 법안마다 각 원내 교섭단체는 검토보고 담당 의원을 두게 되는데, 이 검토보고 담당 의원은 검토보고를 충실하게 준비하기 위하여 관련 기관 및 다양한 활동가들과 많은 면담을 진행한다. 물론 비판적 견해도 환영한다. 자신의 결정이 가능한 현실적이고 정의롭게 내려질 수 있도록 최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이 검토보고 의원은 교섭단체 내 워크그룹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판단과 평가 및 바람직한 수정사항 등을 다른 의원들에게 전달한다. 아울러 다른 교섭단체 검토보고 담당 의원과 심도 있는 토의 과정을 거치며 이 토의의 회의는 장시간의 토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종종 심야에 이르기도 한다. 검토보고 의원은 이 과정에서 교섭단체 소속 정책 전문위원의 밀접한 지원을 받으며 매주 교섭단체 의원들과 소그룹 토론을 진행한다.

그러나 우리 국회만은 전혀 다르다. 이 기본 임무를 의원 자신이 수행하지 않고 있다. 그 일을 국회 공무원이 대신하고 있다.

지금 국회의 문제점들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국회가 국민이 부여한 직무, 즉 ‘입법’이라는 ‘본업’을 방기하고 있는 것, 이 문제야말로 국회의 존재 의미와 긴밀하게 관련된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말한다면, 이 본업을 수행하지 않는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최소한의 자격도 없다.

 

 

수, 2020/01/29-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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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한반도 비상국가체제는 남북의 극단적 적대에 기인하고, 그러한 적대의 극단성은 동서진영 대립과 분단국가 대립의 중첩 속에서 탄생했다 하였다. 그런데 진영 대립은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의 동구권 붕괴와 소련 해체로 이미 종식되었다. 극단적 적대가 생겨나는 원인의 한 축이 이미 무너졌던 것이다. 그 시기는 공교롭게도 한국의 87년 민주화 이후 과정과 맞물렸다. 이 시점은 한국 사회가 후기근대 상황으로 접어드는 때로 볼 수 있다. 대항쟁으로 표출되었던 민주화 동력이 온전히 발휘되었다면 한반도 비상국가체제 종식의 계기를 분명히 마련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 ‘마의 순환고리’는 그 과정에서 작동기제가 해체되어가고 민주화는 순탄하게 정상 상태에 이르기까지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했던 시기에 상실한 기회에 대해서 엄정한 복기(復碁)가 필요하다.

실패의 싹은 87년 민주화 동력의 분열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분열한 절반(김영삼 지지세력)은 이후 구체제 세력과 합류했다(3당 합당). 이 상황은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었고, 이는 ‘마의 순환고리’가 재작동하는 텃밭이자 온상이 되었다. 구체제에 합류한 김영삼 정부는 노태우 정부보다 오히려 더욱 강경한 대북정책을 고수했는데 그 배경에는 경쟁 정치집단(김대중 지지세력)에 대한 견제논리가 강하게 작동했다. 대북 온건정책이 경쟁 세력의 집권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리하여 냉전 해체에 적극적 행보를 보였던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사라지고 공격적인 흡수통일 노선이 들어섰는데, 이러한 대북 강경책은 북한을 선군주의와 핵무장에 올인하도록 밀어부쳤다. 이런 상태에서 국가부도와 IMF 사태라는 돌발적 상황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부와 그를 이은 노무현 정부는 과감한 대북화해정책(햇빛정책)을 폈지만 결국 장기적 실효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없다. 북은 민주정부 10년의 기간에도 핵무장 노선을 결코 놓지 않았고(2006년 1차 핵실험), 한국의 냉전대결 세력은 이를 ‘마의 순환고리’를 재작동시키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했다. 냉전 세력은 남(南)의 화해정책과 대북 지원이 북의 핵 개발을 조장했다고 공격했고 이는 민주정부의 신자유주의 양극화 추세 억제 실패와 맞물려 민주진영 집권 10년은 급격한 지지 하락으로 마감되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이런 배경에서 출현하여 이윽고 87년의 민주화 동력을 철저히 소진시키고 ‘마의 순환고리’를 다시금 완벽하게 부활시키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마의 순환고리’는 완성되어 극점에 이르는 순간, 자체의 과잉으로 붕괴를 자초하는 역사적 패턴을 보여주었다. 결국 ‘국정농단’이 박근혜 탄핵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그 배경에는 독선·독단에 따른 여러 실정(失政)에 대한 불만이 겹겹이 쌓여 있었고, 그중에는 무대책이 된 대북 강경책의 완벽한 실패(2~5차 핵실험과 SLBM, ICBM 등 발사체 개발에 무대책으로 일관) 역시 중요한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 박근혜 체제가 오작동을 거듭하면서 비상국가체제의 절대무기인 ‘종북’, ‘이적’ 공세가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촛불혁명은 제2의 87년과 같은 상황을 조성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사라진 것이다. 그 결과 촛불을 끄자며 한때 가두를 요란하게 메웠던 태극기 – 성조기 집회와 일베식 폭력성은 오히려 구 보수의 자폐적 기이성을 노출했을 뿐, 어떠한 확장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대외 상황에 대한 인식은 87년보다 진전되었다. 87년 당시 급변하는 대외 상황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은 매우 미약한 것이었다. 반면 이제는 냉전 종식에 이어 미국 일극주의도 종식되었다는 것, 이제 한국의 활로는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넓게 보는 데서 찾아진다는 사실이 상당히 널리 공유되는 일반적 인식이 되었다. 전방위로 활발해진 SNS 소통, 정보 생산과 유통에서의 민주화가 낳은 한 귀결이기도 하다. 새로운 번영의 기회가 유라시아 길로 열리고 있고 세계는 일극체제가 아닌 다극체제로 변모하고 있음을 이제는 일반인들까지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87년 당시 놓치고 말았던 ‘마의 순환고리’를 이윽고 끊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다시금 보다 좋은 여건에서 확보하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물론 구질서의 해체과정에는 불확실성과 새로운 위기가 수반되기 마련이지만, 그러한 상황일수록 내적으로 결집된 힘의 주동적 역할이 중요하게 된다. 이 점에서 세계가 경탄한 촛불혁명의 주역인 각성한 시민사회, 그리고 그 힘 위에서 특별히 강한 정통성을 갖게 된 새 정부가 들어선 현재의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중대한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만큼의 내적 역량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그렇듯 중요한 변화의 핵심고리가 ‘코리아 양국체제’의 정립으로 모아진다고 주장해왔다. 한반도에 양국체제가 정립될 때, 그동안 운명처럼 보였던 ‘마의 순환고리’도 ‘비상국가체제’도 이윽고 종식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코리아 양국체제

대한민국(ROK)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은 1991년 9월 유엔에 동시 가입한 두 개의 국가다. 2018년 7월 현재 한국의 수교국은 190개국, 조선의 수교국은 161개국이며, 동시 수교국은 157개국에 이른다. 국제법상, 현실의 국제관계상, 여러모로 한국과 조선은 두 개의 별개의 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이 객관적이고 엄연한 사실을 두 나라가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 서로의 주권과 영토를 상호 인정하고 정상적인 수교관계를 맺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코리아 양국체제다.

그렇지만 그렇듯 당연한 현실이 현실로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남북의 현 상태다. 이 두 국가는 서로 상대의 주권과 영토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를 다만 자기 주도의 통일에 의해 소멸시켜 흡수할 대상으로 바라볼 뿐이다. 양국 헌법 모두 현재의 남북은 하나의 나라가 분단된 상태임을 전제하고 있고, 그 분단을 극복하여 통일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명시하고 있다. 그로 인한 남북 간의 극심한 적대와 긴장, 사회 전 부면의 비정상 상태를 1970년대 초반 이후 한국 지식계에서는 ‘(남북) 분단체제’라 불러왔다. 따라서 ‘분단체제’란 그 자체가 부정과 극복의 대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이 개념으로 한반도의 부정적 상태를 정의(定義)했던 편에서 분단체제론이란 분단체제 비판론이지 않을 수 없고, 분단체제의 부정과 극복의 목표는 통일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서 기존의 분단체제 비판론은 여기서 주장하는 양국체제론과 크게 다르다. 양국체제론은 1991년 유엔 동시가입 이후 한반도 남북이 두 개의 별개의 국가가 되었다 보고, 이 두 국가의 상호 인정과 평화공존을 우선적 목표로 삼는다. 양국체제론은 80년대 말~90년대 초반의 미소 냉전 해체와 동서 해빙, 그리고 1991년의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같은 해 12월의 <남북기본합의서>의 교환을 남북 분단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그 이전까지의 ‘분단극복론’은 현실적 가능성이 희박한 저항적 당위 차원의 논의였다. 엄혹한 냉전대결 상황에서는 남의 북진(또는 멸공)통일론과 북의 조국통일론의 지배력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소 냉전 해체와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을 계기로 부정적 의미의 ‘분단체제’를 긍정적 의미의 ‘양국체제’로 전환시킬 현실적 가능성이 열렸다. 양국체제론은 두 국가의 통일을 당면한 우선적 목표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었을 때야만 오히려 남북의 극단적 적대관계를 실제적으로 해소하는 단초가 열릴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분단체제 비판론은 반독재 투쟁에서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결국 분단체제의 강박적 적대가 오히려 강화되는 순환기제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그 순환기제의 작동구조를 살펴보기로 하자.

분단체제에서는 남북 상호간과 남북 각각의 내부에 여러 겹의 적대적 대립이 서로 맞물려 순환적으로 상승한다. 코리아전쟁 종전 이후 공식적으로 정전(停戰) 상태에 있는 남북은 전쟁이 미완·미결의 상태로 남아 있다고 본다. 잠시 쉬고 있는 상태일 뿐, 전쟁은 심리적으로 내연(內燃) 중인 것이다. 따라서 전시적(戰時的) 비상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이 지속된다. 상대의 동향에 대한 강박적·전시적 피해의식이 자꾸만 증폭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상황은 남과 북이 거울처럼 방향이 바뀌어 있을 뿐 꼭 같은 형태다(거울 동형).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러한 전시적 강박상황에서 통일 세력과 반통일 세력의 구분이 그다지 선명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코리아전쟁 자체가 남북 쌍방 모두 통일을 하겠다고 벌였던 일이다. 이러한 전시적 비상 상태 의식은 권력의 비상한 독점 즉 강력한 독재체제의 심리적 온상이 되고, 이러한 상태는 사회 전 부문으로 관철된다. 권력. 부, 기회의 독점이 전시적 비상 상황을 빌미로 지극히 폭력적으로 정당화되기 때문에 그 독점과 독재는 기형적으로 심화되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비상국가체제’다. 따라서 비상국가체제는 분단체제의 핵심축이기도 하다. 실제 전쟁 상태가 아님에도 이러한 ‘전시적 비상 상태’가 지속될 때 이에 대한 반발과 비판이 강력하게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이러한 문제적 현실에 대한 비판은 지극히 정당한 것인데, 이 비판 세력이 제기해왔던 논리의 주요 흐름이 분단체제(비판)론이었다 할 수 있다.

한국의 역대 독재정권은 이러한 비판을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음에도) ‘이적’ ‘용공’ ‘친북’으로 몰아(=조작하여) 탄압해왔다. 이들이 통치체제를 비판하면서 주장하고 있는 통일이란 결국 대치하고 있는 적의 편에 동조하는 통일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상황은 정치체제의 차이만 있을 뿐 남과 북에서 동형적으로 진행되어왔다. 분단체제란 이러한 분단체제 비판 세력을 식량으로 먹어치우면서, 즉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탄압하면서 자신의 몸체를 괴물처럼 더욱 키워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 독재정권이 비판 세력을 ‘적’으로 상정하고 탄압하는 한, 극악한 탄압을 당하는 비판 세력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독재정권을 ‘적’으로 상정하고 맞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독재정권은 비판 세력이 자신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이적단체’에 불과한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강변해왔다. 이로써 상호를 적으로 간주하여 투쟁하는 상승적 순환 구조가 남과 북의 정권 사이에서, 그리고 남 내부와 북 내부 각각에서 형성되고 교차하면서 가속도를 얻어 작동한다.

이러한 악순환의 상승압이 ‘마의 순환고리’와 ‘비상국가체제’의 에너지원이 되었고, 87년 이후에도 30년 가까이 이 상승적 악순환은 끊기지 않았다. 이제 촛불혁명이 그 악순환을 비로소 끊어낼 기회를 주고 있다. 그 핵심은 양국체제의 정립에 있다. 민주정부 시기 10년의 대북 화해정책 역시 그러한 상승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오히려 반발 세력의 강한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이들 반대 세력은 민주정부의 남북화해정책을 친북적 분단체제 종식 운동으로 간주하면서 이에 맞서는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일으켰다. 분단체제론의 담론 구조 안에서는 남북의 어느 정치 세력이든 당면 목표로 분단 종식 즉 통일을 앞세울 때 (또는 그렇다고 간주될 때) 분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어떤 통일인가 누구를 위한 통일인가 매우 복잡하고 갈등적인 논란이 시작되고 이러한 상황 자체가 적대의 상승적 악순환을 부채질하게 된다.

이렇듯 작동하는 분단체제의 순환적 상승압은 비상국가체제를 강화해 사회 전반의 정상화를 결정적으로 가로막아왔다. 그런 비정상의 장기지속의 결과가 이번 촛불집회에서 적시된 ‘적폐’일 것이고, 그 적폐를 청산해갈 핵심고리가 양국체제 정착이 될 것이다. 비상국가체제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적폐청산의 목록이 길다. 그러나 목록이 길어질수록 무엇이 핵심 목표인지 모호해질 수 있다. 병증(病症)의 핵심 원인을 정확히 찾아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양국체제 정착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소멸 또는 부재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결국 우파 흡수통일론이 우세한 여론 장(場)을 말하고, 그 핵심에는 코리아전쟁 시의 ‘미완의 북진통일’을 완수하자는 생각이 있다. 이 역시 분단체제론의 일종, 즉 우파 주도의 분단체제 종식론, 즉 통일론이라 할 수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해소는 이번 촛불혁명의 가장 중요한 성과인데, ‘정상 상태’란 기울어진 비정상이 기울어짐 없는 정상으로 회복됨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기울어짐 없는 정상 상태란 분단체제적 사고관습으로부터의 탈피를 전제한다. 분단체제론의 인식장(認識場)에는 반드시 좌와 우의 기울기가 있기 때문에 그 운동장은 좌로든 우로든 기울게 되고, 그러한 기울어짐은 반드시 상호 적대의 순환적 상승압을 고조시킨다. 두 번의 ‘마의 순환고리’가, 그리고 지난 60년의 한국 정치사가 그렇게 작동해왔다. 이러한 악순환은 양국체제가 안정적으로 정립될 때야만이 근본에서 끊긴다. 분단체제의 인식장이 해소되는 것이다.

촛불혁명 이후의 현재 상황에서 양국체제 정립을 주도할 일차적 힘은 대한민국에 있고 그 최대의 수혜자도 대한민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국체제의 정립으로 비상국가체제의 비정상을 종식시켜 정상 상태에 이를 때 세계의 찬사를 받았던 대한민국의 민주적 동력은 만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측 역시 생존의 강박에서 벗어나 정상적 내부 개혁의 경로를 차분히 개발해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렇듯 상호 적대와 긴박한 생존의 강박에서 벗어날 때 남북이 협력하여 공영을 모색할 수 있는 영역은 오히려 넓게 열릴 수 있다. 한반도의 잠재력이 억압에서 해방되어 다극 구도 상황의 유라시아와 태평양으로, 세계로 힘차게 뻗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양국체제론에 대해 예상되는 반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반통일론, 분단고착화론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앞서 살펴본 분단체제 비판론 중에서도 강경한 입장에서 제기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반대편에서의 비판인데 ‘북한’을 절대로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또 다른 강경론이다. 이 입장은 북한 정권 타도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을 주장한다. 이 두 입장은 극과 극의 반대로 보이지만 한반도 두 국가 상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뒤집어져 있을 뿐 구조적 동형이다. 양국체제가 평화통일의 전망을 실제적으로 열어준다는 점이 잘 설득된다면 이러한 반대들이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겠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두 번째 입장은 지난 촛불 정국에서 등장한 ‘태극기 – 성조기 집회’와 중첩되는 것으로 이후 양국체제론에 대한 적극적 반대 집단으로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촛불 정국에서 보았듯 이 집단의 여론 확장력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아울러 이러한 두 입장을 강경하게 견지하는 층은 양적으로 그다지 크지 않고 세대적으로 점차 축소되어가는 추세다. 젊은 층일수록 이러한 입장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래는 양국체제의 편에 있다.

양국체제론은 우선 대한민국에서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합리적 다수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을 크게 완화함으로써 한국의 경제적·문화적 활로 개척에 큰 기회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사라지고 일베식 보수가 크게 위축된 여건은 양국체제 정립을 위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흔치 않은 역사적 기회를 주고 있다. 관련 헌법 조항(3, 4조) 개정 등을 포함한 적절한 절차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룬 후, 이 합의를 북측(조선)과 주변국으로 확장해감으로써 한국은 동아시아 – 태평양 평화 정착의 주요 행위자로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이러한 이니셔티브에 대해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설 명분이 어떤 주변국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북측 역시 대한민국의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둔 행보에 굳이 반대하고 나설 이유가 없을 것이다.

분단체제에서는 남북이 서로 적대할 수밖에 없다. 반면 양국체제에서는 남북이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한다. 이 상태로 진입해야 주변국과 얽힌 긴장과 마찰의 매듭도 풀 수 있다. 정부와 민간을 막론하고 진보, 보수를 불문하고 영향력 있는 여론 주도자들은 통일에 대한 미사여구를 풀어내기 좋아한다. 그러나 통일을 정말 진지하고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순서는 반대임을 알아야 한다. 통일보다는 상호 인정과 평화공존이 우선이다. 통일을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한, 현실의 긴장과 대립은 오히려 격화된다. 단추를 거꾸로 채울 수는 없다. 상호 인정과 평화공존을 우선 과제로 명확히 설정하고 흔들림 없이 이 목표에 충실할 때, 통일은 비로소 어느 날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그저 ‘대북정책’에 그치지 않는다.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체제전환’은 ‘촛불혁명’이 진정 혁명이었음을 입증하는 최종 증거가 될 것이다. 그동안 분단체제의 현실이야말로 총체적 비정상의 근원이었다. 촛불이 제기한 ‘적폐청산’ 역시 양국체제 정립을 분명한 목표로 할 때 제대로 순서와 방향을 잡아 차근차근 성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촛불혁명과 체제전환: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

2016~2017년에 걸쳐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민주정부를 출범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촛불혁명’이라 불려온 거대하고 평화로웠던 대중행동이 진정 ‘혁명’의 이름에 부합하는 결과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체제(앙시앙 레짐)에서 새로운 체제로의 ‘체제변화’를 수반해야 할 것이다. 이 장은 한국 사회가 이루어야 할 그러한 ‘체제변화’를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이행’으로 집약해보았다.

이러한 체제변화는 한국 현대사에서 적대적 분단 상황이 강요해왔던 ‘비상국가체제’를 종식시키고, 4·19, 87년 민주항쟁과 같은 거대한 민주적 열망의 분출을 독재체제로 반복적으로 회수하는 ‘마의 순환고리’를 구조적으로 끊어내, 한국 사회를 새로운 질적 단계로 접어들게 할 것이다. ‘분단체제’가 남북이 서로 상대의 주권과 존재를 부정하고 적대적 긴장을 고조시킴으로써 항시적 비상 상태의 ‘비정상’을 영구화해온 반면, 양국체제에서는 남북이 서로의 주권과 존재를 인정하여 이러한 항구적 비상 상태의 근거를 해소함으로써 양국 모두가 ‘정상 상태(normal state)’로 진입해갈 조건을 조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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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04/16-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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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년 아펜젤로-이네르호덴Appenzello-Innerrhoden칸톤 주민들은 매년 4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군도로 무장하고 모여서 칸톤의 새로운 법률을 결정했다. 1990년이 되어서야 모든 칸톤에서 여성들도 선거의 참여가 허용되었고, 일반 남자들의 경우에도 1971년부터 보통 투표가 시작되었다. 글라로나Glarona 칸톤에도 아직 전통적인 “란트스게마인더Landsgemeinde”가 존재하는데, 이는 야외에서 열리는 칸톤 시민들의 입법회의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중세 스위스 특유의 민주적 회의는 다른 모든 칸톤에서는 투표소에서나 우편으로 하는 레퍼렌덤 투표로 대체되었다. 많은 스위스 기초자치단체에서 매년 총회가 열려서 시민들은 기초자치단체에서 정치적으로 필수 현안들에 대해 직접 투표한다.

 

150년 동안 지속된 전통

스위스는 전 세계에서 민주적인 많은 기관들과 국책 사업에서 큰 모범이 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을 제외하고 어떤 다른 나라보다 레퍼렌덤 권한이 매우 잘 발달되어 있다. 스위스의 정치 생활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특히 칸톤과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사실상 특별한 역할을 담당한다.

의회에서 바라는 헌법 개정에 대한 의무적 실행 레퍼렌덤이 있는 직접 민주주의의 첫 제도들이 1848년 현대 스위스의 첫 헌법에 이미 포함되었다. 처음에 의원들은 오늘날 주변 국가의 많은 정치인들이 계속해서 그러듯이 직접 민주주의의 도입에 반대했다. 1870년대에는 의회를 장악했던 자유-자본주의적 과두정치에 대항하여 장인匠人, 소작농, 노동자 및 지식인 층 시민들의 강력한 국민 운동이 펼쳐졌다. 이 국민운동은 정당의 지나친 권력에 대항하여 더 큰 통제권과 더 큰 직접 참여를 주장했으며, 1874년에는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을 법제화하는데 성공했다. 이 국민 거부권은 오늘날 스위스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레퍼렌덤 도구이지만, 이탈리아에서는 헌법 제138조에 따른 헌법적 레퍼렌덤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위스 사람들은 국민발안으로 헌법을 개정하여 새로운 규정을 도입할 수 있는데, 몇몇 칸톤에서는 1840년 대부터 이미 정치적 권리가 존재했다. 당시에도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였던 취리히 칸톤은 1869년 국민발안을 마련했다. 이 도구는 1891년 연방 차원에서 도입되어 1921년 국제 조약에 대한 선택적 레퍼렌덤이 추가된다. 1949년에는 연방정부의 긴급하고 법적 구속력 있는 심의를 위한 의무적 레퍼렌덤이 제정된다. 1977년 UN 등의 국제 기구에 대한 가입 결정에 대해서, 그리고 2003년에는 곧 연방법 채택을 의미하는 국제 조약에 대한 승인 결정에 대한 레퍼렌덤 권리가 뒤따른다.

연방 일반법ordinary law에 대한 입법 국민발안(제안적 레퍼렌덤)은 2003년 도입되어야 했는데 입법자들의 거부로 가로막혔다. 기초자치단체와 칸톤에는 그 밖의 직접 민주주의 권리들도 있는데, 그중 재정 관련 레퍼렌덤도 있다. 만일 기초자치단체의 지출에 관한 어떤 결정이 규정된 최소한의 문턱을 넘으면 이 결정은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혹은 법적 의무 상으로도 레퍼렌덤 투표에 부쳐져야 한다.

 

스위스 시민은 어떤 레퍼렌덤 권리를 이용할 수 있는가?

연방차원에서 유권자인 시민들은 (2018년 현재 약 5백만 명) 세 가지 주요 레퍼렌덤 도구들을 이용할 수 있다. 이 모든 권리들은 칸톤 차원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모든 레퍼렌덤 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있다.

1. 헌법상 의무 레퍼렌덤(1848년부터): 모든 헌법 개정이 발효되려면 시민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스위스의 몇몇 국제 기구 가입 또한 의무 레퍼렌덤의 대상이 된다.
2.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1874년부터): 5만 명의 시민들(유권자들의 약 1.1%)은 의회에서 승인되었지만 아직 발효되지 않은 법률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를 요청할 수 있다. 서명을 모으기 위해 유효한 시간은 법률 반포로부터 100일 동안이다.
3. 국민발안(1891년부터): 10만 명의 시민들(현재 유권자의 약 2%)이 특정 헌법 조항의 개정, 연장 혹은 폐지를 요청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헌법상의 발안”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주안점은 특정 주제에 대해 정치적 토론을 불러일으키거나 촉진시키는 것이다. 서명을 모으기 위해 유효한 시간은 18개월이다. 의회는 레퍼렌덤 투표에 대한 반대 제안을 제출할 수 있다.

국민발안을 통해 스위스 사람들은 거의 모든 정치적 사안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를 요청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처럼 직접 민주주의에서 배제되는 사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는 세금이나 관세, 국제 협정에 대해서는 투표가 허락되지 않지만, 스위스에서는 어떤 정치적 의제라고 하더라도 모두 시민 투표에 부쳐진다. 직접 민주주의에서 배제된 유일한 주제는 스위스에서 비준된 국제 권리의 규정들이다. 이렇게 모든 정치적 사안에 개입할 수 있는 주권자의 보편적 권리는 스위스 정치체제에서 레퍼렌덤 현상의 중요성을 잘 반영해 준다.

국민발안은 형식과 내용의 일치라는 전제 조건을 존중해야 한다. 이는 국민발안의 법 제안에서 두 가지 이상의 주제를 다룰 수 없음을 뜻한다. 현행 법은 결국 실행 불가능한 제안들은 직권상 기각될 수 있음을 분명히 규정하지만, 그런 상황은 매우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어떤 법 제안이 레퍼렌덤 투표에 부쳐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예전에 투표에 대해 공공 지출로 그렇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스위스에서는 여전히 세금, 공공 지출, 군사 및 방위 문제, 심지어 정부 형태에 대한 법 제안들이 거듭되고 있다.

국민발안으로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정치적 의제를 결정할 수 있고, 그러므로 연방의회와 함께 일하여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한편으로, 스위스 사람들은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으로 의회에서 승인된 법률에 반응하여 그것을 가로 막거나 확정할 수 있다. 칸톤의회에서 승인된 모든 법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스위스에서는 제도권 기관에서 선포하는, 곧 의회나 정부 측에서 요청하는 레퍼렌덤 투표가 없다. 그것은 자문적 성격이건 심의적 성격이건 마찬가지이며, 앞서 말했듯이 플레시비트 또한 그러하다. 레퍼렌덤 도구는 의무적인 것이거나, 다시 말해 특정한 경우 헌법으로 엄격히 규정되었거나 서명을 모아 시민들이 주도한다.

이런 국민발안의 제안은 형식적 기준에 정확하게 부합되어야 하며, 내용 면에서도 그렇다. 제안을 제출한 후 칸톤의회와 발안위원회 간의 협상이 시작된다. 발안 위원회는 항상 자신들의 제안을 철회할 권한이 있다. 합의에 도달하지 않으면, 시민들의 제안은 레퍼렌덤 투표로 넘어간다. 그러나 의회는 그에 대한 입장을 다수결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 제안을 투표에 부칠 권한이 있다.

국민발안권의 경우 스위스 사람들은 칸톤 헌법의 완전 개정이나 부분 개정, 또 법 의사나 법 조항 제안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칸톤 중 약 2/3 가량에서 시민들은 국민투표를 통해 칸톤 정부의 법령 또한 수정 할 수 있다. 몇몇 칸톤에서는 선출된 정치인들의 소환투표권이 제정되었다. 소환투표의 요청은 국민발안을 통해 개시되지만, 어쨌듯 이 권한은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확정적 레퍼렌덤의 경우, 선택의 폭이 더 넓은데, 법률에 대한 레퍼렌덤이나 헌법 개정에 대한 레퍼렌덤, 의무 혹은 선택적 레퍼렌덤, 재정 혹은 행정 관련 레퍼렌덤, 연방에서 규정한 국제 협정에 관한 레퍼렌덤 등이 있다. 국민발안이 시민 위원회에서 바라는 입법 절차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반면, 레퍼렌덤은 입법 절차의 마지막 단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항상 그 요청에 대한 다른 시민 청원자들의 숫자가 충분하다는 조건으로 국민투표에 이른다. 최소 서명 인원은 유권자들의 0.8%(취리히)에서 5%(티치노) 사이이다. 레퍼렌덤 요청 후에 발안 위원회는 필요한 서명을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모아야 한다.

 

150여 년간 지켜 온 민주주의 관행

스위스의 이 모든 직접 민주주의 형식들의 특징이 되는 네 가지 기본 원칙이 있다. 첫째, 항상 참여 정족수 없이 찬반을 결정한다. 둘째, 모든 레퍼렌덤 요청이나 국민발안 요청에는 단 하나의 사안을 담을 수 있다. 셋째, 레퍼렌덤 캠페인은 열려 있어서, 누구나 개입하고 찬반을 표명할 수 있다. 넷째, 시민들과 선출된 대의원들, 그리고 행정부 관리들을 포함시키는 민주적 절차이다. 연방이나 칸톤의회를 무시하고 투표에 착수하는 것이 아니다. 연방 차원의 서명 기준점으로 실행적 레퍼렌덤을 위해서는 5만 명, 국민발안에는 10만 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참여 정족수는 스위스에서 토론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없다. 투표하는 사람이 결정하며, 그 이상 이론異論은 없다.

시민들의 제안이나 선출된 대의원들이 제출한 법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요청하기 위한 절차에서 서명의 보증, 확인 및 공증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는 발안 위원회에 이런 것들을 요청한다. 또한 서명 운동을 펼치기 위한 공공 장소 사용의 문제처럼 재정적 측면에서도 서명 모으기 작업을 방해하거나 번거롭게 만드는 관료적 올가미 없이, 자유롭게 서명 운동을 펼치고 정치적 권리를 행사한다. 스위스의 관청에서는 투표 때마다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의 논점을 모아 설명하는 정보를 담은 소책자 형태의 안내서를 발행한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레퍼렌덤 권리는 확정적 레퍼렌덤 권한으로서 발안한 시민들의 높은 성공률을 자랑한다. 레퍼렌덤은 단순히 경고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므로 레퍼렌덤을 시작할 역량을 갖춘 시민 조직은 부득이 입법 절차에 참여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스위스는 수십 년 전부터 독특한 공적 조사 및 공청회 양식을 마련했다. 현재 무엇보다 인터넷을 통해 실시하는 이런 형태의 공청회 덕분에 연방 국회나 칸톤의회는 모든 정당과 조직 및 기업들을 초대하여 각자의 입장을 밝히게 할 수 있으며, 이렇게 견지된 입장은 공식 사이트에서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절차가 더욱 투명해지고, 입법 계획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준비 단계에서부터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선택적 레퍼렌덤으로 모든 연방 법률이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다. 국회는 대개 입법 과정에서 사실상 비판적인 입장을 수용함으로써 이런 종류의 레퍼렌덤을 피하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승인된 법률 중 일부 소수만이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1874년부터 183차례 있었는데, 그외 34건의 경우 레퍼렌덤 위원회는 필요한 지지를 모아내지 못했다(DFAE, <현대의 직접 민주주의>, 2018).

국민발안은 레퍼렌덤에 비해 성공률이 확연히 낮다. 스위스의 역사상 2017년 2월까지 제출된 446건의 국민발안 중 324건이 10만 명 최소 서명 인원 요건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으며, 209건은 연방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투표자 다수결이나 26개 칸톤의 다수결로 단 22건만이 통과되었다. 114건의 경우, 발안자들이 필요한 서명을 모으는 데 성공하지 못한 반면, 96건의 경우 발안 위원회가 절차가 끝나기 전에 제안을 철수했다(DFAE, <현대 직접 민주주의>, 2018, 11). 1891년부터 2014년까지 연방 차원에서 189건의 연방 발안이 전개되었지만 국민 제안의 단 10%만이 투표 심사를 통과했다. 칸톤 차원에서 국민발안의 성공률은 좀 더 높은 23%이다. 분명 스위스 사람들은 직접 참여를 좋아하는 듯하지만 또 혁신적인 제안들에 대해서는 다소 보수적이기도 하다.

 

법의 속성

보통 스위스 사람들은 한 해 3차례 투표소로 가서 연방, 칸톤, 시군 차원의 사안들에 대해 한꺼번에 투표를 한다. 평균 참여율은 40%대를 맴돌지만, 유엔이나 유럽경제공간SEE 가입처럼 막중한 현안에 대한 투표들이 있어서, 선거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참여율을 보인다. 스위스에서도 99%의 결정이 선출된 정치인들의 몫으로 남겨지지만, 직접 민주주의는 칸톤과 연방의 정치적 결정 과정에 강력한 인장처럼 새겨져 있어 스위스 정치 문화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대체로 1866년에서 2018년 3월 사이 스위스 사람들은 617건의 국가적 레퍼렌덤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그 취지들은 298건의 경우 받아들여졌으며, 333건의 경우 기각되었다. 이런 규칙적이고 집중적인 빈도의 자문은 국민발안이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눈에 띄는 영향력을 미친다. 각각의 사안에 대한 공식 정보 전달 기능도 있는 레퍼렌덤 캠페인은 광범위한 공공 토론이 이루어지게 하며, 각계각층의 국민들이 그에 대한 지식과 비판 의식을 심어 준다. 국민발안의 약 2/3가량이 그저 다음 3가지 영역, 곧 환경과 에너지 보호, 사회 정치 및 제도적 법규와 시민권리의 주제에 관한 것이다.

스위스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연방 레퍼렌덤 투표에서 이중 찬성이라는 필수조건이다. 어떤 확정적 레퍼렌덤이나 국민발안이 유효하려면 전국 모든 투표자들이 던진 표의 과반수뿐만 아니라 26개의 칸톤 중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렇게 칸톤들 사이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조건은, 현실적으로 이 나라의 연방주의를 지키기 위해 다소 골치아픈 문제이기 때문에 적어도 13개 칸톤에서 그 찬성을 얻어내어야 하는 것이다.

때로 학자들은 스위스의 체제를 “절반의 직접 민주주의”로 정의한다. 국회의 입법 절차를 시민들의 레퍼렌덤 권리나 투표를 통한 선거와 결합시킴으로써 정치인들과 시민 사회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대화하도록 압박하기 때문이다. 권리를 온전히 지닌 스위스인들은 그들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신들을 “주권자”라고 정의한다. 단지 정치인들을 뽑을 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특정 현안이나 사안들에 대해 결정할 권한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칸톤과 연방 차원의 정치적 결정의 98%는 정치인들이 담당한다. 정치인들은 또 레퍼렌덤 투표의 결과를 적용해야만 한다. 직접 민주주의에서 정치인들은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주역으로 참여하며, 선거구 시민들과 더욱 직접적인 관계에 놓인다.

자주 이런 종류의 직접 민주주의는 입법 절차를 지나치게 지연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입법 생산성의 문제는 법의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질에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마찬가지다. 틀림없이 이탈리아 국회는 지나치게 많은 법률을 양산해 내고, 그것도 지나치게 많은 성공적이지 못한 법률들을 만들어 낸다. 스위스에서는 법률 생산량이 부족한 것을 불평하지 않으며, 입법 절차 상 시민 동의나 직접 관련된 모든 사회적 그룹들의 공적인 참여에 훨씬 더 주의를 집중한다. 행정부는 효율적이고, 경제는 번영하고, 시민 만족도는 높고, 공공 부채는 낮은 스위스는 인구 대비 GDP상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스위스에서도 체제의 개혁을 논한다. 예를 들어, 인구 통계학적 성장에 비례하여 레퍼렌덤 투표를 개시하기 위해 필요한 서명 인원을 늘리는 것이나 연방 차원의 재정적 레퍼렌덤 도입 등을 다룬다. 헌법을 지나치게 부풀리지 않기 위해 일반 법률 상의 연방 국민발안이 제안되었다. 이 도구는 입법자들을 설득해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스위스는 국가에서 조인한 국제 협정에 대해 시민들이 투표할 권리를 훼손하지는 않으면서도 스위스가 지켜야 할 국제적 의무에 어긋나는 레퍼렌덤 투표를 막기 위한 헌법적 권한 행사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 그러나 참여의 정족수 도입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스위스의 시스템을 이탈리아로 옮겨올 수 있을까?

사람들은 종종 역사적 발전과 특수한 전통을 바탕으로 직접 민주주의는 오로지 스위스에서만 작동할 수 있으며, 유럽 다른 지역에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스위스에서 특정한 형태의 시스템이 발전했으며, 정치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는 최고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무엇보다 결과이다. 직접 민주주의가 잘 발달하면 시민들은 정기적으로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 투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러한 전통이 없다는 것이 직접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것에 반대할 논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러한 문화가 발달할 수 있도록 레퍼렌덤 권한을 규정해야 할 것이다.

많은 경우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반대의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스위스 사람이 아니니 이러한 모델을 이탈리아의 현실에 이전할 수 없다.” 직접 민주주의를 스위스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나라는 독특한 발전을 이루어 왔으며, 매우 특별한 정치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혹은 이론적으로 모든 의회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보완할 수 있는 일련의 법률이나 도구가 있기 때문인가?

물론 스위스는 이탈리아나 이탈리아의 지방들에 비해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스위스는 매우 독특한 연방정치를 발전시켰으며, 스위스 사람들은 자신의 칸톤에 대한 소속 의식이 매우 강하다. 게다가 스위스는 정부 구성에서 화합의 원칙을 실천한다. 어떤 “연금술”에 따르면, 연립 정부에도 늘 더 강력한 정당들이 존재한다. 스위스의 모든 정치 관련 조직들은 촘촘한 연결망으로 연결된 강력한 연합주의를 자랑하며, 스위스 사람들은 대개 자신들의 전통에 매우 큰 애착을 갖고 있다.

스위스의 또 다른 독특함도 있다. 국제 정치에서 절대적 중립을 지키고, 지역성을 원칙으로 여러 언어를 사용하며(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모든 칸톤은 그들 특유의 공식 언어가 있다), 다양한 교파의 그리스도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고, 2017년 현재 이주민 비율이 25%를 넘는다.

연방 조직이 모두에게 공통되는 하나의 연방 국가라는 큰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26개 칸톤에 각자의 언어와 문화, 개성을 개발할 수 있게해 준 한편으로, “국민의 권리”, 곧 직접 민주주의 권리들은 시민들로 하여금 각자의 정치 시스템을 자기 자신과 완전히 동일시하게 한다.

연방주의와 직접 민주주의, 이 두 가지는 스위스에서 국가와 사회통합의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아니, 이는 스위스인들 공통의 역사적 유산이 되었다. 결정 과정에서 민주주의 면모는 더 잘 드러난다. 즉 대의민주주의 기구들 말고도 시민들은 구체적인 단일 정치적 현안에 대해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시민 직접 참여의 노정이나 기회는 시민들에게 유리한 법규를 갖춘 명확한 권리에 기반을 둔다. 또한 스위스 시민들은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로 결정할 수 있으며, 의회 또한 그러한 사안들을 토론하고 심의한다. 요컨대, 스위스에서는 정치적 주권자인 시민들이 사실상 최후의 발언권을 지닌다. 이 모든 것이 다른 민주주의 체제, 특히 중부 유럽에서 그렇지만,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가능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종종 스위스 사람들은 여러 다양한 레퍼렌덤 투표에서 용납할 수 없는 투표를 했다는 비난을 받곤 한다. 예를 들어, 1992년 스위스가 “유럽 경제 공간European Economic Space”에 가입하는 것을 거부했을 때 그랬고, 그 후 2001년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을 때도 그렇다. 최근에 이탈리아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 새로운 이슬람교 사원의 건설 금지(2009년)와 솅겐Schengen(유럽연합에 속한 26개국들로 서로 여권 검사 없이 국경을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다)협정으로 합의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철회하기로 한 결정(2014년)도 있었다. 이 경우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필터”가 작동된다. 이런 몇몇 불쾌한 결정들은 다른 나라에서 늘 직접 민주주의의 적들의 이용을 당하는 반면, 그 밖의 수백 건에 달하는 다른 사안들에 대한 투표에 대해서는 전혀 주목하지 않고 언급도 하지 않는다. 스위스 사람들은 이민과 난민 관련 정치에서 원칙적으로 소수자 및 외국인들에게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주관적인 이데올로기적 필터를 가동하여 스위스의 어떤 레퍼렌덤 투표의 결과에 대해 “잘못”되거나 “불의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투표 결과를 레퍼렌덤 도구 자체와 혼동하는 심각한 오해가 있는 듯하다. 직접 민주주의는 역사의 특정한 순간에 국민들 내부에 존재하는 입장을 반영하는 거울과 다름 없다. 비춰지는 모습이 싫다고 거울을 깨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외부에서 볼 때 정치적으로 주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때 스위스에서는 “긍정적” 결과와 “부정적” 결과가 교차한다. 스위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만, 세상과 사회 및 정치 개혁에 열려 있는 국민으로서
항상 최고의 전문가들도 깜짝 놀라게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

스위스에서 실행된 직접 민주주의의 주춧돌은 이미 다른 많은 나라로 이전되었다. 1900년대 초 미국 서부의 연방 주들은 공공연히 스위스의 모범을 따라 주와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요소로서 국민발안와 헌법상의 레퍼렌덤을 시작했다. 일단 미국 연방 24개 주들이 이 권리를 적용한다. 세계적으로 37개국이 적어도 일부 이 참정권을 갖추고 있다. 또한 여러 대표단과 관료들도 매년 스위스를 방문하여 직접 민주주의 운영을 담당하는 기관들을 둘러보며 그 기능을 연구하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현대적인 개념이며, 성공적이고 수출에 적합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적어도 150여 년간의 경험으로 스위스는 레퍼렌덤 권한이 모든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 적용 가능함을 보여준다. 의심할 여지없이 스위스에 비해 이탈리아는 모든 차원의 레퍼렌덤 권리에서 매우 뒤쳐지고 있다는 것이 보고된다. 이탈리아에서 주 차원의 직접민주주의는 스위스의 칸톤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종종 직접 민주주의와 관련된 토론에서 스위스의 모델은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스위스의 모든 법령을 그대로 베껴 쓸 필요는 없더라도 이 시스템의 기반을 이루는 주춧돌은 참고로 하여 이탈리아 민주주의의 개혁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위스적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스위스에서 일관된 형태로 실행된 보편적 직접 민주주의의 모델이 존재할 뿐이다. 이 보편적 모델의 다양한 요소들이 이탈리아에서도 적어도 기초적인 형태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확정적 (헌법상의) 레퍼렌덤, 정족수제로, 낮은 진입 장벽, 주 정부의 심의에 대한 레퍼렌덤, 몇몇 특별자치주에서 실시하는 제안적 레퍼렌덤 등이 그것이다. 어쨌든 이런 권리들은 대개 제대로 규범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러니 이탈리아 사람을 스위스 사람들로 바꿔놓자는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민주주의 체제에서 실행할 수 있는 법규를 이탈리아에서도 실시하자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잘 법제화되고 시민들에게 유리한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더 스위스화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더 민주적인 나라가 될 것이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20/02/1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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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냉전시대 오랜 기간 남북에 존속했던 ‘반쪽국가의식’은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양국의식’ 쪽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이 이뤄진 1991년을 양국체제로의 전환이 최초로 시작된 때라고 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아직 불충분하고 불완전했다.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모두 그러했다.

우선 남북 유엔 동시가입을 전후하여 한국은 소련, 중국과 수교할 수 있었지만 미국은 북과 수교하지 않았다. 미국의 강한 영향 아래 있는 일본도 북과 수교하지 않았다. 유엔 동시가입을 통해 남북의 수교국은 증가했지만,10 북의 체제 안정에서 핵심적인 미국과의 수교가 이뤄지지 않았고 일본 역시 미국을 따랐다. 국제적으로 두 개의 코리아는 공인되었지만, 그 출발은 불완전하고 불균형한 것이었다.

기본합의서에서 이루어진 내적 상호 인정 역시 불완전했다. 상호 인정을 한다고 하면 과연 상대를 어떤 수준에서 인정하는지가 중요하다. 특히 남북과 같이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여 전쟁을 했고, 그 전쟁을 아직도 끝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합의서 전문에서는 상호 인정하는 “쌍방”의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 규정했다. 그 결과 3장 25조에 이르는 합의서 전체에서 합의 양 당사자를 서로의 정식 국호로 부르지 못하고 ‘쌍방’ 또는 ‘남과 북’이라 애매하게 지칭했다. 합의서 말미에 서명자로 ‘대한민국 국무총리 정원식’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 총리 연형묵’이라 써서 딱 한 번 양국의 국호가 언급되었을 뿐이다. 물론 그조차 하지 못하고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 이후락 김영주”라고 끝맺었던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에 비하면 분명 발전은 발전이라 하겠다. 그러나 아직 불완전한 발전이었을 뿐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란 앞서 분석한 ‘반쪽국가의식’에 정확히 상응하는 표현이다. 흔히 <남북기본합의서>는 1972년 체결된 <동서독기본조약>을 준용한 것이라 한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상호 인정의 수준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동서독기본조약>에 크게 못 미친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동서독기본조약>은 서문, 10개조, 그리고 2개조의 추가조항 전체에서 조약 쌍방을 정식국호인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이라 분명히 칭하고, 두 국가가 주권과 영토를 상호 인정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구절은 <동서독기본조약>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필자가 독일의 동방정책과 관련해서 이와 그나마 가까워 보이는 표현을 조사해본 바로는, 1969년 10월 28일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Willy Brandt)의 연방정부 성명 중에 “독일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더라도 그 국가는 상호 외국이 아니며, 그 상호관계는 특수한 종류인 것”이라 했던 것이 처음이었다. 그 성명의 핵심은 독일에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는 것이었다.11 다만 그 두 국가는 서로 외국이 아닌 특수관계라는 뜻이었다. 먼저 국가로서 인정하면서, 그다음에 그 두 국가 간의 관계는 특수하다 한 것이다. 하나의 민족이 이룬 두 개의 국가(one nation, two states) 간의 관계이니 특수하다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동서독은 기본조약 이후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일반 수교국 대사보다 격이 높은 장관급 대표를 상호 파견했다. 그런데 <남북기본합의서>는 그와 전혀 다르다. 국가로서 인정하지도 않았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고 거듭 확인까지 하고 있다.

당시 상황을 냉정하게 보면 비록 냉전이 종식되었다 하더라도 미국이 북을 인정할 의도가 없는 상태에서 남북 양측만으로 종전(終戰)을 이루기 어려웠다. 아직 전쟁도 공식적으로 끝마치지 못한 상대를 국가로 인정한다는 것은 앞뒤가 바뀐 일이기도 하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미국과 별개로 독자적으로 북과 종전처리를 하고 상호 국가 인정까지 밀고 나갈 만큼의 의지와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위기에 처한 당시의 상황을 우선 모면하는 데 급급했지 장기적인 비전을 차분히 재정립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듯 남북 모두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제약된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낮은 수준의 합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남북기본합의서>가 <동서독기본조약>에 비해 상호 인정의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불완전한 합의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면 문제가 없다.12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으면 그것을 극복해갈 방향도 정확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낮은 수준에서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거꾸로 뒤집어 그것이 마치 오히려 더욱 높은 수준의 심오한 합의의 결과였던 것처럼 생각한다면 문제가 된다.

실제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표현은 그러한 혼란을 유발할 여지가 없지 않다. ‘남북은 국가 대 국가로 서로를 (아직 능력이 부족하여)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뜻이 높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북은 애당초 두 국가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이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으면 이 구절은 마치 ‘우리가 지금 하나는 아니지만 결코 둘일 수 없다’라는 높은 민족적 이상에 남북 대표가 의기투합한 결과, 곧바로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통일로 직행하려는 속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표현되었던 것처럼 과잉 해석될 수도 있다.13 이런 혼란에 빠지면 남북관계가 어디만큼 왔고, 어디가 한계이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올바른 방향을 잡기 어려워진다.

지금까지의 분석에서 분명해진 사실은 다음과 같다. 기본조약을 통해 동서독은 서로를 주권국가로서 인정함으로써 ‘반쪽국가의식’을 극복하고 ‘양국체제’로 확실히 이행한 반면, 남북의 기본합의서는 서로 체제는 인정하되 국가로서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애매한 절충에 그쳐 ‘반쪽국가의식’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또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 체결 이후 미국은 1974년 동독과 수교했다. 반면 <남북기본합의서> 이후 미국은 북의 수교 요청을 거부했다. 동방정책의 서독이 동독과 미국의 수교에 적극 나선 반면, 북방정책의 한국은 조선과 미국의 수교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 성사시킬 의지나 능력이 없었다. 그 이후의 차이 역시 분명하다. 양국체제로의 전환을 확실히 한 동서독은 활발하고 광범위한 교류와 협력을 이루었지만, 낮은 수준의 애매한 절충에 머문 남북관계는 기본합의서 채택 이후 채 1년이 못 돼 흔들리기 시작해 곧 파탄에 이르고 말았다.

지금까지 한반도 남북의 ‘반쪽국가의식’이 ‘양국의식’으로 바뀌어갔던 첫 번째 역사적 계기를 살펴보았지만, 그러한 전환은 결코 순조롭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남북에 뿌리 깊은 반쪽국가의식이 자리 잡게 된 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냉전시대 두 코리아는 코리아 바깥에서 볼 때 각각 세계의 반쪽으로부터만 지지·인정을 받았던 반쪽국가였고, 코리아 내부에서 볼 때도 남북은 서로 상대를 부정한 채 소멸시켜 흡수해야만 온전한 하나가 된다고 생각하는 반쪽국가였다. 이 같은 내외의 반쪽의식은 남북관계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화해 대신 대결과 적대가 증폭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고, 그 결과 한반도는 2중으로 고통받는 안팎곱사등이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반쪽의식은 87항쟁, 냉전 붕괴, 유엔 동시가입, 기본합의서 채택이라는 연쇄적 대사건들을 통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크게 약화됐다. 그 자리에 점차 상대를 인정하는 양국의식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양국체제로 가는 길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 전환은 아직 불완전했고, 짧은 시간에 그 길은 금방 닫히고 말았다.

양국체제의 최초의 싹이 그렇듯 빨리 꺾이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이 원인 분석은 매우 중요하다. 앞서 보았듯 분단체제는 너무나 오랜 시간 지속되어 어느덧 익숙해진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이 체제가 다른 체제로 바뀌는 데는 많은 어려움과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 글을 쓰는 시간, 양국체제로의 두 번째 진행이 이뤄지고 있고, 그 조건이 첫 번째에 비하여 여러모로 좋은 상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성공이 자동적으로 보장되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안팎의 장애가 아직 남아 있다. 그렇기에 첫 번째 열림이 실패했던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양국체제를 향한 두 번째 항로에 대해 가장 도움이 되는 지침이 될 것이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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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1/29-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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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정신’, 세조에 의해 단절되고 대체되다

우리 사회에서는 항상 ‘기본’과 ‘원칙’은 무시되고 그 자리는 ‘편의주의’와 ‘이해관계’로 대체된다. 그러면서 ‘결과’와 ‘성과’ 그리고 ‘효율’만 중시된다. 그리하여 “박정희 신화”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강고하다. 국회를 얘기할 때도 우리는 언제나 “그 급한 법안이 왜 빨리 통과되지 않느냐!”라는 ‘결과’에만 집착한다.

과연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사회가 되었을까?

우리 역사를 성찰해볼 때, 조선시대 세종을 계승한 문종의 뒤를 이어 세조가 정변을 일으킨 사건은 우리 역사에서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 사건이야말로 ‘기본’에 대한 무시 및 ‘원칙’의 상실 그리고 ‘빨리빨리주의’와 ‘결과만능주의’로의 대체라는 전환점의 의미에서 “세종의 흐름”이 세조에 의해 단절되고 대체되는 중요한 분수령으로 작동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세종은 정책 결정과 시행에 매우 신중했다. 한 가지 정책을 결정하는 데 20년이 걸린 적도 있었다. 이를테면 당시 농민에 대한 세금은 ‘손실답험법(損失踏驗法)’에 따라 관리가 해당 지역에 나가 그 해의 곡물 산출량을 조사해 올리면 그 기준에 따라 세금으로 거두어들일 미곡의 양을 결정하였다. 문제는 조사의 정확성과 ‘야합’이었다. 관리가 해당 지역 양반과 친분이 있을 경우 비리의 온상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토지의 비옥도와 지역별 날씨 그리고 산출량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

세종은 중국의 법제를 연구하고 조선의 현실을 고려하여 의정부와 호조 등과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공법(貢法)’을 만들고자 하였다.

세종은 이 문제에 무려 20년에 걸쳐 연구하고 논의를 하였다. 하지만 이 제도를 시행하려 하자 신하들이 시기상조라며 막고 나섰다. 이에 세종은 공법상정소(貢法詳定所)를 설치하여 제도를 계속 보완하도록 하였다. 특히 토지가 척박한 지역의 주민에게 과도한 세금이 매겨지지 않도록 보완하도록 하였다. 세종은 이와 함께 산출량이 많고 신법에 대한 여론의 호응정도가 높았던 전라도와 경상도의 한 고을 씩 두 고을에서 시범적으로 시행 해보라고 명령하였다. 2년 뒤에는 충청도까지 실시하도록 하였다. 세종은 이렇게 전라, 경상, 충청의 3도에 시행하도록 명하면서도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오늘날로 말하면 일종의 ‘주민투표’를 실시하도록 하였다.

“각 고을 수령들과 여러 사람의 뜻을 참작하고, 자기의 의견도 합하고, 각기 경내 인민의 바라는 것과 두 가지 법 가운데에 행해서 폐단 없는 것과 마땅히 행할 수 있는 조건을 다시 생각하고 의논을 더하여 밀봉해서 아뢰라.”

1430년 3월, 세종은 총 17만 2,806명의 신민(臣民)을 대상으로 공법에 대한 찬반 여부를 조사하게 하였고 그 결과 찬성은 9만 8,657명이었고 반대는 7만 4,149명으로 나왔다.

여론조사와 어전회의에서 찬성 의견이 높았지만 세종은 곧바로 신법을 실시하지 않고 보류하면서 척박한 토지에 무거운 세금이 책정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정비하였다. 그러면서 흉년이 들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계속 보완해갔다. 이와 동시에 대신들에 대한 설득 작업도 계속 추진하여 그 동안 반대해오던 황희와 맹사성 등도 공법 시행에 찬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종 26년, 세종은 풍․흉작에 따라 연분(年分) 9등으로 구분하고,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전분(田分) 6등으로 분류하는 방식을 내용으로 하는 수정된 공법을 마침내 정식으로 시행하도록 하였다.

 

박정희 신화의 역사적 기원

필자는 우리 조선 역사에서 세종-문종-단종으로 계승되지 못하고 세조가 정변을 일으켜 왕위를 계승한 이 사건을 우리 민족사의 결정적인 비극의 분수령이라고 감히 판단한다. 필자는 ‘박정희 신화’가 오늘날까지 강고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빨리빨리주의’, 적당주의, 독점, 파당주의 등등의 폐단이 세조의 정변에 의하여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었던 바로 그 사건과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흔히 문종은 문약한 무능한 군주로 묘사된다. 그러나 문종은 사실 가장 세종을 닮았던 군주였다. 세종을 닮아 토론을 좋아하고 신중한 성격이었으며, 박학다식하고 관심사가 다양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세종은 자신을 가장 닮았던 문종을 후사로 정했던 것이었다. 문종은 부친 세종의 정책을 계승하고 정리하는 관리형 국왕을 지향했다. 비록 그 임기가 너무 짧아 치적이 잘 나타나지 못했지만, 예를 들어 군사정책만 살펴보더라도 전쟁사를 모든 『동국병감』을 편찬하고 수양대군에게 진법을 새로 정리시켰으며, 화차를 개발하는 등 병기의 개량에도 힘을 쏟았다. 그는 매사에 성실하고 노력하는 자세로 임했다. 흔히 단종은 그저 비극적인 어린 왕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단종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세종과 아버지 문종으로부터 제왕교육을 받았고, 본래 학문을 좋아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제법 배짱도 있었다.

하지만 세조는 그렇지 못했다. 문종은 세종의 고민과 정책을 잘 이해했지만, 세조는 달랐다. 특히 세조는 복잡한 것을 매우 싫어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것 아니면 저것”,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이었다. 복잡한 논쟁이 발생한 배경과 근본적인 문제를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세조는 의정부의 정책결정권을 폐지하고 재상의 권한을 축소했으며 6조의 직계제를 부활시켜 독점적 왕권을 강화했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자신을 옹립한 소수의 공신집단을 중심으로 권력을 운영하였고, 그들에게 온갖 특혜를 베풀고 비리를 묵인하였다.

기본과 절차의 무시, 독점, 유착, 특혜와 비리……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과 완벽하게 오버랩된다.

 

기준원칙이 있는 사회를 위하여

사회란 다양한 개인과 집단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사회가 원활하게 그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의 체계가 정립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사회든 그 구성원들은 일정한 규범에 의하여 제정된 언어를 수용하여 강제적으로 따르게 되는데, 이 의사소통의 매개인 언어를 바로 규약의 체계, 즉 코드(code)라고 한다. 개인은 이 사회적 규약에 토대를 둔 언어에 근거하여 언어생활을 영위하게 되며, 이러한 언어의 국가 사회적 규범을 지배하는 것이 바로 ‘표준(標準)’이다.

우리 사회에서 ‘기본’과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경시되고 무시되고 있다는 점은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갖가지 문제를 야기시키는 근본적인 요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준(基準)’이나 ‘표준(標準)’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영어 ‘standard’는 원래 ‘군기(軍旗)’라는 뜻으로서 중세시대 전쟁에서 병사들이 전투를 벌이는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꼿꼿하게 박아놓고 병사들로 하여금 결전을 치르도록 하는 의미가 있었다. 이 군기가 쓰러지면 병사들은 더 이상 전진을 하지 못하고 패퇴해야만 했다. 따라서 ‘standard’라는 단어는 전쟁터의 용사들이 적의 어떠한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꼿꼿이 버티는 자세에 적용되어, ‘최후의 저항, 반항, 확고한 입장’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결국 ‘기준’, 혹은 ‘표준’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standard’는 사회의 최후의 버팀목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기준’이 무너지게 되면 전체 사회가 붕괴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기준’과 ‘원칙’을 나타내는 ‘principle’의 어원은 라틴어 ‘principium’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그 의미는 ‘시작’, 또는 ‘근원’이다. 사실 ‘법’을 뜻하는 ‘law’의 어원도 ‘origin’으로서 ‘근원’이다. ‘규칙’을 말하는 ‘rule’의 어원은 “똑바로 가다”에서 비롯되었다. ‘시작’ 또는 ‘근원’이 없으면,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 이렇듯 ‘기준’이나 ‘원칙’은 ‘근원’ 혹은 ‘똑바로 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실로 사회의 ‘원칙’과 ‘기준’이 무너지면 그 사회는 결코 존립할 수 없게 되며, 스스로 근저로부터 붕괴되는 것이다.

지켜야 할 진정한 ‘가치’와 ‘권위’를 결여하고 무엇을 ‘보수’해야 할지도 모르는 보수, 그리고 지향해야 할 진정한 ‘가치’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진보 모두 먼저 스스로 뼈아픈 반성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일하지 않는 국회의 핵심은 국회의원들이 법안검토를 방기하는 것

이제 그만 변해야 한다. ‘기본’과 ‘원칙’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국회 문제 해결의 핵심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본래의 그 존재 목적에 부합하는 기본과 원칙에 의거해 운용되어야 하는 것이 근본적이며 핵심적인 해결책이다.

지금 모두가 입을 모아 “일하는 국회”를 부르짖지만, 정작 “일하는 국회”의 핵심이 입법의 핵심인 ‘법안검토’를 공무원 등 다른 사람이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국회의원 본인들이 수행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명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변죽만 울리고 알맹이는 모두 빠져버린 ‘인식의 부재’이고, 소리만 요란하되 성과는 너무도 미미한 태산명동에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며, 신발을 신고서 발바닥을 긁는 격화소양(隔靴搔癢)의 어리석은 책임 회피다.

국민들이 국회의원에게 부여한 ‘법안검토’라는 의무를 공무원이 대리하고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국회의원 본인들이 일하지 않은 가장 명백한 증거이며, “일하지 않는 국회”의 핵심이 아닌가!

세계 의회사상 일찍이 출현한 적도 없는, 공무원들이 대신하면서 국회의원들은 방기하고 직무유기 중인 “법안 검토”를 국회의원 스스로 수행하는 일부터 복원시키는 것, 이것이 “일하는 국회”냐 “일하지 않는 국회”냐를 결정하는 유일한 판단 기준이다.

수, 2020/06/24-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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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해야 우리는 국회를 개혁할 수 있을 것인가?

‘국회’라는 말이 나오게 되면 누구든지 목소리를 높여 맹비난한다. 모든 사람들이 국회를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긴급하게 개혁할 대상 1호로 지목한다.

그러나 막상 우리 모두의 ‘사고뭉치 국회’를 과연 어떻게 개혁해나갈 것인가의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정작 명쾌한 방안이 없이 수십 년 째 “그 밥에 그 나물”, 도돌이표 레토릭일 뿐이다.

국회 개혁, 이제 추상적이고 원론적이며 환원론적 논리는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문제의 핵심에 접근해야 한다. 국회 개혁의 진실을 분석하고 실제적인 해결 방안을 도출해내야 한다.

방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쉬운 예를 들어보겠다.

학생의 본업은 과연 무엇인가? 바로 수업, 즉 학습이다. 그런데 만약 학생이 수업을 하지 않고 대리 수업을 한다든지 대리 시험을 본다면 어떻게 될까? 한 마디로 말해, 그것은 학생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은 학습과 수업을 하지 않고서 나가서 연애나 하고 패싸움하고 게임하고 놀 수밖에 없다. 패싸움 금지규정을 만들어본들 막을 수 없다. 수업을 하지 않고 시간이 남고 남아돌아서 날이면 날마다 패싸움하고 연애하고 게임하는데, 예를 들어, 패싸움금지법, 연애금지법, 게임금지법 등등을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본들 그것들을 막아낼 재간이 없다. 또 이러한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학생을 선발해본들 학생이 수업을 하지 않는 그 본질을 고치지 않는다면 선발된 그 좋은 학생들도 수업을 안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교사를 초빙한다고 해도, 수업을 하지 않는 그 자체를 고치지 않고서 왜곡된 이 상황을 결코 바꿀 수 없다.

동일한 논리로 나는 오늘 국회 문제의 핵심이 바로 국회가 국회의 본분, 즉 입법을 국회의원들 스스로 하지 않고 ‘방기’ 혹은 ‘피동적으로 배제’된 데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 국회처럼 이렇게 입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또는 ‘소외된’ 의회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입법이야말로 의회의 본령이고, 이 본령을 방기한다면 그것은 이미 의회가 아니다.

 

인식하지 못하면,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해내지 않고서는 아무리 유능하고 의욕에 넘치는 국회의원을 선출해본들 모든 국민들이 바라마지 않는 ‘좋은 국회’, ‘신뢰받는 국회’로 발전할 수 없다. 그렇게 ‘입법’을 방기하는 객관적 조건을 바꿔내지 않는 한, 그 어떠한 좋은 선거법에 의해 좋은 인물을 선출해도 ‘좋은 국회’, ‘좋은 국회의원’이 나올 수 없다.

지금 ‘국회 문제’를 말하면, 모두 입을 모아 “지긋지긋한 정쟁(政爭)의 종식”을 말하지만, 의원들이 자신들의 본업인 ‘입법’에 몰두한다면 솔직히 ‘정쟁’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다.

이것이 오늘 우리 국회 문제의 ‘진실’이다.

 

일하지 않는 국회의 숨겨진 진실

얼마 전 국회의 한 의원실에서 ‘검토보고서’가 처음엔 찬성 취지였다가 중간에 부정 취지로 바뀌는 바람에 법안 통과가 무산되자 의원이 수석전문위원을 의원실로 불러 문제를 제기하던 중 보좌관과 입법조사관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빚어져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사건은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불신의 영향으로 “국회의원의 갑질 사건”으로 쉽게 이해된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사실이 있다.

해당 사건에서 수석 전문위원은 항의하는 보좌관의 태도를 문제 삼아 “건방지다”라고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은 그야말로 “갑중의 갑”으로 통하는 위상이다. 그런 ‘높으신’ 국회의원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보좌관에게 “건방지다”라는 말을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갈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실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서 보듯, 국회 수석전문위원은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수석전문위원의 힘이 얼마나 센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 ‘검토보고서’가 바뀌는 바람에 결국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다음 단계로 가지 못하고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국회의원과 전문위원 중 과연 누가 입법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국회의원은 국민이 선출하여 입법권을 부여한 것이다. 그것이 곧 대의민주주의다. 그렇다면 국민이 입법권을 부여하지 않은 국회 전문위원은 어떻게 하여 이렇게 “국회의원보다 더 큰” 입법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것일까?

이전 시기에 기업들은 재경부(지금의 기획재정부, 기재부)에 로비를 하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회에 로비를 한다. 기재부 관료에게 해봤자 다시 국회의 문턱에서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다시 반전이 존재한다. 바로 국회에 대한 로비에서 그 로비의 대상이 국회의원이 아니라 바로 ‘국회 전문위원’이라는 사실이다.

이들 국회 전문위원은 각종 법안만이 아니라 예산 심의에 대한 검토보고 권한도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회 공무원인 예산결산위원회 수석 전문위원에게는 장관들이 머리를 숙이고 부탁한다. 나아가 국정감사 때 피감기관을 얼마든지 요리할 수 있기 때문에 가히 무소불위 ‘권력의 핵심’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국회 주변에서는 “(국회공무원인) 수석 전문위원이 초선 의원 5,6명을 합한 것보다 힘이 세다”라는 말이 널리 퍼져있었다.

“일하지 않는 국회”, 이 말은 반만 맞는 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지금 우리 국회는 국민들의 불신 대상 1위다. 하지만 국민들은 비록 그렇게 불신을 받는 국회지만 입법이라는 본연의 업무는 미흡하지만 그럭저럭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입법이라는 의회의 본연의 직무 수행에 있어 우리 국회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왜곡과 비정상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나마 국회의원은 국민들이 싫어할 경우 투표로써 심판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 뒤에 가려져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권력 ‘국회 전문위원’은 알려지지 않은 숨은 권력이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본업인 입법에서 분리된 국회의원

오늘의 우리 국회를 명실상부 국민 의사를 대표하는 기구라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아마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완강하게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국회는 정확하게 민의를 반영하여 올바르게 구성되어 있을까? 그러나 한마디로 유권자의 민심은 국회 의석수에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과반이 넘는 표가 사표(死票)로 되고 있고, 18세 청년들의 투표권은 계속 거부당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철저히 저지된 채 거대 정당들의 독과점 체제만이 군림하고 있다.

오늘 우리 국회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그야말로 첩첩산중 쌓여있다.

이 시점에서 과연 어떠한 문제부터 풀어야 이 국회를 바꿔낼 수 있을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 것인가?

시민운동은 이제까지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에서 입법건수 발의를 기준으로 삼아왔다. 이는 한 마디로 방향 착오다.

흔히 법률안에 대한 ‘검토보고’라고 하면 당연히 국회의원이 그 책임 주체가 되어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에 소속된 공무원들이 검토보고의 ‘준비’와 그 ‘발언’까지 모두 담당한다.

우리 국회법은 제58조에 “위원회는 안건을 심사할 때 먼저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라고 명문화하고 있다. ‘검토보고’란 국회의원이 제출하는 법률안에 대해 국회 공무권이 ‘검토’하는 것으로서 예·결산에 대한 검토도 모두 그들의 몫이고 권한이다.

사실 국회에 대한 불신이 극대화된 현실에서도 국민을 위해 진정성 있게 열과 성을 다하려는 국회의원이 적지 않다. 그러나 현재의 국회 입법과정에서 의원 개인이 높은 의욕을 가지고 아무리 열심히 해보려 해봐도 그 역할은 대부분 입법발의의 단계에서 끝나게 된다. 결국 현 국회는 근본적으로 의원의 의욕과 능력이 발휘될 수 없는 구조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아무리 똑똑하고 열의에 불타는 사람이라도 사실상 할 일이 없게 된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어느 누가 국회의원이 되어도 예외 없이 모두 아무 탈 없이 임기를 무사히 채울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한 지인은 초등학생을 국회에 갖다놔도 충분히 국회의원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유치원3법’이나 ‘김용균법’ 등을 둘러싸고 의원들이 갑론을박, 거칠게 논란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의원들이 입법을 주도한다고 쉽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빙산의 일각’처럼 그야말로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로 부각된 극히 일부 법안에만 해당될 뿐이다. 왜냐하면 현재 국회 입법은 법안 발의 그 단계에서 의원들의 개입은 사실상 종결되기 때문이다. 대다수 법안들은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사이에 법안 검토부터 모두 철저히 입법관료들의 손으로 넘어가 처리된다.

그리하여 결국 국회개혁의 핵심은 바로 국회의원들과 ‘분리’된 국회의 본업, 즉 입법 활동을 다시 ‘복원’하여 결합시키는 것에 있다. 즉, 입법의 전 과정을 국회의원이 그 ‘검토’부터 모두 ‘직접’ 수행하는 것이다.

화, 2020/01/14-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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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

2016~2017년의 촛불 이후 70여 년 전 코리아 남북의 분단 이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이에 따라 통일을 향한 새로운 길도 함께 열리고 있다. 이 새로움의 의미가 무엇인지 통일에 관한 자유와 책임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숙고해보고자 한다. 무엇에 대하여 ‘새로운 시대’인가를 먼저 밝혀두어야 하겠다. 신시대와 차별되는 구시대란 무엇인가? 지난 70여 년의 코리아 남북의 분단과 적대의 시대다. 새로운 시대란 그 70년 적대와 대립을 종식시키고 공존과 평화를 일구어가는 시대를 말한다.

그러나 새로운 남북 공존과 평화의 시대에서 자유와 책임을 생각하자면, 의당 그 전제와 배경이 되는 분단과 적대의 시대에서 자유와 책임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먼저 살펴보아야 하겠다. 새로운 시대란 전혀 새로운 무엇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시대의 굳은 껍질 안에서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숙성된 후 움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장은 이 같은 작업을 두 개의 의미심장한 텍스트에 대한 분석을 통해 시도해보려 한다. 그 텍스트란 작가 최인훈의 소설 『광장』(1960)과 통일운동가 김낙중의 전기(傳記) 『탐루』(2005)다. 두 텍스트 모두 남북 분단과 전쟁, 그리고 냉전체제 – 분단체제의 가혹한 체험을 증언한다. 그 속에서 개인이 겪는 자유와 책임, 그에 수반하는 고뇌와 수난의 경험만이 아니라, 이를 강요했던 남북의 사회와 국가의 성격과 특징까지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 두 텍스트에 대한 분석 이후, 비로소 우리는 최근 새롭게 열리고 있는 평화와 공존의 시대의 자유와 책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장에서 고찰하려는 자유와 책임이란 일차적으로는 한국(ROK), 그리고 더 넓게는 북(DPRK)까지를 고찰 범위에 넣은 한반도(Korean peninsula)에서의 그것이고, 아울러 1945년 해방에서부터 최근까지의 시간대 안에서 한반도, 한반도의 두 국가, 두 사회, 두 체제 안에서의 자유와 책임이 되겠다. 자유와 책임의 문제를 구체적이고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고찰해보겠다는 뜻이다.

우선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두 텍스트의 큰 맥락과 함의를 개괄해본다.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과 전기 『탐루』의 주인공 김낙중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해방 이후 분단과 전쟁의 체험이 그들의 삶을 규정한다. 모두 남한 출신(이명준 – 서울, 김낙중 – 파주)이지만 고뇌 끝에 월북하여 북의 체제 역시 체험한다는 점, 그리고 분단과 전쟁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같다. 그들의 평화적 소망(所望)은 현실의 벽에 부딪쳐 고난과 좌절을 맛본다. 그들이 모두 20대 때 문리대 학생이었다는 점도 같다(이명준은 철학과, 김낙중은 사회학과). 물론 차이점도 있다. 전쟁 포로 신분이 된 이명준은 남과 북 모두의 현실에 절망하여 남과 북 모두를 버리고 중립국행을 선택하지만, 김낙중은 남과 북 모두를 끝까지 껴안고 ‘평화통일’을 위해 평생 이 땅에서 분투한다.

그러나 이 차이는 일견 커 보이지만 표면적일 수 있다. 이명준의 ‘중립국행’이 상징하는 것은 ‘통일된 나라의 중립국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명준과 김낙중의 캐릭터의 차이도 빼놓을 수 없다. 이명준이 불행한 현실 앞에 늘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반면, 김낙중은 고통 속에서도 시종 희망적이고 진지하다. 그러나 이 차이 역시 부차적이다. 이명준은 남북의 현실을 보며 점차 회의적이고 냉소적으로 변해갔던 것이지 애초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명준은 인도로 향하는 중립국행 선박에서 바다에 투신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꿈과 현실의 너무나도 큰 괴리를 상징한다고 하겠다. 김낙중은 이명준이 생을 마감할 즈음 자신만의 사명을 분명히 자각한 활동에 들어간다. 김낙중은 실재 인물, 이명준은 가공의 캐릭터지만, 묘하게도 두 인물은 하나의 인물인 것처럼 시간적으로 중첩되고, 릴레이처럼 이어진다.

물론 『광장』은 실화가 아닌 소설이고, 『탐루』는 실화인 전기다. 그러나 이 두 텍스트의 역사적 사실성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광장』은 소설이지만, 해방 이후 남북의 정국, 전쟁, 그리고 포로수용소에서 중립국을 택한 전쟁포로 등 모든 소재와 배경이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다. 이 소설이 4·19 혁명 발발 6개월 후에 첫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 역시 이 소설의 사실성을 또 다른 각도에서 입증해준다.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오랜 시간 ‘말할 수 없었던 사실’의 소설적 진술이었던 셈이다.

오직 4·19라는 혁명적 공간 안에서만 출현하고 발화(發話)될 수 있었던 사실이었고, 그리하였기에 출간 즉시 그토록 큰 호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명준은 최인훈이라는 작가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character)이고, 김낙중은 실존하였고 여전히 생존해 있는 현실의 인물(person)이라는 차이는 물론 분명한 것이다. 1936년 출생인 최인훈이 이명준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1960년은 그의 나이 불과 스물다섯 때다. 1960년의 자신(최인훈)을 해방 직후 전쟁까지의 시간대, 즉 10여 년 이전의 시간대에 투사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1950년의 이명준은 1960년 최인훈의 지식수준, 역사감각을 갖춘 캐릭터로 창조되었던 것이고, 따라서 이명준의 인식 세계에는 어느 정도 사후적인 것(즉 60년대의 인식)이 불가피하게 섞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소설적 사후성을 실시간적으로 완벽하게 보완하는 것이 김낙중의 『탐루』다. 김낙중은 1931년 생으로 1950년 20세의 나이로 전쟁을 맞는다. 소설 속 이명준의 1950년의 나이는 25~26세 정도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명준 – 김낙중의 순으로 이 장을 풀어가는 것은 여러모로 맞아 떨어진다. 나이순으로도 그러하고, 이명준이 생을 마치는 1953~1954년 즈음 김낙중은 색깔이 뚜렷한 자신만의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명준과 김낙중은 모두 ‘자유혼’의 보유자다. 억압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 현실의 벽에 몸을 내던진다. 이 부딪침이 이들 ‘자유혼’의 자유 행사 방식이다. 그러나 그 자유는 거듭 좌절한다. 진정한 자유를 꿈꾸었던 이명준에게 좌절을 넘어서는 궁극적 방식은 자살을 통한 현실 부정이다. 반면 김낙중은 좌절하고 또 좌절해도 또다시 일어나 부딪친다. 그에게 자유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는 이 자유의 주체를 개인만으로 국한하지 않았다. 남북의 민족 전체로 확장해서 생각했다. 김낙중의 처절한 고난사를 읽어갈 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상은 단순한 경이로움이 아니다. 공포와 두려움을 수반하는 경이로움이다. 칸트가 말했던 ‘숭고(sublime)’에서 그와 비슷한 느낌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무거울 뿐 아니라 두려운 그 사명을 스스로 짊어지는 모습, 이것이 자유인 김낙중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책임이었다. 자신과 남북의 동포 모두에게 향하는 책임.

그러나 그 책임의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김낙중은 북에서 한 번, 남에서 네 번 간첩으로 몰렸다. 그때마다 참혹한 고문을 당하고 도합 18년의 투옥을 대가로 치렀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결코 당사자의 그것보다는 덜한 것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가족들은 스스로 선택한 행동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감옥 안 당사자보다 감옥 밖 가족들의 시간이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특히 ‘간첩’으로 낙인찍힌 사람의 가족들, 즉 졸지에 ‘간첩의 가족’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자유와 책임이란 개인만의 문제일 수 없다. 따라서 『광장』과 『탐루』는 이명준과 김낙중 두 개인, 두 자유혼의 이야기에 그칠 수 없다. ‘광장’이 절망했던 ‘죽은 광장의 사회 – 국가 – 체제’, 그리고 ‘탐루’가 고발했던 ‘눈물 없는 사회 – 국가 – 체제’가 두 텍스트의 이면에 숨어 있는, 그러면서도 두 개인보다 주동적이며 절대적으로 강한 ‘자유와 책임’의 행위자(agent)요 주역(protagonist)일 수 있다. 과연 이들은 어떠한 사회, 국가, 체제였는가. 또한 이들 사회, 국가, 체제가 표방했던 자유와 책임은 어떠한 것이었는가. 이제 이러한 의문을 아울러 추적해보자.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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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2/19-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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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얼마전 미중간의 1단계 무역협상 결과가 발표되었다. 겉으로는 무승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국유기업에 대한 보조금 문제, ‘중국제조 2025’ 과 같이 사실상 근본 문제에서 양보 없이 원칙을 견지한 중국의 승리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미중 무역전이 수습 단계에 들어서던 2019년 7월 경 중국 인터넷 선상에서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전파되면서 화제가 되었던 글이다. 본문 내용 중 중국 특색의 핵심 요소는 다름 아닌 ‘거국체제’ 즉 사회주의라는 점, 그 요체는 ‘국유기업이 주도하는 시장경제’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 눈에 뜨인다.

공유자: 老白股金汇


출처: AP뉴시스

트럼프는 최근 중국의 경제무역 체제가 미중 무역이 불공정하고 미국에 손해를 끼친 근본 원인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는 또 미국이 당초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에 동의한 것을 마땅히 후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중 양자 간 경제무역에서 중국이 항상 이득을 보고 미국이 손해를 본다는 뜻이다. 근본 원인은 국가체제다. 좀 더 철저하게 말하자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미국과 서방이 중국과 게임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애초 중국을 세계무역의 대문 밖에 가둬놓아야 했다. 이것은 오바마와 같은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이런 입장은 미국 권력의 당파를 떠나서 일치된 의견인 것 같다.

WTO가입 전에 중국의 GDP는 미국의 단지 7분의 1에 불과했는데, 2017년에는 미국의 65% 수준이 되었다. 이것은 환율에 입각하여 계산한 것이다. 만약 구매력 평가로 하면 세계은행(미국인이 은행장이다)과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인이 총재이다)은 이미 일찍이 2014년 10월에 중국은 미국을 훌쩍 넘어 섰다고 여긴다.

중국의 현재 제조업 실력은 이미 미국, 유럽, 일본 제조업을 모두 합한 총합에 접근한다.

2017년 중국 국유기업(금융기업 제외)의 자산총액은 183조 5000억 위안(한국돈 약 3경 1195조 원-주)에 이르고 ,순자산은 70조 위안에 달해 세계 다른 나라의 국유자산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중국 국유 금융기업의 자산 총액은 241조 위안, 순자산은 20조 위안이 넘는다. 중국 행정과 사업단위 국유자산은 30조 위안, 순자산은 20조 위안을 넘는다.

중국 정부는 또한 전국의 토지 소유권과 광산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보유한 재산은 토지와 광산 소유권을 따지지 않아도 미국 정부의 10배 이상이다.

중국이라는 이렇듯 큰 나라에서 혁신은 최근에서야 시작되었을 뿐인데, 무엇에 의거해서 ‘커브길 추월'(弯道超车)을 실현하고 있는가? 사실, 중국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미 지도자, 그리고 서방은 모두 잘 알고 있다. 중국은 왜 대단한가? 그 대단함은 바로 중국에서의 사회주의 제도에 있으며, ‘거국체제’에 있다.

거국체제는 간단히 말해 큰 일이 있을 때 국가 전체의 자원과 역량을 동원해 처리하는 것이다. 중국은 대국이며 국유기업이 주도한다. 중국정부가 장악하고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은 서방 정부보다 훨씬 많다. 중국의 경쟁상대가 서방의 민간 기업이나 개인이라면, 이들 기업과 개인은 반드시 패할 수밖에 없다. 설령 서방정부가 중국과 무역과 경제에서 다툰다 해도, 그 승산의 기회는 대단히 적다. 왜냐하면 서방의 기업은 꼭 정부 말을 듣는 것이 아니며, 서방 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자원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올림픽 경기의 예로 이 문제를 설명해 보겠다.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지기 전까지 올림픽 금메달 1위는 언제나 소련이었고, 총점은 종종 미국보다 두 배나 높았다. 2위는 영원히 동독이었고, 미국은 3위로 처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무슨 이유때문인가? 서양의 올림픽 선수들이 당시 모두 아마추어였고, 스스로 돈을 주고 훈련하고 경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의 운동선수들은 모두 프로다. 국가와 개인을 비교하는데 공평할 수 있나? 그래서 과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데 있어 서구는 손해를 보았는데, 그것은 국가 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서양도 나중에 얌전하게 배워서 놀이 방식을 바꿨는데, 아마추어를 쓰지 않고 프로를 기용했다. 동시에 지금은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지고 단지 소수 국가만 ‘거국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올림픽 성적은 참가국의 진정한 스포츠 경기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최강의 미국이 다시 금메달 1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역자 주> 이는 원문 저자가 올림픽 경기에서 프로를 참가시키는 것을 찬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게임을 할 경우 국가가 거국적 체제로 지원하는 것과 개인적 역량에만 의존하는 것은 비교가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뜻인 것 같다. 결국 사회주의 국유기업의 시장경제 체제하에서의 강력함과 우수성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세계 경제무역 기구는 바로 다른 분야에서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이 안에서 ‘거국적 체제’를 갖고 국가 역량으로 서방의 기업이나 개인(자본가)을 상대하기 때문에 불공평하다고 느끼는데, 서방 정부는 그럴 능력이 없다.

올림픽과 다른 점은, 서방은 경제무역에서 중국을 당해낼 수가 없지만, 그러나 중국학(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주)을 따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자유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법 때문에 서방국가 정부는 사적자본의 경영활동에 간섭하지 않으며, 또 서방국가의 국영기업은 많지가 않다. 그래서 서방은 중국이 그들을 앞지르거나 압도하는 것을 멀뚱히 눈만 치켜뜬 채 지켜보아야만 한다. 이에 대해 몇 가지 전형적인 실례를 들어 설명 하겠다.

19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 때, 다수의 나라들이 이 위기에서 큰 손실을 보았다. 그러나 이런 틈을 타서 큰 이득을 보는 집단도 있다. 미국의 금융자본이 그 일원인데, 대표적인 것이 소로스의 양자(量子)헤지펀드이다.

소로스는 아시아에서 연전연승하며 상당한 이득을 보았다. 막대한 돈을 끌어 모았으며 한두 개 아시아 국가만을 망친 게 아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않게 결국 홍콩에서 패했다. 소로스펀드는 미국 유대계 금융 자본이었는데,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함정에 빠뜨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 왜냐하면 그가 상대했던 것은 홍콩정부만이 아니라, 그 배후의 막대한 재력을 가진 중국정부였기 때문이다.

외환시장에서 중국정부와 목숨을 건 소로스는 결국 실력이 안 되기 때문에 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미국인들을 화나게 했는데, 중국과 싸우는 것은 매우 불공평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소로스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손이 그를 무찔러 많은 손해를 봤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소로스가 여러 나라의 외환시장을 연속적으로 쓸어버리면서 벌어들인 돈은 주머니에 가득 찼다. 홍콩에서 꺾일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몰랐는데, 그때만 해도 그는 ‘중국적 특색’이 대단하다는 걸 몰랐다. 이제 서방은 중국 체제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자연히 이런 ‘중국적 특색’에 대해 한이 맺히게 되었다.

두 번째 사례는 중국의 민간 비행기 구매이다. 경제 발전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 중국은 얼마간 사이를 두고 비행기를 한 무더기씩 구매해야 한다. 매번 수백억 내지 심지어는 더 많은 달러를 써야만 한다. 그래서 항공기 제조사들에게는 초특급 매매에 해당된다. 비행기를 파는 나라로서는 커다란 선물이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미국의 보잉을 살 것인지, 유럽의 에어버스를 살 것인지에 대해 상황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서방국가의 관점에서는 어떤 비행기를 살 것인지는 항공사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정부가 결정한다. 중국의 큰 주문은 종종 국제 정치와 국제 경제무역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서방의 일부 국가들은 돈을 벌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중국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서양을 매우 불쾌하게 만드는데, 웬지 중국에 꼬가 꿰여 끌려가는 느낌이 들게 한다.

더구나 중국은 단순히 비행기를 사는 것만이 절대로 거국적 체제의 우세가 아니며, 대외 경제무역에 있어서도 비슷한 카드가 많다. 중국은 거인일 뿐 아니라 모든 대형 무역이 모두 국가의 통제 하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외무역의 전체 구조에서 중국은 항상 이익만 챙길 뿐 좀처럼 손해는 보지 않는다.

서방은 중국의 이런 강점이 대형 무역사업이 모두 국유기업에 의해 이뤄진다는 데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공기업은 당연히 정부의 말을 들어야만 한다. 공기업의 경우 구체적인 사업의 득실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필히 국가의 큰 이익에 따라야 한다. 서양에서는 그렇지 않으며, 기업의 절대 다수가 사적 자본이므로 의사결정은 자연히 정부가 아니라 이사회의 말을 듣는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중국 국유기업의 수가 너무 많고 실력이 너무 강하다고 비난하였다. 중국의 국유기업이 주도하는 경제도 서방이 중국을 ‘완전한 시장경제지위’ 국가로 인정하기를 거부한 주요 이유이다.

중국 국영기업들이 많아서 중국과는 함께 놀 수 없다는 이유로는, 서양 자신도 약점을 잡지 못하고 말솜씨가 약하고 이치도 서지 않는다. 까놓고 얘기하자면 마음 속 고충은 있으나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중국 욕을 해도 톤을 높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서방은 무역의 자유를 고취하는데, 기왕 자유라고 한다면 국유기업, 사기업 나눌게 뭐 있나? 중국정부가 조종했다고 하는데 증거를 보여줄 수 있나? 증거도 없는데 중국을 제재할 수 있나? 이 때문에 서방은 답답하지만 입으로는 말할 수 없기에 ‘중국 특색 사회주의’에 대한 원한이 극에 달하였다.

최근 한 가지 일은 마침내 서방이 욕을 할 수 있게 만든 셈이다. 트럼프가 중국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내가 보기엔 80% 이상이 이 일로 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왕젠린(王建林)의 해외 투자 프로젝트 6건이 은행감독원의 ‘금융통제’에 걸렸다고 최근 인터넷 선상에 폭로되었다. 왕젠린은 중국의 부동산 재벌로, 일찍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 최고의 부자이었다. 이번에 그는 중앙 국무원소속 국유기업인 중국고속철도(中国中铁)와 해외에서 경쟁하였는데, 본래 중국고속철도가 말레이시아와 철도사업 협상을 하고 계약체결을 준비하는 중에 왕젠린에 의해 두 배의 가격으로 빼앗겼다. 이번에 왕젠린은 국가와 이익을 다투며 큰 금기를 범하였으므로, 국가는 그를 손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원래 왕씨는 기업가이고 어떤 산업에 진출하느냐는 그 자신의 몫이지만, 중국에서는 국익을 해치는 장사에 대해선 국가가 관여해야 하는 것이 ‘중국적 특색’이다.

이번에 국가가 간섭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왕젠린의 해외 프로젝트는 자기 돈이 아니라 전부 국내 은행 돈을 빌린 것이다. 거래가 잘 되면 개인이 벌고, 장사가 손해를 보면 중국 은행이 뒤집어쓰게 된다. 그래서 국가는 “대출 위험을 조사 한다”며 왕에게 은행 대출을 상환토록 압박했다. 왕은 손에 쥔 유동자금이 부족해서 할 수 없이 완다광장(万达广场, 중국 각지 대도시에 있는 대표적인 쇼핑몰-주)과 부동산을 여러 군데 팔았으니, 빚을 갚은 셈이지만 아마 손해를 많이 본 것 같다. 요즘 왕젠린은 많이 얌전해져서 소리를 죽이고 (공식석상에선)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비즈니스계에서 예전처럼 순조로울 수 있을지는 말하기는 어려운데, 필경 그는 국가로부터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역자 주> 우리는 여기서 등소평이 말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 자본가계급이 도전하면 손보면 된다”고 한 말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왕젠린에게 조치를 취해 미국에게 상처를 입혔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트럼프는 다급해 하면서 불을 뿜듯 무례한 말을 했다. 왕젠린이 사고가 나자 트럼프가 상례에서 어긋난 언행을 한 것은 양자가 연결돼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화를 내는 것은, 국유기업은 너희 중국정부가 통제하지만 이런 사기업도 네가 상관하느냐는 것이다.

중국은 현재 모든 국무원 산하 중앙 국유기업을 혼합소유제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에 순수 공기업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그럴 경우 서방이 중국의 ‘완전한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진다. 중국에 대한 반덤핑 제재도 쉽지가 않다.

미국과 서방은 이날을 고대하고 있다. 국유기업이 없어지면 중국의 대외무역에서의 거국체제의 우위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서방이 예상치 못한 것은, 사기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통제한다는 것은 중국이 어떻게 변하든지 간에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고 하는 이 점은 언제든 변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낸 점이다. 거국체제는 언제라도 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엔 트럼프가 정말 다급해졌다, 왜냐하면 희망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 중미 간 두 개의 협력 합의를 중단하고 보복코자 하는 마음이 뚜렷해졌다.

공개된 정보로는 왕젠린이 대외무역에서 국유기업과 이익을 다투었기에 조사를 받았다는 것이지만, 내가 보기엔 좀 더 깊은 요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지난 몇 년 동안 중국은 외환 보유고가 많아졌고 증가 추세를 보였다. 그래서 해외투자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허술해 졌다. 최근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돈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많다는 뜻이어서 국가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외환보유고는 국가의 대외 경제무역의 밑천이다. 이 돈을 어떻게 쓰는지, 무슨 일에 쓰는지를 자본가가 말하면 그만이 아니라 역시 국가가 간여해야 한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국익이 걸려 있고, 여기에는 큰돈이 든다. 때문에 외화를 아껴 쓰고 좋은 철은 칼날에 사용해야 한다(好钢要用在刀刃上).

중국정부는 해외투자에 있어서 광산, 유전 같은 자원을 사고 싶어 하고, 선진 기술을 대표하는 기업도 사고 싶어 한다. 부동산과 서비스, 유흥업에 대해선 관심이 크지 않다.

중국 투자에 대한 서구 국가의 바람은 중국과는 정반대다. 그들은 중국이 서방의 우량자산을 구매하는 것을 막으려고 애를 썼다. 특히 미국은 중국의 다른 서방국가의 기업 인수합병까지 막고 나섰다. 신기술이 높은 기업일수록 중국 투자가 어렵다. 여기에는 서방의 경제적 고려도 있고, 중국을 잠재적인 패권경쟁 상대로 경계하는 것도 있다.

서방은 중국이 돈을 서방의 부동산업, 서비스업, 유흥업, 상업 체육(예컨대 외국 구단을 사는 것)에 쏟아 붓기를 바라고 있다. 이렇게 되면 현지 경제를 진작시킬 수도 있고, 중국에게 큰 이득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면, 예를 들어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손실은 중국이 입지만 자산은 그대로 남을 수가 있다.

일본은 1980년대에 해외 부동산투자 과열로 손해를 본적이 있다. 일본인은 할리웃과 록펠러 빌딩을 샀는데, 만약 마음만 먹으면 일본은 미국 전체를 살 돈이 있다는 말도 당시엔 떠돌았다. 그 결과는, 거품이 한번 터지자 일본은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별은 여전히 그 별이고, 달도 여전히 그 달이며, 할리웃도 미국인들의 할리웃이었지만, 그러나 일본인 호주머니의 돈은 없어졌다. 이 타격으로 인한 피해로부터 일본은 지금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교훈을 중국이 모를 수 있을까? 그래서 중국은 줄곧 이에 대비해왔다.

왕젠린이 돈을 번 것은 남의 돈으로 한 것이나 다름없다. 중국은 이제 세계의 제조 대국으로 발전했지만, 왕은 중국 최고의 부자로서 제조업에 관한 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투자한 것은 모두 부동산, 서비스, 오락업이다. 국내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다. 왕젠린이 돈을 벌든 손해를 보든 어차피 마치 고기가 솥 안에 있듯 재산이 중국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에 투자하는 것은 다르다. 만약 변칙으로 돈을 벌려다 망친다면, 손실을 보는 것은 중국의 은행 자산과 중국인의 예금이다. 이 때문에 왕젠린의 해외투자는 첫째 리스크가 있고, 둘째 중국 국가나 대중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으며, 셋째는 국가의 돈을 낭비하는 것이다. 국가가 이것을 그냥 둘 수는 없다. 왕이 국유기업과 이익을 다툰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그의 해외투자 프로젝트는 중지시켜야 한다.

왕젠린을 조사하여 처리하는 것은 결코 그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현상에 대해서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 중국의 해외투자는 국유기업이든 사기업을 막론하고 국가의 총체적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역시 ‘거국체제’이고, 역시 ‘중국적 특색’이다. 그것이야 말로 아마도 트럼프를 노발대발하게 만든 진짜 원인일 것이다. 트럼프가 중미 두 기업 간의 협력 중단을 지시한 것은, 중국정부가 희망하는 합작 사업을 미국도 중국이 왕젠린 프로젝트를 중단한 것처럼 총살했다는 점을 중국에 보여주려는 것이다. 중국은 해외 투자에서 고기만 먹고 뼈는 갉아먹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림도 없다는 것이다!

또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2017년 2000여억 달러(미국은 3000여억 달러라고 말하지만)에 달해 기록적이다. 이 또한 트럼프를 매우 불쾌하게 만드는데, 치적으로 말하면 그는 불명예스럽다고 여긴다.

사실, 이 안의 원인은 매우 복잡하며 양쪽 모두 책임이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제국주의적 사고는 고려하는 문제마다 일방적이다. 미국이 중국에 물건을 많이 사는 이유는 중국산 상품이 싸고 품질도 좋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에 물건을 많이 팔지 못하는 이유는, 좀 괜찮은 상품은 중국에 팔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이테크 제품의 경우, 미국은 중국이 기술을 몰래 배울까봐 중국을 봉쇄한다. 미국은 그 외에 중국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물론 곡물작물은 예외로, 중국은 줄곧 미국 농작물의 최대 수입국이었다.

미중은 이 외에도 지적재산권 보호, 중국의 수출상품 관세 환급, 일부 품목의 수입관세가 높은 점, 중국 금융시장의 개방, 관세를 제외한 수출입 통제 조치 등 여러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실 이런 분야는 중국이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일 뿐이며, 서방에 불리한 새로운 조치를 내놓치는 않고 있다. 이런 오랜 방법들은 모두 당시 서양에서 허용한 것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들은 중국의 발전이 너무 빠르며 심지어는 서방의 발전 내지는 생존조차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이 두 발을 내딛고 걸으면, 다른 사람들은 압박을 받아 걸어 갈 길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물건이든 중국이 생산만 하면 배추 값이 되어 서방 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만다.

서방은 중국의 발전이 이처럼 빠른 것은 ‘중국특색 사회주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이런 거국체제에 직면하면 서방체제는 게임에서 손해를 보기 쉽다. 비유하면 대포알을 미는 것과 같은데, 서양은 팔에만 힘을 준다. 하지만 중국은 팔에 힘을 줄뿐만 아니라 허리를 꼬고 발을 뻗는다. 권투경기에 비유하면, 중국은 비록 규칙을 지키면서도 주먹을 불끈 쥐고 치는데, 서방은 주먹을 펴고 불끈 쥐지 못해서 번번이 손해를 보는 것과 같다. 결국 남들은 모두 지고 중국만 이기게 되는 것이다.

오바마는 “중국은 공짜로 차를 탔다(搭了便车)”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중국을 경기장에서 쫓아내려고 TPP를 추진하였다. 트럼프는 방법을 바꿨지만 오바마와 마찬가지로 중국을 응징하겠다는 생각이다.

중국의 현재 GDP는 세계 2위지만,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실제로는 이미 몇 년 전에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경제 총량은 겉으로 보기에는 적지 않지만, 사실 허황된 것이 많아 공동화가 심하다. 중국의 경제와 공업 실력은 이미 미국을 넘어서고 있으며, 중국의 1차 산업 생산액은 미국의 두 배, 2차 산업 능력은 미일독을 합친 것보다 많다. 다만 3차 산업만이 미국이 생산액에서 중국을 훨씬 초월한다. 그런데 제3차 산업은 서비스업으로 매우 공허한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같은 거리의 지하철을 탈 경우 그쪽은 2달러(약 14위안)를 요구하는데, 이쪽은 단지 3위안만 받는다고 하자. 그러면 생산액은 4배 차이가 나지만, 서비스는 똑 같다. 다른 예로, 당신이 변호사를 찾아가서 자문을 받는데 그쪽은 한 시간에 100달러(약 700위안)를 줘야 하고, 나는 한 시간에 50위안만 받는다고 하면, 당신의 서비스 생산액이 나의 14배가 되는데 이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중국은 이미 세계 100여 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다. 세계 경제는 중국을 떠날 수 없으며, 결코 미국과 서방이 중국을 데리고 놀지 않으려고 한다고 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마치 마작을 할 때 세 명 중 한 명이 부족한 것과 같이, 중국을 떠나서는 모두들 놀 생각을 말아야 한다(마작 게임은 최소 3인 이상이 필요하다-주). 이 이치는 미국과 서양이 모르는 것이 아니며, 만약 손을 쓸 수 있었다면 이미 진작 손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 한이 서렸지만 또한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리하여 중국도 주먹을 불끈 쥘 수 없도록 압력을 가함으로써 최종적으로 판도를 바꾸길 시도할 수밖에 없다.

기왕에 중국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로 입국(立国)하였으며 그에 힘입어 급성장을 했다. 그렇기에 미국과 서방은 이 부분에서 중국을 압박해 제도 개편을 강요하려 한다. 중국 국유기업의 개조를 압박하는 것은 이 같은 목적을 달성코자 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중국의 ‘완전한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반덤핑 조항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 서양이 억지를 부리는 것이지만, 중국도 이를 수락해 중앙 국유기업에 대해 ‘혼합소유제 개혁’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태극권 방식으로 서양 권투에 대응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무서울 게 없으며,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설령 장차 순수 공기업이 없어도 마찬가지로 ‘거국체제’일 것이며, 국유경제는 마찬가지로 국민경제의 주도적 역량이다. 또 사기업들도 마찬가지로 국익 앞에서 ‘자유주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너를 손볼테니, 왕젠린이 바로 그런 예이다. 중국 제일의 부자면 어떻단 말인가, 손봐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손볼 것이다. 따라서 중국이 아무리 제도를 바꿔도 거국체제가 바뀌지만 않는 한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 더구나 국유기업 개혁은 원래 계획에 있던 것이다. 사적 지분을 좀 섞는 것은 효율성을 높이는 데 유리할 뿐만 아니라, 표면상으로도 서방의 요구에 부응하니 어찌 즐겁게 실행하지 않겠는가?

트럼프가 화를 내든 않든 간에, 그는 중국이 어떻게 고치든 중국적 특색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진핑이 일찍이 ‘4개의 자신감’으로 서방에 알려왔기 때문이다. 중화 진흥의 길을 이미 찾았는데, 무슨 근거로 궤도를 바꾸려는가? “100년 견지하며 동요하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뒤로 갈수록 더욱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지금의 형세는 매우 엄중한 것처럼 보인다. 아편전쟁 직전과 같이 은이 중국으로 흐를지, 서방으로 흐를지가 결정되는 상황이다 (역자 주–당시 차 무역으로 처음 은이 서양에서 중국으로 흘러들어 왔지만, 이후 아편무역으로 이 흐름이 뒤바뀌었다). 물론 지금의 중국에 대처하는데 있어 군함정책으로는 잘 안되며 오직 경제무역전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은 너무 덩치가 커서, 무역 전쟁이 일단 시작되면 미국 스스로도 잘 버티기가 어렵다.

종합하면, 국가의 근본 이익이 연루되기 때문에 쌍방은 서로 크게 양보할 길이 없다. 그러면서도 쌍방은 누구도 상대를 떠날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필경 한 테이블에서 마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협력과 공영’을 거론한 것도 카드 친구들을 위로하여 그들이 책상을 엎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물론 중국도 상대가 돌아오지 않아 모두가 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작은 양보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공영(共赢)’을 실현할 수 있겠나.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 가장 근본적인 것은 결코 양보하거나 고치지는 않을 것이다. 까놓고 말하면,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고치지 않을 것이며, 고칠 수도 없다. 결국 그것은 중국 발전의 예리한 보배이기 때문이다.

중미는 모두 세계의 거인이기 때문에 서로 치고받고 하더라도 상대를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못한다. 따라서 이번 경제전은 우여곡절과 복잡함을 지닌 지구전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중국이 최종적으로 승리할 것인데, 왜냐하면 중국의 실물경제의 실력과 재정적 실력이 미국보다 크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거국체제’는 최대한의 재원을 집중해 효과적으로 공격하고 방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이길 수 없다. 전쟁도 그렇고 경제 역시도 그러하다.

한 미국 교수가 나에게 “미국이 위대해진 것은 위대한 적수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미국이 건국 이래 만난 가장 위대한 상대일 것이다. 이번에는 아마도 트럼프의 숭고한 이상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진짜 실현될 수 없도록 만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여야겠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와 거국체제는 반드시 중국 공산당의 영도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중국 특색, 중국식 경험과 중국 모델은 전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복제하기가 어려운데, 아마도 베트남만 제대로 배우고 있는 것 같다.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이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면 몇 십 년에 걸쳐서라도 배울 수 있겠지만, 이 두 나라의 종합 국력은 중국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들에 대해 미국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중국이라는 거인만이 미국을 진정으로 두려워하게 만든다.

목, 2020/01/3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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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의 주택 중간가격은 1백만 달러(약 11억 6천만 원)를 훌쩍 넘었다(“Life on the Dirtiest Block in San Francisco,” New York Times, October 8, 2018). 트위터와 우버 같은 세계적인 기업의 유치를 집값 폭등의 탓으로 흔히 돌리곤 한다. 그곳엔 일자리가 있고 일자리를 얻는 이들이라면 거주할 곳이 필요하니까. 그러나 지금의 터무니없이 오른 가격은 그것로만으로는 충분히 설명이 안 된다. 그렇다면 그 가격을 누가 왜 어떻게 올렸을까? 거기에 누가 일조하고 그 큰 그림을 누가 그렸는가? 그 큰 그림의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가? 그것을 따져 보는 것이 이번 편의 목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적용된 ‘자유주의 정책’과 직결되어 있다.

이를 위해 힌트를 주는 장면 하나를 먼저 보자.

 

임차인과 사모펀드

#장면 1.

2018년 11월 어느 날 일군의 시위대들이 캘리포니아의 산타모니카(Santa Monica)의 한 회사 사무실 앞으로 몰려가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그 회사는 뉴욕에 본사를 둔 사모펀드 블랙스톤(Black Stone)의 지부이다. 이들은 ‘법률개정안 10(proposition 10)’―일종의 임대차 보호법안 통과―이 좌절되자 이에 항의하기 위해 여기로 모여든 것이다.(“Protesters arrested during Santa Monica rally over rejection of Prop 10,” ABCNews7, November 8, 2019). 도대체 사모펀드와 임대법이 무슨 관련이 있기에 그럴까?

“집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구호를 들고 임대차보호법지지 시위를 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민들 <출처: AP>

그 답은 간단하다.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바로 주택임대사업을 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런데 보통의 임대업이 아니니까 문제다. 영국의 매체 가디언은 캘리포니아 주에서의 주택 가격과 임대료가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매체는 이것을 ‘성층권 가격’stratospheric price이라고 묘사했다. 얼마나 높이 치솟았으면 성층권이라는 것일까?) 서민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는데 그 원흉이 바로 블랙스톤을 위시한 사모펀드라고 콕 짚어 지적하고 있다.(“How California public employees fund anti-rent control fight unwittingly,” The Guardian, October 23, 2018). 도대체 미국의 임대주택 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것은 블랙스톤을 위시한 사모펀드가 어떻게 서민들의 삶을 작살냈는지를 살펴보는 것을 의미한다.

 

부동산 업계의 최강 제국, 사모펀드 블랙스톤

스티브 슈워츠만(Steve Schwarzman) 블랙스톤 회장은 2015년 가을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에 “블랙스톤이 현재 세계 제일의 부동산 소유주다”라고 선언했다.(“Blackstone is now ‘the largest owner of real estate in the world’,” Business Insider, November 16, 2015). 그의 말은 허튼 소리가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제시한 다음의 도표를 보라. 그야말로 부동산업계의 제국 중 제국이 바로 블랙스톤이다. 도표는 2010년에서 2015년 사이에 부동산 업계에서 선두를 달리는 10개의 사모펀드를 보여준다. 블랙스톤은 그 중 최강으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도표: 부동산시장의 선두 그룹 사모펀드 현황>

설명: 2010년~2015년 동안 부동산 투자 총액으로 본 사모펀드 선두 그룹의 순위. 블랙스톤이 약 470억 달러(약 55조 원)로 단연 업계 1위이고 그 다음이 스타우드, 론스타가 있다. <출처: 파이낸셜타임스>

어느 정도라 회장이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일까? 블랙스톤은 2012년 7월 기준 미국 14개 지역에 86억 달러 들여 44,000채의 주택을 구입했고, 2019년 6월 현재 17개 지역에서 80,000채를 보유한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부동산업체다. 그런데 부동산은 원래 블랙스톤(Black Stone)의 주력 사업이 아니었다. 했다 해도 상업용만 조금 손댔을 뿐이다. 그러나 2012년부터 전략을 확 바꿨다. 부동산에 주력했고 그것도 상업용 보다는 일반 주택에 꽂혔다. 그런데 그것도 주택을 사고 파는 것이 아닌 임대사업으로.

블랙스톤은 가격이 대폭락한 지역의 은행에 압류된 집들을 대거 매입해서 되팔기보다는 임대사업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채택했다. 알다시피 사모펀드는 현금총알(loads of cash)이 두둑한 재력가들(deep-pocketed investors)로 이루어진 자본 제국이다. 게다가 이 제국은 ‘임대주택증권’(rental-home-backed security)을 발행해 더 많은 자금을 끌어 들여 헐값에 내 놓은 주택들을 아귀처럼 쓸어 담았다.

 

그라운드 제로는 애리조나 주, 피닉스

그런데 블랙스톤이 맨 처음 임대사업 시작한 것은 캘리포니아가 아닌 애리조나 주의 피닉스(Phoenix, Arizona)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피닉스가 2008년 이후 주택가격이 정점에서 2011년 무려 60%나 떨어진 대폭락 지역이기에 그렇다.(“The Future of Housing Rises in Phoenix: High-tech flippers such as Zillow are using algorithms to reshape the housing market,” Wall Street Journal, June 19, 2019). 둘째, 막대한 이익을 노리는 사모펀드에겐 그저 수십 채의 주택 매집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대량매집이 훨씬 남는 장사이니까. 대량매집의 최적지가 바로 피닉스였다. 왜냐하면 피닉스는 뉴욕과 보스턴 같은 대도시가 아니니 원래부터 주택가격이 높았던 지역이 아니다. 대도시는 아무리 거품 붕괴로 주택 가격이 떨어졌다고 해도 피닉스처럼 대량매집이 불가능하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지 반대로 되기는 어렵다. 그처럼 부동산 초짜들이 사업에 손을 대기에는 원래 가격이 낮았던 데다가 거품까지 꺼져 대폭락까지 한 피닉스만한 데가 없었다.

블랙스톤을 위시한 대형 임대주택투자자(큰손)들은 피닉스를 발판(그라운드 제로)으로 하여 조지아 주 아틀란타(Atlanta, Georgia)와 텍사스 주 달라스(Dallas, Texas)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이제는 미국 전역에서 30만 채 이상을 싹쓸이 하고 있다. 물론 캘리포니아도 포함된다. 몸집을 불렸으니 총알은 탄창에 두둑한터. 그 때문에 로스엔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압류된 주택들의 대량매집도 가능하게 됐다. 게다가 이들은 주택공급이 부족한 시장을 선택해서 지역 건축업자들과 결탁해 자신들만을 위한 주택을 짓는 이른바 ‘핀셋 건축’ 꼼수 부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The Future of Housing Rises in Phoenix: High-tech flippers such as Zillow are using algorithms to reshape the housing market,” Wall Street Journal, June 19, 2019).

 

2008년 이후는 사모펀드 세상

2008년 이후는 그야말로 사모펀드의 세상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월가의 대형투자은행은 어느 정도는 감시의 대상이 된 듯 보였다. 적어도 그런 것처럼 시늉을 냈다. 그러나 월가에 기반 한 사모펀드는 거기서조차도 완전히 빗겨 나있다. 그래서 설사 밑천이 별로 없어도 초저금리 거래가 가능해 얼토당토않은 사업 구상도 현실화 할 수 있었다. 수익률에 걸신들린 투자자들이 냄새를 맡고 사모펀드로 마구 유입되었다. 감시와 규제가 없는 곳, 그것은 투기꾼들의 천국이다. 그것은 새로운 월가의 블랙홀이다.

사모펀드의 경영 전략은 매우 단순하다. 사모펀드가 부채를 안고 기업을 인수 한 후 값을 최대한 올려 매각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것을 투자자에게 배분한다. 수익이 난다는 소문이 나면 날수록 돈은 몰려들게 되어 있다. 이른바 차입매수(Leveraged Buyout). 사모펀드가 매수 대상의 자산과 수익을 담보로 은행에서 자금을 차입하여 매수합병을 하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현재 가진 돈 없어도 인수할 기업을 위해 빚을 지고 기업을 인수한다. 그러나 그 빚은 인수 대상에게 떠넘기고 바이, 바이! 망해가거나 저렴한 기업 인수한 뒤 분칠 살짝 해서 또 다른 구매자에게 팔아치운다. 거기에 비상장회사가 상장회사를 사서 합병하는 우회상장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러면 이를 주도한 사모펀드는 엄청난 수익을 창출한다. 때로 이것을 넘어 사모펀드는 매수한 회사의 직접 경영에 손을 대서 인수 기업에 “감 놔라 배 놔라”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수기업에 대한 애정을 갖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오직 목적은 수익창출. 그것도 막대한 수익창출. 수익이 나면 곧 바로 미련 없이 떠난다. 다른 먹잇감을 찾아서.

 

블랙스톤의 2인자 존 그레이 좌우명

블랙스톤은 임대주택 사업을 자회사 인비테이션 홈즈(Invitation Homes)를 통해 시행해 천문학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그 책임자는 현재 블랙스톤의 2인자, 존 그레이(Jon Gray). “절대로 적게는 먹지 않는다. 크게 먹는다. 그것도 상상이상으로 왕창!”이라는 좌우명을 갖고 사는 월가 사람이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신부동산부호(the new property barons)’라고 칭한 그는 다음과 같이 인터뷰 한 바 있다.

“나는 성공의 취약성을 안다, 그것은 [아버지 다이달로스(Daedalus)의 경고를 무시하고 밀랍의 날개로 날다 태양에 너무 접근해 밀랍이 녹아 바다에 떨어졌다는 인물] 이카루스(Icarus)와 같다. 나는 내 무덤에 ‘그저 상당한 내부수익율(internal rates)을 올렸을 뿐’ 이라는 묘비가 적히길 원치 않는다.”(“Investment strategy: The new property barons,” Financial Times, April 4, 2016).

임대주택 사업에 뛰어들어 사모펀드 블랙스톤을 세계 부동산업계 1위에 올린 존 그레이. 그는 웬만한 수익은 성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상상이상의 수익만을 추구한다고 공공연히 천명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가 블랙스톤의 자회사 인비테이션 홈즈를 통해 손댄 임대주택사업이다. <출처: 파이낸셜타임스>

가히 그저 고만고만한 성공은 성에 안 찬다는, 즉 확실한 대박만을 노린다는 거대 탐욕의 노출 선언이다. 그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존 그레이의 투자 철칙: 바이(Buy), 픽스(Fix), 앤드 셀(Sell).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미국의 단독 주택 가격은 절반 이하로(40~70%) 수직 하강했다. 특히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가 심했다.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던 대표적인 곳이기에 그렇다(왜 그곳이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는지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거품이 갑자기 꺼지고 모든 이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손을 털 때, 존 그레이는 역발상으로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즉 매매가 아닌 임대사업으로. 돈 버는 데는 가히 천재적이다. 왜냐하면 당시엔 아무리 집이 헐값에 나와도 구매할 사람들이 없었으니까. 투자처로서의 매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진짜로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대출 자격 요건이 안 돼서 못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으니까 그렇다.

이것을 간파한 자가 블랙스톤의 존 그레이다. 그는 이런 이들이 발걸음을 옮길 곳이 임대주택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자가가 아니면 월세를 살아야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니까(미국엔 전세가 없다). 그래서 그간 등한히 해 온 부동산 사업에, 그것도 전혀 해 본 적 없는 임대주택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뛰어들자마자 바로 압류된 주택 시장의 최강자로 등극했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그것을 파이낸셜타임스가 제공한 도표에 잘 보여준다. 임대주택 비율이 금융위기 이후 대폭 상승했기 때문이다. 2005년 33%에서 2014년엔 37%로 증가했다. 2014년 현재 1천 5백만 가구가 임대하고 있다. 그러면 그 이전에는 왜 임대사업이 월가의 큰손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했을까? 그것은 시장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2005년 당시에는 1천 2백만~3백만 가구만 임대해 거주했기 때문에 큰손 투자자들의 눈에 들어오지 못했다. 월가의 제국들은 적당히 먹는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탐욕에 찌든 야수들에겐 먹잇감도 덩치가 커야 덤벼들 가치가 있으니까.

<도표: 미국 자가주택 대 임대(월세)가구 구성 비율 현황>

설명: 2005년에 임대가구는 33%인데 비해 2014년에는 37%로 4%p 더 증가했다. <출처: 파이낸셜타임스/미 인구조사국>

그레이의 임대주택 투자 전략도 사모펀드의 기본 경영 방침과 그대로 일치한다. 매수대상을 헐값에 차입매수 해서, 약간 분칠해 매각하듯, 임대주택도 개당 헐값에 대량매집해서(buy), 25,000 달러(약 3천만 원) 정도 들여 간단히 손 보고(fix), 임대(sell)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부동산업계의 절대 강자가 되었다(“Investment strategy: The new property barons,” Financial Times, April 4, 2016; “Jonathan Gray: The Man Who Revolutionized Real Estate Investing On Entrepreneurship In A Big Company,” Forbes, October 18, 2016).

 

규제 없는 곳에 우뚝 선 망나니 제국, 블랙스톤

그런데 임대가구가 늘어난 것은 이들 사모펀드 제국들이 그린 큰 그림 때문이기도 하다. 일종의 피드백효과라 할까? 이제 막 붙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니까. 이들이 주택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았기 때문에 그렇다. 대량매집 자체가 주택 가격 올려놓은 일차적 효과 가져온다. 그리고 대량매집으로 공급도 줄어든다. 그러면 실수효자들의 ‘내 집 마련’ 꿈은 요원해 진다. 천정부지로 오른 집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러니 임대가구가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미국만이 전 세계에서 ‘나 홀로’ 경기가 좋다고 말들 하는 데 앞의 사실의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일반 서민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것은 왜일까? 규제 없는 곳에 어김없이 제국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즉 자유주의 정책은 망나니를 양산할 뿐이다. 이것의 한 가지 예를 지금 캘리포니아를 위시한 미국의 전 지역에서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모펀드의 난동으로 미국의 집값이 하늘로 치솟는 폭등을.

 

내부의 적에게 강탈당한 영토

모든 전쟁은 궁극적으로 영토를 차지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미국의 사모펀드는 이 전쟁에서 백전백승의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자. 사모펀드는 미국의 외부의 적인가? 내부의 적인가? 내부의 적이 승승장구하는 곳엔 자멸이 다음 수순이다. 하긴 서민들의 주거안정성이 파괴되는 마당에 그런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그러니 미국은 더 이상 외부의 적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호들갑은 떨지 말기를….

그렇다면 사모펀드가 집값만을 올려 서민들을 괴롭히고 있을까? 결코 아니다. 모든 제국은 하나를 주면 열을 달라하는 법. 하나에 만족하는 신사 제국은 없다. 다음은 임대업에 뛰어든 사모펀드에 의해 피를 보고 있는 임차인들의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미리 살짝 결론만 말해주고 이 글을 마치고 싶다. 사모펀드가 대량매집 하는 데 아무런 규제가 없듯이, 임대업을 하는 데도 아무런 규제가 없다. 오직 그들이 맘대로 활개를 칠 수 있게 만든 자유주의 정책들만 있을 뿐이다.

 

<참고자료>

“Blackstone is now ‘the largest owner of real estate in the world’,” Business Insider, November 16, 2015.

“Life on the Dirtiest Block in San Francisco,” New York Times, October 8, 2018.

“How California public employees fund anti-rent control fight unwittingly,” The Guardian, October 23, 2018.

“Protesters arrested during Santa Monica rally over rejection of Prop 10,” ABCNews7, November 8, 2019.

“Jonathan Gray: The Man Who Revolutionized Real Estate Investing On Entrepreneurship In A Big Company,” Forbes, October 18, 2016.

“Investment strategy: The new property barons,” Financial Times, April 4, 2016.

“The Future of Housing Rises in Phoenix: High-tech flippers such as Zillow are using algorithms to reshape the housing market,” Wall Street Journal, June 19, 2019.

수, 2020/01/0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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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세계에서 공공 부채율이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이렇게 부채로 치닫는 현상은 정당에 신임을 주어 선출하는 시민들의 암묵적인 동의로 인한 것이다. 더욱이 시민들은 경제 분야의 정치나 특히 공공 재정public finance 관련 모든 직접 참여에서 배제되어, 헌법에서조차 세금 관련 레퍼렌덤의 시행을 허용하지 않는다. 최근의 발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조처는 정당한가?

 

공공 재정문제에서 목소리를 빼앗긴 시민들

공공 부채는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고 납세자들의 지갑에 영향을 준다.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마지막으로 청구 금액을 지불하는 것은 납세자들이지만 그들에게는 공공 재정의 결정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더욱이 시민들의 레퍼렌덤 권리 강화에 대해 토론할 때, 공공 재정의 문제는 가장 민감한 문제중의 하나다. 곧 시민들이 재정 및 세금 관련 결정에 연루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개 민주주의를 강화하면 정부의 역할은 축소되고, 시민들은 공익을 책임져야 하는 정치인들과 달리 늘 세출은 늘이고 각자에게 돌아가는 세금은 줄이려 들 것이라는 우려에 겁을 먹는다. 실제 상황은 그 반대이다. 이탈리아에서 국가 세입 및 세금 관련 문제는 레퍼렌덤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고, 시민들은 그 어떤 정부 차원의 공공 예산문제에서도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현재 이탈리아는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다. 지배 정당들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는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에서도 공공 지출과 세금 관련 문제들은 레퍼렌덤 권리에서 배제되어 있다. 재정에 관한 정치적 선택에 있어서 시민들을 모든 형태의 참여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무분별한 지출과 부채 의존을 부채질할 듯하다. 실제로 헌법(제75조 2항)은 예산과 세금 관련 법률에 대한 레퍼렌덤 투표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금지는 헌법 제정자들 사이에서 존재했고, 지금까지 기존 정당들에 널리 퍼져있는, 시민들은 국가 재정에 그 어떤 책임도 없다는 가정 때문이다.

시민들의 특성상 늘 더 낮은 세금에 더 큰 사회복지를 요청하는 경향이 있다고 가정하곤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현실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을 보면 전반적으로 비교적 높은 세금을 지불하는 반면 공공 서비스의 질은 매우 낮은 상태이다. 불필요한 프로젝트에 공공 자금 낭비, 공공 사업 경영의 불찰, 횡행하는 파벌주의는 공공 재정의 불안에 기여했다. 시민들이 세금 관련 사항에 개입할 기회가 없는 곳에서는 정치인들이 부채를 엄청나게 조장해 심각한 공공 적자를 가져온다. 많은 유럽 국가들에서 축적된 공공 부채는 예를 들자면, 국민 레퍼렌덤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균형을 잃은 국가 재정 정책의 영향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가 아무런 대책 없이 높은 세금을 감당할 수 밖에 없게 되며, 결국 지역사회에서 다수결로 요청된 바가 없는 공공 사업이나 프로젝트에 대한 지출이나 부채 이자로 인한 지출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지금이건 앞으로건 늘 납세자들이다. 정치 대의원들은 임기가 끝나면 임무가 바뀌고 종종 “연금 수당”의 부당이득을 누리고, 공공 예산의 균형을 바로잡을 책임은 그들의 후임자들에게 전가된다. 결국 공공 지출에 대한 책임의 논리는 뒤집혀야 한다. 지출과 수입 결정의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늘 시민들이니, 그와 관련한 최종 발언권은 시민들에게 주어져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의 반증

실제로 공공 자금의 운용에서 시민들이 정치인들보다 책임감이나 장기적 안목이 부족하지는 않은 듯하다. 미국과 독일에서 수십 년 간 걸쳐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시민들 2/3가량의 다수가 단기적으로도 공공 예산이 균형을 이루는 것을 선호한다는 결과가 늘 나왔다. 엄청난 공공 부채는 국민, 특히 그 부담을 떠 안게 될 젊은 세대들이 바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정치의 결과이다. 공공 부채의 지속적인 증가는 사실 정당들의 전략적 선택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어 연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드러난다.

▪ 다수 정당들의 연합 내에서 분열이 클수록, 부채 증가 경향이 더 크다.
▪ 정부가 다음 선거에서 질 가능성이 클수록, 부채 증가 경향이 더 크다.
▪ 한 정부의 지속 기간이 짧을수록, 부채 의존 경향성이 더 크다.

이로 미루어, 엘리트 정치인들의 단기적인 논리가 공공 부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표를 얻기 위해 부채에 의존한다.

다른 한편으로 재정 및 국가 세입 관련 문제에도 시민들이 개입할 권리를 지닌 나라들이 있다. 스위스에서 시민들은 확정적 레퍼렌덤을 갖추고 있어서 정치인들이 지나친 과세나 공공 지출로 공공 예산에 너무 큰 부채를 지우고 그 결과 미래의 납세자들인 젊은 세대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지우는 듯 여겨질 때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발안으로(이탈리아에서는 대개 ‘제안적 레퍼렌덤’이라고 정의한다)는 보다 균형 잡힌 국가 세입을 위한 시민들의 제안을 투표에 부침으로써 부채를 제한하고, 정치인들이 좀 더 공정하고 균형잡힌 지출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거부 수단으로써 긴급 제동을 걸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안 수단으로써 정치 계급과 정당들이 움직이지 않을 때 가속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위스의 거의 모든 칸톤과 많은 기초자치단체에는 재정관련 레퍼렌덤이 존재한다. 어떤 공공 프로젝트가 미리 정한 지출 한도(평균 2백 5십만 스위스 프랑 혹은 약 2백만 유로)를 넘어설 때 시민들은 의무적으로 레퍼렌덤을 통해 의사를 표명하도록 소집된다. 이런 직접민주주의 도구는 매우 단순한 원칙에 따라 작동한다. 곧 어떤 특정 공공 프로젝트를 위한 지출이 법으로 미리 정한 총액 한도를 넘어설 때 모든 유권자들은 이에 대해 결정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선택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최소 인원의 서명을 모은 시민들이 특정 지출의 승인과 관련하여 거부권으로서 레퍼렌덤을 요청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가끔 어떤 공공 지출이 어떤 정해진 총액 한도를 넘기면, 국민투표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물어서 해당 칸톤이나 기초자치단체의 공공 지출을 승인하거나 거부한다는 뜻이다.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국민들이 지출 승인에 반대하여 국민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조세나 지방세로 충당되는 지출을 통제하거나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스위스 시민들은 어쨌든 국민발안과 실행적 레퍼렌덤이라는 두 가지 오랜 도구로 국가 세입관련 법령과 세금 제도에 개입할 수 있다.

대부분 이 도구를 활용하려는 성향의 칸톤에서는 “재정관련 레퍼렌덤”이 없는 칸톤들에 비해 공공 지출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나타난다. 스위스의 학자들(Kirchgassner, Feld, Savoiz, 1999년)은 131개의 스위스 도시와 칸톤에서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의 영향을 분석했다.

기초자치단체들은 칸톤과는 달리 예산을 변경할 수 있는 여지가 더 크다. 분석에 따르면,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기초자치단체 예산의 적자를 줄이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다. 게다가 세금과 과세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시민들은 그 결과 늘 세금 감면을 선택한다는 주장은 입증되지 않았다.

1978년~1999년 사이 미국에서는 국세 관련 130건의 국민발안이 펼쳐졌는데 그중 86건이 감세를 목표로 한 것이었고, 27건은 증세, 17건은 과세와 관련하여 중립적인 것이었다. 증세 방향의 발안 중 39%가 승인된 반면, 감세를 위한 발안은 조사한 사례의40 %가 수용되었다.

그 외에도 스위스 사람들은 증세에 동의한 경우도 많았다. 1984년 국민발안으로 고속도로의 일반 통행새 징수를 위한 스티커가 도입되었다. 1993년에는 레퍼렌덤으로 석유 리터 당 0.2스위스 프랑의 새로운 추가세가 도입되었다. 1998년 스위스 사람들은 육상 화물 교통(중량급 화물)에 대해 세금을 도입하여 산고타르도San Gottardo의 새 터널을 만드는 데 든 지출을 충당했다. 2009년에 스위스 사람들은 일정 기간 동안 부가가치세의 일시 증액에 동의했다. 다른 한편으로 시민들 편에서 부가가치세의 도입을 세 차례 기각했다. 2001년 12월 스위스 사람들은 레퍼렌덤 투표로 “부채 동결”을 승인했다. 그 해부터 스위스 연방 공공 부채는 지속적으로 내려가서 2018년 국내 총생산GDP의 28.8%로 조정되었다. 2018년 3월에 스위스 시민들은 공영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 사업의 연방(국)세를 폐지하기 위한 국민발안을 기각했다.

산갈로San Gallo 칸톤을 예로 들 수 있을 텐데, 이곳에서는 현행법으로 충당하지 못하는 새로운 지출 항목을 위해 일괄 지불로 1천 5백만 스위스 프랑 이상을 지출하거나, 혹은 여러 해에 걸쳐 1백 5십만 스위스 프랑의 지출을 결정할 때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이 공고되어야 한다. 칸톤 예산 총액 50억 스위스 프랑(2018년)에 미루어, 위의 금액은 비교적 적다. 선택적 레퍼렌덤은 3백만 스위스 프랑 이상에 준하는 지출과 30만 스위스 프랑 이상의 현행 지출 심의를 위해 요청될 수 있다.

이를 목표로 40일 안에 4천 명의 서명을 모아야 한다. 약 30만 유권자 숫자를 고려하면 이 서명 기준점은 당연히 지나치지 않다. 다양한 조사에 따르면Kirchgassner(2001년),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공공 지출을 제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도구를 갖춘 기초자치단체들은 시민들에게 이 권한을 주지 않는 기초자치단체에 비해 1인당 지출 수준이 더 낮은 양상을 보인다. 유권자들이 지역 법규에 대해 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곳에서는 과세와 부채율, 탈세 또한 더 낮다.

재정관련 레퍼렌덤 외에도 바로 직접 민주주의의 매커니즘이 함께 작용하여 스위스를 공공 부채가 적고, 과세율이 더 낮으며, 공공 행정의 효율성이 높고 경제가 안정된 나라의 하나로 만들었다. 스위스만이 아니라 캘리포니아와 미국의 다른 연방 주들에서 실시한 수많은 연구에서도 이러한 역동성을 볼 수 있다. 곧 직접 민주주의 매커니즘이 잘 작동하는 곳에서는 다음 양상이 나타난다.

▪ 공공 행정을 위한 지출이 더 적고, 세금 부담 수준이 낮다.
▪ 더욱 공평한 소득 분배
▪ 세금에 대한 시민들의 책임감이 더 높다.

실제로 탈세에 맞선 싸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세금 문제에 대해 투표를 더 많이 하는 칸톤에서는 탈세가 더 낮았다. 이는 한가지 단순한 연결고리를 보여준다. 곧 시민들이 자신이 직접 선택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에도 공공 행정에 더 만족할수록, 더욱 기꺼이 의무로 부과된 세금을 납부하려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공익 사업에 대한 지출과 과세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을수록 더욱 공적인 책임 의식을 가지며, 공공 지출을 통제할 수 있을수록 더욱 기꺼이 국가의 세입 노력을 지원하고자 하게 된다.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순환고리이다.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어째서 직접 민주주의가 더 발전한 체제들은 대개 이런 민주주의는 물론, 국가 재정과 경제적 안정에서도 건강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레퍼렌덤을 통한 시기적절한 개입으로 시민들은 단지 5년에 한 번씩 다음 선거에서 다시 과반수로 선출하여 무능한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대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입법 회기 중에도 개입하여 특정 지출, 과세, 대형 프로젝트, 낭비 등을 차단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최근 전국 레퍼렌덤으로 핵발전의 선택이라는 엄청난 낭비를 피할 수 있었지만, 이미 납세자들의 어깨를 무겁게 할 태세가 된 다른 많은 대형 프로젝트들이 있다.

▪ 시민들은 레퍼렌덤 덕분에 공공 지출이나 정책 전반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전달받는다. 시민들은 경험을 통해 자신들이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신중하고 책임감을 갖는다.

▪ 레퍼렌덤이 있는 시민들은 정치 비용 또한 조절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다른 유럽 국가 정치적 대의원들의 평균 지출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정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 정치인들의 바람과 시민들의 바람 사이의 단절이라는 커다란 문제를 직면한다. 잘 조직되고, 자금력이 있으며, 정확한 시기에 공공 지출과 정부 방침을 좌우하는 막강한 이익 집단들이 있다. 반대로 선거를 기하여 시민들은 보통 이념적인 이유로 한 정당에 “표몰이”를 하지만, 많은 현안에 대해서는 선거 이후 구성된 정부가 취한 선택과는 다른 견해를 지닌다.

과세 사안에서 시민들에게 직접 민주주의의 혜택이 부족한 점이나 공공 지출에 대한 이 간단한 언급을 통해, 국가 재정 관련 결정에서 시민들을 배제시키는 것은, 아마도 ‘이탈리아 제헌 국회Assemblea Costituente’가 상상했던 것과는 반대 현상을 가져왔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탈리아에는 세금 압박이 (사회적 기부를 포함하여) 매우 크다. 공공서비스의 질은 그다지 좋지 않고, 전국적으로 탈세가 만연해있으며, 공공 부채가 기록적인 수치에 이르고, 공금 낭비의 사례가 많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시민과 납세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각각의 결정을 통제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저 더 많은 의사 결정력과 중앙 집권화 만이 국가 세입에 대해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만들 것이라는 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주권자들의 더 강력한 역할은 국가 재정을 회복시키기 위해 필수적이다.

이탈리아는 그리스 다음으로 가장 높은 국가부채율을 자랑하는데, 2017년 말 약 2조 3천 억 유로가 아직 GDP의 약 130%선에 머물러 있다. 동시에 가장 큰 재정적 압박을 받고 있는 유럽연합 가입국 첫 여섯나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며, 43.3%(2017년 GDP 대비 세금과 사회복지 총액)에 달하는 재정적 압박을 호소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탈리아는 탈세율이 높은 편이다(2017년 1천 1백 억유로 추정). 반면 공공 서비스의 질은 떨어진다. 또한 지방 차원에서 국세-재정 관련 사안은 레퍼렌덤 사안에서 배제된다. 이탈리아에서 정치인들과 정당들은 일단 공공 지출을 운용할 수 있는 권력을 손에 넣으면, 공공 예산을 마치 셀프서비스 수퍼마켓처럼 여겼다. 2007년 40만명 이상이 직접 정치를 생업으로 삼았다(Salvi-Villone 2007년 참조).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심지어 이탈리아 취업자들 중 5%인 1백 10만명에 달한다(ILO 제3차 보고서-정치의 비용, 2013년 12월). 2018년 입법부만도 2017년에 비해 1.85%가 증가한 9천 6백 8십만 유로를 지출하게 될 것이다. 헌법 기관에 대해서는 2018년 이탈리아 중앙 정부는 총 24억 5천 8백 만 유로를 지출하게 될 것이다. 2012년 이탈리아 전역에서 지방의회에 약 10억 유로가 들었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1117여 개의 지방의회 각각에 든 총 수당은 20만 유로를 조금 넘어선다. 한 의원의 지출 전체를 고려에 넣으면, 이탈리아 평균 연간 87만 5천 유로 정도이다. 대의 정치의 모든 간접 비용을 포함시키면, 총액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그 어떤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대의 정치 비용이 이탈리아만큼 높지는 않다. 여당은 납세자들의 모든 직접 개입을 배제함으로써 늘 이런 특권을 지켜낼 수 있었다.

전후 지금까지 수십 년간 산더미 같이 쌓인 부채를 이탈리아 시민들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유도 있겠지만 여당들 사이에 만연한 무책임한 지출 경향을 호도해서는 안된다. 또한 시민들 쪽에서는 전혀 거부권이 없다는 정치적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 가끔 국민발안 법 제안들이 제출되지만(2015년 봄, CGIL 노동조합에서 추진한 “보다 공평한 세입을 위해” 제안) 거의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 이런 제안들은 국회에서 급속도로 잊혀지고 만다.

한편 레퍼렌덤이 가능한 사안에서 국가 세입 및 세금 관련 사안을 배제하는 것이 전혀 당연하게 여겨진 적이 없었던 스위스의 경우가 있다. 스위스 사람들 사이에서 국가 재정 현안은 가장 인기 높은 사안에 속한다. 그러므로 전통적으로 국가 재정의 운용에서 정치적 대의원들을 단속하는 것에 큰 관심이 뒤따른다. 이 목적으로 칸톤과 기초자치단체에 “재정관련 레퍼렌덤”이 도입되었다.

 

시민들의 권리가 더 많을 때 정치인들은 재정적으로 더욱 책임있게 행동한다

스위스의 사례는 레퍼렌덤 가능 사안에서 국가 재정 사안을 배제하는 것은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반대로 시민들이 공공 지출 심의에 더 많이 참여할수록, 국민들 사이에서 책임의식도 더 커지고, 탈세도 더 줄어들고, 공공 자금낭비도 덜 생긴다. 민주주의와 공공 지출 사이의 관계는 단순하다. 시민들은 늦건 빠르건 자신들이 더 무거운 세금 압박을 통해 새로운 지출을 감당해야 할 것임을 알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새로운 분야의 지출을 인가하는 것에 매우 조심스럽다.

어떻게 직접 민주주의로 공공 재정에 이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몇 가지 가능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 선거로 유권자들은 정치 대의원에게 일종의 백지수표를 발행하여, 단지 4, 5년 후에나 그것을 되찾을 수 있다. 레퍼렌덤 권한의 부재시, 시민들은 잘못된 투자나 공공 자금의 낭비, 불필요한 지출, 정당성 없는 세금 등을 막기 위해 개입할 수 없다.

▪ 만일 시민들이 공공 재정관련 사항에 투표할 수 있다면, 즉각 시민들 자신이 더욱 그 사안에 관심을 갖고 정보를 얻게 된다. 결국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시민들이며, 이들은 보통 새로운 지출 요청 앞에서 더 조심스럽다. 이탈리아에서는 2011년 시민들이 핵발전소에 대항하는 투표로 엄청난 공공 자금 낭비를 피해갔다. 그러나 보통 이탈리아 시민들은 새로운 지출 요청 앞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권리가 없다.

▪ 확정적 레퍼렌덤으로 시민들은 지나친 정치 비용 또한 제한하고 정치적 족벌주의의 만연을 견제할 수 있다.

▪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아직 공공 행정상의 부패율이 높다. 지출 심의와 특정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치는 시민들의 권리는 이런 위험을 제한한다.

▪ 시민들이 바라는 것과 대의원들이 바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다. 영향력 있는 이익 단체들과 여러 막강한 세력들은 늘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기호에 따라 공공 지출과 투자를 이끌어 가는 것을 제한할 수 있다.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이런 힘이 없다. “모든 것을 포괄하여” 한 정당에 투표하고, 모든 각각의 공공 자금 관련 결정은 정치인들의 몫으로 남겨지며, 시민들은 그에 대해 아무런 발언권이 없다.

이탈리아에 적용된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미리 정한 기준치(가령, 5천만 유로)를 넘어서는 지출을 수반하는 모든 프로젝트에 대해 자동 국민투표를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명을 모아야 하는 수고를 피하여, 시민들은 상당한 재정적 규모의 어떤 프로젝트가 가져올 영향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시민들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거대 프로젝트의 경우 미리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에 존재하는 이 권리는 오랫동안 이탈리아의 공공 재정을 괴롭혀온 무책임한 지출에 대해 효과적인 제동 장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금관련 레퍼렌덤 권한을 포함한 공공 재정에 대한 시민들의 직접 참여는, 세금에 대한 입법부의 권한이 좀 더 지방분권 방식으로 분산되고 관리된다면 더욱 합리적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예는 또 다시 스위스의 연방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탈리아의 주와 기초자치단체들은 세금과 지방세 관련 법에서 더 많은 자치권을 얻어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의 주들은 과세 문제에 권한이 매우 적으며, 세입의 적은 일부만이 주 자체 내에서 부과한 세금으로 충당되고, 가장 큰 몫은 나라에서 보전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나친 지출을 막기 위한 목적의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유용하겠지만, 세금에 개입하기에는 법적, 정치적 연결고리가 부족하다. 거의 모든 세금들이 국가의 권한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첫 단계는 재정적 연방제fiscal federalism라는 더 나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일 것이다. 다음으로 재정적 연방제를 직접 민주주의와 결합시키는 것이 낭비와 지나친 세율의 과세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다. 정부의 모든 차원에서 진정한 납세자인 시민들이 회계 감사관 역할을 하는, 정치적 책임을 담당함으로써 공공 재정이 더욱 튼튼해지게 된다.

이탈리아에서─특히 돈을 헤프게 쓰는 정치인들이─종종 우려하는 것은 세금과 관세에 대한 직접 민주주의로 시민들은 근거가 충분하지 않는 세금을 삭감하기만 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시민들, 곧 납세자들의 직접 참여는 국가 재정을 더욱 견고하고 공정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스위스의 경험에 따르면 시민들은 공공 재정에 필요한 책임 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스위스 시민들이 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 나라는 사회적 기능이 원활하고, 질 높은 기간 시설, 적은 공공 부채 및 낮은 세율을 자랑한다.

이탈리아에서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재정 운영에 대한 직접 통제 부족과 재정 시스템의 중앙 집중은 지나친 낭비, 잘못된 투자, 보스 정치 및 엄청난 공공 부채를 조장했다. 근래 수십 년 동안 뿌리내린 보스 정치를 지탱한 것은 바로 “돈-표-자리”라는 비정상적인 삼각지대에서 나타나는 표 거래 구조 덕분이다.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이라는 열쇠로 이런 자동적인 악의 순환을 배양하는 음지를 밝은 곳으로 끌어내어 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재정 관련 레퍼렌덤과 세금 관련 법률과 법규는 물론 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레퍼렌덤은 단순히 민주주의를 작동시켜 헌법에 규정된 “균형 예산”을 보완하며, 늘어나는 부채에 최선의 제동 장치를 제공할 것이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20/03/13-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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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란 : 유라시아의 중원

21세기의 20년대가 사납게 출발했다. 다음 십년을 예고하는 첫 사건은 1월 3일, 전격적인 드론 공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을 받들어 이라크 주재 미군이 술레이마니를 정밀 사살한 것이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사령관이었다. 혁명수비대는 일국의 군대, 국군을 능가한다. 이슬람혁명의 사수대로서 문명의 호위병 노릇을 해왔다. 응당 그 활동 반경 또한 국경을 훌쩍 넘는다. 나라 밖 특수작전을 전담하는 쿠드스(Quads)군을 이끌어온 인물이 바로 술래이마니였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부터 시리아와 레바논까지 광활한 지대를 통솔해왔다. 공식적으로는 군인이되 최근에는 외교관에 준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이라크와 시리아, 레바논과 예멘 등에 이란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와의 관계 개선에도 앞장선 인물이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후원하고, 레바논의 헤즈볼라 정권을 지원했으며, 예멘의 민병대를 훈련시킴으로써 내전의 종식도 견인했다. 이번에도 레바논을 방문한 후 민항기의 정기편으로 이라크에 들어왔다. 외교여권으로 입국심사를 받고 바그다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돌연한 무인기 공습으로 사망한 것이다.

테헤란의 술레이마니 장례식

미국의 해명은 뻔뻔하다. 지난해 4월, 혁명수비대를 테러집단으로 선포했단다. 일방적으로 술레이마니를 테러집단의 수뇌, 테러리스트로 간주한 것이다. 실상은 정반대이다. 알카에다와 IS 퇴치에 최선봉에 섰던 조직이 혁명수비대였다. 바그다드 방문 역시 이라크가 중재하는 이란과 사우디의 화해 교섭을 진척시키기 위해서였다. 작년 가을부터 이라크는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를 중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사우디가 이라크를 경유하여 이란에 친서를 보냈고, 그에 화답하여 사우디 국왕에게 전하는 답신을 전하기 위하여 술레이마니가 방문한 것이다. 당일 오전에는 특사 자격으로 이라크 총리 압둘 마흐디와의 회동이 예정되고 있었다. 그 직전에 암살 작전을 단행한 것이니, 미국의 의중은 명확하다. 이란-이라크-사우디로 이어지는 중동의 안정화에 급제동을 건 것이다. 무엇보다 수니파의 선봉국가 사우디와 시아파의 지도국가 이란의 협력 모색을 좌시할 수 없었다. 양 나라는 다툼을 지속해야 한다. 두 종파는 갈등을 계속해야 한다. 중동은 대분열체제를 이어가야 한다. 종횡무진 이슬람 문명권의 안정과 대통합을 도모하는 술레이마니는 필히 제거되어야 하는 눈엣가시였다.

 

2. ‘중동’과 ‘서남아시아’

카메라를 줌아웃해볼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의 심층에 가닿기 위해서는 유라시아 전체를 거시적으로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를 중재했던 이라크의 행보를 더 큰 판도에서 조감해 보아야 한다. 술레이마니를 맞이하던 압둘 마흐디는 작년 9월 중국을 방문했다. 이라크 재건 펀드를 조성하여 인프라를 재정비하는 대규모 계약도 체결했다. 중국 방문 직전 8월에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국경을 다시 여는 조치도 취했다. 이란, 이라크, 시리아의 삼국회담에서는 역내 교통망과 교역망의 정비와 확충을 ‘실크로드 부활’이라는 더 큰 프로젝트와 연동시키기로 했다. 진즉에 내전 이후의 시리아 재건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이라크를 경유하여 시리아의 지중해까지 이르는 철도와 도로와 송유관 등 인프라 건설 계획이 입안되었다. 즉 중국의 일대일로와 연결하여 중동의 새 질서를 만들어가는 큰 그림이 그려졌던 것이다. 따라서 이란의 혁명수비대 또한 알게 모르게 일대일로가 이슬람권으로 확장되는 첨병 역할을 수행해 왔던 셈이다. 아프가니스탄부터 레바논까지 이슬람권역이 안정되면 될수록 일대일로 사업 또한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고로 술레이마니 폭살 또한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합장을 견제하는 지역적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유라시아의 동과 서를 상징하는 페르시아제국과 중화제국의 대합창을 겨냥하는 지구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중국-이라크 정상회담

실로 지각변동이 한창이다. 20세기 후반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체제가 오일-달러에 기초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지하자원 석유와 미국의 화폐인 달러를 긴밀하게 결박시켜 국제경제를 좌지우지했다. 석유를 수출하는 나라도 수입하는 나라도 미국에 종속시키는 절묘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오일과 달러의 연결고리는 이미 끊어졌다. 미국은 더 이상 중동의 석유를 수입하지 않는다. 셰일혁명으로 에너지 자립국을 지나 수출국으로 전환하고 있다. 사우디 국왕이 2016년 아시아의 인구대국을 순방하고 2017년에는 러시아까지 방문하여 새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라크 역시도 가장 많은 석유를 수입하는 중국과 협력하며 석유와 인민폐를 교환하는 오일-위안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항상적인 경제 제재를 감당하고 있는 이란은 오일-위안 교환이 익숙한지 이미 오래이다. 러시아와 천연가스나 무기를 거래하는 나라들은 루블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인도와 이란 사이의 무역 결제는 루피가 활용된다. 유라시아 국가들의 내부 거래에서 탈달러화 흐름이 도저한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북방제국 러시아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붕괴 직전의 시리아가 기사회생한 것도 러시아의 개입 탓이었다. 이라크에서 IS 잔당을 퇴치하는 데에도 러시아 공군의 역할이 다대하다. 지상에서는 이란이 후견하는 민병대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천상에서는 러시아의 공습이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로써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적대적 공생’을 유지해왔던 IS도 알카에다도 동반퇴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으로 21세기 20년 내내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등지의 내전과 혼란은 러시아와 중국과 이란의 전 방위적 협력에 의해 안정 국면으로 반전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자국 영토에서 일어난 술레이마니 암살에 아연실색한 이라크 의회는 미군철수 요구를 가결시켰다. 그 공백 역시도 러시아와 중국과 이란이 채워나간다.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유라시아 대연합전선이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실크로드와 페르시아

이란은 지정학적으로 유라시아의 동과 서, 남과 북을 잇는 허브국가였다. 역사적으로 이란 고원은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의 일부를 포함했으며, 동쪽으로는 신장을 잇고 서쪽으로는 아나톨리아까지 아울렀다. 서쪽으로는 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 북쪽으로는 몽골제국과 러시아제국, 동쪽으로는 중화제국, 남쪽으로는 인도의 여러 제국 사이에 페르시아제국이 자리했다. 페르시아의 고도(古都) 페르세폴리스에 괜히 ‘만국의 문’이 자리했던 것이 아니다. 유라시아의 모든 연결망이 이란 고원과 교통하고 소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이란을 유라시아의 만국과 다시 연결시키느냐, 아니면 중동의 일국으로 봉쇄하고 고립시키느냐, 신유라시아의 뉴그레이트 게임이 후끈 달아오른 것이다.

페르세폴리스의 만국의 문

서방의 입김이 약해지고 동방과의 혈로가 다시 두터워지면서 지리 감각 또한 급변한다. 대영제국의 지정학적 호명이었던 ‘중동’(Middle East)은 오늘날 영국의 흐릿한 처지만큼이나 존재감을 잃어갈 것이다. (재)부상하는 아시아의 서남부, ‘서남아시아’(Southwest Asia)로 재정초 되어 갈 공산이 크다. 동북아시아 또한 유라시아의 동단일 뿐이며, 서유럽 또한 유라시아의 서쪽 반도로 접수하는 감각의 전환이 시급한 것이다. 그야말로 지구본을 빙글빙글 돌리며 지구적 시야로 동서남북 천하의 대세를 살필 수 있는 너른 안목이 요청된다. 앞으로 2주에 한 번씩 유라시아 곳곳의 현황을 깊고 넓게 짚어보는 복안을 함께 연마해 보기로 한다. 구대륙 아프리카와 신대륙 아메리카를 잇는 유라시아는 이미 21세기 지구문명의 중원이다. 동북아의 개마고원부터 서남아의 이란 고원을 잇는 ‘천개의 고원’ 가운데 파미르 고원이 자리한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길이 닦이고 엮이고 있는 ‘지구의 지붕’으로 이동해본다.

금, 2020/03/06-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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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민족으로서 우리의 건국설화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여 매우 특별하다. 대부분 나라의 경우. 건국설화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배경으로 설정하거나 초인적인 영웅의 이야기로 출발하여 지배권력을 미화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하여, 우리 설화의 경우에는 태백을 거점으로 삼아 상제의 아들인 환웅이 보기에 아름다운 땅을 선택하여 나라를 세우면서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이의 근본으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칼럼_181004(2)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 모셔져 있는, ‘환인, 환웅, 단군왕검’의 초상화

단군신화로 알려진 위의 이야기가 후대에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지어낸 것인지, 오랜 역사 속에 체화되고 전승되어온 이야기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한반도의 역사를 관통하는 문화적이며 정치적인 토대를 형성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인간의 언어로서 가장 감동적이며 성스러운 내용을 담아낸 성경의 주기도문과 같이,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나라를 세우며(이화세계) 널리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 규범(홍익인간)을 삼는다는 것은 종교사적 견지에서는 황금률적인 표현이며 정치학적 의미에서도 제1의 공의적 원칙이다. 이번 글을 통하여 상기의 원칙들이 한국 역사에 투영된 기록을 찾아가며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가름해 보고자 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무속적 신앙에 기초한 공동체적 모습으로 수렵사회를 반영한 제천행사가 부여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등 형태로 행하여졌다고 전해지며, 농업이 번성하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단오와 추석과 같이 마을 사람 모두가 함께 음식과 가무를 즐기는 명절로 발전해 왔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기록을 보면 불교가 전해지면서 지배계층인 화랑이 중심이 되여 향도(香徒)라는 조직이 만들어져 지배질서로서 종교적 규범을 강조하고 생활의 실천적 지침을 삼아 내려오다, 이후 일반백성에게까지 조직이 확산되면서 새로이 절을 짓거나 탑을 쌓거나 불공의 행사에 다중들이 함께 모여 공력을 제공하고 신앙적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고려 왕조로 들어서면서 종교적 배경과 행사를 위해서 조직되고 활동하였던 향도는 이제 향촌의생활 속에 자리를 잡으면서 香徒가 아닌 鄕徒가 되여 생활의 공간과 내용을 공유하면서 함께 노동하고 함께 즐기고 서로를 도와가는 양속으로 이동했다. 마을의 공동노역, 혼례, 장례, 마을 수호신 제사를 함께 치르면서 자연스레 상부상조적 조직으로 변모해 갔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한민족 역사를 줄곧 관통해온 두레라는 협동적 노동방식과 상부적 자조금융인 다양한 형식의 계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향촌의 통치 방식에서도 지방을 대표하는 인물을 내세워 왕권을 대신하여 중앙에서 향촌으로 파견된 관리 간에 협의 내지는 역할 분담을 이루면서, 읍사(邑司)가 중심이 되어 일종의 지역자치를 이루면서 내려온 셈이었다. 그러나 고려말 성리학이 도입되어 확산되면서 자치적 성격이 강했던 향도와 읍사는 양반 중심의 지배계층에 의해 유교의 가르침과 규범을 가르치는 향약(鄕約)으로 흡수되어 재구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향약은 사원과 함께 향촌에 뿌리를 내린 사림의 지위를 강화하면서 중앙정치의 훈구 세력에 맞서는 일종의 정치적 거점으로 변모한다.

왕권을 정점으로 하는 신분제적 관료체제인 고려와 조선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경제의 축을 이루는 농업 기반인 토지의 사용 및 소유의 형태와 조세정책의 변화에 따라 이해를 달리하는 지배권력간의 이권과 세력다툼, 그리고 권력의 틈새에서 민중들 스스로 자조하고 순응하며 때로는 협약하고 저항해온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경제의 기반과 운용의 결과물을 놓고 지배계급과 기층민중간에 전개되는 ‘정치동력학’적 궤적이다.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확고히 정립한 조선조 초기에는 주요 경제기반인 농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산업정책의 기본으로 정하고 소농의 농민을 중심으로 백성을 위한 민본(民本)의 왕도사상을 정치적 지향으로 삼아 왔다.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 조준 등이 비록 의도했던 균전제를 온전히 도입하지 못했으나 과전 및 직전법을 시행하여 고려 말 혼란하고 무질서했던 토지 소유관계와 조세체계를 바로 잡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왕족과 세도가들의 토지겸병 현상이 심화된다. 수조권을 기반한 토지지배구조가 약화되거나 붕괴되고 매득(買得), 장리(長利,) 개간(開墾) 등 통하여 토지의 사적 소유가 확대되면서 농지를 떠나는 유민(流民)들이 대거 발생하고, 일부 양반들이 사노(私奴) 또는 소작농으로 전락된다.

이에 지방에 기반을 둔 사림세력은 성리학의 창시자인 주희가 만든 주자증손여씨향약을 제도적 모범으로 삼고 사원과 유향소의 부활을 구실로 삼아, 탐욕스런 중앙의 왕족들과 세도가들을 견제하며 나라의 기반인 농촌사회가 무너져 가는 것을 방지하고 성리학을 정치사회적 규범으로 삼아 봉건적 질서를 유지하고자 목숨을 건 정치투쟁을 전개한다.

중종에서 시작하여 명종을 거쳐 임진왜란 전의 선조 대에 이르기 까지 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김안국이 경상도 관찰사 시절에 향약을 한글로 보급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인물들인 조광조, 이퇴계 그리고 이율곡 등으로 이어지면서 사림파와 훈구파 간에 성리학의 해석을 겸한 권력투쟁과 향약논쟁의 역사가 펼쳐진다.

향약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 섬서성의 한 향촌에 국한되어 행하였던 여씨향약을 주자가 국가단위의 시행을 위하여 새로이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주나라의 제도를 따라 다음과 같이 주요 4개의 덕목으로 요약하였다.

덕업상권(德業相勸) : 좋은 일, 바른 일은 서로 권한다.

예속상교(禮俗相交) : 미풍양속으로 서로 교제하여 이를 널리 확산시킨다.

과실상규(過失相規) : 잘못한 일은 지적하고 비판하여 바로 잡는다.

환난상휼(患難相恤) : 개인 또는 향촌이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돕고 함께 극복해 나간다.

향촌에 거점을 두고 있던 조선조 사림의 양반들은 상기 향약의 내용과 제도를 무기로 삼아, 한편에서는 중앙정치의 세도가들의 탐욕과 패악을 견제하면서, 동시에 성리학적 윤리도덕을 기반으로 현존의 상하 신분관계를 분명히 하는 가운데 향촌의 공동체에 자발적 참여를 통한 자치기능을 부여하여 스스로 규계(規戒)하고 향촌을 유지 발전시키는 규칙을 세우며 고조선 이래 배달민족의 양속인 향음주례(鄕飮酒禮)의 전통을 지켜 나가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사림파들의 향약 실천에 대한 강력한 요구와 움직임에 대하여 중앙의 왕족과 세도가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 거부한다. 예건데 인물이 부족하다거나, 인심과 풍속이 투박하여 오히려 역작용의 폐해가 예상되며, 신분제의 붕괴가 염려되고, 왕권의 향촌을 다스리는 힘이 약화된다는 등 이유를 핑계로 삼아 몇 번의 사화를 통하여 사림파들을 숙청하고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

권력의 다툼과 논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향약은 오래된 것으로 이를 실시된 곳마다 사람들이 서로 보살피고 돌아보며, 서로 돕고 질병에 함께 대응하며 구제하며, 자제로 하여금 유학의 가르침을 따라 효제의 뜻을 두텁게 하는 것을 가르치니, 삼대지치(三代之治)를 융성하게 하고 풍속을 아름답게 한다 – 化民成俗”라는 상소에 따라 중종 시절부터 적극적인 시행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매우 주목할 만한 인물이 조선중기 최고의 지성이자 실천적 행정가였던 이율곡 선생이다. 본인이 관직에 있을 당시 향약을 권하면서 파주향약의 서문을 직접 작성하였고 청주목사로 재직 시에는 서원향약을 만들어 시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선조가 향약을 전국적으로 시행하려 하자 오히려 시기가 너무 이르다(時期太旱)고 주장하며 시행을 보류하도록 간곡히 주청하여 계획을 중단시켰다. 더욱 기이한 것은 본인이 훗날 향촌에 머물면서 다시 완성도가 매우 높은 해주향약을 제정하여 보급하였다는 사실이다.

일견 서로 모순되고 상반된 이런 대목은 선조라는 못난 왕의 됨됨이를 살펴보면 이해가 가능할 듯하다. 사림들의 줄기찬 요구에 따라 신하들의 논의를 거쳐 향약의 전국적 실시를 결심할 단계에서 이율곡은, 선조가 민본의 왕도정치에는 별로 뜻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왕권 강화에만 마음이 머물러 있어, 이런 상태에서 향약을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향촌의 자치적 기능과 양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훼방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왕권과 중앙정치의 강화를 위한 하부 조직으로 전락할 것을 심히 염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점은 필자가 제3 섹타경제론의 서론에서 제기한 지적과도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겨우 유아기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현재단계의 사회적 경제영역은 당연히 지자체를 포함한 정부와 공공기관의 법제적 도움과 재정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揚水論), 제3 섹타가 추구하는 자발적 참여와 스스로 역동적이어야 할 네트워크 형성을 정치와 행정 권력이 저해하거나 왜곡시켜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되풀이 언급하지만, 제2 섹타와 더불어 세 분야 영역 모두 병렬적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율곡 선생이 보여준 천재적이면서도 백성을 진심으로 위하는 실천적 지식인의 전형적 모습을 다시 한번 반추해 볼 수 있다. 그는 단지 패자적 왕권과 세도가들의 영향을 차단한 것만이 아니라, 주자에 의해 체계화된 여씨향약을 당시 조선의 현실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실천적인 내용을 담아내었다. 자발적 참여와 회원들간 원만한 합의를 유도하기 위하여 향약의 조직과 운영에 대한 세칙을 정치하게 기술하였고, 실천적이고 구속력 있는 모임이 되기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선악부(善惡賦)의 작성 요령과 규칙을 세밀히 규정하여 향촌내 세력가들이 행할 자의적인 패악을 엄하게 금하였으며, 향약의 기능을 사창(社倉)과 통합하는 사창계약속(社倉契約束)을 제창하여 현대적 의미에서 향촌단위의 사회안전망적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율곡 선생이 지향했던 향약 실천의 뜻을 다시 정리해보자면 단순히 기존의 지배 질서를 온전히 유지하고자 하는 것을 넘어서서, 위로부터의 통치가 아닌 백성들의 자발적 참여에 따른 자치를 이루고, 성리학적 규범 가치를 공유하면서 예(禮)를 통한 윤리적 절제로 향촌의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며, 향촌 단위로 상호부조를 통해 사회경제적 안전망 기능을 부여하고, 전체적인 강제보다는 개인과 공동체간의 관계성 회복에 초점을 두었다 할 것이다.

이는 필자의 앞선 칼럼 ‘인본적인 사회주의자’에서 소개한 19세기 초 프랑스 사상가 사를 푸리에의 기획과 일맥 상통하며 1990년대 노벨경제학을 수상한 인디애나 대학의 오스트롬 교수의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라는 저작에 담긴 구상과 비견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다시 한번 대학자의 경륜과 가르침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하고 싶다. 안타까운 것은 필자가 역사 공부에 어둡고 한문이 서툴러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분야의 전문학자님들께서 좀더 구체적이고 풍부한 내용을 밝혀주시길 희망할 뿐이다.

아쉽게도 향촌 단위의 자치적 분권을 의도하였던 향약의 보급과 시행은 임진왜란 이후 기존 신분제의 급격한 붕괴, 다양한 원인으로 촉발된 농민층의 분화, 향시(鄕市)를 넘어선 격지 간 상업의 발달, 세도정치의 패악, 삼정의 문란 등으로 멈추어 서게 된다.

반면에 사림의 양반이 주도하였던 향약 운동을 대신하여, 모내기를 도입한 이양법으로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왔던 일반 백성 중심의 집단협동적 노동방식인 두레와 상호부조적 금융시스템인 다양한 계의 모임이 활발히 되살아 나고, 외척과 부패한 관리 등 지배층의 탐욕과 패악에 대항한 산발적인 민란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자각과 실천 운동들이 벌어지게 된다.

청제국을 파탄내는 서세동점 흐름과 한국땅에 상륙한 가톨릭과 개신교 등 기독교의 충격 속에 북학파를 시작으로 전개된 다양한 실사구시적 운동, 위로부터 자강을 시도한 개혁파의 시도, 일반 백성들의 근대적 각성을 촉발한 동학을 중심으로 사회변혁운동 등이 전개되었고, 불행하게도 이후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등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반쪽뿐인 현대 한국의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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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통일뉴스

2018년 현재, 남한사회는 양가(兩價)적이며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견 일인당 GDP가 3만 불을 넘어서면서 수치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였고, 국력에 있어서도 세계 11위권을 유지하면서 강력한 미들파워 국가로 부상하였다. 반면에 외부적 조건이 불리한 가운데 양극화가 극심하고 사회적 불안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득의 불평등 상황이 미국과 함께 OECD국가 중 가장 열악하여 1%의 국민이 20% 정도의 소득을 점하고 있고, 자산소득은 더욱 극심하여 이의 정도를 알려주는 피케티지수(국민순자산/국민총생산)가 10에 근접하고 있으며 (역사적 경험으로 지수가 6을 넘어서면 전쟁을 부추긴다고 피케티는 설명하고 있다), 1%의 부자와 재벌기업들이 민간소유 토지의 50%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자본 시장의 경우는 심한 정도를 넘어서서 1%의 자본가가 90%의 배당소득을 차지하는 등 극한적인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한국의 사회경제적 현실은, 마치 왕족 및 세도가와 이들의 하수인격인 권노(權奴)들이 불법적인 토지겸병의 탐욕으로 국가질서를 뒤흔들고 온갖 수단으로 백성들을 수탈하던 조선중기 이후의 패악스런 모습이 다시 부활한 듯, 더욱 뿌리를 깊이 내린 채 난공불락의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타결책으로 어리석게도 국민소득 4 만불의 수치적 성장론을 제시한다거나 소중한 그린벨트를 풀어서 주택 건설량을 늘려 투기를 막고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상황을 더욱 나쁜 방향으로 악화시킬 뿐이다.

핵심은 소수를 위하는 양적 성장에서 전환하여 일반시민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민본중심의 사회경제적 운영의 철학과 방향 위에서, 저마다 생업에 전념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투기적 부동산 소유에 대해 실질적이며 현실적인 고통을 가하고 불로적 지대소득에 대한 확실한 누진과세를 적용하며, 경제적 성과를 국민 모두가 골고루 향유하는 배분과 순환의 원칙을 정립하는 것이다.

역사적 변혁기에 서있는 한국사회는 당면한 문제를 본질적으로 직시하고 접근해야 한다. 부패하고 탐욕스런 무리와 이를 부추기는 관행 및 제도에 대항하여, 향촌의 사림들이 시도하였던 향약의 시행과 더불어 백성들의 자조적인 운동이었던 두레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것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건국 신화로 전해지는 이화세계와 홍익인간의 역사문화적 DNA를 다시 발견하고, 이를 사회생물학적으로 우리 생활 속에 살아있는 유전적 밈(meme)으로 진화되도록 제도와 관행을 바꾸어 가야 한다.

목, 2018/10/0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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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아가씨> 두 작품의 관람 가능 연령은 몇 세일까? <아가씨>는 여배우 김민희의 파격적 정사장면이 있다고 하니 당연히 19금이라 여길 듯 싶다.

그렇다면 <곡성>은 어떨까? 몹시 훼손된 신체가 등장하고, 일가족 살인과 같은 끔찍하고도 잔혹한 일도 벌어진다. 그렇다면 과연 몇 세 관람이 적당할까? 정답은 15세 관람가이다.

15세 관람가, 만 15세 이상 관람을 권하는 영상물. 선정적, 폭력적 장면이 나올 수 있으나 청소년들도 충분히 관람할 수 있을 수준의 영상물을 가리켜 15세 관람가라고 부른다. <곡성>의 최종 관람 등급은 15세 관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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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스틸컷.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곡성>이 개봉한 이후 과연 <곡성>이 15세 관람가가 맞는가에 대한 격론이 오갔다. 공포, 스릴러, 미스테리와 같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곡성>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긴장과 공포일 것이다. 긴장과 공포는 관객에게는 충격으로 흡수된다. 물론 <곡성>에는 존속살해와 같은 끔찍한 일들이 출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살해 도구가 직접 등장하거나 살해 장면이 영화적으로 연출되지는 않는다. 직접적으로 연출된다는 점에서 찾자면 <곡성>에 연출된 가장 잔인한 장면은 아마도 닭의 목을 잘라 피를 받는 장면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성>을 보고 난 많은 관객들은 15세 관람가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는 영화가 무척이나 잔혹하고 공포스러웠다는 고백과도 같다. 비록 회칼이나 도끼로 신체를 훼손하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끝내 마음을 졸인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무섭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공포란 단순히 도구의 노출이나 장면의 재연이라는 물리적 현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국 영화의 등급은 이렇듯 아리송한 경우가 많다. 얼핏 보면 <곡성>보다 더 잔혹할 것도 없어 보이는 영화 <신세계>는 청소년관람불가이다. 아마도, 범죄조직이 벌이는 범죄라는 점에서 좀 더 엄격하게 폭력성을 살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신세계>에 등장했던 정청(황정민)이 했던 대사, “들어와, 들어와”는 전 연령이 보는 T.V개그 프로그램 및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대사로 차용된다. 이병헌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달콤한 인생>의 대사 중 하나인 “넌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가 전국민적인 유행어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말하자면, 패로디가 굉장한 인기를 끌어 모은 셈인데, 패로디의 원관념이 애당초 19세금이다. 영화의 장면이나 내용이 주말이면 방영되는 짜깁기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 소개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패로디는 단순히 소개된 정도가 아니라 대중적 소비가 축적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원관념으로서의 지위를 갖는 문화-놀이다. 19금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사가 패로디된다는 것은 그 만큼 그 영화가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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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가 19금이 되고, 또 어떤 영화는 청소년의 관람이 허용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문제적인 것은 대개의 한국 영화의 등급이 폭력에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선정성에는 과도하게 엄격한 잣대를 댄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선정성에는 단순히 성적인 호기심 유발이 아니라 사회경제 및 정치적 면까지 포함되어 있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청소년 관람 불가, 즉 19금을 받을뻔한 맥락도 여기에 닿아 있다. 남북한 병사들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한다는 묘사가 남북한 관계에 대한 오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주려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천만관객이상을 동원한 한국 영화는 모두 11편이다. 이 중에서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는 단 한편도 없다. 가장 많은 관람가는 15세 관람가였고, <국제시장>이나 <괴물>과 같은 작품은 12세 관람가였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15세였는데, 왜 <국제시장>은 12세 관람가였는지 그리고 한편 동성애가 암시되는 <왕의 남자>가 지금 같았으면 과연 15세 관람가가 가능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청소년 관람불가야 그래도 동의할 만 하지만 도대체 12세와 15세의 구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등급위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을 영화소비자들 역시 공유하는 사회적 합의여야 한다. 관객수를 몇 백 만 명씩 가늠하는 관람 등급이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나뉘고 구분되지 짐작할 수 없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검열은 한국 영화계에서 사라진 단어라고 하지만 체감상 영화 등급제도가 검열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는 비단, 영화표를 사는 데 나이가 걸려 민감한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닐테다. <다이빙벨>과 같은 작품의 상영에 단지 프로그래머들만의 결정이 전부가 될 수 없는 상황도 여기서 멀지 않다.

무릇 추상적인 기준에는 그림자가 많다. 좀 더 투명한 기준을 제시할 수 없다면 말 그대로 창작자의 견해가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어야한다. 등급을 나누는 일이 권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화, 2016/06/1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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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을 읽다 보면 없던 두통이 느껴진다. 지난 세월도 늘 그러했지만 박근혜정권의 말기적 현상이 심해지면서 아픈 정도가 점점 더 강해진다. 때마침 평소 존경하는 채현국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를 해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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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채현국을 가리켜 “거리의 철학자, 당대의 기인, 살아있는 천상병”이라고 평했다.

채현국 선생님의 전화

채 선배님은 젊은 시절 광산업을 중심으로 20여개의 계열사로 구성된 대기업 수준의 그룹을 소유하시고 직접 경영하셨던 분이다. 그러던 중 동학을 알게 되면서 유무상자(有無相資)정신을 몸소 실천하시고자 재산을 전부 처분하여 대부분을 종업원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남는 재산으로 효암재단이라는 중등교육기관을 설립하는 등, 남은 여생을 봉사와 육영사업에 전념하고 계신 분이다.

동학의 참뜻을 알리는 자리에는 팔십을 넘긴 노구에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돈과 출세에 오염된 시대를 꾸짖으시며 참된 삶이 무엇인지를 일깨우며 살아 가신다. 참으로 귀한 우리시대의 의인이시고 스승이신 분이다.

그런 분이 뒤늦게 전해들은 아래의 이야기에 그만 화가 나셔서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시면서 불호령을 내리시는 모양이다.

내용인즉 국무총리 산하연구기관인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책임자가 공식적인 모임자리에서 ‘나는 친일파다’라고 커밍아웃하면서 “천황만세“를 세 번이나 외쳤다는데 이런 자를 처벌하지는 않고 없던 일로 무마해버리는 박근혜 정권에 대해 왜 항의하지 않느냐고 다짜고짜 저에게 마구 호통치신다 ([Why뉴스] ‘천황폐하 만세’ 외친 이정호 왜 징계조차 안하나? 참조) 

이 글은 채 선배님의 호통에 답하는 글이다.

아직도 ‘일왕의 나라’에 사는 듯한 착각

우선 퍼뜻 떠오르는 장면이 박정희가 대통령시절에도 일본의 지인들을 만나면 일본군가를 즐겨 불렀다는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이였다.

일제시절 만주군관학교의 모범생으로 일왕이 내린 표창까지 받았으니, 그 시절 부르던 일본군가야 머릿속에 자동으로 입력됐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해방되고 독립된 국가의 현직 원수가 치욕의 역사였던 식민지제국 점령당사자인 일본국 군가를, 비록 일본 지인들과의 사석에서 불렀다면, 이는 반국가행위에 해당되는 되지 않을까 ?

행여나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가 부르는 일본노래를 듣고 자라면서 일본제국에 향수를 느끼지는 않았을까 ? 사실이 아니라면 공시적인 자리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세 번이나 외친 자를 정부산하 연구기관에 그냥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위안부라는 사건을 알리고 교육하는 주제는 단순히 한일 정부간의 외교적 현안을 떠나서 아우츠비츠 수용소내 대량학살 등의 홀로코스트 사건과 동일한 선상에서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진 용서할 수 없는 반인류적 패륜범죄에 대한 고발이자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의 과정이다. 이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지속되어야 마땅한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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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국·일본·네덜란드 등 8개 나라의 14개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결성된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한 국제연대위원회’는 지난 6월 1일, 서울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 위안부 관련 자료 2744건을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본부에 등재 신청했다고 밝혔다. (사진 출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6/01/0200000000AKR2016060103…)

그런데 최근 일간지 기사를 보면, 미국과 유럽 등에서 뜻있는 해외 동포들이 스스로 연대해  위안부 문제를 후대의 교훈으로 삼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를 매우 못 마땅하게 생각하면서 간섭과 방해를 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위안부 당사자 할머니들을 거추장스러워하며 해외에서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교포들의 한국 입국을 불허한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말, 일본 정부의 립서비스 수준의 사과와 재단 설립을 위한 소액기부를 받아들임으으로써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고 선언했다. 그 이후로 이제 위안부 문제를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것조차 포기한 듯하다.

용서할 수 없는 역사의 사실, 영원히 기억하고 반성해야 할 반인류적 사건을 단지 10억엔으로 불가역적으로 청산했다고 선언한 한일 정부의 황당무계한 역사적 코메디를 직접 외무장관과 대통령이 나서 국민들에게 알렸던 배경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너무나 상식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박근혜 정권은 무엇을 위한, 누구의 정권인가 ?

조폭만도 못한 ‘오야붕의 나라’

최근 숨겨졌던 또 하나의 사건이 시민사회에 알려졌다. 누구나가 부러워할 서울대를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잘나가는 서울남부지청에 근무하던 김홍경이라는 젊은 검사가 자살한 사건이다. 

시시비비를 더 밝혀야 하겠지만, 김 검사의 자살원인으로는 직속 상관인 부장검사가 행한 참을 수 없는 패악과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 과중 등이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가가 내 아들을 죽였다”고 김 검사의 어머니가 울부짖는 가운데 사법연수 동기생들을 포함하여 700여 법조인 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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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경 검사의 사법연수원 동기들이 지난 6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내가 이 사건에 특별히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검찰, 군대 그리고 공무원 내부에 만연한 잘못된 조직문화이다. 소위 일본말로 ‘오야붕’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패거리 조직문화는 그 뿌리를 일본제국주의의 역사, 그중에도 ‘천황 폐하’주의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조폭 문화라는 것이 있다, 그럼에도 내가 아는 한, 한국 조폭의 양아치 문화에는 나름대로 축적된 의리와 폼생폼사라는 얄랑한 규칙이 존재한다. 양아치 규율을 분명히 하되 서로를 감싸주고 재물과 이권이 생기면 함께 나누고 서로를 살필 줄 아는 문화이다.

그런데 김홍경 검사가 겪은 한국 검찰의 조직문화는 한국식 조폭의 양아치 문화만도 못한 일본식 오야봉 문화였던 것이다.

오야봉 조직문화의 특징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까라면 까야하는’ 식으로 무조건 상사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뿌리는 서구 제국주의의 아류로, 더욱 저급하고 악랄해야만 서구를 따라잡을 수 있었던 일본 제국주의의 탄생과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일제의 근성이 아직도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조직문화는 해당 조직이 존재해야 하는 역할과 근거와 당위에 기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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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위계와 철저한 상명하복을 특징으로 하는 일본의 오야붕 문화는 야쿠자는 물론, 일본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런 오야붕 문화는 국가 단위의 오야붕인 일왕을 전후에 존속케 하는 문화적 토양이 됐다. (사진 출처: http://hambara.tistory.com/80)

지난 30여 년간을 기업활동에 종사해온 필자는 여러 번 일본 중공업계를 대표하는 기업들과 거래한 적이 있었다. 꽤나 큰 거래여서 일본측에서 십 여명씩 내한해 계약이 끝난 뒤 회식자리를 갖곤 했다. 내가 대표이사로 있던 한국기업의 분위기는 술이 몇잔 들어가면 ‘야자타임’으로 넘어간다. 이쯤되면 상사와 부하 관계를 넘어서 형, 동생으로 변하고 평소 가슴에 담아온 이야기를 뱉어낸다. 보는 관점에 따라 틀리겠지만, 이는 한국에서의 매우 중요한 소통방식이고, 활력 요소인 셈이다.

그런데 일본의 기업문화는 전혀 달랐다. 모두의 시선이 오야봉에게 쏠렸다.  오야봉이 술잔을 들어야 잔을 들고, 젖가락을 사용해야 식사를 시작하는 식이다. 대한민국 남자가 겪은 군대문화 그대로였다.  

대동아 전쟁의 전범이었던 일왕이 전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는 일본 사회 전반에 퍼진 오야붕 문화가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오야붕 문화가 한국의 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공식모임에서 ‘이정호’라는 몹쓸 인간에 의해 재현되고, 친박 인사들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을 보면, 몹시 쓸쓸하다. 

 

다시 한번 박근혜 정부에게 묻는다. “대한민국은 누구의 정부인가”

행여나 일본 제국주의와 유신의 추억 속에서 엉뚱한 대답이 나오지 않기를 ! 이 땅위에서 또다시 ‘덴노 만자이’가 나오지 않기를 !

목, 2016/07/0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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