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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쓰는 밤, 레터나잇에 함께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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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쓰는 밤, 레터나잇에 함께한 사람들

admin | 수, 2019/12/04- 23:23

스마트폰 클릭 한 번이면 모든 게 가능한 세상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편지’라는 전통 매체를 고집하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매년 이 시간을 잊지 않고 찾아와, 편지만 쓰고도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나 혼자가 아니구나.” 예윤해 회원

“10년 전 대학을 다닐 때, 수업 중에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책에서 우연히 앰네스티를 발견했습니다. 앰네스티 활동이 인상적이어서 후원까지 하게 되었죠. 레터나잇은 네 번 정도 참여했는데, 평생 쓸 편지를 여기서 다 쓰는 것 같아요. (웃음)”

“저는 억울한 일이나 불의를 보면 잘 못 참아요. 그런데 레터나잇의 목적 자체가 인권을 위해 억울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지지해주고 도움을 주는 일이니까 편지를 쓰다 보면 “나 혼자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연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의미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편지를 쓴다는 점이 고무적이었어요. 인권이라는 건 경계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걸 직접 볼 수 있는 현장 같았거든요. 작년에는 아내와 함께 참여했었는데, 행사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서 우리가 인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얘기 나눴던 것이 기억나요.”

“사실, 요즘 살기 너무 바쁘잖아요. 그런데도 시간을 내서 레터나잇을 가게 되는 건, 후원금만 내고 끝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시간을 내서 매년 레터나잇을 가려고 노력하죠. 인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레터나잇은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손 끝에서 시작되는 연대가 경이로워요.” 장채영-자원봉사자

“저는 아일랜드에서 1년간 생활하면서 처음 앰네스티를 만났어요. 행사 진행을 전문으로 하는 ‘소파 사운즈(sofarsounds)’의 포토그래퍼로 활동했었는데, 제가 처음으로 참여한 행사가 뮤지션 호지어와 앰네스티의 콜라보레이션 행사였죠.”

“작년에 레터나잇에서 주로 인물 중심의 사진을 찍었는데, 사실, 그날 너무 감동 받았어요. 여러 사람이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편지를 쓰는 그 모습이 멋지더라고요. 손 끝에서 모든 게 다 이루어지는 시대를 산다고 해도, 직접 손편지를 쓰는 건 멋진 일이니까요.

“행사를 마치고 세계인권선언 포스터를 여러 장 챙겨주셔서 집에도 붙이고 친구들에게도 나눠줬었어요. 제 친구들 중에도 소수자가 꽤 있는 편이라서 친구들과 관련 고민들을 이야기하곤 해요. 그때마다 사실 그렇게 긍정적인 이야기가 나오진 않아요. 워낙 우리 사회가 이 부분에 대해 닫혀있으니까요. 그런데 레터나잇을 통해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이런 움직임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거구나’를 실감하게 돼서 좀 더 희망을 가지게 되었어요.”

“저는 본업이 작가라, 글을 쓰면서 살고 있는데, 글을 쓰다 보면 읽는 대상이 누구건 간에 그 말이 사실은 저에게 필요한 경우도 많아요. 레터나잇도 그런 것 같아요. 인권옹호자들을 위해 편지를 쓰지만, 결국 그 응원과 지지의 메시지는 우리에게도 하는 말인 거죠.”

 

2019 Write for Rights
2019년, 또 한번의 Write for Rights가 시작됩니다. 자신의 권리를 위해,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유스들과 함께합니다.
함께 놀라운 변화를 만들고 싶다면,
주저 말고 편지를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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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KAL기 납북사건’… 어느덧 사건이 발생한 지 50년이 되었다. 강릉에서 출발하여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는 목적지를 밟지 못한 채 북쪽으로 기수를 돌렸고 북한 원산 인근에 강제 착륙하게 된다. 여객기에 탑승하고 있던 50명의 인원 중 39명은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나머지 11명은 아직 북한에 의해 ‘강제실종(Enforced disappearance)’된 상태이다. 이렇게 강제실종된 11명의 피해자 중 한 명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황원이다. 도대체, 왜 이들은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걸까?

황원의 아들 황인철은 지난 수십 년간 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북한과 한국 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지속해왔다. 국제앰네스티는 올해 황원을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활동(Individuals at Risk, IAR)’ 사례로 등록했다. 또한, 국제앰네스티는 8월 30일 ‘세계 강제실종 희생자의 날’을 맞아 KAL기 납북사건으로 발생한 강제실종 문제를 알리고 해결을 촉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 50년 동안 보여준 것과 마찬가지로 문제 해결에 있어 어떠한 긍정적인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일’이다. 인류의 존엄성과 권리를 명문화한 세계인권선언이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것을 기념하는, 인류에게 있어서 그 어떤 날보다 기쁜 날이지만 황원의 가족에 있어서만큼은 우울한 하루로 다가올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다음날인 12월 11일이 황원이 강제실종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래 편지는 황원의 강제실종 50주년을 맞이하여 그와 그의 가족이 겪고 있는 이별의 아픔을 나누는 의미에서 아놀드 팡(Arnold Fang)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이 지난 1년간 KAL기 납북사건 문제를 담당하면서 느꼈던 감정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편지 속에 담긴 우리 모두의 바람이 잘 전달되어 황원이 환하게 웃으며 가족을 만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편지 속에 담긴 우리 모두의 바람이 잘 전달되어 황원이 환하게 웃으며 가족을 만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황원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제 편지를 선생님께서 받아 보신다면 꽤 놀라시겠지요? 제 이름은 아놀드 팡입니다. 저는 국제앰네스티라는 인권단체에서 동아시아 조사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 편지가 선생님께 전달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편지를 빌어 한국에 있는 선생님의 가족과 함께 선생님의 소식을 접하기 위해 힘을 합치고 있는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선생님께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선생님께서 한국을 떠나게 되신 지 50년이 되는 날입니다. 저는 지난겨울 선생님의 아드님이신 황인철 씨를 처음 만났고, 그로부터 선생님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50년 전 오늘, 선생님께서 항공기에 탑승하셨다가 납치되어 낯선 나라에 도착했다는 사실도 믿기 어렵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선생님과 한국에 있는 선생님 가족이 서로의 소식도 알지 못한 채 떨어져 있는 이 상황은 정말 더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북한에 대한 저의 지식은 제한적이지만, 여러 정황상 선생님과 선생님의 아드님께서는 편지나 전화를 통해서도 소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생일이나 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 두 분께서는 얼마나 더 힘드셨을까요?50년간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의 소식을 듣지 못해왔다는 것은 너무나 충격적입니다.

국제앰네스티에서 5년 동안 조사관으로 일해오면서, 저는 북한의 변화, 특히 북한 내 인권 개선을 위해 일하는 것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부가 하는 일이 잘못되었다고 계속해서 말하지만 한마디의 답변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입니다. 때때로 우리의 활동이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기기도 하고 그것은 지극히 인간적이지만, 북한 사람들이 겪고 있다는 고통을 생각한다면 활동을 계속해 나가는 것밖에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물론 제 어려움은 황인철 씨가 선생님의 소식을 다시 듣기 위해, 그리고 선생님께서 원하실 경우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들여온 엄청난 노력에 비하면 아주 사소하겠지요. 황인철 씨가 몇십 년 동안 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해 온 모습을 보면서 저 자신도 전반적인 북한 인권뿐만 아니라 현 상황에서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분발해야겠다고 고무되기도 합니다.

올해 초, 저는 유엔의 북한에 대한 국가별 정례인권검토(북한의 전반적인 인권 상황 점검 절차)에 앞서 유럽에서 황인철 씨와 함께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황인철 씨는 항공기 납치사건과 선생님의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하여 직접 발로 뛰며 각 나라의 외교관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아드님 노력의 결과로, 한 유엔 회원국은 유엔 회의에서 선생님을 포함하여 1969년 납치된 항공기에 함께 타고 있던 나머지 승무원과 승객을 돌려보낼 것을 북한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의 국제앰네스티 회원들, 지지자들, 그리고 활동가들은 아드님과 함께 북한 정부에 선생님의 최근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북한 정부에게는 북한으로 납치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 정부가 선생님의 권리를 반드시 존중할 것을 계속해서 요구할 것입니다.

인권은 모두에게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선생님께서는 북한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하고, 자의적인 감시 및 고문 또는 기타 부당 대우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북한 당국에 선생님의 상황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한국 정부에게도 이 사건에 대한 북한과의 협의와 논의를 시작할 것을 요청할 것입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따뜻하고 건강한 연말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한국에 있는 선생님의 가족과 함께 전 세계의 우리는 모두 어디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뵙거나 선생님으로부터 소식을 듣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겠습니다.

아놀드 팡,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

수, 2019/12/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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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먹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우리의 몸과 세상이 만들어지고 달라집니다. 푸드마일리지를 아시나요? 식품이 생산된 곳에서 일반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거리를 나타내는 것인데요. 푸드마일리지가 높을수록 많은 양의 식품을 먼 지역에서 수입해왔음을 의미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식품의 안전성도 떨어진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먹는 것은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도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메마른 땅에서 싹을 틔우기 힘들 듯, 아프고 병들어가는 지구에서 건강한 먹을거리를 찾는 것은 요원한 일인지 모릅니다. 지속가능한 먹을거리를 찾는 움직임 역시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이번에 만난 후원회원 역시 지속가능한 먹을거리를 위해 고민하고 움직이는 분입니다. 바로 김영준 후원회원(윈원농수산 대표)입니다.

노동운동에서 농업운동으로

“1985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시 농수산공사에서 근무했어요. 94년에 농안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파동을 겪으면서 농업에 본격적인 관심을 두게 됐죠. 당시 노조 상근자로 있었는데, 농수산물 유통 대란을 보니 노동운동만큼이나 농업운동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농안법 파동은 농수산물 유통문제에 대해 정치권 및 시민사회의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농안법 재개정을 위한 농민・시민단체 연대회의’가 결성되기도 했는데요.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파동을 지켜본 김영준 후원회원도 직접 발 벗고 나섰습니다. 농수산공사 노조 상근자로 근무하면서 활동의 영역을 넓혔습니다.

“이때 농업, 유통 등에 대해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아요. 법 시행이 유예된 6개월 동안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의해서 시민, 농민의 개정안을 만들었어요. 제안이 받아들여지고 시행되었는데, 함께했던 사람들과 헤어지기가 아쉽더라고요. 그렇게 사단법인 농수산물유통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김영준 후원회원은 농수산물유통연구소에서 ‘현실 공부’를 했다고 말합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을 비롯해 전국의 도매시장을 들러 인터뷰하고 자료조사를 하며 농촌, 농업, 농민의 현실과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건강과 환경에 좋은 먹을거리를 만들다

서울시 농수산공사 퇴사 후 김영준 후원회원은 작은 사업체 하나를 꾸렸습니다. 바로 윈윈농수산입니다. ‘윈윈’(win-win)이라는 이름에는 ‘소비자와 생산자, 유통종사자가 모두 윈윈하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김영준 후원회원의 포부가 담겨있습니다.

“노동운동 할 때 생협운동 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그분들을 보며 소비자생협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됐어요.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있기 아주 오래전부터 먹을거리 운동을 해 왔으니까요. 로컬산업의 확장을 위해서도 생협은 더 성장해야 합니다. 2015년 기준으로 생협 조합원 수가 155만 명이래요. 전체 인구의 10% 수준인 500만 명 정도까지 늘어나야 합니다. 생협이 수입을 배당하지 않는 조건으로 정부가 지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목민관클럽 회원 지자체장님들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역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테마파크 등의 자본집약형 산업이 아니라 생협과 같은 로컬산업이거든요.”

윈윈농수산은 홍합, 바지락, 새우살, 대구살, 당근, 버섯, 아스파라거스 등 다양한 농수산물 가공식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수산물, 그중에서도 새우살이 주력 상품입니다. 조금 비싸더라도 건강과 환경에 좋은 국산 수산물만을 활용한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양식하지 않은 것, 불가피하게 양식하더라도 배합사료를 주지 않는 수산물을 취급하는데요. 최근에는 이유식을 위한 다짐농수산물도 개발했습니다. 이렇게 가공된 식품은 생협 등으로 납품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구 1kg에서는 230g의 순살이 나오거든요. 고래회충 등과 가시 등을 발라내는 작업은 기계로 하기 힘들어요. 모두 수작업으로 합니다. 국내산 재료를 쓰는 데다가 가공 작업도 번거로워 완제품 가격이 싸지는 않아요. 하지만 자연과 사람이 상생할 수 있는 먹을거리를 제공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2001년 창업했는데, 시작하고 2년간은 정말 힘들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되었네요. (웃음) 저까지 총 19명의 직원이 함께 일하거든요. 저는 여기도 작은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직원들과 함께 경제활동을 하며 먹고 산다는 것 자체가 보람찬 일 같습니다.”

 

시민의 삶에 더 와닿는 대안 만들어주길

김영준 후원회원은 농안법 개정 당시 알게 된 김완배 서울대 교수와의 인연으로 희망제작소와 인연이 닿았고 강연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농업과 농촌의 방향성을 찾아본 단행본 ‘농업농촌 희망 설계도’의 종잣돈을 마련해주기도 했는데요. 후속 연구가 진행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합니다.

“‘농업농촌 희망 설계도’의 목차에 따라서 지침서 등을 만들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개론을 넘어 좀 더 실질적인 내용을 담으면 농업 현장에 더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앞으로 희망제작소도 시민의 삶에 더 와닿는 디테일한 대안을 마련하는 활동을 하길 바랍니다.”

 

어떤 삶을 꿈꾸냐는 질문에 ‘믿을 수 있는 친구’ 되고 싶어

“큰 꿈은 없어요. 다만, 주위에 의미있는 일을 하는 분이 많은데요. 이분들이 힘들 때 언제든 찾아와 술 한 잔 기울이고 하소연할 수 있는 믿음직한 친구가 되고 싶어요. 언제든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친구 말이죠. 저와 그분들은 다른 환경과 조건을 가졌지만, 각자의 사정에 맞는 연대를 하는 거죠.”

앞으로 어떤 삶을 꿈꾸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분이 희망제작소의 후원회원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 글 : 최은영 이음센터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인터뷰 진행 : 최은영 이음센터 연구원 ・ 한상규 이음센터 센터장
– 사진 : 한상규 이음센터 센터장 ・ [email protected]

월, 2020/03/30-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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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1/06/3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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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지역 후원회원님을 만날 때마다 유독 한 분의 이름을 자주 듣습니다. 바로 김주형 후원회원(1004클럽)인데요. 많은 분이 김 후원회원의 추천으로 희망제작소 후원을 시작했다고 말씀하십니다.

후원은 기본적으로 마음이 움직여야 가능한 일인데요. 김주형 후원회원의 어떤 모습이 다른 분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요. 김 후원회원을 만나러 전주로 향했습니다.

더 좋은 사회를 꿈꾸는 마음으로

전주에서 아동병원을 운영 중인 김주형 후원회원은 ‘아름다운 가게’에 무상임대로 공간을 내어주는 등 우리 사회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많은 활동을 해 왔습니다.

“광주에 전라도 최초로 ‘아름다운 가게’가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찾아보니 전북에는 없는 거예요. ‘이렇게 좋은 게 왜 전북에는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저희 건물 1층이 비어있어서 무작정 아름다운 가게에 전화했죠.”

김 후원회원은 무상임대는 물론 인테리어 비용까지 부담하며, ‘아름다운 가게 모래내점’이 개점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웁니다. 이후 ‘공동대표’라는 직함도 얻었지만 어떤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좋은 일이 돈에 가로 막히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공과금만 받아요. 남들이 보기에는 제가 손해보는 것처럼 느껴질지 몰라요. 하지만 제가 돈을 벌려고 이 일은 한 건 아니잖아요. 좋은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죠.”

희망제작소와의 인연은 아름다운가게 모래내점 축사를 온 박원순 전 상임이사(현 서울시장)와의 만남으로 시작됐다고 합니다. 당시 김주형 후원회원은 전주시의사회 회장을 맡고 있었는데요. 의사회 연수교육 당시 박 전 상임이사를 초대해 기부문화와 관련된 강의를 듣고 희망제작소에 대한 소개를 들은 후 후원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희망제작소 활동 취지에 공감이 가더라고요. 보탬이 되고 싶었죠. 그래서 제가 1004클럽에 가입하겠다니까 몇몇 의사들이 함께하겠다고 하셨어요. 회장인 제가 하니까 엉겁결에 같이 후원을 시작한 게 아닌가 싶어요.” (웃음)

겸손하면서도 따뜻함이 묻어나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모습이 지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의사회뿐 아니라 사적인 모임에서도 희망제작소 이야기를 종종 꺼내셨다는데요. 그때마다 많은 분이 공감하고 함께 후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셨다고 합니다. 덕분에 희망제작소에는 더 많은 지원군이 생겼습니다.

코로나19 자원봉사현장으로 향하다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시끌시끌합니다. 실제 우리의 삶도 많이 달라졌는데요. 김 후원회원이 운영 중인 병원에도 코로나19의 영향이 미쳤습니다. 하루 평균 400여 명이던 환자 수가 약 70% 정도 감소했다는데요. 입원 환자의 경우에는 72개의 병상 중 10개를 넘기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당뇨, 고혈압, 관절 등 만성질환을 다루는 병원은 좀 나을 거예요. 하지만 저희 같은 경우는 급성질환이 많다 보니 환자 수가 많이 줄었죠. 저희 병원 의사가 9명이거든요. 환자가 줄다보니 한 달에 2주씩 무급 휴직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집에만 있고, 가끔 나가더라도 마스크를 쓰니까 위생 상태가 좋아지는 거죠. 사회전체적으로는 긍정적인 현상인데, 의사들은 살짝 어려워졌어요.”

지난 3월에는 김 후원회원의 병원에 확진자가 다녀가는 바람에 상황이 더 어려워지기도 했습니다. 하루 전체 환자 수가 10명이 되지 않는 날도 있었다는데요. 그 와중에도 김 후원회원은 코로나19 의료봉사에 참여했습니다. 신천지 사태로 전국이 한참 시끄러울 당시에 선별진료소로 향했고, 전주에 있는 600여 명의 신천지 신도를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드라이브스루라지만 불안했던지 아내가 못 가게 했어요. 손주도 있고 해서 저도 살짝 고민했죠. 그래도 가야겠더라고요. 가면 제가 최고참일 줄 알았는데, 두 분의 선배가 더 계셨어요. 감사했죠. 후배들도 좋아했어요. 물론 힘들긴 했습니다. 3월이라 많이 춥진 않았는데 손이 시렸어요. 입김 때문에 안경에 김도 서렸고요. 또 방진복을 벗으니 머리에만 땀이 흥건하더라고요.

김주형 후원회원은 드라이브스루, 워킹스루 등을 포함한 K방역이 혁신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덧붙여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꼭 한국에서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는데요. 이를 통해 한국의 우수한 의료체계가 전 세계에 알려지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대응을 잘한 것은 의료체계의 영향도 있다고 봐요.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공적의료 체계와 함께 민간의료시설이 발달해 있거든요. 또 의료수준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도 상당히 높습니다. 덕분에 대응이 훌륭했던 거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주세요

김 후원회원은 직업인 의사를 넘어 봉사자 의사로서 평생 일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시간 날 때마다 동남아 등지로 의료봉사를 떠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젊었을 때 아프리카로 의료봉사를 가는 게 꿈이었어요. 생활에 얽매여 못 하고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하고 싶네요. 물론 제일 좋은 건 현지에 병원을 짓거나 교육을 해서 의사를 양성하는 것인데요. 지금은 그게 쉽지 않으니까, 우선은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싶네요.”

다소 엉뚱한 것 같지만 김주형 후원회원의 꿈은 ‘세계평화’라고 합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사용하는 닉네임까지 ‘세계평화’라고 지었다고 하는데요. 세계평화는 가족기도회 때마다 빠트리지 않는 기도 제목 중 하나라고 합니다.

“요즘 가슴이 많이 아파요. 코로나19 때문에도 그렇지만, 뉴스를 보면 복잡한 정세에 머리가 지끈지끈 해요. 북한, 미국, 일본 등 참 골치 아픈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우리 사회는 점점 진보하고 있다고 믿어요. 희망제작소 같은 비영리단체도 일조했다고 보고요.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좋은 역할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주세요.”

– 글 : 최은영 이음센터 연구원 [email protected]
– 인터뷰 진행 : 한상규 이음센터 센터장 [email protected] 최은영 이음센터 연구원
– 사진 : 이음센터

월, 2020/07/0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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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순간은 늘 슬프고 아쉽습니다. 희망제작소 연구원들도 1년에 여러 차례 이별을 겪는데요. 동료 연구원이 떠나가는 순간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후원회원으로 남아 희망제작소와 계속 인연을 이어가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번에 만난 이은경 후원회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은경 후원회원은 2013년 가을부터 2017년 여름까지 약 4년여간 희망제작소 연구원으로 활동했습니다. 퇴직 이후에는 후원회원과 독립연구자로서 함께 했는데요. 최근에는 희망제작소의 여러 프로젝트에 객원연구위원으로 합류해 활발하게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 연구원에서 후원회원으로

“큰 흐름을 보게 되었어요.”

희망제작소 안에서 바라볼 때(상근연구원)와 밖에서 바라볼 때(후원회원)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입니다. 연구원으로 일할 때는 프로젝트로 희망제작소의 미션과 목표를 실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다 보니 성공과 실패에 일희일비하는 경우가 많았다는데요. 거리를 두고 바라보자 ‘희망제작소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위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너그러워 보이지만 더 어려운 시선이에요.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길 바라는 마음은 더 커졌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새로운 의제가 떠오를 때마다 희망제작소가 어떻게 움직일지 기대하게 되더라고요.”

퇴직 이후에도 꾸준히 후원을 이어가는 이유 역시 이런 기대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후원회원은 “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는 직접 후원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희망제작소의 활동 가치에 좀 더 깊이 공감하고 후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면서 후원을 시작했다고 하네요.

“입사와 동시에 후원을 시작한 게 아니기 때문에 퇴직 후에도 탈퇴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중요한 사실은 처음 후원했을 당시와 지금의 마음이 같다는 건데요. 희망제작소가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 그리고 중요한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거죠.”

새로운 사회의제를 발굴하고, 연구하고, 대안을 찾던 경험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이은경 후원회원은 희망제작소가 전통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사회의제를 연구하고, 대안을 찾아보는 역할을 했습니다.

“다문화정책 연구, 노동, 일상 정치 참여 등 희망제작소가 기존에 연구했던 의제와 조금 다른 방향의 것들에 집중했었는데요. 어떻게 보면 실험적이었던 것도 같아요. 하지만 새로운 사회적 의제나 이슈를 다룰 때, 그것이 희망제작소의 주요 키워드인 사회혁신, 지역혁신, 시민참여와 어떻게 맞닿아있는지 심도 있게 탐색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실제 이 후원회원이 리더로 있던 사회의제팀에서 기획했던 ‘좋은 일, 공정한 노동’, ‘좋은 일을 찾아라’ 보드게임 등의 프로젝트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노동의 의미,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등의 이슈가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하고 있던 때에 진행되고 대안을 제시한 연구라서 더욱 의미 깊었습니다.

“희망제작소에서 일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희망제작소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였어요. 생각해 보니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게 어렵긴 하더라고요. 워낙 많은 일을 했으니까요.”

이런 고민은 외부에서 희망제작소를 바라볼 때도 비슷하게 다가오지만, 연구원으로 일할 때보다 더 많은 주문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합니다. 특히, 희망제작소가 여러 지역과 현장에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은 보이는데, 그것들이 지향하는 핵심적인 가치 혹은 변화의 방향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과거에 비해 시민의식이 많이 높아졌어요. 시민참여 방법론도 다양해졌고요. 저 역시 희망제작소처럼 시민참여는 ‘작은 단위’에서 시작한다고 봐요. 시민이 우리 사회의 어떤 지점에서 분노하는지, 그리고 어떤 부분에 기여하고 싶어 하는지 면밀하게 살피고 이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시민참여를 활성화 할 수 있어요. 이 원리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 동력이 되는 게 희망제작소가 바라는 진정한 의미의 ‘시민참여’ 아닐까요?”

희망제작소, 독립연구자의 든든한 협업 파트너가 되었으면

미디어학을 전공한 이은경 후원회원의 최근 관심 분야는 미디어 스타트업인데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독립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미디어와 언론의 혁신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데요. 동시에 앞서 언급한 것처럼 희망제작소의 다양한 프로젝트에도 객원 연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독립연구자로 연구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가끔 힘에 부쳐요. 혼자 모든 것을 만들고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때 필요한 건 돈일 수도 있고, 지식이나 능력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사람일 수도 있는데요. 희망제작소가 독립연구자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어요. 공익에 관심 있는 이들의 활동을 지원해주는 것은 물론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협업의 파트너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묵직한 조언에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희망제작소라고 해서 늘 희망만 있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도 나눴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보다는 희망이 큰 삶을 함께 살아가자는 말에 힘을 얻었습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걷는 사람. 좋은 친구라는 말은 이럴 때 붙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 글 : 최은영 이음센터 연구원 [email protected]
– 인터뷰 진행 : 최은영 이음센터 연구원
– 사진 : 이음센터

수, 2020/10/2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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