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숙의, 시민참여로 체험하는 민주주의

지역

숙의, 시민참여로 체험하는 민주주의

admin | 화, 2020/03/03- 19:33

구청이나 시청, 도청 등 지방정부의 활동과 정책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에게 가깝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정부의 대처로 공공기관의 정책과 조치가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일상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행정의 정책 결정 과정이 공론화를 통해 진행되면서 많은 이슈가 있었습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과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과정의 경우 정책 결정에 시민이 직접 참여한 사례로 언론을 통해 크게 조명받았던 일입니다. 우리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정책 방향에 시민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행정에서도 절실한 시민참여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 국가, 정부의 역할에 대해 드러난 문제의식을 살펴보겠습니다. 오일쇼크와 재정위기 상황에 정부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관료제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문제의식이 나타났습니다. 후에 ‘신공공관리론’으로 불린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 운동 하에 공공서비스에 시장경쟁구조가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시민은 과거 ‘수혜자’에서 ‘소비자’로 인식되기 시작한거죠.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정부 지출 삭감, 규제 완화, 공무원 인원 감축 등으로 지방정부의 운영과 기능이 취약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공공서비스의 민영화로 복지 사각지대 등 우수한 소비자가 아닌 시민은 소외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90년대 들어서는 시민의식이 고조되는 사회현상 속에서 정부와 민간(기업), 시민사회 간의 네트워크를 통한 새로운 거버넌스가 등장합니다. 고객 관점으로 치부되던 시민이 공공서비스 결정에 참여하고, 공공의 과제 해결에 시민참여가 중요해지는 계기가 발생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IMF로 인한 경제 위기 상황이 시민의 참여로 극복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시민의식 또한 지속해서 성장하면서 정부와 민간(기업), 시민사회가 협력하는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최근에는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위기’, ‘경제적 빈곤 및 삶의 질 저하’, ‘사회적 참사에 대한 국가 안전망 부재’ 등 정부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복잡한 사회문제가 발생하면서 시민참여를 바탕으로 한 협력적 거버넌스, 즉 ‘협치’를 통해 대응하는 방식이 자리잡게 된 것이죠.

협치? 거버넌스? 숙의로!

숙의의 사전적 의미
‘숙의(熟議, Deliberation)’
“깊이 생각하여 충분히 논의함”, 또는 “한 주제에 대한 충분하고 깊은 고민”, “어떤 사건을 깊이 있게 고민하는 정규적인 토론”

지역주민 간 또는 이익집단 간 갈등을 해결하거나, 경제위기 극복과 삶의 질 향상과 같은 경제적, 사회적 과제를 극복하는 등 여러 상황 속에서 시민참여 방법으로 숙의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숙의를 활용하는 목적으로는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 모든 사람들의 상호작용과 함께 합의까지 도달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요. Ecran과 Dryzek의 숙의민주주의 연구에서는 합의까지 도달하지는 않더라도 동등한 권리를 갖고 참여하는 사람들 간의 상호 이해를 추구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즉, 숙의민주주의는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숙의 과정을 통해 시민 스스로 소통과 참여에 대한 학습과 의사결정의 합리성과 질을 높여 공동의 이익을 창조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됩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숙의는 시민의 권리와 책임에 바탕을 둔 논의를 촉진하여 정부와 소수의 전문가 위주가 아닌 시민의 주도로 시민주권의 시대를 열어가는데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민주도가 강화되고, 시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며,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논의할 수 있도록 하는 숙의의 기능은 “시민의 직접적인 참여로 의사결정과정의 정당성을 찾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과거 권한을 가진 소수 정치인의 결정에 의하거나, 법적, 제도적 절차만으로는 더 이상 정책 결정의 정당성을 얻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숙의 방법을 소개합니다.

행정의 입장에서 시민의 직접적인 참여로 의사결정과정의 정당성을 찾아가는 과정인 숙의 방법에는 여러 유형이 있고 각 유형마다 나름의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습니다. 기본 구성은 ⓵기획·준비 단계(의제선정/학습, 숙의 유형 선택 및 과정 설계), ⓶진행 단계(참여자 모집 및 선정, 정보 공유 및 학습, 토의·토론), ⓷마무리 단계(결론 도출 및 공표, 피드백 & 모니터링)로 볼 수 있습니다.

행정이 숙의 방법을 활용하는 목적으로는 ▲특정 정책에 대한 문제해결, ▲정책구상, ▲비전 제시, ▲의제 선정, ▲사회적 논의, ▲우선순위 설정, ▲구체적 대안의 선택 등으로 나눌 수 있고, 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숙의 방법으로는 ⓵시민배심원제, ⓶합의회의, ⓷시나리오 워크숍, ⓸공론조사, ⓹타운홀 미팅 방법 등이 있습니다.

최근 희망제작소에서는 시민참여, 직접민주주의 실현을 고민하고 있는 춘천시와의 협업으로 숙의과정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앞으로 다섯 번의 연재를 통해 다양하게 정리된 주요 숙의 방법에 대한 설명과 사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숙의 방법은 시민배심원제로 음식물자원화시설 건립을 추진한 울산 북구의 사례입니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박대성(민주노총 서울본부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대외협력국장)

2013년 당기 순이익 900억 원대, 2014년 1,068억 원, 가입자수 320만, 케이블방송업계 2위. 태광그룹 산하의 주식회사 티브로드홀딩스의 모습이다. 2014년 1,068억이라는 당기 순이익은 업계 1위인 CJ 헬로비전의 당기 순이익 260억 원, 3위 씨앤앰의 당기 순이익 390억 원과 비교해 볼 때 현저하게 높은 수준이다.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 58시간, 월 평균 휴일 2.3일, 평균 급여 171만원, 평균 근속연수 6년,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노동자 82%, 정해진 휴일이 있는 노동자 21%, 시간외 근무수당이 아닌 당직수당으로 지급. 케이블방송 티브로드의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2013년까지의 모습이다. 그런 삶을 어떻게 바꿀까 노심초사 고민하던 때 희망의 빛이 보였다. 같은 업종, 같은 처지의 씨앤앰 협력업체에 노동조합이 생겼다는 소식이었다.

그동안 케이블방송과 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결성 시도를 무수히 벌였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유지보수(AS), 개통(설치), 기술·영업마케팅을 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역 단위로 외주하청업체로 분산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업체나 한 지역에서 몇 개 업체의 노동조합 결성 시도는 원청사용자의 탄압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회유와 협박, 폐업과 업체 교체과정에서 선별고용 등으로 인해 실패를 반복했다. 이처럼 케이블방송과 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소규모 하청업체로 산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힘겨운 노동을 하면서 별다른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 씨앤앰 24개, 티브로드 48개, SK브로드밴드 96개, LG유플러스 70개 센터

그러던 와중에 2013년 2월 13일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이하 케비지부)를 건설하였고 3월 24일에는 티브로드홀딩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케이블방송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이하 케비티지부)를 결성하였다. 케이블방송 노동자의 조직화는 통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영향을 주어 2014년 3월 30일에는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이하 SK비지부),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이하 LG비지부)가 동시에 결성되었다.

노동조합 파괴로 악명 높은 태광그룹의 탄압은 녹록지 않았다. 2013년 노조결성 후 37일간의 전면파업, 2014년 123일(노숙농성 91일)간의 전면파업 끝에 그동안의 노예같던 삶을 깨고 조금씩 조금씩 전진해왔다. 그런데 2015년 올해 또다시 티브로드홀딩스 원청과 하청(협력사협의회)은 그동안 이뤄온 임단협의 성과를 다시 예전으로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티브로드 케이블방송이 다른 케이블방송 사업자들에 비해 더 높은 당기 순이익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티브로드 케이블방송의 A/S와 설치를 담당했던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케이블방송 사업자들의 위기를 버텨온 유일한 생산성은 바로 A/S와 설치담당 협력업체 노동자들이었다. 티브로드의 계열사인 티브로드 한빛방송의 2014년 실적을 보면, 영업이익이 1,212억 원으로 티브로드 계열사 중 가장 높은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티브로드 뿐만 아니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3% 감소한 태광산업 전체의 영업이익 손실을 상쇄하는 역할을 했다.

협력업체의 A/S와 설치 노동자들은 유료방송 사업자와 가입자 사이의 매개 역할을 담당하는 티브로드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처럼 티브로드 케이블방송 가입자들을 직접 대면하며 회사를 대표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기업이익 이익을 위해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티브로드 원청의 처사는 그동안 회사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토사구팽 하는 꼴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티브로드의 반사회적이고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 행태는 부당한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이용자들에게 강요하는 등 무리한 영업으로 이어져 그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들인 가입자들에게 돌아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티브로드 원청의 반사회적인 기업행태가 고스란히 협력업체로 이어져 노동자들에게 불법적이고 부당한 임금삭감 및 구조조정, 4대보험료 미납 및 횡령, 다단계 도급기사 확대로 이어지는 등 티브로드 원하청 가리지 않고 반인권적이고 반사회적인 작태가 기업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올해 케비티지부의 투쟁은 임금은 물론이고 고용 자체를 지켜내는 투쟁이다. 이미 몇몇 협력사에서는 폐업 협박과 더불어 실제로 인원삭감을 실시하면서 조합원들을 해고하려 하고 있다. 해고되지 않으려면 임금을 삭감하라고 협박하고 있다. 작년 4개월이 넘는 전면파업으로 경제적으로 힘든 조합원들이기에 쟁의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면파업에 쉽게 나서지 못하리라는 얄팍한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직하기도 쉽지 않고 승리하기도 쉽지 않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투쟁이다. 조직화와 승리의 사례로 다른 수많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망이 되었던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올해도 승리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많은 동지들의 연대와 응원이 절실한 때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수, 2015/08/12- 20:22
290
0

IMF 경제위기 20년과 행복한 삶

 

 

이주하 |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지난 10월 13~14일 양일간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제7회 사회정책연합 공동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한국사회정책학회,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 한국사회보장학회,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등 사회복지정책과 관련된 여러 학회 및 연구기관들이 모여서 함께 소통하는 장인 연합학술대회의 올해 주제는 바로 “IMF 경제위기 20년, 한국 사회의 격차해소 전략과 정책”이었다. 한국 사회 전반에 미증유의 거대한 변화를 가져온 IMF 경제위기를 겪은 지 어느덧 20년이 되었다. 그 당시 출생한 아이들이 벌써 대학의 새내기가 된 것이다. IMF 경제위기가 초래한 가장 큰 문제점은 (학회 주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신자유주의의 적극적 도입으로 인한 불평등과 불안정성의 심화라 할 수 있다. 즉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비정규직이 본격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자살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1996년 12.9%였던 자살률(10만 명당 자살자 수)은 1998년 18.4%로 급증하였고, 이후 일시적으로 감소추세를 보이다가 2003년 신용카드 대란을 겪으면서 23.7%(2004년)로 다시 급등하였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1.2%(2010년)까지 치솟은 자살률은 2015년 24.6%로 다소 낮아졌으나 OECD 국가 평균은 12명으로 여전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결국 한국의 자살률은 2003년 이후 OECD 회원국 중 부동의 1위라는 불명예를 짊어지고 있는데, 노인자살률은 압도적으로 높고 청소년 자살률도 증가하고 있다. 

 

사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자살률 뿐 아니라 노인빈곤율, 저임금노동자비율, 임시직노동자비율, 성별임금격차, 노동시간, 저출산율, 사교육비, 산재사망률 등의 지표에서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인의 삶은 과연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발표한 다양한 행복지수의 국제비교를 살펴보면 한국은 (중)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일례로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이 조사한 ‘2015 세계의 국가별 행복지수’에서 한국은 전체 평균 71점보다 한참 낮은 하위권(59점)으로 조사대상 143개 국가 중 118번째에 그쳤고, 유엔 산하자문기구인 ‘지속가능한 발전해법 네트워크’가 발표한 ‘2015 세계행복보고서’에서는 10점 만점에 총 5.984점으로 158개 국가 중 47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OECD의 ‘2015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5.8점으로 OECD 평균 6.58점보다 낮았으며, 34개 회원국 가운데 27위를 차지하였다. 

 

흔히들 행복 혹은 삶의 질을 측정하고 평가할 때에는 개인이 느끼는 ‘주관적’ 삶의 질 내지는 만족도에 초점을 두는 방식과 개인이 처한 ‘객관적’ 조건과 자원에 초점을 두는 방식으로 구분지어 볼 수 있다. 행복을 주관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하버드대의 긍정심리학자 탈 벤-샤하르가 지적하였듯이 행복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행복을 손에 넣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들 수 있겠다. 탈 벤-샤하르 교수의 ‘행복’ 강의는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 예일대 셜리 케이건 교수의 ‘죽음’과 함께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3대 명강의로 꼽히는데, 그는 일상에서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의 4가지 요소로 관계맺기(socializing), 베풀기(giving), 집중하기(focusing), 극복하기(coping)를 제시하였다. 한편, 행복에 대해 주관적으로 느끼는 정도를 측정한 지표가 객관적인 삶의 질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부탄은 경제적으로 가난하지만 행복지수가 매우 높은 국가에 속한다. 어찌 보면 사회경제적 구조에 영향을 받는 소득에 좌우되는 빈곤도 결국 한 사회가 감내하기 힘들고 받아들여질 수 없는 수준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주관적이고 도덕적인 가치판단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빈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권고문 <복음의 기쁨>에서 “나이 든 노숙자가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것은 뉴스가 못 되는데, 주가가 2포인트 빠진 것은 어떻게 주요 뉴스가 될 수 있는가?”라고 던진 질문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주지하듯이 객관적인 측면에서 행복과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로는 소득을 들 수 있다. 이는 앞서 지적한 세 차례의 경제적 위기 상황이 자살률 증가에 미친 영향이나 OECD 평균의 4~5배에 달하는 한국의 높은 노인자살률은 상당부분 OECD 1위의 노인빈곤율에 기인하고 있다는 연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 이후에는 비록 소득이 늘어나더라도 행복의 증가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이스털린 역설(The Easterlin Paradox)’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주관적 행복에 있어서 소득을 중시하는 욕구이론(needs theory)과 만족점(satiation point)을 통해 행복의 상대성을 강조하는 이론 사이의 유명한 논쟁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소득과 행복의 관계에서 만족점을 인정한다면 어느 정도 수준이 적당한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만족점과 최저생계비, 국민최저선, 기본소득 등과의 관계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며, 현금급여 보다는 개별적 욕구에 기초한 서비스가 만족점을 수월하게 충족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생각해보야야 한다.

 

이스털린의 주장과 다른 맥락에서 세계적인 정치경제학자인 UC 버클리의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소득이 많고 소비를 더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님을 강조하였다. 그는 세계적 권위의 로즈 장학금(Rhodes Scholarship)을 받아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던 배 안에서 빌 클린턴과 만난 인연을 시작으로 클린턴 행정부 첫 번째 노동부 장관으로 입각하였고 미국의 신경제를 주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돌아오면 아무리 늦더라도 아빠가 집에 있는지를 알기 위해 깨워달라는 막내아들과의 선문답과 같은 대화 이후 깨달음을 느끼고 장관직을 사임하였다(<타임>은 그를 20세기에 가장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10대 장관으로 지명하였다!). 라이시가 주목한 것은 신경제가 주는 여러 혜택은 한층 더 필사적인 삶, 직업 불안정성,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라는 비용을 우리에게 부담시키고 있으며, 더 풍요로워진 세상이 결코 우리 삶을 더 행복하게 해 준다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인터넷이나 대형마트에서 싼 물건을 ‘득템’하거나 내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 오르면 기뻐하게 된다. 그런데 대형마트가 싸게 팔기 위해선 물품공급자에게 가격인하를 압박하고, 직원들의 임금을 삭감하며, 자원의 남획과 이에 따른 환경파괴를 감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우리나라의 현실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선 네이버 웹툰 <송곳>과 <쌉니다 천리마마트>를 보라!). 결국 소비자 본인과 주변인, 그리고 소비자의 존립기반인 공동체 전체는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러한 조치들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주가를 올리는 대표적인 방안이 대량해고와 인수합병인 상황에서 수익을 올리는 투자자는 언제든지 대량해고의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결국 라이시에 따르면 오늘날 ‘슈퍼자본주의’ 체제 하 권력이 ‘시민’의 손에서 ‘소비자’와 ‘투자자’ 쪽으로 이동하였는데, 이를 다시 되돌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라이시의 주장은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중요성을 환기시켜주고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닌 전후 서구 복지국가를 가능케 한 요체인 것이다.

 

행복 혹은 삶의 질에 대한 국제비교를 살펴보면 역시 복지선진국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상호연관성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흥미로운 점은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의 저자 토머스 게이건이 언급한 소위 ‘복지와 연애의 상관관계’이다. 즉 복지가 잘 갖춰진 나라에선 남녀가 상대방의 직장, 재력, 사회적 지위 보다는 매력, 개성, 인품을 보고 사귈 수 있기 때문에 연애성공률이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행복의 가장 근원적인 영역인 사랑에 있어서도 복지국가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수, 2017/11/01- 14:35
288
0

존중과 우애에 관하여

주은선 l 경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가끔씩이나마 리우 올림픽 중계나 기사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낯선 종목들에서도, 또 한국선수가 출전하지 않는 종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세계적인 선수들의  기량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선수들의 태도이다. 워낙 하나하나 어려운 종목들이고 대단한 명예가 걸린만큼 긴장을 유발하는 장이기 때문인지 실수도 흔하게 볼 수 있으며, 불운의 장면들도 행운의 장면들만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런 장면들에서 선수들이 특히 실수, 불운, 패배를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는지를 관찰하면, 많은 경우 악재를 돌파하기 위한 상당한 의지와 침착함, 그리고 의연함을 발견하게 된다. 중간에 넘어진 선수가 다시 일어나 장거리 달리기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고, 더욱 흔히는 실수 직후 바로 자신의 경기에 끝까지 임하여 평범한 순위에 머문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올림픽 3연패를 꿈꾸던 선수가 4위에 머물렀지만 금메달을 딴 팀후배를 따뜻하게 축하해주는 장면이나, 마지막 연장전에서 불과 1점 차 패배를 당한 후에도 상대방의 선전에 박수를 보내는 장면 역시 기억에 남는다. 개인의 긍지와 자존심은 성과가 아닌 태도를 통해서도 표현된다. 또한 남한과 북한의 체조선수들이 보인 친밀함뿐만 아니라 국적, 종교, 인종 차이와 무관하게 서로에 대한 존중과 격려의 모습은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이는 많은 선수들이 상황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인간으로서 자존심과 긍지를 지키는 것, 그리고 우애에 상당한 가치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아하기까지 한 이러한 태도들을 계속 지켜보다 보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이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같은 인간으로서 꽤 괜찮은 존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조차 든다. 타인의 긍지와 명예를 개의치 않는 공격과 혐오 발언들이 난무하던 우리 사회가 잠시 단절의 시간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일단은 필자에게는 다행이다. 게다가 우리 인간이 자존심과 명예, 다양한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우애를 추구하는 보편성을 가진 존재임을 다시금 기억하게 된다. 돈과 도박, 국가주의 등 많은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은 자긍심과 우애라는 보편적 가치를 상기시키는 계기였다.

 

그런데 요즈음에 보인 우리 정부의 태도는 인간의 자긍심과 명예에 대한 태도라는 면에서 올림픽이 보여 준 아름다움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피해를 입은 자가 그 이유와 진실을 명명백백히 알게 되고, 정당한 사과를 받는 것은 개인적, 역사적 치유의 과정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일본 정부와의 합의, 특히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 지급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보다는 정부 입장에서 일단 사안을 종결하는 데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희생당한 개인들이 진짜 사과를 받고 용서를 베풀며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거해 버린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와의 협상을 미루며 책임을 피해왔던 것을 고려하더라도 피해 당사자에 대한 사과가 먼저 이뤄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세월호 특위 활동을 서둘러 마무리지어버린 정부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정당한 근거 없이 서둘러 마무리지어버린 것 역시 진실과 책임의 명확화를 통한 치유와 회복을 막아버린다는 점에서, 또한 결국 부실한 보상으로 사안을 종결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유족 개인들의 명예나 자긍심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드 배치 결정에서도, 백남기 농민 사건 이후의 태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정부가 이렇게 개인의 자존심과 명예에 무심한 것은 국가는 개인이란 존재 위에 군림한다는 오래된 착각 때문인 것인지...

 

이러한 국가의 태도는 복지에 관해서도 여전하다. 개인의 자존심과 명예는 피해 배상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국가가 공공복지를 제공하는 과정에서도 지켜져야 한다. 특히 자본주의 시장에서 끊임없이 상품가치로 판단당하고 밀려나는 시민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존중과 타인들과의 우애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부정수급 단속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말하며, 새로 시작된 청년수당 수급자들의 취업준비 여부는 불확실하므로 이는 세금낭비라고 말한다. 마치 얼마나 이들의 취업노력을 잘 감시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인 것처럼. 정부에게 복지는 그저 돈의 문제이거나 정쟁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기획재정부가 제안하는 재정건전화법 역시 복지를 무엇보다도 돈의 문제로 바라보고 복지정책들의 발전을 제로섬 게임으로 만들려 한다는 점에서 이런 시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복지에 대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방향이다. 어떤 복지제도를 어떻게 설계하여 실시하느냐는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할 것이며, 우리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 기본소득론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이유는 방향, 즉 철학에 대한 갈망 때문일 것이다.

 

정부가 올림픽에서 끌어내는 교훈은 개인에게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공동체에 헌신하도록 요구하는 것인 것 같다. 광복절 경축사가 그렇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올림픽은 우리가 다시 타인에 대한 혐오보다는 우애를, 그리고 명예와 자긍심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으로서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갖는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사실 인간이 이기적이며 이익에 집착하는 존재인지, 명예와 우애를 추구하는 존재인지는 알 수 없다. 정해진 것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국가가 정치사회적 사안을 다루고 공공복지를 운영하는 기본 방침이 서로 감시하거나, 혐오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개의치 않는 행위를 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었으면 한다. 복지에 관해서도, 추구하는 우리의 삶과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도 더 깊이있는 모색이 필요하다.

금, 2016/09/02- 13:21
287
0

문재인 정부와 한국 복지국가의 전망1)

 

윤홍식 |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즐거운 당황스러움이라고 할까요? 대통령 선거 기간에 보여주었던 문재인 후보가 맞나 할 정도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취임 일주일간 대통령이 보여준 행보는 지난 9년간 비민주적이고, 독선적인 국정 운영에 익숙했던 시민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즐거움을 선물했습니다. 국정교과서 폐기를 지시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민주화운동의 기념곡으로 제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인천공항을 방문해 좌고우면 없이 비정규직을 단번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부패한 검찰에 대해서는 민주적 통제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줄 것 같습니다. 백미는 지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유족을 껴안고 모두가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것이었습니다. 막힌 속이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제외하면 국정교과서 폐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검찰 개혁 등은 재정을 투여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있겠지만, 대통령이 결심하면 추가적인 재원이 들지 않고도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한국을 어떤 복지국가로 만들어갈 것인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정치의 핵심은 그 사회가 생산한 잉여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때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한국 복지국가의 모습이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성격과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준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다양한 이념적 지향을 5개 주요 정당의 후보들이 저마다의 공약을 내놓고 치열하게 국민의 선택을 기다렸습니다. 사회복지의 관점에서 보면 취약계층에게 공적 복지를 집중해야 한다는 후보부터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후보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시민들에게 주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 후보들은 자신들의 공약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일부 후보들은 세출 구조 조정을 통해 복지공약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난 4년 동안 입증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후보들은 마땅히 복지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수반되는 재원마련 방안을 제시했어야 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제시된 대통령 후보들이 지향하는 한국 복지국가의 상을 알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GDP 대비 사회지출을 OECD 평균 수준까지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에 후보들 간에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속도를 어떻게 할지는 후보마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심상정 후보의 경우는 공적 사회복지의 지출을 매년 70조 가까이 늘리겠다고 공약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정작 사회복지지출을 확대를 통해 만들어가야 할 한국 복지국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적 복지의 양을 확대한다는 것이 곧 한국 복지국가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2016년 기준으로 그리스의 GDP 대비 사회지출은 27.0%로 모범적인 복지국가로 알려진 노르웨이의 25.1%보다 높고, 스웨덴의 27.1%와 거의 같습니다. 그러나 불평등을 측정하는 지니계수를 보면 그리스의 지내계수는 0.34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인 데 반해 스웨덴은 0.27, 노르웨이는 0.25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빈곤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의 빈곤율은 15%인데, 반해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빈곤율은 8%, 9%에 불과합니다.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이 10.4%에 불과한 한국의 지니계수가 0.31이고, 빈곤율이 15.0%라는 점을 고려하면 공적 복지지출의 확대가 반드시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합계출산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얼마나 지출하는가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지출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복지국가는 소득보장보다 사회서비스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공적 지출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은 노인 빈곤 문제가 워낙 심각하고, 아동수당과 같은 보편적인 사회수당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금급여를 확대하는 것은 필요한 부분이고, 이점에서는 모든 후보가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었던 같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적 복지를 확대하는 것만큼이나 확대된 공적 복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만들고자 하는 복지국가의 모습을 정확하게 설계하고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어떤 비전을 갖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제가 다른 곳에서도 이야기한 것을 옮기면 문재인 정부는 좌파정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더불어민주당’은 노동자의 정당도 의회 민주주의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유럽의 사민당도 아닙니다. 굳이 민주당의 이념적·정치적 기반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지역적으로는 호남, 정치적으로는 이승만 정권 이래 지속되었던 독재정권에 대항했던 제도권의 자유주의적 민주화 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교안보 문제를 제외한 복지정책만 놓고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은 심상정 후보는 물론이고 보수 후보였던 유승민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유승민 후보가 조건 없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재정문제를 이유로 장애인부터 단계적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정여건을 고려해 아동수당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 유승민 후보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우리의 기대는 이러한 문재인 정부의 이념적 성격에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이 중도적 자유주의 개혁의 한계를 넘어 문재인 정부에게 혁명적 개혁을 요구하는 순간 시민은 ‘좌파 신자유주의’와 ‘좌측 깜빡이를 켜면서 우회전’했던 노무현 정부의 재림을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중도 자유주의 정부에게 좌파적 개혁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사슴을 말이라고 해서도, 말을 사슴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지식인과 시민사회는 어떤 정권이 집권하더라도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기능을 게을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시민 작가가 이야기한 ‘진보 어용 지식인’이란 지식인과 시민사회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닙니다. 어용 지식인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에 영합하는 지식인을 일컫는 말인데, 여기에 진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진보 정권을 보수 세력으로부터 지키는 지식인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럴 리는 없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이라크 전쟁과 같은 불의한 전쟁에 파병한다면 지식인과 시민사회가 어떻게 문재인 정부를 지지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처럼 국민연금의 소득보장기능을 약화시킨다면 지식인과 시민사회가 어떻게 동의하고 지지할 수 있겠습니까?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고, 평등한 분배를 추구하려는 정권에 대한 보수의 공격에 맞서 지식인, 시민사회와 정권이 함께 할 수 있지만, 민주적 가치와 진보적 가치를 위협하고, 훼손한다면 설령 좌파 정부라 하더라고 우리는 함께할 수 없습니다. 사슴은 사슴이고, 말은 말입니다.

 


 

1) 본 글은 한국사회복지학 제69권에 실린 편집인의 글 "어떤 기대를 해야 할까?"를 기초로 수정·보완해 작성한 글임

목, 2017/06/01- 14:03
285
0

오늘날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닌 나라를 복수정당제의 허용 여부로 구분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해 당사자들에게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문제 역시 민주주의의 기초 요건이다. 입법부가 아닌 대통령의 포고령이나 행정명령으로 법이 만들어지고 집행된다면 그 체제를 권위주의라고 하지 민주주의라고 하지 않는다. 경쟁하는 정당과 자율적 결사체, 의회야말로 현대 민주주의의 제도적 요체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의 기능을 최소화하는 대신 민간 자율에 맡기라는 신자유주의의 반정치 담론만큼이나, 정당과 의회 및 이해당사자들의 역할을 냉소하면서 일반 시민이 직접 개헌하고 입법하고 정책을 만들고 부적격 공직자도 쫓아내도록 하자는 직접민주주의론 역시 생각해 볼 점이 많다. 촛불 집회를 직접민주주의로 이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직접민주주의 체제라면 촛불 집회는 허용되지 않는다. 자유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물론 합법적으로 뽑힌 정부에 대해 비판과 반대를 조직할 자유는 현대 대의민주주의에서 비로소 가능하게 된 기본권이다. 공론 조사로 대표되는 숙의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참여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대의민주주의 프로젝트의 하나다.

숙의민주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직접민주주의로 보는 것을 “난센스”라고 일축한다. 참여자들의 숙의 능력이 그 결과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다소 엘리트 편향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 숙의민주주의의 한계이기도 하다. 국민투표, 국민소환, 국민발안 등을 직접민주주의로 보는 것도 잘못이다. 정치학에서는 이를 국민투표식 민주주의(plebiscitary democracy) 혹은 우파 포퓰리즘(right-wing populism)으로 부른다.

최근의 사례는 유럽의 극우 정당들인데, 이번 독일 총선에서 제3당으로 올라선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내건 슬로건, ‘스위스처럼 직접민주주의를!’이 대표적이다. 대의민주주의를 간접민주주의라 말하는 것도 옳지 않다. 간접민주주의는 정치 이론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일종의 통속어다. 이 말이 대대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75년 2월 15일에 실시된 유신헌법 국민투표 때였다. 당시 야당과 재야 세력 중심으로 반대 운동이 확대되자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 찬반을 국민투표에 부치면서 헌법학자들을 동원해 ‘간접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라는 이상한 유형론을 펼치게 했다.

과거든 현재든 직접민주주의론자들이 확고하게 추구했던 이상은 공적 사안을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총회에서 결정하는 것이었다. 9일에 한 번씩 민회를 개최했던 고대 아테네가 대표적이다. 시민 총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단과 조직, 결사는 인정되지 않았다. 고대 아테네의 경우 민회 밖에서의 그 어떤 집단 행위도 허용되지 않았다. 장자크 루소를 추종했던 프랑스혁명의 주도 세력들 역시 시민의 전체 의지를 분열시킨다는 이유로 정당은 물론 이익 단체의 결사를 법으로 막았다.

시민 총회에서 결정된 법을 집행하는 공직자들 역시 독립된 행정 조직을 만들 수 없었다. 관료제는 없었으며 시민이 번갈아 행정관·평의원·배심원 역할을 맡았다. 아테네에서는 추첨으로 그 역할을 수행할 시민을 뽑았다. 선거로 동료 시민의 지지를 동원해 대표가 되는 것 역시 권력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같은 공직을 두 번 할 수 없었고, 임기는 1년 이하로 짧았다. 사회 규모의 확대는 최대한 억제되었다. 규모의 증가는 기능 분화와 전문화를 낳고, 그것은 곧 소수의 전문가 집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시민의 정치 참여는 의무였다. 아테네의 경우 참여가 법으로 강제된 것은 아니었지만, 참여하지 않는 시민은 비난받았다. ‘바보 멍청이’란 뜻의 영어 ‘idiot’는 고대 그리스어 ‘idi ̄ot ̄es’에서 유래한 말로 당시에는 참여하지 않는 시민을 가리켰다.

오늘날 우리가 이런 제도와 원리를 재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직접민주주의가 해당 시기의 역사적 제약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현실적 최선을 추구한 실험인 것은 맞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른 조건에서 이를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일 때가 많다. 지금은 지금의 조건에 맞는 민주주의 발전론이 필요하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1024/86916628/1#csidxcfc3fd8be35f8ff9b8c185d8e2eba2a

화, 2017/10/24- 17:33
27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