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칼럼] 새로운 시작은 때를 가리지 않는다
<기본소득, 존엄과 자유를 향한 위대한 도전> 출판기념 토크쇼
▶ 취지와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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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생계부양자가 일하는 사회에 기초해 설계된 복지국가는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사회적 위험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 일부 군소 정당의 황당한 주장으로 여겨지던 기본소득이 일자리는 점점 감소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일자리의 질도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시대의 ‘실제적’ 대안 중 하나로 부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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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임금노동에 기초한 소득보장제도를 대신해 세계 곳곳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과 관련된 실험을 탐구하는 세미나를 통해,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저서를 번역해 <기본소득, 존엄과 자유를 향한 위대한 도전>을 2018년 9월 발간함. *원서: Basic Income Guarantee and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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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탐색한 기본소득실험의 국제적 경험과 실현에 대한 전망을 시민들에게 공유하고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단체를 초청해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의 장을 열어보고자 함.
▶ 출판기념 토크쇼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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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8년 9월 28일 (금요일) 오후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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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참여연대 카페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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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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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소득, 존엄과 자유를 향한 위대한 도전> 출판기념 토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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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최혜지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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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① 윤홍식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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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② 이원재 LAB2050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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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③ 김주온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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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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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기본소득 실험이 주는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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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기본소득 도입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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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수당(혹은 유사한 현금급여) 정책실험이 주는 의미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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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토론
▶ 기본소득 토크쇼 [참가신청/의견 남기기]
문재인정부의 포용국가 전략회의 결과에 대한 입장
지난 9월 6일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최초의 사회정책 전략회의를 개최하여 정부가 추진할 복지국가의 목표상을 ‘혁신적 포용국가’로 제시하고 이를 실현할 사회정책의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였다. 혁신적 포용국가는 김대중정부의 생산적 복지, 노무현정부의 사회비전 2030에 이은 민주정부의 세 번째 복지국가 청사진으로 현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더 지난 시점에서 발표되어 오히려 만시지탄의 감마저 없지 않지만 일단은 환영할 만하다.
정부가 발표한 혁신적 포용국가 비전은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전략의 전체적 구상에서 반드시 다루어졌어야 할 소득보장과 사회서비스 전략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는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소득주도 성장의 전체 모습을 제대로 갖추게 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이번에 제시한 사회정책 비전에서는 사회보험과 기초소득보장의 동시적 강화를 강조하면서, 그간 지속적으로 후퇴되어 온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에 대하여 적정 수준으로 인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과 보건복지 서비스 분야에서 적정 수준의 공공서비스 공급자로 국가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이를 통하여 공공사회서비스 일자리 확충을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기존의 정부 정책과는 차별성이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대비한 사회지속성 확보, 4차 산업혁명을 비롯한 미래기술변화에 대처할 역량이 사회정책에 의해 구축된다고 적시한 것도 바람직하다. 더 나아가 사회정책은 경제정책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보적 관계에 있으며, 자본과 시장 중심의 혁신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혁신을 위해 사회투자와 노동시장정책을 복지정책과 결합한 전략은 우리사회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면서 추구해야 할 혁신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적절히 짚은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전략회의의 실효성과 관련한 의문점들은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국가전략회의라는 특성상 방향성 제시에 머물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전략회의의 내용은 상당히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인 정책 목표와 수단들이 빠져있다. 정부도 이런 점을 의식하여 내년 상반기 중에 국민기본생활 3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한다고 하였으나, 이것이 또 다시 정책수립을 미루는 관행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해야한다. 무엇보다 이번 전략회의에서 천명한 사람 중심의 혁신이 사회정책 전략회의에서만 통용되는 개념으로 한정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도 여전히 남는다. 아직까지 경제 부처를 중심으로 자본과 시장 중심의 혁신을 강조하는 흐름은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고, 이는 의료분야의 규제완화를 추진한다는 대목에서도 이미 드러났다. 만일 문재인정부가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한 자본과 시장 중심의 혁신을 사람 중심의 혁신으로 근본적으로 대체하지 못한다면 과거 정부가 그랬듯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별개로 운영되어 상호갈등을 유발하고 국가 전체적으로는 이중전략의 신호를 주는 오류를 또 다시 범하게 될 것이다. 사회정책만 사람중심의 혁신을 추구해서는 안 되며, 산업정책과 금융정책, 경제정책 등 비사회정책 전반이 모두 사람중심의 혁신을 목표로 삼는 일관된 국가전략이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문재인정부는 관성적인 재정보수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진정한 사람 중심 예산과 그를 위한 재정 전략도 함께 수립해야 할 것이다.
이번 문재인정부의 사회정책 전략회의가 내놓은 혁신적 포용국가 전략은 아직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전략회의에서 말한 국민기본생활 3개년 계획이 어떻게 사람중심의 혁신을 가능케 할 구체적 정책으로 제시될 것인지가 문재인정부의 포용국가 비전의 실현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더 나아가 사회정책 뿐 아니라 노동과 주거 그리고 산업을 다루는 경제정책 전반에 있어서도 사람중심의 복지전략이 보다 강력한 원칙으로 추진되어야 양극화와 빈곤의 고통에서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사회정책 전략회의에서 제시한 혁신적 포용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과감한 행보를 펼쳐야 할 것이다.
▶ 논평 [원문보기/다운로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관점에서 본 분권지상주의의 문제와 과제
신진욱 |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지방분권지상주의
1700만 시민의 수개월에 걸친 촛불집회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이어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개헌안의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는 조항을 추가할 것을 제안하면서 오늘날 국가대개혁의 핵심을 ‘지방분권국가’로 압축했다. 지방분권을 지지하느냐의 문제와 전혀 별개로, 지방분권이 한국사회의 최상위의 법규범과 국가정체성을 표현하는 헌법 1조의 반열에 오를 만큼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엄밀한 의미의 지방분권, 즉 입법․행정․재정의 측면에서 중앙과 지역의 권력불균형을 완화하는 과제가 긴급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현재 한국의 헌법, 지방자치법, 사회보장법 등은 지자체 조례 제정을 법령의 허용 범위 내로 묶어두고 있고, 중앙정부가 지역 입법에 개입하여 통제할 수 있으며, 세입 면에서 지방세 비율이 여타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면서도 세출의 절반 이상을 지자체에 떠맡김으로써 지역의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의 권한과 독립성을 확대하고 중앙-지역 간 관계를 명료히 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문병효, 2015; 최봉기, 2010).
그러나 한 사회의 문제와 과제는 다차원적이다. 국가기관 내의 권력분립, 시민적 자유의 보호, 평등과 연대를 위한 국가능력의 증대, 경제권력으로부터 국가의 자율성,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부와 삶의 질, 주민의 필요와 요구에 부응하는 지역정치 등 제각기 중요한 여러 목표가 있다. 이 모든 것을 ‘지방분권’의 이름하에 뒤섞는 것은 정확한 현실인식과 대안모색을 가로막을 뿐더러, 지역을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글은 지방분권으로 통칭되고 있는 여러 문제와 과제를 분별하고, 국가와 지역을 함께 개혁하기 위해 고려할 쟁점들을 고찰한다.
민주화에서 분권국가 선언까지
출발점은 1987년이다. 독재종식과 더불어 일련의 민주적 기본권과 정치제도가 도입되었지만, 권위주의 시대에 형성된 극도의 중앙집중적 권력구조의 유산을 개혁하는 과제가 남았다. 여기서 두 갈래의 문제틀이 생겨났다. 그 하나의 축은 국가개혁이다. 대통령․청와대 권력의 분산, 정당정치의 실질화, 선거제도 개혁, 참여민주주의 확대 등이다. 이것은 이른바 ‘87년 체제’의 중대한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였다. 다른 하나의 축은 지역개혁이다. 1991년 지방자치 개시와 1995년의 제1회 동시지방선거 실시 이후 ‘지역’의 정치적 중요성이 커졌다. 1990년대 내내 시민단체들은 지방자치, 지방분권 운동을 벌였고, 1990년대 후반부터 대선 후보들은 지방분권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여기에 서울․수도권 집중 경향이 심해지면서 지역 간 격차를 완화시켜야 할 숙제가 더해졌다. 여기서 지방분권과 민주화의 문제틀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그러나 지역 수준의 권위주의와 권력집중도 가능하며 지방권력이 지역 경제권력에 종속되어 사회경제적 집중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이 곧 민주화와 권력분산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분권을 모든 좋은 것의 대명사로 간주하는 믿음이 고착됐다. 그것이 분명해진 계기가 2003년의 ‘지방분권 3대 특별법’ 제정이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지방분권특별법」은 수도권 집중 완화, 중앙사무의 지역 이양, 지방정치의 책임성 강화, 주민참여 촉진 등 다양한 목표를 담고 있었는데 모두 ‘지방분권’으로 간주됐다. 이어 2005년에 노무현 정부는 복지사업을 중심으로 중앙사무의 많은 부분을 지방으로 이양했다. 이 과정은 ‘지역’에 관해 많은 혼란을 안고 있었지만 이를 봉합한 채 성급하게 진행됐다(김태일, 2007).
2018년의 대통령 개헌안은 이제 지역발전에 관련된 제반 목표 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핵심 과제가 된 국가 권력구조의 개혁까지 ‘지방분권국가’라는 지향으로 압축하면서 혼돈에 정점을 찍었다. 이로써 국가 권력구조의 개선, ‘촛불’이 상징하는 시민권력의 구현, 지역균형발전, 지방권력 강화, 지방정부의 책임성과 주민참여 확대 등 모든 과제를 ‘지방분권’이라는 하나의 개념이 대표하게 됐다. 이것은 규범적 구속력보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개헌안에서 지역 권한 강화에 관한 세부 조항은 ‘지방분권국가’라는 엄청난 선언에 비하면 온건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문제는 지역의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안이 과도하다는 것이 아니라, ‘지방분권’이 현 시대의 여러 개혁과제를 상징할 수 있다고 믿는 인식의 혼란이다. 이 혼란을 교정해야 지방분권과 지역정치, 지역의 복지와 균형발전을 제대로 이룰 수 있다.
지방자치,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
먼저 그동안 ‘지방분권’이라는 이름으로 혼동되어 온 지방자치,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의 상이한 문제와 과제를 분별해야 한다. <표 1-1>은 세 측면에서 일차적으로 문제시되는 현실과 그로부터 도출된 즉각적 과제를 정리한 것이다.

⒜ 지방자치의 일차적 문제는 중앙정치가 지역정치를 좌우하는 현실이다. 권위주의 시기 동안 독재권력은 단체장을 중앙에서 임명하고 통제했다. 그런 만큼 지방자치 시대의 최대 의의는 지방정치를 활성화시키고 대표성을 높이는 것이다. 2006년과 2010년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투표참여와 정당정치를 확대하는 일련의 법 개정으로 지방정치는 크게 활성화됐다. ⒝ 지방분권의 강화를 요구하는 문제는 지자체의 자율성과 입법적, 재정적, 행정적 역량이 약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지역의 자율성과 자립성을 강화하는 것인데, 양자는 같은 것이 아니다. 자율과 책임이 주어졌을 때 그것이 지역 경제와 재정의 자립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 지역 간 균형발전이라는 문제를 별도로 고려해야 한다. 이 문제의 핵심은 두말할 나위 없이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다. 중앙에 대한 ‘지역’의 강화와 수도권에 대한 ‘지방’의 강화는 분명히 다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위의 셋 중 하나의 문제해결 노력이 자동적으로 다른 쪽의 문제해결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지방자치 20여 년 동안 지방분권이 진전되지 않았듯이,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이 지역균형발전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지역의 자율성을 높이는 것은 지역 간의, 특히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를 늘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지역분권이 지역 간 격차 완화와 함께 가려면, 지역권력의 강화에 준하는 강도로 지역균형을 위한 중앙의 개입능력을 확보하고 지역 상호간 연대책임을 부과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권이 이런 문제를 심화시킨다는 것이 아니라, 분권의 과제와 정치경제적 균형발전의 과제는 같지 않으며 자동적으로 상호강화하는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역의 지방자치,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과제를 ‘따로 또 함께’ 고민해야 한다.
중앙과 지역의 동시적 개혁과제
다음으로 우리는 중앙과 지역 수준을 아우르는 범위로 시야를 넓혀서, 촛불과 탄핵 이후의 국가개혁과제를 ‘지방분권국가’로 집약하게 만든 혼란을 풀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겪으면서 제기된 핵심 개혁과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중앙집중적 권력구조를 분산시켜 국가기구 내의 권력분립과 상호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시민에 대한 국가의 공적 책임을 강화하고 정치․사회적 기본권을 보호하며 참여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이다. 둘은 각각 행정부/입법부 간의 수평적 관계와 정부․정당/시민 간의 수직적 관계에 관련된다. 한편 지역에 관련되는 개혁과제는 일차적으로 중앙-지역 관계에서 지역의 자율성과 자립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국회에 요구하는 개혁을 지역 수준에 적용시켜 보면 다른 많은 개혁과제가 분명히 보인다.
<표 1-2>는 정치제도 내의 수평적 관계와 정부․정당과 시민 간 수직적 관계에 관련된 개혁과제를 중앙-지역 관계, 중앙 수준, 지역 수준에서 함께 고찰하기 위한 메타도식이다.

먼저 ⒜와 ⒝에서 출발해보자. ⒜는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남용으로 명백히 드러난 권력구조의 과잉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권력분립과 상호책임성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긴급해졌다. 이와 달리 ⒝는 국가기구 내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시민의 관계에 관련된다. 2000년대에 여러 차례 일어난 촛불집회에서 표출된 시민들의 의지는 대통령제를 못 믿겠으니 국회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정부․의회․정당 등 ‘모든’ 정치제도를 시민의 감시와 참여, 압력 하에 두길 원했고, 또한 정치계급에 의해 사유화된 국가가 아니라 시민공동체를 위해 존재하는 공적 국가를 갖길 원했다. 중앙정치 개혁은 ⒜와 ⒝를 함께 담아야 한다.
그럼 이 관점에서 지역의 문제를 보자. ⒞와 ⒟는 중앙과 지역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이 관계를 대하는 이제까지의 지배적 프레임은 지역의 자율성과 자립성을 핵심어로 했다. 그러나 정치제도와 정치-시민 관계의 개혁이라는 문제틀과 중앙-지역 관계의 문제틀을 교차해보면 빈 칸에 물음표가 생긴다. 양자의 연관이 명백하려면 지역이 중앙보다 더 나은 민주주의와 분배정의를 보여주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 어떻게 하면 지방정부와 의회가 서로 건설적으로 견제하고 협력하면서, ⒡ 주민들의 감시와 참여를 보장하고 모든 계층의 고른 행복을 위한 복지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게끔 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가 중요해진다.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의 과제
그렇다면 바람직한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을 위한 과제는 무엇인가? <표 1-3>의 왼쪽 열이 중앙과의 관계에서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의 과제라면, 오른쪽 열은 중앙뿐 아니라 지역 수준에서도 실현되어야 할 몇 가지 실질적 과제를 열거하고 있다.

⒜에서 지방정치의 형식적 대표성과 선거경쟁의 활성화는 분명 지방정치 발전의 한 측면이지만, 선거정당성만으로 민주주의가 달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보여줬다. 지방정치 민주화를 위해서는 추가적 과제가 달성되어야 한다. 지방선거가 각 지역의 의제와 주민들의 요구를 반영해야 하고, 단체장과 의회 간의 권력분립과 상호책임성이 실현되어야 하며, 선출된 권력의 정책이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에 반응해야 하고, 지자체와 지방의회의 과오에 대해 주민들이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하고, 정치권력이 지역의 경제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에서 현재 극도로 낮은 지역의 자율성과 자립성을 강화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이되, 강화된 지역권력이 어떤 정부, 어떤 정치를 실현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지방정부가 토건․성장주의 정책으로 재정을 확충하려는 경향, 지역 간 입지경쟁 속에서 감세와 각종 탈규제 등의 유인을 사용하는 것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하며, 지자체의 자율적 복지 노력을 강제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존재해야 한다. 더불어 중앙정부의 정치개혁이나 복지확대 노력에 대해 일부 지방정부가 비토를 행사하여 개혁을 저지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정치·경제·복지 등 여러 면에서 지방분권이 지역 간의 불균등 발전을 심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하여 제도 개혁을 설계해야 한다.
이처럼 ‘좋은 분권’은 ‘좋은 국가’ 만큼이나 많은 문턱을 가진 길이다. 일단 지방분권이 먼저라고 생각한다면 사회변화에서 ‘시점과 순서’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다(신진욱·서준상, 2016). 지역정치를 민주화하고 친복지세력을 강화하는 과제는 지방분권 못지않게 긴급하다. 이것 없는 지역권력의 강화는 곧 지역의 정치엘리트와 경제권력의 강화를 뜻한다.
지방분권국가와 복지국가
끝으로 국가적 수준에서 분권과 복지의 관계를 보자. 그 핵심 질문은 “지방분권국가는 복지국가를 촉진하는가?”, “선진적 복지국가들은 지방분권국가인가?”가 될 것이다. 여기서 지방분권국가는 모호한 개념이다. 지역분권적 국가는 반드시 국가형태상 연방국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연방제 국가도 중앙-지역 관계가 위계적일 수 있고, 단일형 국가도 분권적일 수 있다.
먼저 연방국가 체제는 복지국가 발전을 촉진하는가? 이에 관해 그동안 찬반이 있었지만 오늘날 다수의 견해는 양자가 직접적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독일, 오스트리아와 같은 유럽의 연방제 나라들은 발전된 복지국가를 갖고 있지만, 미국에선 연방제 국가형태와 복지국가 저발전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 미국에서 연방제 체제는 자본이동을 용이하게 하여 주정부들은 종종 재원확보를 위한 입지경쟁을 하면서 감세, 탈규제 정책을 펼쳤다. 연방제는 또한 대법원을 통해 연방의 권한을 제약하고 제도개혁을 비토하는 헌법적 기초이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미국의 국가체제를 설계하던 시기에 부르주아 세력은 바로 이런 효과를 내다보며 연방제를 강력히 주장했고 관철했다(알레시나·글레이저, 2012).
다음으로 강조할 것은 모든 연방제 국가에서 지역이 강력한 권한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은 연방과 주의 권한 및 책임이 분명히 분리된 이중적 연방제 모델이며, 주는 입법과 재정 면에서 강한 자율성을 갖고 있다. 이에 반해 독일은 연방제지만 연방이 포괄적 입법권과 감독권을 갖고 있고 주정부는 주로 집행을 담당하여, 연방과 주 사이에 위계적 관계가 강하다. 그 대신 독일은 연방상원(Bundesrat)이 각 주의 현직 대표자로 구성되는 유일한 국가다. 상원은 주에 관련된 입법에 참여하며 헌법재판소에 대해 강력한 선출권과 제소권을 갖는다. 독일은 이러한 결합형 연방제(Verflechtungsföderalismus) 혹은 협력형 연방제(kooperativer Föderalismus)를 통해 권력구조의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 추구해왔다.
한편 단일국가 체제인 복지국가에서 지역정부의 역량과 역할이 연방제 국가에 비해 더 작은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남찬섭, 2016).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북구 나라들은 단일형 국가체제지만, 영미권 연방제 국가보다 훨씬 강한 지역정부의 복지행정 능력과 복지정치 기반을 갖고 있다. 북구에서 전체 공공지출․세입 중 지역의 비중은 30%~40%대로 10%~20%대인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연방제 국가보다 상당히 높고, 전체 공공부문 고용 중 지역정부의 고용 비중 역시 북구에선 70% 내외로 10%대~50%대에 걸쳐 다양한 영미권 연방제 국가보다 훨씬 높다. 이에 반해 미국에선 일찍부터 지역 수준까지 선거정치의 힘이 커져서 공공기관의 독립성과 지속성이 약했고, 정치-사회 간에 후원주의 관계가 발전하여 사회정책의 미발달을 초래했다.
끝으로 지방분권의 강화 또는 약화가 복지국가의 발전과 후퇴에 미치는 영향 역시 맥락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독일에선 다층적, 분권적 권력구조가 1980~90년대에 급격한 신자유주의 개혁을 막는 방어벽 역할을 했지만, 2000년대 하르츠 개혁에 포함된 지방분권 조처들은 복지국가 축소로 가는 수단의 하나였다. 일본에서 지역정치의 양가성은 더 극적이다. 1970년대 일본 복지국가의 도약은 혁신지자체가 자민당 지배의 중앙정부를 압박하고 이끌어가는 경로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엔 중앙 역할을 지역으로 이양하고 국고보조를 축소하는 것이 복지국가 축소의 수단이 되었다(타다, 2008; 미야모토, 2010). 나아가 지금은 아베 자민당의 기반이 바로 지역이다. 대도시의 강한 반(反)아베 여론에도 불구하고 자민당의 선거승리를 가능케 한 것은 지역의 견고한 보수권력이었다. ‘지역권력’의 정치적 의미는 근본적으로 양가적이고 불확정적이다.
결론
전체를 관장하는 힘을 부분으로 분산시켜 각각에 자유를 주면 모든 부분이 행복한 전체가 생겨나리라는 믿음은 아주 오래된 자유주의의 근거 없는 믿음이다. 중앙-지역 관계에서의 분권은 계급적 관점에서 봤을 때 결코 그 자체로 더 많은 평등과 정의, 복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지방분권국가로 접근해가는 것이 복지국가라는 또 다른 국가이상의 실현을 선도하거나 촉진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지방분권과 복지국가 발전 간의 관계는 불확정적이며, 따라서 양자의 상생적 발전을 위한다면 두 문제틀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분권주의자가 지방분권의 대안을 마련하고, 복지전문가가 복지국가의 대안을 마련하는 식의 단순한 분업은 양쪽 모두에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상적으로 지방분권은 복지국가의 기초를 지역에서부터 탄탄히 쌓기 위한 첫 걸음이 될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이고 당위일 뿐, 단지 의지와 노력으로 실현할 수 있으리라 낙관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산업발전, 선거정치, 시민권력, 복지국가 등 다양한 사회변동의 시점과 순서, 그들 간의 특정한 결합관계는 이후 사회 전체의 발전궤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복지국가 발전의 초창기에 있는 한국에서는 모든 지역에서 복지정치 기반의 성장을 골고루 이뤄갈 수 있게끔 중앙과 지역의 관계가 설정되어야 하며, 특히 중앙 권력의 단순 이양이 아니라 지역복지의 임파워먼트를 위한 중앙-지역 협력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지방분권을 절대선으로 숭앙하는 관념이 탄생한 계보를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지역’의 정치적, 계급적 의미는 역동적으로 변했다. 2004년에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획득한 후에 정권의 지지율은 다시 추락했고,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모든 지자체장을 석권했다. ‘풀뿌리 지역보수’에 관해 많은 얘기가 오갔다. 이후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 패배로 중앙과 지역의 행정·입법부를 모두 보수에 장악당한 진보적 유권자층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지역에 권력을 부여함으로써 지배구조에 균열을 냈다. 이명박·박근혜 집권기 동안 진보층에게 ‘국가’가 혐오의 대상이었다면 ‘지역’은 희망이었다. 이것이 지방분권지상주의의 얕은 뿌리다. 그러나 뿌리가 얕은 현재는 영속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지역의 민주적, 진보적 역량은 북구나 대륙유럽의 몇몇 나라처럼 두터운 토대를 갖고 있지 않다. 한국의 지역정치는 많은 부분 중앙정치의 확장이며, 중앙정치의 급변은 지역의 판도를 쉽게 바꿔놓을 수 있다. 진보주의자의 지향은 강력한 지역권력이 아니라 평등한 지역사회다. 오는 지방선거의 모토는 ‘지역에게 분권을!’이 아니라 ‘지역부터 복지국가를!’이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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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 인천복지아카데미
'복지국가 들여다보기'
▶일시 : 6월 19일~7월10일 매주화요일 오후 15시
▶장소 : 인하대 9호관 217호
▶대상 : 사회복지종사자 30명 내외

복지국가와 사회적경제
사회적 경제는 복지국가 미래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
정무권 | 연세대학교 글로벌행정학과 교수
들어가는 말
최근 전 세계에 걸쳐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 경제적 수익을 올리는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근본적인 설립의 목적이 이윤의 사유화가 아니라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지역의 복지수요를 충족시키려는, 일반 기업들과는 좀 색다른 사회경제 조직들의 설립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그리고 급격한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영향, 저출산·고령화, 생산기술의 발전과 같은 환경변화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저성장기조, 국가재정의 한계에 따라 선진 복지국가들의 지속가능성이 크게 도전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를 보완하는 새로운 대안으로서 사회적 경제의 역할이 점점 주목을 받고 있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의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주로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의 사회복지수요 충족, 취약한 농촌지역에 마을공동체 만들기 등 주로 잔여주의적 이면서 지역에서도 소규모의 주변부적 관점에서 사회적 경제의 역할을 이해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그러나 사회적 경제가 활발하게 성장하는 서구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조직들이 점점 늘어나고 지역의 중심영역으로 확산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단위가 모여 국가차원에서도 점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새로운 영역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경제가 지역의 경제활성화 또는 다양한 복지수요 충족에 주변적이 아닌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더 나아가서 우리 복지국가의 문제와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제도적 영역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
제도발전의 과정을 비교역사적으로 보면, 자본주의 발전이라는 거대한 구조적 변화에 따라 직면하는 공통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유사한 제도들이 성장하지만, 구체적인 제도 진화의 경로형성, 실제 역할과 성과는 개별 국가의 사회구조적, 역사적 맥락에서 주요 행위자들이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제도를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달라져 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복지국가가 인류사회의 중요한 공통적 발전목표가 되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다양한 복지레짐들이 나타난 것이 바로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최근 사회적 경제의 발전과정도 이런 맥락에서 공통된 위기에 대응하여 다양성을 가지고 제도형성의 경로를 밟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는 사회적 경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 사회가 어떤 제도를 만들어 나가느냐에 따라 현 복지국가의 한계를 보완하면서 우리의 복지국가의 미래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점과 논리들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사회적 경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먼저 한 사회에서 문제인식과 제도에 대한 주된 아이디어와 담론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사회적 경제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이해가 중요하다.
생산과 교환영역에서 상호주의와 연대의 원칙, 그리고 민주적 거버넌스를 존중
사회적 경제란 경제적 수익을 만들어 내는 기업의 형태나 수익의 목적을 가지지만 소유에 근거하여 이윤을 나누는 일반적인 기업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밀착되어 보다 지역의 경제적, 사회적 수요에 기여하는 공익성이 강한 조직들이 모인 영역을 의미한다(Borzaga and Defrouney, 2001). 이들 조직들은 경제적 목적과 사회적 목적을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에 혼합조직(hybrid organiza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Ever and Laville, 2001; Ever, 2005).1) 이러한 조직들로서는 주로 다양한 형식의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사회벤처, 수익사업을 하는 비영리조직이나 시민단체 등이 포함된다. 혼합조직의 영역으로서 사회적 경제의 더 중요한 의미는 이러한 다양한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지역사회에서 또는 전국적 단위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판매하거나 교환하면서 상호호혜와 연대의 원칙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일반 시장에서의 민간기업들과 다른 또 하나의 조직적 특성은 민주적 거버넌스이다(Defrouny and Nyssens, 2008).2) 시장에서의 기업은, 수익은 소유주에게로 돌아가고, 의사결정권은 '일원 일표'의 원칙에 의해 소유주나 투자를 가장 많이 한 주주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사회적 경제 조직의 운영원칙은 수익의 일부는 사회적 목적의 수행에 재투자하고, 조직의 의사결정권도 민주적 원칙에 따라 '일인 일표'의 원칙을 준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점점 조직구성원을 넘어 지역사회에서 주민 및 관계조직들을 포함하는 다중이해당사자(multi-stakeholders)들과의 민주적 거버넌스도 강조하고 있다. 즉 조직 내외적으로 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회적 경제의 의미는 이익의 사유를 추구하는 일반시장과 다른 사회적 차원에서 구성원의 민주적 운영, 지역의 공동체적 연대와 상호주의 원칙을 존중하면서 지역의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들이 모인 영역이다. 그리고 사회적 경제는 일반시장경제와 함께 섞여서 공존하고 있고, 특정한 지역이나 도시에서 사회적 경제 영역의 규모의 크기에 따라 지역사회에서의 효과와 성과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왜 사회적 경제가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가?
전 세계가 글로벌 경제화의 심화, 고령화와 저출산, 글로벌 경제 침체의 지속을 경험하면서 지역을 중심으로 심각한 경제사회적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30년간의 급속한 세계화 현상으로 다국적 또는 대기업들은 지역경제에도 깊이 침투하였다. 지역의 수요에 근거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은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고 지역의 경제자원이 내적으로 순환되는 것이 아니라 다국적 기업과 대기업을 통해 외부로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젊은이들도 직장을 찾아 농촌과 중소도시 지역을 떠나 대규모의 산업지역이나 도시로 이주하여 농촌과 소도시에는 노인만 남게 되었다. 이처럼 농촌의 지역경제는 황폐화되며 공동화되고 고령화와 함께 증가하는 복지수요를 국가복지만으로는 충족시키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현황은 인구가 집중되는 도시에서도 양극화되어 분절적으로 나타난다. 취약계층과 빈곤층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도시 주변부 빈곤지역들은 지역경제가 무기력할 뿐만 거주환경과 삶의 질이 매우 열악하고 이들 지역 역시 정부의 복지정책이 미치지 않거나 그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지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전통적인 서구복지국가의 틀을 가지고는 재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양극화·다양화된 복지수요를 대응하기 어렵게 되었다. 사회보험 중심의 유럽복지국가들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노동시장의 이중화 결과로 불안정 노동시장의 비정규직계층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취약계층을 사회보험으로 보호할 수 없는 복지사각지대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고용문제도 마찬가지다. 최근 일반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이 취약한 장기실업자, 육체적 또는 지적 장애인, 노인 및 여성, 그리고 알콜 및 약물중독자, 사회성이 취약한 자들, 이주민 등 사회적 배제집단들의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 반면에 현재의 국가의 복지정책이나 형식적인 적극적 노동시장정책만으로는 이들을 취업을 시키기도 어렵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대부분은 복지 및 노동시장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또한 산업구조가 서비스경제로 바뀌면서 기존의 일자리들이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바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가 증가함에 따라 아동 및 노인 돌봄 서비스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나 지역 비영리조직의 자발적 서비스로는 다양한 사회서비스 수요들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현실이다. 또 시장영역에서는 사회서비스에 대한 투자가 적을 뿐만 아니라 지불능력에 따라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즉 새로운 사회적 위험의 증가에 대하여 기존의 제도들이 대처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국가복지의 한계, 시장의 실패, 전통적인 비영리조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가정신과 사회적 혁신 아이디어로, 혼합조직의 형태로서 경제적 수익사업을 하면서 일자리 창출이나 다양한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과 같은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조직들은 기존의 제도가 할 수 없는 지역문제 해결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선진복지국가들도 국가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특히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이나 돌봄 서비스 부분에 이러한 사회적 경제 조직들의 성장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선진복지국가들의 집단인 EU나 OECD는 현재 증가하고 있는 경제·사회 문제들과 복지국가의 한계를 시민사회의 주도에 의한 사회적 혁신과 사회적 경제로 풀어야 하는 것을 주요과제로 삼고 정책적으로 장려하고 있다.3)
복지국가에서의 사회적 경제의 새로운 역할: 사회적 경제는 기존의 복지국가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복지국가에서 사회적 경제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복지국가는 자본주의 경제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주요 사회적 위험을 보호하고 시민들의 기본생활 유지를 위해 국가가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더하여 복지국가의 완성은 사회적 시민권에 대한 국가의 보편적 복지제공을 지향한다. 복지국가의 주요 제도영역으로는 사회보험, 공적부조, 각종 수당을 통한 소득보장의 영역과 보건의료, 교육, 노동시장정책 등을 포함하여 개인 및 집단의 다양한 서비스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사회서비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회적 경제 영역이 복지국가의 중심영역인 사회보험이나 공적부조, 그리고 기본적이며 보편적인 공적 보건의료와 교육, 그리고 중심 노동시장정책을 대체할 수는 없다. 주로 사회적 경제에서의 다양한 조직들은 혼합조직의 성격을 가지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통한 지역의 내발적 발전과 지역의 다양한 사회서비스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서 민주적 거버넌스의 성격은 분권화와 참여민주주의를 강화해, 시민민주주의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사회적 경제는 이러한 새로운 역할들을 통해 지역공동체를 형성시키는 새로운 복지혼합(new welfare mix)의 관점에서 논의될 수 있다.
이미 서구 유럽의 복지국가 맥락에서는 사회적 경제가 포함된 복지혼합은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고 최근에는 점점 중심 주체로서 성장하고 있다.4) 반면, 우리의 복지체제에서의 그동안 복지혼합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기능적인 복지공급자의 차원에서 복지다원주의와 복지혼합의 개념이 강하였다고 할 수 있다. 새롭게 성장하는 사회적 경제를, 복지국가의 맥락에서 새로운 복지혼합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담론은 아직 약한 듯 하다.
우리의 사회서비스 전달체계는 정부의 규제와 보조금에 의한 유사시장과 유사비영리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5) 그런 가운데 사회적 경제의 역할은 아직 매우 미미하다. 그리고 주류 학계를 비롯하여 정치권이나 정부에서는 사회적 경제를, 유럽의 맥락에서 성장하고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의 형성 또는 연대와 상호성을 바탕으로 하는 지역 경제와 사회적 수요 충족을 공동체적 사회경제 체제의 형성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단기적인 일자리 창출이나 자영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조직의 특성을 활용하는 정부의 정책 수단으로서 관심이 많다. 2007년 제정된 사회적기업진흥법이나 2012년에 제정된 협동조합기본법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정부통제에 의한 유사시장과 유사비영리에 의한 사회서비스 공급체계가 많은 문제점을 갖는 것처럼, 수단적인 차원에서 기능적 대체물로서의 사회적 경제의 확대는 정부주도에 의한 또 하나의 유사 사회적 경제가 형성되는 것과 같다. 이는 기존의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경제를 포함하는 복지혼합이 왜 기존의 복지다원주의 관점에서 시장과 비영리를 중시하였던 복지혼합에 대해 새로운 복지혼합의 모형이 될 수 있는 조건과 방향은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기존의 국가-시장-비영리-가족의 영역별 복지혼합에서 단순히 사회적 경제 부문이 하나의 병렬적으로 추가되어 기존의 복지혼합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가 사회서비스 거버넌스에서 중심적인 복지혼합 주체가 되어 국가-시장-비영리-사회적 경제-가족의 복지혼합이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복지혼합’의 성격을 가지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복지체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탈상품화를 넘어서는 지역 공동체 기반 복지체제 형성
사회적 경제는 역사적으로 인간사회가 형성되고 시장이 만들어지면서 경제사회에서 취약한 집단들의 상호부조적 대응양식으로 다양한 형식과 수준으로 나타났다.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과정에서는 모든 것을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 시장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응으로서 성장해 왔다. 초기 사회적 경제 운동은 18-19세기 자본주의 초기 발전과정에서 사회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하여 길드 수공업조직에 기반한 다양한 상호부조 조직의 성장과 노동조합과 지역단위에서의 협동조합운동의 활성화, 더 나아가서 길드사회주의 전통에서 시작되었다. 폴라니는 경제제도의 발전과정을 역사적이고 인류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자유주의 시장의 파괴적 결과에 대응하는 다양한 비시장적 제도의 발전을, 인간 본연의 공동체에 기반한 ‘인간살림살이 경제’를 회복하려는 이중운동의 하나로 해석한다(Polanyi, 1944; 이병천, 2014; 홍기빈, 2009). 그리고 최근 이러한 폴라니의 정치경제관을 갖는 네오-폴라니안들은 최근의 사회적 경제 성장을 글로벌 경제위기와 사회변동에 대한 구조적 대응으로서의 자본주의 사회변동의 한 축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해석한다(Bock and sommers, 2014; Block, 2003).
1930년대 경제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케인지안 복지국가의 발전이 소득보장을 통한 노동시장에서의 ‘노동의 탈상품화’를 지향하는 국가 중심 비시장적 기제로서의 이중운동이었다면, 21세기의 환경변화는 이러한 소득보장을 통한 탈상품화는 한계에 이르고 시민사회 주도의 혼합적 조직 형태로 인간살림살이 경제와 지역공동체의 회복이 새로운 이중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래에는 시장과 사회가 보다 유기적으로 결합되는 사회경제적 시장의 활성화와 상호주의적 공동체 형성을 통한 복지체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경제화와 생산기술의 발전은 고용을 줄였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응하지 못하는 장기 실업자를 증가시켰다. 서비스경제 체제로의 이행과 저출산·고령화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을 증가시켰으며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한 케인지안 복지국가는 경제안정화와 사회적 보호의 기능에 한계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미래의 복지국가는 현재와 같이 국가에 의한 다양한 사회적 보호제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수익과 함께 사회적 목적의 이행, 그리고 민주적 거버넌스를 통해 사회서비스 공급의 주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의 보완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통해 현재 복지국가의 사회적 보호시스템과 재정의 한계에 대응할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을 전략적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서비스의 공동생산을 통한 시민민주주의의 성장과 정부-시장-시민사회의 새로운 거버넌스 형성
지역단위에서 사회적 경제의 성장은 서비스 공급을 정부와 주민의 공동생산(co-production)의 주체로 만듦으로써 참여민주주의가 결합된 복지생산을 할 수 있다(Pestoff, 1999). 공동생산이란 지역단위에서 또는 개별 조직단위로서 전문공급자, 수혜자, 가족, 지역주민 등이 공동으로 협력하여 서비스 전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지역사회의 서비스 전달체계를 공동으로 기획·설계(planning and design), 관리(management), 생산(producton)하는 것을 의미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공동생산의 아이디어와 성장은 이미 여러 국가들 사이에서 점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공적 사회서비스 전달체계가 발전한 스웨덴에서는 최근 학부모들이 주도하는 보육·교육 전달체계에서 협동조합 방식의 보육센터와 학교들이 증가하고 있다. 획일적인 공적 서비스 전달체계와 관료적 서비스가 젊은 학부모들이 원하는 다양한 서비스와 질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부모들과 보육교사, 또는 학교교사들이 함께 참여하여, 서비스 종류와 내용을 결정하고 학부모들이 일부 서비스 공급에 참여를 하는 것이다.
공적 서비스 전달체계가 미발전되어 있으나 대신 협동조합이 발전한 이탈리아의 경우 사회적 협동조합의 형태로 노인·아동 돌봄, 노동통합형 협동조합들이 지역사회에서 성장하면서 부족한 공적 서비스전달체계를 보완해주고 있다. 일본에서도 지역에 따라, 지역사회의 보건의료 서비스와 노인돌봄 서비스 영역에서 협동조합 형식이 발전하면서 지역에서의 협동조합, 비영리조직, 지방정부와의 서비스 공동생산의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아직 미미하지만 서울 성미산의 공동육아협동조합 형식, 의료생협의 전통에서 성장한 안성, 안산, 원주 등의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등은 가족과 지역주민이 서로 협동하여 기초 보건의료 서비스와 장기노인요양 서비스를 통합하여 가족과 협동조합 구성원들이 함께 사회서비스를 만들고 제공하는 공동생산의 형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 외 다양한 지역에서 사회적 기업과 마을기업들은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과 상호부조적인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와 같이 사회적 경제가 중심 역할을 하는 복지혼합은 서비스 공급자의 분업을 다변화하는 단순한 기능적 대체물이 아니라, 서비스 공급영역에서 정부와 시장의 파트너쉽 관계로 성장하면서 지역사회 시민들과 조직구성원의 참여와 연대를 증진시킬 수 있다. 즉 앞에서 밝혔듯이, 사회적 경제의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는 단순히 재정적 수입을 강조하는 가운데 사회적 목적을 수행하는 기능적 조직으로서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조직 내 구성원을 포괄하는 다중이해관계자 조직으로서 민주적 거버넌스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적 경제조직의 확산은 민주적 경영과 지역의 다중이해관계자들의 상호성에 기반 한 지역공동체의 형성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리고 복지혼합 관점에서 사회적 경제의 성장은, 국가-시장-시민사회의 경계가 더욱 희미해지고 융합의 영역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회적 경제 또한 국가의 지원이나 지역사회와의 자발적 도움, 상호협동의 네트워크가 없이 지속가능하지 않다. 즉, 지역사회에서 사회서비스의 공급 및 전달체계의 거버넌스 뿐만 아니라 지역의 사회경제 전체의 공동체적 거버넌스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
경제활성화와 복지서비스 기능의 결합을 통한 지역사회의 내재적 발전의 역할
사회적 경제는 경제적 활동과 동시에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조직들의 영역이다. 따라서 사회적 경제의 성장은 지역의 정부, 시장, 시민사회와의 제도적 연계를 통해 지역 내 선순환적 생산과 고용 증가라는 내재적 발전을 이루어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도울 수 있다. 동시에 이들 사회적 경제조직들이 지역의 다양한 사회서비스를 공급해줄 수 있다. 따라서 사회경제의 성장에 의한 복지혼합은 기존에 정부에 의한 공급이 공공성을 증대시킨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지역의 조직들이 연합하여 경제적 생산과 사회서비스 공급을 동시에 하게 된다. 이럴 경우, 정부-시장-시민사회를 독립적으로 분리하여 정부의 영역만을 공공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영역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사회적 경제가 지역의 공동체 형성을 촉발함으로서 공공 영역의 확장을 가져오게 된다.
결론적으로,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적 경제가 복지혼합에서 단순히 서비스 공급자의 기능적 대체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적 경제가 역사적 형성과정에서 발전시킨 도덕적 규범과 민주적 거버넌스 원리를 강조하여 공동체 형성을 통해 새로운 복지혼합의 역할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결론: 우리의 미래 복지국가에서 사회적 경제의 역할과 우리가 해야 할일
지금까지 복지국가의 발전방향에서 사회적 경제의 역할과 가능성을 탐색해 보았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사회적 경제의 성장추세를 볼 때, 사회적 경제의 역할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지역의 경제 활성화와 복지수요, 그리고 해체되어 가는 지역공동체를 부활시키는 데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우리는 앞으로 국가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많은 위기들을 앞두고 있다. 첫째로, 지속적인 저성장과 가계 및 기업부채의 급속한 증가는 경제위기의 극복을 위한 국가재정과 수단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킨다. 둘째,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인부양 비용 부담과 인구절벽의 효과는 이제 시작단계이다. 이를 위해 국가가 많은 재정과 정책을 투입해 왔지만 아직 이렇다 할 효과가 없다. 새로운 사회적 위험의 증가에 따라 미래사회에서의 양질의 건강, 교육, 돌봄 등의 보편적 사회서비스의 공급이 매우 중요하다. 셋째로, 언제일지 모르지만 통일 이후의 부담과 남북 간 사회통합의 문제는 더욱 큰 국가의 역할을 예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복지분야의 재정 및 복지수요는 앞으로 더욱 급증할 것으로 예고된다. 따라서 지역단위에서의 보다 자주적이며 자립적으로 양질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와 공동체 형성을 통해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사회적 경제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중요할 것을 기대된다.
그러나 위에서 제기했던 새로운 복지혼합의 구조와 거버넌스의 형성을 위해서는 우리의 경우 많은 도전과 과제를 가지고 있다. 우선 우리의 사회적 경제의 발전수준은 아직 미약하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에 대한 우리의 인식수준과 담론은 학계, 시민사회, 정치인, 관료, 언론 사이에서 이념적으로 분절화되고 정파적으로 파편화되고 있다. 주류 학계나 정부에서는 사회적 경제를 규범적·역사적 맥락보다는 기능적 차원에서 단순히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수단으로 인지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경제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그 개념화에서부터 보다 역사적·맥락적 의미를 담고, 사회경제가 역사적으로 추구해 왔던 규범적 원칙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다행히도 사회적 경제 발전을 위한 시민사회운동이 점점 활성화되고 있고, 지금까지의 정부의 정책들은 일반 시민들 사이에 사회적 경제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왜곡된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이해와 정부의 단기적·수단적인 사회적 경제 정책은 다시 사회적 경제를 실패와 문제의 영역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경제조직의 민주적 거버넌스를 비롯해 지역단위에서의 민주적 거버넌스는 시민들과 지방정부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중앙정치와 지방정치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따라서 사회적 경제의 역할에 대한 치밀한 개념화, 담론의 형성과 확산을 출발점으로 시민사회의 조직화와 역량을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1) 최근 학계에서는 사회적 기업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경제조직들을 기존의 전통적인 조직의 형태와 다른 새로운 조직의 형태로서 경제적 목적과 사회적 목적을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에 혼종조직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조직들의 형태를 보면 공권력을 부여받아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 또는 정부조직, 시민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주도하여 이윤을 추구하지 않은 가운데 공익을 추구하려는 비영리조직이나 시민사회조직, 시장에서의 이윤의 극대화를 목적으로 기업조직으로 나누어 왔기 때문이다.
2) 사회적 기업 및 사회적 경제 조직들의 정의에서 경제적 목적과 사회적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는 혼종조직의 특성을 강조하는 반면에 세 번째 중요한 기준인 민주적 거버넌스의 기능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유럽의 사회적 기업 연구집단인 EMES에서는 사회적 경제에서의 대표적인 조직의 형태인 사회적 기업을 정의하면서 민주적 거버넌스를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다.
3) 최근 EU나 OECD 등 국가들의 연합인 국제기구들은 회원국가들의 정책적 차원에서 사회적 경제의 활성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4) 북유럽의 사민주의 국가에서는 사회서비스를 주로 국가가 제공하기 때문에 사회서비스 분야에 사회적 경제가 기여하는 부분은 적다. 그러나 최근에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사이에서 공식적인 복지국가 제도로 해결할 수 없는 장기실업자를 도와주는 work integration social enterprise (WISE)나 사회문화 그리고 시민운동의 영역에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조직이 성장하였고, 최근에는 교육과 돌봄분야에 민영화의 영향으로 사회경제적 조직들이 국가서비스의 대체조직으로 성장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와 같이 조합주의적 전통이 강한 유럽대륙국가들 사이에서는 제3섹터의 종교 및 비영리 조직에서의 사회서비스 공급과 상호부조 및 협동조합 중심의 사회적 경제조직들이 오래전부터 성장해 왔다. 최근에 이탈리아 등 남부유럽국가 들은 협동조합의 전통 하에 사회서비스 분야에 사회적 협동조합(social cooperatives)을 새롭게 정부가 법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서 사회적 협동조합이 사회서비스 공급자로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5) 여기서 ‘유사’비영리의 개념은 비영리의 본연의 자발성 및 자율성보다는 재정적으로 정부 의존적인 가운데 프로그램의 운영이나 내용에서 정부통제적 성격이 강한 것을 의미한다. 서구 복지국가들도 정부가 비영리 서비스 조직들에게 직, 간접으로 재정적 지원을 하면서 규제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견 그 형식에서는 우리의 경우나 서구의 경우 차이가 없어 보이나, 비영리 서비스 조직들의 자율성, 전문성, 규범적 자선성에서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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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복지국가”, 지역복지운동의 고민을 나누다
지역복지운동단체네트워크
다시, 지역이 주목받고 있다. 30년만의 개헌이 공론화된 이후 지방분권은 국가의 권력구조나 사회경제적 규정 못지않은 중요한 화두로 언급되고 있다. 이는 91년 지방의회 선거를 통해 ‘부활’한 바 있는 지방자치가 여전히 제도적, 실체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특히 ‘복지’가 국가의 핵심의제로 떠오른 2000년대 이후 누리과정 등 복지사업의 재원분담 문제, 청년수당과 같은 지방정부의 독자적 복지사업에 대한 문제 등 지역복지에 관한 갈등과 실험이 사회적 이슈로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의 개헌논의, 그리고 다가올 6월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복지분권과 지역복지에 대한 논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개헌이 공론화된 와중에도 복지분권과 지역복지정책에 대해 지방정부는 물론 학계, 지역 시민사회 모두 대응 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전국 10여개 단체가 함께하고 있는 ‘지역복지운동단체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1)는 지난 1월 10일, 부산 해운대에서 “다시, 복지국가: 복지분권과 지역별의제로부터”라는 제목으로 1박2일 간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지역복지운동단체들은 복지분권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나누고, 지역복지운동의 방향에 대한 실천적 토론을 진행했다. 심포지엄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네트워크 소속 단체뿐 아니라 관련 연구자와 언론의 관심을 받으며 약 100여명이 참석하는 성황리에 치러졌다. 본 글에서는 심포지엄 중 첫 순서로 진행된 <사회복지 지방분권에 대한 비판적 검토: 민주적 분권‘을 위한 복지분권의 3층 모형>이라는 주제의 발제·토론을 중심으로 심포지엄 소식을 전한다.
<사진=사회복지연대>
1부는 사회복지 지방분권에 대한 비판적 검토라는 주제로 윤홍식 교수(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의 발제와 관련 연구자 및 현장 활동가의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윤홍식 교수는 복지사업을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응 주체(전국적-지역적)’와 ‘보장의 성격(보편적-선별적)’으로 구분하고, 이를 다시 사회보장의 영역(사업배분), 기획·집행 책임 및 권한 분산, 재원분담이라는 3영역으로 나누어, 중앙과 지방정부 간 복지분권의 틀을 제시했다(그림1-1참고).

이어서 윤 교수는 현재와 같이 중앙과 광역, 기초단위 각자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없는 상황에서는 어떤 분권도 성공할 수 없음을 지적하며, 이제부터라도 복지국가의 관점에서 각 정부 층위별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또한 복지분권에 있어서, 지역 차원에서의 민주주의 실현, 즉 모든 수준의 정부활동에 대한 시민의 참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지역정치가 보다 강화될 필요가 있음을 첨언했다.
토론자로 나선 민소영 교수(경기대학교 사회복지학과)는 복지분권에 대한 기존의 우려, 즉 중앙정부의 재정감축을 위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점과 지방정부의 재정적, 행정적 역량에 따라 지역 간 불평등이 야기될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유효한 우려지점임을 지적했다.
<사진=사회복지연대>
김형용 교수(동국대학교 사회학과)는 발제에 대한 의견에 더해, 현장에 참석한 많은 지역복지운동단체에 대한 당부를 보탰다. 김형용 교수는 현재 지방정부가 사회보장기관으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지역운동단체가 스스로 대안적인 공급자 역할을 하고 있으나, 그것이 자칫 정부의 책무가 시민사회로 이전되고, 시민사회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따라서 지방정부가 복지를 공급하고 관장하는 기관으로서 그 소임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시·견제 행위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민주적 분권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공론장 자체를 형성하는 데 집중하는 것을 넘어, 지역 내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지역의 단체들이 역할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이태수 교수(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학과)는 윤홍식 교수가 제시한 민주적 분권이 중앙과 지방의 역할을 적절히 정리한 일종의 거버넌스 상태를 의미하는 것임을 보충하며, 복지분권이 과도한 독립과 자율로 해석되어 지방정부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발제에 대한 적절한 해석이 아님을 설명했다. 또한 이 교수는 지방분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와중에도 복지분권에 대한 학계와 시민사회의 준비는 부족하다는 점을 언급하며, 윤 교수의 발제를 포함한 이번 심포지엄이 추가적인 논의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토론자로는 지역에서 복지운동을 해나가고 있는 활동가도 참여하여 논의의 깊이를 더했다. 김정동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국장은 개헌 과정에서 분권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다뤄질지 미지수라 하더라도 향후 3,4년 내에 지역의 재정과 사무권한이 대폭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는 예상을 밝히며, 지역운동단체에서 증대될 예산과 권한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지 않으면 지역 토호에 의해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천안의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 김진영 사무국장은 시민사회가 제안했던 ‘최중증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 사업’을 예로 들며 토론을 이어갔다. 당시 천안시도 긍정적인 입장을 표했으나 사회보장기본법 관련 갈등으로 인해 지역사회의 제안과 지방정부의 권한이 대폭 제한된 사례를 들었다. 최근 사회보장기본법 상 중앙-지방정부 간 협의제도가 완화되어 해당 사업은 올해부터 시행되게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지역사회의 긴 시간에 걸친 노력보다 중앙정부의 결정으로 단번에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점에서 복지분권에 대한 한계를 느꼈음을 공유했다.
발제를 맡은 윤홍식 교수는 김진영 사무국장이 예로 든 천안의 사례를 다시 언급하며, 분권에 대한 기준이 정립되지 않는다면 계속 반복될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특히 발제에서 언급한 민주적 분권의 핵심은 모든 단위에서의 참여와 책무성이 담보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하며, 복지분권의 제도화를 계기로 넓어질 지역정치 공간에서 지역운동단체들이 그 확장된 지평을 활용하고, 발전시켜야함을 강조하며 1부를 마무리 지었다.
<사진=사회복지연대>
복지분권에 대한 논의에 이어, 심포지엄에서는 전국 최초로 시민이 직접 참여해 설립한 복지법인인 ‘우리마을’에 대한 사례 발표가 이어져 참석자들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또한 이튿날까지 6월 지방선거에 대한 전략적인 논의, 각 지역단체 간 관심의제를 공유하는 자리를 가지며 논의를 이어갔다. 이렇게 1박 2일 간 진행된 이번 심포지엄은 복지분권에 대한 이론적 논의와 실천적 논의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었다는 점, 늦게나마 지역 시민사회와 학계가 공히 대응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 행사였다. 이를 계기로 향후 개헌 및 지방선거 정국 그리고 복지국가 논의를 이어감에 있어서 복지분권 및 지역복지운동의 내용이 보다 탄탄해지길 기대해본다.
1) 경기복지시민연대, 관악사회복지,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 사회복지연대, 서울복지시민연대, (사)전북희망나눔재단, 우리복지시민연합, 인천평화복지연대, 참여연대, 평화주민사랑방, 행동하는복지연합
2) 본 심포지엄의 자료집에 실린 발제문 참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초안임을 밝힘.
2018년 예산안 통과에 부쳐
사람중심 지속성장 경제를 위한 정부의 의지를 국회가 담지 못해
아동수당 후퇴, 쪽지예산으로 인한 SOC예산 증대 아쉬워
법인세율 인상은 긍정적이나 초안보다 후퇴한 것도 유감
오늘(12.6) 2018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2017년 예산에 대비해 그 규모가 크게 증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지만(추경기준 4.6% 증가), 애초 예산안은 복지예산 비중을 크게 늘리고 SOC예산을 크게 줄이는 등 지출구조개혁을 통해서 재정정책의 기조를 전환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 그러나 국회 심의, 야당과의 합의를 거치는 동안 애초 정부안과 비교하여 복지예산이 크게 축소하고, SOC예산이 크게 증가하는 등 여소야대 국면으로 인해 현 정부의 사람중심 지속성장 경제 의지가 크게 꺾인 점에 대해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는 아쉬운 결과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예산 심의 과정에서 원하는 바를 얻어낸 자유한국당이 이후 다시 합의 파기를 선언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이다.
촉박한 국회 예산 심의 일정과 여소야대라는 정치적 지형으로 인해 이번 예산안 심의가 난항을 겪게 되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다. 그러나 특히 자유한국당은 구시대적 발상으로 복지예산을 축소하려 하였을 뿐 아니라 이를 얻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야간 이루어진 합의를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는 만행을 보였다. 속된 말로 여야간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자유한국당은 스스로 합의한 사항을 스스로 부정하며 국회의 정상적인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등의 몽니를 부렸다. 이는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이며 차후에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추진된 아동수당이 야당 측의 반대로, 결국 당초 계획보다 시행시기가 늦춰지고 소득 상위 10%를 제외하고 지급하기로 결정된 것, 극심한 노인빈곤율에도 불구하고 기초연금 지급시기가 지방선거 이후로 늦추어진 것,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건강보험 국고지원 예산이 일반회계 기준 정부안에서는 2조 448억 원으로 편성되었으나 최종적으로는 2,200억 원이 삭감되어 통과된 것은 더 많은 복지가 필요하다는 국민의 뜻을 반영하지 못한 아쉬운 결과이다.
반면 SOC예산은 초안보다 1조 3천억 원이나 증가했다. 이는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이른바 ‘쪽지예산’이 난립하면서 발생하게 된 것이다. 만성적으로 반복되는 쪽지예산 문제가 이번 예산 심의 과정에서 다시 반복되었을 뿐 아니라 쪽지 예산을 들이민 것을 자신의 공적인 양 자랑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다는 점은 우리 정치 수준이 매우 낙후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법인세율 인상이 이루어졌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최초 정부안보다 후퇴한 과표 3,000억 원 이상 구간 신설에 그쳤다는 점은 유감이다.
현 정부는 2018년 예산을 수립하면서 과거 예산과 비교해 복지 분야 지출은 증가시키고 SOC 지출은 감소시킴으로써 사람중심의 조세재정정책 기조로의 전환을 보여주려 하였으나 국회 심의과정에서 크게 후퇴했다. 사실 원래의 예산안으로도 복지와 성장이 선순환하는 국가를 실현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후퇴는 더욱 아쉬운 결과일 수밖에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가 당면한 심각한 경제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보다 강력한 조세재정정책이 필요하다. 증세 계획과 강력한 지출구조개혁 등을 포함하는 과감한 정책 전환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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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후기는 모임에 참석하진 못했으나 항상 ‘정치적 책읽기 : 복지국가편’ 모임을 마음에 두고 사는 ‘이재철’님께서 책을 읽고 보내주신 ‘후기’입니다. 비록 사진에는 없지만 항상 마음으로 함께하고 다음 모임 참석을 약속한 ‘이재철’님이 함께 사진에 나오길 기다립니다^^
매번 송구합니다. 지난 토요일 모임도 참석을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변명보다는 모임 후기를 대체할 짧은 글을 마련했습니다. 부족한 글이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6월13일의 모임입니다. 예정대로라면 <복지국가의 철학>(신정완, 인간과복지)를 읽으셨을 테지요. 모임원들께서는 즐거운 강독이 되셨는지요. 고백건대 저에게는 결코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텍스트의 밀도는 높았고, 밑줄이 필요한 부분은 많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좋았습니다. 어떤 결여라는 게 있었는데 그게 충족되는 책이었으니까요.
“구직활동 중인데요” 다소 멋대가리 없게 자기소개를 하던 접니다. 불과 몇 주전까지는 고용절벽에 서 있었고요. 연이은 고배로 심신이 지쳐갈 즈음에는 비로소 ‘일자리 복지’라는 것을 운운하기 시작했습니다. “취업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나같은 사람들을 위한 사회안정망 도입이 시급하다,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늘리고 임금피크제를 확대적용하라”며 닭똥같은 눈물을 흘려왔습니다. 말 없이 제 소주잔을 채워주던 9급 공무원 친구가 묻더군요. “왜 그래야 되는데?” 닭똥칠에 꿀먹은 벙어리가 된 저는 이 책이, 그래서 좀 반가웠습니다.
공리주의, 권리자격론, 자유지상주의, 공동체주의… 짧은 독서력이나, 저는 이토록 친절하게 복지를 둘러싼 다양한 사상적 토대들을 설명해주는 책을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저같이 부족한 독자들을 풀리지 않는 거대한 수수께끼 속으로 떠밀어버리는, 말하자면 대단히 불친절한 책과도 같았다면, 이 <복지국가의 철학>은 흡사 무척이나 친절한 이웃사촌과도 같았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존 롤스의 정의론에 굳건한 신뢰를 실어주고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1부의 내용은 롤스의 정의론이 왜 복지국가의 철학적 기초가 되어야 하는지를 다른 사상들과 대조하며 역설하는데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가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데 어쩌면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인식의 토대가 바로 롤스의 정의론에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2부는 복지국가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속에서 순기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는 성장과 분배를 설명할 때 으레 둥근 파이 한 판을 떠올리고, 특히 분배를 설명하면서 찢겨져 나가는 파이를 연상해왔는데요. 늘 옳은 연상이 아닐 수도 있음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복지국가를 통한 소득재분배는 사유재산제도의 작동에 부분적 변화를 야기한다. 부유층의 가처분소득은 줄고, 빈곤층의 가처분소득은 늘어 개인 간 사유재산의 규모격차를 줄이는 효과를 낳는다. 또 개인 간 소득 격차를 줄이고, 노동자의 처지가 개선되는 효과를 동반한다.” 분배적 정의가 올바르게 실현되는 시장경제 속에서 성장과 분배는 이분법적으로 단순 구분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파이를 대신할 비유를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이었습니다.)
서구사회는 시장실패 이후, 정부실패를 겪은 역사가 있습니다. 3부에서는 서구의 복지역사에서의 교훈점으로 ‘복지다원주의’를 언급합니다. 요컨대 정부가 복지를 전담하는 주체가 되면 부담이 가중될 수 있으니, 국가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복지 서비스를 나누어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저는 이 복지다원주의에 좀 매료됐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복지수요를 과연 정부만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염려되면서, 사회적경제영역에서 보충적 사회적안전망이 생겨날 필요에 대해서 생각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만약 서구의 20세기 역사에서 시민단체나 협동조합이 와해되지 않고 사회적자본이 견고하게 축적되었다면 정부실패를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20세기 세계사가 바뀔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짧게나마 독서모임을 다녀가면서 ‘복지’와 ‘복지국가’를 접해오고 있습니다. 강독 후에는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말씀하시는 구체적인 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있기도 하고요. 워낙에 제가 식견이 부족해서겠지요. 사실 막연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되지, 왜?’ 라는 질문이 해결이 안 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음 모임에서 조금은 더 이해를 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독서를 통해 조금은 더(여전히 자신 없지만) 공감대가 형성이 됐거든요. 다음 모임은 27일이지요? 다이어리에 시꺼멓게 칠해놨습니다. 책도 미리서 읽어놓을 생각입니다. 제 자리 빼지 마시고요, 곧 뵙도록 하겠습니다.
복지국가와 평등에 대한 단상

이주하 |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얼마 전 장애인 학부모가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서울 강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주민 토론회에서 장애인 학부모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장애인 학교설립을 호소하는 장면이었다. 강서구 내 현재 1개의 장애학교가 있지만 수용인원이 턱없이 부족하고 100명 가까운 학생들이 왕복 3시간씩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추진 중이었던 특수학교 설립이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는 기회의 평등조차도 쉽게 확보하기 어려운 사회가 된 것인가?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교육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강화되고 있는데, 강남으로 대변되는 집값과 특목고 및 명문대 진학 간의 밀접한 상관관계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곧 교육이 기회의 평등을 촉진시키고 계층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경제적 지위의 대물림을 공고히 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대학 입학에 도입된 기회균형선발 및 지역균형선발 특별전형은 입시위주의 교육현실이 낳은 능력 만능주의의 폐해와 학벌이 파생시키는 구조화된 차별 속에서 ‘기균충’, ‘지균충’이라는 용어로 희화화되고 있다.
그럼 결과의 평등은 어떠한가? 일찍이 ‘권력자원이론’의 대가인 코르피(Walter Korpi)가 『민주적 계급투쟁』(1983)에서 강조하였듯이 복지국가의 발전은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보장을 전제조건으로 하여 결과의 평등이 어느 정도 실현되는가에 달려 있다. 때론 결과의 평등은 ‘가난의 평등’이라는 의도적인 왜곡 내지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산실인 시카고학파의 대부로 잘 알려진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그의 저서 『선택할 자유』(1980)에서 자유보다 (결과의) 평등을 앞세우는 사회는 평등과 자유, 어느 쪽도 얻지 못한다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신자유주의의 첨병이었던 국제통화기금(IMF)조차도 불평등은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재분배로 인한 낮은 불평등은 경제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평생을 불평등 연구에 천착해온 앳킨슨(Anthony Atkinson)은 『불평등을 넘어』(2015)에서 오늘날 불평등의 수준이 매우 심각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완전한 평등이 아닌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라도 재분배를 통한 결과의 평등이 필요함을 설파하였다. 즉 ‘기회의 불평등’은 ‘결과의 불평등’을 낳고 이는 다시 ‘기회의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데, 제도적으로 재분배를 적극 추진하지 않으면 오늘의 결과의 불평등이 심화될 뿐 아니라 내일의 기회의 불평등 역시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서 회자되고 있는 ‘금수저·흙수저 계급’의 세습사회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상대적 빈곤율, 5분위 배율,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임금불평등 등의 기준으로 살펴볼 때 한국은 안타깝게도 OECD 회원국 중 결과의 불평등이 높은 국가에 해당된다.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인 지니계수의 경우 그간 통계청 산출방식에 대해 논란이 있어왔다. 즉 가계동향조사를 바탕으로 한 현행 지니계수는 전체 표본이 8,700가구에 불과하고, 고소득층의 소득 반영이 쉽지 않으며, 금융소득이 제외되었고, 1인 노인가구나 청년가구도 배제되었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온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지니계수는 OECD 평균 보다 낮게 추정되었으며, 이는 지난 박근혜정부에서 소득분배가 개선되고 있다는 주장의 증거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올해부터 가계동향조사가 가계지출조사로 개편되어 지니계수를 산출하기 어렵게 된 상황 속에서 통계청은 가계금융복지조사를 기반으로 하고 국세청 조세자료를 추가로 참고한 새로운 지니계수를 12월에 공표할 계획이다. 사실 이전에도 가계금융복지조사나 국세청 통합소득자료를 토대로 한 지니계수의 보정작업이 있어왔는데, 그 수치를 보면 OECD 평균을 크게 상회하였다. 결국 새로운 지니계수는 사회적 양극화와 소득불평등이 매우 심각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크루그먼(Paul Krugman),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와 같은 세계적 석학들은 미국의 중산층이 무너진 과정은 경제발전에 따른 장기적 결과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도래를 알린 레이건 정부 이후 공화당 집권기의 조세정책 때문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소득세 최고세율이 70-80% 이상이라 하면 이상한(?) 나라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유럽보다) 중시하는 선진국인 미국에서 그것도 보수정당인 공화당이 집권하였던 1950년대에 소득세 최고세율은 무려 91%에 달하였다. 그 이후에도 70%대 이상을 유지하던 소득세 최고세율이 레이건 정부 이후 30%대로 낮아진 것이다. 나아가 크루그먼은 『미래를 말하다』(2007)에서 “정치가 경제를 바꾼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미국이 심각한 경제적 양극화를 겪고 있는 것은 세계화의 결과가 아니라 소수의 부유한 엘리트층만을 위한 정부정책 때문이며, 경제적 양극화가 정치적 양극화를 낳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양극화가 경제적 양극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 역시 『불평등의 대가』(2012)에서 정치적 게임의 규칙이 상위 1%의 상류계층에 의해 결정되었고, 그 결과 경제 게임의 규칙 역시 1%에게 유리한 반면, 나머지 99%는 자신의 이익을 침해하는 시장만능의 정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지적하였다. 결국 이들의 주장은 빌 클린턴 대통령의 유명한 대선 구호인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에 빗대어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야!”(It's the politics, stupid!)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평등을 생각할 때 정치적 차원에서의 평등에 대해서 간과하기 쉬운데, 인류 역사에 비추어 보면 모든 시민이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평등을 누리게 된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았다. 19세기 가장 선진적인 민주주의 국가인 영국에서 지대를 지불하거나 집을 보유하지 않은 남성 노동자들은 실질적인 투표권을 행사하기 어려웠고, 여성과 흑인의 참정권은 아예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것은 불과 100년 정도인데, 민주주의에 관해 상당히 진보적인 프랑스에서의 여성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총선에서 선거권을 갖지 못했고, 스위스에서는 심지어 1971년까지 여성에게 보통선거권이 없었다. 미국에서 흑인은 노예제 폐지 이후에도 문맹검사제 및 인두세 등을 통해 투표권이 제한되었는데, 실질적으로 정치적 평등을 쟁취한 것은 겨우 50년 전인 1965년이었다. 건강보험제도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좋은 교재인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Sicko)’에서 영국의 유명한 정치인인 토니 벤(Tony Benn)은 “민주주의야 말로 세상에서 제일 (심지어 사회주의보다도) 혁명적인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말을 남겼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를 위해 조세와 공적이전소득을 통한 소득재분배의 확대는 필수적이다. 어쩌면 정권교체는 새로운 변화를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 ‘기회의 불평등-결과의 불평등-기회의 불평등’의 악순환에 균열을 내기 위해 정치적 평등과 민주주의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해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복지국가로 가고 있는가
이은주 |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정책위원
증발된 복지 이슈? 가까워진 복지!
정권교체 이후 순탄한 듯 보이는 100일이 지나갔다. 정책을 추진해야 할 사람들이 결정되고 정책의 상세한 윤곽들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일자리에 대한 정책이 제일 먼저였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복지제도로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선언한 ‘문재인 케어’와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이 8월 10일 전후로 보도되었다. 필요로 했던 내용들 그리고 급히 개선, 추진되어야 했던 정책들이기에 한편으로는 다행이면서도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안심이 되는 부분은 우리 사회가 복지정책을 받아들이는 패턴에 조금이나마 변화가 보인다는 것이다. 복지는 늘 가난한 사람에 대한 대책, 선별주의에서 머물러왔지만 점차 사회안전망의 역할로 전환되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노동시장과 복지와의 관계 설정에서 복지는 일자리에서의 탈락을 보완하는 역할에 무게가 실린다. 문재인정부의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감축 및 처우개선, 노동존중사회의 실현이라는 3대 핵심 정책은 고용-노동-복지의 소위 ‘황금트라이앵글’의 작동을 전제로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모든 불리한 상황이 중첩된 근로빈곤층만 해도 복지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졌다면 사회구성원으로서 빠른 복귀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자활과 자립의 종착점은 노동시장으로의 재진입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복지’는 안전망으로서 노동시장에서의 탈락한 사람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즉 노동자로서 노동시장에 재진입할 수 있는 도약판(springboard)이다. 1차적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한 사람이 불안정한 사회구조에 의해 탈락한 이후 사회구성원들의 합의와 재분배를 통해 작동하는 시스템 내에서 회복을 돕는 것이 복지정책이다. 황금 트라이앵글은 이런 상황이 잘 작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덴마크에서 20년도 더 된 황금트라이앵글을 국정과제에 명시한 것은 어디든 펼쳐져 있고, 곳곳에 구멍이 나지 않은 안전망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우려도 있다. 제도가 잘 만들어지고 시대 변화에 맞게 수정 보완해 가는 과정은 필요하지만 제도나 정책에 가려서 ‘사람 중심’이라는 가치가 공허한 외침으로 남지 않을까라는 기우이다. 정책이 사람을 무시하고 제도가 사람을 간과하게 될까봐 걱정이다. 시스템이 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책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며, 사람이 정책과 제도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정부는 사람을 앞에 내세우지만 여전히 촘촘하게 ‘사람 먼저’가 다가오지는 않는다. 국민인수위원회 보고대회는 이러한 우려를 충분히 보여주었다. 현장의 얘기를 듣는 것은 지난 불통의 시대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소통이 되니까 이제 변화도 보고 싶고 그 변화를 체감하고 싶다. 100건의 정책제안이 1차적으로 국정과제에 반영된 이후 광화문 1번가를 통해 들어온 정책은 총 18만여 건, 그 중에 17,000여건의 정책들이 추가적으로 논의 중이라는 보도만 되었다. 이미 대국민보고대회가 끝났으니 공중분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은 일상의 복지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정권교체 이후 정권교체라는 현상 자체가 가져온 근거 없는 믿음과 안심 때문인지 복지국가의 그림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제도들의 세팅은 비어 있는 부분이 많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거나, 혹은 너무 과도한 부분도 많다. 그래서 오죽하면 박근혜 정부는 중복사업을 없애는데 주력했을까. 복지비용이 낭비라는 전형적인 보수의 프레임이 이명박 정부 때부터 꾸준하고 철저하게 진행되어 온 결과, 제도는 넘쳐나는데 정작 시민들은 체감하지 못하고, 복지욕구는 늘어나지만 수용되는 요구는 찾아볼 수 없는, ‘정책과 국민과의 분열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혹은 정책 사이의 균열상태도 보인다. 그러나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수정과 보완은 언제든지 가능하고,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것이지, 길을 갈고 닦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참여연대
지켜보는 복지에서 만들어가는 복지로
IMF 이후 급격히 확대된 복지제도를 되돌아 보건데, 노동 기반으로, 노동을 근거로 한 복지제공이 합리적이고 타당한 분배였다. 하지만 그런 노동기반이 불안정해지는 지금 상황에서 어떤 복지가 제공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분산되어 있거나 논외로 빠져있다. 대표적인 사례인 사각지대 문제는 이제는 사각지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최근에 나타난 문제가 아니라 장기간 고착화된 결과이다. 복지체감을 해야 하는 현장은 분산되어 있는데 이를 연결하는 안전망은 실핏줄처럼 퍼지는 것이 아니라 듬성듬성 큰 줄기만 강조되어 있는 것이다.
국가의 역할이 강화된다고 하니 복지는 다 실현될 것만 같다. 하지만 그동안은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느라 바빴다면 이제는 시민들이 또 다시 질문을 해야 할 시점이다. 국가가 알아서 한다니 잘 하는지 지켜보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여기서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방식처럼 누굴 먼저 보호하고 누굴 먼저 챙겨야 하는가를 따지고 알려주는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사회적 위험은 누구에게나 발생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사회적 위험도 양극화된 계급에 따라 달리 적용된다. 노동시장의 뒷받침도 약해졌고, 따라서 사회보장의 개념도 변화되어야 한다. 적극적인 복지국가의 역할만 기대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인 제도와 정책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와 국민, 정책과 나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다. 이런 길은 아주 멀고 돌아가는 길일 수 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 수도 있다.
정부의 신뢰회복을 원한다면 우리가 그 정부를 뽑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뽑는 것’과 ‘신뢰’ 사이의 연결성은 분명하지만, 막상 투표행위를 할 때는 다시 ‘사람 먼저’ 보다는 전문성과 똑똑함에 기대곤 한다.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무거운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 실용성, 실현가능성이라는 목표수준, 즉 현실적인 수치가 가지고 있는, 혹은 감추고 있는 비겁함도 솔직하게 드러내고 요구해야 한다. 복지국가가 실현되려면 시민들이 할 일이 너무 많다.
세대 간 연대는 계산기로 계산되지 않는다
-노후소득보장의 세대분리 프레임을 넘어-
이은주 | 민주연구원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은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공동의 대처였다. 수고로운 노동에서 벗어나 남아 있는 짧은 노후 생활은 과거의 삶을 존중 받는 존엄한 노후보장으로 이어졌다. 누구에게나 닥치는 은퇴라는 사회적 위험을 공적 연금을 통해 보완한 것이다. 노후소득보장은 당당한 권리이자 젊은 시절 소득의 일부를 유예시키면서까지 차곡차곡 쌓아놓았던 노력의 결과였다. 완전고용 하에서 다만 일이 고될 뿐 전혀 불안할 수 없는 장기간 근로와 그 이후 적정한 수준의 노후 소득보장은 은퇴 후 삶의 모습을 악화시키지 않았다. 그 누구도 명시적으로 합의하지 않았고, 계약서도 쓰지 않았지만 암묵적인 합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세대 간 계약은 세대 간 연대를 공고히 하면서도 불안하지 않은 미래를 꿈꾼다는 점에서 안도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이 지속될 줄,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전후 짧고 달콤했던 노동과 자본의 대타협 시기, 복지국가의 황금기는 21세기를 지나오면서 노동시장의 급격한 분화와 고용의 안정성을 담보하지 못한 채, 빠른 은퇴와 긴 노년기를 남겨놓았다. 이제 20대에 노동시장에 진입해서 40년을 보내고 은퇴 후 10~15년을 공적연금으로 남은 인생을 즐기고 떠나던 시대가 아니라 30대 초반에 노동시장에 들어간 이후에는 각종 비정규고용에 시달리다가 은퇴가 아닌 고용 중단과 재고용을 반복한 후 빠른 은퇴와 이후 40~50년(기술을 새로 배워서 살아도 될 만큼의 긴 시간)을 남겨놓은 역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짧은 황금기라도 경험한 서구유럽은 공적연금의 세대 간 계약과 합의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부모세대를 그렇게 부양했고, 후세대도 익히 봐와서 알고 있다. 세대가 지속되는 한 노후소득보장은 가능할 것이라고. 단지 그 부양의 타이밍이 좀 빨라지고 부양의 대상이 많아지고 오래되었을 뿐, 노후라는 공동의 사회적 위험에 대한 공동의 대처가 가장 확실하고 안정적인 대안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회구성원들이 익히 봐오고 체험했던 과거의 방식은 급격히 바뀌고 있다. 이제는 통할지 장담할 수가 없다. 자본주의도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로 전환되고 있다. 기업은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아도 자본을 쌓고 이윤을 창출할 수가 있다. 노동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아쉽거나 애쓰지 않아도 된다. 기술혁신에 따른 4차 산업혁명 등은 우리에게 빨리 선언되었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아쉬운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거시경제의 숫자들이다.
이런 사회에서 모아놓았던 돈들은 한순간에 휴지조각으로 바뀔 수도 있다. 사놓은 건물들은 현금화를 하려면 예상된 금액보다 훨씬 낮은 금액으로 털어야 할 수도 있다. 경제활동시기에 모아두었던 현금으로 노후 생활을 보내겠다는 초기의 약속은 은퇴 직후 10년을 전후로 다 소진 될 것이며, 그 이후는 가슴 한 켠이 찌릿한(불편한) 감정을 가지면서 누군가로부터 이전된 돈으로 소비하고 내 삶을 즐기는 날들이 계속될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한편으로는 그런 삶도 좋다고, 만족스럽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지낼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혹은 우리는 그런 자격이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산업화시기 나를 돌보지 않고 대한민국을 이렇게까지 성장시켜놓은 산업역군들과 독재정부 하에서 대한민국을 잘 관리 운영해왔던 공무원들은 박봉으로 그 시절을 보내왔고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식들을 키워왔기 때문에, 이제는 조금 누려도 되고, 누릴려고 이렇게 고생해왔다고 큰 소리 친다. 그리고 그 시절의 부모세대가 가졌던 열정과 에너지를 지금의 젊은이들이 갖지 못함에 아쉬워한다.
지금 세대는 그 이전 세대(현재의 노인)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일자리 미스매치는 단순히 노동조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풍요롭고 귀하게 자란 세대는 소위 ‘죽도록’ 일하고 싶지 않다. 더구나 민주주의가 회복된 사회에서 성장한 세대들은 인간적인 생활이 아닌 삶을 상상하기 싫다. 지금의 청년들은 부모세대의 지혜를 빌려 생계유지를 위해 많은 것들을 차곡차곡 채워왔지만, 각종 스펙으로 무장을 하고도 정작 일하지 못하는 현실에, 낮은 임금에 황망해하고 있다.
세대 간 연대를 통해 이어져왔던 노후 소득보장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과연 후세대에게 돌려줘야 할 것들이 통장인지, 아니면 살아갈 힘을 마련해 줘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 지금 통장은 당분간 꽉 차 있고, 향후 20~30년은 거뜬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통장의 잔액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 것이고 몇 년 전부터는 그나마 생각만큼 통장의 돈이 확 불어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현 노인 세대를 부양하는데도 버거운 통장 잔액을 어떻게 유지하고 후세대들에게 돌려줄 것인가? 지금까지는 이전의 방식이 통했다고 좀 더 모으자고만 얘기했지만 30년 후 미래에는 이 방식이 유효할 것이라고 전혀 예측이 되지 않는다.
지금 젊은이들의 노후 준비는 과거와는 다른 반전을 요구한다. 세대 간 형평성을 따져서 비용을 누가 더 부담하고 덜 부담할 것인가를 계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자원 배분 방식이 필요한 것이다. 어떻게 계산을 하고 노후를 보장받을 것인가는 사회적 자원을 사회구성원이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나눌 수 있는가, 그것에 합의할 수 있는가로 초점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아직 합의가 어색하고 어렵다. 자원의 분배에는 더욱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미래세대에게 남겨줄 유산은 아마도 당장의 통장보다는 이런 과정들을 만들어 가는 지혜로운 판단이어야 할 것이다. 누가 손해를 보고 누가 이득을 보는지를 따지는 것은 끊임없는 분리와 불안을 만들어낸다. 소위 합리성이라는 전제 하에 벌어지는 무수한 불합리한 상황들을 우리는 겪고 있다. 세대 간 형평성을 논의하는 자리들이 그렇고, 세대 간 형평성을 위해 계산하는 과정들이 그랬다. 노년의 삶은 세대를 분리한 계산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솔직하게 터놓고 당사자들이 함께 공동의 위험에 공존으로 대처해나갈 수 있는 지혜들을 모아야 한다.
조세재정 개혁과 정치·사법 권력에 대한
시민참여 구조 확대에 힘써야
회원님들께 2014년 활동평가와 2015 활동계획을 물었습니다.
이재근 정책기획팀 팀장
참여연대는 2015년 사업을 계획하면서 2014년 활동에 대한 회원들의 평가와 의견을 듣기 위해 2월 3일부터 2월 13일까지(약 10일간) 회원모니터단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번 설문조사는 2014년 활동 평가, 2015년 사업 방향 등에 관한 설문으로 구성되었으며, 현재 활동하고 있는 회원모니터단 480명 중 262명(응답률 54.6%)이 참여했습니다.
<설문개요>
- 조사 목적 : 참여연대의 2014년 활동을 평가하고, 2015년 활동방향을 수렴하여 사업계획 수립의 참고자료로 활동하기 위해
본 조사를 실시함
- 조사 방법 : 구조화된 질문지를 이용한 이메일 조사
- 조사 대상과 시기 : 참여연대 회원모니터단 480명, 2015년 2월 3일~2월 13일
- 설문 응답 : 총 262명(총 480명 중 54.6% 응답)
- 분석 수행 : 리서치뷰 한규용 연구원
■ 2014년 활동 평가
설문결과 회원모니터단은 참여연대의 2014년 활동 전반에 대해 『만족』 응답이 78.3%(매우 만족 8.0% + 대체로 만족 52.7% + 약간 만족 17.6%)으로 평가했습니다. 한편, 『보통』 응답은 14.5%였으며, 『불만족』 응답은 7.2%(매우 불만족 0.4% + 대체로 불만족 1.1% + 약간 불만족 5.7%)였습니다. 7점 척도 평균점은 5.38점으로 ‘대체로 만족’ 보다는 낮고, ‘약간 만족’에 조금 더 가까운 수준입니다. 회원들이 보기에 참여연대가 아주 만족스러운 활동을 하고 있지는 못하다고 평가해 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불만족’한 이유로는 ‘정책변화 등에 영향을 주기에 한계가 있어서’(47.4%)가 가장 높았습니다. 『만족』응답은 여성(86.4%), 공무원·교사(83.8%), 학생·주부·기타(90.9%), 수도권외지역(83.9%), 정의당지지층(85.7%)에서 특히 높았습니다.
2014년 참여연대 활동에 대한 분야별 평가를 7점 척도 평균점을 기준으로 비교해보면, 행정감시·공익제보·공익법(5.52점), 복지·노동(5.52점), 의정감시·사법감시(5.42점), 회원·시민참여(5.39점), 경제·조세(5.38점), 민생(5.24점), 평화군축·국제연대(5.09점)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민생분야의 만족도가 낮게 평가된 것은 ‘전월세 문제’ 등 민생문제가 악화되고 있으나 성과가 회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더 분발하여 민생을 살리는 활동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평화군축·국제연대 역시 더 열심히 충실하게 활동하겠습니다.
2014년은 참여연대가 창립한지 2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창립 20주년 기념행사와 컨퍼런스 개최, ‘감시자를 감시한다’ 등 단행본 3종 발간, ‘시민의 놀이터’로 변신하기 위한 공간 개선 사업 등 다양한 20주년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참여연대 20주년 기념사업 활동에 대해, 『만족』응답이 77.1%(매우 만족 13.4% + 대체로 만족 41.6% + 약간 만족 22.1%)로 나타났습니다. 한편, 『보통』응답은 19.5%였으며, 『불만족』응답은 3.4%(대체로 불만족 1.1% + 약간 불만족 2.3%)였습니다. 7점척도 평균점은 5.41점으로 ‘대체로 만족’보다는 낮고, ‘약간 만족’에 조금 더 가까운 수준입니다. 전체 활동에 대한 만족도 5.38점을 약간 상회하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만족』응답은 학생·주부·기타(84.1%)에서 특히 높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대응 활동은 참여연대가 2014년의 특별사업으로 삼아 적극 대응했습니다. 회원모니터단은 2014년 세월호 대응 활동에 대해 『만족』응답이 84.3%(매우 만족 30.9% + 대체로 만족 37.0% +약간 만족 16.4%)였습니다. 한편, 『보통』응답은 7.6%였으며, 『불만족』응답은 7.9%(매우 불만족 1.1% + 대체로 불만족 1.1% + 약간 불만족 5.7%)였고, 7점척도 평균점은 5.72점으로 ‘약간 만족’보다 높고 ‘대체로 만족’에 가까운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만족』응답은 50대이상(91.5%), 공무원·교사(91.9%), 학생·주부·기타(93.2%), 수도권외지역(91.9%), 정의당지지층(90.9%)에서 특히 높았습니다. 『불만족』응답은 2000년 이전 회원가입층(13.2%)에서 전체평균을 다소 상회했습니다.
참여연대가 2014년 진행한 대표적인 활동 중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복수응답(2개)을 받은 결과,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활동과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활동’이 53.1%로 가장 높았으며, ‘국정원 등 국가기관 대선 개입사건 진상규명 촉구 및 재판 모니터’가 45.4%로 뒤를 이었습니다. 그 외, ‘조현아 땅콩회항 사건 검찰 고발 및 국토부 감사 청구’(26.7%),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악 및 의료민영화 개악 저지 활동’(21.0%), ‘통신비 인하, 세입자 언론 기획, 화상경마장 반대, 사학비리 고발 등 민생 문제 대응’(13.4%) 등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활동과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활동’이라는 응답은 여성(59.3%), 30대이하(59.3%), 학생·주부·기타(63.6%), 2006~2010년 회원가입층(64.6%), 정의당지지층(62.3%)에서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 대선 개입사건 진상규명 촉구 및 재판 모니터’라는 응답은 전 계층에서 높게 응답되었습니다. ‘조현아 땅콩회항 사건 검찰 고발 및 국토부 감사 청구’라는 응답은 여성(33.3%), 2011년이후 회원가입층(35.4%), 중도성향층(36.0%)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10%로 이상 응답만 표시)
2014년 참여연대의 대표적인 회원·시민사업 중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복수응답(2개)을 받은 결과,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과 추모 플래시몹 등 회원, 시민과 함께 한 세월호 참사 대응 활동’을 꼽은 비율이 60.3%로 가장 높았습니다. 다음으로 ‘<아카데미느티나무>의 시민 강좌 운영’(38.5%), ‘국회 상임위 시민방청단 운영, 공익제보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 최소 엽서보내기 등 시민 캠페인(24.4%), ‘회원여름캠프, 회원월례모임, 오픈하우스 등 전체 회원 초청 행사 진행’(16.8%), ‘청년인턴, 불온대장정, 스케치북 등 대학생·청년 프로그램 진행’(14.5%), ‘지역회원 만나기 위한 움직이는 총회와 강좌 진행’(14.1%), ‘작은 전시회, 음악회, 영화상영, 저자와의 만남, 답사 등 문화 행사 진행’(13.7%), ‘회원 자녀 초청, 탐방 등 청소년 프로그램 진행’(11.5%)순으로 응답되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과 추모 플래시몹 등 회원, 시민과 함께 한 세월호 참사 대응 활동’을 꼽은 비율은 공무원·교사(67.6%), 2006~2010년(67.7%) 및 2011년 이후 회원가입층(67.7%), 정의당지지층(67.5%)에서 특히 높았습니다. ‘<아카데미느티나무>의 시민 강좌 운영’을 꼽은 비율은 여성(44.4%), 무당층(46.3%)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 2015년 사업 방향
참여연대가 2015년에 가장 집중하고 강화해야 할 활동방식에 대해 질문한 결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권리 옹호를 위한 당사자 연대’라는 응답이 34.4%로 가장 높았습니다. 다음으로 ‘정치, 사회 현안에 대한 순발력 있는 대응’(26.0%), ‘정책 대안 마련을 위한 전문성 강화’(20.6%), ‘다양한 시민 교육, 회원·시민(청년, 청소년)참여 프로그램 확대’(10.3%), ‘참여연대 활동 홍보와 시민 소통 강화’(7.6%)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권리 옹호를 위한 당사자 연대’는 30대 이하(44.4%), 학생·주부·기타(47.7%), 2001~2005년 회원가입층(39.7%), 새정치민주연합지지층(41.3%), 중도성향층(40.0%)에서 특히 높게 응답되었습니다. ‘정치, 사회 현안에 대한 순발력 있는 대응’은 여성(32.1%), 공무원·교사(32.4%)에서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2015년 참여연대가 가장 집중해야 할 활동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해 복수응답(2개)을 받은 결과, ‘복지국가를 위한 사회 공공성 강화와 조세재정 개혁’(45.0%)과 ‘정치·사법 권력에 대한 시민 참여 구조 확대’(43.5%)를 꼽은 비율이 비슷한 수준으로 높았습니다. 다음으로 ‘권력오남용 책임추궁을 위한 기록·기억 사업 활성화’(33.2%), ‘세월호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만들기’(32.4%), ‘노동과 함께하는 경제 민주화 실현’(21.4%), ‘시민 참여·교육·문화사업의 다양성 강화’(15.3%) 순으로 응답되었습니다. ‘복지국가를 위한 사회 공공성 강화와 조세재정 개혁’이라는 응답은 여성(51.9%), 공무원·교사(56.8%)에서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정치·사법 권력에 대한 시민 참여 구조 확대’라는 응답은 2000년 이전 회원가입층(52.6%), 새정치민주연합지지층(60.3%), 중도성향층(52.0%)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한국 복지국가의 전망1)
윤홍식 |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즐거운 당황스러움이라고 할까요? 대통령 선거 기간에 보여주었던 문재인 후보가 맞나 할 정도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취임 일주일간 대통령이 보여준 행보는 지난 9년간 비민주적이고, 독선적인 국정 운영에 익숙했던 시민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즐거움을 선물했습니다. 국정교과서 폐기를 지시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민주화운동의 기념곡으로 제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인천공항을 방문해 좌고우면 없이 비정규직을 단번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부패한 검찰에 대해서는 민주적 통제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줄 것 같습니다. 백미는 지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유족을 껴안고 모두가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것이었습니다. 막힌 속이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제외하면 국정교과서 폐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검찰 개혁 등은 재정을 투여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있겠지만, 대통령이 결심하면 추가적인 재원이 들지 않고도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한국을 어떤 복지국가로 만들어갈 것인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정치의 핵심은 그 사회가 생산한 잉여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때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한국 복지국가의 모습이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성격과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준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다양한 이념적 지향을 5개 주요 정당의 후보들이 저마다의 공약을 내놓고 치열하게 국민의 선택을 기다렸습니다. 사회복지의 관점에서 보면 취약계층에게 공적 복지를 집중해야 한다는 후보부터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후보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시민들에게 주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 후보들은 자신들의 공약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일부 후보들은 세출 구조 조정을 통해 복지공약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난 4년 동안 입증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후보들은 마땅히 복지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수반되는 재원마련 방안을 제시했어야 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제시된 대통령 후보들이 지향하는 한국 복지국가의 상을 알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GDP 대비 사회지출을 OECD 평균 수준까지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에 후보들 간에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속도를 어떻게 할지는 후보마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심상정 후보의 경우는 공적 사회복지의 지출을 매년 70조 가까이 늘리겠다고 공약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정작 사회복지지출을 확대를 통해 만들어가야 할 한국 복지국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적 복지의 양을 확대한다는 것이 곧 한국 복지국가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2016년 기준으로 그리스의 GDP 대비 사회지출은 27.0%로 모범적인 복지국가로 알려진 노르웨이의 25.1%보다 높고, 스웨덴의 27.1%와 거의 같습니다. 그러나 불평등을 측정하는 지니계수를 보면 그리스의 지내계수는 0.34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인 데 반해 스웨덴은 0.27, 노르웨이는 0.25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빈곤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의 빈곤율은 15%인데, 반해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빈곤율은 8%, 9%에 불과합니다.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이 10.4%에 불과한 한국의 지니계수가 0.31이고, 빈곤율이 15.0%라는 점을 고려하면 공적 복지지출의 확대가 반드시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합계출산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얼마나 지출하는가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지출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복지국가는 소득보장보다 사회서비스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공적 지출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은 노인 빈곤 문제가 워낙 심각하고, 아동수당과 같은 보편적인 사회수당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금급여를 확대하는 것은 필요한 부분이고, 이점에서는 모든 후보가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었던 같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적 복지를 확대하는 것만큼이나 확대된 공적 복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만들고자 하는 복지국가의 모습을 정확하게 설계하고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어떤 비전을 갖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제가 다른 곳에서도 이야기한 것을 옮기면 문재인 정부는 좌파정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더불어민주당’은 노동자의 정당도 의회 민주주의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유럽의 사민당도 아닙니다. 굳이 민주당의 이념적·정치적 기반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지역적으로는 호남, 정치적으로는 이승만 정권 이래 지속되었던 독재정권에 대항했던 제도권의 자유주의적 민주화 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교안보 문제를 제외한 복지정책만 놓고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은 심상정 후보는 물론이고 보수 후보였던 유승민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유승민 후보가 조건 없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재정문제를 이유로 장애인부터 단계적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정여건을 고려해 아동수당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 유승민 후보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우리의 기대는 이러한 문재인 정부의 이념적 성격에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이 중도적 자유주의 개혁의 한계를 넘어 문재인 정부에게 혁명적 개혁을 요구하는 순간 시민은 ‘좌파 신자유주의’와 ‘좌측 깜빡이를 켜면서 우회전’했던 노무현 정부의 재림을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중도 자유주의 정부에게 좌파적 개혁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사슴을 말이라고 해서도, 말을 사슴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지식인과 시민사회는 어떤 정권이 집권하더라도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기능을 게을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시민 작가가 이야기한 ‘진보 어용 지식인’이란 지식인과 시민사회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닙니다. 어용 지식인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에 영합하는 지식인을 일컫는 말인데, 여기에 진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진보 정권을 보수 세력으로부터 지키는 지식인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럴 리는 없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이라크 전쟁과 같은 불의한 전쟁에 파병한다면 지식인과 시민사회가 어떻게 문재인 정부를 지지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처럼 국민연금의 소득보장기능을 약화시킨다면 지식인과 시민사회가 어떻게 동의하고 지지할 수 있겠습니까?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고, 평등한 분배를 추구하려는 정권에 대한 보수의 공격에 맞서 지식인, 시민사회와 정권이 함께 할 수 있지만, 민주적 가치와 진보적 가치를 위협하고, 훼손한다면 설령 좌파 정부라 하더라고 우리는 함께할 수 없습니다. 사슴은 사슴이고, 말은 말입니다.
1) 본 글은 한국사회복지학 제69권에 실린 편집인의 글 "어떤 기대를 해야 할까?"를 기초로 수정·보완해 작성한 글임
2017년 대선후보들의 기본소득 공약과 이상(理想)의 기본소득
이승윤 |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다가오는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대두되고 어느 정도의 공론화가 이루어졌다. 기존의 복지체제를 뒤흔들 만큼의 급진적인 기본소득제를 공약으로 제안한 대선공약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기본소득논쟁의 확대 자체에 대한 우려도 많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확대된 것은 이후 한국 복지국가의 발전에 있어 유익하다고 판단된다.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의를 통해 보다 많은 유권자 및 일반 시민들이 복지의 보편성, 그리고 복지에 대한 시민의 권리에 대해 토론해보고 고민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의 개념적 속성
기본소득의 개념적 속성으로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 적절성이 있다. 무조건성은 자산조사 또는 근로이력과 무관하게 조건 없이 복지가 지급되는 속성을 의미한다. 개별성은 보편성에 포함될 수 있는데, 보편성이란 복지지급의 기준이 시민권에 기반을 두어 시민권을 가진 모든 개인들이 보편적으로 지급받을 수 있는 속성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적절성은 지급의 수준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적절한 수준 또는 충분한 수준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지급의 정기성, 현금지급의 원칙들이 추가될 수 있는데 현재까지는 무조건성, 보편성 그리고 적절성의 측면에서 기본소득의 개념에 대한 논의가 집중되어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2017년 2월까지 대선 주자로 거론되거나 출마한 8인의 후보들이 제안한 기본소득 관련 논의들을 앞서 설명한 기본소득의 개념적 속성과 비교하여 살펴보겠다. 이어 필자가 제안하는 이상적 기본소득제를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우리나라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
박원순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현재는 대선후보가 아니지만 한국형 기본소득제를 공약으로 적극적으로 제시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이하 박 시장)의 논의를 살펴보겠다. 박 시장은 2016년 12월 21일 국회 토론회에서 ‘한국형 기본소득제’라는 이름의 기본소득 제도 도입 방안을 발표하면서 아동, 청년, 중·장년층, 노인층을 두루두루 대상으로 하는 안을 내놓았다. 아동수당은 18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둔 가구에 20만 원 내외를 지급하되 아동 수에 따라 차등 지급, 청년수당은 18~30세를 대상으로 첫 직장 마련까지 2~3년 동안 연간 300만 원을 지원, 중·장년층을 위해서는 실업부조와 상병수당, 국민소득보험을 신설, 노인수당으로는 현행 20만 원을 30만 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제안하였다.
이재명
현재 ‘기본소득 당장도입’을 가장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후보는 이재명 성남시장(이하 이 시장)이다. 이 시장은 성남시 ‘청년배당’을 실행한 이력이 있는데 대선 공약으로 제안한 기본소득제는 ‘6배당 + 1토지배당’ 체계이다. ‘6배당’이란 0~12세 대상 아동배당, 13~18세 대상 청소년배당, 19~29세 대상 청년배당, 65세 이상 대상 노인배당 등의 생애주기별 배당을 비롯하여 장애인과 농민 대상의 특수배당(중복 가능)을 말한다. 각 집단별 대상자에게는 연간 100만 원이 지급된다. ‘1토지배당’은 토지소유자에게 과세하는 ‘국토보유세’를 신설하여 세수를 확보하고 전 국민에게 연간 30만 원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제안한 기본소득은 지역 상품권 형태로 제공하며 이를 통하여 골목 상권 활성화와 내수 진작 효과까지 목표로 주장하였다. 모든 안을 고려하였을 때 소요되는 예산을 계산해보면 아동, 청소년, 청년, 노인 대상의 생애주기별 배당에 23.8조원, 장애인, 농민 대상의 특수배당에 4.2조원, 토지배당에 15.5조원 등 총 소요예산은 43.5조이다.
심상정
심상정 정의당 대표(이하 심 대표)는 2016년 9월 20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한바 있다. 현재 정의당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제는 영유아(0~세)·청년(19~24세)·노인(65세 이상)의 연령층에게 자산조사 및 근로조건 없이 무조건적으로 지급하는 안이다. 특히 이와 같이 아동, 청년, 노인 대상으로 무조건적인 기본소득 지급을 1단계로 보아 단계적으로 발전시키는 계획을 구상 중에 있고 이후에는 캐나다에서 시행하는 ‘클로백(Clawback)’ 제도를 도입해 소득이나 재산이 많은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해 지급했던 부분을 환수하는 방식도 검토하고 있다.
문재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이하 문 전 대표)는 “기본소득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주어진 재정 여건 속에 기본소득의 취지를 최대한 살린다”는 입장으로, 앞서 언급한 세 후보들과는 달리 기본소득이라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보다는, 큰 틀에서 0~6세 대상 아동수당 및 미취업 청년 대상 청년수당을 도입하고, 기초노령연금을 확대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아동수당의 경우 첫째, 둘째, 셋째에 금액을 차등 지급하여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설명하고, 청년의 경우 소득수준을 고려하지 않지만 취업능력 개발을 목적으로 미취업 청년을 대상으로 1~2년 동안 약 30만 원의 금액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노인수당은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20만 원을 지급하는 현행 기초연금을 확대해 소득 하위 80%에 30만 원으로 확대 지급하는 안이 제안되었다.
손학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이하 손 전 대표)도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지만 현실적으로 완전기본소득을 도입하기는 어려운 실정이기에 당장 시급한 복지 수요를 생각하면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며 유보적이다. 손 전 대표는 아동, 노인 등 특정 계층에 먼저 도입해 효과와 문제점을 검토해보고 국민의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승민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하 유 의원)은 기본소득의 개념 자체에는 동의하며 장기적으로 검토해 볼만 하나, 현재 대선 공약으로서 논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유 의원은 기본소득 제도를 단계적으로 도입할 경우 미취학 아동과 노인층에 먼저 도입하는 방식이 적절할 것이라고 설명하여 손 전 대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안철수
기본소득제를 전면적으로 반대하는 대선주자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이하 안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가 있다. 안 전 대표는 복지 사각지대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복지체계를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기본소득에는 반대하지만 아동, 노인을 우선순위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어 사실 위의 손 전 대표 및 유 의원과 실질적인 입장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안희정
마지막으로 안희정 충남지사(이하 안 지사)는 기본소득제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였다. 특히, 안 지사는 대선 출마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세금을 누구에게 더 나눠주는 정치는 답이 아니다. 국민은 공짜 밥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하였는데, 관련하여 기본소득의 도입을 대표 공약으로 제시한 이재명 성남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 간의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상 살펴본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면 기본소득의 무조건성, 보편성 그리고 적절성 측면에서 크게 급진적이진 않다. 특히 어느 후보도 사회보장제 및 사회서비스에 대한 축소를 제안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기본소득제로 모든 제도를 대체’할 수 있다는 우파진영의 기본소득제와는 구별된다. 청년수당의 경우 이재명 시장, 박원순 시장 그리고 심상정 대표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취업 중심의 일자리 정책 내지는 고용 촉진 차원에서 청년배당 또는 청년수당을 제안하고 하고 있어 기본소득제의 보편성 및 무조건성의 속성과는 거리가 멀다.
일할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아동이나 노인 계층에게 우선적으로 지급할 수 있다는 논리도 권리로써의 복지배당보다는 조건 기반의 복지급여 속성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구체적인 복지정책을 아직 제시하지 않은 안희정 지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동수당과 기초연금에 대하서는 긍정적인 입장인 듯하다. 아동 및 노인수당(또는 기초연금)은 무조건성 속성은 포함하고 있으며, 시민권에 기반 한 보편성에 추가적으로 집단별 ‘욕구’ 측면이 고려된 것으로 기본소득 도입의 한 단계로 평가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무조건성이 있는 급여로 아동 수당, 노인 기초연금, 청년수당 등을 기본소득의 형태로 지급하고, 점차적으로 전체 인구 집단으로 확대해 기본소득제라는 별개의 독립정책으로 통합할 수 있다. 현재 이재명 시장의 기본소득제는 집단별 대상자에게는 연간 100만 원을 지급하고, 전 국민에게 연간 30만 원을 지급하는 안인데, 무조건성, 보편성 측면에서 가장 기본소득제의 성격이 강하다. 다만 지급수준의 적절성 측면에서 지급액수가 상당히 낮은 한계가 있다.
기본소득제는 기존의 복지정책들을 모두 대체하는 정책이 아니다. 그렇게 때문에 기본소득이 도입되는데 있어 다른 제도와의 정합성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 복지국가는 아직 제도성숙기에 진입하지 않았지만(현재 OECD 국가들 중 최하위권의 사회지출 수준으로 2014년 기준 10.4%임),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목격되는 변화는 이미 복지선진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성숙한 한국복지국가와 이미 탈산업화시대에 진입한 한국의 노동시장의 조합을 고려했을 때, 기본소득제의 도입이 아주 먼 미래의 제도는 결코 아니다.

기본소득과 다른 제도와의 정합성 고려
그러나 기본소득제가 현재의 복지정책을 모두 대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소득제 실현에 있어 세 가지의 측면에서 다른 제도들과의 정합성을 살펴봐야 한다. 첫 번째는 기존의 사회보험 및 공공부조 등 사회보장제와의 관계이고, 두 번째는 사회서비스와의 관계이다. 이상적인 기본소득제가 도입되어도 재생산수단의 재분배에 속하는 보육, 교육, 의료서비스는 사회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세 번째는, 기본소득제의 재정에 관한 사안으로, 기본소득제의 도입을 위한 재정조달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노동 그리고 복지국가에서의 주체적인 개인에 대한 이러한 고민에서, 당장 기본소득을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이상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미 임금노동의 정의가 모호해지고 좋은 일자리뿐만 아니라 전형화 된 노동의 필요가 총량적 측면에서 점차 줄어들고 있다. 한국 복지국가의 지체현상(mismatch)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변화하는 노동시장과 정합하고 권리로써 복지가 보장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복지국가를 우리는 적극적으로 구상해야 한다. 한국복지국가에서 기본소득제가 단계적으로 도입되기 위해서 먼저 이상의 기본소득제가 도입된 설계도를 그려보는 것은 중요하다.
한국의 이상적 기본소득제
필자가 제안하는 한국의 이상적 기본소득제는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 적절성 그리고 급여의 정기성과 현금지급의 속성들이 모두 포함된 것으로, 모든 개인에게 중위소득 30% 수준의 현금을 무조건적으로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방안이다. 중위소득 30%의 현금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생계급여 수준이다. 중위소득 30%의 현금 약 50만 원(2017년 기준)을 가구단위가 아닌 개인단위로 지급하기 때문에 0세부터 모든 노인에게 무조건적으로 지급된다. 교육, 보육, 의료 등의 사회서비스는 기본소득제가 도입되어도 함께 적극적으로 확충되며, 중위소득 30%의 지급액은 기본소득만으로도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아래 그림은 이상적기본소득제가 도입된 한국복지국가의 설계도이다.

국민연금
먼저 국민연금은 현금 급여가 지급되는 사회보험인데 급여 산출 시 균등화를 위한 A값과 개별 가입자의 소득비례 부분인 B값으로 나누어진다. 이상의 기본소득제가 도입되면, 국민연금의 급여 산출식에서 균등화 역할의 A값은 대체될 수 있고, 소득대체율은 40%로 현행대로 유지된다. 모든 시민에게 중위소득 30%에 해당되는 50만 원 정도의 기본소득이 지급되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균등화 부분은 기본소득이 대체하게 된다. 기본소득을 지급받고 40%의 명목소득대체율을 계산시 실질소득대체율을 산출해보면 명목소득대체율을 2016년 초에 논의되었던 50% 상향조정안보다 명목소득대체율을 인상되는 효과가 있다. 즉 기본소득제가 도입되면,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유지되어도 실질소득대체율이 인상되어 노후소득보장이 강화될 수 있다.
한편 국민연금은 현재 실행 중인 기초연금과는 연계되어 있다. 기초연금은 만 65세 이상의 노인 중 소득 하위 70%까지의 노인에게 월 최대 20만 원의 급여를 지급하는 제도이다. 기초연금의 급여액은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되어 있어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짧을수록 더 높은 기초연금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는 국민연금이 노후 소득을 충분히 보장해 주지 못하고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짧은 사람일수록 국민연금 급여를 적게 받게 되므로 이에 대한 소득 보충의 목적을 기초연금이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상의 기본소득제는 기초연금제를 대체할 수 있다.
실업급여
고용보험에서 가장 주요한 부분은 실업급여이다. 현재 구직급여의 지급액은 근로자의 퇴직 전 평균임금의 50%에 소정급여일수를 곱한 금액인데 상한액과 하한액이 정해져 있다. 하한액은 퇴직 당시의 최저임금법상 시간급 최저임금의 90%에 1일 소정근로시간(8시간)을 곱한 금액인데 최저임금이 변동됨에 따라 구직급여 하한액도 계속해서 바뀐다. 상한액은 이직일이 2017년 이후인 경우 1일 46,584원인데 2017년 이후에는 상한액과 하한액이 동일하여 1일 46,584원으로 책정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기준이라면 1일 실업급여 수급액은 최대 46,584원, 기간은 240일(8개월), 총 11,180,160원을 받게 되며 이를 한 달 기준으로 나눴을 경우 월 1,397,520원이다. 이상의 기본소득제 도입으로 하한액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상한선은 높여 앞서 설명한 국민연금과 같이 기본적 소득보장을 실현하면서도 실업자의 실질소득대체율은 인상시킬 필요가 있다.
사회부조
사회보험이 가입자의 보험료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반면 사회부조는 국가의 조세로 운영이 된다. 대표적인 사회부조에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장애수당이 있다. 이상의 기본소득제에서는 현금형 사회부조가 소멸되는데 대표적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생계급여와 노인 대상의 기초연금, 그리고 장애수당이 사라진다.
사회서비스
이상의 기본소득제가 도입되면서 사회서비스도 대폭 확장되어야 한다. 사회서비스를 보육, 교육, 의료, 장애인 부문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교육서비스의 경우 현재 실시하고 있는 무상급식은 전국 학교로 확대되어 유지된다. 또한 현재는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지만 이 범위가 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확장되며 이와 함께 무상급식 또한 고등학교까지 확장된다. 또한 대학교를 넘어서 직업훈련까지 모두 공공 영역에서 무상으로 제공된다.
여성복지정책
다음으로 여성복지정책을 살펴보겠다. 이후 2000년대 일가족 양립을 목표로 하여 여성의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정책은 지속적으로 대상과 급여 수준을 강화되어 왔지만, 비정규직 여성의 사각지대 문제는 계속해서 문제 제기되고 있다. 현재 고용보험 내 모성보호 제도는 출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있는데 이상의 기본소득제에서는 이러한 제도가 유지 되지만 재원이 현재와 같이 고용보험에서 지급되는 것이 아니고 조세로 충당되어야 한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여성과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받기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여성들도 제도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보육의 경우, 2012년부터 만 0-2세 아동을 가진 전 계층이 보육료를 지원받기 시작하였고 2013년부터 소득과 상관없이 만 3-5세 유아를 대상으로 누리과정이 제공되면서 전 계층을 대상으로 무상보육이 실시되었다. 2013년부터는 전 계층에서 무상보육 정책의 일환으로 가정에서 직접 만 5세 이하 영유아를 돌보는 경우 양육수당이 지급되었다. 이상의 기본소득제가 도입되면 양육수당은 대체되지만, 보육서비스는 취학적인 만 6세까지 양질의 무상보육을 실시한다.
장애인복지 서비스
마지막으로 이상의 기본소득제에서는 장애인복지 서비스도 대폭 확대된다. 현재 장애수당은 만 18세 이상의 등록장애인 중 3~6급의 장애등급을 가진 자로서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에 해당하는 사람에게 지급되고 1~3급의 만 18세 이상 장애인 중 소득인정액이 일정 금액 이하인 경우 장애인연금을 지급받는다. 이상의 기본소득액은 장애수당과 장애연금을 훨씬 상회하고, 욕구기반보다는 시민권에 기반하여 무조건적으로 지급되어, 현금성 장애인 급여는 대체된다. 하지만 장애인복지 서비스를 대폭 확대하여 장애인들의 일상적 삶의 질 향상을 꾀하고 건강보험의 공공성과 보장성이 강화되면서 장애인들의 시설 접근성도 향상될 수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복지국가
현재 탈산업화 시대의 자본주의는 여러 방면에서의 변화를 맞고 있고, 특히 노동, 일, 생산, 분배의 개념이 전반적으로 변화하는 시기에 있다. 노동은 점점 측정 불가하게 되고 있고, 노동을 통한 공정한 분배는 어려워지고 있는 현 사회적 소득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 즉 분배는 시장에서의 노동과 자원의 교환의 개념이 아닌, 분배 정의에 의해 이루어져야 할 시기가 올 것이다. 돈과 상품이 아닌 지식과 비물질적인 자원들이 공유되는 새로운 사회에서, 개인은 공적 영역에서의 노동, 일과는 별개로 자신의 역량을 발전시키게 될 것이다. 따라서 노동의 의미와 필요성은 현재와 같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글에서 필자는 변화하는 노동시장과 정합하고 권리로써 복지가 보장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복지국가를 꿈꾸며, 기본소득제가 도입 된 한국복지국가의 이상향을 간략하게 제안해보았다. 우리가 가야할 지향점을 설계하고, 기본소득제를 단계적으로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복지국가, 시민사회, 그리고 민주주의: 순환적 역동 1)
한동우 l 강남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복지국가의 언어체계
시장자본주의체제 내에서 모든 국가는 복지국가이다. 복지국가는 시장자본주의의 반(反)명제로 등장한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체제에 포섭되어 있는 한 그 국가는 복지국가이다. 시장과 가족의 상대적 존재로서 국가의 존재양식은 시장과 가족에 대한 국가의 개입정도와 범위, 그리고 국가-시장-가족의 역학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복지국가 레짐(regime) 역시 이러한 국가의 존재양식을 복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적’ 복지국가란 이론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복지국가의 다양한 이념형들이 존재할 뿐이다. 복지국가의 이념형은 그 국가의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경험과 역동에 의해 결정된다.
복지국가는 복지문제에 관한 국가주도(state-initiative)를 제도화한 체제이다. 국가주도성은 법률과 제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지국가의 모든 제도는 법률에 의해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공공재정을 통해 실행을 보장받는다. 흔히 복지국가의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로서 특정 제도의 도입여부 혹은 정부 지출 중에서 사회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따지는 것은 복지에 관한 국가주도성 정도를 따지기 위해서이다. 종종 이것이 복지국가에 대한 착시를 일으킨다. 복지제도의 다양성이 클수록, 그리고 정부의 지출 중에서 복지 관련 지출이 많을수록 그 국가를 적극적인 복지국가(국가주도성이 높은 국가로)로 평가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인 복지국가가 반드시 복지수준이 높다고 단정할 논리적 근거는 없다. 국가의 복지수준은 경제활동의 세 주체 - 국가, 시장, 가족 -가 각기 다른 영역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 결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제도들은 특정한 언어체계(Bourdieu, 2004)를 통해 사회규범과 합의에 위배되지 않도록 정치적으로 조율된 범주 내에서 인간의 문제들을 파악한다. 이는 일종의 문화자본 독점을 통한 권력행위이다. 제도의 범주 내에서 인간의 문제는 제도가 사용하는 언어 속에 유폐된다. 국가는 본질적으로 언어에 적대적이다. 인간의 다양한 문제와 욕구를 보편적인 제도를 통해 해결하려는 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시민사회의 언어는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국가는 언어와 법률담론의 표준화를 통해 사회에 대한 가독성(readability)을 높이려 한다(Scott, 1999). 복지국가에서 시민은 ‘국민’으로 호명된다. 모든 국민은 제도의 대상으로의 지위를 갖는다. 복지국가의 국민은 ‘국민연금가입자,’ ‘기초생활수급권자,’ ‘장기요양 3등급,’ 등으로 불린다. 시민사회에는 이러한 언어가 없다. 국가의 언어체계는 시민사회의 복잡한 생활을 무질서로 간주하고, 질서의 완성을 통해 무질서를 제거하려는 실현불가능한 꿈을 꾼다. 제도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해야 하는 개인은 사회 내에서 자신의 생존과 복지를 위해 타인과의 관계에 의존하기 보다는 제도에 의존하게 된다. 제도의존은 개인의 삶과 복지의 상당부분이 제도에 의해 보장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역설적으로 제도의 대상으로서 자신의 일대기를 구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스스로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여건 하에서 개인의 삶은 매우 모순적으로 구성되며, 그것을 해결해야 할 책임은 온전히 개인에게 돌아간다.
복지국가는 일종의 기술결정론을 추종한다. 인간의 문제는 과학과 기술의 진보, 정보와 데이터 관리를 통한 합리적 제도설계를 통해 개선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한 사회가 동원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과 관료제적 제도화의 정도에 따라 그 사회의 복지수준이 결정된다고 믿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문제와 인간의 문제와 욕구는 언제나 구체적인 서비스에 대한 수요로 치환되고, 제도는 이러한 서비스를 생산하는데 주력하게 된다. 결국 제도는 문제의 본질을 획일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만드는 일종의 '프로그램'이 된다. 제도는 다양한 프로그램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므로, 사회문제의 다양한 측면을 건드리게 된다. 그러나 그것 역시 제도라는 시스템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마치 장기판 위에서 말들이 움직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무한히 많지만, 어떤 경우에도 말이 장기판을 벗어나는 경우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권위주의적 국가와 허약한 시민사회의 조합에서 나타난다. 권위주의적 국가는 인간과 지역의 다양성을 간과하고 시민사회의 전통적이고 토착적이며 구체적인 지식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보다 표준화된 시스템을 더욱 신뢰하는 것이다. 허약한 시민사회는 자신의 문제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상실할 뿐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역량이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제도와 시스템에 의존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거나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
상호의존의 시민사회
인간 사회가 하나의 시스템이라면,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그 시스템에 적합한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하며, 시스템이 가진 기능과 역량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방식이라야 한다. 최근 사회복지 뿐 아니라 정치철학에서 중요한 이념적 토대를 구성하고 있는 생태담론은 바로 이런 점을 강조한다. 인간이 구성하는 사회는 다분히 자연발생적이다. 생태계 내에서 생명체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식과 모양은 일종의 프랙탈(fractal)이다. 사적 영역에서 가족의 형성 원리는 작은 공동체가 형성되는 원리와 방법으로 복제되며, 지역공동체 등 더 큰 공동체의 원리와 방법으로 반복 복제된다. 그래서 모든 인류 문명에서, 국가 이전에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이고, 여전히 지구상에는 아직 미처 근대 국가의 모양을 갖추지 못한 지역도 있으나, 공동체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시민사회는 시장과 국가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가족의 외부에 존재한다. 시민사회는 단순히 배타적 경계를 갖는 생활공간으로서의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주민들이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려고 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공유재(commons)을 두고 발생하는 개인 간의 갈등과 그 해결과정을 연구해 온 오스트롬(Ostrom, 1990)에 따르면, 정부나 시장보다 시민사회의 자발적 조직과 규범이 훌륭한 해결책이 될 수 있으며, 시민사회의 축적된 역량을 중심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은 국가나 시장의 역사보다도 훨씬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복지는 인간이 가족과 사회를 형성하는 원리에 충실한 방향으로 달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 수준의 제도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 서구의 복지국가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며, 복지와 관련한 매우 중요한 유산이다. 그러나 그 제도 역시 인간 사회 구성의 기본 원리를 재확인하고 이를 회복하는 방식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스웨덴의 복지국가 형성과정을 사민주의 정치이념의 역사적 성과물이라는 것을 강조한 버먼(Berman, 2006)의 지적은 의미가 크다. 버먼에 따르면, 스웨덴이 사회민주주의 정치철학이 제도적으로 구현되고, 그 결과로 가장 진보적인 복지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시장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공동체주의적 호소에 기반을 둔 좌파의 전략” 때문이었다.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가장 적극적으로 전제되는 스웨덴의 복지국가도 그 바탕에는 공동체주의에 기반한 시민사회가 있다는 것이다.
상호의존(interdependence)은 인간사회의 구성 원리를 함축하는 개념이다. 상호의존은 공동체의 어떤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과 떨어져서는 생존할 수 없는 일방적 의존 관계와는 다르다. 상호의존 관계에서 참여자들은 정서적, 경제적, 생태적으로 서로 의지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갖는다. 따라서 상호의존 관계는 협력적이고 자율적인 참여자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정치철학 개념으로서 상호의존의 사회구성 원리는, 근대 국가 이후에는 국가와 시장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정치 논리와 빈번히 대치해 왔다. 복지국가 역시 국가의 역량과 주도를 비교 우선의 위치에 부여한 복지체제이다. 복지국가의 성장을 설명하는 이론은, 그래서, 하나같이 국가 주도의 제도주의를 확인한다. 국가 중심의 제도화는 사회복지 제도와 서비스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확대 재생산한다. 그것이 제도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상호의존 패러다임에서의 복지체제는 제도와 서비스에 대한 인간의 욕구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인간의 능력과 보살핌의 의지를 강조한다. 국가주도의 제도가 의학적 은유를 사용하여 문제 해결 중심의 접근을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상호의존 패러다임은 문제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이미 가족과 지역사회에 담보되어 있다는 점을 전제한다. 정치철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역량을 사회자본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사회자본은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를 만드는데 핵심적인 구성요소이다. 물론 특정한 제도를 통해 사회자본의 양이 더 많이 축적될 수도 있다. 요컨대, 사회자본과 제도는 상보적인 관계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자본이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 화폐를 매개로 거래되는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복지’가 시민사회의 주체인 개인의 문제임에도 이를 둘러싼 무대의 주연들은 언제나 국가 또는 시장이었다는 점은 의아하다. 복지국가 논쟁을 둘러싼 담론들은 복지라는 공유재가 마치 국가와 시장 사이에서 선택적으로 소유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복지국가는 복지라는 공유재를 정부라는 통치체로 실현되는 국가의 관리와 규제 하에 두는 것이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가정한다. 이것은 이념적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양자택일에 상응한다. 공유재와 관련해서 시장과 국가가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게다가 국가와 시장은 모두 그 역동성을 공동체적 형태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그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컬하다(Giddens, 1998).
상호의존 패러다임은 비화폐적 교환(non-cash trade)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적 영역에서 호혜적 관계를 통해 교환되던 서비스가 화폐경제 속에 편입되면 개인과 개인의 관계는 더 이상 상호의존적이 아니다. 화폐는 임금노동에 의해서 획득되며, 그러한 서비스를 구매하기 위해 다시 노동시장으로 내몰려야 한다면 상호의존 패러다임은 성립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역사회 내의 자원활동, 지역화폐, 조합운동 등은 매우 중요한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활동 역시 제도권 내에 편입되어 있다는 점은 다시 극복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복지국가의 탈정치화와 민주주의
과학적 지식과 기술에 의존하는 제도공학적 사회에서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지거나, 정치공간에서 주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형식적으로 제도화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의 규칙과 장치들로 부터 경쟁자들 사이에서 안정적인 협력구조를 제공받는 정치 엘리트들은 이러한 제도들을 통해 발생한 이익을 배타적으로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내부 정치공간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제도를 유지하려고 한다. 한편 제도의 대상자들은 정치공간의 주변부에서 제도의 수급권을 획득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권력게임에 몰두한다. 기술적으로 세분화된 사회문제와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확장되어 가는 복지제도에 기인하는 이익집단정치는 반복지정치(anti-welfare politics)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생활세계 주체로서 개인의 정체성과 제도와 법률의 언어로 호명된 개인의 정체성 사이의 간극에서 혼란을 경험하는 개인들은 역설적으로 공동체를 찾아 헤맨다. 최근 한국사회에 불어닥친 공동체 열풍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동적 행동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제도화된 국가 공동체로부터 타자화된 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한 성찰적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근대국가를 탄생시킨 계급으로서의 시민이 주체가 되는 정치공간은 복지국가의 태동과 성장으로 이어졌지만, 제도의 대상으로 파편화된 개인들이 구성하는 정치공간은 다분히 폐쇄적인 집단적 결속과 이해를 중심으로 한다.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개인을 폐쇄적인 가족 내부로 후퇴시키고 경력개발에만 몰두하게 했다면, 복지국가의 제도들은 개인들을 정치공론장의 외부에 주변화시켰다. 이것은 매우 아이러니컬한 문제다. 복지국가의 형성과 팽창의 토대가 되어 왔던 정치적 역동이, 복지국가의 사회정책들이 정교한 제도들로 구축되어 갈수록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제도의 대상으로서의 개인은 대상으로서의 자격을 유지 혹은 확대하기 위한 권력게임에 참여한다. 이 권력게임은 제도와 개인 사이의 일대일 관계를 구성한다. 이렇게 구성된 관계는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조차 개인 차원의 정치적 발언권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일방적이다. 따라서 개인들은 제도의 개선 혹은 서비스 확대를 위해 정치적으로 연대할 가능성이 높고, 이러한 정치적 연대는 제도의 수급권을 둘러싼 길거리 권력을 형성하게 된다.
복지국가 정치공간의 분절화는 시장의 분절화와 닮았다. 분절된 공간 안에서 교환의 규범과 방식은 별개로 존재하며 작동한다. 내부 정치공간은 정치 엘리트들의 지위 투쟁의 공간이며, 주변부 정치공간은 제도 수급자들의 투쟁 공간이 된다. 적어도 두 개로 분절된 정치공간 사이에는 소통이나 교환이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투표에 의한 선거방식으로만 구현되는 대의민주주의의 형식적 합의에 의해 유지될 뿐이다. 개인과 가족의 복지 수준은 정치엘리트들의 이익과 제도에 의해 일시적으로 집단화한 수급 권력자들의 이익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다.
복지를 둘러싼 국가-시민사회-민주주의의 관계는 변증법적으로 순환한다. 복지국가의 제도는 시민사회의 참여와 합의를 통해서 수립되고, 시민사회의 역량은 제도화된 민주주의에 의해 조직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복지국가의 제도들은 시민사회의 정치적 역량을 형해화하고, 민주주의를 형식적 수준에서만 작동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국가-시민사회-민주주의의 순환은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지배하거나 식민화하려 할 때 대립적이 되며, 결과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약화시킨다. 복지국가 체제를 통해 충분히 강화된 국가의 권력은 시민사회 역량의 조직화와 동원을 통해 합목적적으로 작동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형식적 수준에서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복지가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열망을 구현하는 것이라면, 실질적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국가와 시민사회가 협력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답이다.
1) 이 글의 일부는 다음 논문들의 내용을 요약적으로 발췌했음: 한동우(2012) “복지국가와 시민사회: 제도의존을 넘어서,” 한국사회복지조사연구, 30: 57-77; 한동우, 최혜지(2015) “복지국가는 사적영역을 어떻게 식민화하는가,” 한국사회복지학, 67(2): 161-181.
[참고문헌]
한동우(2012). “복지국가와 시민사회: 제도의존을 넘어서,”『한국사회복지조사연구』, 30: 57-77.
한동우, 최혜지(2015). “복지국가는 사적영역을 어떻게 식민화하는가,”『한국사회복지학』, 67(2): 16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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