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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에 개벽대학을 세우자, 고려청우당을 재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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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에 개벽대학을 세우자, 고려청우당을 재건하자

익명 (미확인) | 금, 2019/03/29- 14:39

1. 개벽학과 고려학

작년에는 개벽파를 자처했습니다. 올해부터는 개벽학자를 자임합니다. 하노라면 나는 한국학자인가, 자문해 보았습니다. 냉큼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개벽학이 곧 한국학이라고 등치시키는 것에는 못내 주저케 됩니다. 본디 개화좌파였습니다. 20대 구미의 사회이론을 줄줄 외다시피 다녔습니다. 꼴에 반골과 몽니 기질은 다분해서 미국보다는 유럽을 선호했습니다. 독일어와 프랑스어 회화 테이프를 귀에 꽂고 캠퍼스를 누볐습니다. 농반진반으로 ‘모던 보이’시절이었다고 회고합니다. 하얗게 탈색된 머리칼을 휘날리며 유럽 배낭여행을 쏘다니던 때입니다. 퍼뜩 자각하고 자성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서방의 사상에 해밝아도 한국 사회를 온전히 해명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커녕 구미의 이론으로 한국의 현실과 현재와 현장을 난도질하며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변태적이고 병리적인 심리가 없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격정을 토해 비판하시는 것처럼 딱 개화에 중독된 ‘식민화된 영혼’이었던 셈입니다. 저 자신을 치유해야 했습니다. 제가 터하고 있는 땅과 해원하고 상생해야 했습니다. 제대 직후에 사회학에서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던 까닭입니다. (심지어 군대마저 카투사를 다녀왔습니다)

_개벽_ 창간호 표지

애초에는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코자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근현대의 기점을 ‘개항’으로 잡든 ‘개벽’으로 삼든, 지난 150년사는 주변 국가들의 역사를 모르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자각에 이르렀습니다. 영어는 물론이요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를 연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사보다는 동아시아사 연구로 들어선 연유입니다. 공부를 좀 하다 보니 근현대사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도 동아시아의 고전에 달통해야 한다는 자각에 이르렀습니다. 사서삼경부터 캉유웨이와 후쿠자와 유키치까지, 한문과 중어와 일어로 축적된 한자문명권의 유산을 한껏 흡입했습니다. 그러다 중화문명권의 또 다른 일각, 베트남을 경험하고 나서 유라시아 문명사학자로 회심한 것입니다. 기왕의 동아시아 감각으로는 동남아의 최북단에 자리한 베트남조차 온전히 해명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번 눈이 트이자 도저히 ‘중국사학자’로 30년을 보낼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3년 유라시아 견문을 감행한 까닭입니다. 1000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개벽파’이자 ‘고려인’으로 살겠노라 말합니다. 개벽파는 더 보탤 것도 없겠습니다. ‘고려인’이라 함은 한반도와 유라시아의 연결망이 가장 활발하게 작동했던 고려시대 사람들의 공간적 감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뜻입니다.

기실 ‘한국학’이라는 말부터가 고약합니다. ‘남한학과 북한학’이라고도 하셨죠. ‘남한학과 북조선학’이라고 해야 더 적절할 것입니다. 또는 ‘한국학과 조선학’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휴전선 이북에 자리한 저 나라는 1945년 이후 단 한번도 ‘한국’을 표방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학과 조선학의 창조적 대화로 정립하게 될 미래학을 ‘고려학’이라고 불러주고 싶습니다. 현재의 K-POP은 어제의 한류(Korean Wave)가 진화한 것입니다. 글로벌 문화산업과 토착의 풍류가 결합되어 창조적인 지구문화(Global Culture)를 발신하게 된 것입니다. 개벽학(K-Studies) 또한 기왕의 한국학(Korean Studies)을 돌파해 내야 합니다. 고려학으로 진화해야만이 지구학(Global Studies)에 값하는 신예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탐문해 봅니다.

그 개벽학과 고려학으로의 진화에 ‘중화’(中華)와 ‘개화’(開化)는 부채가 아니라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중화문명에 속해 있던 무렵 중화는 세계문명의 최정점이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미국의 속국으로 보낸 20세기에도 일본과 미국은 개화문명의 최첨단이었습니다. 불교 천년, 유교 오백년, 기독교 일백년의 역사 또한 비옥한 토양입니다. 동서를 망라한 유구한 문명의 유산이 이 땅에 축적되어 있는 것입니다. 중화를 섬기고 개화를 떠받드는 몰주체적 태도가 문제이지, 제국에 젖줄을 대고 맹렬하게 빨아들인 중화문명과 개화문명은 더없이 소중한 영양소라 하겠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그토록 두터운 문명적 유산이 켜켜이 쌓여 있는 장소가 그리 흔치 않습니다. 독창이란 외골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무릇 중도(中道)와 정도(正道)라 함은 사방팔방 사통팔달 활짝 열린 길일 것입니다. 중화와 개화를 포용하고 회통하는 문명횡단적 실험 속에서 비로소 개벽학은 만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화도 개화도 사절하는 북조선식 주체사상의 착종을 복제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유학도 버리고 서학도 방기한 주체사상은 옹졸맞고 앙상했습니다. 개벽학은 필히 개방적이고 반드시 개혁적이며 기필코 계승적이어야 합니다.

동아시아론이 허구라는 비판도 통렬한 맛은 있으나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힘든 주장입니다. 과연 1860년 이후 한중일은 각자의 길을 걸었던가요? 1860년 이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한중일은 전면적인 교류가 시작되었던 것이 아닌지요? 그 이전에는 소수의 지식인들만 상호 방문하고 교류하며 한자로 작동되는 ‘문예공화국’의 혜택을 누렸을 뿐입니다. 기층 민중들까지도 시장에서 일상에서 교류하게 된 것은 동아시아 내부의 상호 개항 이후라고 보아야 합니다. 즉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의 공간적 경험이 동아시아로 일대 비약한 것 또한 19세기 말부터입니다. 아니 ‘동아’(東亞)라는 개념 자체가 창출된 것이 그 무렵이라 하겠습니다. 물질적 실체가 분명히 작동했던 것입니다. 조선인들도 반도를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열도로, 만주와 연해주로, 또 중원의 대륙으로, 동아시아 감각이 폭발적으로 확장되었습니다.

1919년 한성에서만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열도에서도 북방에서도 중원에서도 다양한 독립선언서가 작성되었습니다. 그 역사성을 동아시아가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포착할 수 있을지요? 도쿄에서 최신 사상을 공부하고 상하이에서 독립 운동에 투신한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작품을 쓰고 베이징에서 혁명을 논한 경우 또한 숱합니다. 20세기 전반기를 수놓은 주요 정치인과 지식인과 예술인들의 거개가 ‘동아시아인’이었던 것입니다. 우파인 백범 김구도, 좌파인 몽양 여운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물며 물질개벽과 물자교류를 선도하는 상공인은 두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제3세계? 인도와 아프리카? 너무 나아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힌디어와 아랍어로 작동하는 인도양세계와 한국의 역사적 경험이 쉬이 접속될까요? 아프리카는 어마무진장 큰 대륙입니다. 사하라 이북과 이남은 딴 세계입니다. ‘영성적 근대’로 눙칠 수 있는 범위와 사례가 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침소봉대하면 곡학아세로 빠지게 됩니다. 20세기 후반의 한 시절을 풍미했던 제3세계주의에도 ‘자생적 오리엔탈리즘’의 혐의가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시나브로 수그러든 것입니다.

무릇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한 법입니다. 모든 인류애의 출발은 이웃애라고 생각합니다. 원수 같은 네 이웃부터 사랑하는 것이 지상천국 건설의 첫걸음입니다. 동아시아를 괄호에 치고 제3세계로 비약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생산적일지 저는 몹시 회의적입니다. 현실감을 결여한 관념론이기 십상입니다. 그보다는 한중일의 20세기를 대동소이(大同小異)로 접근하는 편이 더 생산적입니다. 개화파가 주류가 되어 ‘백년의 급진’을 질주했다는 점에서 오십보백보입니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틀로 보면 중국과 일본, 북조선과 남한의 사이에는 아득한 만리장성이 쌓인 것 같지만, 고금(古今)의 분단과 성속(聖俗)의 분화라는 개벽파의 눈으로 보자면 어금버금했던 것입니다. 동아시아를 버리고 제3세계로 비약할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를 딛고 동유라시아로 전 지구로, 온 우주로 도약해야 합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이소성대(以小成大)의 자세를 견지합시다.

물론 기성의 동아시아론에도 한계가 없지 않습니다. 아니, 적지 않습니다. 다만 허구이고 허상이서가 아니라 편향되고 편중되어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쪽은 유학 중심의 전통에 치우쳤습니다. <전통과 현대>, <상상>이 대표적이죠. 전자는 유교와 자본주의를 접속시키려 들었고, 후자는 도교와 문화산업을 접맥시키려 했습니다. 은근슬쩍 개화우파에 합세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습니다. 다른 한쪽은 개화좌파에 기울었습니다. 동아시아의 ‘진보적 지성’만의 결집을 꾀한 것입니다. <창작과비평>, <황해문화> 등이 선도했습니다. 돌아보면 ‘중화와 개화의 분단체제’가 여전했던 것입니다. 좌와 우, 보수와 진보의 분단체제도 역력했습니다. 그래서는 신문명의 신천지, 개벽천하가 도래하기 힘들 것입니다. 서학과 유학과 동학의 합작을 이끌어야 개벽학이 살아납니다. 유라시아(구대륙)와 아메리카(신대륙)를 잇는 허브로 자리매김해야 한반도를 지구촌의 접(接=hub)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한국학(Korean Studies)보다는 고려학(K-studies)을 제안합니다. 마침 올해 8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리는 국제고려학회에 참여합니다. 김일성 종합대 교수를 비롯한 북조선의 주요 학자들도 참가한다고 합니다. ‘지구적 고려학’(Global K-studies)의 산실이 될 수 있을지 눈여겨 지켜보려 합니다.

인류세와 다시 개벽 세미나

 

2. 물질개벽의 최전선

한국 인문학계의 활로는 ‘인문학’의 틀을 깨야 비로소 열릴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인문’(人文)의 근간이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지성지 <현대사상>의 올해 첫 특집도 ‘포스트-인문학’이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사람(人)만이 주체가 아닙니다. 식물도 동물도 사물도 만물이 주체의 지위로 등극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인간과 더불어 국가를 구성하고 역사를 추동입니다. 포스트휴먼, 트랜스휴먼, 네오휴먼 등 백가쟁명이 한창입니다. 이른바 ANT,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ctor Network Theory)은 현재 가장 세련된 사회이론인바, 인문학의 틀을 넘어섰기에 브루노 라투르의 독창과 독보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글(文)의 처소 또한 급변하고 있습니다. 종이 위의 텍스트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글은 이미 텍스트에서 데이터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텍스트를 꼼꼼히 읽어도 빅데이터가 제공하는 실상과 통찰을 넘어서기 힘든 경우가 번다합니다. 즉 기왕의 인문에 안주해서는 인문학의 출로가 생길 리 만무합니다. 다시금 천지인의 옛 지혜를 빌려야 하겠습니다. 천문(天文)과 지문(地文)과 인문의 삼문(三文)을 회통해야 하겠습니다. 천문은 하늘의 무늬를 천착하는 학문입니다. 지구와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입니다. 지문은 땅의 무늬, 세계지리와 세계역사를 탐구하는 문명학입니다. 하늘 천(天) 따 지(地), 집 우(宇) 집 주(宙), 천지와 우주부터 학습해야 지구 진화의 말단에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학문, 인문학도 살아날 것입니다.

선생님을 비롯한 일군의 학자들이 꾸린 하늘학회에 저도 종종 참석하지요. 천주교도도 있고 천도교도도 계십니다. 기독교 목사님이 원불교 경전도 공부하십니다. 서도와 동도를 가리지 않고 통섭하는 현장이 미덥습니다. 동학과 서학을 가르지 않고 융합하는 현실이 듬직합니다. 동/서를 나누지 않고 대도(大道)를 탐구하는 대학(大學)의 전범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함에도 아쉬움은 짙게 남습니다. 여전히 인문학자들만 모여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개벽학은 반드시 인문학 외통수를 경계해야 합니다. 동학을 품은 서학만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과학을 품은 도학이 요청됩니다. 도학을 담은 과학도 필수입니다. 필히 과학 공부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목하 미래의 추동력은 압도적으로 과학혁명으로부터 비롯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학부 시절 수학을 공부한 점 또한 현재의 철학 연구에 알음알음 생산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수학과 철학, 서학과 동학의 회통이 개벽학의 저변에 흐르고 있을 것입니다.

(왼쪽)SKEPTIC, (오른쪽)김기석 성공회대 총장의 _신학자의 과학 산책_

제가 개벽학당 세미나에서 한국 개벽사상의 주요 텍스트를 읽기 전에 인류세를 비롯한 최신의 과학담론부터 먼저 토론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개벽학당 강의에도 과학자를 자주 모시려고 합니다. <물질개벽의 최전선>이라는 강의명도 궁리 중입니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사물인터넷과 블록체인, 진화심리학과 후성유전학 등. 지지부진한 인문학에 견주어 과학의 질주는 눈이 부십니다. 맹목하지도 외면하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직시하고 직핍해야 합니다. 어떤 분이 좋을까, 요즘 삼청동의 과학책방 <갈다>에도 발걸음을 자주합니다. 과학 잡지 <SKEPTIC>은 정기구독을 시작했습니다. 널리 배우고 제때 익혀야 물질개벽과 정신개벽을 아우르는 독창적인 개벽학도 일구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성과 영성이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극한 이성과 극진한 영성은 궁극에서 아름답게 만날 것입니다. 작년 성공회대 총장으로 취임하신 김기석 선생님의 <신학자의 과학 산책> 또한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이분이야말로 ‘개벽학자’라고 하겠습니다. 김에 성공회대와 원광대학 사이의 공동학술연구를 제안합니다. 개화대학과 개벽대학 간의 대합창과 대합장을 권장합니다.

아울러 머리 공부로만 그쳐서도 아니 되겠지요. 21세기의 벽청은 20세기의 문청과 다르기를 바랍니다. 이성과 지성만 비대하게 성장하는 심신(心身) 불균형의 문학청년은 사절입니다. ‘입진보’의 비아냥 또한 과학 공부가 부족하고 몸 공부가 미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념 논쟁보다는 가설과 실험과 입증으로 실질적이고 실리적이며 실무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입놀림보다는 손발을 놀리고 몸을 써야 합니다. 체감하고 체득하여 육화된 언어, 육성으로 발화해야 합니다. 개벽학당에서 수련과 수양과 수행을 강조하는 연유입니다. 그래야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건강한 인재가 양성됩니다. 건강은 부강을 능가하는 최상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이야말로 삶의 기술(테크네)이자 살림의 예술(아트)입니다. 벽청들이 건강해서 저는 참 뿌듯합니다. 부암동의 그 아름다운 산세와 근사한 한옥도 모자라 텃밭 가꾸기까지 자청하는 모습이 더없이 예쁩니다. 신토불이(身土不二), 사람의 피부(身)와 지구의 피부(土)를 접촉하면 할수록 천인합일의 애틋한 사랑이 피어오르고, 천인합작의 우주적 영성도 깨어날 것입니다. 개화우파 국민과 개화좌파 시민을 넘어서 하늘을 쏙 빼다 닮은 개벽파 하늘사람을 지극하게 모시고 극진하게 섬깁시다.

 

벽청들이 가꾸어 갈 텃밭

 

3. 해방공간의 재재인식

천도교 청우당 로고

곧 꽃피는 4월로 진입합니다. 우리의 서신도 ‘포스트 3.1’로 이행하면 좋겠습니다. 동학혁명(1894)에 이어 삼일혁명(1919)도 끝내 좌초합니다. 한성을 지운 경성은 식민지 근대성으로 휘황한 개화도시의 아성으로 변모합니다. 모던걸이 득실거리고 모던보이가 우글거리는 소굴이 되었습니다. 기어코 삼세판의 기회가 열린 것이 1945년입니다. 도둑처럼 해방이 왔습니다. 광복(光復), 빛을 되찾아야 했습니다. 서둘러 조직을 재건한 것이 청우당(1946)입니다. 천도교의 이상세계를 세속에서 구현하는 전위정당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동학이 표방한 개벽국가 건설의 적기가 열리는 듯 보였습니다. 과연 청우당은 해방공간 남(접)과 북(접)을 잇고 엮는 범한반도적 연합정당으로서 매우 인상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20세기 후반에 제출된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개화좌파에 기울었습니다. 21세기 초엽에 등장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뉴라이트, 개화우파에 치우쳤습니다. <해방공간의 재재인식>을 위해서라도 남/북과 좌/우와는 별개의 접근이 긴요합니다. 정치와 종교를 아우르고자 했던 성-속 합작의 청우당 연구가 유력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북과 남에 모두 걸쳐있으면서도 남한과 북조선으로 흡수되지 않는 독자적인 국가건설 구상을 제출했기 때문입니다.

(왼쪽)해방 직후 재건된 청우당의 당원명부(함경도) 표지, (오른쪽)입당원서의 본문

특히 북접 2.0, 북조선 청우당이 이채롭습니다. 2월 8일에 창당합니다. 자부심이 남달랐습니다. 항일운동의 원조이자 적통을 자처했습니다. 1946년 창당의 뿌리 또한 1860년 동학 창건에 두고 있습니다. 유학국가에서 동학국가로, 자그마치 86년간 축적된 경험에 바탕하여 새 나라 만들기에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해방공간에서 우후죽순 등장한 신생정당들과는 족보가 달랐습니다. 과연 삽시간에 30만에 육박하는 당원을 확보합니다. 소련을 등에 업은 북조선 노동당에 못지않았습니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사회주의에도 어깃장을 놓았습니다. 유물적 경제만으로는 이상세계를 건설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필히 정신개벽이 수반되어야 하노라 역설했습니다. 고로 북조선에서 노동당과 청우당은 협력하면서도 경쟁하는 미묘한 관계였습니다. 미국식 자본독재를 비난함은 물론이요 소련식 무산독재도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적 신민주주의’ 국가를 선창했습니다. 서구형 민주와 동구형 민주가 아닌 동방형 민주, 개벽민주의 깃발을 휘날린 것입니다. 아슬아슬한 살얼음판의 곡예가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김일성이 아무리 항일무장투쟁에 열성이었다 한들 동학의 후예를 자임하는 청우당에 비하면 역사와 연륜이 모자랐습니다. 게다가 ‘왜놈’을 대신한 또 다른 외세 ‘로씨야’의 뒷배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었습니다. 친일파 개화우파를 이어 친소파 개화좌파로 이행한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청우당이 주창한 ‘조선적 신민주주의’는 좌우합작에 그치지도 않았습니다. 개화의 지존인 미국과 북방의 신중화로 등극한 소련이 융합하는 창조적 공간으로 한반도를 환골탈태시키는 지정학적, 지리문명적 구상력을 내장했던 것입니다. 북접 2.0(북조선 청우당)과 남접2.0(한국 청우당)을 아울러서 한반도를 아메리카와 유라시아의 허브로 전변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기획한 것이 ‘3.1재현운동’이었습니다. 미소공동위원회가 틀어지고 남북 분단이 굳어져 가던 1948년의 3.1절에 1919년의 3.1혁명을 재연시키고자 했습니다. 북과 남의 청우당이 합작하고 남과 북의 민중들이 연합하여 다시 3.1운동, 또 다시 개벽운동을 일으킬 것을 도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전선이 복잡하고 다기했습니다. 1919년처럼 다종교연합으로 대연정을 연출할 수 있을 만큼의 통일전선이 갖추어지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소련에 아부하고 미국에 굴종하는 내부의 기생 세력들이 세를 키워 갔습니다. 1948년 꾀했던 ‘다시 3.1운동’의 실패는 청우당의 쇠락에도 결정적인 사태였습니다. 노동당의 수장 김일성이 직접 청우당의 ‘우파’들에 대한 숙청과 축출에 개입하기 시작합니다. 레닌보다 수운 최제우를 높이 치는 청우당은 눈엣가시였습니다. 모스크바와 스탈린의 역린을 건드릴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청우당은 북조선 내 통일전선의 파트너(友黨)에서 노동당의 어용, 관제야당으로 강등됩니다. ‘조선적 신민주주의’가 만개하지 못함으로써 소련의 아류, 일당독재국가로 귀착된 것입니다.

분단체제는 거울상으로 작동합니다. 남쪽의 청우당 또한 쪼그라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직의 성격 자체가 변질됩니다. 수양과 경세를 겸장했던 교정쌍전(敎政雙全)은 온간 데 없이 사라집니다. 남북분단, 좌우분열의 난세 속에서 종교적 수행 운동으로 퇴각해 버린 것입니다. 대승을 버리고 소승에 귀의했습니다. 동학과 천도교의 특장을 스스로 기각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청우당이 정치 일선에서 자취를 감춤으로써 천도교의 정치운동은 사실상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미국을 등에 업은 개화우파의 적자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면서 개벽파는 역사의 최전선에서 퇴각해 버립니다. 1960년, 동학 창도 100년을 맞춤한 4월 혁명 4.19에서도 천도교의 공헌은 미미했습니다. 도리어 <군자들의 행진>에서 추적하는 것처럼 유림들의 활약이 적지 않았습니다.

강습교재중 천도교청우당론 표지

최후의 일격은 역시 한국전쟁입니다. 해방이 개벽파의 기사회생이 아니라 치명타를 가하고 치명상을 남기게 된 것도 한국전쟁 탓입니다. 북에서는 개화좌파가 득세하고 남에서는 개화우파가 득의양양하게 됩니다. 고로 분단체제의 심급 또한 단순히 남북분단과 좌우분열에 그치지 않습니다. 동학으로 싹틔운 자생적이고 자각적인 근대에 결정적인 사망 선고를 내린 격입니다. 남북을 막론하고 좌우를 망라하여 세속화 일방으로 일주했습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각기 서구형과 동구형의 ‘조국 근대화’로 내달렸던 것입니다. 그 조국은 1894년과 1919년에 염원했던 ‘나의 소원’, 동학국가와 개벽국가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내발적 이상향과 실제로 구현된 (분단)국가의 실상 간에 아득한 간극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분단체제의 알파이요 오메가입니다. 그러하다면 2019년 <개벽파 선언> 연재가 시작되었다 함은, 비로소 분단체제가 최종적 해체 국면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상징적 징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쓰라린 마음으로 청우당의 ‘가지 못한 길’을 쓸어 담고 있습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심정으로 그 실패와 좌절의 처절한 상처들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너무 혁신적이었습니다. 시대를 앞서갔습니다. 20세기에서 21세기를 먼저 살았습니다. 때가 맞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때가 무르익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련은 진즉에 제풀에 무너졌습니다. 미국도 돌이킬 수 없는 하강세에 접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세속주의 일방의 근대화가 한계점에 다다랐습니다. 탈세속화와 재영성화의 메가트렌드가 유라시아 도처에서 도저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정치적 영성’으로 성성했던, ‘성속합작’의 원조였던 청우당을 꼼꼼하게 복기하려는 까닭입니다.

1946년 8월 1일부터 <개벽신보>(開闢新報)라는 당 기관지를 주간으로 발행했다고 합니다. 1948년 4월 1일부터는 일간지로 발행했다고도 합니다. 1919년 3.1혁명이 <개벽>(1920)을 낳았고, 1945년 해방이 <개벽신보>(1946)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내년 창간을 준비하고 있는 가칭 <개벽+>는 촛불혁명의 결실일 것입니다. 참조해 보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허나 천도교중앙도서관과 독립운동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등에 자문을 구해도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하다고 합니다. 감질이 납니다. 당장 읽고 싶어 안달이 납니다. 해방공간의 ‘가지 못한 길’, ‘개벽하러 가는 길’을 복원해 내고 싶습니다. 올 여름방학은 모스크바에서 지내기로 결정지었습니다. 소련군이 수합했던 북조선 문서고를 샅샅이 뒤져보아야 하겠습니다. 21세기에는 가볼 만한 길일 것입니다. 아니, 가야 할 길일 텝니다. 개벽로(開闢路)야말로 지난 백년과는 다른 새로운 백년의 신작로일 것입니다.

벽란도의 유라시아 네트워크

<개벽신보>를 함께 읽고 논하는 세미나도 해보고 싶습니다. 당장은 개벽학당이 가장 어울리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충분치 못합니다. 한국의 벽청만으로는 미진합니다. 북조선에서도 벽청을 키워 가야 하겠습니다. 남과 북의 벽청들이 어울려 <개벽신보>를 함께 읽어가는 근미래를 내다봅니다. 장소 또한 평양이나 서울은 적절치 않습니다. 개성이 최적입니다. 개성은 본디 개경(開京), 열린 도시, 오픈 시티였습니다. 개경으로 이어지는 예성강의 끝자락 벽란도는 유라시아의 만인과 만물이 오고가는 허브(接)였습니다. 또한 개경은 최초의 대학, 국자감이 자리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21세기의 문명대학, 개벽대학을 세움직합니다. 개성공단은 재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 확대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대학을 세우면 청년과 지식인과 예술인들이 모여듭니다. 개성을 20세기형 산업단지, 공업도시로 만들어서야 쓰겠습니까. 21세기형 문명도시로 거듭나게 해야 합니다. 14-15세기의 베니스, 17-18세기의 암스테르담, 20세기의 뉴욕을 참조해 볼만 합니다. 응당 북과 남으로는 성에 차지 않습니다. 기왕이면 동북아연합의 국제개벽대학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개성에 개벽대학을 세웁시다. 그리고 ‘고려청우당’도 재건합시다. 그래서 그 개벽인과 미래인들이 주역이 되어 만들어가는 통일된 동학국가의 대망과 대업도 완수합시다.

개성의 국자감

‘해방공간의 재재인식’의 물꼬를 청우당으로 틔웠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의 개벽파가 어디 천도교뿐이었겠습니까. 그 푸르른 벗(靑友)들 가운데는 원불교도 있고 개신유교도 있으며 토착화된 기독교와 천주교 및 혁신불교도 없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소망과 소원들을 하나 둘 밝혀주고 새 숨을 불어넣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죽은 불씨를 되살려야 하겠습니다. 선생님이 해 주실 만한 이야기보따리가 적지 않으리라 기대됩니다. 맞장구와 추임새를 기대합니다. 만시지탄과 지청구도 없지 않을 테지만요.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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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예산을 염두에 두고 기획재정부에서 향후 경제운용계획에 제4차 산업혁명의 추진내용을 집어넣겠다고 뜬금없이 언론에 공표했다. 배경에 상관없이 한국 미래를 걱정하는 일단의 올바른 결정이다. 그러나 겉치레와 면피용 행정을 넘어서 제대로 방향을 설정하고 내실있는 성과를 만들어 가려면 치밀한 토론과 성찰이 필요한 주제이다.

이명박의 ‘녹색성장’과 박근혜의 ‘창조경제’같은 황당한 오류를 되풀이해서는 아니 된다. 마침 지난 2월, 제5회 백년포럼에서 다루었던 주제였기에 당시 보조 자료로 작성했던 내용을 약간 보완하여 다시 재구성 해본다.

수면 위로 떠오른 ‘4차 산업혁명’

올해 1월말, 스위스의 관광도시 다보스에서 2016년 세계경제포럼이 열렸다. 초기에는 주로 기업을 중심으로 경제인모임으로 시작되었던 다보스포럼은 매년 참여 범위를 넓히면서 정치인, 과학자들 그리고 많은 국가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들이 함께하면서 논의 주제도 매우 다양하게 확대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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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gereports.kr/)

수많은 인사들이 참여하였고 매우 광범한 주제들이 논의되었으나, 그 중에서도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주제가 단연코 핵심적 내용으로 부각되었다.

사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새롭다기보다는 미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이미 여러 해 전부터 회자되었으나, ‘다보스포럼 2016’을 통하여 화려하게 세계적 관심을 받는 주제로 떠오른 셈이다.

4년 전, 2기 오바마 행정부는 세일가스(Shale gas) 채굴기술의 성공 등에 자신을 얻어 ‘USA제조업의 부활’을 선언하였다. 미국 내 주요 제조 산업체들은 자신들의 고유 분야에 전통적으로 강한 유통과 서비스 그리고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험과 기술을 재결합시켜 제조 산업분야의 혁신을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에서도 오비이락처럼 물리학박사 출신인 독일의 메르켈수상이‘Industrie 4.0’을 주창하고 강력하게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대서양 양편에서 공식적으로 수면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첨단기술과 과학의 통합…새로운 차원의 산업혁명

제4차 산업혁명의 주요영역이 컴퓨터 기술과 인터넷 환경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이를 제3차 산업혁명과 분리하여 별도로 지칭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기존의 제3차 혁명은 주로 공장자동화, 사무자동화, 금융과 물류시스템 혁신 등에 집중하여 이루어지고, 개별기업, 개별산업, 개별국가 단위에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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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news.kbs.co.kr/)

반면 제4차 산업은 기존의 컴퓨터에 로봇기술, 인공지능(AI), 감지기술(remote sensors), 무제한적인 데이터 저장, 사물인터넷( IOT)의 등장, 네트워크간의 새로운 결합 등 새로운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누적 결합되면서 개별적 영역에 머물던 제3차 산업의 영역에서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과학과 기술의 통합된 형태 (integrated system of all modern & advanced S&T)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digitalization), 자동화(automation), 전기전자(Electricity & Electronics) 등이 중심기술로 역할하게 된다. 동시에 전 세계를 석권한 금융 산업과 지구적 차원의 생산거점과 시장을 확보한 글로벌 기업들에 의해 미래의 비즈니스 모델은 더 이상 한 지역과 한가지 산업에 머물지 않고 국가경계와 산업별 장벽을 넘어서 전 세계를 기반으로 하게 된다(end to end loops in integrated space & industry ).

자본재 및 소비재 시장의 수요가 감지기술 등에 의해 축적된 빅데이터(big data)를 통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되면 이러한 통계가 기존 제품의 생산 및 새로운 제품의 기획자료가 되어 유연하게 자동화된 무인시설을 통하여 생산과정을 거치면서 역시 무인화된 물류체계와 거점을 통하여 시장과 수요자에게 공급된다.

이 과정에서 생산 및 서비스 설비의 운영상태와 조건이 실시간으로 확인되고 종합되어 최적의 관리와 적정한 정비를 사전적으로 시현하게 된다.

예컨대 하늘을 나는 점보 비행기의 엔진과 주요 기능품 상태가 1초 단위로 항공사와 공급업체에게 실시간으로 제공되어 언제 무슨 제품의 어느 부품이 교환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안전한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한국에 설치된 발전소의 GE 주요 설비에 대한 운용정보가 원공급자인 미국 GE의 종합진단센타에 실시간으로 제공되어 본사에서 원격으로 해결할 것은 즉시 조치되고, 한국 현장에서 조치해야 할 사항은 실시간으로 현장기술자에게 통보되어 처리지시가 이루어진다.

앞서 가는 미국

이러한 이야기는 단지 인건비가 비싼 선진국 뿐 아니라 임금이 싼 중국같은 국가에서도 발견된다.

세계철도산업의 40% 를 차지하는 중국의 차량바퀴를 생산하는 공장의 경우 각 차량의 운용상태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종합되어 매일 생산해야 할 수요량과 사양이 무인과정을 통해 생산에 투입된다. 대부분 공정이 자동화되어 14억 인구가 매일 이용하는 철도차량의 바퀴를 생산하는 현장에는 10명 남짓한 종업원만 일하면 충분하게 된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실현되면 이미 구축된 정보시스템과 결합되어 자가용이 필요없는 시대가 된다. 또 다양한 감지기능 기술과 데이터 분석기법이 보편화되면서 산업활동뿐 아니라 개인의 일상적 요구사항을 손 안의 모바일 콘트롤러 또는 핸드폰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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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electronicdesign.com/)

미국은 이미 세계적인 독점을 형성한 소프트웨어 및 정보산업을 기반으로 대표적인 제조업체인 GE를 중심으로 Industrial internet consortium -IIC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GE 회장은 GE가 더 이상 전통 제조업체가 아닌 소프트 산업회사임을 선언한다. 반면에 아이폰 공급업체인 애플사는 자동차를 움직이는 컴퓨터(mobile computer)로 정의하면서 자율주행 자동차 생산을 암시하기도 한다.

지난 11월2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는 기술혁신이라는 특집을 통하여 한물 간 것으로 평가됐던 Microsoft 사를 재조명했다.

2015년 기준 120억불(13조원)이라는 엄청난 기술개발비를 인공지능(AI) 분야에 투자한 나델라(Nadella) CEO는 마치 빌 게이츠가 개인 컴퓨터 시대를 예측하고, 스티븐 잡스가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듯이, AI의 새로운 시대를 선언했다.

그는 모든 산업분야와 모든 일상생활의 영역(all walks of life, every industry & business process)에서 인간과 대화하고, 판단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AI 개발에 전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 일본, 중국의 대응

미국기업들이 화려한 소프트웨어 산업을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면, 전통적 기술을 기반으로 착실하게 종합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독일의 대표주자인 지멘스(Siemens)사는 2015년 하노바 산업전시회에 ‘Industrie 4.0’에 기초한 중형 규모의 유연 무인화 방식인 생산공장(smart factory) 및 기업경영 모델을 소개하면서 새로운 도전의 문을 열었음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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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zdnet.co.kr/)

일본은 전통적으로 강세인 첨단로봇산업에 전략적으로 집중하면서 새로운 산업의 핵심 영역을 차지할 기세이다.

중국은 거대한 인구와 시장을 배경으로‘next 10years project’를 통해 세계 제조업의 중심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한 각종 자동화산업에 주력한다, 예컨대 산업용 표준로봇이 유럽과 일본에서 2억-3억원 대 가격을 형성하는데 비해 중국은 1억원 미만의 로봇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소수의 일부 학자들은 컴퓨터 산업 및 인터넷환경이 인류에 미치는 영향은 증기기관으로 움직였던 철도산업에 못 미치며, 제4차 산업혁명보다 제2차 산업기에 만들어진 세탁기 발명이 훨씬 중요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제 인류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혁신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고 판단하며, 제4차 산업의 도래를 무시하는 태도는 기계화가 도입되던 시대의 러다이트운동처럼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될 것이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위협: 기술 격차의 확대

문제의 핵심은 이전의 산업혁명들은 노동과 일자리를 새로운 형태로 전환시켜 왔으나 (예컨데 제1차 산업혁명은 농업중심에서 공장제 제조업과 육체노동으로, 제2차 산업혁명은 근육질 노동에서 사무직 관리직업무로, 제3차 산업혁명은 서비스와 지식산업중심으로 이동시키면서도 과거보다 더 많은 일자리들을 만들어 냈다), 제4차 혁명은 기존의 일자리 형태를 바꿀 뿐만 아니라 많은 일자리를 단기간 내에 없앨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은 논쟁과 토론이 진행 중인 주제에 섣부른 예단은 피해야할 것이지만, 그동안 나온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몇가지 논쟁점들을 나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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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서울경제신문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인공지능(AI)과 바이오,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이 이끌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최대 부작용으로 양극화 심화가 61.7%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대량실업, 인간 효용가치의 하락, 기계의 지배 등 순이었다. (이미지 출처: http://www.sedaily.com/)

‘Industry 4.0’의 통합적 종합적 기능은 기존의 산업체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효율과 성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성과가 마르크스와 케인즈가 예언하였듯이, 모든 국가와 개개인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인류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행 과정에서 기업간, 국가간 개별 단위의 생존전략과 결합되어 경쟁과 탐욕으로 상호 간에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릴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할 것이다.

우선 빅테이타를 처리하는 핵심 중앙정보센타의 투자 규모만도 수 억에서 수 십억 달러에 달하며, 전체 시스템 구성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의 기술개발에는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가 요구된다.

따라서 이를 감당하기 위해 기업간 연합과 합병이 불가피하다. 위에 예로서 언급한 세계 최대 규모의 제조업체인 GE 조차도 다른 분야의 기업들과 연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투자의 위험을 상쇄하기 위해 경쟁사였던 프랑스의 알스톰(Alsthom)사를 합병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독일의 거대기업인 지멘스(Siemens)그룹만이 독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독자적인 실행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더구나 승자독식의 성격이 강한 핵심기술로서 정보산업, 소프트웨어 및 인터넷환경을 미국이 장악한 상태에서 새로운 기술제국주의의 위험성조차 내재되어 있다. 최근 구글 등 미국계 기업과 중국 및 유럽국가 간의 갈등은 이를 암시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과 더불어 세계 5위권 경제대국인 독일, 중국, 일본 및 인도 그리고 한국 정도가 겨우 국가 단위의 지원과 전략을 통해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외 대부분의 국가와 기업들은 종속적인 위치에서 부분적 영역에 한하여 하청 협력을 구해야 할 형편이다. 우리가 흔히 디지털 격차와 소외를 이야기하듯이 미래에 형성될 ‘industrie 4.0’은 그 규모와 기술적 수준에서 국가간, 기업간, 지역간 새로운 격차를 형성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4차 산업혁명의 위협: 사라지는 일자리

이미 언론에서 보도됐듯이, OECD 국가를 기준으로 500만명 정도가 수 년 안에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한다. 제3차 산업혁명의 진행과정에서 형성되어온 중간수준의 관리직의 약 50% 정도가 조만간 일자리를 잃고, 장기적으로는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육체적 노동 뿐 아니라 단순한 판단을 하는 관리직종 대부분이 사라질 위험에 있다고 전망된다.

문제는 기존의 산업혁명처럼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면서 기존의 직업군을 대체하고 보충할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로봇과 AI가 해낼 수 있는 영역에서는 더 이상 인간이 일할 기회가 없어진다고 보아야한다. 제4차 산업혁명이 만들어내는 기술영역과 인간영역 간 절충과 타협이 가능할 수 있을까?

표준적이지 않은 직업군으로 혁신(innovator), 발명(inventor), 전략분석(data interpreter), 경영판단(decision makers), 그리고 문화예술 활동 등은 별다른 영향없이 독자 생존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AI 기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답변일 것이다. 오히려 문제의 해결은 기존 방식이 아닌 새로운 개념으로 일자리를 재규정하는 것이다. 노예가 대부분의 생산 활동을 담당했던 그리스 도시국가 시절, 정치공동체 일원으로서 시민의 역할이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하나의 암시가 될 것이다.

낡은 관습과 제도를 버려라 

위에서 암시하였듯이, 미래의 교육에서 암기식, 주입식 교육은 완전 무의미해진다.

무심한 판사의 판결보다 AI의 사안처리 능력이 더 공정하고 투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단순한 회계학 역시 미래에는 on-line 방식의 회계시스템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따라서 미래의 교육은 제공된 정보와 지식을 재해석하고, 새롭게 창의하는, 한마디로 적용된 기술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으로 이동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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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쏜살같이 날아가는데, 교육은 여전히 근대 초기의 교육 형태로 남아 있다. 흔히 한국의 교육현실을 21세기 아이들에게 20세기 교사들이 19세기 지식을 주입하는 것으로 묘사하곤 한다. (사진 출처: http://www.k-today.com/)

산업체계 내에서는 복잡한 시스템을 운용하고 분석하고 처리하는 고도 수준의 전문영역군과 전략적인 판단을 하는 책임자군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성과를 모두가 공유하게 된다면, 업무시간도 대폭 단축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생산과 서비스 산업 영역에서 해방된 영역 – 교육, 문화, 연구, 취미, 운동, 사회활동 등에 주로 시간을 보내게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될지 모른다.

문제는 급격히 변해가는 혁신 환경과 새로운 산업체계 속에서 쏟아지는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는 시장수요를 만들지 못하고, 공유하는 순환의 과정을 형성하지 못하면, 제4차 산업혁명은 백악기 공룡과 같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와 스스로 고립된 조직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쇠퇴해갈 것이라는 점이다.

소비처가 없는 생산과 서비스는 무의미하다. 또한 지구라는 제한된 지리적, 자연적 환경 요인 역시 명백한 한계로 작동할 것이다.

한국처럼 극심한 양극화를 보인 미국 대선에서 보여준 버니 샌더스의 예언과 같은 외침, 유럽 내에서 급속히 퍼지고 있는 기본소득, 건전한 시장질서와 함께하는 공동체로서 사회국가에 대한 갈망 등은 이러한 새로운 사태를 예감하는 시대의 자각이다.

다보스포럼의 주요 토론을 담은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 한결같이 인류의 미래에 대한 각 단위별 지도자들의 책임에 무게를 두고 있다. 개인단위, 기업단위, 사회단위, 국가단위 그리고 국제단위의 지도자들의 책임지는 역할을 요청하고 있으며, 그 중에도 글로벌 기업들의 지배구조와 경영진 그리고 사회적 책임이 핵심적 주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단순히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중심의 편협한 경영에서 이웃과 함께 하는 사회공헌과 지구의 미래, 특히 지속가능한 에너지원과 환경조건을 기업경영의 본령이자 전략목표로 삼도록 하는 지배구조의 전환이 주요 주제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익실현이라는 자본의 탐욕을 기본 축으로 운영되는 기업의 속성을 감안하면, 과연 어떤 기업의 책임자가 스스로 자기 목에 동아줄이 될 방울을 달겠는가? 그나마 이러한 주제들이 국제 규모의 포럼에서 스스럼없이 토론되었다는 사실에서 새로운 희망은 시작된다고 위로를 삼는다.

혁신 친화적 사회시스템 만들어야

영국에서 제임스 와트가 만든 증기기관으로 인류역사의 전대미문의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프랑스의 발명가인 파팽이 먼저증기기관을 발명했다. 그러나 당시 유럽사회는 이러한 혁신기술을 받아들일 준비와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파팽이 발명한 기관을 달은 화물 증기선이 라인강에서 운행을 시작했지만, 곧바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길드조합원들에 의해서 파괴됐다.

그의 아이디어가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시피 강의 화물선에 적용되었으나 기술적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조만간에 자취를 감추고 만다. 산업적, 경제적 이해와 정치적, 사회적 제도의 차이가 증기기관의 발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둘러싸고 와트와 파팽의 운명을 갈랐다. 제4차 산업시대의 도래를 목전에 둔 한국사회에 매우 중요한 암시를 준다.

근세 유럽에 화약 종이 나침반 등 주요한 발명품을 선물한 중국은 자신들의 낙후된 봉건체제를 극복하지 못한 채 한때 전 세계를 누볐던 정화(鄭和)제독의 선단 이야기를 전설로 묻고 세계 GDP의 30-40%를 차지했던 풍요로운 역사를 뒤로 한 채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승수적 발전을 거듭한 조그만 섬나라 영국에게 아편전쟁에서 패하고 무릎을 꿇는 치욕을 당한다.

한글이라는 독창적 문자를 만들고,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틀’이라는 손기구를 발명하고도 이를 대량인쇄가 가능한 구텐베르크 방식의 기계로까지 발전시키지 못한 조선의 이야기도 동어반복이다.

목전에 닥친 제4차 산업혁명의 거센 기류는 ICT 강국으로 알려진 한국사회에게도 분명히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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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정치, 경제체제가 포용적이고, 혁신 친화적인가에 따라 그 나라의 운명이 달라진다. 사진은 인종과 자연환경이 거의 유사한데도 국경 담장을 사이에 두고 빈부격차가 뚜렷한 미국 아리조나주의 마을과 맥시코 마을. 사진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실린 사진.

당연히 과학기술의 발전과 산업적 적용이 일차적인 당면과제로 다가오겠지만, 특정기업에 대한 특혜와 줄세우기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정부는 일반적으로 개별기업과 혁신적 창업자들이 마음놓고 활동할 수 있는 개방된 산업 운동장을 만들어야 한다. 편향없는 적극적인 지원을 통하여 기술개발과 혁신활동을 일상화하는 환경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미국의 IIC 같이 경쟁을 보완하는 협력의 플랫홈을 유도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거대한 기술적 제국주의에 대응하여 국가간 수평적이며 독립적인 영역을 구축하기위한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종합적인 산업과 과학기술 정책에 더불어 입시와 서열중심인 현재의 양육식 초중등 교육제도를 핀란드 교육제도처럼 학생 모두를 소중히 여기는 창의적 프로그램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치 제도와 절차를 모두가 참여하고 모두에게 공의로운 제도로 재정립해야 한다.

기술개발과 산업활동의 결과를 0.1% 만이 독식하는 현재의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을 폐기하여 99%가 함께하면서 창의와 활력을 담보할 협력의 네트워크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본소득 개념처럼 내용의 성과물을 국민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시대 흐름의 요구를 시급한 과제로 받아들여 미래를 준비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제4차 산업시대의 한국의 미래는 실패한 파팽의 증기기관, 그리고 손기구에 지나지 않는 조선시대의 ‘금속활자판’ 이야기에 머물 것이다.

 

“강력한 성장은 강력한 제도에서 비롯된다, 특히 개방되고 포용적인 민주적 제도라는 조건에서 형성되는 혁신을 통해 이루어진다(‘The strong growth is all about strong institutions, particularly the open inclusive institutions of democratic system, which create the condition of innovation’ – in ‘Breakout Nations’ written by Ruchir Sharma.)”

수, 2016/12/1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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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른백년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단비뉴스팀과 함께 ‘사랑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6편에 걸쳐 우리 주변의 삶을 들여다본다. 장시간 노동자, 청년 실업자, 경쟁에 시달리는 직장인, 노인, 청소년들이 그들이다.  

노인은 말동무를 찾아 매일같이 탑골공원에 간다. 취업 못한 청년은 안전한 직장을 가질 때까지 스스로 고립된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직장인은 연인을 만날 시간조차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사랑은 사치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다. 

당신은 사랑하고 계십니까. 

<프롤로그> 1. “들어줘서 고마워”      2. 한국인의 밥상

<청년 실업자> 1. “사랑도 유예가 되나요?”  2. “연애도 사치일 뿐”   

<자영업자> 1. “주말도, 휴일도 없는 30시간 편의점이예요”  2. 쉽게 문 열고, 쉽게 망한다.

(이 글은  전남 광주에서 24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혜숙씨(가명)의 육성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런 형식을 ‘사람책’이라고 한다. 

또 이 글은 경향신문( “365일 하루 30시간 부부 맞교대…군대 간 아들 면회도 못 갔어요)에 전재됐다)

남편이랑 저랑 둘이서 13년째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어요. 아르바이트는 안 써요. 하루 24시간을 둘로 쪼개서 반반씩 근무하는 셈이죠. 저는 보통 새벽 3시쯤 일어나요. 식사를 준비해 놓고 도시락을 싸서 부지런히 집을 나서면 4시 반에서 5시 사이에 남편이 있는 가게에 도착해요.

아무래도 남편이 야간에 고생을 하니까 10분이라도 더 빨리 가려고 애를 쓰죠. 이때가 하루 중 남편과 제가 만나는 유일한 시간이에요. 교대시간 전후로 한 두 시간 남짓이요. 그 시간 동안은 둘이 목이 터져라 얘기를 하죠. 진상손님 흉도 보고, 못했던 잔소리도 하고. 그때는 손님도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손님이 오면 대화를 못하잖아요.

하루 2시간, 한 달에 이틀 반나절을 함께하는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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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쯤 남편이 집으로 가고 나면, 그날 팔 빵을 구워요. 우리 편의점은 빵이랑 쿠키를 직접 구워서 팔아요. 그리고 8시부터는 상온제품, 유제품 등 연달아 들어오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재고가 없는 건 추가 발주를 넣어요.

틈틈이 빵을 굽고 포장하면서 손님을 받다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요. 보통 오전 11시 전에 가게에서 첫 끼를 먹죠.

정오가 되면 근처 대학에서 학생들이 점심을 해결하러 몰려들거든요. 그 전에 해치워야 해요. 밥은 카운터 안쪽에 간이식탁을 펴놓고, 집에서 싸온 몇 가지 반찬이랑 먹어요.

어떤 날은 손님이 몰려서 한 끼 먹는 데 두 시간씩 걸리기도 해요. 오후 3시 반쯤 남편이 다시 오면 저는 집으로 돌아가요. 정말 하루가 금방 가죠.

편의점 일이 편하다는 말은 다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예요. 정말 혼자서는 손발이 모자라죠. 쉽게 생각하고 덜컥 편의점을 시작했다가 한 달 만에 두 손 들고 나가는 경우도 여럿 봤어요.

저희끼리는 24시간이 아니라 ‘30시간 편의점’으로 이름을 고쳐야 한다고 말해요. 혼자서는 도저히 창고정리나 청소를 하기 힘들어서, 교대시간 전후로 둘이 같이 근무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사실상 남편은 하루에 15시간 이상 가게 일을 하고 있어요. 자영업이 다 그렇긴 하지만요.

주말도 휴일도 없는 연중무휴의 도돌이표 하루

편의점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가정주부였고, 남편은 은행에 다녔어요. 은행 지점장을 7~8년 정도 했어요. 2000년도였을 거예요. 외환위기 칼바람을 간신히 피했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마지막 해고바람이 불었어요. 그때 명예퇴직을 당했죠.

남편이 40대 후반이었고 첫째는 고3, 둘째는 겨우 중2였어요. 돈 들어갈 일이 너무 많은 시기였죠. 남편이 작은 개인회사에 재취업을 했었어요. 그런데 자금을 끌어오고 영업을 해야 하는 일이라 남편이 많이 힘들어했어요. 그만뒀죠.

당시에 은행에서 받은 퇴직금도 있고 집에 목돈이 꽤 있었는데, 사기꾼이 붙더라고요. 사기도 여러 번 당했어요. 남편이 돈을 벌어보겠다며 주식도 하고 사업투자도 했지만 다 여의치 않았어요.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그때 지인이 편의점을 하고 있었어요. 물어보니, 편의점은 장사경험이나 별다른 수완이 없어도 해볼 만하겠더라고요.

그때는 편의점 매출이 많지 않아도 본사에서 점주들한테 최저수입을 보장해주기도 했고. 그렇게 알음알음 시작하게 됐어요. 본사에서 주는 최저보장금이라도 다 챙겨보자고 생각했죠.

매장을 세 번 옮기면서 편의점을 하는 12년 동안, 제가 몸이 아팠을 때 잠깐 빼고는 아르바이트를 쓴 적이 없어요. 저희는 편의점을 처음 할 때 누군가에게 뭘 팔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컸어요. 지금도 서로 “장사는 정말 나랑 안 맞아”라고 말하죠.

영업을 잘해서 떼돈을 벌 자신도, 능력도 없었어요. 인건비를 줄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몰랐죠. 그래서 초기에는 둘이서 하루에 열대여섯 시간씩 근무하며 일을 배웠어요. 편의점이라는 게 쉬는 날이 없잖아요. 가게를 시작한 뒤부터 12년째 저희 부부는 주말도 휴가도 없이 집과 가게만 오가며 지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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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부부는 끼니 때가 되면 편의점 한 구석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을 허겁지겁 먹는다. 사진은 김씨가 싸온 도시락 모습.

요즘에는 제가 몸 관리를 하느라 일주일에 세 번, 퇴근 후에 운동을 다니긴 하지만 집에 가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자려고 하죠. 몸이 너무 힘드니까. 하루 대여섯 시간 정도 자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는 아들 방학 때만 기다려요. 기댈 곳은 우리 아들밖에 없으니까. 둘째 아들이 다른 지역에서 대학원을 다니는데 방학이면 집에 와서 가게 일을 도와주거든요. 아들 덕에 일주일에 하루 이틀만 가게를 쉬어도 감지덕지죠.

편의점과 집 밖에서는 잠수인생

저희는 아들 둘 다 군대 면회를 한번도 못 갔어요. 첫째는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입소할 때 데려다준 게 끝이었고, 둘째는 면회는커녕 군대 갈 때 데려다주지도 못했어요. 편의점을 하니까 하는 수 없었어요.

그러다 잠깐 편의점을 쉬었던 5개월 동안 집에 있으면서 애들 밥해주고 집안일하면서 보냈는데, 작은아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엄마가 집에서 밥을 해준다고. “엄마, 너무 좋아. 너무 좋아” 그러더라고요. 미안했어요. 둘째가 중2 때부터 제가 편의점을 한다고 집에 없었으니까요.

저희가 친정이나 시댁 식구가 참 많은데, 결혼식 등 경조사에 참석 못한 지도 10년이 넘은 것 같아요. 못 갔어요, 한번도. 가려면 또 대충 하고 갈 수는 없잖아요.

남편도 저도 365일 24시간을 편의점과 집만 왔다 갔다 하니까 입고 갈 옷이 없는 거예요. 애들 아빠도 회사 다닐 때 입던 낡은 양복 밖에 없고. 그런 상황이 돼 있었어요. 옷을 사고 구두를 사고 또 준비를 하고, 그러기가 싫었어요. 여유도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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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남편은 은행지점장으로 일했지만 2000년 갑자기 정리해고를 당했다. 사진은 1998 외환위기때 대량해고를 당한 한 은행원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모습 (사진 출처: http://www.gokorea.kr)

친구들이 자식 결혼한다고 연락이 오면, 저는 몸이 아파서 못 간다고 하고 애들 아빠는 일 때문에 못 간다고 말해요. 그래서 저희 부부는 우리 아이들 결혼할 때 아무도 안 오겠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친정어머니가 치매예요. 처음에 남매들끼리 돌아가면서 돌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편의점 일을 하면서는 제가 어머니를 모실 수 없잖아요. 그때가 두 번째로 했던 편의점 매장 계약이 종료되고 잠깐 쉴 때였는데, 새로 편의점을 열기 전까지 한 20일 정도 저희 집에서 친정어머니를 모셨어요. 이게 마지막이다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어느 날은 오빠가 전화를 해서 “이제 네 차례니까 네가 좀 모시라”고 하는 거예요. 전 “다들 사는 거 바쁘고 힘들어서 집에서 어머니 모시기 힘드니까 요양원에 가시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독하게 말해버렸어요.

남편이 은행에 다니고 제가 집안 일만 할 때는 사교모임이 많았어요. 취미생활도 하고. 그런데 편의점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친구들 모임에도 제가 먼저 잠수를 타게 되더라고요. 계속 모임에 나가지 않다보니 연락이 점점 줄고 자연스럽게 아무도 안 만나게 됐어요.

지금은 같이 편의점 하면서 알게 된 친구 말고는 연락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종일 편의점에 있다 보면 전화 통화를 하다가도 손님이 오면 끊어야 하고, 시간 내서 누굴 만나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동네 주민 모임은 회비만 내고 있어요.

자주 오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편의점은 단골 개념이 적기도 하고, 손님들과는 절대 친하게 안 지내요. 되도록 말 섞지 않으려고 하죠. 외상을 달라고 하거나,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거절하기 어려워지거든요. 또 까딱 잘못하면 사기당하니까. 몇 걸음만 가면 근처 편의점이 두 곳이나 있는데 거긴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주인 얼굴도 몰라요.

저희 부부는 편의점이나 집이 아닌 곳에서는 일종의 잠수를 타고 있는 거예요. 사회생활, 사적인 생활 모두에서요. 라디오에서 저와 비슷한 사연만 나와도 꺼버리고 독하게 일만 했어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이런저런 관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마음 아파하지 않기로 했어요. 살다보니, 외롭고 슬프고 그런 감상에 젖어서는 내가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감정이 늙어버린 것 같아요.

“자식들 때문이 아니면 이걸 왜 하겠어요?”

두 번째 편의점 계약이 만료되던 때가 저희가 편의점을 시작한 지 딱 10년째 될 즈음이었어요. 처음 가게는 유흥가에서 했고, 그 다음 가게는 중학교 앞에서 했는데 술꾼들, 사고치는 중학생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사람들한테 굉장히 치였죠.

정말 편의점 하면서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다고 느꼈을 정도예요. 오는 손님들도 다 미워 보이고. 그래서 계약이 만료되면 다시는 편의점을 안 하려고 마음먹었었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행이나 다니면서 푹 쉬려고 했어요. 그런데 쉬면서 수입이 딱 끊기고, 있는 돈만 쓰니까 금방 불안해지더라고요.

연금 조금 나오는 것 가지고는 생활하기 힘들어요. 우리가 앞으로 10년만 살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살지도 모르는데 한 푼이라도 더 벌어놔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다른 일을 해보려고 집에서 가까운 직업훈련소에 몇 달 다녔어요. 저는 제봉을 배우고 남편은 양재를 했어요. 편의점을 그만두고 앞으로는 무조건 둘이서 붙어 다니자고 합의를 했거든요. 계속 서로 못 보고 살았으니까.

2개월 넘게 다녔는데 전망이 너무 없어서 그만뒀어요. 직업훈련소는 별로 쓸모가 없어요. 정부는 왜 그런 데 돈을 쓰나 몰라요. 그러고는 5개월 만에 다시 편의점을 열었어요. 남편이랑 편의점 쪽은 쳐다보지도 말자고 했었는데, 다시 24시 편의점을 하게 된 거예요. 이 나이에 저희가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편의점을 다시 하게 된 건 아이들 때문이라고 볼 수 있죠. 자식들이 다 독립했으면 저희가 왜 이걸 하고 있겠어요?

첫째는 아직 경제적으로 자리를 못 잡았고, 둘째는 취직 대신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했으니까요. 우리 애들 나이가 서른넷, 서른하나예요. 예전 같았으면 벌써 독립해서 장가갈 나이인데 아직 그러지 못해서 저희 부부가 이러고 있죠.

저희 또래들이 요즘에는 다 자식 때문에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는 것 같아요. 세상이 그렇게 변해서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참 힘든 건 사실이에요. 힘들어요.

가게를 그만두면 남편과 여행을 가고 싶어요.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한번도 못 갔어요. 그런데 자식들 결혼도 안 시켰고 아직 할 일이 많아요. 사회적으로 복지가 최저생활이라도 가능한 정도만 지원되면, 저희가 편의점을 그만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월, 2017/02/2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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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칼럼 ‘한국경제, 죽어야 산다’에서 현재 한국산업구조의 근육질적 경직성을 지적하고 격변하는 외부환경에 응동할 수 있는 유연한 연성구조로 전환하여 급작스런 실패와 외부적 충격을 대비할 것을 제안하였다.

경직성과 더불어 한국경제가 지닌 심각한 위험요소는 주요재벌 그룹에 지나치게 편중되거나 의존되여 있다는 것이다. 재벌들이 봉건영주처럼 군림하는 한국경제의 위험한 현실은 2015년 기준으로 상장된 싯가총액의 약 45%를 10대 재벌이 점하고 있고, 특히 삼성전자과 현대자동차 계열 양대그룹이 삼분지 일에 해당하는 30% 수준을 차지하고 있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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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최대 리스크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그 중에서도 삼성, 현대 등 일부 재벌의 집중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자료: 홍종학 경제정책연구소)

삼성, 현대가 무너진다면?

우리가 매일 북한문제를 매우 심각한 문제로 다루고 있지마는 오로지 경제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남한 경제규모의 5%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북한경제수준이다. 자연히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그룹이 실패하여 파산될 경우 한국사회와 산업에 미치는 파장과 부담은 북한붕괴보다 훨씬 클 수 있다고 판단된다.

사정이 이렇게 중차대함에도 불구하고 양대그룹의 주요 결정이 소수의 총수가족들에 의해 족벌경영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대한민국 5천만 국민들의 운명을 이씨와 정씨 가문들이 사실상 틀어쥐고 있는 셈이다. 김동춘 다른백년 연구원장이 이런 모습의 한국을 ‘기업(영주)국가’로 명명한 것은 지극히 타당하며, 이러한 사회경제적 조건하에서는 박근혜정부 관료들은 이들 재벌가문의 마름에 불과할 뿐이다.

한국정부가 북한의 붕괴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하듯이, 당연히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그룹이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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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현대가 망하면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 한국경제가 통째로 망하진 않아도 워낙 이들 기업의 비중이 커서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들 기업의 혁신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관심이 클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ilyoeco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58)

혹자는 필자가 일어나지도 일을 침소봉대 과장하여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킨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이러한 비난이 맞기를 바라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지만, 불과 수 년전까지 핸드폰 분야의 절대강자였던 노키아의 몰락과 현재 선진국들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자동차 산업의 창조적 단절적 격변과정을 지켜보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국경제는 현하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 보다 책임있는 자세다.

더구나 마른날에 폭우와 장마를 대비하는 것이 위기관리대책의 기본원칙이다. 요즘처럼 날씨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삼성은 안전한가

국가 또는 정권이 해야 할 가장 주요한 책무가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다. 2016년 현재 대한민국의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일들은, 오로지 정권유지를 위해서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여 사드배치 등 온갖 분란을 일으킬 것이 아니라, 1)기후변화에 따른 전력 및 에너지정책, 2)자연재난 방지대책, 3)외생 바이러스가 가져올 대규모 질병위험에 대한 검역과 의료체계, 그리고 4)불안정한 재벌 독과점에서 오는 금융과 산업적 위기(contingency)을 예측하여 사전적 예방적 점진적으로 위기요소들을 분산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현재의 박근혜 정권은 무능한 정도를 넘어서 한국의 미래를 자해하는 재앙적 집단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를 들여다 보자. 2015년 기준으로 계열사를 제외한 전자사업 분야만 연 200조 매출에 25조 수준의 영업이익을 내는 세계적 규모의 매머드급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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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포트폴리오는 거의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색가전,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 등이 경기변동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상호 완충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런 삼성도 극심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안심할 수 만은 없다.

사업분야도 백색가전, 반도체와 액정판넬, 모바일통신기기(IM)와 관련전자 부품 등으로 4-5개 영역으로 다변화되여 있고, 생산거점과 수요시장도 국내외를 포함하여 지역별 권역별로 균형적으로 잘 배치되여 있다. 겉으로 보면 난공불락의 요새로 대한민국이 자랑할 만한 간판 기업임에 틀림없다.

가전분야

사업분야별로 내용을 개략적으로 들여다보면, LG와 함께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가전분야는 다양한 제품과 디자인의 구성으로 당분간 위험요소가 없어 보인다. 가전제품 수명과 시장의 수요특성상 단기적이기보다는 3-5년 단위로 중기적 변동과 충격이 예상되며 핵심은 일상적인 기술개발과 혁신역량을 유지하는데 달려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시절 절대 강자이였던 일본의 소니와 유럽의 필립스 등이 지금은 잊혀진 존재가 되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장기적 몰락은 삼성과 LG에게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

디지털시대의 쌀이라고 할 반도체와 액정판넬은 천문학적 투자규모와 세계일류수준의 생산기술을 강력한 보호막으로 내세워 세계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아마도 한나라의 모든 물적 인적 자원을 독점할 수 있는 한국적 재벌체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거대한 자국 수요를 기반으로 삼성을 능가할 수 대규모 투자를 암시하고 있고, 일본과 대만이 손잡고 기술과 규모의 양면에서 한국업체들을 항상적으로 협공하고 있다. 액정판넬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비메모리 반도체분야에서 경쟁적 입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그동안 상대적으로 안정된 수익을 즐겼던 위치에서, 조만간 적자를 감내하면서도 시장점유률 방어에 급급한 형세로 바뀔 수 있음을 예고한다.

조선분야에서 경험했듯이, 잘못되면 천문학적으로 이루어진 고정자산에서 발생하는 과다한 관리비용이 삼성전자라는 개별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경제전반에 역풍을 불러올 위험성이 상존한다고 할 것이다.

모바일과 부품분야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분야는 역시 모바일통신기기와 부품사업 분야이다. 삼성내 부품사업 분야의 수요는 대부분 삼성전자 자체수요이다. 따라서 모체인 삼성전자가 잘못되면 부품사업 분야는 대부분의 판로를 상실하고 파산할 수 밖에 없다.

협력사들의 기술을 편법으로 갈취하는 등 많은 전문기업들의 희생위에 자신들만의 계열자회사를 일방적으로 밀어주며 성장한 재벌들이 국민경제에 매우 심각한 폐해를 끼치는 지점이다. 잘 나갈 때는 사업수익을 사적형태로 독점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계열전체가 동시에 무너지면서, 어쩔 수 없이 공적 영역인 금융과 재정 등이 동원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하여 국민경제의 또 다른 폐해와 부담을 요구하게 된다.

IM분야는 항상 창조적 기술이 급작스레 단절적으로 적용되는 영역이다. 1년 미만 단위의 초단타 혁신으로 기업의 생사존망이 결정되는 항상적 전투지역이다. 지금까지 너무나 잘 선방하고 있는 삼성의 IM사업부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노키아의 경우에서 보듯이 한때 핀란드 경제의 4-5% 비중을 차지했던 한 기업체의 파산으로 혁신과 교육의 일등국가로 알려져 있는 핀란드가 지금까지 수년간 심각한 마이너스 성장으로 뒷걸음질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안심할 수 없어

현대자동차그룹은 규모면에서는 삼성전자의 절반도 안되지만 수천개 부품들의 조립으로 이루어지는 동시에, 기계 금속 전기 전자 화학 등 여러 산업분야의 종합적 협력을 필요로 하는 자동차 산업의 특징을 감안하면, 제조업분야에 대한 파급력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오히려 삼성전자그룹보다도 크고 중요한 기업군이다.

IMF 위기 당시, 전세계 자동차산업 환경속에서는 BIG 3 만이 생존할 수 있다고 발표한 보스톤 컨설팅의 예측보고서(미국의 기업사냥꾼을 위해서 준비된)를 비웃기나 하듯이 세계시장의 강자로 우뚝 선 현대자동차그룹은 한국 국민의 자존심이다.

현대차의 고전을 예상했던 필자에게도 현대차의 선전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그러나 현하 자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술혁신과 사업모델의 변화는 조만간 자동차산업 분야에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전기자동차

미국의 테슬라 사를 필두로 전기자동차가 실제로 양산되여 도로를 달리고 있는 현실은 지난 백여 간 자동차 동력기술의 중심였던 내연기관이 전동기 또는 Fuel-Cell(수소에너지)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으로 산업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리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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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자동차산업은 전기차로 넘어간다는 전망이 많다. 현대차도 이에 대비하고 있지만, 과연 경쟁에서 살아남을지 불확실성이 크다. 사진은 테슬라의 전기차 모습. (사진 출처: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10710594973854)

새로운 동력기술에 대해서 한국의 산업계는 별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설령 현대자동차 측에서 R&D 수준의 차량을 개발한다 해도 이는 주요 기능품들을 외국의 선진기술업체에서 도입하여 껍데기만 씌운 것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미래의 산업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하여 무인운전차량이 시장에 보급되고 확산되기 시작하면, 우버 등이 시작한 콜택시 사업에 더하여 미국에서 보편화되기 시작한 차량공유시스템인 집카가 급속히 확산될 수 있다.

공유 자동차

집카의 개념은 자신의 차량을 소유하지 않고도 대규모의 공유시스템을 통하여 필요한 시점에 차량을 요청하면 언제라도 요청지점 근처로 편하고 신속히 차량이 배치되고, 사용한 후엔 하차지점을 통보하고 주차시키면 다음 사용자가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차량의 공유네트워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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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여러 명이 필요에 따라 공유하는 시대도 성큼 다가왔다. 사진은 공유차 비즈니스 모델인 집카. (사진 출처: http://www.wikitree.co.kr/main/ann_ring.php?id=48788&alid=67194)

현재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차량의 운전점유시간을 생각해 보면 쉽게 판단할 수 있다. 대부분 하루 일과 중 차량운전시간은 2-3시간 뿐이다. 출퇴근을 공공교통기관을 이용한다면 이 시간은 더욱 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콜택시와 차량공유시스템이 보편화되면 자동차를 개인적으로 소유할 필요가 격감할 것이다. 상상의 영역이 아니라 미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이다.

이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이제부터 양적 생산규모를 확대하는 것은 미래의 자살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편에서는 격변하는 기술 혁신의 경쟁을, 다른 한편에서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통째로 변해가는 과정을 겪어 나가야 한다. 이는 현대자동차가 속한 단일 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계 금속 전기 전자 화학분야 등 한국산업 전체를 재구성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동차회사들은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제조업에서 생산을 넘어서 공유자동차중심의 서비스 네트워크와 정비기술과 금융제공을 혼합한 새로운 사업모델로 변신을 준비해야 한다는 예고편이기도 하다. 동시에 재료 및 부품 생산과 수송중심으로 편재되여 있는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와 협력사들도 단절적인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서도 삼성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전문기업을 수탈하며 독점이익을 형성한 재벌계열의 갇혀있는 구조가 국민경제에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를 재확인하게 된다.

다행인 것은 자동차운용에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용해야하는 인프라와 규칙이 선결되어야 하며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급작스런 변화가 오기 어렵다는 점이다. 점차적인 실행과정에 충분한 적응과 변신의 시간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보여진다.

두 기업의 혁신 이야기: 코닥필름과 후지필름

위에서 필자는 한국산업이 가지고 있는 재벌중심의 경직된 구조를 유연한 연성구조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와 독과점체계를 벗어나 협력과 공유를 중심으로 수많은 전문기업과 중소기업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산업클러스터적 조건과 환경조성이 시급히 필요한 배경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시각으로 국민경제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그룹의 사업내용을 개략적으로 분석하여 보았다.

이제는 한물이 간 필름산업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였던 미국의 코닥과 일본의 후지필름의 경험사례를 소개하면서 한국정부와 기업들이 참조할 만한 내용을 살펴 보려한다.

이들 기업들의 사례는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면 모두가 대충 알고 있는 내용으로, 후지필름사는 혁신과 사업모델의 변신에 크게 성공한 사례로 언급되고 있는 반면에 코닥은 완전히 몰락한 퇴물로 취급되고 있다. 기업단위로 보면 위의 이야기가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필자는 개별기업이 아닌 지역경제라는 다른 시각으로 코닥의 새로운 역할과 지역사회에 보여준 남다른 기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후지필름의 도약

필름이미지 산업은 1990년을 정점으로 디지털 카메라가 대량 보급되면서 세계시장규모가 급격히 축소하여 2000년경에는 매출규모가 1/10 이하로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필름산업분야의 3대 업체로 불리웠던 독일의 아그파 필름이 2005년에 진즉 파산하고, 2012년에는 한때 세계시장의 70%까지 석권했던 코닥사가 재무불능상태를 선언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함으로서 전설의 시대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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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코닥사 규모의 10% 수준에 머물러 줄곧 ‘코닥타도’를 외쳐 왔던 후지필름이 2003년에 평직원으로 입사하여 30년 넘게 자사 근무를 했던 시케시타 고모리를 회장으로 지명하고 회사전략을 ‘탈필름산업’으로 전환하면서 혁신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당시 회사 매출의 57%를 점했던 이미지 솔루션 사업부( 필름과 카메라 등 광학기기 )를 대폭 축소하고 15,000명 종업원 중 이미지솔루션 사업분야 직원을 중심으로 5000여명 해고 하는 등 고통의 시간을 겪는다.

필름산업을 통해 획득한 화학공정과 약품 그리고 광학 및 영상처리 기술 등을 기반으로 새롭게 정보솔루션( 화장품, 의약품과 의료기기 등) 사업부를 대폭 확충해 간다. 이 과정에서 1962년 합자로 출발했던 후지제록스(다큐멘트솔루션 사업부로 매출의 40%를 담당했다)가 매우 중요한 사업적 재무적 기반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일본기업들이 정체되거나 축소되고 있던 2000년대 10여년 동안 후지필름은 40여개의 관련업체들을 인수합병하면서 2013년에는 매출규모가 두배로 늘어난 2.2조엔 그리고 종업원 8만명의 규모로 성장한다. 특히 적자기업인 도야마 제약회사를 인수하여 에볼라 치료제인 ‘아비간’을 개발하여 양산체제에 들어가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

2013년 기준으로 한 매출 2.2조엔의 구성에는 카메라중심의 이미지솔루션 사업부 비중이 13%로 축소되고 화장품과 의료중심의 정보솔루션 사업부가 급속히 확대되여 41%선을 차지하며 기존의 제록스사업부가 역시 45%선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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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후지 필름의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고모리 시게타카. 고모리는 필름 매출 하락을 상쇄시키기 위해 제약, 화장품을 자회사로 설립하는 등 뼈를 깍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세계를 주름잡던 필름산업의 주요 업체들이 파산하거나 몰락하고 일본경제가 축소일로의 어려운 과정속에 있었음에도 암울했던 10여년 기간에 매출을 두배 이상 신장시킨 놀라운 성과를 낸 것이다. 일본 경영계에서 고모리씨를 경단련(한국경총에 준하는) 회장으로 모시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이러한 성공의 비결에는 전문경영자의 탁월한 예측능력(risk-hedging), 후지필름사의 기본에 착실한 기술력, 다중적 기업을 지향하는 일상적인 혁신프로세스(open innovation hub 운용), 개방적인 기업문화와 선진적인 경영기법에 더하여 이해관계중심( 사회, 환경, 고객, 주주, 파트너 및 종업원의 균형적 배려, www.fujifilm.com 참조)의 기업철학도 큰 몫을 했다.

사실 재무지표를 보면 별로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는다. 영업이익율 8-10%, 자본이익율 ROE 4-5 % 등 일반우수기업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반면에 R&D 투자액에 영업이익에 접근하는 6-7% 선을 계속 유지하며 지속적인 혁신과 인수합병을 추구하는 점, 회장 자신이 8만명 종업원의 한사람일 뿐이라고 겸손하는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기업문화, 그리고 변하는 환경과 시장조건에 사전적으로 철저하게 대비하는 전문경영능력 등이 높이 평가할 만 하다.

산업구조 조정기에 들어선 한국업체들이 당연히 본받고 깊이 연구할만한 내용이다.

코닥필름의 몰락

반면에 1881년 조지 이스트만이라는 걸출한 인물에 의해 설립된 코닥사는 2012년 법정관리신청에 들어갔고 한때 전세계에 종업원이 15만명을 거느렸던 대기업이 2015년 현재 종업원이 천명 이하로 추정되는 규모로 축소 몰락하였다. 한때 코카콜라와 맥도날드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던 브랜드로 1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코닥 본사의 건물을 해체하는데 불과 18초가 걸렸다는 비아냥을 듣는 신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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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닥의 몰락에 대해서는 많은 경영학 전문가들의 연구발표가 있어 왔다. 사실인즉 1975년에 세계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한 업체가 다름아닌 코닥사 자신이였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핵심적인 몰락의 가장 큰 이유는 존속기술과 현재이익에 집착한 기득권의 함정(active inertia)이였다는 것이 중론이고, 중국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무리한 계약을 체결했다가 입은 상당한 손실, 회사의 내용에 익숙지 않은 연봉거액의 외부경영전문가 영입에 따른 잇따른 실책 – 후지필름은 자사에 30년 이상 근무경험이 있는 고모리씨를 회장으로 지명한 사실과 비교해 볼 것- 그리고 파괴적 혁신을 시도한 사업모델이 연속적으로 실패한 점 등을 이야기한다.

망할 때는 코닥처럼 망해라

필자가 전달하고 싶은 주제는 코닥이라는 전설적 기업의 흥망사가 아니라 코닥사가 위치해 있던 ‘로체스터’지역이 코닥몰락 이후에 보여준 남다른 모습에 관한 것이다.

대규모 제조업체가 몰락한 도시는 rust-belt 라 불리면서 황폐해져가는 것이 미국사회의 상식이였다. 자동차산업의 메카였던 디트로이트, 동부의 산업중심지였던 필라델피아와 볼티모아 등이 이 경우에 속한다.

한때는 6만명 정도가 코닥본사에 근무했다가 이젠 천명도 못미치게 된 ‘로체스터’지역도 당연히 rust-belt 로 전락하리라 쉽게 예상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코닥이 몰락한지 십 여년이 지난 2015년 현재 ‘로체스터’의 경제지표가 미국내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우수한 지역에 속하며, 오히려 새롭게 9만여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면서 실업률도 미국평균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잘못된 대기업의 몰락, 大馬必死가 하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지역경제를 부활시키고 활성화시킨다는 轉禍爲福의 매우 소중한 사례이다. 어떤 요인들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까 ? 거제와 울산 등 현안 지역를 지닌 우리의 뜨거운 관심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몇몇 신문사들과 시민단체들이 이 주제를 단편적으로 다루어 소개한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내용인즉 매우 상식적 수준으로 지역사회내 시민단체와 대학과 정부기관이 효과적으로 연대하여 대응했다는 정도로 소개되여 있다.

필자는 이 주제를 일반적이고 피상적인 내용을 넘어서서 보다 깊이 파고들고 연구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 나름대로 조사한 것을 정리한 것으로 향후 추가적인 연구에 도움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1, NBN( Neiighbors Building Neighborhoods) 프로그램.

로체스터 시당국이 제안하고 추진한 내용으로 로체스터 지역을 10개 구역으로 세분하여 구역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주도적인 참여하에 구역경제의 재건과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도록 한다는 요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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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과 시민단체들이 참여하여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는 과정에서 행정당국은 직접적 개입은 자제하고 다만 프로그램을 촉진하고 필요한 자원과 예산과 인력을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구역내에 있는 기업과 학교(로체스터지역에는 20개가 넘는 직업대학이 존재) 및 전문단체들과는 협력적 파트너쉽을 구축하도록 유도했다.

처음에는 참여가 저조하고 실적도 미약하였으나 시장 등 지자체 관리들의 열정적 설득과 지속적인 노력으로 점차 활성화가 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매우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지역분권과 자치의 중요성을 엿보게 한다.

2.EBP ( Eastman Business Park) 프로그램.

코닥은 그냥 몰락하지 않았다. 기업의 사회적 첵임을 회피하지 않았고, 뉴욕주정부와 협력하여 코닥본사가 소유했던 1,200 에이커(백오십만평)의 대지와 건물을 재개발하여 새로운 사업을 하려는 기업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EBP 프로그램을 마련하였다.

EBP
코닥은 과거 공장 부지를 스타트업 기업을 위한 공간을 내놓았다. 사진은 EBP 프로그램에 따라 활용된 옛 코닥공장의 모습.

코닥이 제공하는 대지와 건물위에 뉴욕 주정부가 5천만불을 제공하여 창업 start-up program을 지원하였고 이후 발생하는 추가비용은 주정부와 코닥이 공동부담하는 원칙을 세웠다.

3년이 지난 2015년 현재 55개 기업이 입주하여 6,500여명을 일하고 있으며 활발한 창업과 혁신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다. 대부분 창업주와 해당 종업원은 기존의 코닥과 제록스 등에서 근무한 경험이 많은 엔지니어와 관리자들로 채워졌다고 한다.

EBP 프로그램은 구조조정하여 잔류된 코닥사의 주요사업으로 start-up 기업을 상담하고 창업을 도우며 구매와 물류 등을 지원 관리해 주는 역할은 하고 있다. 크게 축소되기는 했지만 코닥사 자신도 130여년 역사가 남긴 다양한 고급기술에 기반한 수천종의 특허권을 중심으로 고수익의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EBP 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은 기업이 창업과 혁신을 거듭하면서 이러한 활동들이 승수적으로 로체스터 지역의 경제활성화에 크게 공헌했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창업주 조지 이스트만의 발자취

1881년 26세의 젊은 나이에 코닥사를 창립한 조지 이스트만(1855-1932)은 미국기업사에서 가장 독특한 인물의 하나로 기록되여 있다. 대단히 인간미가 넘치고 개방적 성격으로 회사의 이익을 배분하는 임금배당제를 실시하였고, 실제로 자신 지분의 1/3을 직접 직원들에게 돌려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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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닥필름의 창업자인 조지 이스트만(사진 왼쪽)이 발명왕 에디슨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당시 미국내에서 가장 앞선 복리후생제도를 갖추고 있었고 기업경영을 통해서 자신의 사회철학을 실천하는 계기로 삼았다 한다. 마치 영국의 로버트 오웬을 연상시킨다.

매년 자신의 연봉에 80% 정도를 털어서 로체스터 기계연구소와 비영리기관 등에 지원하였으며, 특히 MIT를 높이 평가하여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거액인 2천만불을 ‘스미스’라는 가명으로 기부하였다. 지금도 MIT 교가에는 가명 스미스라는 이름이 언급돼 있다 한다.

또한 지역내 치과의료시설을 지원하고, 이스트만 음악학원 등을 설립하여 현재의 로체스터 지역이 미국내 교육과 의료와 문화의 유력 중심지가 되는 토대가 되었다 한다.

기업 경영중에도 기술개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분명히 인지하여 유능한 엔지니어들를 육성하고 지원하는데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한다. 한때 6만명을 고용한 규모였으니, 코닥을 거친 수많은 전문기술인과 관리자들 그리고 그들 후손들이 훌륭한 인적기반이 되여 로체스터 지역을 미국전역이 부러워하는 창업과 혁신의 중심지로 부활시켰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조지 이스만은 77세가 되던 1932년 어느날,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다했다고 판단하고 스스로 목숨을 거뒀다는 점이다. 

후지필름이라는 기업단위의 혁신이야기와 코닥의 전설적 역사를 기반으로 한 로체스터 지역의 성공담을 통하여 위기국면으로 진입하는 한국경제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맺는다.

금, 2016/08/2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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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이란 일반적으로 공동의 목적과 비전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의 집합체로 이해하고 있다. 조직은 구성원들이 각자 고유한 직무를 맡아 조직의 비전과 목적을 향해 서로 협력할 때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구현하게 된다.

그렇다면 각 직무는 고유한 성과를 창출할 책임(성과책임) 또는 그 업무수행과정을 대내외에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책임(설명책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을 소위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라고 하며, 어느 직무든지 사전적으로 규명되어 각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에 명확히 기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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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insightofgscaltex.com/)

그러니까 조직에는 각 직무(job)의 성과책임이 규명되어 있고 그 직무에 적합한 사람이 선발·배치되는 것이 인사조직론의 기본이다. 

조직의 목적과 비전이 이 성과책임이라는 어카운터빌리티를 통해 각 직무로 분해되어 스며들어가게 된다. 직무담당자들은 자신의 직무에 부여된 성과책임을 인식한 후, 업무활동을 함으로써 자신에게 부여된 성과책임을 완수해 가는 것이 일반적인 조직운영과정이다. 이런 과정은 조금 복잡하긴 하지만 다음과 같은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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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여섯 개의 개념이 서로 맞물려 상호작용하면서 일어나는 경영현상을 도식화 한 것이다. 이것을 경영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인사조직론에서 플랫폼이란 조직구성원들이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현할 수 있는 정신적, 경제적, 물리적 토대를 의미한다.

조직의 비전과 전략에서부터 출발하라

이런 플랫폼은 조직의 비전으로부터 출발한다. 매력적인 비전(compelling vision)에 의해 구성원들의 가슴에 열정을 심어줌으로써 창의력을 발휘하게 한다. 이것이 성과창출에는 가장 강력한 촉매제이다.

이러한 매력적인 비전으로부터 전략(strategy)이 수립되며 그 전략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지원기능으로서 조직(organization)이 합리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이때 조직의 비전, 목적, 방향, 가치 등이 각 직무의 성과책임(accountability)에 적절히 배분되어 스며들어가 있어야 한다. 각 직무는 이 성과책임에 근거하여 성과목표를 스스로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직무가 설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직무가 요구하는 역량에 부합하도록 선발·배치되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채용에서 출발하여 급여보상을 거쳐 퇴출까지의 모든 인사과정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여섯 개의 경영개념이 플랫폼을 형성하여 운영되는 사이클은 다음과 같은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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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중시하는 게르만, 스칸디나비아 모델에서 배우자!

이러한 경영플랫폼 운영모델의 최초의 촉발점은 리더십이다. 리더십은 타인을 이끌거나 명령하는 역할이 아니라 조직구성원들과 함께 매력적인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조직에 생명력 또는 활력(vitality)을 불어넣어주는 역할과 그런 환경조건을 조성하는 역할이다.

이러한 인사조직모델이 유럽의 게르만 모델과 스칸디나비아 모델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모든 조직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게르만 모델을 채용하고 있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과 스칸디나비아 모델을 정착시킨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같은 국가에서는 가장 인간중심적인 인사조직체계를 갖추었다.

경쟁이 아닌 협력을 장려하는 인사조직모델은 경제적으로 거의 완전고용을 이룰 정도로 경쟁력이 있는 모델이다.

현재 취업문제뿐만 아니라 자살률과 노인빈곤율 등에서 심각한 수준에 이른 우리나라는 게르만 모델 또는 스칸디나비아 모델을 검토해볼만하다.

우리가 이런 선진모델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아래 <그림3>에서 보듯이 인류역사에서 크게 보면 조직개념이 몇 차례 극적으로 변화해왔고 우리도 이런 변화의 물결에 적응해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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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연봉제…지나친 경쟁은 오히려 ‘독’

인류는 지금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 1935~)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1953~)과 같은 철학자들에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공동체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실제로 게르만 모델이나 스칸디나비이 모델은 이미 1970년대 이전부터 그런 사회를 지향하고 있으며 지금은 이런 국가와 조직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조직 대부분에서 구성원들 간 경쟁을 부추기는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조직 내의 커다란 갈등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조직의 효율성과 창의성을 현저히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된다.

심지어 경쟁체제를 신봉하던 미국의 포천 500대 기업 중에서 약 70% 가량은 성과연봉제를 위한 상대평가제도를 이미 포기하고 있다.

당근과 채찍의 상징인 성과연봉제와 같이 경쟁을 부추기는 문화에서는 조직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조직의 경쟁력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내부경쟁은 상호 협력을 깨뜨리고 있고, 정보를 공유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도 조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분권화되고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DANO)

과거 관료화된 조직의 비효율 때문에 여러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는 뜨거운 가슴으로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하여 함께 성취하려는 리더십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구성원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것은 아니었다. 원인과 결과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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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moneytop.tistory.com/)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의 세계적인 기업들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들은 인간존중의 조직문화를 추구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경영진과 구성원들이 함께 매력적인 비전을 마련하고 이를 추구하기 위해 협동심을 가지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르만 모델 또는 스칸디나비아 모델과 아주 유사하다.

이런 인간존중의 사상과 철학이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인간존중의 경영모델을 심도 있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데는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서부의 신생 IT업체들과 게르만 모델을 추구하는 유럽 기업들의 인사조직 실무를 관찰해보면, 상명하복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포기한지 오래되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은 한결같이 분권화된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 즉 Decentralized Autonomous Networked Organization(DANO)의 경영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국가운영방식도 바뀌어야 하며, 모든 공공기관들이 이런 분권화된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게르만 모델 또는 스칸디나비아 모델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이미 1970년대 이전부터 DANO의 경영방식으로 전환하여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구현하고 있다. 독일, 스위스 등 지금 제조업 차원에서의 혁명적인 변화인 인더스트리 4.0을 이끌고 원동력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단순한 구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조직운영방식을 분권화된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으로 전환해야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목, 2017/02/0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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